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고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는듯하여 미약하나마 덧붙이고자 합니다. 칸트 철학의 일본식 용어를 100년 전 우리나라의 철학자들이 수용한 것은 일본이 동양에서 최초로 번역했기도 했지만,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어려운 한자 용어라도 이해가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90년대 초반까지 신문에서도 한자를 섞어썼으니까요. 학술 서적들도 당연하다는듯이 한자를 썼고요. 그런데 이제는 어려운 학술 서적들도 순 한글로 쓰여집니다. 그래서 말씀하신대로 한글로는 같은 통각이지만 서로 다른 뜻인 痛覺과 統覺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자로 쓰여 있다면 대충 뜻을 알 수 있는데 한글로 적혀 있으니, 아무리 괄호치고 한자나 원래의 단어를 적어 넣는다고 해도, 개념을 직관적으로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제 다시 한자를 부활시킬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학술 개념을 수입하던 100년 전의 한국어와 지금의 한국어는 다른 말이 되었고, 일본식 학술 용어들도 업데이트 되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사실 심각한 문제인데 학술 용어 뿐만 아니라 어려운 한자로 되어있는 법률용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법률 용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없다보니, 소위 법률 전문가들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권위를 부여받고 폐쇄적인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은 라틴어로 된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쉬운 독일어로 많이 바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어의 폐쇄성은 사회적 폐쇄성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개념들로 이루어진 언어로는 고도의 사유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칸트가 나오기 전 18세기 독일 계몽주의자들은 한 세기 동안 '언어회(Sprachgesellschaft)라는 하는 것을 만들어서, 독일어를 학술어에 적합하도록 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라이프니츠 이후 칸트가 나오기까지 독일에 한 세기 동안 저명한 철학자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칸트를 통해 독일어가 학술어로 업데이트 된 이후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철학은 독일인들의 것이었습니다. 이제 바뀐 한국어에 맞게 언어가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국어로 고도의 사유를 하지못하는 지금의 한국어로는 인문학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내용없는' 좋은 말 경연대회'나 '알맹이 없는 교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그냥 철학적으로 좋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과학혁명 이후 위기에 몰린 철학적 사유를 순수 이성 비판으로 해결하려했던 것이 그 좋은 예일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며 좋은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강의 찾아다니며 잘 배웁니다 들을 때는 모찌떡처럼 말랑말랑 부드러웠던 단어들이 강의를 떠나 저한테 오면 금방 굳어져 버려 돌덩이가 되어버리는 King Midas의 Golden touch 기적 현상이 일어납니다. 아, 그래서 King Midas 욕심은 내려놓고 늘 가난 든 어휘들의 허기는 매회 강의 들을 때마다 단어 하나만이라도 건질 수 있는 행운을 바라며 열심히 찾아옵니다. 손끝으로 스크린을 톡톡 치면 와르르 쏟아지는 glittering gemstones 같은 언어들의 황홀함 철학의 낱말들이 이렇게 황홀할 수 있다니 코디정님 참 대단하신 실력입니다. 언제나 좋은 강의지만 특히 이번 강의에 속이 뻥 뚫리는 듯 명쾌하신 열강 큰 박수 보냅니다. 여기는 저물녘 해가 자박자박 노을을 밟고 고개를 넘어갑니다 아마 서울 아침을 찾아 가나 봅니다 오늘 하루도 멋진 하루 맞으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Thx.
네. 바꾸지 못하고 바꿀 수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난해한 지식에 좌절한 분들에게 위로를 주고, 더 쉽게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알맞은 언어를 찾아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하는 정명사상을 그저 제 인생에서 실천해 보는 정도의 사소한 의미만 있을 뿐입니다. 저의 이런 시도가 불필요하신 분들도 있겠고, 그런 분들의 언어세계를 존중합니다. 각자의 인생을 일부로 교차시킬 필요가 없으니, 서로 다른 평화를 누리면 되겠지요.
정말 고마운 생각과 고마운 작업을 계획하고 계시는군요! 저는 이제까지 그런줄도 모르고 ㆍㆍ 철학은 어려운 것 ㆍㆍ 철학은 난해한 것 철학은 우리의 삶하고 동떨어진 고상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거 라고만 생각 했었는 데 ㆍㆍ 말씀을 듣고 보니 ㆍㆍㆍ 이제 무슨 말씀인지를 알것 같네요! 그런데 일반인들이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철학 뿐만이 아니라 ㆍㆍ 법학도 그렇고 ㆍㆍ공학이나 과학과목에서의 용어도 ㆍㆍㆍ 우리 일상생활의 용어들과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일본 용어들 또는 구 한자어들이 너무나 많아서 ㆍㆍ 굉장히 어려움들을 겪을 때가 ㆍㆍ 무척 많아요! 암튼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과목으로서 쉬운 우리말로 잘 번역을 해놓으시면 그에 대한 파급 효과가 꽤 크리라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으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일본식 언어를 벗겨내고 보니 빛나는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그걸 마주하니 기쁘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모르던 시절에는 저 또한 원래 철학이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법학이나 공학/과학 과목도 일본식 용어의 지배가 매우 큽니다. 그러나 법학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하고, 변호사들의 숫자가 증가해서 그들이 대신해 주니까 좀 개선되는 것 같고요. 공학이나 과학의 경우에는 영어를 직접 수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조금씩 일본식 용어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몇 년 동안 일본식 철학용어들을 한국인의 일상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해볼까 합니다.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응원 감사합니다~~
네. 저도 중도 포기 많이 했어요~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요^^ 쓸데없이 어려운 이유가 일제 시절에 만들어진 단어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니까, 약간의 독립운동가 정신이 생기더라고요. 하나씩 21세기 우리말로 바꿔보는 작업을 해볼까 합니다~ 그러면 다들 이해하실 거예요.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철학이 어려울 리가 없거든요. 학자들이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아요. 포기하지 마세요!!
