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해리스는 기독교의 표면적인 초자연적 전설이나 성경 구절에 대해서 비판을 했기 때문애 영양가가 없다고 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론 기독교 맹신자들의 위선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거 같고 (개인적 의견임) 피터슨 교수는 가치체계로서 기독교를 이해하고 있네요. 저도 이 부분은 그의 책을 읽어 봤기 때문에 동의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가치체계를 분명히 긍정적으로 도입 할 수 있는건 사실인데 해리슨은 현대인들의 도덕적 의무에 종교가 끼친 영향력을 원천차단 하고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뜻인거 같아요. 제 나름의 해석으로는.
멍청한 빠돌이 댓글과 차원이 다르네요. 확실히 조던 피터슨은 샘해리스와 달리 종교를 수단이라 보지 않고 역사적인 가치체계 혹은 그 이상인 원형으로써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죠. 허나 종교를 단순히 가치체계라고 부르기엔 과학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봅니다. 불교의 내용 중 양자이론 과학과 비슷한 개념의 인과성을 띤다는 점에서도 과학과 종교, 철학의 연관성 혹은 연결성는 놀라울 정도니깐요. 만약 해리스가 피터슨의 이야기를 다 이해하더라도 그 원형을 우선적으로 종교라는 가치체계를 표현하는 즉 도그마를 표현하는 종교(진리)를 우선으로 보냐 아니면 그저 수단만으로 볼 필요가 있느냐인데 이건 서로의 기질 차이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샘 해리스는 조던 피터슨이 굳이? 가치체계와 종교의 관계를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거 같습니다. 마치 그저 자신을 성찰하는 스스로의 가치체계를 한번도 진단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일차원적인 접근방식에서 삼차원 즉 종교를 환경이 아닌 이해해서 써먹을 수 있는 도구화(어른의 단계)까지 가지 못한 점에서 피터슨은 그를 어린애라고 표현하는 거죠
샘 해리스는 기독교 맹신자들의 위선같은 예를 종교의 단점으로 들었지만 위선이라는 행동의 근거에 종교가 있다는 증명이 없어요.(종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음) 종교와 관련된 표면적인 사실들을 기반으로 종교를 공격하는건 종교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하지 않고 너무 쉽게 대충 종교를 부정하려는 것 같아서, 저도 피터슨처럼 샘 해리스의 주장은 너무 얕다고 생각해요.
무신론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기독교인들도 간과하는 부분이 있죠. 바로 인권개념인데요. 이게 사람들의 인본주의적 사상에 의해 탄생하거나 과거에도 존중 받았던 걸로 착각하는 경향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인권개념은 종교개혁 과정에서 발견된 것들로 주로 청교도들에 의해서 발전 되어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의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종교의 자유와 권력과 종교기득권의 압제로 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 받기를 원했죠. 그것을 성경 말씀, 복음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천부적 인권에 대한 것들을요. 천부적 인권은 신이 부여하는 절대적 가치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것을 훼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하면 사람 스스로 인권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고 무효로 만들 수 있으며 더 이상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천부적 인권개념이 없습니다. 인본주의 사상에서는 당연히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천부적 인권이 부정되면서 인권을 부르짖던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무신론적 사회주의 국가들을 보면 충분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천부적 인권을 부정하고 자기들의 정의를 부르짖는 부류들로 부터 주장되는 극단적 논리들을 보면 인권의 가치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응당히 받아야 하는 권리란 무엇이며, 또한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할 때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있기 전 부터 진리와 법칙들이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류에게 내린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이며, 인권 또한 하나님 없이는 성립 될 수 없는 보편적 은총일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데에는 뛰어난 학자의 의견 같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분별력이 되어 판단하고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성경 말씀 안에 있습니다.
샘 해리스와 도킨스에 대해 피터슨이 신랄하게 지적한 것에 동의합니다. 특히 도킨스의 책이나 토론을 보면서, 그가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한 통찰력이 너무 빈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본주의자들만 공격할뿐, 기독교 진짜 사상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터슨이 얘기한 도스트옙스키나 톨스토이 등이 그들 책에서 보여준 사상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닫힌 세계에서의 자연주의 틀에 기독교진리가 맞지 않으니 '비진리'라는 과학주의적 주장만 할뿐이죠. 그러나 그 '과학주의' 역시 과학적 방법으로는 증명불가능한 하나의 철학적 방법론 중 하나일뿐이죠.
결국 영상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는 종교라는 것이 사회적, 문화적 유산이 사회에 적응된 사람의 가치적 판단에 혹은 무의식적 판단 속에 내재되어 있다. 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다만 이는 주체가 판단한 세상의 원리라는 것이며 사회와 이에 적응해가는 개체의 사회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학습되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는 개체를 둘러싼 사회 다수가 가지고 있어 공통적으로 표상되는 어떤 것을 학습한다. 뜻인 것 같다. 이는 결론적으로 종교라는 것의 당위성이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한 주장이라고 본다.
