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영상이라서 콸러티가 많이 떨어지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7인의 사무라이를 비롯 쿠로사와 감독 작품에는 농민들이 항상 사무라이에게만 기대는 무력한 존재로 나오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카타나가리(刀狩り)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무장상태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증거들이 적지 않게 있거든요. 이런 부분도 한 번 다를 예정입니다.
@@samurairomance 마스크끼고 다니는것 빼곤 별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들 무감각해져서 회식도 하고 친구들 많나서 술도 먹고. 고투트라블 캠페인 확대해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한국이랑 비교하자면 일본이 원래부터 개별 자리라던가 구분이 많이 되어져있어서 쉽게 적응한듯한 생각도 듭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영상이란 것 속성이 짧고 스피디하고 집중해야하고 임팩트 있고... 이래야하더라고요. 팟캐스트도 하고 있는데 오디오와는 완전 컨셉이 달라서... 오디오 하듯이 만든 것이 1, 2 편이거든요... 근데 평가가 후덜덜하게 냉정하네요. 영상물 컨셉에 맞게 만들어보혀고 노력중입니다.
호로무사의 호로는 원래 용맹한 무사에게 주는 망토를 호로라 합니다. 말을 타고 달릴때 거추장스럽게 휘날리는것을 아래쪽을 잡아매다보니 둥근 풍선처럼 보이게 됐고. 그 당시는 이게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대나무로 틀을 짜서 평상시에도 부푼 모습을 만들게 된겁니다. 호로가 화살을 막기위한거라는 가설은 사실이 아닌걸로 오래전에 일본역사가들이 밝혔구요. 호로를 두를수 있는 호로무사는 영주에게 인정받은 영예있는 신분이었고, 전투중의 연락병같은 위험한 임무도 수행했지만 실제 전투에서 "나 쎈 놈이야"라는 표식과 함께 전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무사입니다.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전투중에 벤 상대편의 수급으로 포상이 내려지기 때문에 호로무사는 가치가 높은 상대이자, 스스로도 이런거를 감수하면서 가치있는 상대를 맞으러 가는 표식입니다.
제가 올린 3번 째 영상에 어느 분이 질문을 올리셔서 저도 동일한 답변을 달아두었습니다.제가 알고 있기로는, 화실을 막는 목적으로 고안되었지만 그 의미가 거의 없어서 다른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이 아닌걸로 오래전에 일본역사가들이 밝혔다"라는 부분에 대한 출처를 알고계시다면 링크 걸어주시거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태클거는 것이 아니라, 좀 명확히 결론을 내리고 싶어서요.
@@samurairomance 제가 이년전에 댓글을 달았던 동영상을 다시 보게됐네요. 댓글보고 어? 누군지 호로에 대해서 잘아네? 라고 생각했더니 제가 쓴 글이었네요. (제가 쓴 글이니 저에겐 당연히 그렇게 생각됐네요) 때늦은 답글입니다 호로가 화살막이인지 아닌지는 네이버 역사카페인 부흥에서 토론이 있었을때 제가 지식을 얻었었던것 같구요. 역사가들이 호로에 대해 화살막이 기능은 없다고 했던 내용도 그때 본거 같은데,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당장 정확한 내용은 찾기힘드네요. 나중에라도 찾으면 다시 댓글로 달을께요. 일단 그때 잘 설명하신 아케치경감이라는 분의 이글루 연재(halmi.egloos.com/1864660)를 지금 다시 찾아서 아래와 같은 내용를 발췌해옵니다 ほろ(호로) : 母衣, 保侶, 幌라고도 표기한다. 『三代實錄』, 『扶桑略記』 등에 保侶라는 말이 있고, 이것이 후세에 사용되는 母衣와 같은 것인지 어떤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등에 걸치는 망토모양의 물건이다. 伊勢貞丈은 이것에 대해 '앞에 달고 화살을 피하는 도구'라 했고, 『武家名目抄』에서도 '옛적의 母衣라는 것은 갑옷의 보조도구로서 화살과 돌을 막는 도구이다'라고 했고, 『武用辯略』에서도 그 유래에 대해 억지로 가져다 붙이고 있지만, 결국 방한방습의 도구로 군사적 풍모를 부풀리기 위한 장식에 불과하다. 상단을 어깨 위에서 묶고, 아래쪽을 허리에 끼워넣기 때문에 말을 타고 달리면 바람에 부풀어올라 돛처럼 되는데, 후세에는 아예 '호로구시(母衣串)'라는 틀을 사용하여 부풀린 형태가 되어, 알려진 무사나 전령 등이 표시로서 애용했다.때문에 호로무사는 명예였고, 호로무사를 무찔렀을 때엔 그 목과 함께 호로도 가지고 돌아와 무훈의 증거로 삼는 것이 요령이었다. 출처 : 사사마 요시히코, 일본무도사전, 柏書房(TOKYO), 2003. 윗 댓글에 있는 동영상을 봤는데, 호로를 틀에 씌운 형태에서도 저런 저지력이 나올수 있을까(틀에 씌웠을때는 당겨지는 비단의 면적이 좁아지니 단위면적당 화살촉의 관통력(힘)은 증가되니 아무리 약한 일본 활이라도 뚫린다고 생각합니다. 아케치경감이 호로 관련해서 쓴 의견중에 일본갑옷은 등쪽은 방어가 부족하게 되어있는데 (등쪽에 공격을 받는다는것은 이미 비겁자란 뜻이기도 해서) 굳이 등에 화살막는 목적으로 호로를 메겠느냐라는데 저도 동의를하고요. 호로가 화살막는데 도움이 된다면 전투시에 다이묘나 지휘관들도 호로를 갖춰멜테인데 그런 모습은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화살막이 용도는 아니고 일본무사 특유의 과시성 장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간 총력전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이나 한국에서는이해가 잘 안가거나 신기한 부분이겠지만. 전쟁이 영주간의 세력 싸움이 기본인 일본이나 유럽의 중세 전쟁사에서는 전투 후 주변 농민이 저렇게 Looter가 되는 경우가 아주 흔했음. 갑옷이며, 병기, 병사들의 소지품까지 털어갈 수 있는 재물이 널려있는데다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라 그런짓한다고 반역죄로 전국적인 수배를 시킬 것도 아니라서 저런 혼란기에는 전투 후 약탈이 서민계층의 짭짤한 수입이 되었음. 무사나 기사계층에 대한 증오임이 주 원인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욕심이 부른 범죄라고 보는 시각이 더 정확함.
