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려거란전쟁은 진짜 치열한 대전쟁이었음. 아시아 최강대국인 거란제국이 고려를 아예 싹다 초토화시키고 정복할 목적으로 황제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친정까지 단행하면서 일으킨 침략전쟁임. 서희가 온힘을 다해 외교적으로 활동하다가 과로사하기도 했고, 양규 장군이 결사대 1700명 병력을 이끌고 목숨걸고 죽을 힘을 다해 흥화진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맞서싸웠지만 막강한 거란제국 군대의 공격에 끝내 양규 장군과 결사대들도 나중에 전쟁포로를 되찾는 전쟁에서 전사하는 등 진짜 치열했었음.
그래서 몽골 식민지, 명나라 속국, 일본한테 탈탈 털려서 명나라 아니였으면 두달만에 나라 따잇할 뻔, 멋모르고 청나라한테 덤비다 청나라 속국으로 전락, 근대화한 일본한테 나라 따잇당하고 지금도 이념에 사로잡혀서 남북끼리 으르렁~~ 노벨상 수상자 0명, 필즈상수상자 0명이 빛나는 우리민족 대단하다!!! ㅋㅋㅋㅋㅋ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허억~ 임박사님 처음엔 못알아 뵈었어요..지송. 전쟁을 보는 눈을 틔워 준 스승님같은 분이신데.. 소싯적 완전 미남이셨네요.. " '아는 건 안다, 아직 모르는 건 모른다' 할거야~ 역사는 증거 덩어리들이 뭉쳐진 사실' 의 이야기이지, 개인이나 집단의 희망 또는 바램의 소설이 아니야." 하는 식의..그 특유의 냉기어린 말투는 그대로네요 ㅎㅎ
고려는 고구려 대부분 땅을 계승했다고 이덕일 교수및 여러 역사가들이 중국의 사서의 지명들을 비교하며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압록강에서 동해안 함흥까지 현 역사책에는 서술되어 있지만, 실제 중국의 북경근처와 요서지역까지 고려의 땅이었습니다. 구글 지도을 이용해서 압록강 신의주에서 평양까지의 거리가 223Km 나오는데 그 얼마 안되는 거리에 이 영상에 등장하는 성들(흥화진, 통주, 안주, 곽주)이 너무 많은게 이상하지 않나요? 여기 나오는 대학교수들, 박사학위 딴 분들이던데 정말 고려가 작은 영토를 가졌다고 믿고 논문쓰고 연구한 거 맞나요? 시청하는 내내 거짓내용을 사실인양 설명하는 것들이 몹시 거슬려서 불편합니다.
@@gumsuna7799 고려가 그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고구려나 발해의 만주 영토를 점령하여 다스리지 못한 게 아쉽다고들 얘기하는데, 《고려사》'숙종 세가 2년'에는 귀주대첩 이후 여진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요나라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까지를 고려의 북방 영토로 인정해버리는 기록이 있음.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로 《고려사》'지리지' 부분을 보면 고려의 동북 영토가 고구려보다 넓었다고 기록했는데 고려의 만주 경략에 대해서는 이 외에도 추가적 증빙 사료가 정말 수두룩 함. 이건 무슨 환빠같은 정신나가서 유체이탈하는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고려를 깎아 내리기에 급급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편찬한《고려사》에 명확하게 기록된 내용들임. 즉 왜곡된 교육에 의한 우리들의 비뚫어진 상식과는 달리 당대의 고려인들은 문종 때 완성된 해동천하 세계관 내의 옛 발해 지역 대부분을 고려의 땅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며, 이미 고려의 천자가 다스리고 있는 해동천하의 강역으로써 제국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만주 땅은 고려가 간접통치를 하느냐 직접통치를 하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인데 그 중 직접통치를 시도한 게 바로 윤관의 여진 정벌임. 따라서 교과서의 고려 지도는 다시 그려져야 함. 간접통치라고 영토에서 전부 배제 하려면 당나라 청나라 등 자칭 중국사의 지도들도 전부 다시 그리든가. 우리 역사 중 조선 유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난도질 되면서 가장 많이 훼손 된 게 고려사임. 우린 그런 역사를 그대로 배웠던 거고. 이렇게 빽트를 제시해도 환빠몰이와 현실부정으로 일관하며 떠먹여진 지식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가여운 개돼지들.. 이제 좀 스스로 떠먹어도 보면서 사람 구실을 할 때가 되지 않았니?
