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아리네요. 눈을 돌릴 새도 없이 사진을 살핍니다. 여고 2학년이던 제가 이제 60이 넘었습니다. 빨간 기와지붕집이 많았던 서울... 아늑했던 골목길 풍경. 어디서나 하늘이 잘 보였던 서울이 이제는 높은 아파트로 막힌 도시가 됐군요. 저때가 행복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아 ㅡ 눈물이 납니다. 1979년이면 저의 대학 2학년 때 이군요. 당연히 잘 아는곳이지요. 명동 코지코너. 몽쉘통통 단골집 이엇구요.. 당시 한강개발 사업 한다는 뉴스도 나올때엿구요. 교련복 시대의 학생 맞구요ㅡ 시청 분수대.. 반포 주공 아파튼 친구집 놀러 갓던 때.. 왕십리가 고향인 저는 응봉동 성수대로 너무 잘 압니다..정말 추억을 먹으며 살고 잇는 요즘 복원왕님의 영상 잘 보앗습니다~~~ 언제나 응원 드립니다..
82년생인 저도 아려 오네요 지하 단칸방에서 4식구가 오손도손 살았을때 가 생각납니다 제 국민학교때 는 박남정, 김완선, 하수빈, 소방차, 서태지... 그리고 저 군생활을 버티게 해주었던 자두 까지 마이마이로 카세트 테이프 늘어질때 까지 듣고 라디오에 노래나오면 녹음버튼 눌러 녹음하고 듣고 다니던 그래서 간간히 노래 앞뒤 부분 디제이 멘트까지 녹음되고 그립습니다 그땐 없이 살아도 행복했는데 지금은 제 밥벌이 하고 굶지는 않게 살고있는데도 그때보단 덜행복하네요 밥벌이에 치어 살다보니 그런가봅니다 우리네 사람들 사는건 어디든 다 똑같나 봅니다
저도 81년생 지금은 신도시 되어버린 양천구의 달동네 단칸방에 살았어요. 옆방 총각삼촌이 매일 놀아주고 과자도 주고 기타치고 노래도 해주던 어린시절 그립네요.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어요..라디오방송을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곤 했던 그 시절이 낭만이 되어버렸어요
@@handsomecar5252그러니까 실제로는 77년생이나 78년생까지 얘기인데, 미디어의 영향으로 그 시대에 살기는 했으니까 80년~82년생 애들이 형,누나들의 문화를 보고 따라 하던걸 자신들의 추억으로 이입시켜 과거를 재구성하는 현상이 강한 상황입니다. 일단 나이가 40대가 되었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었고, 많은 유튜브 등 영상으로 우후죽순 퍼지는 과거 영상들 보면서 그러더라고여. 그런데 막상 당사자들한테 테스트하듯 몇가지 물어보면 실제로 제대로 아는게 없어요 ㅎㅎ 그냥 마이마이 워크맨이 뭔지 아는 것이고, 아직 얘네들 때까지 사용은 되던 것이라. 이제 나이먹었다는 대접도 받고 싶은 공통된 심리라고 할까. 나이 40도 안된 애들이 닭살 돛고, 민망하게 별 변화도 없는 세월인데 추억을 논하고, 지금도 흔한 컵볶기 얘기하고 그러는 세상입니다. 자기 주장이 가장 중요한 성품인 것 만으로 그런 가식적인 감성 흉내가 어설픈 것을 모르고. 지금 한참 나오는 아이돌 누가 있죠? 지금 어느 아이돌이 유행일때의 세대라 하면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많아야 초등학교 1학년 정도에서 5~6살인 애들이 나중에 지금의 아이돌과 문화를 자신들의 추억이라 떠드는 것과 같다고 보면 딱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정말 그렇게 해도 그건 아니다~라고 못하겠는게 아기때부터 핸드폰, 유튜브, 게임, sns를 하니 나중에 지금의 20대, 30대와 그냥 맞먹을라고 하겠습니다 ㅎㅎㅎ
@@handsomecar5252아 그리고, 위에서 생활 환경이나 일부 내용은 80년생이나 80초반생들도 실제 경험할 나이에요. 라디오로 녹음하고 그런 것은 실제 해당세대인 세대들에게 배워서 할 수 있고, MP3세대임에도 굳이 워크맨을 써보고 싶을 수는 있어요. 단지 그 세대는 아닌데, 그 세대에게 가장 불편해 하면서도 모순적이게 그 세대에 포함되고 싶은 공통된 심리인 것입니다. 여자라면 지금 애엄마 된 나이고. 참~ 가장 유별나고, 급변하고, 속썩이고, 말안듣고, 뚱~...하고, 개기고, 왕따시작의 세대이고, 갑자기 급변하고 요즘 애들의 시초가 된 애들이 80년생, 81년생, 82년생인데...... 그때부터 성문화 변화, 연애문화 변화, 세대갈등 모든게 시작되어 버렸네요.....
