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쉽게 요약해주셨네요. 나올 사람 다 나온거 같아요. 쵸슈번은 폐번치현으로 지금의 야마구치현으로 아베총리의 선거구로 야마구치현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총리를 배출한 현으로 총 8명의 총리가 이곳 출신 입니다. 또한 메이지유신을 이끈 것으로 평가되는 요시다 쇼인과 초대총리 이토 히로부미도 이곳 출신입니다. 아마 바칸 전쟁으로 미운털이 박혀 출세에 지장을 받아서 오히려 개혁에 더 열심이지 않았나 하는 뒷얘기도 있긴 합니다.
료마가 갔던 신혼여행길 걸어본 기억이 납니다. 규슈올레 묘켄온천 코스죠. 뭐 사실 별거 없었어요. 시골 온천가의 산길이었는데 지금도 조용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더라구요. 소설가 양반이 너무 띄워 놓은 이미지로 역사에 남을 인물이 되었던 것인지. 잘 봤습니다. 좋은 이야기예요.
영상 감사합니다! 일본 역사에서 이름난 지사들은 대부분 '에이전트'인 경우가 많고, 그 뒤에는 거의 흑막이 있지요. 어찌 되었든 사카모토 료마가 당대의 로비스트(?)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가 근대로의 대 전환기에 보여준 비범한 모습에 주목해서 현대 일본인의 범본을 제시해낸 시바 료타로도 대단하고요.
우연히 영상을 접하고는 1회부터 정주행중입니다.. 일본 중세 역사의 뒷담화를 보는 느낌이라서 재미있게 보는 중입니다.. 제가 알고 있던 사카모토 료마는 하급무사 집안 출신이고 (양자로 가게 되면서 성씨가 사카모토로 바뀌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상급무사나 다이묘 세력들의 횡포를 견디면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에 반감이 생기게 된 것이고 이런 사상이 베어 있다보니 개방화를 주창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힘없는 백성들이 공산주의에 빠져 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 덕분에 일본인들에게는 추앙의 대상이 되고 일본 지폐에도 얼굴을 내 밀지만 오타쿠 기질의 일본인들이 만든 영웅일 뿐이고 우리에게는 일제강점기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일 뿐이지요 일본근대화 시점에 그가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이토 히로부미와 전범기업으로 불리는 일본 최대 기업인 미쯔비시의 창업자라고 하더군요.. 어쩌면 별거 아닌 인물이 시대를 잘 타고 나고 그 시대를 잘 이용했고 후세에 포장되면서 영웅이 된것이 아닌가 여겨 집니다
@@samurairomance 한국인으로써 반일감정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런 시각을 갖고 보는건 아닙니다.. 단순히 흥미로운 소재와 야사를 보는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서 반감보다는 오히려 흥미가 더 와 닿습니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모르는 내용들을 재미있게 풀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보는 분들이 재미있게 보실 겁니다
@@samurairomance 오 답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대 더 신기한건 시마즈의 저 단결력이 아닐지 시마즈 요시히로 등 유능한 4형제가 나면 보통 내분 나고 히데요시등 외부 정치가 들도 그걸 계속 조장 했음에도 끝까지 단결하고 그런 유능한 자들의 단결력이 메이지 유신 까지 이어져 현대 일본까지도 가고시마현 파벌이 하나의 축을 이룬다고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미스테리네요. 유능한 인재들을 시대에 변화에도 끊임없이 배출하고 키우고 발탁하고 심지어 단결시킨다. 그것도 수백년에 걸쳐? 이런 집단 정말 처음 봅니다.
막부측이 무능한 것은 아닙니다. 휼륭한 개혁 인물도 많았어요.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막부의 유능한 가신의 업적은 훗날에 전해지지 못했고, 조슈 사츠마가 유능한 것처럼 꾸며진 겁니다. 요시다 쇼인만 해도 당시 교과서를 통해 엄청난 천재로 포장되었죠. 최근에야 금박이 벗겨지고 있습니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번을 탈출하는 탈번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허락없이 번을 나갈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특히나 카시(下士)로서 신분이 낮은 료마였기에 그러한 조건은 더더욱 까다로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탈번에 성공하더라고 일단 고향으로도 못돌아가고, 쿄토나 에도의 번저(일종의 번 대사관 같은 곳)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말그대로 낭인신세가 되는 것이지요. 큰 일을 꾀하다가 발각되면 출신 번에도 책임을 묻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번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라도 탈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붙잡혀도.. 난 탈번 낭사다... 라고 하면 본인만 처벌 받고 끝낼 수 있었기에, 막부말기 존황양이 또는 개혁을 꿈꾸던 수 많은 청년들이 탈번해서 에도, 쿄토 등을 누비고 다녔죠. 직진 아니면 죽음밖에 없었던 빠꾸없는 인생. 평범한 현대인의 일상에서는 로망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네요.
안녕하세요 일본사에 관심이 많은 역사학도입니다. 덕분에 고쿠다카 와 개역에 대해 잘 알게되었습니다. 실은 공가와 무가에 대한 관계가 궁금하여 혹시 이것에 대해 영상을 제작해주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공가라 무엇이고 무가와 다른점이 무엇인지 언제 생성되었으며 무가와 관계는 어떤 관계인지 궁금합니다.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라는 드라마를 보며 공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나 도쿠가와 이에미츠 에게 벌벌 떨거나 소극적인 저항을 하는걸 보면서 뭐하는 애들인가 궁금해서 입니다. 언제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엉뚱한 댓글입니다. 츠키가타센조에서 비음 발음[쯕잉아타 센조]이 원어민으로 들립니다. 전문가? 히라카나 조차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말의 특징에 관심이 조금 있어 다른 지역에 들르면 귀를 쫑긋 세우곤 합니다.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빌려서 정독하고 있습니다. 이번편은 이해가 안되어서 연거푸 두 번을 보고 있습니다. 앞부분 지도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중국이나 유럽을 가면 사전 역사적 지식이 조금 있어 훨씬 자세히 볼 수 있는데 큐슈를 몇번이나 가봤지만 이런 사전지식이 없다보니 사진만 찍고 왔습니다. 386인 저는 배울 마음은 있어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배울 수 있는데 제 아래 세대는 사회 분위기 탓인지 터부시하고 있는게 안타깝습니다. 제대로 알고난 다음 터부시해도 될 텐데...
