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뫼르소가 실존주의자처럼 행동했다고 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오랜 세월 헤맸던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으니, 뫼르소의 사회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들은 실존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즉자적인 삶에 가까웠고, 마지막 교도소에서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신부에게 울부짖는 모습은 자신의 삶과 선택을 긍정하며 주체성을 선언하는 장면으로 느껴졌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한 시대의 기득권자들이 부여해 놓은 가치, 본질 즉 보편성으로 부터 벗어나 자기 삶의 개별성을 찾아 진정한 자기 삶을 살아라라고 하는 인간애에서 나온 사상이 실존주의인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자기 삶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유~ 타자(사회)의 욕망이 아닌 진정한 자신의 욕망을 욕망하고 존중하며 살아내는 자유~ 결국 개별성, 주체성, 진정성, 자존감, 책임감 등이 전제가 되는 자유인 듯 합니다. 실존주의 역시 개별 인간에 대한 사랑의 철학인 듯 합니다~ 교수님의 강의에도 청자들의 삶에 대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실존주의자들은 새장을 나온 새들 같네요. 안정적이고 안전하지만 자유가 제한된 새장에서 나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길 선택한 새들 말이죠.. 그렇지만 그런 선택엔 책임이 따르겠죠. 바깥 세상은 여러 장해물과 위험요소가 있으니까요. 여러 생각들이 드네요. 제가 잘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ㅎㅎ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인생의 제1막이 세상을 사는 삶이라면, 인생의 제2막은 자신을 사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잘 사는 것, 그것이 곧 잘 죽는 것입니다. 지난 삶을 한탄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초월적인 죽음. 그래서 고래로 인문학을 'Melete thanatou', 잘 죽기 위한 연습(죽음의 수련)이라 불렀습니다. 지금부터가 진정한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선생님의 매일을 응원합니다. Bravo your Life~!!
동감합니다 . 보편주의적 가치에 대해서,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이게 무슨 소리지 했는데, 제가 생각 하는 것과 다른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오해가 해소 되었네요. ㅎ 분명한 것은 실존주의는 욕망과 쾌락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고 누구보다 더 자신에 독단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닌 공존을 꿰하고 그 이전에 나에 완성을 목표로 두고 더 뻗쳐 나가는것이 실존주의임을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실존주의는 주체성이다!" 이것이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삶이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이 나로 존재하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애옹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공존의 지혜입니다. 삶의 방식의 차이를 존중하며 다름의 불편을 견디는 화이부동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와 진짜 좋은 채널이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챙겨보겠습니다 ㅎㅎ 이런 시리즈가 더 이해도 잘 되고 깊이도 있어 좋습니다 ! 기회가 된다면 실존주의 심화편도 만들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흄, 쇼펜하우어 편도 듣고싶습니다 ㅎㅎㅎ 아무쪼록 좋은 강의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교수님 좋은 영상 너무 감사드립니다. 최근에 네이버 지식인에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신화에 관한 질문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답변 주신 것 보았는데, 제가 답을 못 드려서 여기에라도 남깁니다. 카뮈의 철학은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하여 의문인 것은 인간이 카뮈가 말한 '창조자'로서, 니체가 말한 '초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가. 이것이 의문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중 한명인 하이데거는 '본래적 자아'와 '비본래적 자아'에 관해 언급하더군요. 카뮈와 니체는 '비본래적 자아'만을 강조하고, '비본래적 자아'를 소실시키는 것이 창조자이고 초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래적 자아만을 발현시키고, 나 자신으로 이르지 못 하는 것은 모두 망치로 쳐내는 것이 가능하느냐..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교수님 어떤 책이 제 생각을 진보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요? 답변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강의 하나하나 볼 때 마다 신세계네요. 감사합니다. 교수님께 질문이 있는데요.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타노스는 선한 대의(?)를 위해 지적 생명체의 절반을 소멸시켜버리는데요. 특히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가모라)도 그 대의를 위해 바치잖아요? 이는 실존을 실현시키기 위한 태도로 볼 수 있나요? 제가 이해력이 딸려서 그러는데... 즉자대자 존재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이 변증법 방식으로 말했을때 내가 나를 객관화시켜 성찰과 자아비판을 함으로서 좀 더 균형잡힌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거든요. 그래서 예로 드신 반사회적/ 반인륜적인 방종은 대자존재의 비판적 자아성찰이 결여된 선택의 결과로 보았구요. 하지만 만약 제 이해가 맞다면 타노스의 경우 영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끊임없는 고뇌와 성찰속에 그의 의지를 주체적으로 결행했다고 보거든요. (영화에서 보이는 타노스의 이미지는 영락없는 "죽음앞에 선 단독자"니까요. 