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옛날 우리 아버지 생신에 45호쯤 되는 동네사람 다 부릅니다,할아버지 제사때도 다 부릅니다.70년대 80년대죠 옛날 생일잔치 별거 있나요 장탉 한마리 잡고 그걸로 미역국 끓이고 반찬 몇가지 더하면 그게 생일잔치였슴, 그때는 그게 얼마나 풍족했던지,지금은 상상도 할수 없을 겁니다 생일 샌다고 동네 어르신들 50분정도 부르십니다,아침 드시고 나가고 계속 반복,ㅡ마루 안방 건넌방에서 계속 손님 들락날락 그렇게 차린건 없어도 얼마나 든든하고 풍족했던지,, 그날 먹고 갔어도 좀 서운한 어르신 계시면 다음날 몇분 또 부르셔서 밥 드시게 합니다, 그때는 좀 시키는 대로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부유한 사람들이었는지... 그때는 마을이 공동운명체여서 모두 같이 살았지요,,지금은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자녀들 혼자 삽니다 부모랑 같이 살면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 며느리한테 눈치 보이고 구박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배운것 없고 무식해도 서로 의지하고 삶을 같이 살아가던 어머니 아버지 새대! 선진 한국이 된 부유하지만 삶이 빈곤한 시대....불과 몇십년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이 됐을까요. 역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배고프면 울부짖고 밥만 먹는 짐승일까요? 그리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점차 인간성을 띠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인간이 되는 걸까요... 요즘은 사춘기도 아닌데 자꾸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 삶이 각박해졌어요
다들 어이 없네 시댁이나 집구석에서 일하는건 별 인정도 못받아도 밖에서 일하면 그래도 경제 활동 한다고 인정 해줌 시댁에서 종같이 일하느니 돈벌이로 당당하게 살고 내가 쓰는돈 눈치 안보고 쓰는 삶이 더남 다들 여자가 아니니 그런 말을 하지 30년 가까이 며느리로 살아온 내경험임. ~7350 님 말씀 틀린거 없음
보리밥 사발에 고봉으로 먹긴했지만 짠지무 반찬 하나였던것과 조선 사람의 새벽부터 일하던 노동량에 비하면 칼로리는 높지않고 쉬 배가 꺼졌을거라는게 100세 넘으신 울 어머니 말씀입니다. 예전엔 머슴을 뽑을때도 밥 많이 먹는 사람 뽑았대요. 밥을 많이 먹어야 힘을 쓴다고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외국 안 나가보셨고 외국 현실 모르셔서 하신 말씀이지, 조선에선 사람이나 배불리게 먹었지 유럽이나 미국에선 아동도 빵 한 조각에 공장에 갇혀 살아서 아동살인이란 말까지 나왔음. 빵 한 조각 먹으려고 잠 몇 시간 자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일하는 게 산업혁명이었음. 조선인들 초가집은 커녕 독일은 방 세칸에 5가구 살고 스페인은석회암 산에 동굴 파고 살다가 산사태 나면 다 쓸려 죽었음. 선교사들 놀란 이유가 지네는 지네 농민이고 하층민들 절대 그렇게 안 먹이기 때문임. 조선은 노비라도 주인에게 낼 거만 내면 자기가 기른 곡식으로 술을 빚어먹건 자기 집에 창문을 내건 상관 없는데, 외국은 자유민이어도 그거 다 세금 내야 함. 애 낳아도 돈 내야 함. 버터세 장작세 포도주세도 있었음. 지금도 프랑스 시골이니 벨기에서 사람들 가난해서 저수지서 생선 잡아다 요기하는 자전적 삶이 소설이니 영화로 나와서 가난한 지방민 실상 무시하던 파리 언론인들 현실 부정하다 지방 가서 사진 찍고 온갖 추태 다 부렸음.
고려 빈부격차가 커진 이유는 권문세가의 독점도 있지만 그 독점을 가능케 한 원인은 다수 거상의 출현덕분이었습니다. 단순히 백성을 수탈해서 부를 쌓은것이 아닙니다 몽고 간섭기 거상의 수가 그 이전보다 5배나 증가했습니다. 세계제국 원과 교역이 활성화되고 꽤 많은 부가 고려로 유입됩니다. 그결과 빈부격차가 심해진 겁니다
@@smoonshin 홍대선 작가가 말한 산천을 경계로 하는 지경은 고려 말기입니다. 그래서 정도전이 토지개혁을 결심한것이고요. 고려말로 갈수록 빈부격차가 벌어졌고 그 원인중에 하나가 대상의 본격적인 출현이라는 뜻입니다. 원나라와 교역한다는 건 세계경제에 편입되었다는 뜻이거든요
ㅂㅏ보세요? 아님 ㅍㅁ세요?? 한국여성들 기본 옵션으로 화장 성형 안하는 사람이 몇%나 될까??ㅋ 그리고 당신이 말한 특징은 성형 화장 제외하고 정작 진화론적 그리고 문화와 환경적으로 전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ㅋㄱㅋㅋㅋㅋ 도대체 당신이 말한 그 특징이 해당 안되는 나라가 어디있는데???ㅋㅋㅋ 근데 정작 한국여자들 중에는 왜 한국남자 차은우 같은 최정점 월클 비주얼은 안나올까?? 화장이랑 성형으로 평균치는 끌어올리는데 최상위 단계는 커버가 안되는 레벨이라?? 여성 성형률 전세계 압도적 1위!!;; 이게 니 말같지도 않은 멍ㅊ한 헛소리에 대한 해답이다! 보편적으로 남자들은 인위적인것을 보태지 않고 진짜 타고나서 잘생긴 애들이 있는거고 여자들은(특히 한국) 보편화된 화장과 성형 등 인위적인걸로 죄다 덮거나 보태는데 남녀 평균치가 동일하면 그게 이상한거지!!ㅋ @@tanlafuvo
저 어릴 때 동네제사 생각나네요 엄마들은 밤새 음식 준비하고 남자들은 상여지고 연습하고 술도 마시고 제 나이 40 대 중반입니다 그리고 우리 큰 집 제사 때는 음식 겁나 준비해서 등교할 때먹고갔던기억 울 엄마는 설 때 음식을 거의 15일 치 준비함 그것도 우리 식구 뿐 아니라 손님도 먹을 만큼 넉넉하게 약과만 해도 상자로 담는다면 몇상자 유과는 소쿠리로 몇개 등등 떡은 말할 것도 없이 등등
저희 어렸을때 기제사를 12시경에 지냈는대도 동네분들이 기다렸다가 밥먹으로 오곤 했는대 어린 마음에 너무 싫었더랬지요. 귀하게 먹는 고기에 생선에 온갖 나물에.. 먹고 살기 힘든대 동네 사람 다 먹고 가니 너무 너무 싫더라구요~ 엄마! 저 아저씨들 왜 와?? 응 왜 불러?? 하고 물었던게 생각나네요... 1070년대 였어요...^^;;
정말 놀랍습니다. 이런 혁신적인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 보시다니요. 저는 조선의 노비제도, 일본과 경제력, 상업수준 등을 비교하며 조선의 낙후됨을 바라봤는데, 그 조선 건국자들의 이념과 집행을 통한 민본이라는 철학으로 다시금 보게 만들어 주시네요. 그리고 항상 소설에서 가난한 집 엄마나 누나가 제사집에 품앗이 가서, 전 부치고 음식을 싸와서 식구들하고 먹었다는 것을 낙후의 모습으로 봤는데, 복지의 다른 이름이였다는 것으로 볼수 있게 되네요.
고려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동부 모두 고려 영토였음. 양쯔강 위에 고려 남경이 있었거든. 고려 서경이 베이징임. 송나라가 고려에 조공을 받쳤다는 기록도 있고. 고려가 연호를 쓴 황제국이라는걸 생각해야함. 요나라와 전쟁을 할때 정규군만으로 30만을 내보냈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면 그 의미를 알것임.
지금 80 넘으신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어린시절 어느정도 살림규모가 있는 집안에서 밤늦은 시간 제사지내면 새벽에 제사를 마치고 소반에 음식을 다 나누어 차려서 동네 어르신들 댁에 돌리고 나누고 하느라, 제사 있는날은 다들 늦게 까지 안자고 깨있다고. 있는 집에서 제사음식 많이 차리는게 참 깊은뜻있었네요. 며느리들은 힘들지만.ㅎㅎ
경제가 발전 하면 국민들이 굶고 빈부격차가 심해진다는 것은 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는 그냥 개소리로 치부되고 공산 사회주의자 들이 주장 하는것인데. 쉽게 이야기해서 경제가 발전 하고 규모가 커지면 차이는 커지나 맨 하위층의 경제도 비교할수 없을 만큼 발전함. 쉽게 설명 드리면 60년대 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부자층의 재산도 비교 할수 없을 만큼 커졌지만 60년대 최하위층과 지금의 최하위층의 소유와 생활을 비교해보면 하위층도 비교할수 없을만큼 발전 했다는것을 알수 있음
@@easeafe4re581 태국의 대나무랑 한반도의 대나무랑 그... 종이 좀 다르긴 함... 심지어 태국은 열대성 기후라 대나무가 크고.두껍고.연하게 자라는데 반해. 조선은 가을.겨울이 있어 억세고 단단한 수종만 남아버림. 태국같이 연한 종들은 다 얼어죽어버림...
들으면 들을수록 더 의문이네요. 우리 국사가 전반적으로 왜곡되었단 주장이 더 현실적으로 들릴만큼. 고려가 그 정도로 화려한 집과 궁궐이 있고 황제국가로 불렸으며, 일개 신하가 어마어마한 토지가 있어서 로마식 대농장을 경영했다는데 그게 한반도의 좁은 영토(산이 대부분이며 초원도 없어 농경과 가축 유목 둘다 불리한 땅이라는 한반도) 범주 내에서 가능하다고요??? 송나라면 엄청 대국인 걸로 아는데 그 나라가 놀랄 정도로??
