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osChaos 과거에 적힌 수많은 1차사료들은 어떻게 보면 정말 많습니다. 뱃사람들의 허풍이나 지역의 영웅담처럼 개인의 감정이나 사상이 포함됬기에 그걸 분석해서 학자들이 결론을 내려 인용할것과 거를것을 결정하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부분은 학자들 마다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저 박사가 내린 결론에서 무엇이 토론되었고 무엇이 인용 되었는지 모르죠 그리고 왜 인용 못한건지 등 그런 내용을 유튜브에 올릴려면 수십시간이 될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임용한 박사가 내린13분짜리 결과의 영상만을 보고 있어요. 당신이 말하는 네임드들의 기록을 저분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우리는 모르는거죠. 그리고 상상과 분석은 다릅니다. 상상으로 역사를 쓰면 진짜 소설이죠. 하지만 저는 당신이 어떻게 이 박사가 상상만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상상하게 된 건지 궁금하군요.
안녕하세요 박사님. 박사님 영상을 챙겨보는 시청자입니다. 저번 인문채널휴에서 원균에 대해 분석하셨을 때도, 옹호론이니 뭐니 해서 힘든 일을 겪으신 것을 기억합니다. 결국 안타깝게 영상이 내려진것 같더군요. 남들의 시선이나 비난에 굴하지 마시고, 꿋꿋하게 패전에 대한 분석도 계속해주세요.비록 패전일지라도 놓친 부분을 짚어주시고 생각할 부분들과 교훈을 주시는 박사님의 영상을 항상 응원하고 감사히 보는 시청자들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건강 항상 조심하시고,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그런일이 있었군요. 나만 임용한의 역사평론을 역겹게 느낀게 아닌 모양이군요. 제대로 아셔야 하는게. 이 사람은 소신이 있어서 원균을 옹호한게 아니에요. 이 사람 영상은 별로 보지 않았던 나도 원균, 선조를 옹호하고 이순신을 평가절하는 하는걸 봤으니까요. 게다가 조선시대 노비제도도 옹호했죠.그가 이들을 옹호한 이유는 기존의 정론이나 상식은 오해이고 자기는 진실을 말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근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근거가 없어요. 원균에 대해 기존 사료의 팩트의 열거는 차치하고. 틈나는대로 술먹고 패악질 벌이고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고 방해하다가 이순신 장군이 승전할때 슬쩍 껴들어서 일본군 수급이나 수거해서 자기 공으로 올리는 놈인데. (이건 엄연한 팩트입니다). 임용한은 원균에 대해 오해하는거래요. 근데 무슨 주장을 하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근거가 없어. 오해라는데. 그냥 말도 안되는 논리로 오해라는데 이해가 갑니까? 게다가 조선수군이 원래 강해서 이순신이 이긴거라는 헛소리도 하구요. 아니 조선수군이 해전에 약한 왜군에 비해 우수한 면이 있긴 하지만. 다 떠나서 그럼 왜 이순신 모함해서 내치고 지가 제독된 원균은 왜 대패한건가요? 그것도 말도 안되는 논리로 원균을 옹호하더군요. 아니 1차 사료가 원균을 다 쓰레기로 증언하고 있는데. 옹호하고 싶으면 근거가 있어야지. 왕조실록.난중일기.징비록 전부 작당해서 원균을 모함했다 쳐도. 그럼 원균이 뭔 승전을 했다면 몰라. 결과론적으로 잘한게 하나도 없는 인간을 근거도 없이 왜 옹호하는지. 신립에 대한것은 내가 밑에 댓글로 써놨으니 보실 분은 보시고요. 자국국민이자 민족을 6,70퍼센트를 노예로 만든 조선의 노예제도도 오해라느니 뻘소리를 하는게 임용한입니다. 이 사람이 소신이 있어서 그런말 하는게 아니에요. 내가 볼땐 이 사람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냥 나 뜨고 싶으니까 나 좀 알아줘.라는 역겨운 허영심을 기존 정론과 상식을 공격해서 어필하고 싶은 것 뿐인 겁니다. 대중이 다 바보라서 그 근저에 깔린 심리를 간파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이런 찬양성 댓글 쓰는 사람들만 보고 계속 같은 패턴으로 주장하는 건지.
조령에서 막으면 되었다면 6.25 때 국군도 조령에서 막았어야죠 그런데 낙동강 방어선을 했던 이유는 조령만 길이 아니기 때문에 방어선을 만들기 힘들다고 봐야 함 세종이 4군 육진을 하기전에 북방 한개선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을 했었는데 산으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죠 그런데 세종은 강으로 하자고 해서 지금의 영토가 정착이 됨 신립이 한강 방어선을 두고 싸웠으면 더 좋았을거라 생각할 수는 있지만 조령은 아닌것 같네요
무조건 알려져야할 임진왜란 분석입니다. 사람들은 역사를 너무 결과론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당시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하지 못하고있어요. 읍성도 말이 성일뿐이지 외국같이 해자랑 첨탑형식이 아닌게 대부분이였고 냉병기 특성상 병사들의 숙련도나 전투경험이 매우 중요한데 그런것도 부족했구요. 보급도 딸리고 병력증원도 언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북방에서 소규모 유목 기병을 상대하던 신립한테는 조직화된 군대는 중과 부적 같았죠. 신립딴에는 기병대로 왜군의 선봉을 제압하고 후방에 전선이 형성될때까지 지연전을 하려는 의도로도 볼수있죠. 신립 한사람의 문제라기 보단 조선의 군사 시스템 문제가 더 컸다고 봅니다.
원래 역덕들 비위 맞추기 힘듬... 대개 사회성이 또 없는 애들이라서 본질을 못읽고 지엽적인거에 메여서 조금만 아는게 나오면 아는척 하고 싶어 몸이 달아오르고 인터넷이라고 익명성 믿고 안심하고 악플닮... 인터넷도 토익처럼 댓글 자격제 같은 시험 개발해서 임용한 교수님이 관련 문제 논술이나 논리력 시험 개발해주심 좋을거 같음.
전쟁이나 외교를 평할 때 가장 답답한게 '왜 완벽하지 못했냐' 하는 비판인것 같아요. 상대가 허수아비도 아니고 보통만 한다면 50:50인거고 거기서 왔다갔다 하는건데.. 패하면 무슨 죽을 죄를 지은게 되고 승리하면 왜 더 잘 싸울 수 있었는데 실수했냐고 비판하는게 그때나 지금이나 꼭 있는것같네요. 애초에 전쟁 초기에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의 싸움이었고, 그게 차차 차이가 좁혀지는 전쟁이었는데 패장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한것 같긴 합니다
박사님 힘내세요. 요즘 정치가 어지러워서 사람들이 다른사람의 말을 듣는게 익숙하지가 않은것 같아요. 다른사람이 내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하면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듣지는 않고, 자기가 아는것만 말하면서 화내는 사람이 많은것 같아요. 인문학이 중요함을 또한번 느낍니다.
