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수천의 군사로 유목 제국 최전성기의 황제가 친정한 40만 대군을 막아내고, 1700의 결사대를 꾸려서 거란군 6천 명이 지키는 곽주성을 탈환하여 적의 보급을 차단하고, 보급이 차단된 거란 황제가 후퇴하는 와중에도 한달 간 7번 싸워 7번 모두 이겼음은 물론, 자신의 목숨을 바쳐 끝내 고려인 포로 3만 명을 구해낸 한국 최고의 성웅 양규 장군. 정말 전 세계 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분이심.
영상 잘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역사 인물들을 볼 때마다 양규 장군 관련 대목이 나올 때마다 먹먹해지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역사 인물인지라 영상으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양규 장군 같은 위인들을 기회 닿는 대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양규장군님의 군대가 1700이 아니라 17000이었다면 어땠을지 참 아쉽네요.. 후손들은 남의 나라 삼국지에 관우가 어땠고 장비가 어땠고 의형제 맺은 적도 없는 소설에만 빠지지 말고 우리나라에도 얼마나 훌륭한 장군들이 있었고 그들이 어땠는지 더 많이 관심가졌음 좋겠어요...
식민사관 교육과 일본의 돈을 받고 기생하는 학자놈들 우리나라가 작고 침략만 당하며 볼품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 현대인들이 제일 문제 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보다 지금이 잘먹고 잘살지만 과거 우리 조상들이 대륙을 위협하는 맹수였다면 지금은 반도 끝자락에 몰려 스스로 쥐새끼를 자처하는 한심한 것들 뿐입니다
당시 거란은 궁기병들이 짤짤이로 적의 진형을 약화시키고 중기병들은 돌격 지점을 설정해 군마를 데려가서 올라 탄다음 명령이 떨어지면 질풍노도같이 쇄도하는 전술을 쓴것으로 보입니다. 해서 고려군은 검차를 이용해 통주전투 1회전에서 승리한듯 합니다. 그래서 고려군의 병종은 고구려 벽화나 신라 기록 처럼 기병 창수 부월병 궁병 노병 등등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패잔병을 수습하면서 양규 김숙흥 장군들은 아마도 신속한 이동을 위해 노획한 거란의 말들을 충분히 활용했을 것입니다. 보병 궁병 이었던 자들도 거란에게서 빼앗은 말들을 서너마리씩 데리고 다니면서 거란이나 몽골인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 지치면 바꿔 타는 등으로 기동성을 살리지 않았을까 합니다.
예전부터 항상 양규 장군이 크게 부각되지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2차 여요 전쟁이 고려의 패전이었기에 그렇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규 장군의 활약상은 충분히 존경받아야합니다. 양규 장군이 없었다면 2차 여요 전쟁은 고려의 단순한 패전이 아닌 멸망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곽주성 탈환이 2차 여요 전쟁의 흐름을 바꿨기때문입니다. 내년부터 한국형 중구축함 (KDDX) 사업을 시작하는데 6척의 KDDX중 1척은 반드시 '양규'함으로 명명하고 양규 장군님과 같이 활약하신 '김숙흥' 장군님도 같이 함명으로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개국공신급 업적을 쌓은 양규장군이 역사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 순전히 뇌피셜입니다. 1- 일단 양규의 전투가 업적은 엄청난데,(거란 성종 야율융서가 직접 친정한 전쟁에서 고려 본대가 전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예봉을 꺾음. 동시에 보급로를 차단하여 공세종말점을 찍음.이로써 적이 귀환할 수 있는 정당성을 주어, 고려의 거짓 항복을 가능케 함. 수많은 전쟁장비 수거와 고려 인구 1/100의 포로를 구출) 전투의 횟수와 기간이 길지도 많지도 않습니다. 활약 기간 총 두 달(1010년 11월 16일~ 11년 1월 19일 까지.) 흥화진성 5일, 곽주성 탈환 1일, 퇴각하는 거란군에 대한 반격 10일(이 10일 동안 전투 6번- 거의 미친 전투력. 과로사로 죽었을 수도?) -> 결론, 이 2차거란전의 총 전쟁 선포 일(1010년 10월 8일)로 부터 퇴각 날(1011년 1월 까지 29일)까지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벌어진 일이고, 실제 흥화진전투를 시작으로 종결까지 약 3달 동안의 전투 인데, 양규가 벌린 전투는 총 8번 입니다. 하루에 3번 전투를 한 것 까지 포함 입니다. 1차~2차전의 7년 동안 쭉 전과를 세웠더라면 더욱 빛날 수 도...(물론 1차 전에 활약했을 수도 있겠지만 기록이 없어서 묻혔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역사에는 훌륭한 장수가 많아서... 최영 장군의 경우 87전 87승! 2- 1차의 서희, 3차의 강감찬에 뭍혔습니다. 전과만 보자면 서희는 입으로 서북면을 얻는 쾌거를 이룩했고, 또 5년 동안 서북면에 죽어라 강동6주라는 방어진을 완성하고 과로사로 돌아가셨습니다. 엄청난 업적이죠. 고려 승! 또 3차전의 강감찬은 거의 전멸이라는 전과와 함께 30년 전쟁을 종결 시켰습니다. 반면, 양규가 싸웠던 전투시기인 2차 전은 고려가 패한 전쟁입니다. 현종이 항복문서를 보내 적을 물린 것 입니다. 3- 양규에 대한 기록이 너무 없습니다. 양규는 평안도에 많았던 중화 양씨로 추정할 뿐... 본관도 모르고, 그가 누구의 자식인지, 현재 북한에 후손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 어떻게 형부의 낭중(종 5품 대령급)이 뜬금없이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었는지... 