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의 목적은 슐레지엔 방어임. 슐레지엔의 약점은 지도에서 보듯 너무 길게 뻗어있는 모양이라 허리를 끊기면 고립됨. 그래서 작센을 점령하면 영토가 두터워 지면서 슐레지엔 방어가 쉽게 됨. 7년전쟁으로 작센을 점령하진 못했지만 슐레지엔에대한 확고한 영유권을 인정받으면서 프로이센의 목적은 달성된거임. 그래서 프로이센이 이긴 전쟁이 된거.
프리드리히 대왕은 결과론적으로 고평가되는 인물이지요. 사실 7년 전쟁 초반에 프리드리히의 대전략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오스트리아를 기습 공격해서 항복시키고 러시아에 맞선다는게 그의 대전략이었죠. 실제로 작센을 기습 침공하면서 수적 우세를 두고 벌인 몇번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승리라는 결과에 비해 피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결과 결국 오스트리아가 군을 본격적으로 동원한 콜린 전투에서 말그대로 개박살이 납니다. 로이텐전투에서 빛나는 성과를 내며 이후 분투해보지만 이미 로이텐 전투를 다섯번은 더 해야 할 정도로 전황은 불리해졌죠. 이후 전선은 프로이센 수도 코앞까지 밀립니다. 이때 오스트리아, 프랑스, 러시아가 동맹끼리 눈치보기하고 각 국가 내부의 혼란으로 인해 시간이 꽤 끌립니다. 프리드리히는 뭐했냐고요? 자살각 재고 있었습니다... 만약 예카테리나가 몇주라도 더 살았다면, 또는 러시아가 조금이라도 선진적인 정치체제를 지녀서 외교에 연속성이 있었다면 프리드리히는 프로이센을 골로 보낸 암군 오브 암군이 되었을겁니다.. 간혹 보면 예카테리나 사후 러시아 차르가 프리드리히를 지원한 것도 프리드리히 대왕의 명성 덕이라고 하는 소리가 있는데... 그게 명성 덕분이려면 프리드리히 대왕의 명성이 예카테리나를 죽였어야죠 ㅋㅋㅋ 예카테리나가 급사하지 않았다면 빠돌이짓도 없었고, 무엇보다 프리드리히의 '명성'이라는거 때문에 러시아가 전선에 개입한겁니다.
프리드리히가 패장이었다면, 빠돌이짓 안 하죠 사무라이 좋아하는 것처럼, 강한 힘을 동경하는 걸 부정할 수는 없죠. 힘도 약한 애가 강국들 상대로 많은 승리도 일궈내고, 강한 군대를 조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니깐, 러시아가 볼 땐 저런 거 우리가 하면 어떨까 하고 우상으로 생각할 수 있죠. 오히려 프리드리히의 결과만 놓고 볼게 아니라, 독일은 항상 놀라운게 그길이 험난하고 죽을 길이어도 가야하는 길이라면 갔었다는 걸 고려해봤으면 좋겠네요. 다른 나라 같으면 독일처럼 긴 시간동안 칩박받으면 죽어버릴텐데, 프리드리히 뿐만 아니라 이후의 군주들과 1,2차 세계대전까지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국으로 가야한다고 깨달았고, 그 길에 프랑스 러시아를 눌러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전략을 수행했습니다 독일의 전쟁이 정당하다는 건 아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시대적 과제가 국가에 주어졌을 때, 국가의 책무는 무엇이고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당장 임진왜란 이래로 조선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죠. 선조,광해군, 인조 모두 시대의 변곡점에 있었고, 프리드리히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양측의 대처는 다릅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직업군인을 키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만, 만명 키우는데 호조의 재정 3분에2가 나가니깐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 하죠. 당시에 훈련도감 애들이 힘든 일 안할려하고, 양반들한테 행채부리고, 뭐가 어떻고 안 좋은 애기를 하면서 징병제이 대한 좋은 애기를 합니다. 