@@헵시바쁄라-y5t 일단 이 채널은 피터슨 교수님 본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을 번역해주는 채널입니다. 물론 피터슨 교수님의 인가를 받은 것이고요.(한국 팬들에게 보내는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고로 피터슨 교수님이 직접 운영하는 채널은 아닙니다. 본 채널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근데 매우 바쁘신 분이라 운영또한 위탁하시지 않으실까 생각됩니다.
현대 교회가 가져야 할 지적이면서 담백한 소통이 여기 있네요. 조던 피더슨 교수님은 뛰어난 석학이라 자신의 문제를 포장할 법도 한데 겸손하게 절대자에게 접급하려는 모습이 매력적이고 경청하고 들으시는 분또한 신학에 매몰된 무책임한 답변을 하지 않으시네요. 어쩌면 진리이기에 그에 다가가는 것은 이토록 조심스럽고 사려 깊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가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음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는 어릴적부터 늘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종교이것저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불교교리를 믿고 환생을 믿게되었습니다. 우울증에 걸렸던 저는 참선(명상)을 하면 나아지더라하는 말에 매일 3,4년을 참선하고 선업을 쌓고자 노력했지요. 하지만 기도응답도 단한번도 없었고 우울증도 전혀 나아지지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그렇게 거의 무교로 지내던 어느날 엄마에 끌려 교회에 억지로 가게되었습니다. 첨엔 짜증도 났고 억지로 끌고가니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가지 않고 있다가 그래도 이세상이 참 악한데 선한 존재는 누굴까? 음, 하나님이네.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나갔습니다. 선한존재의 편에 서면 좀 세상이 좋아질까해서요. 그러다 혼자 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이젠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한거니 불교믿은거에대해 사과를 드렸습니다. 아주짧은 기도였습니다. 그때 너무 분명히 괜찮다 하는 음성과 따뜻한 바람이 가슴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뭐지..?라는 생각과함께 조금씩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이후에도 아침에 성경통독을 하라 라는 남자목소리와 성경읽지말라고 말하는 마귀음성 등을 들으며 하나님이 정말 있구나 하며 매일 기도하고 기도응답을 들으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알게된것은 죽음이후에 천국지옥이 있으며 사람은 원래 죄로인해 심판을 받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는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고문박고 대신 조롱받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기만하면 죄사함을 받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지막때입니다. 저는 매일 휴거와 전쟁 대환란 비젼등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북한 무인기가 서울까지 들어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올해 여름에 일어나는데 올해 내가 전쟁을 낸다 하는 남성을 목소리를 들었고 중국전쟁이후 바로 한국전쟁이 나는 꿈도 꾸었던것이 기억납니다. 정말 정말 임박한듯보입니다. 이 마지막때에 구원받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호령소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탐구하는 자세가 호령소리님을 여기까지 인도하였나 봅니다 혹은 신이 호령소리님의 그 정신을 높히 산 것이겠죠 하나만 여쭈어 봐도 될까요?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선견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보여주신 이가 정말 신이라면 신이 왜 그러셨을까요? 호령소리님에게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요 저는 호령소리님이 이러한 고민을 깊이 있게 해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저라면 신의 의도를 알아차리기 전까진 그에대한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깊이 있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은 결코 가벼울 수 없을 것입니다 제 생각을 조금 더 얘기해보려 합니다 저는 신이 전도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예지하는 능력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있는 내용대로라면 신은 전지전능합니다 신의 목적이 단지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만이라면 단숨에 믿게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겠죠 하지만 신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류가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살고 탐구를 하고 신을 믿는 이러한 과정들이 결과만큼 중요해서겠죠 이렇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이 자신의 힘으로 사람에게 예지하는 능력을 줘서 전도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이것입니다 정말 신이 그러한 능력을 호령소리님에게 주었다면 왜 신은 그렇게 하였을까? 저는 크리스트교의 이런 은사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안 믿지도 않습니다 여지만 두고 있습니다 만약 신이 정말 주군가에게 이런 영적인 능력을 주고 있다면 신이 그 대상에게 첫번째로 원하는 것은 '자 선물이야 기뻐해' 가 아니라 ' 너를 높이 사니 숙제를 하나 더 줄게 내 의도를 생각해봐' 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호령소리 굉장히 신비주의적이지만 꿈을 통해 전해 들은 전쟁에 관한 전언은 너무 현실적이고,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인 점에서 놀랐습니다. 신을 배제하고 생각하자면 국제 정세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무의식적으로 규합하여 내린 결론을 꿈을 통해 보신 걸 수도 있습니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신 것이죠. 어쩌면 그런 능력이 신적인 면모가 드러난 순간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우릴 빚었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의 권능 또한 그대로 우리에게 있지 않을까요? 이성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 상상하던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발명) 인간 지성의 모든 영역이 결국 신의 면모라 생각합니다.
@@nasansnmw3527 물론 태어나자마자 그런일이 발생하고 죽은 아이들에대한 구원은 정말 하나님밖에 모르시겠죠. 정말 이것에 대해 단정하는 목사나 교인이 있다면 사이비입니다. 한국 개독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광적으로 외쳐대서 질문자님 같은 의문이 생길수밖에 없다고봐요. 하지만 현상황에서 복음(창조주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위해서 돌아가셨고 이사실을 믿는것)을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사건은 창조물의 선택이고 잘사는 사람이건 못사는 사람이건 최악의 상황에 살고있던 최상의상황에 살고있던지간에 공정하지않을까요.? 복음이란 소식이 있기전에는 영화 설국열차를 예로들자면 지구에 갇혀 이시스템에 맞게끔 계층과 약육강식에의해 살아가고 공허한 삶을 살아가다 죽어야하는 운명에서 복음이란 소식은 희망아닐까요..
@@nasansnmw3527 제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구원만을 진리로 광적으로 외쳐대는 현 한국 개독에 대해서 말했죠. 성경의 기록으로써의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구원의 영역이있는거고 분명 신만이 알고계시는 구원의 영역이 있다는거에요. 질문자님도 한국교회가 광적으로 외쳐대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에대한 부분에대해서 열이받아계신거고요. 성경읽어보시면 신약에서 바울이 말한 양심으로써의 하나님만이 아시는 구원의 영역도 참고하시면될거같아요. 하지만 한국 개독은 본인들이 신의 대리자인마냥 구원의 영역을 다알고있다는듯 규정해놓고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그게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에게 전해지니 개독 소리를 듣는게 당연하다는겁니다. 제가말하는본질은 구원은 하나님만 아시는 영역이 분명있다는겁니다. 들을귀가 있고 복음을 들을수있는 사람에겐 선택이겠죠 하지만 복음의 기회를 들을 기회도없이 죽는사람(ex영아 복음전파가 안된곳 등등) 들에게는 신만이 아시는 영역이 있다는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라는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읽어본 짧은 성경 지식으로나마 답변해드려요
@@맥사님 더 신기한것은 뭔지 아십니까? 예수천국불신지옥 외쳤던 일반 크리스천들도 무서워하는 그들이 전도를 더 많이 했다는 것이요. 한국개독은 바뀌어야하고 그냥 삶에 하나님만을 대입해서 조용히 살아야됩니다. 기본적인 것인데도 불가하고 잘 지키지도 못하거든요. 믿음생활 오래한 사람으로써 삶에 하나님을 집중하면 모든게 바뀝니다. 그냥 삶자체의 기준점이 달라진다고 해야할까요.. 뭔가 인간으로써 아직도 이해를 잘 못하겠지만 결론은 그냥 한국신도들은 하나님만 믿고 인터넷에서 내가진리요 생명이다 이런 짓하지 말고 사회에 모범이 되는 것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켜야 하는 겁니다. 또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교회만 다니면 다 천사같이 착하고 잘 믿는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나 회개를 하는 이유도 완벽한 생활을 못하고 항상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짜 개독들은 반성 일절 없고 정신병자들같이 사람무시하고 짋밟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나 신도들은 회개라도 하지 진짜 교회 안에서 개독들 보면 그런것 차이로 인해서 작은 것 같지만 큰 차이로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가 드러나는 겁니다. 살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 만나면서 완벽하고 교만하지 않은 사람 몇 없습니다 그만큼 교회나 절이나 어느 곳에서든지간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거죠 그러나 자신이 한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책임을 지며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자세는 종교인이 아닌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완벽한 사람 본 적이 없습니다. 말씀 정성스럽게 잘 써주셨는데 공감가고 감사합니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는 나는 너무나 나약해서 신이 있는것처럼 난 살수가 없다 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저를 구원해 주세요 라는 것이죠 그게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의지가 아닐까요 아브라함이 완전히 선한 인간이었기에 그를 신뢰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그저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도 그를 신뢰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0:20 제가 신을 믿기 전이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저도 이런 생각으로 한참을 괴로워했었거든요.. 그 후로 특별한 사건이나 기적 같은 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정말로 믿어지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성적인 영역의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음 기적이 있었다면 제게 신을 믿을 마음을 주신 게 기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현태김-l9b 성경말씀이나 좋은 글귀를볼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후에는 사랑의 눈이 생겼다라고나 할까요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생기고 잘됐으면 좋겠다고 축복하고싶은 마음이 생기고 사소한것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저도 증거와 보이는것만 믿겠다고 자부했는데 저절로 믿어졌습니다..
@@starpanda9109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이기적인 행동을 보인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이기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기독교를 믿음에도 그런 행위를 한 특정한 사람이 이기적인 것인가요?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이 특정 단체에 속해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그 단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논리라면 인류의 일부가 쓰레기, 연쇄살인마, 한량이라는 사실 때문에 님과 저도 그런 부류의 인간 중 하나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감각기관이 좋은사람. 즉 청력이 좋은사람, 시력이 좋은사람, 촉감이 예민한 사람은 다른사람들 보다 더 피곤하지요. 느껴지는게 많으니까요 . 조 선생님도 그런가봅니다 ㅠ 저는 이 말씀이 생각나네요. ///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 조 선생님이 느끼는 고통같은것들, 감당가능하실뿐더러 피할길까지 하나님이 이미 예비하셨음이 삶에서 드러나셨음 좋겠습니당
그 어떤 비난보다 예리하게 믿음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참혹한 모습을 느끼게 하네요. 거울처럼 투명하게 말씀해주셔서 경종이 됩니다. 피터슨 교수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시는지 오히려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인간의 가장 큰 갈망을 채우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피터슨 교수님의 진솔한 고백 속에 영혼의 고통을 느낍니다. 하나님 없는 영혼의 고통 말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죄인의 고통 가운데 찾아오시고,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께서 피터슨 교수님을 찾아가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내용도 좋지만 ,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열린자세와 상대방의 입장을 너무나 쉽게 다 이해한 다는듯이 행동하는 모습이 없다는게 좋네요. 역지사지의 자세와 공감은 중요하지만 항상 생각해야하는 것은 나는 상대방의 삶을 직접경험해본적이 없고 그렇기에 공감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알수는 없다는 것인거 같습니다. 나는 너의 삶을 모두 알고 있다는 오만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이 도덕적우월감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하죠. 언뜻보면 공감능력과 감수성이 높아보이는 사람중에는 그렇게 역설적으로 싸이코,쏘시오패스적인 성향을 가지는 사람들이 요즘 많아지는 것같아. 잡솔 잠시 해봤습니다.
조던 피터슨이 성경의 예언이 현실 속에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고도 완전히 성경을 믿는 것은 두렵다고 말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영상에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은 해답을 얻은 것 같네요. 엄청난 축복이 조던 피터슨 가족들에게 왔지만, 그러면서도 피터슨은 끊임없이 고통 속에 살았다고 영상에서 말하네요 그거에 더해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반쪽짜리 믿음이 되었던거였군요. 피터슨이 어떻게 성경의 역사를 목격했는지, 또 피터슨의 가족에게 어떤 축복이 일어났는지, 그런것들이 우연이 아닌 성경의 예언이라고 믿는 이유가 뭔지 더더욱 궁금해지는 영상이네요 피터슨이 다음에 간증 영상 한번 올려줬으면..
성경의 역사는 주인공이 예수님이니 예수님 얘기이고, 구약 대표적 인물은 욥같은 인물이 있겠죠. 가족에 대한 축복은 다른게 아니고 , 딸에 병이나 부인에 암투병 생활에서 일어난 축복들이겠죠.그거 자체가 기적이니까요.. 성경의 예언은 조던피터슨에 그런 기적들이 예언되었다는 이야기보다 구약에서의 예수님의 대한 예언이고,신약에서의 성취 같네요. 즉 예언이 현실 속에 나타나는 것을 목격 = 예언 자체인 예수님이 실존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
많은 분들이 고통 속에서 신을 체험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1950~1980년대에 기독교 인구가 한국에 계속 늘게 되었던 것이겠죠.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체험적 종교관은 모든 사람에게 대입되지 않을뿐더러, 더 이상 생계나 안전의 위험을 넘어 다른 복잡한 차원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개념 없는 것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이겠죠. 피터슨 교수는 성경 강의를 통해 성경의 내용을 추상화함으로써 그 내면에 있는 도덕적 가치를 설명해 주며 이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접근하였지만, 결국 종교는 개인의 종교적 체험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피터슨 교수의 와이프께서 암 투병을 이겨내신 것처럼 말이죠. 결론은 피터슨 교수와 같이, 섯불리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특정 시기에 결론 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고민하고 있을 부분에 대한 단서가 되는 영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가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음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는 어릴적부터 늘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종교이것저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불교교리를 믿고 환생을 믿게되었습니다. 우울증에 걸렸던 저는 참선(명상)을 하면 나아지더라하는 말에 매일 3,4년을 참선하고 선업을 쌓고자 노력했지요. 하지만 기도응답도 단한번도 없었고 우울증도 전혀 나아지지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그렇게 거의 무교로 지내던 어느날 엄마에 끌려 교회에 억지로 가게되었습니다. 첨엔 짜증도 났고 억지로 끌고가니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가지 않고 있다가 그래도 이세상이 참 악한데 선한 존재는 누굴까? 음, 하나님이네.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나갔습니다. 선한존재의 편에 서면 좀 세상이 좋아질까해서요. 그러다 혼자 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이젠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한거니 불교믿은거에대해 사과를 드렸습니다. 아주짧은 기도였습니다. 그때 너무 분명히 괜찮다 하는 음성과 따뜻한 바람이 가슴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뭐지..?라는 생각과함께 조금씩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이후에도 아침에 성경통독을 하라 라는 남자목소리와 성경읽지말라고 말하는 마귀음성 등을 들으며 하나님이 정말 있구나 하며 매일 기도하고 기도응답을 들으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알게된것은 죽음이후에 천국지옥이 있으며 사람은 원래 죄로인해 심판을 받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는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고문박고 대신 조롱받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기만하면 죄사함을 받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지막때입니다. 저는 매일 휴거와 전쟁 대환란 비젼등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북한 무인기가 서울까지 들어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올해 여름에 일어나는데 올해 내가 전쟁을 낸다 하는 남성을 목소리를 들었고 중국전쟁이후 바로 한국전쟁이 나는 꿈도 꾸었던것이 기억납니다. 정말 정말 임박한듯보입니다. 이 마지막때에 구원받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고통중에 주님을 부르짖는사람들은 주님이 반드시 들으셧고 고통을 이길수잇는 힘과 평안을 주시고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의 때에 응답하십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결론만 말하면, 그저 주님의 옷자락을 움켜쥐어야합니다. 이세상, 자신, 고통...어느것하나도 나로부터 비롯된건 없으니까요,
'고통'이라는게 사람마다 크기도 다르고 받아들이는 정도도 달라서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정형화하기가 참 힘든것같다... 누구는 몸건강하고 가족, 친구들도 아무문제없이 한평생을 고통없이 살고, 다른 누구는 지병에 사고에 가족, 친구등 불행한 사고로 한평생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게다가 개인이 받아들이고 극복할수있는 고통의 양도 천차만별이여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다...
신께서 왜 이런 고통을 내버려 두시는가하는 고민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고통은 그냥 고통일 뿐인가 그저 개인이 감내해야할 숙제인가. 왜 인생은 이토록 랜덤이라 서로를 비교하여 또다른 고통을 양산하는가. 결론적으로 고통이 우리를 성숙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해 신에대하 나아가 이웃에 대하여. 고통이 우리 주변의 고통을 알게하는 눈을 뜨게합니다. 보십쇼. 많은 고통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과 함께 웃으십시오. 그것이 크리스찬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고통을 아는 이들은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스스로 고통에 처하였음을 기억하십시오.
이게 진리다. 진리는 종교라는 이름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 해야한다. 조던 피터슨의 사유방식이 진정하고 정직한 믿음이다. 현대의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은 가식적이며 마치 엄청난 비밀을 다 알고 있는 것 처럼 행동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태도는 신앙에서 꼭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피터슨은 종속되는 신앙이 아닌 자신의 신앙을 갖고 계신거다.
