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인조랑 선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청나라나 당시 일본이나 조선 입장에서는 천재지변이고 어느 왕이었어도 쳐발릴 게 당연했음. 그나마 선조는 전쟁이 없었다면 최소 평군 높게 보면 명군 성군도 가능했을지 모르는 인물인데 인조는 걍 어느 시대였던 간에 암군으로 남았을 인물.
원래 과거 전쟁 때는 병사들을 얼마나 탈영시키지 않게만 해도 명장의 소릴 들을만 했다고 하죠. 그게 무력, 통솔력, 카리스마, 인망 등 어느것이든 먹히는 것이 있어야 했지만 200년의 평화를 거친 조선의 내륙이 제대로 되어 있을리가 없죠. 물론 그 와중에도 병사들을 제대로 훈련 시킨 이순신 장군은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15만 대군을 바다건너 원정 보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대체 ㅎㄷㄷ 얼마나 위대한 장군인거야? 생각해보면 병력수송부터 병참까지 정말 지금 하라고 해도 힘든 일임. 현대의 한국이 15만명을 해외에 파병을 보낼 수 있는가 그리고 총 7년간 전쟁을 수행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정말 힘든 일임. 아프간 전쟁을 보면 2016년 이전까지는 연평균 1만명의 미군이 주둔했고 이후에는 5500명정도가 주둔했는대 20년간 사용된 비용이 1100조원임. 15만명을 파병한다? 그리고 이후 정유재란으로 추가인원까지 파견해 총 23만명을 파견하는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
@@AF-qk8ty 사실 도요토미도 일본 전군을 컨트롤하지는 못 했음. 일본 관료 시스템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도요토미가 관백에 오른 그 시점까지도 이에야스나 토시이에 같이 영향력이 엄청 큰 인물들은 도요토미 휘하라고 보기도 힘들고 아예 이에야스는 도요토미가 함부로 건드릴수도 없는 인물이었죠. 사실 조선 침공에 참전해서 열심히 싸운 인물들을 보면 거진 일본내에서 입지가 떨어지는 장수나 신생 장수들이 많았고, 이러한 군들의 대규모 운용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조선-명을 치면서 식읍, 전공에 대한 보장을 확실히 할 것을 도요토미가 단언했기 때문이죠. 어찌보면 그만큼 당시 일본의 군사력이 매우 강력했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만, 온전히 도요토미의 개인적인 능력으로 보기에는 힘들다고 봄. 물론 이미지상으로 와닿는 모습과 다르게 야전 지휘관으로도 정치적인 능력도 엄청나게 뛰어난 인물은 맞죠. 역사적인 관점을 제하고 보면.
@@AF-qk8ty 근데 사실 보급은 대부분 현지조달했음 그 현지에서 획득한 군량을 전선의 병력에 대주지 못하면서 공세종말점에 다다르고 결국 다시 밀려나게됨 본국에서 그 많은 병력을 먹일 식량을 죄다 가져오는건 불가능했기에 결국 초기 붕괴된 조선군이 미처 파기하지 못한 군량이나 점령지에 남은 조선인들에 전시징발을 해야했는데 영남지역은 전쟁내내 주전장인터라 농사지을 장정 대부분이 관군으로 동원되어 생산량조차 많지 못했고 초기부터 일본군에 의한 강압적 수탈에 시달린 농민들이 벌떼같이 들고일어나서 의병진에 합류함 정인홍이나 김면같은 경우 의병임에도 3~5천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모을수 있었음 실제 일본에 남은 기록들 보면 점령지에서 조선인들의 협조를 얻어 군량같은 물자를 확보하라는 지시가 엄청나게 많음(물론 현실은 약탈이나 강제징발이었을것임)
@@mayli5206 엄밀히 말하면 명나라조차 자력으로 보급하진 못함 7년간 명나라가 조선애 파병한 병력은 연인원 23만에 달하는데 연평균으로 나누면 연간 3만명, 전쟁기간 대부분이 휴전기였던걸 고려하면 실질적 전쟁기간동안 조선에 파병된 명군은 연평균 8-9만명정도였음 물론 농병일치제인 조선의 군제특성상 전쟁으로인한 병력동원으로 생산량과 전결이 급감하게되고 본국에서 오는 군량을 명군이 산동과 요동의 상인들을 통해 의주까지는 날라오지만 의주부터 전선까지의 운반은 조선측의 몫이었음 대규모의 명군에게 막대한 군량을 운송해줘야하는데다 개전첫해의 세수부족분을 메워야하니 첫해에 17만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한 조선은 이듬해부터 가용병력이 3만명 이하로 줄어들게됨 흔히 이여송의 동정군으로 대표되는 북병들의 기강이 엉망이라 약탈이 심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임 벽제관에서의 패전이 있긴 하지만 동정군 전체 전력을 볼때 이건 그다지 큰 피해가 아니었고 실제로는 겨울에 압록강을 건넌 기병중심의 동정군이 겨울을 나면서 12000필에 달하는 군마를 손실했기 때문에 더이상의 공세가 어려워졌던게 가장 큰 문제였음 조선은 은화가 통용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동정군 기병들이 군마가 먹을 건초를 구하는일은 상상이상으로 어려웠을것임(은화가 통용되었다한들 가장 큰 경지면적을 가진 영남이 쑥대밭이된 조선의 상황상...) 눈물을 흘리는 류성룡을 보고 민망해진 이여송이 휘하 제장들에게 "그대들은 지난번 영하에서는 군량이 부족한데도 힘써 싸워 공을 세워놓고 지금은 어찌 보급타령만 하고있는가"라고 화를 냈다는 기록도 단순한 핑계가 아닐 확률이 매우높음 물론 조선측도 지상전의 대부분을 수행해주는 명군의 전투력은 사실상 생명줄이었기에 명군의 보급로 확보에 필사적이었고 적지에서의 보급이라는 상황에 처한 일본군보다는 그래도 명군이 사정이 나았던걸로 보임 다만 압도적 물량을 자랑하던 명나라의 국력과 물자보급에 총력을 다한 조선의 노력덕택에 전쟁은 이길수 있었고 임란에서 양국의 보급상황만 봐도 알수 있듯이 전쟁에서의 보급, 특히 원정군 입장에서의 보급은 정말 보통문제가 아님