단지 돈 많이 써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게 아니라, 군비를 모으려면 세수를 확충해햐 하고, 그러면 양반도 병역의무를 회피할 수 없고 특권이라 생각했던 군포도 내야하고, 또 산업을 키워 시장을 열면 세수는 들어오는데, 관료가 쥐고 있던 경제권이 민간에 가고, 민간에 부호가 생기면 새로운 기득권층이 생기니 서로간에 충돌이 생기고, 또 자본이 돌기에 생기는 문제들이 늘어나니, 그거 안하고, 차라리 현상을 유지하면서 우리 현 체제 내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거만 하자 하니 조선의 비극이 생기는거죠. 반대로 프리드리히는 직업군인 시대 인 걸 알고, 농민은 농사만 짓고 군인은 군인만 하게끔 했습니다. 물론 프로이센 인구가 자체가 적고 국민이 병역을 안지면 병력보충이 안되니깐 기본적인 훈련은 시키고, 많은 수를 외국인들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부사관을 키우고 사관학교 만들어 자의든 타의든 지주들 자녀들을 입학시켜 그들만의 집단의식을 만들어주고, 군대 내에서는 체벌을 통해 조련했죠. 그리고 국가가 주도해 산업을 키우면서 오스트리아로부터 슐리지엔을 뜯어내면서 인구 산업지대를 확보할 수 있었죠. 그리고 외교도 조선처럼 명분,의리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 누가 나에게 이득이 되고, 이익을 나눌 수 있는 국가가 어디냐를 보고 변화무쌍하게 외교를 합니다. 프리드리히 좋아요 사랑해요 했던 그 러시아 황제 뿐만 개 이름을 프리드리히라고 지을 정도로 프리드리히를 싫어했던 테제지아도 프리드리히 보고 이것저것 벤치마킹합니다. 테레지아 같은 사람도 인정한다는 거죠.예를 들어 사관학교 시스템 이런거 가져와서 요긴하게 써먹습니다. 다만, 프로이센과 달리 오스트리아에 맞게 인종차별하지 말고, 두드려패지 않고 서로 존대해라 등 오스트리아에 맞게 운영하죠. 그러니 프리드리히한테 단지 그 결과만 보고 안되는 싸음을 왜 하냐 할게 아니라, 조선이나 프랑스를 비교해보고 다른 나라들은 지금 상태에선 안돼 이거는 할 수 있어 이런 상황인데 독일은 왜 가다가 죽고, 그 길목에 하기 싫은 개혁이 있어도 더 나은 미래를 찾아 우린 무조건 간다는 것인지 그걸 생각해봐야합니다. 즉 앞서 말했듯이 국가의 책무란 무엇이고, 국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제를 받았을 때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게 국가의 책무이냐인겁니다 프라드리히 애기하면 그런 애기도 하는 분도 있습니다. 도쿠가와처럼 때를 기다려서 힘 안들이고 일거양득하는 그런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런 애기하시죠. 그런데 도쿠가와도 앉아서 기회만 와라 한 사람도 아니고, 기회는 평소에도 수 없이 지나갑니다. 오히려 도쿠가와나 프리드리히 같은 사람은 계산을 하는 사람들이죠. 프로아신은 종교전쟁을 틈타 만신창이가 된 신성로마제국에게서 독립할 수 있었고, 폴란드랑 스웨덴이 전쟁힐 때 이리저리 붙어서 조금씩 땅 얻어내고, 그 밑천과 그동안 키워온 군대로 테레지아 왕위계승 을 기회로 오스트리아로부터 슐리지엔을 뺏을 수 있었죠. 프로이센만 기화가 많은게 아니라 옆나라 프랑스도 기회 엄청 많았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눈 앞이 이익, 할 수 있는 것믄 하니 무역과 경제 중심이던 네덜란드 들어갔다가 고전하고, 이탈리아 가서는 챙기지도 못하고 힘이란 누힘은 다쏟고, 아메리카에선 잘 싸웠는디, 속된 말로 유럽 본토에서 힘 자랑만 하고 있으니 지고. 나중에 프랑스에서 니오는 말이 그때 네덜란드나 이탈리아 도시들을 먹을게 아니라, 해군에 집중투자해서 나갔으면 영국해군에 막힐 일도 없고 식민지 전쟁에서 이겨 프랑스가 이런 꼴은 안됬을거라고 애기합니다. 사실 맞는 말이죠. 프랑스에서 함선 10대를 아메리카로 보내도, 가보면 영국해군은 20척이 있으니 싸움이 안되죠. 그러니 결과를 놓고 잘 했니 못했니를 따지기 보다 근본적인 걸 생각해봐야 합니다.
