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작곡가 바흐와 헨델은 어떻게 다른가? 12가지의 다른 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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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9 сен 2024
  • 바흐는 독일 경건주의의 틀에서 살았고, 헨델은 계몽주의의 틀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두 작곡가는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전혀 다른 음악의 길을 걸어갔다. 헨델에 비하여 무명의 작곡가로 살았던 바흐는 오늘날 최고의 작곡가로 추앙받고 있다.

Комментарии • 39

  • @민호-w2f
    @민호-w2f 4 месяца назад +23

    그 위대한 바흐 선생님의 장례식이 저렇게 초라했다니...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면서 너무 안타깝네요

    • @이정환-x7p
      @이정환-x7p 4 месяца назад +3

      바흐는 19세기 멘델스존에 와서야 진가가 드러납니다. 유명한 마태수난곡이 재조명되면서. 헨델은 계속 유명했었고요. 생전의 명성만 놓고보면 비교가 안되죠.

  • @hamjii
    @hamjii 3 месяца назад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두 인간형이라고 생각됩니다. 유학에서는 이걸 爲己之學, 爲人之學으로 분류하더군요. 물론 전자가 바하, 후자가 헨델이겠지요.

  • @Yuntoll11
    @Yuntoll11 3 месяца назад +10

    바흐와 헨델의 음악적 취향이 다른점도 있습니다!! 바흐는 내향적인 성찰과 정서적인 음악경향이 있고
    헨델은 외향적이고 자기과시적이며 화려한 음악색체가 있습니다.메시아.수상음악.왕궁의 불꽃놀이등

    • @justiceleague206
      @justiceleague206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은근히 바흐음악이 반항적이고 저항적이라고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헨델은 순응하는 느낌의 음악이라고 느껴져서요.

    • @yjhong78
      @yjhong78 2 месяца назад +2

      @@justiceleague206
      오, 대단한 통찰력이시네요.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바흐의 음악에선 자유와 진리를 향한 고뇌와 열정이 자주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그러한 음악적 사조가 베토벤으로 이어졌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혹자는 이에 대해 쏘울이 있다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 @shunio1
      @shunio1 15 дней назад +1

      @@justiceleague206 헨델은 거의 들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바흐 공감합니다. 우주적인 느낌도 있구요. 그리고 전 바흐음악이 가장 슬퍼서(?)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론 쇼팽같은 낭만파 음악보다 더 슬프더라구요. 감각적인 슬픔이라기 보다는..... 뭐라 말씀을 잘 못드리겠네요...

    • @justiceleague206
      @justiceleague206 15 дней назад +1

      @@shunio1 바흐의 어떤 곡들은 마치 모든 인류가 멸종한 이후의 평화로운 자연의 섭리만이 존재하는 공간?같이 무결한 원칙같은 느낌이 들어서 때로는 평화 속의 두려움 같다고 느껴지는 곡들도 많은 듯 합니다.
      너무 아름답고 완벽하기에 두렵고 외롭기까지 한 인간미가 존재하지 않는 .... 경지랄까요.

  • @purnmom
    @purnmom 4 месяца назад +10

    하지만 현재 세계 음악에서의 이 둘의 음악적 위상은... (누가 더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 @김영철-p7v
      @김영철-p7v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이 영상의 배경음악도...

    • @gen9280
      @gen9280 3 месяца назад +3

      바흐?❤

    • @purnmom
      @purnmom 3 месяца назад +2

      @@gen9280 👍👍👍👏👏👏🎵🎶🎵🎶

  • @nicolekang237
    @nicolekang237 4 месяца назад +5

    음..헨델은 현대의 한국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았군여.

  • @steampunk329
    @steampunk329 3 месяца назад +7

    I love J.S.Bach! I adore him

  • @JayChoi1118
    @JayChoi1118 11 дней назад +1

    음악의 아버지 바흐, 헨델은?

  • @inchangahn6574
    @inchangahn6574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중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 주입식으로 배웠는데.... (둘이 결혼도 안했으면서....)