고려가 그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고구려나 발해의 만주 영토를 점령하여 다스리지 못한 게 아쉽다고들 얘기하는데, 《고려사》'숙종 세가 2년'에는 귀주대첩 이후 여진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요나라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까지를 고려의 북방 영토로 인정해버리는 기록이 있음.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로 《고려사》'지리지' 부분을 보면 고려의 동북 영토가 고구려보다 넓었다고 기록했는데 고려의 만주 경략에 대해서는 이 외에도 추가적 증빙 사료가 정말 수두룩 함. 이건 무슨 환빠같은 정신나가서 유체이탈하는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고려를 깎아 내리기에 급급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편찬한《고려사》에 명확하게 기록된 내용들임. 즉 왜곡된 교육에 의한 우리들의 비뚫어진 상식과는 달리 당대의 고려인들은 문종 때 완성된 해동천하 세계관 내의 옛 발해 지역 대부분을 고려의 땅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며, 이미 고려의 천자가 다스리고 있는 해동천하의 강역으로써 제국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만주 땅은 고려가 간접통치를 하느냐 직접통치를 하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인데 그 중 직접통치를 시도한 게 바로 윤관의 여진 정벌임. 따라서 교과서의 고려 지도는 다시 그려져야 함. 간접통치라고 영토에서 전부 배제 하려면 당나라 청나라 등 자칭 중국사의 지도들도 전부 다시 그리든가. 우리 역사 중 조선 유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난도질 되면서 가장 많이 훼손 된 게 고려사임. 우린 그런 역사를 그대로 배웠던 거고. 이렇게 빽트를 제시해도 환빠몰이와 현실부정으로 일관하며 떠먹여진 지식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가여운 개돼지들.. 이제 좀 스스로 떠먹어도 보면서 사람 구실을 할 때가 되지 않았니?
당신말대로라면 고려가 여진의 금나라 건국을 막아내지못한것에 대해 설명이 안됩니다. 그렇게 고려가 강성했다면 여진을 군사력으로 복종시켜서 금나라 건국 자체를 무력화시켰어야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금의 건국과 금이 고려에 형제의 맹약을 고려에 강요했고 고려는 금나라의 동생이 되는것을 승인합니다. 이후에는 군신관계까지 되버렸죠. 만주를 지배하기에는 고려의 인구수와 경제력이 따라갈수 없습니다. 고대전쟁은 인구수와 경제력으로 하는겁니다.
@@NAYA_ESTJ 일단 고려의 인구와 경제력은 님이 편협한 고정관념으로 왜곡한 것에 불과하구요.. 네이버 지식백과에 고려 인구 치고 들어가 보세요. 통일직후 고려의 인구가 780만입니다. 전제부터가 잘못 됐네요. 또한 여진은 광범위하게 분포했던 하나의 거대한 민족입니다. 무슨 수로 금나라의 건국 자체를 막습니까? 그렇게 치면 명나라는 왜 청나라의 건국을 못 막았죠? 경제력과 인구가 부족해서요? 말같지 않은 궤변이죠. 그리고 고려는 고대가 아니라 중세시대입니다.. 이런 건 대충 중학교 1학년 때 다 배우지 않나..
맞는말이죠 고려에 비하면 조선은 에휴 답이 없죠 일본한테도 고전을 면치못했고 나중에 중국명나라에 도움이나 받고 정묘호란 병자호란때 청나라한테 처참하게 당하고 나중에 항복했죠 19세기 근대말 더욱 암흑기였고요 고려는 동아시아에서 알아주는 강한 나라였죠 그당시 동아시아최강국으로 성장한 거란족의요나라를 물리쳤으니까요
@@AaAa-kx1hp 전라도에서 쌀 없었으면 다 죽었어 그리고 권율이 행주산성에서만 있었음? 거긴 잠깐 있었고 전라도 방어 책임잔데 몬솔 전라도에서 못 막고 지원 없었으면 나라 망했어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가장 위대 하지만 그 휘하 장졸들은 모두 라도 군인 이였어 결국 라도가 나라를 구한거지
고려가 그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고구려나 발해의 만주 영토를 점령하여 다스리지 못한 게 아쉽다고들 얘기하는데, 《고려사》'숙종 세가 2년'에는 귀주대첩 이후 여진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요나라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까지를 고려의 북방 영토로 인정해버리는 기록이 있음.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로 《고려사》'지리지' 부분을 보면 고려의 동북 영토가 고구려보다 넓었다고 기록했는데 고려의 만주 경략에 대해서는 이 외에도 추가적 증빙 사료가 정말 수두룩 함. 이건 무슨 환빠같은 정신나가서 유체이탈하는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고려를 깎아 내리기에 급급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편찬한《고려사》에 명확하게 기록된 내용들임. 즉 왜곡된 교육에 의한 우리들의 비뚫어진 상식과는 달리 당대의 고려인들은 문종 때 완성된 해동천하 세계관 내의 옛 발해 지역 대부분을 고려의 땅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며, 이미 고려의 천자가 다스리고 있는 해동천하의 강역으로써 제국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만주 땅은 고려가 간접통치를 하느냐 직접통치를 하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인데 그 중 직접통치를 시도한 게 바로 윤관의 여진 정벌임. 따라서 교과서의 고려 지도는 다시 그려져야 함. 간접통치라고 영토에서 전부 배제 하려면 당나라 청나라 등 자칭 중국사의 지도들도 전부 다시 그리든가. 우리 역사 중 조선 유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난도질 되면서 가장 많이 훼손 된 게 고려사임. 우린 그런 역사를 그대로 배웠던 거고. 이렇게 빽트를 제시해도 환빠몰이와 현실부정으로 일관하며 떠먹여진 지식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가여운 개돼지들.. 이제 좀 스스로 떠먹어도 보면서 사람 구실을 할 때가 되지 않았니?
