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한 사람의 말을 우둔한 사람이 전하게 되면 도무지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둔한 사람은 자신이 들은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있게 바꾸어 말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보다 차라리 철학자들 가운데 나를 가장 호되게 비판하는 철학자가 나의 사상을 전달해 주기를 바란다." - 버트런드 러셀
그건 어쩔 수 없는게 인간이 가진 지성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에요. 계속해서 목적만 쫓고 순리를 무시하며, 들어맞는 사례만 보고 더 볼 게 없다면서 밀어붙이고, 자신이 진실이라 생각하는 것은 증명되든 안 되든 옳다고 믿고, 알려고 한 적도 없는 주제에 모든 게 상대적이라고 큰소리치기도 하고, 어떤 것의 유사점과 차이점 중 하나만 찾으려하고, 아무리 중요한 것이어도 직접적인 감각이 없으면 무신경하고, 직접적인 감각이 있는 것만 찾죠. 남의 것이 단 한 개만 틀렸다고 그게 완전 엉터리라고 밀어붙인 뒤, 그걸 기반으로 자기가 뭐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비난한 다음, 제멋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마치 확실한 해결책이라도 찾은 양 큰소리치죠. 이런게 평범한 인간이고, 인간이라면 이런 정신을 넘어서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발전에 있어서도 파도의 밀물, 썰물 마냥 발전이 되는 때와 안되는 때가 있다고 생각하며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그게 끝이라 믿기 때문에, 누군가 위대한 것을 알아내려 하거나 더욱 심오하게 하여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 하면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하지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 자가 곧 위버멘시(초인)입니다. 끝없이 경험하고 실험하고 관찰하여 원인과 공리를 알아내고, 이것들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고 그 다음에 잘못된 부분을 수정, 보완해야 합니다.
결국 인간이 남의 오류에 집착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는 일에 무신경한 이유는(쉽게 말해 자신의 장점을 전혀 강화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거나, 타인의 장점을 깎아내리거나, 타인의 단점을 부각시키는데 모든 힘을 전부 쓰는 이유는)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입니다. 혹여나 자신의 신뢰가 흔들려 이게 공격으로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그 원인이죠. 하지만 자신과 자신의 장점을 믿고 끝없이 탐구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정신의 최대 명약입니다. 또 그로인한 자신감과 의지의 휼륭한 양분이 되지요. 그나마 남들도 못 하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허망하고 무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뭉치면 무조건 살고 흩어지면 무조건 죽는, 그런 상어가 들끓는 약육강식의 피바다가 아닙니다. 그러면 그 누구든 다수라는 상어한테 잡아먹힐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수를 써도 단 1초면 그냥 끝날 수 있죠. 이 세상이 그렇게나 잔혹하진 않으며, 또 끝없이 생성을 반복하는 이 대지에 오늘도 저는 충실히 삽니다.
불행히도 "조지 오웰" 같은 인물도 그렇게 악용된 인물이였죠. 제대로 세워진 사회주의적 미래를 꿈꾸던 사람의 저서가 반공 프로파간다로 말입니다. (동물농장, 1984) 오웰이 가진 생각과 사상을 제대로 알려면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가 적합하지만 아무도 이에 크게 관심 갖지는 않는다는 점이 그의 삶이 왜곡되기 쉽게 만들었죠. (일부는 이게 초기 저서라 전향 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는데 오웰은 저서들 그 중에서도 "카탈로니아 찬가"에 애착이 많아서 죽기 전까지도 검수, 보완했기에 전향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즉 그는 죽기 전까지도 사회주의적 가치를 버린적이 없다는 말이죠.)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기보단 그냥 니체라는 강한 개성의?캐릭터와 신은 죽었다 라는 단문에서 느껴지는 인상을 조합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해석이었을 겁니다. 솔직히 일반인 수준에선 아무도 원전까지 찾아읽진 않잖아요. 저도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한 번 찾아봤습니다. "신은 어디에 있지?" 그는 부르짖었다; "내가 가르쳐주리라.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는 신을 죽인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였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가 바닷물을 전부 마셔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쓸어내어 버릴 스펀지라도 주었는가? 우리가 이 지구를 해로부터 풀어주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이제 어디로 움직이는가? 우리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가?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아직도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는가? 우리는 끝없는 허무 속에서 헤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빈 공간의 흐름을 느끼지도 못하진 않는가? 계속해서 추워지지는 않는가? 밤이 우리를 점점 궁지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아침에도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직도 사토장이들이 신을 땅에 묻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아직도 신이 부패해 가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 또한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이 영상을 보고 원문을 읽어보니 무슨 뜻인지 구절구절 감이 확 옵니다.
김동규 와우 친절한 원문번역까지!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엔 그게 환희에 찬 발언인줄 알앗어요 니체가 도덕 체계의 근거를 신성에 대한 개념이라 믿엇을 줄이야! 니체가 기독교인이엇는지는 모르겟으나 놀라운 통찰력이네요 선과악의 모호함으로 치닫는 오늘날 도덕이 흐릿해지는 현상은 사회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군요
제가 번역한 건 아니고 이미 번역되어 있는것을 찾아 읽은뒤 가져온 것 뿐입니다ㅎㅎ 니체가 쓴 다른 글들로 미루어보아 아마 높은 확률로 기독교인은 아니었을겁니다. 다만 철학자로써 서구윤리의 기원과 그걸 현실화하는 사회적 정신적 구조를 통찰하며 저런 글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국어쌤 니체는 철저한 무신론자로 살다 죽었습니다. 다만 그는 개인적으로 신이 없다라는 것을 깨닫고 인류는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라는것을 깨달은 인물이죠.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니체는 어째서 신이 존재 해야만 하는가? 라는 물음에 답이 되는 주제로 이끌어 내어집니다.
