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철학은 나를 망칠 수 있다 - 윌리엄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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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6 июн 2023
  • 니체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철학자이고 훌륭한 작업을 많이 남겼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니체는 남의 사상에 도전하는 인간상을 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니체를 '믿기'보다는 니체에게 도전하는 정신을 가져야 할 겁니다. 그게 그의 사상을 더 존중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종교에 대해 니체가 가한 비판을 너무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 모든 종교적 정신은 나쁘다는 식의 사고를 하는 건 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정신에는 다양한 면모가 있으며, 그런 모습들을 포괄적으로 살피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Комментарии • 554

  • @Hippocratesoath
    @Hippocratesoath Год назад +456

    윌리엄 제임스와 니체에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라고 하셨을 때 '멋진 수염이 있다?'라고 생각한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 @user-uc9kv5gw2i
      @user-uc9kv5gw2i Год назад +25

      저는 이 사람도 루 살로메하고 엮인 사람인가 했습니다

    • @user-uz9uw3ux1e
      @user-uz9uw3ux1e Год назад +3

      ​@@user-uc9kv5gw2i 실제 그렇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도 않을 듯

    • @JOUOii
      @JOUOii Год назад +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flyingcat7797
      @flyingcat7797 Год назад +19

      “사실 제임스와 니체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수염”*
      ㅋㅋㅋㅋㅋㅋㅋ진지한 와중에 갑자기 터졌네요😂

    • @syul4133
      @syul4133 Год назад +4

      수염 특징: 저들에겐 어울리지만 우리에겐 아님

  • @yoplait_protein
    @yoplait_protein Год назад +179

    사회 전반적으로 니체를 그렇게 잘 이해하고 소비하는거 같지도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명언 몇 개 짜깁기해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갖다 붙히는 정도... 최근에 퍼지는 알파메일 담론에 니체의 말들이 등장하는것을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적당히 자기한테 편리한 수준에서만 철학을 이해하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user-uc9kv5gw2i
      @user-uc9kv5gw2i Год назад +20

      그렇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을 즐겁게 긍정해야 니체적인 것입니다. 뭐라 해야 하나, 고통 속에서 염세적으로 몸부림치면서 그 와중 니체를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로 광고하다시피하는 계정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이따금 보입니다. 니체보다 쇼펜하우어와 연합해야 할 것 같은 분들이 말입니다.
      AC/DC의 It’s a Long Way to the Top이 올라가고자 하는 산이 있는 사람이 그 등반 과정에서 타격을 입으며 이에 불구하고 웃으며 계속 나아가는 정신을 담은 니체적인 곡이라고 저는 느끼는데, 이분들에게 들려주고 싶기도 합니다.
      이래서 강한 철학이라고 하는 겁니다. 아픈데 웃고 있어요. 근데 이게 또 반동형성의 방어기제적 웃음도 아닙니다. 별 거 없고, 근육의 통각을 환영하는 헬창들 생각하면 편합니다. 정신의 헬창이 되자는 겁니다 니체는.

    • @ghdjdeqkfheheh
      @ghdjdeqkfheheh Год назад +32

      정말 공감합니다. 사실 철학은 공부하면 할수록 그냥 내가 모르는게 너무 많아서 암말도 못하게 되던데, 그냥 문장 하나 띡 퍼와서 인용하는 모습이 참 아쉽긴하죠..
      말 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해야한다.
      신은 죽었다.
      등등 대표적인 오남용 문구.. ㅋㅋ

    • @user-sz6mb1bt1g
      @user-sz6mb1bt1g Год назад +6

      제일 속이기 쉬운애들이 mz 남자들 ㅋㅋ 얘네 수능은 뚜둘겨맞고 와서는 자기들이 뭐라도 아는줄 아니 참 불쌍해

    • @pokegenstein
      @pokegenstein Год назад +31

      ​@@user-sz6mb1bt1g "가치관도 없고 현실대신 환상만 좇으며 그저 무비판적으로 권위만 찬양하며 온갖 타로 사주 점성술에 속는 mz 여성분들만 할까요?" 백래쉬 좀 했는데 어떤가요? 이런 식으로 남녀 갈라치기하면 갈등이 끝도 없이 재생성 될 겁니다. 니체와 제임스가 일치하듯 다원주의적인 태도로 서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 @user-sz6mb1bt1g
      @user-sz6mb1bt1g Год назад

      @@pokegenstein 갈라치기 제일많이하는게 mz남자일텐데..? 그리구 수능2등급이랑 9등급 차이보다 수능 100점과 2등급 차이가 더 크고 국민대부분은 정상적 사고가 불가능해요;;

  • @letsbe4129
    @letsbe4129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42

    니체의 철학을 잘못 이해하고 계신 부분이 있네요.
    1. 니체는 누구보다도 관계성을 중시한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철학적 방식은 힘에의 의지에 의한 관계론입니다. 나뿐 아니라 상대가 필요하다고 , 그것이 적일지라도 관계론적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체는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적도 필요합니다. 아니, 나와 대등하게 힘싸움을 할 수 있는 적은 가장 좋은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상승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존재이니까요. 그래서 니체는 적에 대한 존경심까지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 니체가 선한 자들을 비판한 이유는 그들의 위선적인 면 때문입니다. 왜 선한자들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선한 자들이 바탕을 두고 있는 도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도덕은 대지와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고 비방하는 도덕이었습니다. 인간을 정신적인 측면으로만 보고 육체성과 의지적 측면은 부정하는 도덕. 그것은 인간을 건강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병들게 하는 것이라고 봤죠. 그런 병든 상태에서는 아무리 연민과 동정을 외치고 이웃사랑을 실천해도 병리적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죠. 니체는 연민, 동정, 이웃사랑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닙니다. 관점주의를 이해한다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니체가 그의 철학에서 일관되게 취했던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힘에의 의지에 의한 방법론적 일원론이며, 다른 하나는 관점주의입니다. 니체의 관점주의에 따르면, 모든 것은 실체가 없고 가치중립적이며 그것을 해석하고 실행하는 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가치가 아니라 가치를 해석하는자(또는 실행하는자)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죠. 동정을 병든자가 행하느냐 건강한 자가 행하느냐에 따라 동정의 가치는 달라집니다. 실제로 니체는 에서 강자 즉 건강한 자가 행하는 동정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에서도 자신의 지혜를 거저 주는 선물 또는 사랑으로 표현했습니다. 거저주는 선물이나 사랑은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같은 것이죠. 결론적으로 니체는 당대에 스스로 선한 자라고 생각하는 도덕군자들이 실제로 병듦어 있음을 비판하고 병든자들이 주장하는 동정을 거부한 것입니다.
    3. 그럼에도 니체의 약자에 대한 태도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 니체는 약자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거친 발언은 이후의 저서들에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니체는 에서 약자에 대한 동정을 극복해야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니체는 사람들을 위버멘쉬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동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 모습은 3부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버려야 한다고 니체가 말하는 동정은 2번에서 말했던 동정과 다른 것입니다. 행위자가 다르죠? 차라투스트라의 동정은 병든 동정이 아닙니다.) 왜 동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인간을 위버멘쉬로 이끌기 위해서 니체는 영원회귀사유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약자는 버텨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의를 위해서 약자에 대한 동정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죠.
    여기까지가 니체의 글들에서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들이고 그 이후는 해석상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니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니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짜 마음은 약자도 노예성에서 벗어나서 영원회귀 사유를 버티면서 위버멘쉬가 되기를 바랬다고 말합니다. 니체를 반대하는 사람들(게오르그 루카치 부류의 사람들)은 니체의 극우적인 성향을 비판합니다. 니체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가집니다. 니체는 에서 강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약자와 고통을 나누고 그의 짐을 대신 져주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며 그들을 상승적 존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요. 강한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니체가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펴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참 사랑인지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채찍질 하는 것이 참 사랑인지 그것은 개인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3.1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니체 스스로 자존감이 너무 강해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을 아주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했죠.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는 명석한 머리를 가졌으며 예술적인 감수성도 뛰어났습니다. 피아노만 있으면 즉흥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작곡도 가능했고, 시적으로도 뛰어났습니다. 언어적으로도 뛰어났는데 그 어렵다는 라틴어를 사용해서 자유자재로 대화가 가능했으며,(바그너는 라틴어를 잘하는 니체한테 열등감도 있었습니다.) 가장 뛰어나게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중 한명으로 여겨집니다. 너무 잘나고 똑똑해서 못난 약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4. 니체가 말하는 강자는 약육강식에서의 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세상의 본질이 약육강식이라고 니체는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은 힘에의 의지들의 관계로 이루어진 세상이니까요. 그것이 자연적 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강자는 약자를 억압하고 괴롭혀도 된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약육강식이라는 동물적 본성을 인간도 가지고 있지만 그런 본성을 승화해야 한다고 니체는 생각했습니다. 관능의 승화가 사랑이듯, 이기심이나 지배욕도 승화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들의 방향이 상대를 향하지 않고 자신의 상승으로 향한다면(다시 말해 위버멘쉬로 향한다면) 긍정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기심이 이타심으로 전환될 수도 있으며, 지배욕이 나와 상대를 상생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승화입니다. 따라서 니체가 말하는 강자는 사실 언어적 차이만 있을 뿐 일반적으로 이타적이고 고귀하다고 생각되는 존재와 비슷합니다.(물론 엄격한 차이도 존재합니다. 그가 그리스도교적인 도덕을 반대했기 때문에 그런 도덕을 가진 존재는 아닙니다. 오히려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에 가깝다고 봐야합니다.) 니체는 강자를 주인, 주권적 개인, 위버멘쉬, 고귀한 귀족이라고도 말하는데, 기존 도덕에 반하는 가치들(이기심, 지배욕 등)을 추구하지만 그 결과는 기존 도덕이 추구하는 것(이타심, 상생과 공존 등)으로 귀결됩니다.
    니체는 가치의 전도를 말했던 철학자입니다.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들을 대지와 인간 본성을 중심으로 재해석한 철학자이죠. 기존의 나무로 된 집을 허물고, 다른 재질의 재료, 예를 들면 대리석이나 벽돌 같은 것으로 기존과 모양이 똑같은 집을 지으려 했던 철학자입니다. 일례로 그는 인간의 육체성과 본능적인 면을 옹호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 말만 들으면 금욕주의와 정반대된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니체는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런 육체성과 본능에 휘둘리는 것은 힘이 약하기 때문이며 노예성, 병리성 때문이라고요. 그는 본능에 대한 순진무구함까지 주장했습니다. 이런 면은 오히려 금욕주의자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다른 언어로 형상화된 금욕주의가요. 이와 같은 사실에서 언어와 접근 방식이 다르지 귀결이 같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5. 니체 철학이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관점주의 때문입니다. 니체는 어떤 가치도 실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가치 중립적입니다. 그의 비도덕주의 또는 도덕에서의 자연주의도 이런 관점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일관성은 또 존재합니다. 그것은 힘에의 의지에 의한 관계론 또는 생기존재론입니다. 그래서 니체의 철학을 힘에의 의지에 의한 방법론적 일원론이라고도 합니다. 힘에의 의지와 관점주의를 이해한다면 그의 철학에 좀더 접근할 수 있습니다.

    • @letsbe4129
      @letsbe4129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2

      @@hanss7182 그렇죠 니체에게 있어서 가치 중립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객관성을 추구한다고 하는 학문 자체도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관점적이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었습니다. 상대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는데 문장상 오류가 났네요. 위에 2번을 보시면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관점주의는 사실 자체는 없으며 그것에 대한 해석만 존재할 뿐이다. 그 해석은 힘에의 의지(삶의 유용성에 대한 추구)에 따라 이루어진다. 해석이기에 오류성도 있다. 하지만 삶의 유용성을 가지고 있는 오류이기에 가치가 있다. 이 정도가 니체의 관점주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되겠죠?
      관심을 가지고 길게 답글 달아주셨으니 그 노고에 감사하는 뜻에서도 고치지는 않을 게요.
      그리고 말씀하신 그 욕망들이 바로 의지입니다. 니체는 인간을 의지들이 싸우는 장소로도 생각했습니다. 의지들이 힘싸움을 하는 장소로요. 그래서 자기 상승을 이를 수 있는 의지를 위해서 다른 의지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했죠. 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단어만 바뀌었을 뿐.

    • @user-vi8yj5ri8h
      @user-vi8yj5ri8h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좋은 글 같아서 댓글남겨두고 갑니다.
      나중에 읽어볼게요.