    • @justiceleague206
      @justiceleague206 2 месяца назад

      @@inchangahn6574 음악은 애미애비 따로인 호로아인가요? ㅋㅋ

  • @pilgerwh
    @pilgerwh 3 месяца назад +5

    감사하게 잘 들었습니다^^🎉

  • @jaunetournesol
    @jaunetournesol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예술가는 가난속에서 살아야 명작을 만드니~ㅎ 바흐가 훨씬 사랑받는 이유. 예술은 고통속에 피어야 감동을 준다

  • @강신우교회음악강의
    @강신우교회음악강의 3 месяца назад +4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 @이재광-q9f
    @이재광-q9f Месяц назад +2

    바흐의 그 수 많은 후손들은.......다 어디갔나요?ㅠㅠㅠㅠㅠ

  • @김길동-j9z
    @김길동-j9z 4 месяца назад +5

    가난했던 바흐가 20명의 자녀를 어떻게 키웠는지 궁금하네요

    • @tv-lindenbaumtv1058
      @tv-lindenbaumtv1058  4 месяца назад +11

      질문 감사합니다! 바흐는 모두 20명의 자녀(11남 9녀)를 낳았는데, 이 중에서 10명만이 생존하였습니다. 바흐는 항상 경제적으로 시달려야 했고 급료를 따라 자리를 이동하는 일이 빈번하였는데, 이는 많은 자녀들을 거느린 가장으로서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 @hornbykim6681
    @hornbykim6681 3 дня назад

    정말 전부 정반대...

  • @열심-f9e
    @열심-f9e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쳄발로를 초등학교2학년때부터 알게되었죠 장필립라모의 판파리네트?
    바로크음악을 알게된이후로 그 어린아이였던저는 바흐와 헨델. 카운터테너.오르간.클라브생을 무척좋아했지요. 지금도 바로크음악 자주듣고요
    두 음악의 거장이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 @shunio1
    @shunio1 15 дней назад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 조금 다른점이 있네요. 바흐는 궁정음악가 자리까지 올랐었고, 당대에도 바흐음악을 두고 음악가들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질만큼 마에스트로로 인정받았습니다. 당시 궁정음악가는 음악가가 오를 수 있는 최상의 자리였습니다. 바흐가 더 좋은 급료를 받기 위해 이사한 적도 있지만, 급료가 무려 4분의 3이나 깎이는데도 자신의 소신을 따라 이사한 적도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바흐는 나름 부유할때도 있었고, 궁정음악가 지위에도 올랐으며, 당대에도 마에스트로로 인정받았고, 노년의 바흐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그를 보고 싶어 초대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바흐는 온화하면서도 성깔있고 고집이 있어, 정치적인 처신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년에 몸 담았던 라이프치히와 마찰이 있어 임종 시 위상에 맞지 않는 취급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출처는 시공디스커버리사의 바흐전기입니다.