50대 후반 아재입니다. 임용한 교수님의 강의가 가슴에 와 닿을 수 밖에 없는것이...제가 20대 이전에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매우 감정적이고 지엽적인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서 우리 역사를 넓게 볼 수있고 다시 곱씹어 볼수있는 능력을 스스로 배양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번 편에서도 다시금 가슴이 절절히 끓어오르는 것은....선조가 긴급하게 도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날수밖에 없을 정도로 국가적인 시스템이 빈약했는데 도대체 우리의 성웅 이순신 장군께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첫 해전부터 왜구를 격파해 주셨으니.....정말 제가 부산에 살지만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라도 충남 아산의 현충사를 방문 하여 이순신 장군님 영정에 고개를 조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부산진 첨사 정발(절충장군, 정3품)에게 병사 600~800명을 주어 부산진을 지키게 하고, 동래부사 송상현을 임명(충신이기는 했으나 군략에 약했음)하여 그나마 끝까지 싸우게 한 것은 선조입니다. 선조는 유극량을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였는데, 출신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신하들이 탄핵하여 유극량을 육상의 자리를 주어 옮기게 하고 그 자리에 이순신을 임명한 것도 선조입니다. 이렇게 괜찮은 장수들을 선택해 내려보냈으므로 어리석은 임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왜란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고 소수의 장수들과 병력만 내려보냈던 점, 그리고 신립을 임명하여 충주 전투에서 병력이 전멸한 점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보는내내 한숨과 한탄의 연속입니다 처음엔 쾌차하지 못한 박사님의 눈 때문이구요 두번째는 마비될 지경까지 온 당시의 한양 도성과 국가의 시스템...율곡이이의 예언(설화)이 현실화되어 강변에서 목재를 태워 불빛을 밝혀 임진강을 건넛다는 말에 순간 눈물이 울컥 했습니다 그리고 병자호란때도 같은 국난의 복습!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임진왜란때나 병자호란때나 일제시대때나 해방후 지금까지도! 우리는 역사를 잊는게 아닌 잊으려 하는것같아 안타깝습니다 ㅡ,,ㅡ
임진왜란에 대해서 한중일 전부 관통하는 생각은 서로를 아무도 몰랐다는 것 한국은 일본이 이렇게 총력전에 가까운 대병력으로 올지 몰랐고 일본은 한국이 자기들과 비슷한 정부로 생각하고 쉽게 전쟁을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한 것 중국은? 만력제가 전쟁 지원하라고 말 한 것
나치 독일이 처들어 오니, 프랑스 지도부도 영국으로 다 튀었죠. 정치꾼들이야 그렇다 치고, 군부 장성들도 다 튀었고, 그중 유명한게 드골 장군이죠. 그러다 미군 꽁무니 따라서 돌아온 주재에, 자기가 개선장군이나 된양 퍼레이드 했고, 프랑스 국민들은 그걸 또 열광적으로 환영했죠.
인조의 상대가 기동전의 대가인 북방기마민족인 특성도 좀 있죠. 반면에 선조는 경보병인 일본애들이라 기동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 차를 두고도 토실 수 있던 거죠 그래도 인조 때가 더 병신인 게 북방기마민족의 레이드 타이밍이 겨울인 거 모르는 놈이 한 놈도 없었다는 거죠. 그거만 알아도 미적분을 푼다고 ㅈㄹ은 안했을 텐데...
@@이름-z4q1u 행복회로입니다. 명은 국력이 쇠티기에 잇고 청은 전성기를 향해 가는 국가임 당시 청의 목표는 명나라를 치는 거라서 조선은 빠르게 항복시키는 게 목적이었기 떄문에 압록간 건너서 며칠만에 한양까지 왔음. 왕도 도망갈 시간이 부족해서 강화도로 못갔고요 원래 조선은 북방 민족이 처들어오면 강화도라 가서 버티는 게 전략임. 왕이 강화도에 갈 시간조차 주지 않은 거임. 그만큼 청나라 군대가 속도전에 능했다는 거고 조선의 군대보다 월등히 뛰어낫다는 거임
인지심리학 개론서에 생각의 본질은 경우의수를 줄이는데 있다고 합니다. 방향성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진게 인간 사고 시스템이죠. 국가단위로가면 이게 국가시스템인데 정말 엉망이었나보네요. 개개인마다 어떻게 행동해야될지 경우의 수 넘쳐나 혼란스러웠나봅니다. 우리나라 국가 시스템이 사회통합과 정치에 있어서 정말 약하니 전쟁이라도 나면 걱정입니다. 앞으로 금모으기나 2002년 월드컴 같은 단합된 모습이 다시 재현될 것 같지가 않아요.
피난을 갔니 안 갔니 이것보다 국가의 위기상황에 대한 이른바 '작계' 가 부실했거나 혹은 있었다고 해도 현실에서는 유명무실했다는게 진짜 문제인 것 같네요. 대체 왜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토록 시스템이 부실했던 걸까요..? 아마 이런 현실을 보면서 '유교만 중시하고 다른 학문은 죄다 천대하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는 논의가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실했던게 아님 200년간 육군작계는 압록강 두만강 넘어오는 오랑캐들 때려잡는 비정규전 특화로 굳어졌고 확실히 오랑캐들 때려잡는건 잘함. 문제는 갑자기 왜군이 이십만 끌고 상륙해서 정규전 걸어버려서 대응이 잘 안된거임. 거기다 육군주력은 북쪽에 몰려있는데 남쪽에서 상륙해버렸고 경상우수사는 하필이면 원균임. 현대로 치면 탈레반들하고 200년간 아프간 산골에서 소탕전 하던 군대가 갑자기 소련 기갑웨이브랑 맞딱드린거임. 탈레반 잡는다고 산골 뛰어다니던 경보병들이 전차수만대가 밀고내려오면 갑자기 어떻게 대응하겠음. 준비는 했지만 준비한 내용이 문제였던거지
교수님의 풍부하면서도 균형잡힌 시선에 늘 감사하는 1인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거짓말하고 혼자 도망갔다는 식으로 단정지어 표현하셨는데, 제가 알기론 논란이 있고 연구가 더 필요한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향력이 큰 교수님이신만큼 정제된 표현이 아쉽습니다.