드라마 추노와 실제 추노 행위는 많이 다릅니다. 드라마 추노꾼은 마치 서부시대 현상금 사냥꾼처럼 묘사되었는데 그런 행위는 중앙집권제 국가에서 용납되기 힘듭니다. 양반들이 개별적으로 노비 추적을 하긴 했으나 그나마도 지방 수령들의 방해를 많이 받아서 쉽지 않았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을 내는 일반 양민의 숫자가 많아지는게 좋았기 때문입니다.
히데요시가 이른바 "츄우고쿠 오오가에시(中国大返し)" 로 모리와 화친을 맺고 쿄토 인근까지 대병력을 이끌고 돌아온 시간이 너무 빨라서... 이미 히데요시가 계획해 놓은 것 아니냐 라는 설이 돌기도 했었죠. "노부나가의 관" 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이 드라마가 그런 가설로 만들어 진 내용입니다.
@@samurairomance ㅎㅎㅎ그러시구나~히데요시는 우리나라를 침략할즈음에는 관백(關伯-간바꾸)이라는 직책이었는데 나중에 태합이라는 직위에까지 오르게된 일본으로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지요(그래서 태합기라고하면 히데요시의 기록을 말하는것입니다)~일본사무라이이야기 기대됩니다....저도 일본쪽이야기가 좋아서 일본역사관련 책을 많이 읽다보니 관심이 큽니다.
사무라이 로망스 아.. 그런 사실이, 설명 감사합니다. 근데 밀림의 왕이 사자인지 호랑인지는 저 같은 사람들에겐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ㅋ 시청각 자료는 정보전달력이 쏙쏙 박히게 설명해야 가치가 있잖아요. 너무 재밌어서 1편부터 끝까지 다 보고 또 보았습니다. 구글까지 뒤져가며 영상 관련 내용도 다 뒤져봤어요. 전국시대가 이렇게 흥미진진한 역사인 줄 몰랐네요. 바쁘시겠지만 영상 좀 쭉쭉 뽑아주세요. 올리신 영상 보고 기린이온다도 정주행했습니다.
아...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일본 역사 교육은 완전히 왜곡되었어요. 조선의 글쟁이들이 집권해 허송세월 보낸 중세시대 동안 일본이 얼마나 압도적인 발전을 이루었는지 알려주는 것이 제 채널 목적입니다. 일본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국가적 상호 존중은 두려움과 경외감에서 시작된다고 보거든요. 우리는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서 일본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최근 달린 댓글 중 가장 기분이 업되는 댓들이네요. 직장인이라 일주일에 한편도 빠듯합니다만... 재미있는 일본 중세, 근대사 이야기를 계속 올릴테니 재미있게 봐주시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는 계기가 되신다면 더할나위 없겠습니다.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고대에는 약탈 안하는 군대가 없었어요. 고대 병법에도 약탈 하해서 인심 잃지 말라는 내용이 많은데 지금은 기초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지키기 어려운 원칙이었죠. 애초에 약탈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시작하는 경우가 태반으로 약탈은 동서고금을 떠나 보편적인 보급 수단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임진왜란 때 의병들도 약탈을 해서 원성을 샀다는 기록이 있었는데요. 현대전에서도 보급 사정이 좋지 않은 게릴라는 약탈이 일상적이고 게릴라를 폭도 테러리스트 강도로라고 비방하며 민사 심리전을 벌이이는 것이 대응 전술의 기본이죠. 구한말 의병을 두고 같은 조선 사람들이 폭도 강도라고 비난하는 일도 많았는데요.
전형적인 물타기성 실드....지네들 일본땅에서 전쟁할떄야 뻇으면 지네가 세금받아먹을 농민들 안건드린거야 지네 재산으로 직결되니 그런것이고 조선땅으로 원정온뒤 이어진 진주성 학살들은 일본군의 학살패티쉬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진주성 내에서 갖난 아이의 뒤통수에다가 까지 조총탄을 박아 죽인 유골도 출토 되었던건 아시나요? 역사 내내 유독 일본군관련해서 비인륜적인 사건사고가 많은것은 어떻게 보시나요?
@@samurairomance 강간이 얼마나 성행했으면 강간관련 법안이 따로 존재 했을까요 종종 일본 사무라이들에 대해 반론하는 사람들이 도요토미등이 강간을 할시 처벌하겟다라는둥의 법령을 반포했다고 강간행위는 절대 없었다고 주장하시는데 원래 법이라는것은 그시대의 성행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 집니다. 로망스님이 말씀하셧듯이 전쟁에서 지더라도 어짜피 일정 계급이상의 고급인력들은 돈을 받고 팔기위해 오히려 목숨은 보장받을수 있었던것이고 미츠히데마냥 정말로 운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전쟁이던 일상이던 사무라이의 권리는 보장된샘 강간이 일상이 된다고 한들 여성들이 그 피해사실을 당시에 누구에게 알렸겠으며 그의 남편은 반항하면 칼맞아 죽기만할 뿐이니 당연히 기록적으로도 쓸일이 없었겠죠 이렇게 주장할 수있는이유? 현재 일본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경찰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피의자와의 대면 현장검증은 물론, 피해자더러 현장검증에서 직접 피해장면을 재연하라는둥 2차피해에 대해 굉장히 무신경하게 행동하죠, 이건 외국인에게 더 차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래된 영상이지만 일본의 성범죄관련 진실을 폭로했던 외국인이 제작한 영상도 있던것으로 압니다. 그 외에도 단체 성폭력난교문화인 요바이, 최근까지도 문제시 되었던 대학교 섹스동아리 등등 애초에 일본에서 성관련 범죄들이 범죄로 취급받기 시작한게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습니다.
