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멸망의 서곡, 정세운 암살과 공민왕의 몰락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152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13

    본문 내용 중 1분 45초에 "공민왕 11년인 1632년"은 연도 표기 오류입니다. "1362년"이 맞습니다.
    실수가 있어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 @홍연경-y6g
    @홍연경-y6g Год назад +4

    공민왕에 그 끝이 난행이 아니였어도 암살인게 당연한것이 왕권강화 때문이긴 해도 신하들을 도구로 보고 이용했다가 숙청하고,또 누굴 띄워졌다가 숙청하는 패턴이 너무 일상적이고 다반사였음.
    재위 초 조일신부터 시작해서 말기때 신돈까지 항상 그 패턴이 비슷했음.
    A라는 인물을 파격승진 시킴-그가 공을 세우면 B라는 인물에게 "너가 저자 보다 못한것이 뭐가 있냐고 부추김-B가 A를 모살함-다시 C라는 다른 인물을 부추김.이 패턴에 무한반복이 공민왕에 인사정책이었음.
    흥왕사에 난도 김용이 뻘짓한거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본인은 홍건적때문에 개경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이것을 수복한 정세운이하 3원수에게 권력이 집중될까 두려운 공민왕이 김용을 추겨서 셋을 죽인후 이젠 쓸모없어진 김용은 최영을 써서 제거한것임을 느낄수있음.
    사람을 쓰는 법도가 매번 이러하니 공민왕에 업적이랑은 관련없이 신하들이 왕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고 더 나아가 고려왕실에 대한 충성심까지 희박해짐.
    아마 공민왕이 자제위들 손에 죽지않았다면(이것도 어찌보면 자업자득임.홍륜등도 언젠간 우리도 용도폐기된다.정도는 알고있었을테니 먼저 선수치자.라는 식으로 일을 벌인것이니)다음 차례는 묵호의 난을 진압하고 온 최영을 임견미나 이성계를 써서 제거하는것이었을거임.
    이와같은 식으로 밑에 사람을 다룬 지도자가 뜻밖에도 가까운 시대에 있었는데 바로 박정희임.이 사람도 김형욱 제외 누굴 죽인건 아니지만 그 인사기용이 공민왕과 상당히 유사했음.누구 띄워졌다,짤랐다 반복하는것.
    결국 그도 공민왕과 같은 최후를 맞았으니 다 사필귀정임.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1

      정세운 숙청이 공민왕의 작품이고, 김용은 그에 있어 장기말에 불과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와 유사한 내용을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 설도 꽤 신빙성 있게 제기되고 있으며, 특히 공민왕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품는 분들께서 그 타당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 @gangnamseocho9555
      @gangnamseocho9555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일신 김용 최만생 홍륜 인정합니다........ 김재규나 김형욱이는 능력에 비해 온갖 권력에 부귀영화를 누렸어요..박정희 덕분에 출세한 인물이지요...더군다나 김재규는 5.16에도 참여안했습니다

  • @임선홍-i5y
    @임선홍-i5y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정말 노국공주와 정세운 사망하지 않았다면 공민왕이 폐인이 되지 않았을거고 고렴멸망을 조금이나마 더 늦출 수 있었을듯 합니다.

  • @dlee3497
    @dlee3497 Год назад +18

    아.. 그래서 우왕이 그렇게도 가려고하던 최영을 붙잡고 있었군요...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5

      김용 때문에 공민왕이나 우왕은 그 어느 최측근도 믿지 못하고 오로지 최영에게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능한 장수가 다 죽어 버렸으니 최영이 계속 도성에만 머물 수도 없고, 왕은 불안해 하고 이게 고려 말 왕들의 큰 딜레마였습니다.
      이래저래 김용은 정말 나쁜 놈입니다.

    • @gangnamseocho9555
      @gangnamseocho9555 9 месяцев назад

      @@Hmentary 공민왕이 꾸민 계략일것일지도 몰라요....원나라 시절부터 충신이던 김용이 ~~그랬을리가?~~~공민왕이 정세운을 죽이라고 명령했을 가능성이 높음....의심 배신의 아이콘 공민왕..토사구팽 시키는 공민왕.....씨가 없는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를 임신시킨다?....후계자는 왕권강화인데 우왕을 신돈이 죽고나서 부른다?.....홍륜을 시켜서 또 임신시킨다?~~홍륜은 조부도 토사구팽 시키고 자신마저 토사구팽 시키려는 공민왕을 ..원한에 사로잡혀 수백차례 난자하고....

