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mare N 감자는 씨감자에서 뿌리가 나와 번식하고 고구마는 줄기가 땅에 박히면 그 박힌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번식함. 그래서 고구마는줄기를 심어서 수확하고 감자는 씨감자를 심어서 수확함. 고구마는 줄기 심은 자리에만 자라지만, 감자는 한자로 지실이라 하는데 땅에서 자라는 열매란 뜻임. 이유는 땅을 파도 파도 계속 감자가 나옴. 안 심은 자리에서도 나오는게 감자임 씨감자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나가서 열매 맺을지 아무도 모름. 반면 고구마는 줄기 걷어내고 고구마 꼭지만 찾으면 그 꼭지 주변에만 있음. 어디 벗어나질 않음. 감자는 밭 갈아 엎어도 나옴. 고구마는 줄기번식이라 섬유질이 많아서 질긴 부분이 있음. 감자는 질긴부분이 없는반면에 싹이 나면 유독물질 나옴.
중국이나 일본은 다과 차와 과자 문화 위주였다면 조선은 술과 과자였습니다. 그래서 술의 안주로 기름진 전이나 고기보다는 과일이나 떡같은 간식이었지요. 물론 식사때 반주 한잔 씩 식전이나 식후에 마셨지만 손님을 맞이할 때 차와 과자 대신 술과 과자를 내었다는 점이 특색있지요.
중간에 나오는 고귀위마 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부르던 고구마의 쓰시마 방언인 코코이모가 전달된 단어임. 쓰시마에서 고구마를 키워 부모를 봉양한 효자의 이야기가 있어 당시 쓰시마 사람들은 고구마를 효행우(孝行芋, 코코이모)라고 불렀음. 이게 조선으로 전달되면서 고구마의 어원이 되었고, 일본에서는 방언이었던 코코이모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사츠마이모라는 단어만 남게 됨.
@@Joshua-y2d8y 님금님금님의 정보에 좀 더 플러스해서 말씀드리자면 이 고구마를 조엄이 모내기 처럼 재배하였다 하여 '조내기 고구마' 라고도 부릅니다. 쓰시마, 곧 대마도는 부산 영도에서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데 이 섬에서 처음 재배가 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크기의 고구마가 아닌 훨씬 작고 얇습니다.
기술자를 천시해서 세종이 죽은 이후도 꾸준히 발전했군요! 애초에 일본이 사농공상 더 심해서 한곳에 몰아뒀고 사농공상이란걸 조선에선 별로 안쓰였는데 말이지 그리고 단순히 천시해서 망했데 하면 역사공부 왜함? 진짜 간단한 결과네 어째서 조상들은 그런 선택을 했는가 진짜 그랬는가? 당시 사회상은 어땠고 국제적 상황, 지리, 환경적 상황을 다 보고 나서도 함부로 평가하면 안되는데 참 단순하네ㅋ
회식이 야근보다 싫은 사람으로서..술을 전통 운운하면서 먹어야된다는거 ㄹㅇ 눈살 찌뿌려짐ㅠㅠ
우리가 쌉싸레한 아메리카노 보다 구수한 아메리카노를 선호하는이유.. 그리고 그 이전에 보리차를 끓어먹은 이유가 숭늉의 유전자 때문인가요 ㅋㅋㅋㅋㅋ
성종때 손순효 이야기도 재밌을거 같습니다
술 마시고 출근 했다가 혼날뻔한걸 유능한 일처리로 하루 세잔만 마시라는 뜻의 은잔을 상으로 받습니다. 근데 그 잔이 너무 작아서 얇게 두드려 펴서 사발로 만들어서 마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순효:술을 한잔밖에 못마셔? 그럼 잔을 확장시키면 그만이지
+천안감사때 성종보러 왔다가 대신들한테 혼나서 왕이 위로해줬다는 ㅋㅋ
그거 정철도 약간 비스무리한 얘기가 있던데 좀적당히좀 먹지 그걸 대장간가서 두들기고 펴고 뭐하는거야 ㅋㅋㅋ
@@링딩동링링링 그거 왕이 정철 술마셨다가 취한 채로 궁에 들어왔던 사건도 있어서 정철에게 작은 은잔을 하사했는데 그걸 대장간에 들고 가서 넓게 만든 뒤 술 마셨다고 합니다ㅋㅋㅋㅋ
한잔만 마시라고 준 은잔을ㅋㅋㅋ
7:09 술을 싫어하는 대신 편식이 심하셨던 세종대왕님....
