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은 해당 시리즈 3편 입니다. 1편 링크 : ruclips.net/video/DwSBG9-dWW0/видео.htmlsi=piMG2LVUHg8o1dSR 2편 링크 : ruclips.net/video/DwSBG9-dWW0/видео.htmlsi=IHwSwY8gR4sRv0Eh ------------------ 안녕하세요, 개념쌓기 주인장 홍준성입니다. 오늘 하루, 저와 함께 인문학 개념들을 정리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정주행, 함께합시다!) *정주행 첫 번째 영상 ‘진리’는 여기입니다. ruclips.net/video/Q5ZBYzaDWb4/видео.htmlsi=05GD8awm07fyqxPv
결국 니체의 철학은 모순의 온전한 극복이 주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 또한 인간이기에, 현실적 모순을 인정하는 순간 그 모순이 자신을 옥죄인다는 것을 알았겠죠. 앎으로 인해 포기하게 되는 것, 불가능을 향한 도전을 자신의 것으로 쟁취해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하나의 의지를 만들어내는 것, 인지로 인해 마주하는 큰 벽을 떠올리면서도 과감히 그 이전의 평온함을 버릴 수 있는 마음 버린 평안을 뛰어넘는 새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무한의 과정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 뿐입니다..
신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질서를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변화 가득한 삶에 대한 기만이다. 삶의 끝에 오는 보상의 형태로써 이해를 지연시키고, 결국엔 타인의 죽음마저 질서를 위한 밑거름으로 삼는다. 그런 이념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노예를 자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으로는 대안을 말할 수 없고, 매 순간 자신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이 길의 극단엔 어떤 것이 있는 지 아무도 모른다. 한발씩 나아가며 주변이 어두워 짐을 알게 될 뿐이다. 우리는 심연을 똑바로 보게 된 때부터 그 것을 자신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 삶이 모순적이라 느낄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철학이 많은 힘이 됩니다.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만 보게 되는 것이겠지만, 결국 각자의 답을 위한 것이 철학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담백한 목소리와 태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것이 느껴지는 영상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ah' 같은 추임새가 너무 재밌습니다..ㅎㅎ
적어주신 문장의 밀도로 미뤄보건대, 삶을 깊이 숙고해보려고 시도하시는 듯합니다. 제가 추측하기로, 철학이 그 모든 어둠을 밝히는 환한 빛이 되어주기는 힘들 테지만, 그럼에도 짚어볼 만한 지팡이 하나 정도는 되어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시는 길에 행운을 빕니다(--)(__).
(1) 어우... 니체 저서 몇 권이 인용되는 건가요 ㄷㄷ 시청자로서는 영상 시청 내내 1차문헌의 생생한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어서 좋지만... 오빠가 니체 전집 속에 파묻혀서 심히 고생하신 건 아니신지 우려가... ㅠㅠ (2) (11:38) "먹잇감을 찾는 장소연던" > 장소'였'던이어야 될 것 같아요! (3) (13:36) 아니 ㅋㅋㅋㅋ 개념쌓기 영상의 마무리 중 가장 새드엔딩스러운 마무리인 것 같은데요? ㅠㅠㅋㅋ 제가 다른 대안을 ('구상'은 엄두도 내지 못하기에 '상상')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만... ㅠㅠㅋㅋ Nachschrift1. [문학] 오빠 그런데 사람이 꿀 수 있는 흉몽 중 (올드원 종족이 등장하는 흉몽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괴기스러운 흉몽은 아래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만: 독일 군인이 나타나서 '자네 혹시 말장수가 되어볼 생각은 없는가' 라고 말하는 꿈이 있으면, 그 꿈이야말로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는 꿈이 아닐까요? ㅋㅋㅋㅋㅋㅋㅋ Nachschrift2. [서브컬처] 어... 이건 좀 어두운 이야기라서 죄송합니다만... ㅠㅠ 제가 남성향 서브컬처판 돌아다니면서 거의 모든 타입의 미소지니에 면역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만(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서 들어왔다가 '(작중 미소지니를 도저히 못 보겠어서) 아 하차해야겠어요' 하면서 나가는 여성팬을 '목격하기만' 했을 뿐, 후술할 경험 이전까지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거든요), 최근에 제가 잘 읽던 어떤 남성향 작품이 작중 여캐를 다룰 때, '남성에게 뭔가 제공하지 않고는 사회에 자력으로 자리잡을 수 없는 존재'로 전제하고 있는 걸 보았는데, 그걸 보고 나선 '아 이건 좀' 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남성향 창작물 연재에서 하차하는 경험도 하게 되더라고요 ㅋㅋㅋ;; '다른 성별/지역/민족 등을 향한 혐오에 대한 역치값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다른 사람에 비해 꽤 높을 거라고 예상했던 내 역치값은 이 지점이군' 이라는 점을 깨달은 계기로서는 좀 가치가 있을지도요 ㅋㅋㅋ;; ('작가한테 클레임 걸지 그랬냐' 고 되물으신다면: 안타깝게도, 그런 경험을 했을 때 항의하면 절대다수의 남성팬들이 '애초에 남성향작품인데 여성독자가... 클레임?' 이라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별 의미 없더라고요 ㅋㅋㅋㅋㅋ) (한국의 모든 작가님들이 [몰페] 작가님 같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1) 많은 철학자 중에서도 유독 니체가, 그 유명함에 비례해서, 너무 자유분방하게 해석되는 것 같아서요. 해석의 풍부함이야 권장할 일이지만서도, 으음, 그럼에도 그것이 문헌학적 정교함을 무시할 이유가 될 순 없겠지요. 유튜브 생태계에 어느 정도 후자를 담당하는 채널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은 의도에서 좀 힘을 줘서 만들어봤답니다. (*그래도 2차 문헌은 얘기들은 안 했잖아요?_찡긋!) (2) 윽. (3) 예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슬금슬금 흘려왔던 것이지만, 저는 니체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긴 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니체적 삶에 대한 회의감이 있기도 한지라...(허허). NS1. 아아. 누구나 미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교양인을 미치게 할 수 있는 꿈이라고 부가설명을 덧붙이셔야 할 듯합니다:) NS2. 혜린 님께서 역치값을 느꼈다고 평할 정도면, 오우, 꽤나, 네-에, 만만찮은 녀석을 만나셨나봅니다(끌끌). 걔 뭐, 문화의 폭과 깊이는 그 누구도 원치 않을 만큼 거대한지라! *아아, 선생님, 몰페는, 그, 그 작품은... 네, 말을 줄이겠습니다
이토록 유명한 어록에 생각도 못한 시대적, 철학사적 배경이 있었군요. 저는 지금껏 문장 속 괴물이 실재에 속해있는 무언가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너무 재밌습니다 ㅎㅎ. 특히 가공된 카오스라는 표현에서는 왜인지 라캉의 잉여향유 개념이 떠오르네요. 그것이 기만적인 속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니체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겠지만..