    • @BJHan-dr6ef
      @BJHan-dr6ef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러게요. 저는 최영 장군이 분리불안 장애의 군주를 모신 비운의 장군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역사적 사건이 있었네요

  • @루만성호
    @루만성호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궁예는 오히려 장수들을 신임했는데 그 신임한 장수들중 하나가 공민왕의 조상인 왕건인데 공민왕은 이걸 알기는 알까

  • @커신왕
    @커신왕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공민왕이 의지하고 키워준 측근들 정세운 뿐만 아니라 다 이렇게 죽었죠ㅋㅋㅋ 한 두명이면 모를까 전부 이 엔딩이면 의심은 안 할 수가ㅋㅋㅋ 그나마 정세운은 억울하게 죽었다고 사서에 쓰여있으니 명예회복이라도 된 케이스...홍륜도 그동안 봐온 것이 있으니까 공민왕 담근 거임^^;; 공민왕 손에 담궈졌으면 또 사서에 '홍륭이 역모를 벌여 공민왕이 어쩔 수 없이 죽였다'라고 기록될 가능성 언제든지 있음ㅋㅋㅋ 조선 입장에서 이성계 기용해준 군주라 차마 토사구팽 담금러였다고 말은 못하고 전부 역모라쓰고 '다만 신하를 쓰고 필요없으면 죽임에...'이렇게 힌트 줌...아니? 실록에 보면 걍 역모 당한 피해자인데요? ㅋㅋㅋ 고려의 마지막 희망이었고 그럴만한 역량과 결단력도 있었다고 보지만 거대한 시대의 벽과 특유의 섬세한 예술가 기질이 그걸 감당 못해 되려 고려의 종지부를 찍은 군주였다고 봅니다...

  • @공정의-o3i
    @공정의-o3i Год назад +14

    진짜일까? 왕명 위조...너무 황당해서..황명의 위조는 구대 멸족..찾아보니 정말이네요...
    그런자를 계속 용서한 공민왕도 기이하다...
    정세운을 총병관 김용을 총병관에 세운것은 그들을 믿었다는 것인데...안타깝다..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3

      심지어 공민왕은 김용을 죽이고 난 이후 나중에 "김용이 그립다."라는 말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김용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했던 것 같고, 그런 신뢰를 받으면서도 공민왕을 배신하려고 했던 김용이 정말 나쁜 인간 같습니다.

  • @드키무티
    @드키무티 Год назад +1

    무능하고 질투 많은 자가 칼을 쥐면 별 ㅂㅅ같은 짓을 저지르는구나! 뒤가 구린 짓을 하니 구린내가 나고, 그 구린내를 구린내로 덮으려 하다가 결국 더 큰 구린내를 풍긴 꼴.
    그런데 김용의 행위를 보면 원래 질투가 심하고 탐욕스러웠던 인물 같습니다. 아무리 질투나도 그렇게까지 졸렬한 짓을 하는 경우가 드문데 그런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면 원래 정세운한테 자격지심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 @ykl4175
    @ykl4175 Год назад +6

    사람들이 왕으로만 아는데... 이성계 정말 무서운 장수였음... 여진족(?) 출신이라 기본적으로 평지에서 회전 중심으로 싸웠지만... 개경성에 제일 먼저 오르고... 요녀산성, 요동성 정벌할 정도로 공성전에도 능했음... 가별초 1,500-2,000기로 북원의 군벌 나하추의 10만 대군... 서북면의 강자 여진족 호바투의 기병 3만을 막을 정도로 뛰어 났음... 보통 적군의 30%만 죽여도 대승이라고ㅠ하는데... 황산대첩에서는 부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형적 분리했지만... 황산에 올라서 아지발도의 왜군 1만을 도륙해서 도주한 자가 수 백명이라고 할 정도로 대학살을 했음... 단순히 물리치기만 하면 남은 왜군이 2-300씩 삼남지방으로 퍼져 노략질 할 걸 우려해서 양쪽으로 포위하고 쓸어 버렸음... 아무리 태조 버프 받았다지만... 수 십년 동안 150전 엄게 싸워서 150전 전승한 불세출의 명장임... 뭐 말년에 이방원한테 털려서 2패 하긴 했지만...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4

      그래서 이성계를 한국 역사상 최강의 무인으로 꼽는 분도 계시지요. 괜히 상승장군이라는 위명이 명나라까지 널리 퍼진 건 아닐 겁니다.
      일신의 무력, 부대 통솔력, 전장의 흐름을 바꾸는 지략 등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뛰어난 무인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samarobot
      @samarobot Год назад +1

      이성계는 여진족 출신이 아닙니다.