강의선생님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감히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철학계와 국어국문학계.. 필요하면 사회문화학계 전반에 걸친 인적 자원을 동원하여 철학사전을 만듦과 동시에 .. 한국역사학계와 한국역사학계 이외의 다른 분야에 독버섯처럼 또아리를 틀고 숨어있는 "학문적 친일파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네. 철학은 언어활동이기 때문에 언어가 난해하고 복잡해지면 철학도 난해하고 복잡해집니다. 그런데 우리말이 아닌 언어가 이 분야에서 너무 많고, 대체로 일본어(그런데 일본 사람도 제대로 모르는 그런 일본어)에 의해 오염된 게 심각하지만, 그게 백 년 묵은 거여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어떤 모범이 생기면, 예를 들어 이렇게 바꿔 표현하니 과연 이롭구나 같은 모범이 생기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 개인적인 사견을 적을려고 햇더니 너무 길어져서 미안합니다만, 남기고자합니다. 선생님, 영어로 번역된 책들은 그런 식민지 컴플렉스 같은 것 발생않할까요? 특히,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책 번역은 현재에도 한국말로 표현되어 힘들것 입니다. 우리말의 중요의미는 한자로 된 것인데, 그것은 문제가 않될까요? 그것은 국어의 어휘문제가 먼저 제기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조건 일본어에만 발생한다는 그런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수잇다고 생가합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어렵게 번역된 한글로 된 책을 읽고있고 공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고민해야할때 과거 같은 한자권 문화로서의 지적재산을 같이 공유하는 것은 결코 오늘의 한국의 지적발전 및 선생님의 지적발전에 도움이 되었지 반대로 방해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탓으로 돌리자면 과거 조선시대로 돌아가야겟지요. 일본과달리, 조선의 관료들은 서양으로부터의 학문을 배울노력은 전혀 하지도 접할기회도 드물었지요. 그리고 그런 기회를 일본을 통해서도 배울수도 있었으나 그때는 왜놈이라는 우리보다도 열등하다는 이상한 논리로 배우고자하는 마음자체가 없었지요. 당시 에도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대도시였고 가장 문화가 발전된 도시였읍니다. 놀랍지만, 이미 에도시대에 상하수도가 동경시내에 개발되고 이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파리나 런던은 18-19세기까지 상하수도가 잘 구비되지 못함으로 인해서, 질병및 더러움으로 너무나 유명했어요. 일본어로된 한자를 이용해서 학문적및 지적개발이 가능햇다는 사실또 한 간과 해서는 않되겠지요. 전후에 한국이 기술및 지적발전을 급속도로 가능한 뒤에는 일본어를 알고있고 일본어를 통해서 각종 선진지식기술문화등을 쉽게 접할수있었던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한글은 사용기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앗고 세종대왕이후 수백년동안 고급지식인들이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개발하지못햇기에 당연히 단어나 어휘력이 고급적 표현이 조선시대가 끝날때가지 거의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경우를 들자면, 프랑스는 대혁명이후에 곧 프랑스어 표준화작업을 선언하고 유럽에서 아마도 최초로 언어의 표준화를 시작함으로서 국민들의 지적수준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전에 수세기동안 몰리에르 비롯해서 집중적인 프랑스어 지적인 사용을 했지요. 영국도 세익스피어를 중심으로 그런 영어는 보편화 집중화가 가능했고요. 일본도 역시나, 에도시대에 이미 일반평민들중에도 자연스레 간단한 글을 읽고쓸수있는 그런 단계데 도달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알려집니다. 왜냐면 일반평민들이 즐기는 만담등 그런 극들이나 우키요에등 그런 것들이 일본어로 늘리 쓰여지고 일반대중들이 접하고 쓰여졋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나 고지등이 일본어로 쓰여져서 관청이나 거리에 세워진것을 아직도 보게됩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대중적인 한글화는 오히려 식민지시대에 들어서야 시작이 됩니다. 물론 일본의 방해도 많았지만서도요. 오히려 민중들이 한글을 알고 배우고 쓸려고하는 계기가 시작된 것이라고봅니다. 한나라의 언어는 어느 하루이틀에 발전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몇십년도 아닙니다. 수백년이상은 사용되어야 고급언어로서 많은 문법과 단어가 발전하겠지요. 한글은 다행히도 세종대왕님의 혜은으로 인위적으로 과학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쓰기 읽기 그리고 문법이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개발이 되었다고봅니다. 가령 아프리가의 어느 국가에 가보시면 그나라사람들의 부족별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그런 개념의 단어는 존재조차 하지않겠지요. 그럼 그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냥, 일본에서도 쓰고 한국에서 쓰는데로 그대로 발음해서 사용하겠지요. 너무길었네요. 이제 21세기이니 그에 맞게 우리의 시각도 오픈되고 보다 국제화 되어야 하지 않을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칸트가 남긴 유산중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일본 좋아하고요. 일본 역사도 잘 알고요. 심지어 일본말도 잘 합니다;; 한국문화는 빨리빨리 변화가 심하고,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은 지식을 전하는 데 아직 많이 어려서 더 많은 애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그 애정으로 지식을 전하는 데 더 효과적으로 변하고 발전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의도가 선생님께 잘 전해지지 않는 것은 다 제가 부족하기 때문일 텐데, 다른 영상도 두루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가위 명절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codyjeong 그러시군요! 답장 감사드리며 잘 이해하게 됩니다. 괜히 주절주절 한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일본에 살고있어요! 꽤 오래되었습니다. 일전에 채널 등록하고서 언제였는지는 모르나 한두달은 이전인 것 같아요. 요즘 눈에 더욱 뛰어서 시간날때마다 즐감하고 잇습니다. 저도 철학을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공부중이라서입니다. 여기동영상을 통하여 많은 공부가 되고있습니다. 이쪽 철학의 지적재산의 공유를 통하여 신선한 영향을 받고 잇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번역어가 일본식이라고 해서 이해를 못한다는 건 일견 그럴 듯하지만 말이 안 되는 것도 같네요. 일본의 문법을 배우는 게 아니고 그건 단어일 테고, 한자로 표기된 거라면 귀찮아도 찾아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고 보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한 독자가 그 정도도 안 찾아보고 일본식이니깐 칸트 어려워 이런 자세라면 칸트를 안 읽어야 하고 읽을 자격이 저는 없다고 봅니다. 자칫하면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무슨 철학이 신문기사도 아닌데 본인의 상식 가지고만 읽을 수 있다는 게 저로서는 난센스 아닌가 싶고, 최고 수준의 지성이 쓴 책인데 일본어만 아니면 이해 가능! 이런 식이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인과 비슷한 상식을 가진 독일인들은 모두 칸트를 잘 읽고 잘 이해할까요? 만일 독일인이 칸트를 이해를 못한다면 거기에도 일본어가 있어서 이해를 못한다고 해야 하나요? 그냥 어려운 책입니다. 저도 꾸역꾸역 칸트 읽었지만 일본어 때문에 어렵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전체 이어지는 문장 단위에서 맥락이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거지 단어에선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는 없었네요.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한글을 사용하는 회사에서 평생 일했고, 지금도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내가 러셀 철학사의 한글번역본을 읽으면 이해할 수 없다. 나의 지적능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번역자의 자질문제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문장을 어거지로 만들어서 번역한 게 부지기수다. 번역하는 인간들은 제발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번역해라.