드러내지만 않을 뿐, 생활의 수 많은 취미가 일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에 관심 갖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지요. 실체없는 반일 속에 일본 관련학과 지원자가 줄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대한민국이 공산국가가 되어 강제로 일본공부를 금지시키지 않는 한, 문화, 사회, 기술, 음식 등 수 많은 분야의 일본 지식 소요는 있을 수 밖에 없지요. 좋든 싫든 근대화된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에 그 성장 뿌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이런 때 일수록, 일본 관련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애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것 입니다.
쿠로다 나가히로의 아들이 메이지유신 이후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쯤 되는 위치에 오른 걸 보면 유신측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맞는 것 같네요. 그런데 어떻게 후쿠오카번 관련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건지. 일본인들도 잘 모른다니 저처럼 띄엄띄엄 취미로 주워 들은 걸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좀 유치하게 들리실 수는 있으나,, 먼나라 이웃나라 정도로 시작하시면 어떨까 싶네요. 이해하기도 쉬울 것 같고요. 만화로 그려진 책이지만 괜히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 셀러가 아니겠죠. 일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막부말기 관련 내용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식민지로 전락했고,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이유를 탐구하는 과정이.. 재미있으면서도, 우리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거짓과 직면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에 괴롭기도 합니다. 진실과 거짓이 우리가 배워 온 것과 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거든요. 물론 이 단계로 가려면 일본어는 필수가 되겠습니다.
전부터 료마는 메신져 보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은 했습나다만 거의 그렇군요 삿초 동맹에 기여도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거고 가츠라가 편지에 료마보고 니가 보증하라고 썻다고 하니 메신저 보이 내지 실제 뛰어다닌 현장 중재인력 역할은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료마가 인기 스타가 된건 시바 센세 덕도 있지만 류우니 켄신 말대로 유신 지사들이 권력 잡은 후 눈애 띄게 망가져 버렸는대 권력 잡기 직전에 죽어버렸으니 거기서 다른 유신지사들에 대한 실망감이 그렇게 투영되었던 면도 있겠죠 거기다 구심점이 없던 토사 출신들이 삿초 한테 밀리면서 자꾸 띄운면도 있고
@@samurairomance 졸려서 댓글 덜 쓰고 달았는데 첨언하자면, 삿초 동맹은 삼국지에서 나오던 천하삼분지계처럼 공론화 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즉 누군가 혼자서의 독창적인 생각이라기보다 구체적인 안은 각기 다르더라도 도막하고 싶어하는 지사들에게 흔히 바라던 것이란 거죠. 막부에 맞서려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도자마 거대번이 조슈 사쓰마 밖에 없는데 다들 걔네 동맹맺게 하고 싶어서 안달이었을 것입니다. 시바가 료마에 대해 세일즈포인트로 삼은것은, 기존의 지사들이 자기네 다이묘에 기대어 그들을 설득하거나 암살로 협박해 도막을 하려 했다면 료마는 독자적이로 남의 번에다가 설득하러 다닌 것과 명색이 사무라이인 양반이 근대적인 자본가 상인들의 마인드로 그것도 총포를 매물로 정치가 상대하여 대놓고 딜을 건 것이라고 봅니다. 시마즈 큰형님이라 해도 타번의 다이묘일 뿐이고 경청은 하겠지만 도막은 실전이라 손해와 이득 그리고 변수들을 고려해서 안할 수도 있는데 료마가 딱 나타나서 그걸 메꿔주니까 동맹이 가능했던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쿠로다 나가히로는 막부를 무너트리고 싶어하면서 많이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막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치쿠젠 근왕당을 탄압하고, 삿쵸동맹을 이끌어 가던 가신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말이죠. 그런 와중에 똘똘한 료마라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를 통해 도막을 실행하고 싶었겠지요. 사이고에게는 나가히로가 은인이긴 하나 당연히 정치상황을 고려해서 삿쵸동맹을 판단했을 겁니다. 사츠마가 갑인데 쵸슈에게 먼저 동맹을 요청하는 형식론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진도가 안나갔을 때 나가히로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samurairomance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막말 유신을 일으킨 사람들은 다이묘가 아니었죠. 그들 밑에서 일하던 지사들이 한 것이죠. 저는 여기서 큰 의의가 있다고 보는데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덴노 쿠게 이런 고귀한 혈통이나 다이묘들의 윗대가리들이 한게 아니라 중간에서 주도적으로 일으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다이묘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갔다가는 자신들이 잃을게 너무나 많기에 주도적으로 하지 못했죠. 아랫것들이 자꾸 떠밀어서 마지못해 승인한 거. 그래서 유신 후 작위는 받았지만 직위는 못받아 메이지 정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강제은퇴 당했죠. 일본의 기업들은 회장직 오른건 그냥 가오 세워주려고 앉힌거지 실권은 사장과 중역이 챙긴다는데 막말 유신운동과 관련이 조금은 있을 것 같습니다.
나관중이 삼국지에서 관우를 당대 최고의 명장이자 의리의 사나이로 묘사한 덕분에 관우는 관제묘의 주인이자 중국의 신이 되었죠 료마가 관우 정도만큼 가공의 인물인지 잘 모르지만 이 영상에서 주장하는 것은 일개 탈번 사무라이가 아닌 번주 정도되는 인물의 정치적 영향력이 배후가 아닌가 하는 정황적 문제 제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황적 추론만으로 일본인 대다수의 료마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릴 구체성이 없다는 것이 함정이네요 ^^
어떤 책을 참고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역사 논픽션 책중에는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라며 기존 학설과 반대되거나 튀는 의견을 내는 책이 많습니다. 한국에도 그런 부류가 꽤 많지요. 어떻게 해석하건 자유겠지만, 사카모토 료마의 삿초동맹에 대한 기여는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사이고와 가쓰라등의 일기와 서신같은 1차사료의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견원지간 같았던 두 번이 오로지 료마때문에 동맹을 맺었던 것도 아닙니다. 시바 료타로도 분명히 밝혔지만 료마 이전에 많은 근왕파들이 두 진영의 동맹을 바래왔고, 두 진영역시 그 필요성을 절감했었죠. 료마는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일본 에서도 시바의 명성에 흠집을 내서 자기를 추켜 세우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의 연구와 소스 자체가 시바 료타로에 비할바가 못됩니다. 그리고 사마천을 평생에 걸쳐 존경했던 시바가 있지도 않은 사실을 부풀려 소설로 썼을리도 만무하구요.
