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고사 점수 서열은 의미 없는 순위임. 연고대가 예비 2등급이었고 성대, 외대, 한양공대가 예비 3등급 모집 제한이었다고 해서 연고대가 더 상위 대학이 아니었음. 그냥 모집 제한이었을 뿐임. 당시 명문 고등학교에는 서울대반과 연고대반이 있었는데, 연고대반 애들은 서울대반에 못 들어가는 애들인 경우가 많았음. (모두라고는 말 안 하겠음. 안정적으로 세브란스라든가 고법 정도 가려고 하는 애들도 있었을 것임.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랬음.) 그 연고대반 애들이 가는 최고 학교가 연고대였고, 서울대반 애들이 서울대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뒤 가는 학교가 성대, 외대, 한양공대였음. 지방 전남대, 경북대, 부산대 같은 대학교 출신들 중에는 서울대 붙고도 안 가신 분들 많음.. 대부분 지방 명문고 서울대반이셨을 것임. 연고대 님들은 아예 서울대를 쓸 생각을 못 했지만, 후기 최상위 학교 분들은 서울대에 아쉽게 떨어졌던 분들임. 당연히 그 학교 분들의 예비고사 합격 점수가 연고대 님들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었음. 구조 자체가 그러함. 그래서 후기 최상위 대학교 분들은 연고대가 자신들보다 상위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았음. 또 당시 연고대 님들도 후기 최상위대학교를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말하지도 않았음. 후기 최상위 대학들이 후기 모집이기 때문에 예비고사 3등급까지 모집 제한을 했으나 합격자들은 결국 대부분 서울대 탈락자들이었음. 거의 다 명문고 서울대반 친구들이었음.... 연고대 님들이 당시에도 자신들이 서울대 바로 밑이었다고 주장하지도 못했고 하지도 않았음.... 혹여 그런 주장을 들으면 감히 서울대를 써볼 생각도 못했던 애들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하나 황당해 할 확률이 높음. 서울대 꼴찌가 연고대에 가면 일등이라는 소리를 하던 시대임. 그러나 후기 최상위대에는 고등학교 때 같이 비비던 친구들이 꽤 많았음. 서울법 쓴 뒤 성대법, 서울 경상 쓴 뒤 성대 경상, 서울 공대 쓴 뒤 한양 공대, 서울 어문 쓴 뒤 외대 어문.. 식이었기 때문에 연고대반 애들이 같이 비빌 수조차 없었음. 지금 대학 서열로 그때 생각하면 안 됨.. 요즘 '스카이 스카이' 한다고 해서 당시 연고가 서울대와 엇비슷하던 시절이 아님... 연고대가 좋은 학교였던 것은 분명하나 서울대 다음은 아니었던 게 확실함..여러 좋은 학교들 중에 하나였을 뿐임.. 서울대와 연고대 사이에는 여러 학교들이 존재하던 시대임. 지금도 그 사이에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이 있다고 하던데...그런 식이었음. 단지 서울, 연고대 친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를 갔기 때문에 행복해 하며 학교를 자랑하고 다녔지만, 후기 명문대 입학 친구들은 서울대 못 간 한이 있어서 그냥 침울하게 다닌 차이는 분명히 존재함.. 2학년 되면 서울대 뱃지를 달고 찾아온 동급생을 보면 열등감 폭발했음... 그래서 더 침울.. 학교 분위기 자체가 침울.. 하필이면 서울대는 또 혜화동과 동숭동 등에 있어서 같은 전차를 타고 다님.. 그래서 더 침울.. 그러나 연고대에 대한 열등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음.. 연고대생들도 다른 학교에 대한 우월감 같은 건 가질 수도 없었음. 옛날 성대, 외대, 한양 공대, 지방 국립대 분들이 왜 연고대를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 지 이 정도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함.
1970년대 한양공대 합격자들의 예비고사 평균점수는 연대와 비슷했고, 고대 공대 합격자들의 예비고사 평균점수보다는 항상 높았습니다. 당시 기술고시 수석합격자는 서울 공대 출신 아니면 한양공대 출신이었습니다. 기술고시 합격자수도 연,고대 출신보다 훨씬 많았고 서울공대와 1, 2위를 다투었습니다.