늘 열세적인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하나로 외세를 몰아냈다
이것이 대한민국 조상들의 지혜이고 위대한 유산이다
2차전은 ㅂㅅ인데
응, 그래서 여몽전쟁을 기점으로 우리 손으로 스스로 와세 물리친 적은 언제? ㅋ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리뷰 보다가 여기 들어온 사람 손
손
손
감감찬 홍시 까는 소리하고 자빠졌노 ㅋㅋ
거란 검색함
@@수령님재앙빔쏘신다🤣🤣🤣😂
정말 그냥 교과서 몇줄로 넘아갈 역사가 아니었네요. 선조님들 감사합니다~!!!!!
역사를 보니 우리 민족이 얼마나 영리하고 애국심이강했는가 알수있었습니다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격공입니다 ❤❤❤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으로 자원하면서 스스로를 황국신민의 일원으로 전쟁에 뛰어든 자들이 수십만? ㅋㅋㅋ
정말 위대하고 장엄하다
진정외유나강이뭔지 잘보여주는구나 고구려후손이라는게 정말 자랑쓰럽다
우리대한민국은 위대고구려후손이다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 맞는 시기 적절한 영상이네요. 이런 단백한 프로그램 많이 만들어주세요. 패널들이 양념치는 것 말고..
이런 좋은 프로가 중공 눈치보는 문어벙때문에 부활을 못했었죠 이제 다시 드라마라도 고려거란전쟁으로 방영되네요 화이팅!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서희 장군님 영웅입니다~감사합니다()
야 멋지다 진짜. 천년전에
대륙과는 다른 한반도에 독자적 문화권 세력이 아직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핵심적인 역사
이러한 역사는 현시대 정치인들이 더 잘 배우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스페셜은 다시 부활해야 되는
민족적인 과제입니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보입니다
이런 좋은 프로가 중공 눈치보는 문어벙때문에 부활을 못했었죠 이제 다시 드라마라도 고려거란전쟁으로 방영되네요 화이팅!
드라마로....
역사 알면 알수록 재미있습니다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프로그램 많이 생기고 유지되길!!🙏
대단 하네요 불가사의 하네요
조상님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가겠습니다
~~^^~~♡♡♡♡♡
역사는 계속됩니다.
언젠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을 날이 올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 전에 인구소멸부터 해결해 보고 ㅋ
어제 본듯한데 세월은 잘도 흐르고
추억의 역사스페셜도 감사 하지만
현재의 역사 스페셜도 만나게 해 주셔요.
정체성,자긍심,반복해선 않될 모습까지도 알게 해 주셔요.
어제가 없는 오늘도 내일도 없다고
믿습니다!
ㅡㄷ 'ㅡ
서희 강감찬 두 장군께
한없는 존경심과 우리 조상님들의 위대한 자긍심을 배웁니다
고려거란전쟁은 진짜 치열한 대전쟁이었음. 아시아 최강대국인 거란제국이 고려를 아예 싹다 초토화시키고 정복할 목적으로 황제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친정까지 단행하면서 일으킨 침략전쟁임. 서희가 온힘을 다해 외교적으로 활동하다가 과로사하기도 했고, 양규 장군이 결사대 1700명 병력을 이끌고 목숨걸고 죽을 힘을 다해 흥화진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맞서싸웠지만 막강한 거란제국 군대의 공격에 끝내 양규 장군과 결사대들도 나중에 전쟁포로를 되찾는 전쟁에서 전사하는 등 진짜 치열했었음.
양규는 700 정예부대임
300 정예부대는 스파르타?@@스라-n5p
@@스라-n5p 제가 알기로 둘 다입니다. 700정예부대는 곽주성 탈환 작전이고 1700 결사대는 마지막 전투인 걸로 알아요.
너무 재밌어서 미치겠어요 ㅋㅋ
배우들도 우와 연기가 최고예요
잘 몰랐던 백성현 김동준 같이 젊은 배우분들 연기에 놀랐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의 음악은 언제나 최고이고 앞으로도 최고일 것입니다 💕 ♥ 💖
대단한 우리 민족입니다
존경스럽습니다ㅡ
그래서 몽골 식민지, 명나라 속국, 일본한테 탈탈 털려서 명나라 아니였으면 두달만에 나라 따잇할 뻔, 멋모르고 청나라한테 덤비다 청나라 속국으로 전락, 근대화한 일본한테 나라 따잇당하고 지금도 이념에 사로잡혀서 남북끼리 으르렁~~
노벨상 수상자 0명, 필즈상수상자 0명이 빛나는 우리민족 대단하다!!! ㅋㅋㅋㅋㅋ
고려는 강합니다. 선조분들 존경합니다. 발해의 복수를 멋지게 했네요.
i am a Chinese from hk🇭🇰,i support korea to rebuild the great Goryeo empire in north China!
고맙다
역시 평화는 힘이 있어야 누릴수 있다.
북한가
@@더블린-q7t엄연한 사실이고 진리인데 북한가 ㅇㅈㄹ ㅋㅋㅋㅋ
송나라를 함락하고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고려를 침략하려던 거란 성종의 욕심은 패배와 거란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투쟁하던 고려는 부강해졌네요.
현종 이기때문에 가능 한거에요 목종때는 국방이 너무 허술해서
귀주대첩 때문에 거란이 몰락한 거 아닌데요?
@@관심법-g2c20만 군세가 갈려나간 현종때가 그 이전의 목종때보다 국방력이 너무나 허술했다고?