금사나 요사를 보면 고려의 국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동강이남이 아니더라구요... 만주 위까지 나와 있고, 원나라에 의해 고려왕이 심양왕까지 겸했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고려의 국경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국경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서희가 요나라와 담판으로 얻은 강동 6주는 현재 평안북도가 아니고, 요서 쪽이었다 생각됩니다. 신라가 이미 진흥왕때 황초령비 마운령비를 세워 영토 표기를 했는데, 삼국 통일 이후 그보다 더 밑으로 내려와서 국토를 차지했단 것도 좀 말이 안된다 생각해요... 대대로 우리 민족은 만주와 요동, 요서를 차지하고 있었고, 원나라 이후 요서와 요동을 잃었지만, 만주 일부를 유지했다고 생각해요.. 원래 압록강은 요하를 가르키는 이름이었다 합니다. 명나라가 들어오며 압록강이 현재의 압록강이 되어 버렸다고 하네요.
조선은 상당히 왜곡된 게 많죠. 우리가 흔히 아는 가부장적인 모습도 사실 조선 초기, 중기에는 없었어요. 할아버지가 육아일기 쓰고, 아버지가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를 했다는 기록도 있죠. 조선 후기 가면서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일제시대 거치면서 뭔가 악의 나라처럼 왜곡된 게 있죠. 그리고 유교의 폐습 어쩌고 하는데, 사실상 유교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거고, 사람들이 아는 유교도 본 모습이 아니죠.
그런데 그 자부심이 현재는 사라졌는지...외국인이 한국음식 먹어주는것만으로도 아주 감격스러워하고 방송까지 하고 있네요.그들이 맛있다 한마디 해주면 아주 머리에서 도파민이 샘솟나 봅니다. 사람들이 엄청 많이 봐요..요즘은 일본애들이 한국와서 먹는 투어 하던데 그것도 대제국 일본사람이 한국까지 행차하여 식사해주신다고 감복해 마지 않는 댓글들이 넘쳐나더만요..뭐이리 자부심이 사라졌는지..참.
고려와 신라의 교역품이 쌀이 될수가 없습니다. 일본 정창원에서 가끔 보여주는 것만 봐도 그렇고, 서해에서 건진물품을 봐도, 도자기와 청동 숫가락 젓가락등 수공업 제품임. 근데 조선은 상업과 공업을 억제했기 때문에 발전을 못햇던 것. 세종 때까지는 여러 과학적인 개발을 하고 해서 그런 것이 남아 있었는 데, 세조 때부터 맛이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불교는 상업을 중시했는 데, 상업을 중시하면 공업이 발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교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농업을 중시해서 사람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서 발전이 되기 어려웠죠. 조선초 세계지도를 최초로 만든 우리선조들이 나중에 점차 우물안 개구리가 되죠. 교류가 없으면 바로 그 렇게 됩니다. 북한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이 사람은 옛날에 교역을 어떻게 했는 지 전혀 모르는 책상머리 지식인임. 옛날에는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물건을 주로 교역함. 물류비용이 엄청나서임. 인삼 정도가 먼 곳으로 교역하는 것. 배로 이동하려면 먹을 것은 자기들 먹을 것 밖에 못실음. 고려 호족은 지금으로 치면 대기업임. 그들의 횡포만 막으면 되는 데 다 없앤게 문제임. 우리나라 토지개혁해서 나라 발전 기반이 됐지만 그 토지로 발전했나? 그냥 입에 풀칠만 한 정도임. 북한보면 알수 있죠. 정치적으로 공산주의를 막은 공은 컸죠. 그 땅 강제로 팔고 그 돈으로 장사를 한 지주들이 상업과 제조업에 뛰어 들어 발전한 것임. 물론 나라에서 상공업을 잘 할수 있도록 정책을 잘 편 것이 절대적이죠. 정치체제가 가장중요함. 정치체제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발전 못함. 언제 나라에서 밟을 지 모르니.. 북한 중국처럼... 조선은 개혁 개방이 안된 나라였음.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지형과 자연 그리고 특정 시대의 기후의 관점을 많이 이야기 하는 채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유익하고 탁월한 시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이 채널에서는 경제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네요. 이 또한 유익하고 탁월한 시각입니다. 역사는 결코 정치와 이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게 아닌 걸 알게 됩니다.
홍대선 작가님의 말씀잘들었습니다 처음에 고려시대부터 얘길하셨는데 식민사관에 기초한 영토관으론 설명할수없습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있었다고 가정을 해도요 고려와 조선 경제력의 차이는 영토의 차이부터 시작하는것이 맞습니다 우리나라 보물 고려사를 보시면 고려(고리)의 영토가 어마어마한것을 확인하실수있습니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운 고구려도 수도가 3개였습니다 큰영토를 알고있죠 페르시아 제국이 수도가 4개였는데, 당시 고려의 수도도 4개였습니다. 그만큼 엄청나게 광활한 영토를 갖고있는 나라였다는 것과 벽란도등의 엄청난 무역거점 코리아 불릴만큼의 활발히 무역을 한것입니다 거기부터 출발하면 송나라 사신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송나라사신이 고급 대저택이 엄청많고, 그 모습에 놀랐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그 조금한 영토에선 그런 퍼포먼스가 나올수없습니다. 거기부터 출발하면 조금의 갸우뚱도 없이 조선이 왜 가난한 후진국이였는지 이해가기 시작합니다
고려와 조선은 지리적인 크기와 산물의 량이 달랐습니다. 그만큼 고려는 초기부터 쿠빌라이 시기 이전까지 부유할 수 있는 자연적 환경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무신들이 주도한 몽골항쟁으로 인력과 산물의 커다란 피폐가 오고 충자가 들어간 왕시기 몽골 정부의 자원수탈로 공민왕때에는 정규군이 7천 명 밖에 안 될 정도로 약화되다가 망국의 길을 걷습니다.
그냥 헛소리고 실질적 상업 금지 국가인 조선건국으로 망한 겁니다.상업을 금지하니 공업 농업 다 망한겁니다.길도 필요 없어진 것이고 무슨 몽골이 자원수탈? 제국을 완성한 원이 고려에서 뭘 가져 갑니까? 사신이 와서 고려의 조공품 무겁다고 압록강에서 버렸다는 기록은 많습니다 거기 귀족 하나가 가지고 있는 장신있는 검 하나가 고려 1년 GDP만큼 되었을텐데요.. 그리고 무신의 항장 삼별초로 피폐해진것 아닙니다.그때 경제가 더 좋았는데요? 삼별초가 항쟁한게 아니고 수탈 한겁니다만(저 사학 전공)
우리나라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위선과 거짓으로 뭉친 사람들이라 보고 그나마 마음에 안드는 부분도 있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보수주의자 혹은 우파 쪽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홍대선 작가님의 강의를 듣고 보니 작가님 같이 진실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는 우리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고 존경할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생각엔 고려가 망하면서 원나라도 망했으니 엄청난 무역거래가 끊어지고 고려의 사병을 거느린 왕족과 귀족 승려들이 땅을 뺏기고 국경을 넘어 지금 간도이상의 지역에 자리잡고 바다건너 중국의 광동까지 고려인들이 대거 넘어갔고 원래 상인으로 중국에 거주한 사람들과 자리를 잡았음 상인들 대부분이 고려인이니 조선은 건국과 동시에 고려를 상징하는 고려청자를 금지하고 불교사찰이 가진땅을 모두 몰수했으니 고려흔적지우기를 한거죠 그리고 남쪽에선 왜적들이 엄청나게 처들어와 노략질을 했음에도 북쪽경계를 더 신경쓴게 아마도 여진족때문이라기 보다 고려인들이 다시 처들어와 고려가 부활할까 두려워 북방경계에 더많은 군사를 동원해 경계태세방어를 하고 수도도 개경이 아닌 한양으로 옮겼겠죠 비단장수 왕서방 이 여기서 유래되었겠죠 왕건의 후손이 고려왕족이 명나라로 건너가 큰 무역상이 되고 그세력이 존재함을 일본도 알았기에 일본이 고려왕족을 깎아내리려 왕서방이라고
@@hansangja 임진왜란 당시 왜는 조선을 먹기 위해 처들어온 게 아니라 명을 치려고 쳐들온 거임. 뜬금 왜 수, 당이 기어나오는지 모르겠네. 수, 당 필요없이 후금, 원나라 다 우리나라 유린하고 결국 철수함. 점령할 메리트가 컸다면 속국화하고 지배했겠지. 전쟁이 꼭 점령하기 위해서 터지는 게 아님.
@@user-iamwhoiam4141 통일 신라(대륙신라)는 나무를 태우지 않고 숯불로만 밥이나 난방을 했어 신라의 비단이 로마로 수출(로마 교황의 문서고)되어 개 목걸리를 금으로 할 정도로 금이 흔했고 백만명이 사는 수도에서 불국사까지 비를 안맞고 다녀서 2층이상의 기와 집들이 즐비하는 전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지 ~
조선의 쌀은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침략하여 쌀을 다 가져갔어요. 공출이란 이름으로 헐값에 강제로 빼앗아 갔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키가 일본에 비하여 훨씬 컸었는데, 일제강점기 동안 역전이 됩니다. 다시 우리나라 사람 키가 일본을 넘어서는 데는 광복 후 30년이 걸렸습니다.
조선도 백성 고혈 쥐어 짰는 데도 고려보다 못 먹고 살았다.. 고려시대 기록엔 굶는 기록이 없지만 조선은 기근기록이 정말 많다. 더 우스운 것은 고려가 조선보다 인구가 2배 더 많았다는 것.. 이게 고려후기 기록인데.. 고려전기의 인구보다 적다.. 후기가.. 그리고 고려 서경과 개경의 기록을 가지고 현재의 평양과 개경에 대비한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즉 평양과 개경은 대륙에 있어야 당시 기록에 부합한다. 더 나아가 고려거란전쟁과 몽고와의 전쟁기록도 반도의 기록으론 설명하지 못한다.. 대륙이어야 가능하다.
