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의 숨겨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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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8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61

  • @user-9jrtc3fi80prv
    @user-9jrtc3fi80prv 2 месяца назад +12

    대만에 있는 아리산 또한 궁금합니다. 백제의 활동흔적 아닌가 합니다. 언덕 아阿 마을 리里 중원에서는 안쓰는 말이죠. 차라리 아리랑 아리수 처럼 한국어에 크다 라는 뜻으로 보는게 맞지 않나합니다. 실제로도 아리산은 크죠.

  • @emdghan4393
    @emdghan4393 2 месяца назад +7

    북경부근은 대대로 고구려 땅이 었던듯 한대, 백제가 산둥반도 랑 옛 남경 부근이 주요 근거지 아닌가요?

  • @uhmmaa3
    @uhmmaa3 2 месяца назад +8

    백제사에 아버지시신을 감추고 도망다닌걸로 나온걸로 기억하는데 유골조사도 제대로 안하고...
    무령왕릉은 군산앞바다와 연결된 강줄기로 연결돼 당시 담로의 크기를 명확하게 보여주네요.
    동명과 덕안은 중국에 있지만 백제는 한반도에 있었다라는 코미디는 이제 씨도 안먹히는데도 온갖 백제지명들을 갖다부치고 왜곡하는걸보면...에효..

  • @jamal3537
    @jamal3537 2 месяца назад +9

    백제는 양직공도에서도 쓰여졌듯 요동을 소유했던 북방계열 국가임. 고구려와 맥을 같이 하고..따라서 남조스탈의 현재 무령왕릉 추정릉은 백제왕릉이 결코 아님. 발굴할때도 어짜피 도굴된 흔적이 있었다 그러고 거기가 공동묘터인데 그런데 왕릉이 존재할리가 없지. 규모도 너무 작고...한반도 전체에서 금동관 및 금관이 나온다는 거는..신라가 한반도 전체를 한때 영토삼았다는 증거일듯 함. 금동관은 전라도에서도 나옴.

  • @hanhan4980
    @hanhan4980 2 месяца назад +4

    잘 보았습니다

  • @김태호-e7i2b
    @김태호-e7i2b Месяц назад +4

    아는 내용과 조금 다르네요... 유튜버 책보고님 께서 무령왕릉 벽에 있던 벽돌(연꽃무니벽돌)을 소장하고 계시는 분 직접 인터뷰 한적 있는데..
    한번 보세요..
    그리고 처음 발굴할때... 입구가... 벽돌로 잘막혀 있어야 하는데.. 대충 넙적한 돌로 끼워 마춰서 너덜너덜... 도굴한건데... 내용물을 안가져 가고...꾸며 놓은거.....
    청나라 황제 무덤 발굴 하는 장면 보면 다들 이해 하실 겁니다... 입구가... 벽돌로 조적한것처럼 정확히 막혀있어요...
    목관, 제사상, 향로, 타다만 향까지... 백제와 청나라는 500년이 넘는 차이가날텐데...무덤양식이 비슷하고.......누군가 만든 가짜 무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진령의 도착과
    천문령의 삭제 (초중본, 중중기본) 뼈대의 도착

  • @정도령-h8z
    @정도령-h8z 2 месяца назад +29

    사마란 이름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삼국사》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왕이 죽은 후에는 시호를 쓰지 휘는 쓰지 안 씁니다. 대륙 백제를 반도 백제로 조작한 흔적으로 보입니다. 정작 무령대왕의 능은 동성대왕처럼 대륙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진흥왕순수비도 마찬가지입니다 . 진흥은 시호인데 살아서 그 명칭을 썼다는 게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비에는 진흥태왕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태왕은 고구려의 제왕 호칭인데 신라가 똑같이 썼다는 건 이해가 안됩니다. 누군가의 조작으로 보입니다.

    • @진하늘-u5j
      @진하늘-u5j Месяц назад

      무령왕(武寧王)註 001의 이름은 사마(斯摩)註 002 혹은 융(隆)이라고도 한다.이니 모대왕의 둘째 아들註 003이다. 라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 4 무령왕 조에 나옵니다.
      그리고
      흔히 진흥왕이 555년에 세웠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비문에서는 건립년도를 확인할 수 없다.

    • @진하늘-u5j
      @진하늘-u5j Месяц назад

      무령왕(武寧王)註 001의 이름은 사마(斯摩)註 002 혹은 융(隆)이라고도 한다.이니 모대왕의 둘째 아들註 003이다.
      라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 조에 나옵니다.

    • @진하늘-u5j
      @진하늘-u5j Месяц назад

      흔히 진흥왕이 555년에 세웠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비문에서는 건립년도를 확인할 수 없다.