역사 관련 다큐를 재밌게 배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치 사회는...잘하는 과목이 아니라 시간지나면 잊게 되던데 .....교과서 보다 드라마. 다큐. 뉴스. 영화가 사회교양 쌓기에 확실히 도움이 되네요.
자랑스런 조상님들께
몇백번 절을해도 모자랍니다.
조상님들이시여~~~
거란을 이겨냈듯이
대한민국을 세계 제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의한,국민을 두려워하는 국가가 되게 하소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이천서씨로써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나라를 위해 조금이라도 이바지 하며 살게요 서희장군님
매우 훌륭한 다짐입니다. 👍
서희 장군과 강감찬 장군은 무관 출신이 아니라는 점.... 정말 대단하신 분들..
고려는 문관이라도 조선처럼 책만 읽는 문관들이 아닙니다..ㅋ 애초에 그들이 독자적 사병과 세력을 가진 호족이었으니까요.
@@vivivi3865 문제는 모든 호족이 과거시험에 합격하지는 않는다는거죠.
@@삼촌이좋냐이모가좋냐 모든 호족이 귀족은 아니지만 귀족 대부분은 호족 출신이죠.
@@vivivi3865 저는 서희 장군 강감찬 장군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전쟁터에 나갔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고 있는거구요.
@@vivivi3865 귀족도 호족뿐만 아니라 6두품 출신 개국공신들 골고루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국가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그럼 한국은 미래가 없네요. 역사만 잊었나 민족도 저출산으로 없어지고있는데
공감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슴 벅차구 뭉클 눈물나네요~~
❤❤❤❤❤
자랑스러운 역사
사극에 감사합니다 🎉🎉🎉🎉🎉
계속 멋지고
씩씩한 드라마
되시라고 믿습니다❤❤❤❤❤
대ㆍ한ㆍ민 ㆍ국!
몽골 식민지 + 명나라 속국 + 청나라 속국 + 일제 식민지 + 미국 따까리
자랑스럽죠? ㅋㅋㅋ
허억~ 임박사님 처음엔 못알아 뵈었어요..지송. 전쟁을 보는 눈을 틔워 준 스승님같은 분이신데.. 소싯적 완전 미남이셨네요.. " '아는 건 안다, 아직 모르는 건 모른다' 할거야~ 역사는 증거 덩어리들이 뭉쳐진 사실' 의 이야기이지, 개인이나 집단의 희망 또는 바램의 소설이 아니야." 하는 식의..그 특유의 냉기어린 말투는 그대로네요 ㅎㅎ
4군6진을 수복한 서희장군
홍화진성 역사상 최고의 장군으로 " 방패와 창 "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 장군
귀주대첩으로 20여년 전쟁을 끝내고 평화시대를 연 강감찬 장군
백성의 마음을 얻은 고려 최고의 성군 현종
4군6진은 세종때 김종서 아닌가요???
@@Yuioknu 맞음 조선 세종대왕때 4군 최윤덕장군 6진 김종서 장군이죠
문재인
간경화
뭐 이런 콤비라는 말인가요?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토크멘터리 전쟁사 고려거란전쟁 1,2편, JTBC 평화전쟁 1019 1,2편, 역사저널 그날 고려거란전쟁 1,2편 시청 후 역사스페셜 고려거란전쟁편을 보네요. 위대한 고려국의 후예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께선 위대 하셨네요. 여주에 있는 묘지 를 다녀온 적이 있네요.
고구려 땅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압록강, 두만강까지 회복한 것만도 대단한 역사다
고려는 고구려 대부분 땅을 계승했다고 이덕일 교수및 여러 역사가들이 중국의 사서의 지명들을 비교하며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압록강에서 동해안 함흥까지 현 역사책에는 서술되어 있지만, 실제 중국의 북경근처와
요서지역까지 고려의 땅이었습니다. 구글 지도을 이용해서 압록강 신의주에서 평양까지의 거리가 223Km 나오는데
그 얼마 안되는 거리에 이 영상에 등장하는 성들(흥화진, 통주, 안주, 곽주)이 너무 많은게 이상하지 않나요?
여기 나오는 대학교수들, 박사학위 딴 분들이던데 정말 고려가 작은 영토를 가졌다고 믿고 논문쓰고 연구한 거 맞나요?
시청하는 내내 거짓내용을 사실인양 설명하는 것들이 몹시 거슬려서 불편합니다.
두만강은 회복 못했음
감사합니다
저요. 지금 뒤늦게 3화까지 보는데 우와❤ 대하드라마중 스토리 장난아니네요 숨도못쉬겠어요 빨리 12화까지 달려야겠네요 ❤최수종 👍묵종 강조의난 현종 강감찬❤
어릴 때 보았던 그 KBS로 돌아오길.
불가능. 공산화됐음.
투표잘합시다. 그걸 깨달으면 변합니다.
조선시대에만 머물기를 원하는 세력은 우리의 역사도 졸로 봅니다. 높은 산봉우리...어쩌고 저쩌구. 개xx! 북조선으로 가서 살던가! 그런데 북한도 그따위 막말은 안하는데..
박민타도
@@AndreKostolany. 정확히는 2찍 좋빠가 굥두창 후빨 언론됐다는거
국뽕젖은 그 프로그램으로 퇴보하자고?