표도르3세 러시아 차르는 엘리자베타 여왕이 갑자기 죽어서 차르로 직위를 했고 6개월 뒤에 부인 예카테리나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프리드리히 2세랑는 친척 관계였고 표도르 3세가 12살까지 프로이센 포츠담에서 살았어요. 그때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를 추앙 했겠죠. 운칠기삼이라고 하는데 프리드리히는 실력뿐 아니라 운도 어마어마하게 좋은 사람이죠. 왕은 하늘이 낸다고 하는데, 하늘도 놀라는 운을 가지고 있기에 실력 좋은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프리드리히 2세를 엄청 존경 했어요.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점령 했을때 그의 무덤부터 찾았어요 정작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이런 운이 없었서 귀향가고 자살하죠. 어쨌든 그 후에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게 되고, 프리드리히는 지금의 독일의 기틀을 만든 왕이라 평가 받게 됩니다. 독일에서 제일 존경하는 왕이니, 미화는 당연한 것이겠죠.
너무 재미있어요 ㅎㅎ 몰입도 좋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소중한 영상 ^^^^ㅎㅎㅎㅎㅎ
오늘도 수준높은 영상 감사해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매니아썬님^^~
프로이센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학선님^^~
저스티스님 오늘 영상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열강 군사적 시스템 정치적 관점으로 보는 영상 가능할까요
잘볼께요^^
프로이센군 특유의 저 꼬깔콘 모양의 모자 이름이 뭔가요??
Grenadiermtze라는 척탄병 같은 정예부대가 쓰는 모자이며 7년 전쟁이후 프로이센군 때문에 유명해지면서 다른 국가들도 사용했습니다
서브폰으로봅니다.ㅎ
저스티스님
이날을기다렸지요
플필노트20u입니다ㅎ
ㅎ
축하드려요. 명준님^^~
@@justice20000 통합본
오늘꼭퇴근후봐야지요ㅎ
꿀잼인데용ㅎ.ㅎ제가폰을두개씁니당ㅎ
삼촌 생전에 내내 두들겨 맞았던 프로이센이 불쌍해서 독일통일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선사한 나폴레옹 3세의 위염이란...
위엄
프리드리히 대제의 군사적 업적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프로이센은 독일의 고구려 느낌납니다 현재 남아있는 땅이 거의 없는ㅋ
❤
왕가 계보도에서 아버지랑 남매이면 이모이자 시어머니가 아니라 고모이자 시어머니 아닌가요?
감자대왕 존잘이네...ㅎㅎ
프리드리히는 훌륭한 전략가이자 리더이기도 하지만,
감자를 보급 시켜 빈민을 구제한게 더 놀랍다.
가히 천재삘이 느껴지는 정치가이다.
오스트리아가 왜 졌는지...이해가 안가네요. 병력도 많았는데...충분히 방어가능했을거 같은데...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네요~
프로이센은 좀 더 자세히 다뤄도 충분히 재미있을듯 하네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넘 빨리 지나가서 아쉽~
네. 앞으로 유럽사 비중을 좀 더 높이려고 합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초록별청개구리님^^~
프리드리히가 오스트리아의 좌익을 노리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우익에 준 페이크에 낚이고 이걸 방어했다고 전투를 마무리지은, 즉 추격과 탐색 조차 안 한 무능함이 원인이죠
우왕좌왕 왔다갔다해서 진이 다 빠져서 패닉걸린 대군은 식은죽
❤❤❤❤❤❤❤❤❤😊
만주족이 하던걸 프로이센도 했네요
좋아요.댓글 구독만세❤
대왕이라 불리는 사람이지만 최대 업적이 운빨 덕분인 사람...