    • @Werner4voss
      @Werner4voss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성계 여진인 아님

    • @Sancho25
      @Sancho25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성계는 전주이씨이며 이안사때 전주에서 함경도로

    • @kiikiy
      @kiiki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성계는 일본인

  • @무허공-z7n
    @무허공-z7n Год назад +19

    정세운, 김용, 공민왕.
    정세운이 살아있었다면 이성계는 설치지 못했을 것임.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8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정세운이 건재했다면 공민왕의 왕권도 탄탄했을 것이고, 고려 3원수가 건재했다면 이성계가 그렇게 초고속 승진할 수 없었을 겁니다.
      나아가 요동 정벌 시에도 이성계가 우군도통사 정도 고위직이 되지 않았을 테고, 위화도 회군의 기회도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didiq
    @didiq Год назад +13

    고려 후기, 왜구 침략 등을 보면, 지휘관 부족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성계 최영 제외하고는, 대규모 왜구를 처리할 장수 부족... 꼭 위화도 회군이 아니더라도, 고려는 망했을 것입니다.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9

      맞습니다. 말기의 고려는 심각한 장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군사력도 상당히 약화되었기 때문에 사실 위화도 회군이 아니어도 왕조 말기 증상을 극복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세운 숙청이 아니었다면 다른 인물에 의한 다른 방식의 왕조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성계는 역사의 행운을 받은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 @강우진-m7g
    @강우진-m7g Год назад +15

    이래서 고위 장수들이 정치감각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거다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8

      적극 동의합니다. 군인이 정치에 너무 관심을 두어도 안 되지만, 굴러가는 상황을 보면서 이후 전개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정치 감각은 갖추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 @마스터마구니-e7n
      @마스터마구니-e7n Год назад +3

      하지만 나라가 멸망 직전이라면 그 어느정도의 정치감각 만으로도 어디로 줄을 갈아타야하는지가 보이는데 그럼 어떤 미친 인간이 나라와 같이 죽기를 선택하겠음 ㅋㅋㅋㅋㅋ 남은 군인 대다수는 망할지 몰라서인 경우가 대부분임

    • @LML-ggg
      @LML-ggg Год назад +1

      맞다고 생각함 물론 줄타기해서 배신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지만 우리나라 장수 중에서 정치감각을 지닌 장수로는 대표적으로 김유신이 있음 김춘추와 처남매부 관계를 만들고 왕으로 만들어냄 만약 김춘추와 관계를 공고히 하지 않았다면 가야계인 김유신은 군권이 강해질수록 숙청위험이 있었음 그리고 신라는 나당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키기 전까지 계속 멸망직전까지 간거나 다름없었음 즉 정치랑 군대 둘 다 밸런스 있게 잘 다룬 인물이 김유신임 즉 장수는 충의도 중요하지만 정치감각도 있어야 되는게 맞음

    • @새로운도약-m5p
      @새로운도약-m5p Год назад

      혹시 실례지만 다 지나간 역사해석 말고 본인은 현재 시대나 정치감각이 있긴하신지... 직업이뭐에요?ㄷㄷ

  • @user-kdg3hsjab8n
    @user-kdg3hsjab8n Год назад +4

    방심하면 정세운 적극 대응하면 이성계가 되는 것이죠 위화도회군 자체도 결국 신뢰받지 못할 행동을 반복한 고려왕권에 대한 업보랄까... 그 당시 우왕도 최영이 없으면 언제 누구한테 암살당할까 불안해하던 상태 위화도회군에 출정한 모든 고려의 장수들이 반기를 들고 이미 고려왕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을 쳤죠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맞습니다. 이미 고려는 왕조 말기 증상으로 인해 쇠약해져 있었고, 고려 왕의 권위 및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으니까요. 우리 역사에 있어 정말 매력적이었던 국가인 고려가 그렇게 쓸쓸하게 몰락해 가는 과정이 아쉽습니다.

    • @노잼-x5x
      @노잼-x5x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려왕조는 친중 유교 노비 사상의 오랑캐 왕의 신하들이 날조한 고려사인데 ㅉㅉ

  • @firstsparring
    @firstsparring Год назад

    와 역사라는게 뭔가........... 치졸하다면 치졸하네요... 별것 아닌것 같은걸로 나라 자체가 망가져버린다니...

  • @OOS_0132
    @OOS_0132 Год назад +14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고려말에는 이성계 최영말고는 장군이 그렇게 없었나? 왜 이성계에게 그렇게까지 의존할 수 밖에 없었나 싶었는데..이런 배경이 있었군요..하지만 위의 다른 분이 말씀하셨듯..정세운이 살아있었다면 이성계의 조선이 열리지는 못했어도 다른 사람이 다른 왕조를 세웠겠지요..아마도..정씨가 세운 계룡산 도읍?ㅎㅎ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5

      말씀하신 대로 최영과 이성계가 남과 북을 오가며 바쁘게 전장에 투입되었던 이유는 믿을 만한 지휘관이 사그리 죽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안우, 이방실, 김득배 이들 고려 3원수는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했을 때의 기록을 보면 결코 무능하지 않았고 나름 괜찮은 장수들인 데다가 당시 서열도 최영이나 이성계에 비해 더 높았음을 고려할 때 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최영과 이성계가 그렇게까지 혹사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이후 우왕 대의 요동 정벌에서도 또 다른 역사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는데 그게 아쉽습니다.

