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코의 책 - 📖 2023~2024 신간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727769 📖 2023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2022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30분~10시 30분 라이브 방송 진행합니다. (방송 진행 못하게 되면 커뮤니티에 사전 공지 합니다!) * 인스타그램: chungco_phil
저도 한때 사고속에서 헤매며 20대 시절을 방황하며 지금에 와서야 깨닳은거지만 "언어"가 존재하면서 부터, 인간의 세계가 코딩된다는 것 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답이 없는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내서 그 감옥속에 갇히게 되는게 대다수입니다 "의미" 라는 것도 그것만 따로 때놓고보면 컴퓨터의 알고리즘, 수식과 같죠, 칭키즈칸이 정복에 나선 이유가 빌게이츠가 창업하게된게 김연아가 점프를 도는게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 하던게 "의미"라는 관념에 의해서 굴러간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수 많은 팩터들에 의해 몸이 이끌리는 곳으로 가다보니 결과값이 생성된것일뿐 "의미"라는게 참 사람 잡어요 고통스럽게 하죠 언어라는 감옥에 빠지게되면 인간이란 컴퓨터는 알고리즘 오류에 빠져 무한로딩 걸리는 겁니다 언어가 곧 인간이 인지하는 세계가 된다 그럼 때론 언어를 지우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 칭할때 비로서 문제가된다 그렇다면 지우면 되지않나 불교에서 일컫던 말과 일맥상통 합니다 고통이 날 붙잡고있는게 아니라 내가 고통을 붙잡고 있는것 놓아줘야지 그럼 비로서 자유롭게 되는것
전 20대 후반이고, 비슷하게 사고에 많이 치중해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돌아보면 답이 없는 문제를 계속 만들며 많은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아요. 언어가 감옥이라는 표현이 너무 와닿습니다.. 그게 유일하고, 진정한 길이라고 여겼었죠. 왜 그렇게 되었나를 따져보면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외떨어지면서 자연히 그렇게 된 것 같네요. 그 때문에 삶의 진척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잘 안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 음악하는 사람인데 예술을 관념, 즉 의미라는 가치로 접근하면 재미가 없어지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언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과 행동 뿐이기에, 행동에 앞서 생각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죠.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계획에 이르기까지. 다만 저 같은 경우는 모든 방면에서 관념이 지배적인 사람이었던터라 앞으로는 행동의 비율을 훨씬 더 높여가려고 합니다. 그게 지금의 대안입니다..
공부하다가 머리 식히려고 유투브에 들어왔는데, 영상을 보게 되었네요. 이십대에 큰 사고로 전신마비장애인이 되고 집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후 고립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안에는 ”삶은 의미를 부여한 만큼 다가 온다.“는 내면의 경험적 언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헷갈립니다. 그 의미라는 것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처럼 처음부터 실존에 묻어 있던 고유한 것임을 알게 된 후 따라 온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요구에 타협한 결과물로서의 의미인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끔 영상을 통해 많은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각나는 구절이 있네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젊은 나이에 큰 사고를 당하셨음에도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강한 사람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인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기길 응원하겠습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은 삶의 유익을 찾고 즐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그런 태도를 지향합니다. 다만 자식이란 타인의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는 결정은 보수적이여야 한다고 봐요. 미래 세대는 철저히 현재 세대의 욕구 때문에 태어납니다. 아이들 또한 나처럼 행복할 것이기에 그 행복을 뺏을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낳는다는 것은 가증스러운 위선입니다. 저는 업무 특성 상 50구의 시체와 죽어감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생로병사라는 수순 자체가 고통이고 시일의 문제일 뿐 힘든 상황은 외면하고 싶어도 찾아온다는 것을 언젠가 막대한 고통을 지불해야하는 도박을 당장 내가 행복하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심지어 도박의 리스크는 순전히 자식이 감당하는 부조리한 구조입니다. 비가역적인 인생의 특성상 확실한 안락이 보장된 미래는 없고, 그 책임지지 못 할 타인의 생명(자식)을 두고서 행해지는 도박의 특성이 있는게 출산이라면 그것은 덮어두고 잘했다고 말할수 있는 문제는 아닐겁니다. 오히려 혹독하게 '출생이 태어나는 그 자녀를 위한 행위'가 아님을 상기시키며 강한 책임감을 요구하는게 이성을 가진 도덕적 존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요?
실존주의에’이유 없이 태어나 우연히 죽어가는 존재’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태어남과 죽음 사이 삶에는 아무런 의미란 없다고 생각듭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무의미한 삶속에 자유의지 또 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그저 거대한 흐름 속에 떠내려 가고 있는 존재 이며,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그 거대한 흐름과 우주적 의지를 무미건조하게 관조하는 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예전 뜨거운 이성을 쫓던것과 다르게 스토아 학파나 스피노자같은 철학자들이 좋습니다.
마지막 코멘트까지 너무 좋네요.. 어디서나 의미를 찾으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의미에 대한 의지"는 본능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자각 없이 무언가를 중 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도 소중합니다. 혹 공허함을 때때로 느끼는 건 본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모르거나 이와 다른 삶을 살아서-인 것 같습니다.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타인이나 사회가 원하기에 혹은 내가 중요하다고 주입받아서) 본인의 내재된 존재 가치가 본인의 일상과 부조화적이고 원하지 않는 매일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사회나 시대의 요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존재와 삶에 대해 스스로 해석하고 살아갈 힘을 만들게 하는 좋은 요구인 것 같네요. 그 어느 때보다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실존주의에 대한 제 관심을 확장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상 자주 찾아볼게요❤
최근 자유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인데 흥미롭게 봤어요😊 나이들고 보니 요즘 자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란 나의 욕망이나 자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때 그것을 초월하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생각해온 자유라는 의미가 외부로부터 오고 피상적이었는데 이런 자유는 - 겉으로는 자유로운거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점점 더 내면의 자유를 제한하는 걸림돌을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 또 알고보니 그것이 '나 자신'이라는 제약이었습니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이 심해지거나 나를 중심으로 행동할 때 자유는 점점 멀어지고 오로지 내 욕망에 이끌려 지내게 되는 걸 봤습니다. 일시적으로는 만족스럽고 즐겁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욕망(욕심)을 불러오고 갈증으로 돌아오는 행복을 찾고자하는 패턴이 순환되는 걸 느꼈거든요. 요즘엔 다른 차원의 자유를 경험하려면 자아라는 제약에서 일단 벗어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아 강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탁해지고 외부에서도 어떤 것이 주어져도 충만함? 같은게 없더라고요. 내 자아 속에 갇힐 때 감사할 거리들이 사라지고 자유보다 오히려 내적 상태를 사슬 속에 묶어 두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내적인 해방이 진짜 자유로운 사람인거같고 저도 찾고있는 자유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드네요. 영상을 우연히 보다 안하던 성찰을 하게 됬네요ㅋ 인사이트 얻고 갑니다:)
나는 누구인가? 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버지, 00회사의 부장, 이런 주변환경을 다 떼어내고 진짜 나는 누구인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오직 단 하나다 내가 하고있는 생각이 곧 나다 불행한 생각을 하면 나는 불행한 그 누구이고, 반대로 행복한 생각을 하면 그런 행복한 사람이 곧 나다
인간이란 존재가 생겨나면서 부터 주변에 사물을 임의로 설정해 나가며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으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오히려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의구심만 더 생겨요,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임의로 설정 되어저 왔기 때문이에요, 결론적으로 임의로 정한 값이 아닌 카오스 상태를 깨달아야 진정한 자유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랑 생각이 너무 똑같네ㅋㅋ 역시 나만의 특별함 따윈 없다 너무 다행히도. 앞은 뭐 샤르트르 사상 열거인데, 무튼 핵심은 마지막 문장에 있는 듯. 실존주의가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요새 유행하는 '뭘해도괜찮아' 이런 식의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아예 다른 이야기지. 염세주의적이거나 허무주의적인 측면을 인지할 정도는 되야 이해한다. 동의하든안하든
우리는 어떤 선택을 앞두고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타인을 의식해서 선택을 내립니다. 칼든 누군가가 협박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나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순간에도 타인을 의식한다는게 아이러니하죠. 그래서 내가 나로서 생각하고 나로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순간, 즉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이고 그게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삶의 의미는 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또 지금 나의 생각이 세상의 요구를 나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합니다(사르트르 자신도 많은 공부를 했겠지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요즘은 ‘공부에 얽매이지 말고 학생들이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자주 들리고 국가교육과정에도 그러한 생각이 이미 많이 스며들었는데, 사실은 ‘세상의 시선에 쫓기는 공부 말고, 진짜 자유롭기 위한 공부를 해라‘라는 말로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을 하다 보면, 과연 어린 아이가 스스로 자율적으로 외부의 강제를 받지 않고서 공부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실존주의적 사고를 따라가다 보면 저는 늘 칸트가 말했던 이 역설에 도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냥… 공교육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 늘 생각의 재료가 되어주는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정말 사랑하는 채널입니다 고맙습니다..그리고 진정 자유를 가지기란 참 어렵네요. 자유에는 그림자처럼 책임이 따라오니까요. 엄밀히 누가 칼을 들이밀어도 사실상 자유는 존재하지만 그만큼 책임(이런 상황에선 이를테면 목숨)도 막대해지기 때문에 쉽사리 자유롭지 못한다라는...제 안의 진짜 자유의 소리를 알고있지만 이 자유를 책임질 용기가 없습니다 ㅋㅋ 도피처로 삼은 안정이 후회로만 남지않길 바랄뿐입니다
생각의 생각의 생각 이걸 멈출 날이 과연 있기는 할까요 부처의 경지가 되지 않는 이상 인간이라면 평생 해야겠지요. 삶은 사실 흰 도화지인 것이고 나에게 주어진 건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 정도라고 생각해요. 마음껏 낙서하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지우고 그렇게 사는 게 삶이죠. 책상 위에 담배와 그림 그려주는 걸 응원해 주는 아내 한 사람 있으면 그걸로 완벽합니다.
