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집권기 고려를 끊임없이 흔든 수많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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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3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20

  • @역사일출
    @역사일출  5 месяцев назад +7

    1170년 무신정권 시작
    1172년 창주, 성주, 철주 주민의 난
    1173년 김보당의 난
    1174년 교종승려의 난
    1174년 조위총의 난
    1175년 석령사의 난
    1176년 망이 망소이의 난
    1177년 김순부 김숭의 난 (제1차 의주적의 난)
    1182년 관성민란, 부성민란, 전주 관노의 난
    1187년 조원정의 난
    1190년 동경민란
    1193년 김사미 효심의 난
    1198년 만적의 난
    1199년 명주 민란, 김준거 김준광의 난, 금초의 난
    1200년 금주 잡족의 난, 밀성 관노의 난, 진주 공사노비 반란, 광명 계발의 난
    1202년 이비 패좌의 난
    1217년 최광수의 난, 제2차 개경승도의 난
    1218년 이장대의 난
    1219년 한순 다지의 난 (제2차 의주적의 난)
    1231년 충주 노군의 난
    1232년 이통의 난
    1237년 이언년 형제의 난 등등...

    •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캬👍
      정리가 딱 되네요
      추가로
      A.D 1170년 정중부 이고 이의방의 무인집권기 시작
      얼마 못가 이고가 이의방에게 죽고 이의방이 실세가됨
      A.D 1174년 조위총의 난이 일어나며 그틈에 정중부의 아들 정균이 이의방을 죽임
      정중부가 권력을 독점함
      A.D 1179년 망이 망소이의 난으로 민심은 고사하고 무장들 사이에서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다
      경대승이 정중부 세력을 도륙내고 왕정복고를 내걸고 집권함
      A.D 1183년 지금까지 수수께끼인 경대승이 갑작스런 죽음
      이에 천민 오브 천민 이의민 상장군이 집권함
      A.D 1196년 이의민 세력이 최충헌 형제에게 도륙 당하고 최충헌의 집권함
      무려 4대 62년을 집권함
      A.D 1258년 최충헌의 노비출신 무관 김준이 최씨 독재를 끝내고
      왕정복고를 내세우나 결국 무인집권기를 연장하며 집권
      A.D 1268년 김준이 심복 임연에게 죽고 임연이 집권
      이자겸과 척준경을 틈새를 노린 계책을 연상케함
      A.D 1269년 어의없게 등창으로 임연이 죽고 그 아들 임유무가 집권함
      A.D 1269년 권력 잡기도 전에 반간계(?)에 걸려 죽음
      이후 삼별초의 항쟁으로 이어짐

    •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러면 좀더 알기 쉽게 이 시대 흐름을 볼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몰랐던 난들은 봐봐야 겠네요
      의외로 많아서 기대됩니다

  • @BKLEE-hu2bs
    @BKLEE-hu2bs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고려시대때는 문벌귀족을 제외하면 신분이동은 자유로웠던것 같습니다
    이의민이 천민출신이라고 고려사의 기록에 나오고 무관은 지배층으로 들어가기 쉬운 위치였던것 같아요
    조선의 무관과 고려의 무관과 다른점은 조선의 무관들은 무과시험을 보고 관직을 얻는데 글과 유학 그리고 병법을 이론(강서)라고해서 필수 시험보는 과제이기에 까막눈이 없어서 공문서및 보고서나 명령서를 공유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고려의 무관들은 신분낮은 백성들이나 무관집안의 세습이거나 병졸들중 특출난 경우에는 쉽게 신분을 올릴수 있었죠
    하지만 고려의 무관들 대부분은 글을 모르는 까막눈들이기에 지휘권을 문관들이 장악할수 있었죠
    강감찬, 윤관, 척준경(빽이지만), 양규, 강민첨, 노전같은 신료들은 문관출신입니다
    무신정변후 왜 무관들이 정치를 하면 안돼는 이유를 느낄수 있겠죠
    관리들은 썪었고, 무신들은 밥그릇, 권력싸움에 나라가 피폐해진것이죠
    조위총의 난 같은 경우는 고려의 서북면 40여개의 성을 금나라에 바친다고 했지만 금나라에서 무시해서 그런일은 없었죠
    이의민은 신라부흥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정확한것은 알수없어도 경대승이 세상을 떠나고서 개경에 와서 권력을 잡았죠

  • @kidultvideo1504
    @kidultvideo1504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긍정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

  •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사람들은 이 시대가 암흑기고 고려의 문제적 시기라 하지만
    신기하게도 필자는 이 시기야 말로 고려가 조선과 다른 역동성을 가진
    장점의 시기이자 좋아하는 시기이기도 하죠
    사회, 신분, 종교, 문화, 기술등 급격하게 변화하고
    어떤 발전 가능성을 보일뻔한 아쉬운 시기이기도 하구요

    • @kidultvideo1504
      @kidultvideo1504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동의합니다 😊

    • @이준서-z8n
      @이준서-z8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역동적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서로 어렵던 처지의 사람중에 난을 일으켜 제거되고 그 소유의 적은 재물을 분배하는 과정이라 악다구니 속에서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신분의 이동이라는게 난으로 죽은 사람을 대신하는 거고요. 힘든 시절 , 입 하나 덜서지는거죠...😢

  • @Goryeo_Emperor
    @Goryeo_Emperor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발해 이야기가 듣고싶어요 문왕 이후 부터 선왕 이전까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 @역사일출
      @역사일출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발해 역사가 너무 힘듦 ㅠ 자료가 없어 자료가

  • @0.K.J.W.0
    @0.K.J.W.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만약 고려가 조선처럼 무신들을 뽑앗다면 어쩌면 저런 웃기지도 않는 일은 발생되지 않앗을텐대 그저 싸움만 잘하면 쳐 뽑으니 결국 저런 일이 발생된게 아닐까란 생각을함 그들은 나라가 우선이 아니라 본인이 우선이 였으니 물론 저 당시 문신 새끼들도 크게 잘못했고 또 왕이란 새끼는 더 잘못했으니

  • @오즈만디아스
    @오즈만디아스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고려시대에 '고구려 부흥 운동'이란게 있었나요??

    • @역사일출
      @역사일출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최광수의 난. 스스로 고구려부흥병마사 금오위섭상장군을 자칭하면서 서경에서 반란

  • @ironroot0203
    @ironroot0203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공주 명학소'' 라는 곳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라고 하던데요?

    • @역사일출
      @역사일출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대전 사람이신가요? ㅎㅎ 반가워요 지금의 탄방동을 말합니다. 남선공원에 가면 기념탑있어요~

    • @ironroot0203
      @ironroot0203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역사일출 계룡산 신도안유~

    • @이준서-z8n
      @이준서-z8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역사일출정모 함 해야하는거 아니에요? ㅎㅎ❤

    • @역사일출
      @역사일출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준서-z8n 사람이 너무 적어요 ㅠ 나 좀 더 유명해지고 싶어요 ㅋㅋㅋ 둘이 해?

    • @이준서-z8n
      @이준서-z8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ironroot0203 신도안 사는분 계시네ㅋㅋㅋ 사방 백리안에는 모이시도록...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