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토부르크발트 전투(기원후 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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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6 окт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65

  • @letranger000
    @letranger000 Год назад +5

    감사합니다

  • @note20ultra5ggalaxy4
    @note20ultra5ggalaxy4 Год назад +3

    감사합니다!!!!!!ㅎㅎㅎㅎㅎ

  • @note20ultra5ggalaxy4
    @note20ultra5ggalaxy4 Год назад +5

    저스티스님 응원합니다 !!! ㅎㅎㅎ

  • @매니아썬
    @매니아썬 Год назад +6

    첨 듣는 내용이네요 감사합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1

      그렇시군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매니아썬님~

  • @이학선-y8t
    @이학선-y8t Год назад +4

    저스티스님 잘봤습니다 👍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1

      네. 감사합니다. 이학선님^^~

  • @note20ultra5ggalaxy4
    @note20ultra5ggalaxy4 Год назад +4

    쵝오 ^^ㅎ

  • @happyhan608
    @happyhan608 Год назад +4

    😄👍🏻🎉❤

  • @KOREA_CONQUEROR
    @KOREA_CONQUEROR Год назад +3

    공부 많이 하시네 잘 봤어요

  • @양아즈
    @양아즈 Год назад +3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헤르만의 이후 행적도 궁금하네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3

      이후에도 로마는 게르마니쿠스를 앞세워서 계속 공격하고 헤르만은 계속 대항해서 싸웁니다.
      감사합니다. 양아즈님~

  • @jun5549
    @jun5549 Год назад +6

    이거까지,,,! 남아메리카도 한번 다뤄주세요!

    • @미르나므
      @미르나므 Год назад

      남아메리카는 역사가 없습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3

      네. 나중에 공부해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김병진-p6p
    @김병진-p6p Год назад +1

    잘볼께요^^ 이때, 로마제국이 토이토부르크발트전투에서 승리를 해야 될터인데요 너무 아쉽고 슬픕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그런가요..로마편이시군요^^~
      저는 게르만편^^~
      항상 감사드립니다. 김병진님~

  • @이상민-d4t9j
    @이상민-d4t9j Год назад +4

    게르만 만족의 전설과 같은 전투!

  • @user-tu9yj8vt4j
    @user-tu9yj8vt4j Год назад +7

    독일에서는 게르만민족의 위대한 승리 이런식으로 선전했죠

    • @이재홍-k1n
      @이재홍-k1n Год назад +3

      실제로 맞는 얘기죠.다만 이 전투의 영웅이었던 아르미니우스는 독일의 흑역사인 오스트리아출신의 누구가 정권차원에서 띄우는 바람에 상당기간 묻혀 지내야했죠.솔직히 인성도 좋지 못했고.

  • @cz1310
    @cz1310 Год назад +4

    제가 알기로는 나치때 괴링에 의해 이게 부각되고 헤르만이라는 독일식이름도 붙여졌따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발해건국의 천문령 전투와 흡사한 듯?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2

      제가 읽은 책(유럽의 폭풍 p111)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세기말 신성로마제국의 문학가 울리히 폰 후텐이 [아르미니우스 대화록]이라는 책(라틴어로 쓰임)에서 처음으로 아르미니우스를 독일식 이름인 헤르만으로 바꾼 것이고
      헤르만(Hermann)은 군대(Heer)의 지도자라는 의미로 Heer-mann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COST ZERO님.

  • @곽철근-w7i
    @곽철근-w7i Год назад

    시청이 늦어서 소감도 늦게 적네요. 역시 국가건 사람이건 방심은 금물입니다.
    아버지가 뒤늦게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셨고 방심한 저도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맛도 모르고 냄새도 못 맞고 입맛도 이상하게 변하고 가래 끓고 심하게 기침이 나네요.
    부디 저스티스님 영상을 보는 분들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네요. 이번 영상도 수고하셨습니다. ^^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2

      요즘에 코로나 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나봐요.
      포털 메인에 나올 정도니...
      저도 작년에 걸려서 한 일주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 @오리이-x5w
    @오리이-x5w Год назад +2

