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서 초월이란 무엇인가 | 칸트 | 순수이성비판을 쉽게 이해하는 지름길 같은 얘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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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8 авг 2024
  • 대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자신의 철학을 일컬어 '초월철학'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떤 뜻을까요? Transcendental philosophy입니다. 그런데 또 학자들이 말하지요 Transcendental와, Transcendent는 분명히 구별해서 이해해야 한다고요. 똑같이 '초월' 아니네요?
    쉽게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이 단어를 잘 아는 것만으로도
    칸트철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뿐더러
    현대 인류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얻습니다.

Комментарии • 70

  • @moonkim4123
    @moonkim4123 Месяц назад +1

    어려운 공부 하셔서 보석 같은 지식 포대 풀어
    모두에게 나눠주시는 넉넉한 마음
    항상 고맙습니다
    어느 한 낱말도 놓치고 싶지 않은 알찬 강의
    진국 강의에 흘린 땀방울의 노고에
    다시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본업이 따로 있고 틈틈이 하시며
    책까지 쓰시니
    동서로 번적번적 빛나는
    현대의 홍길동 투사 같습니다
    어린 시절 무척 사랑했던 나의 영웅 홍길동
    그 사랑에 다시 빠져버린 느낌입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속도 늦춰 쉬시며 가세요.
    건강하셔야죠.
    노란 앞치마 입고 부지런한 아침 햇살 마님
    오늘 아침 배달 신나게 나갑니다
    좋은 아침 받으시고
    햇살보다 더 밝은
    기분 좋은 날 되세요.

    • @codyjeong
      @codyjeong  Месяц назад

      항상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걸 자명하게 이해하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몇 년은 고생했던 것 같아요;;;; 홍길동이라니 천만의 말씀이에요.
      저는 제 나이대의 사람들이 하는 흔한 레포츠를 한다거나 시장에서 영업활동을 하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생각보다 시간이 남습니다. 게다가 저는 게을러서 생각하고 글쓰는 정도의 최소한의 단순한 활동만을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런던여행이 좌절된 코로나 이후로는 지구는 그저 한국과 일본만 있는 very little planet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한국과 일본 왕래하는 것 빼고는 나머지 나라들은 우주에 있는 별처럼 멀게만 느껴집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단순한 활동, 작은 세계에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 @gardenataraxia9624
    @gardenataraxia9624 Год назад +14

    철학이 쓸데없고 어렵고, 심오하다는 이미지를 벗어나서 많은사람들이 관심을 가져볼 수 있는 주제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하시는 분들께도 감사하고요. 잘 보고 있습니다🙂

    • @codyjeong
      @codyjeong  Год назад +2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그게 어떻게 도움이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 @lydianmelody7468
    @lydianmelody7468 5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인문학 박사를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영어단어와 연결시켜서 설명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한국어로 철학책 읽었을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미국에와서 영문을 읽으니 이해가 더 잘되더라구요. 이렇게 한영을 연결해서 설명해주시니 명확하고 쉽네요. 감사합니다.

    • @codyjeong
      @codyjeon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굉장히 영광입니다. 실은 저도 영어로 텍스트를 읽고 그것을 평범한 우리말로 매칭하기 시작하면서 고전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기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prima0915
    @prima0915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감사합니다.

    • @codyjeong
      @codyjeon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아, 슈퍼 땡스라는 게 있었군요. 처음이에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urbansketcher4488
    @urbansketcher4488 4 месяца назад +3

    동의합니다!!!!!!

  • @jungodogodogodo8448
    @jungodogodogodo8448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마지막 인격의 개념이 나왔을 때 엄청난 쾌감이 느껴졌습니다 칸트의 개념을 깨끗하게 전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codyjeong
      @codyjeong  3 месяца назад

      네. 저도 그 부분을 깨닫게 됐을 때 상당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 @user-bp6yy4iq7b
    @user-bp6yy4iq7b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감사합니다ㆍ 잘 들었습니다ㆍ😊

    • @codyjeong
      @codyjeong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네. 시청해 주셔서 저도 감사합니다.

  • @Grrrrrrrka
    @Grrrrrrrka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정말 최고십니다....👍🏻

    • @codyjeong
      @codyjeong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job3544
    @job3544 Год назад +1

    깔끔한 설명 감사합니다.
    어려워하고 헷갈려하던 것들을 한방에 해결하는 내공이 있으시네요, 엄청기대가되고 샘과의 만남 행운❤입니다.
    많은이에게 소개하겠습니다.😅

    • @codyjeong
      @codyjeong  Год назад +1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많이 공유해 주세요~~~

  • @user-vh8ob7cr5i
    @user-vh8ob7cr5i Год назад +5

    철학서라는 걸 읽다보면, 온통 그들만의 씨나락 까먹는 소리 뿐이다. 이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나 이런 말을 하나? 일상언어로는 철학을 못하나? 이런저런 번역서를 보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한국의 철학자들은 너무나도 무능하다는 거였다. 반면 관심을 갖고 다가가는 사람조차도 다시는 철학을 돌아보지 않게 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오랫동안 일상언어로 된 철학서를 만나는게 소원이었다. 다행히 선생님 같은 분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인간의 일상언어로 바꾸어주고 계시다.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영상을 열심히 시청하면서 질문하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codyjeong
      @codyjeong  Год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궁리하여 보탬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순수이성비판 전부를 평범한 한국어로 번역해 보고 싶다는 게, 저의 희망입니다. 생업을 하면서 조금씩 하는 작업이라 정말로 가능할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현해 보고 싶어요.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가장 평범한 언어라는, 개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 @user-vh8ob7cr5i
      @user-vh8ob7cr5i Год назад +1