치세에 성군임은 분명함. 그리고 200년간 평화를 지속하던 국가가... 수십년간의 내전 끝에 통일한 국가의 신식무기로 무장한 강력한 군대를 상대로 저렇게 선전한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함. 이순신 장군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이순신 장군을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진 시킨 것도 선조이고. 선조가 잘못한 건 빠르게 난을 극복하기 위해 너무 무리한 수를 뒀다는 거고 거기에서 성웅이라 불리우는 이순신 장군에 가혹한 행동을 한 거라는 거임. 어릴 때 머 모를 때나 선조 욕했지.. 지금은 선조는 욕하지 않음.
결론적으로 도망을 간 것이 백성을 버린 거고 비겁한거고 뭐 이래서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나라를 시스템과 규율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방비의 허접한 상태로 만들어놓은 거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는 말씀이네요 말씀 잘 이해되고 공감합니다. 애초에 그렇게 잘못해놓고 일본이 쳐들어 온 상태에서 허접하게 용맹 부린답시고 폼 잡다가 포로로 잡히기까지하면 더더욱 절망적이었겠네요 그나마 최후의 잘못까진 안했다고 해야 하나 에효ㅠㅠ
이 나라의 묘하고도 비극적인 반복은 관군이 초전에 외적의 침입을 제대로 방어한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 항상 초반에 관군은 외적에게 박살나고 백성들이 나서서 싸우다가 물리치거나 지거나... 전쟁지도부의 leadership이 많은 경우 믿을 수 없을 만큼 후졌다는 것.... 선조, 인조, 이승만, 채병덕, 유재흥 등등... 이 순신은 참으로 귀한 예외이다....
율곡이 알고 있었데. ㅋㅋㅋ 국뽕도 좀 적당히 하셔. 십만명의 병사를 양성? 재정확보는 어떻게 할 건데? 조선의 군사 체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방안이 율곡에게 있었나? 지진이 일어난다고 얘기하는 학자는 항상 있어. 근데 지진이 안 일어나면 그 학자는 미친놈 취급받고 막상 일어나면 거봐라 그 사람말을 들었어야 했다 하는 결과론적인 태도가 옳다고 보니?
런카이사르, 런이에야스, 런나폴레옹, 런워싱턴, 런맥아더. 이 사람들이 런했다고 욕을 먹니? 손자병법 36계에도 있는 전략적 후퇴 자체가 욕먹을 게 전혀 아닌데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이 런하는 건 비겁하다는 식으로 특정인을 프레임을 씌우고 생각하길 멈추지.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르지만 딱 연의의 박망파 하후돈 같은 용기만 있는 지휘자가 어떤 꼴을 당했지? 아무런 대안도 없이 후퇴했다고 욕을 하는 게 말이 돼? 당신은 조폭 앞에서 비겁하다고 도망안가? 좀 비난할 걸 비난해. 런한 걸 비난할 게 아니라 런할 상황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준비를 못하고 위시풀씽킹을 한 게 문제 아니니? 그리고 몇 백년동안 국가단위의 전쟁이 없었던 상황에서 전쟁 준비를 한다고 국가 재정을 써봐라. 대신을 어떻게 나올 것 같니? 그 재정으로 굶주리는 백성을 돌봐야 한다고 할텐데 왕이 그 주장을 물리칠 마땅한 명분이 있어? 결과론적으로 마녀사냥 좀 하지 말고 그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이 문제였는지 차분히 살펴볼 생각은 안 하고 런선조 런승만. ㅉㅉㅉ 런승만이 한강철교 폭파시켜 사람들이 철교를 위태롭게 건너는 사진이 조작인 건 혹시 아니? ㅉㅉㅉ
도망이라도 잘친 놈 vs 도망도 못친 놈
선조가 아무래도 인조보다는 수습하는게 그래도
났죠
솔직히 인조랑 선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청나라나 당시 일본이나 조선 입장에서는 천재지변이고 어느 왕이었어도 쳐발릴 게 당연했음. 그나마 선조는 전쟁이 없었다면 최소 평군 높게 보면 명군 성군도 가능했을지 모르는 인물인데 인조는 걍 어느 시대였던 간에 암군으로 남았을 인물.
원래 과거 전쟁 때는 병사들을 얼마나 탈영시키지 않게만 해도 명장의 소릴 들을만 했다고 하죠. 그게 무력, 통솔력, 카리스마, 인망 등 어느것이든 먹히는 것이 있어야 했지만 200년의 평화를 거친 조선의 내륙이 제대로 되어 있을리가 없죠. 물론 그 와중에도 병사들을 제대로 훈련 시킨 이순신 장군은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15만 대군을 바다건너 원정 보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대체 ㅎㄷㄷ 얼마나 위대한 장군인거야?
생각해보면 병력수송부터 병참까지 정말 지금 하라고 해도 힘든 일임. 현대의 한국이 15만명을 해외에 파병을 보낼 수 있는가 그리고 총 7년간 전쟁을 수행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정말 힘든 일임.
아프간 전쟁을 보면 2016년 이전까지는 연평균 1만명의 미군이 주둔했고 이후에는 5500명정도가 주둔했는대 20년간 사용된 비용이 1100조원임. 15만명을 파병한다? 그리고 이후 정유재란으로 추가인원까지 파견해 총 23만명을 파견하는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
@@AF-qk8ty 사실 도요토미도 일본 전군을 컨트롤하지는 못 했음. 일본 관료 시스템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도요토미가 관백에 오른 그 시점까지도 이에야스나 토시이에 같이 영향력이 엄청 큰 인물들은 도요토미 휘하라고 보기도 힘들고 아예 이에야스는 도요토미가 함부로 건드릴수도 없는 인물이었죠. 사실 조선 침공에 참전해서 열심히 싸운 인물들을 보면 거진 일본내에서 입지가 떨어지는 장수나 신생 장수들이 많았고, 이러한 군들의 대규모 운용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조선-명을 치면서 식읍, 전공에 대한 보장을 확실히 할 것을 도요토미가 단언했기 때문이죠.
어찌보면 그만큼 당시 일본의 군사력이 매우 강력했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만, 온전히 도요토미의 개인적인 능력으로 보기에는 힘들다고 봄. 물론 이미지상으로 와닿는 모습과 다르게 야전 지휘관으로도 정치적인 능력도 엄청나게 뛰어난 인물은 맞죠. 역사적인 관점을 제하고 보면.