영상 진짜 재미있네요. 철학 잘 모르는데 시원스럽고 간단하게 진행이 되서 이해가 잘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니체적 주체에 대한 딜레마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소크라테스와 바그너는 따지고 보면 기만자가 아니라 니체적 주체가 되는 것일까요..? 구원이라는 것 자체가(그게 내세이던 합리성을 찾아내는 것이던) 삶과 세상이라는 카오스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인 자만이(사실상 모든 살아있는 인간) 염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카오스라는 어떤 초월적 대상을 인식하고 거기서 삶의 본질적 기쁨을 찾아낸다는 것(또는 삶과 세상의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애초에 구원적 성격을 이미 띄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니체에게 있어 진짜 구원은 내세 또는 니체적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와의 교제(카오스를 인간화 시켜서라도) 그 자체에서 얻는 기쁨이라고 봐야 할까요? 뭐랄까, 카오스를 인식할 수 있고 그것과 먹고 먹히며 얽히고 섥히며 교제한다는 것 자체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누리는 것? 그 자체가 구원이라고 본 게 아닐까 하네요.. 카오스 속에 존재하면서 어떻게 존재함의 의미를 최대한 뽑아낼 수 있을까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문제라고 보는...ㅋㅋㅋ 니체적 주체가 되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 니체가 추구했던게 뭘까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영상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한번 각(?)을 잡고서 만든 영상인지라, 잘 됐으면 하고 기도를 했었는데,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아서 다행인 듯합니다. 음. 니체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계열에서는 (물론 본 영상보다 논리를 좀 더 보강해야겠지만) 소크라테스와 니체를 동일한 것으로 비판해버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이게 니체가 뜻한 바는 아니며, 저 역시도 니체의 철학이 저런 비판으로 모두 환원된다고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 영상에서 지적했듯, 딜레마는 분명 존재하며, 저는 니체 본인이 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언급해주신 "카오스를 전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영상에서 살펴봤듯, 니체는 이것에 대한 전면적인 수용은 광기 혹은 자살을 낳는다고 봤거든요. 그리고 저 또한 이에 동의합니다. 이 카오스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니체와 소크라테스를 가르겠지요. 음. 그렇지만 이 역시도 영상에서 밝혔듯, 현재 저로썬 마땅한 답을 잘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언급해주신 "카오스와의 교제 그 자체서 얻는 기쁨"이라는 부분은, 으음, 애매합니다. 일견 분명 맞습니다. 니체는 거기서 오는 기쁨을 중요시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동시에 기만을 원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자아에 의해 감당할 수 있는 카오스는 카오스가 아니며, 이는 자아를 변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봤지요. 위버멘쉬 사상에서 잘 드러나듯, 니체가 강력하게 정초한 것은 끊임없는 자기극복으로서의 주체인데, 이 자기극복은 앞서 언급한 자아화된 카오스의 반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처음 문제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살과 기만의 사이에서 카오스를 수용하는 적절한 기준은 무엇인가? 물론 니체를 더 연구해봐야겠지만, 현재까지 제가 사유한 결과로서 내리고 있는 잠정 결론은, 여기가 니체 철학이 끝나는 지점이라는 것입니다. 즉 니체는 이 문턱까지 우리를 인도해줄 뿐, 그 문턱 너머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결론이 논증됐을 때, 이런 질문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 같습니다: 이는 니체의 한계가 아닌 철학 자체의 한계가 아닐까...? *음. 저 또한 계속 고민하는 문제인지라, 생각들을 정리할 겸 길게 적게 됐군요. 적절한 답변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개념쌓기 정성스런 답변 감사합니다! 카오스라는 것은 애초에 '일개 인간이 절대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봐야 하는군요. 그리고 자아화된 카오스를 감당하는 것 또한 결국 니체적 자기극복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거군요. 현대문명에 가려져 그 당시 니체가 보았던 카오스를 경험해보지 못한 제가 카오스를 너무 과소평가한게 아닌가 싶네요... 니체는 카오스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한낱 인간으로서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이상향 또한 굉장히 높았던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이건 어쩌면 철학의 한계가 아닐까' 라는 말에 머리를 탁 치고 갑니다...ㅎㅎ
니체의 말을 빌려서 인간이 생각하는 진리를 나누어 본다면, 진리란 "목표 진리"와 "과정 진리"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목표 진리는 우리가 끝없이 추구하는 이상적이고 완전한 진리입니다. 이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거나,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 상태일 것입니다. 반면 과정 진리는 그 목표에 도달하려는 끝없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진리의 단편들입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면서도, 결국 "과정 진리"가 무한히 지속된다는 것은, 무한 급수가 무한히 유한한 값에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음에도 무한히 가까워진다면 결국 유한한 값이 되는 것과 같이 "목표 진리"와 "과정 진리"가 하나로 합쳐지며, 진리 자체가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와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한다는 대목을 무언가를 혐오하거나 그르다고 생각하고 강박적으로 이것이 틀림을 증명하려고 할 때 되려 그것들을 닮아간다 그러니 조심해라 라고 해석하고 또 느꼈는데요 (최근에 그런 경험을 했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또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멀리해야할까요 ? 물론 이것도 상식 내의 해석이긴 합니다만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저보다 훨씬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분이시니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항상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시는 주인장님 감사드립니다.