    • @user-ve6um8bd2m
      @user-ve6um8bd2m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프린트해서 읽어보겠습니다 ^&^

    • @adnn-hj7fd
      @adnn-hj7fd 6 месяцев назад

      😊

    • @padogonia
      @padogoni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와드

  • @JOUOii
    @JOUOii Год назад +93

    니체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니체를 또 다른 관점으로 볼수있게 되어서 좋습니다.
    '어떤 인간상이 바람직한 인간상인지는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 문장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 @lux2gg752
    @lux2gg752 Год назад +156

    최근 커뮤니티 등에서도 니체의 발언들이 취사선택해서 현대인들 입맛에 맞게 가공되어서 올라오곤 하는데(그래서 인기가 많더군요, 쇼펜하우어도 자주 올라옵니다) 충코님 덕분에 니체의 비판점을 보면서 역시 완전무결한 철학은 없구나 이생각 다시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machienshock
      @machienshock Год назад +31

      그것들은 그냥 유튜브 공장의 인스턴스 식품일뿐입니다. 무당집에 찾아가서는 애매모호한 점술에 심취하는 호갱 손님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배우고 싶으면 유튜브가 아니라 제발! 책좀 보라고 권해주고 싶습니다. 책이 없다면 세상의 주먹에 쳐맞으면서도 견디며 배우라고 권하고 싶은 요즘 시대입니다.

    • @luxxost798
      @luxxost798 Год назад +17

      니체는 천재였지만 인간적으론 미성숙한 인물이였습니다 미성숙한 인물이 만든 철학이라서 위험성이 크죠 그건 니체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느낄수있습니다 니체는 패션으로 접했을때가 가장 좋죠 ㅋㅋ

    • @dschai0220
      @dschai0220 Год назад +5

      노자의 경우에는 노자의 말이 아닌 것들이 포장되어 퍼지고 있습니다. 수학적 논리적 해석이 아닌 경우 다 엉터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 @user-hs4df7ng1h
      @user-hs4df7ng1h Год назад +2

      철학을 완전무결함으로이해하는거는 철학을 한국식 수양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겁니다. 득도라든지 어떤 경지에 이른다는 한국적인 한심한 권위 지향적인 이상성으로 도피하기 위해 철학을 위장술로 이용하는거죠. 너는 착한 애인 줄 알았는데 나쁜 애구나 식의 한심한 원망이고 힐난입니다
      그리고 이 채널도 니체나 다른 철학잘들을 그저 선입견에 기대서 표층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어요. 그저 채널용 속성 아는 척 소개를 위해서요. 니체가 약자라고 말할 때 실재 사회적 약자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권력의지에 따르는 반동적임 힘에 복속된 사람을 일컷는 거에요. 물론 니체 스스로도 초기에 그걸 구분 못하기도 했지만 점차 인간 그 자체보다는 인간안에서 벌어지는 권력현상 힘들의 작용에 포커싱을 하고 인간의 주체성과 구분을 하기 시작해요. 니체가 주체적 인간성을 강조했다고 하는 건 이 채널이 니체를 잘모르고 콘텐츠용으로 부분부분의 인상만 주의해서 읽어서 그래요. 니체는 말년에 채찍 당하는 말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끌어 안았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건 우리가 말하는 선이나 도덕이 그 자체 절대적인게 아니라 연원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인간에게 죄의식과 가책을 심는 방법으로 인간을 부정과 원한으로 살게 만든 역사를 분석하고 있는거에요. 니체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박힌 디오니소스라고 하며 고귀하고 높게 평가했습니다.

    • @user-hs4df7ng1h
      @user-hs4df7ng1h Год назад +13

      덧붙이면 니체는 고통을 부정하지 않았어요. 니체는 고통과 위험과 함께하고 기꺼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같이 그 운명을 기뻐하기를 주장했습니다. 니체가 비판하는건 no pain no gain식의 고통과 구원의 교환, 고통과 이익의 교환, 고통과 신성의 교환같은 인간들의 자기 기만이었습니다. 너가 용서받기를 원해? 그럼 고통을 통해 그 자격을 증명해봐. 너의 죄를 고통으로 속죄해라. 너의 욕망을 이루고 싶어? 그럼 참고 견뎌. 정성을 보여, 그 정성을 고통으로 증명해. 너가 어떤 경지에 이르고 싶어? 고통없이 불가능하다. 뼈를 깍는 고통으로 도를 닦을 수 있고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런 부채로서 고통을 지불할것을 요구하는 사고 방식. 그리고 고통을 지불한자가 이번에는 타인에게 나도 어렵게 한거 너가 쉽게 얻으면 안되지라면서 타인에게 고통을 증명하기를 요구하는 저열함을 비판한 거였어요. 한국에도 많죠? 수양이니 수행이니 고행이니 그 자기 절제와 인내와 고통을 통해 인간이 다음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불교적 또는 한국적 시기심과 사기꾼 도사, 스승과 제자의 도제심보. 너의 고통은 너의 책임이며 너가 마땅히 감내해야 할 인과응보식의 사고. 니체는 이런 고통을 요구하는 부정적 사고방식의 역사를 추적하고 비판한 거에요. 니체는 그래서 짐을 나르는 당나귀에 대한 비유로 가책, 관습과 굴레를 벗어던지라고 한거고요. 니체에게 있어서 고통은 운명애에 가깝고 디오니소스의 고통이에요. 긍정하는 인생으로서 고통이죠.

  • @Vulcanus.
    @Vulcanus. Год назад +85

    우울과 허무주의에 빠졌을 때, 니체의 책을 잔뜩 읽으면서 극복했습니다.
    근데 건강한 정신이 되어서 니체를 다시 읽어보니 거부감이 느껴졌었는데,
    이 영상을 통해서 그 느낌의 이유를 찾게 되어 소름이 돋습니다!
    이번에는 윌리엄 제임스의 책을 읽어 봐야겠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hrj2153
      @hrj2153 Год назад +14

      전 오히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땐 니체철학이 역겹거나 버겁게 느껴지는데, 신체적 건강도 회복하고 즐거운 기분을 되찾으면 다시 니체의 말들에 끄덕이게 되더군요.

    • @BSA21M
      @BSA21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8

      @wojciech4112 ㅇㅈ 깨달음의 결론은 순수로 귀결됨

    • @leageoflegeondkoreang6146
      @leageoflegeondkoreang6146 9 месяцев назад

      ​@user-js2ml1yn2b낙타.

    • @iiiiiii-sd9bd
      @iiiiiii-sd9bd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각자의 상태에 따라서 적절한 처방이 필요한 것 나한테도 지금은 니체가 필요할 것 같다

  • @siamesecat-ic7xt
    @siamesecat-ic7xt Год назад +39

    니체 철학책을 25,6년전에 완전 빠져서 봤었고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저는 이렇게 기억하고있습니다
    니체의 여러 책들이있는데 니체도 나이가 들면서 책내용들도 점점 성숙해간단 생각이 들었고
    불안정하고, 도전적이고 반항적인 청춘의 이야기부터.. 완전히 해탈한 성인의 이야기까지 다이야기하고있어서 개인적으로 방황하던 대학생시절 너무 인간적으로 공감이 가서
    니체에게 빠졌던 기억이 있네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였던가...사자처럼 강인한정신을 가져야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된다고 했던 내용이 기억나는데
    니체의 중심사상을 잘 표현한내용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니체는 사상도 사상인데.. 철학책이 참 읽기 힘든책인데.. 니체책은 한번빠져들면 헤어나올수없게 만드는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것같네요.
    문장표현들이 시적이고 독창적이어서 철핵책이면서 동시에 예술작품을 보는것같은느낌
    40대가된 지금 읽으면 어떻게 다가올지 꼭 시간내서 니체책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 @atozzao
      @atozzao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user-js2ml1yn2b똑같은 댓글 좀 그만

  • @user-uw4so6el2e
    @user-uw4so6el2e Год назад +9

    유교를 먼저 대하고 노장 사상을 접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네요.
    강의가 깔끔합니다 ~^^

  • @user-cw6vg5tr6e
    @user-cw6vg5tr6e Год назад +30

    니체를 읽되 니체를 통과해야 한다.

  • @smbfor1769
    @smbfor1769 Год назад +7

    철학 좋아해서 보게됐는데 영상들이 다 너무 흥미롭고 유용하네요 감사합니다

  • @sonatano2958
    @sonatano2958 Год назад +29

    니체의 철학은 때려부수는 철학이라고 불리는 만큼 도덕이나 체계에 대한 믿음에서 벗어나 의심해보게 만드는 점에서 대단하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평범하고 나약한 개인들에게 충분히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존 체계를 의심한 이후에 어떤 규칙들로써 살아갈 것인지, 나만의 규칙들로 살아갈 때 과연 진정으로 외롭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을 때 저는 결국 사회의 기존 가치 체계를 따라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니체 철학은 잠시의 일탈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 @josephk4633
    @josephk4633 Год назад +4

    정말 많이 배우고 갑니다 두번째 책도 정말 좋습니다. 잘 읽고있어요!

  • @Nakas30
    @Nakas30 Год назад +18

    영상 잘 보았습니다. 저는 윌리엄 제임스, 니체 둘 다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 저는 금수저였던 부분이 죄 라고 느껴졌고 타인을 위해 베풀고 스스로 본인을 지키지 못하여 학교폭력에 노출되었습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가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제가 유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니체에 사상은 성서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역시도 그렇지만 제가 한때 충코님의 말씀처럼 베푸는 인생을 살려고 했던 부분도 저의 한 부분입니다. 철학자의 역할 상 강하게 주장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쪽의 사상에만 치우치기보다 양쪽 모두의 철학이 지금은 귀에 들어옵니다. 상황마다 철학자들의 말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

  • @user-bd6no8ek3y
    @user-bd6no8ek3y 8 месяцев назад +9

    니체의 사상을 비판의 시선으로도 볼 수도 있어야 니체을 정말로 존중하는게 아닐까 라는 말이 저에겐 아주 깊은 통찰을 가져다 주네요 좋은 영상 정말 감사합니다!!!

  • @samuellee6735
    @samuellee6735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5

    기독교인으로 니체가 말하는 기독교적 비판이 솔직히 옳다고 느낍니다. 의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믿는건 삶에 도움이 안되죠. 단계별로 의심하면서 성장해가면서 믿음이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니체는 대부분 깊은 생각없이 종교를 믿고 따르는 어떻게 보면 조금 안일한 믿음을 비판하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말에서는 그가 정말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깊었기 때문에 깊은 생각후 나온 결론이라는게 느껴집니다. 니체의 기독교적 비판은 저는 동의 하지 않지만 그의 깊은 생각의 노력과 접근 방식은 배울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42 화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볼때 그 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니체의 전체적인 인생을 돌아보면서 설명하는데, 거기서 배울점은 자신을 믿고 사랑하면서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 가는 정신을 얻는것인거 같습니다. 영상의 내용처럼 니체를 완전히 응호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니체의 말을 갖다 붙이는 사람들도 니체가 비판하는 맹목적인 믿음의 기독교인들과 다름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영상에서 다루는 니체의 문제점들이 어느정도 맞다고 생각하는데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 는 성인의 성품이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말에 동의합니다. 니체가 소펜하우어의 철학, 그저 끝없이 욕망이 낳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다 죽는다에서, 그 고통도 삶에 일부로 취급하고 우린 성장해야 한다 라는 긍정적인 사상을 품은것 처럼 저도 니체가 조금 비판적인 기독교적 사상에도 깊은 가치와 긍정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user-lc8pe9dt8q
      @user-lc8pe9dt8q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귀하는 혹시 짝퉁 기독교인입니까 귀하가 기독교인이라면 니체를 볼때 백두산만한 구렁이가 보여야됩니다
      노름에 미친놈 술에 미친놈 낚시에 미친놈 아편에 미친놈이 있는데 니체는 도가도 비상도의 해방과 자유라고 하는 노자의 똥구멍을 빠는 똥벌레인데 이똥벌레에 미친 하이데꺼 데리다 라깡들이 있어요
      물고기는 물속에서만 자유가 있고 기차는 선로 위에서만 자유가 있습니다
      하이데꺼나 니체의 자유는 사탄의 자유입니다 위버맨쉬는 하늘을 나는 도가의 자유요 성경적으로 표현하자면
      루시퍼천사의 자유입니다
      서울대학교의 최고의 엘리트들이 뱀새끼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찍었고전라도는 거의가 뱀새끼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찍었는데 세계의유명인들 하바드대학의 석박사들도 니체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니체의 생성소멸의 환상을 아시나요
      니체의 사상은 석양노을 보다 천배나 아름답고 황홀한데 루시퍼 천사의 황홀함입니다
      그래서 니체의 환상속에 하바드 총장놈들이 미치고 환장하는것입니다
      니체는 가진자들의 도덕을 철저히 반대했습니다
      니체는 그당시의 신부 추기경 목사 수녀 청교도들을 악인으로 분류하고 어거스틴 칼빈 루터 데카르트 칸트의 사상을 반대한 악마놈입니다
      개는짖어도 기차는 달립니다 니체가 그토록 기독교를 저주했지만 미국의 청교도들은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 @user-uc9kv5gw2i
    @user-uc9kv5gw2i Год назад +24

    니체를 신으로 만들어 섬기고 그러면 안 돼…
    계속해서 니체의 텍스트를 맛보고 니체의 삶을 알고 니체에 대한 평가를 섭렵해 자연인으로서 못난 부분도 많이 보고 결국엔 이 양반이 ‘병신같지만 멋있는’ 동네 형처럼 다가올 때가지 가는 게 모든 자칭 니체 팬들의 의무입니다.