추측하는 바로는 정변세력 강조의 평안도지역 친인척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평안도 쪽에 강씨와 양씨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고, 강조처럼 당시 평안도에서 활약했던 양씨들이 강조처럼 외자라는 점을 근거로 들기도 합니다.(광종 때 양연, 현종 때 양규, 양악, 양춘, 양겸 등) 4- 고려사를 쓴 시기는 조선시대 입니다. 그러니 조선의 이데올로기에 맞는 것만 쏙 뽑아 쓰다보니... 양규에 대한 기록이 많이 없는 듯 합니다. 주로 "정변세력 강조의 후임이었으나, 강조가 포로로 잡히자, 왕과 고려를 위해 싸운다고 했다거나, 포로를 구했다. 승리한 전투를 여러 차례 이끌었다. 후에 개국공신급 대우를 받았고, 아들 양대춘이 벼슬을 얻었다. 고려의 수호신이 되어 00사에 영정이 안치되었다" 정도입니다. 여하튼, 양규장군은 거의 전멸 직전의 고려를 구해낸 공신입니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업적을 쌓았고, 또 고려 인구 1/100을 구해내다가 희생한 명장입니다. 헌데... 그때 양규가 계급이 장군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강조가 양규를 서북면도순검사로 임명할 때 계급을 올렸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강조는 그 리스크에 대한 최악의 결과인 군사반란과 이반 그리고 그런 덕에 군을 지 맘대로 움직이기 위해 서북면도순검사에 낮은 계급의 양규를 썼고, 양규가 있던 흥화진과 고려본대 30만이 있는 통주성의 거리는 20Km도 되지 않습니다. 지 맘대로 부리겠다는 거였겠죠. (물론 여러 이유가 있긴 합니다.) 그러니 서북면 강동6주의 성주들의 계급들이 들쭉날쭉 입니다. 전쟁 한 달 전에 부랴부랴 인사단행을 했고, 또 정변세력인지라 지 꼴리는대로 성에 성주를 꽂아넣었을 수 있기에 벌어진 참사라고 추측해 봅니다. 특히 제가 서북면도순검사 때 양규의 계급이 장군급에 미치지 못한 낭중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700결사대에서 그 근거를 찾습니다. 낭중급은 정 5품으로 군사 1천을 다룹니다. 그 위 장군급이면 5천명 정도를 쓸수 있을 터인데, 흥화진에서 출격할 때 700명이야 별똥대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곽주성 탈환 시 더이상의 군사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후에 김숙흥의 군사 1천명과 합류를 하는데, 김숙흥은 동북면에 있다가 왕명을 받고 서북면으로 지원 나온 세력입니다. 물론 양규가 상관이었겠지만, 양규가 다른 성에서 강제로 취한 군대가 아니라는 것은 그럴만한 권한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아무리 별똥대라지만 그 넓은 지역에서 점조직으로 공격을 했다면 더 효율적이었을테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강제로 군사들을 취할 수 없었을 거라는 판단 입니다. 그렇기에 양규장군이 더욱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규 장군이 왜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싸웠는지 모르지만, 만약 전투에 살아남았거나, 본인이라도 ㅌㅌ해서 살아남았다면, 그 후 고려군을 이끄는 총대장이 강감찬이 아니라 양규가 되었을 확률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끝까지 싸우다가 애전에서 전사하셨죠. 참고로 양규장군의 죽음이 더 애달프고 드라마틱한 것이 전사한 그 애전이라는 곳을 번역하면 '쑥밭'이라는 것 입니다. 어떠이는 쑥대밭이라는 어원이 거란기병의 말밥굽에 양규장군이 쓸려죽었기에 그 애잔함에서 쑥대밭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애전은 북한에 실제 있는 곳 이고, 양규 장군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곳 입니다. 흑흑! 장군~~~~
아마 새로운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이 영상 제작 중에 들었습니다. 양규 장군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건 사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요. 배우 지승헌님의 연기와 해당 드라마를 통해 양규 장군의 진가가 더욱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정복 전쟁이 잦은 나라에서 그 때 당시 서민들은 죽을 맛이었다는 건 생각을 못하시는 듯. 현재를 사는 우리야 정복 군주가 멋져보이긴 할테지만 고대국가 시절 1년 내내 농사져도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서민들 입장에서 군역에 징발 되는건 진짜 괴로운 일이죠. 이순신이나 양규는 그렇다쳐도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 등 고구려 뽕은 영토 넓혔으니 짱 멋진거 아닌가 하는 나이브한 태도가 아닌가 싶네요. 님 논리를 그대로 받자면 태평양전쟁 초기네 일본 제국의 영토를 보자면, 일본 서민들음 죄다 행복해야 함 ㅋㅋ 현실은 각종 부역에 시달리고 전쟁에 필요한 세금 내느라 일본 서민들은 피골이 상접했습니다. 전쟁 총 동원령
@@엘더스크롤 님이 말귀를 못알아들으시는 듯, 조선왕조실록, 고려사절요 같은 원사료나 일독은 해보셨는지요. 인터넷에서 주워 들은거 말구요. 정복 전쟁에 올인 하다가 국운이 기운 사례는 역사에 숱하게 많습니다. 고대나 중세에는 지금처럼 인구기 많지 않았어요. 전쟁을 한다는건 농사 포기하고 하는겁니다. 전후에 이겨도 힘들지만 지면 나라가 휘청거립니다.