역사소설은 사실을 기반으로 작가가 상정한 인물상으로 주인공을 그려 가는 것이지요. 저도 첫 일본역사와의 만남은, 요시카와 에이지의 대하소설 "쇼군"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어느 순간 부터 역사소설은 잘 읽지 않습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니까요. 메이지 시대 일반 대중에게 최초로 "사카모토 료마"의 존재가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1883년 코오치(高知) 지역신문에 저널리스트 "사카자키 시란(坂崎紫瀾)"의 역사소설 "칸케츠센리노 코마(汗血千里駒)"가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였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료마는 사이고 급 인물로 등극하게 되지요. 오료오와 료마가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을 떠났다는 것도 "사카자키 시란"이 두 사람의 여정을 "신혼여행"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료마라는 인물 자체를 낭만적인 인물로 각인시키게 된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은 역사소설 작가가 규정지은 소설 내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누가 썼던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입니다.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이 당연히 가미되어야 하는 장르이니까요. 료마의 업적을 부정하고자 하는 영상이 아닙니다. "료마"라는 장기알을 사용해 장기를 둔 사람들이 배후에 존재했었지만 이 내용은 "료마"의 절대적 인기에 가려져 잘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영향력 없는 인물이었다면 암살당했을 리도 만무하겠지요.
@@samurairomance 실제로 삿쵸동맹의 성사 주역은 따로 있고 료마라는 인물은 소설에 의한 허명이라 하시면서 업적을 부정하고자 하는 영상이 아니라는 부분은 모순 아닐까요? 사카모토 료마의 일본 역사에서의 의의는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같은게 아니라 삿쵸동맹과 대정봉환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입니다. 가쓰 가이슈는 생전에 삿쵸동맹과 대정봉환, 모두 사카모토 료마가 혼자서 한 일이다 라고 까지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당대의 메이지 유신 영걸들인 가쓰라나 사이고, 무쓰 미네미쓰등이 육성과 편지로 생생한 증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외의 증거자료역시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시바 료타로는 일본의 국사라 칭할 정도의 작가로 그가 역사소설을 쓸 때의 자료수집은 트럭 몇대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입니다. 역사소설이라고 역사적인 사건까지 픽션으로 가미할리는 없겠지요. 그것은 역사소설에서도 1차사료등 역사적인 증거가 불분명한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꿀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원균은 사실 유능한 장수였다' 라는 등. 원균이 무능하다는 역사적인 증거자료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증거를 기반으로 기존 학설을 부정하고 자기 나름대로 참신한 주장을 함으로써 세일즈를 하는 책이나 작가가 많습니다. 출판대국인 일본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 부분을 댓글로 적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삿쵸동맹의 주인공은 사이고 다카모리와 가쓰라 고고로 두 사람입니다. 이 두사람이 남긴 서간에서 사카모토 료마의 기여를 말하는 것 만큼 확실한 1차사료적 증거가 있을까요? 사실 사카모토가 삿쵸동맹의 기여자가 아니라는 것이야 말로 역사적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 영상의 취지를 잘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삿쵸동맹에 료마가 깊게 관여헌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뒤의 조정자와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료마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 한 것 입니다. 신혼여행 부분을 간과하시는 것 같은데, 여성팬들로부터의 낭만적 인물상의 료마에 대한 인기는 이 테마가 절대적입니다. 이 내용은 "료마가 오료와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료마가 오료와 떠난 이 여행은 일본최초의 신혼여행"으로 저자가 각색한 것에 불과합니다. 테라다야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오료를 자신의 부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워낙에 영웅담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역사적 배경때문인지, 전국시대 역사도 에도시대 군기물 소설에서 나온 이야기가 너무 많아 잘못된 사실로 정착한 경우가 많습니다. 포인트는 두가지 입니다. 1. 삿쵸동맹은 료마의 업적이지만, 그 뒷 배경을 보면 료마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료마 혼자 그 업적의 공을 가져가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2. 사용한 자료가 트럭 한 대 분이든, 비행기 한 대 분이든...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samurairomance 취지를 잘 이해해서 쓴 내용입니다. 누구도 삿쵸동맹을 료마 혼자서 한 일이라고 한적은 없습니다. 임진왜란을 이순신 장군 혼자서 막아낸 것이 아닌 듯이요. 하지만 가쓰 가이슈가 삿쵸동맹 대정봉환 료마 혼자서 한 일이다와 임진왜란에서의 승리는 이순신 혼자의 힘이다의 말은 역사적으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차이를 모르면서 역사를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신혼여행은 왜 거듭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역사소설도 그렇구요. 제 주장을 단지 픽션인 소설에 근거로 한 것이라 말하고 싶으신 모양인데. 제 주장은 명확히 1차사료를 근거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삿쵸동맹은 사카모토료마의 업적이다. 일본에 대해 조금만 관심있으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입니다. 님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라는 것이지요. 아무런 새로울 것 없는 너무 뻔 한 이야기입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츠마를 압박한 쿠로다 나가히로라는 인물이 있었고, 삿쵸동맹의 원저자로, 츠키가타 센죠 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카모토 료마의 업적은 알아도 그 배경 속에 이런 내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만든 영상입니다. 제 영상 대부분이 그런 테마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언급된 내용을 제가 반복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영상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2. 신혼여행 언급 님께서 자꾸 소설을 언급하기에, 소설이 사실을 포장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드는 것입니다. 료마에 대해서 바로 떠오르는 거품 내용이기도 하고, 료마가 인기를 얻어가는 과정에 한 역할 한 "소설" 테마이기도 하고요. 이 주제를 논함에 있어서 서로의 지식이 소설에 기반하는 오류는 있을 수 있습니다만(저 역시 마찬가지) 소설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어려워 집니다.
서재필은 철저한 친일파 였읍니다. 독립협회 독립신문 독립문 이중 어느 하나도 서재필이 직접한 것이 아닙니다. 독립문만 해도 이는 청일전쟁 승전 기념문입니다. 독립문이란 글씨는 당시 독립협회 회장이자 명필로 소문난 이완용의 작품이라는 것이 유력합니다. 독립협회는 시위군중을 견제하기 위한 어용단체로 고종의 지시에 따라 설립된 것이고요, 이 협회의 기관지로 독립신문인데 이에 서재필은 아직 미국에 있으면서 관망하고 있었읍니다. 예전 지인의 연락으로 귀국하여 뒤늦게 이 협회에 참여한 것입니다. 서재필은 조선의 독립은 일본의 공인데 조선인은 그 은공도 모른다며 욕을 하던 사람입니다.