교수님은 과거보다 종교 그 자체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점점더 받아들이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고통을 받아들여야 하는것이고, 그 고통이 즐거움을 불러 일으킨다는 말은 알지만 지금의 고통속에서 다른 고통을 받아들인다는건 매우 힘이 들거 같기에 고민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같은 인터뷰의 다른영상에서는 예수의 역사적 존재와 실제적존재(종교적의미)에 대해 긍정한다는 말도 했던거 같은데... 확실히 어려운 경험을 하신후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받아들이고 좀더 맘을 열며 이에 감사함까지 느끼지만 누구보다 하나님의 의미에 대해 깊게 고민한 만큼 굉장히 망설이는거 같아보입니다. 논의 하는 분은 답은 십자가 라고 말을하고는 싶지만 이 십자가의 무게가 교수님께 얼마나 무겁게 느껴질지 알기에 함부러 말을 꺼내기 어렵고 본인은 그만큼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니 쉽사리 이에 대해 전달하지 못하는 거 같네요. 현대 신앙이 기복성에 굉장히 빠져있는경우가 많은데. 신앙의 고통스러운것 이라는것을 파악하고 계시다는게 대단하면서도 존경스럽네요
@@신비-q6s 오 댓글 감사합니다 결국 교수님은 하나님을 받아들이셧습니다 개신교는 아닌거 같지만 기독교로 개종하시고 예배 참여하시는것 같더라구요 이후에 교수님이 올리신 기도 영상이 있는데 진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시고 앞으로 나가실지 저는 알수 없지만 저한테 위로가되었던 영상이라 한번 찾아보시는것도 추천드려요 댓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겪어온 고통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 되는 일이 온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이라면 필연적이라고 생각함) 그 감동은 무엇보다 클 것이며, 지금까지 겪어온 상처는 아름답게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허락하시죠. 그 허락 안에서 죄(사탄)가 만들어낸 고통과 슬픔이 사람에게 닥칩니다. 하나님께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고통을 허락하신 것이죠. 고통을 하나님께 의지함으로서 이겨내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선 이런 과정을 정말 슬퍼하십니다. 가슴이 찢어질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뒤엔 더 큰 행복과 기쁨이 있기에 슬픔을 참으시고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조던피터슨 교수님께서 이런 과정 속에 있다고 믿고,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
요즘 조금씩 무기력감을 느끼는 중이었는데 이 영상을 보면서 또 삶을 너무 나의 부족한 육신의 힘으로만 살아가고 있다는 것과 제가 감사함에 대한 마음이 흐릿해져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영상 업로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감사함에 대한 기도를 잊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ㅎㅎ
신에 대한 믿음은 없으셨지만. 늘 겸손한 마음으로 "신이 있는것 처럼 행동한다" 하셨던 우리의 조던 피터슨 박사님이 점점 믿음의 고백을 하시네요... -참고영상 ( ruclips.net/video/RtYT7A0sXps/видео.html ) 사실 전 이 영상을 1달 전부터 보았습니다. 저는 한 명의 유신론자로서 그의 마음에 많은 공감을 했고. 피터슨 교수님의 변화를 보며 신비를 체험하고 갑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장 7절 말씀
교회나 성당을 다닌다고하면서 하는 행동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랑 다를게 없는 교인(모든 교인이 그렇지 않음)들하고 어떤 장소를 나가지는 않지만 성경에 선지자들처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예수님처럼 사려고 노력하는 교수님 중 누가 더 하나님 보기에 합당한 존재일까요? 교회를 나가 형식적 예배(부정적이란건 절대 아님)를 드린다는것과 자기 삶을 직접 산 재물로 고통을 감수하며 제사 즉 예배드리는 조던 피터슨 중 무엇이 더 옳은 행동일까요? 어떤 측면에서는 믿는다면서 행동이 그렇지 못한자들과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는게 피터슨교수님께는 그곳이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이것 또한 하나의 교만 일까요? 그가 해답을 찾고 우리에게도 알려주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4장 John 4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Our fathers worshiped on this mountain, but you Jews claim that the place where we must worship is in Jerusalem.'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Jesus declared, 'Believe me, woman, a time is coming when you will worship the Father neither on this mountain nor in Jerusalem.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You Samaritans worship what you do not know; we worship what we do know, for salvation is from the Jews.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외식적이고 가식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피터슨 교수처럼 끊임없이 진짜의 삶을 갈망하며 남에게 본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결국엔 매일 깨어지고 다시 기도하고 깨지고 기도하며 죽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신앙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도리라 생각되네요 이렇게 글 쓴 저조차 부끄럽지만 매번 죄를 지으며 살아가네요..
The Lord's Prayer Our Father who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trespasses, as we forgive those who trespass against us.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clevelands 병나으라고 종교와 신을 믿습니까?ㅋㅋㅋㅋ 병 고쳐주는건 의사, 의학이고 과학이지 신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조금이라도 가감 시키려고 믿는거지?ㅋㅋㅋㅋㅋㅋㅋ 이거봐 기본적인 마인드부터 글러먹었어 두려움을 가감시키고 이겨내려는 행동이 신을 믿어야만 가능한가?ㅋㅋㅋㅋ그게 당신들 가장 큰 문제야
신의 존재가 큰 도덕적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일반적인 신관으로 보면 맞는 반응이지만 성경에서 설명되고 있는 신에 대한 이해는 특별합니다. 인간은 분명 도덕적 '의무'를 요구받지만 절망스러울 정도로 도덕적 '수준'이 부족하기에 신이 인간의 도덕적 '책임' 을 대신해 죽어주셨다. [여기서 도덕적 책임이란 '심판(두번째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조던 피터슨이 신의 존재를 떠올릴 때마다 깊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신을 대신해 죽어주신 신에 대해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죠.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심판의 신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상태인 겁니다.
오늘 날 기독교는 세상에 아무런 감동도 공감도 가치도 제공하지 못한다. 원래 기독교가 말하는 가치관이 세상의 통념과는 큰 거리가 있다. 하지만 과거의 기독교는 세상이 느끼는 관점의 괴리를 넘어서는 가치를 보여주었다. 대가없는 희생, 한없는 인내, 이해할 수 없는 용서, 사랑의 영향력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의 그림자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인들을 보며 세상은 혀를 차고 있을 뿐이다. 보편적인 도덕성조차 보이지 못하면서 그 이상의 가치를 보인다는게 어불성설인 상황이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하였지만 그저 악취만 풍길 뿐이다. 나부터서가 너무나도 부끄럽고 민망하다.
사람들 끌어모으려고 저급한 어그로 끌고 축제열고 하면서 정작 중요한걸 중점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니 패션 종교인들이 늘어나면서 가치가 하락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게 모든 종교의 끝이라고 생각해요 현대사회 접어들면서 정보가 많아지고 교류가 많아져 각자만의 가치관 형성이 쉬워졌고 위에서 말한 패션 종교인들이 늘어남으로써 신세대들의 종교인 비율이 떨어지고 종교가 점차적으로 도태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없다고 단정할 순 없다. 온 우주를 샅샅이 훑어보고 없다는걸 확인해 보진 못 했으니. 같은 이유로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을 부정할 수도 없다. 신이 선한지 악한지도 단언할 수 없다. 하나인지 여럿인지도 모른다. 형태조차 모른다. 선한 종교 활동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도 있고 악마를 추종하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 영향이 정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의 경계도 모호하다. 악했던 사람이 선해지기도 하고 선했던 사람이 악해지기도 한다. 선하다 악하다는 나에게 도움을 주느냐 해를 끼치느냐일 뿐 아닌가? 나에게 반발하는가 동조하는가로도 뒤집힐 수 있다. 결국 각자 타고난 본성이라는게 있고 개성대로 고집스레 살기 위한 명분이 필요할 뿐 아닐까? 여기부터 신이 실재 하는가 아닌가는 상관 없어진다. 신을 의식하지 말고 본인의 양심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신이 인간에게 개성을 부여했다면 그 의도는 다양성 그리고 자율성을 원했기 때문일테니.
6:19 "I don't...I feel that it's unjust, which is halfway to being resentful"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지만 지금 지속되는 고통은) "옳은 거 같지 않다 느끼는데 원통하기까진 반정도 왔어요" 하시는 모습이네요 앞뒤 내용도 이래야 이어지고요 오히려 상대한테 조언 구하는데 상대도 난 그런 경험이 없기에 뭐라 말하긴 힘들지만 기독교는 항상 십자가에 답이 있다고 한다, 거기엔 신비함이 있지만 [고통을 짊어지고 가라고] 지금 고통받는 교수님한테 할 말은 아닌 거 같다로 끝남
네 이게 맞는 해석이죠 ㅎㅎ,,!! 피터슨의 새 책을 읽어본 사람은 피터슨이 어떤 일로 고통을 받는지 아실 겁니다. 원망스러우리 만큼 큰 고통에서 하느님을 믿는건, 정말 인간으로서 쉽지 않은 거죠. 타인으로서도 함부러 말하기 어렵구요. 대화 상대도 엄청 배려하고 있네요. 이 제대로 된 해석이 좋아요를 많이 받아서, 위로 올라가길, 영상이 수정되길 바라요!
신은 도덕률이라고 해석해왔습니다. 적어도 '신이 있을까 두렵다' 혹은 '신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라는 발언에서요. 그래서 위 말의 첫번째 요구가 '관심갖기'라거나 그 형태가 예배라는 것은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군요. 관심과 예배는, 제가 보기엔 그 자체로는 신의 존재와 신앙에 대한 긍정의 의미만 지닐 뿐, 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탐구가 없거든요. 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통용될 가르침, 신이 지니는 성질이 왜곡된 것 같아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신앙을 지닌 이들은 쉽사리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말한다지요. 삶에 있어 고통과 고난은 당연한 것이라고. 참 잔인한 말입니다. 모든 일에는 인과가 존재하는 법인데 결과만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라니. 그래서 마지막 발언이 맘에 들긴 하는군요.
신을 믿는다는 것은 그 신앙의 가치관을 높게 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가치관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데 이 부분에서 신앙 이외의 가치관을 얻은 사람에게 신앙의 가치관을 가지라고 설득하거나 강요하는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죠... 최선은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가치관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생겨날지 사실 상상이 안갑니다 직업 가치관만 달라도 타협점을 찾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는데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면 이게 얼마나 많은 갈등이 벌어질지.. 종교, 비종교 할것없이 기본적으로 사람 중심의 가치관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요즘 종교인들 보면 꼭 그런것같지도 않습니다 과하게 한쪽으로 쏠려있거나 본인들에게 득이 되는것에만 관심이 있고 하는걸 보면 그냥 차라리 종교보다 사람 중심의 가치관을 더 넓히는게 어떨까 싶기도하고 어차피 종교를 냅둬봤자 비종교인과 다를바가 없다면 비종교인이 더 많아지는게 더 낫지않을까 싶네요
기독교인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다가 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한 사람으로서, (몇몇 기독교인들이 보이는 모습에 실망한 건 차치하고서라도,) 기독교 세계관 자체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인간을 기본적으로 죄인으로 규정하고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영원한 불못에서 고통받을거라고 협박(?) 하는데, 그럴거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나 싶더라구요. 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숨 좀 쉬고 싶어서요. 피터슨 교수님은 결국 기독교 빼놓고는 너무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서양권 사람이라 저런 고민들을 끝까지 하게 되는거 아닐까...
선호님은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에 정말 존귀합니다. 하나님이 가치있게 보시는, 자아가 있는 영혼이라 불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받고 있어요. 하나님은 결코 협박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에 친히 사랑하시는 인간을 죄에 대한 합당한 영벌에서 건져내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사탄 때문에 사랑하는 양들을 모두 잃어버린 아버지의 아픔과 그리움을 상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으면 어깨에 들처매고 돌아오셔서는 천국에서 잔치를 벌이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모든 인간은 엄청난 죄인입니다. 예외 없이요.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기에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정말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저희의 모든 불완전한 의와 모든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죠. 예수님을 믿는 저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오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보호하시고 함께하시며 마음의 공허감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채워주십니다. 저희는 그리스도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천국을 위해 지음받은 모든 인간은 뭍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아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받는 자녀를 내버려두시지 않으며, 고난의 범위와 양도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게다가 저희를 위해 저희 마음에 천국의 어린양, 생명의 생수 예수님을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시편에도 보시다시피 하나님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회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해하면 좋아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어떤 날은 감정적으로 좋은 상태로, 어떤 날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평안함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이 뭔지 모르고, 온전하게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구하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그리고 성령의 실제 역사를 통해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저희 또한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게다가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외국인들이 믿기만 하면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시며, 그들이 돌아올 때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불완전함을 강하게 반대하시지만 그분의 자녀를 결코 혐오하시거나 경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자식마다 훈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우리 죄에 따라 그대로 처벌하지는 않으셨고,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선대하십니다. 그래서 기회를 주고 계시며, 호흡과 음식과 다른 많은 것들을 주고 계심니다,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youareawizard 저는 그거 잘 못믿겠더라구요… 살아가는것만으로도 고통인데 그 이후에 영원히 고통받을 가능성마저 안고 살아가야 하잖아요. 기독교는 온통 정죄로 가득한데 (예수는 생각으로 범죄하는것도 범죄라고 했죠) 나는 완벽하지 않아서 계속 죄인일 뿐이고. 죄인이 지옥에 갈 걸 알면 왜 창조했는지가 풀리지 않아서 열린신학으로 풀어볼까 시도도 했어요. ‘어쩌면 하나님은 미래를 모르실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불완전한 신이라면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심지어 폭력적인 면모도 많이 보이잖아요 - 주로 구약 이야기지만) 불안에 떨면서 살 바에는 차라리 안 태어나는 편이 좋지 않나요? 저는 부모님 봉양하다 돌아가시면 조용히 제 삶 마감하는 것이 꿈이라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데, 죽으면 지옥 보내시려나… 싶네요 ㅎㅎㅎ 그럼 ‘이럴 것 같았으면 그냥 만들지 마시지 왜 만드셔서 지옥 보내세요’ 하고 싶습니다
@@sunhochoi2543 안녕하세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어 댓글을 남겨봅니다. 기독교가 정죄로 가득하다고 느끼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언급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눈으로 보고 음란한 생각을 하는 것마저 간음이라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룩의 기준은 매우 높으니까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사야는 환상 속에서 하나님을 뵙고 자신은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죠. 성경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상상 초월인데, 하나님의 그 거룩함을 스스로의 힘으로 따라가려고 하면, 성경의 말씀들이 족쇄가 되고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며칠 전까지 그랬어요. 예수님을 깊이 만난 경험도 있고, 믿고 따른다고 고백하는데 하나님이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매일 반복하고, 믿음이 온전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예배 드리기 전 내가 예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서 회개를 하고 해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늘 하나님만 사랑하겠다고 기도 시간에는 고백하면서 제 삶에서 실천이 잘 안 됐구요. 늘 내 결심은 도루묵이 되고, 내 삶은 늘 죄투성이인걸 보면서 실망하고 하나님의 향기를 뿜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힘들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말 그대로 범접불가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깨끗해지려고 노력해도 저는 그 발톱 때의 때마저도 따라갈 수 없는 존재더라구요. 예수님께서 간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내가 감히 평생 한 번도 짓지 않고 순결하게 살아갈 수는 없더라구요. 전 정말 죄인이라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과의 격차는 비교하는 것조차도 송구스럽게, 인간과 개미의 격차보다 크더라구요. 인간이 아무리 도덕적이어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정말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합니다. 만약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이 여기서 끝이라면, 오히려 인생은 더 절망적이겠죠. 완전한 쾌락주의에 빠지거나, 낙심만 한 채로 인생은 전혀 답이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성경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를 세세하게,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격차를 알아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와 고초당하시고 죽임당하시고 사흘째에 부활하신 이유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를 깊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정죄의 눈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눈으로 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의 눈으로 봤다면, 앞서 말한 하나님의 거룩과 우리의 격차로 인해, 이미 다 죽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도, 야곱도, 다윗도, 다윗의 후손인 남유다의 왕들도 오직 그들과 맺으신 언약 안에서 보셨고, 맺으신 언약을 신실히 지키셨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실망시키고 악을 저질러도, 그 언약을 꼭 이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하나하나 다 알고 계시고, 그 죄를 미워하시지만,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그 죄를 전혀 세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덮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친히 맺으신 언약과 긍휼의 눈으로만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내 믿음이 온전히 바로 서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내가 예수님을 붙잡기만 하면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 안에서만 날 바라보십니다. 그렇기에 거룩의 기준이 그만큼 높다는 건 오히려 자유입니다. 인간의 도덕과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의미있기에 더이상 힘들게 노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 안에만 있으면 됩니다. 뭔가 두렵고 걱정된 것은 스스로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혼자만의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대해서도 저도 많이 고민됐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이 그럴 거면 인간을 왜 창조하시나,라는 냉소적인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서도 오랫동안 품어왔던 고민이고 의문이었습니다. 저도 명쾌한 해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신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는 내 삶에서 일하신 것처럼, 다른 이들의 삶에서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기도받게 하시고, 각 사람의 삶에 역사하십니다. 그렇기에 내 눈에는 어떤 이들에게 무심하신 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들의 삶 속에서 일하십니다. 제가 모든 사람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세계 곳곳의 여러 간증들을 들으며 그러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직접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경험하고 체감하며 그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 그리 되었습니다. 이렇게 답글을 달게 된 것도 하나님의 사랑과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동안 힘들어했던 것에 며칠 전에야 답을 얻었는데, 이렇게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있으니 따끈따끈하게 얻은 은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댓글 잘 안 다는데 길게 달아봅니다.