  • @SK-by5jl
    @SK-by5jl 2 месяца назад +6

    한국 고대사 관련된 유물과 유적들은 일본군에 의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다시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웅진은 대명여지도 초중본에서 삭제되고
    중기본에서 주변의 관련지명이 모두 삭제됨.

  • @제이-f9z
    @제이-f9z 2 месяца назад +3

    맞는 이야기임. 양나라 벽돌을 쓰고 유물도 그러한건 그 시대 대륙에 묻혔던걸 파서 한반도로 이장한거임. 그래야만할 이유가 있었던것이 분명하고...

  • @Hellomr-v4w
    @Hellomr-v4w 2 месяца назад +4

    대륙삼국설을 접할때마다 당시 한반도의 상황이 궁금해 집니다. 고조선 멸망후 거의 천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한반도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 @희주-x7k
      @희주-x7k 2 месяца назад +1

      1500년 전은 지금 중공지역은 바다와 늪, 한반도는 섬이었다함. 환경 지질 공부한 사람들이 말합디다

    • @eternalkoch
      @eternalkoch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희주-x7k1500년전 한반도가 섬?그런 내용 찾아 볼수가 없는데.만약 섬이라면 한반도가 대륙으로 이동 했다는 얘기가 되는데,그런 지질 변화는 수백 수천만년 걸리지요.중국 동부,특히 산동반도쪽 침하및 융기, 황하 범람에 따른 지형 변화는 있어도,한반도가 삼국 시대에 섬이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 @badapic
      @badapic 2 месяца назад

      ☘ 차이나 동해안+요서홍산문명지역+만주+한반도+재팬열도 에 걸쳐서 "치우천왕의 이래 현재까지 코리아민족이 계속 살고 있었다"라고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이 지역의 2번의 통일이 있었고요.(① 단군왕검, ② 광개토태왕). 당나라에 의해 차이나 동해안의 백제가 멸망해도 들은 계속해서 (심지어 현재까지) 생업인 무역을 영위하며 계속 살았습니다. 그러다 주원장(명태조)이 '해금정책'을 취하자 생업인 무역에 타격을 받은 들이 왜구(이후 50년 간 명나라와 고려/조선을 텀)/화교(백제의 동남아시아 무역거점에 눌러 앉음)/명나라와 고려/조선에 귀화하게 되죠. 이후 주산군도의 왜구들은 명나라에 귀화하고, 대마도/구주의 왜구들은 조선이 삼포를 개방하여 무역을 허용하자 재팬열도에 정착해 재팬 지배층에 편입합니다. ☘ 따라서 "당시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해의 핵심포인트는 "한반도"가 아니라 "차이나 동해안"이 됩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2 месяца назад +3

      한반도는 우리 역사내내 대부분 큰사건이 없었던 안전지역입니다
      한족이라 불리우는 놈들이 한반도까지 쳐들온적이 없어요~
      한반도는 고대, 중세의 전쟁터가 아닙니다 한, 수, 당나라와 고구려의 자연적인 국경은 태행산맥과 황하입니다
      대륙의 3D 지도를 보면 아 이건 천연적인 국경이구나 라는걸 쉽게 알수가 있습니다 후에 원이 대륙을 지배하고 원나라가 북쪽으로 쫒겨나면서 명나라가 자연스럽게 북경지역까지 차지했고요 요동반도에 침범하여 철령위 (현철령시)를 설치한게 한반도에 최대로 가깝게 접근한 겁니다 이에 빡친 고려가 거긴 원나라때도 우리땅이라며 되찾아오라고 보낸게 이성계를 요동정벌입니다 그러나 이성계의 배신으로 요동을 비롯한 만주 대부분의 주권을 빼앗겼지만 명나라가 만주를 직접 다스리지는 않고 명과 조선이 여진족이 더이상 커지지 못하게 견제하고 회유하고 감시하는 형태였습니다
      우리가 배운 철령위는 원산부근 동해안 지역이 절대 절대 절대로 아닙니다 그곳이 철령위라는 아무런 기록도 증거도 근거도 없습니다
      요동반도의 철령위 => 철령시가 되는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겁니다
      한반도 침범은 임진왜란이 처음이었고 이후
      만주족, 청나라의 병자호란과 일제에 의한 한일강제병합 입니다
      즉 한반도를 빼앗긴 사건은 경술국치가 유일합니다
      대한제국이 힘은 약했지만 을사오적의 친일매국행위가 아니었다면 전쟁도 없이 이렇게 쉽게 불법적으로 나라를 내어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 @omosb1
      @omosb1 Месяц назад