      @@codyjeong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꼭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qe8dy2hx6c
    @user-qe8dy2hx6c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제 생각에는 transcendental을 "인류 공통의" 또는 "경험을 넘어서는" 이라는 뜻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에 길더라도 "경험을 뛰어 넘는 인류 공통의" 란 번역이 의미적으로는 더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 @codyjeong
      @codyjeong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네, 그런 식으로 바꿔 보면서 읽으면 아주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순수이성비판에서는 그 단어가 수백번 나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텍스트에서는 ‘초월’로 번역하여 쓰되, 선생님 말씀처럼 바꿔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user-ug2el2mr5k
    @user-ug2el2mr5k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독일 책 읽으면 늘 느끼는 거지만
    단어 하나 가지고 엄청나게 다양하게 정의를 내리고 그 애매한 용어로 책 한 권 뚝딱!
    컴퓨터 프로그래밍 하면 define문 엄청 많이 써서 새로운 스크립트 언어를 만들어 버리는 특이한 개발자들과 비슷..ㅋㅋ

  • @macklee5891
    @macklee5891 Год назад +4

    구독자 번성해라~

    • @codyjeong
      @codyjeong  Год наза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user-zj6bw5jt8d
    @user-zj6bw5jt8d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제 지도교수님이 칸트의 초월철학은 순수이성비판에는 적용할 수 있지만, 실천이성비판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심지어 코디정님의 영상을 보니, 초월적을 인류공통의 라고 이해할 수 있다면, 실천이성비판의 윤리형이상학도 경험에서 벗어나서 정립되는 도덕법칙에 대해서 초월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교수님이 a priori 만 칸트 윤리학에 적용된다는데 이게 맞는 말인가요?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논문 작성에서 제가 칸트 윤리학은 초월철학이다 라고 썼다가 지적받았습니다.

    • @codyjeong
      @codyjeong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아, 초월이 인류공통이라는 의미는 이론적인 형이상학 관점에서, 흔히 말하는 인식론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초월이라는 단어는 인류공통의 의미가 있습니다. 경험의 한계(제한)을 넘어 인류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형식이나 개념의 존재나 역할이 초월이고, 그래서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초월을 인류공통으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경험의 한계에 구속되지 않는 선천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것이 초월입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초월은 결국 경험과 무관하게 변함없는 형식, 즉 프레임입니다. 그래서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는 칸트철학은 초월철학입니다. 칸트 본인이 몇 번이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도덕철학은 초월철학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은 형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드시 경험이라는 내용(질료)와 불가분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도덕법칙이 비록 형식(프레임)이기는 해도, 그것은 어떤 보편적인 법칙으로서 내용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각자 개인이 자기 준칙을 보편화시키는 조건이고, 준칙 자체에서 이미 초월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하라‘라고 할 때 이미 경험적이 됩니다. 도덕의 내용은 모두 경험적이고, 그러므로 초월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행동 자체가 아니라, 도덕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순수이성(실천이성)의 존재와 기능을 근원적으로 탐구한다면, 다시 초월철학이 됩니다…

    • @user-zj6bw5jt8d
      @user-zj6bw5jt8d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codyjeong 아 감사합니다!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칸트가 순수실천이성비판이 아니라, 실천이성 일반에 대한 비판이라고 얘기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을 의미했던 것이군요! 도덕법칙을 발견하는 과정은, 도덕적 가치를 위해 질료를 제거해가는 과정으로 나아가지만, 결국 그것은 순수실천이성을 살펴본 것이라기 보다는, 도덕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부득불 진행되었던 것이었고 결국 코디정님 말씀처럼 행위와 경험은 질료와 불가분으로 결합되어 있으니, 비록 칸트가 윤리형이상학이라고 이름붙여도, 그것을 초월이라 부르기엔 어렵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ob3dh8nh9p
    @user-ob3dh8nh9p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정말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codyjeong
      @codyjeong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ku9hj9er6e
    @user-ku9hj9er6e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시대에 맞게 철학자가 쓰입니다.
    지금 니체가 떠오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늘 철학자는 탄생하고 철학자란 현재 과거 미래가 한공간임을 아는자이며 그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그시대에 나타납니다.
    지금은 신이 자신이라는 인식을 하게됨으로 니체가 200년후에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 @thumbup8801
    @thumbup880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Transcendental 이 경험의 한계를 초월(=도외시, 무시, 고려하지 않는??)한, 모두가 경험한 '인류 공통의'라는 의미라면, 그 경험의 수준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요? 예를 들어, 경험의 양 또는 수준을 수치화하여 1인 사람과 50인 사람과 100인 사람이 있다면 모두가 공통으로 소유한 1의 수준을 초월적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요??? 한편, 번역의 완전한 독립은 매우 절실하고 필요한 인식입니다. 일본어의 잔재는 철학 뿐만 아니라 법학, 공학 등 전반에 걸쳐 있고, 영어 번역의 경우도 단어와 문장의 번역기를 돌린 것처럼 작업한 번역서가 무척 많습니다. 내용과 맥락을 이해하고 난 뒤 한국사람이 한국어로 글을 쓰듯이 번역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번역서가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옵니다. 코디정님, 홧팅!!