@@AF-qk8ty 근데 사실 보급은 대부분 현지조달했음
그 현지에서 획득한 군량을 전선의 병력에 대주지 못하면서 공세종말점에 다다르고 결국 다시 밀려나게됨
본국에서 그 많은 병력을 먹일 식량을 죄다 가져오는건 불가능했기에 결국 초기 붕괴된 조선군이 미처 파기하지 못한 군량이나 점령지에 남은 조선인들에 전시징발을 해야했는데 영남지역은 전쟁내내 주전장인터라 농사지을 장정 대부분이 관군으로 동원되어 생산량조차 많지 못했고 초기부터 일본군에 의한 강압적 수탈에 시달린 농민들이 벌떼같이 들고일어나서 의병진에 합류함
정인홍이나 김면같은 경우 의병임에도 3~5천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모을수 있었음
실제 일본에 남은 기록들 보면 점령지에서 조선인들의 협조를 얻어 군량같은 물자를 확보하라는 지시가 엄청나게 많음(물론 현실은 약탈이나 강제징발이었을것임)
@@roaringlion9083 그정도 보급을 할려면 명나라정도 되야 가능함 ㅋㅋ 만력제님 그립습니다. 트루 중국인 만력제
@@mayli5206 엄밀히 말하면 명나라조차 자력으로 보급하진 못함
7년간 명나라가 조선애 파병한 병력은 연인원 23만에 달하는데 연평균으로 나누면 연간 3만명, 전쟁기간 대부분이 휴전기였던걸 고려하면 실질적 전쟁기간동안 조선에 파병된 명군은 연평균 8-9만명정도였음
물론 농병일치제인 조선의 군제특성상 전쟁으로인한 병력동원으로 생산량과 전결이 급감하게되고 본국에서 오는 군량을 명군이 산동과 요동의 상인들을 통해 의주까지는 날라오지만 의주부터 전선까지의 운반은 조선측의 몫이었음
대규모의 명군에게 막대한 군량을 운송해줘야하는데다 개전첫해의 세수부족분을 메워야하니 첫해에 17만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한 조선은 이듬해부터 가용병력이 3만명 이하로 줄어들게됨
흔히 이여송의 동정군으로 대표되는 북병들의 기강이 엉망이라 약탈이 심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임
벽제관에서의 패전이 있긴 하지만 동정군 전체 전력을 볼때 이건 그다지 큰 피해가 아니었고 실제로는 겨울에 압록강을 건넌 기병중심의 동정군이 겨울을 나면서 12000필에 달하는 군마를 손실했기 때문에 더이상의 공세가 어려워졌던게 가장 큰 문제였음
조선은 은화가 통용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동정군 기병들이 군마가 먹을 건초를 구하는일은 상상이상으로 어려웠을것임(은화가 통용되었다한들 가장 큰 경지면적을 가진 영남이 쑥대밭이된 조선의 상황상...)
눈물을 흘리는 류성룡을 보고 민망해진 이여송이 휘하 제장들에게 "그대들은 지난번 영하에서는 군량이 부족한데도 힘써 싸워 공을 세워놓고 지금은 어찌 보급타령만 하고있는가"라고 화를 냈다는 기록도 단순한 핑계가 아닐 확률이 매우높음
물론 조선측도 지상전의 대부분을 수행해주는 명군의 전투력은 사실상 생명줄이었기에 명군의 보급로 확보에 필사적이었고 적지에서의 보급이라는 상황에 처한 일본군보다는 그래도 명군이 사정이 나았던걸로 보임
다만 압도적 물량을 자랑하던 명나라의 국력과 물자보급에 총력을 다한 조선의 노력덕택에 전쟁은 이길수 있었고 임란에서 양국의 보급상황만 봐도 알수 있듯이 전쟁에서의 보급, 특히 원정군 입장에서의 보급은 정말 보통문제가 아님
방송보다 건강이 먼저입니다. 건강하십쇼
아름답게 마음에 품겠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바쁘실텐데 임진왜란영상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임진왜란을 배경으로한 드라마를 보고
일본의 전국시대배경의 드라마를 보면 임진왜란의
시각 차이가 또 재밌더라구요
의병에게 고전한다거나 이순신 장군이 줘패고다니는게 언급되는 점도 신기합니다
50대 후반 아재입니다. 임용한 교수님의 강의가 가슴에 와 닿을 수 밖에 없는것이...제가 20대 이전에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매우 감정적이고 지엽적인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서 우리 역사를 넓게 볼 수있고 다시 곱씹어 볼수있는 능력을 스스로 배양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번 편에서도 다시금 가슴이 절절히 끓어오르는 것은....선조가 긴급하게 도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날수밖에 없을 정도로 국가적인 시스템이 빈약했는데 도대체 우리의 성웅 이순신 장군께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첫 해전부터 왜구를 격파해 주셨으니.....정말 제가 부산에 살지만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라도 충남 아산의 현충사를 방문
하여 이순신 장군님 영정에 고개를 조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부산진 첨사 정발(절충장군, 정3품)에게 병사 600~800명을 주어 부산진을 지키게 하고, 동래부사 송상현을 임명(충신이기는 했으나 군략에 약했음)하여 그나마 끝까지 싸우게 한 것은 선조입니다.
선조는 유극량을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였는데, 출신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신하들이 탄핵하여 유극량을 육상의 자리를 주어 옮기게 하고 그 자리에 이순신을 임명한 것도 선조입니다.
이렇게 괜찮은 장수들을 선택해 내려보냈으므로 어리석은 임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왜란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고 소수의 장수들과 병력만 내려보냈던 점, 그리고 신립을 임명하여 충주 전투에서 병력이 전멸한 점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동화책에서 보던 거랑 정말 딴판이네요... 물론 30년 전에 국사를 배웠지만 이런 팩트같은 고증을 들은 건 정말 처음입니다... 오늘부터 이전 영상을 다시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보는내내 한숨과 한탄의 연속입니다
처음엔 쾌차하지 못한 박사님의
눈 때문이구요 두번째는 마비될
지경까지 온 당시의 한양 도성과 국가의
시스템...율곡이이의 예언(설화)이
현실화되어 강변에서 목재를 태워
불빛을 밝혀 임진강을 건넛다는
말에 순간 눈물이 울컥 했습니다
그리고 병자호란때도 같은 국난의
복습!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임진왜란때나 병자호란때나
일제시대때나 해방후 지금까지도!
