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고려에서 몽고와 강화를 맺기위해서 태자 왕전을 파견했는데 도중에 몽고황제 몽케 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왕전일행은 쿠빌라이의 진영으로 찾아갔는데 이것은 농경민적 사고 방식 즉 장남이 없으면 차남이 즉위한다는 생각에 고려태자 일행이 쿠빌라이를 찾아갔다는설이 사실인지요 ? 그당시 쿠빌라이와 황제의 지위를 놓고 다투던 아릭부케는 어디에 주둔하고 있었나요 ? 아릭부케가 만약 쿠빌라이보다 물리적으로 더욱먼 거리에 주둔하고 있었다면 태자 왕전 일행이 수고스럽게 더먼곳을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선생님 저는위의 사항들이 너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쿠빌라이 가문이 고려왕실과 결혼동맹을 맺은 이유가 동방의 옷치긴가문을 배후에서 고려로 하여금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네요. 고려의 역량이 상당했기에 두 가문이 결합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당시 국제정세를 합리적으로 추론해 본다면 지금 강단사학이 가르치는 고려사.고려영토는 참 억지죠.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칠 수 없는 이유도 짐작은 되지만 ....ㅋㅋ. 욕 한사발. 하긴 복종형 인간만이 생존하죠. 어쨋든 고려는 원과 운명을 같이 할 수 밖에 없었네요.
뭔소리임 ㅋㅋㅋ 충선왕이 아버지한테 왕위 뺏기고 몽골로 쫓겨난 다음 몽골 대칸이 분봉해준 건데 ㅋㅋㅋ 심왕은 말그대로 몽골이 세운 제후였고 고려랑 옷치긴 왕가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분봉해준 거라 심왕이 고려왕보다 서열도 높았고 고려 왕위계승권도 갖고 있어서 고려왕 입장에서 심왕은 몽골 대칸보다 거슬리는 존재였음. 국뽕 적당히하자.애초에 몽골한테 개털리고 평안도랑 함경도에서 반란일으킨 다음 몽골에 항복해서 한반도 북부도 몽골 땅이였는데 뭔..평안도는 몽골이 반환해주긴 하지만
당시 세계최강국이었던 몽골제국의 내전답게 엄청나게 치열했었음 ㄷㄷ
다음 영상도 기대기대 ㅎㅎㅎㅎ
넵. 퇴근 잘 하세요. 즐밤 되시구요^^~
@@justice20000 ^^ㅎㅎㅎㅎ
마치 게임을 하면서 중간 중간 설명을 듣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누가 누군지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도 열심히 시청하겠습니다.
이번 영상도 수고하셨습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
항상 감사드립니다. 곽철근님^^~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LOOK INSIDE님~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매니아썬님~
저스티스님 잘봤습니다 👍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이학선님^^~
믿고 보는 저스티스님의 역사이야기
좋아요❤
잘봐주셔서 감사합니다. SM S님~
숏츠도 잼있는데 숏츠도 마니 올려주세용 ㅎㅎㅎㅎ
정말 재밌어요 반란의 사정에서 얼마나 많은 권모술수가 있었을지
감사합니다. 송민수님~
저스티스님의 역량이 대단합니다. 대중적인 관심권에서 벗어난 주제도 이토록 흥미롭게 또 역사답게 잘 다루시는군요. 저스티스님 일신의 지식을 앞으로는 보다 자유롭게 펼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잘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예님.
큰 힘이 되네요^^~
좋아요 누르고 시청합니당 ^^
충렬왕의 상황판단의 지혜가 돋보이는구나
개인적으로 유목민쪽 주제가 젤 재밋네용
네. 감사합니다. 조대희님~
와 진짜 궁금했던 내용
감사합니다. 김문찬님~
혹시 기회가 되시면
징기스칸의 사준, 사구에 대한
개별적인 설명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사준사구 공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J레옹님^^~
혹시 참고할 책이나 미디어들 알려주실 것 있음 댓글주세요~
혈연으로 창업 군주가 되면 봉건제를 안할 수가 없는데 군주가 되고 나면 결국 군현제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골육상잔이 생길 수 밖에 없지.
핵심인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예레미아님~
좋아요 꾹꾹꾹꾹꾹!
감사합니다. 명준님^^~
심양 근처에 철령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고개는 아닌 것으로 보이네요 ㅎㅎ
원나라가 짧게 끝난게 이유가 다 있었군요.
집안 싸움이 이리 심하니...힘이 유지 될 일이 없을듯...
전 세계 입장에선 다행인건가? ㅋ.ㅋ
반란 때 고려상황이 급 궁금해지는군요.
찾아봐야겠네요~~
고려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초록별청개구리님.
@@justice20000
오홋! 아직 안찾아봤는데! ㅋ.ㅋ
안녕하세요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고려에서 몽고와 강화를 맺기위해서 태자 왕전을 파견했는데 도중에 몽고황제 몽케 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왕전일행은 쿠빌라이의 진영으로 찾아갔는데 이것은 농경민적 사고 방식 즉 장남이 없으면 차남이 즉위한다는 생각에 고려태자 일행이 쿠빌라이를 찾아갔다는설이 사실인지요 ? 그당시 쿠빌라이와 황제의 지위를 놓고 다투던 아릭부케는 어디에 주둔하고 있었나요 ? 아릭부케가 만약 쿠빌라이보다 물리적으로 더욱먼 거리에 주둔하고 있었다면 태자 왕전 일행이 수고스럽게 더먼곳을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선생님 저는위의 사항들이 너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오 이런 사건이 있었군요.
저스티스님 영상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며 올라와서 바로 시청하고 방갑게 댓글을 다는 시청자중 한명입니다.
제 요청을 작고 간단히 적겠습니다.
