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잡습니다] 00:34 건청궁에 처음 전등을 밝힌 것은 1887년입니다. 무쿠치님 감사합니다. 06:52 조선총독부라고 표시한 곳은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입니다. 바로잡아주신 쉬네르츠님 감사합니다^^ 00:49~00:59 사진이 잘못 들어간 것 같아 흐리게 처리했습니다. 다른 사진들이랑 많이 다르네? 하면서도 소장처에 1904년 이전 사진으로 되어있고 제목이(사진엽서입니다) 대한제국 황제로 되어 있어서 ( 순종 즉위는 1907년) 색다른 사진인가 했는데, 댓글들 보고 다시 보니 영 아리송합니다. 애초에 분류가 잘못되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갸웃거리면서도 사진 사용한 저의 불찰입니다. 앞으로 이런 실수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__)(--)(__)
@@kyongparis5447 확실한건 아시아 최초는 아닙니다. 일본 경동(교토)에서 1895년에 전기 트램이 운행한 바 있고, 1881년에는 월남 시곤(사이공)에 증기 트램이 운행을 개시한 바 있습니다. 물론 수도에 전기트램을 운행한 것은 일본(1904년 동경)보단 앞서긴 했습니다.
30년 전 같이 근무하던 직원하고 전차가 언제까지 운행을 했었나 얘기를 하다가 서로 이견이 커 내기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60년 대 후반까지라고 했고 직원은 70년 댄가? 그렇게 얘기를...그래서 그 당시 철도청에 문의를 했었는 데 당시 전화를 받은 분은 69년도에 전차가 운행 중단 됐다고 그랬는 데 이 영상에서는 68년도라고 하니 영상이 맞겠죠...저도 전차를 몇 번 타 보기는 했는 데 아직도 전차를 탔던 기억이 생생한 것은 66년도로 기억을 하는 데 노량진에서 남영동까지 탔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었거든요...ㅠㅠ 영상을 보니 옛 생각이 납니다
1963년 처음 전차를 탓었죠.뚝섬에서 종점인 동대문 중앙시장까지. 얼마인지 요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종이로된 인쇄된 조그맣고 길쭉한 전차표. 초등학교 1학년 이였는데 소인표인거 같았죠. 차량은 한량. 운전석이 앞뒤로 있어 종점에서 운전수가 뒤로가서 운전했고 좌석은 지금의 전철처럼 좌우 창가에 길게 나무로 만들어졌죠. 살곶이다리를 지나 왕십리를 거 쳐 청량리 다리위를 지날때는 심하게 흔들렸고 다리밑에는 판자집들이 다닥다닥. 동대문종점에는 중앙시장이 있었는데 백열등과 카바나이트 불들이 밤늦게까지 켜져 있었고 사람들이 가득했었죠. 전차는 위에 전기선에 연결된 철봉으로 전기를 공급 받아 운행되었는데 가끔은 불꽃이 일고 불똥도 떨어졌죠.
서울시내 전차는 1968년 11월 30일 운행을 중지하려 했으나, 당일 종업원들이 파업을 한다 해서 하루 앞당긴 11월 29일 마지막 운행을 하였다. 8 : 22 일반 전차가 아니고 동대문 전차 발전소 옆에서 숭인동, 청계천, 왕십리역 남쪽 지하통로, 한양공대 옛 정문 다리 밑, 성동교를 건너서, 뚝섬이나 광장(워커힐) 양쪽 운행하던 단선 전차로 기동차라고 불렀다. 지금도 그 노선을 따라서 도로나 굴다리(왕십리역 남쪽 지하도)가 남아 있는 곳이 있다.
03:55, 04:48... 1900년대초 조선인들 행색하고 1930년대 사람들 옷입은거, 얼굴 비교하면 30년 사이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굉장한 발전을 했나보네요. 서을 도심도 1930년대엔 1900년대초보다 인프라, 건물이 훨씬 잘 구축되어있군요. 07:00~07:15... 귀중한 자료.. 감사함다.. 처음보는 사진, 처음 알게된 사실이 많아서 좋네요 ..