@@sunhochoi2543 선의 결핍이 악이다라고 보는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옥에 보내시기 위해 지옥을 창조하신분이 아닙니다 천사장도 그 스스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신적 위치에 있고 싶어서 하나님을 스스로 배반해서 악에빠진것이지요 하나님이 악을 직접 창조하신가 아닙니다 선의 결핍이 악인 것이지요 선의 결핍이 왜 생기냐 하면 하나님은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일것 같습니다 입력된것처럼 로봇처럼 무조건 선만 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고 선택할수 있는 자유의지요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있는한 선택이 있을수밖에 없고 그 선택의 과정에서 선의 결핍이 죄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행동에 대한 심판이 없다면 선이 왜 존재하고 공의가 존재하고 왜 이세상에 규칙이 존재하고 법이 존재할까요 어떤 행동을 하던 다 받아주면 질서라는게 있을까요 영원히 고통받을 가능성은 있죠 그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요 하지만 그런 과정이 없으면 공의도 없고 질서도 없는 세상이 됩니다 기독교에서도 이와같이 하나님의 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런 법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가 지옥에 빠지기를 바라시고 법을 만드신건 아니실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것이 아니십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사랑을 보여주셨죠 그 사랑을 보고 선으로 나아오라고요
인간이 신을 찾는 이유는 고통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이 없는 삶이라면(그건 절대 불가능하지만)어쩌면 신을 찾을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람에 따라 신을 믿는 과정속에서 놀랍게도 그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소소한 것들에도 감사함을 느끼게되고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나쁜 생각이나 행동들을 하지않으려 노력하게됩니다. 고통을 나를 단련시키는 선물로까지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고 그렇게 생각하면 엄청난 힘이 됩니다. 이런 고통도 이겨내는데/이겨냈는데 내가 '뭘 두려워하고 뭘 못할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인생의 강한 조력자와도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거죠. 신을 믿고 안믿고는 자신의 마음을 따라야겠죠. 그런데 만약 신을 믿음으로써 자신이 더 평온함을 느끼고 강한 사람이 되고 나쁜 행동을 안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면 안믿을 이유는 없는겁니다. 허나 위에 언급한 내용이 하나도 자신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잡아 끌 수는 없겠죠. 다들 알아서 하시길 바랍니다. 선택은 스스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 고통이 왜 있을 수 밖에 없는지 적어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KRV 위 성경구절에서 처음 것은 세상에서의 삶이고 두번째것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고 봅니다. 인생이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건 하나님도 알고 계세요. 인간이 타락해서 영생의 기회를 주려고 죽음을 만드셨고, 죽음의 과정은 당연 고통스럽죠. 그리고 지금 세상은 악한 영에 속해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고있으니 고통은 당연합니다. 악한 영을 멸하다가 악에 속한 사람도 죽일까봐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는 것이에요. 그들이 회개할 시간을 주시는거죠. 왜 십자가의 짐이 가볍지 않고 무겁게 느껴지는가?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저도 무겁고 힘들어서요...
위의 대화는 정말 고차원적 심리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고통이 무엇인지에대해 자신의 고통에 빗대어 찾아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되네요 피터슨 교수가 자신의 고통이 부당하고 다음에는 분개심을 품었다고 하였는데 기독교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십자가에 비유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음으로 그 진리가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갈려고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게 아닙니다 허남매님. 교수님은 철저하게 과학을 바탕으로 모든 논리를 전개해나간다고 이미 밝히셨어요(과학으로만은 아니지만 과학 지식과 모순되지 않는 선에서). 단 과학 지식이 이론의존적이고 잠정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수많은 것들을 과학 지식으로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맹신'하지 말라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실 성경에 적혀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스도의 물리적인 '부활'을 믿는게 합리적이어 보이지 않는건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영상의 핵심은 최고의 도덕을 추구하며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조던피터슨 vs 자신이 위치한 위계질서 내의 수준에서만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하나님에 대한 '숭배' 및 '관심갖기'가 중요하다는 저 신학자의 생각 차이입니다. 어느 쪽을 믿느냐는 님의 선택이지만요. 개인적으로 저는 나 자신을 제대로 믿지 않는다면 십자가를 짊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사이-i8t 저도 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도 과학과 제 자신을 아예 믿지 말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도 썼듯이 "맹신"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저도 과학의 논리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믿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매몰되다보면 정말 중요한게 보이지 않게되는게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도덕적인 것이 성경적인 것이냐 성경적인 것이 도덕적인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는 늘 나올 수 밖에 없는 질문이고 그거에 대한 두 분의 대화가 저도 도전이 되었습니다. 제 말에대한 오해가 있는 것같아서 적어보았습니다.
음,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고통을 완벽히 다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선천성 심장병, 성범죄나 배신, 여러가지 충격 등등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불가에서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이란, 고통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가 그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 어느 날 예기치 않은 때에 고통이 폭풍 처럼 불어 닥칠 때 그 속에 무참히 잠식 되지 말고 고요히 그 고통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 고통이 무엇인지 면면히 살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을 불가에서는 "관조"라고 합니다. 저 하늘 멀리 달과 별을 보듯이 바라 보는 것입니다. 처음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면 그 고통의 근원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주로 생로병사에서 비롯됩니다. 그 외에 욕심에서도 비롯됩니다. 이것은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분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남의 것을 탐하는 욕심을 뜻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도 실은 너 자신을 잘 알면 한계점을 초월 할 수도 있다는 큰 뜻을 품고 있습니다. 신의 유무는 사실 알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증명 할 수 없습니다. 즉,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물론, 미스터리적인 신적인 에너지도 작용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합니다. 그것은 초미지적인 영적인 어떤 고차원의 에너지체의 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어느 날 불현듯 깨닫게 되는 중요한 시점이 있습니다. 그 고통을 정확히 정면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고요하면서도 지적인 차원을 맞이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어제보다 훨씬 가벼워 집니다. 그리고 내 마음 속 심지는 더욱 굳건해 지고 자유로워 짐을 느끼게 됩니다. 지구력이 생기고 어제보다 더 많이 웃을 수 있고, 더 활기찬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됩니다. 나를 괴롭히던 고통은 더이상 악마가 아니라 나의 정신적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성장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더욱 더 성장 합니다. 고통의 차원을 넘어선 사랑의 고통은 인간의 정신적 차원을 더욱 더 높여 줍니다. 광활한 미지의 우주가 내 안으로 잔잔히 들어오는 감격적이며 고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고통이란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 영혼의 주체가 되어 그것을 또렷하게 마주하므로써 그 고통은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형상화 되어 하나의 이해할 대상이 되어 갑니다. 고통이 더이상 무조건 배척하거나 거부하고 밀어낼 대상이 아니라, 깊이 이해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단계가 되면 무한히 자유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언듯 깨달아 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고통들을 경험하고 인내하면서 예전보다는 좀 더 편안해진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주인, 주체가 되는 것이 좋습니다. 신에게 무조건 기대는 것은 결국 약물에 의지하는 것과 어쩌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순간 순간 멀어지려 하는 자신의 자아를 찾으세요. 그리고 웃음을 찾으세요. 그리고 많이 느끼고 많이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많이 사랑하고 , 때론 감동의 눈물이나 공감의 눈물, 슬픔의 눈물이 가문 날의 단비 같은 역할을 함을 알아채세요. 사실 우리들의 삶이란, 우리들이 아는 것 보다 더욱 더 풍요롭습니다. 이 경이로운 지구의 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울창한 생명력을 뿜어 내고 있고, 내가 사랑하고 보살펴야 할 누군가가 있고, 별은 늘 그 자리에서 영롱하게 반짝거리고, 해와 달은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면서 지구의 성장을 돕습니다. 가진 게 많고 화려한 도시인보다 행복 지수가 높은 하와이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그들은 소금 농사를 지으면서 돈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물물 교환을 합니다. 금전 거래를 하면 욕심이 생기고 그것은 곧 불행을 초래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단순했는데 너무 복잡해졌다." 그들이 말하는 단순함은 단순한 차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과학의 발달이 이뤄졌고, 너무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으며, 주변은 너무 화려해지고 있고, 너무 편리해지고, 너무 심각해지고, 너무 많은 갖가지 자극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삶을 조금은 단순화 시킬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집착하거나 몰두 하지 말고. 그러면 조금 더 가벼워질 것입니다. 어쩌면 인생의 정답이란 없겠지만, 자기만이 그 길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선조 때부터 늘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역사"를 이뤘으며, 그에 "선지자"들이 정신적 기둥을 세워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러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찾아 나가는 여정에 "고통"이란 "나"를 더욱 "나" 답게 만들며, "나"를 초월할 에너지를 제공 합니다. 지금 보다 더 몸을 움직여 활기찬 에너지를 가꾸세요. 심신의 평안과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흥겹거나 사랑스러운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시를 쓰고 느끼고, 적극적으로 솔직하게 사랑하고, 영감을 주는 음악을 즐겨 듣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고, 자연의 경이적인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온 몸으로 바람을 느끼세요. 바람 속을 유영하는 내 영혼의 가벼운 깃털을 느끼세요. "고통"은 분명히 나의 것이고, "나"는 그 "고통"의 주인 입니다. "나"는 그 "고통"을 명철하게 마주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며 굴복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그 방향으로 꾸준히 꾸준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도 어릴때부터 아토피에 상하악부정교합에 무릎에 지금은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있는데 글을 보면 얼마나 많고 긴 세월 동안 고통을 겪으셨는지 느껴집니다.. 저도 이런 건강문제에 가족폭행과 불화까지 근 20년을 살아오다보니 오랜시간 거친파도와 태풍에 홀로남겨진듯 부당함에 가족에게 분개심이 일기도하고 신에게 착하게 사는 나한테 왜 이러냐고 외치기도 했었는데요.. 글이 너무 대단해서 무슨 말을 해야될지 잘 모르겠네요 글을 정말 잘 쓰셨네요 책 쓰셔도 될거같아요 ㅋㅋ
@@jaehyeonpaek1950 😃감사합니다. 그냥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라 두서가 좀 없습니다. EO N님의 병에 대해서는 확실히는 몰라도 아마도 물리치료를 받고 계시겠네요. 저는 EO N 님이 겪고 계신 병에 대해 잘은 모르고 의사가 아니어서 직접적인 도움이 드릴 만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토피는 식습관이나 주변 환경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면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친척 동생도 아토피였는데 지금은 상당히 호전 되어 결혼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허리디스크 같은 경우,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는 없지만, 말린 지네로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대나무 밭에 많은 발 많이 달린 지네 있잖아요? 약초 파는 초재에 가셔서 상담을 해보시면 도움을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허리디스크로 거의 기어 다니셨는데 지네로 큰 효과를 보시고 건강해지신 분들이 계십니다. 저의 아버지도 효과를 보셨죠. 자료 잘 찾아 보시고 상담을 잘 해서 약을 한 번 써보세요. 체질에도 잘 맞는지 세세히 상담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인간의 거의 모든 병의 치료제는 자연에 다 있습니다. 절망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저의 글을 정독을 하시면 요지도 그렇습니다. 좀 더 적극적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산에 흐드러진 흔한 망개나무도 약효가 굉장히 뛰어 납니다. 망개떡이라고 아시죠? 삭힌 망개 잎으로 떡을 싸면 잘 상하지 않을 정도로 방부 효과가 뛰어 납니다. 망개나무 뿌리는 해독제로서 효과가 뛰어 나며, 우리 몸 안에 온갖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배출 시킵니다. 그야말로 몸을 깨끗하게 정화를 시킵니다. 망개나무뿌리가 간편한 차로도 개발 되어 있습니다. 자료를 세세히 잘 찾아 보시고, 자신의 체질을 잘 상담 받으셔서 이런 차를 즐기시는 것도 여러가지로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흔한 녹차도 아주 아주 해독 작용이 뛰어 납니다. 성인병 예방에도 특효 입니다. EO N님은 그런 건강 차는 잘 안 드시죠?^^ 한 번 이제부터 챙겨서 드시는 것이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카페인이 연한 홍차도 상당히 좋습니다. 그리고 가족 문제에 대해서 제가 뭐 감히 어떤 조언을 드린 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과의 불화는 가족 상담이 가능하다면 한 번 고려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사실 가족 간의 불화를 겪는 가정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다들 편안하게 사는 것 같아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정말 가지각색 문제 없는 집이 거의 없습니다.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잠시 독립을 해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여건이 되신다면. 아니면 갈등의 원인을 잘 찾아서 서로의 상황이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서서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겁니다. 다들 따지고 보면 서로다 다 외롭습니다. 그리고 제가 개척한 장르인 엽편 소설 계열의 "핵편 소설" 중에 약간 비슷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신 당하고 재산까지 탕진한 한 사람이 절망감에 노숙자로 전전하다가 우연히 산장지기를 하게 되고, 거기서 조난 당한 한 여성에게 산장의 문을 열어 주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면서 주인공은 삶의 따스함을 다시 찾게 됩니다. 내 현실만을 바라보는 관점 즉, 촛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EO N 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마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EO N님의 지병에도 어쩌면 기적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조심스런 생각도 듭니다. 촛점을 다른 곳으로 한 번 돌려보는 습관을 연습해 보시는 것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너무 내 안으로만, 나의 고통에만 집착하다보면 병은 더욱 더 깊어져만 가고 가족들과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만 가게 됩니다. 서로의 외로움을 잘 이해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 본다면 분명 고통의 해결책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의견이 다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약간의 힌트라도 된다면 EO N님이 스스로 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이 다행이 호전이 되기 시작하신다면 "태극권"을 시작하세요. 아시죠? 중국 무술. 이 무술은 계파가 다양한데 동작이 다소 과격하거나 어렵지 않고 부드러운 계파를 잘 선택하셔서 학원에서 직접 수련을 하신다면 심신의 회복에 대단히 큰 도움을 드릴 것입니다. 이 운동은 단번에 효과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정말 주변 모두를 잠시 잊고 꾸준히 수련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마스터가 되셔서 학생들을 가르치실 수도 있습니다. 미래가 있죠. 제 의견이 도움이 되신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저는 선천성 심장병을 거의 반평생을 가지고 살았어요. 몸 상태가 왜 안 좋은지도 모르고 살아서 저에게는 2,30대 청춘의 꽃이란 게 없습니다. 이제야 겨우 회복을 했죠. 병과 그런 충격들 때문에 말도 거의 안 되고(반실어증까지), 후천적 난독증에 온갖 공포증까지. 트라우마가 정말 심했어요. 부정맥으로 병이 발견되서 응급 수술을 했고, 몸이 회복이 안 되면 자살할 생각까지 달고 살았었습니다. 안정제 부작용까지 겪었죠. 안정제 부작용이란 바로 자살 충동 입니다. 그래서 바로 끊었죠. 병원에서 처방 받은 우울증 약도 몇 번 먹다가 바로 끊었죠. 사람 이상하게 만들더군요. 몽롱~ 하게. 그건 저 자신이 아니었죠. 약물에 의존 했다간 진짜 인생 망칠 것 같아서 바로 끊고, 정말 정신력 하나로 이겨냈습니다. 그 과정을 말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 두려움, 공포증이란 것을요. 한 예로, 제가 사는 도시에서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도 그 공포증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죠. 왜냐면 병원과 멀어지니까 말이죠. 정말 엄청 났어요. 트라우마가. 어쩼든 꾸준히 등산하고, 목숨 걸고 무술 수련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빠진 기능들을 회복하고자 정말 온갖 노력을 다 했습니다. 남들이야 뭐라던 말이죠. 그래서 이제는 정말 회복이 다 됐죠. 정말 오랜 회복 기간이었어요. 한 마디로 인간 승리. 😃 저의 경험상 한 가지 얻은 것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촛점 돌리기. 그게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몇 번 성추행을 당한 일은 ....... 사실 다른 사람이 도움이 됐습니다. 그냥 우연히. 남자 트라우마가 좀 있어서 고통스러웠는데 누군가가 힐링해 줬어요. 그건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됐으므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랑... 이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글이 길어 졌네요. 그러나 할 말은 더 많지만 여기까지만 말씀드려도 아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자기와의 싸움 입니다. 결국은. 어떤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이제 웃음 더 많이 찾으시길 바랍니다. 건강 다시 찾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
@@clevelands 완전무결하게 완벽하다면 신을 안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 연구도 더이상은 연구도 필요없죠.. 완벽한데 뭣하러 더 심도있게 볼까요? 성경에는 모순점이 많다는 것이 성서학의 권위자를 포함하는 대부분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믿는 사람들은 믿는 것이죠.
