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목사님의 '사람이 가르침을 받는 다고해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즉 비신앙인이 가르침만으로 지속적인 선행을 이어갈 수는 없다고 단정하는 부분에서, '선행'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할 것같습니다. 세상 기준에서의 선과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선은 모든 것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의 최고의 선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고, 그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를 대속하신 것을 '믿는 것' 그것이 최고 선(행)입니다. 그 기준으로 말한다면, 너진똑의 행위로인해 하나님 기준의 선행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세상만물가운데 하나님의 속성을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의도를 감안한다면, 인류보편(?)적, 상식적 기준에서의 선행은 모든 종교에서 거의 유사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고, 사실 그렇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류애적으로 휴머니즘적 유토피아를 이룩하기 위한 선행은 기독교적 회심이 없이도, 얼마든지 현상으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타종교들 즉 우상으로 치부하는 그러한 집단들의 가르침을 통해 여러나라들이 상식적 도덕적 국가의 모습을 이루머 살아가는 것이고요. 오히려, 그러한 우상을 숭배하는 세속적국가와 집단이 보기에도, 기독교를 따른다는 국가나, 집단이 '세상 만물가운데 심겨진 하나님의 선한 속성과 성품"마저도 거스르며, 상식적인 선행의 기준에도 미달하는 것을 목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오기도합니다. 그래서, 눅19:40 은 말씀합니다. '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너진똑의 돌을 보고 다가운 깨달음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태완 목사입니다. 주신 의견 감사합니다. 댓글을 읽어보니 제가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람이 가르침만을 받는다고 해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었던 의도는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진리를 가르치면 사람들이 변화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식을 들어서 변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이 (완벽하지 않을 지라도)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볼 때 우리 안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은 '행하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아라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즉 이스라엘에는 수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이전부터 율법과 진리를 가르쳤지만 가르치는 그들도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타락하여 멸망하였고, 때가 되어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진리를 가르치고 그 가르침대로 제자들과 함께 사셨고, 그 삶을 보고 배운 제자들에 의해 그 말씀이 또 다른 제자들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저자직강으로 산상수훈 등에서 수 많은 무리들을 가르쳤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배신하였습니다. 구약시대부터 오랜기간 가르침으로만은 이스라엘과 인류의 죄악(도덕적인 선행조차도)으로 부터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도덕적 선행을 보인 영웅으로 제시하는 가르침으로는 그 분을 멋있게 보일 수는 있어도 비신앙인이 예수님을 믿고 삶이 변화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제 의견을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해서는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비효율적이고 미련한 방법인 12제자와 같이 먹고 살고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결국 그분이 오신 궁극적인 목적인 우리를 죄인에서 선을 행하는 의인인 새로운 피조물로 완전히 변화시키기 위한 대속의 희생제물로서 오셔서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하셨다는 신비한 진리를 믿지 않고는, 그리고 성령에 의해 그 믿음이 고백되어지지 않고서는... 우리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성경 에서 말하는 진리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르침은 중요하기에 가르침의 행위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바른 가르침이어야 하며,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또한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 제가 의도했던 바입니다. 영상 안에서 충분히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주신 의견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오해가 되는 부분에 대해 조금 더 보충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남겨봅니다.