제가 이 문제에 관해서 아주 진지하게 파헤쳐보고 있습니다. 철학 번역서의 대부분은 철학전공자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철학전공자가 아닌 번역자가 번역하더라도, 철학자의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문장은 둘째 치고 단어의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어로 번역하기 때문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근래 1881년에 발행된 일본어 철학사전을 보고 있는데 엄청 재미있습니다. 아, 이 사람들이 서양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자어 조립을 했구나... 일본 학자들이 굉장히 관료적이구나... 등등의 생각부터, 그런데 그걸 그대로 모방해서 백 년이 넘도록 반성없이 이 나라에서 사용해 왔으니, 문제가 심각해진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고, 그가 영어로 쓴 텍스트는 상당히 가독성이 좋고 명쾌합니다. 그런데 한글번역본이 심각하다는 것은 선생님의 지적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필경 일본어에 오염된 번역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번역은 직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야(기술이나 과학)에서는 참 유용하고 탁월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직관이 아닌 개념의 영역에서는 아주 볼품 없다는 게 저의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그래서 현대 일본 대중들도 철학을 모르겠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다양한 철학용어 풀이집이 나옵니다. 만화를 이용하는 것도 많고요...
일인들이 한 번역. 더 잘된 번역. 다른 번역이 있을 수 있지요. 일본어!라고요 아니지요. 한자어로 한 거죠. 동아시아의 공통문자. 아시아의 라틴어로 일인들이 번역한거죠. 우리선조가 서양을 먼저 번역했으면, 칸트의 독일어개념을 어떻게 다른 한자어로 썼을가요. 지금 세대가 칸트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우리가 읽는 칸트의 번역서가 일본어로 씌여진 탓이 아니라, 우리세대가 선대가 전승해준 문명ㅡ한자문명,문화 ㅡ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인들의 번역이 한자문명권의 입장에서 볼때 흠잡을 데가 꽤 있습니다. 근데,지금의 번역서가 일본어로 되어 있다는 서술은 말이 안됩니다. 철학,민주.국회,대통령.다 일인들이 번역한 단어이지요. 철학,개념.과학,사상은 일인들이 번역한 단어가 아닌가요?
네.. 선생님이 생각하는 한국어와 제가 정의하는 한국어가 다른 것 같아요. 저의 졸저에서 쓴 글을 여기에 인용하겠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 사람의 피가 섞이는 일이 자연스럽고, 혈통이 인간의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된 이 시절에 한국어의 혈통 구별은 그다지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백안이든 흑안이든 한국인이 되는 것처럼, 한국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외래어든 고유어든 그 출신성분을 불문한다. 학생들이 카페에 모여 나누는 대화 속에서, 직장인이 식사하면서 혹은 술을 마시면서 주고받는 언어 속에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정치인들이나 시민활동가들이 청중에게 호소하는 문장에서 평범하게 사용하는 단어, 그것이 우리 한국어이다. 버스, 택시, 카페, 패션, 인터넷은 외래어이다. 그러나 모든 한국인이 사용하는 단어이며, 대체어도 없으니 완전한 한국어이다. 시스템, 데이터, 빌딩, 이미지, 비즈니스는 각각 체계, 자료, 건물, 영상, 사업이라는 대체어가 있다. 한국인이 양쪽에서 어느 쪽을 더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어느 쪽이 의미를 전하는 데 더 유리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들 단어의 차이는 영어에서 기원했느냐 한자에서 기원했느냐의 차이다. 영어보다 한자에 친숙한 사람이 있고, 한자보다 영어에 친숙한 사람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이기도 하다. 오십 년 전의 한국인보다 지금의 한국인이 일상 생활에서 더 많은 영어를 사용한다. 취학 전 연령에서 ‘어린 한국인들’이 영어를 공부하고, 보편화된 국제 교류 덕에 영어 사용이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영어를 문자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한글 표기를 지키면서 외래어로 사용한다. 반면 지금의 한국인보다 오십 년 전의 한국인은 한자를 더 많이 알았을 것이다. 한자 사용은 지금의 영어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국한문 혼용의 시절이었기 때문이며, 한자 문화권에서 역사를 지속한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 특징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적어도 표기에 관한 한 한글전용의 시대이다. 미래 우리말의 향방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몰라도, 한글 표기의 원칙은 당분간 지속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을 한글로 표기할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릴 것이다. 어떤 이는 예부터 전해진 - 대체로 일본식 - 한자어를 선호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영어든 불어든 독일어든 원어를 한글로 표기하기를 좋아하고, 또 다른 이는 순우리말을 발굴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나는 이런 견해의 차이를 논평하면서 어느 쪽이 바람직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단지 평범한 한국인이 사회 생활하면서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라면, 그 단어가 무엇이든 한국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설령 오래전부터 존재한 대체 한자어가 있더라도,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영어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한다면, 그 영어 단어가 한국어이다. 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있더라도 그 단어를 한국인이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 뜻도 모른다면 그것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한국인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면, 그 단어의 기원이 무엇이든 - 심지어 순우리말조차 - 한국어가 아니다. 옛 한국인의 조상들이 사용했던 혹은 이북에서 사용하는 조선어일 수는 있겠지만, 21세기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언어는 아니다. 물론 국어학자가 그런 잊힌 단어도 우리말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단어의 사용을 권장하는 것까지 반대할 생각은 없다. 어느 한 개인의 찬성과 반대에 의해 사람들의 언어습관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앞서 우리말의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기로 했으므로, 한자어의 경우 그게 일본에서 유래했든, 중국에서 기원했든, 조선인이 만든 것이든 문제 삼지 않는다. 만약 그런 단어들이 이미 사용되지 않는 단어라면, 굳이 그 기원을 따질 실익이 없다. 만약 그런 단어들이 평범하게 잘도 사용되고 있고, 의미의 왜곡도 없다면, 그것은 이미 한국어이므로 그 기원을 문제 삼아 ‘순화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직장인들의 모임에서 혹은 학생들의 수다에서 주고받는 단어를 감시하고 심사하며 참견할 권한이 누구에게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철학과 이성, 공간과 시간, 객관과 주관 등, 수많은 철학 용어를 우리는 평범하게 사용한다.