아들 셋 사춘기 입시생 포함 대화할때 완전 말빨 딸립니다. 전 진짜 이과생이었고 직업도 그랬고… 철학 일부러 찾아보며 두시간 세시간 아들넘들과 토론합니다. 이시간이 너무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이넘들 키울때 넘 힘들어서 많이 울었는데 이제서야 대화가 되고 의미있능 이야기들이 오가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 채널은 애들과ㅜ얘기할때 도움이 될까 해서 봅니다. 아이들과 철학 역사 윤리학 논리학 문학 얘기해요. 아마도ㅠ아들 셋과 이런 대화 하기 쉽진 않겠죠.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공부하게 됩니다. 텃밭에서 일하다가 뛰어와서 시원한 차 마시면서 아이들과 철학 문학 토론. 복 받은 인생입니다. 물론 아빠도 함께 합니다. 철학 바탕이 있어야 더욱 풍성한 인생을 찾아 여행할수 있어요. 영상 감사하게 잘 보고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도 봤으면 합니다. 어려운 것이라서가 아니고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그냥 살아라~ 삶에 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존재는 그냥 존재한 것이고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의미가 있으면 좋고 의미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고 괜찮습니다. 자꾸 의미가 없는데 의미를 찾다는다고 문제를 만들고 의미를 만들어 살다가 원하던 의미가 아닌 것 같아 의미를 잃고 또 문제를 만들고 머리가 복잡하다는 것은 잡념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단하면 그런 언어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노동을 하고 땀흘려 고단한 일을 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몸이 좀 불치병에 걸려 보면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고 소중한지에 대해서. 삶은 책과 강연을 많이 듣고 수백권을 읽어 지식을 쌓는다고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욕도 먹어보고 억울하게 맞아도 보고 사기도 당해보고 이런부류 저런부류를 만나 보면서 고생을 해봐야 행복이란 어떤 것이고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살아야 겠다고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삶은 고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의미에 집착하다보면 못난 자신을 죽이거나 해하고 종교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신과 사회에 좀 유익한 일들을 하며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 그렇게 매사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에 그 어떤 의미가 없다고 단정짓게 된 이유나 근거가 너무 진부하네요.... 그러한 진부한 설명으로 철학 전공자 앞에서 유념없이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자각하지 못하시는 것을 떠나 지적으로 굉장히 모자란 사람이신 것 같네요... 지적할 것이 너무나 많고 이를 일일이 나열하여 지적하기 귀찮기 때문에 그중에서 한 가지만 지적하면서 님이 거론하시는 '깨달음'이 일어날 계기를 마련해드리는 것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 원래 삶은 고단한 것입니다. - 그런데 (=삶은 고단한데) 의미에 집착하다보면 못난(?) 자신을 죽이거나 해하고 종교에 빠지게 됩니다. 삶은 고단한데 의미에 집착하다 보면 못난 자신을 죽이게 되거나 해하게 된다고 단정하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이고 또 왜 자신을 죽이게 되거나 해하게 되면 종교에 빠지게 되는 건가요? 그리고 당신이 무슨 권리와 권한을 가졌길래 개별적인 사람들을 '못난 자신'으로 규정지은 것인가요? 아... 진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논리적 구조라고 순화시켜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친구 같았으면 쌍욕 박고 한 대 후려 갈겼겠지만 님이 무지하고 모자란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이정도로만 끝내렵니다.. 띄어쓰기도 띄어쓰기지만 논리학 좀 공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딴 모자란 내용을 자기 딴에서만 허용될 법한 또 가장 설득력 있다고 착각한 것에 의해서 발생한 견해를 견해랍시고 아무데서나 펼치면 이렇게 처 맞는 거에요. 멍청한 주제에 감히 뭐라도 아는 양 주접 떨지 마세요. 진짜 패고 싶으니까요..
@@2023af1k 님의 심기에 불편하게 한점 너무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님이 얼마나 예의가 없는 사람인지 글에 그대로 드러나네요? 글은 자신의 인격이 그대로 드러내는 건 아닐까요? 못자라고 못 배운 사람은 이야기하지말고 닥쳐라. 이건지요? 님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이 못배운 사람들과 크게 다를게 있을까요? 쌍욕을 박고 후려 갈기고 싶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뱉어내는데 논리를 너무 잘 배운 분이 이런말을 하니 너무 당황스럽네요.
@@woosang22 예의는 유학파 용어구요. 저는 제 개인적인 삶에서 예의라는 용어를 허용하거나 승인하지 않아서요. 하여 저의 행동을 겉보기에 객관성 있다고 간주될 법하게 보다 명료하게 묘사하자면 그저 너와 같이 '아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거치게 보일 법도 한 언사'라 하겠습니다. '예의 없는 행동'과 같은 규정과 그의 사용은 그러한 유학파의 용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이 없이 곧이 곧대로 승인하여 사용하는 너 같은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사용하면 될 일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명 저는 너의 뭣 같은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당한 지적을 하고 그 후에 님이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후속적으로 몇 대 때려준 것 뿐입니다. 님이 여기서 저의 언동에 대해 지적하고 징징거리고 있을 게 아니라 반성적인 태도를 갖추어 자신의 논증 형식이 논리적으로 오류가 많음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적을 승인해야 '옳은 행동'아닐까요? 대체 본인 삶에서 어떤 깨달음을 증득하신 건가요 ㅋ? 논증에서 주의깊게 신경을 써야 할 기초적인 논리의 영역에서조차도 이런 심각한 오류를 범하신 것도 모자라 자신의 잘못은 인정치 않고 감정의 유혹에 휩싸여서 변화할 계기를 마련해 준 상대에게 반격을 가하는 태도를 서슴치 않는데 어떻게 본인께서 금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의 인류로서 진보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ㅉ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알아듣는 모지리라 그런가.. 에효
@@2023af1k 아하~~ 예의가 유학파 용어란걸 모지리라서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그러면 무식해서 예의 없는 것과 유식해서 예의 있는 것의 차이가 뭘까요? 차이가 있긴 있을까요? 님이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고 뱉고 싶은대로 뱉는 다면 도대체 왜 배울까요? 뭔가 서로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그 안에 배움이 싹트는 것은 아닐까요? 친구끼리 동료끼리 가족끼리도 예의라는 것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야 내말이 맞아 내가 많이 배웠고 겪어 받으니 그대로 따라 그러면 나중에 감사하다고 할거야 ? 알았어!! 그리고 태도가 이게 뭐야!! 지적을 하면 감사할 줄 모르고!! 다 ~~ 너 잘되라고 그런거야 알았어? 이게 요즘 말하는 꼰대와 다를 바 있나요? 논증 논리 이런 단어보다 중요한 것은 제가 보기에 존중과 예의가 더 우선 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학식이 높다고 해서 옳고 학식이 낮았다고 해서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언어가 현란해도 그 사람의 인품과 인격이 떨어지면 그 사람의 가치또한 떨어지고 그의 말과 그의 글에도 힘이 없고 미천해 지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태어나면서 언젠가는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구조(본질)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목숨을 내놓기에 앞서 삶이라는 이야기를(실존) 내놓게 됩니다(구속된 자유) 여기서 인간의 '자유'(내놓고 나누울 수 있는 행함)라는 언어를 일차원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구요 여기서 나아가서 자유에 부수적으로 '사유과정'이 추가 됨으로서 좀 더 능동적 자유가 행해지며 이왕 사유할 바에 좀 더 희소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유가 진행되면 때론 대가치름도 발생할 수 있고 감사과정을 겪기도 하며 더 나아가 덕을 베풀기도 하며 급기야 예를 다한 퍼포먼스가 가미된 사유를 자유에 추가함으로서 자신의 자유에 진정성을 부여하여 삶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진정한 자유) 이러한 자유자재(제)로 감사한 사유 과정을 거치므로서 비로소 본질(목숨 내놓을 운명)의 질적 향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적 향상은 다름아닌 바로 '안전' 그것을 위함이지요, 이것이 삶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도덕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존재를 자유의 존재로 강조하고,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인간의 자유에 대한 과대평가와 도덕적 근거와 의미, 그에 따른 목적의 부재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목표를 설정 함으로써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복잡하게 설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요인들로 갇혀 제한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대채적으로 경제적인 고통 분담이 되지 않거나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해 감당이 되지 않을 경우 스스로를 돌이키며, 인생이 왜이러나 싶죠... 이쯤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제약들과 상호작용하고 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현실적인 실행계획을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인식에 대한 변화에서 새로운 출발점이 생기고, 인간관계와 사회적영향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더욱 강화해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개인적인 선택과 사회적인 변화에 대해 주변 모든 것을 새롭게 평가해보고 스스로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실행해야 더 의미 있는 계획된 삶과 큰 자유를 실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동의합니다 .. 이제 그래봐야 20살 이지만 지금까지 대인 관계, 도덕, 공부, 신학 등등등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르고 맞는 것인가를 찾으며 스트레스를 받아왔었는데 최근에 얻은 그 어떠한 깨달음에서 적어도 진리란 것은 거의 확실히 없고 그저 내가 살아가는 것만이 진리로서 존재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생각을 또 구체화 할 수 있는 영상을 보다니 운이 좋군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절대 의미없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삶도 의미가 있고 어떠한 뜻이 있습니다.우리가 감지 하지 못하고 있을뿐. 뭔가 알지 못하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그것이 있습니다.모르면 찾아서 알아야 하고 추구해야 합니다.목적을 모르니 의미없게 느껴질 뿐입니다.그 목적의 존재가 뭔지를 찾아서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그래야 축복이 당신에게 임하게 됩니다.모르면 망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자면 좋은 곳으로 갈려고 우리는 항상 시험을 봅니다.시험을 보는 이유는 본인이 얼마나 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나 테스트하는 시간입니다.시험도 그 문제를 풀 줄 알아야 풀 수 있고 많이 풀수록 합격 성공률이 높아져 갑니다.그것처럼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목적에 관해 목적을 향해 찾아서 공부하고 상고해야 합니다.그래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잘 봤습니다. 평소 ' 삶의 의미'라는 키워드를 두고 깊은 고민을 하셨다는 게 느껴지네요. 너의 의지대로 살라는 말 역시 이 시대에는 가장 타율적일 수 있다는 말이 공감됩니다. 진짜 의미라는 건 무언가 열린 상태에서 비로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해진 방향성을 따라 고민함으로써 생기기보다는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것들에 열린 접촉을 유지할 수 있을 때요. 충코님 자신만의 페이스에 따라 너무 짧지 않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 메세지에 동의합니다~ 쉽게말해 내 맘대로 내 그림에 색칠을 할 자유가 있음을 알고 나만의 의미를 찾아 사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만, 내가 자유롭게 색칠하려고 하는 밑그림은 과연 누가 그린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내가 나로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떻게하면 가능할까라는 물음이 앞서야겠죠. 그래서 저는 처음 이 생각이 들었을 때 행한 것은 은유적인 부모살해입니다. 외형적 유전은 있는 사실임으로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고 내가 내가 기억하지 못할 때 무비판적으로 습득된 유전들을 지워나가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지금은 그 과정을 밟았다고 생각하고 나니 내게 부여된 의미를 찾기보다는 내가 내게 어떤 의미를 부여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조금은 다가섰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도 어려운 것이 경계가 사라진 디지털 매체의 세뇌에서 나를 어떻게 분리 할 것인가 입니다. 충코님의 영상처럼 철학이란 테투리 안에서의 영상은 비판적 사고를 전제로서 다가가기 때문에 흡수와 배설의 여부를 결정 할 수 있지만, 때때로 자극적인 것에 이끌려 보게되는 수 많은 영상과 어쩌면 알고리즘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은 손에 힘 앞에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막막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은 최대한 디지털 금식을 하는 것 입니다. 방법론이나 결과 혹은 개념(획일적이고 보편적인 혹은 누군가의 사색의 결과물)을 받아 쓰는 것이 아닌, 내가 내 삶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먼저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법에 대한 모색으로서 디지털을 '활용'하는 것이 현재의 제게는 올바른 것으로 인식됩니다. 즉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한 문제를 '느낄 때" 충코님의 영상을 보는 것 처럼 말입니다. 나는 요즘 길을 잃었습니다. 너무 많은 정답들(정답처럼 보이는 것들)에 치이고 치이다 보니 제 자신을 잃은 느낌입니다. 다시 한번 나를 던져봐야겠습니다. 나는(참나)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걸어 갈 것인가. 직감적인 느낌으로는 저는 아름답고 개인적인 것 그래서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감동 혹은 사색)을 만드는 삶을 살고 싶은 것 같습니다.