@@holyfun 정성스러운 답글 정말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사람은 단순히 가르침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은, 신앙의 본질을 생각할 때 너무도 분명한 진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마치 호세아나 예레미야의 시대처럼 심각한 위기 속에 있는 듯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처럼, 참된 믿음이 점점 메말라가는 현상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를 살펴보면, 참된가르침과 그에 따른 성화의 과정을 논하기에 앞서, 종교와 신앙에 자체 대한 무관심이 심각할 정도로 확산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기독교인의 비율은 17%(재적)에 불과하고, 63%의 사람들의 종교에 관심조차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완벽한 가르침"을 논하기 이전에, 믿음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접촉점조차 찾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푸라기 하나라도 건네야 하는 상황처럼, 재난 현장에서는 곰팡이핀 빵쪼가리도 생명유지의 소중한 수단이 되는 것처럼, 지금은 뭘가 부족한, 미흡한 메시지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다큐멘터리 영화 교회오빠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비기독교인 김호경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순전한 믿음의 중요성을 환기시켰습니다. 이처럼, 너진똑이나 김호경 감독같은 부족한 신자 혹은 비신앙인이 만든 부족한 가르침이나 콘텐츠라도 누군가의 신앙 여정을 시작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눅 9:49-50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눈에는 결함이 있어 보이는 사역도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는 귀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먼저 부름받은 우리에게는 '부족한 자들에 의한 부족한 진리'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현실을, 그저 사회적현상의 하나가 아닌, 성령께서 주시는 '돌 들의 외침', '발람의 나귀'의 경고로 인식하고, 신앙인으로서 더 큰 책임을 일깨워 주는 일종의 주님의 견책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너진똑님이 하시는 일이 소용 없는 일이라면 목사님들이 하시는 일도 의미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요?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찬양 인도도 하고, 기도도 그럴싸하게 하기에 나는 제대로 믿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는 제가 바리새인은 아닐까, 너진똑님 영상을 보고 생각했어요. 영상에서 사랑이 강조됐기 때문에, 비참한 나에게도 사랑할 책임을 맡겨주셨다는 데 감사함을 다시 느꼈고요. 어떤 의도로 말씀하신 줄은 알지만 너그럽게 볼 부분은 너그럽게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양한 관점을 나눠주셔서 건강하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예수는 만들어진 신이 맞는데,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기에 기독교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이다. 사복음서는 인간 예수가 점진적으로 신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며 제자들의 서신들에 오면 더 노골화된다는 사실은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의 문해력만 가지고 있어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까놓고 말해 예수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하나님이 될 수도 없는 존재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도대체 누구를 보고 내지른 절규인가? 중요한 것은 예수가 진짜 신이냐 만들어진 신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고, 도리어 세상을 타락시키는 일에 앞장서는 작태가 기독교라는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예수에 대한 적대감을 넘어 기독교 신에 대한 혐오감까지 갖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 사이에서 개신교는 악의 축, 즉 적페세력의 숙주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지 않나. 아마 한국이 망한다면 개신교가 그 주범일 것이라 본다. 제발 자중자애하기 바란다. 당신들은 구제불능이다.
님같은 분이 한국교인의 샘플 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사회 에 버림받습니다 하나님사랑은 교회사랑이 아 닌 이웃사랑으로 증명됩니다 그러나 많은 이단들과 거짓목 사를은 하나님사랑을 교회올 인 하는걸로 인식합니다 이러니 한국교회는 예수와다 른 종교같습니다 십자가사랑체험하면 자연스 레 이웃사랑됩니다 그걸 경험안하고 사는 님의 사례가 개독교라 욕 듣는 한국교회성도 표본입니다
@@Tangri_1234 당연히 잘하고 있다. 난 유교인이고 대학에서도 유교를 전공한, 유교로 잔뼈가 굴은 골수 유교인이다.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잘하는 것이 유교 가르침의 근본이다. 이 원칙을 우습게 아는 자를 공자는 소인이라고 했고 맹자는 사이비라고 했다. 예수도 똑 같은 가르침을 남겼다. 주 하느님을 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이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그것은 개무시하고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 교리는 예수의 복음 정신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고 이단보다 더 흉악한 교리다.
와우~이런 좋은 시도에 저희도 정리될수있어 감사드립니다 목사님들~멋지십니다
김태완 목사님에 한표
목사님 하나님의 자식들이 참 믿음을 가질수 있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중심을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것에 물든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기위해 자꾸 자유주의적으로 방향을 트는 행위는 본질을 놓치게 되겠지요..
목사님 예수님의 진리를 굳건히 지켜주세요. 방황하는 영혼들이 중심을 놓치지 않도록..