오로지 고기만 드셨던 ㅜㅜ
@@dmdrk234 고기가 수라상에 안나오면 아예 수라를 안드셨다고 하죠...ㅋㅋ큐ㅠㅠ
안주빨 장난 아니심
회식에 미친 이유가 유전자 때문이였어. 대기근에 굶어죽어도 술은 드셨을 울 조상님들.
조선의 건국이념중 하나는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
즉 먹을것이 풍족해야 사람들이 도덕 을 실천한다는 맹자의 이념이 건국이념이라
가뭄나고 기아 터지면 진짜 사력을 다해서 수습하려 한 것도 바탕이 되었을지도...
영조시대 금주령이 있었는데 술을 몰래
만들어 마시는 밀주가 유행했습니다.
대기근때는 식량이 없어서 곡식으로 만든 술대신 색깔이 비슷한 나무
껍질이나 뿌리로 물에 담가서 마셨을
조선시대.
@@jhshin9413 대기근 당시에 고구마가 들어 왔다 했으니 고구마로 술 만들었을것임 ㅋㅋㅋ 지금 시중에 유통되는 소주의 원재료 중 하나가 고구마임 ㅋㅋㅋㅋㅋㅋㅋㅋ
@@ireneshin828 조내기고구마 기념관에 고구마막걸리 파는데 ㅋㅋㅋㅋ
@@PatrickChoi-f6m 그 막걸리를 증류한게 소주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먹고 마시는데 진심이었던 조상님들임 ㅋㅋㅋㅋㅋㅋ우리나라가 밀 재배가 힘든 지역이라서 그렇지. 밀 재배도 원활한 지역이었으면 맥주도 만들었을 조상님들임.
4:48 조엄선생은 쓰시마에서 현지인들이 "고코이모"라고 부르던 고구마를 전래해오셨죠... 부산 영도구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조내기고구마 기념관도 있습니다.
고구마는 신기한게 밭에다 심을때 씨를 심는것이 아니라 줄기를 심는다는것임
용역 노가다로 고구마밭에 하루 일하러
간적이 있었는데
고구마줄기를 꽂을대로 밭고랑에다
푹푹 찔러서 심었던것이 기억됨
@Nightmare N 감자는 씨감자에서 뿌리가 나와 번식하고 고구마는 줄기가 땅에 박히면 그 박힌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번식함. 그래서 고구마는줄기를 심어서 수확하고 감자는 씨감자를 심어서 수확함. 고구마는 줄기 심은 자리에만 자라지만, 감자는 한자로 지실이라 하는데 땅에서 자라는 열매란 뜻임. 이유는 땅을 파도 파도 계속 감자가 나옴. 안 심은 자리에서도 나오는게 감자임 씨감자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나가서 열매 맺을지 아무도 모름. 반면 고구마는 줄기 걷어내고 고구마 꼭지만 찾으면 그 꼭지 주변에만 있음. 어디 벗어나질 않음. 감자는 밭 갈아 엎어도 나옴. 고구마는 줄기번식이라 섬유질이 많아서 질긴 부분이 있음. 감자는 질긴부분이 없는반면에 싹이 나면 유독물질 나옴.
줄기에서 고구마 나와요? 신기하네....
작년에 아버지 밭에 가서 같이 심어본 적 있는데 끝만 양갈래로 갈라진 긴 꼬챙이를 줄기 끝 뭉툭한 부분에 걸쳐서 땅에 대략 3~40 도 각도로 비스듬히 밀어넣기만 하면 되더라구요~~
@@tn1634 줄기에서 뿌리가 생기고 거기서 고구마가 열려요. 줄기보면 뭉뚝한 부분이 번식점이라 들었어요. 그래서 그 뭉뚝이가 땅에 박히면 그 자리에 고구마가 자라요. 감자는 뿌리번식이라 하나만 심어놓으면 사방팔방에서 다 나와요. 고구마는 줄기 심은 자리에만 나오고요
아침부터.....술...ㅋㅋㅋ😂😂😂😂
유학하면서 전기밥솥 때문에 누룽지 못 먹다 방법을 찾았죠.