@@tridish7383 과학이라는 것이 꼭 발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한,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한 과학은 발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과학을 연구할 것이고,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 자연과학적 발견들을 기술에 적용시킬 테니까요. 그러니 과학은 '발전야만 하는(should)' 것이 아니라 '발전 할 수 밖에 없는' 무언가라는 것입니다.
@@태형-f3b @태형 조금 혼란스럽네요. 과학은 자본적 생산체계에 종속되나요? 아니면 본능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된 필연인가요? 제 질문이 불충분했던것 같습니다. 제가 의도한 바는 과학이 발전하는 기술적 원인이 아니라 도덕적 목적에 있었는데, 조금 엇나갔네요 ㅎㅎ 과학도로써, 저는 진실을 말하고 기꺼이 지식을 위해 헌신하며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겸허히 인정하라고 배웠습니다. 비단 자연과학 뿐 아니라 배움에 뜻을 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많은 우연과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이죠. 제 생각에, 과학은 필연도 아니고 자본에 종속되지도 않으며, 그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라는 도덕적 명령에 셀수없이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tridish7383 과학이 시작 된 것은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에서였고, 자연과학이 계속 발전해 온 것 또한 인간의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공학 등 기술적인 것들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누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효율성을 따지고 편리성을 따져가며 힘들게 기술을 발전시킬까요? 또한 모든 학문에 있어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목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과학은 자연에 관한 호기심을 활용하기 위해, 공학은 돈을 벌기 위해, 행정학은 나라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진실은 추구하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학문을 할 때의 방법론에 관한 도덕적 명령이지요.
일단 영상을 보시기에 앞서 알아야하는 것은 이 사람이 정의하는 믿음과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믿음은 다르다는 것 입니다 조던 피터슨은 인간의 경험 그리고 오랜 세월 생물학적, 유전적, 문화적으로 형성된 가치 체계를 믿음이라고 정의해요. 그리고 그 가치 체계가 당신을 행동하게 만들고. 그래서 당신의 행동을 보면 당신이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당신이 실제로 믿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고 있고요.(피터슨 책 내용 중)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좀 다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하나님께서(주체) 우리가 믿게 하시는 믿음(믿음은 선물이고 은혜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죠 결론: 피터슨은 인간의 행동을 믿음의 전부로 규정짓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기반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영상 보고 이해했는지 물어볼려는 건데요... 피터슨이 얘기하는 것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내면의 가치체계가 기독교적 사상에서 왔다는 건가요?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요? 자기 내면의 가치체계라는 것이 유대 기독교적인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샘 해리스나 리처드 도킨스 같은 분들은 이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harat ho 제가 이해한 바로는 무엇이 먼저이냐는 알 수 없다는 것 같습니다. 고대부터 종교는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로인해 지금까지 생존한 우리 인류는 그 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있죠. 그것이 유전자에 새겨진 초월적 존재의 흔적인지, 혹은 유전자에 새겨진 흔적을 바탕으로 초월적 존재를 만들어 냈는지는 알 수 없죠.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한 가지 오해만 정정 한다면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믿음은 두 가지 입니다. 그러니 마치 피터슨이 말하는 믿음이 성경에는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시면 안 됩니다. 성경에는 실천적 믿음과 존재적 믿음을 구분합니다. 존재적 믿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고. 실천적 믿음은 선물 때문에 중생한 사람이 의지적으로 신뢰하게 된 믿음이죠. 이 둘 모두 성경에 나오니 피터슨이 말한 믿음이 기독교와 틀린 건 아닙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의 중학교입학식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난 너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너가 술담배만 안하고 학교만 잘다니면 너가 해달라는거 다 해줄께 .. 그러나 만일 니가 술담배를 하고 학교를 빼먹을 경운 그때 넌 내게 아주 혹독한 벌을 받을거야. 난 너 손가락을 자를거야 라고 말을 했다 칩시다. 그래서 아이도 예 알았어요하고는 학교를 잘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처음에는 공부도 잘하고 학교도 잘다니고 부모님 말씀도 잘들었는데 중3시절 사춘기가 오면서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방황을 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담배도 피게 되고 또 어쩌다보니 학교도 빠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부모님이 그걸 알게 되었고 아들을 불러서 넌 내가 했던 얘길 잊었느냐? 