저때는 지금처럼 서울대가 과별로도 안뽑고...공대.자연대를 합해 이공대로 뽑고.이공대에서 하위권이던 사람(고고때는 연대의대등 타대 의치대는 충분히 가고 남는 성적임)이 동물학과(하도 인기없어 2학년 과선택시 8명만 배정) 가서..취직이 않되서 보험회사 영업하는 사람 있었고..법대도 사회과학대로 같이 뽑아서 .사회과학대에 어렵게 가서 하위권인 심리학과인가 배정되어..복덕방운영하던 사람들 있지요..정말 저 시절은 서울대가 한국내 최고로 우수한 학생들 너무 편중해가서 서울대 폐지론 나오기 시작했다...정말 서울대 욕심 때문에 서울대와 기타대학이라는.. 요즘과 다른 희귀한 서울대뺀 대학 평준화가 있던 시절... 그나마 요즘은 타대 의치대가 서울대보다 우선이라..그때보다는 지금이 평준화 되었다?..그때 서울대안가고 기타대 의치대가서.!!!
예비고사 점수 서열은 의미 없는 순위임.
연고대가 예비 2등급이었고 성대, 외대, 한양공대가 예비 3등급 모집 제한이었다고 해서 연고대가 더 상위 대학이 아니었음. 그냥 모집 제한이었을 뿐임.
당시 명문 고등학교에는 서울대반과 연고대반이 있었는데, 연고대반 애들은 서울대반에 못 들어가는 애들인 경우가 많았음. (모두라고는 말 안 하겠음. 안정적으로 세브란스라든가 고법 정도 가려고 하는 애들도 있었을 것임.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랬음.)
그 연고대반 애들이 가는 최고 학교가 연고대였고, 서울대반 애들이 서울대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뒤 가는 학교가 성대, 외대, 한양공대였음.
지방 전남대, 경북대, 부산대 같은 대학교 출신들 중에는 서울대 붙고도 안 가신 분들 많음.. 대부분 지방 명문고 서울대반이셨을 것임.
연고대 님들은 아예 서울대를 쓸 생각을 못 했지만, 후기 최상위 학교 분들은 서울대에 아쉽게 떨어졌던 분들임.
당연히 그 학교 분들의 예비고사 합격 점수가 연고대 님들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었음. 구조 자체가 그러함.
그래서 후기 최상위 대학교 분들은 연고대가 자신들보다 상위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았음.
또 당시 연고대 님들도 후기 최상위대학교를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말하지도 않았음.
후기 최상위 대학들이 후기 모집이기 때문에 예비고사 3등급까지 모집 제한을 했으나 합격자들은 결국 대부분 서울대 탈락자들이었음. 거의 다 명문고 서울대반 친구들이었음....
연고대 님들이 당시에도 자신들이 서울대 바로 밑이었다고 주장하지도 못했고 하지도 않았음.... 혹여 그런 주장을 들으면 감히 서울대를 써볼 생각도 못했던 애들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하나 황당해 할 확률이 높음.
서울대 꼴찌가 연고대에 가면 일등이라는 소리를 하던 시대임.
그러나 후기 최상위대에는 고등학교 때 같이 비비던 친구들이 꽤 많았음. 서울법 쓴 뒤 성대법, 서울 경상 쓴 뒤 성대 경상, 서울 공대 쓴 뒤 한양 공대, 서울 어문 쓴 뒤 외대 어문.. 식이었기 때문에 연고대반 애들이 같이 비빌 수조차 없었음.
지금 대학 서열로 그때 생각하면 안 됨..
요즘 '스카이 스카이' 한다고 해서 당시 연고가 서울대와 엇비슷하던 시절이 아님...
연고대가 좋은 학교였던 것은 분명하나 서울대 다음은 아니었던 게 확실함..여러 좋은 학교들 중에 하나였을 뿐임..
