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진짜 공감됩니다. 저는 심리학이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을 주로 공부했는데, 초반에는 깜짝 놀랐어요. "아, 내 삶이 이러저러해서 지금 이렇게 됐구나." "일상의 작은 것들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 이런 사회적 역사적 관련이 있구나." 이런 깨달음들은 분명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시각의 넓이와 깊이를 더해줬다고 생각해요. 막막하고 답답하고 우울했던 게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그런데 거기에 과도하게 매달리다 보니 어느 지점부터는 "사회가 이런데 내가 해서 뭐해, 구조가 이런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이런 결정론적 사고에 빠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현실은 그게 전부가 아닐 수 있고, 전부가 아니기도 한데도 말이죠. 결정론의 끝은 언제나 좌절이나 오만이라 믿어요. 분명 처음에는 나를 구했던 것이 오히려 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가 나를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몇 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고백하자면 지금도 거기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심리학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모든 이론이나 관점이 분명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지만 과도한 의미부여는 결국 또 하나의 '교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치지만, 그게 과장된 측면은 없지 않은가?" 이런 고민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내가 원인을 언제부턴가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고민요. 죄송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근데 저는 그랬어요. 이제는 사회과학을 접하면서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한 존재로 바라보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요. 근데 심리학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아요. 때로는 반대로 "너무 지엽말단을 번지르르 늘어놓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한편으로는 '나답게 살아야 한다' 너무 자꾸 그러니까 "아니, 좀 나답게 안 살면 어때, 그게 그렇게 대수야?" 이런 반발심도요. 오히려 '그렇게만' 살려고 하다 보니 다 꼬여버리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어쨌든 좋은 화두를 던져 준 사연자분과 선생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다시 한번 저를 돌아봅니다.
저도 학부때 심리학을배웠습니다.. 심할정도로 원인을 찾았습니다. 내가 왜그렇지?, 내가 왜이렇게 됐지?.. 왜? 라는 원인을 찾으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는 그 원인때문에 나는 거기에 갇혀버리게되었습니다.. 상처안에 갇힌 사람이요... 부모가 준 상처에 갇혀서 아파하는게 당연한 사람이되어버렸습니다... 그것만 파고들었습니다... 결국얻은것은 상처많은 나를 보는것이였지않나 생각이듭니다.. 처음 공부할때 왜? 를 알면 너무재밌고 나를 이해한거 같은 달콤함에 빠지게되지만 그것이 나를 옭아맨다는것도 경험했네요.. 저는 상처때문이 아니라 ,, 이제는 당연히 그럴수도있다고말해주고싶습니다... 원인과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그게 싫을수도있고 두려울수도있고 그게 좋을수도있고,,, 그럴수도있는것이라고 제게 말해주고싶습니다.. 그것이 훨씬 자유롭게 하는거같습니다.. 내가 어디에 포거스를 맞추느냐에따라 완전히 달라지는방향으로 나아가는거같습니다.. 매몰되느냐, 어떻게의물음을통해 선택하고 나아가느냐..
그래서 저는 혜신샘의 적정심리학, 심리적 cpr행동지침서, "당신이옳다"가 참 좋습니다. 나를 알고 싶어서, 너를 알고 싶어서,,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처음 심리학에 관심이 갔는데, 당옳에서는 한사람 한사람을.. 개별적 존재로 만나게 해주었고 그 한사람 한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보고 너를 보고 묻고 듣고 나누게 해주었습니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는걸 그 과정속에서 알아가게 되었어요.) 사람을 규정하고, 분류하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알아가고 만나가는 그 길을 스미듯 느끼게 해준 당옳이 그래서 참 좋습니다.
사연을 들으니 사연자의 막막함과 절망감, 스스로 원망하는 마음까지 느껴져 안타까웠습니다. 상담을 공부하신댔는데 상담을 포함한 심리학이 인간을 다 설명하진 못합니다. 외려 인간을 정형화시키고, 단순화 시켜 개개인이 가진 개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들 우려도 있죠. 다만 사람은 심리학 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 연구들에서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데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노출된 사연만을 보고 사연자 분의 깊은 속사정은 알기 어려우나 뭐랄까 조금 정형화된 케이스 같기도 하고 , 주변에서도 이런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 하는 이들을 몇 번 본적이 있어 같이 생각해보고자 몇 자 올립니다. 사실 지금 사연자가 겪고 있는 감정은 모친과 부친 사이에서 '삼각관계'에 놓였던 아이들이 겪는 일반적 심리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미성숙한 부모는 자신들의 감정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 그 사이에 '아이'를 끼워버리죠. "너 때문에 이혼 못한다"가 대표적인 미성숙 부모들이 하는 말인데 아이는 부모의 불행이 전부 제 탓인양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자존감이 떨어지고, 결국 자신은 "행복할 자격이 없다" 고 무의식차원에서 각인시킵니다. 표면의식이 아무리 행복을 원해도 심층 무의식이 스스로 행복할 자격이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무의식은 불행한 현실을 만듭니다. 이는 '선택과 반응' 을 통해 현실을 반복적으로 창조하곤 하는데 자신의 살아온 날들을 회상해보면 비슷한 일들을 몇 년 주기로 계속 겪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 꽤 있을 겁니다. 정신분석학에서 '반복강박' 이라 부르는 것인데 이를 깨려면 상처받은 무의식을 치유해 선택과 반응을 바꿔야 하겠죠. 사연자는 지금 자신을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이 많아 보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고 누구나 그런 상황에 놓이면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겁니다. 하지만, 자신을 원망하고, 배우자 탓을 하기 전에 알아둘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선택과 반응' 의 결과물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들은 대개 상처 입은 무의식, 억압된 무의식 속에 기억이 만든 겁니다. 본인도 상담을 공부했다니 알 수도 있겠지만 사연자는 엄마와 감정이 융합된 채로 어른이 되어 그 무의식을 공유하며 배우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아의 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한 배우자는 결국 익숙한 기억이 창조한 '과거의 재탕'이 되기 쉽습니다. 무의식의 실체는 익숙함이거든요. 가뜩이나 딸들은 배우자 선택에 있어 엄마의 패턴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엄마와 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면 그 가능성이 더 높아지겠죠. 친정 아버지와 남편이 닮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아빠를 닮은 남자' 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선택' 을 따라하는 bias 때문입니다. 사연자도 생각해보세요. 