광고에 빈곤포르노만 안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아..광고는 제가 컨트롤하는게 아니라서요.
죄송합니다.
좋아요 눌러요❤
👍👍👍👍
역시 대국안에서는 끊임없는 권력 쟁취 투쟁이 기본 소양입니다.
당시 고려도 그렇고 원나라도 군사 수가 적네요..
👍👍👍👍👍
심양왕(瀋陽王)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없나요? 진짜 그냥 명예직인가요?
동방 3왕가와 고려의 연계를 끊고 동방 3왕가 견제용 + 고려 내정 간섭?? 용으로 보시면 됩니다. 자치권같은건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명예직이긴 한데 정치적으로 써먹을려고 만든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hohobox 고려왕이 심양왕의 지위 겸직을 잃어버린 것과 고려 공민왕의 요동정벌이 연관이 없다고 보아야하나요? 어느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hohobox 고려의 내정간섭용이라는 이야기 자체가 고려왕의 심양왕 겸직 상실과 이어지는 이야기 아닌가요?
@@mississippi7948 고려왕이랑 심왕을 병행했을땐 충선왕 때 말곤 없습니다. 그 이후에는 고려왕과 심왕이 각기 다른 사람이 합니다. 둘이 사이도 안좋아요 심왕이 계급은 더높지만 실질적 통치권은 없어서 계속 고려쪽에 간섭?같은걸 하거든요
@@곰발바닥-h6u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신듯한데, 실례가 안 된다면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양주나 제남에 있었다면 왜 원제국이 더 갔을지 궁금합니다ㅎㅎ
원간섭기 카다안의 침공도 당시 동아시아사적 맥락에서 몽골제국 내란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듯.
이래서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무섭다는것
중국 원사는 한인들 기록한것이라 오류가 상당하다 특히 명초 수록한것들이 상당해서 차라리 유럽이나 중동쪽 기록 참고 많이하는경향 있임 물론 마르코폴로 궁핍한생활 타계하고자 만든책이라 문제많은 책이지만 무조건 무시하기엔...
고대나 중세 전투 손실률이 10%로도 않될걸요
아! 의도하신지 모르겠지만 시라무렌은 웹툰 호랑이형님 에도 나오는 내역입니다
몽고 애들끼리 싸우면 몽고 유목민 인구 팍 주는거 아님??
몽골 통치 하의 중국인 여진인 투르크인 이란인 러시아인 등이 싸우는 거죠
그래서 원나라를 비롯한 몽골계국가가 쇠퇴한거죵
글쵸
대칸선출이 항상 쿠릴타이란 세력 대결이 있다보니
내부 충돌을 항상 가지고 있고
이러한 피로도 높은
세력은 오래갈수없지요
@@pazpaz1957화약이요
여몽연합군이라니,,,고려군이 우주방어 농성 중에 야지에서는 몽골 기병이 기습하고 다니면 버틸수가 없었겠군요.
원나라 대칸인데 왜 병력이 4~6만임???
결국 지나친 권력독점이 멸망의 원인 이었군, 정치 못하는 몽골인들 한국도 유사상황
지도로 봤으면 좋겠는데 누가 누군지 모르겠음
9:17 철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 부근입니다. 한반도 내 비정은 식민사학자들의 위치 비정입니다.
식민사학이랑 관련 없어요
웃기는 역사왜곡하지말고 몽골의 진짜왕족이 한국에 있는데 몬소리냐 징기스칸은 치우의 후예이고 김씨친척들이다 현재 몽골엔 왕족이 없어 중국인들이지...치우의 직계후손이 최씨거든...
"몽골의 진짜왕족이 한국에 있는데"=>헛소리
"징기스칸은 치우의 후예이고 김씨친척들이다" =>헛소리
철령은 현재도 요령성 심양 인근 철령(티엘링)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습니다. 원나라가 고려왕을 심양왕으로 책봉한 것은 현재 요령성 심양, 요양 등지가 모두 고려의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지 이름만 같을 뿐 고려의 철령이 아닙니다. 또한 심왕이란 호칭도 요동의 철령 때문에 붙은것도 아니구요
팩트!!
쿠빌라이 가문이 고려왕실과 결혼동맹을 맺은 이유가 동방의 옷치긴가문을 배후에서 고려로 하여금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네요. 고려의 역량이 상당했기에 두 가문이 결합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당시 국제정세를 합리적으로 추론해 본다면 지금 강단사학이 가르치는 고려사.고려영토는 참 억지죠.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칠 수 없는 이유도 짐작은 되지만 ....ㅋㅋ. 욕 한사발. 하긴 복종형 인간만이 생존하죠. 어쨋든 고려는 원과 운명을 같이 할 수 밖에 없었네요.
뭔소리임 ㅋㅋㅋ 충선왕이 아버지한테 왕위 뺏기고 몽골로 쫓겨난 다음 몽골 대칸이 분봉해준 건데 ㅋㅋㅋ 심왕은 말그대로 몽골이 세운 제후였고 고려랑 옷치긴 왕가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분봉해준 거라 심왕이 고려왕보다 서열도 높았고 고려 왕위계승권도 갖고 있어서 고려왕 입장에서 심왕은 몽골 대칸보다 거슬리는 존재였음. 국뽕 적당히하자.애초에 몽골한테 개털리고 평안도랑 함경도에서 반란일으킨 다음 몽골에 항복해서 한반도 북부도 몽골 땅이였는데 뭔..평안도는 몽골이 반환해주긴 하지만
내 자손들이 비단 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나의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 -칭기즈칸
그런 멋진 말을 했군요....칸선생께서...
감사합니다. 유건희님~
네 저도 이말이 인상적이더군요~~
꼭 반란군은 고려로 기어들어 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