심지어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죠) 문제는 타노스의 경우 영화를 관람하는 우리가 전지적 시점으로 지켜볼 수 있었으니 실존을 실현시켰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히틀러를 포함한 인류사에 악명높은 독재자들도 자신들이 고뇌와 성찰 끝에 반사회/반인륜적인 행위를 결행했다 주장한다면 그리고 우리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들 자신이 그렇게 강력히 믿었다면...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걸까요? 공산(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의 권익을 위해 부르주아 계급을 폭력혁명으로 전복하려한 거잖아요? 하지만 본래 의도와는 달리 대부분의 공산주의 사회 국민들은 더 심한 (경제적/ 정치적/ 인권적) 불평등과 부자유에 시달리고 있죠. 제가 생각하는 그 원인은 아마도 대부분의 인간이 자기합리화와 자기기만을 통해 변증법적 자기 비판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아성찰 능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건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어떻게 불완전한/ 악한 인간이 '탈존'에 이르게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나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죄송합니다. 하지만 교수님 강의를 보는 순간 봇물처럼 질문들이 쏟아지네요. (부정의 질문이 아닌 tell me more와 같은 지혜에 대한 갈증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쁘실테니 시간되실때 답변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Jay님...질문이 너무 좋습니다. 대학강의실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준다면, 그 시간은 주옥처럼 흘러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Jay님께서는 키에르케고어의 주관적 신앙이 가진 결정적인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 주셨습니다. 테러리즘이라든가 인종대학살도 그에게는 신의 명령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것은 종교적 광신주의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들 신의 응답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신념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신념이 타인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그 신념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의로움을 살고자 한다면, 그런 신념은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3자가 고통당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의로움의 제1원칙이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벤저스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습니다. 봐도 이해하기가 힘들 것 같았어요...대의를 위한 생명의 희생은...이해되지 않는군요. 예를 드신, 히틀러와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 전체적인 사고에 저항하는 것이 실존주의입니다. 개체는 전체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유가 다른 이의 삶을 억압한다면, 그런 자유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실존의 자기모순이기도 하고요. 실존은 삶입니다. 자기 삶이 중요하듯이 타인의 삶도, 자유도 최고로 존중되어야 할 것 같아요. 질문에 대한 답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 질문이 봇물처럼 쏟아졌다니 보람을 느낍니다. 재형님의 생각에 도움되었기를 바랍니다. ^^
웃기는게 그때 히피나 68학생운동 세대들 지금 타이메고 직장상사 되거나 연금 따박따박 타먹고 배따시게 잘 삶 ㅋㅋㅋㅋㅋㅋ 정치적으로 들릴수도 있는데 실제 돌아가는 꼴은 이런상황임 나도 지금 독일 유학하면서 주위에 보면 실존주의 외치면서 누가봐도 그냥 금발 백인인데 자기 조상중에는 인디언이 있다는둥... 직업도 딱히 없이 무슨 돈으로 먹고사는지도 모를 사람들 수두룩함 ㅋㅋㅋㅋ 물론.. 다양성 존중하고 기회의평등 존중하지만 그런 사람들 보면 어쩐지 맹목적으로 다르기 위한 다름을 선택한 느낌이랄까 ㅋㅋ 그리고 다양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본질을 쫒는 사람들이 공존하는걸 이해하지를 못하더라... 그런부분이 약간 이해하기가 힘들지 않나...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작년 1학기에 삶과죽음의 철학 수업을 들었던 학생입니다 이번 학기에 학점이 조금 남아 교수님 수업을 듣고자 찾아봤더니 수업이 열리지 않아 다른 철학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두번째 수업을 듣고 왔는데 교수님이 알려주신 철학자들이 아닌 다른 철학자들에 대해 배우게 되어 기쁨과 동시에 교수님에게 배우지 못해 아쉬움이 생겨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혹시 앞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 없으신가요?? 물어보고 싶은게 많습니다 댓글로는 다 담기 어려워 좋은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 수업이 생각나 몇글자 끄적여 봅니다
고등학생입니다 철학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이러한 강의를 무료로 듣는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좋은 강의라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고, 질문이 생기는데요, 제가 이해한 바로는 실존주의는 인간은 실존이 본질보다 선행 되어야하고 사회를 위한, 어떠한 집단을 위해 내가 사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나를 위한 일을 하며 사는 것으로 이해했는데요, 실존주위의 범위가 궁금합니다. 히피문화의 일탈과 사회의 법과 질서를 무너트리는 행위가 특별함이 아닌 나 자신이 진정으로 일탈, 사회의 법과 질서를 무너트리는것을 원한다면 이것 또한 실존주의라 할 수 있나요? 만약 이 것 또한 실존주의라면,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범죄행위또한 실존주의라 할 수 있나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준비한 이라는 영상을 참고해 주면 좋겠어요. 한 예로 사르트르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를 위한 책임을 연결하는데요. 그것이 “앙가주망” 개념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더불어 공동체의 번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방종이 되고 말겠지요. ^^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보다 실존주의에 대해 잘 알게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상을 보고 궁금한 점이 생겨 질문합니다! 