    • @dongjoonglee3432
      @dongjoonglee3432 Год назад

      수나라를 물리친 울지문덕이 승리후 살해되고 곧바로 고구려가 멸망되는것과 비슷하네요

  • @니가날알어
    @니가날알어 Год назад +2

    드라마 신돈 보면서 정세운 안쓰럽고 김용은 너무 간신스러워서 짜증나긴했지..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저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가 이번 영상을 준비하면서 보게 되었는데 역사와 조금 다르게 묘사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김용의 간신스러움을 드러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김용 등장 때마다 짜증을 억누르기 힘들었습니다.

  • @jsm9252
    @jsm925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최영이 순수군인에 가까웠다면 이성계는 정치군인에 가까운 인물이었음

  • @도날드죄맹
    @도날드죄맹 Год назад +3

    참 재미있네요~~
    김용 이라는 악인이
    이성계가 왕이 될 기회를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주고
    처형당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네요,
    역사에는 반드시 악인의 등장이 필요한
    이유,ㅋㅋㅋ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1

      김용이 정말 나쁜 놈이긴 합니다만 그로 인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고, 그 덕에 우리는 한글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런 부분에서는 고맙기도 합니다만, 결과를 떠나서 상황 자체만 놓고 보자면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 놈이죠.

  • @권현진-h8z
    @권현진-h8z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성계는 왕보단 장군으로 기억돼었어면!

  • @S.J.523
    @S.J.523 2 месяца назад

    와.. 진짜 나라가 망하려니 별게 다 나오네

  • @h.s.k9723
    @h.s.k9723 Год назад +1

    어찌되었건 이유중 하나는 될수있었겠지만 고려 멸망은 시간문제였음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동의합니다. 당시 고려는 왕조 말기 증상이 너무 심했고, 다만 누가 새 왕조의 주인공이 되느냐가 관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 @한스-f9e
    @한스-f9e Год назад +2

    공민왕은 정치를 잘하던 충정왕을 몰아내고 왕이 된후 바로 충정왕을 죽입니다.
    고려는 공민왕의 등극부터가 잘못된 선택이었던것 같습니다.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3

      충정왕과 충목왕은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외척 및 중신들에게 지나치게 휘둘렸기 때문에 정치를 잘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공민왕은 무력해져 가던 고려 말기에 그나마 자주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왕이며, 그가 고려 말 역사에 남긴 의미는 꽤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량 면에서는 굉장히 뛰어난 군주는 아니었던 것 같고, 공민왕 말년에 보인 병크들을 생각하면 이런저런 어려움을 제대로 견디지 못할 정도로 멘탈이 약했던 인물 같습니다.

  • @_Expected_Return
    @_Expected_Return Год назад +2

    몰랐던 사실 이었네요
    잘 봤습니다
    당시엔 최영 이성계가 짬이 안되었을 때 군요 ㅋ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사실 최영은 어느 정도 짬이 있었습니다만, 고려 3원수 바로 아랫급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행이었던 것이 만약 최영도 김용의 농간 대상이 되어 정세운 숙청에 가담하게 되었다면 일찌감치 역사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최영은 그에서 비켜갈 수 있었기에 이후 활약이 더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영상 잘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 @_Expected_Return
      @_Expected_Return Год назад

      @@Hmentary 답변 감사합니다 ^^
      사람들이 잘 모를 듯한 역사 내용을 다뤼주시면 차별화가 될것 같아요
      수고하세요 ^^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좋은 조언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여러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소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although2987
    @although2987 Год назад

    김득배 님이 제 조상님인데 정말 속상합니다... 정몽주가 그 제자이기도 하다고 알고있습니다 고려말의 멸망의 흐름은 김용이 거의 다 해먹었네요... 뭐하는 놈인가 ㅜㅜ

    • @루만성호
      @루만성호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사실 김용은 아지태같은 인간일뿐이고 공민왕이 진짜 멸망의 원흉이라고 보면 될듯하네요. 궁예보다 더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충혜왕에 근접하던 폭군이구요.

  • @mjkim9193
    @mjkim9193 Год назад +2

    이땅의 조상님들께선 공이높은 장수는 필히 죽게 맨들어왔다.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중국의 역사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았으니 꼭 우리 선조들만 그랬던 건 아닌 듯합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유능한 무장이 견제 당하는 경우는 참 많았습니다.