저도 고통의 문제에 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는데, 고통을 이겨내는 것 자체에 어떤 숭고한 미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 속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고통을 감내한 자들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자신인 예수님 마저도 큰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죠. 이런 점들을 놓고 일부 비신도들은 하나님은 새디스트인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분명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상징에 어떤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논리적 차원에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고, 미학적 아름다움에 가깝다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숭고함' 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창조주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맘대로 악하게 살았습니다 어느날 A가 꿈을 꿈니다 자신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과는 달리 창조주가 있는 것이 었습니다 창조주가 이 사람에게 믿음이 없는걸 보시고 꾸짖으시며 뜨거운 불 지옥으로 영원히 보내버립니다 깜짝놀라 잠을 깹니다 A는 너무 놀랍니다 천만 다행으로 꿈이었습니다 다음날 A가 또 꿈을 꿈니다 자신이 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자신의 생각처럼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일도 일어 나지 않았습니다 B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창조주가 있다고 믿고 그분을 주로 영접하고 섬기며 착하게 살았습니다 어느날 B가 꿈을 꿈니다 자신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믿음과 같이 창조주가 있는 것이 었습니다 창조주가 이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걸 보시고 칭찬하고 복주시며 영원한 천국으로 보냅니다 평안하게 잠을 깹니다 B는 너무 행복합니다 다음날 B가 또 꿈을 꿈니다 자신이 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자신의 믿음과 달리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일도 일어 나지 않았습니다
외국의 한 목사님(팀 켈러)께서도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라도 말씀하셨죠. 저 또한 크리스천이라고 얘긴할 수 있겠지만, 그 종교라는 틀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 종교라는 단어 너머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 같네요.. :) 사실 인간이 사용하는 어떠한 단어도 인간이 존재하는 차원보다 고차원에 계신 분을 설명할 도리가 과연 있을까요 ㅎㅎ
아 저게 끊임없이 고통을 겪어본적이 없으면 이해를 못하는구나... 주황색 분은 신자인가? 좀 황당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저는 끊임없이 고통을 겪으며 사는 것도 아니라서" 라니... 그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구나... 부러우면서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음... 신자로서 살면 주위에서 미친듯이 공격을 해댐.... 정말 미쳐버리겠음... 그리고 신은 거기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음... 그러니까 이 끝없는 고통은 내 스스로 끝도 못냄, 자살하지 말라고 하니까 내 생명의 신의 것이라고... 죽기 일보직전에 숨통을 틔어주는 축복 같은것도 있기는 함. 근데 고통은 끝이 안남... 그래서 이해가 안가는거 대체 왜 이 고통은 안 사라지는거야? 난 솔직히 부당하다고 느꼈고, 어떻게 적개심을 안 드러낼 수 있는지 모르겠음. 내가 나이가 어려서일까 피터슨 교수는 분개함까지 어떻게 안가는걸까... 끊임없는 고통과 세상 사람들의 미친 적개심을 특히 내가 베푼 사랑에 항상 배신으로 돌아오는걸 겪으면 아무생각도 안남... 너무 화가나서 그대로 날 죽이든 상대방을 죽여버리든 해야하는데 둘 다 율법으로 금지되어있음, 적을 사랑하래... 미친... 기도고 예배고 다 때려치고 시편 109편만 읽게됨. 어릴때는 다윗이 왜 그런 무서운 저주의 시를 썼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암. 저주의 시를 읽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나는 진심으로 시편 109편이 실현되기를 바람...
근본적인 교리부터 말이 되는지 생각해보길 바람. 죄의 기준은? 율법? 그게 뭔지 들어본적도 없다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율법? 그럼 사회마다 기준이 다른가? 양심? 공감능력 수준, 받은 교육에 따라서 기준이 막 바뀌는데? 예수천국불신지옥? 예수를 들어본적도 없다면? 그래도 지옥가나? 원죄? 그냥 태어난건데 죄인이래. 시발? 모든건 신의 뜻? 그 뜻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게 신의 뜻이라면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는 뭐지? 신은 선하다면서 선의 기준이 인간이랑 다른가? 그러면 그건 우리가 말하는 "신"이 아니네?
신을 믿냐고? 안 믿어. 근데 있을까 무섭긴 하다. 근데 소위 믿는자들이 하는 걸 봐라. 그게 믿는 자의 태돈가? 응 하지만 우리에겐 성인이 있음. 두유노 성인? 아니 갸들은 그렇다치고, 믿는다는 것들의 행동이... 어. 그건 그런데, 믿는데도 레베루가 있지. 나는 예배만 드려도 평타는 친다고 보는디? 그르냐? 나도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은 하지만, 인생이 졸라 힘든데 내가 믿음이 생기겄냐고? 너 힘든건 인정. 근데 난 안 괴로워서 잘 모르겠는데... 암튼 교회에선 닥치고 예수생각이나 하라 하긴 함.
그냥... 다른 사람의 행동과 원리는 제껴두고 봅시다. 우선 자기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찾자면, 약함이나 가난함, 무능함, 게으름 여러가지 등등이 있겠죠. 근데 그것들이, 내 안에 있는 나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악함을 누군가의 사랑이 없이 견뎌내고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요?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변혁시켜 나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런 인간은 없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나를 돌봐주고 바꿔줄 수 있는 누군가가 세상 속에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가벼움을 잡기 위해서 신 앞에 나아가는거죠.
종교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보다 배은망덕한 자에게 내리는 신의 저주가 무섭고 더 복을 받고 싶은 기복신앙과 이기심에 일부러라도 감사할 꺼리를 찾아 감사하는 종교에 빠진 제가 보이더군요. 신앙이 없어도 감사하고 선하게 사려는 사람들의 동기가 더 순수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종교적 우월감에 빠져 앵무새같이 판에 박힌 소리나 했던 나와 다른 크리스천들을 보게되니 자괴감이 들더군요.
지성을 위해 이 채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스럽겠죠. 지성의 대가로 불리는 사람이 이전에는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라고 했었다가 예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이야기하니. 그러나 피터슨이 이야기했던 동시성이란 인지로 이해되지 않는 축복이 은혜로 퍼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성의 대가였던 이어령 장관님도 그랬고요.
나도 지속적인 고통속에 있는데 이게 신에대한 반감만 증가하지 어떻게 그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더 믿는지는 이해가 안됨. 진짜로 전지전능하신게 신이고 나를 위한다면 나에게 고통을 주지 말아야함. 인간이 본래 선악과로 인해 악해졌기에, 세상이 악해졌고 거기서 나에게 오는 피해라면 그냥 받아들이겠음. 근데 가족이 자살시도를 하거나 자살을 하거나. 이런사람들좀 구해주면 안됌? 기도를 하라고? 어떻게 기도를해 애초에 믿음이 가지를 않음. 나이가 많은건 아니지만 살아가면 살수록 삶은 가족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가족이 고통받을 때 나에게 오는 신에대한 환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음. 존재 한다면 치유해주기를 바랄 뿐임. 아니다 애초에 존재한다면 이런게 없어야함. 신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기에 논리적으로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모순덩어리가 발견된다고 하는데, 그걸 이해시키는것도 신의 능력 아님? 우리가 이해를 못하고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그게 정말 신이 존재한다는 걸까? 믿어 의심치 않을 상황, 상태를 줘야 우리가 절대적 믿음을 가지지 않을까? 내가 기독교를 떠난것도 환멸감임. 교회를 가보면 교회에서만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음. 진짜로 헛구역질이 났음. 그냥 이해가 안되서 화가 나네
기독교는 즉각적인 고통의 해결을 절대로 약속하지 않죠. 조용기를 필두로 한 부흥사들이 기독교를 문제해결종교로 타락시켜버렸어요. 기독교는 단지 하나님이 당신의 죄로 인한 고통을 대신해 당신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셨다고, 그분을 속죄양으로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고 따라갈 때 고통이 없는 그분의 나라를 약속하지요. 이 땅에서의 신자의 고통은 떨쳐낼 악이 아니라 늘 감사할 선입니다. 고통 속에서만 죄인은 진정한 회개와 믿음과 감사를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천주교의 성인과 특별한 계시 속에서 슬픔과 환희 눈물만 흘리는 것이 허락된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위계질서 또한 매우 존중히 여기시고 우리들이 이 하나님의 위계와 사람들 간의 위계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행위와 육적인 행위가 같이 조화롭게 이뤄 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다면 마땅히 사람에게 그 은혜를 공유하고 더 나아가 헌신과 봉사로 이어져서 빛과 소금의 역활을 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이름을 나타내야 만 참된 주의 사람이요 자녀라 할 만한 것이지요.. 기도 만 하는 은총은 사단의 역사라 할 것입니다 주님도 항상 기도하시고 낮에는 또 열심히 일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전도외에 노동도 했지요.. 비진리의 사람들은 사림을 우상화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어떤 특별함과 위계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자유로우신 섭리를 축소시키고 한정지으므로서 편협하게 만들고 한계성을 갖게 만들어서 하나님과 우리들을 먼 것처럼 만들려고 합니다 이 땅에 인간이 사는 동안 성인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다 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교리는 비진리인 것입니다 주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시고 머리 둘 곳이 없는 생활 가운데에서 순교하셨지요.. 교황이란 지위는 누가 준 타이틀인지 모르겠습니다 교황무오설이라는 것이 있다던데요.. 참으로 가공할 만한 사단의 장난 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들은 항상 즉는 그 순간까지 회개의 삶을 살므로 하나님 앞에서 항상 거룩하고 정결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인 심령이 가난한 자이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만 하는 우리들의 실체인 것이지요..
그냥 기독교 종교인은 복음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대답을 해줄 수 없다. 양심과 내면의 고통을 공감할수없기 때문이다. 그저 예수가 대신 죽었으니 너무 고민하지 말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닫고 그저 기뻐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면 심령이 가난해지고 자신에 대해 애통해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할렐루야!^^ '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오직 사랑의 멍에입니다 즉 주안에서 짊어지고 가야하는 삶은 주 안에서 사는 삶으로서 사랑의 삶 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그로인한 사람을 향한 사링 즉 어려운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하여 자기의 유익과 안일과 이기를 버리므로서 목숨까지도 버리게 되는 즉 순교적인 상황까지도 이르게 되는 삶은 오직 주 안에서의 삶 만이 가능케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쉽고 가벼운 짐인 것입니다 주 안에서는 그 모든 것이 쉽고도 가벼운 짐에 불과한 것이지요.. 주 안이기에 가능한 하나님의 능력 즉 성령님의 도와주심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너무 걱정 하지 말고요 주님의 손만 꼭 붙잡고 가면 됩니다 그러면 주께서 다 해결해 주시고 이뤄 주실 것입니다..^^
상담을 하려면 영적으로 좀 성숙한사람과 햇으면 하네요, 피터슨박사가 겪는 고통은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며 그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어떻게 저분한테 최고로 이로움을 주는지를 봄으로써 신앙적으로 한단계 성숙해지는것입니다. 주님은 모든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십니다. 병을 치료할수도잇고, 평안을 줄수도 잇고 깨달음을 줄수도 잇읍니다. 그래서 수준이 좀 되는 목사님은 고난이 오면 기대를 많이합니다. 야고보서 1:2-12 KRV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모든 것을 다 떠나서 당신의 진심과, 심정을 고백하는 용기가 참 감격적입니다. 그동안 교수님을 혜안을 가진 선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 피터슨’을 볼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도 영광입니다. 댓글 감사해요
@@sunnykim9917 안녕하세요?
혹시 이 채널은 조지 피터슨교수님이 직접 운영하시는 채널이 아닌가요?
@@헵시바쁄라-y5t 일단 이 채널은 피터슨 교수님 본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을 번역해주는 채널입니다. 물론 피터슨 교수님의 인가를 받은 것이고요.(한국 팬들에게 보내는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고로 피터슨 교수님이 직접 운영하는 채널은 아닙니다. 본 채널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근데 매우 바쁘신 분이라 운영또한 위탁하시지 않으실까 생각됩니다.
@@헵시바쁄라-y5t ‘유튜브 읽어주는 남자’분이 위탁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란 책, 여러 사람들의 삶의 고통을 이겨내게 한 책의 저자가
삶의 끊임없는 고통속에 괴로워 한다니..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로 괴로울것같다
현대 교회가 가져야 할 지적이면서 담백한 소통이 여기 있네요. 조던 피더슨 교수님은 뛰어난 석학이라 자신의 문제를 포장할 법도 한데 겸손하게 절대자에게 접급하려는 모습이 매력적이고 경청하고 들으시는 분또한 신학에 매몰된 무책임한 답변을 하지 않으시네요. 어쩌면 진리이기에 그에 다가가는 것은 이토록 조심스럽고 사려 깊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가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음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는 어릴적부터 늘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종교이것저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불교교리를 믿고 환생을 믿게되었습니다. 우울증에 걸렸던 저는 참선(명상)을 하면 나아지더라하는 말에 매일 3,4년을 참선하고 선업을 쌓고자 노력했지요. 하지만 기도응답도 단한번도 없었고 우울증도 전혀 나아지지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그렇게 거의 무교로 지내던 어느날 엄마에 끌려 교회에 억지로 가게되었습니다. 첨엔 짜증도 났고 억지로 끌고가니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가지 않고 있다가 그래도 이세상이 참 악한데 선한 존재는 누굴까? 음, 하나님이네.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나갔습니다. 선한존재의 편에 서면 좀 세상이 좋아질까해서요. 그러다 혼자 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이젠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한거니 불교믿은거에대해 사과를 드렸습니다. 아주짧은 기도였습니다. 그때 너무 분명히 괜찮다 하는 음성과 따뜻한 바람이 가슴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뭐지..?라는 생각과함께 조금씩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이후에도 아침에 성경통독을 하라 라는 남자목소리와 성경읽지말라고 말하는 마귀음성 등을 들으며 하나님이 정말 있구나 하며 매일 기도하고 기도응답을 들으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알게된것은 죽음이후에 천국지옥이 있으며 사람은 원래 죄로인해 심판을 받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는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고문박고 대신 조롱받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기만하면 죄사함을 받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지막때입니다. 저는 매일 휴거와 전쟁 대환란 비젼등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북한 무인기가 서울까지 들어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올해 여름에 일어나는데 올해 내가 전쟁을 낸다 하는 남성을 목소리를 들었고 중국전쟁이후 바로 한국전쟁이 나는 꿈도 꾸었던것이 기억납니다. 정말 정말 임박한듯보입니다. 이 마지막때에 구원받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호령소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탐구하는 자세가 호령소리님을 여기까지 인도하였나 봅니다 혹은 신이 호령소리님의 그 정신을 높히 산 것이겠죠 하나만 여쭈어 봐도 될까요?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선견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보여주신 이가 정말 신이라면 신이 왜 그러셨을까요? 호령소리님에게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요 저는 호령소리님이 이러한 고민을 깊이 있게 해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저라면 신의 의도를 알아차리기 전까진 그에대한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깊이 있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은 결코 가벼울 수 없을 것입니다 제 생각을 조금 더 얘기해보려 합니다 저는 신이 전도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예지하는 능력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있는 내용대로라면 신은 전지전능합니다 신의 목적이 단지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만이라면 단숨에 믿게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겠죠 하지만 신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류가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살고 탐구를 하고 신을 믿는 이러한 과정들이 결과만큼 중요해서겠죠 이렇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이 자신의 힘으로 사람에게 예지하는 능력을 줘서 전도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이것입니다 정말 신이 그러한 능력을 호령소리님에게 주었다면 왜 신은 그렇게 하였을까? 저는 크리스트교의 이런 은사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안 믿지도 않습니다 여지만 두고 있습니다 만약 신이 정말 주군가에게 이런 영적인 능력을 주고 있다면 신이 그 대상에게 첫번째로 원하는 것은 '자 선물이야 기뻐해' 가 아니라 ' 너를 높이 사니 숙제를 하나 더 줄게 내 의도를 생각해봐' 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며엉-c2h 아 네 저도 제가 꿈을 꾼것이지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는 꿈같기도해요 무조건 이루어진다는게 아니라.. 좋은 말씀이십니다 제가 예전에 써논 글이라서요 ㅎㅎ ㅠ 평안하세요^^
기독교의 종교적 체험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두번의 예언을 통해 목사님이 되셨고 저는 성경을 읽던 도중 종교적 체험을 경험하였죠.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호령소리 굉장히 신비주의적이지만 꿈을 통해 전해 들은 전쟁에 관한 전언은 너무 현실적이고,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인 점에서 놀랐습니다.
신을 배제하고 생각하자면 국제 정세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무의식적으로 규합하여 내린 결론을 꿈을 통해 보신 걸 수도 있습니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신 것이죠.
어쩌면 그런 능력이 신적인 면모가 드러난 순간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우릴 빚었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의 권능 또한 그대로 우리에게 있지 않을까요? 이성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 상상하던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발명) 인간 지성의 모든 영역이 결국 신의 면모라 생각합니다.
너무...슬퍼보이고,고난에 힘겨워 하시는모습이라...가슴이 먹먹해집니다..생각날때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셨다는것만 기억하시길 기원합니다.
@@nasansnmw3527 세상에 안타까운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과 별개로 저기서 말하는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죠. 피터슨 교수님의 대화를 보면 그 얘기입니다.
@@nasansnmw3527 신이 없다는 증거지. 있으면 없느니만 못한 ㅈㄴ 무력한 신일 뿐 ㅜㅜ
@@nasansnmw3527 물론 태어나자마자 그런일이 발생하고 죽은 아이들에대한 구원은 정말 하나님밖에 모르시겠죠.