엄마는 그렇게 자기를 힘들게 할 남자를 왜 선택했을까요? 엄마의 남편은 처음부터 엄마를 힘들게 했을까요? 처음부터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남자랑 결혼하는 여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연자도 "아버지랑 닮지 않아서 결혼 했다" 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남편은 갈수록 사연자의 아버지처럼 됐을까요? 또 사연자가 왜 자기 엄마의 결혼생활을 재현하고 있다고 느낄까요? 그게 무슨 가족 간에 내려오는 운명 같은 걸까요? 심리학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학문이지 한정 짓고 틀 안에 가두는 학문이 아닙니다. 사연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개선할 수 있고 스스로 더 나아지는 현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구요? 맞습니다. 변하기 싫어하면 변하지 않습니다. 담배를 끊어야지 백번 말하면서 안 끊는데 끊고 싶은 걸까요? 금단현상이네 살이 찌네 다 핑계에요. 안 끊으면 1주일 안에 죽는다 선고 받으면 다 끊습니다. 의지도 원할 때 발휘되는 것이지 원치 않을 땐 억지만 부리게 되죠. 그러니 삶이 불행하다면 무엇보다 스스로를 구해내겠다 마음을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습니다.그러려면 우선 사연자의 내면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알다 시피 외부는 내면의 반영입니다. 내면이 바뀌지 않는 외부의 변화는 미신입니다. 심리학이나 상담심리, 정신분석 같은 공부는 이렇게 변하고 싶은 자신의 현재를 점검하고 들여다보는 데 쓰는 겁니다.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많은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령 어렸을 적 엄마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지나쳐 누구의 감정인지 스스로도 헷갈리게 되어버렸고, 어른이 된 후에도 거기에서 한 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또 엄마의 불행(사연자가 보기에) 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정체성의 혼란이 일어난 건 아닌지 하는 성찰입니다. 사연자의 나이가 오십대라면, 그 어머니 세대는 가부장과 남존여비 시대를 관통해오며 여성으로서 힘든 삶을 살아낸 세대일 겁니다. 그 시대 여성들은 말도 안되는 가정노동환경에 시달렸고 무시당했으며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많은 아픔을 감수해낸 세대입니다. 사연자는 누구보다도 그 아픔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엄마의 감정과 융합되어 아버지를 '괴물' 로 여기게 됐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엄마의 불행한 인생 (사연자가 봤을 때) 에 대한 연민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엄마의 불행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무의식) 그것이 지나쳐 자신은 행복하면 안된다는 '행복공포'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닌가.(무의식) ‘행복 공포’ 라니 말도 안된다고 하겠지만 이걸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즐거울 때 문득 무언가 하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에 빠진다거나, 행복이 금방 사라질거 같은 생각으로 기분이 나빠진다거나, 갑자기 부적절한 말이나 감정 표출로 그 상태를 깨버린다거나...그런 경험이 있다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쨌거나 여전히 자신의 기억에 불행한 엄마의 인생이 강하게 남아 있다면 그것을 떠나보내고 ‘애도’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아픈 기억을 치유함으로써 자신의 인생과 엄마의 인생을 분리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자기만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충분히 아시겠지만 많은 심리학 연구가 폭력은 대물림 되며, 학대 받은 아이가 학대하는 어른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게 절대적인 사실이 아님을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학대 받고 자랐으나 자기 아이한테는 소리 한번 지르지 않은 자상한 아버지가 된 사람도 가까이에서 보았고,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산 부모를 뒀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도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면 심리학 이론이라는 것도 하나의 '설' 일뿐 결정론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알곤합니다.) "아버지가 괴물인 '줄' 알았다" 는 사연자의 말은 이제 자신의 눈으로 아버지를 객관화 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치유가 시작되는 겁니다.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사는, 혹은 살아온 엄마와도 감정적 분화가 이루어져야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연자의 경우와 상관없이 분화수준이 낮은 엄마는 자신을 불안을 딸에게 투사시켜 딸이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없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린 부모가 잘났든 못났든 그들이 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우린 우리의 인생을 살아야 하고, 우리가 원하는 현실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몸에 벤 어린시절(무의식) " 을 통찰하고,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분석이 목적이 아닌 치유의 도구로써 심리학을 쓴다면 잘 쓰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과거를 리프레이밍(reframing) 시키는데 좋은 영감을 줍니다. 성경 말씀에도 "회개하라" 합니다. 회개는 잘못했다 뉘우친다는 뜻 이 아니라 '관점의 전환'을 뜻하는 metanoia 입니다. "생긴대로 산다" 라는 말이 있지요. 그건 우주가 만든대로를 말하는 것이지 부모가 만든 삶을 사는게 아닙니다. 사연자 역시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누구의 역할을 '재현' 하고 있는것이 아닐까..'메타노이아' 를 통해 자신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바꾸어 마음의 평화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him7486무의식 속에 감정을 알려면 우선 무의식의 실체에 대해 알아야겠지요. 브루스 립튼 박사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서 5-7세까지 부모에게 삶의 기반이 되는 많은 정보를 물려 받는다고 합니다. 컴퓨터로 말하면 os가 깔리는 거죠. 그걸 기반으로 살아가야 하니 아주 중요한 것들이 그 시기에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는 자기들의 기호, 습관, 언어, 태도, 액션과 리액션 등 모든 것을 아이에게 '교육' 이라는 이름으로 주입합니다. 그것들은 의도적이면서 의식적으로 행해지지만 그런 과정에서 부모가 의도하지 않는 것들까지 아이들은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 카피(copy) 라고 보는 쪽이 더 적당할 거에요. 이걸 제대로 이해한다면 소름이 돋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기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면 아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엄청 높아집니다. 무의식은 그렇게 만들어지죠. 무의식이 한번 자리 잡으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데, 그게 바로 성격으로 드러나고, 성격은 곧 운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무의식= 운명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단 무의식은 의식화를 통해 치유가 가능하기에 정해진 숙명이 아닙니다. 사실 무의식을 제대로 알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아서 큰 마음을 먹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 많은 이들이 쉽게 접근하지는 못하는거 같습니다. 