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원-r8m 의외가 아니고 중동고는 50년 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류대학교에 많이 들어갔음. 깡패학교로 소문이 난 것은 소수의 야간학교 학생들이 있어서 이들이 하교할 때가 밤이기 때문에 종로일대의 깡패들에게 두드려 맞다못해 단결하여 대항하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울하고 불명예스러운 닉네임을 얻게 됐습니다.
1966년도 개교한 신일은 당시 짧은 역사임에도 성적을 낸건 비평준화 때부터 재단이 돈이 많아서 장학금 뿌리면서 학생 선발하고 평준화 이후에도 장학금 준다고 유혹해서 다른 학교 공부 잘하는 애들 전학시켜서 데려오고 해서 성적 내던 학교가 신일고였죠 돈으로 때운다고 유명했죠 지금 경복 용산은 지금 겨우 명맥 유지 중이죠 특히 경복은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학생 모집도 쥐어 짜내서 하고 있죠
대구의 경북사대부고가 28명, 계성이 37명. 그러면 계성이 부고보다 우수했다는 오류를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지역내 비평준화 시기엔 부고가 다소 위로 평가되지. 부고의 전교생수가 타학교에 비해 많이 적은편이었으니. 단순 수치비교에 있어 어찌보면 경대부고는 불리한 입장인것.
비평준화 시절에는 3대 공립 서울대 몇 명 의미가 없지요 이 시절에는 서울 3대 공립고교가 전국에서 올라오는 우수 학생들 선발권 갖고 선발해서 그 학생들이 알아서 대학 가던 시기였고 이때는 전국에 고등학교가 몇 개 없었죠 그나마 서울권에는 공립고교 하고 사립고교들이 몰려 있었죠 당연히 학생들 선발하기 좋았던 시절이었죠 더구나 60-70년대는 가난한 시절이었고 대학 진학률이 5%-10%도 안되던 시절이라서 고등학교 안나온 사람이 더 많았죠 중학교도 나오면 다행이던 시절이었고 국립 서울대 뺴고는 나머지 대학은 등록금만 있으면 가던 시절이고 소 팔고 등록금 마련 할 수 있는 집안이면 대단했던 60-70년대 그때 그시절이었지요 당시 전국에서 3대 공립 가려고 재수하고 2수3수도 하던 시절이지요 당시에는 고등학교 입학하면 나이 많은 재수생들이 많았었죠
경북고 이과 출신들이 특히 경북대 의대에 많은 수가 진학 했기때문에 경북고가 서울대만 집중 할수 없었다. 예전 50, 60 년 70년 초만해도 경북의>연세의 서울대합격 사실상 3대 명문고입니다 경기고 경북고 서울고 당시 경북고는 서울법상대아니면 한강 이남 최고명문대 경북대 입학하였지 60 70 년대는경북고 경북대가 한강 이남에서 TOP이었지 특히의대는연대 의대와 같았다 고대 의대는눈도 마주치지도못했다 의대 역사작년 7월에 100주년이다요. 지거국 서열은 예전70년 전이나 현재도 경북>부산>전남
우리 아버지 대학 입구에도 가보신적이 없으시지만.. 가정형편상 중학교(야간) 중퇴하시고 어린 나이에 법원 공무원 되셔서 등기소 소장으로 마지막 퇴임하시고 지금도 연세 80중반에 현역 법무사로 계십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 저희 아버지가 제일 자랑스럽습니다🎉🎉
여기나온 숫자를 다 더하면 2549명이 되는데
이 27개학교 외에는 다른학교는 한명도 안보냈다는 건가
대략 2500명이 당시 서울대 정원인데..
나의 모교, 경동고!!! 늘 자랑스럽다!!!
5대사립에 들지 못하는 대광고 중동고가 5대사립인 양정고보다 대체로 서울대 많이감
중동고는 주먹학교로 날렸다던데 학력도 우수하고 주먹으로도 유명하였던가 봄.
의외로 중동고에서 명문대 많이 감.
바로 옆 명문여고(숙명여고)생들이
중동고 학생들을 좀 무시했었음.
공부 못하고 쌈박질 잘 하는 주먹학교라고.
@@정성원-r8m 의외가 아니고 중동고는
50년 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류대학교에 많이 들어갔음.
깡패학교로 소문이 난 것은 소수의
야간학교 학생들이 있어서 이들이 하교할 때가 밤이기 때문에 종로일대의 깡패들에게 두드려 맞다못해 단결하여
대항하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울하고 불명예스러운 닉네임을
얻게 됐습니다.
@@whistleblower4570 일제 시대에 전기 경기, 후기 중동이었습니다. 중동 명문입니다.
후기 제1은 중앙^^@@YSJ-z3o
71년도에는 용산고 위세가 제법있었네.
그 당시 서울의 6대 공립고:경기 서울 경복 용산 서사대부고 경동고...후후후!
빅3에 나머지 3도 위세가 대단했네.
5대공립인데요.
사대부고 빠지고.
7대공립고로 갑시다 성동고 추가요!
그당시 사대부고는 학생수더 많지 않은걸로 알고있어요. 3:20
서울사대부고는 국립임.소수정예로 서울대 진학 가성비는 경기 서울 경복고 못지않았음.
5대공립에는 사대부고가 아니고, 경동고..!
저 당시는 예비고사는 대학자격 이라 대구는 예비고사 합격자는 일단 태반이 서울대 나머지는 연고대 갔다가 영남대로 당시 영남대 가 성균대급 이였지 경고 우리 삼촌
71년이면 평준화 시행 1년전이네.
저때가 고교이름별로 명문고였지.
13위 경동고 자랑스럽다.