    • @dongjoonglee3432
      @dongjoonglee3432 Год назад

      프랑스도 마찬가지, 잔다르크 나라구 허니 머녀라고 죽이고,
      그리스와 로마도 그럤고

  • @블랙맘바-p9s
    @블랙맘바-p9s Год назад

    제 개인적인 생각은 좀 다르지만 고려 지휘부가 있었다 한들 신진사대부 정도전이 있기에 고려 망국은 필연이였다 생각듭니다

  • @수분-g3g
    @수분-g3g Год назад

    암살은 몰래 죽였을 때나 쓰이는 말인데 이 경우가 어딜 봐서 암살이에요?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안우와 이방실, 김득배는 국왕의 명령을 따른다는 이유로 정세운을 죽이긴 했습니다만, 몰래 죽였습니다. 정세운 살해 후 그게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했고, 공민왕에게 보고하지도 않았습니다.
      즉 그들도 정세운 살해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감을 잡고 있었기에 죽이긴 하되 외부에 알리지 않고 몰래 죽이는 걸 택했습니다. 다만 다른 고려 장수가 공민왕에게 이를 보고함으로써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 @드키무티
      @드키무티 Год назад

      왕 몰래 왕명을 사칭한 밀지를 보내 정세운을 죽이고, 이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서 사주받은 장수들을 죽이면서 자신이 마치 억울하게 죽은 장수의 복수를 한 것처럼 왕을 기만했으니 암살이라고 한 거죠. 왕 몰래 죽였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탄로날까봐 자신이 사주한 장수들까지 몰살한 거고요.

  • @1one하나
    @1one하나 Год назад +2

    근데 정세운이 진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3원수(김득배, 이방실, 안우)들이 캐리할 동안 정세운은 버스타고 있었다고 하던데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2

      정세운이 현장에 머물지 않고 후방에 있는 지휘소에 거주하면서 전투 지시를 내리는 것 때문에 3원수가 불만이 있었고, 특히 안우의 불만이 강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김용이 가장 먼저 안우를 충동질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총사령관이 후방 지휘부에 머무는 건 당연한 것이고, 또 정세운은 전투 현장을 직접 뛰며 야전 지휘를 한 경험도 있기 때문에 겁쟁이라서 후방에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3원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가장 치열한 최전선에서 세운 공을 총병관이라는 이유로 정세운이 거의 독차지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품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 @user-kdg3hsjab8n
      @user-kdg3hsjab8n Год назад +3

      후방에서 지휘해서 그렇지 수도가 털렸을때 병력을 모으고 집결시키고 작전을 지휘한건 정세운임 리더십없이는 불가능한 일

    • @1one하나
      @1one하나 Год назад

      ​​@@Hmentary공을 독차지한 게 3원수들한테 불만이었겠네요
      공민왕부터 가장 믿은 게 정세운이었을 테니 ㅋㅋ
      김용을 어릿광대로 쓰고 친위쿠데타를 벌인 공민왕이었겠지만 김용이 정세운을 쳤으니 공민왕 멘탈이 아주 잘게 쪼개졌겠고요 ㅋㅋㅋ
      공민왕도 최영보다도 정세운을 더 가까이 두려고 했는데 참...
      공민왕이 성군은 아니었겠지만 공민왕이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이유가 3원수만을 노린 건지... 정세운이 3원수랑 붙어도 할만 했다고 여긴 건지... 아님 김용이 그렇게 막 나갈 줄은 몰랐던 건지...
      영상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최악의 수가 되었다고 생각되네요 공민왕이 오래오래 살았어도 과연 고려를 번영시킬 수는 없었겠지만요
      이런 면을 보면 공민왕은 고려를 위했다 이런 모습보다도 떨어진 왕권 강화가 가장 우선시된 목표였던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 @1one하나
      @1one하나 Год назад

      ​@@user-kdg3hsjab8n리더쉽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만 뭐랄까요 3원수들과의 갈등이 생긴 걸보면 다 아우르는 성격은 못 됐나 싶네요

  • @이동욱-z4n
    @이동욱-z4n Год назад

    와 고려때 군사력 막강했나보네요 개경까지 밀리는 상황에서 아무리 급조해서 긁어 모았다지만 20만명이나 모았다니!!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고려는 역사적으로 국력 대비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였습니다. 통주전투에서는 30만 명을, 귀주대첩에서는 20만 명을 동원하기도 하는 등 방어전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병력을 동원했었고, 여진정벌 당시에는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17만 8천 명의 병력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에 올라올 조선의 군사력이 약했던 이유를 다루는 영상에서 왜 조선이 고려에 비해 군사력이 약했는지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와 같이 고려의 군사력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포함됩니다. 모쪼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jini5985
    @jini5985 Год назад

    현재의 김용은 ??

  • @남예슬-y6r
    @남예슬-y6r Год назад +2

    그랬으면 우리는 한글이 아닌 한문을 배우고 있겠지.......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2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인데 말씀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네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한글이라는 최고의 유산을 얻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 @전투불패
    @전투불패 Год назад +2

    고등학교 역사시간에...국사 선생님이 장군 될 생각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뛰어난 장군일 수록 가장 먼저 제거 당한다고...
    그러면서 여러장군들 이야기 해 주던데...잘 아는 이순신부터 시작해서, 이방실, 정세운도 언급하고..
    동로마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
    다들, 말년이 좋지 않았다고...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역사적으로 뛰어난 무장들은 대개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 주인이 되거나 아니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거나 둘 중 하나의 결말을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물러나 평안하게 노후를 지냈던 명장은 그리 많지 않았지요.