감사합니다 ^^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옛 추억들과 지내온 세월을 회상하게 하는 소중한 영상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신경을 일깨우는 잔잔하면서도 아침 안개처럼 스며드는 낙원의 배경 음률~ 철없이 살아온 지난 시간들~ 무엇을위해서 그토록 삶의 전쟁터를 누비며 헤매였던 것인지... 모든 일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였을터인즉 이시간 이후로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데 좀더 많은 노력을해가고 싶다 내일을 알수없는 나그네가~~
0:38 자하문길 이예자 한복은 건물은 다르지만 지금도 그자리에서 장사하시고 김옥산부인과 건물은 앞외벽만 리모델링하고 뒤에 전당포 건물은 저모습 그대로 지금도 있네요 2:14 중랑교는 지금은 대로가 만들어졌네요 3:27 독립문고가는 현제 현저고가로 변경되었네요 고가 옆으로 아파트들이 많네요 3:42 모래내 고가 근처도 발전많이 했네요 전 서울 살지않아서 영상이랑 카카오맵하고 같이보며 지도도 찾아봤습니다
Thank you very much! I was 8 years old. Wow...time flies. Now that I am 52 years old and living in the US, I really miss those old days. Thanks again for the great clips!
아~ 무학여고 행당국민학교 사진이 있네요 제재소도 보이고 육교 옆 보건병원과 예전에 살았던 우리 집 지붕까지... 명절이 되면 저 길에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서 대여 자전거 성수기였죠 그 때 동네 아이들이 죄다 몰려 나와 도로에 바글바글했었고 한 시간에 10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이라면 안전문제 때문에 어림도 없겠지만 친구들과 응봉동 언덕부터 제재소까지 다운힐 했던 짜릿함이 새록새록 하군요
79년도에 제대를했는데 강원도 고성 최전방 수색대에서 제대 1개월 채안남기도 10.26을 맞아 제대가 2주정도 연기되었던적입니다. 월급이 가물가물하지만 병장급여가 사오천원이었지만 3개월마자 100% 상여금 나오고 전방이라 하루 90원씻 생명수당도 받아 휴가때 부모님께 손안벌리고 잘쓰고 귀대했던적이 벌써 45년도 넘은 기억입니다. 귀한사진 고맙습니다
79년 화천 15사단 적근동대대에서 제대했는데 제 뒷 분들은 제대가 늦어졌나보군요. 10.27일(대대장님께 제대신고 하는 날) 아침 6시경 비상, 반납했던 따블백 소총 다시 지급 받고 부대 옆 소초 근무서다가 중식 후 제대신고 하라는 연락 받고 제대했습니다. 개구리복 입고 서울 오는 버스에서 승객분들이 제대 가능하냐고 묻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서울시내 영상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79년생이라서 태어났을때 서울은 어땠나 하면서 보고 있는데 8:11 에 어릴때부터 성인 되어서까지 오래 살던 왕십리가 나오네요. 너무 반가워요. 내가 다니던 행당초, 무학여중고, 뒤에 성당도 보이고 신기해요. 지금 전화국 자리엔 다른 건물이 있는것 같고 낮은 건물만 있어서 훤하네요. 지금은 높은 아파트가 꽉 차서 답답하고 좁아보이는데. 옛날 조흥은행 자리도 저땐 단층 건물이었네요. 한 화면에서 할 말이 너무 많아요. ㅋ^^ 오랫동안 살던 왕십리 길이지만 태어났을때 왕십리는 또 달라서 새롭네요. 😊 제 눈이 맞다면 어릴때 살던 동네 골목도 보이는것 같아요. 오른쪽 위 성당 올라가는 길. 재개발 돼서 옛날부터 그리웠는데 이렇게라도 보니 넘 좋아요. 🥹
1970년대 어릴때 놀던 하천가도 보이는듯 하네요 못살았지만 지금보다 오히려 행복 지수는 높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예전 표현으로 스레트 지붕이라고 하나요 한양대 일대에도 허름한 집들이 많았고 불도 많이 났었습니다. 특히 철로 주변에 아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주 좋은 추억의 영상 고맙습니다. 늘 고맙게 시청하고 있어요. 마치 옛날 라디오 듣는 마냥. 75 년에 사당 국민학교 입학했어요. 봉천동 넘어가기 전. 삐라 줏으러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88 번 남성 시장 바로 옆 남성 버스 종점. 그 근처 만화방에서 오전, 오후 각각 10 원 씩 내면서 하루 종일 살았어요. 떡볶이 긴 줄 3 개 10 원으로 때우면서. 동생이 남성 국민학교 오전반 다녔어요. 남성 극장에 엄마하고 친구 식구들하고 몇 번 놀러 갔었습니다. 북괴의 도끼 만행 사건을 알리려 사진을 붙여 놨는데 너무 잔인했습니다. 한강에 수영하러 다닐 때 반포 아파트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습니다. 전혀 다른 꿈의 세상을 바라보며 이 곳엔 누가 살까 매우 궁금했었습니다. 흑백 영화같이 주마등 처럼 지나갑니다.