그럼 전문가를 만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상적으로 가장 접근이 쉬운 방법은 자기 부모를 연구하는 겁니다. 말했지만 사람은 부모에게 많은 것을 물려받습니다. 부모가 자기의 무의식입니다. 부모를 관찰하고, 부모의 행동과 태도, 감정습관. 패턴, 언어 사용 습관을 유심히 보세요. 거기에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괴롭거나 처리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올 때, 그걸 회피하지 말고 그 감정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관찰하는 겁니다.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 속하는 것 외에 개인의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 반응과 선택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걸 알아내면 자신이 보입니다. 비블리오테라피와 '명상' 이 도움이 될겁니다. 명상에서 '명'은 한자로 어두울 '(冥 )명 '을 씁니다. 무의식을 뜻하죠. 의식 저 밑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감정치유가 시작되는 겁니다. 물론 무조건 부모를 관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관찰한 것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죠. 그러려면 결국 공부를 해야하구요. 역시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구요. 부족한 의견입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오늘 영상은 저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 있어 공감하면서 봤어요. 심리학 이론을 통해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어 좋은 부분도 있지만, 그것에만 의지하게 되면 오히려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균형을 잘 맞추어 가면 좋겠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양 극단을 오고 가면서 각자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역시도 그러하지 않은가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저도 얼마전까지 심리학에 매몰돼서 저의 주변 사람들을 평가했어요. 1년 가까이 엄마랑 연락을 끊고 지내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감정적으로 나아진거 같으면서도 또 불편하고 그렇더라고요. 비의료기관, 정신과, 한의원 등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았고, 명상도 해보고요. 비의료기관은 커뮤니티가 있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온라인으로 소통을 할 수 있었어요. 도움이 되었지만 너무 빠져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얼마전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읽으며 새로운 관점이 생기며 좀 편안해졌어요. 남편을 계속 이해할 수 없어 힘든 마음이 있었는데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일시적일 수 있을꺼에요. 계속 다듬어 줘야겠죠. 당신이 옳다가 크게 와닿을수 있었던것이 그 동안 심리학에 관심을 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매몰 될 수도 있겠죠. 그런 시기를 지나 의식이 확장되는 시기가 오면 편안해질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 초 남편은. 제게 가계부를 쓰라하고 검사하며 글씨체로 무시하고. 현금 5만원을 찾아 어디에 썼냐며 불같이 화를 내고 혼내는 듯한 말투에 난 참 주눅들고 창피하고 비참했었는데도 뉴스에서 어린이집 사망사고가 터지는 일이 생겨 난 아이를 위험한 곳에 맡기는 기분이 들어 취업을 포기하고 내가 모멸감을 감수하는 편을 선택했다 병원 상담 받으면 내가 문제인식을 가졌으니 내가 풀어야한다며 남편은 인식을 못 하니 나에게만 노력을 요구하는것에 나중엔 집어치워버렸다 남편은 저딴걸 만났다는 소릴 자주 했었....난 저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깜짝 놀랄 만한 사람... 지금은 남편에게 난 사람보는 눈이 있고 남편을 잘 만났다고 남편에게 말한다 그러면서 당신은 보는 눈이 없어 날 만났으니 내말을 잘들야한다고 한다 지금 난 시댁이나 남편에게 못된년 으로 살아간다 마음도 몸도 좀 편해지긴 했지만 찝찝한 기분이 남아있는것도 사실. 오늘도 영상 감사합니다~ 늘 많은 생각을 할 수있게 해주시네요🙇♀️
오늘은 왠지 사랑방에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면서도 울었네요. 저도 사라지고 싶었고 도저히 눈뜨고 살 자신이 없어서 죽음을 실행에도 옮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신이 옳다가 제게 생명수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최근에 하게 된 생각은. 내 기준에서 나의 경계를 위협하는 어떤 사람에 대한 최종 결정을 유보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이 어떠한 상황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나에게 정확한 화살을 쏜 것이 아니라 도저히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면. 어쩌면 피해자라 느끼고 분노했던 내가 오히려 가해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소름끼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어도 인간이라면. 이라는 당위가 저 스스로도 바닥을 쳤던 기억과 함께. 그 사람도 혹시 그렇다면. 눈물이 차오릅니다. 지금의 저의 숙제입니다.
상담과 심리학을 한 사람으로서 저는 이런 생각이에요 무엇이든 한 쪽으로 치우쳐 지나치게 매몰됨, 바꿀 수 없는 운명론이나 결정론쪽으로 스스로를 결박시키는 것, 무엇보다 더 많은 진실을 보다 넓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그 무엇들에 얽혀매이지 않아야 함을 잘 찝어 주셨네요 역시 정박사님ᆢ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은 언제나 옳아요 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전통에는 부인할 수 없는 뚜렷한 맥이 있지요ᆢ아버지와 정반대로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해왔지만, 어쩌면 그 발버둥이 사연자님이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아버지와 똑같은 점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그러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지금의 남편을 선택하게 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무의식은 익숙한 것을 찾거든요 죽도록 싫었지만, 익숙한 아버지의 그 모습ᆢ나도 모르게 불안과는 반대인 '편안함'을 느꼈을 수 있어요 물론 무의식이 한 일이므로 의식은 모르는 거죠
공감은 말로 하는게 아닙니다.말로하는순간 그뜻이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어 지지요 정말 들어주는사람 답을 주는 사람이아닌 들어주는사람을 찾아보세요 답은 머리가아닌 가슴에 누구에게나 있습니다.그 답도 개념,관념,생각으로는 어떠한 답도 찾을수 없으니 진심으로 자신의 삶을 들어줄수 있는 사람 꼭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말이나,글로는 어떠한 퍼즐도 맞춰지지 않습니다. 그자체가 진리가 될수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길 잃고 헤매던 게 답이 보이는 것 같아요.. 매몰과 경직. 이 두 단어로 많은 게 설명이 됐습니다. 제게 너무 필요했던 관점.. 이론을 기준 삼아 분명하고 명확한 것만 찾으려다가 더 늪에 빠져버린 것 같아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좋지만 평생을 두고 천천히 접근해도 되는 걸 너무 서둘러 결말을 내려다 도리어 어떤 최면에 걸린 듯이 정신을 못 차렸어요. 많은 걸 이해하고 싶었던 만큼 많이 공부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답을 찾기보다 끼워맞추거나 답을 찾을 일이 아닌 것조차 집착을 했던 것 같아요. 알면 알수록 무언가 갈증이 심해지고 현실감을 잊는 느낌이 꽤나 불편했는데 스스로 유연함을 잃었었나 봅니다. 이 또한 치열하게 살아내는 과정 중 하나겠지요.