  • @user-pm9xr2yu7z
    @user-pm9xr2yu7z Год назад +37

    저는 니체가 기존의 가치 체계를 부정하는 것 만큼이나 새로운 가치 체계를 세우는 것을 강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망치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할 생각만 하고 그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 체계를 세우려 하지는 않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 @vinci7804
      @vinci7804 Год назад

      니체가 혐오할만한 사람들이 오히려 니체를 왜곡하고 이용하여 자기 주장을 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은 거라 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발로 니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라 봅니다. 왜곡과 오해가 많은 것으로, 이는 니체의 텍스트가 난해하니, 자기 입맛대로 왜곡해서 써먹기가 좋기 때문인 것이라 봅니다. 히틀러와 관련해서도 니체 철학을 히틀러와 연결시키려 했던 적이 있고,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의 여동생이 이에 가담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의 전체주의와 니체의 철학은 완전히 반대죠. 니체는 '개체주의'라고도 말할 수 있는 거라 봅니다. 그렇다고 니체가 '완전히 고립적이고, 세상은 어찌되든 말든 상관없고,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이고' 이런게 아니라고 봅니다. 에서 니체는 자꾸 세상에 뭔가 퍼주려고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낌없이 낭비하면서 퍼주는 그 장면을 미적 비유로 표현한 것이라 해석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리고 니체를 선해한다면, '개체의 가치를 극히 끌어올려서, 고귀한 인간을 만들어내고, 그 고귀한 인간들이 세상을 밝게 만들면 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건 선생님이 갖는 태도죠.

    • @user-uc9kv5gw2i
      @user-uc9kv5gw2i Год назад +11

      니체 철학은 변화의 철학입니다. 챔피언이 된 후 어떻게 하느냐면, 방어전을 나름대로 치르다가 다른 사람에게 벨트를 뺏기고, 자신은 또 그에 재도전하고… 하는 모든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게 니체의 입장인 것으로 압니다. 승리 후 계속 그렇게 변화를 마주하며 춤을 추면 되는 건데 그걸 받아들일 사람이 많지 않겠습니다.

    • @user-pm9xr2yu7z
      @user-pm9xr2yu7z Год назад +9

      ⁠​⁠​⁠@@user-uc9kv5gw2i 그렇다면 니체의 세계관으로 바라본 세상은 모든 것의 흥망성쇠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현장이겠군요 :)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고 또 그 과정의 일원이 되는 것이 니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

  • @oklu_
    @oklu_ Год назад +5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 @JB-is5br
    @JB-is5br Год назад +22

    '요런시점'이라는 유튜버 또한 영화 다크나이트를 통해 니체의 철학이 가진 그늘에 대해 다룬적이 있는데, 이 영상이 흥미롭게 느껴졌다면 가서 보시는것도 좋을것 같아요.
    충코님처럼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유튜버라 더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은근슬쩍 추천해봅니다 :)

    • @ShallSetmefree
      @ShallSetmefree Год назад

      오 선한사람:) 혼자 즐기지 않으시군요

  • @user-ch8vo8vq4u
    @user-ch8vo8vq4u Год назад +8

    아마도 니체 사상은 도덕과 윤리를 따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삶을 두고 크고 깊게 통찰해 볼 때 단 한 번 주어진 생명체라 한 개인의 독립적이며 주체적이고 강한 개인주의 삶이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며 죽음의 최후의 순간 후회 없는 삶으로 더 살고 싶거나 다시 태어나고 싶은 인간의 어리석은 미련을 버리지 않는 삶을 설파한 것인데 해석하는 사람들이 잘못 분석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도 우리의 내면이 시키는 일이 어떤 마음에서 일었는지 자기 자신 스스로도 모르고 행할 때가 많이 있는 착각에 능한 그런 불완전한 인간의 내면을 심오하게 찿아낸 그런 천재 철학자가 니체 아닌가 싶네오 인간의 이기주의와도 관련이 있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는게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인간의 본성 이기주의에 기인한 과대망상이 우리의 안식처 피신처로서 있는그대로의 사실을 보려하지 않는 자기 정당화를 신랄하고 적나라하게 파헤친 위대한 사상가로 인간의 내면이 이보다 더 잘 파헤친 사람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도 없을 것이다 왜냐고요?니체가 그 작업을 이미 120년 전에 위대한 작업을 해놨기 때문 이고 진리는 하나이지 둘이 될 수가 없다

  • @user-uj7np1jk1d
    @user-uj7np1jk1d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전 니체를 아주 얕게만 알면서 이 사람처럼 살겠다고 허무주의에 빠져선 겁 많은 치와와처럼 왈왈 거리며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 영상보곤 이런 망한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수용하며 살지라며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최근에 제 안에 사회적이진 않은 화와 분노를 좀 가라앉히고 사람 속에 녹아 살려고 노력하니까 주변 사람들도 제게 이전보다 따뜻하게 대해주더라고요. 그냥 제 관점이 바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요. 지금은 누구의 삶의 방식이 옳다 그르다 보단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보기 싫은 점, 충만감을 느끼게 하는 점 모두가 있는데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쳤던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건 한 번 뿐인 인생 후회없이 살고싶은 건데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책이든 실제 세상이든)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교류하며 살고 싶네요.

  • @fargo90
    @fargo90 Год назад +61

    처음 니체를 읽었을 때는 그 글들이 애초에 이론적으로 설득력을 가지는 스타일의 글이 아니어서 이해도 되지 않았고 마음이 가지도 않았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에 니체의 삶을 조금 알고 다시 그의 사상을 접해봤을 땐 뭔가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던 기억이 남.
    영상에서 이야기 하는 니체를 비판하는 부분에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학부에서 공부를 하면서 계속해서 남아있던 니체의 문장들을 떠올려보면 아무래도 니체가 이야기 하는 그 밑도 끝도 없는 긍정과 엇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 기존 체계에 대한 비판이 단순히 그의 사색에서 도출 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귀감이 아니라, 자신을 부정하는 것들에 맞서 어떻게든 삶을 긍정해야 했던 처절한 싸움의 결과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듦.
    아마 니체도 조금 평안한 시간을 가졌다면, 그래서 조금 더 삶을 누렸다면 그의 생각도 얼마든지 더 많이 바뀔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걸 읽는 우리도 니체의 생각이 완결 된 끝이 아니라 허무에서 딛을 수 있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면 아직 충분한 가치가 있는 철학이 아닐까 생각함.

    • @samuelyoo8464
      @samuelyoo8464 Год назад +4

      니체에 대한 제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네요.

    • @kim-lg7rc
      @kim-lg7rc Год назад +1

      아마 니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요

    • @littleblackCS
      @littleblackCS Год назад +3

      공감합니다

  • @blackswan6881
    @blackswan6881 Год назад +20

    모든 철학은 학문의 탈을 쓴 사견이다.

    • @언어는인격
      @언어는인격 18 дней назад

      맞습니다. 학문이라고 하면 틀이 있어야 하는데 철학은 틀이 없습니다.
      단지 철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척해봅니다.

  • @cjdixjdnjsn334
    @cjdixjdnjsn334 Год назад +11

    누군가 소크라테스와 대화 할 수 있다면 전재산이라도 받치겠다고 하던데, 두철학자가 대담을 하게 만든다면 저도 그럴듯합니다. 니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한 취약점을 재임스는 "약한 사람들 악마가 되게 선동질 하지마!" 라고 하는듯 합니다.
    21세기 다양성에서 오는 갈등과 약자의 왜곡된 권위가 만연란 지금 두 철학자의 쓴소리가 필요합니다.

  • @user-ne9ezsiy3fl
    @user-ne9ezsiy3fl Год назад +9

    저 또한 '어떤 인간상이 바람직한 인간상인지는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 문장에 공감하는 바이고, 철학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사고하는 사고력이 핵심이지 다른 것이 중요하다 생각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다양한 그들의 철학이고, 생각이고, 그들이 발견해낸 그들의 지혜니까요.
    어느 한 생각에 갇힌다면 그것이 철학의 퇴보라고 생각합니다.

    • @gnsdl116
      @gnsdl116 Год назад +1

      동감합니다. 사람들은 정답을 찾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지만
      철학은 정답을 잘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학문일 뿐
      하나의 철학을 맹신하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 @jupiterwi3845
    @jupiterwi3845 9 месяцев назад +5

    게임 이론에 대한 게 생각나네요. 기버 테이커 매처의 균형이 계속 변화하죠. 이는 생물계에서도 그렇죠. 포식자와 피식자 중 한 쪽 만이 우세한 상태로 지속되지 않죠. 성인과 같은 사람이 많은 사회는 문제를 방치하게 되고 이는 초인과 같은 사람이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역시 반대로도 초인이 많은 사회에서는 서로의 싸움으로 피폐해져 덕을 논하는 성인이 추앙받는 시대가 오겠죠. 인간은 불완전하여 어떤 사상도 완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인간 존재 여부와 상관 없는 이 세상의 원리만이 완벽에 가깝겠죠. 잘 봤습니다.

  • @niniano1157
    @niniano1157 Год назад +7

    자신을 채찍질할때는 니체를,다른 사람을대할때는 윌리엄 제임스를 떠올리면 좋을거 같기도 하네요.니체의 책은 어려워서 얼마 못 읽었고 해설만 읽어봤지만 그의 정신승리에 기대지 않고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말들에 저는 깊은 공감을 느꼈어요
    하지만 절대로 그것을 남한테 강요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니체의 사상에서 나올수 있는 위험성이 그런게 아니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user-nj5yh9fd3g
    @user-nj5yh9fd3g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니체가 주장했던 사상들을 제대로 보려면 그 문자적인 해석보다는 니쳬가 살았던 시대적인 배경과 그가 만났던 위선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니체의 사상이 단순히 부정과 어떤 염세적인 색체를띄는것이 아니라 실체에대한 어떤 확신같은 믿음의 힌트를 제공해주는 것을 볼수 있어요.

  • @hhlim8532
    @hhlim853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7

    니체는 모두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기를 바랐을 겁니다.

    • @ShallSetmefree
      @ShallSetmefree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러기엔 니체의 글은 읽을 수 있는 사람만 읽을 수 있게 썼습니다. 피로 쓴 글이라고 스스로 부르잖아요

  • @jw_p4887
    @jw_p4887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다른 관점에서 니체를 바라보니
    니체에 대한 생각이 더욱 명확해지네요.
    유익했네요. 감사드립니다.

  • @user-kg6en4jg4h
    @user-kg6en4jg4h Год назад +6

    7:38 니체에게 부정성을 진지하게 마주하며 자신의 삶을 통합시키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니.. 윌리엄 제임스는 니체의 글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한 건가요? 죽기 전까지 니체가 한 것이 바로 저런 것들이었는데.. 자신의 운명을 고통마저 긍정하며 받아들여라
    08:07 또 안티크리스트를 읽어보면 예수를 데카당이긴 하지만 성스러운 사람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오히려 예수의 삶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기독교를 위선이라며 비판하는데

  • @Daniel-ew5qf
    @Daniel-ew5qf Год назад +7

    "이제 너희에게 말하니, 나를 버리고 너희를 찾도록 해라.
    그리고 너희가 모두 나를 부인할 때에야 나는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 니체, 에서

    • @ShallSetmefree
      @ShallSetmefree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완전 도마복음인데 이거

  • @user-du1jj6tr8j
    @user-du1jj6tr8j Год назад +6

    본인은 니체가 되고싶고 친구나 주위사람은 자신을위해 희생하는 고생하는 엄마같은 성자가 되길 바라는거지

  • @whatsoeverwhatever3003
    @whatsoeverwhatever3003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탄성이 강력할수록 더 잘 부러진다는 법칙이 있지요. 강한것은 어찌보면 굉장히 약한 것입니다. 제일 강한것은 갈대와 같이 유연한 존재라고 생각하네요.

