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는 시바타에 의리를 다했다고 봅니다 시바타 가신도 아니고 노부가나의 명령으로 시바타에 관한 종속관계를 유지했는데 노부가나의 죽음으로 그 관계는 효력을 다했고 기요스회의 이후 실세로 등극한 절친 히데요시에게 가지않고 시바타에 남아줬으니까요 시바타도 그걸 아니 나중에 고마워한거 아닐까요 마에다로선 절친과 은인의 싸움이 괴로웠겠죠
토시이에의 아들이 갈등 했겠지 토시이에는 갈등 없었을텐데요 히데요리를 위해서 구심점이 되어 몸던졌을겁니다 그럼 이에야쓰는 힘들었죠 하필 히데요시 사후 토시이에도 오늘내일 할때라 이에야스가 운이 좋았죠 토시이에가 이에야쓰보다 실세였고 당시에 다이묘들이랑 더 관계가 좋아서 더 쎄다고 봐야됩니다 이에야쓰는 에도시대를 열었으니 당시나 지금이나 무조건 일본의 영웅으로 미화해줘야 하는 인물이라
마에다 토시이에 대납언 그 아들 마에다 토시나가 ㅋ 100만석 이상의 다이묘 이자 5로 대로 이자 ..정무수석 크윽 .. 아버지에 뒤를이어 토시나가는 도쿠가와 막부에 충성 하면서 자기 셰력을 계속 이어 나갈수 잇엇죠 도요토미시절에 이은 에도 막부까지 그 집안은 평안햇을거임 도쿠가와 삼대 드라마 보면 나옴 비중이 모리가문 만큼
시바타가 오다가문 최고 후다이 중신들 중 한 명이었을 당시, 히데요시는 겨우 노부나가의 말을 끌고 다니던 하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런 하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했으리라 봅니다. 그런 멘탈 블레이크가 그를 멸망하게 만든 진짜 이유라고 추측해요. 사람은 그래서 두뇌가 유연해야 생존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바타가 히데요시를 인정하지 못한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고우, 공주들의 전국"에서 시바타 가츠이에가 기타노쇼성에서 부하들에게 신나는 마지막 주연을 베푼후 오이치와 마주앉아 짧은 담소끝에 자결을 하지요 그장면과 더불어 부부의 사세구가 화면에 흐르구요 부하들은 여기저기 폭약을 설치하고 오이치의 시녀들은 자결을 하고 ㅠㅠ 성문을 사이에 두고 오이치와 아자이 세자매가 이별하는 장면은 몇번을 보아도 가슴이 에입니다 OST가 너무도 애절하지요 전 시바타를 연기한 배우 다이치 가스오가 마치 시바타 자체로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
우리가 일본을 쪽바리하면서 무시하고 우리나라가 일찍 중국문물을 받아들여 일본보다 우수하다생각하는 경향이 많다.이건 학교교육도 한목했다.그러나 냉철하게 보면 일본은 15세기에 벌써 서구와 교역했고 조총등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조선시대때부터 일본은 우릴 앞서가기 시작했다고 보면될것이다.