전차가 있는 도시에서 살면서 맨날 통학을 전차로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서울을 돌아다녔을 전차의 이미지가 바로 그려집니다. 느릿느릿 그것도 전용차선이 아니라 길 한복판을 돌아다녔을테니 한국인 성질에 결국 사라질 운명이었겠지요. 근데 위례신도시에 다시 전차를 놓는다고 들었습니다.
60년대 서울도심 풍경중에 전찻길이 아스팔트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고 구루마라는 수레 를 소가 끌고 가기도 하였고 자동차길에는 소똥과 기마경찰 이 타고 다니는 말들이 배설한 똥들이 부침개처럼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있었죠. 간혹 소달구지의 소엉덩이에 배설물 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수레도 있었죠. 기마경찰들은 2인조로 같이 다녔죠. 아스팔트 도로포장하는 곳이 많았는데 아이들에게는 구경 거리였고 저를 포함한 일부 아 이들은 공사하는 옆에서 나뭇가지로 타마구라고 불렀던 콜타르를 나뭇가지로 찍어 동그 랗게 말아 물에넣어 식힌 후에 입에넣어 씹어 처음 한두번 시커먼 물을 뱉어어내고는 껌처럼 씹고 다녔는데 이름하여 타마구껌이라고 했죠. 지금 생각하면 발암물질 투성이 였는데..
안녕하세요 국토교통부 미디어팀 주효석PD입니다 트램에 대한 영상을 제작중입니다 영상미가 너무 좋습니다 국토교통부에서도 트램에 대한 영상을 제작 중입니다 일부 클립을 사용해도 될까요?? 사용을 허락해 주신다면 출처를 꼭 밝히고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닙니다 교토 전차개통 - 1895년 한양 전차개통 - 1899년 일본이 4년 더 빠릅니다. 고종시절 전차 개통, 동양 최초 맞나? "동양에 있어서 전기철도의 남상(濫觴)은 명치 27년(즉 1894년, 정확하게는 1895년이 맞음) 교토(京都)에서 운전된 것이 효시(嚆矢)라 하는데, 당시 콜부란씨는 경성에서 전기철도를 부설하려고 해도 기술자가 없었으므로 교토전철의 설계자였던 미국공학사 남작 마키 헤이이치로(眞木平一郞)씨에게 위촉했고, 마키씨는 역시 미국공학사인 오하타 코우노스케(大圃孝之助)씨와 이시쿠마 노부노유(石외信乃雄)씨 기타 2명을 동반하여 명치 31년(즉 1898년) 10월 경성에 도착하여 마키 남작은 설계에, 오하타 이시쿠마 양씨 기타는 실무를 담당하였는데, 동월 17일 기공하여 서대문, 홍릉(청량리) 간의 단선궤도부설(單線軌道敷設)과 더불어 가선공사(架線工事)에 착수했고 동년 12월 25일에 준공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동대문 내에 발전소용지를 선정하여 동 12월부터 기초공사를 착수하였으나 때마침 혹한이 있을 때에 공사가 여의치 않았지만 마침내 다량의 목탄을 태워 현동소설(玄冬素雪)의 가운데 공사를 마쳐 75킬로 직류 600볼트 1백마력 기기(汽機) 매킨토시식 보일라 바브코크식 등을 설치하고 전차의 조립 등도 마쳤는데, 이리하여 모든 일이 완료됨에 따라 명치 32년(즉 1899년) 음력 4월 8일의 제일(祭日, 즉 초파일)을 기하여 화려한 개통식을 거행하였다." 교토전차 만든 일본인들이 경성전차 설계한 겁니다.