맑은 날에 맥주 한잔 하면서 철학적인 얘기를 하는게 뭔가 낭만적이네요 ㅋㅋ 부럽습니다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해보면, 특히 진화론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개개인의 인생에는 주어진 의미가 없다는 게 더 잘 이해됩니다 유튜브에서 간간히 법륜 스님의 법문을 시청하는데, 법륜 스님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람쥐는 의미에 대해 묻지 않고도 잘 살아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포유류인 다람쥐보다 진화적으로 가까운 원숭이, 유인원, 침팬지, 네안데르탈인은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심각하게 고뇌하면서 살았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붓다나 선불교에서도 어떤 인생의 의미에 집착하기보다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를 더 강조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얘기하는 것 같고요 그렇다고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의미에 집착할 필요없이도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살 수 있는 인생의 길이 존재하는게 아닌가 말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충코님이 말한 것처럼 자기가 믿고있던 인생의 의미(특히 모태 신앙이거나 순응적인 사람)가 진정 자신의 욕구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저 또한 긴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때 글쓰기와 명상을 통해서 자신을 계속 성찰하면서 제가 추구했던 것들 중 대부분이 타인의 욕망과 기대로부터 형성되어온 의미들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 노력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는 인생을 항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추구한 의미가 자기 내면의 자연스러운 욕망과 너무 괴리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부자유와 억압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좋은 생각거리를 영상으로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댓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많은 도움을 얻는거 같아요 ㅎㅎ
경제력과 상관없이 애 낳아서 생로병사의 굴레 씌우는 행위 자체가 자기 행복을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산은 죄짓는게 맞죠. 낳지 않는 것만 해도 부작위로 선한 일을 하는 겁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모든 생명은 늙어 죽는데 굳이 서로 잡아 먹고 먹히는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이 잔혹하지 않나요? 낳아지는 아이는 피로 점철된 경쟁의 땅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모의 결정으로 생로병사를 양도받게 되는 꼴입니다. 이 때문에 죽을 사람을 낳는 선택을 행한 부모는 살인자나 마찬가지라는 철학적 비유도 존재하죠. 생로병사의 굴레 속 권태와 욕구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삶, 그 자체가 원래 고통입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불행하고 고통스런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면 괴롭고,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을 잃게 될까 두려워집니다.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자그마한 고통도 익숙해 지기는 쉽지 않지요. 인간으로 태어 났기에 겪어야 할 숙명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음 세대를 태어나게 하여 고통을 물려줄 것인가, 내 세대에서 고통을 끊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타율적 삶의 태도를 벗어났을 때, 진정한 의미의 "책임"과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감명깊네요 :) 후반부에는 최근에 읽었던 에서 이야기하는 아들러 심리학도 잠깐 떠올랐구요. 철학자는 아니지만 아들러에 대해서도 추후에 다루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user-js2ml1yn2b 정신차려라 광신도야. 너같이 종교에 빠진 인간들이 폭탄테러하고 단군상 목자르고 다니는거다 사막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쓴 소설을 수천년째 물고빠는게 정상이냐? 구약을 쓴 유대인들도 이걸 인정하는데 왜 지구 반대편에서 절대맹신하는건지 ㅉㅉ 한국인들이 유독 종교를 맹신하고 절대화하는데, 정작 느들이 빠는 유대인들은 진작에 세속화돼서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민족이 됐다. 한편 니처럼 바이블에 매달리는 근본주의자들은 폭탄테러나 하고 다니지
무의미 속에서 살아간다는 제목이 또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군요. 우리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걸 두가지로 나누어 봅시다. 하나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보편적의미 입니다. 가령 나라를 지키는건 가치가 있다, 라든가, 심지어는 돈을 더 번 사람이 더 성공했다고 통상적으로 믿는 그런것들.. 또 하나는 남이 볼때 별것 아닌데 나만 주관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들. 그래서 이런 것들은 보편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의미를 찾는데 익숙치 않습니다. 어려서 부터 내가 원하는걸 추구해 나가기 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는 걸 교육받고 자라나왔기 때문에. 객관적 의미는 듣는 즉시 이해가 갑니다. 성적 좋아야 하고 돈 벌어야 하고 스펙 쌓아야 합니다 . 군대도 가야하고 누구의 자식으로 살다가, 누구의 배우자로 살다가, 누구의 부모로 삶을 마칩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본질이겠지요? 주관적 의미는 본인이 선택하고 자유롭게 경험해 나가는 과정을 겪어야 그제서야 발견 됩니다. 그래서 간혹은 이런 주관적 의미는 과연 있는걸까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정당화 시켜주지도 않고, 특히 우리는 의미는 스스로 선택하기 보다는 누군가가 내게 줘야하는 거라는 생각에 너무 익숙해 있을때, 그렇게 느끼지 않나 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묻고 사색하고 관찰하고 나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갖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고, 동시에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봅니다. 그치만, 뭐가 좋은 삶인지는 여태 알 수가 없네요. 다만 태어났을 뿐인 우리가 좋은 이유를 발견할 수 있기를..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실존주의는 약간 적정선을 지키도록 하는 것을 도와주는 장치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통념을 과연 누구에게나 억지로 적용시켜야하는지? 같은 물음을 던지며 사회가 만든 틀 안에 나를 너무 끼워 넣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하게 하는 역할을 크게 하는 것 같습니다.
50대 세 아이 엄마인 저의 삶의 의미는 가족. 친구들.일로 부터 중용을 지키면서 사는거네요. 우선 순위는 가족이고 뭐든지 적당하게요. 그러나 적당하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욕심이 항상 따라다녀요. 욕심을 절제하던지 버리던지 하면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살수 있는거같아요. 인간이니 불완전한 존재라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요.
제가 이해하는 실존주의 철학은 앙가주망입니다. 이타적 삶 삶이라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게서 세상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기 위한 몸부림이라 생각합니다. 그 몸부림이 인간의 관점, 인간이 속한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족적을 남기는 게 가장 의미있는 삶인지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해줬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살 것인가? 항상 고민하고 수정하는 부분입니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어느날부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고민해도 답을 모르겠는데 질문이 잘못된건 아닐까? 이제 내 삶의 의미를 내가 부여하며 살아보자! 그날부터 달라졌습니다. 삶의 주인의식이 생기고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배부르고 살만하니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나는 것이다. 춥고 배고파봐 손가락 하나만 잘려나가도 너는 삶의 의미 따위를 생긱할까. 배부른 자의 고민이 철학이다. 너의 삶이 처절한 가운데 철학을 논해라. 그래야 머리속에서나 나오는 잡념들을 나불거리지 않는거다. 복에 겨운 자들의 행복에 대한 욕심이 너의 그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들이 들때 차라리 쓰레기를 주어라. 고생하는 자들을 생각하란 말이다. 맥주나 쳐 마시면서 삶의 의미를 니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예전에는 죽는 순간에 인생을 되돌아 보는 시점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스스로 잘살았다고 회고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해보았는데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어떤 방식을 추구하고 산다고 하여도 아쉬움이 없는 만족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만 되풀이되었습니다 자아를 떠나 모든 생명체는, 우주는 무엇때문에 생겨났을까 우리가 살고있는 인과율이 지배하는 세상관점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동기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한때는 삶을 통해 배우고 성숙하기 위해 태어났을거라 추측했으나 거듭 생각할수록 '나'라는 자아가 희미해져 갈 뿐이었습니다. 지금와서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색하면서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무엇이 정답인가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얼마전 일입니다. 업무로 처음 만난 타부서 직원(철학과 출신)과 보부아르 이야기를 했고, 그 다음날 넷플릭스 Emily in Paris를 이어서 보고 있는데 시즌3에서 실존주의 에피소드를 보게 되었고, 다시 다음날에는 충코님의 사르트르 실존주의 까지.. 계속 실존주의 관련된 일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일어나니 참 신기하네요.ㅎㅎ 그리고 어제는 고등학생인 아들친구가 집에 왔는데 짐캐리가 나왔던 예전 영화 얘기를 하며 어렸을때는 모든게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했었다며 서로 공감을 했었네요. ㅎㅎ
오십중반을 넘어가고 피 튀기는 삶을 살았지만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산것인가 그것에 대해서 이제 허무함을 느낍니다 집도 통장의 돈도 차고 다니는 명품들 각종 보석 그림 등등 모든 것들이 자기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죽어도 그 모든것을 내가 가져갈수도 없고 또다른 세입자가 들어 오겠죠 인간의 삶은 고통이 가득하고 늘 무엇인가 항상 불안 합니다 그러나 고통은 인간이 억지로라도 붙들고 있는것이지 고통이 붙어 다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태어나서 사회라는 틀 속에서 살다가 어느날 사회 넘어의 자신을 생각하는 개기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이란 존재를 마주치고 진지하게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서로 대화하다가 무거운 짐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좋은 대화 감사합니다.