항상 깊은 지식이 담긴 일본사를 보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이번주도 어김없이 귀한 자료 잘 보고갑니다. 늘 기다립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상식적으로 탈번낭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료마는 캐치프레이즈의 선점과 선언에 꽤 유능했던 것 같습니다. 걸출한 인물이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잘 보고 잘 듣고 있습니다.
좋은 인물평이네요. 저는 "모두가 료마에게 마음을 열 수 밖에 없었다"로 알려진 로마의 매력이 료마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테마에 대해서 원천봉쇄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말 쉽게 요약해주셨네요. 나올 사람 다 나온거 같아요. 쵸슈번은 폐번치현으로 지금의 야마구치현으로 아베총리의 선거구로 야마구치현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총리를 배출한 현으로 총 8명의 총리가 이곳 출신 입니다. 또한 메이지유신을 이끈 것으로 평가되는 요시다 쇼인과 초대총리 이토 히로부미도 이곳 출신입니다. 아마 바칸 전쟁으로 미운털이 박혀 출세에 지장을 받아서 오히려 개혁에 더 열심이지 않았나 하는 뒷얘기도 있긴 합니다.
하기(萩)에 한 번 간다간다하는데... 아직 못가봤어요..
@@samurairomance 근데 잘못가면 친일파라고...
@@퓨리-z9q 전 그냥 친일파라고 하고 다닙니다...ㅋ..
@@samurairomance 친일파 보다는 지일하자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친일파라는 단어가 주는 왜곡된 프레임을 빨리 깨야 하기 때문이지요. 극일, 지일.. 현재의 제 입장에서는 의미없는 구분이라서요.
ㅎㅎㅎㅎ 첫 투표부터 바라던 주제였습니다. 좋아요로 관심도를 '표명' 하였습니다.
마냥 재미있는 역사도 좋지만, 그런 재미있는 역사의 오류를 해부하는 다른 재미도 있네요, 시각도 더 비판적으로 개선하고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김사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하면 가차없이 비판해 주세요..
료마는 결국 머리에 칼을 맞고 죽었으니 뒤에 숨어서 조종하는게 현명하네요.
구조적인 면이나 정서,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인지 역사의 흐름이 일본과 우리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여기서 이런 선택을? 이 사람들이 그랬다고? 갑자기 왜? 이런 거요. 그래서 흥미롭구요.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 차이를 이해하면서 정치인들의 반일, 혐한 몰이에 흔들리지 않으면 좋겠네요.
유익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깊은 역사 이해를 바탕으로 하시는것 같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 부터 현대까지의 역사성 정보도 부탁 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관심있는 부분만 알고 관심없는 부분은 아예 모릅니다. 함께 공부해 나아가시죠 !!
료마가 갔던 신혼여행길 걸어본 기억이 납니다. 규슈올레 묘켄온천 코스죠. 뭐 사실 별거 없었어요. 시골 온천가의 산길이었는데 지금도 조용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더라구요.
소설가 양반이 너무 띄워 놓은 이미지로 역사에 남을 인물이 되었던 것인지. 잘 봤습니다. 좋은 이야기예요.
영상 감사합니다! 일본 역사에서 이름난 지사들은 대부분 '에이전트'인 경우가 많고, 그 뒤에는 거의 흑막이 있지요. 어찌 되었든 사카모토 료마가 당대의 로비스트(?)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가 근대로의 대 전환기에 보여준 비범한 모습에 주목해서 현대 일본인의 범본을 제시해낸 시바 료타로도 대단하고요.
현대 일본인의 범본제시라... 왠지 표현이 멋진데요. 훔쳐써야겠습니다.
사쓰마 조슈 대립 얘기가 나오면 나중에 일본제국 해군과 육군의 대립 얘기가 안나올 수가 없죠 ㅎㅎ
우연히 영상을 접하고는 1회부터 정주행중입니다.. 일본 중세 역사의 뒷담화를 보는 느낌이라서 재미있게 보는 중입니다.. 제가 알고 있던 사카모토 료마는 하급무사 집안 출신이고 (양자로 가게 되면서 성씨가 사카모토로 바뀌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상급무사나 다이묘 세력들의 횡포를 견디면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에 반감이 생기게 된 것이고 이런 사상이 베어 있다보니 개방화를 주창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힘없는 백성들이 공산주의에 빠져 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 덕분에 일본인들에게는 추앙의 대상이 되고 일본 지폐에도 얼굴을 내 밀지만 오타쿠 기질의 일본인들이 만든 영웅일 뿐이고 우리에게는 일제강점기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일 뿐이지요 일본근대화 시점에 그가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이토 히로부미와 전범기업으로 불리는 일본 최대 기업인 미쯔비시의 창업자라고 하더군요.. 어쩌면 별거 아닌 인물이 시대를 잘 타고 나고 그 시대를 잘 이용했고 후세에 포장되면서 영웅이 된것이 아닌가 여겨 집니다
보시다 보면 실망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제 영상은 가급적 한국인의 입장은 배제하는 형태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일본 문화를 일본인의 시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라서 일본에 감정이 좋지 않으신 분들은 영상 내용이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samurairomance 한국인으로써 반일감정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런 시각을 갖고 보는건 아닙니다.. 단순히 흥미로운 소재와 야사를 보는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서 반감보다는 오히려 흥미가 더 와 닿습니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모르는 내용들을 재미있게 풀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보는 분들이 재미있게 보실 겁니다
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냥 일본이 이런 나라구나.. 정도로 가볍게 봐 주세요. 프사는 고흐 인가요?
@@samurairomance 예 ^^ 자화상 이라는 작품입니다
료마전 드라마 보면서 사카모토 료마가 대단한 인물이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뒷배경에 이런 내용이 숨겨져있을 줄이야... 흥미롭네요
료마가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만, 거품이 좀 많이 낀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또 어떤 거품이 있는지 좀 더 찾아봐야 겠네요...
고급정보 항상 감사합니다.
정말 궁금한게 있는데 사진을보면 귀족들과 귀족 여성들은 왜 눈썹을 밀고 짙은 화장과 눈썹을 따로 그렸는지 고급정보 꼭 부탁합니다.
히키마유(引眉)라고 하는데요. 눈썹을 밀고 이마에 눈썹을 그리는 이유가 눈썹에서 들어나는 감정을 숨기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감정에 따라 눈썹이 움직이게 되잖아요. 이마에 그리면 안움직이니까. 혼네를 감추는 일본인들의 미의식이라고 하면 될라나요...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님 덕분에 잼나는 역사이야기 접해서 항상 즐겁습니다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 잘 봤습니다
하루 종일 보고 계신가보네요..ㅋ
110개가 넘는데...