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므로 설령 이 단어들이 어느 일본인이 발명한 것일지라도 이미 우리말이다.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의 검증이 끝난 단어이기도 하다. 어느 예민한 사람은 일본에서 유래된 단어를 무척 싫어할 수도 있고, 다른 대체어를 찾기 위해 그이가 노력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보통으로 사용하는 언어 습관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그이가 큰 권력을 지니고 있어서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소통을 훼방 놓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의미에 잘못이 없고 그러므로 소통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의 흔한 언어를, 이미 ‘한국어가 된 일본어’를 꾸짖어 봤자, 욕만 얻어먹을 일이다. 그러나 일본인이 만든 단어로, ‘질료’니 ‘실재’니 하는 단어들은 그 오랜 세월을, 여러 세대가 나고 진 긴 시간을 줬건만 ‘한국어가 되지 못한 일본어’이다. 평범한 한국인이 보통의 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감성, 지성, 이성 이라 칭하지 말고 sensibility, understanding, reason 이라고 그냥 써라. 멍청한 백종현 이하 한국의 칸트 철학자라는 인간들은 감성, 지성, 오성, 이성 이라 번역해 놓고 독자들이 이해하길 바랐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인간들이냐. 번역한 인간들은 이해를 했는지 그냥 카피 했는지 궁금하다.
통각은 칸트가 만든 개념입니다. 그걸 어떻게 번역하든 번역이 안돼요. 또한 독어도 한국어도 각각 표현이 안돼는 단어는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철학사전은 이미 수십년 전에 완성돼어있어요. 그것이 일본어랑 관계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그것을 한국어로 한다해도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수년전에 오성을 지성으로 바꿨지만, 깨달을 오 가 오히려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 흄, 칸트, 헤겔, 하이데거가 말 하는 이성은 서로 같지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성이라는 단어를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어려운것은 독일사람도 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그것을 쉽게 쓴다면, 육백쪽 페이지가 몇만 페이지가 돼어야 하겠지요. 그것이 그들의 사유 개념의 창작과 더불어 아주 힘든 작업입니다. 또한 그 한사람만을 연구하는 것은 작가 본인 만큼 힘들고, 전생을 걸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제발 그들의 노고를 비하하지마세요. 저 또한 수십번을 읽었지만, 지금 다시 읽어도 다른 사유로 들립니다. 참고로 자각과 지각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선생님의 의견 존중합니다. 그러나 저와는 다른 견해이시며, 동시에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통각은 칸트가 만든 개념이 아닙니다. 칸트는 한자어를 몰랐고, 일본 학자가 한자를 조립해서 그 단어를 발명했지요. 그런 게 번역인데, 우리는 번역된 그 단어를 마치 칸트가 말한 것처럼 착각하고, 그래서 그 번역어를 비판하면서 우리 언어실정에 맞게 새로운 번역어를 찾자고 하면, 무슨 대단한 권위에 함부로 도전하는 것처럼 인지편향을 일으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비판과 그 비판에 대한 멸시는 인류사에서 아주 흔하게 발생하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합니다.. 이 경우 극소수파에 해당하는 의심하는 자들은, 숙명적으로 자기들이미 다 검토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표현하더라도, 아무 생각없이 지적하는 미숙한 자 취급을 받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언어 번역에 관한 한 비판적입니다. 제 자신 칸트주의자로서 칸트 철학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굳이 어렵게 가면서 그 어려운길을 숭고하게 생각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나도 그런 다양성의 하나겠지, 라고 생각해 봅니다. 즐거운 한가위 명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고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는듯하여 미약하나마 덧붙이고자 합니다. 칸트 철학의 일본식 용어를 100년 전 우리나라의 철학자들이 수용한 것은 일본이 동양에서 최초로 번역했기도 했지만,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어려운 한자 용어라도 이해가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90년대 초반까지 신문에서도 한자를 섞어썼으니까요. 학술 서적들도 당연하다는듯이 한자를 썼고요. 그런데 이제는 어려운 학술 서적들도 순 한글로 쓰여집니다. 그래서 말씀하신대로 한글로는 같은 통각이지만 서로 다른 뜻인 痛覺과 統覺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자로 쓰여 있다면 대충 뜻을 알 수 있는데 한글로 적혀 있으니, 아무리 괄호치고 한자나 원래의 단어를 적어 넣는다고 해도, 개념을 직관적으로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제 다시 한자를 부활시킬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학술 개념을 수입하던 100년 전의 한국어와 지금의 한국어는 다른 말이 되었고, 일본식 학술 용어들도 업데이트 되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사실 심각한 문제인데 학술 용어 뿐만 아니라 어려운 한자로 되어있는 법률용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법률 용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없다보니, 소위 법률 전문가들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권위를 부여받고 폐쇄적인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은 라틴어로 된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쉬운 독일어로 많이 바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어의 폐쇄성은 사회적 폐쇄성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개념들로 이루어진 언어로는 고도의 사유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칸트가 나오기 전 18세기 독일 계몽주의자들은 한 세기 동안 '언어회(Sprachgesellschaft)라는 하는 것을 만들어서, 독일어를 학술어에 적합하도록 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라이프니츠 이후 칸트가 나오기까지 독일에 한 세기 동안 저명한 철학자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칸트를 통해 독일어가 학술어로 업데이트 된 이후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철학은 독일인들의 것이었습니다. 이제 바뀐 한국어에 맞게 언어가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국어로 고도의 사유를 하지못하는 지금의 한국어로는 인문학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내용없는' 좋은 말 경연대회'나 '알맹이 없는 교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그냥 철학적으로 좋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과학혁명 이후 위기에 몰린 철학적 사유를 순수 이성 비판으로 해결하려했던 것이 그 좋은 예일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며 좋은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경청해서 읽었습니다. 완전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전문 혹은 비전문 철학도들이 선생님의 복음을 듣길 바랍니다.