이 경구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는 논리적 밀도를 가진 설명이 부재한 아포리즘이라는 형식이 갖는 근원적인 한계이자 가능성이죠. 게다가 니체라는 철학자가 이를 방법론적으로 추구하기도 했고요. 따라서 정답이랄 건 없습니다. 이 영상에서 제시한 설명 역시도 하나의 해석일 뿐입니다. 또한 니체를 공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니체를 똑바로 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함일 것입니다. 하여, @GR-r9k 님께서 하신 해석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그게 제일 좋은 방향성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게 더 나은 자신, 인간을 품어주거나 아우를 수 있는 더 나은 인간을 바라는 생각에서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함... 세상이 혼돈이고 카오스면 사람은 매순간마다 발버둥 치기 위해서 썩은 나뭇가지건 밧줄이건 손바닥에 피가 흐를 지경으로 붙잡고 버텨야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기도 함... 부족한 식견이고 잘 믿지도 않았지만 종교가 얽혀있었던 인생인 내가 보기엔 현대에 신이라는 건 환상의 동물, 혹은 인간의 자기합리화와 평안을 위한 도구의 경향이 컸음... 이는 신을 통해 더 나은 자기자신, 스스로에 대한 성찰,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바램이 아니라 종교의 장이 그저 사교와 자본주의에 의해 침식당한 것이 크다고 생각함...
사람은 이미 욕망이 현현화 된 혼돈 속에 괴물이나 다름없고 거기서 한줄기 빛이 신이라는 인간 보다 더 나은 인간이 아닐까 싶음... 무수한 검은 손들이 빛, 그것조차 취할 수 있는 것, 한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먹고 마셔야할 욕망이라고 생각하면서 손바닥으로 가려대고 손가락으로 쥐여보려고 하니까 문제라고 생각함. 그건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새까만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저 바라보며 문명이 없었던 초창기 인류가 그러했듯 믿으며 따라가야 하는 것인데
근데 구원이니 천국이니 지옥인지는 솔직히 잘 몰?루겠음 ㄹㅇ;; 걍 믿어서 좀 더 편하고 좋은 것 뿐이지 종교인들 대다수가 종교뽕에 심취해서 천국 운운하는데 물질인 돈 그렇게 좋아하면서 천국천국 하는 게 아다리가 맞나... 가장 믿고 가장 사랑했던 건 돈다발이고 그렇게 따지자면 죽으면 돈 쌓인 곳에 가야지 맞지
자기합리화와 위안, 이게 꼭 신앙에만 국한된 건 아닌 듯합니다. 여러 매체나 예술, 그리고 철학에도 그런 면들이 득실득실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물론 각 분야의 질적 차이를 무시해선 곤란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 영역을 도외시한 인간 정신 활동이 얼마나 유효한지 회의감이 들 정도입니다. 음, 그래서 다른 길을 말하고자 한 니체를 탐독하는 것이겠지만서도. 뭐, 좀 더 가보죠. 어치피 언젠간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게 될 터, 숙고의 시간을 더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봅니다
너무 정직하면 세상을 감당하기 힘들죠. 개고양이 한마리 학대받은 뉴스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뭐하며서 그 뉴스를 봤을까요. 소돼지 구워먹으며 분노했다는😂 대분분의 사람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모순들을 너무나 예민하게 감지했던 사람이기에 니체는 우리에게 엄청난 통찰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자신은 남모를 고통을 받지않았나싶네요
정교하거나 남다른 사유를 하는 사람에게는, 확실히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애당초 극단적인 예민함을 타고 나거나 혹은 그 능력을 충분할 만큼 성장시켰을 때, 이는 분명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능력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반적인 생활의 많은 영역을 장애로서 잠식해버리기도 하니. 빛과 그림자랄까.