    • @codyjeong
      @codyjeon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아아, 그거 헷갈리시면 안 돼요~ transcendental은 경험의 한계를 초월에서 당신과 내가 같아지는 것인데요. 그런데 당신과 내가 경험이 다르잖아요. 그러므로 경험이 포함되면 같아질 수가 없어요. 경험의 수준을 말할 수조차 없는 거예요. 즉, 경험과는 무관한 '프레임'을 말하는 거예요. 당신과 내가 형식만 같다는 겁니다. 경험을 하든 말든, 무슨 경험이 있든, 당신과 나의 머릿속에는 동일한 형식이 있다, 그 형식의 특성이 transcendental입니다. 인류 공통의 형식이라는 것도 아주 많지는 않겠지요. 최소한도의 같은 게 있고, 그걸 탐구하면서 인류가 공통적으로 갖는 생각의 프로세스와 공통 특징과 그것의 한계를 밝혀보는 것이 칸트의 작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어떤 대상을 경험할 때, 그 대상에 대한데이터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데, 그때 그 데이터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변환된다는 거예요(마치 디지털 변환처럼 말이지요). 그게 무슨 경험을 하든 인류공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다음 머릿속에 들어온 데이터는 해석이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생각이 만들어지는데, 그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게 있다는 거예요. 이걸 설명하면 좀 길어지는데, 제 영상 중에 혹은 형이상학 시리즈 중에 칸트 부분을 시청하면 바로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번역은 늘 숙제이지요^^

  • @choi9031
    @choi9031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로 칸트철학에서의 초월 개념에 설명해주셨는데요, 철학일반 혹은 일상 인생사에서도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하게되죠. 그때의 초월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가령 '사람은 초월을 경험해야만 새로운 존재가 된다' 혹은 '진리의 목표는 초월에 있다'라던가, '초월자', '상황을 초월해서 바라봐야된다'등의 어구에서의 초월과는 다른가요?

    • @codyjeong
      @codyjeong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감사합니다. 인간의 언어는 변화하고 생동하면서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의 단어에 하나의 뜻만 담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도 여러 개의 뜻이 담기는 것 같아요.
      '초월'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칸트철학을 번역할 때 사용된 '초월'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인식(대상 인식)할 때 '경험의 한계'를 초월해서 인식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칸트철학이라는 맥락에서 그 의미가 생겨나겠지요. 그런데 우리말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초월은 또 다릅니다.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의미는 공통되겠지만, 사용된 맥락에서 조금씩 의미가 다르겠지요. 예시하신 문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더 많은 문장이 추가되면 더 정확한 맥락이 생기겠지요. 대상 인식과는 무관한 의미로 사용되는 초월 같아요.
      예를 들어 '해탈'이라는 용어가 불교에서 사용되는 정확한 의미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일상 언어에서는, 좀더 가볍게 사용됩니다. '난 시험점수에서 해탈했어. 그냥 보는 거야.' 이때의 해탈은 불교의 열반에 이르는 해탈과는 다릅니다... 그래도 의미는 통하잖아요? 그러면 언어의 역할로 된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choi9031
      @choi9031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codyjeong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 @user-7jf78kc2b5ilo
    @user-7jf78kc2b5ilo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초월 나오면 그냥 인류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것이 인간이 태어날때 가지는 것이라 생각하여 (선험적인) 인류라는 초월적 자아라 선험이란 뜻도 한편 이해는 됩니다 간단하게 “초월적 자아=(타고나는) 인류애”라 생각하면 될거 같습니다

    • @codyjeong
      @codyjeong  4 месяца назад

      네. 그렇게 이해하시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 @user-ub5en5cq8g
    @user-ub5en5cq8g 25 дней назад +1

    쇼펜하우어, 셸링 등의 transcendental realism도 인류 공통의 실재론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 @codyjeong
      @codyjeong  25 дней назад

      쇼펜하우어도 그런 주장을 했나요?? 셸링에 대해서는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잘 모르겠어요;;;

    • @user-ub5en5cq8g
      @user-ub5en5cq8g 25 дней назад

      ​@@codyjeong Frederick C. Beiser라는 철학자가 쇼펜하우어, 셸링의 세계관을 transcendental realism으로 해석했더라네요