선생님 최근에 선생님이 쓰신 당신이 옳다 라는 책을 읽고 저에 대해서 많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이런 부분에서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집중하고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걸 알아갔습니다. 알아가면서 제가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는 사람인걸 깨달았는데, 저는 제가 생각하는게 정답일까 하는 불안이 항상 있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사람 마음은 항상 옳다 라는 문장은 저한테 위로가 되었고, 제가 느끼는 감정이 곧 정답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또 다시 선생님께 실례가 될 수 있겠지만, 선생님의 말씀이 정답이 아니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찾아왔어요. 머리로는 정답이 아니면 뭐 어때, 내가 책을 읽고 공감이 갔고, 위로가 되었고 느낀 것이 있다면 그게 정답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위로받았던 모든 것들이 다 가짜가 되는 걸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지금 제가 이렇게 느끼는 불안 또한 왜 이렇게 불안을 느끼는지 저에게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죠? 하지만 이 불안이 너무 무섭습니다.
심리학 이론, 자아정체성 확립 등의 컨텐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에 대해 한편으로는 내가 그러고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야 이 길 뿐이야 하는 생각이 번갈아 드네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또한 어쩔줄 모르겠는 막막함에 다시한번 현실과 척지려고 하는것 같아요. 이런 제가 한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합니다. 제 유일한 도피처를 막아버리는 느낌이들어 반발심이 들기도 하구요. 여전히 막막하지만 이모든게 제 마음인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또 어떡하라고? 하는 생각도 듭니다 ㅎㅎ
님의 생각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할일도 아니지요. 공감하고 안아준다는 것이 반드시 옳은것인지.. 님의 논리라면 아이들 교육도 필요 없는것일수도 있지요. 님의 논리도 결국엔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게 하려는 것이지요. 공감은 생각과 수준까지도 같아야 가능한것이 아닌지요. 그렇답니다.. 충고는 훈계는 가장 그것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라고.. 우리는 모르는 이의 삶에 충고하고 훈계하지 않습니다. 훈계와 충고나 아니라 경험의 공유 인지도 모르지요..그렇게 생각해봅니다. 나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가? 그 근거는 또 무엇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깨닫고 사는것이지요. 님의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 공감을 했습니다. 너무나 다릅니다. 생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그러나... 너무나 많은 틀림이 다름의 탈을 쓰고 있기도 하지요. 그래.네가옳다.! 그것은 어쩌면 무책임한 방관인지도 모릅니다.
평소 정혜신선생님 상담 들을때 늘 끄덕 끄덕하는데.. 오늘은 왠지 내담자의 심리학적 틀을 중심으로 해석하시는 느낑이 들어 왠지 낯설어집니다. 내담자 남편과의 갈등상황이 심리학적 사고로 인해 더욱 경직된 것일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그 갈등이 내담자의 심리학적인 해석으로 인한 문제라고 하기엔 과도한 판단이신것 같습니다. 이러는 저 또한 과도한 해석일수는 있겠으나 오늘은 내담자의 호소내용을 중심에 두지 않고 내담자의 문제가 심리학적 해석방식에서 온 결과처럼 느껴지게 하는것 같네요.. 사실 저는 내담자가 심리학적 이론을 거론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표현한 방식을 과도하게 중심 줄기로 잡으시는것 같아서 듣고있는 내담자가 좀 답답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영상잘보았으나 좀 마음이 아프네요... 이사연자분의더깊은 속마음이 표현되지않아 궁금하다 말씀하시는데 지금 이사연자분은 지금 표현할 수있을정도로 너무 힘드시기 때문일겁니다. 하신 말씀그대로 너무힘든삶에 매몰된 나머지 자신의 마음상태를, 그저 자신의삶을 설명하는것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심리학공부에 치중하여 거기에다 뭔가자기삶을 꿰메어 놓는것이 그나마 죽음이 무섭고 살고싶어서였을겁니다. 반대로 그렇게나마 하지않았다면 이분이 뭘로 삶을 버텨왔을까요? 아마 올바르지않다라도 그곳에서 빠져나오기위한 거쳐가는 하나의 과정이나 방법이었을수 있습니다. 이사연과 영상을 위해서 많은고민을 해주신 노고도 엿보이지만 '심리학이론에 모든걸결론짓지말아라' '는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기 위해서 책상위에 올려진 사연자분의 고통이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건 아닌지 개인적으로 생각하게 되네요...
이거 진짜 공감됩니다. 저는 심리학이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을 주로 공부했는데, 초반에는 깜짝 놀랐어요. "아, 내 삶이 이러저러해서 지금 이렇게 됐구나." "일상의 작은 것들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 이런 사회적 역사적 관련이 있구나." 이런 깨달음들은 분명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시각의 넓이와 깊이를 더해줬다고 생각해요. 막막하고 답답하고 우울했던 게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그런데 거기에 과도하게 매달리다 보니 어느 지점부터는 "사회가 이런데 내가 해서 뭐해, 구조가 이런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이런 결정론적 사고에 빠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현실은 그게 전부가 아닐 수 있고, 전부가 아니기도 한데도 말이죠. 결정론의 끝은 언제나 좌절이나 오만이라 믿어요. 분명 처음에는 나를 구했던 것이 오히려 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가 나를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몇 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고백하자면 지금도 거기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심리학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모든 이론이나 관점이 분명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지만 과도한 의미부여는 결국 또 하나의 '교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치지만, 그게 과장된 측면은 없지 않은가?" 이런 고민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내가 원인을 언제부턴가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고민요. 죄송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근데 저는 그랬어요. 이제는 사회과학을 접하면서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한 존재로 바라보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요. 근데 심리학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아요. 때로는 반대로 "너무 지엽말단을 번지르르 늘어놓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한편으로는 '나답게 살아야 한다' 너무 자꾸 그러니까 "아니, 좀 나답게 안 살면 어때, 그게 그렇게 대수야?" 이런 반발심도요. 오히려 '그렇게만' 살려고 하다 보니 다 꼬여버리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어쨌든 좋은 화두를 던져 준 사연자분과 선생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다시 한번 저를 돌아봅니다.