취사 완료 버튼이 튀어오르지 못하게 숟가락 걸쳐 놓고 무거운 걸로 눌러놨다 어느 정도 누룽지가 생긴 다음에 버튼이 올라오게 하면 전기밥솥도 누룽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근데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다른곳도 당시엔 다 술이 약이었음. 심지어 지금도 서양감기 민간요법중하나가 위스키나 따뜻한 포도주
뱅쇼, 에거마이스터
옛날 중국 고서에 동이열전을 보면..
1. 남녀가 밤새도록 춤추고 논다
2. 밤새도록 술퍼마신다
3. 잘 씻는다
최소 2천년동안 이렇게 살았음ㅋㅋㅋ
건강을 위해 만들어주는 숭늉
누룽지 느낌으로 먹으면 피로가 회복된다는 것.
근데 조선 초기만 해도, 차를 많이 마셨음.. 근데 차문화가 사라진건 담배가 유래가 된 이후 차의 자리를 담배가 거의 완전하게 대체함
학교 급식에 매일 숭늉이 국이랑 같이 나오는데 저는 오로지 숭늉만 먹습니다
숭늉 존맛탱
고려 사람들이 술을 너무 독하게 담궈서 유목민들이 싫어했다는 기록도 있네요
유목민들의 술도 독하기로 유명한데..그런 유목민들이 싫어할 정도면..ㄷㄷㄷ
출처가 어떻게 되는지요? 유목민이라면 몽골이겠죠?
@@jjj8542 몽골은 좀 멀고 아마 여진족이 아닐까요
@@USER-han3namkill 기원은 유목민이라도 농경지역의 곡물이 풍성하니 고도주 만들기에는 더 유리하죠.
우리나라에 증류주가 들어오게 된게 몽골덕인데 발효주로는 20도를 못넘습니다
0:52 세종 15년은 1433년이고 1453년은 단종 시기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다과 차와 과자 문화 위주였다면 조선은 술과 과자였습니다. 그래서 술의 안주로 기름진 전이나 고기보다는 과일이나 떡같은 간식이었지요. 물론 식사때 반주 한잔 씩 식전이나 식후에 마셨지만 손님을 맞이할 때 차와 과자 대신 술과 과자를 내었다는 점이 특색있지요.
이런걸 다 어떻게 조사하시는지...증말 대단해요😲
배경음악볼륨을 낮추면 더 좋겠어요
7:09 실제로 세종은 술은 안 좋아했지만 고기를 ㅈㄴ 좋아해서 실제론 120kg이 넘었을거란 예측도 많음. 얼마나 좋아했으면 태종이 죽을때 유언으로 세종 밥상에 고기 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삼년상할 때 고기를 안 먹게 만드니까 고기러버인 아들을 위해 자기 죽더라도 아들에게는 꼭 고기 좀 먹이라고 한걸로 알고있어요 ㅎㅎ
3:36 덧붙이자면
조선말기(개화기) 고종 즐겨마셧던 양탕국 도 있어요. 양탕국 이란 그냥 핫아메리카노 입니다. 여름이면 석빙고 얼름 타서 먹을듯(이건 제 뇌피셜)
옛날 기록만 보면 러시아인들 뺨치네;;
중간에 나오는 고귀위마 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부르던 고구마의 쓰시마 방언인 코코이모가 전달된 단어임.
쓰시마에서 고구마를 키워 부모를 봉양한 효자의 이야기가 있어 당시 쓰시마 사람들은 고구마를 효행우(孝行芋, 코코이모)라고 불렀음.
이게 조선으로 전달되면서 고구마의 어원이 되었고, 일본에서는 방언이었던 코코이모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사츠마이모라는 단어만 남게 됨.
@@Joshua-y2d8y 님금님금님의 정보에 좀 더 플러스해서 말씀드리자면 이 고구마를 조엄이 모내기 처럼 재배하였다 하여 '조내기 고구마' 라고도 부릅니다.
쓰시마, 곧 대마도는 부산 영도에서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데 이 섬에서 처음 재배가 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크기의 고구마가 아닌 훨씬 작고 얇습니다.