고려가 대단한게... 중국 중원과 북방 유목지대가 모두 강자들도 꽉 찼던 시대였다는 것. 우리는 거란족이라 배워서 일개 부족이 침입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거란족의 나라 요는 당시 세계 최강 유목제국이었음. 수/당 못지않은 무력을 가진 요를 세 번이나 막았고 그런 요 보다 수십 배 강한 몽골을 아홉번이나 막아낸 나라가 고려.
그게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제 끝인가 싶을 때마다 나타나는 구국의 영웅들이 있지요. 요즘에도 불모지에 가까운 우리나라의 해당 종목 환경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스포츠 스타들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어려울 때마다 가끔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선물 내려주는구나 싶습니다.
척준경이 소드마스터 등의 표현으로 이슈화된 지 꽤 됐는데, 개인의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런저런 공을 많이 세운 게 사실이지만, 전쟁 자체의 방향을 바꿔 버릴 정도의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요. 양규 장군은 고려 전쟁사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큰 위업을 남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우 수천의 군사로 유목 제국 최전성기의 황제가 친정한 40만 대군을 막아내고, 1700의 결사대를 꾸려서 거란군 6천 명이 지키는 곽주성을 탈환하여 적의 보급을 차단하고, 보급이 차단된 거란 황제가 후퇴하는 와중에도 한달 간 7번 싸워 7번 모두 이겼음은 물론, 자신의 목숨을 바쳐 끝내 고려인 포로 3만 명을 구해낸 한국 최고의 성웅 양규 장군. 정말 전 세계 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분이심.
지금으로 치면 특수전 사령관. 707 유디티 부대를 이끌고 유격전
양규 장군의 1,700 결사대는 지금으로 보면 707 특수임무대대, udt seal 🦭 같은 특수부대죠.
요즘보다 노동력, 국방력 측면에서 인구가 아주아주 중요했고 사람 하나하나가 소중한 자원이었던 고려시대에 3만명의 목숨을 구한건 엄청난 군공이었죠. 진짜 구국의 영웅이라 할만합니다.
양규,척준경장군 주연의 대하사극 드라마가 시급합니다.
강감찬이 있었다.
이 멍충이들아....
보고나서 울었습니다 눈에서 눈물났습니다 감동적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고살아가는것도 저분들덕택입니다 큰절올리고 싶습니다
님과 양규장군에게요 저는양규장군님을 이걸보고 존경하게 됐습니다
저는 나이만 비루하게 먹어가고 있습니다
영상 잘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역사 인물들을 볼 때마다 양규 장군 관련 대목이 나올 때마다 먹먹해지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역사 인물인지라 영상으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양규 장군 같은 위인들을 기회 닿는 대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형님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애국하는 겁니다!!!!
양규 장군... 정말 위대한 장군이시군요. 3천명으로 40만명을 막아내고, 1700명으로 수 많은 게릴라전을 승리하고 그것도 10배다 넘는 적들과 싸워서 이긴 것이니... 만약 양규 장군께서 3천의 병사가 아닌 3만의 병사를 지휘했다면...
몰랐던 역사의 위대한 인물을 알게되었습니다.
양규 장군과 1700여 결사대의 희생을 기억하겠습니다. 1000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 용맹과 희생의 위대함은 변하지 않을겁니다.
어린 시절에 강감찬 전기 읽으면서 양규 장군의 활약을 접하고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양규장군님의 군대가 1700이 아니라 17000이었다면 어땠을지 참 아쉽네요.. 후손들은 남의 나라 삼국지에 관우가 어땠고 장비가 어땠고 의형제 맺은 적도 없는 소설에만 빠지지 말고 우리나라에도 얼마나 훌륭한 장군들이 있었고 그들이 어땠는지 더 많이 관심가졌음 좋겠어요...
그러게요, 제 말이...
병력이 많으면 더 힘들죠 군량은 하늘에서 떨어짐?
식민사관 교육과 일본의 돈을 받고 기생하는 학자놈들 우리나라가 작고 침략만 당하며 볼품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 현대인들이 제일 문제 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보다 지금이 잘먹고 잘살지만 과거 우리 조상들이 대륙을 위협하는 맹수였다면 지금은 반도 끝자락에 몰려 스스로 쥐새끼를 자처하는 한심한 것들 뿐입니다
삼국지 손자병법 이런 쓸데없는 소설에나 집착하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그런 무협소설식의 문화 컨텐츠가 없어서 그런겁니다.
와~ 대단한 양규장군님... 감사합니다..
이순신 장군님도 양규 장군님을 존경했을겁니다.진짜 무인 진짜 상남자 양규
설마요
이런 기록이 있나?
에이그건아닌듯 조선이 고려왕조찬탈해서 앞선왕조 역사 연구제대로안한 조선인데 ...
@@jsgun6170정사인 고려사 는 조선시대에서 만들어진거고 서희의 외교술은 조선시대내내 외교의신으로 추앙받았다
양규 장군 마지막 전투에서 퇴각 안한게
백성들 도망가는 시간 조금이라도 만들려고 퇴각 안했다고 합니다
ㅠㅠ 하, 진짜... 그런 분을 여태 잘 모르고 있었다니 전 역알못 이었습니다...
한민족 혈통의 사람들은 대단하지요. 어느 시대나 뛰어나고 나라를 구하는 장군들도 나오고 그렇게 대단한 민족으로 세계에 인정받는 민족입니다. 자부심을 가집니다. 후세에 역사를 알려야지요
양규 장군 뿐 아니라 전멸 되도록 끝까지 싸운 마지막 전투를 치룬 모든 병사들이 영웅이다
그들은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이름을 알아야 언급되지
@@모래성-i7d 그러니까 안타까운거지
이름도 못남겼어...