@@samurairomance 이동중에 짬짬이 보는 중임다 ㅋㅋㅋㅋ 참근교대위주로다
료마 사진 보고 료마전 1화에서 열등감 폭발하던 야타로가 떠올라서 웃었습니다. 센조의 존재는 몰랐네요 새로운 것 배우고 갑니다
료마전 참 재미있었죠...
@@samurairomance 재미도 있었지만, 저에겐 일본 사극을 보는 계기가 된 드라마라 더 특별하네요 ㅎㅎ 두번째로 본 건 공명의 갈림길이었답니다.
도대체 시마즈 가문은 어찌 저리 유능한 사람만 나왔을 까요. 전국시대 부터 시마즈에 무능한 자는 없다 라 했죠.
바다를 끼고 해외문화를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환경. 그리고 비교적 일찍 시작한 번 재정개혁, 다양한 인재등용과 지도자의 깨어있는 철학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런지요...
@@samurairomance 오 답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대 더 신기한건 시마즈의 저 단결력이 아닐지 시마즈 요시히로 등 유능한 4형제가 나면 보통 내분 나고 히데요시등 외부 정치가 들도 그걸 계속 조장 했음에도 끝까지 단결하고 그런 유능한 자들의 단결력이 메이지 유신 까지 이어져 현대 일본까지도 가고시마현 파벌이 하나의 축을 이룬다고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미스테리네요.
유능한 인재들을 시대에 변화에도 끊임없이 배출하고 키우고 발탁하고 심지어 단결시킨다. 그것도 수백년에 걸쳐?
이런 집단 정말 처음 봅니다.
막부측이 무능한 것은 아닙니다. 휼륭한 개혁 인물도 많았어요.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막부의 유능한 가신의 업적은 훗날에 전해지지 못했고, 조슈 사츠마가 유능한 것처럼 꾸며진 겁니다. 요시다 쇼인만 해도 당시 교과서를 통해 엄청난 천재로 포장되었죠. 최근에야 금박이 벗겨지고 있습니다.
료마는 장남이 아니라 집떠나는 게 부담이 덜 했을까요 . 여기저기
다니는걸 좋아하는 성향 인 듯
보였습니다 . 참 재미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번을 탈출하는 탈번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허락없이 번을 나갈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특히나 카시(下士)로서 신분이 낮은 료마였기에 그러한 조건은 더더욱 까다로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탈번에 성공하더라고 일단 고향으로도 못돌아가고, 쿄토나 에도의 번저(일종의 번 대사관 같은 곳)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말그대로 낭인신세가 되는 것이지요.
큰 일을 꾀하다가 발각되면 출신 번에도 책임을 묻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번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라도 탈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붙잡혀도.. 난 탈번 낭사다... 라고 하면 본인만 처벌 받고 끝낼 수 있었기에, 막부말기 존황양이 또는 개혁을 꿈꾸던 수 많은 청년들이 탈번해서 에도, 쿄토 등을 누비고 다녔죠.
직진 아니면 죽음밖에 없었던 빠꾸없는 인생.
평범한 현대인의 일상에서는 로망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네요.
네 . 참 엄격한 시대 였네요 . 그런것 들이 사무라이 정신의 한 부분 이었을까요 ? 친절한 설명 감사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일본사에 관심이 많은 역사학도입니다. 덕분에 고쿠다카 와 개역에 대해 잘 알게되었습니다. 실은 공가와 무가에 대한 관계가 궁금하여 혹시 이것에 대해 영상을 제작해주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공가라 무엇이고 무가와 다른점이 무엇인지 언제 생성되었으며 무가와 관계는 어떤 관계인지 궁금합니다.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라는 드라마를 보며 공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나 도쿠가와 이에미츠 에게 벌벌 떨거나 소극적인 저항을 하는걸 보면서 뭐하는 애들인가 궁금해서 입니다. 언제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한번 만들어 볼게요 !!
명치유신 시대의 저의 most favorite figure. 실상을 알고나니 조금 그랬지만, 유학시절에 료오마를 좋아하는 2명의 일본 친구들과 사귀게되는 계기가 되었지요. 의외로 많은 일본인들이 역사에 관심이 없었지만 ^^
시각을 달리해서 본 것이고, 료마의 업적에 거품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업적이 대단하다는 사실이 바뀔 것은 없다고 봅니다.
일본어발음이 좋으시네요...탁음이...대학교때 들었던 일본어 교수님 같아요 ㅋ
발음 엉망이라는 댓글만 주구장창 달리더니... 기쁩니다. ㅠㅠ
사무라이 先生
수고많아요. 사카모토 료마 입니까 아니면 료바 입니까 ? 예전에 일본 지역 있을때 일본 지인은 료바 라고 발음 하고 어느TV는 료마 라고 발음하던데 어느것입니까 ? 이것도 간사이 하고 간또우 하고 발음 차이가 있나요 ? 선세이 오네가이 시마스
료오바라는 발음은 솔직히 한 번도 못들어 봤네요. 근데 일본 지인분께서 그리 발음하셨다고 하니... 제가 모르는 걸까요. 제가 아는 일본 분들은 료오바. 라고 하는 분은 못봤습니다만...
사카모토 료마를 일본 아줌마들도 잘 알든데 인기가 있는거 같습니다. 어쩐지 역할이 극적이라고 느껴지던데 배후배경을 들으니 소설가의 각색이 개입되어 미화되었다고 보여지는군요..
영상제목의 삿쵸동맹 한자가 잘못된거 같습니다. 사츠마로 되어있네요. 영상은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혀 몰랐네요. 수정했습니다.
엉뚱한 댓글입니다.
츠키가타센조에서 비음 발음[쯕잉아타 센조]이 원어민으로 들립니다.
전문가? 히라카나 조차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말의 특징에 관심이 조금 있어 다른 지역에 들르면 귀를 쫑긋 세우곤 합니다.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빌려서 정독하고 있습니다. 이번편은 이해가 안되어서 연거푸 두 번을 보고 있습니다.
앞부분 지도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중국이나 유럽을 가면 사전 역사적 지식이 조금 있어 훨씬 자세히 볼 수 있는데
큐슈를 몇번이나 가봤지만 이런 사전지식이 없다보니 사진만 찍고 왔습니다.
386인 저는 배울 마음은 있어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배울 수 있는데
제 아래 세대는 사회 분위기 탓인지 터부시하고 있는게 안타깝습니다. 제대로 알고난 다음 터부시해도 될 텐데...