정말 이것에 대해 단정하는 목사나 교인이 있다면 사이비입니다.
한국 개독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광적으로 외쳐대서 질문자님 같은 의문이 생길수밖에 없다고봐요.
하지만 현상황에서 복음(창조주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위해서 돌아가셨고 이사실을 믿는것)을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사건은
창조물의 선택이고 잘사는 사람이건 못사는 사람이건
최악의 상황에 살고있던 최상의상황에 살고있던지간에 공정하지않을까요.?
복음이란 소식이 있기전에는 영화 설국열차를 예로들자면 지구에 갇혀 이시스템에 맞게끔 계층과 약육강식에의해 살아가고
공허한 삶을 살아가다 죽어야하는 운명에서
복음이란 소식은 희망아닐까요..
@@nasansnmw3527 제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구원만을 진리로 광적으로 외쳐대는 현 한국 개독에 대해서 말했죠.
성경의 기록으로써의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구원의 영역이있는거고
분명 신만이 알고계시는 구원의 영역이 있다는거에요.
질문자님도 한국교회가 광적으로 외쳐대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에대한 부분에대해서 열이받아계신거고요.
성경읽어보시면 신약에서 바울이 말한 양심으로써의 하나님만이 아시는 구원의 영역도 참고하시면될거같아요.
하지만 한국 개독은 본인들이 신의 대리자인마냥 구원의 영역을 다알고있다는듯
규정해놓고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그게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에게 전해지니
개독 소리를 듣는게 당연하다는겁니다.
제가말하는본질은 구원은 하나님만 아시는 영역이 분명있다는겁니다.
들을귀가 있고 복음을 들을수있는 사람에겐
선택이겠죠
하지만 복음의 기회를 들을 기회도없이 죽는사람(ex영아 복음전파가 안된곳 등등) 들에게는 신만이 아시는 영역이 있다는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라는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읽어본 짧은 성경 지식으로나마
답변해드려요
@@맥사님 더 신기한것은 뭔지 아십니까? 예수천국불신지옥 외쳤던 일반 크리스천들도 무서워하는 그들이 전도를 더 많이 했다는 것이요. 한국개독은 바뀌어야하고 그냥 삶에 하나님만을 대입해서 조용히 살아야됩니다. 기본적인 것인데도 불가하고 잘 지키지도 못하거든요. 믿음생활 오래한 사람으로써 삶에 하나님을 집중하면 모든게 바뀝니다. 그냥 삶자체의 기준점이 달라진다고 해야할까요.. 뭔가 인간으로써 아직도 이해를 잘 못하겠지만 결론은 그냥 한국신도들은 하나님만 믿고 인터넷에서 내가진리요 생명이다 이런 짓하지 말고 사회에 모범이 되는 것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켜야 하는 겁니다. 또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교회만 다니면 다 천사같이 착하고 잘 믿는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나 회개를 하는 이유도 완벽한 생활을 못하고 항상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짜 개독들은 반성 일절 없고 정신병자들같이 사람무시하고 짋밟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나 신도들은 회개라도 하지 진짜 교회 안에서 개독들 보면 그런것 차이로 인해서 작은 것 같지만 큰 차이로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가 드러나는 겁니다. 살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 만나면서 완벽하고 교만하지 않은 사람 몇 없습니다 그만큼 교회나 절이나 어느 곳에서든지간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거죠 그러나 자신이 한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책임을 지며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자세는 종교인이 아닌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완벽한 사람 본 적이 없습니다. 말씀 정성스럽게 잘 써주셨는데 공감가고 감사합니다.
조던 피터슨 교수에게 필요한 건... 신이 있는 건 알지만.. 신이 있는 것처럼 나는 살아낼 수가 없음을 인정하며 절규하는 순간이 와야 할 것 같아요
예수를 믿음으로 오는 자유함이 없는 상태네요
기독교 교리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는 나는 너무나 나약해서 신이 있는것처럼 난 살수가 없다 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저를 구원해 주세요 라는 것이죠 그게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의지가 아닐까요 아브라함이 완전히 선한 인간이었기에 그를 신뢰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그저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도 그를 신뢰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조던피터슨은 너무나도 훌륭한 인간이라 저같은 죄인보다도 더 오랜시간 고통스럽나봅니다. 나나 저기 신이 없는것처럼 사는 사람이나 결국 신앞에 똑같다는 것이 인정되는 순간 예수님의 십자가의 펑안이 찾아 옵니다.
조던 피터슨 교수님께서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시는지 상상조차 안드네요... 저희를 위해 그리고 본인의 진정한 믿음을 위해 하시는 희생에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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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신을 믿기 전이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저도 이런 생각으로 한참을 괴로워했었거든요.. 그 후로 특별한 사건이나 기적 같은 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정말로 믿어지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성적인 영역의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음 기적이 있었다면 제게 신을 믿을 마음을 주신 게 기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혹시 간증이나 믿게 되신 시기의 상황을 이야기 해 주실수 있으신가요?
🙏👍
기독교에서 그 기적을 '은혜'라고도 하죠 참 아이러니하고 말도 안 되는데 그냥 그게 믿어지고 그 믿음으로 내가 살아간다고 여겨지는 게 신기할 노릇입니다 저도
@@현태김-l9b 성경말씀이나 좋은 글귀를볼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후에는 사랑의 눈이 생겼다라고나 할까요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생기고 잘됐으면 좋겠다고 축복하고싶은 마음이 생기고 사소한것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저도 증거와 보이는것만 믿겠다고 자부했는데 저절로 믿어졌습니다..
교회에 반감을 가졌던 저도 무심코 한 첫 기도가 “혼란속에 실제하는 당신을 믿게 해주세요” 였네요. 갑작스럽게 인도하심과같은 기적과 또 그런 믿음은 선물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 요즘입니다
세상이 시작한 이래로 신이 존재할 것이라 믿으며 그 말씀에 순종하고 다른이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은 항상 언제나 있어왔다.
기독교가 보여온 수많은 이기적인짓들이 코로나때 피크를 이뤘지.
@@starpanda9109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이기적인 행동을 보인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이기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기독교를 믿음에도 그런 행위를 한 특정한 사람이 이기적인 것인가요?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이 특정 단체에 속해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그 단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논리라면 인류의 일부가 쓰레기, 연쇄살인마, 한량이라는 사실 때문에 님과 저도 그런 부류의 인간 중 하나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herahan5829 보통 저런말을 내뱉는 사람들은 이런말씀 하셔도 듣지 않습니다
@@starpanda9109 코로나는 사망률이 감기만도못한질환이다, 넌 예배보다 니몸뚱이 안위가 더중요한걸보니 성경을 안읽어본놈이다
@@quadratriple7785 나치처럼 그저 책임 씌울 대상이 필요한 겁니다. 마치 정치적 집결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처럼요.
책임을 지우기 이전에 전체적 맥락을 보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우둔한 것이고, 알고도 행한다면 특정 이익집단에 소속된 위선자이겠지요.
실제로 감각기관이 좋은사람. 즉 청력이 좋은사람, 시력이 좋은사람, 촉감이 예민한 사람은 다른사람들 보다 더 피곤하지요. 느껴지는게 많으니까요 . 조 선생님도 그런가봅니다 ㅠ 저는 이 말씀이 생각나네요. ///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 조 선생님이 느끼는 고통같은것들, 감당가능하실뿐더러 피할길까지 하나님이 이미 예비하셨음이 삶에서 드러나셨음 좋겠습니당
그 어떤 비난보다 예리하게 믿음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참혹한 모습을 느끼게 하네요. 거울처럼 투명하게 말씀해주셔서 경종이 됩니다.
피터슨 교수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시는지 오히려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인간의 가장 큰 갈망을 채우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피터슨 교수님의 진솔한 고백 속에 영혼의 고통을 느낍니다. 하나님 없는 영혼의 고통 말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죄인의 고통 가운데 찾아오시고,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께서 피터슨 교수님을 찾아가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내용도 좋지만 ,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열린자세와 상대방의 입장을 너무나 쉽게 다 이해한 다는듯이 행동하는 모습이 없다는게 좋네요.
역지사지의 자세와 공감은 중요하지만 항상 생각해야하는 것은 나는 상대방의 삶을 직접경험해본적이 없고 그렇기에 공감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알수는 없다는 것인거 같습니다. 나는 너의 삶을 모두 알고 있다는 오만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이 도덕적우월감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하죠. 언뜻보면 공감능력과 감수성이 높아보이는 사람중에는 그렇게 역설적으로 싸이코,쏘시오패스적인 성향을 가지는 사람들이 요즘 많아지는 것같아. 잡솔 잠시 해봤습니다.
이 부분을 캐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네요. 현명하십니다.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유형은 싸이코패스도 소시오패스도 아닌, 자신이 세상에서 멀쩡한 편에 속하고 상대방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스탠다드패스"라고 합니다.
신이 있는것 처럼 행동한다. 이 말이 진리다. 질문자도 조던 피터슨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어. 그냥 신자일뿐.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죄인은 완벽할수가 없죠
예수님만 완벽하니까
그분을 믿고 따르는게 기독교인의 최선의 자세지
조던 피터슨이 성경의 예언이 현실 속에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고도 완전히 성경을 믿는 것은 두렵다고 말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영상에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은 해답을 얻은 것 같네요. 엄청난 축복이 조던 피터슨 가족들에게 왔지만, 그러면서도 피터슨은 끊임없이 고통 속에 살았다고 영상에서 말하네요
그거에 더해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반쪽짜리 믿음이 되었던거였군요.
피터슨이 어떻게 성경의 역사를 목격했는지,
또 피터슨의 가족에게 어떤 축복이 일어났는지, 그런것들이 우연이 아닌 성경의 예언이라고 믿는 이유가 뭔지 더더욱 궁금해지는 영상이네요
피터슨이 다음에 간증 영상 한번 올려줬으면..
성경의 역사는 주인공이 예수님이니 예수님 얘기이고, 구약 대표적 인물은 욥같은 인물이 있겠죠.
가족에 대한 축복은 다른게 아니고 , 딸에 병이나 부인에 암투병 생활에서 일어난 축복들이겠죠.그거 자체가 기적이니까요..
성경의 예언은 조던피터슨에 그런 기적들이 예언되었다는 이야기보다 구약에서의 예수님의 대한 예언이고,신약에서의 성취 같네요.
즉 예언이 현실 속에 나타나는 것을 목격 = 예언 자체인 예수님이 실존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조던 피터슨도 하나님을 만나시겠네요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없는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많은 분들이 고통 속에서 신을 체험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1950~1980년대에 기독교 인구가 한국에 계속 늘게 되었던 것이겠죠.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체험적 종교관은 모든 사람에게 대입되지 않을뿐더러, 더 이상 생계나 안전의 위험을 넘어 다른 복잡한 차원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개념 없는 것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이겠죠. 피터슨 교수는 성경 강의를 통해 성경의 내용을 추상화함으로써 그 내면에 있는 도덕적 가치를 설명해 주며 이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접근하였지만, 결국 종교는 개인의 종교적 체험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피터슨 교수의 와이프께서 암 투병을 이겨내신 것처럼 말이죠. 결론은 피터슨 교수와 같이, 섯불리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특정 시기에 결론 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고민하고 있을 부분에 대한 단서가 되는 영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진짜 진한 고통을 겪어보면 신의 존재를 알게되죠 ㅎㅎ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가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음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는 어릴적부터 늘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종교이것저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불교교리를 믿고 환생을 믿게되었습니다. 우울증에 걸렸던 저는 참선(명상)을 하면 나아지더라하는 말에 매일 3,4년을 참선하고 선업을 쌓고자 노력했지요. 하지만 기도응답도 단한번도 없었고 우울증도 전혀 나아지지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그렇게 거의 무교로 지내던 어느날 엄마에 끌려 교회에 억지로 가게되었습니다. 첨엔 짜증도 났고 억지로 끌고가니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가지 않고 있다가 그래도 이세상이 참 악한데 선한 존재는 누굴까? 음, 하나님이네.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나갔습니다. 선한존재의 편에 서면 좀 세상이 좋아질까해서요. 그러다 혼자 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이젠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한거니 불교믿은거에대해 사과를 드렸습니다. 아주짧은 기도였습니다. 그때 너무 분명히 괜찮다 하는 음성과 따뜻한 바람이 가슴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뭐지..?라는 생각과함께 조금씩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이후에도 아침에 성경통독을 하라 라는 남자목소리와 성경읽지말라고 말하는 마귀음성 등을 들으며 하나님이 정말 있구나 하며 매일 기도하고 기도응답을 들으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알게된것은 죽음이후에 천국지옥이 있으며 사람은 원래 죄로인해 심판을 받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는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고문박고 대신 조롱받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기만하면 죄사함을 받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지막때입니다. 저는 매일 휴거와 전쟁 대환란 비젼등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북한 무인기가 서울까지 들어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올해 여름에 일어나는데 올해 내가 전쟁을 낸다 하는 남성을 목소리를 들었고 중국전쟁이후 바로 한국전쟁이 나는 꿈도 꾸었던것이 기억납니다. 정말 정말 임박한듯보입니다. 이 마지막때에 구원받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신앙과 종교가 우리 사회에 주는 긍정적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고통중에 주님을 부르짖는사람들은 주님이 반드시 들으셧고 고통을 이길수잇는 힘과 평안을 주시고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의 때에 응답하십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결론만 말하면, 그저 주님의 옷자락을 움켜쥐어야합니다. 이세상, 자신, 고통...어느것하나도 나로부터 비롯된건 없으니까요,
'고통'이라는게 사람마다 크기도 다르고 받아들이는 정도도 달라서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정형화하기가 참 힘든것같다... 누구는 몸건강하고 가족, 친구들도 아무문제없이 한평생을 고통없이 살고, 다른 누구는 지병에 사고에 가족, 친구등 불행한 사고로 한평생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게다가 개인이 받아들이고 극복할수있는 고통의 양도 천차만별이여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다...
너무 뻔한 얘기지만 소망을 갖고 살면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께서 왜 이런 고통을 내버려 두시는가하는 고민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고통은 그냥 고통일 뿐인가 그저 개인이 감내해야할 숙제인가. 왜 인생은 이토록 랜덤이라 서로를 비교하여 또다른 고통을 양산하는가.
결론적으로 고통이 우리를 성숙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해 신에대하 나아가 이웃에 대하여.
고통이 우리 주변의 고통을 알게하는 눈을 뜨게합니다. 보십쇼. 많은 고통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과 함께 웃으십시오. 그것이 크리스찬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고통을 아는 이들은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스스로 고통에 처하였음을 기억하십시오.
이게 진리다. 진리는 종교라는 이름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 해야한다. 조던 피터슨의 사유방식이 진정하고 정직한 믿음이다. 현대의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은 가식적이며 마치 엄청난 비밀을 다 알고 있는 것 처럼 행동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태도는 신앙에서 꼭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피터슨은 종속되는 신앙이 아닌 자신의 신앙을 갖고 계신거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이전에 신은 존재해야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힘든시기는 지나가게 되어있으며 가진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시기에 심적으로 곧게 되시며 사시는 동안의 버팀목으로 종교를 가지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과거보다 종교 그 자체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점점더 받아들이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고통을 받아들여야 하는것이고, 그 고통이 즐거움을 불러 일으킨다는 말은 알지만 지금의 고통속에서 다른 고통을 받아들인다는건 매우 힘이 들거 같기에 고민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같은 인터뷰의 다른영상에서는 예수의 역사적 존재와 실제적존재(종교적의미)에 대해 긍정한다는 말도 했던거 같은데... 확실히 어려운 경험을 하신후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받아들이고 좀더 맘을 열며 이에 감사함까지 느끼지만 누구보다 하나님의 의미에 대해 깊게 고민한 만큼 굉장히 망설이는거 같아보입니다.
논의 하는 분은 답은 십자가 라고 말을하고는 싶지만 이 십자가의 무게가 교수님께 얼마나 무겁게 느껴질지 알기에 함부러 말을 꺼내기 어렵고 본인은 그만큼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니 쉽사리 이에 대해 전달하지 못하는 거 같네요.
현대 신앙이 기복성에 굉장히 빠져있는경우가 많은데. 신앙의 고통스러운것 이라는것을 파악하고 계시다는게 대단하면서도 존경스럽네요
아주 정확하게 짚으신거같아여~~ 저의 상황과 같아여;;; 저는 저분의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알거같아여
@@신비-q6s
오 댓글 감사합니다
결국 교수님은 하나님을 받아들이셧습니다
개신교는 아닌거 같지만 기독교로 개종하시고 예배 참여하시는것 같더라구요
이후에 교수님이 올리신 기도 영상이 있는데 진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시고 앞으로 나가실지 저는 알수 없지만 저한테 위로가되었던 영상이라 한번 찾아보시는것도 추천드려요 댓글 감사합니다
난 고통이 그것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선생님이십니다. 언젠간 이분에게 말씀하시고 논담하신 모든것에 감사하다고 꼭 한번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그런 작은 꿈이 있네요
지금까지 겪어온 고통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 되는 일이 온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이라면 필연적이라고 생각함) 그 감동은 무엇보다 클 것이며, 지금까지 겪어온 상처는 아름답게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허락하시죠. 그 허락 안에서 죄(사탄)가 만들어낸 고통과 슬픔이 사람에게 닥칩니다. 하나님께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고통을 허락하신 것이죠. 고통을 하나님께 의지함으로서 이겨내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선 이런 과정을 정말 슬퍼하십니다. 가슴이 찢어질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뒤엔 더 큰 행복과 기쁨이 있기에 슬픔을 참으시고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조던피터슨 교수님께서 이런 과정 속에 있다고 믿고,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
지금도 신앙에 대해서 잘모르겠고 그렇긴한데 내가 죽고싶을정도로 힘들었을때 신에게 의지하고 도와달라고 했었고 그래서 버텨냈었던거같은데 나 스스로를 믿는거보다 더 힘이 됬던거같다.