참나를 찾는 과정이 궁금해서 법문을 듣다가 갑자기 이걸 듣는 내가 웃겨서 웃었어요. 실존한다, 실존하지 않는다는 인류의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맞네요. 21세기에 사는 한 명의 인간 안에서도 이토록 극렬히 싸우다니... 의미를 부여하다가 극렬하게 부여된 의미가 지겨워 다시 공사상으로.. 공사상으로 갔다가 정리된 마음속의 불씨를 발견하여 다시 실존주의로.. 인생은 원래 이렇게 왔다갔다 평형추가 움직이는 걸까요? 30대에는 더욱 확실하게 살 줄 알았습니다. 20대와 별반 차이가 없네요... 그저 그때처럼 울거나 화내지 않을뿐..
운동선수로 평생 남의 의견만 따라가며 혼자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내가 내 의견을 생각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나선 만화가가 되어 자기자신의 사상을 정리하고 보다 단단히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있는데, 항상 이렇게 여러생각을 많이 할수있는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서 아무런 와닿음이 없었는데,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영상감사드립니다.
누가 맞는지 아직까지 확실 하지 않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우리도 본질이 있는데 우리가 그걸 따르지 않으니까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그 Nothing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애요.. 근데 잘 밨습니다 말을 빠르게 하시는 게 저는 개인적으로 넘 좋아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어머니를 봐주든 말든 당연히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일단 복수를 하면 아무 혜택은 없을거고 그리고 그런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것도 (않인 것 같지만) 자신의 본능/지관을 제대로 안 들어서 그런거라 아무리 화가 나도 또 누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애요.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책임은 늘 자신한테 있어요.. 이게 아무리 별로라도 이게 우주의 법칙인 것 같애요
보면서 많은 생각이드네요 평소에 삶의 의미에대해 고민했던적이 종종있어요 나는 무엇이고 방향성은 어떻게잡을까 내삶이가지는 의미는 뭘까 등등이죠 그러나 이것이 외부사회에서 만들어낸 관념일수있다는걸 알게되었고 삶의 의미를 찾는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로 질문을 다시 수정해보면 재밌겠네요 ㅋㅋㅋ 좀더 깊은 생각을할수있는것같습니다 영상감사해요
토끼 귀 하시는거 왤케 웃기죵ㅋㅋㅋㅋ 6:00 저는 그냥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제 앞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ㅋㅋㅋㅋㅋ 알고보니 다 몰카! ㅎㅎㅎㅎㅎㅎㅎ 7:00 으 그래두 살인은 징그러워서 시러 솔직히 결국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결국엔 저를 위한 것 같기도 해요.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리고 법적인 책임이 싫어서 등등의 이유로
철학 학부를 전공한지가 벌써 십여년이 지났고 정신없이 현실에 휘둘려 살다보니 그런 사색은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이 영상을 봤어요. 그 시절 그 차가운(?) 실존주의를 처음 접하고 머리는 싸하게 식는데 가슴이 얼마나 뜨거워졌는지 새삼 기억나네요. 충코님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영상 감사합니다!
뭘 해봤느냐의 문제일수도 있고 아무 의미 없을수도 있다 하고싶은 수많은 업종의 사업을 해봤고 가보고 싶은 나라를 다 가봤고 수많은 이성을 만나 질렸고 먹고싶은 음식을 다 먹어봤고 등등 무망의 시기에 와있다 살아갈 목표나 의미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저세상 갈 이유도 없다 그냥 소소한 그날 하고 싶은거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아무의미 없는건 해보고싶은거 하면뭐하고 여행을 이성을 음식을 경험하면 뭐하나 어차피 저세상 가는데 이런 허무주의 ? ㅎ 해보고 놓아버린 사람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별거 해본것도 없으면서 허무하게 생각하는건 다르다 고 생각한다 다 해보고 생각해라 나는 45세에 무망이 왔지만 보통 60대는 되어야 해볼꺼 해볼듯하고 그때되면 언제가면 어떠리
조금 어렵긴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내 자유의지대로 한 것이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보니 정말 많지 않았더라구요 많이 반성하게 되고 왜 그렇게 까지 내 생각이 없이 살았는지 너무 내 자신을 제쳐놓고 산것같아 나 자신에게 미안해지고 좀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 충코의 책 -
📖 2023~2024 신간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727769
📖 2023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2022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30분~10시 30분 라이브 방송 진행합니다. (방송 진행 못하게 되면 커뮤니티에 사전 공지 합니다!)
* 인스타그램: chungco_phil
저도 한때 사고속에서 헤매며 20대 시절을 방황하며 지금에 와서야 깨닳은거지만
"언어"가 존재하면서 부터, 인간의 세계가 코딩된다는 것 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답이 없는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내서 그 감옥속에 갇히게 되는게 대다수입니다
"의미" 라는 것도 그것만 따로 때놓고보면 컴퓨터의 알고리즘, 수식과 같죠,
칭키즈칸이 정복에 나선 이유가
빌게이츠가 창업하게된게
김연아가 점프를 도는게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 하던게
"의미"라는 관념에 의해서 굴러간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수 많은 팩터들에 의해
몸이 이끌리는 곳으로 가다보니 결과값이 생성된것일뿐
"의미"라는게 참 사람 잡어요
고통스럽게 하죠
언어라는 감옥에 빠지게되면
인간이란 컴퓨터는 알고리즘 오류에 빠져 무한로딩 걸리는 겁니다
언어가 곧 인간이 인지하는 세계가 된다
그럼 때론 언어를 지우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 칭할때
비로서 문제가된다
그렇다면 지우면 되지않나
불교에서 일컫던 말과 일맥상통 합니다
고통이 날 붙잡고있는게 아니라 내가 고통을 붙잡고 있는것
놓아줘야지 그럼
비로서 자유롭게 되는것
정말 좋은말입니다..
제가 느낀 것을 알아주는 글입니다...감사합니다.
@Global LookBook [Laura AI] 현재가 고통스럽다면 언어의 오류에 빠진건 아닌지 스스로 디버깅해보자 이런뜻이었습니다 ^^ 의미=목표값 이라면 당연히 필요합니다
좋은 말 잘 읽고갑니다
전 20대 후반이고, 비슷하게 사고에 많이 치중해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돌아보면 답이 없는 문제를 계속 만들며 많은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아요. 언어가 감옥이라는 표현이 너무 와닿습니다.. 그게 유일하고, 진정한 길이라고 여겼었죠. 왜 그렇게 되었나를 따져보면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외떨어지면서 자연히 그렇게 된 것 같네요. 그 때문에 삶의 진척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잘 안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 음악하는 사람인데 예술을 관념, 즉 의미라는 가치로 접근하면 재미가 없어지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언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과 행동 뿐이기에, 행동에 앞서 생각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죠.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계획에 이르기까지. 다만 저 같은 경우는 모든 방면에서 관념이 지배적인 사람이었던터라 앞으로는 행동의 비율을 훨씬 더 높여가려고 합니다. 그게 지금의 대안입니다..
내의지로 태어난게 아니기에
살수밖에 없죠
죽는다는거 생각해보면 가볍지가 않잖아요
우리의 삶은 한바탕 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부하다가 머리 식히려고 유투브에 들어왔는데, 영상을 보게 되었네요.
이십대에 큰 사고로 전신마비장애인이 되고 집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후 고립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안에는 ”삶은 의미를 부여한 만큼 다가 온다.“는 내면의 경험적 언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헷갈립니다. 그 의미라는 것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처럼 처음부터 실존에 묻어 있던 고유한 것임을 알게 된 후 따라 온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요구에 타협한 결과물로서의 의미인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끔 영상을 통해 많은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사색의 시간에 대해 공감합니다. 평안이 있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각나는 구절이 있네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젊은 나이에 큰 사고를 당하셨음에도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강한 사람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인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기길 응원하겠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는 제가 힘들깨 보는 책인데 시간이 된다면 만나서 대화하고 싶네요
저도 그책 완전 좋아함... 아직도 가야할길이 비슷한 맥락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드립니다. 사족으로 성경에는 천년전 낡은 정보들이 많아서 별로더군요
@@253끌 님도 곧 가겠네요
대부분의 인간은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을 때 한다.
비범한 말씀 배우고갑니다ㄷㄷ
ㅠㅠ
그렇다고 할 수 있어서 하누 건 미친놈이잖아요.
살인의 이유가 할 수 있었으니까면...
자는건? 숨쉬는건? 할수밖에 없는거잖아 존나 모난새끼들 어떻게든 꼬투리 잡아보려고 남에 댓글에 꼴값을 떠네
여친이 샤워할때... 할수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할 수 밖에 없어서 한다.
1. 영상의 내용
2. 목소리
3. 딕션
4. 평화로운 배경
5. 홀린 듯 구독
이미 태어난 사람은 삶의 유익을 찾고 즐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그런 태도를 지향합니다. 다만 자식이란 타인의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는 결정은 보수적이여야 한다고 봐요.
미래 세대는 철저히 현재 세대의 욕구 때문에 태어납니다. 아이들 또한 나처럼 행복할 것이기에 그 행복을 뺏을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낳는다는 것은 가증스러운 위선입니다.
저는 업무 특성 상 50구의 시체와 죽어감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생로병사라는 수순 자체가 고통이고 시일의 문제일 뿐 힘든 상황은 외면하고 싶어도 찾아온다는 것을
언젠가 막대한 고통을 지불해야하는 도박을 당장 내가 행복하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심지어 도박의 리스크는 순전히 자식이 감당하는 부조리한 구조입니다.
비가역적인 인생의 특성상 확실한 안락이 보장된 미래는 없고, 그 책임지지 못 할 타인의 생명(자식)을 두고서 행해지는 도박의 특성이 있는게 출산이라면 그것은 덮어두고 잘했다고 말할수 있는 문제는 아닐겁니다.
오히려 혹독하게 '출생이 태어나는 그 자녀를 위한 행위'가 아님을 상기시키며 강한 책임감을 요구하는게 이성을 가진 도덕적 존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요?