라고 꾸짖었고 아들은 "죄송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용서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 그러나 부모님은 말했습니다. 아니.. 용서 못하겠는데.. 하면서 갑자기 예 잡어 하면서 하인들에게 명령하니 하인들은 그 아들의 양팔을 잡았고 아들은 " 아....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 하며 울부짖었지만 " 도마위에 그 아들의 손을 올려두고 무시무시하게 날이 서있는 시칼로 아들의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너무도 사랑이 많아 이 아이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또 벌도 주었습니다. 이웃들도 이 아주머니에 이런 사랑에 박수를 보내며 이 아주머니를 찬양했습니다. 근데 이게 사랑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잘못된 행위에 대한 악에 대한 벌은 따르게 되는게 공의겠지요. 그런데 그 정도가 합당해야 하는데 죄에 비해 벌이 과할때는 우리는 이걸 사랑이라고 보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잘못되었을때는 부모도 자식에게 얼만큼 주의를 잘 시켰느냐.. 얼만큼 알아듣게 교육을 한번의 말로 끝나는게 아니라 과정과정에서 잘 이끌고 지도했느냐 하는 부분에서 부모에게도 그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문제구요.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께요.. 어느날 시골에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중인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아이가 없었고 어느날 입양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고아원에서 한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이는 초등학생이었고 한창 호기심도 많고 먹고 싶은것도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그 아이에게 엄마라고 부르게 했고 그 아이는 엄마를 잘따르는 착한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그 아주머니는 가게에 있는 거 하루에 두개씩은 먹게 해주겠지만 그 이상은 안돼 그리고 엄마에게 말을 하고 하루에 두개씩은 먹게해주겠지만 만일 엄마 몰래 먹거나 그랬다간 넌 이집에서 쫓아낼거야라고 말을 했습니다. 내가 아예 너를 가게에 못오게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게 자유의지를 주기위해 가게에서 물건을 나몰래 먹지 않을 수도 또 먹을 수도 있게끔 해줄거야 이게 다 너를 위한 사랑이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무슨말인지 긴가민가 했지만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가게 잠깐 보고 있어 엄마 잠깐나갔다올께라고 하며 가게를 비우고 나갔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그 아이가 충분히 몰래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나 그런걸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중 옆집에 불량청소년이 이 가게를 들어왔습니다. "어른 안계시니? "하고 그 청소년은 아이에게 물었고 아이는 " 엄마 잠깐 어디 갔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불량청소년은 "아 그래? " 하면서 이 아이에게 " 야 우리 니네 엄마몰래 아이스크림하나씩 먹을까? 엄마한테 말안할테니 너도 말하지마 " 라고 했고 아이는 " 안돼요. 엄마가 엄마허락없이 몰래 가게 물건 꺼내먹으면 저 쫓아낸다고 했어요 " 라고 했습니다. " 그러자 이 청소년은 ㅎㅎ 야 이 순진한 친구야.. 그거하나먹었다고 설마 널 쫓아내시겠어? 걱정마 너 쫓겨나지 않으니.. 그러지말고 이거 하나 먹자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한입먹었습니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ㅎ 야 너도 먹어봐" 이렇게 말하니 아이도 " 아 정말요? 흠.. 안되는데 ㅜㅜ 하다가 아 그럼 한입만 먹어볼께요" 하고 한입먹었습니다. 아 그 맛은 너무 꿀맛이었고 한입이 두입이 되고 서로 그렇게 아이스크림 한통을 같이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빈통도 집밖에 멀리 버려서 증거를 인멸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주머니는 가게에 cctv를 달아놓았고 그걸 몰랐던 아이는 아주머니가 자기가 없는 사이에 이 친구가 몰래 먹었을 수도 있을거라고 예상했기에 cctv를 돌려봤고 아니나 다를까 이 친구가 먹은걸 확인하고는 이 친구를 호되게 꾸짖으며 " 내가 말했지 너 나 몰래 먹으면 쫓겨날거라고" 이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ㅠㅠ " 라고 서럽게 울었지만 이 아주머니는 " 내가 왜 니 엄마야.. 난 내말을 우습게 아는 너같은 애를 자식으로 둘 생각이 없어.. 불법을 행하는 아이야 이집에서 당장 나가거라 " 라고 하며 그 아이를 집밖으로 내 쫓아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너무도 사랑이 많아 이 아이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또 벌도 주었습니다. 이웃들도 이 아주머니에 이런 사랑에 박수를 보내며 이 아주머니를 찬양했습니다. 근데 이게 사랑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잘못된 행위에 대한 악에 대한 벌은 따르게 되는게 공의겠지요. 그런데 그 정도가 합당해야 하는데 죄에 비해 벌이 과할때는 우리는 이걸 사랑이라고 보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잘못되었을때는 부모도 자식에게 얼만큼 주의를 잘 시켰느냐.. 얼만큼 알아듣게 교육을 한번의 말로 끝나는게 아니라 과정과정에서 잘 이끌고 지도했느냐 하는 부분에서 부모에게도 그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문제구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상민-e6d 종교가 악하다라는건 너무 광범위한 정의인데요?: 저는 단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하시냐는 질문을 던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신은 인간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지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일부의 인간들만 사랑하시는지는 잘 모르겠구요