언제나 좋은 방송 감사 드립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실제 업무를 하면 보고 시 결과만 보면 임원님들이 일을 뭐 이따위로 했냐 이건 왜 안하냐 쿠사리 주거나 외부에서는 아주 쉽게 판단하는데 실제로는 수많은 내용 사건 히스토리가 있는게 대부분입니다. 어떤 면에선 변명같지만... 여러가지 역사사건도 비슷한거 같습니다. 나와있거나 증명되는 자료 증거는 한정적이고 그래서 박사님의 접근법이나 해설해주시는게 이시대에 맞는 거 같고 재미있는 거 같습니다. 언제나 양질의 컨텐츠 감사드립니다.
잘봤습니다. 신립의 종사관은 김여물인데 그가 좀 전투의 경위와 경과를 적어서 보고해야 하는데, 죽었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지 못합니다. 그러니 누구도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일본측 기록을 보면 대체로 삼면에서 포위 공격했던 것 같고 신립은 두번 기병돌격을 했지만, 돌파를 못합니다. 오히려 포위망 속에 갇혀 일본군이 조총 집중 사격을 받고 무너졌습니다. 수급이 3천이라고 하니 전사자가 3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령을 지킬 시간이 없었던 것은 맞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상주로 간 이일이 이미 3일 늦게 출발했거든요. 그 다음에 신립이 갔으니 촉박했던 거죠. 조령 부근을 정찰했지만,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일은 패전후 신립을 만나 아예 한강에서 방어하자는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충주에 너무 늦게 왔고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고 봅니다.
1. 《조선국왕이야기》 때부터 임용한 선생님의 오랜 팬인 일인입니다. 《조선국왕이야기1,2》 《전쟁과 역사》를 비롯한 선생님의 책은 상당수 읽어보았고, 선생님이 출연하시는 영상도 책만큼은 아니지만 챙겨보고 있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기존의 통설적인 개념이나 이해에 대해, 학자로서의 선생님 나름의 노력과 연구를 바탕으로 신선한 시각을 제시해 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신립에 관한 시리즈 영상도 제가 가지고 있던, 신립에 대한 통상의 이해를 여지없이 깨뜨려주셔서 참으로 놀랍고도 놀라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2. 비난과 비판을 구별하지 못한 많은 이들 때문에 마음 고생하실 임용한 선생님을 생각하니 참 속상하네요~ 얼마되지 않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시면 될 텐데,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여서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적지 않나 봅니다. 어쩌면 이게 대중매체가 갖고 있는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런 댓글을 다는 이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예전에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7년전쟁을 주제로 했을때 임용한 박사님이 기병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적을 섬멸하는게 아니라 (물론 후퇴해 도망가는 적을 섬멸하기도 하지만...)적의 진영을 흐트러트리는 거라고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되새겨 보면 신립장군의 기병대가 제 역할을 했다하더라도 무너진 적진을 향해 진격해 난전을 펼칠수 있는 정예화된 보병이 당시 조선에 있었는가 하는것도 의문입니다.
그렇네요 다만 상대적으로 내어줄 수 있는 땅의 크기차이가 있고 이라클리오스황제는 상대를 잘 아는 것에 비해 신립은 초전인데다 생소한 적이고 마지막으로 왕의 사돈으로 모든 기대를 받고 있던 도원수라는 입장 상 그렇게 공간을 내주고 주력을 보존하는 전략을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박사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안목이 넓어졌습니다. 일본군은 실전에 의하여 잘 정비된 정규 군대였고 신립 장군은 동원된 야비군이었죠. 야비군도 전투력은 있겠지만 전쟁 전에 조직력 강화를 위하여 제대로 된 훈련을 한번도 시키지 못했죠. 훈련이 안된 군대는 오합지졸이고요. 적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요.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죠. 적에 대한 정보 즉 훈련 상태와 공격방식만 알았어도 후방의 성을 수리하든지 해서 공성전을 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많이 배웁니다. 우리가 토론을 잘못 배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관계조차 토론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식, 배틀 식의 토론이 익숙해서 이런 의견들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관계에 대한 분석과 그 것을 토대로 예측 할 때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왜 그런 의견을 가지는지 설명하면서 결과를 도출하고 더 나아가 교훈을 도출하는 것이 연구하고 토론하는 목적이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냥 제 뇌피셜로는 치킨 게임 하듯 토론에 임하다보니 의견이 다르면 목소리 커지고 비난하는 것으로 번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네요. 구체적인 설명 감사드리고 맘 상하시는 일이 점점 더 줄어들고 더 즐겁게 역사를 즐기는 시간되면 좋겠네요.
박사님은 무조건적 옹호론자가 아니라 역사를 다각도로 바라보며 연구하고 분석하시는 진정한 역사학자이시고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몸서 보여주시는 훌륭한 지식인이십니디!!! 자칭 역사를 역사답게 가르친다고 자뻑하는 황ㅎㅍ처럼 결과론적 관점으로 그저 역사를 선과악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로 접근하는 작자랑은 차원이 다르신분입니다!!!
@@이희진-g4d 비교하는것이 아니라 임박님이 연구하고 분석하는 분야가 많은 사람들에게 질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속상해서 그러는 겁니다!!! 박사님이야 말로 역사학사로서의 최대한 올바른 시선과 태도로 연구하고 분석하시는 분인데 그런분에 이야기는 거들떠도 안보고 그저 황ㅎㅍ이나 설ㅁㅅ 같은 선동꾼들 말에만 휘둘리는 대중들이 너무 한심해서 하는 말들입니다 유튜브 구독자수만 봐도 우리 임용한 박사님보다 저런 인간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영광하는 인간들 많다는게 한심스럽습니다!!!
@@이희진-g4d 역사란 옳고그름이나 선과악이 아닌 다각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여 분석하고 연구하여 이해하며 각자의 삶과 가치관에 접근하는 학문이지 서로 잘잘못을 따지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런 측면에서 임용한 박사님은 정말 존중받아 마땅한 역사학자이자 진정한 지식인이라 저 스스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장수는 적을 두려워 해서도 안 되지만, 적을 얕잡아 봐서도 안 된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다!" 신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군을 얕잡아 봤고, 특히 조총을 무시했어. 특히 일본군과 먼저 패전을 하고 후퇴 해 온 이일이 일본군의 위력과 조총의 위력을 이야기 해 줬는데도 무시하고 전투를 벌인 천하에 무능력한 장수가 신립임.
보통 주장이라는 걸 할 때 웃긴점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량의 끝부분에 집중하더군요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런것에만 집중해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이미지로 사람들 선동하는 게 가능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정은 생략하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것에 일방적으로 집착하죠. 그리고 토론 할때도 사실의 검증보다 심지어 비전문가라도 자신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 그런것 수비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습니다. 그냥 인간의 본성자체가 숙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순수한 논의를 할 수 없는 구조인 것 같아요.