섬나라에 갖혀 자기들끼리 고급인력 목숨 보장받으면서 약탈과 강간 전쟁놀이한게 인류의 기록과 함꼐 항상 전쟁과 함께했던 서양사와 비교한다는게 참....그리고 말씀하시는게 중세적인 시스템을 보고 말씀하시는것 같은데 상식적으로 중앙집권화가 더 발전된 사회시스템임^^;;;; 뭐 멀리 볼것도 없이 한국도 고려시대가 서양사의 중세시대에 맞는 시대인데 기사와 같은 별무라는 무력계급이 존재했고 각 지방의 호족들은 영주와 같이 그 지역을 다스리며 자신들만의 사병,별무들을 가졌습니다. 고려라는 틀안에 있는 중앙집권체제가 아니였냐 하신다면 아니라도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왜냐 고려 현종이 거란의 2차침입에 견디다 못해 피난길에 올라 수도 개경에서 자신의 친족세력의 거주지였던 전남 나주까지로 피난을 갈떄 거란군도 아닌 피난길 도중 거쳐가는 지역의 백성들이 왕을 모시기는 커녕 '니가 왕이면 난 왕 할애비다'란 식으로 호위병의 무기를 뺏거나 행렬에 화살을 쏘기도 했으며 지나가는 방향의 지방호족이 왕위를 노리며 행렬을 습격한적도 있엇고 지방호족들의 비협조로 왕이 묵을 숙소 마련도 힘들었고 수행하던 궁인, 신하들의 많은 수가 달아나 버렸었죠 과연 강력한 중압집권화의 왕조에서 이러한 행위들이 일어날수 있엇다고 생각하시나요 님이 서양사에만 존재한다고 하는것들도 동양사에 찾아보면 다 있었던 사실들입니다...
@@chermin5943 고려시대하고 전국시대하고 같은 틀에 끼워맞추시는 건 좀... 같은 시대인 조선하고 비교하시면 모를까 당시의 일본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15~16세기 일본은 중세시대의 사회구조에서 좀 더 발전된게 상식이겠죠... 다만 명이나 조선처럼 강력한 군주제 중심의 중앙집권화가 미미한거고 게다가 당연히 고려시대는 유교가 아닌 불교가 근본인 시대니까 조선에 비해서 중앙집권화도 떨어지고 지방에 미치는 힘이 당연히 약했죠. 또 고려시대나 일본 전국시대 때나 덜했으면 덜했지 둘다 똑같이 고도의 중앙집권화가 되지 않은 것은 맞습니다만, 16세기의 전국시대와 그보다 수백년도 더 전인 고려시대를 같은 시대의 프레임으로 끼워넣으시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 생각되네요. 그보다 왜 발끈하셔서 기분 나쁘게 비아냥 거리시는 투로 말씀하시는지.. 먼저 맞춤법부터 고치시고 지적해주세용^^
전국시대 농민들은 농사짓다가 전쟁나면 소집되서 싸우고 돌아와서 농사를 짓던 일종의 예비군들에다가, 일반 보병들은 장창으로 싸웠기 때문에 예비군이었던 농민들이 죽창으로 패잔병들을 사냥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하네요.
이게 첫번째 영상이었군요. 처음부터 잘 만드셨네요😊
엉망입니다. 과찬의 말씀... 챙피해서 내릴까 하다가도... 이것도 역사이니까 하는 맘으로 그냥 둡니다.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는 저같이 이런내용에 관심이많은 사람이나 구독자분들에게는 오히려감사하죠 재미있어요
첫 작품이라 엉상하기 그지 없습니다. ㅋ. 최신것은 많이 좋아졌어요.
일본전국시대 농민의 삶을 생각해보면 무사따위 죽일수 있으면 죽이는게 정상.
패잔병 사냥때 홀딱 벗겨지고 반항하면 바로 죽였죠. 급이 있는 무사면 목아지 댕강
@@파크냐아수투아루 목아지X 모가지O
패잔병 사냥 개념정리가 쉽고 확실하네요. 잘 봤습니다.
쿠로자와 아키라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에서도 오치무샤을 죽인후 전리품으로 갑옷이나 투구 등을 농민들이 숨겨보관했던 장면도 있었죠.. 약간의 이해가 필요한 영화였는데, 그 마지막 퍼즐을 여기서 맞춰주었네요. 잘 봤습니다 : )
첫 작품이라서 엉성한 영상인데.. 좋게 봐 주시니 좋네요.
재밋네요 마이크 조정이 초기에는 잘안됫던듯 배경음이 너무커서 내용을 침해하네용
여기 끝무렵에 소재로 쓰인 영화는 이름이 무언가요? 나중에보고싶어성
배경음악은 좌우 다 들리는데 말소리는 왼쪽 스피커에만 들리네요.
구글 알고리즘으로 알게되었습니다. 1편부터 재미있게 보겠습니다. 영상 몇개 봤는데.재미있네요.👍👍👍
검도에 미치셨다는.. ㅎㄷㄷ.
님 목소리가 참 조은듯. 앞으로 기대하겟음. 존 컨텐츠 많이 올려주셈!😀👍
잼나네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시대극영화에서 7인의사무라이에서도 나오는 주제중 하나였는데 이런영상덕분에 부족했던부분 잘배우고갑니다.ㅎㅎ
첫 영상이라서 콸러티가 많이 떨어지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7인의 사무라이를 비롯 쿠로사와 감독 작품에는 농민들이 항상 사무라이에게만 기대는 무력한 존재로 나오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카타나가리(刀狩り)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무장상태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증거들이 적지 않게 있거든요. 이런 부분도 한 번 다를 예정입니다.
@@samurairomance 아 알찬정보들이네요. 석고의 개념과 오닌의난 특히 이 오닌의난부분을 명쾌하게 만들어주시면 좋을것같아요. 도미코의 이야기도 반응이좋을것같습니다. 또 겐지와 헤이케, 후지와라등 4대성같은것도요.
일본거주 4년차입니다. 매우 흥미로운채널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와. 부럽습니다. 일본 생활은 요즘 어떤가요? 코로나때문에 많이 빡빡하겠지요??