  • @user-fy3ig4hr3h
    @user-fy3ig4hr3h 4 месяца назад

    우리가 성경이나 불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의 이유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할려고 하기 때문이죠.
    인간은 전체 즉 우주의 한 부분인데, 이 부분의 마음으로 전체(우주)의 섭리를 이해할려고 드니 각양각색의 해석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깨친다"의 의미는 개체의 틀을 깨고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각자가 가진 경험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깨침"에 이르는 것입니다.
    각자는 자기만의 경험의 세계를 가지며, 그 자기만의 세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기에 장님이 코끼리 더듬는 인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는 각자 다르기에 그 한계를 벗어나는 임계점또한 각자 다릅니다.
    그러나 각자의 임계점에서 그 한계를 넘게되면 공통된 인식을 갖게되며,
    그 공통된 인식이 곧 전체(우주)의 인식이되며 성경,불경에서는 이를 하나님, 부처님 혹은 천국,불국토라 명한 것입니다.
    전체(우주)또한 몸과 마음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전체의,개체의 몸이 靈혹은 精(holy spirit)으로 표현되고 전체의 ,개체의 마음이 魂 혹은 神(holy sole)으로 표현됩니다.
    성경이나 불경을 읽을 때는 이 전체와 개체의 구분이 되어야 이해가 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이 말은 개체의 마음이 없는 자를 의미하며,
    "나를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이르지 못 할 것이다"
    이 말은 "나" 즉 전체로서의 "나"에 이르지 않고 개체의 "나"로 존재하는 한 꼬끼리의 실체를 파악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일본어의 번역에 묶여있는 답답한 현실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선생님의 설명덕에 기존철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칸트,니체의 초월적이란 용어의 정확한 이해는 개체의 의식(마음)과 전체의 의식(마음)에 대한 이해없이는 제대로 된 해석이 잘 안됩니다.
    일례로 니체의"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를 제대로 해석한 책은
    제가 알기론 오쇼 라즈니쉬의 해석본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불경,노자,오쇼,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다석 유영모 -이 책들의 공통점은 전체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는 것입니다.
    칸트,니체,나아가 반 고호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전체의식이란 개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마음을 벗어난 상태가 - 깨침이고 초월이고 초인이 되고 그들이 사는 세상이 천국이고 불국토이고 영생이라고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 @user-uj3om9sv8c
    @user-uj3om9sv8c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코디정님 존경합니다

    • @codyjeong
      @codyjeon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감사합니다. 부끄럽습니다;

  • @kerons13
    @kerons13 Год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비전공자로서 매번 가르침 잘 듣고 있습니다~ 초월적 자아에 대해 질문이 있는데요. (1) '초월적'이 경험에 한정되지 않는 '인류 공통의'라는 의미에 가깝다는 말씀은 잘 이해가 되는데 '초월적 자아'라는 표현은 잘 이해가 안됩니다. 일상언어에서 '자아'라고 하면 경험의 주체로 흔히 생각되는데, 그렇게 보면 '초월적 자아'가 '경험을 넘어선 경험 주체'? 라는 말처럼 느껴져서입니다. '인격'이라는 표현도 일상언어로 보자면 경험의 결과물처럼 느껴집니다. 초월적 자아에 대해 조금 힌트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칸트는 전통적 개념인 '영혼'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인격 개념이 경험을 넘어서 있으면서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기독교의 영혼 개념과 또 비슷해보이기도 합니다. 인격 개념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정당화되는 논리에 대해 조금 더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dyjeong
      @codyjeong  Год назад

      네. 우리가 칸트 철학을 이해할 때에는 형식(form)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내용(matter) 관점에서 보면 헷갈리고 이해가 되지 않을 거예요. 경험은 내용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지식의 직선이 있다고 가정해 보지요. X라는 곳에서 경험이 시작된다고 보고요. AX는 경험이 없으니까 내용은 없습니다. 그리고 XB는 경험이 생기므로 내용이 채우어집니다.
      A____X________B
      제가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칸트가 생각하는 지식의 세계는 AB입니다. 사람들은 XB만 생각했습니다. XB가 생기기 전에 먼저 AX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형식입니다. 그런데 AX와 XB가 서로 다른게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직선입니다. 칸트는 AX의 형식은 XB까지 지속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즉, 형식은 AB 전체에 적용됩니다. 내용은 XB에서만 적용됩니다.
      손오공: A____X________B1
      저팔계: A____X________B2
      사오정: A____X________B3
      내용 영역에서는 사람들의 경험이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XB에서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모두 다릅니다. 그럼에도 AX 부분은 모두 같습니다. 그리고 '형식'면에서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AB 전체가 동일합니다. 여기까지 대략 이해되신다면 궁금하신 부분 대부분이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1) 자아는 '나는 생각한다'만을 갖고 있는 self-conciousness, 즉 자기 의식입니다. A~B까지 이어집니다. 당연히 말씀하신 것처럼 경험의 주체입니다. 그러나 칸트의 초월적 자기 의식은 '형식'입니다. 경험 주체가 등장하는 시점인 X 이전부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인격은 AB 전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있는 부분(XB)도 있지만, 공통된 부분도 있습니다.
      (2) Soul은 살아있는 생명에 관해서는 정신, 사후에는 영혼으로 칭해질 수 있을 텐데요. 제가 느끼기에 칸트 철학은 종교로서의 기독교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러나 철학으로서의 기독교라면 아마도 칸트 철학이 될 정도로 기독교 색채 강합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로 채워넣어도 그다지 문제가 생길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인간존엄성의 근거 혹은 인격에 관해서는, 아래 영상을 보시면 아주 잘 이해하실 것 같아요. 도움이 되었나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ruclips.net/video/er0qs1aoPGM/видео.html

    • @kerons13
      @kerons13 Год назад

      ​@@codyjeong 감사합니다.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초월적 자아는 지식의 세계 내에서 경험 이전에도 이후에도 항상 있는 것이군요. 경험의 내용이 담겨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요. 그렇게 보니 '선험적'이라는 번역어가 왜 부적절한지가 더 잘 이해가 됩니다.