드러내지만 않을 뿐, 생활의 수 많은 취미가 일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에 관심 갖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지요.
실체없는 반일 속에 일본 관련학과 지원자가 줄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대한민국이 공산국가가 되어 강제로 일본공부를 금지시키지 않는 한, 문화, 사회, 기술, 음식 등 수 많은 분야의 일본 지식 소요는 있을 수 밖에 없지요.
좋든 싫든 근대화된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에 그 성장 뿌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이런 때 일수록, 일본 관련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애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것 입니다.
쿠로다 나가히로의 아들이 메이지유신 이후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쯤 되는 위치에 오른 걸 보면 유신측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맞는 것 같네요. 그런데 어떻게 후쿠오카번 관련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건지. 일본인들도 잘 모른다니 저처럼 띄엄띄엄 취미로 주워 들은 걸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래도 사카모도 료오마와 이시다 미쓰나리는 저의 two favorite historic figures in Japan 입니다 ^^
어쨌든 매력 만점의 인물들이지요. 여담입니다만, 이시다 미츠나리는 복원 얼굴 형상이 못생겼더라고요. 제 영상 중, 유골발굴 시리즈에 이시다 미츠나리 유골 이야기가 나오니 참고해 보세요.
@@samurairomance 네.
@@samurairomance 초상화만 봐도 간사하게 생기긴 했어요 ㅋㅋ 저도 이시다 좋아하지만
혹시 일본 역사 전체적으로 큰 그림 그릴수 있는 역사책 추천해주실수 있나요??^^
글쎄요. 좀 유치하게 들리실 수는 있으나,, 먼나라 이웃나라 정도로 시작하시면 어떨까 싶네요. 이해하기도 쉬울 것 같고요. 만화로 그려진 책이지만 괜히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 셀러가 아니겠죠.
일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막부말기 관련 내용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식민지로 전락했고,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이유를 탐구하는 과정이.. 재미있으면서도, 우리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거짓과 직면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에 괴롭기도 합니다.
진실과 거짓이 우리가 배워 온 것과 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거든요.
물론 이 단계로 가려면 일본어는 필수가 되겠습니다.
엄밀히 말해 사쓰마 29대 번주는 히사미츠의 아들인 시마즈 타다요시(島津忠義)이고 히사미츠는 그 후견인 내지 국부로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압니다.
헐 몰랐던 사실이네요 ^_^ 대박!!
전부터 료마는 메신져 보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은 했습나다만 거의 그렇군요
삿초 동맹에 기여도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거고
가츠라가 편지에 료마보고 니가 보증하라고 썻다고 하니 메신저 보이 내지 실제 뛰어다닌 현장 중재인력 역할은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료마가 인기 스타가 된건 시바 센세 덕도 있지만
류우니 켄신 말대로 유신 지사들이 권력 잡은 후 눈애 띄게 망가져 버렸는대 권력 잡기 직전에 죽어버렸으니 거기서 다른 유신지사들에 대한 실망감이 그렇게 투영되었던 면도 있겠죠
거기다 구심점이 없던 토사 출신들이 삿초 한테 밀리면서 자꾸 띄운면도 있고
몰랐던 시각이네요. 다른 유신지사들에 대한 실망감이 어떤 의미일까요. 부연설명 부탁이요.
@@samurairomance 뭐 뇌물에 권력욕에 현실정치에서 보여준 능력부족등등 아니겠습니까
조슈파들은 뇌물문제 많이 일으켰으니
@@에엒따-s3c 쵸슈파가 공가와 결탁했던 것이 뇌물하고도 연관이 있겠군요...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오
근데 시바 료타로는 역사를 확 바꿔가면서까지 왜곡하는 사람은 아닌 걸로 알려졌기 때문에 약간의 있어도 온전히 료마를 사기꾼으로만 모는건 부당할지도 모릅니다.
사기꾼으로 몰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히 격동기 역사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니까요. 다만 삿쵸동맹 케이스에서 알 수 았듯이 시바에 의해서 거품이 낀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
@@samurairomance 졸려서 댓글 덜 쓰고 달았는데 첨언하자면, 삿초 동맹은 삼국지에서 나오던 천하삼분지계처럼 공론화 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즉 누군가 혼자서의 독창적인 생각이라기보다 구체적인 안은 각기 다르더라도 도막하고 싶어하는 지사들에게 흔히 바라던 것이란 거죠. 막부에 맞서려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도자마 거대번이 조슈 사쓰마 밖에 없는데 다들 걔네 동맹맺게 하고 싶어서 안달이었을 것입니다.
시바가 료마에 대해 세일즈포인트로 삼은것은, 기존의 지사들이 자기네 다이묘에 기대어 그들을 설득하거나 암살로 협박해 도막을 하려 했다면 료마는 독자적이로 남의 번에다가 설득하러 다닌 것과 명색이 사무라이인 양반이 근대적인 자본가 상인들의 마인드로 그것도 총포를 매물로 정치가 상대하여 대놓고 딜을 건 것이라고 봅니다.
시마즈 큰형님이라 해도 타번의 다이묘일 뿐이고 경청은 하겠지만 도막은 실전이라 손해와 이득 그리고 변수들을 고려해서 안할 수도 있는데 료마가 딱 나타나서 그걸 메꿔주니까 동맹이 가능했던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쿠로다 나가히로는 막부를 무너트리고 싶어하면서 많이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막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치쿠젠 근왕당을 탄압하고, 삿쵸동맹을 이끌어 가던 가신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말이죠. 그런 와중에 똘똘한 료마라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를 통해 도막을 실행하고 싶었겠지요. 사이고에게는 나가히로가 은인이긴 하나 당연히 정치상황을 고려해서 삿쵸동맹을 판단했을 겁니다. 사츠마가 갑인데 쵸슈에게 먼저 동맹을 요청하는 형식론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진도가 안나갔을 때 나가히로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samurairomance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막말 유신을 일으킨 사람들은 다이묘가 아니었죠. 그들 밑에서 일하던 지사들이 한 것이죠.
저는 여기서 큰 의의가 있다고 보는데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덴노 쿠게 이런 고귀한 혈통이나 다이묘들의 윗대가리들이 한게 아니라 중간에서 주도적으로 일으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다이묘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갔다가는 자신들이 잃을게 너무나 많기에 주도적으로 하지 못했죠. 아랫것들이 자꾸 떠밀어서 마지못해 승인한 거. 그래서 유신 후 작위는 받았지만 직위는 못받아 메이지 정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강제은퇴 당했죠.