유치하게 신은 죽었냐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신이 죽었다고 해도 하느님이 주신 성령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은 죽었다"는 그저 그냥 니체의 수많은 말들 중 하나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그 당시의 상황입니다. 알다시피 그 당시는 인간의 능동적인 삶을 거부하던 기독교 적인 사회였습니다. 니체는 이걸 안타깝게 여겨 이제는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초인적인 태도를 중요시 여긴 것입니다. 즉 "깨어있어라" 이 말입니다. 이 말이 왜 비도덕적인 얘기이며 왜 이것이 나치와 직결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초인적인 누군가가 존재해야 한다지만, 소수의 개인들도 초인적인 힘으로 뒤집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찾아보니깐). 즉 니체는 "깨어있음" 지혜와 연결되는 부분이지 이게 도덕적인 거랑 무슨 상관인 지 모르겠네요. 전 다른 얘기라고 봅니다.
니체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이후 기독교에 한계를 느끼고 자신만의 사상을 펼쳤다. 니체는 신이라는 허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이에 속박되어 살아가는것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과 이에 신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버맨쉬(초인) 영원회귀 등등으로. 니체는 그저 신은 구라니까 도덕 선과악 ㅈ도 신경쓰지 말고 살아라 라고 이야기 한적이 없는데 이런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위해 짜집기 하는건 정말 실망이네요.
니체의 논리를 이길 논리가 없죠 사실.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급의 논리니까요. 절대 가치를 타협하지 않고 거부해버리니 그 누구도 절대 가치를 논할 수 없죠. 그런 니체가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건 고통을 사랑하며 투쟁하는 것만이 삶인데, 이 세상에 고통을 단 한 번이라도 느껴본 인간이라면 사실 니체의 말을 부정할 수 가 없죠. 가령 이별 후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이별을 극복하려 합니다. 결국 극복한 뒤 자연스럽게 더 고양된 스스로를 발견하죠. 철학의 큰 틀 자체가 특정의 배움이 아닌 애당초 내 삶이 철학이 말하는 지혜의 틀이였단 걸 인식하게 해주는 학문인데 이 점을 통해 봤을 때 인간은 이미 니체가 논한 니힐리즘을 모두 갖고 살아간다고 봅니다. 인식의 여부 차이죠.
@@일옥-i3x 맞아요. 또한 니체의 니힐리즘을 욕하는 건 정말 무지에서 나오는 오만이라 속단할 수 밖에 없는게, 허무주의면서 그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운명애를 강조하며 그 누구보다 인류애를 강조하죠. 티는 안 내지만요. 신을 거부한 그 패기 자체에 인류애가 없을 수 가 없죠. 니체야 말로 객관의 범람 속에 패기와 신념으로 싸워나가는 21세기 레지스탕스들에겐 곧 신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니체는 그랬을 겁니다. '나 또한 죽여라, 그게 당신이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존중이다.'
@@deltoro2685 저랑 키배뜬 교인들이 일치하는 공통점이있는데 니체가 말하는 약자들의 유형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자기를 높이려하지만 정작 타자의 기준을따르며 개성•유행이란 단어에 민감한 부류들, 속물근성에 허영심, 낮은 자존감을 티 안내며 자기기만까지, 노예의지의 사람들
확실한건 도킨스나 샘 해리스같은 무신론자들의 주장처럼 종교적 기반을 버리고 완전한 이성으로 전환한다면 한 사회를 넘어서 인류가 바로설수 없을거라는 점이네요. 왜냐하면 조던 피터슨의 말처럼 초월적 심판자가 실존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실존한다고 믿고 살아가지 않는 이상 도덕이 제 기능을 할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양심이나 도덕율은 종교적 관념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고 볼수있고 그 관념적 제한이 강제로 없어진다면 인류는 목줄 풀린 망아지꼴일겁니다. 그리고 20세기에 우리는 이미 그 위험을 경험했구요. 또한 인간이 완전히 사회구조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지않는 이상 인간안에 내제된 그 신성(도덕율) 을 완전히 없앨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얘기는 사회적으론 용인되나 내제적으로 계속 억압받는 도덕율로 대한 인식으로 인해 각 개인들은 고통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고 그 고통이 무엇인지 제대로 통찰할수 없는 다수의 인간은 무익함, 무가치함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는 얘기겠죠. 진리를 추구하는 의식이 참 진리를 인식하는 능력을 없앴다는 니체의 주장처럼 이성사고를 기반으로한 과학적 사고는 인류를 풍요롭게 했지만 동시에 눈 뜬 장님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증명할수 없는것은 말할 필요 없는것이니까요. 하지만 사실의 기능과 가치의 기능은 명백히 다른것입니다. 증거될수 없는것이 무용하다면 사실 인생 대부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일의 의미, 부모님의 사랑, 배우자에 대한 헌신은 사실로 증명할수 없기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의 끝은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죠. 결국 보이지 않는 것 중 의심조차 불허한 개념이 자아인데 니체는 이 자아를 고통 속에서 투쟁하며 고양시키라고 가르쳤던 거구요. 신을 배제한채 초인 논리를 펼쳤던 이유가 인간 모두 초인 정신을 향해 투쟁한다면 외적 투쟁 역시 바람직한 것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도덕적 방향성 또한 내포 돼있죠. 굳이 절대자의 거느림 하에 존재 하는 도덕이 필요가 없다고 봤고 도덕 역시 절대적인 건 없다고 봤으니까요. 기독교적 교리를 완강히도 부인한 인물의 사상을 끝까지 절대적 존재와 엮는 논리들이 참 신기합니다. 여동생이 니체의 사상을 나치즘에 투영한거나 다를 바가 없다고 보네요. 그 누구보다 절대적 존재를 부정한 사람인데 그럼에도 절대적 심판자는 필요하다란 해석을 접목 시키는 걸 니체가 보면 하늘에서 비통해하지 않을까 싶네요.
@@deltoro2685 잘못이해하고 계신 부분은 니체는 절대적 존재를 부정한게 아니라 절대적 존재가 '부정됨' 으로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초인사상은 신이 죽었음을 이해하고 기뻐하며 써내려간 승전보같은게 아니에요. 다만 서구를 지탱한 기독교 윤리기반이 무너짐에 따른 위기를 인류가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니체 나름의 고찰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니체에게 초인사상은 바람직한게 아니라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러한 연결선상에서 조던피터슨과 니체 모두 기독교적 윤리기반이 무너짐에 따른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있고, 때문에 니체를 절대적 존재와 엮는 논리는 너무 당연합니다. 물론 초인사상은 두 지식인을 가르는 지점이 되겠죠. 왜냐하면 조던피터슨은 칼융의 말마따나 가치는 만들어 지는것이 아니라 발견되는것이라 믿는 사람이니까요.