80년도 중동국민학교 입학, 옛 마포구청 자리에서 사천교 방향 사진에서 산위 마주앙 간판이 린나이로 바뀌어 4~5년 그대로 기억되며, 바로 아래 낙원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 사천교 건너 회생병원 (화재도 있어죠) 모래내 시장 입구 국민은행, 은좌극장(철인28호, 똘이장군) 경인선 가좌역, 땡땡거리가 기억이 나네요.
이제 나이 70에, 한창 20대때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려오고, 그때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특히 배경음악이 가슴을 파고 드네요~ 복원왕의 옛 사진은 최고!
어르신 대한민국의 발전을위해 열심히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먹고 잘살게된 이유는 어르신 같은 윗세대분들의 크나큰 희생 덕분이란걸 잘 압니다 감사합니다 그 시대 정신을 이어 받아 저희 세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어르신 덕분에 저희가 누리는 이 풍요로움 늘 감사히생각합니다. 건강하세요.
그때 열심히 일해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거라고 저도 생각해요 감사드립니다. ^^
누군가의 청춘 시절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신기하고 감회가 새롭네요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어르신 감사합니다 ❤❤더 건강하세요~!!
가슴이 아리네요. 눈을 돌릴 새도 없이 사진을 살핍니다.
여고 2학년이던 제가 이제 60이 넘었습니다. 빨간 기와지붕집이 많았던 서울... 아늑했던 골목길 풍경. 어디서나 하늘이 잘 보였던 서울이 이제는 높은 아파트로 막힌 도시가 됐군요.
저때가 행복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저랑 갑이네요
정말 공감합니다ㅠㅠ
👵
할매! 헛소리 말고 잠이나 주무쇼
저도 경희고 78학번 ㅋ
서울공고 78학번. 마지막 장면 ... 지붕위의 TV안테나 ...
저때 국민학교 다니며 보던 서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금 저때 부모님보다 더 나이가 들었지만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 젊으셨던 부모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눈몰이 납니다 추억을 생각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당시 바나나는 지금의 소고기 가격과 비숫했다.
생일이나 아플때 먹는 과일 이었음.
사과와 배는 정말 저렴했었지
공감 ㅠㅠㅠ
말씀도 아름답게 하시네요 ㅎ 건강하세요!
너무나도 익슥한 풍경들....
@user-xx1ru4cb1상류층만 먹던 바나나.r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ㅡ 눈물이 납니다.
1979년이면 저의 대학 2학년 때 이군요. 당연히 잘 아는곳이지요.
명동 코지코너. 몽쉘통통 단골집 이엇구요..
당시 한강개발 사업 한다는 뉴스도 나올때엿구요.
교련복 시대의 학생 맞구요ㅡ
시청 분수대..
반포 주공 아파튼 친구집 놀러 갓던 때..
왕십리가 고향인 저는
응봉동 성수대로 너무 잘 압니다..정말
추억을 먹으며 살고 잇는 요즘
복원왕님의 영상
잘 보앗습니다~~~
언제나
응원 드립니다..
와 79년에 대학생이셨으면 힘들게 공부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하셨겠네요. ^^
79년이면 군대가기전 한참 데모하던 땐데 몽쉘하고 사보이호텔 커피숍에 자주 갔었는데 몽쉘통통은 없어졌던데요. 그 골목 눈 감고도 다녔는데.. 이제 추억에만 남아 있네요.
58개띠
@user-jy2z57년~닭x8sv5i
저도 대학 2년 다니다 군대 갈때네요 ㅎ
단순한 유튜버가 아닌, 오늘날의 역사를 보존하는 귀한 일을 하시는 유튜버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계속 힘내주세요~!!응원합니다!
가슴 한켠에서 그 시절의 기억들이
파편처럼 아련하게 떠오른다
가난했던 개도국 국민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그 시대를 개척해오신
우리의 어버이들과 선후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장사도 잘 되고 정도넘치고 배만 부르면 행복한 그리운 그시절 그립습니다~
저때 사람들은 왜이리 다들 표정이 따뜻해보이냐. 인심있게 보인다. 요즘 사람들 보면 진짜 빡빡한삶에 찌들어있는 느낌인데. 저때사람들은 그렇게 부자도 아니였는데 뭔가 정이 많이 느껴지네. 낭만의 시대다. 진짜
지금 보다 덜 풍요 했지만... 희망이 가득 했던 시절...
정말 많이 발전한 대한민국... 위대한 대한민국이 더 발전해서 젊은 세대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가슴이 먹먹하네요 10살 무렵 어린눈에 담았었던 그리운 풍경 잘보고 갑니다 너무 고마워요
정말 하루 하루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죠.뭉쿨함이 식지 않네요.
소중한 추억 다시 피어나게 만드는시간여행. 자료입니다.감사합니다.