    와 진짜 꿀내용

  • @vinniekim6899
    @vinniekim6899 Год назад +7

    게르만 지도자였던 아르미니우스를 비롯해서 로마군단 복무자 출신들이 게르만병력의 대부분이어서 로마군의 강점을 최소화시키면서 약점을 파고들어 승리한 전투로 배웠습니다.
    우회가 어려운 좁은 기동로에서 전투를 강요했고 여기서 로마군은 대다급, 중대급의 기민한 대응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특히 중대급 방진의 경우 측방공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했는데 그리스 방진보다야 낫지만 병력의 숙련도에 따라 종으로 배치하는 로미식 방진은 측방위협시 그상태 그대로 좌향좌 우향우가 아니라 정면자체를 90도 트는 방식이었다고합니다. 그런데 좁은 기동로에서는 이런 전환이 어려웠고 방진을 짜는것도 힘든수준이었기 때문에 개병전투 비중이 높을수밖에 없었는데...
    개병전투라면 당시 게르만인들이 워낙 크고 장대해서 월등했다고합니다.
    결국 적의 전술에 대한 이해,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하고 이를 강요할수있는 지형으로 유도하여 내가 원하는곳에서 전투를 실시한것이 승리의 비결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음 이걸로 이번달 기고문 써야겠어요.
    뭐할까 고민이었는데 감사합니다.
    정의는 늘 승리하...아..아닙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1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Vinnie Kim님~

    • @vinniekim6899
      @vinniekim6899 Год назад +1

      @@justice20000 아닙니다. 외려 제가 감사드려요.
      언제나 이달에는 어떤잔쟁사 분석 기고문을 써야하나 고민하고있던 순간 주인장 글 알림이 뜨더군요.
      무릎을 탁 쳤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루카치-u3m
    @루카치-u3m Год назад +5

    아르미니우스와 비슷했지만 결국 패배당한 베르킨게토릭스와 갈리아 알레시아 전투도 다뤄주시면 좋겠습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1

      네. 알레시아 전투는 로마할때 중간 중간에 낑겨서 했었는데 따로 한적은 없는거 같네요.
      나중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soan-gx6pf
    @soan-gx6pf Год назад +2

    궁금한게있습니다. 이사건이 로마 9군단 사리지기전인가요 후인가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ko.wikipedia.org/wiki/%ED%9E%88%EC%8A%A4%ED%8C%8C%EB%82%98_%EC%A0%9C9%EA%B5%B0%EB%8B%A8
      위키백과는 기원후 120년경에 사라진다고 하네요. 토이토부르크발트 전투는 기원후 9년이니까 나중인듯 하네요. 감사합니다.

  • @note20ultra5ggalaxy4
    @note20ultra5ggalaxy4 Год назад +2

    이제봄 ㅎㅎㅎ

  • @conatus969
    @conatus969 Год назад +1

    게르마니쿠스를 빼고 바루스를 넣은 아우구스투스의 이해할수없는 인사가 패배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아르미니우스도 결국 게르만을 통합하지 못하고 부족들간의 전투에서 죽었는데 베르킨게토릭스에 비해 너무 고평가된거 같긴합니다

    • @user-uc4px3vu6z
      @user-uc4px3vu6z Год назад

      뭐 강력한 로마군을 섬멸시킨 최초의 이민족이니까 저평가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물론 게토릭스의 상대는 로마역사상 최고의 장군의 반열에 있는 카이사르였고 아르미니우스의 상대는 무능한 바루스였기 때문이겠지만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로마의 팽창이 멈추게 한 사건이니 전술가로서의 능력은 절대 폄훼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애초에 베르킨게토릭스가 많이 유능했다고 봐야죠

  • @옼케발
    @옼케발 Год назад +1

    이 전투를 계기로 게르만족이 로마인이 되는건 서로마가 망한 후가 되었죠...

  • @진석장-d7x
    @진석장-d7x Год назад +1

    당시 라틴을 막아낸 게르만족이 5세기경에 영국도 가고 프랑스도 가고 이태리까지 갔을건데 그러면 현재 영국도 프랑스도 다 저 헤르만의 자손이지 않을까요? 근데 단지 지역이 게르만이라고 19세기에 게르만지역에 남아 있던 자손만 진짜 자손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앵글로 색슨족이나 프랑크왕국도 다 라틴인 로마를 막아낸 게르만족이잖아요?