@@roygang6828 절대적 존재가 '부정됨'은 자연의 이치처럼 일어난게 아니죠. 니체의 경험을 통한 깨달음의 분출로써의 결과죠. 부정한게 아니라 부정됨에 따른 불가피한 초인논리를 펼쳤다는 누구의 해석에 근거한 얘기죠? 저희 해석을 버리고 온전히 니체 사상 그대로만 두고 얘길 꺼내면 답은 아주 간단해요. 니체는 신을 부정했습니다. 집안 자체가 독실한 기독교였음에도 신을 부정했고 절친하던 친구가 끝내 종교를 버리지 못 해 손절한 일화도 존재하죠. 애초에 니체에겐 기쁨과 승전보 따위는 스스로 고통을 딛고 자신이 고양됐음을 느꼈을 때 뿐이라 얘기 했습니다. 신을 죽이고 자시고는 니체에게 기쁨을 느끼고 승리를 도취하는 등의 개념의 것이 아니란 얘깁니다. 기독교적 윤리기반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기독교의 산물인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허무 속 대혼란이 올 것이란 예언은 했죠. 그렇다고 필수불가결한 기독교적 윤리기반이 무너져서 초래한 비극이란 해석은 어불성설이죠. 오히려 기독교적 윤리기반은 죽여야 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혼란 속에 살아남으려면 초인 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범람하는 애매한 해석 때문에 가치 없음에도 댓글을 꼭 쓰고 가는 겁니다. 누누히 얘기하지만 니체는 해석의 세계 속에 정답은 없다라 얘기 했습니다. 이 잠언 자체가 니체가 직접 얘기한 실체듯이 니체가 기독교를 부정한건 실체입니다. 여타 다른 해석이 덧붙힐 이유가 없으며 이유가 있다면 기독교인들의 방어기제를 위한 일방적 수용 뿐이겠죠. 니체 사상을 두고 얘길 할거면 니체의 사상만 놓고 왈가왈부를 해야지 또 다른 해석의 산물인 조던 피터슨의 견해를 전적인 근거로 드는 건 이 또한 니체가 말하는 죽은 삶 입니다.
신은 죽었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라.. 그렇다면 니체가 말한 초인이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도덕률을 부여할 줄 아는 인간인 것인지... 이것은 신성모독과 같은 불경한 철학도 아니고 허무주의적 니힐리즘도 아닌, 삶을 긍정하는 철학이라 보는 것이 옳겠군요. 하지만 신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때때로 너무 교만했고 자신의 이성을 맹신했기도 했지요. 이 이성으로 현세에 한방에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의 끔찍함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니체가 기독교를 모독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과학에 의해 흔들렸던 신의 개념과 당시 교회역할의 한계 속에서 도덕을 잃은 채 흐트러질 인간군상들의 방종을 경고한 것이겠지요. 신을 잃어버린 인간들이여 스스로의 자신만의 도덕을 가지고 삶을 경건하게 살아가는 초인이 되어라같은.... 신의 유무는 어려운 논제가 되겠지만 내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믿음은 여전히 우리 삶의 조타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이 기본적인 악행을 제어하고 윤리가 좋은 방향을 제시한다면 종교는 포괄적합도와 호혜적 이타주의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이타심과 맞물려 선행을 유도할 수 있겠지요. 다만 이슬람교 같은 지나친 원리주의는 분명 나쁜 meme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ka kao 정말 훌륭한 통찰이십니다. 이렇게 이성적이신 분께 전도라 할까 조심스럽지만 나니아 연대기를 집필한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조심스레 추천해봅니다. 물론 읽고 선택은 님이 하시는 거지만요. 정말 훌륭한 통찰과 변증의 에센스라 할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무신론자들을 기독교인으로 인도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니체가 신에 대한 믿음의 부재로 인한 도덕적 혼란상태를 우려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가 이상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도, 우리가 기독교로 다시 회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기독교가 르상티망(원한감정)에 기반한 노예도덕이라고 생각했죠. 우리가 신을 죽였는데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거냐는 말은 기독교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사라진 도덕의 빈자리를 대체할 수단은 아직 없는 사자의 상태를 우려한 말입니다. 설마 피터슨 교수가 이걸 모르고 계시지는 않겠지만, 영상만 보고서는 니체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아 댓글 남깁니다.
예수님은 무저항적인 사랑과 용서를 강조했을 뿐, 신앙의 삶을 강조하신 적은 없지요. 무엇보다 악마나 지옥, 천사와 천국이라는 개념은 후대에서 억지로 집어넣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자길 믿지않는 사람은 지옥에 갈 거라고 과연 말했을까요?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것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모든 인류가 곧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뜻이죠.
박경철씨 멘트만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볼 수 있는데 그게 또 자연스럽기도 하죠. 다 그러면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죠. 사실상 소수의 천재들이 이끌어온 역사이죠. 보통 쓰는 잉여라는 말에는 비하의 뉘앙스가 녹아 있는데 전 그런 뉘앙스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 잉여가 없으면 피라미드의 아름다운 기하학적 모양이 탄생할 수가 없죠. 모두가 꼭대기에 모여있을 수는 없듯이요. 천재들은 타고나는 것이고 평범한 사람들도 그 시대의 흐름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다 떠나는 것 뿐입니다. 마치 위대한 무언가가 되어야지만 가치가 있는것처럼 생각하는 방식은 그냥 관점자체가 엇나간 무지의 산실로 생각이 되네요. 다만, 인생의 철학이 없이 개돼지처럼 휘둘리며 사는 삶은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비극으로 봅니다.