    • @firstsparring
      @firstsparring Год назад

      강감찬은 예외케이스인가요 ㅋㅋㅋㅋ 장군이라기보단 문신이었으니 그런감

  • @황성민-h5v
    @황성민-h5v Год наза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거예요. 김용이 때문에...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1

      그럴 것 같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왜 죽는 지에 대해서는 정세운 장군은 몰랐을 것 같습니다.

  • @ykl4175
    @ykl4175 Год назад

    유능한 장수 죽고 나라 망한게 나비효과인가? 직접적인 원인이지...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사실 정세운의 죽음이 고려 멸망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울 듯합니다. 직접 원인이려면 정세운이 죽어서 고려가 망했다는 논리가 성립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고려 멸망은 그 외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습니다.
      다만 이성계의 조선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야기한 원인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나비 효과로 표현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 @김진성-p5s
    @김진성-p5s Год назад +3

    그리고 또한가지 그당시 수도 개경을 수복하기 위하여 20만 대군을 모았는데 고려의 인구 구조상 불가능한 수치임
    10만이면 모를까 세상의 반은 여자죠 ㅋㅋㅋ

    • @안드로이드-g2q
      @안드로이드-g2q Год назад

      남자라면 싸그리 모아서 가능했음!!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1

      고려는 통주전투에서 3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한 적도 있습니다.
      전근대 국가에서 평시에 정상적인 국가 운영을 유지하려면 상비군의 숫자를 전 인구의 5%까지는 확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고려는 비정상적으로 왕조의 군사력 강화 의지가 강했던 국가이고 지방 세력의 자체 군사력 역량도 상당했으므로 국력 대비 과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던 국가였습니다.
      고려 말의 인구는 대략 89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당시 원 간섭기를 거치며 국력 및 국방력이 약화되었음을 고려하더라도 방어전을 위해 모든 예비 전력을 동원한다면 20만 명 징집은 가능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복을 위한 공격전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기껏해야 4~8만 정도가 맥시멈이었을 테고, 실제로 2차 요동정벌에 동원된 병력은 4만5천에서 5만 정도였으니 그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 @dlee3497
      @dlee3497 Год назад +1

      자국내에서 끌어다 쓰면 20만명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대. 고려초의 고려vs백제 마지막전투/ 거란과의 귀주전투 등등 보면. 원정이면은 반발이 심하고 군량이 부족하니 어쩔수 없이 그 수가 많이 줄겠지만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Год назад +1

      1388년 명태조가 15만 대군으로 고려에 진입하다.
      첩보를 접한 우왕이 7만의 병력을 준비하다.
      좌군 조민수와, 우군 이성계의 협공으로
      명태조가 사망. 알려지지 않는다...
      명태조의 넷째아들 주체가 반격을 가하다.
      고려군 중과부적으로 패배하다.
      최영이 개경을 방어하다. 전사하다.
      우왕이 피난길에 오르다. 주체가 추격하다.
      서북면을 지나 산해관까지 밀리다.
      우왕이 산해관을 지나 동북면으로 가다. (옥토에서 멀어지다.)
      주체가 북평에 근거지하다.
      우왕이 북면인 심양에 근거지하다.
      영양왕 동면인 개성으로 내려오다. 근거지하다. (대륙에서 멀어지다.)
      고려는 옥토에 없던걸로, 명태조는 자연사로,
      전쟁은 없었으며, 회군으로 처리되다.......

  • @_Expected_Return
    @_Expected_Return Год назад

    안녕하세요 역사멘터리님
    영상 내용에 대해 질문드리면 공민왕이 김용을 시켜서 일을 벌이고 나중에는 김용도 공민왕이 제거한거다 라는 썰도 있던데 어떻게 보시나요?

  • @김민성-z4t8p
    @김민성-z4t8p Год назад

    저 검색전 애기하는데 정장군 숙청이란 용어가 맞나요? 쿠테타가 혁명이 아니듯 그저 암살 아닌가요?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숙청'이란 본래 "정치적으로 반대파나 정적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닙니다. 김용 입장에서는 정세운이 정적이었고, 그래서 그를 제거했으니 숙청이 되는 셈이지요.
      우리가 보통 숙청이라 하면 최고 권력자에 의한 숙청만 생각하는데, 그건 스탈린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일 뿐 일반적으로 숙청은 정적 제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그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 @태현최-q8x
    @태현최-q8x Год назад +1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말이 맞네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1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노고는 제대로 대접받기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당장 오늘날만 봐도 친일파의 후손들은 잘 먹고 잘 살지만 독립영웅들은 흉상마저 괄시 받고 있지요.