저도 학부때 심리학을배웠습니다..
심할정도로 원인을 찾았습니다.
내가 왜그렇지?, 내가 왜이렇게 됐지?..
왜? 라는 원인을 찾으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는 그 원인때문에 나는 거기에 갇혀버리게되었습니다..
상처안에 갇힌 사람이요...
부모가 준 상처에 갇혀서 아파하는게 당연한 사람이되어버렸습니다... 그것만 파고들었습니다... 결국얻은것은 상처많은 나를 보는것이였지않나 생각이듭니다..
처음 공부할때 왜? 를 알면 너무재밌고 나를 이해한거 같은 달콤함에 빠지게되지만
그것이 나를 옭아맨다는것도 경험했네요..
저는 상처때문이 아니라 ,, 이제는 당연히 그럴수도있다고말해주고싶습니다...
원인과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그게 싫을수도있고 두려울수도있고 그게 좋을수도있고,,, 그럴수도있는것이라고 제게 말해주고싶습니다.. 그것이 훨씬 자유롭게 하는거같습니다.. 내가 어디에 포거스를 맞추느냐에따라 완전히 달라지는방향으로 나아가는거같습니다.. 매몰되느냐, 어떻게의물음을통해 선택하고 나아가느냐..
심리학 이론으로 접근안하더라도... 이제는 반복되지 않겟지라고 생각한 악순환이 다시 반복된다고 느껴지면... 세상이 무너지는것 같지...
그래서 저는 혜신샘의 적정심리학, 심리적 cpr행동지침서, "당신이옳다"가 참 좋습니다.
나를 알고 싶어서, 너를 알고 싶어서,,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처음 심리학에 관심이 갔는데,
당옳에서는 한사람 한사람을.. 개별적 존재로 만나게 해주었고 그 한사람 한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보고 너를 보고 묻고 듣고 나누게 해주었습니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는걸 그 과정속에서 알아가게 되었어요.)
사람을 규정하고, 분류하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알아가고 만나가는 그 길을 스미듯 느끼게 해준 당옳이 그래서 참 좋습니다.
사연을 들으니 사연자의 막막함과 절망감, 스스로 원망하는 마음까지 느껴져 안타까웠습니다. 상담을 공부하신댔는데 상담을 포함한 심리학이 인간을 다 설명하진 못합니다. 외려 인간을 정형화시키고, 단순화 시켜 개개인이 가진 개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들 우려도 있죠. 다만 사람은 심리학 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 연구들에서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데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노출된 사연만을 보고 사연자 분의 깊은 속사정은 알기 어려우나 뭐랄까 조금 정형화된 케이스 같기도 하고 , 주변에서도 이런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 하는 이들을 몇 번 본적이 있어 같이 생각해보고자 몇 자 올립니다.
사실 지금 사연자가 겪고 있는 감정은 모친과 부친 사이에서 '삼각관계'에 놓였던 아이들이 겪는 일반적 심리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미성숙한 부모는 자신들의 감정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 그 사이에 '아이'를 끼워버리죠. "너 때문에 이혼 못한다"가 대표적인 미성숙 부모들이 하는 말인데 아이는 부모의 불행이 전부 제 탓인양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자존감이 떨어지고, 결국 자신은 "행복할 자격이 없다" 고 무의식차원에서 각인시킵니다. 표면의식이 아무리 행복을 원해도 심층 무의식이 스스로 행복할 자격이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무의식은 불행한 현실을 만듭니다. 이는 '선택과 반응' 을 통해 현실을 반복적으로 창조하곤 하는데 자신의 살아온 날들을 회상해보면 비슷한 일들을 몇 년 주기로 계속 겪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 꽤 있을 겁니다. 정신분석학에서 '반복강박' 이라 부르는 것인데 이를 깨려면 상처받은 무의식을 치유해 선택과 반응을 바꿔야 하겠죠.
사연자는 지금 자신을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이 많아 보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고 누구나 그런 상황에 놓이면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겁니다. 하지만, 자신을 원망하고, 배우자 탓을 하기 전에 알아둘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선택과 반응' 의 결과물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들은 대개 상처 입은 무의식, 억압된 무의식 속에 기억이 만든 겁니다. 본인도 상담을 공부했다니 알 수도 있겠지만 사연자는 엄마와 감정이 융합된 채로 어른이 되어 그 무의식을 공유하며 배우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아의 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한 배우자는 결국 익숙한 기억이 창조한 '과거의 재탕'이 되기 쉽습니다. 무의식의 실체는 익숙함이거든요. 가뜩이나 딸들은 배우자 선택에 있어 엄마의 패턴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엄마와 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면 그 가능성이 더 높아지겠죠. 친정 아버지와 남편이 닮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아빠를 닮은 남자' 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선택' 을 따라하는 bias 때문입니다. 사연자도 생각해보세요. 엄마는 그렇게 자기를 힘들게 할 남자를 왜 선택했을까요? 엄마의 남편은 처음부터 엄마를 힘들게 했을까요? 처음부터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남자랑 결혼하는 여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연자도 "아버지랑 닮지 않아서 결혼 했다" 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남편은 갈수록 사연자의 아버지처럼 됐을까요? 또 사연자가 왜 자기 엄마의 결혼생활을 재현하고 있다고 느낄까요? 그게 무슨 가족 간에 내려오는 운명 같은 걸까요? 심리학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학문이지 한정 짓고 틀 안에 가두는 학문이 아닙니다.