도저히못견딜때엔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아버지를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럼반드시 놀라운 평강을 주십니다. 외면하시면 우리아버지가 아니죠
요즘 조금씩 무기력감을 느끼는 중이었는데 이 영상을 보면서 또 삶을 너무 나의 부족한 육신의 힘으로만 살아가고 있다는 것과 제가 감사함에 대한 마음이 흐릿해져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영상 업로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감사함에 대한 기도를 잊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ㅎㅎ
신에 대한 믿음은 없으셨지만. 늘 겸손한 마음으로 "신이 있는것 처럼 행동한다" 하셨던 우리의 조던 피터슨 박사님이 점점 믿음의 고백을 하시네요...
-참고영상 ( ruclips.net/video/RtYT7A0sXps/видео.html )
사실 전 이 영상을 1달 전부터 보았습니다. 저는 한 명의 유신론자로서 그의 마음에 많은 공감을 했고. 피터슨 교수님의 변화를 보며 신비를 체험하고 갑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장 7절 말씀
교회나 성당을 다닌다고하면서 하는 행동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랑 다를게 없는 교인(모든 교인이 그렇지 않음)들하고
어떤 장소를 나가지는 않지만 성경에 선지자들처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예수님처럼 사려고 노력하는 교수님 중 누가 더 하나님 보기에 합당한 존재일까요?
교회를 나가 형식적 예배(부정적이란건 절대 아님)를 드린다는것과 자기 삶을 직접 산 재물로 고통을 감수하며 제사 즉 예배드리는 조던 피터슨 중 무엇이 더 옳은 행동일까요?
어떤 측면에서는 믿는다면서 행동이 그렇지 못한자들과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는게 피터슨교수님께는 그곳이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이것 또한 하나의 교만 일까요?
그가 해답을 찾고 우리에게도 알려주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4장
John 4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Our fathers worshiped on this mountain, but you Jews claim that the place where we must worship is in Jerusalem.'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Jesus declared, 'Believe me, woman, a time is coming when you will worship the Father neither on this mountain nor in Jerusalem.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You Samaritans worship what you do not know; we worship what we do know, for salvation is from the Jews.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잎의 편지" 읽는 과정에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공감합니다
외식적이고 가식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피터슨 교수처럼 끊임없이 진짜의 삶을 갈망하며 남에게 본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결국엔 매일 깨어지고 다시 기도하고 깨지고 기도하며 죽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신앙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도리라 생각되네요 이렇게 글 쓴 저조차 부끄럽지만 매번 죄를 지으며 살아가네요..
The Lord's Prayer
Our Father who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trespasses, as we forgive those who trespass against us.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Lord's prayer is actually John chapter 17.
This is teaching of prayer to Jesus' disciples.
고난이 오면 신의 존재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보단 "신이 있어야 한다 있어야 해요 제발" 인 것 같아요 내가 간절하기 때문에
모든것을 갖춘사람들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변하는건 고난이아니고는 상당히 힘듬 말기암같은병은 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기적이일어나는거지, 인간의과학으로 어찌할수없으니까,
자각하는 모든 사람에겐 고난이 옵니다,
유한한 존재이기에ᆢ
@@clevelands 믿음의 영역이라고 해두죠
그게 꼭 신이어야하는 법은 없으니까요
가족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를 믿고, 동료를 믿고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김현석-v8e 성경에선 친구건 가족이건 모든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모든인간은 다 죽는데 말기암걸린사람이 친구를 믿으면 병낫나요? 이우주 인간, 암, 모든것의 시작은 주님이기에 주님과 결판내야하는것입니다, ruclips.net/video/EvKvEehvd34/видео.html
@@clevelands 병나으라고 종교와 신을 믿습니까?ㅋㅋㅋㅋ
병 고쳐주는건 의사, 의학이고 과학이지 신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조금이라도 가감 시키려고 믿는거지?ㅋㅋㅋㅋㅋㅋㅋ
이거봐 기본적인 마인드부터 글러먹었어
두려움을 가감시키고 이겨내려는 행동이 신을 믿어야만 가능한가?ㅋㅋㅋㅋ그게 당신들 가장 큰 문제야
하나님이 조던 피터슨 교수님을 쓰시기 시작하는 고백으로 들립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게이야...
신의 존재가 큰 도덕적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일반적인 신관으로 보면 맞는 반응이지만
성경에서 설명되고 있는 신에 대한 이해는 특별합니다.
인간은 분명 도덕적 '의무'를 요구받지만 절망스러울 정도로 도덕적 '수준'이 부족하기에 신이 인간의 도덕적 '책임' 을 대신해 죽어주셨다. [여기서 도덕적 책임이란 '심판(두번째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조던 피터슨이 신의 존재를 떠올릴 때마다 깊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신을 대신해 죽어주신 신에 대해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죠.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심판의 신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상태인 겁니다.
오늘 날 기독교는 세상에 아무런 감동도 공감도 가치도 제공하지 못한다.
원래 기독교가 말하는 가치관이 세상의 통념과는 큰 거리가 있다.
하지만 과거의 기독교는 세상이 느끼는 관점의 괴리를 넘어서는 가치를 보여주었다.
대가없는 희생, 한없는 인내, 이해할 수 없는 용서, 사랑의 영향력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의 그림자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인들을 보며 세상은 혀를 차고 있을 뿐이다.
보편적인 도덕성조차 보이지 못하면서 그 이상의 가치를 보인다는게 어불성설인 상황이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하였지만 그저 악취만 풍길 뿐이다.
나부터서가 너무나도 부끄럽고 민망하다.
사람들 끌어모으려고 저급한 어그로 끌고 축제열고 하면서 정작 중요한걸 중점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니 패션 종교인들이 늘어나면서 가치가 하락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게 모든 종교의 끝이라고 생각해요
현대사회 접어들면서 정보가 많아지고 교류가 많아져 각자만의 가치관 형성이 쉬워졌고 위에서 말한 패션 종교인들이 늘어남으로써 신세대들의 종교인 비율이 떨어지고 종교가 점차적으로 도태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시대에도 변함없지만 인간이 퇴화적으로 종교를 망쳐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으로써 죄송스럽고 부끄럽습니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없다고 단정할 순 없다. 온 우주를 샅샅이 훑어보고 없다는걸 확인해 보진 못 했으니.
같은 이유로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을 부정할 수도 없다.
신이 선한지 악한지도 단언할 수 없다. 하나인지 여럿인지도 모른다. 형태조차 모른다.
선한 종교 활동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도 있고 악마를 추종하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 영향이 정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의 경계도 모호하다. 악했던 사람이 선해지기도 하고 선했던 사람이 악해지기도 한다.
선하다 악하다는 나에게 도움을 주느냐 해를 끼치느냐일 뿐 아닌가? 나에게 반발하는가 동조하는가로도 뒤집힐 수 있다.
결국 각자 타고난 본성이라는게 있고 개성대로 고집스레 살기 위한 명분이 필요할 뿐 아닐까?
여기부터 신이 실재 하는가 아닌가는 상관 없어진다. 신을 의식하지 말고 본인의 양심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신이 인간에게 개성을 부여했다면 그 의도는 다양성 그리고 자율성을 원했기 때문일테니.
6:19
"I don't...I feel that it's unjust, which is halfway to being resentful"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지만 지금 지속되는 고통은) "옳은 거 같지 않다 느끼는데 원통하기까진 반정도 왔어요" 하시는 모습이네요 앞뒤 내용도 이래야 이어지고요
오히려 상대한테 조언 구하는데 상대도 난 그런 경험이 없기에 뭐라 말하긴 힘들지만 기독교는 항상 십자가에 답이 있다고 한다, 거기엔 신비함이 있지만 [고통을 짊어지고 가라고] 지금 고통받는 교수님한테 할 말은 아닌 거 같다로 끝남
네 이게 맞는 해석이죠 ㅎㅎ,,!! 피터슨의 새 책을 읽어본 사람은 피터슨이 어떤 일로 고통을 받는지 아실 겁니다.
원망스러우리 만큼 큰 고통에서 하느님을 믿는건, 정말 인간으로서 쉽지 않은 거죠.
타인으로서도 함부러 말하기 어렵구요. 대화 상대도 엄청 배려하고 있네요.
이 제대로 된 해석이 좋아요를 많이 받아서, 위로 올라가길, 영상이 수정되길 바라요!
교수님의 인간적인 면이 보여 뭔가 짠하네요...
인간적인 면모라고 하지만 그 또한 인간입니다
인간이니까 싸패가 아니라면 당연히 인간적인 면모가 있지
신은 도덕률이라고 해석해왔습니다. 적어도 '신이 있을까 두렵다' 혹은 '신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라는 발언에서요.
그래서 위 말의 첫번째 요구가 '관심갖기'라거나 그 형태가 예배라는 것은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군요.
관심과 예배는, 제가 보기엔 그 자체로는 신의 존재와 신앙에 대한 긍정의 의미만 지닐 뿐, 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탐구가 없거든요.
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통용될 가르침, 신이 지니는 성질이 왜곡된 것 같아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신앙을 지닌 이들은 쉽사리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말한다지요. 삶에 있어 고통과 고난은 당연한 것이라고.
참 잔인한 말입니다. 모든 일에는 인과가 존재하는 법인데 결과만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라니. 그래서 마지막 발언이 맘에 들긴 하는군요.
교회오빠란 영화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고난의 연속에서도 끝까지 평강을 누리고 천국에 간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이런 영상을 기다려왔습니다 ㅋㅋㅋㅋㅋ
신을 믿는다는 것은 그 신앙의 가치관을 높게 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가치관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데 이 부분에서 신앙 이외의 가치관을 얻은 사람에게 신앙의 가치관을 가지라고 설득하거나 강요하는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죠... 최선은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가치관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생겨날지 사실 상상이 안갑니다
직업 가치관만 달라도 타협점을 찾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는데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면 이게 얼마나 많은 갈등이 벌어질지..
종교, 비종교 할것없이 기본적으로 사람 중심의 가치관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요즘 종교인들 보면 꼭 그런것같지도 않습니다
과하게 한쪽으로 쏠려있거나 본인들에게 득이 되는것에만 관심이 있고 하는걸 보면 그냥 차라리 종교보다 사람 중심의 가치관을 더 넓히는게 어떨까 싶기도하고
어차피 종교를 냅둬봤자 비종교인과 다를바가 없다면 비종교인이 더 많아지는게 더 낫지않을까 싶네요
기독교인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다가 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한 사람으로서, (몇몇 기독교인들이 보이는 모습에 실망한 건 차치하고서라도,) 기독교 세계관 자체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인간을 기본적으로 죄인으로 규정하고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영원한 불못에서 고통받을거라고 협박(?) 하는데, 그럴거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나 싶더라구요. 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숨 좀 쉬고 싶어서요. 피터슨 교수님은 결국 기독교 빼놓고는 너무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서양권 사람이라 저런 고민들을 끝까지 하게 되는거 아닐까...
선호님은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에 정말 존귀합니다. 하나님이 가치있게 보시는, 자아가 있는 영혼이라 불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받고 있어요. 하나님은 결코 협박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에 친히 사랑하시는 인간을 죄에 대한 합당한 영벌에서 건져내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사탄 때문에 사랑하는 양들을 모두 잃어버린 아버지의 아픔과 그리움을 상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으면 어깨에 들처매고 돌아오셔서는 천국에서 잔치를 벌이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모든 인간은 엄청난 죄인입니다. 예외 없이요.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기에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정말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저희의 모든 불완전한 의와 모든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죠. 예수님을 믿는 저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오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보호하시고 함께하시며 마음의 공허감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채워주십니다.
저희는 그리스도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천국을 위해 지음받은 모든 인간은 뭍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아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받는 자녀를 내버려두시지 않으며, 고난의 범위와 양도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게다가 저희를 위해 저희 마음에 천국의 어린양, 생명의 생수 예수님을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시편에도 보시다시피 하나님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회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해하면 좋아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어떤 날은 감정적으로 좋은 상태로, 어떤 날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평안함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이 뭔지 모르고, 온전하게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구하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그리고 성령의 실제 역사를 통해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저희 또한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게다가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외국인들이 믿기만 하면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시며, 그들이 돌아올 때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불완전함을 강하게 반대하시지만 그분의 자녀를 결코 혐오하시거나 경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자식마다 훈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우리 죄에 따라 그대로 처벌하지는 않으셨고,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선대하십니다. 그래서 기회를 주고 계시며, 호흡과 음식과 다른 많은 것들을 주고 계심니다,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youareawizard 저는 그거 잘 못믿겠더라구요… 살아가는것만으로도 고통인데 그 이후에 영원히 고통받을 가능성마저 안고 살아가야 하잖아요. 기독교는 온통 정죄로 가득한데 (예수는 생각으로 범죄하는것도 범죄라고 했죠) 나는 완벽하지 않아서 계속 죄인일 뿐이고. 죄인이 지옥에 갈 걸 알면 왜 창조했는지가 풀리지 않아서 열린신학으로 풀어볼까 시도도 했어요. ‘어쩌면 하나님은 미래를 모르실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불완전한 신이라면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심지어 폭력적인 면모도 많이 보이잖아요 - 주로 구약 이야기지만)
불안에 떨면서 살 바에는 차라리 안 태어나는 편이 좋지 않나요? 저는 부모님 봉양하다 돌아가시면 조용히 제 삶 마감하는 것이 꿈이라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데, 죽으면 지옥 보내시려나… 싶네요 ㅎㅎㅎ 그럼 ‘이럴 것 같았으면 그냥 만들지 마시지 왜 만드셔서 지옥 보내세요’ 하고 싶습니다
@@sunhochoi2543 안녕하세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어 댓글을 남겨봅니다. 기독교가 정죄로 가득하다고 느끼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언급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눈으로 보고 음란한 생각을 하는 것마저 간음이라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룩의 기준은 매우 높으니까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사야는 환상 속에서 하나님을 뵙고 자신은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죠. 성경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상상 초월인데, 하나님의 그 거룩함을 스스로의 힘으로 따라가려고 하면, 성경의 말씀들이 족쇄가 되고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며칠 전까지 그랬어요. 예수님을 깊이 만난 경험도 있고, 믿고 따른다고 고백하는데 하나님이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매일 반복하고, 믿음이 온전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예배 드리기 전 내가 예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서 회개를 하고 해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늘 하나님만 사랑하겠다고 기도 시간에는 고백하면서 제 삶에서 실천이 잘 안 됐구요. 늘 내 결심은 도루묵이 되고, 내 삶은 늘 죄투성이인걸 보면서 실망하고 하나님의 향기를 뿜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힘들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말 그대로 범접불가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깨끗해지려고 노력해도 저는 그 발톱 때의 때마저도 따라갈 수 없는 존재더라구요. 예수님께서 간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내가 감히 평생 한 번도 짓지 않고 순결하게 살아갈 수는 없더라구요. 전 정말 죄인이라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과의 격차는 비교하는 것조차도 송구스럽게, 인간과 개미의 격차보다 크더라구요. 인간이 아무리 도덕적이어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정말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합니다.
만약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이 여기서 끝이라면, 오히려 인생은 더 절망적이겠죠. 완전한 쾌락주의에 빠지거나, 낙심만 한 채로 인생은 전혀 답이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성경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를 세세하게,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격차를 알아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와 고초당하시고 죽임당하시고 사흘째에 부활하신 이유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를 깊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정죄의 눈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눈으로 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의 눈으로 봤다면, 앞서 말한 하나님의 거룩과 우리의 격차로 인해, 이미 다 죽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도, 야곱도, 다윗도, 다윗의 후손인 남유다의 왕들도 오직 그들과 맺으신 언약 안에서 보셨고, 맺으신 언약을 신실히 지키셨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실망시키고 악을 저질러도, 그 언약을 꼭 이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하나하나 다 알고 계시고, 그 죄를 미워하시지만,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그 죄를 전혀 세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덮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친히 맺으신 언약과 긍휼의 눈으로만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내 믿음이 온전히 바로 서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내가 예수님을 붙잡기만 하면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 안에서만 날 바라보십니다.
그렇기에 거룩의 기준이 그만큼 높다는 건 오히려 자유입니다. 인간의 도덕과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의미있기에 더이상 힘들게 노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 안에만 있으면 됩니다. 뭔가 두렵고 걱정된 것은 스스로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혼자만의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대해서도 저도 많이 고민됐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이 그럴 거면 인간을 왜 창조하시나,라는 냉소적인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서도 오랫동안 품어왔던 고민이고 의문이었습니다.