마포로타리에 소방서 사진보니 반갑네요 79년11월에 결혼하구 이제 칠십넘었네요 아련한추억에 감회가 새롭네요 고맙습니다
😍
원래 컬러사진이었는데 흑백을 입힌듯 좋은 솜씨의 복원왕님! 할아버지 사진 복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창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항상 행복하세요 ~~
와우 내가 영등포에서 골라골라 옷장사 하던 자리가 나왔네요 않자있는 아줌마가 나의 장모님 감회가새롭습니다 복원왕님 귀한사진 감사합니다
와😍😍😍😍😍😍
헉..
우아
럴수럴수.
두건 쓰고 빨간 목도리 두른 분요?
혹시라도 돌아가신 어머니까 찍혔을까 유심히 보게됩니다. 저 시절은 참 가난했지만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니 제일 행복한때 이기도 합니다.
댓글이 너무 슬프고 따뜻해요 ㅠㅠ
마음이 뭉클하네요~
눈물이 핑 ㅠㅠㅠㅠ
와..석촌호수..그 자리가 이렇게 변하다니 놀랍습니다.😢
79년..격동의 70년대를 살아내셨던
엄마아빠들...
넘그립네요
저는 88년생이지만 영상을 보고 가심이 뭉글뭉글 하네요... 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으시고 늦둥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신기하고 신비롭네요..ㅎㅎ
-부모님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대한민국 88년 세게올림픽 주체국
79년 8월에 제대하고 그해 11월에 부산에서 청운의 꿈을안고 서울에 첫 둥지를 틀었던 모래네 시장근처. 지금은 고향 부산에서 살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살던 그때가 아름다웠습니다.회상하면서 웃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부아파트예요 수색까지 ㅎㅎ 그당시는 가재,자라등이 많아서 가재울 ㅎ 저희가 시장근처에서 장사해요 ㅎ 참 외환은행 반지하 건물하고 시장응 일부 남아있어요 순대국집도 ㅎ
아련합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살았어요
이과정들생각하니
가슴이가득찹니다
귀한영상
감사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감사 합니다.
서촌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딱 집앞 사진이 나오네요 참 반갑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동네예여^^
복원왕님 채널은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를 주네요.
보고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아련해지는게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맺힙니다.
좋은채널 운영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항상 행복하세요👍
20대 초반 자주 다녔던 신촌시장과 서울의 곳곳을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감사히 봅니다~^^
82년생인 저도 아려 오네요 지하 단칸방에서 4식구가 오손도손 살았을때 가 생각납니다 제 국민학교때 는 박남정, 김완선, 하수빈, 소방차, 서태지... 그리고 저 군생활을 버티게 해주었던 자두 까지 마이마이로 카세트 테이프 늘어질때 까지 듣고 라디오에 노래나오면 녹음버튼 눌러 녹음하고 듣고 다니던 그래서 간간히 노래 앞뒤 부분 디제이 멘트까지 녹음되고 그립습니다 그땐 없이 살아도 행복했는데 지금은 제 밥벌이 하고 굶지는 않게 살고있는데도 그때보단 덜행복하네요 밥벌이에 치어 살다보니 그런가봅니다 우리네 사람들 사는건 어디든 다 똑같나 봅니다
헉 62년생인 저와 같은 시대문화를 누리셨군요.박남정 김완선 이하....
저도 81년생 지금은 신도시 되어버린 양천구의 달동네 단칸방에 살았어요. 옆방 총각삼촌이 매일 놀아주고 과자도 주고 기타치고 노래도 해주던 어린시절 그립네요.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어요..라디오방송을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곤 했던 그 시절이 낭만이 되어버렸어요
81,82년의 추억이라구요? 아닐거같은데...난 70년대 초반인데도 그정도는 아니였는데...
@@handsomecar5252그러니까 실제로는 77년생이나 78년생까지 얘기인데, 미디어의 영향으로 그 시대에 살기는 했으니까 80년~82년생 애들이 형,누나들의 문화를 보고 따라 하던걸 자신들의 추억으로 이입시켜 과거를 재구성하는 현상이 강한 상황입니다. 일단 나이가 40대가 되었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었고, 많은 유튜브 등 영상으로 우후죽순 퍼지는 과거 영상들 보면서 그러더라고여. 그런데 막상 당사자들한테 테스트하듯 몇가지 물어보면 실제로 제대로 아는게 없어요 ㅎㅎ 그냥 마이마이 워크맨이 뭔지 아는 것이고, 아직 얘네들 때까지 사용은 되던 것이라. 이제 나이먹었다는 대접도 받고 싶은 공통된 심리라고 할까. 나이 40도 안된 애들이 닭살 돛고, 민망하게 별 변화도 없는 세월인데 추억을 논하고, 지금도 흔한 컵볶기 얘기하고 그러는 세상입니다. 자기 주장이 가장 중요한 성품인 것 만으로 그런 가식적인 감성 흉내가 어설픈 것을 모르고. 지금 한참 나오는 아이돌 누가 있죠? 지금 어느 아이돌이 유행일때의 세대라 하면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많아야 초등학교 1학년 정도에서 5~6살인 애들이 나중에 지금의 아이돌과 문화를 자신들의 추억이라 떠드는 것과 같다고 보면 딱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정말 그렇게 해도 그건 아니다~라고 못하겠는게 아기때부터 핸드폰, 유튜브, 게임, sns를 하니 나중에 지금의 20대, 30대와 그냥 맞먹을라고 하겠습니다 ㅎㅎㅎ
@@handsomecar5252아 그리고, 위에서 생활 환경이나 일부 내용은 80년생이나 80초반생들도 실제 경험할 나이에요. 라디오로 녹음하고 그런 것은 실제 해당세대인 세대들에게 배워서 할 수 있고, MP3세대임에도 굳이 워크맨을 써보고 싶을 수는 있어요. 단지 그 세대는 아닌데, 그 세대에게 가장 불편해 하면서도 모순적이게 그 세대에 포함되고 싶은 공통된 심리인 것입니다. 여자라면 지금 애엄마 된 나이고. 참~ 가장 유별나고, 급변하고, 속썩이고, 말안듣고, 뚱~...하고, 개기고, 왕따시작의 세대이고, 갑자기 급변하고 요즘 애들의 시초가 된 애들이 80년생, 81년생, 82년생인데...... 그때부터 성문화 변화, 연애문화 변화, 세대갈등 모든게 시작되어 버렸네요.....