즉자존재의 삶에서 대자존재의 삶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사르트르는 보았나요? 그저 자신의 행동에서 주체성을 찾으면 된다고 본 것인가요? 아니면 야스퍼스가 말하는 한계상황처럼 어떠한 상황을 통해 주체성을 찾는 계기가 존재한다고 보나요? 다른 곳에서 찾아보려 했는데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 개념을 처음 보았던 여기에 질문 남깁니다~ 또 즉자존재 대자존재를 더 깊게 알고 싶은데 괜찮은 책이 있으면 추천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항상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마치 카프타의 소설 에서 그레고리가 자신을 벌레처럼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뭔가 특별한 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라는 느낌. 그러나 늘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즉자존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읽어보시면 조금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요. ^^
타 분야를 혼자 접할 때 내용을 오해할 위험이 있는데, 이렇게 유투브 강의를 올려주시고 댓글로 소통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영상을 보며 실존주의와 그리스도교에 대해 질문이 몇 가지 생겼는데, 시간 나실 때 답변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신이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든 창조했다는 믿음은 사람의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 상황처럼 보입니다. 혹시 이러한 생각이 오해인 것인지, 혹은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은 사르트르의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인지 궁금합니다. 둘째는 잘 정의된 질문은 아닌데, 혹 조언을 구할 수 있을 지 해서 두서없이 남깁니다. 그리스도교는 계명 혹은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라고 요구하는데, 얼핏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는 삶은 주체적이지 않기에 실존적 삶으로 볼 수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믿고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점에서 "부름에 자유의지로 응답하는 삶" 은 실존적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는 데에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그러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나 자료가 있을까요?
실존주의와 관련한 핵심적인 질문들을 주셨네요. 전통적인 철학과 신학은 본질이 존재에 선행한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니 실존주의와 대비됩니다. 또한 "부름에 자유의지로 응답하는 삶"은 실존주의에 해당합니다. 키에르케고어의 유신론적 실존주의가 바로 그 계열입니다. 상혁님의 이해가 정확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사르트르의 , 키에르케고어의 , 매튜 커크패트릭/정진우 옮김, 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오늘 영상 너무 잘봤습니다. 실존주의가 말하슨 '자유'라는 게 때론 '방종'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의문이 풀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드려도 될까요 자신은 여성인데 "난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본질에 구애받지 않을거야 내 진정한 실존은 남자기 때문에 남자로 살거야"이런 젠더철학도 실존주의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까요? 반드시 특이한 삶이나 의무를 내팽개치는 삶이 실존주의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트랜스젠도를 실존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주 훌륭한 질문입니다. 주체성이라는 말이 여러 대목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니 애매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존주의는 보편적인 본질보다 자신의 본래성을 살고자 하는 주체성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비판하는 주체성은 근대의 인식주체, 즉 자신의 앎을 절대화하거나 객체나 타자를 모조리 자신의 인식으로 동일화하거나 환원하는, 타자와 객체의 무한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동일적" 주체를 의미합니다. 정리하면, 실존주의의 주체성은 자기 자신을 살고자 하는 주체성이고, 근대의 인식주체는 모든 것을 자신의 멋대로 일반화하는 폭력적인 주체입니다.
고등학생 때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뫼르소가 실존주의자처럼 행동했다고 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오랜 세월 헤맸던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으니, 뫼르소의 사회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들은 실존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즉자적인 삶에 가까웠고, 마지막 교도소에서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신부에게 울부짖는 모습은 자신의 삶과 선택을 긍정하며 주체성을 선언하는 장면으로 느껴졌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서 경험들을 더한 감상 감사합니다.
철학은 어렵기는 하지만 누구든 배워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인문계 대학원생입니다. 스스로 알고 있는 듯하지만 정확히 모르는 개념들을 알기 위해 자기 전이나 생각 날 때 하나씩 듣고 있습니다.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티팟님...대학원생이시군요. 힘겨운 시간, 잘 이겨내시길 응원합니다. 제 강의가 티팟님의 학문적 아이디어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
직업마다 세상살이에 필요한 철학이 있습니다 😎
맞습니다. 의미는 발견하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풍부한 의미를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보편적인 본질보다 개별적인 의미를 살아내는 자유.