Helovesus 이상하네요 님댓글이 종을 클릭했을땐 보이는데 왜 주소를 클릭해서 이 영상이 열리게 되면 댓글로는 님글이 보이지 않을까요? 암튼 종을 클릭했을때 보이는 님글을 토대로 그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동네 옆집아저씨가 아니라 한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동네 형이라해도 달라질것은 없고 군대 총 사령관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고 한 기업의 총수라해도 혹은 영적존재일지라도 하나님이라도 잘못된건 잘못된게 아닐까요? 님은 님이 마음속으로 지은 죄가 인간을 지옥에 보내서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고통( 그 정도가 어떠한지는 몰라도 북한에 정치범 수용소 보단 더하겠죠) 을 받게 할 만큼 큰 죄고 또 그렇게 까지 ( 두눈뜨고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고통을 받아야할 만큼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것도 영원토록 말이죠. -- 뭐 루터는 영혼 불멸설은 잘못된 교리라며 영혼 멸절설을 주장했지만 어쨌든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교단에선 영원지옥설을 말하니까요 -- 님이 그런 심판을 받지 않고 난 천국에 간다는 전제가 깔린다면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수 있겠죠 그런데 님이 무신론자이고 그냥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날 밤에 갑자기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오며 너는 오늘 죽을거야 그리고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할거야 그것도 영원토록 이렇게 말한다면 아 난 죄지었으니 그럴만해라고 생각하며 죽고나서 지옥에서 그런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엄청난 고통을 받으면서도 지은 죄에 맞는 적절한 벌이다고 느끼며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니다라고 생각하실 것 같으세요?
일단 저는 이 댓글이 영상에서의 종교의 해석과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그저 종교의 보편적인 구성 요소를 평가하려는 것 뿐이지요. 허나 이는 영상과 큰 균열이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런 예시들이 갖는 문제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이 예시는 전부 신의 존재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예시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잖아요. 그렇지만 예시들에서 신을 대변하는 보호자의 존재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알다시피, 자연 상태에서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 힘의 존재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극도로 수동적인 상태로 제어됩니다. 우리가 신의 실존이 분명한 세상에 산다면, 우리는 그 보호자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호자임과 동시에 절대덕 힘의 존재인 신은 그 자체로 인간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인간 사회로 비유할 바가 못된다는 것이죠. 또한, 예시 자체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은근슬쩍 아이의 편을 들면서 아이의 착한 점, 감정이 쓰일 만한 점등을 밝히고, 신의 자유의지를 과실의 형식이 아닌 미필적 고의 형태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셋째로 그 자체의 간파도 불완전합니다. 신의 목적은 인간 교화가 아닙니다. 그 어떤 경전도 신의 목적을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신에 대한 무지를 모름이 셋째 문제입니다.
샘 해리스와 크레이그 교수와의 토론을 들어보세요. 그의 책 에 대한 것인데, 크레이그의 질문에 대해 거의 대답을 전혀 하지 못하더군요. 그런데도 샘 해리스가 왜 그 정도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지 저는 이상할 정도더군요. 너무 논리가 빈약해요. 조던 피터슨이 샘 해리스를 정확히 판단하고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 얘기가 인상깊네요
피터슨 영상에서 니체, 도스토옙스키는 항상 등장하네요 ㅎㅎ
칼 융도요 ㅋㅋ
솔제니친
니체
좋은 영상 감사합니당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결이네 ㅋㅋ
감사합니다
샘 해리스는 기독교의 표면적인 초자연적 전설이나 성경 구절에 대해서 비판을 했기 때문애 영양가가 없다고 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론 기독교 맹신자들의 위선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거 같고 (개인적 의견임)
피터슨 교수는 가치체계로서 기독교를 이해하고 있네요. 저도 이 부분은 그의 책을 읽어 봤기 때문에 동의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가치체계를 분명히 긍정적으로 도입 할 수 있는건 사실인데 해리슨은 현대인들의 도덕적 의무에 종교가 끼친 영향력을 원천차단 하고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뜻인거 같아요. 제 나름의 해석으로는.
멍청한 빠돌이 댓글과 차원이 다르네요. 확실히 조던 피터슨은 샘해리스와 달리 종교를 수단이라 보지 않고 역사적인 가치체계 혹은 그 이상인 원형으로써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죠. 허나 종교를 단순히 가치체계라고 부르기엔 과학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봅니다. 불교의 내용 중 양자이론 과학과 비슷한 개념의 인과성을 띤다는 점에서도 과학과 종교, 철학의 연관성 혹은 연결성는 놀라울 정도니깐요.