영상 잘봤습니다!영상의 god에 대한해석으로 '하나님' 대신 '신'이였으면 더 좋았을듯 싶어요. [Jordan Peterson - Do you believe in God?] ruclips.net/video/VPIh1xQiuI8/видео.html 이 영상에서보면 '신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그런식의 두 가지의 카테고리 중 하나에 날 가두는것 같은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답합니다. 이후에 덧붙혀 "하지만 난 신이 있는것처럼 행동한다"라고 하죠. 그러한 대답을 한이유는 아마 본 영상에서 설명한 바와같이 서양의 도덕체계를 근거한 것은 기본적으로 신성에 대한 개념이라는 니체의 의견에 동조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그러한 초월적기준이 존재하지않으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질꺼라는 우려에 의해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라고 답한것같아요.아무튼 저도 피터슨교수님 영상을 자주보는데 니체/프로이드 철학에 대해 언급을 자주하시는걸 보는데 그때마다 드는생각이'피터슨교수님은 종교가 있는것같은데 드러내고싶지 않아하는것같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현 위치와 영향력 등을 생각해봤을때종교에 관해 색깔을 내비추면 누군가는 '피터슨교수의 말들을 객관적이지 않다' 라고 생각할까봐 우려해 그러시는건 아닌가 싶어요. 저 같은 생각해보신분 없나요?
서정민 넹 저도 그부분에있어서 하나님으로 번역하는게 더 정확하다라고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피터슨교수님처럼 영향력있고 통찰력있으시고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계신다는 평을 받는 분이 어느 한 특정 종교에 대해 색깔이 드러난다면 유독 기독교에대한 반감이 있는 한국사회 20~30대 들이 받아들임에있어서 종교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어느정도의 선입견있이 영상을 보게되지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쓴 말입니다 ㅎㅎ 저도 피터슨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맥락에서는 하나님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앞뒤 잘라먹는건 피터슨도 마찬가지네. "그는 '신이 죽어서' 모든 게 엉망징창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 : 그래 니체는 해석이 난무하니까 니도 니 주장을 펼치기 위해 니체의 문장을 니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놈이구나. 확실한건 기독교를 실랄하게 비판한 놈이 '신은 죽었다' 라는 문장이 온건한 문장이다? ㅋㅋㅋㅋ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니체라는 놈이 과연? ㅋㅋㅋ
피터슨 교수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에 더 자세히 나와있는데, 신이 죽었기 때문에 신이 살아있는 상태로의 회귀를 생각하였던 도스토옙스키의 통찰을 신이 죽었기 때문에 나 자신이 초월자(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는 니체의 통찰보다 더 높게 치는 경향을 보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나지만 이런 문제에 관해서 칼 융이나 도스토옙스키의 고찰이 니체의 통찰보다 더 깊다거나 정확하다고 표현했던거같아요.
@@일옥-i3x 그것에 관한 해석은 제가 니체를 자세히 아는것도 아니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저의 논지는 피터슨 교수는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에선 도스토옙스키와 니체가 같은생각을 하였으나 그 이후의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선 그 둘을 명확하게 구분짓는다는것이었으니까요... 위버멘쉬가 초월자가 아닌 놀이하는 어린이라는 개념이라는 생각도 니체를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총명한 사람의 말을 우둔한 사람이 전하게 되면 도무지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둔한 사람은 자신이 들은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있게 바꾸어 말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보다 차라리 철학자들 가운데 나를 가장 호되게 비판하는 철학자가 나의 사상을 전달해 주기를 바란다." - 버트런드 러셀
쉽상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지젝을 만난건가...
진짜 러셀다운 생각이고 마인드네…. 그래서 항상 원하지 않는자에게 입을닫고 한쪽귀만 허용하라는 말도 한거네
대단한 통찰력이다...
피터슨 영상 오늘도 감사합니다. ㅠ
많은 사람들이 니체의 철학이 허무주의를 야기하고 허무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니체의 철학은 삶을 긍정하는 철학입니다. 니체 철학의 결론은 ‘너 스스로가 진리가 되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고자 어떤 사람의 해석 표면을 왜곡하여 인용하는 것을 서슴치 않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후 자신에게 왜곡된 인용 문제는 가끔 떠오르지만 애써 무시합니다. 거짓으로 자신의 신념은 더 공고히 해졌다는 만족감으로 말이죠
그건 어쩔 수 없는게 인간이 가진 지성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에요.
계속해서 목적만 쫓고 순리를 무시하며, 들어맞는 사례만 보고 더 볼 게 없다면서 밀어붙이고, 자신이 진실이라 생각하는 것은 증명되든 안 되든 옳다고 믿고, 알려고 한 적도 없는 주제에 모든 게 상대적이라고 큰소리치기도 하고, 어떤 것의 유사점과 차이점 중 하나만 찾으려하고, 아무리 중요한 것이어도 직접적인 감각이 없으면 무신경하고, 직접적인 감각이 있는 것만 찾죠. 남의 것이 단 한 개만 틀렸다고 그게 완전 엉터리라고 밀어붙인 뒤, 그걸 기반으로 자기가 뭐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비난한 다음, 제멋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마치 확실한 해결책이라도 찾은 양 큰소리치죠.
이런게 평범한 인간이고, 인간이라면 이런 정신을 넘어서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발전에 있어서도 파도의 밀물, 썰물 마냥 발전이 되는 때와 안되는 때가 있다고 생각하며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그게 끝이라 믿기 때문에, 누군가 위대한 것을 알아내려 하거나 더욱 심오하게 하여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 하면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하지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 자가 곧 위버멘시(초인)입니다. 끝없이 경험하고 실험하고 관찰하여 원인과 공리를 알아내고, 이것들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고 그 다음에 잘못된 부분을 수정, 보완해야 합니다.
결국 인간이 남의 오류에 집착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는 일에 무신경한 이유는(쉽게 말해 자신의 장점을 전혀 강화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거나, 타인의 장점을 깎아내리거나, 타인의 단점을 부각시키는데 모든 힘을 전부 쓰는 이유는)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입니다. 혹여나 자신의 신뢰가 흔들려 이게 공격으로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그 원인이죠. 하지만 자신과 자신의 장점을 믿고 끝없이 탐구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정신의 최대 명약입니다. 또 그로인한 자신감과 의지의 휼륭한 양분이 되지요. 그나마 남들도 못 하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허망하고 무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뭉치면 무조건 살고 흩어지면 무조건 죽는, 그런 상어가 들끓는 약육강식의 피바다가 아닙니다. 그러면 그 누구든 다수라는 상어한테 잡아먹힐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수를 써도 단 1초면 그냥 끝날 수 있죠. 이 세상이 그렇게나 잔혹하진 않으며, 또 끝없이 생성을 반복하는 이 대지에 오늘도 저는 충실히 삽니다.