눈이 맑으시네요.
강의의 화룡점정입니다.
김사합니다~^^
현재 세상에는 정의로움을 추구한답시고 그 배후에 있는 더 큰 권력의 하수인으로 살아가는 위선자들이 더러 있지요. 실존주의는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를 뜻한다는 것이 중요함을 깊이 공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정의와 진리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더욱 난감한 것은 그것이 포장이 아니라 진짜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열성분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ㅎㅎㅎ 자기도취입니다.
언제나 한 시대의 기득권자들이 부여해 놓은 가치, 본질 즉 보편성으로 부터 벗어나
자기 삶의 개별성을 찾아 진정한 자기 삶을 살아라라고 하는 인간애에서 나온 사상이 실존주의인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자기 삶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유~
타자(사회)의 욕망이 아닌 진정한 자신의 욕망을 욕망하고 존중하며 살아내는 자유~
결국 개별성, 주체성, 진정성, 자존감, 책임감 등이 전제가 되는 자유인 듯 합니다.
실존주의 역시 개별 인간에 대한 사랑의 철학인 듯 합니다~
교수님의 강의에도 청자들의 삶에 대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아주 멋진 말씀입니다. 실존주의자는 그래서 늘 말합니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니...
나름 실존주의 책을 좀 봤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오해했던 것을 잘 집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존주의자들은 새장을 나온 새들 같네요. 안정적이고 안전하지만 자유가 제한된 새장에서 나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길 선택한 새들 말이죠.. 그렇지만 그런 선택엔 책임이 따르겠죠. 바깥 세상은 여러 장해물과 위험요소가 있으니까요. 여러 생각들이 드네요. 제가 잘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ㅎㅎ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서보산님... 정말 멋있는 말씀입니다. ^^
히피와 실존주의는 한 끗 차이, 망나니와 생각하는 망나니 이런식으로 생각 했는데 구분하는 기준을 배워 갑니다.. 감사합니다
"실존주의는 주체성이다!" 이 말이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교수님 교수님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것이 후회되는( 배고파서 철학도에서 법학도로 전향한 지혜없는 선택)
그저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 돈과 명예를 쫒아 살아왔던 자신을 반성하게하는 퇴직한 50대 후반의 늦깍이 철학도의 후회과 기쁨이 교차되는 정말 모두에게 추천하고픈 강의입니다 감사 또감사 합니다 꾸벅
인생의 제1막이 세상을 사는 삶이라면, 인생의 제2막은 자신을 사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잘 사는 것, 그것이 곧 잘 죽는 것입니다. 지난 삶을 한탄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초월적인 죽음. 그래서 고래로 인문학을 'Melete thanatou', 잘 죽기 위한 연습(죽음의 수련)이라 불렀습니다. 지금부터가 진정한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선생님의 매일을 응원합니다. Bravo your Life~!!
교수님, 강의영상 잘보고 있습니다.
모두 주옥 같네요. 감사합니다.
듣는 분의 능력입니다~!!^^
Thanks for translating some difficult words into English.
I appreciate it!
I am having a trouble understanding some 문자.
Thank you so much.
인생에고민이많아최근실존주의에관심을갖게되었습니다 명쾌하고청자들의눈높이에맞춰주신강의에큰도움받았습니다 앞으로도좋은강의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능력이 닿는대로 좋은 강의 만들어 가겠습니다. 정수님의 말씀에 큰 용기를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동감합니다 . 보편주의적 가치에 대해서,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이게 무슨 소리지 했는데, 제가 생각 하는 것과 다른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오해가 해소 되었네요. ㅎ 분명한 것은 실존주의는 욕망과 쾌락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고 누구보다 더 자신에 독단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닌 공존을 꿰하고 그 이전에 나에 완성을 목표로 두고 더 뻗쳐 나가는것이 실존주의임을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실존주의는 주체성이다!" 이것이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삶이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이 나로 존재하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애옹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공존의 지혜입니다. 삶의 방식의 차이를 존중하며 다름의 불편을 견디는 화이부동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실존과 본질에대한 가르침을 크게 감사합니다
어렵게만 느껴져 멀리있던 철학에 아주조금 ᆢ다가가고싶은 맘이싹트는것 같아 자주 찿아와 배웅으로 더욱 자신을 바라보고싶읍니다😆😆😆
한랑님 감사합니다. 삶과 철학이 친숙해 지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설명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아 교수님.. 고사리에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ㅋㅋ
오늘도 🙏 감사합니다
ㅎㅎㅎ저랑 코드가 통하시는군요....터지라고 넣었데 효성님만 터집니다.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실존주의는 주체성이라는 말 꼭 기억하겠습니다~ 쉽게 이해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겔부터 찬찬히 들어보겠습니다^^
existentialism is subjectivity~!!^^
실존=영원한 우주에 온것=유한한 생명으로 온 것 =영원한 본질로 되돌아 가는 것▶️죽음
자신 안의 잠재된 신적인 본질을 실현하는 삶으로 읽힙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항상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항상 존경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실존주의 편, 실존주의 사후관리 편
잘보았습니다.