마에다 토시이에는 자기 이름도 보전하고 자기 사후에 마에다 가문도 대영주 가문으로 남았으니 전국시대 진정한 승자라고 할 만함. 이걸 보면 전국시대에 의리와 충성이란 대를 이어 미치는 건 아니라는 걸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한테 충성했을 뿐 마찬가지로 이에야스도 히데요시에게는 확실히 잘 했던 것이고 그가 죽은 다음 그 자식한테까지는 그럴 필요 없다는 것... 추가로 마에다 토시이에의 아내 마츠가 아들이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이에야스 편에 서는 것을 주저하는 데 대뜸 자기가 대세를 알고 이에야스한테 인질로 간 것은 여자지만 이런 불문율을 꿰뚫어 본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것도... 라이벌격인 삿사 나리마사는 히데요시와 사이가 안 좋았지
국가전략이란것은 분명 실리의 정치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무라이로망스님의 마지막 멘트는 극히 실리만 추구하신 말씀이네요. 한나라의 정책은 단순히 실리로만 결정되지않으며 사회의 역사적 환경에서 결정해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리적인 측면에서는 일본과 친하게지내고 경제 군사적으로 더 가까워져야 대륙세력에 함께 대항할수 있겠지만, 그동안의 여러정권들이 우리내부의 근본적인 문제는 팽개치고 실리만 추구하는척 했고 일본도 그런 우리정부를 갖고 놀면서 우리내부를 이간질하고 분열시키려 한것도 분명사실이죠. 한국과 일본이 허심탄회하게 서로 믿고 의지하는 진정한 이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열쇠는 한일모두에게 있으며, 특히 일본이 더 많이 해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역사의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들이 한국에대해 옛날의 식민지이며 자기들 밑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동등한 한국으로 우리를 대해주길 바랍니다. 한일협정이니 한일협의니 하는 종이쪼가리 뒤에 숨지말구요
산들바람님 말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식민지배도 플러스 유산과 마이너스 유산이 모두 존재합니다. 자존심 상할 문제지만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지요. 한일관계의 열쇠요? 저는 한일관계의 열쇠는 우리가 쥐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은 한국이 신뢰할만한 나라로 판단되고 안보 이해관계가 맞으면 알아서 협조합니다. 미일관계가, 일본 대만 관계가 그 증거이지요. 일본과 미국은 전쟁을 통해 수십만의 군인과 수십만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핵을 두 방이나 맞았고요. 우리가 일본과 무슨 전쟁이라도 목숨걸고 해서 나라를 빼았긴 것도 아니잖아요. 요즘 정치인즐이 이야기하는 "어떠한 전쟁보다도 평화가 낫다"는 명제를 이미 실천한 국가가 조선이지요. 이완용을 왜 욕하는지 모르겠어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했는데... 그런 미일관계 역시 실리와 안보라는 측면으로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강력한 동맹으로 거듭나며 국제사회 속의 리더로서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일찌기 근대화를 통해 세계의 무대로 진출한 나라들의 기본 사고와 대한민국같은 신생국과는 국가 기본 전략이 다릅니다. 일본하고 우리하고 동급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번에 이란에 나포된 선박 보고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우리가 호루무스 해협의 무역 루트를 지킬 힘이 있다고 보이나요? 미국 없으면 자원 줄 다 끊기고 손가락 빨다 죽을 운명입니다. 미국 일본과 관계를 망가트리면 대한민국은 중국의 속국으로 사회주의 국가화되어 소멸될 운명입니다. 저는 걱정이 많이됩니다. 이미 그렇개 되어가고 있어서 말이지요. 국민, 정치인, 국가 펀더맨탈... 선진국을 대상으로 싸움을 걸기에는 턱없는 역량입니다. 힘있으면 큰소리 칠 수 있고, 힘 없으면 기는 겁니다. 작은 조직에서든, 국가에서든, 국제관계든 불변의 진리이지요. 힘 없이 큰소리치다가 궁지애 몰린 것이 작금의 우리 상황이고요.
@@samurairomance 일본은 합방으로 지배했던 데에 대한 보상심리, 공산세력과 접하여 일선에서 막아주고 있는 한국에 대한 지원심리 등으로 80년대 이전만 해도 이심전심으로 한국을 많이 도왔습니다. 차관, 기술원조, 외교지원 등.. 90년대 들어와 YS이후 한일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이 반일을 정치에 활용한 바도 큽니다. 60년대 우리가 스스로를 엽전이라 자조하던 가난한 시절도 벗어나 이제는 일본과 어느정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국력으로 자라난 만큼 이웃 일본과 외교, 경제문제에서 손잡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 믿습니다. 절천지 원수 전쟁당사국인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와 독일도 구원을 털고 이젠 한울타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이고요. 사무라이 로망스님의 견해 적극 동감하며, 너무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잘 보고 있어 늘 감사합니다.