불행히도 "조지 오웰" 같은 인물도 그렇게 악용된 인물이였죠. 제대로 세워진 사회주의적 미래를 꿈꾸던 사람의 저서가 반공 프로파간다로 말입니다. (동물농장, 1984)
오웰이 가진 생각과 사상을 제대로 알려면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가 적합하지만 아무도 이에 크게 관심 갖지는 않는다는 점이 그의 삶이 왜곡되기 쉽게 만들었죠. (일부는 이게 초기 저서라 전향 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는데 오웰은 저서들 그 중에서도 "카탈로니아 찬가"에 애착이 많아서 죽기 전까지도 검수, 보완했기에 전향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즉 그는 죽기 전까지도 사회주의적 가치를 버린적이 없다는 말이죠.)
피터슨은 몇 년이나 앞섰을까
니체 인용자들은 결국 앞뒤 잘라먹기 선수엿군요ㅋㅋ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같은..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기보단 그냥 니체라는 강한 개성의?캐릭터와 신은 죽었다 라는 단문에서 느껴지는 인상을 조합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해석이었을 겁니다. 솔직히 일반인 수준에선 아무도 원전까지 찾아읽진 않잖아요.
저도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한 번 찾아봤습니다.
"신은 어디에 있지?" 그는 부르짖었다; "내가 가르쳐주리라.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는 신을 죽인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였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가 바닷물을 전부 마셔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쓸어내어 버릴 스펀지라도 주었는가?
우리가 이 지구를 해로부터 풀어주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이제 어디로 움직이는가? 우리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가?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아직도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는가? 우리는 끝없는 허무 속에서 헤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빈 공간의 흐름을 느끼지도 못하진 않는가? 계속해서 추워지지는 않는가? 밤이 우리를 점점 궁지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아침에도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직도 사토장이들이 신을 땅에 묻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아직도 신이 부패해 가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 또한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이 영상을 보고 원문을 읽어보니 무슨 뜻인지 구절구절 감이 확 옵니다.
김동규 와우 친절한 원문번역까지!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엔 그게 환희에 찬 발언인줄 알앗어요
니체가 도덕 체계의 근거를 신성에 대한 개념이라 믿엇을 줄이야! 니체가 기독교인이엇는지는 모르겟으나 놀라운 통찰력이네요
선과악의 모호함으로 치닫는 오늘날 도덕이 흐릿해지는 현상은 사회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군요
제가 번역한 건 아니고 이미 번역되어 있는것을 찾아 읽은뒤 가져온 것 뿐입니다ㅎㅎ
니체가 쓴 다른 글들로 미루어보아 아마 높은 확률로 기독교인은 아니었을겁니다. 다만 철학자로써 서구윤리의 기원과 그걸 현실화하는 사회적 정신적 구조를 통찰하며 저런 글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국어쌤 니체는 철저한 무신론자로 살다 죽었습니다. 다만 그는 개인적으로 신이 없다라는 것을 깨닫고 인류는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라는것을 깨달은 인물이죠.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니체는 어째서 신이 존재 해야만 하는가? 라는 물음에 답이 되는 주제로 이끌어 내어집니다.
유치하게 신은 죽었냐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신이 죽었다고 해도 하느님이 주신 성령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은 죽었다"는 그저 그냥 니체의 수많은 말들 중 하나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그 당시의 상황입니다. 알다시피 그 당시는 인간의 능동적인 삶을 거부하던 기독교 적인 사회였습니다. 니체는 이걸 안타깝게 여겨 이제는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초인적인 태도를 중요시 여긴 것입니다. 즉 "깨어있어라" 이 말입니다. 이 말이 왜 비도덕적인 얘기이며 왜 이것이 나치와 직결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초인적인 누군가가 존재해야 한다지만, 소수의 개인들도 초인적인 힘으로 뒤집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찾아보니깐). 즉 니체는 "깨어있음" 지혜와 연결되는 부분이지 이게 도덕적인 거랑 무슨 상관인 지 모르겠네요. 전 다른 얘기라고 봅니다.
자존감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회의감과 허무함에서 깨어난 계기가 니체이며, 그런 니체의 철학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어떤 삶이든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순수한 아이처럼 몰입과 집중을 하는 것이 초인입니다.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저출산, 낙태 등을 보는듯하군요.
니체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이후 기독교에 한계를 느끼고 자신만의 사상을 펼쳤다. 니체는 신이라는 허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이에 속박되어 살아가는것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과 이에 신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버맨쉬(초인) 영원회귀 등등으로.
니체는 그저 신은 구라니까 도덕 선과악 ㅈ도 신경쓰지 말고 살아라 라고 이야기 한적이 없는데 이런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위해 짜집기 하는건 정말 실망이네요.
피터슨의 주장도 하나의 해석일뿐. 이것을 곧이 곧대로 믿는 자는 니체가 말했던 최후의 인간.
삶이란 그 자체로 해석이다. 고로 해석의 세계에는 정답이란없다. -니체
이거 ㄹㅇ
니체의 논리를 이길 논리가 없죠 사실.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급의 논리니까요. 절대 가치를 타협하지 않고 거부해버리니 그 누구도 절대 가치를 논할 수 없죠. 그런 니체가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건 고통을 사랑하며 투쟁하는 것만이 삶인데, 이 세상에 고통을 단 한 번이라도 느껴본 인간이라면 사실 니체의 말을 부정할 수 가 없죠. 가령 이별 후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이별을 극복하려 합니다. 결국 극복한 뒤 자연스럽게 더 고양된 스스로를 발견하죠. 철학의 큰 틀 자체가 특정의 배움이 아닌 애당초 내 삶이 철학이 말하는 지혜의 틀이였단 걸 인식하게 해주는 학문인데 이 점을 통해 봤을 때 인간은 이미 니체가 논한 니힐리즘을 모두 갖고 살아간다고 봅니다. 인식의 여부 차이죠.