사연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개선할 수 있고 스스로 더 나아지는 현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구요? 맞습니다. 변하기 싫어하면 변하지 않습니다. 담배를 끊어야지 백번 말하면서 안 끊는데 끊고 싶은 걸까요? 금단현상이네 살이 찌네 다 핑계에요. 안 끊으면 1주일 안에 죽는다 선고 받으면 다 끊습니다. 의지도 원할 때 발휘되는 것이지 원치 않을 땐 억지만 부리게 되죠. 그러니 삶이 불행하다면 무엇보다 스스로를 구해내겠다 마음을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습니다.그러려면 우선 사연자의 내면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알다 시피 외부는 내면의 반영입니다. 내면이 바뀌지 않는 외부의 변화는 미신입니다. 심리학이나 상담심리, 정신분석 같은 공부는 이렇게 변하고 싶은 자신의 현재를 점검하고 들여다보는 데 쓰는 겁니다.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많은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령 어렸을 적 엄마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지나쳐 누구의 감정인지 스스로도 헷갈리게 되어버렸고, 어른이 된 후에도 거기에서 한 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또 엄마의 불행(사연자가 보기에) 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정체성의 혼란이 일어난 건 아닌지 하는 성찰입니다. 사연자의 나이가 오십대라면, 그 어머니 세대는 가부장과 남존여비 시대를 관통해오며 여성으로서 힘든 삶을 살아낸 세대일 겁니다. 그 시대 여성들은 말도 안되는 가정노동환경에 시달렸고 무시당했으며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많은 아픔을 감수해낸 세대입니다. 사연자는 누구보다도 그 아픔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엄마의 감정과 융합되어 아버지를 '괴물' 로 여기게 됐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엄마의 불행한 인생 (사연자가 봤을 때) 에 대한 연민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엄마의 불행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무의식) 그것이 지나쳐 자신은 행복하면 안된다는 '행복공포'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닌가.(무의식) ‘행복 공포’ 라니 말도 안된다고 하겠지만 이걸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즐거울 때 문득 무언가 하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에 빠진다거나, 행복이 금방 사라질거 같은 생각으로 기분이 나빠진다거나, 갑자기 부적절한 말이나 감정 표출로 그 상태를 깨버린다거나...그런 경험이 있다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쨌거나 여전히 자신의 기억에 불행한 엄마의 인생이 강하게 남아 있다면 그것을 떠나보내고 ‘애도’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아픈 기억을 치유함으로써 자신의 인생과 엄마의 인생을 분리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자기만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충분히 아시겠지만 많은 심리학 연구가 폭력은 대물림 되며, 학대 받은 아이가 학대하는 어른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게 절대적인 사실이 아님을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학대 받고 자랐으나 자기 아이한테는 소리 한번 지르지 않은 자상한 아버지가 된 사람도 가까이에서 보았고,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산 부모를 뒀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도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면 심리학 이론이라는 것도 하나의 '설' 일뿐 결정론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알곤합니다.)
"아버지가 괴물인 '줄' 알았다" 는 사연자의 말은 이제 자신의 눈으로 아버지를 객관화 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치유가 시작되는 겁니다.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사는, 혹은 살아온 엄마와도 감정적 분화가 이루어져야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연자의 경우와 상관없이 분화수준이 낮은 엄마는 자신을 불안을 딸에게 투사시켜 딸이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없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린 부모가 잘났든 못났든 그들이 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우린 우리의 인생을 살아야 하고, 우리가 원하는 현실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몸에 벤 어린시절(무의식) " 을 통찰하고,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분석이 목적이 아닌 치유의 도구로써 심리학을 쓴다면 잘 쓰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과거를 리프레이밍(reframing) 시키는데 좋은 영감을 줍니다. 성경 말씀에도 "회개하라" 합니다. 회개는 잘못했다 뉘우친다는 뜻 이 아니라 '관점의 전환'을 뜻하는 metanoia 입니다. "생긴대로 산다" 라는 말이 있지요. 그건 우주가 만든대로를 말하는 것이지 부모가 만든 삶을 사는게 아닙니다. 사연자 역시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누구의 역할을 '재현' 하고 있는것이 아닐까..'메타노이아' 를 통해 자신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바꾸어 마음의 평화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관점의 전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 있을까요?? 또 부모 등 자라온 환경에 의해 쌓인 무의식속의 감정 처리 방법에 대해도 아시는게 있으시면 말씀부탁드립니다…!
@@him7486무의식 속에 감정을 알려면 우선 무의식의 실체에 대해 알아야겠지요. 브루스 립튼 박사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서 5-7세까지 부모에게 삶의 기반이 되는 많은 정보를 물려 받는다고 합니다. 컴퓨터로 말하면 os가 깔리는 거죠. 그걸 기반으로 살아가야 하니 아주 중요한 것들이 그 시기에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는 자기들의 기호, 습관, 언어, 태도, 액션과 리액션 등 모든 것을 아이에게 '교육' 이라는 이름으로 주입합니다. 그것들은 의도적이면서 의식적으로 행해지지만 그런 과정에서 부모가 의도하지 않는 것들까지 아이들은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 카피(copy) 라고 보는 쪽이 더 적당할 거에요. 이걸 제대로 이해한다면 소름이 돋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기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면 아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엄청 높아집니다. 무의식은 그렇게 만들어지죠. 무의식이 한번 자리 잡으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데, 그게 바로 성격으로 드러나고, 성격은 곧 운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무의식= 운명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단 무의식은 의식화를 통해 치유가 가능하기에 정해진 숙명이 아닙니다. 사실 무의식을 제대로 알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아서 큰 마음을 먹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 많은 이들이 쉽게 접근하지는 못하는거 같습니다. 그럼 전문가를 만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상적으로 가장 접근이 쉬운 방법은 자기 부모를 연구하는 겁니다. 말했지만 사람은 부모에게 많은 것을 물려받습니다. 부모가 자기의 무의식입니다. 부모를 관찰하고, 부모의 행동과 태도, 감정습관. 패턴, 언어 사용 습관을 유심히 보세요. 거기에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괴롭거나 처리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올 때, 그걸 회피하지 말고 그 감정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관찰하는 겁니다.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 속하는 것 외에 개인의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 반응과 선택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걸 알아내면 자신이 보입니다. 비블리오테라피와 '명상' 이 도움이 될겁니다. 명상에서 '명'은 한자로 어두울 '(冥 )명 '을 씁니다. 무의식을 뜻하죠. 의식 저 밑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감정치유가 시작되는 겁니다. 물론 무조건 부모를 관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관찰한 것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죠. 그러려면 결국 공부를 해야하구요. 역시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구요. 부족한 의견입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행복 공포라는 것도 있군요. 스스로 행복 공포 관련 반응 때문에 무의식이 있는거 아닌가 느꼈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본질과 현실감각의 균형
정신적인 것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
자각하게 해주셔서 의미깊은 영상입니다
중요한 화두를 주신 사연자님 감사합니다
상담을 받다보니 분석을 하게되더군요
그래서 이제 더 상담은 안받으려고 합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멍한상태로 허겁지겁사는 모습에서는 벗어난것같아서
샤워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저도 아침에 씻는편 왜냐하면 집에서는 비우는 시간을 더 가지고 싶어서
내 자신에 깊이 빠져서 나를 알아가는 것이 , 어쩔땐 답인 것 같다가도 그게 나를 스스로 고립시키고, 모든 관계를 끊고 싶을 만큼 그래서 모든 사회적 활동마저 하고싶지 않게 되는 요즘이에요... 현실감각을 잃어가는 것일까요?