치열한 삶 가운데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짝짝짝
감사합니다. 담백 명료한 강의력 존경합니다.
영미님 감사합니다. 내놓기 부끄러운 강의....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백, 명료!! 제 목표이기도 합니다. ^^
간결하먄서도 흡입력있는 말투와 목소리.. 실존작이며 훌륭한 강의에요..!!! 잘 들었습니다. 교수님.
지난 강의들을 보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Moon-joo님께서 칭찬해 주시니 용기가 나네요.... 정말 고마워요~!!^^
실존주의 A/S 까지 해주시네요ㅎ 깔끔 깔끔~
홈컷님....A/S는 잘 받으셨나요?ㅎㅎㅎ
@@philosjw 심리학 공부중인데 진짜 도움되는 영상들이 많아서 매일 옵니다ㅎ
@@my_info 요즘 쉬느라 영상을 못올리고 있습니다. 곧 다시 올리겠습니다. 잘 봐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실존주의를 잘이해할수있도록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실존주의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ㅎㅎㅎ
쉽게 강의하셔서 이해가 쉽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진복님...감사합니다. 자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항상 너무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해요~!!^^
가끔 들어오지만 참 유익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강의 부탁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유익하다고 하시니 저도 정말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해피님 감사해요~!!
명확한 개념정리~!! 감사드려요~ ^^
도움되셨다니 기쁩니다~^^
세상 살면서 현실의 영향을 배제한 자유인, 가능 한가? 최대한 노력 할 뿐...
철학과 종교는 현실이 아니라 이상을 추구합니다. 그러니 말씀처럼 현실에서는 그저 최대한 노력할 뿐~^^
철학의 명료한 해석과 좋은 강의에 감사 드립니다.~^^
부족한 강의, 늘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짝짝짝!
감사합니다~^^
구독 '꼭' 했습니다. 그냥 듣기에는 미안한 맘이 들어서요^^
구독은 사랑입니다. ㅎㅎㅎ
늘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원재가 여기에 댓글을..... 어색하게...... 늘 과한 칭찬 감사드립니다~!! ㅎㅎㅎㅎ
와 진짜 좋은 채널이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챙겨보겠습니다 ㅎㅎ 이런 시리즈가 더 이해도 잘 되고 깊이도 있어 좋습니다 ! 기회가 된다면 실존주의 심화편도 만들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흄, 쇼펜하우어 편도 듣고싶습니다 ㅎㅎㅎ 아무쪼록 좋은 강의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MC One Hundred 곧 하이데거를 깊이 다뤄볼까합니다~^^
실존주의는 자본주의를 타락한 것으로 보고 타인중심적인 부분에서 실존주의와 막시즘이 유사하다고 봅니다.교수님도 동의하시나요? 이 영상으로 교수님을 알게됐는데 철학에 흥미를 가진 학생으로서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ㅎㅎ.
주원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상들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는 맥락 안에서 평가될 문제니까 자유롭게 생각해도 좋아요.
사후세계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죽음 이후에도 영원한 세계에 머물것이므로 실존에 해당됩니다
상징적으로 읽으면 옳은 말씀입니다. 삶 가운데서도 영원한 세계에서 실존하는 신앙인들도 있지요. 영원힌 세계, 육체의 죽음이란 세속적인 욕망의 소멸을 상징하니 말입니다.
경청 소감 '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한계: 실존적이란 개별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것, 이것을 극단적 주의 주장 이념으로 사용하는 것은 본래 실존주의 의 취지에서 벗어남 , 사람은 타인의 자유를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할 주체성도 가지고 있다 . 자유를 버린 자유인
아주 멋진 표현입니다. 자유를 버린 자유인... 그것이 바로 키에르케고어가 말하는 종교적 실존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자유~!!
잘보고 있습니다:)
찬민씨 오랜만입니다. 잘 보고 있다니 기쁩니다. 찬민씨의 삶에 밀알같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영광입니다~!!