@@leeek0213 조선보다 작은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고려. -> 식민 사관 몽골의 공격도 버틴 고려인데(삼별초 어쩌고 저쩌고, 강화도에서 방콕), 같은 유목민족이지만 몽골보다 약해보이는 청의 공격은 며칠 만에 삼전도 굴욕으로 끝난 조선. 고려와 조선의 수도는 비슷한 곳이라 배웠음. 고려 때는 유목민족이 쳐들어와도 버텼는데, 조선은 같은 장소에서 걍 발림. 같은 장소가 맞냐??? 고려는 한반도에 있었던 게 아니고 중국 대륙에 있었다가 결론임. 이거 말도고 많은데 책보고 채널 보삼. (나도 다 믿지는 않는데 재밌음)
아니 무역이란게 쌀만 사용하는게 아니지 않나요? 결제수단은 다양하죠 상대 품목에 알맞은 고가 상품으로 거래하는 방식이나 은을 매개로 거래하는 방식등 다양한데 왜 쌀만이 전부라고 믿는거죠 다들................. 애당초 고려는 국가 무역에서 손해가 날것 같으면 칼 같이 막아 적자를 줄이고 역으로 흑자로 돌리는 나라죠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도 나오는 이야기고요
@@수집쟁이드라하카 방곡령에 대한 설명이 안됨. 개항기에 청과 일본에 어마무시한 양의 쌀이 유출되었고 일제강점기에도 쌀이 헐값에 유출되었습니다. 고려는 뭐가 잘났길래 쌀 유출이 없다고 자신하나요? 쌀이 무거워서 무가치하다고요? 지금 동남아가 쌀경제로 돌아감. 특히 식량경제가 박살난 필리핀 같은 나라요.
흉노족의 후예, 몽골 반점 몽골계 등 북방계 피가 많이 섞인 잡종이라 원래 잡종이 키도 크고 잘생김. 일본도 원래의 토종왜구는 키가 아주 작았으나, 백제계 등 한반도에서 건너가 지배층으로 오래되다보니 현재는 유전적으로 한반도인과 차이가 거의 없슴. 다만 일본은 고기를 못먹게 한 문화 시기가 근대와 현대 가까이 까지도 있었슴.
맞습니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적 차이는 1~2% 라고 하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차이가 거의 없는 건데... 어떻게 보면 유전적으로 작은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거죠. 유전적 차이가 크냐 작냐.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서 말장난 치는 거죠. 조선의 쌀이 좋고, 양도 많기 때문에 키가 엄청 컸다고 하는데... 그럼 그 쌀을 강탈해 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놈들은 키가 많이 컸었음?? 그럼 지금은 그렇게 좋은 쌀을 수입해가면 되는데... 수입도 해갈 텐데. 니혼진들은 왜 키가 ㅈ만함?? 인문학적으로 그럴싸하게 설명은 하지만.... 이과생 입장에서 봤을 때 사기치기 딱 좋은 소재죠.
이미 있는 해석임...단지 이런쪽으로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이미 조선초부터 중상주의 배척 하고 최소 정부 유지 이런 기조를 삼았음......그 이유가 백성들을 잘먹이기 위해서라고 포장했지만 사실은 새롭게 왕조를 창건해서 기존 기득권 권문세족들을 억압하기 위해서라도 폭넓은 백성들의 지지가 필요했을 뿐임.....
근데 백번 양보해서 카페인보다 알코올을 다같이 누리는게 낫다는 이야기는 진짜 소킹한 주장이긴해요 애당초 그 중요한 쌀로 술을 만드는데 그게 더 비용이 안 들어간다니.............. 금주령도 내린적 있는 조선이라면 더더욱 이해가 안하죠 술이 그나마 손실이 덜하면 금주령을 왜..................
임란전에도 조선은 일본이 처들어올걸 알고 있었고, 그걸 대비해서 조선의 방위체계를 점검하고 취약점 분석까지 다했음. 의외로 꽤 정확하게 자신들의 약점을 알고 타당한 개선책도 냈음. 그런데 그럴려면 백성들한테 세금을 더 걷어야하는데, 이게 정치적으로 불가능해서 그냥 일본이 안쳐들어온다라고 정신승리했지... 뭐 잘했다는게 아니라 그만큼 조선이라는 나라가 백성들한테 세금을 더 걷는걸 꺼려했다는거임.
그게 문제죠 책임도 없이 그냥 민본, 위민만 외치다가 정작 일이 닥치면 그 민본주의는 내팽겨치고 추태만 보이니...............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이 핑계, 저 핑계,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고 하다가 그냥 행복회로 돌리고 만다라................. 이게 정녕 제대로된 나라인지
고대사 한국사 세계사 등 아니 얼마나 해박하신지 그리고 혼자 해박한건 아무소용 없지만 그걸 풀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시고 그 목소리도 설득력이 있으세요!!! 유튜브라는 것이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작가님 감사합니다
북한 남자 평균키가 165가 안되는거보면 쌀이 중요하다 유전적으로 과거조선시대 함경도쪽이 가장 키가 컸었을 정도로 북한이 키가 우리보다 컸었는데 유전만큼 영양도 키에 엄청난 영양을 끼치는것은 자명하다
유전자와 영향 상태죠
남자 거기도 전세계에서 가장 작고 무례하고 표독스럽고 항상 화나있고 중국 보다 더 돈에만 환장하는데...
일본은 예의 바르고 스시녀는 사랑스럽고 여성력 있고 마인드도 좋다.
이제 키도 거의 일본이 따라잡음.
한국 좋다고 국뽕하는 그만해라
고기를 먹고 안먹고의 차이 인듯 요즘세대는 진짜 서구화되서 길쭉길쭉
쌀이 아니라 고기와 유제품이 제일 중요함.
유전 + 환경
굉장히 빨리 말씀하시는데 발음이 좋으셔서 귀에 쏙쏙 들어오고 머리에 잘들어오고 지겹지않아 정말 좋아요
잘~~듣고갑니다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겠지요. 역사를 보는 독특한 시각 재미있었습니다.
맞아요,옛날 우리 아버지 생신에 45호쯤 되는 동네사람 다 부릅니다,할아버지 제사때도 다 부릅니다.70년대 80년대죠
옛날 생일잔치 별거 있나요 장탉 한마리 잡고 그걸로 미역국 끓이고 반찬 몇가지 더하면 그게 생일잔치였슴,
그때는 그게 얼마나 풍족했던지,지금은 상상도 할수 없을 겁니다
생일 샌다고 동네 어르신들 50분정도 부르십니다,아침 드시고 나가고 계속 반복,ㅡ마루 안방 건넌방에서 계속 손님 들락날락
그렇게 차린건 없어도 얼마나 든든하고 풍족했던지,,
그날 먹고 갔어도 좀 서운한 어르신 계시면 다음날 몇분 또 부르셔서 밥 드시게 합니다,
그때는 좀 시키는 대로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부유한 사람들이었는지...
그때는 마을이 공동운명체여서 모두 같이 살았지요,,지금은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자녀들 혼자 삽니다
부모랑 같이 살면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 며느리한테 눈치 보이고 구박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배운것 없고 무식해도 서로 의지하고 삶을 같이 살아가던 어머니 아버지 새대!
선진 한국이 된 부유하지만 삶이 빈곤한 시대....불과 몇십년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이 됐을까요.
역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배고프면 울부짖고 밥만 먹는 짐승일까요?
그리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점차 인간성을 띠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인간이 되는 걸까요...
요즘은 사춘기도 아닌데 자꾸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 삶이 각박해졌어요
강제로 성생활하고 애낳고 키우는거 말고 대책이 없던 숱한 여인들의 눈물위에 지어진 허상입니다,
ㅂㅅ 니가 다 살어봤냐 개소리ㅈ하지마 시대가 변하면 모든게 다 변하게 되있는데 어쩌라는건데
다들 어이 없네 시댁이나 집구석에서 일하는건 별 인정도 못받아도 밖에서 일하면 그래도 경제 활동 한다고 인정 해줌 시댁에서 종같이 일하느니 돈벌이로 당당하게 살고 내가 쓰는돈 눈치 안보고 쓰는 삶이 더남 다들 여자가 아니니 그런 말을 하지 30년 가까이 며느리로 살아온 내경험임. ~7350 님 말씀 틀린거 없음
@@나라라-x2s 저 나이들어서 문맥 파악 못하신 것 같은데 대댓의 요지는 전업주부보다 밖에 나가서 돈버는 삶이 훨씬 좋다는 걸 알면서도 왜 젊은 부부에서도 전업주부를 선호하는 여성들이 더 많냐를 이야기 하는겁니다....;; 그게 모순이라는거죠
전업주부를 선호하지만 옛날 어머니들같은 전업주부를 선호하는건 아닙니다. 그렇게 전업할바엔 나가서 일하는게 낫죠
이사벨 비숍도 '조선인은 키가 크고 잘생겼다'고 기록을 남겼음.The Koreans are certainly a handsome race. /
이사벨 비숍은 조선인이 게을다고도 하였음. 어찌하여 이사벨 비숍이 조선을 비판한 글들은 지적을 않하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bryanchang9677 당시 조선인 외모를 설명하기위해 참고자료로 사용한거지 이샤벨비숍 책내용을 분석하는게 목적이 아니니까 빠가사리야
@@bryanchang9677 이유도 설명해야죠. 백성들이 지배계층의 착취로 더 많은 노동을 해봐야 뺏길걸 알기에 그저 하루 먹고 살기만 하면되는 그렇게 게으르게 산다고했슴. 그래서 만약 지배계층이 바뀌면 조선은 대단한 나라가 될거라고 했지요
@@bryanchang9677서구 우월주의에 입각한 백인일 수밖에 없는 이사벨 비숍이 낙천이란 개념과 농사 절기의 특성을 알까요? 문화 상대성으로 바라보기 바랍니다.
기가찬다 당시 사진을 봐라 ㅋㅋㅋ 그 여자 한명이 한마디 한걸로 그 딴 소릴 하나
너~~~~~~무 재밌어요^^*
역사를 배우는 아이들과도 함께 듣고싶은 내용들이 가득차있어서 감동입니다~♡ 😊
보리밥 사발에 고봉으로 먹긴했지만 짠지무 반찬 하나였던것과 조선 사람의 새벽부터 일하던 노동량에 비하면 칼로리는 높지않고 쉬 배가 꺼졌을거라는게 100세 넘으신 울 어머니 말씀입니다.
예전엔 머슴을 뽑을때도 밥 많이 먹는 사람 뽑았대요. 밥을 많이 먹어야 힘을 쓴다고요.