일본의 기업들은 회장직 오른건 그냥 가오 세워주려고 앉힌거지 실권은 사장과 중역이 챙긴다는데 막말 유신운동과 관련이 조금은 있을 것 같습니다.
큐슈에 우레시노 온천갔다가 그동네에 씨볼트라는 의사가 발견한 온천지대라는 말에 씨볼트가 누구임?
했는데 여기;서도 나오네요 ㅎㅎㅎㅎ
발음이 좀 그렇죠.. 이런 씨볼..트
료마가 거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흑막이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되네요.
오래된 영상이라... 최근에 거품 더 꺼졌습니다.
진짜 이른 료마의 죽음이 신화가 되었지요. 장수하면 다 꼰대로 취급받는 것이 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듬. 역사는 그냥 픽션이다. 한 편의 장편소설이다. 이럴 때가 많음
영웅은 오래살면 안됨 "~~~ 민폐임 ♥
잘 보고 갑니다. 일본사에 조예가 깊으신듯? ^^:;
그냥 관심가진지 오래되다보니 그런것 뿐이죠...
사카모토료마는 바지사장이죠 탈번하급무사가 무슨 권력과 돈이있어서 군함도 서양신식무기를 수입합니까 료마를앞에 내세운건 토마스글로버라는 스코틀랜드계영국인 무기상입니다 이사람 검색해보면아시겠지만 프리메이슨입니다 료마앞에내새워서 삿쵸동맹에는 영국무기상 막부에는 프랑스계무기상들붙어서 돈놀이 한겁니다
원래 이름이 대놓고 공개되며 유명해지는 인물들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바지사장이란걸 반증하는거죠ㅎㅎ 정치가 돈과 후원세력에 따라 움직이는건 어쩔수없는 섭리라ㅠㅠ
시바 료타로 선생 소설이 엄청 재밌기는 한데 일본 사람들이 그 소설을 실제 역사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문제가 있죠. ㅎㅎㅎ
그쵸. 영화, 드라마, 소설... 그 재미에 빠져들다 보면 현실감각을 잃게되는 현상이 발생하곤 하지요.
만들어진 영웅, 소설(픽션)과 소설가의 힘
삼국지랑 비슷하군
특정인물 능력 몰아주기
나관중이 삼국지에서 관우를 당대 최고의 명장이자 의리의 사나이로 묘사한 덕분에
관우는 관제묘의 주인이자 중국의 신이 되었죠
료마가 관우 정도만큼 가공의 인물인지 잘 모르지만 이 영상에서 주장하는 것은
일개 탈번 사무라이가 아닌 번주 정도되는 인물의 정치적 영향력이 배후가 아닌가 하는 정황적 문제 제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황적 추론만으로 일본인 대다수의 료마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릴 구체성이 없다는 것이 함정이네요 ^^
료마 이야기의 허구는 NHK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삿쵸동맹 당일 료마가 현장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알마 전 방송되었죠. 이 영상이 만들어진지 좀 된거라 그 사이 내용이 반영이 안되어 있는데, 료마의 활약상은 좀 다른 면에 있었더라도요.
갑자기 쇼군 토탈워가 하고 싶어지는군요.
신장의야망에 시리즈에 그렇게 열광했었는데... 어린시절 신장의야망을 하다가 때 어느덧 아침을 맞이하던 경험들은 추억이 되고 말았네요. ㅋ
컨텐츠에 비해 구독자수가 너무 적은 것 같아요.
좋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컨텐츠가 대중적이지 못한 것도 이유겠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은혼 때매 알개된 인물이라....
내가 알고 있는 이미지는 맨날 아하하핫하면서 웃는 얼간이의 이미지뿐....
나도 튀지말아야지 튀면 죽는거야
숨죽이고 살자 ~~~
가늘고 오 ~~~~래
냉면 가닥처럼 ~~~~~~~~~~~~♥
저도 그렇게 살고 싶은 1인입니다. !! 냉면 인생 화이팅 !
히사미쓰는 나리아키라 동생이지 번주가 아님 자슥후견인임
역사를 잘못알고 있엏네요 이런종류의 엉상 많이 올려주세요
넵. 김사합니다.
행동가 료마가 거의 목숨을 걸고 리스크를 걸었으니 이런 명성을 얻은게 아닌지..? ㅎㅎ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일뿐이니깐요.
맞습니다. 료마가 모든 공을 가져간 느낌이라서.. 변론을 좀 한거죠.ㅋ
료마는 30살초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나이에 저정도의 일을 해냈다는 자체만 봐도 대단한 인물인듯, 다만 그 이상의 평가에 있어 조금 따져봐야하는 구석은 있어 보입니다.
어떤 책을 참고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역사 논픽션 책중에는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라며 기존 학설과 반대되거나 튀는 의견을 내는 책이 많습니다. 한국에도 그런 부류가 꽤 많지요. 어떻게 해석하건 자유겠지만, 사카모토 료마의 삿초동맹에 대한 기여는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사이고와 가쓰라등의 일기와 서신같은 1차사료의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견원지간 같았던 두 번이 오로지 료마때문에 동맹을 맺었던 것도 아닙니다. 시바 료타로도 분명히 밝혔지만 료마 이전에 많은 근왕파들이 두 진영의 동맹을 바래왔고, 두 진영역시 그 필요성을 절감했었죠. 료마는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일본 에서도 시바의 명성에 흠집을 내서 자기를 추켜 세우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의 연구와 소스 자체가 시바 료타로에 비할바가 못됩니다. 그리고 사마천을 평생에 걸쳐 존경했던 시바가 있지도 않은 사실을 부풀려 소설로 썼을리도 만무하구요.
역사소설은 사실을 기반으로 작가가 상정한 인물상으로 주인공을 그려 가는 것이지요. 저도 첫 일본역사와의 만남은, 요시카와 에이지의 대하소설 "쇼군"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어느 순간 부터 역사소설은 잘 읽지 않습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니까요.
메이지 시대 일반 대중에게 최초로 "사카모토 료마"의 존재가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1883년 코오치(高知) 지역신문에 저널리스트 "사카자키 시란(坂崎紫瀾)"의 역사소설 "칸케츠센리노 코마(汗血千里駒)"가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였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료마는 사이고 급 인물로 등극하게 되지요.
오료오와 료마가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을 떠났다는 것도 "사카자키 시란"이 두 사람의 여정을 "신혼여행"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료마라는 인물 자체를 낭만적인 인물로 각인시키게 된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은 역사소설 작가가 규정지은 소설 내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누가 썼던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입니다.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이 당연히 가미되어야 하는 장르이니까요.