전열보병이 멍청해 보여도 강자들로 이름좀 날렸던 이집트 맘루크, 청나라 팔기군도 개박살 낼정도로 존나 강함. 왜 수백년간 저렇게 싸웠는지 알 수 있지
글쌔요, 프리드리히가 작센과 보헤미아를 침공했다가 파멸직전까지 몰린게 프로이센이 이긴게 아니라 진거 아닌가요?
마리아 테레지아도 슐레지엔을 탈환하지 못했으니 승자와 패자가 애매하긴 합니다만.
7년전쟁의 대부분의 기간을 대륙 3부인동맹 프오러 다굴을 받았음에도 끝까지 버텼으면 이긴거죠.
역대급 운빨이 작용했다하더라도 그또한 프리드리히 대왕 개인의 명성에서 발현된거니까요
슐레지엔을 점령함으로 전략적 승리라고 판단하는거죠.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의 피해가 더 크더라도 미군을 몰아냄으로서 전략적 승리로 판단하는 것처럼요. 전략적 목표를 확보하냐 못하냐가 이겼냐 졌냐의 기준이니
@@saranc595 그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이고 7년전쟁은 프리드리히가 유럽 질서를 재편하려고 작센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만.
@@saranc595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연장선으로 봤을땐 이겼다고 볼수 있지만, 7년전쟁만 봤을땐 엄청난 손해를 본거죠.
프로이센의 목적은 슐레지엔 방어임.
슐레지엔의 약점은 지도에서 보듯 너무 길게 뻗어있는 모양이라 허리를 끊기면 고립됨.
그래서 작센을 점령하면 영토가 두터워 지면서 슐레지엔 방어가 쉽게 됨.
7년전쟁으로 작센을 점령하진 못했지만 슐레지엔에대한 확고한 영유권을 인정받으면서 프로이센의 목적은 달성된거임.
그래서 프로이센이 이긴 전쟁이 된거.
프리드리히 대왕은 결과론적으로 고평가되는 인물이지요. 사실 7년 전쟁 초반에 프리드리히의 대전략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오스트리아를 기습 공격해서 항복시키고 러시아에 맞선다는게 그의 대전략이었죠. 실제로 작센을 기습 침공하면서 수적 우세를 두고 벌인 몇번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승리라는 결과에 비해 피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결과 결국 오스트리아가 군을 본격적으로 동원한 콜린 전투에서 말그대로 개박살이 납니다. 로이텐전투에서 빛나는 성과를 내며 이후 분투해보지만 이미 로이텐 전투를 다섯번은 더 해야 할 정도로 전황은 불리해졌죠. 이후 전선은 프로이센 수도 코앞까지 밀립니다. 이때 오스트리아, 프랑스, 러시아가 동맹끼리 눈치보기하고 각 국가 내부의 혼란으로 인해 시간이 꽤 끌립니다. 프리드리히는 뭐했냐고요? 자살각 재고 있었습니다... 만약 예카테리나가 몇주라도 더 살았다면, 또는 러시아가 조금이라도 선진적인 정치체제를 지녀서 외교에 연속성이 있었다면 프리드리히는 프로이센을 골로 보낸 암군 오브 암군이 되었을겁니다..
간혹 보면 예카테리나 사후 러시아 차르가 프리드리히를 지원한 것도 프리드리히 대왕의 명성 덕이라고 하는 소리가 있는데... 그게 명성 덕분이려면 프리드리히 대왕의 명성이 예카테리나를 죽였어야죠 ㅋㅋㅋ 예카테리나가 급사하지 않았다면 빠돌이짓도 없었고, 무엇보다 프리드리히의 '명성'이라는거 때문에 러시아가 전선에 개입한겁니다.