@@samurairomance 마스크끼고 다니는것 빼곤 별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들 무감각해져서 회식도 하고 친구들 많나서 술도 먹고. 고투트라블
캠페인 확대해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한국이랑 비교하자면 일본이 원래부터 개별 자리라던가 구분이 많이 되어져있어서 쉽게 적응한듯한 생각도 듭니다.
그렇군요. 뭐 한국도 똑같은 것 같아요. 놀이동산은 발딛을 틈도 없고 술집에도 사람 많아졌습니다.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samurairomance 그래도 아직 디즈니는 널널합니다ㅎㅎ 그냥 이렇게 없어져서 격리없이 한국가고 싶네요. 직장인이다보니 코로나 이후 가족을 못봅니다..
드디어 맨처음까지 찾아보게 되네요.
전국시대엔 벼라별일이 다 있었네요.
ㅋ. 아건 보지 마시지... 이 영상 내릴까 고민중입니다. 처음 만들어본것이라 엉망진창..
아주 좋아요
내리지 말아 주세요
아시가루를 흔히 일본의 농민 징집병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아시가루는 일반적인 농민 징집병이 아닌 엄연한 계약 군인이었습니다. 물론 영지의 상황이나 전황에 따라서 실제로 농민 징집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대부분 아시가루랑 분리되어 운용되었습니다.
혹시 참고자료가 있으시면 참고자료도 같이 첨부해 주실수 있나요?
일본어 가능하십니까. 저는 일본어가 가능해서 문건, 영상물, 검색, 책... 대부분 일본어 자료를 활용하거든요...
관심있으시면 제 팟캐스트 오디오 청취해 보세요. 일본역사다큐 해설하는 건데 도움이 도실겁니다.
일본어 가능하시면 참고자료 말씀드릴게요..
재미있어요!!!!!!!!오호!!
혹시 일본 헤어스타일 다 다른 모양이던데 이걸한번 다루어줌 어떤지요 궁금해서요
알겠습니다 !!
요즘에야 약탈과 범죄가 금지된거죠 뭐... 베트남. 중동 등 보이지 않는 많은 곳에서는 여전히 개판이지만... 전쟁은 무서운거죠. 경험하지 않아도 이해가 쉬울 겁니다...
구독했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냥이개굴 어느 부분이 신빙성이 없죠? 다른 댓글 쓰신것을 보아하니... 잘 아시는 분 같지는 않은데요..
화물차 아저씨들이 호로를 씌운다 하더니만 ,,,, 저기서 유래한 거군,,,
7인의사무라이에서도 농민들이 죽인 사무라이들의 갑주를 들고나오는 장면이 있지요
패잔병 사냥은 비단 일본 전국시대 뿐 아니라 동서고금 어디나 있었다죠?
나폴레옹 시대까지 와서도 전투가 끝난 다음엔 농민들이 전쟁터에 들어가서 군인들을 싹 벗겨가고 조금이라도 저항했다간..
중국은 뭐 중국 역사 내내 말할 것도 없구요.
잘 보았어요. ^^
금성무보단 카네시로타케시가 맞죠 ㅎㅎ
오키나와에 흔한 성씨 중하나인 카네시로
일본-대만 혼혈 배우죠 오랜만에 듣는 그이름
동영상 후반부 내용은 그럭저럭 유익한데, 초반부 1:30 부터 6:00 까지가 주제와 너무 벗어나있어 보는 사람 입장에서 지루함이 느껴집니다.
내용이 지나치게 옆으로 많이 새면, 각각의 개별 주제 자체는 재미있다고 해도 동영상 자체가 재미없고 지루해지게 됩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내용에 집중해서 3~4분 짜리 영상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제가 봐도 지루하고 산만하네요. 영상이랑 라디오는 차이가 크네요...
보통 패전한쪽 사무라이들은 농민들한테 잡혀 죽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새로운 지배자에 대한 충성증명? 뭐 그 비숫한 부분도 있는것 같고~ 결국 새주인을 운좋게 만나거나 떠돌이 낭인이 되는수밖에 없는 운명이였다고 함.
죽창은 강하다 ㅇㅁㅇ
썸네일 보자마자 미츠히데 나오겠구나 했는데 역시 있군요!
정말 전국시대에서는 온갖일이 다 벌어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문화컨텐츠에서 끊임없이 소비되는 거겠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영상이란 것 속성이 짧고 스피디하고 집중해야하고 임팩트 있고... 이래야하더라고요. 팟캐스트도 하고 있는데 오디오와는 완전 컨셉이 달라서... 오디오 하듯이 만든 것이 1, 2 편이거든요... 근데 평가가 후덜덜하게 냉정하네요. 영상물 컨셉에 맞게 만들어보혀고 노력중입니다.
@@samurairomance 팟캐스트 어디서 하시나여?
지금은 안합니다. ㅋ
멘트 사운드가 왼쪽에서만 나용
태각기가 아니라 태합기 아닌가요?
태합기가 맞습니다. 잘못 적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오오...
영상볼륨이 작게녹음되어잇나요?
전반적으로 실패한 영상이네요. 3화까지는 갈피를 못잡아서 전반적으로 엉망이네요. 4화 이상부터 봐주세요. ㅠㅠ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도 패주무사 사냥이 소재로 쓰인적이 있었죠. 더 앞서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탐정 시리즈에서도 패주무사 소재가 나왔었구요. 저런 자극적인 역사도 문화컨텐츠 소재로 쓰는 솜씨는 감탄이 나옵니다
쿠치나시촌 이엇나요..
@@hyoobee김전일이 쿠시나시무라고 긴다이치 코스케가 야츠하카무라였을 겁니다
호로무사는 말타고달리기엔?
그러고보니 중세 유럽에도 농노들이 전장에서 패주한 기사나 용병을 습격해서 그들의 장비와 물자를 팔아서 수입을 올리거나 그것들을 유용해서 용병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흔했다고 하더군요. 이런걸 보면 정말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게 맞나봅니다.
왜 항상더빙하실때 이어폰 왼쪽만 들릴까요
178에 107킬로인데요 몸에서누린내가 나서 사람들이 나를보면 피해요 저시대에 이몸으로 태어났으면 전쟁의 왕이되었을것같네요
힘내세요 !!