공감합니다.
이미 내던저진 자는 실존주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반출생주의에 입각해 고통과 부조리를 자신 세대 안에서 끝내는 것이 개인으로서 이룰 수 있는 지고의 윤리라 생각
1:58
2:50
3:40 본질이란❔
4:20 인간은 본질에 대한 설정없이 세상에 내던졌고 행동을 하는대로 존재한다
6:30 ⭐️
7:38 ⭐️⭐️
9:30 자유
10:28
11:09 삶의 의미
정말 좋은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자유롭지 않은 것은 책임이 따르는 진정한 자유를 선택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깊이 통찰한 사람은 특정한 의미를 갖지 않아도 충만하게 살 수도 있겠지만, 보통의 인간은 바쁜 일상 속에서
그만한 시간적 여유나 성향 때문에 손에 잡히는 특정한 의미를 찾아 그곳에 끈 떨어진 자신의 연을 묶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책임을 지면서 자유로워진다.. 온전히 나의 주관으로 책임을 지고 자유를 얻는… 진정한 자유. 충코님 몇 년 전부터 간혹 보고 있는데 너무 양질의 말씀들 감사합니다.
저는 일하면서 환자분들에게 도움을 드렸을때
가장 저의 존재의 의미가 느껴지는것 같아요
그 일을 하고 오면 뿌듯하고 보람있고
제가 무언가 기여한다는것에 기분이 좋아요
잘하고 계십니다
실존주의에’이유 없이 태어나 우연히 죽어가는 존재’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태어남과 죽음 사이 삶에는 아무런 의미란 없다고 생각듭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무의미한 삶속에 자유의지 또 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그저 거대한 흐름 속에 떠내려 가고 있는 존재 이며,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그 거대한 흐름과 우주적 의지를 무미건조하게 관조하는 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예전 뜨거운 이성을 쫓던것과 다르게 스토아 학파나 스피노자같은 철학자들이 좋습니다.
캬~~~ 스피노자!^^
‘또한’인지 ’도 한없다‘ 인지??
의미는 존재하지 않고 나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실존주의에 대한 참 절묘한 표현인듯 합니다
마지막 코멘트까지 너무 좋네요..
어디서나 의미를 찾으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의미에 대한 의지"는 본능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자각 없이 무언가를 중 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도 소중합니다.
혹 공허함을 때때로 느끼는 건 본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모르거나 이와 다른 삶을 살아서-인 것 같습니다.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타인이나 사회가 원하기에 혹은 내가 중요하다고 주입받아서) 본인의 내재된 존재 가치가 본인의 일상과 부조화적이고 원하지 않는 매일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사회나 시대의 요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존재와 삶에 대해 스스로 해석하고 살아갈 힘을 만들게 하는 좋은 요구인 것 같네요.
그 어느 때보다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실존주의에 대한 제 관심을 확장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상 자주 찾아볼게요❤
최근 자유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인데 흥미롭게 봤어요😊 나이들고 보니 요즘 자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란 나의 욕망이나 자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때 그것을 초월하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생각해온 자유라는 의미가 외부로부터 오고 피상적이었는데 이런 자유는 - 겉으로는 자유로운거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점점 더 내면의 자유를 제한하는 걸림돌을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 또 알고보니 그것이 '나 자신'이라는 제약이었습니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이 심해지거나 나를 중심으로 행동할 때 자유는 점점 멀어지고 오로지 내 욕망에 이끌려 지내게 되는 걸 봤습니다. 일시적으로는 만족스럽고 즐겁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욕망(욕심)을 불러오고 갈증으로 돌아오는 행복을 찾고자하는 패턴이 순환되는 걸 느꼈거든요. 요즘엔 다른 차원의 자유를 경험하려면 자아라는 제약에서 일단 벗어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아 강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탁해지고 외부에서도 어떤 것이 주어져도 충만함? 같은게 없더라고요. 내 자아 속에 갇힐 때 감사할 거리들이 사라지고 자유보다 오히려 내적 상태를 사슬 속에 묶어 두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내적인 해방이 진짜 자유로운 사람인거같고 저도 찾고있는 자유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드네요. 영상을 우연히 보다 안하던 성찰을 하게 됬네요ㅋ 인사이트 얻고 갑니다:)
나는 누구인가? 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버지, 00회사의 부장, 이런 주변환경을 다 떼어내고
진짜 나는 누구인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오직 단 하나다
내가 하고있는 생각이 곧 나다
불행한 생각을 하면 나는 불행한 그 누구이고,
반대로 행복한 생각을 하면 그런 행복한 사람이 곧 나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에 자신의 삶을 맹목적으로 의존하고 맡기기보다 자아에 충실.
*삶의 의미를 인위적, 의도적으로 찾기보다 인간의 본성적인 의지에 충실함이 중요.
개인적으로 '우리는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다.' '우리는 자유롭도록 선고 받았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목적없이 태어났다는게 허무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내면이 한층 단단해질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인간이란 존재가 생겨나면서 부터 주변에 사물을 임의로 설정해 나가며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으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오히려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의구심만 더 생겨요,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임의로 설정 되어저 왔기 때문이에요, 결론적으로 임의로 정한 값이 아닌 카오스 상태를 깨달아야 진정한 자유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질문으로 영상을 끝맺는 것이 참 흥미롭네요
나랑 생각이 너무 똑같네ㅋㅋ 역시 나만의 특별함 따윈 없다 너무 다행히도. 앞은 뭐 샤르트르 사상 열거인데, 무튼 핵심은 마지막 문장에 있는 듯.
실존주의가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요새 유행하는 '뭘해도괜찮아' 이런 식의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아예 다른 이야기지. 염세주의적이거나 허무주의적인 측면을 인지할 정도는 되야 이해한다. 동의하든안하든
우리는 어떤 선택을 앞두고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타인을 의식해서 선택을 내립니다.
칼든 누군가가 협박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나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순간에도 타인을 의식한다는게 아이러니하죠.
그래서 내가 나로서 생각하고 나로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순간, 즉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이고 그게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삶의 의미는 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또 지금 나의 생각이 세상의 요구를 나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합니다(사르트르 자신도 많은 공부를 했겠지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요즘은 ‘공부에 얽매이지 말고 학생들이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자주 들리고 국가교육과정에도 그러한 생각이 이미 많이 스며들었는데, 사실은 ‘세상의 시선에 쫓기는 공부 말고, 진짜 자유롭기 위한 공부를 해라‘라는 말로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을 하다 보면, 과연 어린 아이가 스스로 자율적으로 외부의 강제를 받지 않고서 공부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실존주의적 사고를 따라가다 보면 저는 늘 칸트가 말했던 이 역설에 도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냥… 공교육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 늘 생각의 재료가 되어주는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정말 사랑하는 채널입니다 고맙습니다..그리고 진정 자유를 가지기란 참 어렵네요. 자유에는 그림자처럼 책임이 따라오니까요. 엄밀히 누가 칼을 들이밀어도 사실상 자유는 존재하지만 그만큼 책임(이런 상황에선 이를테면 목숨)도 막대해지기 때문에 쉽사리 자유롭지 못한다라는...제 안의 진짜 자유의 소리를 알고있지만 이 자유를 책임질 용기가 없습니다 ㅋㅋ 도피처로 삼은 안정이 후회로만 남지않길 바랄뿐입니다
생각의 생각의 생각
이걸 멈출 날이 과연 있기는 할까요
부처의 경지가 되지 않는 이상
인간이라면 평생 해야겠지요.
삶은 사실 흰 도화지인 것이고
나에게 주어진 건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 정도라고 생각해요.
마음껏 낙서하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지우고 그렇게 사는 게 삶이죠.
책상 위에 담배와 그림 그려주는 걸
응원해 주는 아내 한 사람 있으면
그걸로 완벽합니다.
우리가 서로 주체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 정말 고맙습니다!
의미없는 삶을 살아도 괜찮으면 의미없는 삶 이것이 의미가되겠죠 그래서 의미에서 벗어나려면 그냥 살아야죠 의미가 있든 없든 살아지는대로
아들 셋 사춘기 입시생 포함 대화할때 완전 말빨 딸립니다. 전 진짜 이과생이었고 직업도 그랬고… 철학 일부러 찾아보며 두시간 세시간 아들넘들과 토론합니다. 이시간이 너무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이넘들 키울때 넘 힘들어서 많이 울었는데 이제서야 대화가 되고 의미있능 이야기들이 오가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 채널은 애들과ㅜ얘기할때 도움이 될까 해서 봅니다. 아이들과 철학 역사 윤리학 논리학 문학 얘기해요. 아마도ㅠ아들 셋과 이런 대화 하기 쉽진 않겠죠.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공부하게 됩니다. 텃밭에서 일하다가 뛰어와서 시원한 차 마시면서 아이들과 철학 문학 토론. 복 받은 인생입니다. 물론 아빠도 함께 합니다. 철학 바탕이 있어야 더욱 풍성한 인생을 찾아 여행할수 있어요. 영상 감사하게 잘 보고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도 봤으면 합니다. 어려운 것이라서가 아니고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그냥 살아라~
삶에 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존재는 그냥 존재한 것이고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의미가 있으면 좋고 의미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고 괜찮습니다.
자꾸 의미가 없는데 의미를 찾다는다고 문제를 만들고 의미를 만들어 살다가 원하던 의미가 아닌 것 같아 의미를 잃고 또 문제를 만들고
머리가 복잡하다는 것은 잡념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단하면 그런 언어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노동을 하고 땀흘려 고단한 일을 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몸이 좀 불치병에 걸려 보면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고 소중한지에 대해서.
삶은 책과 강연을 많이 듣고 수백권을 읽어 지식을 쌓는다고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욕도 먹어보고 억울하게 맞아도 보고 사기도 당해보고 이런부류 저런부류를 만나 보면서 고생을 해봐야 행복이란 어떤 것이고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살아야 겠다고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삶은 고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의미에 집착하다보면 못난 자신을 죽이거나 해하고 종교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신과 사회에 좀 유익한 일들을 하며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
그렇게 매사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에 그 어떤 의미가 없다고 단정짓게 된 이유나 근거가 너무 진부하네요....
그러한 진부한 설명으로 철학 전공자 앞에서 유념없이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자각하지 못하시는 것을 떠나 지적으로 굉장히 모자란 사람이신 것 같네요...