@@개념쌓기헐 선생님 이 곡은 제가 옛날에 했던 게임의 배경음악 중 하나였고 심지어 그 게임의 음악 감독 이름으로 공식 앨범이 올라와있길래 당연히 그 음악감독이 만든 곡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상 재밌게 몰아보다가 이 영상 인트로 듣고 개놀래서 후닥닥 찾아봤습니다 너무 흥분했쬬 다시 영상 보러갈게용 총총
13:46 이 ‘심해=카오스’라는 개념을 알고 사용해도 여기에 잡아 먹힐까??? 응 그럴거 같아. 그래서, 아이디 삭제. ㅋㅋㅋ 치고 빠지기죠? 그러면, 난 계속 그 작업을 ‘반복’ 했으면, 나는 ‘심연‘에 더 갇혔겠지.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선택‘이 가능하다는 사실. 그러므로, 난 나의 의지로 삭제를 했어요. 왜? 심연에 빠지지 않고, 그 곳에서 멀리 물러나, 나의 그 ’심연 과정 불변의 과거‘를, 나는 ’머리 속 기억력‘에 순차적으로 정리를 하였으니; 나는 정리를 하면 되는거죠. 더 크게 확장해서 😂
이번 영상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다보니 ‘카오스’라고 말씀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처음에 저는 허무주의, 혼란한 세상 정도로 해석했는데, 말씀하시는 카오스는 인간을 광기, 자살로 이끌정도의 극단의 혼란처럼 보여지네요. 카오스의 전면이라는 것은 결국 광기와 자살로 이끄는 그 극단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극단에는 무엇이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개념쌓기님이 생각하시는 카오스로부터의 스스로의 위치가 궁금합니다. 카오스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시고 계신가요?? 카오스라는 전제에 동의하는 것은 카오스의 전면을 바라보는 것과 어떻게 다른것인가요? 개념쌓기님이 바라보시는 카오스란 무엇인가요? 결국 같은 질문들인데 여러 개로 나열해봅니다😅😅
영상을 흥미롭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해석하기에 니체적 카오스는 허무적 뉘앙스와 "극단의 혼란" 모두를 포괄하는 것 같습니다. 음. 그렇지만 물어봐주신 "카오스로부터의 스스로의 위치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에는 적절한 답변을 드리기 힘듭니다. 영상에서도 밝혔듯, 교착 상태를 설명하는 데까지 갈 수 있으나, 그 해답은... 지금의 저로썬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기만의 힘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질기다는 답변만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언젠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간과도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현재라고 불리는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에 대한 기억은 온전하지 못하고(왜곡) 미래 또한 아무리 높은 정확도로 예측이 가능하다고 해도 100% 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불확실성, 양자역학과도 이어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계속 의심하면서 살아야되는 것 같습니다. (잊어버릴 준비, 틀린 예측을 할 준비) 어짜피 니체도 죽었잖아요. ㅋㅋ 이러나 저러나 무슨 소용인가요.. 아무것도 모른다~~~ 라고 이마에 대문짝만하게 써놓고 다니더라도 마음속에는 항상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질문 보따리를 갖고 있어야겠죠
시대상이고, 소크라테스 또한 세상이 카오스(진리는 모른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방향성이 다른 것이죠. 니체는 ‘문제점’ 그 자체에 집중한거고, 소크라테스는 인간들의 ‘사고하는 철학의 힘’으로 ’현재‘는 문제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서로 상호 소통 인지 교육을 통하여 확장을 하는 것 이지요. 과거에는 이해가 되지 않던 상대성의 상대방의 입장을 소통이라는 인류의 도구를 사용하여 합리적으로 최대한 우리 인류를 보호한다.
이 영상은 해당 시리즈 3편 입니다.
1편 링크 : ruclips.net/video/DwSBG9-dWW0/видео.htmlsi=piMG2LVUHg8o1dSR
2편 링크 : ruclips.net/video/DwSBG9-dWW0/видео.htmlsi=IHwSwY8gR4sRv0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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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개념쌓기 주인장 홍준성입니다.
오늘 하루, 저와 함께 인문학 개념들을 정리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정주행, 함께합시다!)
*정주행 첫 번째 영상 ‘진리’는 여기입니다. ruclips.net/video/Q5ZBYzaDWb4/видео.htmlsi=05GD8awm07fyqxPv
"참으로 나는 어두운 나무들이 이루는 숲이며 밤이다. 그러나 나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나의 측백나무 아래에서 장미꽃 만발한 비탈을 발견하리라."
편집 너무 좋음... 명령프롬프트? 블루스크린? 그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0과 1, 도트들로 개념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듯한 느낌이 넘나 좋은 것
8bit 고전게임이나 예전 블루스크린 느낌을 내고 싶었답니다, 허허. 감성에, 맞으셔서 다행입니다:)
동감, 보통 이런 인문학 다루는 채널들 보면 분위기가 다 비슷비슷한것 같은데 여기는 아예 색달라서너무좋음
결국 니체의 철학은 모순의 온전한 극복이 주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 또한 인간이기에, 현실적 모순을 인정하는 순간 그 모순이 자신을 옥죄인다는 것을 알았겠죠.
앎으로 인해 포기하게 되는 것, 불가능을 향한 도전을
자신의 것으로 쟁취해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하나의 의지를 만들어내는 것,
인지로 인해 마주하는 큰 벽을 떠올리면서도
과감히 그 이전의 평온함을 버릴 수 있는 마음
버린 평안을 뛰어넘는 새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무한의 과정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 뿐입니다..
모순의 어렴풋한 인식이나 체험은 가능하나, 그것의 온전한 극복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좀 더 읽어야겠지만,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니체도 이에 동의했던 것 같고요. 음. 뭐, 음. 그렇네요. 별수있나요. 힘 닿는 데까지 갈뿐
신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질서를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변화 가득한 삶에 대한 기만이다.
삶의 끝에 오는 보상의 형태로써 이해를 지연시키고, 결국엔 타인의 죽음마저 질서를 위한 밑거름으로 삼는다.
그런 이념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노예를 자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으로는 대안을 말할 수 없고, 매 순간 자신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이 길의 극단엔 어떤 것이 있는 지 아무도 모른다.
한발씩 나아가며 주변이 어두워 짐을 알게 될 뿐이다.
우리는 심연을 똑바로 보게 된 때부터 그 것을 자신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 삶이 모순적이라 느낄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철학이 많은 힘이 됩니다.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만 보게 되는 것이겠지만, 결국 각자의 답을 위한 것이 철학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담백한 목소리와 태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것이 느껴지는 영상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ah' 같은 추임새가 너무 재밌습니다..ㅎㅎ
적어주신 문장의 밀도로 미뤄보건대, 삶을 깊이 숙고해보려고 시도하시는 듯합니다. 제가 추측하기로, 철학이 그 모든 어둠을 밝히는 환한 빛이 되어주기는 힘들 테지만, 그럼에도 짚어볼 만한 지팡이 하나 정도는 되어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시는 길에 행운을 빕니다(--)(__).