프리드리히가 패장이었다면, 빠돌이짓 안 하죠
사무라이 좋아하는 것처럼, 강한 힘을 동경하는 걸 부정할 수는 없죠. 힘도 약한 애가 강국들 상대로 많은 승리도 일궈내고, 강한 군대를 조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니깐, 러시아가 볼 땐 저런 거 우리가 하면 어떨까 하고 우상으로 생각할 수 있죠.
오히려 프리드리히의 결과만 놓고 볼게 아니라, 독일은 항상 놀라운게 그길이 험난하고 죽을 길이어도 가야하는 길이라면 갔었다는 걸 고려해봤으면 좋겠네요.
다른 나라 같으면 독일처럼 긴 시간동안 칩박받으면 죽어버릴텐데, 프리드리히 뿐만 아니라 이후의 군주들과 1,2차 세계대전까지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국으로 가야한다고 깨달았고, 그 길에 프랑스 러시아를 눌러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전략을 수행했습니다
독일의 전쟁이 정당하다는 건 아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시대적 과제가 국가에 주어졌을 때, 국가의 책무는 무엇이고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당장 임진왜란 이래로 조선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죠. 선조,광해군, 인조 모두 시대의 변곡점에 있었고, 프리드리히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양측의 대처는 다릅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직업군인을 키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만, 만명 키우는데 호조의 재정 3분에2가 나가니깐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 하죠. 당시에 훈련도감 애들이 힘든 일 안할려하고, 양반들한테 행채부리고, 뭐가 어떻고 안 좋은 애기를 하면서 징병제이 대한 좋은 애기를 합니다. 단지 돈 많이 써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게 아니라, 군비를 모으려면 세수를 확충해햐 하고, 그러면 양반도 병역의무를 회피할 수 없고 특권이라 생각했던 군포도 내야하고, 또 산업을 키워 시장을 열면 세수는 들어오는데, 관료가 쥐고 있던 경제권이 민간에 가고, 민간에 부호가 생기면 새로운 기득권층이 생기니 서로간에 충돌이 생기고, 또 자본이 돌기에 생기는 문제들이 늘어나니, 그거 안하고, 차라리 현상을 유지하면서 우리 현 체제 내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거만 하자 하니 조선의 비극이 생기는거죠.
반대로 프리드리히는 직업군인 시대 인 걸 알고, 농민은 농사만 짓고 군인은 군인만 하게끔 했습니다. 물론 프로이센 인구가 자체가 적고 국민이 병역을 안지면 병력보충이 안되니깐 기본적인 훈련은 시키고, 많은 수를 외국인들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부사관을 키우고 사관학교 만들어 자의든 타의든 지주들 자녀들을 입학시켜 그들만의 집단의식을 만들어주고, 군대 내에서는 체벌을 통해 조련했죠. 그리고 국가가 주도해 산업을 키우면서 오스트리아로부터 슐리지엔을 뜯어내면서 인구 산업지대를 확보할 수 있었죠. 그리고 외교도 조선처럼 명분,의리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 누가 나에게 이득이 되고, 이익을 나눌 수 있는 국가가 어디냐를 보고 변화무쌍하게 외교를 합니다.
프리드리히 좋아요 사랑해요 했던 그 러시아 황제 뿐만 개 이름을 프리드리히라고 지을 정도로 프리드리히를 싫어했던 테제지아도 프리드리히 보고 이것저것 벤치마킹합니다. 테레지아 같은 사람도 인정한다는 거죠.예를 들어 사관학교 시스템 이런거 가져와서 요긴하게 써먹습니다. 다만, 프로이센과 달리 오스트리아에 맞게 인종차별하지 말고, 두드려패지 않고 서로 존대해라 등 오스트리아에 맞게 운영하죠.