서울시내에 버스와 전차가 함께 운행되다가 교통체계의 '중심'을 버스로 한 거겠죠. 전차가 꽤 느렸던 모양인데, 60년대 서울이 워낙 폭발적으로(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복잡한 시내에서 전차가 외려 방해가 되었을 것 같아요^^ 68년 전차가 종료될 때는 버스 중심으로 개편하려던 계획이었던 모양인데, 70년 4월에 부임한 양택식 시장이 지하철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난 항상 구한말 광화문 사진을 보면 뽀샵의 느낌을 강하게 받음. 너무 건물이 새거 같아서튐. 사실 옛날 기록사진들 보면 뽀샵한거 무지 많음. 건물 뿐 아니라 사람도 삽입한 거 같은 것도 많고. 자꾸 보다보니 그게 보여. 그나저나 서울이 한곳이 아니라 여러곳에 있었던 것 같음.
오징어 게임 프로그램이 1조원의 잭팟!?.......세계에 흩어져 있는 대한민국 유산들 회수 후 가치들 만든다면 그 가치는 얼마일까?..........문화가 국가의 힘을 보여주는 시대...대한민국 세계 각지에 밀반출 유물은 수십만점이 있다..그 유물들을 하루라도 빨리 그 유물들을 찾아와야 한다...=우리것이니 당연히 찾아와야 겠지만.= 해외에 밀반출 된 유물 수십만점을 찾아오면..국립 중앙 박물관 정도의 박물관을...강원도.. 충청도..전라도.경상도 각지역에 유물 몇만점씩 보유한 거대한 박물관을 하나씩 짓을수가 있다... ( 외국인들은 한류로 인하여..역사..음식..문화 )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면?... 각 지역마다 거대한 박물관이 있다면? 안정적 고용.....입국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지방으로 분산 시킬수 있는 효과들 낼수 있을것이고... 그들의 소비로 지방 경제에 도움됨은 물론......대한민국을 다녀간 외국인들은 어떤느낌으로 남겠는가?....( 메타 산업이 크질수록 대한민국이 세계인을 유혹 상품을 더 다양하게 많이 내놓을수 있음
[바로잡습니다]
00:34 건청궁에 처음 전등을 밝힌 것은 1887년입니다. 무쿠치님 감사합니다.
06:52 조선총독부라고 표시한 곳은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입니다. 바로잡아주신 쉬네르츠님 감사합니다^^
00:49~00:59 사진이 잘못 들어간 것 같아 흐리게 처리했습니다. 다른 사진들이랑 많이 다르네? 하면서도 소장처에 1904년 이전 사진으로 되어있고 제목이(사진엽서입니다) 대한제국 황제로 되어 있어서 ( 순종 즉위는 1907년) 색다른 사진인가 했는데, 댓글들 보고 다시 보니 영 아리송합니다. 애초에 분류가 잘못되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갸웃거리면서도 사진 사용한 저의 불찰입니다. 앞으로 이런 실수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__)(--)(__)
아시아 최초 노면전차라 하네요. 인도라는 썰도 있고 일본이라는 썰도 있는데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썰도 있읍니다.
@@kyongparis5447
확실한건 아시아 최초는 아닙니다.
일본 경동(교토)에서 1895년에 전기 트램이 운행한 바 있고, 1881년에는 월남 시곤(사이공)에 증기 트램이 운행을 개시한 바 있습니다.
물론 수도에 전기트램을 운행한 것은 일본(1904년 동경)보단 앞서긴 했습니다.
영상보면서 지금이 얼마나 발전되고 했는지 알것같네요 귀중한 자료 영상 감사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잘 봤어요. 영상과 해설 좋았습니다, 삶은 과거나 현재나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재삼 느낍니다. 그래서 현재의 삶이 또 미래에 비쳐질테니, 노력하면서 살아야겠죠…
30년 전 같이 근무하던 직원하고 전차가 언제까지 운행을 했었나 얘기를 하다가 서로 이견이 커 내기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60년 대 후반까지라고 했고 직원은 70년 댄가? 그렇게 얘기를...그래서 그 당시 철도청에 문의를 했었는 데 당시 전화를 받은 분은 69년도에 전차가 운행 중단 됐다고 그랬는 데 이 영상에서는 68년도라고 하니 영상이 맞겠죠...저도 전차를 몇 번 타 보기는 했는 데 아직도 전차를 탔던 기억이 생생한 것은 66년도로 기억을 하는 데 노량진에서 남영동까지 탔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었거든요...ㅠㅠ 영상을 보니 옛 생각이 납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는지 알겠네요. 고단한 삶 살았던 우리 조상님들 덕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영상잘보고갑니다. 늘건강하시고 유투브도 승승장구하시길 응원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타고 다녔어요.