@@deltoro2685 맞는 말입니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발견했을뿐이지, 창조하지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언급했다는 이유로 발명자로 오해하니까요.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면 병을 옹호하는것이다'라는 논리와 다르지않죠.
@@일옥-i3x 맞아요. 또한 니체의 니힐리즘을 욕하는 건 정말 무지에서 나오는 오만이라 속단할 수 밖에 없는게, 허무주의면서 그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운명애를 강조하며 그 누구보다 인류애를 강조하죠. 티는 안 내지만요. 신을 거부한 그 패기 자체에 인류애가 없을 수 가 없죠.
니체야 말로 객관의 범람 속에 패기와 신념으로 싸워나가는 21세기 레지스탕스들에겐 곧 신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니체는 그랬을 겁니다.
'나 또한 죽여라, 그게 당신이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존중이다.'
@@deltoro2685 저랑 키배뜬 교인들이 일치하는 공통점이있는데 니체가 말하는 약자들의 유형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자기를 높이려하지만 정작 타자의 기준을따르며 개성•유행이란 단어에 민감한 부류들, 속물근성에 허영심, 낮은 자존감을 티 안내며 자기기만까지, 노예의지의 사람들
확실한건 도킨스나 샘 해리스같은 무신론자들의 주장처럼 종교적 기반을 버리고 완전한 이성으로 전환한다면 한 사회를 넘어서 인류가 바로설수 없을거라는 점이네요. 왜냐하면 조던 피터슨의 말처럼 초월적 심판자가 실존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실존한다고 믿고 살아가지 않는 이상 도덕이 제 기능을 할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양심이나 도덕율은 종교적 관념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고 볼수있고 그 관념적 제한이 강제로 없어진다면 인류는 목줄 풀린 망아지꼴일겁니다. 그리고 20세기에 우리는 이미 그 위험을 경험했구요. 또한 인간이 완전히 사회구조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지않는 이상 인간안에 내제된 그 신성(도덕율) 을 완전히 없앨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얘기는 사회적으론 용인되나 내제적으로 계속 억압받는 도덕율로 대한 인식으로 인해 각 개인들은 고통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고 그 고통이 무엇인지 제대로 통찰할수 없는 다수의 인간은 무익함, 무가치함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는 얘기겠죠. 진리를 추구하는 의식이 참 진리를 인식하는 능력을 없앴다는 니체의 주장처럼 이성사고를 기반으로한 과학적 사고는 인류를 풍요롭게 했지만 동시에 눈 뜬 장님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증명할수 없는것은 말할 필요 없는것이니까요. 하지만 사실의 기능과 가치의 기능은 명백히 다른것입니다. 증거될수 없는것이 무용하다면 사실 인생 대부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일의 의미, 부모님의 사랑, 배우자에 대한 헌신은 사실로 증명할수 없기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의 끝은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죠. 결국 보이지 않는 것 중 의심조차 불허한 개념이 자아인데 니체는 이 자아를 고통 속에서 투쟁하며 고양시키라고 가르쳤던 거구요. 신을 배제한채 초인 논리를 펼쳤던 이유가 인간 모두 초인 정신을 향해 투쟁한다면 외적 투쟁 역시 바람직한 것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도덕적 방향성 또한 내포 돼있죠. 굳이 절대자의 거느림 하에 존재 하는 도덕이 필요가 없다고 봤고 도덕 역시 절대적인 건 없다고 봤으니까요.
기독교적 교리를 완강히도 부인한 인물의 사상을 끝까지 절대적 존재와 엮는 논리들이 참 신기합니다. 여동생이 니체의 사상을 나치즘에 투영한거나 다를 바가 없다고 보네요. 그 누구보다 절대적 존재를 부정한 사람인데 그럼에도 절대적 심판자는 필요하다란 해석을 접목 시키는 걸 니체가 보면 하늘에서 비통해하지 않을까 싶네요.
@@deltoro2685 잘못이해하고 계신 부분은 니체는 절대적 존재를 부정한게 아니라 절대적 존재가 '부정됨' 으로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초인사상은 신이 죽었음을 이해하고 기뻐하며 써내려간 승전보같은게 아니에요. 다만 서구를 지탱한 기독교 윤리기반이 무너짐에 따른 위기를 인류가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니체 나름의 고찰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니체에게 초인사상은 바람직한게 아니라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러한 연결선상에서 조던피터슨과 니체 모두 기독교적 윤리기반이 무너짐에 따른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있고, 때문에 니체를 절대적 존재와 엮는 논리는 너무 당연합니다. 물론 초인사상은 두 지식인을 가르는 지점이 되겠죠. 왜냐하면 조던피터슨은 칼융의 말마따나 가치는 만들어 지는것이 아니라 발견되는것이라 믿는 사람이니까요.
@@deltoro2685 글을 쓰고 다시 영상을 보니 영상을 정리해서 다시 말하는 수준이 됐군요. 이미 조던피터슨이 친절하게 다 설명해주고 있는데 불필요한 글을 적었네요
@@roygang6828 절대적 존재가 '부정됨'은 자연의 이치처럼 일어난게 아니죠. 니체의 경험을 통한 깨달음의 분출로써의 결과죠. 부정한게 아니라 부정됨에 따른 불가피한 초인논리를 펼쳤다는 누구의 해석에 근거한 얘기죠? 저희 해석을 버리고 온전히 니체 사상 그대로만 두고 얘길 꺼내면 답은 아주 간단해요. 니체는 신을 부정했습니다. 집안 자체가 독실한 기독교였음에도 신을 부정했고 절친하던 친구가 끝내 종교를 버리지 못 해 손절한 일화도 존재하죠. 애초에 니체에겐 기쁨과 승전보 따위는 스스로 고통을 딛고 자신이 고양됐음을 느꼈을 때 뿐이라 얘기 했습니다. 신을 죽이고 자시고는 니체에게 기쁨을 느끼고 승리를 도취하는 등의 개념의 것이 아니란 얘깁니다.