  • @user-th3fb2qy9t
    @user-th3fb2qy9t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트렌센덴탈을 선험적이라고 번역한 것은 선험적 종합판단이 트렌센덴탈을 침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 경험 이전의 알 수 있는 것들, 이런 것들이 워낙에 칸트 철학의 근본을 이루기에 선험적이라는 단어가 선험적 종합판단에 그치지 않고 트렌센덴탈의 영역을 침범한 게 아닌가 싶네요
    저도 처음 배울 땐 선험적이라는 단어가 더 알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것과, 근본적이고 참된 이해를 돕는 것 중 단순히 이해하기 쉬운 것을 골랐었죠
    하지만 칸트의 사상을 배우고 더 나아가 칸트의 일생마저 돌아봤을 땐 선험적이라는 단어는 결국 칸트의 사상을 모두 다 담을 수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칸트 시대의 형이상학은 아무런 입증도 할 수 없는 학문 취급을 받으며 학문으로서의 자리를 잃어버린 상황이었죠
    따라서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을 통해 형이상학의 학문으로서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칸트는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선험적 종합 판단을 통해 설명하려 했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과연 그것이 객관적인가(타당한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인식을 통해 어떻게 객관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결국 칸트에게 주어진 궁극적인 숙제가 된 것이죠
    칸트는 "주관적일지라도 인류 전체가 보편적으로 똑같이 인식한다면 그것은 객관적인 것이다, 어차피 틀려도 이성에 한계가 있으니 알 수 없음"이라고 하며 숙제를 풀었죠(정확히 이딴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즉 보편성이 칸트가 주장하는 핵심인 것인데 선험적이라는 단어는 이 의미를 내포할 수 없는 반면에 초월적이라는 것은 이 모두를 다 담을 수가 있습니다
    결국 선험적이라는 단어는 칸트의 전체 철학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칸트 철학을 설명하는 하위 개념인 것이죠
    물론 단어 자체보다도 단어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단어에 너무 매몰되지 않는 것이 철학을 대하는 좋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처럼 단어 자체가 철학을 왜곡시키는 경우는 말이 다르죠, 선생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codyjeong
      @codyjeon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친절하고 상세한 말씀 감사합니다. 네 선생님 말씀대로 트란센덴탈은 '선험적'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여러모로 보나 타당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각자의 언어사용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제가 이해하는 칸트철학에서는, a priori이든 transcendental이든 경험에 선행한다는, 어떤 순서적인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선험'이라는 단어가 일본 누군가의 번역에서 따온 것인데, 굳이 이해가 되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인간 경험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의미의 단어를 굳이 경험에 선행한다는 의미를 섞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경험과 무관하게 있는 것: a priori (이것은 인간안팎으로 적용되는, 인간 머릿속에 있는 것에도 존재하지만, 수학이나 자연법칙의 진리에도 적용. 수학이나 물리학 지식은 a priori하지만 transcendental은 아님. 그러나 transcendental한 것은 모두 a priori함. 부분집합 관계) 저는 그래서 '선천적'이라고 했던 과거 번역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이걸 백종현 교수가 '선험적'으로 번역해 버리니까 논란이 생겨버렸습니다만.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지식행위를 할 때 인간 머릿속에서 경험과 무관하게 있는 것(그러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 transcendental. 백종현 교수번역처럼 '초월적' 번역이 자연스럽고 좋다고 봐요. 이걸 칸트학회에서 '선험적'이라고 아주 고집스럽게 고수하는데, 좀 아니라고 보고요.
      인간이 경험지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 transcendent. 다들 '초험적'이라고 번역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초경험적'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알기 쉬워보이고요.
      하여튼, 제 생각으로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굉장히 명료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은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이런 단어 몇 개 때문에 아주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며 깊게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영상 중에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중 칸트 부분이 있어요. 제가 이해하는 순수이성비판 이야기가 길지 않게 들어있습니다.

    • @user-th3fb2qy9t
      @user-th3fb2qy9t 5 месяцев назад

      @@codyjeong 감사합니다! 역시 내공이 어마어마하시네요
      저도 칸트의 철학은 사실 굉장히 명료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되게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굉장히 심플하죠

  • @user-cw1cg4np7x
    @user-cw1cg4np7x 19 дней назад

    우리가 쓰는 학문용어의 대부분을 일본의 지식인들이 번역한 용어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본에 대한 감정을 조금은 식혀두고 바라보면 어떨까합니다. 한반은 독일인 친구가 영어와 프랑스를 너무 자연스럽게 쓰기에 물어보니 우리나라의 사투리 쓰듯이 언어의 구조가 비슷해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서구 근대 학문이 소개되기 전 동북아시아는 한자를 기초한 성리학, 불교등 나름의 공통된 철학적 인식의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쓰는 고 최재희 선생의 "선천적'(a priori)도 주역의 천지 즉 경험 세계 이전을 의미한 것이라고 봅니다. 서구인들에게는 초월이라는 transcental은 신학적 의미를 체득한 그들에게는 명료한 합니다. 가시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눈'은 그 세계를 넘어서 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독교의 신은 그런 존재이고 그와 관련되어 쓰이던 중세철학의 용어가 초월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철학을 잊었기에 번역된 용어들이 더욱 낯설지 않나 생각합니다.