@메가레이스
귀한 쌀은 못 먹고 보리쌀이나 잡곡 주로 먹었고 그것도 좀 있어야 가능하고 대다수 백성은 나물 가득 넣고 밀기울 한줌에 소금 넣어 끓인 죽 먹으니 그릇은 엄첨 컸을거라 많이 먹는것처럼 보였을겁니다. 실제로 양껏 먹은 사람은 많지 않았대요.
잡곡이 오히려 영양 풍부해요 쌀만 그런거 아님
@@fislen-e1d 막노동에는 칼로리가 중요합니다. 잡곡은 쌀의 칼로리 못따라갑니다.
@@fislen-e1d잡곡은 섬유질이 풍부하죠. 열량 높은 건 흰쌀밥이나 밀가루 음식... 그래서 타이어트를 할 때에 밀가루랑 흰쌀밥을 멀리 하라고 하잖아요. 요즘 같은 식생활에는 잡곡이 좋지만 옛날 같이 먹을 게 없을 때는 열량이 높은 걸 먹어줘야지 살죠.
그러니까 어머니는 외국 안 나가보셨고 외국 현실 모르셔서 하신 말씀이지, 조선에선 사람이나 배불리게 먹었지 유럽이나 미국에선 아동도 빵 한 조각에 공장에 갇혀 살아서 아동살인이란 말까지 나왔음. 빵 한 조각 먹으려고 잠 몇 시간 자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일하는 게 산업혁명이었음. 조선인들 초가집은 커녕 독일은 방 세칸에 5가구 살고 스페인은석회암 산에 동굴 파고 살다가 산사태 나면 다 쓸려 죽었음. 선교사들 놀란 이유가 지네는 지네 농민이고 하층민들 절대 그렇게 안 먹이기 때문임. 조선은 노비라도 주인에게 낼 거만 내면 자기가 기른 곡식으로 술을 빚어먹건 자기 집에 창문을 내건 상관 없는데, 외국은 자유민이어도 그거 다 세금 내야 함. 애 낳아도 돈 내야 함. 버터세 장작세 포도주세도 있었음. 지금도 프랑스 시골이니 벨기에서 사람들 가난해서 저수지서 생선 잡아다 요기하는 자전적 삶이 소설이니 영화로 나와서 가난한 지방민 실상 무시하던 파리 언론인들 현실 부정하다 지방 가서 사진 찍고 온갖 추태 다 부렸음.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라 말하는거 잖아요
조선의 이면을 잘 알게 햐주셔서 감사합니다.
젊은 양반이 참 똑똑 하시네요.
응원합니다.
우리나라를 향한 따뜻한 시각이 자존감 상승~~♡♡감사합니다
고려 빈부격차가 커진 이유는 권문세가의 독점도 있지만 그 독점을 가능케 한 원인은 다수 거상의 출현덕분이었습니다.
단순히 백성을 수탈해서 부를 쌓은것이 아닙니다
몽고 간섭기 거상의 수가 그 이전보다 5배나 증가했습니다.
세계제국 원과 교역이 활성화되고 꽤 많은 부가 고려로 유입됩니다. 그결과 빈부격차가 심해진 겁니다
그래서?
고려도경 지을땐 원나라 자체가 없었는데요.....이미 고려 자체가 호족들이 모여서 만든 나라라 귀족문화가 발달할수밖에 없었고 빈부격차는 엄청 클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smoonshin 홍대선 작가가 말한 산천을 경계로 하는 지경은 고려 말기입니다. 그래서 정도전이 토지개혁을 결심한것이고요.
고려말로 갈수록 빈부격차가 벌어졌고 그 원인중에 하나가 대상의 본격적인 출현이라는 뜻입니다. 원나라와 교역한다는 건 세계경제에 편입되었다는 뜻이거든요
영상에도 나오지만 그 거상들이 쓰는 자본이란건 결국 농민들의 쌀에서 나오는겁니다
팔 물건도 없는데 상인만 있다고 부가 생기나요?
결국 부자가 존재하려면 부자에게 수탈당하는 사람도 필요한겁니다.
국제사회에선 이를 가난한 국가가 떠안고 있는거구요
@메가레이스
질문을 용납하지 않을거면 왜 이런 영상에서 갑론늘박을 하나요?
6~70년대 방학때 시골 외갓집에 가면 제사때 음식 많이 했어요. 그리고 12시에 제사지내고, 쟁반에 여러가지 제사음식과 쌀밥과 소고기국을 집집마다 갖다 드린 기억이 있어요. 외갓집이 그 동네에서 나름 제일 큰 기와집이었던 것 같아요.
친정은 80~90년대 까지도 콩나물 한 시루 다듬고 동태포 한짝 포 뜨고 조기 10마리이상. 닭5마리.부추 5단 전굽고 등등 해서 새벽되면 주변 이웃 .친척집에 제사음식 한상 그득 차려 가져다드렸죠.
옛날 생각나네요.ㅎ~
부산출신. 명절 지내고나면 각집마다 음식문화다가 달랐음. 625여파로 전국 각지 제사풍습이 다달라서 명절때 친구집마다 올리는 음식달라서 그냥 애들끼리 식사 도장깨기 행복했음. 부산에서만 노릴수 있는 호사였음 어릴땐. 나이든 지금에서 느껴보면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방학에 시골 가면 명절이나 제사에 마당에 커다란 멍석 깔고 동네 사람들 불러다 음식 대접하던게 기억나네요.
근디 ㅂㅅ아
냉장고가 생기면서 나누던 문화가 줄어든것 같아요.
와 신세계..홍대선작가
님 강의 너무 좋네요
모든 강의 정주행 해야
겠네요...귀가 탁트이는
느낌입니다
구한말 한국찾은 여행가들이 한결같이..이렇게 잘생기고 큰 사람들이 왜 땅꼬마 일본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이해안간다 했지. 착하고 똑똑하지만 너무 순진해서 당하고 사는 민족..
한결같이? 이사벨러 버드가 아닌 사람들이 무슨 기록을 남겼는지 읽을 능력은 있나?
네덜란드 선교사가 남긴것도 확인해보시지
그 이유를 끝까지 조선 밖에서 찾으려는 순진한 백성들. 의 생각을 그대로 이어 받은 후손들.
땅꼬마가 아니라 어린애들도 총 쥐어주면 전사가 된다.
@@지구별-w8g ㅋㅋㅋㅋㅋㅋㅋㅋ 뇌피셜인가? 당시 조선의 현실은 알고 말하냐?
ㅂㅏ보세요? 아님 ㅍㅁ세요?? 한국여성들 기본 옵션으로 화장 성형 안하는 사람이 몇%나 될까??ㅋ 그리고 당신이 말한 특징은 성형 화장 제외하고 정작 진화론적 그리고 문화와 환경적으로 전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ㅋㄱㅋㅋㅋㅋ 도대체 당신이 말한 그 특징이 해당 안되는 나라가 어디있는데???ㅋㅋㅋ 근데 정작 한국여자들 중에는 왜 한국남자 차은우 같은 최정점 월클 비주얼은 안나올까?? 화장이랑 성형으로 평균치는 끌어올리는데 최상위 단계는 커버가 안되는 레벨이라?? 여성 성형률 전세계 압도적 1위!!;; 이게 니 말같지도 않은 멍ㅊ한 헛소리에 대한 해답이다! 보편적으로 남자들은 인위적인것을 보태지 않고 진짜 타고나서 잘생긴 애들이 있는거고 여자들은(특히 한국) 보편화된 화장과 성형 등 인위적인걸로 죄다 덮거나 보태는데 남녀 평균치가 동일하면 그게 이상한거지!!ㅋ @@tanlafuvo
썸네일에 낚여서 왔는데 조선 건국 때 이념과 이후 조선경제상황에 대해서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서 너무 재밌었어요! 농경시대에 농경생산량이 적은 나라에서 곡물 수출로 인플레가 발생하면 국가경제에 위험하다는 개념도 처음 알게됬어요!
우연히 방송들어와 내용이 너무재미 있고 역사시간에 듣던 공부가 생각나 순식간에 다들엇어요 오늘부터 찐팬입니다 감사합니다
🍒🖤💦🗣👍✈️🚲한 번 듣기에는 너무 아까운 영상입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해서 재생 속도를 늦추고 듣습니다
이런 사람 보면 진짜 놀라움. 어떻게 이렇게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조선은 과학 기술을 무시해서 강대국이 못 되고 다 털림. 동양이 물시계 해시계 쓸 때, 서양은 기계식 시계 씀
ㅋ 그냥 웃자
작가님 딕션도 말하기 속도도 넘 좋아요! 내용은 많은 이론이 있겠지만 나름 유익했어요😊
정말 연구많이 하셨네요. 제 아버지시대 때만해도 동네 어느집에 제사가 있으면 동네사람들이 늦게까지 기다렸다고해요. 제사지내고 음식들을 동네에 돌려서 같이 먹었다고합니다.
저 어릴 때 동네제사 생각나네요
엄마들은 밤새 음식 준비하고
남자들은 상여지고 연습하고
술도 마시고
제 나이 40 대 중반입니다
그리고 우리 큰 집 제사 때는 음식 겁나 준비해서 등교할 때먹고갔던기억
울 엄마는 설 때 음식을 거의 15일 치 준비함 그것도 우리 식구 뿐 아니라 손님도 먹을 만큼 넉넉하게
약과만 해도 상자로 담는다면 몇상자
유과는 소쿠리로 몇개
등등
떡은 말할 것도 없이 등등
저희 어렸을때 기제사를 12시경에 지냈는대도 동네분들이 기다렸다가
밥먹으로 오곤 했는대 어린 마음에 너무 싫었더랬지요.
귀하게 먹는 고기에 생선에 온갖 나물에..
먹고 살기 힘든대 동네 사람 다 먹고 가니 너무 너무 싫더라구요~
엄마! 저 아저씨들 왜 와?? 응 왜 불러?? 하고 물었던게 생각나네요...