남의 말에 반박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한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글을 못읽어서 난독증 증상을 보이고 말 뜻을 못 알아먹는 사람은 댓글을 달 자격이 없습니다. 님처럼 난독증 환자와는 말도 섞기 싫으니 제 댓글을 다시 읽어보고서 말 뜻을 똑바로 파악하기 바랍니다.
아이고... 박사님 참 사람들 어떻게든 끌어올리시느라 고생하시네요 ㅋㅋㅋ 오히려 신립이 조령을 안지켜서 졌다, 배수진 쳤다가 졌다, 기병돌격해서 졌다. 이건 최소한 어느정도의 작전의 자율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고 차라리 신립을 높게 보는 것일수 있죠. 말씀하신 것처럼 현실에서는 적의 술수에 완전 놀아나서 이리 우왕 저리 좌왕 하다 포위당해 진 것이 더 처참하고 바보같은 패배다라는 것에 십분 동의합니다. 거기에 더해 다른 범장들이라고 해도 그 구성에 그 병력의 훈련도와 실전수준으로는 거의 다 비슷했었을 것 같고요
사령관이 되기 전, 스키피오는 군 간부로 재직하며 참 많은 패전을 경험했습니다. 스키피오가 패전을 경험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집니다. '누구 때문에 졌을까'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무엇 때문에 졌을까'라고 생각했을까요. '이 차이가 자마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은 것이 아닐까'라고 말씀드려봅니다. 오늘도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
이와 비슷한게 625 개전 초기죠. 채병덕이 전략 오판으로 국군 7할을 날려 버렸지만 그런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김홍일 장군은 지연전으로 진격을 천천히 늦추게 했죠!! 만약 신립이 충주에서 지연전을 펼치며 천천히 퇴각 했고 용인에서 집결하여 한강 방어전을 펼쳤으면 어땟을까? 개인 생각입니다 ㅎㅎ
근데..그거랑은 또 다른게 임진왜란때의 왜군은 200년 동안의 내전으로 단련된 정예군이라고 볼수 있어서..태어날때부터 전쟁을 겪은 병사들 vs 200년 동안 평화에 찌든 농민군들의 대결이라 무리라고 봅니다;; 거기다 지휘관도 수준이 달랐죠 추가로, 대립군이니 군역의 요역화니 하면서 군대가 군대가 아니게 된 조선의 군대..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정상적인 군대와 전쟁을 겪어본 군대의 싸움으로도 불리한데 이런 상황까지 합쳐지면 그냥 절대 이길 수 없다 정도 수준까지 가겠죠
@@김동욱-i5b 음 대신 우리국군은 625당시 실전 경험을 가진 병력고 거의 없었고 실전으로 대군을 이끌어본 장군은 김홍일 장군 단 명 뿐이 었고 무기도 부실하고 더군다나 전차 마져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북한은 전차도 있고, 일본군과 실전 경험이 있는 팔로군 출신 조선인만 5만과 규모도 그 당시 국군의 2배 규모 였고 지연전을 잘펼친 덕분에 맥아더가 직접 일본에서 현재 상황도 파악하고 유엔군 올때까지 시간 충분히 시간까지 벌어 줬습니다. 이전도면 임란초기나 625초기나 별다를바 없지 않나요??
그때 조선은 평화의 시대가 오래되었고 외부 보단 내부 반란이 더 큰 위협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을 뭉쳐두지 않고 왜구대비로 해안선 따라 넓게 펼쳐둔 상태에서 전시에 정해진 곳에 모인후 중앙서 내려온 장군이 지휘하는 방식이었죠 그에 따라 중앙의 장군은 그지역 지리도 안익숙하고 수발이 될 부사관들 병사들도 처음 대면 하는 겁니다. 그것도 제대로 모였을경우고 너무 급격히 무너져서 병사들이 제대로 집결 하기도 전에 경상도가 떨어졌죠 즉 대비할 겨를도 거의 없었단 말이죠
역사를 선악으로 보면 참 간단해보이지요. 하지만 그만큼 보는 시야가 좁아집니다. 선과 악이 맞부딪치는 경우보다 선과 선이, 악과 악이 부딪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세상사지요. 오늘 영상을 보고 신립이 그렇게까지 무능한 장군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에는 결과론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부분으로 정말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한 장군도 맞다,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네요.
오늘 임용한 박사님의 답답한 심경이 느껴졌습니다. 토론, 논쟁은 공부하고, 들어보고, 알아보는 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한국사회에서는 그걸 훈련받을 기회가 없다고 봅니다. 타인에 대한 비난과 찬양만 아는 사회, 니편 내편 하며 싸우는 분열, 패거리의식에 물든 사회에서 그걸 아는 게 대단한거죠. 다른 분이 원균 영상 내려간 걸 안타까워하는 글을 쓰셨는데 저희 같은 범인에게는 천재의 위대함보다는 범용함의 함정, 흔한 실수를 잘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즉 패전 사례는 우리들의 훌륭한 거울이 될 것입니다. 혹시 압니까? 우리들 구독자 중에서 박사님의 가르침을 잘 공부한 사람이 인간의 한계를 넘을지도요. 앞으로 난세의 어둠이 깔린다면 박사님의 오늘 가르침이 우리들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의심치 않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문경세재 직접가보니 애들데려가서 위에서 돌만 굴려도 며칠은 버티겠던데...길도 닦고 도로가 놓인 지금도 한눈에 봐도 여길 도보로 넘으려면 토나오겠다.생각들던데 조선시대땐 얼마나 험지였을까?아무리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생각하면서 신립을 이해해보려해도 조령한번 가보면 "아니 여길 왜 버려."라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수 없을것이다.
저는 오히려 사서의 기록을 토대로 한 분석을 더 좋아합니다. 자세한 기록이 없더라도 남아있는 사료를 가지고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과정과 서사를 재구성 하는 게 더 재밌더라고요. 국사책이나 드라마는 너무 국뽕이 심해서 탄금대 전투라 하면 정말로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전멸당했다 라고만 알고있었지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저도 처음 알았네요.