    • @태현최-q8x
      @태현최-q8x Год назад +1

      제 말이 그 말이죠....
      굳이 헌신할 필요도 없고요....@@Hmentary

  • @kangaroojack4277
    @kangaroojack4277 Год назад

    크킹 해보면 유능한 장군은 큰 부담이되지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1

      맞습니다. 날카로운 칼은 내 손에 있을 때 당장 유용하긴 합니다만, 내가 그 칼에 베일 수도 있다는 게 참 부담스럽기 마련이지요.

  • @사백아범
    @사백아범 Год назад

    좋은 역사적 사실을 알려줘 감사합니다.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영상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모쪼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JTW8658
    @JTW8658 Год назад

    정씨는 충신들이 많네요.

  • @모과라이스
    @모과라이스 Год назад

    어차피 저 당시 고려는 너무 썩어서 망하는게 좋았다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당시 고려가 왕조 말기 증상으로 인해 회복의 여지가 없었던 건 사실 같습니다. 다만 정말 매력적인 국가였던 고려의 최후가 저런 식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jesusismylord7364
    @jesusismylord7364 Год назад +1

    고려 영토를 저렇게 표시하다니....
    이제 역사 왜곡은 완전히 굳어졌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듯

  • @권학수-w2n
    @권학수-w2n Год назад

    장수랑 병권이랑 분리시켜 놓으면 되지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3

      장수와 병권을 분리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 조선 시기처럼 너무 분명하게 갈라놓으면 장수가 제대로 된 지휘를 하기 힘들어 전투력이 약화되고, 너무 밀착시켜 버리면 군벌이 형성되면서 중앙 권력이 위태로워집니다. 그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게 정말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 @이은붕-q1e
    @이은붕-q1e Год назад +1

    조선건국 1등공신이네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1

      결과적으로는 조선이라는 국가가 탄생하게 된 1등 공신은 김용이 맞는 것 같습니다.

  • @안드로이드-g2q
    @안드로이드-g2q Год назад +2

    저때 정세운과 안우, 이방실. 김득배만 있었어도!! 1차요동정벌은 성공으로 끝났을듯 !!!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1

      1차 요동정벌은 2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여건이었기 때문에 저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이벤트입니다. 현재 준비 중인 고려의 여진정벌에 대한 영상을 마무리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 기회를 만들어 고려의 요동정벌에 대한 영상도 제작해 보겠습니다.

    • @이창휘-u8s
      @이창휘-u8s Год назад

      대신 요동점유한상태로 중국의 세에 말려서 그대로 저쪽이랑 동화되었을 수도 있음 한글이아니라 중국어를 쓰고요 😂

    • @안드로이드-g2q
      @안드로이드-g2q Год назад

      @@이창휘-u8s 요동점유에 중국인의 세에 밀려 동화?? 푸하하 한족이 대거 요동들어간건 구한말시기때였습니다!! 그리고 요동은 쌀재배가 극한의 난이도여서 두만강의 노주쪽을 제외하곤 쌀재배는 전무 했고, 자급자족 생산이 어려운 동네라 거란과 여진족이 힘좀세졌다 싶으면 중국정벌에 목을 멜 이유가 납득이 갈정도 입니다!! 그만큼 동북평야와 삼남평야엔 개척이 너무 빡셌어요!! 그리고 저 1차 요동정벌때는 요동에 고려인이 대거 거주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또한 저시기 여진족은 200만이 채 안됬습니다!! 청나라가 만들어 질때쯤에나 여진족 인구가 200만 겨우 넘겼어요!!

    • @이창휘-u8s
      @이창휘-u8s Год назад

      @@안드로이드-g2q 역사학교수님 말듣고 그냥 꺼내본얘기인데요 전문가세요?? 교수님앞에서 푸하하비웃으시겠네욬 지나간 역사를 가정하는것은 변수가많아서 어떻게 될지모르신다며 다른쪽으로도 생각을 열어두라고 하신말씀이었는데 제가 잘못적어서 의미가 전달이안된듯 ㅎㅎ

  • @부산시민-p2s
    @부산시민-p2s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연남생. 김용. 윤덕영 .......그리고 윤석렬

    • @루만성호
      @루만성호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김용보다 공민왕 탓을 하는게 좋다고 보는데? 궁예도 그런 식으로 치면 아지태로 꼬리자르고 돌려막기로 가능한데

  • @코스모스르네상스
    @코스모스르네상스 Год наза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 @sabalzzanggu
    @sabalzzanggu Год назад

    토사구팽 양두구육

  • @이기술사
    @이기술사 Год назад

    1632년?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1

      오류가 있어 죄송합니다. 1362년입니다.