1070년대 였어요...^^;;
제사 지내면 오후엔 동네 떡돌리어 다닌기억 나네요 우리집도 가난했는 했는데요
@@하늘아래서-u1p 다른 나라도 다 돌려먹어요
나 어린시절 제사나 어른 생신날이면 이웃집 아낙네들이 모여 음식 장만 하고 동네 사람뿐 아니라 거지들도 모여 마당에 멍석 깔고 다같이 음식을나눠먹었어요
아... 새로운 시각으로 배우고 갑니다~~
조선 정치인들이 경제를 잘 알았기 때문에 경제 발전을 막았다는게 새롭고 재밌는 이야기네요
한마디로 경제가 발전되면 인구증가가 가속화되고 한정된자원속에서 사람들이 점점먹을게 줄게되고 쌀로 사치품을늘리니 더더욱 척박해진다는 논리네요 헐 틀린말이 아니네요
개소리 하지마라 쓰레기 정치인이 일본에 나라 팔아먹은겨 😅 동방에 그지나라 ㅋㅋㅋ
책 몇권을 봐야 알까? 한 내용들을
단(!) 20분에 정리해 주신~ 선생님께
깊은 🙏 를 드립니다. ❤
정말 놀랍습니다. 이런 혁신적인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 보시다니요.
저는 조선의 노비제도, 일본과 경제력, 상업수준 등을 비교하며 조선의 낙후됨을 바라봤는데,
그 조선 건국자들의 이념과 집행을 통한 민본이라는 철학으로 다시금 보게 만들어 주시네요.
그리고 항상 소설에서 가난한 집 엄마나 누나가 제사집에 품앗이 가서, 전 부치고 음식을 싸와서 식구들하고 먹었다는 것을 낙후의 모습으로 봤는데, 복지의 다른 이름이였다는 것으로 볼수 있게 되네요.
하지만 어딘지 조선 500년, 북한 100년 평행이론처럼 다가오네요.
조선은 도자기가 비싼재화라는것을 몰랐고 일본은 알아서 조선의 도자기기숳로 교역을해 떼돈벌었음
돈버는 일에 관심이 없는 관념 체제 국가였기 때문이죠.
국가의 국리민복을 쌀 농사 원툴만 생각한다는게
더 비정상인거 아닌가요?
애당초 임진왜란때 명나라도 제발 좀 인식 좀 바꿔라 해도
요지부동이니...............
@@수집쟁이드라하카 맞아요. 어떻게든 조선을 쉴드치려는 주장 밖에 안되죠. 상업이 발달하면 국가가 발전하는 것도 맞는데, 이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니.... "와~ 복잡하네. 머리 터지것다. 에잇 몰라. 하지마." 이거였죠.
@@Jordanbutterson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군다는 말은 딱
조선을 겨냥하는 말로도 쓰이죠
유럽이 중국에서 도자기 수입하다 은이 동이 나서 옆에 일본을 보니 싼 가격에 구입 가능. 그래서 수입선을 일본으로 바꾼 거 아닌가요?
고려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동부 모두 고려 영토였음. 양쯔강 위에 고려 남경이 있었거든. 고려 서경이 베이징임. 송나라가 고려에 조공을 받쳤다는 기록도 있고. 고려가 연호를 쓴 황제국이라는걸 생각해야함. 요나라와 전쟁을 할때 정규군만으로 30만을 내보냈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면 그 의미를 알것임.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영상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땅이 넓었으므로 조선보다는 많이 부유했을거라는 말인듯..
지금 80 넘으신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어린시절 어느정도 살림규모가 있는 집안에서 밤늦은 시간 제사지내면 새벽에 제사를 마치고 소반에 음식을 다 나누어 차려서 동네 어르신들 댁에 돌리고 나누고 하느라, 제사 있는날은 다들 늦게 까지 안자고 깨있다고.
있는 집에서 제사음식 많이 차리는게 참 깊은뜻있었네요. 며느리들은 힘들지만.ㅎㅎ
너무 재밌어요 ~~!! 작가님 통해 많은걸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
새로운 시각의 한국 역사 모습이네요 감명 깊네요
과거 동이족이었던 산동과 요동의 민족은 키가 크고 살결이 희고 추운 지역에서 잘 견디었다고 해요...
중국과 일본에 고려 백제 신라 고구려나라가 존재했던 고려 역사를 회복해야합니다
동이족은 일반명사입니다. 우리보다 동쪽에 있으면 무조건 동이족입니다
@@daleparker1484무식한건 죄다 대가리 박아😅
@@daleparker1484 꼭 그렇지 않죠
그건 유대민족을 지칭하는 희브리도 똑깥아요 유목민 백정계급이 희브리죠
그런 유다민족이 스스로를 희브리라고 까지 정의하게 된것은 계층간의 혼합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동이도 마찬가지 라고 봐요
지금도 해외나가보면 한중일 피지컬과 외모가 뚜렷히 차이나죠
K-문화가 많이 알려지다보니 현지에서도 더 구분점을 잘 파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옛부터 내려온 조선인의 유전적 우수성이었네요 역쉬..!
잘 먹고, 잘 노는건 그냥 부여 이래로 유구한 전통이라
고려때 고려양이 유행한거 보면 뭐...............딱히 조선만 그런건 아니죠
한국인이 머리가 크고 다리가 좀 짧고 화난 얼굴이라는 것만 빼면 피지컬이 낫긴함
@@김가장-w5o 맞아유... 정말 평균적으로 머리는 엄청 큰 듯, 그래서 아이큐 높나???
잘모르겠음 특히 한국여자들은 운동도싫어하고 대부분 쬐그마함. 북방계 중국인이 제일큰거같음.
@@미뇽미뇽88 유전자와 영향상태에 영향 받는거죠
오 너무 재밌어요❤
단순한 역사적 사실 나열을 벗어난 시각이 흥미롭습니다 홧팅🎉
딜레마네 경제를 발전시키면 국민들이 굶고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그래서 경제규모를 제한하면서 식량배분에 중점을 두어서 인구를 증가 또는 유지시키려는 플랜이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재산이고 군사력이고 국력이지. 작가님의 뛰어난 통찰과 분석에 감사드립니다.
애초에 경제발전이라는게 산업혁명 이후에나 나온개념이죠. 조선시대엔 그저 쌀주고 사치품 얻는 행위죠.
조선은 지금의 북한 같은 나라 였을듯
오
경제가 발전 하면 국민들이 굶고 빈부격차가 심해진다는 것은 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는 그냥 개소리로 치부되고 공산 사회주의자 들이 주장 하는것인데.
쉽게 이야기해서 경제가 발전 하고 규모가 커지면 차이는 커지나 맨 하위층의 경제도 비교할수 없을 만큼 발전함.
쉽게 설명 드리면 60년대 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부자층의 재산도 비교 할수 없을 만큼 커졌지만
60년대 최하위층과 지금의 최하위층의 소유와 생활을 비교해보면 하위층도 비교할수 없을만큼 발전 했다는것을 알수 있음
.
한국인의 단점까지 미화, 꿰낮추려는 억지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공감 가는 부분도 큽니다. 감사합니다. 한수 배웠습니다.
진짜 너무너무 유익한 영상입니다!! 작가님 알기 쉽게 잘 알려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코끼리 풀만 줘도 되는데 쌀, 콩을 줘서 키우기 어려웠던 겁니다.
태국 국왕은 풀로 코끼리를 키웠던 겁니다. 조선은 그것을 몰랐고요
만약에 곡식으로 키웠다면 태국도 감당 못했을 겁니다
풀 안 나는 겨울에는 풀을 어떻게 줘.
@@텃밭농부-k8i 대나무도 먹던데
@@easeafe4re581 태국의 대나무랑 한반도의 대나무랑 그... 종이 좀 다르긴 함... 심지어 태국은 열대성 기후라 대나무가 크고.두껍고.연하게 자라는데 반해. 조선은 가을.겨울이 있어 억세고 단단한 수종만 남아버림. 태국같이 연한 종들은 다 얼어죽어버림...
코끼리 핑계로 관리들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코끼리의 먹이가 될 풀 이 자랄 만한 곳은 죄다 논밭이 아니었을까요?
역사를 이렇게 통찰력있게 설명해주시다니요. 차를 배척하고 술을 권하는 사회가 된 이유를 듣는 순간 머리가 번쩍했답니다! 너무나도 흥미롭고 유용한 강의였고 아이와 한번 더 시청해야겠습니다.
내용 좋아요. 앞뒤가 딱 맞습니다. 조선의 이해 안되던 부분이 이해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의문이네요. 우리 국사가 전반적으로 왜곡되었단 주장이 더 현실적으로 들릴만큼. 고려가 그 정도로 화려한 집과 궁궐이 있고 황제국가로 불렸으며, 일개 신하가 어마어마한 토지가 있어서 로마식 대농장을 경영했다는데 그게 한반도의 좁은 영토(산이 대부분이며 초원도 없어 농경과 가축 유목 둘다 불리한 땅이라는 한반도) 범주 내에서 가능하다고요??? 송나라면 엄청 대국인 걸로 아는데 그 나라가 놀랄 정도로??
금사나 요사를 보면 고려의 국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동강이남이 아니더라구요... 만주 위까지 나와 있고, 원나라에 의해 고려왕이 심양왕까지 겸했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고려의 국경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국경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서희가 요나라와 담판으로 얻은 강동 6주는 현재 평안북도가 아니고, 요서 쪽이었다 생각됩니다.
신라가 이미 진흥왕때 황초령비 마운령비를 세워 영토 표기를 했는데, 삼국 통일 이후 그보다 더 밑으로 내려와서 국토를 차지했단 것도 좀 말이 안된다 생각해요... 대대로 우리 민족은 만주와 요동, 요서를 차지하고 있었고, 원나라 이후 요서와 요동을 잃었지만, 만주 일부를 유지했다고 생각해요.. 원래 압록강은 요하를 가르키는 이름이었다 합니다. 명나라가 들어오며 압록강이 현재의 압록강이 되어 버렸다고 하네요.
그렇게 따지면 고려보다 더 좁은 영토의 신라 수도의 화려함은 설명못함.........신라는 기존 점령지역에서 수탈과 당나라와의 무역등에 의지한게 크고.....고려또한 무역으로 시작한 나라다보니 당연히 사치재등을 중국에서 많이 수입했었을껄로 보임..