우리는 역사를 잊는게 아닌 잊으려
하는것같아 안타깝습니다 ㅡ,,ㅡ
전문가들이 좀 이런 의견을 피력해줘야 한다고 생각함. 어릴때부터 선조 피난간거를 비난하는게 당연하듯 배울때도 난 솔직히 이해가 안갔음. 왕이 도망안치고 거기서 죽으면 게임끝인데 당연히 피난후에 후일을 도모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무지성 비난만 하는기ㅣ 맞냐?
임진왜란에 대해서 한중일 전부 관통하는 생각은 서로를 아무도 몰랐다는 것
한국은 일본이 이렇게 총력전에 가까운 대병력으로 올지 몰랐고
일본은 한국이 자기들과 비슷한 정부로 생각하고 쉽게 전쟁을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한 것
중국은? 만력제가 전쟁 지원하라고 말 한 것
임용한박사님 건강하세요
건강하세요!!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군주가 위기시에 도성을 버리고 튀는건 우리나라의 유구한 전통이죠
다만 선조는 국경을 넘어 외국으로까지 튀려고 했으니 다른 경우와는 달리 비판을 받는 거겠구요
만국공통임
외국도 많이 도망가고 도망가는건 문제가 아니죠
왕이 잡히면 게임 끝나는데!선조는 명으로 망명하려는게 문제죠
@@김은민-t2y 명나라 아니면 미국으로 도망가리?
@@동글이저장소 미국은 너무 멀잖아요. 중립국 스위스 ok?
나치 독일이 처들어 오니, 프랑스 지도부도 영국으로 다 튀었죠.
정치꾼들이야 그렇다 치고, 군부 장성들도 다 튀었고, 그중 유명한게 드골 장군이죠.
그러다 미군 꽁무니 따라서 돌아온 주재에, 자기가 개선장군이나 된양 퍼레이드 했고,
프랑스 국민들은 그걸 또 열광적으로 환영했죠.
건강하시고 .. 유익해습니다.
솔직히 튀는건 옳은 판단이지 명나라로 튈려고 한게 문제였을뿐. 그리고 튀는것도 똑바로 못하면 능양군마냥 굶다가 항복함
ㄹㅇ
뇌절해서 국경넘으려고한게 문제지
빤스런 결정자체는 옳지.
선조 욕하는 놈들
빤스런 못해서 고니시한테 잡혀서 삼배구고두했으면 또 못튀었다고 욕할거면서
명의 입장에서도 자국의 무리한 원정으로 명의 국력이 쇠퇴한 결과를 봐도 후퇴하려던 게 잘못된 결정은 아니었음. 우리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건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됨.
박사님!! 건강이 최고예요~~
내가 같은 학교 학생이었으면 이분 수업은 청강으로라도 들으러갔을듯
이미 대강의실도 꽉 차서 청강도 불가할 듯. ㅎㅎㅎ
존경하는 교수님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너무 무리하시지 말고 건강하시길 바래요!
남다른 통찰력.. 박사님 존경합니다
말씀하신 부분 중에 정부신뢰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공감하는 바입니다
에고 눈 안 좋으신 거 오늘 처음 알았네요. 빠른 쾌차를 기원합니다.
도망도 능력이다. 손자 능양군은 도망조차 못쳐서 굴욕당함
언제나 생생한 내용 감사합니다
교수님 문화유산채널에 나오신거 봤습니다 교수님 스타일대로 참여를 많이 못하신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웟습니다ㅠㅠ
감사합니다.
어디까지나 선조라서 이 정도로 커버가 가능한거....인조는 이렇게까지 안될듯 ㅋㅋㅋ
안타깝네요 몸건강 지킵시다
준비 안된건 누구보다 자기들이 더 잘 알건데 괜히 미적거리다가 갇힌 인조놈보다야 빠른판단내리고 도망간 선조가 훨씬 낫다고 봅니다
인조도 굳이 변호하자면 정묘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자 자기 명운을 걸고 내려온 홍타이지의 결단력이 대단하긴 했습니다. 물론 역사는 그 결단력 한 끗 차이에 오고가는거긴 하니까요.
인조의 상대가 기동전의 대가인 북방기마민족인 특성도 좀 있죠. 반면에 선조는 경보병인 일본애들이라 기동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 차를 두고도 토실 수 있던 거죠
그래도 인조 때가 더 병신인 게 북방기마민족의 레이드 타이밍이 겨울인 거 모르는 놈이 한 놈도 없었다는 거죠. 그거만 알아도 미적분을 푼다고 ㅈㄹ은 안했을 텐데...
인조는 '이괄의 난'만 봐도 걍 답이 없는 인간임
다...다음편 빨리!!!
박사님 얼굴좀 다시 천천히 보시고 요구좀 ;;
개인적으로 다뤄보셨으면 하는 전쟁사가
고려vs여진 ㅎㅎ
토크맨터리전쟁사 가셔서 보세용~~
이마 찍는 엔딩보다는 나은거 같음
@방울토마토 청은 빤스런 했어도 한족 수군을 끌고 와서 강화도 상륙 작전을 할 애들이라 사실상 조선 반도에 도망갈 곳은 제주도 수준이죠. 거기도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지만요
@@BlackSkyUploadTube 산해관 못뚫고 빌빌대던 놈들이고 정묘호란때도 보면 급하게 와서 장기전은 못하던 놈들인거 보면 보급역량 후달리는거 뻔하니
지연전하고 후방에서 명군이 와줬으면 홍타이지는 조선에서 참수됐을수도
@@이름-z4q1u 행복회로입니다.
명은 국력이 쇠티기에 잇고 청은 전성기를 향해 가는 국가임
당시 청의 목표는 명나라를 치는 거라서 조선은 빠르게 항복시키는 게 목적이었기 떄문에
압록간 건너서 며칠만에 한양까지 왔음.
왕도 도망갈 시간이 부족해서 강화도로 못갔고요
원래 조선은 북방 민족이 처들어오면 강화도라 가서 버티는 게 전략임.
왕이 강화도에 갈 시간조차 주지 않은 거임.
그만큼 청나라 군대가 속도전에 능했다는 거고
조선의 군대보다 월등히 뛰어낫다는 거임
결국엔 선조 이후의 다른 여타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시스템의 부재가 큰 문제였군요.
선조고 결국 평범한 조선 사람이었던 거라고 생각됩니다.