      @@ernieelseungsu 저도 동의합니다. 중국정사기록의 근거한 주장입니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месяца назад +3

    낙수와 낙양이 하남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중중초본)
    황하가 大河에 도착 (중초본)
    장강이 大江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 중부지역의 상실 (중도지, 도착지 전체구간)
    출발지의 삭제는 중중초본

  • @정재문-l2e
    @정재문-l2e 2 месяца назад +4

    오랜만이네요. 한반도 공주가 설사 백제 영토라곤 해도 담로의 영역이었죠. 그리고 공주의 무령왕릉이 설사 백제의 유물이라곤 해도 일개 사마왕의 묘였다고 봐야 하는게 맞다고봅니다.

  • @풍경-d8u
    @풍경-d8u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오 첨듣는데 설득력있네요

  • @삶바른
    @삶바른 Месяц назад

    0:33
    3:10 박창화
    8:00 백제 담로

  • @신세계-v7j
    @신세계-v7j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 영상 보고.... 바~로 구독! 좋아요!

  • @peterlee9067
    @peterlee9067 Месяц назад +2

    무령왕릉이 한반도에서 발견한 이유를 충분히 가능하게 하네요~~

  • @kimjeonghuun8665
    @kimjeonghuun8665 Месяц назад +3

    앞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무녕왕을 안장했다는 등관(登冠) 대묘가 어디인지, 왕태비(王太妃)의 은제 팔찌 명문에 보이는 다리작(多利作)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등을 밝히는 데 천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박창화 선생의 야사나 무녕왕이 태어난 곳이 한반도니 뭐니 하는, 근거 없는 추정이나 하면서 지금의 무녕왕릉을 사실상 인정해주는 것보다 그게 더 건설적이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면 多利作은 팔찌의 명문 중 '대부인(大夫人)'의 앞에 나온다. 大夫人이 왕의 어머니를 말하므로 多利作은 아들의 이름이나 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多利作이 백제 성왕(聖王)이란 말이 되는데, 현재까지 聖王을 多利作이라 부른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한번 연구해 볼 만한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登冠은 현재 절강 일대 상주 지역에서 지명처럼 쓰이고 있다. 이런 것도 연구해보면 재미날 것 같다. 덮어놓고 "이게 그거여_ . 믿어_ ." 이런 식의 얘기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 @kimjeonghuun8665
      @kimjeonghuun8665 Месяц назад

      多利作은 또한 大夫人 자신의 號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雲帝夫人, 阿婁夫人, 阿孝夫人, 金氏史省夫人, 金氏愛禮夫人, 朴氏内禮夫人 등과 같은 호칭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텐버거-w4l
    @텐버거-w4l 2 месяца назад +11

    ‘책보고’ 영상 정주행 하면 의문이 다 풀림

  • @김성환-f8m
    @김성환-f8m 2 месяца назад +4

    백제가 고구리의 속국이면 영동대장군이라는 관작도 고구리에서 내려와야 말이 되는데....예를들면 양서에 백제에 관작을 내려주는데.....그렇다면 고구리 백제 멸망후 짜장들이 역사서를 조작했다는건데.....아니면 원래 고구리에서 내렸던 영동대장군이라는 관작을 양나라등이 다시 책봉하는 형식을 취했던지....

    • @정재문-l2e
      @정재문-l2e 2 месяца назад +2

      @@김성환-f8m 중국사서를보면 책봉이 많이 나오던데 그거는 자기들 높이려고 역사서를 왜곡하는거죠

    • @omosb1
      @omosb1 Месяц назад

      백제가 고구리 속국이었다면 분명 요동에서 고구리와 백제가 많이 싸웠다는 기록이 다 거짓이 됨. ㅋㅋㅌ속국이 아니라 그저 형제국가였지. 요동에서 대륙백제와 고구리의 경계선이 있었음.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месяца назад +3

    幽然齊魯吳越의 도착
    (대명여지도 초중본)

  • @r.jh.r7147
    @r.jh.r7147 29 дней назад

    무령왕릉은 부부 합장묘인데 부인 지석에나온 내용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 @설향-h8y
    @설향-h8y Месяц назад +3

    한반도 백제라하는 전라도,충청도에 비해 중국 산동성이 인구는 10배 많고 면적은 4.4배 크거늘 대륙 백제에 비해 얼마나 작은 비중인지 알수있다

    • @On_horiz
      @On_horiz Месяц назад

      장보고의 청해진은 고구려 유민들이 고구려를 부활시키기 위해 뭉쳤던 제나라를 후에 장보고가 군대를 이끌고 멸망시킨 후 산동반도 청주와 해주에 걸쳐 세운 진이 청해진이라고 하죠.
      제나라는 초대 왕인 이정기가 와병중에도 서쪽으로 정복전쟁을 벌이고
      고구려양식 피라미드인 적석총들이 모여있는 장안을 정벌하러 갔고
      장안성 공략 중 병으로 사망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던 곳이기도 하고요.
      이는 장안성의 적석총이 고구려 왕들의 무덤이기 때문에 고구려 유민들과 이정기가 오늘 내일 하는 중에도
      목숨걸고 장안성 공략에 직접 나섰다는 의미기도 하고요.