저는 학자들의 직업적 노력과 성과를 뭐라 말할 입장은 못됩니다. 그럴 만한 자격도 의사도 없어요;;; 그저 평범한 상식으로 칸트를 이해합니다. 그 정도인 것 같아요;;;
Good news라면 Good news긴 하죠.
좋은 강의 찾아다니며
잘 배웁니다
들을 때는 모찌떡처럼
말랑말랑 부드러웠던 단어들이
강의를 떠나
저한테 오면
금방 굳어져 버려
돌덩이가 되어버리는
King Midas의
Golden touch
기적 현상이 일어납니다.
아,
그래서
King Midas 욕심은
내려놓고
늘 가난 든 어휘들의 허기는
매회 강의 들을 때마다
단어 하나만이라도
건질 수 있는 행운을 바라며
열심히 찾아옵니다.
손끝으로 스크린을 톡톡 치면
와르르 쏟아지는
glittering gemstones 같은
언어들의 황홀함
철학의 낱말들이 이렇게 황홀할 수 있다니
코디정님 참 대단하신 실력입니다.
언제나 좋은 강의지만
특히 이번 강의에 속이 뻥 뚫리는 듯
명쾌하신 열강 큰 박수 보냅니다.
여기는
저물녘 해가 자박자박 노을을 밟고
고개를 넘어갑니다
아마 서울 아침을 찾아 가나 봅니다
오늘 하루도 멋진 하루 맞으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Thx.
장마철의 엄청 습한 공기가 서울 전체 자욱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그리고 언제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디정님은 무설 바꿀려고 할까요.
네. 바꾸지 못하고 바꿀 수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난해한 지식에 좌절한 분들에게 위로를 주고, 더 쉽게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알맞은 언어를 찾아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하는 정명사상을 그저 제 인생에서 실천해 보는 정도의 사소한 의미만 있을 뿐입니다. 저의 이런 시도가 불필요하신 분들도 있겠고, 그런 분들의 언어세계를 존중합니다. 각자의 인생을 일부로 교차시킬 필요가 없으니, 서로 다른 평화를 누리면 되겠지요.
백종현은 한국에서 최고의 칸트 철학자로 군림하면서, 한국인의 칸트 이해를 최고로 망쳐 놓은 사람이다.
맞아요. 이런 경우 많지요.
네.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고마운 생각과 고마운 작업을 계획하고 계시는군요!
저는 이제까지 그런줄도 모르고 ㆍㆍ
철학은 어려운 것 ㆍㆍ
철학은 난해한 것 철학은 우리의 삶하고 동떨어진 고상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거 라고만 생각 했었는 데 ㆍㆍ
말씀을 듣고 보니 ㆍㆍㆍ
이제 무슨 말씀인지를 알것 같네요!
그런데
일반인들이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철학 뿐만이 아니라 ㆍㆍ
법학도 그렇고 ㆍㆍ공학이나 과학과목에서의 용어도 ㆍㆍㆍ
우리 일상생활의 용어들과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일본 용어들 또는 구 한자어들이 너무나 많아서 ㆍㆍ
굉장히 어려움들을 겪을 때가 ㆍㆍ
무척 많아요!
암튼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과목으로서
쉬운 우리말로 잘 번역을 해놓으시면
그에 대한 파급 효과가 꽤 크리라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으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일본식 언어를 벗겨내고 보니 빛나는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그걸 마주하니 기쁘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모르던 시절에는 저 또한 원래 철학이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법학이나 공학/과학 과목도 일본식 용어의 지배가 매우 큽니다. 그러나 법학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하고, 변호사들의 숫자가 증가해서 그들이 대신해 주니까 좀 개선되는 것 같고요. 공학이나 과학의 경우에는 영어를 직접 수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조금씩 일본식 용어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몇 년 동안 일본식 철학용어들을 한국인의 일상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해볼까 합니다.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응원 감사합니다~~
평소 철학에 관심이 있어
여러 책을 시도했으나, 항상 중도 포기.
네. 저도 중도 포기 많이 했어요~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요^^ 쓸데없이 어려운 이유가 일제 시절에 만들어진 단어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니까, 약간의 독립운동가 정신이 생기더라고요. 하나씩 21세기 우리말로 바꿔보는 작업을 해볼까 합니다~ 그러면 다들 이해하실 거예요.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철학이 어려울 리가 없거든요. 학자들이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아요. 포기하지 마세요!!
대한독립만세!
강의선생님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감히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철학계와 국어국문학계.. 필요하면 사회문화학계 전반에 걸친 인적 자원을 동원하여 철학사전을 만듦과 동시에 ..