평범하진 않죠. 이씨 나라의 왕족인데..;
박사님 볼륨이 좀 작은것 같아요 다른 채널 영상 보는데 이상이 없는데 박사님 채널은 볼륨을 최대로 올려야지 겨우 들리는 정도네요ㅠㅠ 박사님 좋은 강의 좀 더 잘 듣고 싶어요ㅎㅎ
임용한 님을 건강에 기원을 합니다
선조 역할은 징비록에 김태우 아저씨가 넘버원이지 그 허탈한 표정 선조 그자체임
그건 영화나 드라마를 팩트로 받아들이는 그쪽 같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모습이죠. 극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테레오타입으로 꾸며집니다.
@@Marksomali 국토가 넘어갔는데 당연히 김태우 아저씨 허탈한 표정이 나오겠지 ㅋㅋㅋㅋ
교수님 안색이 많이 ... ㅠ ㅠ 가슴아프네요
염려 감사합니다. 그러나 다이어트 성공으로 말라 보이는 것 뿐입니다. 정상회복 중이라는....
임박사님 아프지마세요
안녕하세요 임용한박사님 저... 전근대시대였던 고려와 조선의 대략적인 gdp나 ppp를 알 수 있나요?
ruclips.net/video/nLHPqUvzXWU/видео.html
이런걸 자료라고 하면서 고려가 조선 경제규모의 5배수준이라고 하는데 역사학계에서는 어떻게 얘기가 되는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박사님 건강잘챙기셔야해요~!!!
인지심리학 개론서에 생각의 본질은 경우의수를 줄이는데 있다고 합니다. 방향성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진게 인간 사고 시스템이죠. 국가단위로가면 이게 국가시스템인데 정말 엉망이었나보네요. 개개인마다 어떻게 행동해야될지 경우의 수 넘쳐나 혼란스러웠나봅니다. 우리나라 국가 시스템이 사회통합과 정치에 있어서 정말 약하니 전쟁이라도 나면 걱정입니다. 앞으로 금모으기나 2002년 월드컴 같은 단합된 모습이 다시 재현될 것 같지가 않아요.
역사가 반복이 안되어야 할텐데 참...웃프네요 ㅋㅋ
박사님 건강 조심하시고 쾌유 빕니당!
사람들이 자주 선조 개인의 문제로 넘기는데
국가위기때 우연히 선조와 인조 고종이 나왔다고 보나
그게 아니라 위기라서 포장되어 가렸던 문제들이 드러나는 거임
누가 왕이었던 게 문제가 아님
화석정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정자에 불을 질러 길을 밝히기는 한거네요.
사소한 것이 큰 물줄기를 바꾸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어요.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에 분조하면서 명나라로 도망갈려는 점도 욕먹는 이유 중에 하나이지만 전후처리 과정에서도 건저문제 같은 정치사건들만 봐도 리더로써 최악인거 같아요. 전후 과정에서 트롤짓 보면 속터지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 박사님~~
옹호하진않지만 만약 전쟁이없었다면 선조의 평가가 궁금하긴하내요
선조가 그나마 잘했던것이 임진왜란때 잡히지 않은것 솔까 잡혔으면 ㅈㅈ였음
결과적으론 잘햇던건맞는데 여차하면 광해군한테 왕주고 명나라로 갈려고햇던건팩트라 칭찬하기도 그럼
@@whale9893 역사는 결과로 증명되는법임 칭찬할건 칭찬해야됨
@@whale9893 별개의 선택이니 깔껀까고 칭찬할건 해야지 모든 과정과 선택을 y/n으로 따질수가 있나
저때 선조가 잡혀서 죽고 광해군이 왕위 바로 이어 받아씀 나중에 이복동생 죽이고 폐모살제 같은 일로 폐위될일 없이 깔끔했지.
@@보검-j7y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붙이면 어떤 좋은 결말이던 최악의 결말이던 가능합니다
왜 소서행장이 평양성에서 진군을 멈추고 의주를 내버려두었는지도 다루어주세요
공세종말점 아니었을까요 수운보급이 좌절됐으니까요
@@snutea7505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진짜 조금만 더밀면되는데...
@@몰빵상따TV 독소전에서 그 잘 싸우던 독일군도 모스크바로 결국 못 들어갔잖아요
@@snutea7505 근데 모스크바는 지키는 소련 병력도 많았고 상당히 요새화된도시인데. 의주까지는 큰성이 두개 안주성과 의주성이 고작이고 병력도 없었는데. 너무신중했던것아닌가하는 가토기요마사 가등청정은 두만강까지는 같잖아요.거기는 동해수운이 이용이 가능했습니다만
선조가 명나라로 도망가는 것은 일본식 전쟁 매뉴얼에 없었으니까...
당황한 걸로 보입니다.
^^ 김일성도 압록강까지 도망쳤죠 ^^
선조는 국가와 왕으로써 도망간게 아니라 지만 살자고 도망간거죠.실제 역사가 그렇고
도망간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함. 어떻게든 항전을 하려면 뒤로 물러서서 전열을 가다듬고 싸우는 것이 맞지만 떠나기전에 국민들한테 거짓말을 했으니 도망갔다고 자국민한테도 욕먹는거임.
선생님 어디 편찮으신것 처럼 보이십니다. 건강이 우선입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살을 빼서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피난을 갔니 안 갔니 이것보다 국가의 위기상황에 대한 이른바 '작계' 가 부실했거나 혹은 있었다고 해도 현실에서는 유명무실했다는게 진짜 문제인 것 같네요.
대체 왜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토록 시스템이 부실했던 걸까요..? 아마 이런 현실을 보면서 '유교만 중시하고 다른 학문은 죄다 천대하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는 논의가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립된 지형으로 평화기간이 긴 역사이기 때문이야. 세계사 공부해보면 한빈도만큼 전쟁이 드문 나라는 정말 희귀하다. 유럽이 왜 발전했냐고? 걔들은 수천년간 전쟁이 없던 기간 찾기가 힘들어. 그게 생존과 경쟁의 마법이야.
부실했던게 아님
200년간 육군작계는 압록강 두만강 넘어오는 오랑캐들 때려잡는 비정규전 특화로 굳어졌고 확실히 오랑캐들 때려잡는건 잘함.
문제는 갑자기 왜군이 이십만 끌고 상륙해서 정규전 걸어버려서 대응이 잘 안된거임.
거기다 육군주력은 북쪽에 몰려있는데 남쪽에서 상륙해버렸고 경상우수사는 하필이면 원균임.