08:44😢😢기만, 바그너의 기만
09:25 괴물:소크라테스, 바그너 기만
11:29 못버틴다 심연
12:00😂😂
12:56 니체적 주체는 위태로운 줄타기처럼 어렵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 어우... 니체 저서 몇 권이 인용되는 건가요 ㄷㄷ
시청자로서는 영상 시청 내내 1차문헌의 생생한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어서 좋지만... 오빠가 니체 전집 속에 파묻혀서 심히 고생하신 건 아니신지 우려가... ㅠㅠ
(2) (11:38) "먹잇감을 찾는 장소연던"
> 장소'였'던이어야 될 것 같아요!
(3) (13:36) 아니 ㅋㅋㅋㅋ 개념쌓기 영상의 마무리 중 가장 새드엔딩스러운 마무리인 것 같은데요? ㅠㅠㅋㅋ
제가 다른 대안을 ('구상'은 엄두도 내지 못하기에 '상상')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만... ㅠㅠㅋㅋ
Nachschrift1. [문학] 오빠 그런데 사람이 꿀 수 있는 흉몽 중 (올드원 종족이 등장하는 흉몽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괴기스러운 흉몽은 아래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만:
독일 군인이 나타나서 '자네 혹시 말장수가 되어볼 생각은 없는가' 라고 말하는 꿈이 있으면, 그 꿈이야말로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는 꿈이 아닐까요? ㅋㅋㅋㅋㅋㅋㅋ
Nachschrift2. [서브컬처] 어... 이건 좀 어두운 이야기라서 죄송합니다만... ㅠㅠ
제가 남성향 서브컬처판 돌아다니면서 거의 모든 타입의 미소지니에 면역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만(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서 들어왔다가 '(작중 미소지니를 도저히 못 보겠어서) 아 하차해야겠어요' 하면서 나가는 여성팬을 '목격하기만' 했을 뿐, 후술할 경험 이전까지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거든요), 최근에 제가 잘 읽던 어떤 남성향 작품이 작중 여캐를 다룰 때, '남성에게 뭔가 제공하지 않고는 사회에 자력으로 자리잡을 수 없는 존재'로 전제하고 있는 걸 보았는데, 그걸 보고 나선 '아 이건 좀' 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남성향 창작물 연재에서 하차하는 경험도 하게 되더라고요 ㅋㅋㅋ;;
'다른 성별/지역/민족 등을 향한 혐오에 대한 역치값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다른 사람에 비해 꽤 높을 거라고 예상했던 내 역치값은 이 지점이군' 이라는 점을 깨달은 계기로서는 좀 가치가 있을지도요 ㅋㅋㅋ;;
('작가한테 클레임 걸지 그랬냐' 고 되물으신다면: 안타깝게도, 그런 경험을 했을 때 항의하면 절대다수의 남성팬들이 '애초에 남성향작품인데 여성독자가... 클레임?' 이라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별 의미 없더라고요 ㅋㅋㅋㅋㅋ)
(한국의 모든 작가님들이 [몰페] 작가님 같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1) 많은 철학자 중에서도 유독 니체가, 그 유명함에 비례해서, 너무 자유분방하게 해석되는 것 같아서요. 해석의 풍부함이야 권장할 일이지만서도, 으음, 그럼에도 그것이 문헌학적 정교함을 무시할 이유가 될 순 없겠지요. 유튜브 생태계에 어느 정도 후자를 담당하는 채널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은 의도에서 좀 힘을 줘서 만들어봤답니다. (*그래도 2차 문헌은 얘기들은 안 했잖아요?_찡긋!)
(2) 윽.
(3) 예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슬금슬금 흘려왔던 것이지만, 저는 니체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긴 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니체적 삶에 대한 회의감이 있기도 한지라...(허허).
NS1. 아아. 누구나 미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교양인을 미치게 할 수 있는 꿈이라고 부가설명을 덧붙이셔야 할 듯합니다:)
NS2. 혜린 님께서 역치값을 느꼈다고 평할 정도면, 오우, 꽤나, 네-에, 만만찮은 녀석을 만나셨나봅니다(끌끌). 걔 뭐, 문화의 폭과 깊이는 그 누구도 원치 않을 만큼 거대한지라! *아아, 선생님, 몰페는, 그, 그 작품은... 네, 말을 줄이겠습니다
이토록 유명한 어록에 생각도 못한 시대적, 철학사적 배경이 있었군요. 저는 지금껏 문장 속 괴물이 실재에 속해있는 무언가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너무 재밌습니다 ㅎㅎ. 특히 가공된 카오스라는 표현에서는 왜인지 라캉의 잉여향유 개념이 떠오르네요. 그것이 기만적인 속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니체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겠지만..
니체의 문구는 워낙 여러 맥락에서 해석될 가능성을 가지는지라(이게 니체 철학의 최대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한!), 이 영상으로 많이 알려진 해석과는 조금 다른 시선을 제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재미있으셔서 다행입니다:)
영상 진짜 재미있네요. 철학 잘 모르는데 시원스럽고 간단하게 진행이 되서 이해가 잘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니체적 주체에 대한 딜레마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소크라테스와 바그너는 따지고 보면 기만자가 아니라 니체적 주체가 되는 것일까요..? 구원이라는 것 자체가(그게 내세이던 합리성을 찾아내는 것이던) 삶과 세상이라는 카오스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인 자만이(사실상 모든 살아있는 인간) 염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카오스라는 어떤 초월적 대상을 인식하고 거기서 삶의 본질적 기쁨을 찾아낸다는 것(또는 삶과 세상의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애초에 구원적 성격을 이미 띄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니체에게 있어 진짜 구원은 내세 또는 니체적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와의 교제(카오스를 인간화 시켜서라도) 그 자체에서 얻는 기쁨이라고 봐야 할까요? 뭐랄까, 카오스를 인식할 수 있고 그것과 먹고 먹히며 얽히고 섥히며 교제한다는 것 자체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누리는 것? 그 자체가 구원이라고 본 게 아닐까 하네요.. 카오스 속에 존재하면서 어떻게 존재함의 의미를 최대한 뽑아낼 수 있을까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문제라고 보는...ㅋㅋㅋ 니체적 주체가 되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 니체가 추구했던게 뭘까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영상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한번 각(?)을 잡고서 만든 영상인지라, 잘 됐으면 하고 기도를 했었는데,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아서 다행인 듯합니다.