실존주의하면 뭔가 염세적이고(삶은 부조리하다?) 좀 중2병스런 느낌도 주는데 편견이었네요^^
해주신 말씀 속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일상적인 삶의 편견을 깨는 것, 그것이 철학의 가장 역할이자 보람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좋은 영상 너무 감사드립니다. 최근에 네이버 지식인에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신화에 관한 질문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답변 주신 것 보았는데, 제가 답을 못 드려서 여기에라도 남깁니다. 카뮈의 철학은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하여 의문인 것은 인간이 카뮈가 말한 '창조자'로서, 니체가 말한 '초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가. 이것이 의문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중 한명인 하이데거는 '본래적 자아'와 '비본래적 자아'에 관해 언급하더군요. 카뮈와 니체는 '비본래적 자아'만을 강조하고, '비본래적 자아'를 소실시키는 것이 창조자이고 초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래적 자아만을 발현시키고, 나 자신으로 이르지 못 하는 것은 모두 망치로 쳐내는 것이 가능하느냐..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교수님 어떤 책이 제 생각을 진보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요? 답변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본래적인 삶과 비본래적인 삶은 무언가를 버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성의 문제입니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의 의미를 살아가는 것이 실존입니다. ^^
실존주의를 잘 설명한 책들이 참 드뭅니다. 의진님이 찾으시면 저도 소개 좀 해 주세요~!!^^
@@philosjw 아,, 비본래적 삶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비본래적인 자아는 사회속에 존재하는 자아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주체적이라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강의 하나하나 볼 때 마다 신세계네요. 감사합니다. 교수님께 질문이 있는데요.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타노스는 선한 대의(?)를 위해 지적 생명체의 절반을 소멸시켜버리는데요. 특히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가모라)도 그 대의를 위해 바치잖아요? 이는 실존을 실현시키기 위한 태도로 볼 수 있나요?
제가 이해력이 딸려서 그러는데... 즉자대자 존재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이 변증법 방식으로 말했을때 내가 나를 객관화시켜 성찰과 자아비판을 함으로서 좀 더 균형잡힌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거든요. 그래서 예로 드신 반사회적/ 반인륜적인 방종은 대자존재의 비판적 자아성찰이 결여된 선택의 결과로 보았구요. 하지만 만약 제 이해가 맞다면 타노스의 경우 영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끊임없는 고뇌와 성찰속에 그의 의지를 주체적으로 결행했다고 보거든요. (영화에서 보이는 타노스의 이미지는 영락없는 "죽음앞에 선 단독자"니까요. 심지어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죠) 문제는 타노스의 경우 영화를 관람하는 우리가 전지적 시점으로 지켜볼 수 있었으니 실존을 실현시켰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히틀러를 포함한 인류사에 악명높은 독재자들도 자신들이 고뇌와 성찰 끝에 반사회/반인륜적인 행위를 결행했다 주장한다면 그리고 우리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들 자신이 그렇게 강력히 믿었다면...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걸까요?
공산(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의 권익을 위해 부르주아 계급을 폭력혁명으로 전복하려한 거잖아요? 하지만 본래 의도와는 달리 대부분의 공산주의 사회 국민들은 더 심한 (경제적/ 정치적/ 인권적) 불평등과 부자유에 시달리고 있죠. 제가 생각하는 그 원인은 아마도 대부분의 인간이 자기합리화와 자기기만을 통해 변증법적 자기 비판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아성찰 능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건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어떻게 불완전한/ 악한 인간이 '탈존'에 이르게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나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죄송합니다. 하지만 교수님 강의를 보는 순간 봇물처럼 질문들이 쏟아지네요. (부정의 질문이 아닌 tell me more와 같은 지혜에 대한 갈증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쁘실테니 시간되실때 답변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Jay님...질문이 너무 좋습니다. 대학강의실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준다면, 그 시간은 주옥처럼 흘러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Jay님께서는 키에르케고어의 주관적 신앙이 가진 결정적인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 주셨습니다. 테러리즘이라든가 인종대학살도 그에게는 신의 명령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것은 종교적 광신주의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들 신의 응답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신념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신념이 타인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그 신념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의로움을 살고자 한다면, 그런 신념은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3자가 고통당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의로움의 제1원칙이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philosjw 와우! 무료로 이런 가르침을 받는게 감사하면서 죄송스럽네요. 주변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겠습니다.
@@philosjw 와...