저도 명쾌한 해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신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는 내 삶에서 일하신 것처럼, 다른 이들의 삶에서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기도받게 하시고, 각 사람의 삶에 역사하십니다. 그렇기에 내 눈에는 어떤 이들에게 무심하신 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들의 삶 속에서 일하십니다. 제가 모든 사람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세계 곳곳의 여러 간증들을 들으며 그러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직접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경험하고 체감하며 그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 그리 되었습니다.
이렇게 답글을 달게 된 것도 하나님의 사랑과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동안 힘들어했던 것에 며칠 전에야 답을 얻었는데, 이렇게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있으니 따끈따끈하게 얻은 은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댓글 잘 안 다는데 길게 달아봅니다.
@@yurochoi1280 너무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sunhochoi2543 선의 결핍이 악이다라고 보는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옥에 보내시기 위해 지옥을 창조하신분이 아닙니다 천사장도 그 스스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신적 위치에 있고 싶어서 하나님을 스스로 배반해서 악에빠진것이지요 하나님이 악을 직접 창조하신가 아닙니다 선의 결핍이 악인 것이지요 선의 결핍이 왜 생기냐 하면 하나님은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일것 같습니다 입력된것처럼 로봇처럼 무조건 선만 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고 선택할수 있는 자유의지요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있는한 선택이 있을수밖에 없고 그 선택의
과정에서 선의 결핍이 죄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행동에 대한 심판이 없다면 선이 왜 존재하고 공의가 존재하고 왜 이세상에 규칙이 존재하고 법이 존재할까요 어떤 행동을 하던 다 받아주면 질서라는게 있을까요 영원히 고통받을 가능성은 있죠 그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요 하지만 그런 과정이 없으면 공의도 없고 질서도 없는 세상이 됩니다 기독교에서도 이와같이 하나님의 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런 법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가 지옥에 빠지기를 바라시고 법을 만드신건 아니실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것이 아니십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사랑을 보여주셨죠 그 사랑을 보고 선으로 나아오라고요
"인간의 상상력이란 그 무엇과도 극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인간이 신을 찾는 이유는 고통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이 없는 삶이라면(그건 절대 불가능하지만)어쩌면 신을 찾을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람에 따라 신을 믿는 과정속에서 놀랍게도 그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소소한 것들에도 감사함을 느끼게되고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나쁜 생각이나 행동들을 하지않으려 노력하게됩니다. 고통을 나를 단련시키는 선물로까지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고 그렇게 생각하면 엄청난 힘이 됩니다. 이런 고통도 이겨내는데/이겨냈는데 내가 '뭘 두려워하고 뭘 못할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인생의 강한 조력자와도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거죠. 신을 믿고 안믿고는 자신의 마음을 따라야겠죠. 그런데 만약 신을 믿음으로써 자신이 더 평온함을 느끼고 강한 사람이 되고 나쁜 행동을 안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면 안믿을 이유는 없는겁니다. 허나 위에 언급한 내용이 하나도 자신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잡아 끌 수는 없겠죠. 다들 알아서 하시길 바랍니다. 선택은 스스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목사들이 하는 짓 보면서 신을 믿으라고 하고 믿는 사람들 보면 참...
제 개인적 생각으로 고통이 왜 있을 수 밖에 없는지 적어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KRV
위 성경구절에서 처음 것은 세상에서의 삶이고
두번째것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고 봅니다.
인생이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건 하나님도 알고 계세요. 인간이 타락해서 영생의 기회를 주려고 죽음을 만드셨고, 죽음의 과정은 당연 고통스럽죠. 그리고 지금 세상은 악한 영에 속해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고있으니 고통은 당연합니다. 악한 영을 멸하다가 악에 속한 사람도 죽일까봐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는 것이에요. 그들이 회개할 시간을 주시는거죠.
왜 십자가의 짐이 가볍지 않고 무겁게 느껴지는가?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저도 무겁고 힘들어서요...
오늘 책사고 오늘 구독합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입니다.
위의 대화는 정말 고차원적 심리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고통이 무엇인지에대해 자신의 고통에 빗대어 찾아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되네요 피터슨 교수가 자신의 고통이 부당하고 다음에는 분개심을 품었다고 하였는데 기독교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십자가에 비유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음으로 그 진리가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갈려고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사람의 관점으로만 보려하면 끊임없는 의심과 고민이 쌓여가죠. 소위 말하는 인본주의라고 해야할까요..
과학을 맹신하지 말라고 했던 교수님 말씀에 엄청 공감했었는데 신앙 또한 마찬가지 인것 같습니다. 사람을, 나 자신을 너무 믿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을까요.
그게 아닙니다 허남매님. 교수님은 철저하게 과학을 바탕으로 모든 논리를 전개해나간다고 이미 밝히셨어요(과학으로만은 아니지만 과학 지식과 모순되지 않는 선에서). 단 과학 지식이 이론의존적이고 잠정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수많은 것들을 과학 지식으로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맹신'하지 말라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실 성경에 적혀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스도의 물리적인 '부활'을 믿는게 합리적이어 보이지 않는건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영상의 핵심은 최고의 도덕을 추구하며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조던피터슨 vs 자신이 위치한 위계질서 내의 수준에서만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하나님에 대한 '숭배' 및 '관심갖기'가 중요하다는 저 신학자의 생각 차이입니다. 어느 쪽을 믿느냐는 님의 선택이지만요. 개인적으로 저는 나 자신을 제대로 믿지 않는다면 십자가를 짊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사이-i8t 저도 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도 과학과 제 자신을 아예 믿지 말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도 썼듯이 "맹신"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저도 과학의 논리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믿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매몰되다보면 정말 중요한게 보이지 않게되는게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도덕적인 것이 성경적인 것이냐 성경적인 것이 도덕적인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는 늘 나올 수 밖에 없는 질문이고 그거에 대한 두 분의 대화가 저도 도전이 되었습니다.
제 말에대한 오해가 있는 것같아서 적어보았습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저는 종교적 믿음도 도전을 받으면서 더 단단해지고 굳건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멋진 종교인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저 철학자의 숱한 고뇌와 고통뒤에 자신의 모든것이 깨어지고 부서지며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되길 ~~바란다
어렵네요 신앙인으로서 참 많은 고민과 궁금증들 .. 잘보고갑니자
현재 영상 풀버전 혹시 가능할까요?
음,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고통을 완벽히 다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선천성 심장병, 성범죄나 배신, 여러가지 충격 등등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불가에서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이란, 고통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가 그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
어느 날 예기치 않은 때에 고통이 폭풍 처럼 불어 닥칠 때 그 속에 무참히 잠식 되지 말고
고요히 그 고통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 고통이 무엇인지 면면히 살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을 불가에서는 "관조"라고 합니다.
저 하늘 멀리 달과 별을 보듯이 바라 보는 것입니다.
처음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면 그 고통의 근원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주로 생로병사에서 비롯됩니다.
그 외에 욕심에서도 비롯됩니다.
이것은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분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남의 것을 탐하는 욕심을 뜻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도 실은 너 자신을 잘 알면 한계점을 초월 할 수도 있다는 큰 뜻을 품고 있습니다.
신의 유무는 사실 알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증명 할 수 없습니다.
즉,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물론, 미스터리적인 신적인 에너지도 작용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합니다.
그것은 초미지적인 영적인 어떤 고차원의 에너지체의 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어느 날 불현듯 깨닫게 되는 중요한 시점이 있습니다.
그 고통을 정확히 정면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고요하면서도 지적인 차원을 맞이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어제보다 훨씬 가벼워 집니다.
그리고 내 마음 속 심지는 더욱 굳건해 지고 자유로워 짐을 느끼게 됩니다.
지구력이 생기고 어제보다 더 많이 웃을 수 있고,
더 활기찬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됩니다.
나를 괴롭히던 고통은 더이상 악마가 아니라 나의 정신적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성장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더욱 더 성장 합니다.
고통의 차원을 넘어선 사랑의 고통은 인간의 정신적 차원을 더욱 더 높여 줍니다.
광활한 미지의 우주가 내 안으로 잔잔히 들어오는 감격적이며 고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고통이란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 영혼의 주체가 되어 그것을 또렷하게 마주하므로써 그 고통은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형상화 되어
하나의 이해할 대상이 되어 갑니다.
고통이 더이상 무조건 배척하거나 거부하고 밀어낼 대상이 아니라,
깊이 이해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단계가 되면 무한히 자유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언듯 깨달아 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고통들을 경험하고 인내하면서 예전보다는 좀 더 편안해진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주인, 주체가 되는 것이 좋습니다.
신에게 무조건 기대는 것은 결국 약물에 의지하는 것과 어쩌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순간 순간 멀어지려 하는 자신의 자아를 찾으세요.
그리고 웃음을 찾으세요.
그리고 많이 느끼고 많이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많이 사랑하고 ,
때론 감동의 눈물이나 공감의 눈물, 슬픔의 눈물이 가문 날의 단비 같은 역할을 함을 알아채세요.
사실 우리들의 삶이란, 우리들이 아는 것 보다 더욱 더 풍요롭습니다.
이 경이로운 지구의 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울창한 생명력을 뿜어 내고 있고,
내가 사랑하고 보살펴야 할 누군가가 있고,
별은 늘 그 자리에서 영롱하게 반짝거리고,
해와 달은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면서 지구의 성장을 돕습니다.
가진 게 많고 화려한 도시인보다 행복 지수가 높은 하와이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그들은 소금 농사를 지으면서 돈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물물 교환을 합니다.
금전 거래를 하면 욕심이 생기고 그것은 곧 불행을 초래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단순했는데 너무 복잡해졌다."
그들이 말하는 단순함은 단순한 차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과학의 발달이 이뤄졌고,
너무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으며,
주변은 너무 화려해지고 있고,
너무 편리해지고,
너무 심각해지고,
너무 많은 갖가지 자극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삶을 조금은 단순화 시킬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집착하거나 몰두 하지 말고.
그러면 조금 더 가벼워질 것입니다.
어쩌면 인생의 정답이란 없겠지만,
자기만이 그 길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선조 때부터 늘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역사"를 이뤘으며,
그에 "선지자"들이 정신적 기둥을 세워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러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찾아 나가는 여정에 "고통"이란 "나"를 더욱 "나" 답게 만들며,
"나"를 초월할 에너지를 제공 합니다.
지금 보다 더 몸을 움직여 활기찬 에너지를 가꾸세요.
심신의 평안과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흥겹거나 사랑스러운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시를 쓰고 느끼고,
적극적으로 솔직하게 사랑하고, 영감을 주는 음악을 즐겨 듣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고,
자연의 경이적인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온 몸으로 바람을 느끼세요.
바람 속을 유영하는 내 영혼의 가벼운 깃털을 느끼세요.
"고통"은 분명히 나의 것이고,
"나"는 그 "고통"의 주인 입니다.
"나"는 그 "고통"을 명철하게 마주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며 굴복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그 방향으로 꾸준히 꾸준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도 어릴때부터 아토피에 상하악부정교합에 무릎에 지금은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있는데 글을 보면 얼마나 많고 긴 세월 동안 고통을 겪으셨는지 느껴집니다.. 저도 이런 건강문제에 가족폭행과 불화까지 근 20년을 살아오다보니 오랜시간 거친파도와 태풍에 홀로남겨진듯 부당함에 가족에게 분개심이 일기도하고 신에게 착하게 사는 나한테 왜 이러냐고 외치기도 했었는데요.. 글이 너무 대단해서 무슨 말을 해야될지 잘 모르겠네요 글을 정말 잘 쓰셨네요 책 쓰셔도 될거같아요 ㅋㅋ
잘 읽었습니다
@@jaehyeonpaek1950 😃감사합니다. 그냥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라 두서가 좀 없습니다.
EO N님의 병에 대해서는 확실히는 몰라도 아마도 물리치료를 받고 계시겠네요.
저는 EO N 님이 겪고 계신 병에 대해 잘은 모르고 의사가 아니어서 직접적인 도움이 드릴 만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토피는 식습관이나 주변 환경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면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친척 동생도 아토피였는데 지금은 상당히 호전 되어 결혼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허리디스크 같은 경우,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는 없지만, 말린 지네로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대나무 밭에 많은 발 많이 달린 지네 있잖아요? 약초 파는 초재에 가셔서 상담을 해보시면 도움을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허리디스크로 거의 기어 다니셨는데 지네로 큰 효과를 보시고 건강해지신 분들이 계십니다. 저의 아버지도 효과를 보셨죠. 자료 잘 찾아 보시고 상담을 잘 해서 약을 한 번 써보세요. 체질에도 잘 맞는지 세세히 상담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인간의 거의 모든 병의 치료제는 자연에 다 있습니다. 절망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저의 글을 정독을 하시면 요지도 그렇습니다. 좀 더 적극적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산에 흐드러진 흔한 망개나무도 약효가 굉장히 뛰어 납니다.
망개떡이라고 아시죠?
삭힌 망개 잎으로 떡을 싸면 잘 상하지 않을 정도로 방부 효과가 뛰어 납니다.
망개나무 뿌리는 해독제로서 효과가 뛰어 나며, 우리 몸 안에 온갖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배출 시킵니다. 그야말로 몸을 깨끗하게 정화를 시킵니다. 망개나무뿌리가 간편한 차로도 개발 되어 있습니다.
자료를 세세히 잘 찾아 보시고, 자신의 체질을 잘 상담 받으셔서 이런 차를 즐기시는 것도 여러가지로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흔한 녹차도 아주 아주 해독 작용이 뛰어 납니다. 성인병 예방에도 특효 입니다.
EO N님은 그런 건강 차는 잘 안 드시죠?^^
한 번 이제부터 챙겨서 드시는 것이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카페인이 연한 홍차도 상당히 좋습니다.
그리고 가족 문제에 대해서 제가 뭐 감히 어떤 조언을 드린 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과의 불화는 가족 상담이 가능하다면 한 번 고려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사실 가족 간의 불화를 겪는 가정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다들 편안하게 사는 것 같아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정말 가지각색 문제 없는 집이 거의 없습니다.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잠시 독립을 해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여건이 되신다면. 아니면 갈등의 원인을 잘 찾아서 서로의 상황이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서서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겁니다.
다들 따지고 보면 서로다 다 외롭습니다.
그리고 제가 개척한 장르인 엽편 소설 계열의 "핵편 소설" 중에 약간 비슷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신 당하고 재산까지 탕진한 한 사람이 절망감에 노숙자로 전전하다가 우연히 산장지기를 하게 되고, 거기서 조난 당한 한 여성에게 산장의 문을 열어 주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면서 주인공은 삶의 따스함을 다시 찾게 됩니다. 내 현실만을 바라보는 관점 즉, 촛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EO N 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마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EO N님의 지병에도 어쩌면 기적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조심스런 생각도 듭니다.
촛점을 다른 곳으로 한 번 돌려보는 습관을 연습해 보시는 것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너무 내 안으로만, 나의 고통에만 집착하다보면 병은 더욱 더 깊어져만 가고 가족들과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만 가게 됩니다.
서로의 외로움을 잘 이해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 본다면 분명 고통의 해결책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의견이 다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약간의 힌트라도 된다면 EO N님이 스스로 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이 다행이 호전이 되기 시작하신다면 "태극권"을 시작하세요.
아시죠? 중국 무술.
이 무술은 계파가 다양한데 동작이 다소 과격하거나 어렵지 않고 부드러운 계파를 잘 선택하셔서 학원에서 직접 수련을 하신다면 심신의 회복에 대단히 큰 도움을 드릴 것입니다. 이 운동은 단번에 효과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정말 주변 모두를 잠시 잊고 꾸준히 수련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마스터가 되셔서 학생들을 가르치실 수도 있습니다. 미래가 있죠.
제 의견이 도움이 되신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저는 선천성 심장병을 거의 반평생을 가지고 살았어요. 몸 상태가 왜 안 좋은지도 모르고 살아서 저에게는 2,30대 청춘의 꽃이란 게 없습니다. 이제야 겨우 회복을 했죠.
병과 그런 충격들 때문에 말도 거의 안 되고(반실어증까지), 후천적 난독증에 온갖 공포증까지. 트라우마가 정말 심했어요.
부정맥으로 병이 발견되서 응급 수술을 했고, 몸이 회복이 안 되면 자살할 생각까지 달고 살았었습니다. 안정제 부작용까지 겪었죠. 안정제 부작용이란 바로 자살 충동 입니다. 그래서 바로 끊었죠. 병원에서 처방 받은 우울증 약도 몇 번 먹다가 바로 끊었죠. 사람 이상하게 만들더군요. 몽롱~ 하게.
그건 저 자신이 아니었죠. 약물에 의존 했다간 진짜 인생 망칠 것 같아서 바로 끊고, 정말 정신력 하나로 이겨냈습니다.
그 과정을 말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 두려움, 공포증이란 것을요.
한 예로, 제가 사는 도시에서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도 그 공포증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죠. 왜냐면 병원과 멀어지니까 말이죠.