지적할 것이 너무나 많고 이를 일일이 나열하여 지적하기 귀찮기 때문에 그중에서 한 가지만 지적하면서 님이 거론하시는 '깨달음'이 일어날 계기를 마련해드리는 것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 원래 삶은 고단한 것입니다.
- 그런데 (=삶은 고단한데) 의미에 집착하다보면 못난(?) 자신을 죽이거나 해하고 종교에 빠지게 됩니다.
삶은 고단한데 의미에 집착하다 보면 못난 자신을 죽이게 되거나 해하게 된다고 단정하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이고
또 왜 자신을 죽이게 되거나 해하게 되면
종교에 빠지게 되는 건가요?
그리고 당신이 무슨 권리와 권한을 가졌길래
개별적인 사람들을 '못난 자신'으로 규정지은 것인가요?
아... 진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논리적 구조라고 순화시켜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친구 같았으면 쌍욕 박고 한 대 후려 갈겼겠지만 님이 무지하고 모자란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이정도로만 끝내렵니다..
띄어쓰기도 띄어쓰기지만 논리학 좀 공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딴 모자란 내용을 자기 딴에서만 허용될 법한 또 가장 설득력 있다고 착각한 것에 의해서 발생한 견해를 견해랍시고 아무데서나 펼치면 이렇게 처 맞는 거에요. 멍청한 주제에 감히 뭐라도 아는 양 주접 떨지 마세요. 진짜 패고 싶으니까요..
@@2023af1k 님의 심기에 불편하게 한점 너무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님이 얼마나 예의가 없는 사람인지 글에 그대로 드러나네요?
글은 자신의 인격이 그대로 드러내는 건 아닐까요?
못자라고 못 배운 사람은 이야기하지말고 닥쳐라. 이건지요?
님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이 못배운 사람들과 크게 다를게 있을까요?
쌍욕을 박고 후려 갈기고 싶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뱉어내는데
논리를 너무 잘 배운 분이 이런말을 하니 너무 당황스럽네요.
@@woosang22 예의는 유학파 용어구요. 저는 제 개인적인 삶에서 예의라는 용어를 허용하거나 승인하지 않아서요. 하여 저의 행동을 겉보기에 객관성 있다고 간주될 법하게 보다 명료하게 묘사하자면 그저 너와 같이 '아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거치게 보일 법도 한 언사'라 하겠습니다. '예의 없는 행동'과 같은 규정과 그의 사용은 그러한 유학파의 용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이 없이 곧이 곧대로 승인하여 사용하는 너 같은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사용하면 될 일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명 저는 너의 뭣 같은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당한 지적을 하고 그 후에 님이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후속적으로 몇 대 때려준 것 뿐입니다.
님이 여기서 저의 언동에 대해 지적하고 징징거리고 있을 게 아니라 반성적인 태도를 갖추어 자신의 논증 형식이 논리적으로 오류가 많음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적을 승인해야 '옳은 행동'아닐까요?
대체 본인 삶에서 어떤 깨달음을 증득하신 건가요 ㅋ? 논증에서 주의깊게 신경을 써야 할 기초적인 논리의 영역에서조차도 이런 심각한 오류를 범하신 것도 모자라 자신의 잘못은 인정치 않고 감정의 유혹에 휩싸여서 변화할 계기를 마련해 준 상대에게 반격을 가하는 태도를 서슴치 않는데 어떻게 본인께서 금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의 인류로서 진보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ㅉ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알아듣는 모지리라 그런가.. 에효
@@2023af1k 아하~~ 예의가 유학파 용어란걸 모지리라서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그러면 무식해서 예의 없는 것과 유식해서 예의 있는 것의 차이가 뭘까요? 차이가 있긴 있을까요?
님이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고 뱉고 싶은대로 뱉는 다면 도대체 왜 배울까요?
뭔가 서로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그 안에 배움이 싹트는 것은 아닐까요?
친구끼리 동료끼리 가족끼리도 예의라는 것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야 내말이 맞아 내가 많이 배웠고 겪어 받으니 그대로 따라 그러면 나중에 감사하다고 할거야 ? 알았어!!
그리고 태도가 이게 뭐야!! 지적을 하면 감사할 줄 모르고!! 다 ~~ 너 잘되라고 그런거야 알았어?
이게 요즘 말하는 꼰대와 다를 바 있나요?
논증 논리 이런 단어보다 중요한 것은 제가 보기에 존중과 예의가 더 우선 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학식이 높다고 해서 옳고 학식이 낮았다고 해서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언어가 현란해도 그 사람의 인품과 인격이 떨어지면 그 사람의 가치또한 떨어지고
그의 말과 그의 글에도 힘이 없고 미천해 지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태어나면서 언젠가는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구조(본질)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목숨을 내놓기에 앞서 삶이라는 이야기를(실존) 내놓게 됩니다(구속된 자유)
여기서 인간의 '자유'(내놓고 나누울 수 있는 행함)라는 언어를 일차원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구요 여기서 나아가서 자유에 부수적으로 '사유과정'이 추가 됨으로서 좀 더 능동적 자유가 행해지며 이왕 사유할 바에 좀 더 희소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유가 진행되면 때론 대가치름도 발생할 수 있고 감사과정을 겪기도 하며 더 나아가 덕을 베풀기도 하며 급기야 예를 다한 퍼포먼스가 가미된 사유를 자유에 추가함으로서 자신의 자유에 진정성을 부여하여 삶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진정한 자유)
이러한 자유자재(제)로 감사한 사유 과정을 거치므로서 비로소 본질(목숨 내놓을 운명)의 질적 향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적 향상은 다름아닌 바로 '안전' 그것을 위함이지요, 이것이 삶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도덕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존재를 자유의 존재로 강조하고,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인간의 자유에 대한 과대평가와 도덕적 근거와 의미, 그에 따른 목적의 부재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목표를 설정 함으로써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복잡하게 설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요인들로 갇혀 제한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대채적으로 경제적인 고통 분담이 되지 않거나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해 감당이 되지 않을 경우 스스로를 돌이키며, 인생이 왜이러나 싶죠... 이쯤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제약들과 상호작용하고 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현실적인 실행계획을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인식에 대한 변화에서 새로운 출발점이 생기고, 인간관계와 사회적영향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더욱 강화해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개인적인 선택과 사회적인 변화에 대해 주변 모든 것을 새롭게 평가해보고 스스로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실행해야 더 의미 있는 계획된 삶과 큰 자유를 실현 할 수 있습니다.
딱딱하고 어려울 수 있는 내용들을 사례를 들며 쉽게 설명해주니 너무 좋습니다
이런 기회로 인해 가지고 있는 고뇌들이 좀 더 가벼워 지고 마음이 충만해 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실존주의가 결국은 맞을듯함..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것 - 우주는 단지 운동성만이 있을뿐이라는것
그 운동을 있게 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온걸까요? 그리고 운동성이 어떤 규칙을 갖는 건 왜 그럴까요?
정말 동의합니다 ..
이제 그래봐야 20살 이지만 지금까지 대인 관계, 도덕, 공부, 신학 등등등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르고 맞는 것인가를 찾으며 스트레스를 받아왔었는데 최근에 얻은 그 어떠한 깨달음에서 적어도 진리란 것은 거의 확실히 없고 그저 내가 살아가는 것만이 진리로서 존재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생각을 또 구체화 할 수 있는 영상을 보다니
운이 좋군요
실존주의라는거 처음 알았는데 제가 하던 생각이 바로 실존주의였군요. 항상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조은 생각을 담은 조은 영상~잘 봤어요 ^^ 감사합니다
-광명거주 이지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절대 의미없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삶도 의미가 있고 어떠한 뜻이 있습니다.우리가 감지 하지 못하고 있을뿐. 뭔가 알지 못하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그것이 있습니다.모르면 찾아서 알아야 하고 추구해야 합니다.목적을 모르니 의미없게 느껴질 뿐입니다.그 목적의 존재가 뭔지를 찾아서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그래야 축복이 당신에게 임하게 됩니다.모르면 망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자면 좋은 곳으로 갈려고 우리는 항상 시험을 봅니다.시험을 보는 이유는 본인이 얼마나 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나 테스트하는 시간입니다.시험도 그 문제를 풀 줄 알아야 풀 수 있고 많이 풀수록 합격 성공률이 높아져 갑니다.그것처럼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목적에 관해 목적을 향해 찾아서 공부하고 상고해야 합니다.그래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명 자체에는 의미가 있기에, 그 삶도 의미가 있고, 그 의미는 궁극적 목적이고, 그 목적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하신 말씀 잘 들었고, 많이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선생님의 그러한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너무 즐거운 지적 강의였습니다 . 제목만 보고 제 생각을 한 번 정리 해본다음 영상을 봤는데 비슷한 부분도 많아서 재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봤습니다. 평소 ' 삶의 의미'라는 키워드를 두고 깊은 고민을 하셨다는 게 느껴지네요. 너의 의지대로 살라는 말 역시 이 시대에는 가장 타율적일 수 있다는 말이 공감됩니다. 진짜 의미라는 건 무언가 열린 상태에서 비로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해진 방향성을 따라 고민함으로써 생기기보다는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것들에 열린 접촉을 유지할 수 있을 때요. 충코님 자신만의 페이스에 따라 너무 짧지 않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 메세지에 동의합니다~ 쉽게말해 내 맘대로 내 그림에 색칠을 할 자유가 있음을 알고 나만의 의미를 찾아 사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만, 내가 자유롭게 색칠하려고 하는 밑그림은 과연 누가 그린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내가 나로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떻게하면 가능할까라는 물음이 앞서야겠죠.
그래서 저는 처음 이 생각이 들었을 때 행한 것은 은유적인 부모살해입니다. 외형적 유전은 있는 사실임으로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고 내가 내가 기억하지 못할 때 무비판적으로 습득된 유전들을 지워나가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지금은 그 과정을 밟았다고 생각하고 나니 내게 부여된 의미를 찾기보다는 내가 내게 어떤 의미를 부여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조금은 다가섰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도 어려운 것이 경계가 사라진 디지털 매체의 세뇌에서 나를 어떻게 분리 할 것인가 입니다.
충코님의 영상처럼 철학이란 테투리 안에서의 영상은 비판적 사고를 전제로서 다가가기 때문에 흡수와 배설의 여부를 결정 할 수 있지만, 때때로 자극적인 것에 이끌려 보게되는 수 많은 영상과 어쩌면 알고리즘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은 손에 힘 앞에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막막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은 최대한 디지털 금식을 하는 것 입니다.