강력한 리더가 있으니 병사들도 강해지죠
리더가 있어야 부하가 그렇게 따르지. 일을 할때 우수한 리더가 전체 성공의 7할은 차지함
@@DI-gc4sn 몽골제국 침공 때문에
고려 7대실록도 불타고 초조 대장경도 불탐.
왕의 기록도 다 타버렸는데 뭐가 남아 있겠어요?
양규장군의 700 결사대는 기동력이 좋고 기사(騎射), 기창(騎槍), 마상월도(馬上月刀), 기검(騎劍) 등의 마상무예에 능한 궁기병, 경기병 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여기에 통주전투에서 패한 1,000명의 기병을 수습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당시 거란은 궁기병들이 짤짤이로 적의 진형을 약화시키고 중기병들은 돌격 지점을 설정해 군마를 데려가서 올라 탄다음 명령이 떨어지면 질풍노도같이 쇄도하는 전술을 쓴것으로 보입니다. 해서 고려군은 검차를 이용해 통주전투 1회전에서 승리한듯 합니다. 그래서 고려군의 병종은 고구려 벽화나 신라 기록 처럼 기병 창수 부월병 궁병 노병 등등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패잔병을 수습하면서 양규 김숙흥 장군들은 아마도 신속한 이동을 위해 노획한 거란의 말들을 충분히 활용했을 것입니다. 보병 궁병 이었던 자들도 거란에게서 빼앗은 말들을 서너마리씩 데리고 다니면서 거란이나 몽골인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 지치면 바꿔 타는 등으로 기동성을 살리지 않았을까 합니다.
8기통 워보이들과 함께 폭풍속으로!!!! 발할라!!!!!
수성전에서 기마는 자살행위입니다
고려 corea 자랑스러운 조상님들의 역사가 살아있는 우리의 나라입니다
참나 이 나이까지 이런 분을 모르고 있었다니....역사에 대한 무지를 반성합니다.
예전부터 항상 양규 장군이 크게 부각되지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2차 여요 전쟁이 고려의 패전이었기에 그렇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규 장군의 활약상은 충분히 존경받아야합니다. 양규 장군이 없었다면 2차 여요 전쟁은 고려의 단순한 패전이 아닌 멸망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곽주성 탈환이 2차 여요 전쟁의 흐름을 바꿨기때문입니다. 내년부터 한국형 중구축함 (KDDX) 사업을 시작하는데 6척의 KDDX중 1척은 반드시 '양규'함으로 명명하고 양규 장군님과 같이 활약하신 '김숙흥' 장군님도 같이 함명으로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장군님과 그 결사대들...
얼마나 외로웠을까
눈물이 다 나네요...
목숨받혀 지킨 이나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적이 있으니
이 얼마나 원통하리오...
잊지 않겠습니다.
몰랐던 사실이네여 양규 장군~ 감사합니다
정말목숨을 바쳐. 장렬하게 살다가신 장수였구나..존경합니다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규 장군에 대한 변변한 위인전 하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양규 장군을 알게 되었는데 왜 양규 장군이라는 인물이 한국사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지 이외입니다. 물론 기록이 말씀하신대로 상세히 없지만 이 분의 전투활약은 이순신 장군 다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대단한 전투에 위대한 군인이신것 같습니다.
개국공신급 업적을 쌓은 양규장군이 역사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 순전히 뇌피셜입니다.
1- 일단 양규의 전투가 업적은 엄청난데,(거란 성종 야율융서가 직접 친정한 전쟁에서 고려 본대가 전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예봉을 꺾음. 동시에 보급로를 차단하여 공세종말점을 찍음.이로써 적이 귀환할 수 있는 정당성을 주어, 고려의 거짓 항복을 가능케 함. 수많은 전쟁장비 수거와 고려 인구 1/100의 포로를 구출) 전투의 횟수와 기간이 길지도 많지도 않습니다. 활약 기간 총 두 달(1010년 11월 16일~ 11년 1월 19일 까지.) 흥화진성 5일, 곽주성 탈환 1일, 퇴각하는 거란군에 대한 반격 10일(이 10일 동안 전투 6번- 거의 미친 전투력. 과로사로 죽었을 수도?)
-> 결론, 이 2차거란전의 총 전쟁 선포 일(1010년 10월 8일)로 부터 퇴각 날(1011년 1월 까지 29일)까지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벌어진 일이고, 실제 흥화진전투를 시작으로 종결까지 약 3달 동안의 전투 인데, 양규가 벌린 전투는 총 8번 입니다. 하루에 3번 전투를 한 것 까지 포함 입니다. 1차~2차전의 7년 동안 쭉 전과를 세웠더라면 더욱 빛날 수 도...(물론 1차 전에 활약했을 수도 있겠지만 기록이 없어서 묻혔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역사에는 훌륭한 장수가 많아서... 최영 장군의 경우 87전 87승!
2- 1차의 서희, 3차의 강감찬에 뭍혔습니다. 전과만 보자면 서희는 입으로 서북면을 얻는 쾌거를 이룩했고, 또 5년 동안 서북면에 죽어라 강동6주라는 방어진을 완성하고 과로사로 돌아가셨습니다. 엄청난 업적이죠. 고려 승! 또 3차전의 강감찬은 거의 전멸이라는 전과와 함께 30년 전쟁을 종결 시켰습니다. 반면, 양규가 싸웠던 전투시기인 2차 전은 고려가 패한 전쟁입니다. 현종이 항복문서를 보내 적을 물린 것 입니다.