@@Joshua-y2d8y 유튭에 '조내기고구마'하면 의외로 여러 영상이 있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전라도 몇명 지방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하고,, 감자를 북 감자라하죠,,
봄에심어 6월쯤부터 캐는감자를 하지감자,, 8월이후에심어 가을에캐는 감자는 그냥감자
조선시대 고구마는 요즘으로 말하면 초보농사꾼이 실패해서 가늘고 작아서 상품성 없는 제품같은 크기였습니다
감자는 닭강정,탁구공만큼 작앗고,, 울퉁불퉁했으며 그종류도 색깔별로 수십가지였습니다,,
판매되는건 일반적으로 우리가아는 일반감자+돼지감자 2개죠
당근도 파종후 옮겨심으면 인삼처럼 다리가 여러게 나오는데,, 원래는 인삼 모양과 비슷햇고 색깔도 여러개엿습니다
우리가먹는 당근+고구마+감자는 품종개량된것임
누릉지 어머니께서 큰 후라이팬에다가 만드시는데 입맛 없을때나 바쁠때 마시면 속이 편했죠
당연하다면 당연한게 지금도 요리사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죠 그만큼 요리사도 진짜 체력싸움인 직업 ㄷㄷ
6:01 실제로 감자가 처음에 독일 농민들이 기피했던 이유중 하나가
나라가 "이제 안굶네? 세금내야지?" 하고 바로 징수서 들고 달려와서...
내외술집은 요즘 컨셉이랑도 잘 맞는것 같음 1인가구인데 집에서 배달시켜먹는 것보다 좀더 고퀄로 술 먹고 싶은데 사람한테 치이기는 싫을때 괜츈할듯
룸의 원조
술에 관대한 전통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거 같아 아쉽긴 합니다. 술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아서 걱정임.
너무 관대하죠. 알콜 중독인데 주량 자랑..
이 개만도 못한 유사국가는 술땜에 망할거다 ㅋㅋ
@@siennathequeenfan2932그럼떠나ㅋㅋ 태극기에 손올리지말고 떠날능력은있고? 없으니 똥글쓰지
@@siennathequeenfan2932기술이있어 언어가되는상황도안돼 참 앉아서 누구나하는사무직하고있으니 ㅋㅋ 불만참많쥬? 가서갱단이라도하슈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는 말이 숭늉의 선호도에 기원한 거군요
차가 유행했던 건 고려 시대였다고 들은 기억이 있네요
삼국시대부터 조선초기까지는 차를 많이 마셧어요
썸네일 그림 너무 귀엽다 ㅎㅎ
5:59 옆 말티쥬 가 이 사진보고 짖어댑니다
몸이 안좋아 누룽지 팍팍끓여 오징어젓갈이랑 먹으면서 보니까 ^^;; 난 한국인이네. 밥은 안너머가도 누릉지만 사흘째 먹고있다. 빨리 나아야지. 에구에구 디다
영상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가 없네요.
저당시의 술도수는 증류기술의 미비로 보통 5~6도 사이입니다. 요즘시대 애주가들에겐 밤새도록 먹어도 안취할 도수죠 ㅋ
집 담그면 대략 12도 정도가 됨. 막걸리는 거기 물을 탄것임.
저렇게 처묵처묵하는데 체력이 안 받쳐주면 못 버티지 ㅋㅋㄲㄱ 숙수들 근돼 일 듯 기업서 하는 큰 음식점서 일해봤는데 여자분들은 피지컬 진짜 장난아니고 성비도 1:10정도
그래서 킹덤에 나온 숙수가 몸집 있는거쥬
3:36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장금에서 대령숙수가 장금이 양부아니었나요? 근데 숙수짱이었다니
원래 전통주가 다들 집집마다 빚어먹는 곡주였다고하니..
잘볼께요^^
저 술과 술주정으로 나온것이 관동별곡이죠ㅋㅋㅋㅋㅋㅋ
술 처먹었으면 곱게 잠이나 자지 왜 글을 쓰셨나요
@@beethovenalcoholism 원래 그시대 사대부들 특임
모든 수험생들의 적인 관동별곡과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지은 원수같은 인간이 바로 송강 정철 입니다... 그것도 술을 거하게 마시고 만취해서 지은 시였다는....