모든 영상을 다 본 뒤 내린 결론은, 신립이라는 사람은 물을 앞에 두고 진을 쳤음에도 적에 의해서 자신의 진이 자동으로 배수진이 되어 버렸으니, 어찌보면 일부러 배수진을 친 경우보다도 훨씬 무능한 장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조령만 지키면 적이 뒤로돌아 포위할까봐 단월에 진을 쳤다면, 단월에서도 뒤로 돌아 포위되고 말았으니 대비한 거라고 볼 수 없겠습니다. 8천 병력 중에서 살아돌아간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니 이것은 완전 포위되어 전멸하고 만 것입니다. 일단 포위됐으면 백중세로 싸웠을 리도 없습니다. 또한 적의 진격 속도는 조금도 늦추지 못했으니, 부산진성에서 첨절제사 정발 장군이 버틴 것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정발 장군의 병력이 600~800명이었고 기습적 초전이었음을 볼 때...) 아울러, 이후 임진강에서 대치할 때 왜군이 퇴각하는 척 하자 조선군이 추격하다가 강을 건넌 후 전멸하였는데 추격을 지시한 사람이 신립의 동생 신할입니다. 이때문에 추격을 반대하던 경험많은 장군 유극량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또 신립의 아들 신경진도 매우 무식하고 과격한 인물이었습니다.
신립이 조령을 조사해봤더니 우회로가 있었더랍니다. 그래서 탄금대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는데 마침 논밭이고 왜군이 화망사격을 하여 전투가 힘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급조해간 병사들도 대부분 농민이라 기마 정예병들의 좌우에서 충분히 전투를 서포트 해주지 못했던 점이 큰 패인이라고 하네요 어쨌든 선조가 의주로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고 당신 왕의 존재의미가 크니 무의미한 전투라고 생각되지 않네요
이 전투에 대한 원인과 해석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을 본 것 같습니다.
분석을 생략한 비난이 얼마나 무익한지도 잘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찬양/ 비난 = 니편 / 내편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겠네요.
감사합니다.
😅
@@KaosChaos 과거에 적힌 수많은 1차사료들은 어떻게 보면 정말 많습니다. 뱃사람들의 허풍이나 지역의 영웅담처럼 개인의 감정이나 사상이 포함됬기에 그걸 분석해서 학자들이 결론을 내려 인용할것과 거를것을 결정하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부분은 학자들 마다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저 박사가 내린 결론에서 무엇이 토론되었고 무엇이 인용 되었는지 모르죠 그리고 왜 인용 못한건지 등 그런 내용을 유튜브에 올릴려면 수십시간이 될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임용한 박사가 내린13분짜리 결과의 영상만을 보고 있어요. 당신이 말하는 네임드들의 기록을 저분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우리는 모르는거죠. 그리고 상상과 분석은 다릅니다. 상상으로 역사를 쓰면 진짜 소설이죠. 하지만 저는 당신이 어떻게 이 박사가 상상만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상상하게 된 건지 궁금하군요.
안녕하세요 박사님. 박사님 영상을 챙겨보는 시청자입니다. 저번 인문채널휴에서 원균에 대해 분석하셨을 때도, 옹호론이니 뭐니 해서 힘든 일을 겪으신 것을 기억합니다. 결국 안타깝게 영상이 내려진것 같더군요. 남들의 시선이나 비난에 굴하지 마시고, 꿋꿋하게 패전에 대한 분석도 계속해주세요.비록 패전일지라도 놓친 부분을 짚어주시고 생각할 부분들과 교훈을 주시는 박사님의 영상을 항상 응원하고 감사히 보는 시청자들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건강 항상 조심하시고,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그런일이 있었군요. 나만 임용한의 역사평론을 역겹게 느낀게 아닌 모양이군요. 제대로 아셔야 하는게. 이 사람은 소신이 있어서 원균을 옹호한게 아니에요. 이 사람 영상은 별로 보지 않았던 나도 원균, 선조를 옹호하고 이순신을 평가절하는 하는걸 봤으니까요. 게다가 조선시대 노비제도도 옹호했죠.그가 이들을 옹호한 이유는 기존의 정론이나 상식은 오해이고 자기는 진실을 말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근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근거가 없어요. 원균에 대해 기존 사료의 팩트의 열거는 차치하고. 틈나는대로 술먹고 패악질 벌이고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고 방해하다가 이순신 장군이 승전할때 슬쩍 껴들어서 일본군 수급이나 수거해서 자기 공으로 올리는 놈인데. (이건 엄연한 팩트입니다). 임용한은 원균에 대해 오해하는거래요. 근데 무슨 주장을 하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근거가 없어. 오해라는데. 그냥 말도 안되는 논리로 오해라는데 이해가 갑니까? 게다가 조선수군이 원래 강해서 이순신이 이긴거라는 헛소리도 하구요. 아니 조선수군이 해전에 약한 왜군에 비해 우수한 면이 있긴 하지만. 다 떠나서 그럼 왜 이순신 모함해서 내치고 지가 제독된 원균은 왜 대패한건가요? 그것도 말도 안되는 논리로 원균을 옹호하더군요.
아니 1차 사료가 원균을 다 쓰레기로 증언하고 있는데. 옹호하고 싶으면 근거가 있어야지. 왕조실록.난중일기.징비록 전부 작당해서 원균을 모함했다 쳐도. 그럼 원균이 뭔 승전을 했다면 몰라. 결과론적으로 잘한게 하나도 없는 인간을 근거도 없이 왜 옹호하는지.
신립에 대한것은 내가 밑에 댓글로 써놨으니 보실 분은 보시고요. 자국국민이자 민족을 6,70퍼센트를 노예로 만든 조선의 노예제도도 오해라느니 뻘소리를 하는게 임용한입니다. 이 사람이 소신이 있어서 그런말 하는게 아니에요. 내가 볼땐 이 사람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냥 나 뜨고 싶으니까 나 좀 알아줘.라는 역겨운 허영심을 기존 정론과 상식을 공격해서 어필하고 싶은 것 뿐인 겁니다. 대중이 다 바보라서 그 근저에 깔린 심리를 간파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이런 찬양성 댓글 쓰는 사람들만 보고 계속 같은 패턴으로 주장하는 건지.
맞아요 저도 참 그런 정보들 너무 좋아요
원균을 위한 변명이라는 동영상은 다른채널 SERIPro에 있습니다
원균만큼은 옹호 가치 1도 없음
@@그리운하늘-i1t 그게 옹호로 들리디?
조령에서 막으면 되었다면 6.25 때 국군도 조령에서 막았어야죠
그런데 낙동강 방어선을 했던 이유는 조령만 길이 아니기 때문에 방어선을 만들기 힘들다고 봐야 함
세종이 4군 육진을 하기전에 북방 한개선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을 했었는데 산으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죠
그런데 세종은 강으로 하자고 해서 지금의 영토가 정착이 됨
신립이 한강 방어선을 두고 싸웠으면 더 좋았을거라 생각할 수는 있지만 조령은 아닌것 같네요
한계선
정말 공감합니다ㅠㅠㅠㅠ 니 편이냐 내 편이냐, 옹호냐 비판이냐로 편가르기하는 거 정말 싫습니다... '적이냐 아군이냐 소속을 밝혀라!' 이런 태도 정말... 하. .
강의잘들었습니다 교수님.. 신립은 정말 죽을거알고 간거였군요
항상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의 분석입니다. 오늘도 감동 받고 갑니다.
