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19 철거되는 '남대문경찰서' : 이 건물이 퇴계로 끝 지금 서울역 환승센터 중앙 쯤에 있었는데 화약 발파로 철거 한다 소문이 나서 구경꾼이 운집했지만 공발(空發 화약만 터지는 것)이 일어나서 먼지만 풀썩 일어나고 건물은 멀쩡해서 결국 장비로 부셨던 기억이 납니다.
북괴의 남침으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잃은 채로 다시 시작한 나머지 너무 급하게 나라가 발전했습니다. 모든 것엔 순서와 단계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죠. 그러다 보니 지금 세대가 풀어야 할 실타래가 너무 꼬여있네요. 베이비 붐 세대가 보기엔 지금이 훨씬 좋은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여야의 이념대립은 이제 제발 멈추고 이 대한민국을 다시 세워줄 리더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희망이 가득했던 그 시절 처럼 지금의 젊은 세대가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갖는 날이 오길 바랄 뿐 입니다.
감회가 새롭읍니다. 저때가 대학 1학년때인데 , 신진 자동차 택시 와 버스 들, 정겹읍니다. 정말ㅇ로 눈한번 껌뻑했드니 세월이 수십년 흘렀다는 옛 사람들의 말이 정확합니다. 이시절 태어난 사람들이 56살 이니 ! 내나이도 70대 중반이고! 중화학공업의 역군이였죠. 또 열사의 나라에서도 고생했고!ㅎㅎ후손들이 잘살면 됬죠! 정치인 빼고 다 성장했는데!
@@이상한유튜버이영우 월급 20만원은 어림도 없음. 경기도행정역사관에 전시된 1968년 5월 공무원 월급명세표를 보면 수당까지 다 포함해서 겨우 10,550원이었음. 기자협회가 조사한 1965년 언론사기자들의 평균임금초임이 7,400원(수습기자는 4,300원)이었고 부장급이 겨우 21,200원이던 시절임. 당시 최고 인기직종이고 월급도 많았던 고졸은행원(당시만해도 고졸은 고위학력임)의 첫 월급은 3만원대였고 반대로 공장 근로자는 몇천원수준이었지요. 1968년 3월 박태준 당시 사장이 참석한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첫 이사회에서 직원 급여예산 처리에 상정된 안건에 직원급여 예상항목을 보면 포스코 첫직원의 월급은 수당까지 포함해도 겨우 7,263원에 불과함.
1968년 당시 1원의 가치가 2023년 요새 물가로는 110 ~ 120 원 정도라고 합니다. 자장면이 50원, 극장가격이 130원, 최고급 담배가격이 60원이었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1억원이면 요새로는 110 ~ 120억원정도의 가치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하네요. 하지만 현재 경기도행정역사관에 전시된 1968년 5월 공무원 월급급여명세표를 보면 수당까지 포함해서 겨우 1만 550원이던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이니 단순가치비교보다는 1억원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질거라고 봅니다. 1968년 기자협회가 1968년 11월단에 조사한 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기자들이 8천원 이하의 급료들 받던 시절이었어요.
대단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청과 댓글 감사합니다
참 귀한 자료입니다.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한번쯤 저시절로 가고싶어여
당시에는 그냥 영상일지 몰라서 지금은 대단히 중요한 자료 너무 좋네요 ㅎ
감사합니다
현재 사진과 비교하며 보여주니 더 흥미가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03:58 종로1가 YMCA앞 대로, 04:17 무학재 고갯길...그립습니다
지금은 ymca앞 대로랑 무악재 고갯길 없어졌나요?
우와 정말 눈썰미가 대단하신걸 보니 찐으로 서울 분이신가 봅니다. ymca는 몰라도 무악재는 저기가 어딜까 햇는데 댓글 읽고 보니 그렇겠네요. 거리모습은 완전히 변했는데 웬지모를 느낌적인 느낌이 무악제라는데 공감이 확 옵니다.
9 : 19 철거되는 '남대문경찰서' : 이 건물이 퇴계로 끝 지금 서울역 환승센터 중앙 쯤에 있었는데
화약 발파로 철거 한다 소문이 나서 구경꾼이 운집했지만 공발(空發 화약만 터지는 것)이
일어나서 먼지만 풀썩 일어나고 건물은 멀쩡해서 결국 장비로 부셨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은 다 붙여서 쓰셔야 하이퍼텍스트가 되요 ..
한국의 역사 잘 보고 갑니다
크.. 빅피쳐 시리즈
대한민국 큰그림 오졌다
고생들 많이 했지요
대전도 가능한가요? 중구
베이비붐 세대들이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이네요.
한반에 60명 70명씩 있었던.
산아제한 정책이 본격적이던 시절.
지금과는 다른 세상 이었네요.
지금과 다른 서울 모습 볼 때마다 신기함ㅋㅋㅋ
코로나택시를 보니 요즘 코로나가 다른 의미로 유명한 단어가 되서 느낌이 새롭네요. 아날로그한 택시미터기도 반갑고 6:54에 택시운전은 정말 터프하네요. 택시기사의 운전스타일은 정말 전통인가봅니다.