    • @markthomson4537
      @markthomson4537 Год назад

      원래 어떤 대외적인 열등감이나 내재적인 분열의 위기감이 심할수록 족보나 어떤 권위적인 상징성을 내세우는 법이죠.
      그 중 자기네가 정통성이 계승된 적자라는 타령을 많이 하기도 하죠.
      과거에 로마제국의 영광을 잇는 진정한 계승자는 우리다( 신성로마제국)등등,,,, 뭐 히틀러는 게르만은 물론 전 인도유럽인종 통틀어 독일인이 우월하고 우리 독일인이 아리아인종의 완벽형이라고 했을정도(그러면서 순수한 게르만인종을 유전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야심찬 계획(레벤스보른)으로 찾은 이상적인 나라는 노르웨이 덴마크 라는게 아이러니죠 ㅋㅋㅋ-지들은 막상 게르만의 적자라면서 뭔가의 아쉬움을 숨긴채, 스칸디나비아 인(북게르만인)들을 가르키며 , 그들의 조상은 일부가 유럽의 대륙 각지로 남하했을때 남하하지 않고 게르만의 발원지를 지키며 타인종과 별로 섞이지 않았다며, 원류적 게르만의 (프로토 저매닉 ) 혈통을 잘 지켜온 북게르만인이 게르만문화권에서 가장 이상적인 게르만 인종으로 보고 있었을 지도 ㅋㅋㅋ(독일이라 쓰고 잡종이라 읽는다?))

  • @이재홍-k1n
    @이재홍-k1n Год назад

    아인잘루트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맘루크가 야만인도 아니었고 키트부카의 몽골군은 혼성군이었다는 점이 있겠네요.이후에는 차가타이,주치울루스와의 대립으로 시리아,이집트는 포기해야 했죠.

  • @김진형-b1l
    @김진형-b1l Год назад

    소위 바루스의 재난이라고 하죠.. 중국 쪽에도 바루스와 비견할 만한 사건이 있었는데 잘 생각이... 한 무제 때 이광리던가?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2

      흉노와 한의 전쟁과 관련하여 제가 읽은 책(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 p45)에 이광리와 관련하여 이런 소개가 있어서 잠깐 요약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무제는 기원전 104년 이광리를 이사장군에 임명하여 대완(현 우즈벡 페르가나) 원정을 감행케 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며 피처럼 붉은 땀을 흘리는 '한혈마'를 얻기 위함이었지만, 이광리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분노한 무제는 기원전 102년 재차 원정했고 이광리는 결국 대완의 수도 귀산성을 포위하고 결국 말 수십필을 얻어 귀국했다, 이에 감격한 무제는 '천마가'를 지었다. 그가 한혈마에 집착한 이유는 천마를 타고 곤륜산에 올라 서왕모를 만나서 불로장생의 영약을 얻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었다"
      즉, 처음에는 치욕을 당하고 돌아와서 무제를 분노케 했지만 나중에는 성공했네요.
      로마도 어쨌든 게르마니쿠스를 앞세워 보복하니까요...
      감사합니다. 김진형님.

  • @MarieZorroIndiana
    @MarieZorroIndiana Год назад

    오늘도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써야 하는데 인맥만 보다 처참히 무너지는군요. ㅉㅉ
    아까운 목숨들만 많이 잃었네요.
    죽은 사람만 불쌍...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1

      네. 저는 이번 영상 공부하면서 '역시 믿을 사람 하나 없구만...' 이란 생각이 계속 들더라는..
      빌헬름1세가 건설한 헤르만기념비 건설이 시작된 것이 1838년이고 독일이 통일된 것이 1875년이니까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려고 한창 난리 법석을 떨던 시기부터 기념비 건설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이면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빈체제로 들어서면서 구체제로 돌아가려는 세력과 이를 거부하고 자유주의, 민족주의로 나가려는 신진 세력간의 다툼이 치열하던 상황이었거든요.
      그 상황의 틀에서 이해하면 빌헬름 1세(저는 비스마르크라고 생각합니다만)의 생각은, 헤르만이라는 상징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게르만 민족주의'를 강화한 후 외부의 방해를 뚫고 통일을 완성하려는 의지로 건설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한주되세요.초록별청개구리님^^~

    • @MarieZorroIndiana
      @MarieZorroIndiana Год назад

      @@justice20000
      내부의 단결을 위해선 전설과 신화를 만드는건 예전부터 당연한거였나봅니다.
      종교도 그중하겠지만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1

      그렇죠. 언제나 그 구심점이 필요하죠...