3- 양규에 대한 기록이 너무 없습니다. 양규는 평안도에 많았던 중화 양씨로 추정할 뿐... 본관도 모르고, 그가 누구의 자식인지, 현재 북한에 후손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 어떻게 형부의 낭중(종 5품 대령급)이 뜬금없이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었는지... 추측하는 바로는 정변세력 강조의 평안도지역 친인척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평안도 쪽에 강씨와 양씨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고, 강조처럼 당시 평안도에서 활약했던 양씨들이 강조처럼 외자라는 점을 근거로 들기도 합니다.(광종 때 양연, 현종 때 양규, 양악, 양춘, 양겸 등)
4- 고려사를 쓴 시기는 조선시대 입니다. 그러니 조선의 이데올로기에 맞는 것만 쏙 뽑아 쓰다보니... 양규에 대한 기록이 많이 없는 듯 합니다. 주로 "정변세력 강조의 후임이었으나, 강조가 포로로 잡히자, 왕과 고려를 위해 싸운다고 했다거나, 포로를 구했다. 승리한 전투를 여러 차례 이끌었다. 후에 개국공신급 대우를 받았고, 아들 양대춘이 벼슬을 얻었다. 고려의 수호신이 되어 00사에 영정이 안치되었다" 정도입니다.
여하튼, 양규장군은 거의 전멸 직전의 고려를 구해낸 공신입니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업적을 쌓았고, 또 고려 인구 1/100을 구해내다가 희생한 명장입니다. 헌데... 그때 양규가 계급이 장군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강조가 양규를 서북면도순검사로 임명할 때 계급을 올렸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강조는 그 리스크에 대한 최악의 결과인 군사반란과 이반 그리고 그런 덕에 군을 지 맘대로 움직이기 위해 서북면도순검사에 낮은 계급의 양규를 썼고, 양규가 있던 흥화진과 고려본대 30만이 있는 통주성의 거리는 20Km도 되지 않습니다. 지 맘대로 부리겠다는 거였겠죠. (물론 여러 이유가 있긴 합니다.) 그러니 서북면 강동6주의 성주들의 계급들이 들쭉날쭉 입니다. 전쟁 한 달 전에 부랴부랴 인사단행을 했고, 또 정변세력인지라 지 꼴리는대로 성에 성주를 꽂아넣었을 수 있기에 벌어진 참사라고 추측해 봅니다.
특히 제가 서북면도순검사 때 양규의 계급이 장군급에 미치지 못한 낭중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700결사대에서 그 근거를 찾습니다. 낭중급은 정 5품으로 군사 1천을 다룹니다. 그 위 장군급이면 5천명 정도를 쓸수 있을 터인데, 흥화진에서 출격할 때 700명이야 별똥대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곽주성 탈환 시 더이상의 군사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후에 김숙흥의 군사 1천명과 합류를 하는데, 김숙흥은 동북면에 있다가 왕명을 받고 서북면으로 지원 나온 세력입니다. 물론 양규가 상관이었겠지만, 양규가 다른 성에서 강제로 취한 군대가 아니라는 것은 그럴만한 권한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아무리 별똥대라지만 그 넓은 지역에서 점조직으로 공격을 했다면 더 효율적이었을테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강제로 군사들을 취할 수 없었을 거라는 판단 입니다.
그렇기에 양규장군이 더욱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규 장군이 왜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싸웠는지 모르지만, 만약 전투에 살아남았거나, 본인이라도 ㅌㅌ해서 살아남았다면, 그 후 고려군을 이끄는 총대장이 강감찬이 아니라 양규가 되었을 확률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끝까지 싸우다가 애전에서 전사하셨죠.
참고로 양규장군의 죽음이 더 애달프고 드라마틱한 것이 전사한 그 애전이라는 곳을 번역하면 '쑥밭'이라는 것 입니다. 어떠이는 쑥대밭이라는 어원이 거란기병의 말밥굽에 양규장군이 쓸려죽었기에 그 애잔함에서 쑥대밭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애전은 북한에 실제 있는 곳 이고, 양규 장군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곳 입니다. 흑흑! 장군~~~~
그냥 우리나라가 조선시대말고 관심이 없음. 마지막 왕조인데 그게 500년가량이라 그런 거겠지만ㅠ
제 기준에서는 이순신 다음이 아니라 그냥 동급같네요 1700명으로 6천명지키는 성 함락시키고 적 수만명 죽이고 포로 수만명 구한건 진짜 말이안되는수준인데
@@단단-t9d 하긴 조선 수군은 그래도 판옥선, 총통 등 장비의 우월성을 갖추고 있었는데 양규 휘하 고려군은 육지에서 기병이 주력인 거란군을 상대한 거니까.
아무래도 고려시대에 남아있는 기록이 부실해서... 조선시대는 실록이랑 난중일기 등등 세세한 기록물이 현재까지 전해져서 알려진게 많죠..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나 결국 조선시대에 편찬한 기록물이고..
고려거란전쟁 16회 보고나서
이 영상이 생각나서 또 봅니다 ㅠㅠ
거란의 어둠과 싸운 고려의 빛이라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애전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결국 하늘의 별이 되버린
빛규, 빛숙흥과 1700 결사대의 투혼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진심 양규장군님은 영웅이죠 이와같은 선조분들이 있어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죠 진심 감사합니다
겨우 3000명의 군사로 40만 거란군을 방어해낸 양규장군...믿어지지 않는 투혼의 역사입니다!
양 규 장군은..... 김숙흥 장군과 함께 죽을 힘을 다해 거란군과 최후로 싸우다 전사를 한다래도..... 고려의 최고 명장입니다.
@user-mc2zg6et4r93 님,죄송하지만 김숙홍이 아니라 김숙흥 장군입니다.