  • @user-vs6ee9zj5y
    @user-vs6ee9zj5y Год назад

    잘 들었습니다. 매우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 @itzimotal9298
    @itzimotal9298 Год назад +7

    윌리엄 제임스의 비판은 니체의 철학에 대해 얕게 그리고 단순하게 이해(오해)하는 계층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을 대비한 가이드(? ) 또는 브레이크 정도로 보입니다.

  • @user-ov6ox3rt5w
    @user-ov6ox3rt5w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포스트 모더니즘 현상을 대표하는 역할을 했던 철학같습니다. 충코님 마지막 멘트에 니체 철학의 장단점이 함축된것 같네요.

  • @unknown46890
    @unknown46890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니체에 대한 비판 및 부정적인 해석을 용납치 않는 지금같은 시대에는 이 영상이 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니체사상의 의의와 긍정적인 면모를 접하며 니체가 대단한 사람인 줄은 알게 되었지만 그 찬양의 정도가 좀 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철학 특성상 진입장벽이 워낙 높다보니 의문을 제기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렇게 충코님이 대신 의견을 내어주신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JeremyGwag
    @JeremyGwag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성인의 덕이야 말로 진짜 강한자들이 품을 수 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 @ja-kz7xn
    @ja-kz7xn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철학에 입문하기 좋은 채널인 것 같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blitzbrigade_
    @blitzbrigade_ Год назад +15

    철학은 정말 어렵네요. 하지만 생각할 점이 많다는 게 철학의 매력 같아요

  • @yesno9065
    @yesno9065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매우 공감
    기독교 비판적 시각은 훌륭하지만
    초인에 이르는 방법이 지나치게 억지고 위선적임

  • @KSKang-ry3le
    @KSKang-ry3le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울림이 있는 글이네요. 요즘 들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책을 보는 것이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사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그때 그때의 상황이나 관계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죠.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면서 옳다고 처신하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접하면서 생각을 교류하지 않는다면 자기도 모르게 외골수가 되어 버리겠죠. 집 근처 강아지나 고양이처럼요(이 애들은 귀엽기나 하지). 좋은 글 감사합니다.

  • @ijason18
    @ijason18 Год назад +2

    무언가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하자는 것, 스스로에 침잠하거나 스스로를 통찰하는 것, 나를 조감하는, 바라보는 것은 놀랍게도 옳습니다. 어쩌면 유일할 수도 있습니다.

  • @DongwonJeong
    @DongwonJeong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철학을 취미로 배우고 있습니다.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어떻게 행복을 찾아야 할 지, 성공이란 무엇인지 등의 인생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고 수정합니다. 니체는 인상에 남는 말을 많이 남겼고 찾아보기도 어렵지 않아서 제가 고민이 있을 때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그렇게 고민이 해결되면 주로 '스트롱맨이 되어야겠다.' 식으로 답이 내려졌던 것 같습니다. 남들의 눈치를 덜 보고, 모든 사건을 흑백으로만 보아선 안되고, 나만의 길을 가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념에 반기를 들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답이었습니다. 스스로 우선 강하고 곧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길을 혼자 걷는 느낌이 들고 외롭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검소,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 등 니체의 말과는 다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종종 가치관에 혼동이 오기도 합니다. 문득 느낀 흥미로운 점은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기 전에 저의 삶의 가치가 차갑고 고독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서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계속 저에게 의지하라고 합니다. 따뜻함이 느껴지지만 그게 저를 약하게 만들까봐 걱정이 됩니다. 그러는중 이 영상을 보게 되었고 성인의 덕에 대해 말하는 윌리엄 제임스에 흥미가 생깁니다. 니체의 '스트롱맨'과 반대되는, 더 깊은 윌리엄 제임스에 대한 충코님의 생각을 듣고싶습니다.

  • @HerA0888
    @HerA0888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서양사람들은 참 대단해요 언제봐도😮

  • @moviefightclub
    @moviefightclub Год назад +5

    ㅋㅋ제임스 말대로 니체가 사회적인 인간의 본능대러 강한 리더상에 끌린거라면, 제임스 역시 전형적인 미국식 카톨릭에 영향을 받은 면이 없지 않아보이는데?

  • @user-nf6vk3hz7z
    @user-nf6vk3hz7z Год назад +3

    제가 자기계발, 동기부여를 무분별하게 주장하는 성공 유튜버나 강사들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그 말들이 틀렸다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것에 좋음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그렇지 않은자에 대해 혐오를 일으키고 있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철학에 대해 깊이 않지 못하는 비전공자로서 철학이 어떤것이다 라고 정의 내릴수 없는 입장이지만 과연 철학이 어느한쪽으로 치우쳐져 그곳에 매몰되는게 철학일까라는 생각을 하게되네요. 좋은 영상감사합니다

  • @user-dz5zi8pn5r
    @user-dz5zi8pn5r Год назад +3

    오 실용주의자로만 알고있었는데 제임스, 영상 감사합니다.

  • @user-tu7fj7qh7d
    @user-tu7fj7qh7d Год назад +5

    통제를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니체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user-rv4be2hy8d
    @user-rv4be2hy8d Год назад +35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니체는 자신의 도전적인 철학을 통해, 그간 숙고되지 않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전통적 혹은 보편주의적 가치관을 해체함으로써, 전체주의로 가려졌던 '개인의 삶', 교조로 인해 잊혀졌던 '개인의 도덕성'을 다시금 포착하여 길어 올리려고 했던 점에서, 그의 철학적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살펴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니체의 사상은, 오늘날 그의 고유한 철학적 의도와 목적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의 바탕으로써, 아니면 더 나아가 적극적인 형태로 '반지성주의'의 '교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됩니다.
    그의 철학적 핵심 기조인 '해체'는 인류애의 해체도 아닌, 인류의 도덕적 가치 체계에 대한 해체를 통한 파편화된 사회질서/개인을 목적으로 한 것 또한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작정 되물림 된 폐습으로 인해
    그간 잊혀졌던 우리의 본연적 삶, 실존을 바라보도록 이끌어
    개인적 삶의 긍정성을 통찰할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던 철학적 사유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오히려 니체의 해체주의 사상이
    그 맥락을 벗어나
    현대판 '교조주의'로 재탄생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윌리엄 제임스와의 비교를 통해,
    도덕적 삶과 사유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 꽤 흥미롭네요!
    덧붙여, 저는 이 영상을 보며, 찰스 테일러의 니체 철학에 대한 평가가 자연스레 떠올랐네요.
    니체가 발견하려 했던 개인의 고유성과 개인적 삶의 긍정성이, 타자와의 건강한 공존을 기초로 해야
    그 '자기진실성'의 철학이 보다 더 성숙하게 뿌리 내릴 수 있다는 관점이 떠올랐습니다.
    오늘날 어떤 분야든, 해체가 너무 극단에 치다른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당연히 철학은 물론, 현대 미술과 건축 등, 인간의 사유와 손이 닿는 그 어떤 것이던,
    '해체'의 정점에 다다르는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분야던, 해체가 그 도를 넘어, 자폐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반대로 이 해체에 대한 반발로 정치적으로는 'nationalism'이 더 강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늘 그래왔듯,
    앞으로 이런 해체의 말로가 다시금 다른 방법과 양식으로의 종합으로 나아갈지,, 궁금하네요.
    앞으로 어떤 새로운 종합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다들 이렇게 개인과 사회가 파편화 되고 해체됨으로써,
    세상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 직감적으로 어떤 우려심이나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이 관성을 막기는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류 역사 안에 어떤 큰 이벤트가 있어야 바뀔지,, 미지수네요.
    이 해체의 관성이, 이제 역으로 개인의 이기심을 향해서,
    더불어 집단주의와 nationalism을 향해 방향을 잡아,
    타자와의 공존, 공동체의 필요성을 사유할 수 있는 반성적 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과 바램을 읖조려봅니다.
    이번 영상을 통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ri4pq5mc6f
      @user-ri4pq5mc6f Год назад +5

      글이 되게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있어서 정말 쉽게 읽었습니다!!
      어떤 핵심을 베이스로 두고 어떤 부분에서 다시 사유해보셨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어서 정말 잘 읽었습니다 ㅎ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글을 쓰신 분도 정말로 니체가 극단의 해체주의를 주장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니체의 주장에 대해 오늘날의 너무 극단적인 해석이라 생각하거든요..

    • @user-rv4be2hy8d
      @user-rv4be2hy8d Год назад +14

      @@user-ri4pq5mc6f 좋게 봐주심에 감사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한 철학자의 '사상'을 살펴 보려거든 크게 두 가지 원칙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첫째는, 하나의 철학이 탄생하게 된 시대 맥락을 고려하며, 그 맥락 안에서 '그 철학적 사상의 목적과 방향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2) 둘째는 앞서 고려된 '철학적 사상'을, 오늘날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성찰해보고 그 철학과 대화해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현 상황에 대입해서, 철학적 사고를 비교 분석하고 의의를 찾는 과정이겠지요.
      이런 두 가지 원칙에서, 니체의 주장을 굉장히 rough 살펴보는 동시에, 그의 철학에 대한 평가와 오늘날 해체주의의 흐름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굉장히 투박하게 정리해보자면,
      1) 니체의 사상이 탄생하게 된 맥락을 보면, 전체주의, 민족주의, 보편주의가 만연했던 시대상입니다. 개인의 삶의 가치와 상대성보단, 종교적 혹은 전통적 가치체계를 개인으로 하여금 숙고 없이 무작정 복종시키고 따를 것을 강권하는 시대임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저변에선, 개인의 가치와 개인적 삶의 생동성이 활발하게 추구되는 시기였기도 하지요. 이 시대에 탄생한 음악과 예술만 보더라도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속에서, 니체가 목표한 바는, 해체를 통한 전체주의에 가려진, 개인의 실존과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재발견하는 것이었다라 요약할 수 있겠네요.
      2) 앞서 본 니체의 철학적 사유의 도구는 '해체'입니다. 이 '해체'를 오늘날의 맥락 안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바라봐야 할지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우리가 자주 들어 아는 현대철학자들 대부분은 니체의 '해체'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를 진단했습니다. 이를테면, 대표적으로 구조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미쉘 푸코를 들 수 있겠네요. 그의 여러 철학적 저서들을 보면, 현대의 '전체주의적 내지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잊혀지고 상처 받은 존재들에 대한 사유를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그의 저서 '정신의학의 권력'을 통해, 어떻게 이 세상에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이 생기게 됐는지, 이 구별의 권력의 정점이 바로 '의사'들이고, 이것이 바로 지식권력의 한 축이 됐다라는 것을, 현상학/해석학적 관점으로 분석하지만, 이 사유의 핵심은 '해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무조건적인 당대 사회의 사고 관습과 전통에,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한편, 위에서 푸코를 예를 들었지만, 푸코도 오늘날 비교해보면, 꽤나 시대가 지난 철학자?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 안에서, 직접적으로 '니체의 해체주의'를 직/간접적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철학자로 든다면, 이탈리아 생명정치 철학자인 '아감벤'이라는 철학자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호모 사케르'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오늘날 재기되는 '난민 문제'를, 국제 정치와 법의 사각지대에 의해 탄생한 현대적 문제임을 제기하며, 현대의 nationalism을 해체하고자 시도합니다. 이밖에도, 굳이 꼽자면 '한병철'도 여기에 속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폐단을 꼬집고 해체하며, 우리에게 생각해볼거리를 준다는 것이죠.
      4) 제가 위 글에서 언급한 무반성? 내지 반성 없이 극단적으로 '해체주의'를 수용한 폐단을, 저는 '개인주의 그리고 더 나아가 반지성주의'로 꼽았습니다. 이유는, 우리 인간 실존은 타자 없이, 순수히 개인적 삶으로만 영위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도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보게 됩니다. 그 바탕엔, 집단과 전통에 대한 회의감과 염증을 느낀 개인들이 개인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판단 해봅니다..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반지성주의는, '교육에 대한 부정과 더 나아가 진리는 없으며, 지성적 활동은 무익하다'고 조금 격하게 정의내릴 수 있겠습니다. 이 역시도 그 저변엔 교육과 전통에 대한 해체임을 주창하지만, 실은 개인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하는 것임을 엿보게 됩니다. '반지성주의'는 대표적으로 어떤 누군가로부터 주창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시대적 기운이나 흐름으로 보입니다.(저도 이건 연구 주제라, 아직 정확히 개념화 시키기 어렵네요)
      이런 개인주의/이기주의와 반지성주의는 극단적 해체주의의 말로로 보입니다. 결국 인간을 원초적인 동물상태로, 인간 자신을 격하시키는 형태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하는 움직임이라 생각이 되네요.
      5) 결론적으로, 어떤 철학적 사상이던, '극단'에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니체의 '해체주의'의 핵심은, 극단적 교조주의로부터 잊혀진 개인성과 상대성에 대한 회복입니다. 반대로 '개인성과 상대주의'가 극단주의로 나아가, '파편화'가 된다면, 이또한 역으로 다시금 '해체'가 필요하겠지요. 이렇듯 결국 철학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인간과 인간 공동체'에 대한 균형감 있는 시선과 사랑을 찾는 학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결론 내려봅니다. 하나의 사상에 너무 빠져, 그것이 정답이라고 하는 것은, 또다른 교조주의나 다름없겠죠?
      글이 너무 길었네요.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 @vinci7804
      @vinci7804 Год назад