한국역사학계와 한국역사학계 이외의 다른 분야에 독버섯처럼 또아리를 틀고 숨어있는
"학문적 친일파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네. 철학은 언어활동이기 때문에 언어가 난해하고 복잡해지면 철학도 난해하고 복잡해집니다. 그런데 우리말이 아닌 언어가 이 분야에서 너무 많고, 대체로 일본어(그런데 일본 사람도 제대로 모르는 그런 일본어)에 의해 오염된 게 심각하지만, 그게 백 년 묵은 거여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어떤 모범이 생기면, 예를 들어 이렇게 바꿔 표현하니 과연 이롭구나 같은 모범이 생기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기초과학분야도 마찬가지죠
화학 산소 수소 탄소 이런말도 네덜란드 서적 일본번역 단어니까요
순수이성비판 원서를 보면. 일단 두께에. 질리게되고 어려운 독일어 용어에 손놓게 되지ㅡ한마디로 순수한 이성만으로 즉 선험적으로 즉 신이 주신 대로. 인간은 무엇이 참임을 알수있는가? 지ㅡ수학, 물리, 기하라고 하고있어
조금 개인적인 사견을 적을려고 햇더니 너무 길어져서 미안합니다만, 남기고자합니다. 선생님, 영어로 번역된 책들은 그런 식민지 컴플렉스 같은 것 발생않할까요? 특히,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책 번역은 현재에도 한국말로 표현되어 힘들것 입니다. 우리말의 중요의미는 한자로 된 것인데, 그것은 문제가 않될까요? 그것은 국어의 어휘문제가 먼저 제기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조건 일본어에만 발생한다는 그런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수잇다고 생가합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어렵게 번역된 한글로 된 책을 읽고있고 공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고민해야할때 과거 같은 한자권 문화로서의 지적재산을 같이 공유하는 것은 결코 오늘의 한국의 지적발전 및 선생님의 지적발전에 도움이 되었지 반대로 방해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탓으로 돌리자면 과거 조선시대로 돌아가야겟지요. 일본과달리, 조선의 관료들은 서양으로부터의 학문을 배울노력은 전혀 하지도 접할기회도 드물었지요. 그리고 그런 기회를 일본을 통해서도 배울수도 있었으나 그때는 왜놈이라는 우리보다도 열등하다는 이상한 논리로 배우고자하는 마음자체가 없었지요. 당시 에도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대도시였고 가장 문화가 발전된 도시였읍니다. 놀랍지만, 이미 에도시대에 상하수도가 동경시내에 개발되고 이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파리나 런던은 18-19세기까지 상하수도가 잘 구비되지 못함으로 인해서, 질병및 더러움으로 너무나 유명했어요. 일본어로된 한자를 이용해서 학문적및 지적개발이 가능햇다는 사실또 한 간과 해서는 않되겠지요. 전후에 한국이 기술및 지적발전을 급속도로 가능한 뒤에는 일본어를 알고있고 일본어를 통해서 각종 선진지식기술문화등을 쉽게 접할수있었던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한글은 사용기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앗고 세종대왕이후 수백년동안 고급지식인들이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개발하지못햇기에 당연히 단어나 어휘력이 고급적 표현이 조선시대가 끝날때가지 거의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경우를 들자면, 프랑스는 대혁명이후에 곧 프랑스어 표준화작업을 선언하고 유럽에서 아마도 최초로 언어의 표준화를 시작함으로서 국민들의 지적수준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전에 수세기동안 몰리에르 비롯해서 집중적인 프랑스어 지적인 사용을 했지요. 영국도 세익스피어를 중심으로 그런 영어는 보편화 집중화가 가능했고요. 일본도 역시나, 에도시대에 이미 일반평민들중에도 자연스레 간단한 글을 읽고쓸수있는 그런 단계데 도달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알려집니다. 왜냐면 일반평민들이 즐기는 만담등 그런 극들이나 우키요에등 그런 것들이 일본어로 늘리 쓰여지고 일반대중들이 접하고 쓰여졋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나 고지등이 일본어로 쓰여져서 관청이나 거리에 세워진것을 아직도 보게됩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대중적인 한글화는 오히려 식민지시대에 들어서야 시작이 됩니다. 물론 일본의 방해도 많았지만서도요. 오히려 민중들이 한글을 알고 배우고 쓸려고하는 계기가 시작된 것이라고봅니다. 한나라의 언어는 어느 하루이틀에 발전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몇십년도 아닙니다. 수백년이상은 사용되어야 고급언어로서 많은 문법과 단어가 발전하겠지요. 한글은 다행히도 세종대왕님의 혜은으로 인위적으로 과학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쓰기 읽기 그리고 문법이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개발이 되었다고봅니다. 가령 아프리가의 어느 국가에 가보시면 그나라사람들의 부족별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그런 개념의 단어는 존재조차 하지않겠지요. 그럼 그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냥, 일본에서도 쓰고 한국에서 쓰는데로 그대로 발음해서 사용하겠지요. 너무길었네요. 이제 21세기이니 그에 맞게 우리의 시각도 오픈되고 보다 국제화 되어야 하지 않을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칸트가 남긴 유산중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일본 좋아하고요. 일본 역사도 잘 알고요. 심지어 일본말도 잘 합니다;; 한국문화는 빨리빨리 변화가 심하고,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은 지식을 전하는 데 아직 많이 어려서 더 많은 애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그 애정으로 지식을 전하는 데 더 효과적으로 변하고 발전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의도가 선생님께 잘 전해지지 않는 것은 다 제가 부족하기 때문일 텐데, 다른 영상도 두루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가위 명절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codyjeong 그러시군요! 답장 감사드리며 잘 이해하게 됩니다. 괜히 주절주절 한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일본에 살고있어요! 꽤 오래되었습니다. 일전에 채널 등록하고서 언제였는지는 모르나 한두달은 이전인 것 같아요. 요즘 눈에 더욱 뛰어서 시간날때마다 즐감하고 잇습니다. 저도 철학을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공부중이라서입니다. 여기동영상을 통하여 많은 공부가 되고있습니다. 이쪽 철학의 지적재산의 공유를 통하여 신선한 영향을 받고 잇습니다. 감사합니다.
[물자체]에 대해 좀더 알고싶은 사람입니다
작가 코디정으로 돈 번역본 [순수이성비판]이 있습니까
서점에 가보겠습니다
합장합니다_()_
[물자체]에 좀더 알고싶은 사람입니다
코디정님 이름으로
된 [순수이성비판]이 있습니까
합장합니다_()_
없습니다^^ 느리게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언젠가 완료되겠지요. 칸트의 물자체는 두 종류가 있는데, 두 가지 모두 ‘진리로서는’ 인간이 알 수 없노라고, 아주 치밀하게 논증하고 선언합니다. 언젠가 기회되면 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칸트 철학하는 사람과 이야기 해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칸트 종교 신자들임. 현대의 질문조차도 칸트에게서 찾으려고 하고 있음.