이런 것 좀 많이 만들어라 kbs 야. 왜 지금은 이런 다큐 못 만드누
쩝쩌비 정권이 끝났고 1년뒤인 지금 게비에스 사장이 갈렸어요…곧 좋은 다큐가 나올거에요…선동선질하는 그런 ㅈ ㅗㅈ ㅂㅅ같은 방송은 사라지겠죠
친중 하느라
만들고잇잔어
천추태후에도 잠깐 나왔죠. 이번에 고려 현종시대의 이야기가 대하사극으로 나온대요
친북 친중에 바쁘다
자랑스럽네요.
고조선 발해 고려 조상들의 역사다큐 6.25당시 국제정세와 이승만초대대통령 유엔군 미군 참전 5.16군사혁명등등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kbs는 다큐 많이 만들어서 공영방송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해 주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역사 알수 있어서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2017년 국회의 지원으로 인하대 연구소에 의해 복원된 고려 영토를 보면 얼마나 큰지 확인되죠.
복원된 고려의 크기를 봤을때 고구려는 또한 얼마나 큰 나라였을지 궁금할 따름임..
감사합니다. 미처 몰랐는데 덕분에ㅡ알게됬습니다. 왜놈들에의 축소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이제는 고쳐야합니다
@@gumsuna7799 고려가 그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고구려나 발해의 만주 영토를 점령하여 다스리지 못한 게 아쉽다고들 얘기하는데, 《고려사》'숙종 세가 2년'에는 귀주대첩 이후 여진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요나라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까지를 고려의 북방 영토로 인정해버리는 기록이 있음.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로 《고려사》'지리지' 부분을 보면 고려의 동북 영토가 고구려보다 넓었다고 기록했는데 고려의 만주 경략에 대해서는 이 외에도 추가적 증빙 사료가 정말 수두룩 함. 이건 무슨 환빠같은 정신나가서 유체이탈하는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고려를 깎아 내리기에 급급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편찬한《고려사》에 명확하게 기록된 내용들임.
즉 왜곡된 교육에 의한 우리들의 비뚫어진 상식과는 달리 당대의 고려인들은 문종 때 완성된 해동천하 세계관 내의 옛 발해 지역 대부분을 고려의 땅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며, 이미 고려의 천자가 다스리고 있는 해동천하의 강역으로써 제국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만주 땅은 고려가 간접통치를 하느냐 직접통치를 하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인데 그 중 직접통치를 시도한 게 바로 윤관의 여진 정벌임. 따라서 교과서의 고려 지도는 다시 그려져야 함. 간접통치라고 영토에서 전부 배제 하려면 당나라 청나라 등 자칭 중국사의 지도들도 전부 다시 그리든가.
우리 역사 중 조선 유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난도질 되면서 가장 많이 훼손 된 게 고려사임. 우린 그런 역사를 그대로 배웠던 거고. 이렇게 빽트를 제시해도 환빠몰이와 현실부정으로 일관하며 떠먹여진 지식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가여운 개돼지들.. 이제 좀 스스로 떠먹어도 보면서 사람 구실을 할 때가 되지 않았니?
@@vivivi3865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반말 하시는것은 좀 그렇지 않나요 ? 댓글의 상대방을 개인적으로는 모르시니 같은 존댓말을 하셨다면 님의 해박한 지식이 더 빛을 발할것 같습니다.
@@gumsuna7799 아 죄송합니다.. 사실 님한테만 달은 댓글이 아니고 다른 이에게 달았던 댓글인데 내용이 장문이라 그대로 쓰다보니ㅎ 무례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vivivi3865 아 네 그랬군요. 답글 감사합니다. 좋은날 되세요😊
근데 강감찬 서희뿐만 아니라 양규도 엄청난 영웅이었다는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ㅈㅈㅉ
7
서희,양규,강감찬께서 고려의 3인입니다.
자랑스러운 선조들 덕분에 감사합니다 후손 인것이
서희 할아버지 는 우리집(이천서씨) 최대위인이심 집안에서 후손들은 늘 배우고있어요!!
훌륭한 조상을 두셨어요
나가서 문재인을 때려 잡으시오
@simon choi ??????
저두 이천서씨 ㅎㅎ
저도 이천서씨요 대구서씨(달성서씨)보다 사회에서 보기 힘들던데 넷상으로 반갑네요
서희, 남궁원청(대장군), 강감찬 장군이 여진족을 몰아냈어요. 남궁원청도 서희와 함께 회담에도 참여했고 옛영토 수복의 공로로 전라도 익산지역 수십만평을 하사받고 지금의 함열남궁씨 시조가 남궁원청 장군이예요.
남궁원청 대장군의 크신 공적에 반해 조명이 미흡하네요. 재조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역시 우리나라 위인들은 모두 휼률한 것 같아요
역시 우리나라의 위인은 존중 스럽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kds.