@@judelee9585정신차려 ㅋㅋㅋㅋ 중국애들이 보고 웃는다.
경주한번 가보세요
조선은 상당히 왜곡된 게 많죠.
우리가 흔히 아는 가부장적인 모습도 사실 조선 초기, 중기에는 없었어요.
할아버지가 육아일기 쓰고, 아버지가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를 했다는 기록도 있죠.
조선 후기 가면서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일제시대 거치면서 뭔가 악의 나라처럼 왜곡된 게 있죠.
그리고 유교의 폐습 어쩌고 하는데, 사실상 유교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거고, 사람들이 아는 유교도 본 모습이 아니죠.
예?
증고조 할아버지 이장하려고 파묘했는데, 키가 2미터 정도 되어 보임.
당숙들 엄창 키 크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그때 다들 깜짝 놀랐음.
그건. 신라인인거고. 평균이 아니잖아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선교사들도 동북아시아에서는 한국인이 키가 제일 크다고 말했지요.
저는 할아버지 키가 5미터였어요
@@kimeisei뭔소리야 고조할아버지면 지금부터 100년전이니 조선인데
@@문동은-w3t
네피림?
20년 전에 도올 선생님 강의에서 들었던 코끼리 이야기의 의문이 이제 풀렸네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쓰레기 같은 댓글들은 신경쓰지 마세요
우리나라의가치를 더알고가네요
너무나도자부심이생이기고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현재는 사라졌는지...외국인이 한국음식 먹어주는것만으로도 아주 감격스러워하고 방송까지 하고 있네요.그들이 맛있다 한마디 해주면 아주 머리에서 도파민이 샘솟나 봅니다. 사람들이 엄청 많이 봐요..요즘은 일본애들이 한국와서 먹는 투어 하던데 그것도 대제국 일본사람이 한국까지 행차하여 식사해주신다고 감복해 마지 않는 댓글들이 넘쳐나더만요..뭐이리 자부심이 사라졌는지..참.
@@백산사는도깨비 사대주의가 아니라 우리것을 알아주는것이 좋은거죠. 외국인들 대부분이 동양음식 하면 일본음식, 중국음식 생각하는데 이제서야 우리의 맛을 알았다는것이 좋은겁니다.
고려와 신라의 교역품이 쌀이 될수가 없습니다. 일본 정창원에서 가끔 보여주는 것만 봐도 그렇고, 서해에서 건진물품을 봐도, 도자기와 청동 숫가락 젓가락등 수공업 제품임. 근데 조선은 상업과 공업을 억제했기 때문에 발전을 못햇던 것. 세종 때까지는 여러 과학적인 개발을 하고 해서 그런 것이 남아 있었는 데, 세조 때부터 맛이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불교는 상업을 중시했는 데, 상업을 중시하면 공업이 발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교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농업을 중시해서 사람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서 발전이 되기 어려웠죠. 조선초 세계지도를 최초로 만든 우리선조들이 나중에 점차 우물안 개구리가 되죠. 교류가 없으면 바로 그 렇게 됩니다. 북한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이 사람은 옛날에 교역을 어떻게 했는 지 전혀 모르는 책상머리 지식인임. 옛날에는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물건을 주로 교역함. 물류비용이 엄청나서임.
인삼 정도가 먼 곳으로 교역하는 것. 배로 이동하려면 먹을 것은 자기들 먹을 것 밖에 못실음. 고려 호족은 지금으로 치면 대기업임.
그들의 횡포만 막으면 되는 데 다 없앤게 문제임. 우리나라 토지개혁해서 나라 발전 기반이 됐지만 그 토지로 발전했나? 그냥 입에 풀칠만 한 정도임. 북한보면 알수 있죠. 정치적으로 공산주의를 막은 공은 컸죠. 그 땅 강제로 팔고 그 돈으로 장사를 한 지주들이 상업과 제조업에 뛰어 들어 발전한 것임. 물론 나라에서 상공업을 잘 할수 있도록 정책을 잘 편 것이 절대적이죠. 정치체제가 가장중요함.
정치체제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발전 못함. 언제 나라에서 밟을 지 모르니.. 북한 중국처럼... 조선은 개혁 개방이 안된 나라였음.
진짜 어이가 없습니다. 무슨 근거나 기록으로 저런 썰을 푸는지
맞아요 들으면서 되게 이상하게 풀어내내 싶었습니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은 설명이 많았구요
이게 맞음
그닥 설득이 되지 않음...
@@김가장-w5oㄸㅈ일보 출신…납득 ㅋㅋ
불교를 믿은 고려는 유과로 각종 과일과 동물의 모양을 만들어서 불공을 드렸죠. 유과.. 꿀과 밀가루로 만들었습니다. 고려도 고기보다는 채식을 했습니다.
유과에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하다보니, 나중에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유과를 금지시켰습니다.
유과는 지금도 제대로 만들려고 하면 절대 싼 음식이 아니죠.
오히려 진짜 고급(비싼?) 음식일듯 싶네요.
비슷한 얘기로, 바나나나 커피 초콜릿 생산국들 보면, 선진국 자본이 들어가서 해당국가 노동력으로 생산하면, 경제 규모는 커지는데 사람들은 식량을 못 먹게 됨.
아무리 선진국으로 수출한 걸로 임금을 받는다해도 국가내에 식량이 부족하니 비싸지고 먹고 살기 힘들어짐.
꿈보다 해몽이네요. 잼있었습니다 ㅎ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지형과 자연 그리고 특정 시대의 기후의 관점을 많이 이야기 하는 채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유익하고 탁월한 시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이 채널에서는 경제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네요. 이 또한 유익하고 탁월한 시각입니다. 역사는 결코 정치와 이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게 아닌 걸 알게 됩니다.
정치 이념도 중요 요소지요
진짜 유익한 강의다.
홍대선 작가님의 말씀잘들었습니다
처음에 고려시대부터 얘길하셨는데
식민사관에 기초한 영토관으론 설명할수없습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있었다고 가정을 해도요
고려와 조선 경제력의 차이는 영토의
차이부터 시작하는것이 맞습니다
우리나라 보물 고려사를 보시면
고려(고리)의 영토가 어마어마한것을 확인하실수있습니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운 고구려도 수도가 3개였습니다 큰영토를 알고있죠
페르시아 제국이 수도가 4개였는데,
당시 고려의 수도도 4개였습니다.
그만큼 엄청나게 광활한 영토를 갖고있는 나라였다는 것과 벽란도등의 엄청난 무역거점
코리아 불릴만큼의 활발히 무역을 한것입니다
거기부터 출발하면 송나라 사신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송나라사신이 고급 대저택이 엄청많고, 그 모습에 놀랐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그 조금한 영토에선 그런 퍼포먼스가 나올수없습니다.
거기부터 출발하면 조금의 갸우뚱도 없이
조선이 왜 가난한 후진국이였는지 이해가기 시작합니다
말 넘 잘하심 이해가 쏙쏙 되잖아
고려와 조선은 지리적인 크기와 산물의 량이 달랐습니다. 그만큼 고려는 초기부터 쿠빌라이 시기 이전까지 부유할 수 있는 자연적 환경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무신들이 주도한 몽골항쟁으로 인력과 산물의 커다란 피폐가 오고 충자가 들어간 왕시기 몽골 정부의 자원수탈로 공민왕때에는 정규군이 7천 명 밖에 안 될 정도로 약화되다가 망국의 길을 걷습니다.
원 간섭기때 카디얀을 물리치고
몽골의 육사를 회피하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고
반원정책으로 요동정벌도 한 나라가 고려인데
망한건 부몽배가 이성계의 위화도 쿠데타로
본인의 사욕 때문에 백성이란 방패를 들고 일을 그르친거죠
그시기가 차라리 조선시대보다 나아요.
지방 군벌 이성계가 2천명의 사병이 있었지...
그냥 헛소리고 실질적 상업 금지 국가인 조선건국으로 망한 겁니다.상업을 금지하니 공업 농업 다 망한겁니다.길도 필요 없어진 것이고
무슨 몽골이 자원수탈?
제국을 완성한 원이 고려에서 뭘 가져 갑니까? 사신이 와서 고려의 조공품 무겁다고 압록강에서 버렸다는 기록은 많습니다
거기 귀족 하나가 가지고 있는 장신있는 검 하나가 고려 1년 GDP만큼 되었을텐데요..
그리고 무신의 항장 삼별초로 피폐해진것 아닙니다.그때 경제가 더 좋았는데요? 삼별초가 항쟁한게 아니고 수탈 한겁니다만(저 사학 전공)
엄밀히 따지면 5만 병력을 두번이나 일으켜 요동정벌과 대마도 정벌도 단행할 만큼
강성해지나 위화도 쿠ㄷㅔ타로 멸망한게 고려로
망국의 길을 간게 아니라 이성계가 숨통을 끊어버린거죠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며 우리역사를 오점으로 얼룩지게 만드는 한심한 역사의 길을 걸어가죠
천여년간 한 공동체를 이룬 노하우가
앞으로 세계 인간 공동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어지길...
너무 멋진 해석~감사한 내용!!!
덕분에 또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위선과 거짓으로 뭉친 사람들이라 보고 그나마 마음에 안드는 부분도 있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보수주의자 혹은 우파 쪽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홍대선 작가님의 강의를 듣고 보니 작가님 같이 진실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는 우리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고 존경할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보수주의자가 있나요?이나라에..보수를 가장한 친일매국만있죠.
@@뒷발인생갈라치기 그만하소 친일매국 프레임도 지겹다
그럴수 밖에 없죠 ~ 고려는 지금의 중국 대륙까지 영토가 있었거든요 왜 같은땅인데 고려는 호화스럽고 화려했고 또 고려청자를 생산했는데 왜 조선은 가난하고 고려청자가 아닌 백자를 생산했을까요??? 왜 고려도경의 그림은 전부 삭제되었을까요?
가난하니까 백자밖에 못만든거죠. 당시에 도자기에 채색을 하려면 코발트가 필요했는데. 한반도에서는 희귀해서 거의 수입산이었요.