다이묘 이놈과 내가 같은게 뭔지아나? 그것은 죽창 앞에서는 누구나 한방이라는거야
태각기가 아니고, 태합기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말씀하신대로 태합기가 맞습니다.
마지막에 할 말은 다하고 죽네요 ㅎㅎ~
참 다른 문화이네요...
흥미있게 잘 봤습니다... 태합(太閤)... 호로(胡虜)...
호로무샤 전령 또는 무전병 인가요???
원래 목적은 전령+알파 역할이었습니다.
호로무사의 호로는 원래 용맹한 무사에게 주는 망토를 호로라 합니다. 말을 타고 달릴때 거추장스럽게 휘날리는것을 아래쪽을 잡아매다보니 둥근 풍선처럼 보이게 됐고. 그 당시는 이게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대나무로 틀을 짜서 평상시에도 부푼 모습을 만들게 된겁니다. 호로가 화살을 막기위한거라는 가설은 사실이 아닌걸로 오래전에 일본역사가들이 밝혔구요. 호로를 두를수 있는 호로무사는 영주에게 인정받은 영예있는 신분이었고, 전투중의 연락병같은 위험한 임무도 수행했지만 실제 전투에서 "나 쎈 놈이야"라는 표식과 함께 전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무사입니다.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전투중에 벤 상대편의 수급으로 포상이 내려지기 때문에 호로무사는 가치가 높은 상대이자, 스스로도 이런거를 감수하면서 가치있는 상대를 맞으러 가는 표식입니다.
제가 올린 3번 째 영상에 어느 분이 질문을 올리셔서 저도 동일한 답변을 달아두었습니다.제가 알고 있기로는, 화실을 막는 목적으로 고안되었지만 그 의미가 거의 없어서 다른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이 아닌걸로 오래전에 일본역사가들이 밝혔다"라는 부분에 대한 출처를 알고계시다면 링크 걸어주시거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태클거는 것이 아니라, 좀 명확히 결론을 내리고 싶어서요.
ruclips.net/video/8B_6BU7SYf8/видео.html
실제로 효과 있는데요?
@@kkhkim85 진짜네요. 좋은 링크감사합니다.
@@samurairomance 제가 이년전에 댓글을 달았던 동영상을 다시 보게됐네요. 댓글보고 어? 누군지 호로에 대해서 잘아네? 라고 생각했더니 제가 쓴 글이었네요. (제가 쓴 글이니 저에겐 당연히 그렇게 생각됐네요) 때늦은 답글입니다
호로가 화살막이인지 아닌지는 네이버 역사카페인 부흥에서 토론이 있었을때 제가 지식을 얻었었던것 같구요. 역사가들이 호로에 대해 화살막이 기능은 없다고 했던 내용도 그때 본거 같은데,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당장 정확한 내용은 찾기힘드네요. 나중에라도 찾으면 다시 댓글로 달을께요. 일단 그때 잘 설명하신 아케치경감이라는 분의 이글루 연재(halmi.egloos.com/1864660)를 지금 다시 찾아서 아래와 같은 내용를 발췌해옵니다
ほろ(호로) :
母衣, 保侶, 幌라고도 표기한다.
『三代實錄』, 『扶桑略記』 등에 保侶라는 말이 있고, 이것이 후세에 사용되는 母衣와 같은 것인지 어떤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등에 걸치는 망토모양의 물건이다.
伊勢貞丈은 이것에 대해 '앞에 달고 화살을 피하는 도구'라 했고, 『武家名目抄』에서도 '옛적의 母衣라는 것은 갑옷의 보조도구로서 화살과 돌을 막는 도구이다'라고 했고, 『武用辯略』에서도 그 유래에 대해 억지로 가져다 붙이고 있지만, 결국 방한방습의 도구로 군사적 풍모를 부풀리기 위한 장식에 불과하다.
상단을 어깨 위에서 묶고, 아래쪽을 허리에 끼워넣기 때문에 말을 타고 달리면 바람에 부풀어올라 돛처럼 되는데, 후세에는 아예 '호로구시(母衣串)'라는 틀을 사용하여 부풀린 형태가 되어, 알려진 무사나 전령 등이 표시로서 애용했다.때문에 호로무사는 명예였고, 호로무사를 무찔렀을 때엔 그 목과 함께 호로도 가지고 돌아와 무훈의 증거로 삼는 것이 요령이었다.
출처 : 사사마 요시히코, 일본무도사전, 柏書房(TOKYO), 2003.
윗 댓글에 있는 동영상을 봤는데, 호로를 틀에 씌운 형태에서도 저런 저지력이 나올수 있을까(틀에 씌웠을때는 당겨지는 비단의 면적이 좁아지니 단위면적당 화살촉의 관통력(힘)은 증가되니 아무리 약한 일본 활이라도 뚫린다고 생각합니다. 아케치경감이 호로 관련해서 쓴 의견중에 일본갑옷은 등쪽은 방어가 부족하게 되어있는데 (등쪽에 공격을 받는다는것은 이미 비겁자란 뜻이기도 해서) 굳이 등에 화살막는 목적으로 호로를 메겠느냐라는데 저도 동의를하고요. 호로가 화살막는데 도움이 된다면 전투시에 다이묘나 지휘관들도 호로를 갖춰멜테인데 그런 모습은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화살막이 용도는 아니고 일본무사 특유의 과시성 장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물차 호로?
아케치는 도요토미가 보낸 자객에 죽었다고 알고있었는데 일반농민에게 죽었나요?
오치무샤가리를 하는 농민의 죽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아주 불명예스럽게 말이지요.
국가간 총력전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이나 한국에서는이해가 잘 안가거나 신기한 부분이겠지만. 전쟁이 영주간의 세력 싸움이 기본인 일본이나 유럽의 중세 전쟁사에서는 전투 후 주변 농민이 저렇게 Looter가 되는 경우가 아주 흔했음. 갑옷이며, 병기, 병사들의 소지품까지 털어갈 수 있는 재물이 널려있는데다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라 그런짓한다고 반역죄로 전국적인 수배를 시킬 것도 아니라서 저런 혼란기에는 전투 후 약탈이 서민계층의 짭짤한 수입이 되었음. 무사나 기사계층에 대한 증오임이 주 원인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욕심이 부른 범죄라고 보는 시각이 더 정확함.