      ​@@user-rv4be2hy8d 니체가 해체주의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니체의 핵심은 창조이고, 파괴가 오히려 그 도구적 역할이라 봅니다. 니체는 '생성철학'의 일종인 거라 봅니다. 초인사상이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라 생각하고요. 초인사상에서 사자조차도 단순히 해체주의자가 아닙니다. 사자는 용의 명령 즉 '너는 ~해야한다'라는 걸 거부하고, '나는 ~하겠다'라고 합니다. 의지를 창조한 것입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기뻐하는 존재입니다. 왜 기쁜가 하면, 내가 이렇게 무거운 걸 짊어질 수 있다니, 하면서 자신의 힘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무거운 걸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당연히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이 초인사상을 해체주의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힘에의 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부숴버리겠어! 그것이 힘을 뜻한다고 니체가 이야기한 적이 없는 걸로 압니다. 그 힘은 건강에의 의지이고, 생명의 에너지인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니체를 해체주의로 보는 것은 딱 니체를 마음대로 이용해먹으려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해석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니체는 온갖 것들을 다 비판했습니다. 전체주의와 기독교만 비판한게 아닙니다.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도 비판하고, 평등주의도 비판한 거라 알고 있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에 대해서도 비판을 했죠. 여러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했습니다. 특히 가장 강하게 비판한 건 소크라테스였던 거라 생각하고요. 비판을 넘어서 비난인 것 같기도 하지만요. 니체는 적이 많고, 적에 의해서 왜곡된 게 상당히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 @user-rv4be2hy8d
      @user-rv4be2hy8d Год назад +4

      @@MJ-gx1nf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개인적으로, 철학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사고 유형들 내지 사고 모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철학자의 '주장'은 여러 조건들의 영향 속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특별히 '시대'라는 조건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겠지요. 그 시대 속에서 '언어/역사/당시 사상과 분위기 등등'의 영향 속에서, 하나의 철학이 복합적인 조건과 요소 속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시대적 한계를 품고 있겠지요. 그러면서 한편,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귀감을 주는 철학적 요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시대 초월적인 요소들도 있기에, 오늘날에도 과거의 철학자들의 책들이 계속 읽히는 것이겠지요. 그 이유는, 철학의 시발점으로 여겨지는 고대 자연철학자(데모크리토스, 파르메니데스 등등)의 시대와, 지금 오늘날의 시대와, 현재 우리 '인간'은 어떤 종적 변화가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때나 지금이나 진화생물학적으로 구분된 현생 인류는 '호모사피엔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만 환경과 여러 물리적 조건들이, '다양한 사유'를 하게끔 만들어준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긴 역사 속에서 탄생한 여러 철학적 사고 유형들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무엇이 맞고 틀리다라는 것을 배우는 것이기보단, 다양한 사고 유형들을 유연하게 배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각 철학자들이 사유를 통해,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 것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남겨 놓은 여러 숙제들이 있습니다. 그 숙제들을, 우리들 또한 물려 받아, 사유를 통해,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도 좋겠지요.
      한편, 어떤 분들은 단순히 '철학'을 공상이나 탁상공론으로 여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관점에는 여러 이견이 있겠지만, 저는 오늘날 과학적 실증주의를 바탕으로한 유물론적 사고로 인해 생겨난 철학에 대한 오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다시 말해, '사고가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라는 질문에,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이 먼저라고 답합니다. 물질의 발전이 곧 사고의 발전을 이룬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엄연히 '인간의 사고'가 먼저 앞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철학사만 검토하더라도, 과학의 발전은 철학적 사고에 기초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고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먼저 '원자론'을 제시하며, 이 세상의 가장 근본 구성 요소는 '원자'임을 이야기하지요. 당시엔 현미경도 없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어떤 과학적 도구가 없었습니다. 이 철학적 성찰이 눈으로 가시적으로 증명되는 것은, 근대 과학혁명을 통한, 현미경 발전으로 입증됩니다. 아울러 아인슈타인의 블랙홀 존재 증명에 대한 것도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아인슈타인은 먼저 여러 가정을 통해, 블랙홀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제시하죠. 그리고 실제로 몇 년 전에 우주망원경을 통해, 블랙홀 존재가 입증되었지요? (이를 가지고, 이건 철학적 사고가 아닌 과학적 사고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없으시길 바랍니다^^;;ㅋㅋ)
      이처럼 철학적 사고는 그저 탁상공론이나 공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 문명을 이끌어가는 어떤 초월적 정신일 수 있는 것이지요.
      유아론적 관념론이라 쉽게 치부되곤 하는, '헤겔'이 여전히 읽혀지는 이유는, 우리 인간 역사가 어떤 절대정신에 의해 인도되고 있음을, 우리는 직접적이진 않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에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각 시대의 천재적인 철학자들이 절대정신을 읽고 우리에게 예언해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철학적 태도이기보단 조금 종교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요^^
      결론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의 철학적 사고 유형이 절대 정답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균형감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형이상학적 분야든가, 윤리학적 분야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철학 자체가 사고의 근간으로부터 시작하기에, 철학자들마다 자신의 주장에는 각자의 세계관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철학적으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각자 철학자들의 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윤리학에는 '덕론'과 '칸트의 의무론'이 있습니다. '덕론'은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을 바탕으로 합니다. 인간의 윤리적 삶은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행복은 최고선에 바탕을 두고, 이 최고선은 형이상학적으로 최고 존재'다는 밝히는 것이 덕론입니다. 윤리학과 형이상학이 같이 함께 가는 것이지요. 이런 사고를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초 바탕을 둔 것을, 토마스 아퀴나스가 '최고 존재'를 절대자 그리스도교적 차원에서 '하느님'으로 정초 짓습니다. 이런 덕론은 토마스 아퀴나스 학풍, 바로 토미즘이라는 학풍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표적인 학자로는 맥킨타이어, 찰스테일러를 들 수 있겠네요. 이들은 대놓고 그리스도교적 신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들 사고 유형 안에는, 서구의 전통적인 사고 유형인, 그리스도교적 철학의 분위기가 섞여 있습니다.
      한편 칸트 의무론은, 도덕적 삶은 행복이기보단, 정언명령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선한 의지로, 보편적인 차원에서, 도덕적 선택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여기에도 윤리학적 토대로, 형이상학적 바탕이 개입됩니다. 실천이성비판이란 책을 통해, 윤리적 행위의 가치를 보증해주는 것은 결국 '신의 존재'라고 칸트는 가설을 제기합니다. 만약 신이 없을 경우, 인간의 윤리적 행위에 대한 보답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죠. 칸트 또한 엄밀한 의미에선 그리스도교적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겠지만, 앞서 살펴본 아리스토텔레스/토미즘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신'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사유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철학 공부를 조금 더 하시다보면, 어떤 철학자의 세계관이 '더 건강하고 건전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여러 사고 모델들을 비교하면서도, 끝내는 우리에게 더 근본적으로 '어떤 사고 유형'을 선택하길 종용합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결국 개인의 체험과 판단에 의해서, 자신의 철학적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이겠지요?
      끝으로, 한 때 뛰어난 수학자였다 철학으로 뛰어든 에드문트 후설이라는 현상학 창시자는, 우리의 모든 사고와 생활은 결국 Doxa(그리스 말로, 믿음)에 근거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원문 안에서 ‘일상지식'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후설이 주장하는 바는, 우리 사고 심연엔, 종교적 색채가 아닌,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고 근간이 존재한다는 맥락에서 이를 '믿음(doxa)'이라고 번역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참고로 종교적 형태의 믿음이 아닙니다) 19세기에 오스트리아 빈 학파가 찾고자 했던 '공리는 증명 가능한가?'라는 물음에서 끝내, 인간 사고 안에 그 자체로 증명이 필요하지 않고 확신할 수 있는 '공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이와 같은 맥락일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 사고의 심연에는,
      우리의 사고를 가능케하는 어떤 믿음의 형태의 기초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가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글이 너무 길었습니다 ^^;;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음에 기쁘네요.

    • @user-ru6bs5us8w
      @user-ru6bs5us8w Год назад +1

      이정도 지식과 자신의 관점을 가지셨다면 자신의 채널을 통해 재능기부를 하는 것도 덕을 쌓는 길이라 생각해봅니다^^

  • @user-ip1ux1dr5t
    @user-ip1ux1dr5t Год назад +5

    니체는 평등을 싫어하고 인간 사이의 위계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인기가 있는거고요.

  • @Orange-kt3gy
    @Orange-kt3gy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요새 저도 니체에대해 갖고있던 문제의식과 비슷한점이 있어서 공감했습니다. 니체에 대해 비판의식이 없어지면 매우 이상한 우월주의나 다른사람에 대한 경멸로도 빠지는것같습니다. 우버멘쉬는 다시 비판받아야 합니다.

  • @danielnam8298
    @danielnam8298 Год назад +15

    니체는 약자와 강자에 대해 많은 다양한 글을 남겼습니다. 사실 그의 모든 작품에서 그가 생각하는 약자와 강자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죠. 그래서 어떻게보면 니체는 성자를 비웃었지만 그가 왜 약자인지를 모든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는 그에게 ‘약자’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니체의 비판에 대한 해석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니체의 편을 들어주고 싶네요🙂

  • @user-jf2mk1qu7y
    @user-jf2mk1qu7y Год назад +8

    성인들은 고통을 참은 것이 아니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것이다.

  • @gnsdl116
    @gnsdl116 Год назад +3

    여기 구독자들은 똑똑해서 마냥 맹목적인 신뢰를 하지 않아서 좋네요.
    영상도 영상이지만 항상 댓글에서도 배우고 가는 것 같습니다

  • @Think082
    @Think082 Год назад +6

    행복은 단조로움에서 나옵니다

    • @peaceful_world5
      @peaceful_world5 Год назад +3

      인생은 고통과 권태의 오고감이 아닐지...
      권태가 행복의 여러 모습중 하나가 아닐지... 라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합니다.

  • @Jorip_pong
    @Jorip_pong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3

    하긴 뭐든 적당해야죠 니체와 반대됨을 주장하는 사회에서 니체가 영향을 주는게 좋은 방향이긴하지만 니체가 강해지는 순간 그에 반하는것이 무조건 존재해야하죠. 세상은 항상 중심을 유지하려고하고 해야하죠그렇지 않으면 파멸됩니다.

  • @ilyylm9134
    @ilyylm9134 Год назад +1

    이렇게 듣고나니 니체는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임과 일부만 받아들이고 사는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조건없이 선을 행하는 약자에게도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은 중요할텐데요. 그렇게도 방어하면서 지키고 싶은 자신의 세계로 누가 와주길 바랬을까요? 겁이났을까요. 니체가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네요. 영상마다 넘 좋아요~

  • @druminsect4424
    @druminsect4424 Год назад +9

    니체는 철학과 사유에 있어서 기존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했다고 들은 바 있는데, 정작 성인과 스트롱맨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판단한다고 지적한 부분이 아이러니하고 인상깊게 와닿네요! 니체는 분명히 많은 메시지를 주는 사람이지만, 니체의 사상을 정말로 존중한다면 이 또한 맹신하지 않고 비판할줄도 알아야겠네요 :)

  • @user-bh3lg3fl2f
    @user-bh3lg3fl2f Год назад +3

    니체는 앎과 이해라기 보다는 행동과 실천이죠. 다만 니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법 그리고 인륜앞에서도 좌절하지 말아야 하죠. 이를 테면 나는 혁명하고 싶다, 나는 사상범이나 부를 위해 범죄자가 되고 싶다 또는 불륜하고 싶다. 이걸하면서 자기정당화를 하는 게 아니라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욕망을 고백해야 하는데... 니체독자들은 그렇치는 않지요. 다들 좋은 말이니까 내지는 배울만 하니까 욕망이 있음에도 행동과 실천하지 않고 아는 것에 만족하지요. 한마디로 니체의 바램과는 반대로 착하고... 약합니다!