    • @tv-lindenbaumtv1058
      @tv-lindenbaumtv1058  14 дней назад +1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가지로 나누어 답을 드리겠습니다.
      1. 바흐는 당시 프로이센 왕국 내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음악가였습니다. 그러나 유럽 전체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사람이었지요. 바흐는 1717년 바이마르 궁정 오르가니스트에서 쾨텐의 궁정악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옮기는 이유는 3가지인데 첫째는 바이마르 영주가 당시에 죽은 궁정악장의 후임으로 바흐를 임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바이마르 영주와의 갈등 속에서 교회음악 작곡에 환멸을 느끼고 쾨텐에 가서는 세속음악만 작곡합니다. 이때 궁정악장이 되고 경제적으로도 더 많은 급료를 받게 됩니다. 당시 바흐의 가족은 6식구가 있었고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고 있어어 경제적인 이유가 세번째였습니다.
      2. 바흐는 3년 반 만에 쾨텐을 떠나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칸토르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때 라이프치히에서 제시한 급료는 쾨텐의 4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그래도 바흐가 옮길 결심을 한 것은 6가지 이유에서 입니다.
      첫째 큰 도시로 가서 활동하고 싶은 욕망 때문입니다. 당시 쾨텐은 인구 3천명 정도의 시골이었고, 라이프치히는 3만명인 제법 큰 도시였습니다.
      둘째 쾨텐에 살 때 사랑하는 가족이 많이 죽었습니다. 아내 바바라가 죽고 아버지 역할을 하던 큰형이 죽고 친구같은 바로 위의 형도 죽습니다. 바흐는 더 이상 쾨텐에 살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셋째 둘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와 결혼 때문입니다. 16세 연하여 딸 같은 아내와 시골에서 결혼한다는 것이 소문에 휩싸이게 되었고 도시를 떠나는 이유가 됩니다.
      넷째 쾨텐의 영주가 결혼하면서 그 부인이 음악을 싫어하였기에 바흐의 궁정악단 예산이 삭감되었습니다.
      다섯째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바흐는 라이프치히 같은 대학이 있는 큰 도시로 가야했습니다. 당시 장남 프레데만이 14세였고 바흐는 고아로 자랐기에 대학을 못나온 아픔이 있었고 자식들은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싶어했습니다.
      여섯째 종교적인 문제입니다. 바흐는 쾨텐에서 세속음악만 작곡한다가 가족들이 죽어나가고 궁정악단이 어려워지자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시 교회음악에 전념할 수 있는 라이프치히의 토마스교회 칸토르를 자청한 것입니다.
      바흐는 20명의 자녀를 낳았고 10명이 살아남았기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3. 바흐는 1736년 드레스덴의 궁정작곡가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이는 라이프치히 시의회와의 갈등 속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바흐는 이를 위해 드레스덴 선제후 겸 폴란드 왕이었던 아우루스트 3세에게 곡을 헌정합니다. 바흐는 개신교인 임에도 불구하고 미사곡을 써서 가톨릭 신자인 왕에게 바침으로 명예를 얻은 것이지만, 실제로 드레스덴의 궁정작곡가로서 그곳에 가거나 활동하지는 않았습니다.
      4. 바흐는 1747년에 프리드리히 2세 대왕을 포츠담에서 알현합니다. 이는 아들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가 궁정 오르가니스트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만남이었습니다. 말년의 바흐는 꽤 알려진 음악가이긴 했지만 텔레만이나 헨델처럼 유명 인사는 아니었습니다.
      대왕은 음악을 즐기던 사람이었는데 바흐는 대왕이 내린 주제를 가지고 즉석에서 피아노포르테에 앉아 즉흥 연주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왕이 바흐에게 내린 주제는 너무 어려워서 천하의 바흐도 즉흥으로 곡을 완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왕이 바흐를 무시하여 일부러 말도 안되는 어려운 주제를 주며 무례를 범한 것입니다.
      바흐는 불편한 심기를 참으며 대왕에게 "소신이 실력이 부족하여 다음에 제대로 된 작품을 헌정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렇게 쓰여진 작품이 이라는 곡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라고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은 그 곡을 받고 한번도 거들떠 보지 않았고 연주를 시킨 적도 없었습니다.
      또한 바흐도 이라고 제목을 붙여서 사실상 이 작품을 무례한 왕이 아닌 하나님께 바치는 봉헌물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 @shunio1
      @shunio1 14 дней назад