    • @MarieZorroIndiana
      @MarieZorroIndiana Год назад

      @@justice20000
      그 구심점을 잘 파악하고, 옳바른 의도와 목표면 성군이 되겠지만...그걸 악용하면 독재자...
      시민은 그 사악함을 잘 파악해야하는 혜안이 필요하겠구요.
      빌헬름1세는 어느쪽일까요? 잘 모르는 인물인지라...영상을 다시 한번 봐야겠네요~복습!

  • @wallolo
    @wallolo Год назад

    헤르만은 독일어인데... 저때도 독일어를 썼나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제가 책에서 읽은 바로는 전투가 일어날 당시에는 '헤르만' 이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밑에 다른 질문에 답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답이 될지 모르겠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Pergamon님~

    • @toughjjh
      @toughjjh Год назад

      독일인이 독일어 쓰지? 프랑스어 쓰나요?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삼국인이 한국어 썼나요?

    • @wallolo
      @wallolo Год назад

      @@toughjjh 그럼 삼국시대 사람이 현대 한국어 썼나요?

  • @note20ultra5ggalaxy4
    @note20ultra5ggalaxy4 Год назад +1

    늦엇따 ㅜㅜㅜㅜ

  • @정승헌-h1y
    @정승헌-h1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사령관의 차이 승패를 가려줘. 이 로인해서 로마는계르만인을 무서워하줘...
    무능한 바로스.

  •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2

    저 시대에 전투 기록이 저렇게 세세히 남아있는게 너무 부럽다

    • @이재홍-k1n
      @이재홍-k1n Год назад

      우리에게도 기록의 국가 문화대국 조선이 있습니다.

    • @toughjjh
      @toughjjh Год назад

      중국은 더 세세히 남아있는데요??

  • @tundratiger9473
    @tundratiger9473 Год назад +1

    가끔 생각해보면 2000년전이 존재했다는게 신기하다.

  • @유성-q5l
    @유성-q5l Год назад

    부족연합 이랑 국가체제군대 싸움이네
    로마가 이집트 카르타고 빼면 주변이 다 국가라고하기엔 애매한 부족연맹체 뿐이구만! 로마가 강했다긴보다 주변이 그냥 부족 ㅉㅉ

  • @QAWBB
    @QAWBB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지휘관과 장교들이 다 자살로 죽은걸보면 개무능력한 쓰레기들이 장교자리만 꿰차고 있었나봅니다

  • @꼬부기-y2w
    @꼬부기-y2w Год назад

    멋진강의 감사합니다. 이제껏 이전투에 대한 설명중최고입니다. 역사는 반복이라고. 독일이라는 나라가 세계를 영국처럼제패못한 이유가 이전투에 있죠. 당당하게 싸우지않고 기만전술에 의한 이승리는 어딘가 좀스럽지않나요? 그래서 세계대전에서 패한것이지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Год назад +1

      잘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부기님~

    • @toughjjh
      @toughjjh Год назад

      크억....-.-;; 전쟁에서 당당하게 싸우는게 어디있나요?
      "송양지인"의 코미디를 바라는건거요?
      저 승리는 로마제국을 무찌른 현 독일(게르만)의 빛나는 승리고 개국전쟁이 맞습니다.

    • @꼬부기-y2w
      @꼬부기-y2w Год назад

      한니발의. 칸네를 보세요. 비록 실패를 했지만 얼마나 명분있게 싸웠나요. 반면 이숲전투후 2년후 게르마니쿠스가 발견한 그 학살의 현장은 2년이 지난후에도 목불인견이었지요. 전쟁에도 품격이. 있는거에요.

  • @BeautifulWorld-jl4po
    @BeautifulWorld-jl4po Год назад

    넘 지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