조만간 많은분들이 성지순례하러 오실겁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마 새로운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이 영상 제작 중에 들었습니다. 양규 장군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건 사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요. 배우 지승헌님의 연기와 해당 드라마를 통해 양규 장군의 진가가 더욱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Hmentary지승(현)입니다 😊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보고 와 ❤ 스토리 대박 캐릭터대박. 감동대박 양규장군 에게. 빠졌어요 와 👍 진짜 명장중에명장 이셨네요
양규의 결사대,현종의 몽진,김경손의 12결사대,척준경등 사실 조선사보다 고려사가 드라마화 영화화할 이야기들이 많은데 기록이 너무 부실하니..ㅠㅠ 그나마 있는 자료라고 해봤자 대부분 조선시대 쓰여진거라 왜곡된 부분도 많아서...
한반도가 아니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우리 역사 최고의 야전사령관, 조선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우리 역사 최고의 해군 제독 이라면 고려의 양규 장군은 우리 역사 최고의 특수전 사령관이죠.
정복 전쟁이 잦은 나라에서 그 때 당시 서민들은 죽을 맛이었다는 건 생각을 못하시는 듯.
현재를 사는 우리야 정복 군주가 멋져보이긴 할테지만 고대국가 시절 1년 내내 농사져도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서민들 입장에서 군역에 징발 되는건 진짜 괴로운 일이죠.
이순신이나 양규는 그렇다쳐도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 등 고구려 뽕은 영토 넓혔으니 짱 멋진거 아닌가 하는 나이브한 태도가 아닌가 싶네요.
님 논리를 그대로 받자면 태평양전쟁 초기네 일본 제국의 영토를 보자면, 일본 서민들음 죄다 행복해야 함 ㅋㅋ
현실은 각종 부역에 시달리고 전쟁에 필요한 세금 내느라 일본 서민들은 피골이 상접했습니다. 전쟁 총 동원령
@@kdyu178 그러면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본토인 보다 나았던가요?
@@kdyu178님 역사 잘 모르는 분인듯
@@엘더스크롤 님이 말귀를 못알아들으시는 듯, 조선왕조실록, 고려사절요 같은 원사료나 일독은 해보셨는지요. 인터넷에서 주워 들은거 말구요. 정복 전쟁에 올인 하다가 국운이 기운 사례는 역사에 숱하게 많습니다. 고대나 중세에는 지금처럼 인구기 많지 않았어요. 전쟁을 한다는건 농사 포기하고 하는겁니다. 전후에 이겨도 힘들지만 지면 나라가 휘청거립니다.
@@kdyu178 광개토왕이 영토를 넓히던 시기가 고구려가 여기저기서 개처맞고 휘청거리던 시절이었던 것도 모르는 사람인 듯...
거란과의 승리로 이후 고려, 송 ,거란사이에 힘의 균형이 생기고 안정화됨... 유일하다고 해야하나 중국한테 큰소리 치고 갑질할수 있었던 시대가 저당시 고려였음.
유호 작가의 등천 읽어보면 양규 임팩트 쩜 나도 그소설 보고 양규에 뻑감
그렇군요 양규 장군에 대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게 안타깝네요 앞으로 양규장군이 재규명되길 바라네요
가치있는 콘텐츠가 맘에 드네요. 👍
위대한 양규 장군을 알게해주어 감사합니다
저 고려장군들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네들 거란말 쓰면서 저 흉칙한 변발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규장군과 여러 용장들 그리고 강감찬 장군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와 ㄷㄷ 이런분의 드라마등이 나왓으면 좋겠네요..감동이자 찡하네요...
내일인 토요일 첫 방영이 시작되는 KBS의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에 양규 장군이 나옵니다. 시청하시면 극화된 양규 장군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겁니다.
양만춘 이순신 영화 만들었어니 양규도 영화 만들어라,,,,아마 양규 전투 자체가 영화의 큰 히스토리가 될껏이다,,천만 보장
이렇게 멋진분이 계셨군요...몰라서 죄송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아.. 정말 대단하네요 양규장군...
대요전쟁에서 승리한 고려는 해동천자로써 100년간 외교갑질을 시전한다
우리 민족이 본을 삼아야할건 바로 이 시기일겁니다
눈물이 납니다. 순국선열의 피로 지킨 조국,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대몽항쟁 영웅 김윤후, 12명기병으로 몽골을 물리친 김경손, 윤관의 여진정벌의 숨은 영웅 척준경,
역사기록이 많이 소실돼서 그렇지 고려에는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 많음
와 이게 가능한건가 ㄷㄷ 마지막 선조에 대한 감사에 멘트 너무 좋네요
고려에 기록이 미비하다보다 조선의 기록이 너무 디테일해서 비교 당하는 거라고 봅니다.
아예 제대로 없는 나라들도 흔하고 현대전인데도 정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전투도 있죠.
실제로 이순신에 가려저 있어 그렇지 임진왜란 시절에도 양규장군같은 분들이 의병장에
많았죠.
통상 공성하는쪽이 수성하는쪽보다
최소3배는 더 많아야 공략할수 있다고
하는데 양규장군은 오히려1/4의 병력인 1700명으로 6000명의 거란군이 주둔하고있는 곽주성을 함락
시켰다는건 실로 엄청난 전공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한것까지 이순신장군과 같았군요 ㅠㅠ
기록만 충실히 남았다면 이순신 장군급으로 존경 받아야 마땅한 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밑에분도 얘기했지만 정말 이런 기록은 세계전사 어디를 뒤져봐도 그 예가 거의없음
고려가 대단한게... 중국 중원과 북방 유목지대가 모두 강자들도 꽉 찼던 시대였다는 것. 우리는 거란족이라 배워서 일개 부족이 침입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거란족의 나라 요는 당시 세계 최강 유목제국이었음. 수/당 못지않은 무력을 가진 요를 세 번이나 막았고 그런 요 보다 수십 배 강한 몽골을 아홉번이나 막아낸 나라가 고려.