음. 니체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계열에서는 (물론 본 영상보다 논리를 좀 더 보강해야겠지만) 소크라테스와 니체를 동일한 것으로 비판해버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이게 니체가 뜻한 바는 아니며, 저 역시도 니체의 철학이 저런 비판으로 모두 환원된다고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 영상에서 지적했듯, 딜레마는 분명 존재하며, 저는 니체 본인이 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언급해주신 "카오스를 전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영상에서 살펴봤듯, 니체는 이것에 대한 전면적인 수용은 광기 혹은 자살을 낳는다고 봤거든요. 그리고 저 또한 이에 동의합니다. 이 카오스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니체와 소크라테스를 가르겠지요. 음. 그렇지만 이 역시도 영상에서 밝혔듯, 현재 저로썬 마땅한 답을 잘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언급해주신 "카오스와의 교제 그 자체서 얻는 기쁨"이라는 부분은, 으음, 애매합니다. 일견 분명 맞습니다. 니체는 거기서 오는 기쁨을 중요시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동시에 기만을 원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자아에 의해 감당할 수 있는 카오스는 카오스가 아니며, 이는 자아를 변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봤지요. 위버멘쉬 사상에서 잘 드러나듯, 니체가 강력하게 정초한 것은 끊임없는 자기극복으로서의 주체인데, 이 자기극복은 앞서 언급한 자아화된 카오스의 반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처음 문제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살과 기만의 사이에서 카오스를 수용하는 적절한 기준은 무엇인가?
물론 니체를 더 연구해봐야겠지만, 현재까지 제가 사유한 결과로서 내리고 있는 잠정 결론은, 여기가 니체 철학이 끝나는 지점이라는 것입니다. 즉 니체는 이 문턱까지 우리를 인도해줄 뿐, 그 문턱 너머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결론이 논증됐을 때, 이런 질문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 같습니다: 이는 니체의 한계가 아닌 철학 자체의 한계가 아닐까...?
*음. 저 또한 계속 고민하는 문제인지라, 생각들을 정리할 겸 길게 적게 됐군요. 적절한 답변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개념쌓기 정성스런 답변 감사합니다! 카오스라는 것은 애초에 '일개 인간이 절대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봐야 하는군요. 그리고 자아화된 카오스를 감당하는 것 또한 결국 니체적 자기극복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거군요. 현대문명에 가려져 그 당시 니체가 보았던 카오스를 경험해보지 못한 제가 카오스를 너무 과소평가한게 아닌가 싶네요... 니체는 카오스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한낱 인간으로서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이상향 또한 굉장히 높았던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이건 어쩌면 철학의 한계가 아닐까' 라는 말에 머리를 탁 치고 갑니다...ㅎㅎ
니체의 말을 빌려서 인간이 생각하는 진리를 나누어 본다면, 진리란 "목표 진리"와 "과정 진리"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목표 진리는 우리가 끝없이 추구하는 이상적이고 완전한 진리입니다. 이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거나,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 상태일 것입니다. 반면 과정 진리는 그 목표에 도달하려는 끝없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진리의 단편들입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면서도, 결국 "과정 진리"가 무한히 지속된다는 것은, 무한 급수가 무한히 유한한 값에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음에도 무한히 가까워진다면 결국 유한한 값이 되는 것과 같이 "목표 진리"와 "과정 진리"가 하나로 합쳐지며, 진리 자체가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오, 숙고해볼 가치가 있는 정리가고 봅니다.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_ _).
오늘 이 채널을 알고리즘 추천으로 방문하게 되었는데,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그림들로 설명해줘서 너무 좋네요. 감사한 채널이예요 ㅎㅎ
드디어 알고리즘이 일을 하는군요! 이렇게 뵙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_ _).
와 영상 너무너무 좋아요 ㅠㅠ 구독해놓고 계속 보러올게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_ _).
괴물 잠언이 이런 뜻이었군요.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며 우주의 광대함과 그안의 한없이 작은 나를 보면 그게 심연이 아닐까? 한없이 아름다우면서도 두려운
왠지 니체라면 마지막 말의 순서를 반대로 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한없이 두려우면서도 아름다운
제가 가장 좋아하는 Quote입니다💓영상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와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한다는 대목을
무언가를 혐오하거나 그르다고 생각하고 강박적으로 이것이 틀림을 증명하려고 할 때 되려 그것들을 닮아간다 그러니 조심해라 라고 해석하고 또 느꼈는데요 (최근에 그런 경험을 했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또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멀리해야할까요 ?
물론 이것도 상식 내의 해석이긴 합니다만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저보다 훨씬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분이시니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항상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시는 주인장님 감사드립니다.