고려시대때는 대외무역을 하는 개방된 사회였으나 조선은 중화사상에 갇혀 스스로 쇄국하였으니 돈이 없어서 청자를 만들 코발트도 못산겁니다
환빠가 여기까지
제생각엔 고려가 망하면서 원나라도 망했으니 엄청난 무역거래가 끊어지고 고려의 사병을 거느린 왕족과 귀족 승려들이 땅을 뺏기고 국경을 넘어 지금 간도이상의 지역에 자리잡고 바다건너 중국의 광동까지 고려인들이 대거 넘어갔고 원래 상인으로 중국에 거주한 사람들과 자리를 잡았음 상인들 대부분이 고려인이니 조선은 건국과 동시에 고려를 상징하는 고려청자를 금지하고 불교사찰이 가진땅을 모두 몰수했으니 고려흔적지우기를 한거죠 그리고 남쪽에선 왜적들이 엄청나게 처들어와 노략질을 했음에도 북쪽경계를 더 신경쓴게 아마도 여진족때문이라기 보다 고려인들이 다시 처들어와 고려가 부활할까 두려워 북방경계에 더많은 군사를 동원해 경계태세방어를 하고 수도도 개경이 아닌 한양으로 옮겼겠죠 비단장수 왕서방 이 여기서 유래되었겠죠 왕건의 후손이 고려왕족이 명나라로 건너가 큰 무역상이 되고 그세력이 존재함을 일본도 알았기에 일본이 고려왕족을 깎아내리려 왕서방이라고
아니 대체 교차가능한 사료로 이런 주장하는거에요? 동북공정과 어쩜 이리 비슷하냐
환빠라 하지말고 공부좀해라
조선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네요
엄청난 통찰력 정말 존경스럽네요...
ㅎㅎ..소수가 카페인을 즐길 것인가?..다수가 알코올을 즐길 것인가?...와우~ㅋㅋ..이번 동영상 강의 새로운 관점..좋은데요..짱!!~팍팍~ 와 닿습니다..머리속에도 쏙쏙~
다른 시각과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려의 풍요로움을 설명하면서 조선보다 더 작은 국토를 그려놓고 이야기하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고려는 귀족사회라 화려했지만 풍요한 사회는 아님..평민들의 삶은 조선이 월등히 나았음..
내말이 그말입니다.
중국대륙에 있었죠
그래서 산과 하천으로 토지의 소유를 정했죠
고려는 중국동부대륙을 차지한 제국임…
이성계가 집권하면서 그 땅을 명나라에게 헌납함!
조선은 역사상 못난정권이엇음.한글. 창제 빼고는 진즉 망햇어야 할 정권.일본에 말아먹전에.
제발 실제 근거를 갖고 이야기 해주세요 아니면 그냥 환빠 그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조선인들 많이 먹는다고 뭐라고 했어요 저는 미개한줄알았는데 근본이 민본으로 출범한 나라라서 그랬는지 몰랐네요T_T
그당시에는 반찬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거의 없어서 과장을 보태면 밥에서 모든 영양소를 뽑아내야했죠.그러려면 많이 먹어야했죠.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거의 모든 나라사람들은 그렇게 먹어야했죠
결국 먹을거 부족하고 보존능력이 뒤떨어진다는게 말 아닌가요?
잘 먹고 잘 사는 유럽인들도 이태리나 스페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적어서 놀랐어요.특히 이태리 남성들이 키가 작어서 놀랐네요 지중해연안에 분포한 국가들 민족들이 적은 거 같아요
언젠가 한번 왜 한반도의 국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오래 유지 되었는가. 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세요. 시각이 새로우 셔서 잼있을것 같네요.
아프카니스탄 정도는 아니지만 유난히 산이 많은 산악지형과 3면 바다라는(바다 쪽으로는 일본 말고는 침략할 국가가 없음) 지리적 특수성도 한 몫 했을듯요.
당시에는 굳이 한반도 땅을 온전히 먹어서 유지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
@@user-snahunter 응? 그럴리가요. 중국 하고 일본 쪽에서 처들어온 역사가 있는데 그리고 대부분 막았죠. 수 나라 당 나라 원 나라 청 나라 까지 많이도 쳐들어 온걸요. 임진왜란도 있고 굵직한거만 이렇게 많은데요. 짜잘한 거 더하면 엄청난 거로 아는데
@@hansangja 임진왜란 당시 왜는 조선을 먹기 위해 처들어온 게 아니라 명을 치려고 쳐들온 거임. 뜬금 왜 수, 당이 기어나오는지 모르겠네. 수, 당 필요없이 후금, 원나라 다 우리나라 유린하고 결국 철수함. 점령할 메리트가 컸다면 속국화하고 지배했겠지. 전쟁이 꼭 점령하기 위해서 터지는 게 아님.
고려의 영토자료는 한반도로 우겨넣은 식민역사관입니다 당연히 고려와 조선의 비교는 이상할수 밖에 없어요
식민역사관이 틀린게 있음?그리고 식민역시관이 뭔데?ㅋ 뭐가문제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식민사학 빽~~ㅋ 미개한 조선인마냥 선동이나 당하고 ㅉㅉ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가장 잘 사는 나라는 비단과 물소의 나라 였고 수도 경주 인구가 백만인 통일 신라(대륙신라) 였음...
@@가나다-w1s1e 뭐??????????;;;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가 고대국가라고????
로마도 중국도 아니고 대항해 시대의 도시- 특히 옆동네 나가사키도 아닌 신라라고?????
출처를 이야기해라 사이코패스
@@user-iamwhoiam4141 통일 신라(대륙신라)는 나무를 태우지 않고 숯불로만 밥이나 난방을 했어 신라의 비단이 로마로 수출(로마 교황의 문서고)되어 개 목걸리를 금으로 할 정도로 금이 흔했고 백만명이 사는 수도에서 불국사까지 비를 안맞고 다녀서 2층이상의 기와 집들이 즐비하는 전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지 ~
@@가나다-w1s1e 한반도도 부유했던 시절이 있었겠지. 그래서 그게 세계 최고라고 막 주장해? 통계적 근거를 원한다. 국민총생산 비교한 자료같은거 하나도 없지? 혼자 뇌피셜이고?
박지원 선생이 허생전 소설로 상업을 천대하는 선비들을 비판.
조선은 복지국가도 아님.
책만 읽고 가난한 선비들이 살던 동네도 있었음
조선의 쌀은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침략하여 쌀을 다 가져갔어요. 공출이란 이름으로 헐값에 강제로 빼앗아 갔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키가 일본에 비하여 훨씬 컸었는데, 일제강점기 동안 역전이 됩니다.
다시 우리나라 사람 키가 일본을 넘어서는 데는 광복 후 30년이 걸렸습니다.
일본인도 오사카, 후쿠오카를 기점으로 우리 선조(백제계, 고구려 도래인) 많이 건너갔기에 , 지금의 일본인 약 30% 이상은 정말 한국인과 유사합니다.
그러니 오타니 처럼 큰 사람도 꽤 있을 수 밖에요.
기록엔 조선보다 웃돈을 주고 쌀을 사가서 자연스레 일본에 많이 나갔고, 수탈적 성격의 이출로 보는 관점도 맞는듯.
이출이죠. 일제시대로 한국내에서 엄청 왜곡 되었죠.
그게 너가 가공된역사를 배워서 임 일제시대 일본으로 수탈된 쌀보다 조선시대 관리들이 백성들에게 수탈해간 쌀들이 더많음 오히려 일본에 남아도는 쌀을 수출 했다고 봐야지 조선시대 조세제도 관리들 수탈은 말하면서 식민지시대 조세제도는 안안려주고 이유를 찾아보시길
@@lyscf23 아마 원,명나라, 청나라, 조공으로 수탈되는 상황이랑 착각하는듯.
외가댁이 종가댁이 있는 유명한 씨족마을인데 종가집에서 제사 있는 날이면 동네 사람 다모여서 요리함. 제사에 한번 참석했는데 엄청 믾은 사람과 그 한국적임은 잊을 수 없다
그 고려가 한반도 고려가 아닙니다.
고려때 몽고와 화해하고 몽고가 다른나라와 전쟁시 40만명 병사 파견해서 지원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 정규군이 10만이 안되죠?
고려는 인구가 우리가 생각하는 몇백만명이 아니라 몇천만명 이라고 봐야하는 겁니다.
홍작가님 책 전부 재밌어요 ^^ 요즘은 테무진 투더 칸 일고 있습니다 강추
홍대선작가님 울나라 역사이야기 넘재미있습니다 늘감사히 보고있습니다
영문으로 책이 나오면 좋겠네요 애들한테 좋은 교육이 될거같아요
조선이 어떻게 500년이나 유지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네요..역시 잘 멕여야 말도 잘 듣고.. 탄소화물이 중요하지요...
무슨말인지 😂😂😂. 한국, 중국, 일 비슷해요.
조선도 백성 고혈 쥐어 짰는 데도 고려보다 못 먹고 살았다.. 고려시대 기록엔 굶는 기록이 없지만 조선은 기근기록이 정말 많다. 더 우스운 것은 고려가 조선보다 인구가 2배 더 많았다는 것.. 이게 고려후기 기록인데.. 고려전기의 인구보다 적다.. 후기가.. 그리고 고려 서경과 개경의 기록을 가지고 현재의 평양과 개경에 대비한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즉 평양과 개경은 대륙에 있어야 당시 기록에 부합한다. 더 나아가 고려거란전쟁과 몽고와의 전쟁기록도 반도의 기록으론 설명하지 못한다.. 대륙이어야 가능하다.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 인상적입니다 😊
브리야트
부여족의 후손들이 중심이어서
브리 족은 지금도 2m정도의 큰키를 가진 민족.
부여족 들의 영향일겁니다
뛰어난 통찰력이네요. 부럽습니다. 잘 배우고 가요~~!
강의 내용 좋네요.
말이 빠르셔서 속도 조절하시면 더 잘들릴 것 같아요 😊
잘생긴건 모르겠고 키는 피부는 확실히 다름
저희 집안만해도 집안 당숙들 오빠들 진짜 키도크고 잘 생기심
몸도 좋으시고
일본 여행 몇번 가보면 알수밖에 없음...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노력해도 일본 여자는 잘 모르겠는데 남자 외모는 진짜... 갖다 박은 ㅋㅋ 박살난 수준이더라
당숙 ㅋㅋㅋㅋ
잘 먹으면 당연히 잘생겨 보이죠
@@조현진-w8v 할아버지 형제가 5명
할아버지 자손들이 당숙인데 큰할아버지댁은 아들 딸 12명 ㅋ
한국인은 약간 선이 굵고 남성적인 골격이 있음.