항상 건강 하시구요
이래서 잘난 왕보다 똑똑한 신하들이 많이 필요한거임
n현종
신하는 원래 똑똑하다
똑똑한 직원도 많다
리더가 등용을 못 하는거지
그래서 인재를 보는눈이 제일 중요하죠 ㅋ 한국 사람들 선조 욕하지만 그 당시 인재풀 보면 역대급인데 선조는 무능한게 아니라 자기 권력욕이 강해서 그꼴이 난거임 무능했으면 그냥 바로 망했음
@@종학최-l8s 5
@@수빈김-m7o ㅇㅈ
지금봄
강감찬장군님
사랑합니다 ᆢ
위대한 장군 ᆢ
양규는 정말 민족영웅이지
고마워요 ! 😄
54:49 박사님 고려가 강해져서 너무 기분좋으신지 입꼬리가 씰룩씰룩하신게 귀여우시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3:31 임용한 박사님
이런 역사를 알게되면 내가 참 휼륭한 선조들의 후예 였구나 내심 자부심이 든든^^ 정말 난 대단한 나라에서 태어났구나 ^^늘 감사할뿐 오늘도 열심히 홧팅^^
그랬던 고려가...
33:50 와 젊은시절 임용한 박사님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요 ㅋㅋㅋ
이 프로 보면 간간히 나오실 때마다 저도 반갑더라구요
저도 빵 터졌습니다 ㅎ
1차 서희, 2차 양규, 3차 강감찬과 2차 침략 후 준비 잘 한 성군 현종 이 4명이 최대 영웅이라고 봐야죠~
거의 모든 책이나 드라마 에서는 조선에 대한것이 대부분이고, 김진명의 소설에서 고려에 대해 정말 재밌게 많이 보았지만,
고려에 대한 드라마를 신선하게 접하면서 역사 다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
사도주의 식민사관극복하고 진정한 역사독립을 이루어야 나라의 미래가 있습니다.
고구려의 다물 정신을 이어받아 옛 영토를 회복해야 합니다.
고조선 영역은 북경 까지입니다.
죽기전에 영토 회복 되는걸 보고싶네요ㅠ
동의합니다 당장 실현이 힘들지라도 그걸 의지로라도 이어가는게 중요합니다. 시기와 때는 반드시오기때문입니다. 역사가 말해주죠 그 시기를 잘 잡았을때 그 국가가 강해지고 부유해진다고 말이죠
왜 회복해야 함?
33:33 임용한 교수님!! 전쟁사 영상으로만 보다가 여기서 뵈니 반갑네용ㅎㅎㅎ
두 분도 대단했지만 포로들을 되찾오다 돌아가신 양규 장군도 재조명 해야 함
드라마 보고왔습니다. 사극제작 감사합니다
수공은 업었거나 있어도 별영향이 업었을거라고 하던대
핵심은 귀주에서 접전중이였는데
고려군 1만이 길을 해매 늦게 도착해는데 늦게 도착한게 오히려
신의 한수가 되서 치열한 교전중에 거란군의 후방에서 1만의 고려군이 뒤통수치면서 거란군이 무너지면서 승리한 전투
정말 제미있게 보고있읍니다
거란국에 패했다면
점차로 잠식되여
고려인의 명맥이
끊겼겠지
고구려
대단한 민족이다
분열만 없었으면 좋았을텐데
결국은 연개소문의 자식들이
고구려를 말아 먹었다
애국자가
늘 ㅡㅡㅡ
함께 했음에
감사드립니다.
아아!!!ᆢㆍ옛날이여ᆢ!강감찬 장군님 !서희외교장관님 !
지금ㅈ우리의 외교는 다어디갔는가 !!!!
KBS 역사사극을 보기 앞서 역사스페셜 한번 봐줘야지.
역사는 계속됩니다.언젠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을 날이 올겁니다.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정말 그냥 교과서 몇줄로 넘아갈 역사가 아니었네요. 선조님들 감사합니다~!!!!!.
그 전에 저출산 해결부터 하고 사기공화국이라는 병폐부터 처리할 생각부터 하지 그래?
그리고 뭘 되찾음? 실효지배 잃은지 1000년이 넘어가고 그쪽은 이미 중국과 러시아령으로 완전히 귀속되었는데, 침략전쟁 일으킬겨?
정말 대단한 선조님
천년이 지난 기간을 거슬러가는 역사 여행기~!
최고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드네요
대륙으로 조금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그러며 한반도 지도가 달라 졌을텐데 ..
고조선 고려국경선 일제때
의도적으로 조작되었다고 합니다
고려가 그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고구려나 발해의 만주 영토를 점령하여 다스리지 못한 게 아쉽다고들 얘기하는데, 《고려사》'숙종 세가 2년'에는 귀주대첩 이후 여진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요나라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까지를 고려의 북방 영토로 인정해버리는 기록이 있음.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로 《고려사》'지리지' 부분을 보면 고려의 동북 영토가 고구려보다 넓었다고 기록했는데 고려의 만주 경략에 대해서는 이 외에도 추가적 증빙 사료가 정말 수두룩 함. 이건 무슨 환빠같은 정신나가서 유체이탈하는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고려를 깎아 내리기에 급급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편찬한《고려사》에 명확하게 기록된 내용들임.
즉 왜곡된 교육에 의한 우리들의 비뚫어진 상식과는 달리 당대의 고려인들은 문종 때 완성된 해동천하 세계관 내의 옛 발해 지역 대부분을 고려의 땅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며, 이미 고려의 천자가 다스리고 있는 해동천하의 강역으로써 제국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만주 땅은 고려가 간접통치를 하느냐 직접통치를 하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인데 그 중 직접통치를 시도한 게 바로 윤관의 여진 정벌임. 따라서 교과서의 고려 지도는 다시 그려져야 함. 간접통치라고 영토에서 전부 배제 하려면 당나라 청나라 등 자칭 중국사의 지도들도 전부 다시 그리든가.