그러니 프리드리히한테 단지 그 결과만 보고 안되는 싸음을 왜 하냐 할게 아니라, 조선이나 프랑스를 비교해보고 다른 나라들은 지금 상태에선 안돼 이거는 할 수 있어 이런 상황인데 독일은 왜 가다가 죽고, 그 길목에 하기 싫은 개혁이 있어도 더 나은 미래를 찾아 우린 무조건 간다는 것인지 그걸 생각해봐야합니다. 즉 앞서 말했듯이 국가의 책무란 무엇이고, 국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제를 받았을 때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게 국가의 책무이냐인겁니다
프라드리히 애기하면 그런 애기도 하는 분도 있습니다. 도쿠가와처럼 때를 기다려서 힘 안들이고 일거양득하는 그런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런 애기하시죠. 그런데 도쿠가와도 앉아서 기회만 와라 한 사람도 아니고, 기회는 평소에도 수 없이 지나갑니다.
오히려 도쿠가와나 프리드리히 같은 사람은 계산을 하는 사람들이죠. 프로아신은 종교전쟁을 틈타 만신창이가 된 신성로마제국에게서 독립할 수 있었고, 폴란드랑 스웨덴이 전쟁힐 때 이리저리 붙어서 조금씩 땅 얻어내고, 그 밑천과 그동안 키워온 군대로 테레지아 왕위계승 을 기회로 오스트리아로부터 슐리지엔을 뺏을 수 있었죠. 프로이센만 기화가 많은게 아니라 옆나라 프랑스도 기회 엄청 많았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눈 앞이 이익, 할 수 있는 것믄 하니 무역과 경제 중심이던 네덜란드 들어갔다가 고전하고, 이탈리아 가서는 챙기지도 못하고 힘이란 누힘은 다쏟고, 아메리카에선 잘 싸웠는디, 속된 말로 유럽 본토에서 힘 자랑만 하고 있으니 지고. 나중에 프랑스에서 니오는 말이 그때 네덜란드나 이탈리아 도시들을 먹을게 아니라, 해군에 집중투자해서 나갔으면 영국해군에 막힐 일도 없고 식민지 전쟁에서 이겨 프랑스가 이런 꼴은 안됬을거라고 애기합니다. 사실 맞는 말이죠. 프랑스에서 함선 10대를 아메리카로 보내도, 가보면 영국해군은 20척이 있으니 싸움이 안되죠.
그러니 결과를 놓고 잘 했니 못했니를 따지기 보다 근본적인 걸 생각해봐야 합니다.
표도르3세 러시아 차르는 엘리자베타 여왕이 갑자기 죽어서 차르로 직위를 했고 6개월 뒤에 부인 예카테리나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프리드리히 2세랑는 친척 관계였고
표도르 3세가 12살까지 프로이센 포츠담에서 살았어요.
그때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를 추앙 했겠죠.
운칠기삼이라고 하는데 프리드리히는 실력뿐 아니라 운도 어마어마하게 좋은 사람이죠.
왕은 하늘이 낸다고 하는데,
하늘도 놀라는 운을 가지고 있기에
실력 좋은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프리드리히 2세를 엄청 존경 했어요.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점령 했을때 그의 무덤부터 찾았어요
정작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이런 운이 없었서 귀향가고 자살하죠.
어쨌든 그 후에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게 되고, 프리드리히는 지금의 독일의 기틀을 만든 왕이라 평가 받게 됩니다.
독일에서 제일 존경하는 왕이니,
미화는 당연한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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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승달 전술로 포위하는 것만이 전술이 아닌데 창작물에선 죽어라고 칸나이만 따라하지 이런 전투는 관심없어해서 안타까움.
프리드리히 를 대제 대왕이라기엔 글쎄. 운빨이 정말 좋았던 사람. 그 극단의 운빨이 아니었으면 히틀러나 나폴레옹 엔딩을 맞았을 양반임. 야전군 지휘관으론 일류가 맞긴한데 그게 또 나폴레옹이란 완벽한 상위호환이 있어서 좀 콩라인임.
운도 실력이지
소대장 보병학교 과정 영상 교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