오늘 영상은 저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 있어 공감하면서 봤어요. 심리학 이론을 통해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어 좋은 부분도 있지만, 그것에만 의지하게 되면 오히려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균형을 잘 맞추어 가면 좋겠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양 극단을 오고 가면서 각자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역시도 그러하지 않은가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해석을 하시는 면에서
역시 정혜신 박사님 이시구나
' 대단하시다 '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상이 또 자극이되고 미세하게 의문과 걱정과 답답함이 있던 부분을 콕 집어주셨습니다.
저도 얼마전까지 심리학에 매몰돼서 저의 주변 사람들을 평가했어요. 1년 가까이 엄마랑 연락을 끊고 지내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감정적으로 나아진거 같으면서도 또 불편하고 그렇더라고요.
비의료기관, 정신과, 한의원 등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았고, 명상도 해보고요. 비의료기관은 커뮤니티가 있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온라인으로 소통을 할 수 있었어요. 도움이 되었지만 너무 빠져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얼마전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읽으며 새로운 관점이 생기며 좀 편안해졌어요.
남편을 계속 이해할 수 없어 힘든 마음이 있었는데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일시적일 수 있을꺼에요. 계속 다듬어 줘야겠죠. 당신이 옳다가 크게 와닿을수 있었던것이 그 동안 심리학에 관심을 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매몰 될 수도 있겠죠. 그런 시기를 지나 의식이 확장되는 시기가 오면 편안해질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 초 남편은. 제게 가계부를 쓰라하고 검사하며 글씨체로 무시하고. 현금 5만원을 찾아 어디에 썼냐며 불같이 화를 내고 혼내는 듯한 말투에 난 참 주눅들고 창피하고 비참했었는데도 뉴스에서 어린이집 사망사고가 터지는 일이 생겨 난 아이를 위험한 곳에 맡기는 기분이 들어 취업을 포기하고 내가 모멸감을 감수하는 편을 선택했다
병원 상담 받으면 내가 문제인식을 가졌으니 내가 풀어야한다며 남편은 인식을 못 하니 나에게만 노력을 요구하는것에 나중엔 집어치워버렸다
남편은 저딴걸 만났다는 소릴 자주 했었....난 저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깜짝 놀랄 만한 사람... 지금은 남편에게 난 사람보는 눈이 있고 남편을 잘 만났다고 남편에게 말한다 그러면서 당신은 보는 눈이 없어 날 만났으니 내말을 잘들야한다고 한다 지금 난 시댁이나 남편에게 못된년 으로 살아간다 마음도 몸도 좀 편해지긴 했지만 찝찝한 기분이 남아있는것도 사실.
오늘도 영상 감사합니다~ 늘 많은 생각을 할 수있게 해주시네요🙇♀️
울림을 주는 담화와 성찰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왠지 사랑방에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면서도 울었네요.
저도 사라지고 싶었고 도저히 눈뜨고 살 자신이 없어서 죽음을 실행에도 옮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신이 옳다가 제게 생명수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최근에 하게 된 생각은.
내 기준에서 나의 경계를 위협하는 어떤 사람에 대한 최종 결정을 유보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이 어떠한 상황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나에게 정확한 화살을 쏜 것이 아니라 도저히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면.
어쩌면
피해자라 느끼고 분노했던 내가 오히려 가해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소름끼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어도 인간이라면.
이라는 당위가 저 스스로도 바닥을 쳤던 기억과 함께.
그 사람도 혹시 그렇다면.
눈물이 차오릅니다.
지금의 저의 숙제입니다.
오늘영상의미있는거같아요. 선생님영상보며 나의 몰랐던감정을 알게되기도 하면서 신기하기도하고치유되기도하는거같지만 또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이론적으로 판단하고 진단하지않았나 생각하게되는거같아요. 중요한말씀이셔요~ 건강한균형 중요한거같습니다.
상담과 심리학을 한 사람으로서 저는 이런 생각이에요
무엇이든 한 쪽으로 치우쳐 지나치게 매몰됨, 바꿀 수 없는 운명론이나 결정론쪽으로 스스로를 결박시키는 것, 무엇보다 더 많은 진실을 보다 넓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그 무엇들에 얽혀매이지 않아야 함을 잘 찝어 주셨네요 역시 정박사님ᆢ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은 언제나 옳아요 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전통에는 부인할 수 없는 뚜렷한 맥이 있지요ᆢ아버지와 정반대로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해왔지만, 어쩌면 그 발버둥이 사연자님이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아버지와 똑같은 점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그러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지금의 남편을 선택하게 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무의식은 익숙한 것을 찾거든요 죽도록 싫었지만, 익숙한 아버지의 그 모습ᆢ나도 모르게 불안과는 반대인 '편안함'을 느꼈을 수 있어요 물론 무의식이 한 일이므로 의식은 모르는 거죠
공감은 말로 하는게 아닙니다.말로하는순간
그뜻이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어 지지요
정말 들어주는사람 답을 주는 사람이아닌
들어주는사람을 찾아보세요 답은 머리가아닌
가슴에 누구에게나 있습니다.그 답도 개념,관념,생각으로는 어떠한 답도 찾을수 없으니 진심으로 자신의 삶을 들어줄수 있는 사람 꼭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말이나,글로는 어떠한 퍼즐도 맞춰지지 않습니다. 그자체가 진리가 될수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길 잃고 헤매던 게 답이 보이는 것 같아요.. 매몰과 경직. 이 두 단어로 많은 게 설명이 됐습니다. 제게 너무 필요했던 관점.. 이론을 기준 삼아 분명하고 명확한 것만 찾으려다가 더 늪에 빠져버린 것 같아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좋지만 평생을 두고 천천히 접근해도 되는 걸 너무 서둘러 결말을 내려다 도리어 어떤 최면에 걸린 듯이 정신을 못 차렸어요. 많은 걸 이해하고 싶었던 만큼 많이 공부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답을 찾기보다 끼워맞추거나 답을 찾을 일이 아닌 것조차 집착을 했던 것 같아요. 알면 알수록 무언가 갈증이 심해지고 현실감을 잊는 느낌이 꽤나 불편했는데 스스로 유연함을 잃었었나 봅니다. 이 또한 치열하게 살아내는 과정 중 하나겠지요.