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의 전공 지식 혹은 사적인 신조에서 무엇이든 답을 찾으려는 것 같아요. 그런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타인의 이야기를 안 들으려 하거나 타인에게 자기가 정리한 답변을 강요하려고 하면 별로 좋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단순히 번역어가 일본식이라고 해서 이해를 못한다는 건 일견 그럴 듯하지만 말이 안 되는 것도 같네요. 일본의 문법을 배우는 게 아니고 그건 단어일 테고, 한자로 표기된 거라면 귀찮아도 찾아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고 보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한 독자가 그 정도도 안 찾아보고 일본식이니깐 칸트 어려워 이런 자세라면 칸트를 안 읽어야 하고 읽을 자격이 저는 없다고 봅니다. 자칫하면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무슨 철학이 신문기사도 아닌데 본인의 상식 가지고만 읽을 수 있다는 게 저로서는 난센스 아닌가 싶고, 최고 수준의 지성이 쓴 책인데 일본어만 아니면 이해 가능! 이런 식이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인과 비슷한 상식을 가진 독일인들은 모두 칸트를 잘 읽고 잘 이해할까요? 만일 독일인이 칸트를 이해를 못한다면 거기에도 일본어가 있어서 이해를 못한다고 해야 하나요? 그냥 어려운 책입니다. 저도 꾸역꾸역 칸트 읽었지만 일본어 때문에 어렵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전체 이어지는 문장 단위에서 맥락이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거지 단어에선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는 없었네요.
네. 선생님 의견과 경험 존중합니다.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한글을 사용하는 회사에서 평생 일했고, 지금도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내가 러셀 철학사의 한글번역본을 읽으면 이해할 수 없다. 나의 지적능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번역자의 자질문제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문장을 어거지로 만들어서 번역한 게 부지기수다. 번역하는 인간들은 제발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번역해라.
제가 이 문제에 관해서 아주 진지하게 파헤쳐보고 있습니다. 철학 번역서의 대부분은 철학전공자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철학전공자가 아닌 번역자가 번역하더라도, 철학자의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문장은 둘째 치고 단어의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어로 번역하기 때문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근래 1881년에 발행된 일본어 철학사전을 보고 있는데 엄청 재미있습니다. 아, 이 사람들이 서양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자어 조립을 했구나... 일본 학자들이 굉장히 관료적이구나... 등등의 생각부터, 그런데 그걸 그대로 모방해서 백 년이 넘도록 반성없이 이 나라에서 사용해 왔으니, 문제가 심각해진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고, 그가 영어로 쓴 텍스트는 상당히 가독성이 좋고 명쾌합니다. 그런데 한글번역본이 심각하다는 것은 선생님의 지적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필경 일본어에 오염된 번역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번역은 직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야(기술이나 과학)에서는 참 유용하고 탁월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직관이 아닌 개념의 영역에서는 아주 볼품 없다는 게 저의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그래서 현대 일본 대중들도 철학을 모르겠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다양한 철학용어 풀이집이 나옵니다. 만화를 이용하는 것도 많고요...
사설이 너뮤 길어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개선하려고 노력중이에요~
일인들이 한 번역. 더 잘된 번역. 다른 번역이 있을 수 있지요.
일본어!라고요
아니지요.
한자어로 한 거죠.
동아시아의 공통문자.
아시아의 라틴어로 일인들이 번역한거죠.
우리선조가 서양을 먼저 번역했으면, 칸트의 독일어개념을 어떻게 다른 한자어로 썼을가요.
지금 세대가 칸트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우리가 읽는 칸트의 번역서가 일본어로 씌여진 탓이 아니라, 우리세대가 선대가 전승해준 문명ㅡ한자문명,문화 ㅡ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인들의 번역이 한자문명권의 입장에서 볼때 흠잡을 데가 꽤 있습니다.
근데,지금의 번역서가 일본어로 되어 있다는 서술은 말이 안됩니다.
철학,민주.국회,대통령.다 일인들이 번역한 단어이지요.
철학,개념.과학,사상은 일인들이 번역한 단어가 아닌가요?
네.. 선생님이 생각하는 한국어와 제가 정의하는 한국어가 다른 것 같아요. 저의 졸저에서 쓴 글을 여기에 인용하겠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 사람의 피가 섞이는 일이 자연스럽고, 혈통이 인간의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된 이 시절에 한국어의 혈통 구별은 그다지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백안이든 흑안이든 한국인이 되는 것처럼, 한국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외래어든 고유어든 그 출신성분을 불문한다. 학생들이 카페에 모여 나누는 대화 속에서, 직장인이 식사하면서 혹은 술을 마시면서 주고받는 언어 속에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정치인들이나 시민활동가들이 청중에게 호소하는 문장에서 평범하게 사용하는 단어, 그것이 우리 한국어이다.