@@jaihyoungpark8895 재형님... 함께 나눌 수 있어 저도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어벤저스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습니다. 봐도 이해하기가 힘들 것 같았어요...대의를 위한 생명의 희생은...이해되지 않는군요. 예를 드신, 히틀러와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 전체적인 사고에 저항하는 것이 실존주의입니다. 개체는 전체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유가 다른 이의 삶을 억압한다면, 그런 자유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실존의 자기모순이기도 하고요. 실존은 삶입니다. 자기 삶이 중요하듯이 타인의 삶도, 자유도 최고로 존중되어야 할 것 같아요. 질문에 대한 답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 질문이 봇물처럼 쏟아졌다니 보람을 느낍니다. 재형님의 생각에 도움되었기를 바랍니다. ^^
웃기는게 그때 히피나 68학생운동 세대들 지금 타이메고 직장상사 되거나 연금 따박따박 타먹고 배따시게 잘 삶 ㅋㅋㅋㅋㅋㅋ
정치적으로 들릴수도 있는데 실제 돌아가는 꼴은 이런상황임
나도 지금 독일 유학하면서 주위에 보면 실존주의 외치면서 누가봐도 그냥 금발 백인인데 자기 조상중에는 인디언이 있다는둥... 직업도 딱히 없이 무슨 돈으로 먹고사는지도 모를 사람들 수두룩함 ㅋㅋㅋㅋ
물론.. 다양성 존중하고 기회의평등 존중하지만 그런 사람들 보면 어쩐지 맹목적으로 다르기 위한 다름을 선택한 느낌이랄까 ㅋㅋ
그리고 다양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본질을 쫒는 사람들이 공존하는걸 이해하지를 못하더라... 그런부분이 약간 이해하기가 힘들지 않나...
교수님이 철학 일반에 대해 책을 쓰면 많이들 볼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교수님 책을 찾아보기 어렵네요.
정리를 한 번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요...TT
즉자(卽自) an sich는 '나'이고, 대자(對自) fur sich는 '너'(나의 상대자)입니다. - 이것이 헤겔 이야기이고, 사르트르도 그걸 따랐을 겁니다.
글쎄요….
그럼 돈을 많이 벌고 명예도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의사를 택한 사람은 부자유의 삶인가요 자유의 삶을 사는건가요? 전 후자라고 봅니다
직업이 자유의 기준이 아니리 그것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인가가 선택의 기준입니다. 의사라도 자유로운 의사가 있고 부자유한 의사가 있지 않을까요? 실존주의는 주체성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작년 1학기에 삶과죽음의 철학 수업을 들었던 학생입니다 이번 학기에 학점이 조금 남아 교수님 수업을 듣고자 찾아봤더니 수업이 열리지 않아 다른 철학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두번째 수업을 듣고 왔는데 교수님이 알려주신 철학자들이 아닌 다른 철학자들에 대해 배우게 되어 기쁨과 동시에 교수님에게 배우지 못해 아쉬움이 생겨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혹시 앞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 없으신가요?? 물어보고 싶은게 많습니다 댓글로는 다 담기 어려워 좋은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 수업이 생각나 몇글자 끄적여 봅니다
민준아 정말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지? 이제 부산대와 연세대에서만 학생들을 만나고 있단다. 다른 선생님께 새로운 내용을 배운다니 잘 되었다.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혹시 영상끝에 관련된 책 추천도 가능하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장 폴 사르트르의 를 읽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저도 다음 기회에 그 책을 한 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등학생입니다 철학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이러한 강의를 무료로 듣는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좋은 강의라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고, 질문이 생기는데요, 제가 이해한 바로는 실존주의는 인간은 실존이 본질보다 선행 되어야하고 사회를 위한, 어떠한 집단을 위해 내가 사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나를 위한 일을 하며 사는 것으로 이해했는데요, 실존주위의 범위가 궁금합니다. 히피문화의 일탈과 사회의 법과 질서를 무너트리는 행위가 특별함이 아닌 나 자신이 진정으로 일탈, 사회의 법과 질서를 무너트리는것을 원한다면 이것 또한 실존주의라 할 수 있나요? 만약 이 것 또한 실존주의라면,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범죄행위또한 실존주의라 할 수 있나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준비한 이라는 영상을 참고해 주면 좋겠어요. 한 예로 사르트르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를 위한 책임을 연결하는데요. 그것이 “앙가주망” 개념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더불어 공동체의 번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방종이 되고 말겠지요. ^^
실존주의대 대해 잘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존주의가 나온 배경도 궁금합니다.