    • @01dmxufkfj
      @01dmxufkfj 21 день назад

      다만 고구려가 넘사벽이었을 뿐…

  • @user-hk8px4bt8r
    @user-hk8px4bt8r 2 месяца назад +5

    한반도가 백제 담로라면 요동반도나 북한 황해도가 백제 담로 이거나 대만 지나 오키나와 일본 대마도 부산등이 백제 담로여야 한다. 백제때는 큰 배와 돛, 나침판등이 없을 때 다 해안 따라 이동하던지 아니면 섬따라 이동 할 때다

    • @정재문-l2e
      @정재문-l2e 2 месяца назад +1

      @@user-hk8px4bt8r 백제는 배에 돛을 달아 항해할 수 있었던 게 해상제국 유지의 핵심 비결이었죠.. 요동반도도 백제 담로라고 하셨는데 전우성씨가 백제 담로는 요동백제, 월주백제, 열도백제, 반도백제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 @badapic
      @badapic 2 месяца назад +2

      나침반은 해상제국 백제에 의해 2세기 경 발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침반만 있으면 산동반도-한반도남서부 의 항해가 가능합니다. 해상제국 백제가 이 동아시아 북쪽 해상로를 이용한 무역으로 단시간에 대제국으로 올라섭니다.

    • @정재문-l2e
      @정재문-l2e 2 месяца назад +2

      @@badapic 제가 그 관련된 걸 숭실대 이을형 교수의 칼럼에서 봤어요.

  • @청연진
    @청연진 Месяц назад +4

    하여간 이 왜국넘들이 왔다간곳에 조작이 없는게 없구나

  • @lifeseeker9777
    @lifeseeker9777 21 день назад

    무령왕릉의 매지권을 보면서, 대체 왜 왕이 자신의 무덤 자리를 구하는데, 돈을 써서 자리를 사고, 또 대금을 다툴 필요가 있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죠. 또한 율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됐죠. 왜냐하면 율령이라는 것은 왕이 내리는 것인데, 왕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대체 그 율령은 누가 내린 것이길래 따르지 않는다고 밝힐까요?
    참 이해가 안 되는 비석입니다.

  • @manggoddang
    @manggoddang Месяц назад +4

    비석의 사마왕 한자가 다름... 조작된 무덤임....

  • @finegap6243
    @finegap6243 2 месяца назад +3

    한반도로 들어온 백제 무령왕릉
    ruclips.net/video/g5LMcdJLoFc/видео.htmlfeature=shared

  • @sera0319
    @sera0319 2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의 수도는? 조선때 까지 인지했던 데로 전주라고 보여집니다.

  • @justinturner8701
    @justinturner8701 2 месяца назад

    미진소리 좀 그만합시다, 책도 아니고 비석이 발굴이 되었고 일본서기랑도 내용이 완벽하게 일치하는데,,,,

    • @정재문-l2e
      @정재문-l2e 2 месяца назад +10

      @@justinturner8701 개똥같은소리하고자빠졌네ㅉㅉㅉ 일본이 쓴 기록은 잘도 믿는 일뽕이 왜왔냐?

    • @최배달-x2j
      @최배달-x2j 2 месяца назад +6

      미친소리는 네가 하고있당

    • @eternalkoch
      @eternalkoch 2 месяца назад +5

      비석? 묘지석이 아닌가요,근데 그 묘지석의 일부에 후대에 석각한 흔적이 남았지요,그 내용을 일본 서기에 맞출려는 의도인 듯.

    • @badapic
      @badapic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사마'라는 황제명만 일치. 일본서기는 '지명' '인명' 등은 실제 지명/인명 등을 갖다 쓰고 내용은 허구로 채움. 1대~37대는 허구의 왜왕이라 재팬 중세까지 천황가에서 제사도 안 지냈음.

    • @monkfish5652
      @monkfish5652 2 месяца назад +7

      일본서기는 소설아니냐?
      그걸 들먹이는 놈들이 이상한 놈들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