이 경구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는 논리적 밀도를 가진 설명이 부재한 아포리즘이라는 형식이 갖는 근원적인 한계이자 가능성이죠. 게다가 니체라는 철학자가 이를 방법론적으로 추구하기도 했고요. 따라서 정답이랄 건 없습니다. 이 영상에서 제시한 설명 역시도 하나의 해석일 뿐입니다. 또한 니체를 공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니체를 똑바로 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함일 것입니다. 하여, @GR-r9k 님께서 하신 해석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그게 제일 좋은 방향성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명쾌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얼마 안남았지만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알림 듣고 위버멘쉬처럼 달려왔습니다
아, 저 같은 범인이 위버멘쉬를 만족시키는 것은...(절래절래).
언제나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게 더 나은 자신, 인간을 품어주거나 아우를 수 있는 더 나은 인간을 바라는 생각에서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함... 세상이 혼돈이고 카오스면 사람은 매순간마다 발버둥 치기 위해서 썩은 나뭇가지건 밧줄이건 손바닥에 피가 흐를 지경으로 붙잡고 버텨야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기도 함... 부족한 식견이고 잘 믿지도 않았지만 종교가 얽혀있었던 인생인 내가 보기엔 현대에 신이라는 건 환상의 동물, 혹은 인간의 자기합리화와 평안을 위한 도구의 경향이 컸음... 이는 신을 통해 더 나은 자기자신, 스스로에 대한 성찰,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바램이 아니라 종교의 장이 그저 사교와 자본주의에 의해 침식당한 것이 크다고 생각함...
사람은 이미 욕망이 현현화 된 혼돈 속에 괴물이나 다름없고 거기서 한줄기 빛이 신이라는 인간 보다 더 나은 인간이 아닐까 싶음... 무수한 검은 손들이 빛, 그것조차 취할 수 있는 것, 한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먹고 마셔야할 욕망이라고 생각하면서 손바닥으로 가려대고 손가락으로 쥐여보려고 하니까 문제라고 생각함. 그건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새까만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저 바라보며 문명이 없었던 초창기 인류가 그러했듯 믿으며 따라가야 하는 것인데
근데 구원이니 천국이니 지옥인지는 솔직히 잘 몰?루겠음 ㄹㅇ;; 걍 믿어서 좀 더 편하고 좋은 것 뿐이지 종교인들 대다수가 종교뽕에 심취해서 천국 운운하는데 물질인 돈 그렇게 좋아하면서 천국천국 하는 게 아다리가 맞나... 가장 믿고 가장 사랑했던 건 돈다발이고 그렇게 따지자면 죽으면 돈 쌓인 곳에 가야지 맞지
자기합리화와 위안, 이게 꼭 신앙에만 국한된 건 아닌 듯합니다. 여러 매체나 예술, 그리고 철학에도 그런 면들이 득실득실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물론 각 분야의 질적 차이를 무시해선 곤란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 영역을 도외시한 인간 정신 활동이 얼마나 유효한지 회의감이 들 정도입니다. 음, 그래서 다른 길을 말하고자 한 니체를 탐독하는 것이겠지만서도. 뭐, 좀 더 가보죠. 어치피 언젠간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게 될 터, 숙고의 시간을 더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봅니다
2:49 벨에포크, 장기불황😅
너무 정직하면 세상을 감당하기 힘들죠. 개고양이 한마리 학대받은 뉴스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뭐하며서 그 뉴스를 봤을까요. 소돼지 구워먹으며 분노했다는😂 대분분의 사람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모순들을 너무나 예민하게 감지했던 사람이기에 니체는 우리에게 엄청난 통찰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자신은 남모를 고통을 받지않았나싶네요
정교하거나 남다른 사유를 하는 사람에게는, 확실히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애당초 극단적인 예민함을 타고 나거나 혹은 그 능력을 충분할 만큼 성장시켰을 때, 이는 분명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능력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반적인 생활의 많은 영역을 장애로서 잠식해버리기도 하니. 빛과 그림자랄까.
열심히 볼게여. 떡상하소서.
감사합니다!
이 짧은 영상만으로 제가 니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렇답니다. 같이 배워나가요!
영상 좋습니다. 감사~
정말이지 니체를 읽으면 읽을수록 니체에게 쌍욕을 하고 싶어집니다...
아아, 니체, 지은 죄가 많은 사람!
잘먹겠습니당 !
체하지 않게 꼭꼭 씹어드세요!
안녕하세요. 영상 주제에 대해 댓글 달고 싶지만 피곤해서 글이 안 써지네요. 잘 보고 있습니다. 참. 그동안 궁금했는데, 본 영상에 사용하시는 기타 bgm 제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Laid Back Guitars 입니다. 영상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이 심연이라는 건 이미 살면서 거울과 스마트폰 검은 화면에 비친 내 와꾸를 볼 때부터 느꼈음...
아, 아앗...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니체는 뭔가 1호선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이상한 아저씨 같은 느낌. 뭔가 무셔... 눈을 최대한 피하고 싶게 만드는 류의 무서움?
도, 도망쳐!
08:44😢😢
혹시 영상에 쓰시는 기타 노래? 무슨 곡인지 알 수 있을까요..!
Laid Back Guitars - Kevin MacLeod
@@개념쌓기헐 선생님 이 곡은 제가 옛날에 했던 게임의 배경음악 중 하나였고 심지어 그 게임의 음악 감독 이름으로 공식 앨범이 올라와있길래 당연히 그 음악감독이 만든 곡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상 재밌게 몰아보다가 이 영상 인트로 듣고 개놀래서 후닥닥 찾아봤습니다 너무 흥분했쬬 다시 영상 보러갈게용 총총
@@푸푸-d1f 그런 사연이! 아무튼 제 채널에 합류하신 걸 환영하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재밌습니다...
카오스를 바라보면서 초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거죠? 궁금합니다ㅠㅠ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음. 그렇지만 그 대답에 대해선, 현재로선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잘 모르겠습니다
@@개념쌓기 오늘 영상은 너무 소름돋았습니다ㅋㅋㅋㅋㅋㅋ 최고예요
니체철학을 정독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음. 안티크리스트?