    • @codyjeong
      @codyjeong  16 дней назад +1

      저는 일본에 대한 감정 나쁘지 않아요... 어느 나라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라마다 다르지 않다고 보고, 게다가 저는 대체로 일본 사람들을 좋아해요~ 문화도 흥미롭고요. 그런데 학문으로서 일본
      사람들이 만든 용어 중에서 일부 용어의 경우, 한국인이 보통 생활에서 쓰지 않는 죽은 언어를 관례를 앞세우면서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은 공통점도 있겠지만 매우 달라요. 차이점을 몰라 보게 뭉뚱그리기보다는 선명하게 나타나는 용어가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상에서 설명한 칸트가 말한 transcendental은 신학적인 의미는 아니에요... 그런 의미로 transcendent라는 용어가 어울릴 것이고요. 그런데 비슷한 말이잖아요? 칸트도 혼용하기도 하고, 말씀하신 중세철학 의미로도 쓰고, 그렇지 않은 의미로도 쓰고요.. 그래서 논란이 났던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tv-nk5hn
    @tv-nk5hn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당신이 진정한 지식인입니다 감사합니다 철학의 문턱이 조금 낮아졌스❤니다

    • @codyjeong
      @codyjeong  3 месяца назад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람 느낍니다~~

  • @SteveJobs_
    @SteveJobs_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아프리오리랑 트렌센덴탈 차이도 설명이나 영상으로 하나 부탁드려요

    • @codyjeong
      @codyjeong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네. 언젠가, 누구나 쉽고 분명하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보겠습니다~

  • @byulsum
    @byulsum День назад

    transzendental의 번역 논란에 대해 채널주인께서 굳이 단호하게 '초월'이 맞다고 하시니 그 이유가 궁금해서 들어봤습니다.
    1. 말씀하신 내용의 핵심은 transzendental의 의미를 '인류 공통의'라는 의미로 해석하시는 것 같은데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순 없지만 칸트철학적 맥락과 의도에서 벗어난 해석이라고 봅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transzendental에 대해서 칸트가 설명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대상들이 아니라 대상들 일반에 대한 우리의 a priori(아프리오리/선험적) 한 개념들을 탐구하는 모든 인식을 transzendental(선험적/초월적)이라고 부른다. 이런 개념들의 체계를 transzendental-philosophie)라고 부를 수 있겠다." (, A 11)
    여기에 나온 칸트의 설명에서 tanszendental과 우리의 인식과 경험을 뛰어넘는다는 '초월'의 개념과의 연관은 없습니다. 칸트의 문헌 어디에서도 tanszendental을 '경험을 뛰어넘는' 초월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칸트는 이러한 의미의 초월을transzendent라는 단어로 따로 구별합니다. tanszendental을 초월로 번역하면 경험에 앞선 우리의 모든 인식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이라는 표현에서 파생된 '경험에 앞서'라는 부분만 괴이하게 강조된 표현이 됩니다. 채널주인께서 주장하신 '인류 공통의'라는 해석 역시 위 단어의 본질을 흐리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억지로 갖다붙인다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초월적'과 '인류공통'이 직관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연결되지도 않아보입니다.
    2. '초월적'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tranzendental이 셸링, 하이데거, 후설 등 다른 철학자들의 용어에서는 모두 '초월적'으로 번역되기에 번역의 일관성을 위해 칸트철학에서도 '초월적'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transzendental이 각 철학자의 철학체계에 맞게 번역된 것이고 칸트 역시 그 자신의 철학체계를 반영하는 번역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transzendental을 '초월'로 번역하면 경험을 넘어선다는 의미로 오역되어 칸트 자신이 비판철학전반에 걸쳐 주장했던 물자체에 대한 주장을 스스로 반박하게 되는 우스운 꼴이 됩니다. 실제로 경험을 초월하는 의미인 'transzendent'로 표현되는 용어를 칸트가 주로 부정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초월적'의 의미를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개발해내어 칸트철학의 맥락에 억지로 맞춘다고 하더라도 전혀 직관적인 해석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오해의 소지가 있고 그 피해는 후학들의 몫입니다.
    3. 저는 근본적으로 이 논쟁이 학술적 논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백종현교수의 칸트번역이 시작되기 전에는 선험/초월 논쟁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백종현교수 이전에 주된 칸트 번역서였던 최재희교수의 번역서에서도 transzendental을 선험적으로 번역했으나 이에 대한 큰 논쟁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번역 논쟁은 백종현교수가 '초월'이라는 번역을 사용하고 주장하면서 벌어졌고 그 당시에 한국 칸트학회를 중심으로 한 많은 칸트 연구자들 사이에서 몇 년에 걸친 논쟁과 토론 및 합의과정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백종현교수는 한국칸트학회측에 transzendental을 비롯한 번역의 문제에 대해 강한 불만을 여러 차례 제기하고 한길사에서 새롭게 발간하는 칸트전집의 광고문구를 문제삼으며 한국칸트학회와 지속적으로 대립해왔습니다. 양측의 감정적 대립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지만 결국 이 논쟁은 학술적 대립이라기보단 몇몇 연구자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건 싸움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채널주인께서 주장하신 '초월철학'이 '인류공통의 철학'이라는 생각을 존중합니다만 단호하게 '초월'이 맞다고 하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이런 논쟁적인 문제를 다루려면 좀 더 균형적인 관점에서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더욱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야합니다.