현대로 치면 탈레반들하고 200년간 아프간 산골에서 소탕전 하던 군대가 갑자기 소련 기갑웨이브랑 맞딱드린거임.
탈레반 잡는다고 산골 뛰어다니던 경보병들이 전차수만대가 밀고내려오면 갑자기 어떻게 대응하겠음.
준비는 했지만 준비한 내용이 문제였던거지
병사들에게 가장 좋은 훈련은 실전이다
뭐 여차저차 합리화 회로 돌리고 의주로 도망갔다가 살아서 돌아왔으면 남아서 고생한 광해군이라도 제대로 대우해 줘야지. 솔직히 선조가 광해군 괴롭히는거 보고 전후 복구해야할 대다수 인재들이 돌아섰다고 본다.
와~ 임진왜란 한복판에 있었던것 처럼 현장감 있네요 ^^ 다음편도 기다려집니다~!
인조 보면 도망도 실력인듯 ㅋㅋㅋ
도망을 간 건 간건데 도망을 간 왕이 전쟁 이후에도 계속 왕을 해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조선 임금들의 정치력(? 나쁜의미로)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딴 수가 있어요? 군발이들이 왕보다 더 형편없었으니
정권을 뒤집을 수도 없고.. 신료들도 죄다 도망쳤으니 할 말도 없고
그렇다고 농사짓던 농부가 나 왕 할래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순신의 활약으로 전쟁 자체는 이긴 전쟁이니.. 뭐...
@@롤로토마시-n7e 아, 누가 더 나은 왕이 되었을 거다~가 아니라 보통 세계사를 보면 전쟁 을 대비하지 못한 책임이 명분이 되서, 다른세력에 의해 정권이나 나라가 뒤집히는 경우가 있잖아요, 근데 그 이후에도 이씨 조선이 굳건한 게 참 신기하다... 그런 뜻이었어요.
@@woody8608 왕자들 중에서도 광해군 한명이라도 멀쩡해서(최소한 왕자 시절까진) 직접 뛰기도 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과 권율 장군 모두 선조가 파격 승진시켜준 인물들이라 두 장군께서도 들고일어날 이유가 전혀 없었겠죠.
음성이 너무작아요ㅠ
박사님 왜이렇게 피곤해보이세요.. 건강좀 챙기세요 ㅜㅜ
한양도성이 지나치게 넓어서 수비하기엔 좋은 형세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박사님이 보시기엔 이런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일부러 한양과 연계되는 산성을 남북한산성 두개씩이나 만들거나 계획을 수립했던걸 보면 사실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한양도성 자체가 수성용이 아니어서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이 그 역활 했죠
개경도 그렇고 한양도 그렇고 원래 살기 좋고 교통망 편리할수록 방어하기 빡셈. 아니면 성 자체를 콘스탄틴 노플처럼 요새화 해야지
아이러니하게도 선조가 빨리 도망쳤기 떄문에 시간을 벌 수 있었음
왕조 국가에서 왕이 잡히면 전쟁끝임.
패전국이 되면 일본의 전쟁 후에 어마어마한 요구들을 했을 거임.
비록 민심은 잃었지만...
ㄹㅇ 솔직히 도망쳤다고 욕하는 건 역사를 초한지로 배워서 그런 거
@@qpalwosk1029 ㄹㅇ 초한지에서도 유방이 런 안치다 잡혔으면 누가 한나라 총대맴?이란 질문하면 아무도 답못할걸
선조 피난중에 개경사람들인가 이북사람들이 우왕의 피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는데 뭐라뭐라 한것도 진짜일까요?
조선왕조는 좋아하지 않는다. 백성을 노예 아니면 거지로 방치했다. 영화를 보면 너무 미화되어 나와 인민의 어려움을 전혀 반영하질 못한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임진왜란 이야기는 우리에겐 슬프면서도 항상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피난을 위해 도성을 버린건 그렇다쳐도 아예 나라를 벗어나서 명으로 도망치려고 했던 것은 납득이 안되네요
아무 이유 없는건 없죠. 그리고 그 이유에는 꼭 돈은 들어가 있더라가 사실.
선조.. 이 나라에 태어나선 안될 놈이었다.
선생님 건강이 걱정됩니다. 동영상 업로드 늦어져도 좋으니까 건강부터 챙기세요~!!
화석정 이야기 몇 십년만에 다시 기억나게 만드셨네요. 율곡의 현명함에 감동받았던 국민학교 저학년 생들의 눈빛 그리고 수군수군...
도성을 뭘로지키나.더구나 방어시설도
없는 한양도성에서?
어느시간에 병력을 모으나 ㅉㅉ
애초에 상대가 안되는상황.백년을 싸운군대와
농사짓던 군대의 싸움인것을.
교수님의 풍부하면서도 균형잡힌 시선에 늘 감사하는 1인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거짓말하고 혼자 도망갔다는 식으로 단정지어 표현하셨는데, 제가 알기론 논란이 있고 연구가 더 필요한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향력이 큰 교수님이신만큼 정제된 표현이 아쉽습니다.
일본 입장에서 ..깜놀했겠지
자기들 상식으로는 영주는 싸우다 죽거나 항복하거나 할복하거나
근데 빤스런 ㅋㅋㅋ
선조는.. 치세에는 성군이요 난세에는 트롤인듯..
인존는 치세에도 암군 난세에는 혼군
치세에 성군임은 분명함. 그리고 200년간 평화를 지속하던 국가가... 수십년간의 내전 끝에 통일한 국가의 신식무기로 무장한 강력한 군대를 상대로 저렇게 선전한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함. 이순신 장군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이순신 장군을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진 시킨 것도 선조이고. 선조가 잘못한 건 빠르게 난을 극복하기 위해 너무 무리한 수를 뒀다는 거고 거기에서 성웅이라 불리우는 이순신 장군에 가혹한 행동을 한 거라는 거임. 어릴 때 머 모를 때나 선조 욕했지.. 지금은 선조는 욕하지 않음.
도망안가면 죽거나 폐위되니까
결론적으로 도망을 간 것이 백성을 버린 거고 비겁한거고 뭐 이래서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나라를 시스템과 규율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방비의 허접한 상태로 만들어놓은 거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는 말씀이네요
말씀 잘 이해되고 공감합니다.