아마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이 현대의 정신을 낳지 않았을까요? 보편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부터...개별성의 구제~!!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보다 실존주의에 대해 잘 알게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상을 보고 궁금한 점이 생겨 질문합니다! 즉자존재의 삶에서 대자존재의 삶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사르트르는 보았나요? 그저 자신의 행동에서 주체성을 찾으면 된다고 본 것인가요? 아니면 야스퍼스가 말하는 한계상황처럼 어떠한 상황을 통해 주체성을 찾는 계기가 존재한다고 보나요? 다른 곳에서 찾아보려 했는데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 개념을 처음 보았던 여기에 질문 남깁니다~ 또 즉자존재 대자존재를 더 깊게 알고 싶은데 괜찮은 책이 있으면 추천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항상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마치 카프타의 소설 에서 그레고리가 자신을 벌레처럼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뭔가 특별한 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라는 느낌. 그러나 늘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즉자존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읽어보시면 조금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요. ^^
@@philosjw 빠른 답글 감사해요! 추천해주신 책 메모해두겠습니다^^ 감사해요!
타 분야를 혼자 접할 때 내용을 오해할 위험이 있는데, 이렇게 유투브 강의를 올려주시고 댓글로 소통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영상을 보며 실존주의와 그리스도교에 대해 질문이 몇 가지 생겼는데, 시간 나실 때 답변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신이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든 창조했다는 믿음은 사람의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 상황처럼 보입니다. 혹시 이러한 생각이 오해인 것인지, 혹은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은 사르트르의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인지 궁금합니다. 둘째는 잘 정의된 질문은 아닌데, 혹 조언을 구할 수 있을 지 해서 두서없이 남깁니다. 그리스도교는 계명 혹은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라고 요구하는데, 얼핏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는 삶은 주체적이지 않기에 실존적 삶으로 볼 수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믿고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점에서 "부름에 자유의지로 응답하는 삶" 은 실존적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는 데에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그러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나 자료가 있을까요?
실존주의와 관련한 핵심적인 질문들을 주셨네요. 전통적인 철학과 신학은 본질이 존재에 선행한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니 실존주의와 대비됩니다. 또한 "부름에 자유의지로 응답하는 삶"은 실존주의에 해당합니다. 키에르케고어의 유신론적 실존주의가 바로 그 계열입니다. 상혁님의 이해가 정확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사르트르의 , 키에르케고어의 , 매튜 커크패트릭/정진우 옮김, 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philosjw 답변 감사드립니다!!
오늘 영상 너무 잘봤습니다. 실존주의가 말하슨 '자유'라는 게 때론 '방종'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의문이 풀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드려도 될까요 자신은 여성인데 "난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본질에 구애받지 않을거야 내 진정한 실존은 남자기 때문에 남자로 살거야"이런 젠더철학도 실존주의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까요?
반드시 특이한 삶이나 의무를 내팽개치는 삶이 실존주의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트랜스젠도를 실존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결단하는 것도 실존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보편적인 삶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를 주체적으로 결단하고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그렇지 않을까요? 생물학적인 조건이기도 하지만, 성적 구별은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니까요...^^
@@philosjw 고견 감사합니다! 철학을 저같은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해주셔서 처음부터 정주행하고 있습니다!
실존주의는 보편성이 아닌 주체성을 강조하는데 포스트모던을 읽다보면 보편적진리를 부청하고 주체철학을 부정한다고 하는데 실존주의에서 강조하는 주체성과 포스트모던에서 부정하는 주체가 다른 의미인지요?? 🤔
아주 훌륭한 질문입니다. 주체성이라는 말이 여러 대목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니 애매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존주의는 보편적인 본질보다 자신의 본래성을 살고자 하는 주체성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비판하는 주체성은 근대의 인식주체, 즉 자신의 앎을 절대화하거나 객체나 타자를 모조리 자신의 인식으로 동일화하거나 환원하는, 타자와 객체의 무한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동일적" 주체를 의미합니다.
정리하면, 실존주의의 주체성은 자기 자신을 살고자 하는 주체성이고, 근대의 인식주체는 모든 것을 자신의 멋대로 일반화하는 폭력적인 주체입니다.
@@philosjw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
탁월하십니다 쭌파파님
아르케 신 그냥 그렇게 존재 실존 아니고 있음이이아닐가?
존재와 있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같은 밀인데 다르다고 하니…
그런데 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전체주의의 상징인 공산 국가 특히 북한을 옹호 헸나요? 북괴 정권치하에 개인의 자유가 보장 되었다고 생각했나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데요… 어디 나오는 내용인가요?
점점 뭔가 화나신거 같음 ㅋㅋㅋㅋ
그렇게 보였다니 부끄럽군요. 고쳐가겠습니다. ^^
@@philosjw 열정적이신거 같아서 재밌었습니다~
@@philosjw 혹시 카뮈에 대해서 다뤄주실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