70년대가 벌써 50년전이라니?!! 신이시여😱😭
시골에서 1978년 서울로 상경하여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살고 있네요.
당시에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던 생각이 어렴풋이 나네요.
아련한 옛 추억이 되살아 나네요😅
70년대 이문동에서 살았는데
지금 동부간선도로자리 중랑교 뚝방 아래 공터에서 친구들하고 놀고 새서울 극장에서 영화보던 때가 생각나네요
이문극장도 있엇은데~
반갑습니다, 제가 5학년때네요, 태능시장 사잇길로 넘어가 새서울극장가서 영화보곤 했는데, 중학교때는 시험끝나고 중화극장에서 콰이강의다리 단체관람도 했지요😂
참 옛날 생각나네요 이동네들
이문동 살다가 마천동 으로 이사가는데 옛날이 생각나네요
우와 어렸을때 동네모습 감동입니다.
우리아빠 79년에 도매상하셨는데..지게로 배달하시다 자전거한대사서 소주 . 쌀. 배달하시면 걸어서 따라갔다 올때 지게에 자전거에 타고오던 기억이나네요..저 국민학교 1학년때였는데.. 돌아가신 아빠생각에 넘 슬퍼져요..ㅜㅜ
그래도 잘봤습니다..성실한 구독자입니다 .. 감사합니다~^^
자전거 뒤에 타신 모습이 눈에 그려지네요.
거의 동년배에다가
우리 아부지도 쌀 도매업을
하시고 일찍 돌아가신 ㅠ
10살 때요.
강남 쪽 헌인능 소풍 댕기는
촌 동네입니다.
72군요..전 73 입니다 코찔찔 흘리던 시절이지욯ㅎㅎ
아련 하고 가슴이 저립니다 ...
감사합니다 ^^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옛 추억들과 지내온 세월을
회상하게 하는 소중한 영상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신경을 일깨우는 잔잔하면서도 아침 안개처럼 스며드는 낙원의 배경 음률~
철없이 살아온 지난 시간들~
무엇을위해서 그토록 삶의 전쟁터를 누비며 헤매였던 것인지...
모든 일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였을터인즉
이시간 이후로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데 좀더 많은 노력을해가고 싶다
내일을 알수없는 나그네가~~
저시절은 젊음도있었는데 변화대는세상속은 저를 이만큼늙음에시간에왔응니다 가슴아려오네요
덕분에 추억소환했네요.
저때 저도 서울 살았어요. 유학갔었습니다.
45년이나 되다니.....😢
1979년군입대 한해 지난모습 새록새록 기억이 새롭읍니다 감사감사 합니다❤❤❤
아....볼때마다 감사해요 75년생인 저도 신촌에서 자랐기에 저 사진속 기어납니다. 그때가 그리워요..신촌시장 다주쇼핑센타 현대쇼핑센타...아...그립네요...
감사해요 ㅎㅎㅎ
눈물나지만 오늘이 또긴시간때 돌아보면 후회안게 열심히 행복하게 사려고 노력할겁니다
흘러간 과거지만 그때가 그립습니다..!!
1975년 군 입대 1978년 3월에 제대 젊음과 꿈이 있던 그때를 기억나게 해주시는 영상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ㅋㅋ 같은 시기에 군 생활을 하셨군요...75군번 78 2월 전역..