만약 해리스가 피터슨의 이야기를 다 이해하더라도 그 원형을 우선적으로 종교라는 가치체계를 표현하는 즉 도그마를 표현하는 종교(진리)를 우선으로 보냐 아니면 그저 수단만으로 볼 필요가 있느냐인데 이건 서로의 기질 차이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샘 해리스는 조던 피터슨이 굳이? 가치체계와 종교의 관계를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거 같습니다. 마치 그저 자신을 성찰하는 스스로의 가치체계를 한번도 진단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일차원적인 접근방식에서 삼차원 즉 종교를 환경이 아닌 이해해서 써먹을 수 있는 도구화(어른의 단계)까지 가지 못한 점에서 피터슨은 그를 어린애라고 표현하는 거죠
샘 해리스는 기독교 맹신자들의 위선같은 예를 종교의 단점으로 들었지만 위선이라는 행동의 근거에 종교가 있다는 증명이 없어요.(종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음)
종교와 관련된 표면적인 사실들을 기반으로 종교를 공격하는건 종교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하지 않고 너무 쉽게 대충 종교를 부정하려는 것 같아서, 저도 피터슨처럼 샘 해리스의 주장은 너무 얕다고 생각해요.
3:53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신에대한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다룬 부분이 생각나네요.
무신론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기독교인들도 간과하는 부분이 있죠. 바로 인권개념인데요. 이게 사람들의 인본주의적 사상에 의해 탄생하거나 과거에도 존중 받았던 걸로 착각하는 경향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인권개념은 종교개혁 과정에서 발견된 것들로 주로 청교도들에 의해서 발전 되어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의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종교의 자유와 권력과 종교기득권의 압제로 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 받기를 원했죠. 그것을 성경 말씀, 복음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천부적 인권에 대한 것들을요. 천부적 인권은 신이 부여하는 절대적 가치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것을 훼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하면 사람 스스로 인권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고 무효로 만들 수 있으며 더 이상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천부적 인권개념이 없습니다. 인본주의 사상에서는 당연히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천부적 인권이 부정되면서 인권을 부르짖던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무신론적 사회주의 국가들을 보면 충분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천부적 인권을 부정하고 자기들의 정의를 부르짖는 부류들로 부터 주장되는 극단적 논리들을 보면 인권의 가치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응당히 받아야 하는 권리란 무엇이며, 또한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할 때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있기 전 부터 진리와 법칙들이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류에게 내린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이며, 인권 또한 하나님 없이는 성립 될 수 없는 보편적 은총일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데에는 뛰어난 학자의 의견 같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분별력이 되어 판단하고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성경 말씀 안에 있습니다.
샘 해리스와 도킨스에 대해 피터슨이 신랄하게 지적한 것에 동의합니다.
특히 도킨스의 책이나 토론을 보면서,
그가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한 통찰력이 너무 빈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본주의자들만 공격할뿐, 기독교 진짜 사상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터슨이 얘기한 도스트옙스키나 톨스토이 등이
그들 책에서 보여준 사상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닫힌 세계에서의 자연주의 틀에 기독교진리가 맞지 않으니 '비진리'라는
과학주의적 주장만 할뿐이죠.
그러나 그 '과학주의' 역시 과학적 방법으로는 증명불가능한 하나의 철학적 방법론 중 하나일뿐이죠.
진화론은 허구
샘 해리스와 직접 토론한것을 번역해서 올려주세요.
혹시 원본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ruclips.net/video/XSdSYo1zhjw/видео.html
ruclips.net/video/SYiEgpioogo/видео.html
여기 보시면 있어요
ruclips.net/video/SYiEgpioogo/видео.html 원본 영상입니다. 이 영상에 해당하는 부분은 14:40부터 나옵니다.
피터슨 영상은 종교에ㅠ대한 거부감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는 경향이 있는것 같아요
결국 영상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는 종교라는 것이 사회적, 문화적 유산이 사회에 적응된 사람의 가치적 판단에 혹은 무의식적 판단 속에 내재되어 있다. 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다만 이는 주체가 판단한 세상의 원리라는 것이며 사회와 이에 적응해가는 개체의 사회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학습되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는 개체를 둘러싼 사회 다수가 가지고 있어 공통적으로 표상되는 어떤 것을 학습한다. 뜻인 것 같다. 이는 결론적으로 종교라는 것의 당위성이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한 주장이라고 본다.
원본 영상의 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 ?