선생님 최근에 선생님이 쓰신 당신이 옳다 라는 책을 읽고 저에 대해서 많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이런 부분에서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집중하고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걸 알아갔습니다. 알아가면서 제가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는 사람인걸 깨달았는데, 저는 제가 생각하는게 정답일까 하는 불안이 항상 있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사람 마음은 항상 옳다 라는 문장은 저한테 위로가 되었고, 제가 느끼는 감정이 곧 정답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또 다시 선생님께 실례가 될 수 있겠지만, 선생님의 말씀이 정답이 아니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찾아왔어요. 머리로는 정답이 아니면 뭐 어때, 내가 책을 읽고 공감이 갔고, 위로가 되었고 느낀 것이 있다면 그게 정답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위로받았던 모든 것들이 다 가짜가 되는 걸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지금 제가 이렇게 느끼는 불안 또한 왜 이렇게 불안을 느끼는지 저에게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죠? 하지만 이 불안이 너무 무섭습니다.
Hadir dan menyimak kak,salam sukses bersama,salam sehat salam ful suoort kak
심리학 이론, 자아정체성 확립 등의 컨텐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에 대해 한편으로는 내가 그러고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야 이 길 뿐이야 하는 생각이 번갈아 드네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또한 어쩔줄 모르겠는 막막함에 다시한번 현실과 척지려고 하는것 같아요. 이런 제가 한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합니다. 제 유일한 도피처를 막아버리는 느낌이들어 반발심이 들기도 하구요. 여전히 막막하지만 이모든게 제 마음인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또 어떡하라고? 하는 생각도 듭니다 ㅎㅎ
님의 생각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할일도 아니지요.
공감하고 안아준다는 것이 반드시 옳은것인지..
님의 논리라면 아이들 교육도 필요 없는것일수도 있지요.
님의 논리도 결국엔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게 하려는 것이지요.
공감은 생각과 수준까지도 같아야 가능한것이 아닌지요.
그렇답니다.. 충고는 훈계는 가장 그것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라고..
우리는 모르는 이의 삶에 충고하고 훈계하지 않습니다.
훈계와 충고나 아니라 경험의 공유 인지도 모르지요..그렇게 생각해봅니다.
나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가?
그 근거는 또 무엇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깨닫고 사는것이지요.
님의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 공감을 했습니다.
너무나 다릅니다. 생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그러나...
너무나 많은 틀림이 다름의 탈을 쓰고 있기도 하지요.
그래.네가옳다.!
그것은 어쩌면 무책임한 방관인지도 모릅니다.
❤❤❤
딸 아들이 저도모르는 마음의 상처를 많이받았다고 합니다.어떻게 해야될지요
안녕하세요! 오프사이트 워크샾이나 모임 계획 있으신가요? 박사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혹시 계획있으시면 유튜브 공지해 주세요. 늘 행복하세요 ㅎㅎ
최근에 영상 올려놓으신거는 없는거같습니다.
평소 정혜신선생님 상담 들을때
늘 끄덕 끄덕하는데.. 오늘은 왠지
내담자의 심리학적 틀을 중심으로 해석하시는 느낑이 들어 왠지 낯설어집니다.
내담자 남편과의 갈등상황이 심리학적 사고로 인해 더욱 경직된 것일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그 갈등이 내담자의 심리학적인 해석으로 인한 문제라고 하기엔 과도한 판단이신것 같습니다. 이러는 저 또한 과도한 해석일수는 있겠으나
오늘은 내담자의 호소내용을 중심에 두지 않고
내담자의 문제가 심리학적 해석방식에서 온 결과처럼 느껴지게 하는것 같네요.. 사실 저는 내담자가 심리학적 이론을 거론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표현한 방식을 과도하게 중심 줄기로 잡으시는것 같아서
듣고있는 내담자가 좀 답답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영상잘보았으나 좀 마음이 아프네요... 이사연자분의더깊은 속마음이 표현되지않아 궁금하다 말씀하시는데
지금 이사연자분은
지금 표현할 수있을정도로 너무 힘드시기 때문일겁니다.
하신 말씀그대로 너무힘든삶에 매몰된 나머지 자신의 마음상태를,
그저 자신의삶을 설명하는것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심리학공부에 치중하여 거기에다 뭔가자기삶을 꿰메어 놓는것이 그나마 죽음이 무섭고 살고싶어서였을겁니다.
반대로 그렇게나마 하지않았다면
이분이 뭘로 삶을 버텨왔을까요?
아마 올바르지않다라도 그곳에서 빠져나오기위한 거쳐가는 하나의 과정이나 방법이었을수 있습니다.
이사연과 영상을 위해서 많은고민을 해주신 노고도 엿보이지만
'심리학이론에 모든걸결론짓지말아라' '는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기 위해서 책상위에 올려진 사연자분의 고통이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건 아닌지 개인적으로 생각하게 되네요...
요즘은 어떤활동을 하시나요? 너무조용해서 몇자남기네요
여자의운명은
반복된것밭네요
세월이해결주기도하고
사오십대가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