송강 정철이 했던 짓을 아는 학생들은 국어선생 한테 일부러 들으라는 식으로 "어? 이 양반 이거 전쟁 와중에도 술이나 처먹던놈 아냐?" 라고 했었지ㅋㅋ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의 국사점수는 평균 95점이였다
금주중이던 우리할머니 귀밝이술을 마셔야하는날이니 소주사오라던게., .생각이남
식해가 빠졌고 저때는 술이 도수가 낮아 항아리 열사발 마셔도 별루였다 … 그렇니까 지금으로 치면 캔맥주 서너개 마시고 주사 부린거다 … 그러다 서양 위스키를 맛보니…
스폰지밥 국악버전이라면 스폰지밥이 숙수가 되겠네.. 수세미박이라니.. 그 집게 주막 생각하면 될듯.. 그 욕심쟁이 짠돌이 사장
그러고보니 감자도 그 아일랜드 대기근 사례와 많이 닮았네요.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에는 서민들은 거의 감자만 먹어왔으니..
감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류를 구한거냐
영상속 풍속도 정보좀 알려주세요~
고려시대 기록보면 밤이 될때까지 잔치하고 술 마셨다고ㅋㅋㅋㅋ
이 조상대대로 내려온 술버릇과 관대한 음주문화로 지금 대한민국 개판이 되었지
음주운전사고, 사람 패놓고 기억 안 난다 시전, 계산할 땐 취한 척 하다가 지갑하고 휴대폰은 멀쩡히 잘 챙김 등등
비대면 서비스가 조선시대부터 있었다니 ㅎㄷㄷㄷ
드라마서 장금이 키워준 의붓아버지가 숙수였던 것같은데…,
숭늉까지 일부러 만들어내는 밥솥있으면 좋겠다.. 음 이미 있을려나?
프랑스에서도 궁궐요리사들은 남자.
프랑스왕들은 대식가여서 식사준비하기도 힘들었을듯.
굿굿
술 강요가 저때부터 내려온 거였어...?
러시아랑 우리랑 외교적으로 친한이유가 있었네요 ㅋㅋㅋ 술 좋아하는건 저 나라랑 우리랑 술에 미친건 매한가지 ㅋㅋㅋ
쭈그려 앉아있기
술 많이 마시기
절대 웃지 않기
비슷한 점이 몇 있죠.
원래는 제사도 대대로 남자가 음식준비했던거라던데
나도 그 이야기 들어봄
오라 혼술이 저때부터 유행이였네
어찌보면 1인주점 고퀄
대신 요즘에는 누룽지를 사서 숭늉을 끓여 먹죠
세조가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라서 잔악무도한 임금같지만 의외로 술 앞에선 되게 관대했습니다. 정인지가 취해서 너라고 불러도 용서해주고 신숙주가 취해서 팔을 꺾어도 용서해줬죠 오히려 신하들하고 술을 마시며 노는 걸 즐긴 임금입니다.
세종 그는 그저 빛
세종대왕님 안주는 그렇게 좋아하면서 술은 별로 안좋아하셨군아
세종대왕님ㅋㅋㅋㅋㅋㅋ 술마실바에 탕약을 마실테야!!
백성 : 어어? 임금님 술이 들어간다 쭈욱 쭉쭉쭉!
제주도 사투리로는 아직 고구마가 감저라고
저기 세종은 1418년~1450년까지 재위하셨는데(영상에서 1453년라고 쓰심)..., 세종 15년 이면 1433년 아닌가요?
아뇨 고려시대때 찻잔종류만봐도 차를 무척즐겨 마셨습니다
선댓후감
반갑네 나 어릴적에 숭늉이 당연한거고 안마시는건 상상도 해본적 없을정도 차를 마시는게 이상할 일일정도로 숭늉이 차였음 그러다 보리차로 넘어가고 금세 커피가 퍼짐
술이 제일 문제인듯
인생 나락으로 가는 지름길인듯
저때 술는 도수가 이슬톡톡보다 낮았다던디
역시 조상님들....
숭늉은 지금의 식혜라 보시면되는데
숭늉이랑 식혜랑 다른점 은
숭늉은 단맛이 좀 없고 구수하고 좀 식혜보단 깔끔한맛 이 납니다. 식혜는 단맛이 많고 구수한건 떨어지고 숭늉 보단 깔끔하지 않습니다.