기독교적 윤리기반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기독교의 산물인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허무 속 대혼란이 올 것이란 예언은 했죠. 그렇다고 필수불가결한 기독교적 윤리기반이 무너져서 초래한 비극이란 해석은 어불성설이죠. 오히려 기독교적 윤리기반은 죽여야 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혼란 속에 살아남으려면 초인 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범람하는 애매한 해석 때문에 가치 없음에도 댓글을 꼭 쓰고 가는 겁니다.
누누히 얘기하지만 니체는 해석의 세계 속에 정답은 없다라 얘기 했습니다. 이 잠언 자체가 니체가 직접 얘기한 실체듯이 니체가 기독교를 부정한건 실체입니다. 여타 다른 해석이 덧붙힐 이유가 없으며 이유가 있다면 기독교인들의 방어기제를 위한 일방적 수용 뿐이겠죠. 니체 사상을 두고 얘길 할거면 니체의 사상만 놓고 왈가왈부를 해야지 또 다른 해석의 산물인 조던 피터슨의 견해를 전적인 근거로 드는 건 이 또한 니체가 말하는 죽은 삶 입니다.
@@roygang6828 길게 쓸 것도 없이 쉽게 말씀 드리면,
기독교적 절대 신을 부정함ㅡ그에 따른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초인이 되야함ㅡ초인이 되서 자아실현을 이룩하고 죽고 나서 자연과 무로 돌아가는 영원회귀
이게 니체가 말하는 큰 틀입니다.
신은 죽었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라.. 그렇다면 니체가 말한 초인이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도덕률을 부여할 줄 아는 인간인 것인지...
이것은 신성모독과 같은 불경한 철학도 아니고 허무주의적 니힐리즘도 아닌, 삶을 긍정하는 철학이라 보는 것이 옳겠군요.
하지만 신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때때로 너무 교만했고 자신의 이성을 맹신했기도 했지요. 이 이성으로 현세에 한방에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의 끔찍함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니체가 기독교를 모독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과학에 의해 흔들렸던 신의 개념과 당시 교회역할의 한계 속에서 도덕을 잃은 채 흐트러질 인간군상들의 방종을 경고한 것이겠지요.
신을 잃어버린 인간들이여 스스로의 자신만의 도덕을 가지고 삶을 경건하게 살아가는 초인이 되어라같은....
신의 유무는 어려운 논제가 되겠지만 내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믿음은 여전히 우리 삶의 조타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이 기본적인 악행을 제어하고 윤리가 좋은 방향을 제시한다면 종교는 포괄적합도와 호혜적 이타주의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이타심과 맞물려 선행을 유도할 수 있겠지요. 다만 이슬람교 같은 지나친 원리주의는 분명 나쁜 meme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ka kao 정말 훌륭한 통찰이십니다.
이렇게 이성적이신 분께 전도라 할까 조심스럽지만
나니아 연대기를 집필한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조심스레 추천해봅니다. 물론 읽고 선택은 님이 하시는 거지만요. 정말 훌륭한 통찰과 변증의 에센스라 할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무신론자들을 기독교인으로 인도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배우신 분
어쩌면 신을 진실되게 주창했던 이들의 인간군상 혹은 도덕적인 삶을
신에서 초인으로 옮겼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팩트. 니체는 기독교를 두고두고 깟다.
'노예들이 만들어낸 종교' '노예도덕의 집합체'라기까지한 사람인데 모독을 안했다니 ㅋㅋㅋ 역시 기독교는 까야 재맛이지
@강현모 언제 노예를 비난했다고 했습니까? 기독교를 비난, 비판 했지?? 한글 못읽죠? 멍청하죠?언어 못하죠?
A=B, B≒C 라고 했는데A=B, B=C 다?? 능지수준
니체가 신에 대한 믿음의 부재로 인한 도덕적 혼란상태를 우려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가 이상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도, 우리가 기독교로 다시 회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기독교가 르상티망(원한감정)에 기반한 노예도덕이라고 생각했죠. 우리가 신을 죽였는데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거냐는 말은 기독교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사라진 도덕의 빈자리를 대체할 수단은 아직 없는 사자의 상태를 우려한 말입니다. 설마 피터슨 교수가 이걸 모르고 계시지는 않겠지만, 영상만 보고서는 니체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아 댓글 남깁니다.
교회는 예수의 무덤이다 - 니체
예수님은 무저항적인 사랑과 용서를 강조했을 뿐, 신앙의 삶을 강조하신 적은 없지요.
무엇보다 악마나 지옥, 천사와 천국이라는 개념은 후대에서 억지로 집어넣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자길 믿지않는 사람은 지옥에 갈 거라고 과연 말했을까요?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것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모든 인류가 곧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뜻이죠.
하 박경철 강연 생각나네요
시대를 앞서는 0.1%의천재와 0.1% 천재를 알아보는 0.9%의 조력자 나머지 99%잉여인간
박경철씨 멘트만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볼 수 있는데 그게 또 자연스럽기도 하죠. 다 그러면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죠. 사실상 소수의 천재들이 이끌어온 역사이죠.
보통 쓰는 잉여라는 말에는 비하의 뉘앙스가 녹아 있는데 전 그런 뉘앙스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 잉여가 없으면 피라미드의 아름다운 기하학적 모양이 탄생할 수가 없죠. 모두가 꼭대기에 모여있을 수는 없듯이요. 천재들은 타고나는 것이고 평범한 사람들도 그 시대의 흐름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다 떠나는 것 뿐입니다.
마치 위대한 무언가가 되어야지만 가치가 있는것처럼 생각하는 방식은 그냥 관점자체가 엇나간 무지의 산실로 생각이 되네요.
다만, 인생의 철학이 없이 개돼지처럼 휘둘리며 사는 삶은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비극으로 봅니다.
Sangyong Park 맞소
님들은 조력자 아니니까 철학공부 그만하세요
jolla la 병신
@@jollala6573 ;
우리는 사랑때문에 만들어졌다.
사랑없는 진리는 없다.
영상 잘봤습니다!영상의 god에 대한해석으로 '하나님' 대신 '신'이였으면 더 좋았을듯 싶어요.