1970년생인데 1971년부터 난곡에서 지금도 살고 있어요. 난곡구판장 나와서 깜짝놀라고, 반가웠습니다. 복원왕😊은 추억왕
아이구나이오십이넘었는데난곡산다니부지런히하셔서탈출하시기바랍니다❤❤❤
영상을 보고 있으려니 괜시리 눈물이 나오네요. 이때로 되돌아만 갈수 있다면~~~
귀한 영상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량교 살았던 기억이 나네요 ~ 그때가 좋았는데~^ 옛날 생각이 나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장안교에서 살았지요~~ㅎㅎㅎ
40년짜리 미국 교포 입니다. 79년도 대학 2학년때 그때 서울 모습 보니 참으로 좋으네요. 엇 그제 같은데.. 좋은 영상 감사 감사드립니다
잘봤습니다. 자주다니는 길의 옛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부모님세대 격동의시절 고생하신 선배님들의 노고 기억하겠습니다.
복원 왕님은 아시는지
사진으로 이런감동을 주시다니 감사해요~~~^^;
0:38 자하문길 이예자 한복은 건물은 다르지만 지금도 그자리에서 장사하시고
김옥산부인과 건물은 앞외벽만 리모델링하고 뒤에 전당포 건물은 저모습 그대로 지금도 있네요
2:14 중랑교는 지금은 대로가 만들어졌네요
3:27 독립문고가는 현제 현저고가로 변경되었네요 고가 옆으로 아파트들이 많네요
3:42 모래내 고가 근처도 발전많이 했네요
전 서울 살지않아서 영상이랑 카카오맵하고 같이보며 지도도 찾아봤습니다
자하문터널
지금도 생각납니다
1.21 무장공비
그때 까까머리였는데
70줄에서 흑흑흑
감사합니다
음악이 밤하늘을 타고 먼저떠난 친구들생각에 먹먹해지네 그곳은 아프지않기를.
중랑교 아래서 고무 튜브타고 놀던때가 그립습니다. 집에 가는길에 주머니에 동전이 몇개 있으면 시원한 냉차도 사먹고 했죠. 영상 감사합니다.
중랑천(장평교 부근)에서 익사 사고도 있었습니다.
@@권덕중 .. 익사 사고도 있었겠죠. 가운데로 들어가면 깊어서 저희는 얕은데서만 놀았던걸로 기억합니다. 국민학생들끼리 와서 놀곤 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아찔했네요.
어릴적이네요
현재보다 제일 행복했던 시절
Thank you very much! I was 8 years old. Wow...time flies. Now that I am 52 years old and living in the US, I really miss those old days. Thanks again for the great clips!
무학여고 근처 살았는데 깜짝 놀라네요 아~옛날~이~여~어~~~
고맙습니다
😍
과거란. 그시절 뭐가 그리 화나고 미워서 서로 싸웠던지, 미래에 돌아보면 참 큰일이 아닌데 말이죠. 지금이라도 서로를 용서할 용기를 주길
그러면서 현재도 화나고 미워하고 싸우죠
미래에는 큰 일도 아닐건데
아~ 무학여고 행당국민학교 사진이 있네요 제재소도 보이고 육교 옆 보건병원과 예전에 살았던 우리 집 지붕까지...
명절이 되면 저 길에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서 대여 자전거 성수기였죠 그 때 동네 아이들이 죄다 몰려 나와 도로에 바글바글했었고
한 시간에 10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이라면 안전문제 때문에 어림도 없겠지만 친구들과 응봉동 언덕부터 제재소까지 다운힐 했던 짜릿함이 새록새록 하군요
우리 동네는 30분에 50원이었던것 같은데...
@@hornbykim6681아! 50원이 맞는거 같아 요 ^^;;
우리집은 천주교위라 짤렸네요~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었네요.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살포시. 구독. 누르고 갑니다. 건강 하세요😂😂😂😂
감사합니다😍
눈물나네요. 외세의 침략과 전쟁 후 폐허속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우리 민족과 현재 세계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우리민족 한국인들 모두모두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1978년생이고 어릴때부터 쭉 연희동 살고 있는데요. 가슴이 아려오고 한번은 가고 싶네요.
세월이 빨리 흐르네요.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복원왕은 우리를 추억으로 여행시켜주는 타임머신같아요. 살기는 어려웠지만 인정은 지금의 수십배...^^^ 고1때 학교갔다가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집에 일찍 귀가시킨게 생각나네요. 그립다. 언제 이리 화살같이 지나갔을꼬~~~~ 감사드립니다.
저당시 조림사업도 많이 하였지만 삼부토건 등 많은 토목건설사들과 인부나 농민들을 동원하여 사방사업 이라는 도로정비와 산을깍아
길을 만들고 비가와서 움푹파인데 메꾸고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작업들도 참많이 했습니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도 생소한 곳이 많군요. 당시에 도로가 저렇게 넓고 깨끗했는 지 기억이 가물! 귀한자료 감사합니다
79년도에 제대를했는데 강원도 고성 최전방 수색대에서 제대 1개월 채안남기도 10.26을 맞아 제대가 2주정도 연기되었던적입니다. 월급이 가물가물하지만 병장급여가 사오천원이었지만 3개월마자 100% 상여금 나오고 전방이라 하루 90원씻 생명수당도 받아 휴가때 부모님께 손안벌리고 잘쓰고 귀대했던적이 벌써 45년도 넘은 기억입니다. 귀한사진 고맙습니다
나는 79년 10월25일 박통 서거하기 하루전 제대했음 내 동기생은 제대특명이 26일이라서 2주 뒤 제대함 내 동기랑 같은 케이스였군요
1979년 병장 월급 4000원 2000년 뱡장월급 15000원 ㅋㅋㅋㅋ
유튜브 채널' 장군멍군' 하시는 분 사관생도 였던 시절...