  • @kikihaha5879
    @kikihaha5879 Год назад +3

    니체의 사상이 선을 비판하고 악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건 코끼리의 꼬리만 만지는 격입니다. ( 니체는 자신의 가치가 이분법적으로 해석되는걸 제일 경계한 사람입니다 ) 니체의 말 속에서 중요한 것은 선이냐 악이냐가 아닌 본인의 철학과 사유로 선이나 악을 행했느냐, 남의 말에 따라 주체성 없이 선을 행했냐의 차이입니다.
    남이 만들어준 도덕이 아닌 스스로의 철학과 사유로 행동한다면 악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간주하는 것 자체가 인간을 격이 떨어지고 악한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죠. 위버맨시는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존재가 아닙니다. 니체의 말을 인용하자면 "병든 이기심" 일 뿐이죠.

  • @user-be3pb9nj6o
    @user-be3pb9nj6o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영상 참 좋습니다. 충코님. 오늘 제임스가 한 니체 비판 어떤 책에 있는지 한번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심리학의 원리에 있는지..

  • @king1mode89
    @king1mode89 Год назад +5

    요새 인터넷보면 과도한 사고기능으로인해 냉소주의가 자주보이고 강한남자를 향한 추종자들 또한 많이보입니다 허례허식때문에 자신의 내면과접하지 못해보이는 사람이 많다는게 제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성인으로서의 면모는 제임스가 한수위라고 생각되네요 영성계에서는 하나같이 시야를 넓히고 의식을 높이라고 얘기하니깐요 물론 니체에게도 배울점은 많다고생각합니다

  • @user-os9eu9gt4m
    @user-os9eu9gt4m Год назад +8

    타인의 선함을 위선이라고 혐오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패, 쏘패, 나르가 있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하도 니체니체 해서 뭣모르고 저도 들어봤는데 충코님이 말씀하신 이기주의, 약자멸시가 포함되서 너무 놀랐습니다. 불건강하고 병적이란게 느껴졌어요. 기존의 질서와 사상에 망치를 후려쳤지만 자신 또한 자신만의 이데아에 메달린 느낌이랄까. 아무리 매력적이고 강력한 사상이라해도 치명적 약점이 분명해 위험했죠. 그런데 이런 약점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전도자와 찬양자가 많아 혼란스러웠는데 충코님이 이렇게 분명히 좋은점과 경계할 점을 짚어주니 체한게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니체수염 싫어요.

    • @softhwarangpark870
      @softhwarangpark870 Год назад +3

      이 영상을 보고 니체를 오해하실까 걱정되네요. 쉽게 말해 니체처럼 사는 사람을 콕집어 이런 사람이다 라고 할수 있는 연예인이 기안입니다. 기안이 싸패나 쏘패 같던가요? 기안이 남의 말을 듣던가요? 기안은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삽니다. 남들처럼 살기도 거부하고 어떤 삶에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죠. 고통속에서 맨날 외롭다고 얘기하면서도 누구보다 삶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죠. 니체처럼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찌질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남을 속이고 어떤 사람처럼 보여진다 뭐 이런건 니체 아닙니다. 싸패 쏘패 나르는 기본적으로 남과 자신을 속여야 살수 있는 애들이죠. 사회인이 되면 다 가면쓰고 살지 않습니까? 그런걸 비판하는겁니다.

    • @찢죄명
      @찢죄명 Год назад +1

      니체에 대해 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욕하는거 더 병적인것같은데
      니체는 약자를 멸시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약자인것만으로 본인들을 선하다고 규정한 채, 열심히 노력해서 강자가 된 사람들에게 강제로 호의를 배풀게 억지하는 노예도덕을 비판한건데 싸이코는 무슨ㅋㅋㅋ 이딴식으로 본인이 니체를 논파했다고 믿는 안티니체들이 내가 보기에 더 싸이코같다.
      니체를 빠는사람들은 최소한 자신의 나약함을 남탓이 아닌 자기탓으로 돌리며 끊임없이 정진하는데, 니체 욕하는사람들 보면 오히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싸이코나 악인으로 규정하니ㅋㅋ

    • @shinichishin7345
      @shinichishin7345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선하기 위한 선함은 위선이라고 봅니다 애초에 선악은 주관이니까요

    • @shinichishin7345
      @shinichishin7345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똑같이 자비를 배풀어도 그것이 선이어서 행하였다면 위선이고 본인이 원해서 즐겁게 행했다면 위선이 아닌겁니다

    • @user-sq5wx5ok2q
      @user-sq5wx5ok2q 3 месяца назад

      철학자들도 별점을 받는 시대로다
      실속은 파악하지 아니하고,
      외견과 감고만을 핥는 소믈리에의 득세.

  • @asadhal
    @asadhal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감사합니다.

  • @user-vc3gz1dm4e
    @user-vc3gz1dm4e Год назад

    이 영상보고 충코님 팬 됐습니다 ㅎㅎ

  • @friedrich520
    @friedrich520 Год назад +7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책을 쓰셔서 그런가 언변이 뛰어나십니다. 근데 니체가 언제 어디서 성인의 덕이 약한 것 병든 것이라고 그랬나요? 제임스의 단순한 추측일까요? 너무 극단적인 해석이라 좀 놀랬습니다.

    • @user-wd8yx1id2f
      @user-wd8yx1id2f Год назад +1

      니체는 기독교적 미덕, 특히 겸손이나 순종, 인내, 희생 등이 노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겸손이나 희생은 노예적인 굴종을 미덕으로 포장해낸, 노예의 도덕이라는 것이지요. 노예들이 질투심으로 인해 강자들을 (요즘 용어로 말하면) "가스라이팅"해서 가치 체계를 뒤집어 놨고, 기독교가 이런 노예적 시스템을 긍정하고 강화시킴으로써 서구의 도덕적 역사 자체가 병들어 버렸다는 겁니다. 제가 니체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제가 아는 한에서 딱히 극단적인 해석같지는 않네요. 니체가 위에 말한 의미나 다른 이유들에서 기독교에 대한 노골적 혐오감을 반복해서 드러낸 것은 뭐 말할 것도 없구요

  • @user-fw6bz8nd7m
    @user-fw6bz8nd7m Год назад +1

    결국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도가의 도덕경이 중간에서 정치적으로 잘 중재하고 이끌어야하는걸까요
    개인주의와 해체주의의 끝에서
    다시 기존 질서로의 화해와 중용이 결론이겠군요

  • @Cokeflavorgummy
    @Cokeflavorgummy Год назад +5

    노예의 도덕과 주인의 도덕 같은 게 전반적인 니체의 사상이나 성향을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솔직히 지금 사회는 노예의 도덕에 지나치게 기울어있는 상태로 보입니다.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지렛대가 무너지면 100년 전 흔히 100년의 평화라고 부르는 벨 에포크 이후 20세기 초반처럼 병적인 파괴가 또 일어나겠죠.
    그것의 단적인 예는 고삐 풀린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라는 책에 써진 당시 영국의 병적인 증상들을 보면 지금하고 똑같습니다.
    '역사적 관점'을 주창 하면서 역사의 교훈은 없다고 말하는 (사실상 지식인들의 99.9%라고 단언 할 수 있는)
    비양심적인 학자들이 활개를 치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싸지른 오물(다원주의, 상대주의, 보편주의 따위)들의 찌꺼기가 이제 한꺼번에 밀려 들어 오는 거죠.
    저는 지금이 19세기 말의 그 갈림길과 똑같은 지점에 있다고 봅니다.

    • @Cokeflavorgummy
      @Cokeflavorgummy Год назад

      저는 니체를 충코님처럼 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니체가 비하하는 말투로 말해서 그렇지
      제가 보기엔 신앙에 실패하여 악마에 굴복 당한 ㅡ자신이 그렇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는ㅡ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실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는 걸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니체의 저런 극단적인 표현성도 이해가 갔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은 본인이 선한 줄 알고, 신앙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겸손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종의 충격요법으로서 저는 보았습니다.
      근데 사고하는 훈련이 안된 대부분의, 특히나 과거에 비해 더 심한 현대의 사람들에게는,
      속화 되어서 좋지 않은 영향으로 흡수될 여지가 많다는 것도 제 생각입니다.
      .
      니체 같은 사상이 탄생하게 된 이유도 있습니다.
      근대론자들에 의해 지적 풍조가 천박하게 변했다는 것이 그것이죠.
      첫 댓글에서 말한 '역사 주의'도 그 일환 중에 하나이고요.
      옛날 책을 읽지 않는 건 그렇다 치고 읽어도 그 속에서 지혜를 얻을 일이 없어진 게 그것들의 결과 중에 하나죠.
      경험은 착각의 어머니라고 했던 철학자의 말이 떠오르네요.
      근대는 경험론이 지배했고 그로 인해서 인간의 영적인 가치가 거세를 당했죠.
      그것에서 오는 반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 @Cokeflavorgummy
      @Cokeflavorgummy Год назад

      그럼에도 충코님의 걱정처럼 니체의 사상이 사회에 실현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니체가 병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현실이거든요.
      그게 좋든 싫든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병들었다는 표현은 좀 그렇다고 보지만 논리 자체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 @user-rv4be2hy8d
      @user-rv4be2hy8d Год назад +1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님의 통찰을 읽으며,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사회의 온갖 병적 징후의 근간은,
      근본적으로
      자연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가 등한시 된 채,
      하나의 물적 존재로의 취환과
      더불어 이에 따른 과학적 상대주의로 인한
      여러 인간적 고유한 가치들의 상실에 기초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항상 생각해온 부분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더 러프하게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영적 특성이 무시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실은 현대 학자들이라 한다면,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모던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 쉽상인지라, 쉽게 '불가지론의 영역'으로 터부시하는데,
      우리가 발딛고 있는 사회의 여러 저변의 가치들은 대부분 인간의 영적 특성에서 기초한 가치들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헌법의 기초는 사실 자연법이고, 그 자연법의 기초는 영원법이기도 하지요. 오늘날 실증주의적 법학자들은 이를 그저 하나의 관습이나 전통으로 터부시하며, 이 부분에 대해 논의를 주저합니다.
      가장 인간다운 영역, 가장 인간적일 수 있는 것은
      사실 타인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사랑할 때인데.
      오늘날 인간의 사랑과 도덕 마저도
      진화심리학쪽으로 환원시켜, 연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사실 그 기저엔, 인간의 영적 본질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이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유치한 일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저 유아론적 태도에 불과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현대의 병적 징후들의 관성이 어디까지 갈까 참 궁금합니다.

    • @Cokeflavorgummy
      @Cokeflavorgummy Год назад +2

      ​@@user-rv4be2hy8d 글 감사합니다.
      다만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말씀드립니다.
      저는 독실한 신자가 아닙니다.
      저는 과학을 믿습니다.
      다만 현대의 일부 교조화된 과학은 조금 안타까울 뿐이네요.
      그리고 기존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예수님이 인간이기에 인간도 예수가 될 수 있다." 라는
      루터 종교개혁에 의한 개인주의에서 파생된 여러가지 가치들이,
      예를 들면 민주주의, 평등주의, 복음주의 등의 가치들이,
      능력 있는 개개인이 구속에서 벗어나 날개를 펼쳐 사회에 기여할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을 저는 찬양합니다.
      객관적으로 저도 그렇고 님 또한 그것의 혜택을 받았죠.
      지금 사회에서 평범한 시민의 자격을 누리며 (실제로는 아닐지라도 형식적으로 나마) 하층민으로 살지 않는
      이러한 '역사의 진보' 라고 학자들이 표현하는 동의하지 못하는 논리들을 저는 완전하게는 부정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저도 그것의 혜택을 받고 자란 보잘 것 없는 한낱 개인이거든요.
      물론 이것의 부작용은 서구권 국가 (한국과 일본을 포함)들에서만 높게 나오는 자살율이죠.
      개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워주니 견디지 못하고 선택을 해버리는 겁니다. 죽음마저도.
      달란트가 있는 개인은 잘 헤치고 나갈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개인이 더 많다는 게 비극인거죠.
      저는 제가 비범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저런 역사들이 없었다면, 제 삶은 지금 같은 혜택을 누리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은 평화가 너무 오래된 나머지 병적 징후들이 나오는 것 이라고 보는 거죠.
      .
      그리고 본인께서 말씀하신 자연법도 저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모두 자의적이고 인위적이거든요.
      아주 단적으로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면
      노예제는 모든 민족과 문화권, 종교, 체제를 막론하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자연스럽게 행해졌던 제도입니다.
      근데 지금은 노예제를 자연법으로 보지 않죠.
      (위에서 말한 견디지 못하고 선택을 하는 개인이 이 맥락과 통합니다.)
      노예제 폐지는 근대 영국 복음주의 운동으로인해
      당시 지금의 미국 만큼의 압도적인 해상 장악력을 가진 영국이
      힘에 의해 관철 시킨 사상이거든요.
      이쯤 되면 제가 무엇을 자연법으로 보는지 사고의 회로가 보이시겠죠.
      이걸 말하는 걸 사람들은 불쾌해 합니다.
      현실은 언제나 불쾌한 법이죠.