아멘~
김태완 목사님의 '사람이 가르침을 받는 다고해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즉 비신앙인이 가르침만으로 지속적인 선행을 이어갈 수는 없다고 단정하는 부분에서, '선행'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할 것같습니다. 세상 기준에서의 선과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선은 모든 것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의 최고의 선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고, 그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를 대속하신 것을 '믿는 것' 그것이 최고 선(행)입니다. 그 기준으로 말한다면, 너진똑의 행위로인해 하나님 기준의 선행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세상만물가운데 하나님의 속성을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의도를 감안한다면, 인류보편(?)적, 상식적 기준에서의 선행은 모든 종교에서 거의 유사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고, 사실 그렇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류애적으로 휴머니즘적 유토피아를 이룩하기 위한 선행은 기독교적 회심이 없이도, 얼마든지 현상으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타종교들 즉 우상으로 치부하는 그러한 집단들의 가르침을 통해 여러나라들이 상식적 도덕적 국가의 모습을 이루머 살아가는 것이고요. 오히려, 그러한 우상을 숭배하는 세속적국가와 집단이 보기에도, 기독교를 따른다는 국가나, 집단이 '세상 만물가운데 심겨진 하나님의 선한 속성과 성품"마저도 거스르며, 상식적인 선행의 기준에도 미달하는 것을 목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오기도합니다. 그래서, 눅19:40 은 말씀합니다. '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너진똑의 돌을 보고 다가운 깨달음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태완 목사입니다. 주신 의견 감사합니다. 댓글을 읽어보니 제가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람이 가르침만을 받는다고 해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었던 의도는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진리를 가르치면 사람들이 변화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식을 들어서 변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이 (완벽하지 않을 지라도)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볼 때 우리 안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은 '행하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아라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즉 이스라엘에는 수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이전부터 율법과 진리를 가르쳤지만 가르치는 그들도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타락하여 멸망하였고, 때가 되어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진리를 가르치고 그 가르침대로 제자들과 함께 사셨고, 그 삶을 보고 배운 제자들에 의해 그 말씀이 또 다른 제자들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저자직강으로 산상수훈 등에서 수 많은 무리들을 가르쳤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배신하였습니다. 구약시대부터 오랜기간 가르침으로만은 이스라엘과 인류의 죄악(도덕적인 선행조차도)으로 부터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도덕적 선행을 보인 영웅으로 제시하는 가르침으로는 그 분을 멋있게 보일 수는 있어도 비신앙인이 예수님을 믿고 삶이 변화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제 의견을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해서는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비효율적이고 미련한 방법인 12제자와 같이 먹고 살고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결국 그분이 오신 궁극적인 목적인 우리를 죄인에서 선을 행하는 의인인 새로운 피조물로 완전히 변화시키기 위한 대속의 희생제물로서 오셔서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하셨다는 신비한 진리를 믿지 않고는, 그리고 성령에 의해 그 믿음이 고백되어지지 않고서는... 우리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성경 에서 말하는 진리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르침은 중요하기에 가르침의 행위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바른 가르침이어야 하며,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또한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 제가 의도했던 바입니다. 영상 안에서 충분히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주신 의견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오해가 되는 부분에 대해 조금 더 보충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남겨봅니다.
@@holyfun 정성스러운 답글 정말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사람은 단순히 가르침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은, 신앙의 본질을 생각할 때 너무도 분명한 진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마치 호세아나 예레미야의 시대처럼 심각한 위기 속에 있는 듯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처럼, 참된 믿음이 점점 메말라가는 현상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를 살펴보면, 참된가르침과 그에 따른 성화의 과정을 논하기에 앞서, 종교와 신앙에 자체 대한 무관심이 심각할 정도로 확산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기독교인의 비율은 17%(재적)에 불과하고, 63%의 사람들의 종교에 관심조차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완벽한 가르침"을 논하기 이전에, 믿음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접촉점조차 찾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푸라기 하나라도 건네야 하는 상황처럼, 재난 현장에서는 곰팡이핀 빵쪼가리도 생명유지의 소중한 수단이 되는 것처럼, 지금은 뭘가 부족한, 미흡한 메시지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다큐멘터리 영화 교회오빠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비기독교인 김호경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순전한 믿음의 중요성을 환기시켰습니다. 이처럼, 너진똑이나 김호경 감독같은 부족한 신자 혹은 비신앙인이 만든 부족한 가르침이나 콘텐츠라도 누군가의 신앙 여정을 시작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눅 9:49-50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눈에는 결함이 있어 보이는 사역도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는 귀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먼저 부름받은 우리에게는 '부족한 자들에 의한 부족한 진리'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현실을, 그저 사회적현상의 하나가 아닌, 성령께서 주시는 '돌 들의 외침', '발람의 나귀'의 경고로 인식하고, 신앙인으로서 더 큰 책임을 일깨워 주는 일종의 주님의 견책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너진똑님이 하시는 일이 소용 없는 일이라면 목사님들이 하시는 일도 의미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요?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찬양 인도도 하고, 기도도 그럴싸하게 하기에 나는 제대로 믿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는 제가 바리새인은 아닐까, 너진똑님 영상을 보고 생각했어요. 영상에서 사랑이 강조됐기 때문에, 비참한 나에게도 사랑할 책임을 맡겨주셨다는 데 감사함을 다시 느꼈고요.