오 20사단
결전~ 20사단~^^
무조건 알려져야할 임진왜란 분석입니다.
사람들은 역사를 너무 결과론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당시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하지 못하고있어요.
읍성도 말이 성일뿐이지 외국같이 해자랑 첨탑형식이 아닌게 대부분이였고 냉병기 특성상 병사들의 숙련도나 전투경험이 매우 중요한데 그런것도 부족했구요.
보급도 딸리고 병력증원도 언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북방에서 소규모 유목 기병을 상대하던 신립한테는 조직화된 군대는 중과 부적 같았죠.
신립딴에는 기병대로 왜군의 선봉을 제압하고 후방에 전선이 형성될때까지 지연전을 하려는 의도로도 볼수있죠.
신립 한사람의 문제라기 보단 조선의 군사 시스템 문제가 더 컸다고 봅니다.
심지어 조령에 방어시설도 없는 상태였는데 방어시설 있다는걸 전제로 분석하는 인간들 많음;;
원래 역덕들 비위 맞추기 힘듬... 대개 사회성이 또 없는 애들이라서 본질을 못읽고 지엽적인거에 메여서 조금만 아는게 나오면 아는척 하고 싶어 몸이 달아오르고 인터넷이라고 익명성 믿고 안심하고 악플닮... 인터넷도 토익처럼 댓글 자격제 같은 시험 개발해서 임용한 교수님이 관련 문제 논술이나 논리력 시험 개발해주심 좋을거 같음.
교수님 덕분에 시야가 넗어진듯 합니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덕분에 정말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웁니다~! 유튜브에서 이렇게 볼수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말씀에 동감하네요....
평을 해서 뭘 하겠습니까?
분석해서 두번은 안당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림실력이..나날이 발전하고 좋아지시네요~^^
직접 그리신 그림보는 재미도 쏠쏠해요~♡
스토리텔러~♡임교수님~~~~♡
항상 응원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왜군에게 형편없이 깨졌지만 신립이라는 장수가 탄금대에서 배수진 쳤던 사람이라는 오해를 벗는것만으로도 고마워 할거 같습니다.
문명의 개방성은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고
개인에게는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죠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이분해버리는 분들에도
잔잔한 어조로 읊조리시는 것이 이 시대의 지식인이다 싶네요.
전쟁이나 외교를 평할 때 가장 답답한게 '왜 완벽하지 못했냐' 하는 비판인것 같아요. 상대가 허수아비도 아니고 보통만 한다면 50:50인거고 거기서 왔다갔다 하는건데..
패하면 무슨 죽을 죄를 지은게 되고 승리하면 왜 더 잘 싸울 수 있었는데 실수했냐고 비판하는게 그때나 지금이나 꼭 있는것같네요.
애초에 전쟁 초기에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의 싸움이었고, 그게 차차 차이가 좁혀지는 전쟁이었는데 패장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한것 같긴 합니다
군사 전멸시킨 패장인데 박한 평이 맞는거 아닌가요?
같은역사인데...바라보는 시각은 전부 달라서 힘든가봐요...객관적인 입장에서 말씀해주시니..듣는사람이 평가하겠죠^^
항상 감사합니다~^^
박사님 힘내세요. 요즘 정치가 어지러워서 사람들이 다른사람의 말을 듣는게 익숙하지가 않은것 같아요. 다른사람이 내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하면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듣지는 않고, 자기가 아는것만 말하면서 화내는 사람이 많은것 같아요. 인문학이 중요함을 또한번 느낍니다.
도통 어디서 이런저런 오해를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주입되어 굳어진 지식이었는데, 이 모든걸 깨트리는 내용 너무 좋아요. 자신이 알던게 틀리다는걸 인정하지 못하는 바보들은 구제불능이니 그냥 두고 가세요 ㅋㅋ
언제나 좋은 방송 감사 드립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실제 업무를 하면 보고 시 결과만 보면 임원님들이 일을 뭐 이따위로 했냐 이건 왜 안하냐 쿠사리 주거나 외부에서는 아주 쉽게 판단하는데 실제로는 수많은 내용 사건 히스토리가 있는게 대부분입니다. 어떤 면에선 변명같지만...
여러가지 역사사건도 비슷한거 같습니다.
나와있거나 증명되는 자료 증거는 한정적이고 그래서 박사님의 접근법이나 해설해주시는게 이시대에 맞는 거 같고 재미있는 거 같습니다.
언제나 양질의 컨텐츠 감사드립니다.
임교수님 영상은 대부분 다 보는 듯거 같아여 ㅎㅎㅎ영상 많이 올려주세요~
잘봤습니다. 신립의 종사관은 김여물인데 그가 좀 전투의 경위와 경과를 적어서 보고해야 하는데, 죽었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지 못합니다. 그러니 누구도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일본측 기록을 보면 대체로 삼면에서 포위 공격했던 것 같고 신립은 두번 기병돌격을 했지만, 돌파를 못합니다. 오히려 포위망 속에 갇혀 일본군이 조총 집중 사격을 받고 무너졌습니다. 수급이 3천이라고 하니 전사자가 3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령을 지킬 시간이 없었던 것은 맞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상주로 간 이일이 이미 3일 늦게 출발했거든요. 그 다음에 신립이 갔으니 촉박했던 거죠. 조령 부근을 정찰했지만,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일은 패전후 신립을 만나 아예 한강에서 방어하자는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충주에 너무 늦게 왔고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고 봅니다.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역사적 관점을 타파하시는 박사님! 앞으로도 이런 형식의 영상들을 더 만들어주십쇼!
늘 교수님 강의에서 많이 배웁니다.
무조건 비난 할게 아니라 그 시대 그 싱황을 감안해서 생각 하라는 말씀을 듣고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1. 《조선국왕이야기》 때부터 임용한 선생님의 오랜 팬인 일인입니다. 《조선국왕이야기1,2》 《전쟁과 역사》를 비롯한 선생님의 책은 상당수 읽어보았고, 선생님이 출연하시는 영상도 책만큼은 아니지만 챙겨보고 있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기존의 통설적인 개념이나 이해에 대해, 학자로서의 선생님 나름의 노력과 연구를 바탕으로 신선한 시각을 제시해 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신립에 관한 시리즈 영상도 제가 가지고 있던, 신립에 대한 통상의 이해를 여지없이 깨뜨려주셔서 참으로 놀랍고도 놀라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2. 비난과 비판을 구별하지 못한 많은 이들 때문에 마음 고생하실 임용한 선생님을 생각하니 참 속상하네요~ 얼마되지 않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시면 될 텐데,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여서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적지 않나 봅니다. 어쩌면 이게 대중매체가 갖고 있는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런 댓글을 다는 이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실 조선의 조정은 플랜 A-B 가 없었습니다
정예+오합지졸 군졸8000명 보내놓고 만약 지면 도망간다라는 플랜 뿐이였죠
그리고 조정입장에서는 패전은 졸장이 오롯이 가져가는게 자신들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했을꺼라 생각합니다
다른 학자들이나 어쭙잖은 유투브 어설픈꾼보다
확실히 내용이 좋습니다!