1964년인가 2장에 3원 이런 때가 기억나네요. 버스보다 약간 쌋기에 만화책을 두권인가 한권 더 보았습니다.
항상 희귀한 사진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옛생각 많이 나시겠습니다...
@@넘나웃겨-d9p
감사합니다.
그래서 철도모형하면서 영상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ㅎㅎ
ruclips.net/video/KGlynEKInkQ/видео.html
몇살이세요?
@@Jeong-eun 1956년생, 69세입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아버지와 처음으로 타본전차 너무신기했어요 차가 출발 하는데 모든사물이 음직이는것으로 착각을 하고~ 그리운시절
어렸을때, 원남동에서 돈암동(지금 성신여대역)까지 어머니 손잡고 타던 기억이 납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향후, 전차 동영상도 올려주세요.
초등학교에 입학전 할아버지 손잡고 돈암동에서 전차를 탔던 기억이 납니다.
그시절 서울은 어땠습니까??
돈암동? 필동에서 출생. 돈암동엔 40년살았는데. 반갑군요
1963년 처음 전차를 탓었죠.뚝섬에서 종점인
동대문 중앙시장까지. 얼마인지
요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종이로된 인쇄된 조그맣고 길쭉한 전차표. 초등학교 1학년
이였는데 소인표인거 같았죠.
차량은 한량. 운전석이 앞뒤로 있어 종점에서 운전수가 뒤로가서 운전했고 좌석은 지금의 전철처럼 좌우 창가에 길게 나무로 만들어졌죠.
살곶이다리를 지나 왕십리를 거
쳐 청량리 다리위를 지날때는
심하게 흔들렸고 다리밑에는 판자집들이 다닥다닥.
동대문종점에는 중앙시장이 있었는데 백열등과 카바나이트
불들이 밤늦게까지 켜져 있었고
사람들이 가득했었죠.
전차는 위에 전기선에 연결된 철봉으로 전기를 공급 받아 운행되었는데 가끔은 불꽃이 일고 불똥도 떨어졌죠.
생생한 경험담 감사합니다^.^
뭔가 아련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입니다. 전기불똥은 좀 무섭지만요^^
낭만적인 느낌이네요!
초등학교 입학하기전 부모님과 전차타고 종로 단성사에서 영화 본 기억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서울시내 전차는 1968년 11월 30일 운행을 중지하려 했으나, 당일 종업원들이 파업을 한다 해서 하루 앞당긴 11월 29일 마지막 운행을 하였다.
8 : 22 일반 전차가 아니고 동대문 전차 발전소 옆에서 숭인동, 청계천, 왕십리역 남쪽 지하통로, 한양공대 옛 정문 다리 밑, 성동교를 건너서,
뚝섬이나 광장(워커힐) 양쪽 운행하던 단선 전차로 기동차라고 불렀다. 지금도 그 노선을 따라서 도로나 굴다리(왕십리역 남쪽 지하도)가 남아 있는 곳이 있다.
구라야 서울 전기는 1969년 생겼어
서울전차는 69년간 이용되었고
서울지하철은 개통한지 이제 47년이다
서울전차가 존재했던 기간이 더 길다
그때 그시절의 진귀한 영상 흥미롭게 자알 보고 좋아요 꾸욱 눌렀씀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전차타고 통학했는데 감회가 새롭군..