Think club이라고 로고가 뜨네여
로스 다우섯 영상도 많이 올려주시면 좋겠어요 ㅠㅠ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야하는데....너무 두꺼워...ㅜㅜ
1:47 진짜 너무 멋지당
이미 과학이 들어선 시점에선 유용성은 이제 끝났지 과학은 계속 발전해야 하는데 거기에 종교가 걸리니까 분쟁이 일어날거고 분쟁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유용성보다 부작용이 더심해짐
그렇다면 가치체계는 어떻게 형성할 건데요? 과학은 사실들을 기술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가치체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유용하지 못합니다. 이런 면에서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요.
과학이 계속 발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그 빌어먹을 과학도라서 정말 궁금합니다.
@@tridish7383 과학이라는 것이 꼭 발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한,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한 과학은 발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과학을 연구할 것이고,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 자연과학적 발견들을 기술에 적용시킬 테니까요. 그러니 과학은 '발전야만 하는(should)' 것이 아니라 '발전 할 수 밖에 없는' 무언가라는 것입니다.
@@태형-f3b @태형 조금 혼란스럽네요. 과학은 자본적 생산체계에 종속되나요? 아니면 본능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된 필연인가요? 제 질문이 불충분했던것 같습니다. 제가 의도한 바는 과학이 발전하는 기술적 원인이 아니라 도덕적 목적에 있었는데, 조금 엇나갔네요 ㅎㅎ
과학도로써, 저는 진실을 말하고 기꺼이 지식을 위해 헌신하며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겸허히 인정하라고 배웠습니다. 비단 자연과학 뿐 아니라 배움에 뜻을 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많은 우연과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이죠. 제 생각에, 과학은 필연도 아니고 자본에 종속되지도 않으며, 그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라는 도덕적 명령에 셀수없이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tridish7383 과학이 시작 된 것은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에서였고, 자연과학이 계속 발전해 온 것 또한 인간의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공학 등 기술적인 것들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누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효율성을 따지고 편리성을 따져가며 힘들게 기술을 발전시킬까요?
또한 모든 학문에 있어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목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과학은 자연에 관한 호기심을 활용하기 위해, 공학은 돈을 벌기 위해, 행정학은 나라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진실은 추구하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학문을 할 때의 방법론에 관한 도덕적 명령이지요.
일단 영상을 보시기에 앞서 알아야하는 것은 이 사람이 정의하는 믿음과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믿음은 다르다는 것 입니다
조던 피터슨은 인간의 경험 그리고 오랜 세월 생물학적, 유전적, 문화적으로 형성된 가치 체계를 믿음이라고 정의해요. 그리고 그 가치 체계가 당신을 행동하게 만들고.
그래서 당신의 행동을 보면 당신이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당신이 실제로 믿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고 있고요.(피터슨 책 내용 중)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좀 다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하나님께서(주체) 우리가 믿게 하시는 믿음(믿음은 선물이고 은혜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죠
결론: 피터슨은 인간의 행동을 믿음의 전부로 규정짓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기반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님도 이미 규정짓고 있네요.
영상 보고 이해했는지 물어볼려는 건데요...
피터슨이 얘기하는 것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내면의 가치체계가 기독교적 사상에서 왔다는 건가요?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요? 자기 내면의 가치체계라는 것이 유대 기독교적인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샘 해리스나 리처드 도킨스 같은 분들은 이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harat ho 제가 이해한 바로는 무엇이 먼저이냐는 알 수 없다는 것 같습니다. 고대부터 종교는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로인해 지금까지 생존한 우리 인류는 그 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있죠. 그것이 유전자에 새겨진 초월적 존재의 흔적인지, 혹은 유전자에 새겨진 흔적을 바탕으로 초월적 존재를 만들어 냈는지는 알 수 없죠.
인간이 나중에 초월적 존재를 만들었다는 것이 사피엔스의 내용이죠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한 가지 오해만 정정 한다면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믿음은 두 가지 입니다.
그러니 마치 피터슨이 말하는 믿음이 성경에는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시면 안 됩니다.
성경에는 실천적 믿음과 존재적 믿음을 구분합니다.
존재적 믿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고.
실천적 믿음은 선물 때문에 중생한 사람이 의지적으로 신뢰하게 된 믿음이죠. 이 둘 모두 성경에 나오니 피터슨이 말한 믿음이 기독교와 틀린 건 아닙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의 중학교입학식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난 너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너가 술담배만 안하고 학교만 잘다니면 너가 해달라는거 다 해줄께 .. 그러나 만일 니가 술담배를 하고 학교를 빼먹을 경운 그때 넌 내게 아주 혹독한 벌을 받을거야. 난 너 손가락을 자를거야 라고 말을 했다 칩시다. 그래서 아이도 예 알았어요하고는 학교를 잘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처음에는 공부도 잘하고 학교도 잘다니고 부모님 말씀도 잘들었는데 중3시절 사춘기가 오면서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방황을 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담배도 피게 되고 또 어쩌다보니 학교도 빠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부모님이 그걸 알게 되었고 아들을 불러서 넌 내가 했던 얘길 잊었느냐? 라고 꾸짖었고 아들은 "죄송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용서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 그러나 부모님은 말했습니다. 아니.. 용서 못하겠는데.. 하면서 갑자기 예 잡어 하면서 하인들에게 명령하니 하인들은 그 아들의 양팔을 잡았고 아들은 " 아....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 하며 울부짖었지만 " 도마위에 그 아들의 손을 올려두고 무시무시하게 날이 서있는 시칼로 아들의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너무도 사랑이 많아 이 아이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또 벌도 주었습니다. 이웃들도 이 아주머니에 이런 사랑에 박수를 보내며 이 아주머니를 찬양했습니다.