82년 10월에 전역했는데 당시 병장 봉급이 3,800원 이었습니다.
79년 화천 15사단 적근동대대에서 제대했는데 제 뒷 분들은 제대가 늦어졌나보군요. 10.27일(대대장님께 제대신고 하는 날) 아침 6시경 비상, 반납했던 따블백 소총 다시 지급 받고 부대 옆 소초 근무서다가 중식 후 제대신고 하라는 연락 받고 제대했습니다. 개구리복 입고 서울 오는 버스에서 승객분들이 제대 가능하냐고 묻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서울시내 영상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가슴이짠한 추억이 밀려오네요
영상 최고네요.
아련합니다.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적한 서울모습이라니 너무 평화롭네요 지금은 도로위뿐 아니라 골목 골목 사람보다 온통 차가 많은세상인데 차뿐 아니라 오토바이 자전거 등등 사람보다 온갖 차들 뿐인데 옛날모습 보니 너무 평화롭고 멋과 낭만이 있어요
조금있으면 초저출산으로 다시 거리와 도로에 사람들과 차가 많이 보이지 않을겁니다
아는 동네들이 나오니 너무 반갑고 신기합니다!!!영상 감사합니다❤
79년생이라서 태어났을때 서울은 어땠나 하면서 보고 있는데 8:11 에 어릴때부터 성인 되어서까지 오래 살던 왕십리가 나오네요. 너무 반가워요. 내가 다니던 행당초, 무학여중고, 뒤에 성당도 보이고 신기해요. 지금 전화국 자리엔 다른 건물이 있는것 같고 낮은 건물만 있어서 훤하네요. 지금은 높은 아파트가 꽉 차서 답답하고 좁아보이는데. 옛날 조흥은행 자리도 저땐 단층 건물이었네요. 한 화면에서 할 말이 너무 많아요. ㅋ^^ 오랫동안 살던 왕십리 길이지만 태어났을때 왕십리는 또 달라서 새롭네요. 😊
제 눈이 맞다면 어릴때 살던 동네 골목도 보이는것 같아요. 오른쪽 위 성당 올라가는 길. 재개발 돼서 옛날부터 그리웠는데 이렇게라도 보니 넘 좋아요. 🥹
우왕 나도 79년생 . 나랑 같은 여고 다녔구나! 칭구야 반갑다 ㅎㅎ 1학년때 변세화 쌤 반였네😊
@@Vingving1234 변세화 선생님을 아는거 보니 친구가 맞겠구나. 거의 30년 전이라 누가 담임이었는지 다 잊어버렸네. 여기서 친구를 만나서 반갑고 아는척 해줘서 고마워~^^.
제가 국민학교1학년일때네요..
저시절이 너무그립습니다 ..
복원왕님 영상 잘보고갑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신촌 보니 반갑네요.1974년도에 걸어다니던 곳인데. 서울역 후암동 학교에서 ..ㅜㅜ
1970년대 어릴때 놀던 하천가도 보이는듯 하네요 못살았지만 지금보다 오히려 행복 지수는 높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예전 표현으로 스레트 지붕이라고 하나요 한양대 일대에도 허름한 집들이 많았고 불도 많이 났었습니다. 특히 철로 주변에 아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요즘 사진 같이 너무 선명하여 깜짝 놀랐어요 .. ✨ 신기하고도 멋진 복원왕 선생님의 세계 👏🏻
감사합니다 🙂
부산사람이라 모든 화면이 낯설지만 가슴이 찡합니다.....1979년이면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 들어갈 무렵이네요...
가진 게 넉넉한 사람도, 부족한 사람도 그냥 그런대로 나름대로 잘 어울리던 시절이고... 모두 힘들었지만 노력하면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던 시절이었지요.. 배경음악과 함께 영상을 보자니 남는 건 아련한 그리움 뿐입니다.... ^^
왜 이런 옛날 사진들을 보면 가슴 한 곳이 뭔가 먹먹하고....