호로무사 뒤에 볼때마다 머지했는데 활방어인건 오늘처음암
팔묘촌에 나오는 무사들이 마을사람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인가요? 팔묘촌을 자세히 안봐서 왜 살해당했는지 몰랐는데, 이런 이유라면 이해가 가네요.
제목은 오치무샤가리인데 다른 무샤표현 찾아보는데 영상 반절을 넘어가 버리네...그나마도 정보도 빈약하고...
첫 작품이다보니 유튜브 속성도 잘 몰랐고, 여러가지 측면으로 좀 실패작이 아닌가 싶네요.
댓글의견 긍정적으로 수용해주시는 모습 멋지시네요. 앞으로도 멋진 좀더 멋진 영상기대하며 구독하겠습니다 ^^
오치무샤가리 뭔가 조선의 추노꾼이랑 비슷하네요
드라마 추노와 실제 추노 행위는 많이 다릅니다. 드라마 추노꾼은 마치 서부시대 현상금 사냥꾼처럼 묘사되었는데 그런 행위는 중앙집권제 국가에서 용납되기 힘듭니다. 양반들이 개별적으로 노비 추적을 하긴 했으나 그나마도 지방 수령들의 방해를 많이 받아서 쉽지 않았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을 내는 일반 양민의 숫자가 많아지는게 좋았기 때문입니다.
호로무샤 세키가하라영화서보니까 거의 낙하산이더만 오히려 전진할떄 바람저항을 입빠이받게만들어서 크게의미없어보임 이유가 궁금했는데 등화살방어용이라니...
이게 서양에서 실제 화살을 막아주는지 실험한 영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보이더라고요. 실험에서는 화살을 훌륭하게 막아줬습니다.
쥬우베가 죽창에 죽었군요
귀무자는 게임 이야기만 하다가 마네요. 귀무자가 뭔지 설명은 없고...
아니 마지막ㅋㅋ 원형탈모상태로 진지한 장면 찍으니까 모양이 안사네
음악 빼고 다시 편집해 주세요,,,너무 시끄러워요,,,
일설엔 머리좋은(약아빠지고 영악하고
얖삽하기그지업는) 원숭이 수길의꼬드
김에 아께치가 당햇다는 설도잇음
히데요시가 이른바 "츄우고쿠 오오가에시(中国大返し)" 로 모리와 화친을 맺고 쿄토 인근까지 대병력을 이끌고 돌아온 시간이 너무 빨라서... 이미 히데요시가 계획해 놓은 것 아니냐 라는 설이 돌기도 했었죠. "노부나가의 관" 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이 드라마가 그런 가설로 만들어 진 내용입니다.
태각기가아니라...태합기(太閤記)입니다^^태합.....일본의 관직이지요,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태합기는 당시 히데요시 시대의기록을 이야기하는것이라봅니다.
일본어 발음으로 "타이코키" 이다 보니까, 머리속에 태각기로 각인되곤 하네요. ㅋ
@@samurairomance ㅎㅎㅎ그러시구나~히데요시는 우리나라를 침략할즈음에는 관백(關伯-간바꾸)이라는 직책이었는데 나중에 태합이라는 직위에까지 오르게된 일본으로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지요(그래서 태합기라고하면 히데요시의 기록을 말하는것입니다)~일본사무라이이야기 기대됩니다....저도 일본쪽이야기가 좋아서 일본역사관련 책을 많이 읽다보니 관심이 큽니다.
@@올스타1785 넵. 잘오셨습니다. 앞으로도 날카로운 커멘트 부탁드립니다.
템포를 좀 더 빨리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처음 만든것이라 많이 부족했습니다. 최근에 만든 영상들은 나레이션 부분이 많이 좋아졌어요 !!
1.5배속으로 보시길
@@kay903 ㅋㅋ 뭔 1년 전의 댓글에 조언을 하나?
파발을 띄워도 이보다 빠르겠다.
@@고양이귀여워-d3r 날짜 못봄ㅋ 그리고 1.5배는 넘 빠르네. 1.25배로 봐라.
호로는 어머니의 태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전장에서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그런 뜻이 담겨저 있군요. 어머니의 옷.. 이라는 한자가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네요.
아니 갑옷이 죽창도 못 막으면 갑옷 구실 못 하는건데..
아주 종은 페이지네요.. 박수...ㅉㅉㅉㅉ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입니다만 저는 왜자꾸 하시바 히데요시가 아씨바 히데요시로 들릴까요 ㅠ ㅋㅋㅋㅋㅋ
첫 영상이라서 많이 구립니다. 요즘엔 많이 좋아졌어요.
일본이란 나라도 참 전쟁이 귾이지않던 나라엿네 인류는 전쟁을통해 발전햇다는것이 아이러니칼하구만 상상해보니 안됫다 자신의 목적을
주제가 뭔되요? 설명이 넘 번잡하네요
처음 만든것이라서 말씀하신대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1,2,3 편은 시행착오 반복이었고요. 4,5,6 편은 그럭저럭 볼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정보 잘 보았습니다. 재미있네요.
태합기 같아요 태각기가 아니라 감사 함니다
말씀하신 부분이 맞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현 시대의 도덕적인 기준으로 바라보고 그당시를 보면 안된다고 역사학자들이 말하더군요. 맞는 얘기에요. 역사를 통해 얻어야 하는건 실패를 통해서 어떻게 우리는 성공을 준비해야 하냐가중요하겠습니다.
말씀도 빠르시고~ 발음도 좋으시고 내용도 훌륭해서~ 12분간 졸다 일어났더니~ 무슨 내용이였어요?
적당히 합시다. 알았으니까.
@@samurairomance 아셨어요? 그러세요~ 아 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삼천포로 빠지는 듯
오니고로시도 생각나네요
태각기가 아니라 태합기
아케치라는 채널은 사투리가 심한데
여긴 표준어라 보기 편하네요
사투리가 좀 거슬리시나보네요. 하지만, 아케치님이 아마추어 전국시대 취미가에 있어서는 원탑입니다.