식민사관에서 만든 고려 지도...
책보고 채널 한번 보세요~~
식민사관적 고려지도의 내용 핵심이 뭔가요?
@@leeek0213 조선보다 작은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고려. -> 식민 사관
몽골의 공격도 버틴 고려인데(삼별초 어쩌고 저쩌고, 강화도에서 방콕), 같은 유목민족이지만 몽골보다 약해보이는 청의 공격은 며칠 만에 삼전도 굴욕으로 끝난 조선.
고려와 조선의 수도는 비슷한 곳이라 배웠음. 고려 때는 유목민족이 쳐들어와도 버텼는데, 조선은 같은 장소에서 걍 발림. 같은 장소가 맞냐??? 고려는 한반도에 있었던 게 아니고 중국 대륙에 있었다가 결론임.
이거 말도고 많은데 책보고 채널 보삼. (나도 다 믿지는 않는데 재밌음)
@@Jordanbutterson 감사합니다
@@Jordanbutterson왜 이런 미친 소리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지?
외증조할머니댁이 어마무시한 유지셨다고 들었는데 어머니 어려서 외갓집 행사날이면 가서 집집마다 마을 사람들 오셔서 식사하시고 음식 받아가라고 심부름 다니셨다고 하더라구요.
뭔가 엄마 말에서 그 당시 분들은 사람들 먹이는게 굉장히 중요하셨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루할 틈이 없네요
곡식을 운송하기가 지금도 어려움.
가성비가 안나오는 무역 아이템으로 근본적으로 그 당시 무역 아이템이 될 수 없음.
그렇지요, 화폐로 금은이나 비단모피가 사용된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상품 자체로는 곡물 비중이 높으니까 조선의 경우 무역이 활성화되면 쌀이 부족해진다는 논리는 맞을 듯 합니다.
고려때 무역항인 벽란도와 활구란 은을 결제한 시스템도 있는데
조선만 쌀이 빠져나간다는건 무슨 논리인지....................
@@수집쟁이드라하카그러면 국가 채권거래는 어떻게 설명하실?
잉여자원의 총량에서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적은건 팩트임. 중국과 일본은 삼모작도 가능한데 한국은 윤작과 콩벼 이모작이 끝임.
벽란도요? 고려말은 벽란도가 아니라 원나라의 대도 입니다..
아니 무역이란게 쌀만 사용하는게 아니지 않나요?
결제수단은 다양하죠
상대 품목에 알맞은 고가 상품으로 거래하는 방식이나
은을 매개로 거래하는 방식등 다양한데
왜 쌀만이 전부라고 믿는거죠 다들.................
애당초 고려는 국가 무역에서 손해가 날것 같으면
칼 같이 막아 적자를 줄이고 역으로 흑자로 돌리는 나라죠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도 나오는 이야기고요
@@수집쟁이드라하카 방곡령에 대한 설명이 안됨. 개항기에 청과 일본에 어마무시한 양의 쌀이 유출되었고 일제강점기에도 쌀이 헐값에 유출되었습니다. 고려는 뭐가 잘났길래 쌀 유출이 없다고 자신하나요? 쌀이 무거워서 무가치하다고요? 지금 동남아가 쌀경제로 돌아감. 특히 식량경제가 박살난 필리핀 같은 나라요.
조선 만주 몽골 같은뿌리에서 갈라지고 동북에 교차점이 있다보니 기골이 장대 체격은 좋은데 사실 얼굴자체는 중공 남방 일본 조몬 야오이 혼혈족보다 월등하진 않음 그것보다 대륙을 잃고 고려말기인지 조선초인지 중기인지 말기인지 몰라도 한반도로 쪼그라든게 현실이니
흉노족의 후예, 몽골 반점 몽골계 등 북방계 피가 많이 섞인 잡종이라 원래 잡종이 키도 크고 잘생김.
일본도 원래의 토종왜구는 키가 아주 작았으나, 백제계 등 한반도에서 건너가 지배층으로 오래되다보니
현재는 유전적으로 한반도인과 차이가 거의 없슴.
다만 일본은 고기를 못먹게 한 문화 시기가 근대와 현대 가까이 까지도 있었슴.
@@nicekorea 아니 그반대
N@@정민규-s6k
일단 동남아시아 뿐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삼천리 방방곡곡을 통틀어
방 한칸 집도 다 부엌이 있는 나라가 거의 없어요
유전적 차이가 적다라.. 유전자중에 암내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아시나요? 한.중.일 유전자를 보면 한국인만 99퍼센트 이상. 그 유전자가 없습니다. 중국일본은 둘다10퍼센트 넘게 있어요 유저적 차이 큽니다.
그쵸 한중일 평균외모 확 차이나서 대강 국적 구분도 가능한데 차이 적다는게 어이없음 외모로도 확연히 드러나는데
맞아요 유전자와 영향상태죠... 중국과 일본과 비슷한 유전자는 역사적으로나 한국인이 일본.중국으로 건너 가서 비슷한 유전자 있는거지 중국.일본 본토인과 대조 하면 유전자가 많이 다르겠죠
맞습니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적 차이는 1~2% 라고 하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차이가 거의 없는 건데... 어떻게 보면 유전적으로 작은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거죠. 유전적 차이가 크냐 작냐.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서 말장난 치는 거죠.
조선의 쌀이 좋고, 양도 많기 때문에 키가 엄청 컸다고 하는데... 그럼 그 쌀을 강탈해 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놈들은 키가 많이 컸었음??
그럼 지금은 그렇게 좋은 쌀을 수입해가면 되는데... 수입도 해갈 텐데. 니혼진들은 왜 키가 ㅈ만함??
인문학적으로 그럴싸하게 설명은 하지만.... 이과생 입장에서 봤을 때 사기치기 딱 좋은 소재죠.
@@Jordanbutterson 사실이라도 일본이나 중국은 인정 안하겠죠 열등감으로 사실이라도 외면하거나 은폐 하겠죠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렀게 하고 있잖아요
ㄹㅇㅋㅋ 알량한 인문학으로 포장한 독선임
이 양반 역사를 신박하게 해석하네요. 자기 맘대로
일뽕의 울부짖음이냐 대가리 박아 😅
이미 있는 해석임...단지 이런쪽으로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이미 조선초부터 중상주의 배척 하고 최소 정부 유지 이런 기조를 삼았음......그 이유가 백성들을 잘먹이기 위해서라고 포장했지만 사실은 새롭게 왕조를 창건해서 기존 기득권 권문세족들을 억압하기 위해서라도 폭넓은 백성들의 지지가 필요했을 뿐임.....
근데 백번 양보해서 카페인보다 알코올을 다같이 누리는게 낫다는 이야기는
진짜 소킹한 주장이긴해요
애당초 그 중요한 쌀로 술을 만드는데 그게 더 비용이 안 들어간다니..............
금주령도 내린적 있는 조선이라면 더더욱 이해가 안하죠
술이 그나마 손실이 덜하면 금주령을 왜..................
지리적 내재적 한계보다 무역과 상업과 납세에 소홀한 결과지요. 체격과 인물은 북방 유전자 비율이나 식량생산과 먹거리종류 그리고 사회분위기에 달렸겠지요.
명나라 청나라가 해금령 내려서 그들의 속국인 조선은 무역 상업이 망할수밖에 없는 구조엿음
백인아리안은 천손민족으로 대조서ㆍ 지구촌에서 모시는 그분께서 매우 잘생기셨다고한다 그래서 그직계인
한국인에 인물이 잘난 사람이 많다고함
즐겁고 유익했습니다. 홍대선 작가님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철학과 전공에서 역사 강의라 흥미롭네요
임란전에도 조선은 일본이 처들어올걸 알고 있었고, 그걸 대비해서 조선의 방위체계를 점검하고 취약점 분석까지 다했음. 의외로 꽤 정확하게 자신들의 약점을 알고 타당한 개선책도 냈음. 그런데 그럴려면 백성들한테 세금을 더 걷어야하는데, 이게 정치적으로 불가능해서 그냥 일본이 안쳐들어온다라고 정신승리했지... 뭐 잘했다는게 아니라 그만큼 조선이라는 나라가 백성들한테 세금을 더 걷는걸 꺼려했다는거임.
그게 문제죠
책임도 없이 그냥 민본, 위민만 외치다가 정작 일이 닥치면
그 민본주의는 내팽겨치고 추태만 보이니...............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이 핑계, 저 핑계,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고 하다가
그냥 행복회로 돌리고 만다라.................
이게 정녕 제대로된 나라인지
@@하하-i1j 뭔 일본이 안 들어온다고 정신승리를 해요.. 일본이 올것이라는걸 아는데 정신승리하는게 국가입니까? 실록보면 전쟁준비는 했습니다. 그저 예전 명종이나 고려때처럼의 규모일것이라 생각한거지 대군이 쳐들어올것이란 생각은 못한겁니다
@@김명일-i6b 이게 정확하지... 왜국의 내부 사정(도요도미히데요시)과 무력을 오판한 것이지요. 그 당시 왜국은 세금이 70%였고 조선은 10~20%였다 합니다.
조선 전기보다 생산력이 더 발달된 정조때(영국은 증기 기관 발명) 정조는 궁궐수비대의 허리띠에 쓸 천이 없어 새끼줄로 허리끈을 매라고 했음... 조선은 째지게 가난 했음...
백성 절반이 노비인데 누구한테 세금을 걷나?
하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하면 어느 시대도 미화 가능해
이건 미화가 아니라 팩트 아닌가? 조선은 경제 생산량으로만 따지면 후진국이라고 말하는데? 단지 그 이유를 설명한건데 이게 미화인가?
역사를역사답게 황현필입니다!구독자란말이죠ㅋㅋ 응원합니다.
이나라에황쌤과같이 올바른역사관 맞는역사를 우리후손에게 물려줄수있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