국민학교 입학 한해 전인 1968년 아버지 손잡고 한번 탓던 기억이 가물가물 납니다
운행하며 전차가 땡땡땡 소리를 내던 장면도 기억나고요
옜날에나 지금이나 시대변화은 어쩔수 없네요 마지막 현수막이 인상깊네요 (대책없는 전차 철거 종업원은 갈곳없다) 곳있으면 전기차로가면서 자동차 생산직도 3÷1로 줄겠네요 시대에흐름은 어쩔수 없나봅니다
그러게요. 저도 전기차 이야기 들으면서 막연히 그런가보다 했는데, 단순히 연료가 바뀌는 게 아니라 산업체계 자체가 바뀌는 일이더라고요.
세상은 늘 변화해왔지만 요즘은 그 속도가 웬간해야 말이지요^^
"귀한영상" 항상 고맙고 감사해요.
Money Money 해도 건강이 우선
이니 "꼭옥"챙기세요~~💥💦😎.
오늘도 공부 잘하고 가여^^ 장마철 감기 조심하세여 ^^
0:50 고자이크 편-안
밤 깊은 마포종점
갈길 잃은 밤전차
6:52 표시하신곳은 조선총독부가 아니라 경성부청, 현재 시청건물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건물 왼쪽에 덕수궁 대한문 지붕이 보입니다.
다시 확인해보니 말씀해주신 내용이 맞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옛날의 전차가 지금으로 치면 전철(전기철도) 죠. 1974년 8월 15일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 되었습니다.
내가 중3때까지 타고다닌 전차.
그 시절 서울은 어떠했나요
@@yuuri315 누구나할것없이 먹고사는게 힘들었지요! 일자리가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어르신 때문에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65 연세 넘는다고?
현재69
삼광국민학교1학년때 창경원소풍갈때 타던기억이 있습니다. 2원5십전할때인지 오원지페주면 전차그림있는표 두장받은 기억도...
전차를 다시 볼수있을 듯합니다 어느 도시에는 트램을 다시 설치하고 있습니다
03:55, 04:48... 1900년대초 조선인들 행색하고 1930년대 사람들 옷입은거, 얼굴 비교하면 30년 사이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굉장한 발전을 했나보네요. 서을 도심도 1930년대엔 1900년대초보다 인프라, 건물이 훨씬 잘 구축되어있군요. 07:00~07:15... 귀중한 자료.. 감사함다.. 처음보는 사진, 처음 알게된 사실이 많아서 좋네요 ..
1958년쯤 내가전차로 등교할땐 일본서만든전차는 손으로 문을여닫았고.미국에서 원조받은전차는 자동문이였습니다.청량리역 동대문역
서울전차 동대문 차고지
→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
→ 동대문종합시장 주차장
→ JW매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현재)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문득 든 생각
01:49
앞에 걸어가는 할아버지는 미래에 이 사진이 후손들에게 이렇게 퍼질지 알았을까,
그리고 저 후손들은 자기 증조,고조 할아버지의 사진임을 알까요???
전차가 있는 도시에서 살면서 맨날 통학을 전차로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서울을 돌아다녔을 전차의 이미지가 바로 그려집니다. 느릿느릿 그것도 전용차선이 아니라 길 한복판을 돌아다녔을테니 한국인 성질에 결국 사라질 운명이었겠지요. 근데 위례신도시에 다시 전차를 놓는다고 들었습니다.
잘봤습니다
좋은 전차 역사에 대해서 잘 보고 갑니다 ㅋㅋ
60년대 서울도심 풍경중에 전찻길이 아스팔트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고 구루마라는 수레
를 소가 끌고 가기도 하였고
자동차길에는 소똥과 기마경찰
이 타고 다니는 말들이 배설한
똥들이 부침개처럼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있었죠.
간혹 소달구지의 소엉덩이에
배설물 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수레도 있었죠.
기마경찰들은 2인조로 같이 다녔죠.