료마의 업적을 부정하고자 하는 영상이 아닙니다. "료마"라는 장기알을 사용해 장기를 둔 사람들이 배후에 존재했었지만 이 내용은 "료마"의 절대적 인기에 가려져 잘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영향력 없는 인물이었다면 암살당했을 리도 만무하겠지요.
@@samurairomance 실제로 삿쵸동맹의 성사 주역은 따로 있고 료마라는 인물은 소설에 의한 허명이라 하시면서 업적을 부정하고자 하는 영상이 아니라는 부분은 모순 아닐까요? 사카모토 료마의 일본 역사에서의 의의는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같은게 아니라 삿쵸동맹과 대정봉환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입니다. 가쓰 가이슈는 생전에 삿쵸동맹과 대정봉환, 모두 사카모토 료마가 혼자서 한 일이다 라고 까지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당대의 메이지 유신 영걸들인 가쓰라나 사이고, 무쓰 미네미쓰등이 육성과 편지로 생생한 증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외의 증거자료역시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시바 료타로는 일본의 국사라 칭할 정도의 작가로 그가 역사소설을 쓸 때의 자료수집은 트럭 몇대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입니다. 역사소설이라고 역사적인 사건까지 픽션으로 가미할리는 없겠지요. 그것은 역사소설에서도 1차사료등 역사적인 증거가 불분명한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꿀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원균은 사실 유능한 장수였다' 라는 등. 원균이 무능하다는 역사적인 증거자료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증거를 기반으로 기존 학설을 부정하고 자기 나름대로 참신한 주장을 함으로써 세일즈를 하는 책이나 작가가 많습니다. 출판대국인 일본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 부분을 댓글로 적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삿쵸동맹의 주인공은 사이고 다카모리와 가쓰라 고고로 두 사람입니다. 이 두사람이 남긴 서간에서 사카모토 료마의 기여를 말하는 것 만큼 확실한 1차사료적 증거가 있을까요? 사실 사카모토가 삿쵸동맹의 기여자가 아니라는 것이야 말로 역사적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 영상의 취지를 잘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삿쵸동맹에 료마가 깊게 관여헌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뒤의 조정자와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료마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 한 것 입니다.
신혼여행 부분을 간과하시는 것 같은데, 여성팬들로부터의 낭만적 인물상의 료마에 대한 인기는 이 테마가 절대적입니다.
이 내용은 "료마가 오료와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료마가 오료와 떠난 이 여행은 일본최초의 신혼여행"으로 저자가 각색한 것에 불과합니다. 테라다야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오료를 자신의 부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워낙에 영웅담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역사적 배경때문인지, 전국시대 역사도 에도시대 군기물 소설에서 나온 이야기가 너무 많아 잘못된 사실로 정착한 경우가 많습니다.
포인트는 두가지 입니다.
1. 삿쵸동맹은 료마의 업적이지만, 그 뒷 배경을 보면 료마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료마 혼자 그 업적의 공을 가져가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2. 사용한 자료가 트럭 한 대 분이든, 비행기 한 대 분이든...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samurairomance 취지를 잘 이해해서 쓴 내용입니다. 누구도 삿쵸동맹을 료마 혼자서 한 일이라고 한적은 없습니다. 임진왜란을 이순신 장군 혼자서 막아낸 것이 아닌 듯이요. 하지만 가쓰 가이슈가 삿쵸동맹 대정봉환 료마 혼자서 한 일이다와 임진왜란에서의 승리는 이순신 혼자의 힘이다의 말은 역사적으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차이를 모르면서 역사를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신혼여행은 왜 거듭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역사소설도 그렇구요. 제 주장을 단지 픽션인 소설에 근거로 한 것이라 말하고 싶으신 모양인데. 제 주장은 명확히 1차사료를 근거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삿쵸동맹은 사카모토료마의 업적이다.
일본에 대해 조금만 관심있으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입니다. 님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라는 것이지요. 아무런 새로울 것 없는 너무 뻔 한 이야기입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츠마를 압박한 쿠로다 나가히로라는 인물이 있었고, 삿쵸동맹의 원저자로, 츠키가타 센죠 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카모토 료마의 업적은 알아도 그 배경 속에 이런 내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만든 영상입니다.
제 영상 대부분이 그런 테마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언급된 내용을 제가 반복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영상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2. 신혼여행 언급
님께서 자꾸 소설을 언급하기에, 소설이 사실을 포장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드는 것입니다. 료마에 대해서 바로 떠오르는 거품 내용이기도 하고, 료마가 인기를 얻어가는 과정에 한 역할 한 "소설" 테마이기도 하고요. 이 주제를 논함에 있어서 서로의 지식이 소설에 기반하는 오류는 있을 수 있습니다만(저 역시 마찬가지) 소설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어려워 집니다.
이를테면 불편한 진실이네요
료마 팬들이 보면 좀 별로겠죠..
역시, 역사에서 뽕을 제거하면 참역사가 나옵니다.
료마는 말전하는 심부름꾼이였음 단지 목숨을 걸어야 할수있는 말을 한거지
그래도.. 지금 일본의 해군 시초를...사이코 타카모리도 너무 과장됨...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말도 안되는 역할로.. 서재필을 소재로 드라마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안중근 이야기는.그만.. 아들세키가 다 말아 먹음..
서재필은 철저한 친일파 였읍니다. 독립협회 독립신문 독립문 이중 어느 하나도 서재필이 직접한 것이 아닙니다. 독립문만 해도 이는 청일전쟁 승전 기념문입니다. 독립문이란 글씨는 당시 독립협회 회장이자 명필로 소문난 이완용의 작품이라는 것이 유력합니다. 독립협회는 시위군중을 견제하기 위한 어용단체로 고종의 지시에 따라 설립된 것이고요, 이 협회의 기관지로 독립신문인데 이에 서재필은 아직 미국에 있으면서 관망하고 있었읍니다. 예전 지인의 연락으로 귀국하여 뒤늦게 이 협회에 참여한 것입니다. 서재필은 조선의 독립은 일본의 공인데 조선인은 그 은공도 모른다며 욕을 하던 사람입니다.
민비만큼 엄청 미화
료마는 거품이죠 ㅋㅋㅋ
료마가 없었다면 일본은ㅋㅋ..그것은 마치 전국시대때 오다 노부나가가 넚었으면이나 마찮가지 소리?!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