    • @byulsum
      @byulsum День назад

      덧붙여서 초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습니다.
      초월 超越
      명사
      1.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음.
      2. 철학 경험이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 그 바깥 또는 그 위에 위치하는 일. 스콜라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에 들지 않는 존재, 신(神), 선(善)이라는 개념의 본연의 자세를 가리킨다. 칸트 철학에서는 초감성적인 것이 우리들의 경험에서 독립하는 일을 가리키며, 실존 철학에서는 무자각적인 일상적 존재의 입장에서 철학적 자각의 입장으로 넘어서 나아가는 일을 뜻한다. 출처-표준국어대사전
      그리고 고려대국어대사전에서는 초월에 대해 '칸트철학에서는 감성적 직관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물자체(物自體)'라고 더욱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전적 의미를 따른다면 '초월철학'은 '물자체철학'이 되겠네요. 선생님께 칸트철학의 핵심인 transzendental-philosophie가 물자체철학이 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결국 transzendental이 '초월적'이라는 의미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모든 국어사전에 기재된 초월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고치고, 초월이라는 개념에 대한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이해를 모두 거스르고 새롭게 바꾸는 수고를 강행해야한다는 말이 됩니다. 몇몇 학자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국내의 모든 칸트연구자들과 대중이 양보해드려야 하는건가요?

    • @codyjeong
      @codyjeong  День назад

      네. 저는 영상을 통해 이미 저의 견해를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와 논쟁하기 위해 댓글을 단 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제가 선생님을 설득할 수 없는 것처럼, 선생님이 저를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transzendent와 transzendental의 차이를 제가 모르거나 헷갈릴 리 없는 것처럼, 이 두 단어의 차이를 명확히 제안한 칸트 본인이 모르거나 헷갈릴 리 없겠지요? 그러나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transzendent를 사용할 곳에 transzendental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사용합니다. 아시다시피 한두 곳이 아닙니다. 칸트가 헷갈려서 그런 걸까요? 실수였을까요? 처음에는 저도 실수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럴 리 없다는 건데요. transzendent와 transzendental은 우리말로 '초월적'이라고 번역해도 괜찮은 공통점이 있다고, 철학사 관점으로 원래 그렇게 사용해 온 단어라고, 칸트 자신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한국칸트학회의 공식 입장과 다르게 말이지요!). 두 단어는 모두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의 공통점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전자는 인식대상에 대해서, 후자는 인식주체에 대해서 그런 의미를 갖습니다. 대상이냐 주체냐의 구별은 맥락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칸트는 transzendent와 transzendental를 구별하지만, 또 두 단어를 혼용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칸트의 생각에 더 부합하려면, transzendental을 '평범하게' 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저는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합니다.
      2. 이 단어의 번역과 관련하여, 걱정하시는 대부분의 문제는 그냥 주석을 달면 충분합니다. transzendent와 transzendental에 대해서, 전자는 '초경험적', 후자는 '초월적'으로 번역을 하고, 전자는 '경험의 한계 너머에 있어서 알 수 없는', 후자는 '인류가 경험과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으로 주석을 답니다. transzendental를 우리말도 아닌 '선험적'이라는 일본식 한자어로 번역한 관습을 고수하려다 보니, 스텝이 꼬인 것입니다. 그런데 a priori도 번역해야 하니까 더 스텝이 꼬여버린 것이고요. 제 생각으로는 백종현 교수가 a priori를 최재희의 '선천적'이 아닌 '선험적'으로 바꿔 번역하고 보니, transzendental를 '선험적'에서 '초월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에 맞서 칸트학회는 transzendental은 초월적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다시 a priori의 번역 문제가 남습니다. 비슷한 두 단어(선험적/선천적)가 동어반복으로 이어지니까,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죠. 그래서 칸트학회는 a priori를 '아프리오리'로 음역하자는 기괴한 결론을 내린 겁니다. 하여튼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대중의 평범한 언어로부터 일탈하니까, 칸트 사상이 일부 이너서클의 철학으로 빛이 사그라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논평을 해둔다. 그 중요함은 앞으로 이어지는 모든 고찰에 미치니 그러므로 주의 깊게 기억해야 한다. 모든 선천적 인식이 초월적이라고 칭해지는 것이 아니라 , 어떤 표상들(직관과 개념)이 선천적으로 적용되거나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며, 또한 그런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우리가 선천적으로 인식하는 오직 그런 인식만을 초월적이라 불러야 한다(즉, 인식을 선천적으로 가능하게 하거나, 선천적으로 사용하는 것)."A56/B80
      위 단락의 문장에서, 칸트학회는 초월적 --> 선험적, 선천적 --> 아프리오리로 번역하자는 입장인데요. 도대체 인류의 빛나는 책을 평범한 독자들이 읽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얻는 게 무엇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주석을 달면 그만인 것을요.
      3. 백종현 교수가 서울대 교수로 현직에서 딱 권위를 지키고 있을 때에는 아무런 말을 못하다가, 퇴임하니까 막 싸잡아서 모욕주는 것 같은 모습처럼 저는 비쳐집니다. 그렇다고 백종현 교수의 번역이 훌륭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지요(그래도 그 번역이 당시 학술번역대상을 수상했더라고요;;) 우리말의 무덤이자, 칸트철학의 묘비명 같은 번역이라는 느낌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백종현 교수의 번역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잘 읽었습니다. 다만 '초월적'이라는 번역을 추방하고 '선험적'이라는 번역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이 안됩니다.
      개인적으로 지금껏 한국칸트학회의 입장을 보면서, 그들의 사이트에서 공표한 번역어 규칙을 보면서, 아니, 대한민국에서 칸트를 전공한 연구자들의 집단 지성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 하는 놀라움을 체험했습니다. 1990년 이후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이전에는 고등학교 도덕 시간에서 순수이성비판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등학교 과정에서 순수이성비판은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칸트 사상의 영향력은 더 축소된 듯한, 칸트 칸트 하지만 사람들의 그 사상의 진면목을 더 모르게 된,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대략 이 정도로 하지요. 이미 영상을 통해 저의 입장을 올렸고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견해를 갖고 있고
      대체로 설득이 어렵고, 저 또한 대체로 자기만족적인 입장 피력 같아요.
      긴 댓글을 달아주어서
      그리고 또 저의 답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zf3bt7vb8e
    @user-zf3bt7vb8e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코디정샘의 이성 원리는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ㅎㅎ