어떤 의도로 말씀하신 줄은 알지만 너그럽게 볼 부분은 너그럽게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양한 관점을 나눠주셔서 건강하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참 어려운 분들이네!!!
예수는 만들어진 신이 맞는데,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기에 기독교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이다. 사복음서는 인간 예수가 점진적으로 신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며 제자들의 서신들에 오면 더 노골화된다는 사실은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의 문해력만 가지고 있어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까놓고 말해 예수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하나님이 될 수도 없는 존재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도대체 누구를 보고 내지른 절규인가?
중요한 것은 예수가 진짜 신이냐 만들어진 신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고, 도리어 세상을 타락시키는 일에 앞장서는 작태가 기독교라는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예수에 대한 적대감을 넘어 기독교 신에 대한 혐오감까지 갖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 사이에서 개신교는 악의 축, 즉 적페세력의 숙주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지 않나. 아마 한국이 망한다면 개신교가 그 주범일 것이라 본다.
제발 자중자애하기 바란다. 당신들은 구제불능이다.
예수님의 공생회와 기적은 단지 선행을 한기위한 것이 아닌걸 모르시나요 ?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기위한 구약의 예언의 성취를 위한 행위였다고 봐야죠..
선행이 그리 중요하면 왜 사역을 하나요 ? 사회운동. 봉사하지.. 이웃사랑이 짜낸다고 나오는건가요 ?
억지로 짜내서 하는 선행이 바리세인 아닐까요 ?
@@Tangri_1234
그런 말은,
선행을 억지로라도 짜내서 한 적 없는 그대 같은 냉혈한 인간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예화를
곰곰히 생각해 봐라.
어쩜 그렇게도 약아빠졌나?
예수 믿는 사람 맞아 그대?
님같은 분이 한국교인의 샘플
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사회
에 버림받습니다
하나님사랑은 교회사랑이 아
닌 이웃사랑으로 증명됩니다
그러나 많은 이단들과 거짓목
사를은 하나님사랑을 교회올
인 하는걸로 인식합니다
이러니 한국교회는 예수와다
른 종교같습니다
십자가사랑체험하면 자연스
레 이웃사랑됩니다
그걸 경험안하고 사는 님의
사례가 개독교라 욕 듣는 한국교회성도 표본입니다
@@촌놈-p1b 본인은 어떤 선행을 하시는지 ? 가족. 형제들과 화목하게 지내시는지 ?
@@Tangri_1234
당연히 잘하고 있다.
난 유교인이고 대학에서도 유교를 전공한, 유교로 잔뼈가 굴은 골수 유교인이다.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잘하는 것이 유교 가르침의 근본이다. 이 원칙을 우습게 아는 자를 공자는 소인이라고 했고 맹자는 사이비라고 했다.
예수도 똑 같은 가르침을 남겼다.
주 하느님을 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이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그것은 개무시하고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 교리는 예수의 복음 정신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고
이단보다 더 흉악한 교리다.
너진똑이라는분 썸네일에 예수님을 진짜 만들어진 신 이라는 것 자체가 기독교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고 말할려는 의도 아닐까 싶어서 그분 이야기룰 가지고 목사님 3분이 이런 귀한시간을 허비하는것 아닌가 싶네요^^
하물며 너진똑님이 부정적으로 말하려는 의도가 있다하면, 드것에 대한 해답을 내는 과정이 필요한거죠
님같이 무조건 아니라고 피하면, 결국 도태되고 평신도들은 다 떠납니다
니들이 광화문에서 소수약자를 혐호하고..저주하고 헌금걷던 그놈들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