신립에 대한 많은 오해가 풀린것 같습니다.
1:24에 나온 그림 너무 멋있습니다!
항상 배울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예전에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7년전쟁을 주제로 했을때 임용한 박사님이 기병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적을 섬멸하는게 아니라 (물론 후퇴해 도망가는 적을 섬멸하기도 하지만...)적의 진영을 흐트러트리는 거라고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되새겨 보면 신립장군의 기병대가 제 역할을 했다하더라도 무너진 적진을 향해 진격해 난전을 펼칠수 있는 정예화된 보병이 당시 조선에 있었는가 하는것도 의문입니다.
솔직히 시대는 다르지만 역사책이나 삼국지에 이름나오는 수준이면 당대의 인재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하시던 명장급은 인류역사상 천재급인거 같구요 ㅎㅎ
박사님의 말씀을 듣고있자니 생각나는
말이 떠오릅니다 `실사구시`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실사구시의 역사!
내가 이래서 임용한 박사님을 좋아합니다
구독 좋아요 꾹! 앞으로도 기대 만땅요 ^^
모든 댓글러들을 어떻게 다 만족시키시겠습니까~? 진심은 결국 통할 것입니다. 박사님의 길로 성큼성큼 나아가시지요~! 영상 감사합니다. 박사님의 연구 덕분에 행복합니다.
오늘도 감사히 잘 봤습니다.
안 그래도 곽재우 관련 집필 중인데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신립의 사례를 보니 이슬람에게 연패를 해도 주력을 보존하고 방어선을 구축한 동로마 이라클리오스 황제가 대단하고 느껴집니다 신립이 명장이었으면 주력을 아끼고 철수했겠죠
그렇네요 다만 상대적으로 내어줄 수 있는 땅의 크기차이가 있고 이라클리오스황제는 상대를 잘 아는 것에 비해 신립은 초전인데다 생소한 적이고 마지막으로 왕의 사돈으로 모든 기대를 받고 있던 도원수라는 입장 상 그렇게 공간을 내주고 주력을 보존하는 전략을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하.....정말 마지막부분에서 공감이 너무 됍니다 ㅠㅠ 한국사람들 다그런건아니지만 대부분인 그럽니다 ....
재밌네요 이번영상도 잘 보고 갑니다~
박사님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영상 기대하겠습니다~
박사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안목이 넓어졌습니다.
일본군은 실전에 의하여 잘 정비된 정규 군대였고
신립 장군은 동원된 야비군이었죠.
야비군도 전투력은 있겠지만
전쟁 전에 조직력 강화를 위하여
제대로 된 훈련을 한번도 시키지 못했죠.
훈련이 안된 군대는 오합지졸이고요.
적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요.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죠.
적에 대한 정보
즉 훈련 상태와 공격방식만 알았어도 후방의 성을 수리하든지 해서 공성전을 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비군이 아닌 신교대
@@윤영조-f6d
그런가요? ㅋㅋㅋㅋ
@@좌빨박멸 마구잡이 징집이니
선조 본인도 500으로 고니시 10만을 상대했다라고 묘사할만큼 전투력 차이가 심했었던 것 같아요 ㅠ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찬찬히 알아보자" 라는것만으로도 편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많이 배웁니다. 우리가 토론을 잘못 배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관계조차 토론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식, 배틀 식의 토론이 익숙해서 이런 의견들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관계에 대한 분석과 그 것을 토대로 예측 할 때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왜 그런 의견을 가지는지 설명하면서 결과를 도출하고 더 나아가 교훈을 도출하는 것이 연구하고 토론하는 목적이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냥 제 뇌피셜로는 치킨 게임 하듯 토론에 임하다보니 의견이 다르면 목소리 커지고 비난하는 것으로 번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네요. 구체적인 설명 감사드리고 맘 상하시는 일이 점점 더 줄어들고 더 즐겁게 역사를 즐기는 시간되면 좋겠네요.
웅치 이치전투에 대해서 빨리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신립은 조령을 막지 못했는데 비슷한 상황이었던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은 웅치 이치를 어떻게 지켰는지 비결이 먼지 궁금하네요
@도와줘 조령과 웅치이치를 비교한거에요 탄금대가 아니라요 신립은 조령을 버렸는데 그들은 어째서 싸워서 이길수있었나 그게 궁금하다는거였습니다
하루빨리 토전사 맴버 다시 모이길 ㅜㅜ
아하하하, 난 뭔가 내 놓고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며 as 해 줄 마음 가득한 임용한 교수님 같은 사람이 좋더라.
한국은 역사를 선과 악으로 이분해서 보는 얼간이들이 너무 많음. 그리고 그런놈들이 온갖 도덕적 우월함으로 무장하고 큰소리치고 그게 또 먹히는 나라임
맞습니다. 당시 상황을 다 알지도 못하는데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도 힘들겠죠.
토크멘터리 전쟁사 때부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많은 배움 얻은 덕에 경찰학교에서 손자병법 독후감으로 최우수상 탔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많이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사님 마음 고생이 많으십니다
너무 개의치 마세요
세상 참좋습니다 비싼등록금내고 들을 양질의 컨탠츠를 언제어디서나 볼수있네요 항상응원합니다 교수님
박사님은 무조건적 옹호론자가 아니라 역사를 다각도로 바라보며 연구하고 분석하시는 진정한 역사학자이시고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몸서 보여주시는 훌륭한 지식인이십니디!!! 자칭 역사를 역사답게 가르친다고 자뻑하는 황ㅎㅍ처럼 결과론적 관점으로 그저 역사를 선과악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로 접근하는 작자랑은 차원이 다르신분입니다!!!
일단 좋은 댓글감사합니다
하지만 임박사님 유튜브영상을 본 저로선 도저히 안되서요 누구와누구를 비교하는건 임박사님이 바라는게 정말 아니실껍니다
말로써 이기진않겠습니다
@@이희진-g4d 비교하는것이 아니라 임박님이 연구하고 분석하는 분야가 많은 사람들에게 질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속상해서 그러는 겁니다!!! 박사님이야 말로 역사학사로서의 최대한 올바른 시선과 태도로 연구하고 분석하시는 분인데 그런분에 이야기는 거들떠도 안보고 그저 황ㅎㅍ이나 설ㅁㅅ 같은 선동꾼들 말에만 휘둘리는 대중들이 너무 한심해서 하는 말들입니다 유튜브 구독자수만 봐도 우리 임용한 박사님보다 저런 인간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영광하는 인간들 많다는게 한심스럽습니다!!!