사무라이 로망스 아.. 그런 사실이, 설명 감사합니다. 근데 밀림의 왕이 사자인지 호랑인지는 저 같은 사람들에겐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ㅋ 시청각 자료는 정보전달력이 쏙쏙 박히게 설명해야 가치가 있잖아요. 너무 재밌어서 1편부터 끝까지 다 보고 또 보았습니다. 구글까지 뒤져가며 영상 관련 내용도 다 뒤져봤어요. 전국시대가 이렇게 흥미진진한 역사인 줄 몰랐네요. 바쁘시겠지만 영상 좀 쭉쭉 뽑아주세요. 올리신 영상 보고 기린이온다도 정주행했습니다.
아...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일본 역사 교육은 완전히 왜곡되었어요. 조선의 글쟁이들이 집권해 허송세월 보낸 중세시대 동안 일본이 얼마나 압도적인 발전을 이루었는지 알려주는 것이 제 채널 목적입니다.
일본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국가적 상호 존중은 두려움과 경외감에서 시작된다고 보거든요. 우리는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서 일본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최근 달린 댓글 중 가장 기분이 업되는 댓들이네요. 직장인이라 일주일에 한편도 빠듯합니다만... 재미있는 일본 중세, 근대사 이야기를 계속 올릴테니 재미있게 봐주시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는 계기가 되신다면 더할나위 없겠습니다.
어째서 연출 수준이... 수십년전 7인의 사무라이보다 못한거냐...
태각기가 아니라 태합기...
오디오좀 사라 목소리가 김종국모기목소리만혀
듣지마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고대에는 약탈 안하는 군대가 없었어요. 고대 병법에도 약탈 하해서 인심 잃지 말라는 내용이 많은데 지금은 기초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지키기 어려운 원칙이었죠. 애초에 약탈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시작하는 경우가 태반으로 약탈은 동서고금을 떠나 보편적인 보급 수단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임진왜란 때 의병들도 약탈을 해서 원성을 샀다는 기록이 있었는데요. 현대전에서도 보급 사정이 좋지 않은 게릴라는 약탈이 일상적이고 게릴라를 폭도 테러리스트 강도로라고 비방하며 민사 심리전을 벌이이는 것이 대응 전술의 기본이죠. 구한말 의병을 두고 같은 조선 사람들이 폭도 강도라고 비난하는 일도 많았는데요.
전형적인 물타기성 실드....지네들 일본땅에서 전쟁할떄야 뻇으면 지네가 세금받아먹을 농민들 안건드린거야 지네 재산으로 직결되니 그런것이고 조선땅으로 원정온뒤 이어진 진주성 학살들은 일본군의 학살패티쉬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진주성 내에서 갖난 아이의 뒤통수에다가 까지 조총탄을 박아 죽인 유골도 출토 되었던건 아시나요? 역사 내내 유독 일본군관련해서 비인륜적인 사건사고가 많은것은 어떻게 보시나요?
@@chermin5943 ㅡ찐ㅡ
@@chermin5943 먼과거도아닌 근과거에 우리나라군대가 베트남가서 그것보다훨씬 잔인한미친짓들하고온건모르고 불쌍하게 거짓선동 세뇌당한인간 여기또있네
아프세요 들어보니까 힘드신거 같은데.좀 쉬세요
그러게요. 아픈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야모토 무사시도 오치무샤 였었더랬죠
낭인 신분으로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했다가 패한 후 도망간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말씀하신대로 오치무샤가 맞기는 합니다. 다만, 세키가하라 전투 참가는 허구로 알려져 있기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말씀이 자다 일어난 사람 처럼 너무 느립니다...재생 속도 올리면 되지만 원래 이렇게 느린 목소리는 속도 올려도 듣기 매우 어색하답니다.
나중 영상은 좋아졌습니다. 처음 올린 영상이다보니 많이 안좋네요.
미화된 사무라이들 실체는 오직 영주만을 위해 사는자들
양민들을 겁탈해도 좋고 목을 베도 죄를 묻지 않는 자들 칼에 성능을 보기 위해 양민에 목을 베었던 자들
그런 사람들도 물론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당시 시대상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samurairomance 강간이 얼마나 성행했으면 강간관련 법안이 따로 존재 했을까요 종종 일본 사무라이들에 대해 반론하는 사람들이 도요토미등이 강간을 할시 처벌하겟다라는둥의 법령을 반포했다고 강간행위는 절대 없었다고 주장하시는데 원래 법이라는것은 그시대의 성행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 집니다. 로망스님이 말씀하셧듯이 전쟁에서 지더라도 어짜피 일정 계급이상의 고급인력들은 돈을 받고 팔기위해 오히려 목숨은 보장받을수 있었던것이고 미츠히데마냥 정말로 운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전쟁이던 일상이던 사무라이의 권리는 보장된샘 강간이 일상이 된다고 한들 여성들이 그 피해사실을 당시에 누구에게 알렸겠으며 그의 남편은 반항하면 칼맞아 죽기만할 뿐이니 당연히 기록적으로도 쓸일이 없었겠죠 이렇게 주장할 수있는이유? 현재 일본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경찰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피의자와의 대면 현장검증은 물론, 피해자더러 현장검증에서 직접 피해장면을 재연하라는둥 2차피해에 대해 굉장히 무신경하게 행동하죠, 이건 외국인에게 더 차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래된 영상이지만 일본의 성범죄관련 진실을 폭로했던 외국인이 제작한 영상도 있던것으로 압니다. 그 외에도 단체 성폭력난교문화인 요바이, 최근까지도 문제시 되었던 대학교 섹스동아리 등등 애초에 일본에서 성관련 범죄들이 범죄로 취급받기 시작한게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습니다.