나의 모교.ㅎ
저때 위상에 비하면..지금
많이 아쉽다..
선덕, 신일은 지금도 강북지역
명문. 경복, 용산도 명맥을
여전히 이어가던데...
하. .아쉽다.
경동고 5대 명문고 입니다
1965년도에 경동고는 서울대에 133명 합격! 경기.서울. 경복에 이어 전국4위...!
1966년도 개교한 신일은 당시 짧은 역사임에도 성적을 낸건 비평준화 때부터 재단이 돈이 많아서 장학금 뿌리면서 학생 선발하고 평준화 이후에도 장학금 준다고 유혹해서 다른 학교 공부 잘하는 애들 전학시켜서 데려오고 해서 성적 내던 학교가 신일고였죠 돈으로 때운다고 유명했죠 지금 경복 용산은 지금 겨우 명맥 유지 중이죠 특히 경복은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학생 모집도 쥐어 짜내서 하고 있죠
@@mcegolee4699경향신문 65년 2월 16일 4면에 따르면 경동고는 22명 합격이던데요
배재는 50년전이나 지금 이나 서울대 입학생 수가 변함 없네~~
평준화전이나 후나~~
인천 제물포고가 착오로 빠진 것 같습니다
대구의 경북사대부고가 28명, 계성이 37명. 그러면 계성이 부고보다 우수했다는 오류를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지역내 비평준화 시기엔 부고가 다소 위로 평가되지.
부고의 전교생수가 타학교에 비해 많이 적은편이었으니. 단순 수치비교에 있어 어찌보면 경대부고는 불리한 입장인것.
맞습니다. 51년생인 저의 고교시절엔 경북대사대부고는 4반이었고 남녀공학으로 남학생 수는 정말 소수였습니다. 물론 계성고 보다 입학 커트라인이 훨씬 높았고요.
@@은하의별무리 부고는 제가 알기로 특차선수제로 학생을 모집했던때가 최전성기로 아는데 그때는 순수남고였지요.
인정 부국 부중 부고 다 인정
70년들어 대학 정원이 배로 뛴듯합니다. 혜택받은 세대일듯 퍼센티지로
네 맞습니다
그 당시 지방 국립의대 커트라인이 서울대공대 수준
서울대 공대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에이. 그건 아니지요.
서울 공대도 과 나름.
아! 용산~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런데 제물포고는 전국에서 항상 10위 정도의 위상인데 이 자료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착오인듯 합니다. 배재고도 양정고와 비슷한데 빠졌군요.
63년 ,64년 부탁드려요
여자 고등학교의 경우는 서울대와 이화여대 합격자 수를 합산해야 한다. 특히 경기여고와 이화여고와 숙명여고는 그렇다.
제물포고는???
제물포고가 100명이 넘었을텐데 누락되었네요...
지금시대는 4대 메이저 고교야구대회를 제일 많이 우승하는 고교가 일류고교입니다. 메이저리그가서 추신수처럼 장기계약하면 그해 졸업생 연봉총액보다 더 많이 돈을 버니 그렇다 이겁니다. ㅋ
비평준화 시절에는 3대 공립 서울대 몇 명 의미가 없지요 이 시절에는 서울 3대 공립고교가 전국에서 올라오는 우수 학생들 선발권 갖고 선발해서 그 학생들이 알아서 대학 가던 시기였고 이때는 전국에 고등학교가 몇 개 없었죠 그나마 서울권에는 공립고교 하고 사립고교들이 몰려 있었죠 당연히 학생들 선발하기 좋았던 시절이었죠 더구나 60-70년대는 가난한 시절이었고 대학 진학률이 5%-10%도 안되던 시절이라서 고등학교 안나온 사람이 더 많았죠 중학교도 나오면 다행이던 시절이었고 국립 서울대 뺴고는 나머지 대학은 등록금만 있으면 가던 시절이고 소 팔고 등록금 마련 할 수 있는 집안이면 대단했던 60-70년대 그때 그시절이었지요 당시 전국에서 3대 공립 가려고 재수하고 2수3수도 하던 시절이지요 당시에는 고등학교 입학하면 나이 많은 재수생들이 많았었죠
이화여고생들이 바로 옆 배재고교생들보다
명문대를 많이 갔군요.
배재고교생들은 이하여고생들을 보면
교가를 개사한 노래를 불렀음.
우리 배재학당 이화학당 연애합시다.
연애하고 연애하고 결혼합시다.
경북고 이과 출신들이
특히 경북대 의대에
많은 수가 진학 했기때문에
경북고가 서울대만
집중 할수 없었다.
예전 50, 60 년 70년 초만해도 경북의>연세의
서울대합격 사실상 3대 명문고입니다 경기고 경북고 서울고
당시 경북고는 서울법상대아니면 한강 이남 최고명문대 경북대
입학하였지 60 70 년대는경북고 경북대가 한강 이남에서 TOP이었지 특히의대는연대 의대와 같았다 고대 의대는눈도 마주치지도못했다 의대 역사작년 7월에 100주년이다요. 지거국 서열은 예전70년 전이나 현재도 경북>부산>전남
전국3고(경기.평양.경북)가 서울3고(경기.서울.경복)보다 못하네
지방대가 sky대가 못지 않아
경북대 의대 법대등
많이 가기때문에
경북고가 서울대만
집중 할수 없었지
경북고는 경북대가 있어
서울법,상대이외에는 여타과에는지원선호도
떨어집
서울법대는 경기고 경북고가 1,2위였음
답답하네 ! 영상속도가 넘 느려
동성고는3개반이라2배로쳐야함
이당시 동성고는 한학년에 4개반임.타하교는 10개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