      @@tv-lindenbaumtv1058 전 님의 댓글에 많이 동의합니다. 바흐가 헨델이나 텔레만보다 유명하다고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바흐가 그의 활동무대에선 이름이 꽤 알려졌지만 나머지에선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라는 글엔 동의합니다.
      제가 님 영상의 '유럽무대' 라는 말을 바흐의 활동무대를 포함한 '유럽전체'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역시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겠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이 바흐에게 일부러 무례를 범했다기보다는, 자신이 내린 주제로 치밀하고 멋진 3성부 푸가를 즉흥연주하는 바흐의 실력에 감탄하여 6성부 푸가도 만들어 보라고 했다는 관점도 있더군요.
      바흐는 자신이 주제를 골라 연주했고 그 자리를 목격한 프리데만이란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웅장하고 복잡한 6성부 푸가를 즉석에서 연주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물론 바흐의 성격을 보면 프리드리히 대왕이 감탄을 했든 , 무례를 범했든, 짜증났겠죠.
      대왕이 내린 주제로 6성푸 푸가를 못 만든 건 사실이니까요.
      프리드리히 대왕이 바흐의 곡을 받고 거들떠 보지도 않은 것은..... 프리드리히 대왕이 상당한 음악가였어도, '음악적 소양'은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아마 바흐의 연주에 '감동'했어도 '기예'라는 측면에서 마음을 빼앗긴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봐야겠군요. 마치 진기한 장난감에 마음을 뻇긴 어린아이처럼요.
      나름 부유할 때도 있다는 말은 제가 수정해야겠습니다. 좀 불편하지 않을때도 있었다, 라구요.
      동시대에서 바흐가 받은 취급은 애매합니다. 그 애매함은 좀 더 부정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주는 것 같습니다. 해석의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 넓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그 애매함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해서 바흐를 '비운의 천재음악가'라는 식으로만 서사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몇 봐서 염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답글을 달았구요.
      하지만 님의 답글을 보고, 저도 답변을 다는 과정에서 다시 책을 보고, 인터넷을 보고, 님 영상을 다시 보니 영상이 말하려던 바가 무엇인지 좀 더 알 것 같습니다

  • @이한샘-v7o
    @이한샘-v7o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음악가도 부익부 빈익빈이던가 ㅠㅠ

  • @icequeen5407
    @icequeen5407 3 месяца назад

    흘러나오는 곡은 어느분의 곡이예요?
    바흐님 의 곡이네요.
    두분 각각의 음악이 있으시네요.

  • @yufazioli8368
    @yufazioli8368 4 месяца назад +3

    내용이 너무 피상적이네요. 짧은 시간에 이야기하려니 어쩔 수는 없겠지만.

  • @mendelssohn1235
    @mendelssohn1235 3 месяца назад +5

    헨델이 어떻게 바흐에 비비니..

    • @sungminkim6309
      @sungminkim6309 23 дня назад +1

      너님이 비빌 수 있다 없다로 두 악성들을 비교할 짬이 되는지 생각해보세요!

    • @mendelssohn1235
      @mendelssohn1235 23 дня назад

      @@sungminkim6309 바로크음악 전공이라 님보단 잘알듯하네유..
      유럽에서 공부해보신 분들은 알듯.
      머가 더 연주많이 되는지

    • @mendelssohn1235
      @mendelssohn1235 23 дня назад

      ​@@sungminkim6309님이 지식이없어서 잘모르시겠지만
      바흐만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팀이 굉장히 많아요.. 작품이 엄청많고
      모든 계절에맞는 작품ㅈ이 있어서 라디오만 틀면 나옴..
      헨델만 전문적으로 하는 팀이 있나요?
      작곡된 것만 봐도 오르간작품부 칸타타까지 폴리포니 쓴걸 보면 공부하면 할수록 대단한걸 느끼죠.
      베토벤 브람스등이 말년에 바흐공부한 이유가 있겠죠?

  • @김영철-p7v
    @김영철-p7v 4 месяца назад

    공통점으로서 복스테후테도 유명함...ㅎㅎ

  • @taenggom-xy7ry
    @taenggom-xy7ry 3 месяца назад +3

    가난한 월급쟁이 음악가 바흐에 비해 헨델은 그 시대의 슈퍼스타였죠 시골학교 음악선생님과 카라얀이나 클라이버 같은 슈퍼스타와의 차이에 비견ㅋ 결혼을 안 한 건 동성애자였다는게 유력한 이유... 이승에서 누구처럼 살래 하면 바흐 보다는 헨델의 삶을 택하겠다는 사람이 많을 듯,,,,

  • @justiceleague206
    @justiceleague206 3 месяца назад +3

    바흐는 필멸자의 절대자에 대한 저항과 의구심 절망 결국 순응으로 이어지는 은근히 투쟁적인 곡을 많이 씀
    헨델은 절대자에 대한 구함이 대부분의 순종적이고 의지하는 모습의 느낌의 곡을 많이 쓴듯

  • @user-cuty3dg6hd59
    @user-cuty3dg6hd59 2 месяца назад

    두분 음악 팬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