우리 역사 중 조선 유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난도질 되면서 가장 많이 훼손 된 게 고려사임. 우린 그런 역사를 그대로 배웠던 거고. 이렇게 빽트를 제시해도 환빠몰이와 현실부정으로 일관하며 떠먹여진 지식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가여운 개돼지들.. 이제 좀 스스로 떠먹어도 보면서 사람 구실을 할 때가 되지 않았니?
님 고려 만주 지배했습니다
당신말대로라면 고려가 여진의 금나라 건국을 막아내지못한것에 대해 설명이 안됩니다. 그렇게 고려가 강성했다면 여진을 군사력으로 복종시켜서 금나라 건국 자체를 무력화시켰어야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금의 건국과 금이 고려에 형제의 맹약을 고려에 강요했고 고려는 금나라의 동생이 되는것을 승인합니다. 이후에는 군신관계까지 되버렸죠. 만주를 지배하기에는 고려의 인구수와 경제력이 따라갈수 없습니다. 고대전쟁은 인구수와 경제력으로 하는겁니다.
@@NAYA_ESTJ 일단 고려의 인구와 경제력은 님이 편협한 고정관념으로 왜곡한 것에 불과하구요.. 네이버 지식백과에 고려 인구 치고 들어가 보세요. 통일직후 고려의 인구가 780만입니다. 전제부터가 잘못 됐네요. 또한 여진은 광범위하게 분포했던 하나의 거대한 민족입니다. 무슨 수로 금나라의 건국 자체를 막습니까? 그렇게 치면 명나라는 왜 청나라의 건국을 못 막았죠? 경제력과 인구가 부족해서요? 말같지 않은 궤변이죠. 그리고 고려는 고대가 아니라 중세시대입니다.. 이런 건 대충 중학교 1학년 때 다 배우지 않나..
조상님들 감사학니다
거란이 영토를 포기한 것은 더 큰 고기를 잡기위한 미끼였네요.
젊은 시절의 임용한 박사님 반갑네요ㅋㅋ
양규 아니었으면 고려는 진작에망했고 강감찬이 실력발휘할 기회조차없었을거다.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가 맞다 저력있다 우리도 고구려의 후예다 선조들의 저력을 우리도 가지고 있다
임용한박사님 나오면 무조건 믿고 봅니다~
젊은 용한이형 오진다
고려까지는 나름 강대국이였는데 조선은진짜 답없음. 침략 당하기만하고 백성만 족치는 역사상 최고로 약소국이였죠.
맞는말이죠 고려에 비하면 조선은 에휴 답이 없죠 일본한테도 고전을 면치못했고 나중에 중국명나라에 도움이나 받고 정묘호란 병자호란때 청나라한테 처참하게 당하고 나중에 항복했죠 19세기 근대말 더욱 암흑기였고요
고려는 동아시아에서 알아주는 강한 나라였죠 그당시 동아시아최강국으로 성장한 거란족의요나라를 물리쳤으니까요
@호넷 상도가 설치면 전성기
조선은 라도정권
@@AaAa-kx1hp 라도 아니였으면 임진왜란때 이미 일본인 됐음 일본을 물리친 이순신, 권율 장군님은 모두 라도에서 승전 하셨다
@@휀라디언츠 권율은 행주대첩인데 행주산성이 라도에 있음? 그리고 이순신 한사람 때문에 임진왜란 버틴건데 그기다 좀 추가하면 의병인데 의병대장 출신들 대부분이 산지가 많은 경상도 쪽임
@@AaAa-kx1hp 전라도에서 쌀 없었으면 다 죽었어
그리고 권율이 행주산성에서만 있었음? 거긴 잠깐 있었고 전라도 방어 책임잔데 몬솔 전라도에서 못 막고 지원 없었으면 나라 망했어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가장 위대 하지만 그 휘하 장졸들은 모두 라도 군인 이였어 결국 라도가 나라를 구한거지
서희가 지혜롭게 처세했네요. 거란은 욕심쟁이 국가였지요.
고려가 그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고구려나 발해의 만주 영토를 점령하여 다스리지 못한 게 아쉽다고들 얘기하는데, 《고려사》'숙종 세가 2년'에는 귀주대첩 이후 여진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요나라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까지를 고려의 북방 영토로 인정해버리는 기록이 있음.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로 《고려사》'지리지' 부분을 보면 고려의 동북 영토가 고구려보다 넓었다고 기록했는데 고려의 만주 경략에 대해서는 이 외에도 추가적 증빙 사료가 정말 수두룩 함. 이건 무슨 환빠같은 정신나가서 유체이탈하는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고려를 깎아 내리기에 급급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편찬한《고려사》에 명확하게 기록된 내용들임.