정말 엄청 났어요. 트라우마가.
어쩼든 꾸준히 등산하고, 목숨 걸고 무술 수련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빠진 기능들을 회복하고자 정말 온갖 노력을 다 했습니다. 남들이야 뭐라던 말이죠.
그래서 이제는 정말 회복이 다 됐죠.
정말 오랜 회복 기간이었어요.
한 마디로 인간 승리. 😃
저의 경험상 한 가지 얻은 것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촛점 돌리기.
그게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몇 번 성추행을 당한 일은 ....... 사실 다른 사람이 도움이 됐습니다. 그냥 우연히.
남자 트라우마가 좀 있어서 고통스러웠는데 누군가가 힐링해 줬어요. 그건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됐으므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랑... 이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글이 길어 졌네요. 그러나 할 말은 더 많지만 여기까지만 말씀드려도 아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자기와의 싸움 입니다.
결국은.
어떤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이제 웃음 더 많이 찾으시길 바랍니다.
건강 다시 찾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
캡처해서 두고두고 읽겠습니다 경이로운 댓글이네요
@@airbloom2046 😃감사합니다. 편안한 날들 되세요.
융이 그랬죠.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나는 신을 안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을 모른다는 것을 뜻합니다. 신을 모르면 신을 찾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 대신 그냥 믿는다고 말합니다.
성경을읽으면 안믿을수가 없을겁니다, 과학적 역사적 예언적으로 완벽한책이니까
신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동시에 신을 찾는자이기도 합니다. 말로만 믿는다는 사람들 말고요.
말로만 믿는자가 열명중 아홉일껍니다. 성경에서도 그랬지요. 그래서 믿는다 말하는걸 그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사실 유심히 살피면 하느님이 옆에 있는데 해서는 안될일을 하고 있거든요. 거짓된자 들입니다
@@clevelands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많더라구요
아틀란티스도 외계인도 다들 완벽하다고 합니다..ㅋㅋ
우리나라도 어떤 사람들에겐 세계 최강의 국가이기도 하니까요
@@clevelands 완전무결하게 완벽하다면 신을 안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 연구도 더이상은 연구도 필요없죠.. 완벽한데 뭣하러 더 심도있게 볼까요? 성경에는 모순점이 많다는 것이 성서학의 권위자를 포함하는 대부분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믿는 사람들은 믿는 것이죠.
living waters 에서 복음을 들으셔야될듯한
영어자막켜두면 영상 내의 한국자막과 겹치는데, 한국자막 위치 조금 올려주시면 안될까요ㅠㅠ
기독교 철학이란 것도 만만히 볼 게 아니군요. 괜히 그 짧은 시간 내에 한국의 주류 종교가 된 게 아닙니다.
성경은 역사적 과학적 예언적으로 완벽한 주님이 주신 책이니까요
@@clevelands 밑도끝도없이 바로 "주님이 주신 완벽한 책"
음 상대가 누구인지 알려주면 더 이해하기 좋을것같아요
조나단 페거 라고 하네요
저도 고통의 문제에 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는데, 고통을 이겨내는 것 자체에 어떤 숭고한 미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 속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고통을 감내한 자들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자신인 예수님 마저도 큰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죠. 이런 점들을 놓고 일부 비신도들은 하나님은 새디스트인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분명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상징에 어떤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논리적 차원에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고, 미학적 아름다움에 가깝다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숭고함' 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창조주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맘대로 악하게 살았습니다 어느날 A가 꿈을 꿈니다 자신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과는 달리 창조주가 있는 것이 었습니다 창조주가 이 사람에게 믿음이 없는걸 보시고 꾸짖으시며 뜨거운 불 지옥으로 영원히 보내버립니다 깜짝놀라 잠을 깹니다 A는 너무 놀랍니다 천만 다행으로 꿈이었습니다 다음날 A가 또 꿈을 꿈니다 자신이 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자신의 생각처럼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일도 일어 나지 않았습니다
B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창조주가 있다고 믿고 그분을 주로 영접하고 섬기며 착하게 살았습니다 어느날 B가 꿈을 꿈니다 자신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믿음과 같이 창조주가 있는 것이 었습니다 창조주가 이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걸 보시고 칭찬하고 복주시며 영원한 천국으로 보냅니다 평안하게 잠을 깹니다 B는 너무 행복합니다 다음날 B가 또 꿈을 꿈니다 자신이 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자신의 믿음과 달리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일도 일어 나지 않았습니다
신은 있는거 같은데 종교는 인간의 욕심이 만든거 같음
사회 구성원들 컨트롤에 필요한 도덕의 기준을 전지전능한 가상의 존재로 삼은거지
외국의 한 목사님(팀 켈러)께서도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라도 말씀하셨죠. 저 또한 크리스천이라고 얘긴할 수 있겠지만, 그 종교라는 틀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 종교라는 단어 너머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 같네요.. :) 사실 인간이 사용하는 어떠한 단어도 인간이 존재하는 차원보다 고차원에 계신 분을 설명할 도리가 과연 있을까요 ㅎㅎ
아 저게 끊임없이 고통을 겪어본적이 없으면 이해를 못하는구나... 주황색 분은 신자인가? 좀 황당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저는 끊임없이 고통을 겪으며 사는 것도 아니라서" 라니... 그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구나... 부러우면서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음... 신자로서 살면 주위에서 미친듯이 공격을 해댐.... 정말 미쳐버리겠음... 그리고 신은 거기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음... 그러니까 이 끝없는 고통은 내 스스로 끝도 못냄, 자살하지 말라고 하니까 내 생명의 신의 것이라고... 죽기 일보직전에 숨통을 틔어주는 축복 같은것도 있기는 함. 근데 고통은 끝이 안남... 그래서 이해가 안가는거 대체 왜 이 고통은 안 사라지는거야? 난 솔직히 부당하다고 느꼈고, 어떻게 적개심을 안 드러낼 수 있는지 모르겠음. 내가 나이가 어려서일까 피터슨 교수는 분개함까지 어떻게 안가는걸까... 끊임없는 고통과 세상 사람들의 미친 적개심을 특히 내가 베푼 사랑에 항상 배신으로 돌아오는걸 겪으면 아무생각도 안남... 너무 화가나서 그대로 날 죽이든 상대방을 죽여버리든 해야하는데 둘 다 율법으로 금지되어있음, 적을 사랑하래... 미친... 기도고 예배고 다 때려치고 시편 109편만 읽게됨. 어릴때는 다윗이 왜 그런 무서운 저주의 시를 썼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암. 저주의 시를 읽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나는 진심으로 시편 109편이 실현되기를 바람...
저도요.. ㅠ
무한한 사랑 속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게 되시길 바랍니다.
누가 주는 생각일까요
아니면 누가 주는 생각이 아닌 내 생각이라고 가정 했을 때
어떤 존재가가 첨언해주는 생각일까요
마주하는 고통에 진심으로 위로합니다..
근본적인 교리부터 말이 되는지 생각해보길 바람.
죄의 기준은?
율법? 그게 뭔지 들어본적도 없다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율법? 그럼 사회마다 기준이 다른가?
양심? 공감능력 수준, 받은 교육에 따라서 기준이 막 바뀌는데?
예수천국불신지옥?
예수를 들어본적도 없다면? 그래도 지옥가나?
원죄?
그냥 태어난건데 죄인이래. 시발?
모든건 신의 뜻?
그 뜻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게 신의 뜻이라면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는 뭐지? 신은 선하다면서 선의 기준이 인간이랑 다른가? 그러면 그건 우리가 말하는 "신"이 아니네?
걍 기독교를 포기해...일뷰 인간들이 만들었고 일부 인간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도덕"의 기준으로 세운 전지전능하다는 설정의 가상존재가 기독교의 신임.
최근들어 피터슨 박사님이 점점 예수가 되어간다는 느낌을 너무 많이 받습니다. 본인이 그런 이미지를 의도하는 것인지 시대가 그를 이렇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예수의 끝을 생각하면 박사님의 마지막 순간이 너무 염려스럽습니다. 조금은 짐을 내려두셨으면 합니다.
신을 믿냐고? 안 믿어. 근데 있을까 무섭긴 하다. 근데 소위 믿는자들이 하는 걸 봐라. 그게 믿는 자의 태돈가?
응 하지만 우리에겐 성인이 있음. 두유노 성인?
아니 갸들은 그렇다치고, 믿는다는 것들의 행동이...
어. 그건 그런데, 믿는데도 레베루가 있지. 나는 예배만 드려도 평타는 친다고 보는디?
그르냐? 나도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은 하지만, 인생이 졸라 힘든데 내가 믿음이 생기겄냐고?
너 힘든건 인정. 근데 난 안 괴로워서 잘 모르겠는데... 암튼 교회에선 닥치고 예수생각이나 하라 하긴 함.
그냥... 다른 사람의 행동과 원리는 제껴두고 봅시다. 우선 자기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찾자면, 약함이나 가난함, 무능함, 게으름 여러가지 등등이 있겠죠. 근데 그것들이, 내 안에 있는 나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악함을 누군가의 사랑이 없이 견뎌내고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요?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변혁시켜 나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런 인간은 없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나를 돌봐주고 바꿔줄 수 있는 누군가가 세상 속에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가벼움을 잡기 위해서 신 앞에 나아가는거죠.
@@young_tkim9721 난 그냥 영상 내용 요약한건데..
진짜 신앙 깊은 사람들은 조용히 잘 사는데
소수의 그 바보같은 진절머리나는 정내미 뚝 떨어지는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만들게 함...
피터슨 박사님 현재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정신적인건가요 아님 육체적인건가요.. 궁금하네요..
혹시 조던 피터슨 교수님은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시나요
암에 걸려서 무척이나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셔야 했고,
페미니즘과 pc주의를 논박하면서 전세계 좌파들의 테러를 당했습니다
@@jacobkim4296 본인이 아니라 아내분이 항암치료를 받으셔야했다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가족의 고통과 자신의 커리어에 들어오는 공격들 때문에 오랜기간 우울증을 앓으셨다네요
따님도 어렸을적 희귀성 난치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치료된 경험이 있어서 지금의 종교적인 태도를 갖게되신 것 같네요
윗분들 얘기는 전부 이전에 겪은 내용들이고, 현재에 겪고 계신 끊임 없는 고통은 3월 영상인 점을 고려했을 때, 항우울증 약에 의존현상이 생겨서 생사를 오가셨던 것이 문제 같네요.
신앙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심리적 결과인가....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맛보셧다면 단순히 의지할것 이상의 무언가가 잇다는걸 알게될것입니다.
신앙이 있기에 감사함도 있는 것 아닐까요
종교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보다 배은망덕한 자에게 내리는 신의 저주가 무섭고 더 복을 받고 싶은 기복신앙과 이기심에 일부러라도 감사할 꺼리를 찾아 감사하는 종교에 빠진 제가 보이더군요. 신앙이 없어도 감사하고 선하게 사려는 사람들의 동기가 더 순수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종교적 우월감에 빠져 앵무새같이 판에 박힌 소리나 했던 나와 다른 크리스천들을 보게되니 자괴감이 들더군요.
지성을 위해 이 채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스럽겠죠. 지성의 대가로 불리는 사람이 이전에는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라고 했었다가 예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이야기하니. 그러나 피터슨이 이야기했던 동시성이란 인지로 이해되지 않는 축복이 은혜로 퍼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성의 대가였던 이어령 장관님도 그랬고요.
난 행운의 여신만을 섬긴다.
나도 지속적인 고통속에 있는데 이게 신에대한 반감만 증가하지 어떻게 그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더 믿는지는 이해가 안됨.
진짜로 전지전능하신게 신이고 나를 위한다면 나에게 고통을 주지 말아야함.
인간이 본래 선악과로 인해 악해졌기에, 세상이 악해졌고 거기서 나에게 오는 피해라면 그냥 받아들이겠음. 근데 가족이 자살시도를 하거나 자살을 하거나. 이런사람들좀 구해주면 안됌?
기도를 하라고? 어떻게 기도를해 애초에 믿음이 가지를 않음. 나이가 많은건 아니지만 살아가면 살수록 삶은 가족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가족이 고통받을 때 나에게 오는 신에대한 환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음. 존재 한다면 치유해주기를 바랄 뿐임. 아니다 애초에 존재한다면 이런게 없어야함.
신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기에 논리적으로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모순덩어리가 발견된다고 하는데, 그걸 이해시키는것도 신의 능력 아님? 우리가 이해를 못하고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그게 정말 신이 존재한다는 걸까? 믿어 의심치 않을 상황, 상태를 줘야 우리가 절대적 믿음을 가지지 않을까?
내가 기독교를 떠난것도 환멸감임. 교회를 가보면 교회에서만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음. 진짜로 헛구역질이 났음.
그냥 이해가 안되서 화가 나네
기독교는 즉각적인 고통의 해결을 절대로 약속하지 않죠. 조용기를 필두로 한 부흥사들이 기독교를 문제해결종교로 타락시켜버렸어요. 기독교는 단지 하나님이 당신의 죄로 인한 고통을 대신해 당신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셨다고, 그분을 속죄양으로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고 따라갈 때 고통이 없는 그분의 나라를 약속하지요. 이 땅에서의 신자의 고통은 떨쳐낼 악이 아니라 늘 감사할 선입니다. 고통 속에서만 죄인은 진정한 회개와 믿음과 감사를 행할 수 있기 때문에
God 에 대응하는 단어는 하나님 보다는 신이라고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단어중 '하나님' '하느님' 이렇게 나누는건 좀 잘못된 것이라고생각합니다.
신앙의 여부보다 그 개인의 변화가 중요한듯
천주교의 성인과 특별한 계시 속에서 슬픔과 환희 눈물만 흘리는 것이 허락된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위계질서 또한 매우 존중히 여기시고 우리들이 이 하나님의 위계와 사람들 간의 위계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행위와 육적인 행위가 같이 조화롭게 이뤄 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다면 마땅히 사람에게 그 은혜를 공유하고 더 나아가 헌신과 봉사로 이어져서 빛과 소금의 역활을 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이름을 나타내야 만 참된 주의 사람이요 자녀라 할 만한 것이지요..
기도 만 하는 은총은 사단의 역사라 할 것입니다
주님도 항상 기도하시고 낮에는 또 열심히 일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전도외에 노동도 했지요..
비진리의 사람들은 사림을 우상화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어떤 특별함과 위계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자유로우신 섭리를 축소시키고 한정지으므로서 편협하게 만들고 한계성을 갖게 만들어서 하나님과 우리들을 먼 것처럼 만들려고 합니다
이 땅에 인간이 사는 동안 성인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다 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교리는 비진리인 것입니다
주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시고 머리 둘 곳이 없는 생활 가운데에서 순교하셨지요..
교황이란 지위는 누가 준 타이틀인지 모르겠습니다
교황무오설이라는 것이 있다던데요..
참으로 가공할 만한 사단의 장난 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들은 항상 즉는 그 순간까지 회개의 삶을 살므로 하나님 앞에서 항상 거룩하고 정결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인 심령이 가난한 자이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만 하는 우리들의 실체인 것이지요..
그냥 기독교 종교인은 복음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대답을 해줄 수 없다. 양심과 내면의 고통을 공감할수없기 때문이다. 그저 예수가 대신 죽었으니 너무 고민하지 말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닫고 그저 기뻐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면 심령이 가난해지고 자신에 대해 애통해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세계인머리털 수염 길어진만큼만 범죄가난질병 짧아지고 한국주도 세계통일 지상낙원 열립니다
할렐루야!^^
'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오직 사랑의 멍에입니다
즉 주안에서 짊어지고 가야하는 삶은 주 안에서 사는 삶으로서 사랑의 삶 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그로인한 사람을 향한 사링 즉 어려운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하여 자기의 유익과 안일과 이기를 버리므로서 목숨까지도 버리게 되는 즉 순교적인 상황까지도 이르게 되는 삶은 오직 주 안에서의 삶 만이 가능케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쉽고 가벼운 짐인 것입니다
주 안에서는 그 모든 것이 쉽고도 가벼운 짐에 불과한 것이지요..
주 안이기에 가능한 하나님의 능력 즉 성령님의 도와주심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너무 걱정 하지 말고요
주님의 손만 꼭 붙잡고 가면 됩니다
그러면
주께서 다 해결해 주시고 이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한테 기대는 게 제일 좋은데.. 무슨일로 고통스러워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울먹이는 표정이 안타깝다
[조던 피터슨]은 기독교인인가?
ruclips.net/video/bsJfDU9Wj7g/видео.html
종교인 여러분들 교회에서 몇백명 모이는 행사 열어도 안 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상담을 하려면 영적으로 좀 성숙한사람과 햇으면 하네요, 피터슨박사가 겪는 고통은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며 그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어떻게 저분한테 최고로 이로움을 주는지를 봄으로써 신앙적으로 한단계 성숙해지는것입니다.
주님은 모든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십니다. 병을 치료할수도잇고, 평안을 줄수도 잇고 깨달음을 줄수도 잇읍니다.
그래서 수준이 좀 되는 목사님은 고난이 오면 기대를 많이합니다.
야고보서 1:2-12 KRV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