    • @user-rv4be2hy8d
      @user-rv4be2hy8d Год назад +2

      @@Cokeflavorgummy 답변 감사합니다. 노예제도에 관한 예시는, 자연법과 관련이 다소 모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간 역사에서 노예제 용인은 자연법이기보단, 관습법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연법은 성문법의 기초이자 ponte일 뿐이지, 우리가 아는 성문화된 실정법의 종류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언어화 되진 않았지만 자연 안에 내재된 법적 정당성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노예제 유지는 자연법에 근거했다기 보단, 오히려 당시 역사의 한계에 의한, 역사성이 부단히 침투된 당시의 ‘관습법‘에 의한 것이겠지요.
      앞에서 드신 예시와는 별개로,
      어쨌든
      글쓴이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 맥락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글쓴이분은 kelson의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법을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님의 관점이 굉장히 흥미롭네요. Kelson도 법의 근원을 power로 봅니다. 역사적 흐름과 힘에 의해 법이 바뀐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위에서 말씀드린 영적인 부분은
      기성 종교를 넘어서, 이를테면 그리스도교를 넘어서,
      인간 안의 어떤 초월에 대한 감수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분히
      현상학적 관점에서만
      인간 삶을 보더라도
      종교심을 볼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초월에 대한 감수성의 기초로
      인간은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고 공동선에 노력한다고 저는 봅니다.
      이걸 과학적 실증주의로 치환시켜
      다 수치화한들
      이 초월에 대한 감수성은 증명될 수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저의 미약한 소견으론,
      이 영적 감수성에 의해
      인간은 거시적 역사 안에서 끊임 없이 자기 반성과 객관화를 해가며,
      오늘날에 나름의 평등과 인격 존중이라는 가치까지 다다른 것 같습니다.
      지금의 형국은, 어렵게 도달한 이 기로에서,
      이기주의와 반지성주의 등 여러 병적징후들로 인해, 자포자기 상태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관성의 제 1 원동자는 저는 인간 내의 초월성에 대한 부재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과학적 사고를 거부하는 극단적 종교주의자로 볼 수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
      기성종교의 관점을 벗어나
      순전히 현상학적 관점에서 봐라봤을 때의 개인 소견입니다^^
      현대의 병적 징후에 관한 현상에 대한 이해는 님과 같은 관점이지만, 그 발생과 기원은 서로 다른 관점이네요. 제게 굉장히 신선한 관점입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my_spring79
    @my_spring79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니체라..철학은 알면 알수록 어려운 학문 같습니다.
    가끔 들리겠습니다.
    구독하고 갑니다.

  • @kielee7831
    @kielee7831 Год назад +2

    내 삶과 내가 처한 현실이 철학을 통해 잘 이해되고 그래서 안정을 찾는다는 면에서 인생 후반부에 꾸준히 철학을 탐색하는 것도 참 재미진 일이네요.
    세상 속에는 드러나지 못한 수많은 형태의 철학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고와 상상의 한계를 계속 넓히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니체도 제임스도 간 뒤에 후배들은 그들이 남긴 선물을 줒어먹는 재미를 보는 것이지요.
    뭐든 쉽게 믿지 않는 깨인 인류가 급속히 늘어가는 현대는 참으로 찬란한 시대입니다.

  • @JS-tu3lu
    @JS-tu3lu Год назад +3

    니체의 아모르 파티, 너의 운명을 염두에 두고 다시 생각해보자.

  • @flyingpan2639
    @flyingpan2639 Год назад +4

    성인 그 자체는 숭고하나 한 명의 성인(Saint)에 의존하는 일반 대중의 태도는 추하기 짝이 없음.
    모르는 사람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성인은 니체 기준에서 봐도 강한 인간 그 자체임
    다만 성인을 숭상하고 성인 한 명 안 나오나
    성인 덕좀 보고 싶다는 태도의 대중들은
    역겹기 짝이 없음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성인은 나오지 않는게 좋다는 거임

    • @user-ne9ezsiy3fl
      @user-ne9ezsiy3fl Год назад +3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인간이며 인간의 군상이죠..

  • @vinci7804
    @vinci7804 Год назад +6

    에서 인용하셨다고 했는데, 잘못되었습니다. 에 있는 내용입니다. 해당 글을 찾았으니, 올려보겠습니다. 그 두 권이 하나의 책에 묶여 있어서, 충코님이 착각하신 듯합니다.

    • @vinci7804
      @vinci7804 Год назад +4

      니체
      "인간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병자이다 : 악인이나 '맹수'가 아니다."
      14.
      병적인 상태가 인간에게 좀더 정상적이 되면 될수록―우리는 이 정상이라는 성격을 부정할 수 없다―우리는 정신과 육체의 강인함이라는 보기 드문 경우를, 즉 인간의 행운의 사례를 더욱 높이 존중해야만 하며, 잘난 인간들을가장 나쁜 공기, 병적인 공기에서 더욱 엄격하게 보호해야만 한다. 이것이 행해지고 있는가?……
      병자는 건강한 자들에게 가장 큰 위험이다. 강자에게 닥치는 재앙은 가장 강한 자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약한 자에게서 온다.이것을 알고 있는가?…………
      대체로 생각해본다면, 인간에 대한 공포가 감소되기를 원해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지 않은가:왜냐하면 이러한 공포는 강자를 어쩔 수 없이 강하게 해주며, 상황에 따라서는 무서운 자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잘난 인간의 유형을 제대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두려워해야 할 것, 다른 어떤 숙명보다도 숙명적으로작용하는 것은 커다란 공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커다란 혐오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커다란 동정이다.만일 어느 날 이 두 가지가 교미를 한다면, 어찌할 방법 없이 바로 가장 섬뜩한 어떤 것이, 즉 인간의 '최후의 의지',허무를 지향하는 그의 의지, 허무주의가 세상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을 위한 많은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냄새를 맡기 위한 코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눈과 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가 오늘날에도 들어가는 곳이면 거의 어디서나 정신병원이나 병원의 공기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인간의 문화권이나 바로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유럽'에 관한 것이다.

    • @vinci7804
      @vinci7804 Год назад +1

      인간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병자이다 : 악인이나 '맹수'가 아니다. 처음부터 실패자, 패배자, 좌절한 자 가장 약한 자들인 이들은 대부분 인간의 삶의 토대를 허물어버리고, 삶이나 인간이나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신뢰에 가장 위험하게 독을 타서 그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어디에서 사람들은 깊은 비탄이 실려오는 저 가려진 눈길을, 그러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에게 말하는 바를 드러내는 선천적 불구자의 저 내향적인 눈길을 탄식하는 저 눈길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 눈길은 이렇게 탄식한다 : "내가 다른 어떤 존재였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희망이 없다. 나는 나 자신인 것이다 : 내가 어떻게 나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진저리가 난다!" ・・・・……자기 경멸의 이러한 땅 위에서, 진정한 늪지대에서 모든 잡초, 온갖 독초들이 자라나며, 이 모든 것은 그렇게 작게, 그렇게 숨어서, 그렇게 비열하게, 그렇게 달콤하게 자라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복수의 감정이나 뒤에 남은 감정의 벌레들이 우글거린다. 여기에는 비밀스러움과 은폐의 냄새가 악취를 풍긴다. 여기에는 언제나 악의적인 음모의 그물이 잘난 인간들이나 승리한 인간들에 대한 고통받는 자의 음모가 거미줄을 치게 된다. 여기에서 승리한 인간의 모습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증오를 증오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 무슨 기만인가! 무슨 호언장담이나 태도를 소모하고 있으며, 얼마나 '대단한' 비방의 기교인가! 이러한 못난 자의 입에서 어떤 고귀한 웅변이 흘러 나온단 말인가! 그들의 눈에는 얼마나 많은 달콤하고 끈적거리고 겸허한 복종이 젖어 있을 것인가!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최소한 정의, 사랑, 지혜, 우월감을 나타내는 것이것이 이러한 '최하층 인간', 이러한 병자의 야심인 것이다! 그러한 야심은 사람들을 얼마나 능숙하게 만드는가! 특히 여기에서 덕을 각인하는 것이나 심지어 울리는 소리마저도 덕의 황금의 음색까지도 모방하게 되는 위조지폐자의 능숙함은 놀랄 만하다. 그들, 이러한 약자들이나 치료할 수 없는 병자들은 이제 덕을 완전히 스스로 독점했는데,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즉 "우리만이 선한 인간이며, 의로운 인간이다. 우리만이 선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다."

    • @vinci7804
      @vinci7804 Год назад +1

      그들은 생생한 비난으로, 우리들에 대한 경고로 우리 주변을 배회한다.마치 건강, 성공, 강함, 자부심, 힘의 감정 자체가 이미 사람들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쓰라린 대가를 치러야 할 사악한 것처럼 말이다 : 오, 얼마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대가를 치르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얼마나 그들은 사형 집행인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 가운데는 재판관으로 변신한 복수심에 들끓는 사람이 가득하며, 이들은 언제나 독침처럼 '정의'라는 말을 입에 담고, 언제나 입을 뾰족 세워, 불만족스럽게 사물을 보지 않고 기분 좋게 거리를 걷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침을 뱉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 가운데는 또한 저 허영에 찬 가장 구역질나는 유형의 인간이 없는 것도 아니며, '아름다운 영혼'을 나타내려고 하며, 일그러진 관능을 시구나 기저귀에 싸, ‘마음의 순수'로 시장에 내놓으려는 거짓된 불구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 이것이 도덕으로 자위행위를 하는 인간이나 '자기 만족자'의 유형이다. 어떤 형태의 우월감을 나타내고자 하는 병자들의 의지나 건강한 자들을 압제하는 사잇길을 찾는 그들의 본능 실로 가장 약한 자들의 힘을 향한 이러한 의지가 발견되지 않는 곳이 있단 말인가! 특히 병든 여자는 지배하고 억압하고 폭력을 행하는 정묘함에서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다. 병든 여자는 살아 있는 자이든, 죽은 자이든 이런 일을 하는 데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는다. 그녀는 가장 깊이 묻힌 것을 다시 파헤친다(보고스족이 말하기를, “여자는 탐욕스런 이기주의자이다"). 모든 가족, 모든 단체, 모든 공동체의 배경을 살펴보라:그 어느 곳에서든지 건강한 사람에게 대항한 병자들의 싸움이 있다. 대부분은 약간의 독이 섞인 분말가루를 가지고, 아프게 찌르는 말로, 교활한 인내자의 무언극으로, 그러나 때로는 또한 '고상한 분노'를 가장 잘 연출하고자 요란한 몸짓을 하는 저 병자의 바리새주의로 조용하게 싸우는 것이다. 격분해 날뛰며 지르는 병든 개들의 목쉰 소리, 물며 덤벼드는 그러한 '고상한 바리새인들의 기만과 격노, 이것이 과학의 신성한 영역에까지 들릴 수 있게되는 것이다 (나는 귀 있는 독자에게 다시 한번 저 베를린의 복수의 사도 오이겐 뒤링 Eugen Dühring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는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점잖지 못하고 역겨운 도덕적 주술을 사용하는 자이다 : 뒤링은 심지어 자신의동료인 반유대인들 가운데 오늘날 최초의 도덕적 허풍선이다.) 이들 생리적으로 실패한 자들이자 벌레 먹은 자들,이들 모두는 원한의 인간들이며, 지하의 복수에 완전히 몸을 떠는 토양이며, 행복한 자들에 대해 감정을 터뜨릴 때에도, 또한 복수의 가면무도회를 할 때에도, 복수의 구실을 만드는 데도, 지치지 않고 싫증을 모르는 자들이다:그들은 도대체 언제 최후의 가장 세련되고 가장 섬세한 복수의 승리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그들 자신의 불행을, 모든 불행 일반을 행복한 자들의 양심에 밀어 넣는 데 성공할 때인 것이다. 그러면 이들 행복한자들은 어느 날엔가는 자신들의 행복을 수치스럽게 여기기 시작할 것이고, 아마 서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것이다:"행복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너무 많은 불행이 있다!"……………그러나 이와 같이 행복한 자들, 잘난 자들, 몸과 정신이강한 자들이 자신의 행복에 대한 권리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보다 더 크고 더 숙명적인 오해는 없을 것이다. 이런'전도된 세계'는 없어져버려라! 이러한 부끄러운 감정의 유약화는 없어져버려라! 병자가 건강한 사람을 병들게 하는―이것이 그 유약화일 것이다―일이 없다는 것이것이야말로 지상에서 최고의 관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병자의 모습을 경계하면서, 건강한 사람은 병자와 떨어져 있고, 건강한 사람이 병자와바뀌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 모든 일이 필요하다. 또는 간호인이나 의사가 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일까?…………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임무를 더 이상 심하게 잘못 인식하고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위에 있는 자는 밑에 있는 자의 도구로까지 자신을 격하시켜서는 안 되며, 거리의 파토스는 또한 영원히 양자의 임무를 마땅히 분리시켜야만 한다! 그들의 생존의 권리, 음조가 틀리고 깨어져버린 종에 대해 완벽한 음조를 지닌 종의 특권은 실로 천 배나 더 큰 것이다 : 오직 그들만이 미래의 보증인이며, 오직 그들만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할 수있고, 해야만 하는 것은 결코 병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이며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 그들만이 해야 하는 것을 이들병자가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들 병자가 어떻게 병자의 의사나 위안자나 '구원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 다그러므로 좋은 공기가 필요하다! 좋은 공기가! 어쨌든 문화의 모든 정신병원이나 병원의 근처에서 멀리 떨어지자!그러므로 좋은 사교 모임, 우리의 사교 모임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을 때에는 고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안으로 향하는 부패와 은밀한 병자의 벌레 먹은 자리에서 나는 악취에서 멀리 떨어지자! ・・・・・・나의 친구들이여, 이것은 우리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간직해두었을 수도 있는 두 가지 가장 악질적인 전염병에잠시라도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즉 인간에 대한 커다란 혐오에 대해서! 인간에 대한 커다란 동정에 대해서!…………

    • @chungco_phil
      @chungco_phil  Год назад +4

      네 맞습니다. 지적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참고로 번역은 제가 직접 한 거라서, 다른 한국어 번역본의 말과는 좀 다릅니다.