서울대와 연고대 사이에는 여러 학교들이 존재하던 시대임. 지금도 그 사이에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이 있다고 하던데...그런 식이었음.
단지 서울, 연고대 친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를 갔기 때문에 행복해 하며 학교를 자랑하고 다녔지만, 후기 명문대 입학 친구들은 서울대 못 간 한이 있어서 그냥 침울하게 다닌 차이는 분명히 존재함.. 2학년 되면 서울대 뱃지를 달고 찾아온 동급생을 보면 열등감 폭발했음... 그래서 더 침울.. 학교 분위기 자체가 침울.. 하필이면 서울대는 또 혜화동과 동숭동 등에 있어서 같은 전차를 타고 다님.. 그래서 더 침울.. 그러나 연고대에 대한 열등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음..
연고대생들도 다른 학교에 대한 우월감 같은 건 가질 수도 없었음.
옛날 성대, 외대, 한양 공대, 지방 국립대 분들이 왜 연고대를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 지 이 정도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함.
건동홍 이런학교는 부산, 경북에 명함도 못내밀던 시절.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네.
경북부산은 서울연세고려와함께 5대명문이었지요
항공대나 이대도 저때는 탑 클라스 였는데.
1970년대 한양공대 합격자들의 예비고사 평균점수는 연대와 비슷했고, 고대 공대 합격자들의 예비고사 평균점수보다는 항상 높았습니다. 당시 기술고시 수석합격자는 서울 공대 출신 아니면 한양공대 출신이었습니다. 기술고시 합격자수도 연,고대 출신보다 훨씬 많았고
서울공대와 1, 2위를 다투었습니다.
전혀 의미없는 데이터를 줄세우는 짓은 왜죠? 나도 이 시절 대학수험생이었는데 예비고사 점수는 말 그대로 예비고사 점수일뿐, 본고사 점수로 합격여부를 가렸다우...
그 때 그시절 추억으로 보시면 됩니다
비교자료가 예비고사밖에 없습니다 그냥 참고 자료 입니다
예비고사는 말그대로 지역별 대학입시 치를수 있는 자격시험이고 대학별 본고사가 진검승부이던 시절이었음. 예비고사는 전과목 다보고 본고사는 국영수 사회나 과학등 주요과목 시험. 원하는 대학에 따라 준비하는 과정이 달랐음
저때는 지금처럼 서울대가 과별로도 안뽑고...공대.자연대를 합해 이공대로 뽑고.이공대에서 하위권이던 사람(고고때는 연대의대등 타대 의치대는 충분히 가고 남는 성적임)이 동물학과(하도 인기없어 2학년 과선택시 8명만 배정) 가서..취직이 않되서 보험회사 영업하는 사람 있었고..법대도 사회과학대로 같이 뽑아서 .사회과학대에 어렵게 가서 하위권인 심리학과인가 배정되어..복덕방운영하던 사람들 있지요..정말 저 시절은 서울대가 한국내 최고로 우수한 학생들 너무 편중해가서 서울대 폐지론 나오기 시작했다...정말 서울대 욕심 때문에 서울대와 기타대학이라는.. 요즘과 다른 희귀한 서울대뺀 대학 평준화가 있던 시절... 그나마 요즘은 타대 의치대가 서울대보다 우선이라..그때보다는 지금이 평준화 되었다?..그때 서울대안가고 기타대 의치대가서.!!!
지금이야 치대에 최고의 수재들이 가지만 저땐 치대, 한의대가 의대에 비해 많이 낮았음.
특히 우리나라에서나 치과의사라고 하지, 외국에선 doctor가 아닌 dentist 즉 치아전문가로 불려 치대생들 콤플렉스가 심했음.
imf 전까지만해도 서울대 의대보다 전기전자공학부같은 공대가 좀 더 높았고 의대는 건축과나 물리학과랑 비슷했죠.
물리학과가 최고였슴
공대가 아니라 물리학과가 원탑이었음
80년대서울대물리학과 서울대탑이였슴
그때도 설법, 설의가 쌍포였다.
ㅋㅋㅋ
무식하면 조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