방법론이나 결과 혹은 개념(획일적이고 보편적인 혹은 누군가의 사색의 결과물)을 받아 쓰는 것이 아닌, 내가 내 삶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먼저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법에 대한 모색으로서 디지털을 '활용'하는 것이 현재의 제게는 올바른 것으로 인식됩니다. 즉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한 문제를 '느낄 때" 충코님의 영상을 보는 것 처럼 말입니다.
나는 요즘 길을 잃었습니다. 너무 많은 정답들(정답처럼 보이는 것들)에 치이고 치이다 보니 제 자신을 잃은 느낌입니다.
다시 한번 나를 던져봐야겠습니다. 나는(참나)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걸어 갈 것인가.
직감적인 느낌으로는 저는 아름답고 개인적인 것 그래서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감동 혹은 사색)을 만드는 삶을 살고 싶은 것 같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은 날에 우연히 접한 영상이었는데... 내가 먼저 '존재하다'는 것을 잊고 있다가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맑은 날에 맥주 한잔 하면서 철학적인 얘기를 하는게 뭔가 낭만적이네요 ㅋㅋ 부럽습니다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해보면, 특히 진화론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개개인의 인생에는 주어진 의미가 없다는 게 더 잘 이해됩니다
유튜브에서 간간히 법륜 스님의 법문을 시청하는데, 법륜 스님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람쥐는 의미에 대해 묻지 않고도 잘 살아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포유류인 다람쥐보다 진화적으로 가까운 원숭이, 유인원, 침팬지, 네안데르탈인은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심각하게 고뇌하면서 살았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붓다나 선불교에서도 어떤 인생의 의미에 집착하기보다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를 더 강조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얘기하는 것 같고요
그렇다고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의미에 집착할 필요없이도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살 수 있는 인생의 길이 존재하는게 아닌가 말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충코님이 말한 것처럼 자기가 믿고있던 인생의 의미(특히 모태 신앙이거나 순응적인 사람)가 진정 자신의 욕구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저 또한 긴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때 글쓰기와 명상을 통해서 자신을 계속 성찰하면서 제가 추구했던 것들 중 대부분이 타인의 욕망과 기대로부터 형성되어온
의미들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 노력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는 인생을 항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추구한 의미가 자기 내면의 자연스러운 욕망과 너무 괴리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부자유와 억압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좋은 생각거리를 영상으로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댓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많은 도움을 얻는거 같아요 ㅎㅎ
잠이 안와서 틀었는데,, 잠이 깨버렸어요..
좋은 영상과 좋은 댓글들이 많아 답답한 마음이 환기가 되는 기분입니다. 버둥거리며 사는 인생이 초라해 보이다가도 내가 나로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나가게 되네요😂
의미있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단 그냥 운동하고 먹고 공부하고 사사로운 일들이 모두 의미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니깐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1인입니다
독일에서 살았었는데 새 지저귀는 소리… 따사로운 햇빛 정말 그립습니다.
영상 감사히 잘봤습니다~알고보니 지금까지는 세상에 끌려다니며 살았던거였습니다.이제부터는 내 의지대로 살겠습니다.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내 의지대로 살수 있음에 감사할뿐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른쪽에 움직이는 사람들과 약간 미소를 띈 충코님이 나올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좋네요. 따듯함 감정이 올라옵니다.
핵공감합니다. 오늘 강의 참 좋네요 :)
-욕심부리지 말고 비교질 하지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오늘을 즐겁게 살자,
마지막 순간에 "참 좋은 인생이었다." 라며
웃을 수 있게.
인간로서의 한계, 그런 인간들이 만든 사회의한계로 결국 인간의 성질에 복종할수 밖에 없는듯. 편하고 만족스러운 끝을 위해서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긍정적 요소들을 가꾸고 수련할뿐
경제력과 상관없이
애 낳아서 생로병사의 굴레 씌우는 행위 자체가 자기 행복을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산은 죄짓는게 맞죠.
낳지 않는 것만 해도 부작위로 선한 일을 하는 겁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모든 생명은 늙어 죽는데 굳이 서로 잡아 먹고 먹히는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이 잔혹하지 않나요?
낳아지는 아이는 피로 점철된 경쟁의 땅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모의 결정으로 생로병사를 양도받게 되는 꼴입니다.
이 때문에 죽을 사람을 낳는 선택을 행한 부모는 살인자나 마찬가지라는 철학적 비유도 존재하죠.
생로병사의 굴레 속 권태와 욕구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삶, 그 자체가 원래 고통입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불행하고 고통스런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면 괴롭고,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을 잃게 될까 두려워집니다.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자그마한 고통도 익숙해 지기는 쉽지 않지요. 인간으로 태어 났기에 겪어야 할 숙명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음 세대를 태어나게 하여 고통을 물려줄 것인가, 내 세대에서 고통을 끊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유산균의 아버지 메체니코프는 아이를 낳지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더러운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하냐고.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타율적 삶의 태도를 벗어났을 때, 진정한 의미의 "책임"과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감명깊네요 :)
후반부에는 최근에 읽었던 에서 이야기하는 아들러 심리학도 잠깐 떠올랐구요.
철학자는 아니지만 아들러에 대해서도 추후에 다루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스테디셀러 미움 받을 용기에 근간인 아들러 심리학이 떠올랐네요
실존주의와 아들러 심리학이 깊은 연관성을 띄는거 같다고 생각 했습니다
@user-js2ml1yn2b 정신차려라 광신도야. 너같이 종교에 빠진 인간들이 폭탄테러하고 단군상 목자르고 다니는거다
사막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쓴 소설을 수천년째 물고빠는게 정상이냐? 구약을 쓴 유대인들도 이걸 인정하는데 왜 지구 반대편에서 절대맹신하는건지 ㅉㅉ
한국인들이 유독 종교를 맹신하고 절대화하는데, 정작 느들이 빠는 유대인들은 진작에 세속화돼서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민족이 됐다.
한편 니처럼 바이블에 매달리는 근본주의자들은 폭탄테러나 하고 다니지
어쩌면 의미라는게 남에게 보여지는 삶이 목적일 때 뚜렷해지는 목표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재산 명예를 다 버리고 통나무에 들어가서 자연을 만끽하고
살았던거 보면 결국 타인의 시선을 버렸을 때에 얻어지는 내면의 성품이 자유가 아닐까 생각함
무의미 속에서 살아간다는 제목이 또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군요. 우리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걸 두가지로 나누어 봅시다. 하나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보편적의미 입니다. 가령 나라를 지키는건 가치가 있다, 라든가, 심지어는 돈을 더 번 사람이 더 성공했다고 통상적으로 믿는 그런것들.. 또 하나는 남이 볼때 별것 아닌데 나만 주관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들. 그래서 이런 것들은 보편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의미를 찾는데 익숙치 않습니다. 어려서 부터 내가 원하는걸 추구해 나가기 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는 걸 교육받고 자라나왔기 때문에. 객관적 의미는 듣는 즉시 이해가 갑니다. 성적 좋아야 하고 돈 벌어야 하고 스펙 쌓아야 합니다 . 군대도 가야하고 누구의 자식으로 살다가, 누구의 배우자로 살다가, 누구의 부모로 삶을 마칩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본질이겠지요? 주관적 의미는 본인이 선택하고 자유롭게 경험해 나가는 과정을 겪어야 그제서야 발견 됩니다. 그래서 간혹은 이런 주관적 의미는 과연 있는걸까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정당화 시켜주지도 않고, 특히 우리는 의미는 스스로 선택하기 보다는 누군가가 내게 줘야하는 거라는 생각에 너무 익숙해 있을때, 그렇게 느끼지 않나 합니다.
좋은 이야기 잘 들었어요 유익합니다 요즘 자주 방문해요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이 영상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뭔가 답답했던 마음을 위로해주네요.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 다만 주어진 내 길 위에서 순간순간 옳은 판단을 하기 위해 살아야겠다는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독일에가면 철학적인 사유가 필수인가봐요..너무나 멋진 공원입니다😊
저도 맥주 한캔 따서 마시고 있습니다. 영상속 날씨도 좋고 듣다 보니 실존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저도 오늘은 제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렵니다. Cheers.
쉽고 재미있는 설명, 정확한 발음이 듣기에 참 좋았습니다. 좋은 영상 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세요.
풍경이 참 좋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묻고 사색하고 관찰하고 나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갖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고, 동시에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봅니다.
그치만, 뭐가 좋은 삶인지는 여태 알 수가 없네요.
다만 태어났을 뿐인 우리가 좋은 이유를 발견할 수 있기를..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실존주의는 약간 적정선을 지키도록 하는 것을 도와주는 장치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통념을 과연 누구에게나 억지로 적용시켜야하는지? 같은 물음을 던지며 사회가 만든 틀 안에 나를 너무 끼워 넣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하게 하는 역할을 크게 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통찰이시네요🥹👏🏻👏🏻
일상에서 뭔가 잊고 지내던 것들을 끄집어내서 생각할 수 있는 영상들인 것 같아요. 구독합니다😊
흥미롭습니다! 이번주는 오늘 영상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면서 보낼 것 같아요. 지하철에서 멍때릴때 여러 시간 틈 속에서요
자유란 생각치못한곳에 있습니다
그저 별다른 해석없이 직역하면
생각이전 말로할수없음 생각할수없음
그저 순수한 인식이랄까요 저는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 생각합니다 라캉의 말을 인용해보자면
나는 내가 존재하지않는곳에서 생각한다
50대 세 아이 엄마인 저의 삶의 의미는 가족. 친구들.일로 부터 중용을 지키면서 사는거네요. 우선 순위는 가족이고 뭐든지 적당하게요. 그러나 적당하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욕심이 항상 따라다녀요. 욕심을 절제하던지 버리던지 하면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살수 있는거같아요. 인간이니 불완전한 존재라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요.
제가 이해하는 실존주의 철학은
앙가주망입니다. 이타적 삶
삶이라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게서 세상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기 위한 몸부림이라 생각합니다.