[Jordan Peterson - Do you believe in God?] ruclips.net/video/VPIh1xQiuI8/видео.html
이 영상에서보면 '신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그런식의 두 가지의 카테고리 중 하나에 날 가두는것 같은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답합니다. 이후에 덧붙혀 "하지만 난 신이 있는것처럼 행동한다"라고 하죠. 그러한 대답을 한이유는 아마 본 영상에서 설명한 바와같이
서양의 도덕체계를 근거한 것은 기본적으로 신성에 대한 개념이라는 니체의 의견에 동조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그러한 초월적기준이 존재하지않으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질꺼라는 우려에 의해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라고 답한것같아요.아무튼 저도 피터슨교수님 영상을 자주보는데 니체/프로이드 철학에 대해 언급을 자주하시는걸 보는데 그때마다 드는생각이'피터슨교수님은 종교가 있는것같은데 드러내고싶지 않아하는것같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현 위치와 영향력 등을 생각해봤을때종교에 관해 색깔을 내비추면 누군가는 '피터슨교수의 말들을 객관적이지 않다' 라고 생각할까봐 우려해 그러시는건 아닌가 싶어요. 저 같은 생각해보신분 없나요?
하나님 번역 무리 없어보입니다.
니체가 말했던 살해당한 신은 기독교에서의 신 한정이었거든요
도스토예프스키 역시도 기독교 신자였고요
아하 업로더분께서도 '제도권 종교인의 딱지가 붙을까 우려하는것같다'라는 생각이 드셨군요! 그런것까지 고려하셨다면 제 생각이 과했을 수도 있네요 ㅎㅎ 좋은 피드백 감사합니다
서정민 넹 저도 그부분에있어서 하나님으로 번역하는게 더 정확하다라고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피터슨교수님처럼 영향력있고 통찰력있으시고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계신다는 평을 받는 분이 어느 한 특정 종교에 대해 색깔이 드러난다면 유독 기독교에대한 반감이 있는 한국사회 20~30대 들이 받아들임에있어서 종교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어느정도의 선입견있이 영상을 보게되지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쓴 말입니다 ㅎㅎ 저도 피터슨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맥락에서는 하나님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저랑 똑같이 생각하셔서 소름 돋았어요 이분이 기도교인의 프레임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도덕적 근간위에서 사회를 구성해 왔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것 같아요
피터슨은 대중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강의를 잘하는데, 가끔 지나치게 로고스를 치켜세워 그 안의 폭력성을 은폐하고는 한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로고스가 뭐에요??
로고스를 강조하긴했지만 무작정 치켜세우며 폭력성을 은폐한적은 없는것같은데.. 로고스 그 자체가 폭령성을 띤다는 전제자체가 오류인것같습니다 보통 무신론자들이 유신론을 비난할때 가장많이 인용하는것이 종교전쟁이 엄청난 사망자수를 냈다는것인데 이건 로고스 그 자체가아닌 로고스를 해석하는 인간들의 싸움이지 로고스 그 자체가 폭력성을 띤다는건 아니라고생각합니다 이신론의 관점으로보면 더욱 명확하게 와닿으실것같네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봐도 신의개입으로 전쟁,재앙 등으로인해 사상자가 생긴건 성경에 기록된 사건만 해석할뿐 그뒤에 일어난일에대해서는 인간사적인 측면의 접근법이 훨씬 맞다고봅니다.
박하빈 '그냥 덮고 믿어라'가 아니라 로고스가 참인지 아닌지 폭력성을 띠는지 안띠는지 확인하실 수 있는 단계가 남아있습니다
@@꾸르댕 공감합니다.
앞뒤 잘라먹는건 피터슨도 마찬가지네. "그는 '신이 죽어서' 모든 게 엉망징창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 : 그래 니체는 해석이 난무하니까 니도 니 주장을 펼치기 위해 니체의 문장을 니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놈이구나.
확실한건 기독교를 실랄하게 비판한 놈이 '신은 죽었다' 라는 문장이 온건한 문장이다? ㅋㅋㅋㅋ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니체라는 놈이 과연? ㅋㅋㅋ
실랄x 신랄o
니체가 무슨 홉스나 도스토예프스키인줄아나 피터슨은? 신이 없으면 모든것이 허용되므로 신은 있어야한다고 그런식으로 말하지마라
피터슨 교수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에 더 자세히 나와있는데, 신이 죽었기 때문에 신이 살아있는 상태로의 회귀를 생각하였던 도스토옙스키의 통찰을 신이 죽었기 때문에 나 자신이 초월자(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는 니체의 통찰보다 더 높게 치는 경향을 보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나지만 이런 문제에 관해서 칼 융이나 도스토옙스키의 고찰이 니체의 통찰보다 더 깊다거나 정확하다고 표현했던거같아요.
@@jws3263 그렇군요. 제생각엔 니체의 위버멘쉬는 피터슨이말하는 초월자가 아니라 '놀이하는 어린이' 개념에 가깝다고봅니다.
@@일옥-i3x 그것에 관한 해석은 제가 니체를 자세히 아는것도 아니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저의 논지는 피터슨 교수는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에선 도스토옙스키와 니체가 같은생각을 하였으나 그 이후의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선 그 둘을 명확하게 구분짓는다는것이었으니까요...
위버멘쉬가 초월자가 아닌 놀이하는 어린이라는 개념이라는 생각도 니체를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jws3263 답변 감사합니다
그건그냥 예수님이저희의죄를대신해죽으셔서그래요
ㅋㅋㅋㅋㅋㅋ 코미디언이세요?
이런 사람들은 철학 책을 읽어도 얻는 것이 없을 것 같음. 그 결론이 어떻게 나왔는가, 과정이 합리적인가를 보지 않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하며, '결과에 복종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류가 아닌가 싶음.
@@GGGG-zv3fk 복종하고 따를만한, 자신을 이끌어줄 무언가가 필요한사람같음 신이 너무 딱 맞아떨어지는 개념이야
이런 수준 높은 영상과 댓글속에 당신같은 무뇌아들도 여지없이 섞여 있군요
정확해요 예수님은 저희의 죄를 씻어내셨어요 그감사함에 기도 드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