누룽지 끓이면 숭늉인줄..
음주운전도 전통이죠, 술먹고 말타고 가다 죽는 사람도 많았다니
주식이 주로 먹는것主食이 아니라 술과밥이었다고?!;
유튜버가 한자를 몰라서 그렇게 말한겁니다.
主食이 맞아요.
한국인은 육체가 매우약하면서
그걸 정신과,허세로 채우는 민족.
숭늉에는 커피에 들어있는 성분과 동일한 성분이 있어 식후 입맛을 깔끔하게 해줌 우리나라가 커피에 미쳐있는 이유임
술 마시고 사고치면 죄가 훨씬 커지는 나라들 사이에 유일하게 술마셨다는게 핑계꺼리가 되어 오히려 감형되는 괴상한 나라 대한민국
이런거 보면 새삼 대기근,전쟁,침략, 약탈과 수탈, 자연재해 등등 내 윗대에서 대가 끊겼다면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을텐데 여태 명이 이어져서 내가 존재한다는게 대단하다는 느낌이 ㅋㅋㅋ 정작 내 자신은 그리 대단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조상님들... 😢
밥먹고 나서 밥 끓인 물로 입가심
역시 밥의 민족
세종이후 기술자 천시한 조선은 망해도 될나라 였어 더빨리 망하지 않은게 신기했어
정확히 말하면 문종이후 세조때부터 조짐이 있었고 성종이후 사림(씹선비)들이 기득권이 되면서 망하는길로 들어섬
기술자를 천시해서 세종이 죽은 이후도 꾸준히 발전했군요!
애초에 일본이 사농공상 더 심해서 한곳에 몰아뒀고 사농공상이란걸 조선에선 별로 안쓰였는데 말이지
그리고 단순히 천시해서 망했데 하면 역사공부 왜함? 진짜 간단한 결과네 어째서 조상들은 그런 선택을 했는가 진짜 그랬는가? 당시 사회상은 어땠고 국제적 상황, 지리, 환경적 상황을 다 보고 나서도 함부로 평가하면 안되는데 참 단순하네ㅋ
일본도 사농공상을 천대했지만,,, 도공들은 대우해줫고, 1700년경부터는 천대하는 문화가 사라졌지,,조선은 아니고
@@탐관오리CorruptOfficial / 뭔 조선에서 사농공상이란 말을 안썻다고하냐? ㅄ아,,,,
양민들의 신분을 나타내는건데,,조선시대는 신분제사회가 아니였다는 거냐? ㅋㅋㅋ
우리나라 고유의 유전 DNA 3가지 흥, 술, 그리고 밥 이 3가지 빼면 시체
주식이 酒 食 이라고 에이~~~ 그것은 아니고...
18세기 청나라 사신이 저잣거리 보고 조선은 술 때문에 망할 거라고까지 했다죠ㅋㅋ
썸넬 이봉주???!
헐 2시간전
대장금이 고증 오류라니 동심 파괴다 😢
조선시대 내내 가난했던 이유가 이거구만... 쌀로 술 만들려면 엄청난 양이 들어가는데...
내가 항상 술처먹고 주정 부리고 사고치는게 뼛속까지 조선인이라서 그랬구나;;; 유전자 자체부터가 남달랐던거였어 ㄷㄷㄷㄷ내 본능이었던거지
숭늉과 커피 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 아니 깨달은 사람은
나 뿐일까
그래서 현대판 양반 윗분들이 항상 회식가자 하는구먼 ㅋㅋㅋ
내외술집.. 낭만있당
**제주도에선 고구마를 감저라고 함 감자는 지실!
혼술은 양반이였어...어흠~!
어쩜 한국 정치는 조선시대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구나
숭늉도 밥굽고 태운거 커피도 굽고 태운거
2:14 밑에 유튜브 화면이 보인다..
🤤🤤🤤
본래 젯상도 남자가 마련했죠.
술사랑이 대단했구나~ㅋㅋ
슬 즐기는게 결코 자랑할건 아님. 다행히 근래 들어 인식의 전환이 되는거 같지만 음주운전으로 살인을 하고 3년형 이렇게 받는 미친 나라임.
그래도 저 때 술은 정제법이 구려서 도수는 많인 낮았음
췌장을 포기하고 간을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