@@samurairomance 사무라이 로망스님 덕분에 유익한 내용 즐기고 있습니다. 한일관계라는 측면은 저와 다른 생각인것 같습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신뢰 '운운할 입장이 되지 못하다고 봅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언제 진심으로 행동한 적이 있었나요? 지들 유리할때만 협력이니 상부상조니 하면서 뒤통수 쳐왔지요. 진정한 한일 관계가 우리의 국력이 강해져야하고 일본의 진솔한 사과 와 재발방지 서약이 먼저 지요. 미국도 일본 뒤통수 쳐댔지요. 신뢰관계는 아니지요. 대만과 우리나라는 다른 입장입니다. 대만원주민 입장에서야 본토출신 중국인이나 일본이나 그놈이 그놈이죠, 무슨 특별한 신뢰관계가 있습니까? 단지 대만인들이 정신 못차리는 거죠. 어느나라가 아시아에서 제일먼저 대만과 단교하고 중공과 수교했습니까?
진솔, 진실... 공식 사과만 22번 했습니다. 하토야마는 무릎 꿇는 행동까지 보여줬지요. 220번을 해도 2200번을 해도 진심어린 사과하라는 말은 그치지 읺습니다. 반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일은 한국, 그리고 아이라니하개도 일본에도 밥줄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일관계가 좋아지면 이들은 직업을 잃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진심어린 사죄하라"는 이면에는 소위 반일 장사꾼들의 선동질이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 더러운 장사의 본질은 윤미향과 정의연의 실체를 통해 상당부분 대대적으로 오픈이 되었지요. 일제 36년을 통해 좋든 싫든 근대화의 초석이 닦였고, 조선에서 많은 것을 수탈했다고는 배웠어도 산업기반이 전무한 조선에 인프라를 까느라고 조선총독부는 단 한 해도 예산 적자를 면한 적이 없다는 것은 배운 적이 없지요. 전쟁을 위한 인프라든, 수탈을 위한 인프라든 경제지표가 이야기하는 조선식민지 경영은 일본입장에서도 잘못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일제 36년간 약 20만명의 조선인이 징용, 전쟁터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36년간 조선에는 식민지배를 위한 인프라가 깔리고 신분과 관계없이 교육기회도 생겨난 것이 사실입니다. 6.25 전쟁 3년 간, 북괴와 중공에 의해 남북한 합쳐 200만이 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북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과 만행의 증거는 차고도 넘치지요. 이들의 전쟁으로 전국토의 90%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역사적 사실만 놓고 보면 중공과 북한에 끊임없는 사죄요구와 반공 반중 교육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야 상식적으로 옳은 것이갰지요. 피해 규모로는 비교 자채가 안되니까요. 하지만, 학교교육 어디에서도 반중, 반공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게 이싱한 것 아닐까요. 이익을 보는 자들이 누구인지 자세히 보십시오. 그들이 범인입니다. 한국의 정치인, 시민단체, 일본의 일부 정치인, 언론사... 반일 장사의 뿌리는 양국에 걸쳐서 오랫 동안 만들어져 왔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며 반일 몰이 하다가 IMF 터지고 일본에 딸러 구걸하러 갔었지요. 현 정부에서 신닛테츠 자산 압류하고, 국가 주도 반일 몰이 하다가 일본이 강경 일변도로 나오니, 퇴로가 막힌 정부에서 돈 주는 척 하면 우리가 다시 챙겨주겠다고 뒷거래질 하다가 걸렸지요.쪽팔린 것은 국민의 몫입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일본이 진정어린 사과를 해야한다"고 정량적으로 판단할 수도 없는 고장난 라디오 같은 주장의 이면에 숨겨진 반일 장사꾼들의 매국질에 대한 본질을 보실 수 있게 되신다면 좋겠습니다.