애초에 그렇게 잘못해놓고
일본이 쳐들어 온 상태에서 허접하게 용맹 부린답시고 폼 잡다가 포로로 잡히기까지하면 더더욱 절망적이었겠네요
그나마 최후의 잘못까진 안했다고 해야 하나 에효ㅠㅠ
무방비 허접이라기 보다는 그 규율을 다 지키면(성 보수, 군량미 교체 등등) 백성들한테 악질 수령이라고 욕 먹어서 그런 걸로 압니다
그 규율을 적군의 상식적인 침공 대비할 정도까지는 욕 먹어가면서 했는데 풍신수길이 일본 내부에서도 미친거 아니냐는 소리 나올정도로 몇배를 꼬라박아서 그럼
전쟁 중인지 끝나고나선지는 몰라도 실록에다가도 변명 써대는 선조 클라스
상황은 피난이 타당하나 그 과정 특히 가지않겠다 교서를 내렸던 부분에서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잘못임이 확실합니다
차라리 피난은 결정된 상황이 아니다 라고 뭉퉁거리고 나서 튀었으면 조금이나마 나았을텐데
선조가 조선최악 군주 no 2인이유 ...도망이라도 잘가서 ㅋㅋㅋ
인조가 1위인 듯 한데 연산군, 고종 등의 경우가 있어서 선조가 2위하긴 좀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이 나라의 묘하고도 비극적인 반복은 관군이 초전에 외적의 침입을 제대로 방어한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 항상 초반에 관군은 외적에게 박살나고 백성들이 나서서 싸우다가 물리치거나 지거나... 전쟁지도부의 leadership이 많은 경우 믿을 수 없을 만큼 후졌다는 것.... 선조, 인조, 이승만, 채병덕, 유재흥 등등... 이 순신은 참으로 귀한 예외이다....
ㅋㅋㅋ 너무빨리 도망가 일본장수들 ????
토끼는것도 능력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지만 왜 유독 안 좋은 케이스만 반복되는 걸까요? ㅜㅜ
선조그림 ㅋㅋㅋㅋㅋㅋ
율곡은 조선이 흥망의 과도기에 접어든 것을 미리 알고 개혁을 준비하고자 했으며, 왜란도 분명히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기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율곡의 철학은 당대 당연컨데 최고였습니다. 서양철학의 칸트에 비할만 합니다.
율곡이 알고 있었데. ㅋㅋㅋ 국뽕도 좀 적당히 하셔. 십만명의 병사를 양성? 재정확보는 어떻게 할 건데? 조선의 군사 체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방안이 율곡에게 있었나?
지진이 일어난다고 얘기하는 학자는 항상 있어. 근데 지진이 안 일어나면 그 학자는 미친놈 취급받고 막상 일어나면 거봐라 그 사람말을 들었어야 했다 하는 결과론적인 태도가 옳다고 보니?
@@Marksomali 이이는 양병설의 기준을 십만이라 딱 정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리학적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리에 치중되어 기가 약해 양병하여 국가의 기를 보해야한다는 관점이었습니다.
@@Marksomali 결과론적인 견해도 국뽕도 아닙니다. 정확한 양병설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율곡철학을 기준으로 추정하자면 농업과 상업중심의 개혁을 같이 제안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선조가어버버거리다 도망못갔어면 그냥 일본되는것이지 제2의 오키나와
이승만과 선조 둘다 도망 안간다고 말해놓고 도망가는 행태가~
런조도 도망 안 가게갔다고 거짓말했었구나
런승만 런선조
런카이사르, 런이에야스, 런나폴레옹, 런워싱턴, 런맥아더. 이 사람들이 런했다고 욕을 먹니? 손자병법 36계에도 있는 전략적 후퇴 자체가 욕먹을 게 전혀 아닌데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이 런하는 건 비겁하다는 식으로 특정인을 프레임을 씌우고 생각하길 멈추지.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르지만 딱 연의의 박망파 하후돈 같은 용기만 있는 지휘자가 어떤 꼴을 당했지? 아무런 대안도 없이 후퇴했다고 욕을 하는 게 말이 돼? 당신은 조폭 앞에서 비겁하다고 도망안가? 좀 비난할 걸 비난해. 런한 걸 비난할 게 아니라 런할 상황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준비를 못하고 위시풀씽킹을 한 게 문제 아니니? 그리고 몇 백년동안 국가단위의 전쟁이 없었던 상황에서 전쟁 준비를 한다고 국가 재정을 써봐라. 대신을 어떻게 나올 것 같니? 그 재정으로 굶주리는 백성을 돌봐야 한다고 할텐데 왕이 그 주장을 물리칠 마땅한 명분이 있어? 결과론적으로 마녀사냥 좀 하지 말고 그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이 문제였는지 차분히 살펴볼 생각은 안 하고 런선조 런승만. ㅉㅉㅉ 런승만이 한강철교 폭파시켜 사람들이 철교를 위태롭게 건너는 사진이 조작인 건 혹시 아니? ㅉㅉㅉ
선조는 그래도 승리한 군주
선조가 장사했던 사람이라는 게 놀랍네요. 명색이 왕족인데 변두리 왕족은 상단 꾸리고 장사해도 조정이나 왕실에서 뭐라 안했나보군요.
왕족이라도 3대가 넘어가면 왕족에서 제외입니다
조선의 숙명이라고 할까요.도쿠가와.홍타이지를 만났으니...쎈 ㄴ중에서도 무지 센ㄴ을 만났으니...
도요토미히데요시(풍신수길) 도쿠가와이에야스 아님
세 글자 요약 : 병/림/픽
역사가 두려운 나머지 역사를 수정한 선조가 일본처럼 보입니다.
그 부분은 오해신 것 같습니다. 실록 편찬에 선조가 간여하지 못합니다. 실록은 신하들이 편찬했고, 자신들의 당파와 행동을 변호한 것이죠.
조선역사상 역대 4대 러너가 있지...
선조 이연, 인조 이종, 고종 이희,
초대 대통령 이승만.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개풀 아주 도망에 특화된 인물들.
그냥 죽기 싫어서 간거죠...뭐...
당연한거 아닐까요?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왕이 곧 그 나라의 주권입니다.
선조때는 인재난이 너무나도 많았던 시기였고 일제시대때는 인재들이 가뭄이 일어나듯이 극심하게 인재들이 너무나도 턱 없이 부족했음 또한 능력들도 없었고.
사모님한테 맞으신건아니시죠?빠른쾌유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