  •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Год назад

    정세운 장군 역을 저 탤런트 분이 맡았었다니... 평소에 악역을 주로 맡으셨잖아요~ ㅋ 그래도 연기파 배우시니 ~

    • @ok12911
      @ok12911 Год назад +2

      불멸의 이순신 송희립

    • @메시-d9b
      @메시-d9b Год назад +1

      천추태후 야율적로

  • @마술피리-b2p
    @마술피리-b2p Год назад

    김용 전두환같은 놈이네

    • @태풍의눈-i8n
      @태풍의눈-i8n Год назад

      전두환에 대해서 조금 더 살피셔하 할것 같습니다.
      김용과 전두환 비교하면 안됩니다.
      전두환이1212 군사 반란 했다고 하는것은 대통령 제가없이 참모총장 정승화를 불법체포 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김영삼이가 노태우로부터 받은 비자금 3천억이 측근들 폭로 때문에 터지게 생겼으니
      그것을 덮기위해 5공청산 청문회,518특별법 만들면서부터 시작에서
      사건을 부풀려 확대한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정승화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현장에 있었으면서 대통령이 시해된 것을 가장먼저 인지한 사람으로
      현장 장악/조치, 국방장관에게 현장보고 헸어야 하는데 아무 조치도 안하고
      자신의 차량도 아닌 김재규가 직접 운전한 차에 동승하여
      육본 방카에 도착 즉시 계엄령을 선포한 김재규와 공범으로 예상되었던 사람으로서 반드시 체포되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전두환은 합수부장으로 합수부장은 대통령 승인없이 직속 상관도 체포,구금이 가능합니다.
      단지 대통령 체면 세우기 위해 형식상 정승화 참모총장 체포 제가 받으러 간 것을 불법이라 매도한 것은
      당시 정치 사항이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518때 전두환을 살인마로 방송에서 떠들어 대고 매도 하지만
      전두환은 당시 합수부장 2스타로서 병력 지휘권은 없고 단지 수사/정보수집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육군 참모총장인 이희성 계엄사령관(4스타)이 광주사태를 지휘하였습니다.
      당시 전두환은 수사 상황을 참모총장,장관,대통령에게 보고 했어야 하는 위치이며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전두환의 선배이자 직속상관으로 마음대로 병력지휘할 입장이 안되었었습니다.
      조금만 더 살펴보세요
      제가 안타깝다고 생각 하는것은 방송에서 제 5공화국 방송하면서 내용을 각생하다보니
      실제와 조금 다른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전두환을 살인마로 몰아간것입니다.

  • @김석봉-l4q
    @김석봉-l4q Год назад

    댓글 수준
    ㅋㅋ

  • @그릉가-y1x
    @그릉가-y1x Год назад

    김용이 공민왕에게 극형당할때 자기가 한짓을 다 불었나요?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김용이 처형될 때 자백한 게 아니라 그 이전에 흥왕사의 변에 참가했던 김용의 부하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김용의 죄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 @ronimont6740
    @ronimont6740 Год назад

    전대머리도...

  • @학윤이-w9m
    @학윤이-w9m Год назад +1

    정말 과대평가된 공민왕

    • @Hmentary
      @Hmentary  Год назад +2

      공민왕이 여러 모로 과대평가 되었다는 설은 꽤 자주 제기되었습니다. 사실 고려말의 여러 왕 중 그나마 가장 괜찮은 면모를 보였던 건 분명합니다만, 제 생각에도 고려의 운명을 뒤바꿔 고려를 부흥시킬 정도의 군주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 @didiq
      @didiq Год назад

      @@Hmentary 정세운 암살 음모의 배후는 사실 공민왕이란 말도 있던데, 사실인가요?

    • @김은민-t2y
      @김은민-t2y Год назад

      공민왕 자체가 시국이 불안정하니 장군들을 간접적으로 숙청을 했을겁니다 ...나중에 신돈도 이용해먹고 죽인걸보면 모든 권력자들은 쎈 부하가 있길 원하질 않죠

    • @didiq
      @didiq Год назад

      @@김은민-t2y 저도 그리 알고 있습니다. 세도 정치를 낳은 정조의 개혁처럼, 이것을 고치면, 저기서 터지고 하는 식의.... 현실적 한계일 수 있고...

    • @user-kdg3hsjab8n
      @user-kdg3hsjab8n Год назад +1

      공민왕은 본래 기반이 원나라에 있다보니 권문세족으로 뒤얽힌 고려 정치의 복잡한 인맥 구도를 이해하지 못했음 그래서 그때 그때 숙청을 남발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왕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왕권 불안정을 유발시킴 그래서 원나라가 망하자 고려 왕권을 지탱할 세력도 자연스레 사라졌음

  • @암행어사출두여
    @암행어사출두여 Год назад +1

    고려는 나같은 휼륭한 어른이집권햇어야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