@@samurairomance 사과를 했나요? 수상이 사과하면 그 다음주에 문부상이란 인간이 우린 사과할만한 짓 안했다 라고 하고 또 총무상이라는 놈이 사과부정하고 아버지가 한 사과에 자식놈이 부정하고 ,,, 매번 같은 방식아닌가요? 위안부 합의? 그 합의의 전제는 일본의 반성과 사과인데 언제 아베가 지 입으로 반성하는 뉘앙스라도 비쳤나요? 과연 사과는 하기는 했습니까?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을 위한 기회라는 것은 전형적인 일본의 물타기네요.. 인신매매당해 강제노동에 시달려도 먹여주고 재워 줬으니 대단한 시혜를 받은 건가요?
사나이네요. 보통은 그런 상황에서는 원망 안하기가 어려울 터인데도 그걸 이해하고 넘어간다는건 참 어려울 터인데 말이죠.
역시 기대를 버리지 않으시는
로망스 님.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쭈욱 정주행 중이신가보내요.ㅋ
해설이 좋군요. 즐겁게 영상 봤습니다.
칭찬은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마에다는 시바타에 의리를 다했다고 봅니다 시바타 가신도 아니고 노부가나의 명령으로 시바타에 관한 종속관계를 유지했는데 노부가나의 죽음으로 그 관계는 효력을 다했고 기요스회의 이후 실세로 등극한 절친 히데요시에게 가지않고 시바타에 남아줬으니까요 시바타도 그걸 아니 나중에 고마워한거 아닐까요 마에다로선 절친과 은인의 싸움이 괴로웠겠죠
실속과 명분을 모두 챙긴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samurairomance 공감입니다....근데 그래도 씁쓸하네요.....
멋지네요...
토시이에는 그래도 시세를 잘 파악하여 가문을 존속시킬 수는 있었습니다만 훗날 도요토미와 도쿠가와와의 관계 등 인간적으로는 고뇌가 참 많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토요토미 사후에, 자신의 위치에 걸맞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대망같은 책은 대일외교에 필독서다ㅡㅡ적의 마음을 읽어야지
토시이에의 아들이 갈등 했겠지 토시이에는 갈등 없었을텐데요 히데요리를 위해서 구심점이 되어 몸던졌을겁니다 그럼 이에야쓰는 힘들었죠 하필 히데요시 사후 토시이에도 오늘내일 할때라 이에야스가 운이 좋았죠 토시이에가 이에야쓰보다 실세였고 당시에 다이묘들이랑 더 관계가 좋아서 더 쎄다고 봐야됩니다 이에야쓰는 에도시대를 열었으니 당시나 지금이나 무조건 일본의 영웅으로 미화해줘야 하는 인물이라
세키가하라 전쟁도 히데요시 후계자가 너무 어려서 토요토미 가문을 이끌 구심점이 없던거 그리고 히데요시의 가신들간 분열이 제일큽니다 토요토미 직계 성인일족 한명만 있고 이끌었으면 이에야쓰가 그짓 못했을겁니다 이에야쓰는 오래살고 지위를 잘 유지해 찬탈 잘한거죠
마에다 토시이에 대납언 그 아들 마에다 토시나가 ㅋ 100만석 이상의 다이묘 이자 5로 대로 이자 ..정무수석 크윽 ..
아버지에 뒤를이어 토시나가는 도쿠가와 막부에 충성 하면서 자기 셰력을 계속 이어 나갈수 잇엇죠
도요토미시절에 이은 에도 막부까지 그 집안은 평안햇을거임
도쿠가와 삼대 드라마 보면 나옴 비중이 모리가문 만큼
댓글 하나하나 정성껏 답변해주셔서 너무 좋네요 영상도 재미지고 댓글로 궁금한 점들도 다 해결됬네요! 너무 재밌어요
댓글이 몇 개 안되서요.ㅋ 재미있게 봐주시니 기분 좋습니다 !!