근데 이게 사랑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잘못된 행위에 대한 악에 대한 벌은 따르게 되는게 공의겠지요. 그런데 그 정도가 합당해야 하는데 죄에 비해 벌이 과할때는 우리는 이걸 사랑이라고 보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잘못되었을때는 부모도 자식에게 얼만큼 주의를 잘 시켰느냐.. 얼만큼 알아듣게 교육을 한번의 말로 끝나는게 아니라 과정과정에서 잘 이끌고 지도했느냐 하는 부분에서 부모에게도 그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문제구요.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께요..
어느날 시골에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중인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아이가 없었고 어느날 입양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고아원에서 한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이는 초등학생이었고 한창 호기심도 많고 먹고 싶은것도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그 아이에게 엄마라고 부르게 했고 그 아이는 엄마를 잘따르는 착한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그 아주머니는 가게에 있는 거 하루에 두개씩은 먹게 해주겠지만 그 이상은 안돼 그리고 엄마에게 말을 하고 하루에 두개씩은 먹게해주겠지만 만일 엄마 몰래 먹거나 그랬다간 넌 이집에서 쫓아낼거야라고 말을 했습니다. 내가 아예 너를 가게에 못오게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게 자유의지를 주기위해 가게에서 물건을 나몰래 먹지 않을 수도 또 먹을 수도 있게끔 해줄거야 이게 다 너를 위한 사랑이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무슨말인지 긴가민가 했지만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가게 잠깐 보고 있어 엄마 잠깐나갔다올께라고 하며 가게를 비우고 나갔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그 아이가 충분히 몰래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나 그런걸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중 옆집에 불량청소년이 이 가게를 들어왔습니다. "어른 안계시니? "하고 그 청소년은 아이에게 물었고 아이는 " 엄마 잠깐 어디 갔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불량청소년은 "아 그래? " 하면서 이 아이에게 " 야 우리 니네 엄마몰래 아이스크림하나씩 먹을까? 엄마한테 말안할테니 너도 말하지마 " 라고 했고 아이는 " 안돼요. 엄마가 엄마허락없이 몰래 가게 물건 꺼내먹으면 저 쫓아낸다고 했어요 " 라고 했습니다. " 그러자 이 청소년은 ㅎㅎ 야 이 순진한 친구야.. 그거하나먹었다고 설마 널 쫓아내시겠어? 걱정마 너 쫓겨나지 않으니.. 그러지말고 이거 하나 먹자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한입먹었습니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ㅎ 야 너도 먹어봐" 이렇게 말하니 아이도 " 아 정말요? 흠.. 안되는데 ㅜㅜ 하다가 아 그럼 한입만 먹어볼께요" 하고 한입먹었습니다. 아 그 맛은 너무 꿀맛이었고 한입이 두입이 되고 서로 그렇게 아이스크림 한통을 같이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빈통도 집밖에 멀리 버려서 증거를 인멸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주머니는 가게에 cctv를 달아놓았고 그걸 몰랐던 아이는 아주머니가 자기가 없는 사이에 이 친구가 몰래 먹었을 수도 있을거라고 예상했기에 cctv를 돌려봤고 아니나 다를까 이 친구가 먹은걸 확인하고는 이 친구를 호되게 꾸짖으며 " 내가 말했지 너 나 몰래 먹으면 쫓겨날거라고" 이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ㅠㅠ " 라고 서럽게 울었지만 이 아주머니는 " 내가 왜 니 엄마야.. 난 내말을 우습게 아는 너같은 애를 자식으로 둘 생각이 없어.. 불법을 행하는 아이야 이집에서 당장 나가거라 " 라고 하며 그 아이를 집밖으로 내 쫓아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너무도 사랑이 많아 이 아이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또 벌도 주었습니다. 이웃들도 이 아주머니에 이런 사랑에 박수를 보내며 이 아주머니를 찬양했습니다.