거란은 막아낸게 맞는데 몽골은 그걸 막아냈다고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지휘부는 강화도에 들어앉아 있는 와중에 고려 전 영토가 고통 받는 상황이었을텐데
@@humba1352 당시 지휘부는 꼴통이었잖아요.. ㅎㅎ 거란 침입 때는 현종, 고려 최고의 성군이었는데... ㅋ 그래도 막아낸게 맞다고 봅니다. 맞서 싸웠으니까.
@@humba1352 몽골과 맞서 싸운 애들중에서 완벽하게 독립을 유지했다고 할만한건 맘루크 왕국밖에 없을 정도니 고려 정도면 막았다고 할만 하죠 몽골과 싸운 나라들 중에선 아예 쑥대밭이 돼서 현대까지도 빌빌대는 국가들이 많은데
베트콩들이 원을 물리침 나머진 다털리고
여몽전쟁 때는 막아낸게 아니라 따운되고 진작 나라가 망했어야 하는걸 원종의 외교와 일부 명장들의 활약으로 몽골을 설득해서 국가를 강제로 유지시킨 것에 가까움.
학자들 따라 말이 다르지만 고려는 이때 망했다는 분석까지 할 정도
아시아 패권국가 고려의 영토를 올바르게 표현해야 양규 장군님이 더 빛을 발할 것 아니오. 아직도 저 반도사관 영토를 쓰다니요...
양규 장군님 서사로 영화한편 찐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네요
우리 조상이 강조인데 양규장군,강감찬장군 진짜 멋있다
그래서 저는 왕조별 명장을 한 명씩만 꼽으라면 고려에서는 양규 장군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양규장군님 처음 알았는데 정말 대단하고 숭고한 분이시네요.
양규장군이 이순신으로 환생해서.. 다시 한번 나라를.. 읍읍
한국사 시간에 거란의 2차침입 양규의 활약 흥화진 전투 이런식으로 언급하고 넘어갔던거같은데... 3차 전쟁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줄은 몰랐네요
거의 신계의 장수네ㄷㄷㄷ
조선 성웅 이순신 제독님의 전생이신가? ㅎㄷㄷ 양규장군님도 엄청나신 분이시네
그래서 저는 왕조별 구국의 영웅을 한 분씩만 꼽으라면, 조선에는 이순신, 고려에는 양규라고 생각합니다.
강조의 트롤을 양규가 하드캐리해서 이긴 고려거란 2차 전쟁 ㄷㄷㄷ
양규 장군 ㅠㅠ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 장군과
구주별장 김숙흥 장군을 기억합니다.
ㅠㅠ 😢
양규 장군의 활약 내내 함께했던 김숙흥 장군도 잊어서는 안 될 분이시죠. 꼭 후손들에게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양규장군의 업적이 유명해졌으면 좋겠어요.
이시기 역사를 가르치면 다들 그냥 귀주대첩 강감찬 원툴이라 ㅋㅋㅋ
양규 장군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조만간 역사책에도 당당하게 소개되면서 합당한 대우를 받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저도 역사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ㅠㅠ 양규를 잘 몰랐네요. 부끄럽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아, 천추태후에서 양규 역 맡았던 배우의 이름이 뭔가요?
홍일표 배우입니다.
@@예쁜나-v8s홍일표가 아니라 홍일권입니다.
기록보면 그냥 전쟁의신임
고려시대 특수부대
양규장군과 700결사대~~
다행은 고려조정에서 그 후손을 돌봐줬다니..다행임
양규 장군님 기억합시다 참군인 영웅
천추태후 양규 역의 홍일권님 진짜 간지~
이렇게 지켜냈던 나라를 몇놈이 말아 먹는 구나..ㅠㅠ
우리나라 역사 교육을 처음부터 다시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양규 장군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게 남아 있다지만, 저는 아직도 왜 교과서에서 양규 장군에 대해 비중 있게 서술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양규 장군이 없었다면 고려가 망하고 우리 역사가 아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Hmentary 전교조쓰레기들이 518만 얘기하고 다니니 다른역사교육은 찬밥인게 현실입니다
옛고인들은 이렇게 목숨바쳐 나라를 지켰건만 오늘날 정치행정가들작태는 좌파우파나눠서 국가관도없이 사리사욕에 눈멀어서 나라를 아작을내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노릇이다
나라를 아작내는건 좌파지 우파가 아니다 이 멍충아
옛날도 무인(군인)들이나 애국심이 많았지 궁안에있는 정치인들은 동서고금 자기이속 챙기는사람들이 훨씬 많죠.
마지막전투에서 온몸에 화살이 박히는 장렬한 전사셨죠
그리고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한 흥화진 성주와 병사들이 양규와 1,700명 결사대의 복수를 위해 거란의 후미를 공격해 무려 1만에 가까운 피해를 주었죠
어렸을 때
대 거란전쟁하면
강감찬 장군과 서희만 생각했는데
드라마 천추태후의 영향으로
많은 영웅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대도수, 양규, 김숙흥, 지채문, 하공진, 강감찬, 강민첨
고려 시기에 활약했던 여러 무장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분이 양규 장군입니다. 정말 널리 알려져야 마땅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이팅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양규장군에게 병력을 5만만 주었다면 전쟁이 빨리끝났을거 인데 아쉽네요
역사를 다시배워야 한다
이런 콘텐츠 를 만드는 것 은 민족의 생존성,통일에 기여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두산 꼭데기에 동산 하나 세울수 있는 남북정치를 이끌어 갈수 있는 채널로 발전 하기 바랍니다.