시바타가 오다가문 최고 후다이 중신들 중 한 명이었을 당시, 히데요시는 겨우 노부나가의 말을 끌고 다니던 하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런 하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했으리라 봅니다. 그런 멘탈 블레이크가 그를 멸망하게 만든 진짜 이유라고 추측해요. 사람은 그래서 두뇌가 유연해야 생존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바타가 히데요시를 인정하지 못한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와 시바타 정말 남자네...담백하다
마에다가 죽기 전까지 도쿠가와도 눈치만 보고 조용히 있었다가 마에다가 죽은 후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개인적으로는 마에다가 친구 잘 둔 덕에 실력 이상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다님.. 프사가 정말 독특하네요.. 저는 눈썹 붙은 줄 알고 자꾸 손으로 차우게 되요. ㅋㅋㅋㅋ
@@samurairomance 저도 머리카락 붙은건줄 ㅋㅋㅋㅋ
@@samurairomance 저랑 같네요 ㅋㅋㅋㅋ 무슨 머리카락이 화면에 붙은 줄 알고 자꾸 손이 화면에 가네요 ㅋㅋㅋ 저번에도 그랬는데 또 계속 낚임 ㅋㅋ
1년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낚입니다...
"고우, 공주들의 전국"에서 시바타 가츠이에가 기타노쇼성에서 부하들에게 신나는 마지막 주연을 베푼후
오이치와 마주앉아 짧은 담소끝에 자결을 하지요
그장면과 더불어 부부의 사세구가 화면에 흐르구요
부하들은 여기저기 폭약을 설치하고 오이치의 시녀들은 자결을 하고 ㅠㅠ
성문을 사이에 두고 오이치와 아자이 세자매가 이별하는 장면은 몇번을 보아도 가슴이 에입니다
OST가 너무도 애절하지요
전 시바타를 연기한 배우 다이치 가스오가 마치 시바타 자체로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
시바타는 젊을땐 오다노부나가의 동생편에 써서 목숨을 걸더니만 의리와 뚝심은 있는데 시류에 꺾이는 유연함은 함께 존재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나이 먹으면 시류에 둔해지기 마련이지요. 요즘 저 스스로도 그런 부분이 느껴지다보니 시바타가 이해가 됩니다.
크으 낭만적이네요 남자답다
우리가 일본을 쪽바리하면서 무시하고 우리나라가 일찍 중국문물을 받아들여 일본보다 우수하다생각하는 경향이 많다.이건 학교교육도 한목했다.그러나 냉철하게 보면 일본은 15세기에 벌써 서구와 교역했고 조총등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조선시대때부터 일본은 우릴 앞서가기 시작했다고 보면될것이다.
공감입니다...
저 영화의 암살장면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의도는 검이 아니였군요
마에다는 시대조류에 잘 맞추어가는 인물,, 시바다는 강직한 인물,,
현 세태에도 시사 하는바가 많다.
강직하면 부러지죠... 살아남는게 강한 것이라면 마에다의 행동이 진리일 듯...
@@samurairomance 공감입니다...다만.......그래도 멋지네요...꼰대같지만....
시바타 가츠이에는 영화 기요스 회의에서 아쿠쇼 코지의 연기가 너무 뛰어나서 이름만 들어도 그 잔영이 남을만큼 강렬했습니다
저는 대망이나 풍림화산을 읽고 관심을 가진
전국시대 인데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그 전국시대의 경험이 후에 에도말기와 메이지유신 시기 사이에 영향을 미쳤을거라 저도 생각이 드네요.
메이지유신 뿐 만아니라, 2차대전, 그리고 현대 일본 사회까지도 그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에다 토시이에는 자기 이름도 보전하고 자기 사후에 마에다 가문도 대영주 가문으로 남았으니 전국시대 진정한 승자라고 할 만함. 이걸 보면 전국시대에 의리와 충성이란 대를 이어 미치는 건 아니라는 걸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한테 충성했을 뿐 마찬가지로 이에야스도 히데요시에게는 확실히 잘 했던 것이고 그가 죽은 다음 그 자식한테까지는 그럴 필요 없다는 것...