그 몸부림이 인간의 관점, 인간이 속한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족적을 남기는 게 가장 의미있는 삶인지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해줬다고 생각해요
너무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모든 내용이 공감가고 하고 있던 생각들이였어요 진짜 내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에 모두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살아온 궤적이 나의 삶이자 동시에 나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나이기를 바란다는 말장난 같은 말이 깊게 다가오는 영상이었네요
어떻게 살 것인가? 항상 고민하고 수정하는 부분입니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어느날부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고민해도 답을 모르겠는데 질문이 잘못된건 아닐까? 이제 내 삶의 의미를 내가 부여하며 살아보자! 그날부터 달라졌습니다. 삶의 주인의식이 생기고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상이야말로 이 채널 최고의 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르트르의 철학을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이 막 살게 되는 건 자유를 깨달을 때가 아닌, 자유가 없다고 느낄 때'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카뮈의 이방인에서 사형집행날이 다가왔을 때 주인공이 소리지르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더 근본적으로
기쁨, 행복, 쾌락, 욕망을 가능하게 하는 삶이 종결되는 죽음에 대한
고통, 아픔, 분노, 두려움으로 인한 마지막 절규로서의 자기 표현
갑자기 뜬 영상인데 잘봤습니다. 요즘 사회가 넘 혼란이라 철학이 필요하다 생각해왔거든요. 철학을 좀 쉽게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생각해서 반갑네요.
배부르고 살만하니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나는 것이다. 춥고 배고파봐 손가락 하나만 잘려나가도 너는 삶의 의미 따위를 생긱할까. 배부른 자의 고민이 철학이다. 너의 삶이 처절한 가운데 철학을 논해라. 그래야 머리속에서나 나오는 잡념들을 나불거리지 않는거다. 복에 겨운 자들의 행복에 대한 욕심이 너의 그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들이 들때 차라리 쓰레기를 주어라. 고생하는 자들을 생각하란 말이다. 맥주나 쳐 마시면서 삶의 의미를 니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삶에 의미는 없지만 죽음이 두려워서 고통이 두려워서 살아가는 거죠.
두려운 사람이 두려움을 감추고 더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려는 거죠.
예전에는 죽는 순간에 인생을 되돌아 보는 시점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스스로 잘살았다고 회고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해보았는데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어떤 방식을 추구하고 산다고 하여도 아쉬움이 없는 만족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만 되풀이되었습니다
자아를 떠나 모든 생명체는, 우주는 무엇때문에 생겨났을까 우리가 살고있는 인과율이 지배하는 세상관점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동기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한때는 삶을 통해 배우고 성숙하기 위해 태어났을거라 추측했으나 거듭 생각할수록 '나'라는 자아가 희미해져 갈 뿐이었습니다.
지금와서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색하면서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무엇이 정답인가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얼마전 일입니다.
업무로 처음 만난 타부서 직원(철학과 출신)과 보부아르 이야기를 했고, 그 다음날 넷플릭스 Emily in Paris를 이어서 보고 있는데 시즌3에서 실존주의 에피소드를 보게 되었고, 다시 다음날에는 충코님의 사르트르 실존주의 까지..
계속 실존주의 관련된 일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일어나니 참 신기하네요.ㅎㅎ
그리고 어제는 고등학생인 아들친구가 집에 왔는데 짐캐리가 나왔던 예전 영화 얘기를 하며 어렸을때는 모든게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했었다며 서로 공감을 했었네요. ㅎㅎ
때때로 그렇게 마치 운명처럼 보이는 일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네요ㅎㅎㅎ
와... 그런 얘기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가까운 주변에 있다는 게 부럽네요😢
와 너무 부럽습니다
@@꾸바-b7l 그런 사람이 되면 그런 사람이 모입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applecubic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오
오십중반을 넘어가고 피 튀기는 삶을 살았지만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산것인가 그것에 대해서 이제 허무함을 느낍니다 집도 통장의 돈도 차고 다니는 명품들 각종 보석 그림 등등 모든 것들이 자기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죽어도 그 모든것을 내가 가져갈수도 없고 또다른 세입자가 들어 오겠죠
인간의 삶은 고통이 가득하고 늘 무엇인가 항상 불안 합니다 그러나
고통은 인간이 억지로라도 붙들고
있는것이지 고통이 붙어 다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맴돌지 않고 직선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왜 인간이 행복해질 수 없는가 하는 이유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반복을 갈구하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참을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가벼움 관성에 의해 오늘만 삽니다 허허
일단 태어나서 사회라는 틀 속에서 살다가 어느날 사회 넘어의 자신을 생각하는 개기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이란 존재를 마주치고 진지하게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서로 대화하다가 무거운 짐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좋은 대화 감사합니다.
인간은 잘살던 못살던 끝은 언제나 허망하다. 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생각해봐야할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그런 명제입니다!! 삶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해야하고 무의미가 닦쳐와도 또 의미를 자유를 찾는듯 합니다!!
영상 진짜 너무 좋아요 ㅠㅠ! 감사합니다
술 마시는 충코님...귀한 영상이네요 ㅋㅋㅋㅋㅋ
술이라기엔... 아마 도수 3% 정도 될 겁니다.
그래도 술은 술이지만요!
@@chungco_phil 0:31 시원한 음료나 술을 들이키고 나서 캬아~!하는 유일한 (?몇 안되는) 민족이 한국사람들이래요. 왜 그런지 밝혀주세용
참나를 찾는 과정이 궁금해서 법문을 듣다가
갑자기 이걸 듣는 내가 웃겨서 웃었어요.
실존한다, 실존하지 않는다는
인류의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맞네요.
21세기에 사는 한 명의 인간 안에서도 이토록 극렬히 싸우다니...
의미를 부여하다가 극렬하게 부여된 의미가 지겨워 다시 공사상으로.. 공사상으로 갔다가 정리된 마음속의 불씨를 발견하여 다시 실존주의로..
인생은 원래 이렇게 왔다갔다 평형추가 움직이는 걸까요?
30대에는 더욱 확실하게 살 줄 알았습니다.
20대와 별반 차이가 없네요... 그저 그때처럼 울거나 화내지 않을뿐..
생각을 하게 되는 채널 영상 감사합니다
운동선수로 평생 남의 의견만 따라가며 혼자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내가 내 의견을 생각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나선 만화가가 되어 자기자신의 사상을 정리하고 보다 단단히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있는데, 항상 이렇게 여러생각을 많이 할수있는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서 아무런 와닿음이 없었는데,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영상감사드립니다.
삶은 의미가 없기에 삶속에서 의미를 찾아야된다
그게 돈이건 행복이건 가족이건 쾌락이건
사람마다 다 다를거고 무엇하나 틀린건없다
이런 주제로 가르치거나 책을 읽어주는 유튜는 많지만, 친구와 대화하듯 이야기하고 생각할 수 있는 영상은 많이 없더라구요.
넘 값진 생각나눔이네요~
구독하고, 영상들 정주행 합니다^^
누가 맞는지 아직까지 확실 하지 않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우리도 본질이 있는데 우리가 그걸 따르지 않으니까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그 Nothing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애요.. 근데 잘 밨습니다 말을 빠르게 하시는 게 저는 개인적으로 넘 좋아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어머니를 봐주든 말든 당연히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일단 복수를 하면 아무 혜택은 없을거고 그리고 그런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것도 (않인 것 같지만) 자신의 본능/지관을 제대로 안 들어서 그런거라 아무리 화가 나도 또 누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애요.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책임은 늘 자신한테 있어요.. 이게 아무리 별로라도 이게 우주의 법칙인 것 같애요
인간에게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인것같습니다 물론 도덕적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하는 것이지만 모두들 도덕적 범위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 행복하게 삽시다 다들 건강하세요
보면서 많은 생각이드네요 평소에 삶의 의미에대해 고민했던적이 종종있어요 나는 무엇이고 방향성은 어떻게잡을까 내삶이가지는 의미는 뭘까 등등이죠 그러나 이것이 외부사회에서 만들어낸 관념일수있다는걸 알게되었고 삶의 의미를 찾는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로 질문을 다시 수정해보면 재밌겠네요 ㅋㅋㅋ 좀더 깊은 생각을할수있는것같습니다 영상감사해요
너무 좋은 영상이에요. 저의 여러 경험들과 이론이 섞여 재해석되네요. 깊게 동감합니다
토끼 귀 하시는거 왤케 웃기죵ㅋㅋㅋㅋ
6:00 저는 그냥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제 앞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ㅋㅋㅋㅋㅋ 알고보니 다 몰카! ㅎㅎㅎㅎㅎㅎㅎ
7:00 으 그래두 살인은 징그러워서 시러
솔직히 결국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결국엔 저를 위한 것 같기도 해요.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리고 법적인 책임이 싫어서 등등의 이유로
초등 6학년 도덕 1단원이 자주적인 삶에 관한 내용인데 사르트르의 철학이 자주적인 삶에 대한 관점과 기준을 잘 제시해주는 것 같습니다
철학 학부를 전공한지가 벌써 십여년이 지났고 정신없이 현실에 휘둘려 살다보니 그런 사색은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이 영상을 봤어요. 그 시절 그 차가운(?) 실존주의를 처음 접하고 머리는 싸하게 식는데 가슴이 얼마나 뜨거워졌는지 새삼 기억나네요. 충코님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영상 감사합니다!
영상 너무 좋아요..
뭐라 말로 형용할 수는 없는데 너무 위로가 되네요..
뭘 해봤느냐의 문제일수도 있고
아무 의미 없을수도 있다
하고싶은 수많은 업종의 사업을 해봤고 가보고 싶은 나라를 다 가봤고 수많은 이성을 만나 질렸고 먹고싶은 음식을 다 먹어봤고 등등
무망의 시기에 와있다
살아갈 목표나 의미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저세상 갈 이유도 없다
그냥 소소한 그날 하고 싶은거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아무의미 없는건 해보고싶은거 하면뭐하고 여행을 이성을 음식을 경험하면 뭐하나 어차피 저세상 가는데 이런 허무주의 ? ㅎ
해보고 놓아버린 사람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별거 해본것도 없으면서 허무하게 생각하는건 다르다
고 생각한다
다 해보고 생각해라
나는 45세에 무망이 왔지만
보통 60대는 되어야
해볼꺼 해볼듯하고
그때되면 언제가면 어떠리
조금 어렵긴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내 자유의지대로 한 것이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보니 정말 많지 않았더라구요 많이 반성하게 되고 왜 그렇게 까지 내 생각이 없이 살았는지 너무 내 자신을 제쳐놓고 산것같아 나 자신에게 미안해지고 좀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