68년이면 김신조 1.21사태 그시절이네요.
아 맞다. 신세계백화점 앞에 육교가 있었어.
까맣게 잊고 있던 추억이 소환됐네 ㅠㅠ
잘 봤습니다~ (_._)
참 듣기 좋았던 나레이터 목소리가 빠지니 앙꼬없는 찐빵을 먹은듯 하네요.
다음 동영상에선 꼭 듣길 바라요~^^
북괴의 남침으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잃은 채로 다시 시작한 나머지 너무 급하게 나라가 발전했습니다. 모든 것엔 순서와 단계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죠. 그러다 보니 지금 세대가 풀어야 할 실타래가 너무 꼬여있네요. 베이비 붐 세대가 보기엔 지금이 훨씬 좋은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여야의 이념대립은 이제 제발 멈추고 이 대한민국을 다시 세워줄 리더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희망이 가득했던 그 시절 처럼 지금의 젊은 세대가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갖는 날이 오길 바랄 뿐 입니다.
60년대 도쿄보고 이걸 보니 정말 하늘과 땅 차이 라는게 느껴지네.지금 일본이랑 많이 격차를 줄인거 보면 나도 모르게 국뽕이 차오름.ㅜㅜ
👍👍👍👍👍👍👍
감회가 새롭읍니다. 저때가 대학 1학년때인데 , 신진 자동차 택시 와 버스 들, 정겹읍니다. 정말ㅇ로 눈한번 껌뻑했드니 세월이 수십년 흘렀다는 옛 사람들의 말이 정확합니다. 이시절 태어난 사람들이 56살 이니 !
내나이도 70대 중반이고! 중화학공업의 역군이였죠. 또 열사의 나라에서도 고생했고!ㅎㅎ후손들이 잘살면 됬죠! 정치인 빼고 다 성장했는데!
저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 느낄수 밖에없는 점은 너무도 정신없이 지나온것 같습니다. 빨리빨리가 아니라 쉭~하고 지나갔네요. 스마트 폰은 만화에 있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이렇게 힘들여 만든 대한민국을 북괴에, 중공에 두번다시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미국과 쿵짝 하는 일본에 뺐기게 생겼소
그런 재앙은 있어선 안 되죠 ㅠㅠ
@@user-jv6so5mh9k 재앙은 이미 있었습니다
감옥보내야됩니다
1:45 반얀트리 당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수영장 딸린 특급 호텔치고는 가성비 있는 곳이긴 해요 ㅋㅋ
저 시절 리라초등생들은 지금 육십대 후반, 곧 70이 되겠네요.
68년 7월15일 : 중학교 무시험발표. 7.15해방
68년12월5일:국민교육헌장 발표
중요한 자료입니다. 감사합니다~
서울도 옛 건물들이 남아있다면 더 멋스러웠을 텐데 아쉽네요.
대체적으로 화면이 어둡습니다, 밝기 조정을 안 하셨나요?
OPC 동양정밀공업주식회사!
우리나라 가전 3사(삼성,금성,대우)의 밑거름이 된 회사입니다.
내가어렷을때예산초등학교5학년때그당시서을
저 시절로 돌아가는데 선착순 하루에 500만원이라면?
안 가요
라오스는 아직도 저 수준에도 못미치던데.
택시기본요금이60원부터시작이네요,,
대신 월급도 20만원도 안됐지...
@@이상한유튜버이영우 월급 20만원은 어림도 없음. 경기도행정역사관에 전시된 1968년 5월 공무원 월급명세표를 보면 수당까지 다 포함해서 겨우 10,550원이었음. 기자협회가 조사한 1965년 언론사기자들의 평균임금초임이 7,400원(수습기자는 4,300원)이었고 부장급이 겨우 21,200원이던 시절임.
당시 최고 인기직종이고 월급도 많았던 고졸은행원(당시만해도 고졸은 고위학력임)의 첫 월급은 3만원대였고 반대로 공장 근로자는 몇천원수준이었지요.
1968년 3월 박태준 당시 사장이 참석한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첫 이사회에서 직원 급여예산 처리에 상정된 안건에 직원급여 예상항목을 보면 포스코 첫직원의 월급은 수당까지 포함해도 겨우 7,263원에 불과함.
저당시
1억원이면 상당한 돈이 였겠는데 .?
무슨 20원 30원 ,
1968년 당시 1원의 가치가 2023년 요새 물가로는 110 ~ 120 원 정도라고 합니다. 자장면이 50원, 극장가격이 130원, 최고급 담배가격이 60원이었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1억원이면 요새로는 110 ~ 120억원정도의 가치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하네요.
하지만 현재 경기도행정역사관에 전시된 1968년 5월 공무원 월급급여명세표를 보면 수당까지 포함해서 겨우 1만 550원이던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이니 단순가치비교보다는 1억원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질거라고 봅니다.
1968년 기자협회가 1968년 11월단에 조사한 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기자들이 8천원 이하의 급료들 받던 시절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