추가로 마에다 토시이에의 아내 마츠가 아들이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이에야스 편에 서는 것을 주저하는 데 대뜸 자기가 대세를 알고 이에야스한테 인질로 간 것은 여자지만 이런 불문율을 꿰뚫어 본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것도... 라이벌격인 삿사 나리마사는 히데요시와 사이가 안 좋았지
역사에 이프는 없지만 시바타 가츠이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압했었다면 임진왜란은 발생하지 않았을거구 태평양전쟁 도 일어나지 않았을까?ㅎ
8:52 전국시대 역사 소개하면 내가 그걸 왜 알아야하냐며 흥분하며 친일 운운하는 바보들이 많습니다
뭐..그런 바보들 보면 세상보는 것도 한쪽 눈 가리고 보는 듯합니다.
일본정부 싫어하지만 신경쓰덜 마시길 ....역사에 흥미로운점도있고 싨어하는면도 있는법.......님께서 진실한맘만 있으면 됨니다!! 개나 돼지쉐이들이 떠들어도...!!!
가츠이에! 사나이구만!
히데요시라는 드라마에선 그렇게 강하게 안나온것같아요 토시이에
언제 한번 왜성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세요
ㅎ
구체적으로 궁금하신 성이 있나요?
@@samurairomance 왜성의 건축 양식에 대한 것을 요청하신 것 같습니다. 왜성들이 산에 지을 때 구획 나누고 순차적으로 본청까지 올라오게끔 겹겹이 구조로 되어 있잖아요.
국가전략이란것은 분명 실리의 정치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무라이로망스님의 마지막 멘트는 극히 실리만 추구하신 말씀이네요. 한나라의 정책은 단순히 실리로만 결정되지않으며 사회의 역사적 환경에서 결정해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리적인 측면에서는 일본과 친하게지내고 경제 군사적으로 더 가까워져야 대륙세력에 함께 대항할수 있겠지만, 그동안의 여러정권들이 우리내부의 근본적인 문제는 팽개치고 실리만 추구하는척 했고 일본도 그런 우리정부를 갖고 놀면서 우리내부를 이간질하고 분열시키려 한것도 분명사실이죠.
한국과 일본이 허심탄회하게 서로 믿고 의지하는 진정한 이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열쇠는 한일모두에게 있으며, 특히 일본이 더 많이 해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역사의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들이 한국에대해 옛날의 식민지이며 자기들 밑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동등한 한국으로 우리를 대해주길 바랍니다.
한일협정이니 한일협의니 하는 종이쪼가리 뒤에 숨지말구요
산들바람님 말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식민지배도 플러스 유산과 마이너스 유산이 모두 존재합니다. 자존심 상할 문제지만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지요.
한일관계의 열쇠요? 저는 한일관계의 열쇠는 우리가 쥐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은 한국이 신뢰할만한 나라로 판단되고 안보 이해관계가 맞으면 알아서 협조합니다. 미일관계가, 일본 대만 관계가 그 증거이지요.
일본과 미국은 전쟁을 통해 수십만의 군인과 수십만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핵을 두 방이나 맞았고요. 우리가 일본과 무슨 전쟁이라도 목숨걸고 해서 나라를 빼았긴 것도 아니잖아요. 요즘 정치인즐이 이야기하는 "어떠한 전쟁보다도 평화가 낫다"는 명제를 이미 실천한 국가가 조선이지요.
이완용을 왜 욕하는지 모르겠어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했는데...