@@잭팟-l3v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분이있어야 더발전되지요 지지합니다
@@이희진-g4d 역사란 옳고그름이나 선과악이 아닌 다각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여 분석하고 연구하여 이해하며 각자의 삶과 가치관에 접근하는 학문이지 서로 잘잘못을 따지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런 측면에서 임용한 박사님은 정말 존중받아 마땅한 역사학자이자 진정한 지식인이라 저 스스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잭팟-l3v 님이 그분 욕하시는 방식도 이분법적인건 아시죠??? 그러지마세요
늘 감사합니다
5:35 에 사용되는 폭발 효과음이 깨지는거 같아요. 계속 사용되는 효과음같아서 깨끗한 효과음으로 교체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이렇게 A/S 를 많이 받은 사건이 있나 싶네요 ㅋㅋ
그만큼 역사의 큰 미스테리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소재인 것 같습니다.
근데도 볼때마다 늘 새롭고 짜릿해.
새롭게 또 알아갑니다 ! 감사합니다 박사님!
항상 이런 영상은 추천입니다!!!
분석을 죽 듣다보니 신립장군도 참 안타까운 상황이었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이길수 조차 없는 중과부적의 전력으로 머리를 싸매야 했던 장수의 심정도 이해해야한다
또 배우고 갑니다
"장수는 적을 두려워 해서도 안 되지만, 적을 얕잡아 봐서도 안 된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다!" 신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군을 얕잡아 봤고, 특히 조총을 무시했어. 특히 일본군과 먼저 패전을 하고 후퇴 해 온 이일이 일본군의 위력과 조총의 위력을 이야기 해 줬는데도 무시하고 전투를 벌인 천하에 무능력한 장수가 신립임.
보통 주장이라는 걸 할 때 웃긴점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량의 끝부분에 집중하더군요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런것에만 집중해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이미지로 사람들 선동하는 게 가능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정은 생략하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것에 일방적으로 집착하죠.
그리고 토론 할때도 사실의 검증보다 심지어 비전문가라도 자신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 그런것 수비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습니다.
그냥 인간의 본성자체가 숙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순수한 논의를 할 수 없는 구조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생각하길 싫어하거든요. '뇌' 가 게으르고자 하는 것. 이게 바로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다인-g3m 그게 과연 문제일까요? 인간의 뇌가 그런 식으로 발달했다면 그것이 인간의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그것은 문제되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구요.
남의 말에 반박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한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글을 못읽어서 난독증 증상을 보이고 말 뜻을 못 알아먹는 사람은 댓글을 달 자격이 없습니다. 님처럼 난독증 환자와는 말도 섞기 싫으니 제 댓글을 다시 읽어보고서 말 뜻을 똑바로 파악하기 바랍니다.
최고입니다
일단은 뭐든지 양측 입장 들어보고 뭐라할게 아니라 판단은 언제나 자기 몫이지
감사합니다
한국사회의 문제점은 문제가 생겼을때 책임자만 찾음
정작 문제해결의 핵심은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분석하고 원인을 없에는 과정이 필요함
회사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문제보다 책임자 처벌만 생각하니 다음에 문제가 반복적으로 생김
박사님 참 좋아요
부정적인사람말신경쓰지마세요 박사님 덕분에공부잘햇읍니다
박사님 인트로 표정이 넘 좋아요ㅋㅋ
아이고... 박사님 참 사람들 어떻게든 끌어올리시느라 고생하시네요 ㅋㅋㅋ
오히려 신립이 조령을 안지켜서 졌다, 배수진 쳤다가 졌다, 기병돌격해서 졌다. 이건 최소한 어느정도의 작전의 자율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고 차라리 신립을 높게 보는 것일수 있죠.
말씀하신 것처럼 현실에서는 적의 술수에 완전 놀아나서 이리 우왕 저리 좌왕 하다 포위당해 진 것이 더 처참하고 바보같은 패배다라는 것에 십분 동의합니다.
거기에 더해 다른 범장들이라고 해도 그 구성에 그 병력의 훈련도와 실전수준으로는 거의 다 비슷했었을 것 같고요
너무나도 빠르게 편하는 전장의 상황에서 계속 한박자 늦은 판단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만든거 같내요
박사님 얼마나 역덕들한테 당했으면ㅠㅠ 저도 일본 역덕이라 초반에는 박사님 영상에 이러쿵 저러쿵 리플 달았지만 사카모토 료마 영상 이후 느꼈죠…. 전문가는 다르다라는 걸
최고의 분석
임용한박사님께서 한국전 장진호전투 백마고지등 한국전쟁 시리즈좀 부탁드립니다ㆍ
사령관이 되기 전, 스키피오는 군 간부로 재직하며 참 많은 패전을 경험했습니다.
스키피오가 패전을 경험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집니다.
'누구 때문에 졌을까'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무엇 때문에 졌을까'라고 생각했을까요.
'이 차이가 자마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은 것이 아닐까'라고 말씀드려봅니다.
오늘도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
이와 비슷한게 625 개전 초기죠. 채병덕이 전략 오판으로 국군 7할을 날려 버렸지만 그런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김홍일 장군은 지연전으로 진격을 천천히 늦추게 했죠!! 만약 신립이 충주에서 지연전을 펼치며 천천히 퇴각 했고 용인에서 집결하여 한강 방어전을 펼쳤으면 어땟을까? 개인 생각입니다 ㅎㅎ
근데..그거랑은 또 다른게 임진왜란때의 왜군은 200년 동안의 내전으로 단련된 정예군이라고 볼수 있어서..태어날때부터 전쟁을 겪은 병사들 vs 200년 동안 평화에 찌든 농민군들의 대결이라 무리라고 봅니다;; 거기다 지휘관도 수준이 달랐죠
추가로, 대립군이니 군역의 요역화니 하면서 군대가 군대가 아니게 된 조선의 군대..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정상적인 군대와 전쟁을 겪어본 군대의 싸움으로도 불리한데 이런 상황까지 합쳐지면 그냥 절대 이길 수 없다 정도 수준까지 가겠죠
@@김동욱-i5b 음 대신 우리국군은 625당시 실전 경험을 가진 병력고 거의 없었고 실전으로 대군을 이끌어본 장군은 김홍일 장군 단 명 뿐이 었고 무기도 부실하고 더군다나 전차 마져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북한은 전차도 있고, 일본군과 실전 경험이 있는 팔로군 출신 조선인만 5만과 규모도 그 당시 국군의 2배 규모 였고 지연전을 잘펼친 덕분에 맥아더가 직접 일본에서 현재 상황도 파악하고 유엔군 올때까지 시간 충분히 시간까지 벌어 줬습니다. 이전도면 임란초기나 625초기나 별다를바 없지 않나요??
@@안녕-u9k2v
6.25와 비고도 안될 정도로 심했죠.
강은 늘 우회로가 있고요.