아스팔트 도로포장하는 곳이
많았는데 아이들에게는 구경
거리였고 저를 포함한 일부 아
이들은 공사하는 옆에서 나뭇가지로 타마구라고 불렀던
콜타르를 나뭇가지로 찍어 동그
랗게 말아 물에넣어 식힌 후에 입에넣어 씹어 처음 한두번 시커먼 물을 뱉어어내고는 껌처럼 씹고 다녔는데 이름하여
타마구껌이라고 했죠.
지금 생각하면 발암물질 투성이
였는데..
안녕하세요 국토교통부 미디어팀 주효석PD입니다 트램에 대한 영상을 제작중입니다 영상미가 너무 좋습니다 국토교통부에서도 트램에 대한 영상을 제작 중입니다 일부 클립을 사용해도 될까요?? 사용을 허락해 주신다면 출처를 꼭 밝히고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공공기관에서 사용하시는 거고 출처를 밝히신다면 저야 환영입니다만, 자료사진들 모아 설명을 붙인 방식인데 뭘 어떻게 사용하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출처는 밝혀주시고, 어떤 영상인지 나중에 알려주시면 꼭 구경하겠습니다^^
고종이라고 설명한 사진은 고종이 아닌 순종의 모습입니다.
훗날 이 전차 기지에 동대문 고속버스 터미널이 들어옵니다.
한국은행건물과 포스트타워 변함이 없네.
고종 어진이 모자이크됐네요...?
신기하당
퀄리티 ㄷㄷ
이제 새로운 전차 인 트램이 둥장한다니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미아리고개를 넘어가서 돈암동에서 전차타고 갔습니다
틀린 곳이 있네요....
총독부가 아니라 경성부청
\경성부청이 아니라 조선호텔(만철 소유)
고종의 영정은 왜 가렸나요?
야인시대에 많이 나오는 전차
???: 안되겠소. 쏩시다!
ㄹㅇ
@@isolet005 트ㅏㅏㅏㅇ 트ㅏㅏㅏㅇ
유행은 돌고 돈다고 요즘 다시 트램이 생기고 있죠
조선에 전기가 처음 되입이 된건 1877년이 아니라 1887년 아닌가요 ??? 한번 더 확인해 보세요
아닛, 제가 왜 그랬을까요?^^;;;;
전기 도입되고 10년 남짓 지나서 전차 도입했다는 말까지 해놓고 말이지요ㅠㅠ
1887년이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차, 즉 트램은 차량 운행이 적은 소도시 지역에 맞습니다.
네, 그런 것 같아요. 외국에 트램 운행하는 곳은 서울처럼 붐비는 도시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절레절레)
아닌데요 모스크바 파리 런던 뉴욕등 트램운영합니다 이들도시는 서울보다 큰도시들이죠
@@koreangeographic3860 솔직히 서울은 많이 낙후되고 주요도시들에 비해 뒤떨어집니다
@@김세호-c5h 도로가 좁디좁은 런던에 무슨 트램이 있나요?ㅎ
파리트램은 외곽지대에만 다닙니다.
그리고 파리 런던 모스크바가 서울보다 면적으로나 인구수로 보나 훨씬 작습니다.
@@vivabusan 님 모스크바 인구가 1200만명이고요 면적이 작다고요? 서울에 6배에요 제가 모스크바 살고있고요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시네
한국전쟁직후 없어진줄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되었네요
전차운행은 전시용으로는 일본이 먼저였고 실 상용화는 우리가 먼저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교토 전차개통 - 1895년
한양 전차개통 - 1899년
일본이 4년 더 빠릅니다.
고종시절 전차 개통, 동양 최초 맞나?