그런 미일관계 역시 실리와 안보라는 측면으로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강력한 동맹으로 거듭나며 국제사회 속의 리더로서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일찌기 근대화를 통해 세계의 무대로 진출한 나라들의 기본 사고와 대한민국같은 신생국과는 국가 기본 전략이 다릅니다. 일본하고 우리하고 동급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번에 이란에 나포된 선박 보고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우리가 호루무스 해협의 무역 루트를 지킬 힘이 있다고 보이나요? 미국 없으면 자원 줄 다 끊기고 손가락 빨다 죽을 운명입니다. 미국 일본과 관계를 망가트리면 대한민국은 중국의 속국으로 사회주의 국가화되어 소멸될 운명입니다.
저는 걱정이 많이됩니다. 이미 그렇개 되어가고 있어서 말이지요.
국민, 정치인, 국가 펀더맨탈... 선진국을 대상으로 싸움을 걸기에는 턱없는 역량입니다.
힘있으면 큰소리 칠 수 있고, 힘 없으면 기는 겁니다. 작은 조직에서든, 국가에서든, 국제관계든 불변의 진리이지요. 힘 없이 큰소리치다가 궁지애 몰린 것이 작금의 우리 상황이고요.
@@samurairomance 일본은 합방으로 지배했던 데에 대한 보상심리, 공산세력과 접하여 일선에서 막아주고 있는 한국에 대한 지원심리 등으로 80년대 이전만 해도 이심전심으로 한국을 많이 도왔습니다. 차관, 기술원조, 외교지원 등.. 90년대 들어와 YS이후 한일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이 반일을 정치에 활용한 바도 큽니다. 60년대 우리가 스스로를 엽전이라 자조하던 가난한 시절도 벗어나 이제는 일본과 어느정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국력으로 자라난 만큼 이웃 일본과 외교, 경제문제에서 손잡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 믿습니다. 절천지 원수 전쟁당사국인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와 독일도 구원을 털고 이젠 한울타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이고요. 사무라이 로망스님의 견해 적극 동감하며, 너무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잘 보고 있어 늘 감사합니다.
@@samurairomance 사무라이 로망스님 덕분에 유익한 내용 즐기고 있습니다. 한일관계라는 측면은 저와 다른 생각인것 같습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신뢰 '운운할 입장이 되지 못하다고 봅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언제 진심으로 행동한 적이 있었나요? 지들 유리할때만 협력이니 상부상조니 하면서 뒤통수 쳐왔지요. 진정한 한일 관계가 우리의 국력이 강해져야하고 일본의 진솔한 사과 와 재발방지 서약이 먼저 지요. 미국도 일본 뒤통수 쳐댔지요. 신뢰관계는 아니지요. 대만과 우리나라는 다른 입장입니다. 대만원주민 입장에서야 본토출신 중국인이나 일본이나 그놈이 그놈이죠, 무슨 특별한 신뢰관계가 있습니까? 단지 대만인들이 정신 못차리는 거죠. 어느나라가 아시아에서 제일먼저 대만과 단교하고 중공과 수교했습니까?
진솔, 진실... 공식 사과만 22번 했습니다. 하토야마는 무릎 꿇는 행동까지 보여줬지요. 220번을 해도 2200번을 해도 진심어린 사과하라는 말은 그치지 읺습니다. 반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일은 한국, 그리고 아이라니하개도 일본에도 밥줄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일관계가 좋아지면 이들은 직업을 잃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진심어린 사죄하라"는 이면에는 소위 반일 장사꾼들의 선동질이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 더러운 장사의 본질은 윤미향과 정의연의 실체를 통해 상당부분 대대적으로 오픈이 되었지요.
일제 36년을 통해 좋든 싫든 근대화의 초석이 닦였고, 조선에서 많은 것을 수탈했다고는 배웠어도 산업기반이 전무한 조선에 인프라를 까느라고 조선총독부는 단 한 해도 예산 적자를 면한 적이 없다는 것은 배운 적이 없지요. 전쟁을 위한 인프라든, 수탈을 위한 인프라든 경제지표가 이야기하는 조선식민지 경영은 일본입장에서도 잘못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일제 36년간 약 20만명의 조선인이 징용, 전쟁터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36년간 조선에는 식민지배를 위한 인프라가 깔리고 신분과 관계없이 교육기회도 생겨난 것이 사실입니다.