훈련이 안된 조선군들은
소수의 왜군으로도 와해가 될 정도였어요.
그때 조선은 평화의 시대가 오래되었고 외부 보단 내부 반란이 더 큰 위협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을 뭉쳐두지 않고 왜구대비로 해안선 따라 넓게 펼쳐둔 상태에서 전시에 정해진 곳에 모인후 중앙서 내려온 장군이 지휘하는 방식이었죠 그에 따라 중앙의 장군은 그지역 지리도 안익숙하고 수발이 될 부사관들 병사들도 처음 대면 하는 겁니다. 그것도 제대로 모였을경우고 너무 급격히 무너져서 병사들이 제대로 집결 하기도 전에 경상도가 떨어졌죠 즉 대비할 겨를도 거의 없었단 말이죠
충주로 내려가려고 모인 병사들을 보니 지필묵을 가져온 놈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죠. 신립은 그 꼴을 보고 아마도 이 전투에서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역사를 선악으로 보면 참 간단해보이지요. 하지만 그만큼 보는 시야가 좁아집니다. 선과 악이 맞부딪치는 경우보다 선과 선이, 악과 악이 부딪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세상사지요. 오늘 영상을 보고 신립이 그렇게까지 무능한 장군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에는 결과론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부분으로 정말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한 장군도 맞다,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네요.
차라리 시원하게 후퇴해서 전력보전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수가 없었겠죠?
오늘 임용한 박사님의 답답한 심경이 느껴졌습니다.
토론, 논쟁은 공부하고, 들어보고, 알아보는 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한국사회에서는 그걸 훈련받을 기회가 없다고 봅니다.
타인에 대한 비난과 찬양만 아는 사회, 니편 내편 하며 싸우는 분열, 패거리의식에 물든 사회에서 그걸 아는 게 대단한거죠.
다른 분이 원균 영상 내려간 걸 안타까워하는 글을 쓰셨는데 저희 같은 범인에게는 천재의 위대함보다는 범용함의 함정, 흔한 실수를 잘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즉 패전 사례는 우리들의 훌륭한 거울이 될 것입니다.
혹시 압니까? 우리들 구독자 중에서 박사님의 가르침을 잘 공부한 사람이 인간의 한계를 넘을지도요.
앞으로 난세의 어둠이 깔린다면 박사님의 오늘 가르침이 우리들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의심치 않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사님 !!! 안누룰수가 없는 썸네일 입니다 ㅋㅋ
바보들은 결과만보고 사람을 욕하고 박사는 왜 그럴수 밖에 없었을까를 고민한다
역사에 대한 평가가 다르면 처벌하는 법을 만드는 나라에요
무지한 사람들 때문에 고생이십니다.
근데 어쩌죠? 그런 사람들은 이 영상 백퍼 안 봅니다! 그저 욕하고 싶어서 시비를 거는 것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문경세재 직접가보니 애들데려가서 위에서 돌만 굴려도 며칠은 버티겠던데...길도 닦고 도로가 놓인 지금도 한눈에 봐도 여길 도보로 넘으려면 토나오겠다.생각들던데 조선시대땐 얼마나 험지였을까?아무리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생각하면서 신립을 이해해보려해도 조령한번 가보면 "아니 여길 왜 버려."라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수 없을것이다.
당시 성벽이 없었어요.
저는 오히려 사서의 기록을 토대로 한 분석을 더 좋아합니다. 자세한 기록이 없더라도 남아있는 사료를 가지고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과정과 서사를 재구성 하는 게 더 재밌더라고요. 국사책이나 드라마는 너무 국뽕이 심해서 탄금대 전투라 하면 정말로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전멸당했다 라고만 알고있었지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저도 처음 알았네요.
새재의 지리는 제가 잘압니다.
무조건 새재에서 싸워ㅛ어야합니다.
이 나라에서 역사는 아직 역사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적 분석에 대해 옹호한다 폄하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죠
용인전투도 다뤄주세요
용한이 아직도 정신못차렸네...
모든 영상을 다 본 뒤 내린 결론은, 신립이라는 사람은 물을 앞에 두고 진을 쳤음에도 적에 의해서 자신의 진이 자동으로 배수진이 되어 버렸으니, 어찌보면 일부러 배수진을 친 경우보다도 훨씬 무능한 장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조령만 지키면 적이 뒤로돌아 포위할까봐 단월에 진을 쳤다면, 단월에서도 뒤로 돌아 포위되고 말았으니 대비한 거라고 볼 수 없겠습니다. 8천 병력 중에서 살아돌아간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니 이것은 완전 포위되어 전멸하고 만 것입니다. 일단 포위됐으면 백중세로 싸웠을 리도 없습니다. 또한 적의 진격 속도는 조금도 늦추지 못했으니, 부산진성에서 첨절제사 정발 장군이 버틴 것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정발 장군의 병력이 600~800명이었고 기습적 초전이었음을 볼 때...) 아울러, 이후 임진강에서 대치할 때 왜군이 퇴각하는 척 하자 조선군이 추격하다가 강을 건넌 후 전멸하였는데 추격을 지시한 사람이 신립의 동생 신할입니다. 이때문에 추격을 반대하던 경험많은 장군 유극량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또 신립의 아들 신경진도 매우 무식하고 과격한 인물이었습니다.
추정이 아니라 진실 같습니다
흑백논리로써 평가하는 분위기와 자기 말에 반하는 글이나 내용이 있으면 욕들의 댓글들이 참 많습니다. 난해증 환자들과 자기 뇌피셜에 갇혀사는 네티즌들 참 많져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조선 역사를 무턱대고 낮추어 보고 비하하는 풍조가 있죠..
뭐 누구는 이게 일제시대때의 식민사관이다 어쩐다 하는 말도 있기도 하고요..
이런저런상황이 있었다고는하나
신립이라는 인간 그릇의 한계점이 명확합니다
전투전부터 조총조심하라고하니 쏘는대로
맞겠냐고 너스레를 떨었고 조언하는 부하장수패죽이는걸 서슴지않았다고합니다
저런인간이 총사령관으로 전투에 임했으니
결과는뻔하죠;;
제가 문경이 고향입니다.
누구였어도 조선의 군 수준으로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탄금대 전투 이전에 조선군이 야전에서 몇 천명 규모의 전투를 해본 경험이 없었을테니깐요
신립이 조령을 조사해봤더니 우회로가 있었더랍니다. 그래서 탄금대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는데 마침 논밭이고 왜군이 화망사격을 하여 전투가 힘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급조해간 병사들도 대부분 농민이라 기마 정예병들의 좌우에서 충분히 전투를 서포트 해주지 못했던 점이 큰 패인이라고 하네요
어쨌든 선조가 의주로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고 당신 왕의 존재의미가 크니 무의미한 전투라고 생각되지 않네요
잘 분석해서 또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게 의미가 있는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