왜 우리나라는 위기에 빠져서 멸망해도 이상해지않을때 항상 한두명씩 영웅이 튀어나와서 멱살잡고 나라를 존속시키는거지ㅋㅋㅋㅋㅋ 신기한나라네
그게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제 끝인가 싶을 때마다 나타나는 구국의 영웅들이 있지요.
요즘에도 불모지에 가까운 우리나라의 해당 종목 환경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스포츠 스타들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어려울 때마다 가끔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선물 내려주는구나 싶습니다.
덕분에 공부가 되었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영상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야~~~이 위대한 양규 장군과 그 장병에 대해 역사책에 한줄로 넘어가다니...
이름만 대충 알았지 이렇게 위대한 장군이었는 줄 몰랐다는 게 죄송스럽네
영화로 만들어도, 엉터리 영화라고 하겠네
위대하고 존경스런 우리의 선조들 ,,,,,
저런 양규 장군같은 고려의 기개가 남았더라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겠나??
리스펙 양규장군님!
진정한 소드마스터..ㅎㅎㅎ
솔직히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업적을 남긴 대단한 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순신 장군 급으로 양규 장군을 존경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떻게 3천으로 40만을 막아냈는지 정말 기적입니다
양규장군 용력출중 역사상 최고장군이죠
오!! 이런분이 계셨군요! 만세!!! 참고로 지역명은 책보고 유투버님을 참고하시면 좋을듯합니다
좋은 내용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헐 머야.. 강감찬보다 더 대단한 장군 같은데? 이렇게 지켜온 나라가 출산율 저하로 소멸의 길을 가고 있다는게 슬프네
강조 장군 양규 장군 죽고도 버티다니 고려는 확실히 무신들이 뛰어났다
그당시는 각지역 호족들이 자체사병을 많이 키워놓았기 때문에 이들이 뭉치기만하면 전투력은 엄청났음
팽월 마초 하후연 등 초한지 삼국지에서 게릴라 유격 기습에 능한 명장들이 있지만 전공은 양규가 더뛰어나네
양규 장군의 전공은 정말 세계 전쟁사에 굵직하게 기록될 정도의 엄청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정작 우리나라 내에서도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양규 장군 후예를 발굴해 새롭게 인물편찬해야겠네요
고려는 저 꿋꿋한 자존심이 좋아..
많은 문제가 있엇지만..
조선과 비교하면 조선초기를 제외하면 고려승..
몽고에게 작살난건...
그당시 몽고는 사실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이니 어쩔수 없는거다..
고려거란전쟁 1차는 서희장군 2차는 양규 3차는 강감찬 ... 참고로 적군 숫자는 1차>2차>3차 순임
이번 드라마 양규나오는게 이거구나
정예부대1700명을 통설한것부터 엄청난 장군인듯
양규 장군이 척준경으로 환생한 것 같네
ㄷㄷㄷㄷㄷㄷㄷ
정말 엄청나다 ㅠㅠ😭
척준경이 소드마스터 등의 표현으로 이슈화된 지 꽤 됐는데, 개인의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런저런 공을 많이 세운 게 사실이지만, 전쟁 자체의 방향을 바꿔 버릴 정도의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요.
양규 장군은 고려 전쟁사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큰 위업을 남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척준경 같이 동네 양아치랑 비교하시면 곤란합니다.......... 양규는 넘사벽 클라스에요....
@@Rea458 양아치 눈엔 양아치밖에 안보인다더니...
척준경이 말년에 과가 많은건 사실이지만
여진정벌전때 세운 공적들도 있는데 양아치로 폄훼? ㅋ
척준경한테 당한 여진족의 후손인가???
@@JHs063 역사공부 안하냐 ? 이자겸 몰라 ? 어디서 무협소설 쳐보고 자빠져가지고 척준경 빨고있어 ㅉㅉㅉ
양규 장군과 1700 결사대의 최후를 보니까
영화 300, 레오니다스왕이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테르모필레전투가 생각나네요.
영화300처럼
영화 1700도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ㅠㅠ
주인공 양규와 김숙흥이 나오는...
저도 오래도록 바라던 일입니다. 양규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이나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그 업적이 제대로 기려지길 바랍니다.
영화 300스파리타인 + 그리스 7000명
영화는 과장된것
홍범도장군도 위대한 선조의 한 분입니다..
얼마나 잘 싸운거야? 상상도 안가네
양규대장군으로 대하드라마 사극을 만들어라 쫌 (정치프로그램은 토론프로)도 케이블에서 방송해라 쫌
고려에는 양규가 있었고
한국에는 퐝규가 있었다.
고려는 전투를 잘 하는 장수가 많아줘. 서희, 양규, 김숙흥, 강감찬, 척준경, 김경손, 김윤후, 김방경 (원·려연합군 부사령관 : 일본전쟁) 최영 등등
우리는 항시 윗대가리가 무능하고 부폐해 절멸의 순간까지 가지만 결국 번뜩이는 천재들이 해결함. 희안한 민족일세
한반도의 뿌리 고조선이 생겨난곳이 랴오허강으로 보는데 역사적으로 그주변 종족들이 참 막강하네...
최근 연구로는 고려의 국경은 만주일대와 요동까지입니다.지금의 동영상의 지도는 일제가 만든 것을 우리나라국사학계가 그대로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