철학학교로부터 착륙완료
환영합니다!
13:46
이 ‘심해=카오스’라는 개념을 알고 사용해도 여기에 잡아 먹힐까??? 응 그럴거 같아. 그래서, 아이디 삭제. ㅋㅋㅋ
치고 빠지기죠?
그러면, 난 계속 그 작업을 ‘반복’ 했으면, 나는 ‘심연‘에 더 갇혔겠지.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선택‘이 가능하다는 사실.
그러므로, 난 나의 의지로 삭제를 했어요. 왜? 심연에 빠지지 않고, 그 곳에서 멀리 물러나, 나의 그 ’심연 과정 불변의 과거‘를, 나는 ’머리 속 기억력‘에 순차적으로 정리를 하였으니; 나는 정리를 하면 되는거죠. 더 크게 확장해서 😂
이 세상엔 [심연]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ㅠㅠ
그렇기에 우리는
그런 현실을 바라보고, 우주에 있는 별의 빛같은 '아름다운 어떠한 것'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고, 변화를 수용할 능력을 가지며 올바를지는 모르는 [답]을 찾아야 한다고 느껴지네요.
세계에 대한 심연이라는 비유는, 으음,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적어주신 문장 마따나, 세계가 심연이라는 사실이 삶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되진 않죠. 같이 화이팅!
영상 맛있네
철학이 안 그래도 어려운데 삼천포로 너무 자주 빠짐
사견도 좀 줄이고 객관적인 말로 해줫으면 좋겟음
그러면 좀 더 깔끔하고 일직선잇는 철학 채널이 될 것 같음
이번 영상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다보니 ‘카오스’라고 말씀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처음에 저는 허무주의, 혼란한 세상 정도로 해석했는데, 말씀하시는 카오스는 인간을 광기, 자살로 이끌정도의 극단의 혼란처럼 보여지네요. 카오스의 전면이라는 것은 결국 광기와 자살로 이끄는 그 극단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극단에는 무엇이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개념쌓기님이 생각하시는 카오스로부터의 스스로의 위치가 궁금합니다. 카오스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시고 계신가요?? 카오스라는 전제에 동의하는 것은 카오스의 전면을 바라보는 것과 어떻게 다른것인가요? 개념쌓기님이 바라보시는 카오스란 무엇인가요? 결국 같은 질문들인데 여러 개로 나열해봅니다😅😅
영상을 흥미롭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해석하기에 니체적 카오스는 허무적 뉘앙스와 "극단의 혼란" 모두를 포괄하는 것 같습니다. 음. 그렇지만 물어봐주신 "카오스로부터의 스스로의 위치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에는 적절한 답변을 드리기 힘듭니다. 영상에서도 밝혔듯, 교착 상태를 설명하는 데까지 갈 수 있으나, 그 해답은... 지금의 저로썬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기만의 힘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질기다는 답변만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언젠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념쌓기 답변 감사합니다. 어쩌면 영원할 방황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 하나의 진전일 수 있겠네요. 앞으로도 재밌는 영상 많이 부탁드려요 :)
내 자아가 나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
시간과도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현재라고 불리는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에 대한 기억은 온전하지 못하고(왜곡) 미래 또한 아무리 높은 정확도로 예측이 가능하다고 해도 100% 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불확실성, 양자역학과도 이어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계속 의심하면서 살아야되는 것 같습니다. (잊어버릴 준비, 틀린 예측을 할 준비)
어짜피 니체도 죽었잖아요. ㅋㅋ
이러나 저러나 무슨 소용인가요..
아무것도 모른다~~~ 라고 이마에 대문짝만하게 써놓고 다니더라도
마음속에는 항상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질문 보따리를 갖고 있어야겠죠
본인이 영상보고 아는 척하고 싶은 철학과면 개추
에구, 철학도라면 더 잘 알겠지만, 니체의 저 경구는 워낙 해석의 폭이 넓어서, 이 영상은 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일 뿐, 정답일 수는 없답니다.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십시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첫 구절
“모든 이를 위한 하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어우 어렵네;;
시대상이고, 소크라테스 또한 세상이 카오스(진리는 모른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방향성이 다른 것이죠.
니체는 ‘문제점’ 그 자체에 집중한거고, 소크라테스는 인간들의 ‘사고하는 철학의 힘’으로 ’현재‘는 문제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서로 상호 소통 인지 교육을 통하여 확장을 하는 것 이지요.
과거에는 이해가 되지 않던 상대성의 상대방의 입장을 소통이라는 인류의 도구를 사용하여 합리적으로 최대한 우리 인류를 보호한다.
아니ㅜ이런 유튜브가 있다고..?
내 손을 잡게, 잘 왔네. 앞으로 잘 해보자구!
심연...어비스...메이드 인 어비스
본도르드...
11:58
과거사람들 진짜 개 똑똑하넼ㅋㅋ
평생토록 신을 찾아 해메였지만 신을 찾지 못 한 채 신에게 버림 받은 불쌍한 니체♡신을 부정한다고 인간이 신이 되는 게 아닌데♡ 신의 존재가 그냥 믿어지는 것이 실은 축복인 것을♡
음. 그런 의견을 갖고 계시군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ㄹㅇㅋㅋ 그냥 믿으면 편한데 솔까 이런 영상 찾아보는 사람들은 좀이 쑤시지 않을 수가 없음... 아무리 좋게 쳐줘도 신은 자기기만용 도구의 느낌임
신은 액세서리 정도 아닐까요ㅋㅋ
신을 부정한다고 신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마치 크나큰 범죄를 저지른 것 마냥 해석을…
신은 무슨?... 븅신같은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