6.25 전쟁 3년 간, 북괴와 중공에 의해 남북한 합쳐 200만이 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북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과 만행의 증거는 차고도 넘치지요. 이들의 전쟁으로 전국토의 90%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역사적 사실만 놓고 보면 중공과 북한에 끊임없는 사죄요구와 반공 반중 교육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야 상식적으로 옳은 것이갰지요. 피해 규모로는 비교 자채가 안되니까요.
하지만, 학교교육 어디에서도 반중, 반공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게 이싱한 것 아닐까요.
이익을 보는 자들이 누구인지 자세히 보십시오. 그들이 범인입니다. 한국의 정치인, 시민단체, 일본의 일부 정치인, 언론사... 반일 장사의 뿌리는 양국에 걸쳐서 오랫 동안 만들어져 왔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며 반일 몰이 하다가 IMF 터지고 일본에 딸러 구걸하러 갔었지요. 현 정부에서 신닛테츠 자산 압류하고, 국가 주도 반일 몰이 하다가 일본이 강경 일변도로 나오니, 퇴로가 막힌 정부에서 돈 주는 척 하면 우리가 다시 챙겨주겠다고 뒷거래질 하다가 걸렸지요.쪽팔린 것은 국민의 몫입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일본이 진정어린 사과를 해야한다"고 정량적으로 판단할 수도 없는 고장난 라디오 같은 주장의 이면에 숨겨진 반일 장사꾼들의 매국질에 대한 본질을 보실 수 있게 되신다면 좋겠습니다.
@@samurairomance 사과를 했나요? 수상이 사과하면 그 다음주에 문부상이란 인간이 우린 사과할만한 짓 안했다 라고 하고 또 총무상이라는 놈이 사과부정하고 아버지가 한 사과에 자식놈이 부정하고 ,,, 매번 같은 방식아닌가요?
위안부 합의? 그 합의의 전제는 일본의 반성과 사과인데 언제 아베가 지 입으로 반성하는 뉘앙스라도 비쳤나요? 과연 사과는 하기는 했습니까?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을 위한 기회라는 것은 전형적인 일본의 물타기네요.. 인신매매당해 강제노동에 시달려도 먹여주고 재워 줬으니 대단한 시혜를 받은 건가요?
난 왜 카츠이에 하면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가 떠오르는 걸까요?
잠깐 부부였어서 그런거 아닐까요??
아내 '호슌인'과 잉꼬부부로도 유명하죠
마누라 잘 뒀다고 해야할 듯 요.....
이름이 마츠였던걸로 ㅎ
제 기억이 맞다면 측실도 안 두고 정실 사이에 자녀만 8명 넘게 있었던 것 같네요...
가츠이에.. ㅜ
토오시에 말년이 괜찮았구나.
이누와 사루
시바타 부인이 오다의 딸 아닌가 ??
그리구 그딸의 딸을 하시바가 델고살구,,
글구,그 딸도 아들과 함께 도꾸가와에 대항하다 누각에서 자결 한걸루 아는데,,
기막힌 운명의 대물림,,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お市)가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에게 정략결혼으로 시집을 갔고, 딸 세명과 아들 하나를 낳았죠. 아자이 토벌 중에 오이치와 딸들은 탈출 시켰고요. 오이치는 오다의 딸이 아니라 여동생.
병까기 시바타인디 ㅜㅜ
시바타 가츠이에는 원래 노부나가의 동생 오다노부유키의 가신이고
반란을 번번히 일으켰는데 나중에는 노부나가의 실력을 알아보고 노부나가를 주군으로 모십니다
노부유키는 끝까지 까불다가 할복으로 생을 마감하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