근데 이게 사랑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잘못된 행위에 대한 악에 대한 벌은 따르게 되는게 공의겠지요. 그런데 그 정도가 합당해야 하는데 죄에 비해 벌이 과할때는 우리는 이걸 사랑이라고 보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잘못되었을때는 부모도 자식에게 얼만큼 주의를 잘 시켰느냐.. 얼만큼 알아듣게 교육을 한번의 말로 끝나는게 아니라 과정과정에서 잘 이끌고 지도했느냐 하는 부분에서 부모에게도 그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문제구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상민-e6d 종교가 악하다라는건 너무 광범위한 정의인데요?: 저는 단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하시냐는 질문을 던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신은 인간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지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일부의 인간들만 사랑하시는지는 잘 모르겠구요
Helovesus 이상하네요 님댓글이 종을 클릭했을땐 보이는데 왜 주소를 클릭해서 이 영상이 열리게 되면 댓글로는 님글이 보이지 않을까요? 암튼 종을 클릭했을때 보이는 님글을 토대로 그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동네 옆집아저씨가 아니라 한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동네 형이라해도 달라질것은 없고 군대 총 사령관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고 한 기업의 총수라해도 혹은 영적존재일지라도 하나님이라도 잘못된건 잘못된게 아닐까요? 님은 님이 마음속으로 지은 죄가 인간을 지옥에 보내서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고통( 그 정도가 어떠한지는 몰라도 북한에 정치범 수용소 보단 더하겠죠) 을 받게 할 만큼 큰 죄고 또 그렇게 까지 ( 두눈뜨고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고통을 받아야할 만큼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것도 영원토록 말이죠. -- 뭐 루터는 영혼 불멸설은 잘못된 교리라며 영혼 멸절설을 주장했지만 어쨌든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교단에선 영원지옥설을 말하니까요 --
님이 그런 심판을 받지 않고 난 천국에 간다는 전제가 깔린다면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수 있겠죠 그런데 님이 무신론자이고 그냥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날 밤에 갑자기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오며 너는 오늘 죽을거야 그리고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할거야 그것도 영원토록 이렇게 말한다면 아 난 죄지었으니 그럴만해라고 생각하며 죽고나서 지옥에서 그런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엄청난 고통을 받으면서도 지은 죄에 맞는 적절한 벌이다고 느끼며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니다라고 생각하실 것 같으세요?
@@sinikx 지금 님께서 옳고 부당함을 논하는 그 가치체계가 바로 '종교적'인 것이라고 피터슨이 말하고 있네요. 그리고 그 가치체계의 대부분은 유대기독교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고요.
일단 저는 이 댓글이 영상에서의 종교의 해석과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그저 종교의 보편적인 구성 요소를 평가하려는 것 뿐이지요. 허나 이는 영상과 큰 균열이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런 예시들이 갖는 문제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이 예시는 전부 신의 존재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예시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잖아요. 그렇지만 예시들에서 신을 대변하는 보호자의 존재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알다시피, 자연 상태에서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 힘의 존재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극도로 수동적인 상태로 제어됩니다. 우리가 신의 실존이 분명한 세상에 산다면, 우리는 그 보호자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호자임과 동시에 절대덕 힘의 존재인 신은 그 자체로 인간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인간 사회로 비유할 바가 못된다는 것이죠.
또한, 예시 자체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은근슬쩍 아이의 편을 들면서 아이의 착한 점, 감정이 쓰일 만한 점등을 밝히고, 신의 자유의지를 과실의 형식이 아닌 미필적 고의 형태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셋째로 그 자체의 간파도 불완전합니다. 신의 목적은 인간 교화가 아닙니다. 그 어떤 경전도 신의 목적을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신에 대한 무지를 모름이 셋째 문제입니다.
고길동 / 종교적인 가치체계까지 갈거 없구요. 그런거 아니고 그냥 어린아이와 같은 눈과 마음으로 바라봤을때 그냥 보이는데로 얘기한것이구요. 그냥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시면 됩니다.
조던 피터슨은 샘 해리스에게 비빌수 있는 수준이 전혀 아닌데
당신이 판단할 수준인가요
샘 해리스와 크레이그 교수와의 토론을 들어보세요.
그의 책 에 대한 것인데,
크레이그의 질문에 대해 거의 대답을 전혀 하지 못하더군요.
그런데도 샘 해리스가
왜 그 정도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지 저는 이상할 정도더군요.
너무 논리가 빈약해요.
조던 피터슨이 샘 해리스를 정확히 판단하고 있다고 봅니다.
근거 좀...
@@민주주의국민조던피터슨은 또 여러 정신병을 거쳐간 환자를 다루고 회복의 나침반을 제시한 임상 심리학자니 그동안 그가 몇십년동안 노련한 커리어로 모은 인간성의 자연의법칙에 대한 부분에서는 뭐 샘해리슨보다 훨씬더 능통한걸로 조금더 신뢰가 될수밖에없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