즉 왜곡된 교육에 의한 우리들의 비뚫어진 상식과는 달리 당대의 고려인들은 문종 때 완성된 해동천하 세계관 내의 옛 발해 지역 대부분을 고려의 땅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며, 이미 고려의 천자가 다스리고 있는 해동천하의 강역으로써 제국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만주 땅은 고려가 간접통치를 하느냐 직접통치를 하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인데 그 중 직접통치를 시도한 게 바로 윤관의 여진 정벌임. 따라서 교과서의 고려 지도는 다시 그려져야 함. 간접통치라고 영토에서 전부 배제 하려면 당나라 청나라 등 자칭 중국사의 지도들도 전부 다시 그리든가.
우리 역사 중 조선 유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난도질 되면서 가장 많이 훼손 된 게 고려사임. 우린 그런 역사를 그대로 배웠던 거고. 이렇게 빽트를 제시해도 환빠몰이와 현실부정으로 일관하며 떠먹여진 지식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가여운 개돼지들.. 이제 좀 스스로 떠먹어도 보면서 사람 구실을 할 때가 되지 않았니?
국토의 세로길이보다 가로길이가 1.5배이상이였다던데
이새기 아직도 이러냐? ㅋㅋㅋ
좋아네요😂
11월나옵니다 갓여요전쟁 사극드라마 서희조상님 강감찬조상님 열심히 시청할게요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보다가 궁금해서 못참고 온 1인 입니다
저같은 분 손
와 임용한 진짜 젊을때네 ㄷㄷㄷ
멋짐
현종은 왜 영화로 안나오는거야~ 고려의 성군중 하나인데
출신때문아닐까요? 근친혼으로 혈족을 이어가던 당시 상황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사생아다보니 특정 불편하신 분들이 이런 인물을 영화로 만드냐고 할 가능성도...
@@siwoobi 개독들때문이라고 말하면 됨
@@Floor42nd 정신병?
더 놀라운건 바로 서희 와 강감찬이 무인이 아니라 문신 이라는 사실...
반달 엿군요! ㅋㅋ
그 당시 동북아 정세가 그랬어요.최고 사령관은 문신.휘하는 무신.
고려 당시는 문신이라 해도 병법서나 무예를 같이 연마할 것을 요구받았죠
유교경전이나 외우고 시나 읊으면 되던 시기랑은 질적으로 다르죠
고려말 성리학이 전래된 이후에 조선 성종이후에 본격화된 인간본성을 탐구한답시고 철학적 담론이나 일삼던 문신을 생각하면 안됨
흔히 보는 삼국지만 생각해도, 여포나 관우같은 무장들보다 제갈량 육손같은 문신들이 훈수죠 군대를 통솔 잘하죠.
최고사령관이 무장일필요 없어요.임진란떄도 조선의 도원수ㅇ가 문신인 권율이었고, 전쟁흐름을 바꾼 이신순장군도 원래는 문과시험을 준비하던 인물이구요.
하긴 사령관이 싸움 잘할 필요는 없지
병사 통솔과 병법을 얼마나 잘활용하는지가 중점이지
고려는 대륙에 있었고 거란은 만주
두 지역 모두 고구려 영토
전쟁은 대륙에서 일어난 일
거란이 먹잘 것 없이 한반도를 노리냐 중국 대륙을 노린거다
강동6주도 대륙이다
이성계가 중국 영토를 포기하고 한양천도하면서 한반도 역사가 시작된다
멋있다❤
대단한 우리민족.
국뽕 베제하고 봐도 이때는 진짜...후덜덜하긴 했는데 후대로 가면 노답 그 자체ㅠ
넘나 재미있게 시청하고있습니다.강감찬역을 맡은 최수종 옉시최고!
고려 8대왕 현종때의 고려는 완전 싸움닭이었지~
중국인들이 두려워하던 거란족을 굴복시켰으니까
중국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거란이라면 거란에게 고려는 공포의 대상이었음
근데 적군의 군대를 그자리에서 궤멸시킨것은 우리역사상 이전투가 마지막입니다
다시 봐도 용맹했던 우리민족 고구려
그랬던 고려가 몽골군 3만의 침략을 받게 되는데...
거란입장에선 변방의 조그만나라에 겁도 줬고 땅도 조금 떼줬으니 얘네는 일단 이걸로 마무리짓고 진짜 본격적으로 송을 격파한거구만. 진짜 목적은 고려가 아니라 송이였네.
국뽕이 넘치는 고려사 .
재밌게 잘 봤습니다.
우리나라 위대한 장군은 강감찬이다. 한국은 삼신이 있는 나라이다. 위대한 이나라 삽살개 같은 강감찬
민족의 드높은 기개와 격을 보이시다. 완벽한 장수이다. 고려의 힘을 보다.
강감찬은 문신입니다.
@@집시데인저-c3f 강감찬은 체격도 왜소 했다고 하는데 값옷을입고 칼들고 전쟁터를 누벼는지 수많은 군사들 지휘하고 그게대단한겁니다
@@관심법-g2c 이성계가 특이한 케이스이지 지휘관은 직접 싸우는 경우는 잘 없죠.
@@집시데인저-c3f 엣날 장군들은요 최전방에서 칼들고 적의 목을베고 그랬어요? 현대 장군들은 후방에서 지휘만 했죠?
@@관심법-g2c 총지휘관은 다 문관이었어요. 직접 칼들고 안싸웁니다. 고금을 통틀어 마찬가지에요.
임용한 박사님 리즈시절 ㅋㅋ
임용한박사님젊은모습보니 머리숱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