다 떠나서 왜 녹음을 이런식으로 하는지 이어폰 꼽고 듣는데 한쪽귀에선 목소리가 한쪽에선 브금이 ...정말 듣기 빡치네요. 안그래도 말투도 느릿느릿해서 그 괴로움은 배가되는듯.. 진짜 이건 이어폰 꼽고 들을만한게 아님. 내용을 떠나서
호로무샤 빨간거는 화살을 튕겨내는 용도였다고하네요 전령 맞구요
유독 일본보면 이상하게 동양권중에선 유일하게 서양틱함
영주라는게 존재하고;
중국도 존재했는데요 태수라고 영주처럼 땅덩어리가 큰나라는 보통있죠 서양도 땅덩어리커요
@@신겸김-h2y 태수도 중앙에서 파견하거나 세습을 한다해도 승인이 되어야 히는 구조 입니다. 서양은 무조건 세습이고 ..쌍무계약관계이기 때문에 공작에서 하급 남작 귀족까지 자기영지내에서 황제와 같은 모든 귄리를 행사할수있습니다.
동양이 서양보다 당시엔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화가 그만큼 잘되었다는 뜻이었겠죠. 중국과 한국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일본은 왕권이 미미해 중앙집권화가 다소 오래걸린 셈이구요.
섬나라에 갖혀 자기들끼리 고급인력 목숨 보장받으면서 약탈과 강간 전쟁놀이한게 인류의 기록과 함꼐 항상 전쟁과 함께했던 서양사와 비교한다는게 참....그리고 말씀하시는게 중세적인 시스템을 보고 말씀하시는것 같은데 상식적으로 중앙집권화가 더 발전된 사회시스템임^^;;;; 뭐 멀리 볼것도 없이 한국도 고려시대가 서양사의 중세시대에 맞는 시대인데 기사와 같은 별무라는 무력계급이 존재했고 각 지방의 호족들은 영주와 같이 그 지역을 다스리며 자신들만의 사병,별무들을 가졌습니다. 고려라는 틀안에 있는 중앙집권체제가 아니였냐 하신다면 아니라도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왜냐 고려 현종이 거란의 2차침입에 견디다 못해 피난길에 올라 수도 개경에서 자신의 친족세력의 거주지였던 전남 나주까지로 피난을 갈떄 거란군도 아닌 피난길 도중 거쳐가는 지역의 백성들이 왕을 모시기는 커녕 '니가 왕이면 난 왕 할애비다'란 식으로 호위병의 무기를 뺏거나 행렬에 화살을 쏘기도 했으며 지나가는 방향의 지방호족이 왕위를 노리며 행렬을 습격한적도 있엇고 지방호족들의 비협조로 왕이 묵을 숙소 마련도 힘들었고 수행하던 궁인, 신하들의 많은 수가 달아나 버렸었죠 과연 강력한 중압집권화의 왕조에서 이러한 행위들이 일어날수 있엇다고 생각하시나요 님이 서양사에만 존재한다고 하는것들도 동양사에 찾아보면 다 있었던 사실들입니다...
@@chermin5943
고려시대하고 전국시대하고 같은 틀에 끼워맞추시는 건 좀...
같은 시대인 조선하고 비교하시면 모를까 당시의 일본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15~16세기 일본은 중세시대의 사회구조에서 좀 더 발전된게 상식이겠죠... 다만 명이나 조선처럼 강력한 군주제 중심의 중앙집권화가 미미한거고
게다가 당연히 고려시대는 유교가 아닌 불교가 근본인 시대니까
조선에 비해서 중앙집권화도 떨어지고 지방에 미치는 힘이 당연히 약했죠.
또 고려시대나 일본 전국시대 때나 덜했으면 덜했지 둘다 똑같이 고도의 중앙집권화가 되지 않은 것은 맞습니다만, 16세기의 전국시대와 그보다 수백년도 더 전인 고려시대를 같은 시대의 프레임으로 끼워넣으시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 생각되네요.
그보다 왜 발끈하셔서 기분 나쁘게 비아냥 거리시는 투로 말씀하시는지.. 먼저 맞춤법부터 고치시고 지적해주세용^^
대표적 피해자가 아케치 미츠히데
이거 베가본드애서 잘묘사됨
저러니까 농민들이 멸시를 당했지요 ....약자 인척 하면서 사무라이 뒤통수 치면서 감히 사무리이을 사냥 하다니... 저런 농민들은 평소에 짓밟아 줘야 합니다만
졸려요 목소리톤좀 바꿔보심이...
정확한 지적이네요. 세 번 째 에피소드에서는 아예 목소리를 빼 봤어요...
고흥의 제이씨가 운영 하시는가?
서울의 엘씨입니다.
싸울아비 = 사무라이
설명이 넘 길고 느리고 포인트가 없어요 여러개의 내용이라 쪼개면 될것을...나름 잼있을수도 있는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시네
군대에서 차량에 호루 친다 하는 그말과 같은 거 같기도.....
저것이 일본의 본성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여지없이 등 뒤를 노리지.
스스로 주제를 많이 벗어난대 ㅋㅋㅋㅋ
배신을밥먹듯하던놈들이야 무사란타이틀은쓰지마라 무례한표현이다
사무라이랑 어울리지도 않는 오프닝송에.. .센스 우엑
더빙이 좀 구린듯 한쪽 스피커로만 소리가 나오네....
첫 영상이라 많이 구리네요.
호로무사 설명부터 뇌피셜로 막 컨텐츠 만들지 좀 마세요.. 영상 제작할때 모르는거 같은건 그냥 나무위키라도 한번 찾아보면 끝인데...
이런 애들이 사무라이 '로망스'를 가지고 있다니 아이러니네요 ㅋㅋㅋㅋㅋ
잘못된게 있으면 지적을 해보세요. 나무위키같은 병신사이트를 참조한다에서 일단 거르겠습니다.
사무라이 로망스 병신같은 ㅋㅋ 사이트보다 내용이 못하면 뭘꺼 같나요.
지적을 해보세요. 처음 만든 영상이라서 저퀄임은 인정하나 내용은 별반 잘못된건 없으니, 잘못된 걸 찾아서 이야기 해보시라고.
무슨 오프닝이 이렇게 길어 샹
아시가루는 농민이 아니다
공부하고 떠들어라.
공부하고 글 적어라. 게임으로 공부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