  • @user-bb2qz1vy4i
    @user-bb2qz1vy4i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니체에게서 딱 불편한 부분이 시대에 안맞는 귀족주의지만 니체도 시대를 넘어설 순 없지요. 개인적인 위버멘쉬에 크게 공감합니다

  • @parkjun8009
    @parkjun8009 Год назад +3

    난 아마 니체같은 자유주의자 철학을 좋아하는 것 같다.

  • @user-gj3ew2ux1c
    @user-gj3ew2ux1c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와 정말 비판적인 생각을 항상 잃지말아야겠네요. 니체철학도 완벽하진않군요. 이렇게 수준높은 철학비평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user-zd2ib2cf3v
      @user-zd2ib2cf3v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쇼펜하우어는 니체와 비슷한 부류로 엮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게다가 쇼펜하우어는 글을 굉장히 잘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독문학 연구자나 작가 지망생에게도 이롭다고 생각합니다.

  • @co-co1234
    @co-co1234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니체는 강자의 논리. 강자에 의해 합리화 도구로 사용되기에 너무 좋음. 뭐 그건 진짜 니체가 말한 뜻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죽어버린 그 본인만 진실을 알겠지.

  • @SoliDeoGloria-ec6zx
    @SoliDeoGloria-ec6zx Год назад +2

    철학을 좋아하는 제 지인 중에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좋아하는 애가 있었는데, 대학도 괜찮은곳으로 가고 참 똑똑하고 영리했던 반면에 한편으로는 좀 이기적이고 철학을 자기자신만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면모가 있던 애였는데 왜 그랬는지 이 영상으로 좀 알 것 같네요...

  • @user-xn3vr5bu2u
    @user-xn3vr5bu2u Месяц назад

    상대적인게 가장 중요하죠
    남에게 해를 끼치면 안된다.라는 명제도 그 남이 범죄자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 @kkkagakko
    @kkkagakko Год назад +3

    기독교야 말로 사람은 원죄, 즉 짊어진죄를 가지고 태어났다 라는 이 말도 안되는 대전제 속에 현세가 허무적이며 부정적이라고 인식되게끔 하는걸 니체가 까는겁니다. 불교 또한 현세는 고통에 찼다라는 것으로 출발하여 자기내면으로의 도피안을 추구하는것을 보는것도 니체가 까는겁니다. 스트롱맨의 진정한 의미는 현세가 고통이다. 죄를 짊어지고 태어났다 이 근원적 종교에서 추구하는 인격신, 천국, 도피안같은것을 부정하며 자신의 의지의 힘을 증대하여 정신이든 물질이든 자신 스스로 통제하고 지배할수 있는 힘을 기르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니체가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선이냐 아니냐, 종교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우뚝서 삶과 인생을 의연하게 긍정하는 강건한 정신력이 최대의 덕이며 그러한 삶이 건강한 삶이다. 라는 메시지를 던지는거죠.
    밝고 쾌활함을 니체는 얘기하는건데 견해의 차이가 극명하긴 하지만 어찌보면 종교를 긍정하냐 부정하냐의 차이지 삶의 긍정을 이야기하는건 같다고 봅니다.
    근데 니체가 까긴 많이 깠죠. 부정적 어조로...
    아마 니체가 살아생전 몸이 좀 덜 아팠다면 실연을 덜 당했다면 제임스가 니체를 깔 일은 많이 없었을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 @paulk2216
    @paulk2216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개인적으로 니체의 사상은 그 끝이 극복이라는 점에서 강자들을 위한 사상이라 생각합니다.
    약자들의 시점에서 세상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도입부는 동질감을 줄 수 있지만,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라는 결론을 들었을 때는 그저 막막하고 더이상 내가 참고할수 없다는 생각부터 드니까요.
    초인에 이르기위한 감정적 원동력이나 부정적인 면을 직시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반면에 기독교적 성인이 무한한 아가페적 사랑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신의 사랑이 선행되고, 그렇게 변화하는 과정도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지죠. 이 사람들은 자신만의 가치를 우선시하지 않고 실천을 통해 신이 제시하는 가치의 순기능을 깨달아 변화된 사람입니다.
    성인의 삶은 약자들이 섣불리 따라할 수 없지만, 그런 약자들을 품어주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의하면 그렇게 포용된 약자들은 받는 사랑을 통하여 성장하고 주는 사랑을 하게되는 성화의 과정을 겪게 된다고들 하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모든것을 감당하는 것은 오만이고 되려 신과 다른 교인들에게 의자할 것을 권고합니다.
    저는 성화의 과정을 겪어보진 못한지라 사실여부를 확언할 수 없지만, 변화의 과정에서 개인이 부담해야 할 짐이 적다는 것은 세상에 많은 약자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종교와 성인이 진화인류학적으로 필요에 의해 생겨났든, 아니면 진짜 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준 것이든, 현재 인류에게 성인의 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영상에서 잘 담아주신 것 같습니다.

  • @ENLIGHTINGMAN
    @ENLIGHTINGMAN Год назад

    니체의 말 책을 읽어봣는데 책 내용의 30%만 머릿속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네요

  • @anetteseong987
    @anetteseong987 Год назад +3

    철학은 독특해요.~!!!

    • @sonhuengmin1
      @sonhuengmin1 Год назад

      님이 무슨 옷을 고를까도 철학임

    • @user-ie3vu8hg7z
      @user-ie3vu8hg7z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sonhuengmin1 ㅋㅋㅋㅋ 😂😂😂

  • @yongbinsong9676
    @yongbinsong9676 Год назад +2

    철학자든 사상가든 성인군자든 그들 또한 일개 편협한 사림일 뿐이니 각자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살아가면 그만. 누구의 영향을 받을 필요도 없고 긍정도 부정도 다 의미없다. 어차피 어떤 철학이나 신념을 지녀도 불완전하고 세상이 내 의지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뜻대로 산다고 후회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는 거고.

  • @user-fw6bz8nd7m
    @user-fw6bz8nd7m Год назад +1

    결국 르상티망으로 위선을 배제했지만
    그저 투쟁하라는 것 말고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공격받는 니체라고 생각이 드네요.
    세계의 위선이 잘 드러나는 세상이지만
    개인의 자유와 신념이라고 이런 이들을 잘 말리지 못하는게 보이는게 요지경인 세상이니까요

  • @user-gu4kv7zl3o
    @user-gu4kv7zl3o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구독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부분 동감합니다.

  • @user-si7bh4by9f
    @user-si7bh4by9f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제가 읽었던 니체의 비판이랑도 비슷하네요. 러셀의 서양철학사에서 누구 말을 인용한 것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니체의 도덕에는 공감능력이라는 것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라고 랬던것 같습니다.

  • @leader1207
    @leader1207 5 дней назад

    "자신의 적을 사랑하라", "가까운 이웃 보다 먼 이웃을 사랑하라"
    니체
    충코님의 독서는 자유, 해석도 자유, 왜곡도 자유, 표현도 자유입니다. 거짓은 소수의 대중을 속일수 있겠지만 다수의 사람을 속일 순 없습니다.

  • @jasminteabag
    @jasminteabag Год назад +1

    혹시 니체가 나치즘에 끼친 영향이 있나요? 독일사람들이랑 니체에 대해서 얘기하면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아서… 특히 ‘초인’부분

    • @letsbe4129
      @letsbe4129 Год назад

      나치가 니체 철학을 이용했습니다. 니체 사후, 니체 문서보관서를 건립했던 니체 여동생인 엘리자베트는 히틀러를 만나는 자리에서 오빠가 생각한 위버멘쉬가 당신이라고 말하기도 했었죠. 니체가 나폴레옹을 위버멘쉬의 현신이라고도 말했던 것도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금발의 야수'라는 니체의 표현은 나치의 인종주의로 이용되기도 했죠. 그러나 니체는 생전에 반유대주의를 혐오했으며 군국주의를 내걸었던 비스마르크의 독일을 철저하게 비판했습니다. 그의 저서에서 강자에 대한 옹호나 초인에 대한 동경, 신분차별적 발언 등이 등장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가 꿈꾼 국가는 정치 경제적으로 부강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문화국가를 꿈꾸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19세기 민족주의도 비판했으며 독일인보다는 유럽인이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 @user-zt1qf6ns8w
    @user-zt1qf6ns8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30 에 나온 니체의 무의식적 차원에 대한 해석은 "약자끼리 뭉쳐서 강자를 견제하자."가 아니라, 내가 약자를 도운 것과 같이 강자가 자신을 돕기를 염원한다. 라고 해석하심이 더 옳은 것 같습니다.

  • @user-ns5ix8tq7c
    @user-ns5ix8tq7c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어울려 살 것인가 고독을 세우며 살 것인가? 노년에 이르니 고독을 잘세우며 자코메티조각상의 섬세한 선을 닮고 싶고
    가끔은 고독이 위태로워 앙리 마티스의 LA DANSE처럼 어울림을 통해 존재로써 인정받는 느낌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양자 피자의 섹터로써 가치있지만 피자전체를 보는 안목이 중요합니다
    전 그림쟁이라 피자가 아닌 새로운 먹거리를 위해 "밀가루 반죽"하러 촘촘촘

  • @rokabye
    @rokabye Год назад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기를

  • @neuromencer0000
    @neuromencer000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니체를 너무나 좋아했고 그 초인의 의지에 따라 살기를 젊을때는 희망했지만 나중에 정신분석을 배우고나서 니체가 자기 동생인 엘리자베스 니체와 근친상간을 고백하는 책을 출판할려고 했고 동생을 그걸 니체가 죽기전까지 막았다는 사실을 알고 사상의 모든게 이해가 가면서 색깔이 바랜 내 젊은 한 날의 철학자...

  • @jhpark7826
    @jhpark7826 Год назад +30

    니체는 삶의 부정성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긍정철학을 오해한 듯.

  • @user-rm8ew9ro4i
    @user-rm8ew9ro4i Год назад +12

    선을 행사하여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는것도 힘과 자신의 가치를 실현시키고자하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싶습니다

  • @user-lk3qb7qt5u
    @user-lk3qb7qt5u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인간이 누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판단 할 수 있는가?
    옳고 그름의 표준은 누가 정할 수 있는가?
    그래서 이 세상은 모순으로 버무러 져있는거 아닌가요?
    어떻게 사는 것이 옳바른가? 라는 질문에 인간 스스로는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기에 서로 내가 옳다 니가 옳다 하면서
    다투니 혼란 속에 살다가 결국 한줌 흙으로 돌아가지요.
    그러니 큰소치는 사람이나 자칭 타칭 잘 났다는 사람도
    늙으니 결국 똑 같더라고요,

  • @DIY-vj1uo
    @DIY-vj1uo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윌리엄 제임스 - 실용주의 . 이게 훨씬 더 나랑 맞음

  • @user-wb4ep2mu7j
    @user-wb4ep2mu7j Год назад +1

    8:55 여기서 니체와 전통 기독교 가치관의 대립이 나오죠. 니체는 "오른뺨을 맞거든 상대의 뺨을 후려쳐라" 라고 주장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