"동양에 있어서 전기철도의 남상(濫觴)은 명치 27년(즉 1894년, 정확하게는 1895년이 맞음) 교토(京都)에서 운전된 것이 효시(嚆矢)라 하는데, 당시 콜부란씨는 경성에서 전기철도를 부설하려고 해도 기술자가 없었으므로 교토전철의 설계자였던 미국공학사 남작 마키 헤이이치로(眞木平一郞)씨에게 위촉했고, 마키씨는 역시 미국공학사인 오하타 코우노스케(大圃孝之助)씨와 이시쿠마 노부노유(石외信乃雄)씨 기타 2명을 동반하여 명치 31년(즉 1898년) 10월 경성에 도착하여 마키 남작은 설계에, 오하타 이시쿠마 양씨 기타는 실무를 담당하였는데,
동월 17일 기공하여 서대문, 홍릉(청량리) 간의 단선궤도부설(單線軌道敷設)과 더불어 가선공사(架線工事)에 착수했고 동년 12월 25일에 준공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동대문 내에 발전소용지를 선정하여 동 12월부터 기초공사를 착수하였으나 때마침 혹한이 있을 때에 공사가 여의치 않았지만 마침내 다량의 목탄을 태워 현동소설(玄冬素雪)의 가운데 공사를 마쳐 75킬로 직류 600볼트 1백마력 기기(汽機) 매킨토시식 보일라 바브코크식 등을 설치하고 전차의 조립 등도 마쳤는데, 이리하여 모든 일이 완료됨에 따라 명치 32년(즉 1899년) 음력 4월 8일의 제일(祭日, 즉 초파일)을 기하여 화려한 개통식을 거행하였다."
교토전차 만든 일본인들이 경성전차 설계한 겁니다.
나 태어난 그즈음 전차가 철거된거였구나..
원효로 3가 종점 생각나네요
1887년 전기 도입
1898년 한성전기회사 설립
1989년 동대문발전소 건설
1899년 전차 개통
1900년 가로등 설치
참 안타까운것이 잘 살려서 지금 관광자원으로 활용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기도합니다.
고종 모자이크는 왜 한겨?
0:05 흔적은 아예 없는게 아니지만 광하문에 Y자 모양이 있는게 그게 서울 전차입니다.
ruclips.net/video/FLC_-q0O2Jk/видео.html
MBC 뉴스데스크
건청궁 옥호루의 전등 1877,3,6
60년대엔 전차있었지 !!이모 삼존들 고등학교 다닐때!!!!!전차비 아끼느라 종로까지 걸어다녔다고들
콜브란이 일본에서 돈 꾸고 일본인 기술자들이와서 공사를 했습니다.콜브란은 꾼돈을 갚지못해 일본에 넘긴것입니다.
효율성은 떨어져도 도심을 지나가는
전차가 버스나 지하철보다 훨~낭만적임.
전찻길 때문에 성벽이 헐려졌구나…
고종 사진은 왜 모자이크 처리 했나?
꼴보기 싫으니 했겠지
54초 사진 순종같은데요
늘 보던 고종 사진과 인상이 많이 다르긴 하죠?
혹시나 해서 자료를 다시 찾아봤는데,
제목이 Emperor of Korea라고 되어 있고, 1900년대 초반 사진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순종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는데 전혀 다른 얼굴이네요^^
지금 보니까 순종의 못생긴 입이 아버지인 고종을 닮았네요.
4:19
ㄷㄷ
나도 탄 기억이 있읍니다ㅡ
전차요금
1960년에 2원50전
전차는
영국의 기술이죠.
당시에는 미국이 전차 수출 1위 였답니다.
광화문의 소방서 망루가 보이네요
아시아 최초로 개통된 노면전차라 합니다. 서울電車
내가 서울에 왔을땐 전차가 폐지된후였다.
거리엔 철로를 철거하는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나는 열받아 청와대로 가서 전차를 다시 원상 복구하라 시위를 하다가
디지게 맞을뻔했다
남산 안 끌려간 걸 다행으로.. ㅋㅋ..박통때 감히 1인 시위라니..
초기 트램이라고 보면 됨
8:01
내몰자 오랑캐 압록강 넘어로... 여기서 오랑캐는 누구지? 쭝궈인들은 조선인들을 오랑캐라고 불렀는데?
그럼 전차 없어지고 뭐가 도입됐을까? 버스는 이미 그 전에도 있었고?
서울시내에 버스와 전차가 함께 운행되다가 교통체계의 '중심'을 버스로 한 거겠죠.