버스, 택시, 카페, 패션, 인터넷은 외래어이다. 그러나 모든 한국인이 사용하는 단어이며, 대체어도 없으니 완전한 한국어이다. 시스템, 데이터, 빌딩, 이미지, 비즈니스는 각각 체계, 자료, 건물, 영상, 사업이라는 대체어가 있다. 한국인이 양쪽에서 어느 쪽을 더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어느 쪽이 의미를 전하는 데 더 유리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들 단어의 차이는 영어에서 기원했느냐 한자에서 기원했느냐의 차이다. 영어보다 한자에 친숙한 사람이 있고, 한자보다 영어에 친숙한 사람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이기도 하다. 오십 년 전의 한국인보다 지금의 한국인이 일상 생활에서 더 많은 영어를 사용한다. 취학 전 연령에서 ‘어린 한국인들’이 영어를 공부하고, 보편화된 국제 교류 덕에 영어 사용이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영어를 문자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한글 표기를 지키면서 외래어로 사용한다. 반면 지금의 한국인보다 오십 년 전의 한국인은 한자를 더 많이 알았을 것이다. 한자 사용은 지금의 영어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국한문 혼용의 시절이었기 때문이며, 한자 문화권에서 역사를 지속한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 특징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적어도 표기에 관한 한 한글전용의 시대이다. 미래 우리말의 향방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몰라도, 한글 표기의 원칙은 당분간 지속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을 한글로 표기할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릴 것이다. 어떤 이는 예부터 전해진 - 대체로 일본식 - 한자어를 선호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영어든 불어든 독일어든 원어를 한글로 표기하기를 좋아하고, 또 다른 이는 순우리말을 발굴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나는 이런 견해의 차이를 논평하면서 어느 쪽이 바람직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단지 평범한 한국인이 사회 생활하면서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라면, 그 단어가 무엇이든 한국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설령 오래전부터 존재한 대체 한자어가 있더라도,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영어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한다면, 그 영어 단어가 한국어이다. 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있더라도 그 단어를 한국인이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 뜻도 모른다면 그것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한국인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면, 그 단어의 기원이 무엇이든 - 심지어 순우리말조차 - 한국어가 아니다. 옛 한국인의 조상들이 사용했던 혹은 이북에서 사용하는 조선어일 수는 있겠지만, 21세기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언어는 아니다. 물론 국어학자가 그런 잊힌 단어도 우리말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단어의 사용을 권장하는 것까지 반대할 생각은 없다. 어느 한 개인의 찬성과 반대에 의해 사람들의 언어습관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앞서 우리말의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기로 했으므로, 한자어의 경우 그게 일본에서 유래했든, 중국에서 기원했든, 조선인이 만든 것이든 문제 삼지 않는다. 만약 그런 단어들이 이미 사용되지 않는 단어라면, 굳이 그 기원을 따질 실익이 없다. 만약 그런 단어들이 평범하게 잘도 사용되고 있고, 의미의 왜곡도 없다면, 그것은 이미 한국어이므로 그 기원을 문제 삼아 ‘순화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직장인들의 모임에서 혹은 학생들의 수다에서 주고받는 단어를 감시하고 심사하며 참견할 권한이 누구에게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철학과 이성, 공간과 시간, 객관과 주관 등, 수많은 철학 용어를 우리는 평범하게 사용한다.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므로 설령 이 단어들이 어느 일본인이 발명한 것일지라도 이미 우리말이다.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의 검증이 끝난 단어이기도 하다. 어느 예민한 사람은 일본에서 유래된 단어를 무척 싫어할 수도 있고, 다른 대체어를 찾기 위해 그이가 노력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보통으로 사용하는 언어 습관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그이가 큰 권력을 지니고 있어서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소통을 훼방 놓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의미에 잘못이 없고 그러므로 소통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의 흔한 언어를, 이미 ‘한국어가 된 일본어’를 꾸짖어 봤자, 욕만 얻어먹을 일이다. 그러나 일본인이 만든 단어로, ‘질료’니 ‘실재’니 하는 단어들은 그 오랜 세월을, 여러 세대가 나고 진 긴 시간을 줬건만 ‘한국어가 되지 못한 일본어’이다.
평범한 한국인이 보통의 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감성, 지성, 이성 이라 칭하지 말고 sensibility, understanding, reason 이라고 그냥 써라.
멍청한 백종현 이하 한국의 칸트 철학자라는 인간들은 감성, 지성, 오성, 이성 이라 번역해 놓고 독자들이 이해하길 바랐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인간들이냐.
번역한 인간들은 이해를 했는지 그냥 카피 했는지 궁금하다.
통각은 칸트가 만든 개념입니다. 그걸 어떻게 번역하든 번역이 안돼요. 또한 독어도 한국어도 각각 표현이 안돼는 단어는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철학사전은 이미 수십년 전에 완성돼어있어요. 그것이 일본어랑 관계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그것을 한국어로 한다해도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수년전에 오성을 지성으로 바꿨지만, 깨달을 오 가 오히려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 흄, 칸트, 헤겔, 하이데거가 말 하는 이성은 서로 같지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성이라는 단어를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어려운것은 독일사람도 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그것을 쉽게 쓴다면, 육백쪽 페이지가 몇만 페이지가 돼어야 하겠지요. 그것이 그들의 사유 개념의 창작과 더불어 아주 힘든 작업입니다. 또한 그 한사람만을 연구하는 것은 작가 본인 만큼 힘들고, 전생을 걸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제발 그들의 노고를 비하하지마세요. 저 또한 수십번을 읽었지만, 지금 다시 읽어도 다른 사유로 들립니다. 참고로 자각과 지각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선생님의 의견 존중합니다. 그러나 저와는 다른 견해이시며, 동시에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통각은 칸트가 만든 개념이 아닙니다. 칸트는 한자어를 몰랐고, 일본 학자가 한자를 조립해서 그 단어를 발명했지요. 그런 게 번역인데, 우리는 번역된 그 단어를 마치 칸트가 말한 것처럼 착각하고, 그래서 그 번역어를 비판하면서 우리 언어실정에 맞게 새로운 번역어를 찾자고 하면, 무슨 대단한 권위에 함부로 도전하는 것처럼 인지편향을 일으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비판과 그 비판에 대한 멸시는 인류사에서 아주 흔하게 발생하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합니다.. 이 경우 극소수파에 해당하는
의심하는 자들은, 숙명적으로 자기들이미 다 검토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표현하더라도, 아무 생각없이 지적하는 미숙한 자 취급을 받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언어 번역에 관한 한 비판적입니다. 제 자신 칸트주의자로서 칸트 철학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굳이 어렵게 가면서 그 어려운길을 숭고하게 생각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나도 그런 다양성의 하나겠지, 라고 생각해 봅니다. 즐거운 한가위 명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한국어로 독림이 불가능하다. 한반도 사람들은 오랬동안 중국의 언어로 우리의 사상을 표현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한글은 학문할 언어가 아니다.
그냥 영어 단어 그대로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