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부터 87년까지 선시험 후지원때는 매년 미달로 안좋은 성적으로 명문대 가는 학생들 많이 생겼음 근데 방송에서 잘못 말한게 선지원 후시험은 88학번 부터고 87까지는 학력고사 먼저 보고 후지원 했음 선지원 후시험때도 미달은 많이 생겼지만 선시험 후지원때가 미달 더 많았음
81년 82년 2년간만 미달사태가 있었고 그후에는 없었습니다 81년에는 서울대 연고대가 미달이 많았어요 고득점자들이 모두 성대 한대 외대 중대에 몰렸어요 이4개대학이 점수가상승했죠 그다음해 82년은 한대가 미달이 많았어요 오히려 서울대 연고대는 경쟁율이 쌨어요 그리고 외대 성대가 죽쓰고 중대도 경쟁률이 올라가 점수가 올랐어요 그리고 83년부터는 안정화 돼가고 이때부터 70년대 5개명문이라고 하는 서연고 서강외대 만 빼고 점수 280점이상 혹은 300점이상 학생에게 월 30만원에 등록금면제 를 앞세워 고득점 학생을 유치했습니다 5개대학중 외대빼고 4개대학은 이런 장학혜택없이도 고득점유치에 지장이 없었는데 외대는 이상한 고집부리다 이기간 동안 폭망해서 8위권 바깥으로 밀려났어요
87년까지는 학력고사 점수 나오면 배치표를 보고 그 점수에 맞는 학교를 선택해서 지원하는 방식이었음. 다른 정성적인 부분에 대한 점수 없이 오로지 학력고사 점수와 내신으로만 대학을 갈 수 있었기 때문에 학교공부만 가지고도 개천에서도 용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시험제도 였음. 주입식이니 학생의 창의성이 떨어지니 뭐니 해도 그래도 그때의 방식이 학생에게는 모르겠지만 부모님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되는 시험제도였음.
@@angju4793그건 예비고사 시절이고요. 학력고사 시절에는 성대,외대 모두 전기대였습니다 82년 학력고사로 변경되면서, 대부분의 대학들이 전기대가 되고, 후기대중 제일 좋은 대학이 명지대와 광운대였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명지대,광운대에 학교수준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점수의 학생들이 입학하는 일이 발생했죠
학력고사 시절에는 전문대는 관심도 없었고 후기대는 대학이 몇개 없어서 전기대 떨어지면 바로 재수각입니다. 이런 방식이 과연 옳은 방법이었을까요? 지금은 6장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그래도 지금이 그때 보다 더 공정하다고 말을 자신있게 할수는 없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81년부터 87년까지 선시험 후지원때는 매년 미달로 안좋은 성적으로 명문대 가는 학생들 많이 생겼음 근데 방송에서 잘못 말한게 선지원 후시험은 88학번 부터고 87까지는 학력고사 먼저 보고 후지원 했음 선지원 후시험때도 미달은 많이 생겼지만 선시험 후지원때가 미달 더 많았음
81년 82년 2년간만 미달사태가 있었고 그후에는 없었습니다
81년에는 서울대 연고대가 미달이 많았어요
고득점자들이 모두 성대 한대 외대 중대에 몰렸어요 이4개대학이 점수가상승했죠
그다음해 82년은 한대가 미달이 많았어요 오히려 서울대 연고대는 경쟁율이 쌨어요
그리고 외대 성대가 죽쓰고 중대도 경쟁률이 올라가 점수가 올랐어요
그리고 83년부터는 안정화 돼가고
이때부터 70년대 5개명문이라고 하는 서연고 서강외대 만 빼고
점수 280점이상 혹은 300점이상 학생에게 월 30만원에 등록금면제 를 앞세워 고득점 학생을 유치했습니다 5개대학중 외대빼고 4개대학은 이런 장학혜택없이도 고득점유치에 지장이 없었는데 외대는 이상한 고집부리다 이기간 동안 폭망해서 8위권 바깥으로 밀려났어요
선지원 후시험으로 바뀌어서 피해 본 사람 88년 학력고사 수석 이종진씨, 수석할 줄 알았으면 전자공학과 갔었을 사람.
수능 1세대인 75년생 94
학번으로 문득 생각이 나네요.
고2인 92년 갑자기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어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을 잠재우기위해 수능을
2번 봐서 잘 나온 점수로 대학
진학했던 기억!!
87년까지는 학력고사 점수 나오면 배치표를 보고 그 점수에 맞는 학교를 선택해서 지원하는 방식이었음. 다른 정성적인 부분에 대한 점수 없이 오로지 학력고사 점수와 내신으로만 대학을 갈 수 있었기 때문에 학교공부만 가지고도 개천에서도 용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시험제도 였음. 주입식이니 학생의 창의성이 떨어지니 뭐니 해도 그래도 그때의 방식이 학생에게는 모르겠지만 부모님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되는 시험제도였음.
안녕하세요. 도덕수업에서 선플 달기 챌린지를 하고 있는 중학생입니다.
항상 유익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입 학력고사가 수능의 원조😨😨😰
저렇게 해서까지 대학을 가야 되나 대입 자체를 없애야 한다
왜냐면 너가 학벌 콤플렉스가 있어서? ㅋㅋㅋㅋㅋ
학력고사든 수능이든 학부모랑 수험생들 힘들게 하는건 매한가지
❤😂🎉❤ 정말 힘든 학력고사
사실조사도 제대로 안 하고 방송하네. 선지원후시험은 69년생이후에만 해당함. 학력고사 제도자체가 선지원후시험이 아님. 그리고 암기가 많았을뿐 죄다 암기로 해결되지도 않고 과목이 10~15과목이고 분량이 지금 수능의 10배 이상이라 보면 됨.
그리고 전기후기는 일종의 분할모집성격임.후기에 성대 외대 있었는데 서울법대떨어지고 성대법대 서울대영문과 떨어지고 외대영어과 가는 식이었음.
지금 수능에 비하면 그냥 암기암기암기지 ㅋㅋㅋㅋㅋㅋㅋ 무슨 물리도 대충 질량이 x고 힘이 y 일때 가속도는?
@@angju4793그건 예비고사 시절이고요. 학력고사 시절에는 성대,외대 모두 전기대였습니다
82년 학력고사로 변경되면서, 대부분의 대학들이 전기대가 되고, 후기대중 제일 좋은 대학이 명지대와 광운대였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명지대,광운대에 학교수준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점수의 학생들이 입학하는 일이 발생했죠
@@당근-k5m 엥 성대도 후기대였는데
일본은 아직도 저렇게 시험 보지 않나요
93년도 마지막 학력고사 314점 맞고 홍대 경영 간 내가 신화다.
ㅋㅋ
울며 반수
근데 내가 볼 땐 학력고사 잘하던 애들이 수능도 잘 봄
학력고사 시절에는 전문대는 관심도 없었고 후기대는 대학이 몇개 없어서 전기대 떨어지면 바로 재수각입니다. 이런 방식이 과연 옳은 방법이었을까요? 지금은 6장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그래도 지금이 그때 보다 더 공정하다고 말을 자신있게 할수는 없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그래도 사교육 없었고 부모님들 경제적 부담은 작았다..
미달이라도 최저학력기준이있었던거 같은데
Hi SBS
오늘거 빨리올려봐봐.백범김구선생님이 현상수배범임??
전문대 떨어지는 애들도 있었죠
입시로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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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는 문해력 전혀 없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