    • @codyjeong
      @codyjeong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감사합니다. 가급적 쉽게 자명하게 설명하는 게 제 언어활동의 목표이기는 합니다만, 어쩌면 제가 아는 게 그다지 많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 @error-unauthorized_access
    @error-unauthorized_access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두의견을 합쳐서 초험적 이라고 하면 안되나요?

    • @codyjeong
      @codyjeong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제 개인적으로는 초험이라는 단어가 한자조립어일 뿐 일상 언어가 아니어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초험이라는 단어가 학계에서는 transcendent의 번역어로 쓰이고 있습니다(저는 사견으로는 '초경험'으로 번역합니다).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transcendental입니다. 전자는 경험을 초월한 대상으로 인간이 공통적으로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을 지칭하고, 후자는 경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미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 @jbshim7648
    @jbshim7648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아포리오리 를 본능적 이렇게 하면 넘 저급하나요??

    • @codyjeong
      @codyjeong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네. 그건 좀 무리예요. 그게 지식 혹은 앎을 전제로 한 용어입니다. 인간과 관련없는 지식, 예를 들오 수학이나 자연과학의 지식은 아프리오리하지만 본능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인간에 관해서 말하자면, 아프리오리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 즉 프레임에만 관련됩니다. 여러모로 본능과는 좀 멉니다~~

  • @user-jr1ho3zc2q
    @user-jr1ho3zc2q 2 месяца назад

    내가 간단히 정리한다. 수학이나 과학의 지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인식되는 인식의 틀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경험은 인식의 틀을 통과해야 지식이 된다. 인식의 틀이란 1+1=2라는 인식원칙이다. 이건 모든 사람이 아무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은 수학이나 과학에서만 적용된다. 형이상학에서는 통하지 않으므로 과학적 방법으로는 도덕을 설명할 수 없다. 도덕은 실은 맹자의 성선설과 유사한데 칸트의 설명이 맹자의 설명보다 후지다. 인간은 본디 선한 것을 추구한다. 선이란 잘한다는 뜻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선을 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을 행함으로 행복하다. 칸트는 행복과 선을 다른 것으로 주장했다. 넌센스다. 다만 선이 선인 이유는 관해서는 즉 선이냐 아니냐를 판별하는데 있어서는 나의 준칙을 보편적 법에 일치시키는 방식이 깔끔하다. 이밖에 공통 인식의 틀이 없는 영역들에 대해서도 칸트가 각각 별도로 언급했는데 이런 것들은 공자 맹자가 일찌기 했던 간단한 몇마디면 되는데 유럽애들은 별것도 아닌것을 빌빌 꽈서 내놓고 어렵게 설명한다.

  • @rockk3377
    @rockk3377 Год назад +1

    문맥상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선생님 생각만 이야기 하지... 무슨 일본 운운 폄화 인신 공격성 발언에에 ... 이미 논리보다 목적을 정하고 이야기 하는 느낌이. 글고 이분야는 공부 많이 필요한 분야라서 공부 대충한 사람들은 그냥 가만히 있는게, 그리고 관념적 이야기고 애매한 부분도 있어 답도 없을 수 있는데 한쪽편 드는 것에서 논리 상실. 끝.

    • @codyjeong
      @codyjeong  Год назад

      네. 공부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알게 되는 것도, 보이는 것도 많아집니다,

    • @Flying_Bird-z
      @Flying_Bird-z Год назад

      코디정님을 잘 모르시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코디정님이 어떤 분인줄 아신다면 이렇게 말 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