79년도 나라에 슬픈일도 있었지요 그때나이가 20세청춘 이었는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때친구들이 보고싶어지는 영상감사합니다👍
저때에는 제가 중2였는데,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납니다. 그리고 5년후부터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지요. 저 당시에는 힘든 시기였지만, 돌아갈 수 있다면 부모님께 효도하고 더 열심히 살아볼 것 같습니다.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금화터널 요금소
오른쪽 판자촌
내가 살던 나의고향
독립문
현저동
네식구서 힘들게 살았지만
정이 많던 동네~~
눈물 납니다~~
어릴 적 살던 동네도 나오네요…물론 기억에는 없지만…너무 아련하고 또 그립습니다. 다음 주말에 돌아가신 아버지 뵈러가야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사진에 tv안테나가 똭 보이니 바람불고 비오면ㅎㅎ 마포에서 아현동...참 옛날이다그죠~~덕분에 그시절을 떠올려봤네요.잘보고갑니다^^
옛모습이 정겨운 배경음악과 어우러져 마음을 잔잔케 하는 힐링영상이네요😊 감사합니다. 사진속에 많은 여성분들이 스카프로 머리를 둘러서 턱에 묶으신 모습을 보면서, 저의 어머니께서도 그렇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
저시절 대학교 2학년
다니던 꿈많은 청년이 였지요
이젠 할배가 되었지만
참 추억 아련하네요!
참으로 멋진 추억의 영상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항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복원 왕을 보면서 국가가 국민을 위해 큰 일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확실히 차량이 적던 시절이라 모든게 조용하고 평화스러워 보인다
교련복 추억이 아련합니다 헤화동에 있던 경신고등학교 82년도에 졸업했습니다 정문은 혜화동 로타리로 후문으로 가면 삼선교 ㅎㅎ기억을 일깨워준 사진들 감사합니다
경신고 82년도 입학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오~ 저 김옥산부인과 기억나요~ 왜이리 눈물이 나죠 ㅠ.ㅠ😂 옛날이 더 정겹고 좋네요~😊
전축..턴테이블
픽업 트럭 .. ...😢
너무 아~~~련..ㅠ
좋은 추억들...
영상 감사합니다
와.. 디카로 막 찍은듯 한 선명함
잘 감상하고 갑니다
79년도에 국민학교6학년이었는데...지금은 환갑을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있네요..,.와 세월빠르다
나랑 동갑이시네요. 박 대통령 서거했다고 분향소 갔던 기억남
그렇넹. 면사무소분향소가서 반장이 향에 불붙히는데 . 성냥불이 안켜져 키득 키득했던기억이ᆢ
와 진짜 가슴뭉클하고 감동적이네요
마포에서 바라본 사진에 제가 태어나고 공부했던 동네를 보니 기분이 묘하네요
공덕국민학교 졸업 하셨군요 ㅋ 서울여중 수도공고 소의국민학교 마포국민학교 경보극장 대성극장 마포체육사 등등 ㅎ
마포가 고향이고 올해 70이랍니다. 소의초등 1학년 다녔음
공덕오거리에서 추억이 생생합니다.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한 자료들을 어디서 구하시는건지... 볼때마다 대단하십니다. 항상 즐겨보고 있습니다!!👍👍👍
소중한 영상 늘 감사히 봅니다!! 고맙고 항상 건강하세요!!
아주 좋은 추억의 영상 고맙습니다. 늘 고맙게 시청하고 있어요. 마치 옛날 라디오 듣는 마냥. 75 년에 사당 국민학교 입학했어요. 봉천동 넘어가기 전. 삐라 줏으러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88 번 남성 시장 바로 옆 남성 버스 종점. 그 근처 만화방에서 오전, 오후 각각 10 원 씩 내면서 하루 종일 살았어요. 떡볶이 긴 줄 3 개 10 원으로 때우면서. 동생이 남성 국민학교 오전반 다녔어요.
남성 극장에 엄마하고 친구 식구들하고 몇 번 놀러 갔었습니다. 북괴의 도끼 만행 사건을 알리려 사진을 붙여 놨는데 너무 잔인했습니다.
한강에 수영하러 다닐 때 반포 아파트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습니다. 전혀 다른 꿈의 세상을 바라보며 이 곳엔 누가 살까 매우 궁금했었습니다. 흑백 영화같이 주마등 처럼 지나갑니다.
저는 74년에 사당국민학교 입학했고 다음년에 남성국민학교로 옮겼습니다
남성극장도 참 오랜만에 듣는 군요
반갑습니다
제 고향이 나오네요 난곡~~~
우리들.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님 들께. 감사함을. 느낌니다...
그때 그시절 이네요
당시에 부모님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와 ! 모래내 고가차도 나오네요 ㅋ 모래내 살았었답니다 ㅋ 신촌시장은 지금 현대백화점 근처 였던거 같기도... 암튼 옛 영상을 보면 참 서글퍼 지네요 그때 그사람들은 다 어디로갔을까 ? ㅠㅠ
80년도 중동국민학교 입학, 옛 마포구청 자리에서 사천교 방향 사진에서 산위 마주앙 간판이 린나이로 바뀌어 4~5년 그대로 기억되며,
바로 아래 낙원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 사천교 건너 회생병원 (화재도 있어죠) 모래내 시장 입구 국민은행, 은좌극장(철인28호, 똘이장군)
경인선 가좌역, 땡땡거리가 기억이 나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과거로 잠시 여행을 다녀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