전차가 꽤 느렸던 모양인데, 60년대 서울이 워낙 폭발적으로(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복잡한 시내에서 전차가 외려 방해가 되었을 것 같아요^^
68년 전차가 종료될 때는 버스 중심으로 개편하려던 계획이었던 모양인데, 70년 4월에 부임한 양택식 시장이 지하철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koreangeographic3860 오....
아니 고종이 전기 산업을 부흥시켤려고 전철을 열심히 깔고 우마밖에 없던 서울에 전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이걸 왜 일제 반일 감정으로 이용하지 ㅋ
콜브란이 왕비무덤 행차에 이용하면 편리하다고 해서.처음 서대문에서 청량리 홍릉까지 운행했고 일제가 들어오면서 확장되었다는군요.
100년전 사진들
1900s 개화기 1910s 일제강점기
수소 전기 트램 생긴다는데
아이고 공중에전선망이...비효율적이네요.
저때 강남땅을 사두었어야... ㅠㅠ
난 항상 구한말 광화문 사진을 보면 뽀샵의 느낌을 강하게 받음. 너무 건물이 새거 같아서튐. 사실 옛날 기록사진들 보면 뽀샵한거 무지 많음. 건물 뿐 아니라 사람도 삽입한 거 같은 것도 많고. 자꾸 보다보니 그게 보여. 그나저나 서울이 한곳이 아니라 여러곳에 있었던 것 같음.
고종때 다시 지었으니까 그당시엔 나름 새건물 아니었을까요?
9:12 철거공화국.. (-.-) 일
부라도 계속 운행했더라면 지금쯤 외국인들한테 인기 관광 상품이 되었을 터인데...
6:32 담장을 얼마나 대~충 철저히 쌓았길래 전차 진동에 무너지나 ㅉㅉ
교통난은 그냥 개소리고 당시 미국에서 자동차와 석유 회사들 로비로 전차들 갈려나갈때 한국도 같이 갈려나간거임.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서민의 발이 없어진다고 많이 얘기했는데
오징어 게임 프로그램이 1조원의 잭팟!?.......세계에 흩어져 있는 대한민국 유산들 회수 후 가치들 만든다면 그 가치는 얼마일까?..........문화가 국가의 힘을 보여주는 시대...대한민국 세계 각지에 밀반출 유물은 수십만점이 있다..그 유물들을 하루라도 빨리 그 유물들을 찾아와야 한다...=우리것이니 당연히 찾아와야 겠지만.= 해외에 밀반출 된 유물 수십만점을 찾아오면..국립 중앙 박물관 정도의 박물관을...강원도.. 충청도..전라도.경상도 각지역에 유물 몇만점씩 보유한 거대한 박물관을 하나씩 짓을수가 있다... ( 외국인들은 한류로 인하여..역사..음식..문화 )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면?... 각 지역마다 거대한 박물관이 있다면? 안정적 고용.....입국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지방으로 분산 시킬수 있는 효과들 낼수 있을것이고... 그들의 소비로 지방 경제에 도움됨은 물론......대한민국을 다녀간 외국인들은 어떤느낌으로 남겠는가?....( 메타 산업이 크질수록 대한민국이 세계인을 유혹 상품을 더 다양하게 많이 내놓을수 있음
한국은 보존에 관심이 적음. 일본은 100년전 전차도 끊임없이 보존하고 관리해서 관광 목적으로도 운용하는데.
국가 야인시대 드라마
뭐가중한데 왕까는소리 고종지금시대이면 그냥똥물쳐맞고
미세먼지 없는 서울 하늘..
옛날이 미세먼지가 더 심했습니다 그 시절에 살아보질 않았으니 알턱이 없지
저거 폐기하고 유럽기술 도입해서 서울트램으로 갔어야 하는데
어휴 일제시대때 급격한 근대화가 이뤄진건 인정해야한다
일본 덕분에 일제시대때 우리나라 많이 발전했지.조선시대보다 생활도 나아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