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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한 도시야사입니다. 몰라서도 못가기도 했고, 서울은 대표 관광지나 한강의 이미지를 가졌는데, 김시덕 박사님 저 '서울 선언' 책을 읽고, 일프로 영상보고, 두려움을 조금 뒤로하고, 골목 골목 찬찬히 다녀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집 가게 일상등이 대단한 역사이자, 의미가 깊게 느껴졌습니다.. 😀⭐
Kuwabara Shisei (구와바라 시세이). 1964년부터 두 번째 작업으로 한국을 취재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며 40여 년간 한국을 수십 차례 드나들면서 10만여 컷의 방대한 작업량을 축적하였다. 그가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사건 전면에서 벗어나지만 현실의 핵심을 찌르는 영상미학과 표현 스타일’을 시종일관 견지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사진의 본질은 ‘기록성’이라는 신념을 평생 구현해 온 ‘보도사진가’로서 예술사진을 지향해 온 한국사진계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겠으며, 1960-1970년대에 집중 촬영된 그의 사진은 한국사진의 공백을 메워 주는 귀중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의 본질은 '기록성' 이라는 부분이 참 마음에 와 닿네요.
토막굴이라고 하는집이 90 년대까지도 있었죠 도곡동 , 개포동 , 서초동 같은곳에 가면 있었는데요 양재천 다리 아래 존재 했어요 그 당시에는 타팰이 없었죠 그 타팰 부지에 가면 훈련하년 전경들도 있었고 암튼 그쪽에 가면 토막굴 같은게 있었죠 지금도 구룡 마을 가보세요 물론 모양은 다르지만 ... 그리고 개포동 일부 아주 일부지만 ' 이런 주택이 강남이 있다고 ? ' 할만한것들이 남아 있을거에요 물론 토막굴하고는 많이 달라졌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남의 화려한 모습하고는 많이 다르죠 제 기억에 양재천이라는게 어릴때 기억은 지금 처럼 잘 정비된 모습이 아니라 오패수도 나왔던 기억이 있고 가까이 가면 냄새도 나고 아무튼 지금하고는 많이 달랐어요 오래 사신분들은 다 기억할겁니다 대치동 도곡동 개포동을 그 당시에는 부촌이라고 하지도 않았죠 아무튼 서울 여기저기 정말 많이 변했어요
만리 청파 언덕이 예로부터 일본 교도관들이 살던 동네였습니다. 청파 초등학교는 일본시대때부터 사용하던 건물이 있었는데 스팀장치가 있었고, 1년에 한번씩 일본 할머니들이 10명정도 방문하여 이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라고 말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할머니들의 부친이 교도관이었던 것이죠.
15:27~ 정말 좋아하는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님이 소개되서 반갑네요^^ 해당 작품명은 입니다. 한일국교협정에 반대하는 서울대 문리대생들과 고려대생들이 종로에서 비 맞으며 침묵 시위하는 모습. 당시 시위대에는 시인 김지하와 이재오 김덕룡 손학규 이명박 등 훗날 정치계 거물로 성장한 인물들이 다수..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애를 가감없이 담아 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서울역 서부방면에 대해 “뭔가 알 수 없다”고 점잖게 표현하셨네요. 실상 중림동에서 시작해서 만리재 공덕 아현 애오개 대흥 신수동 그리고 한강 따라 쭉, 2000년대 초반까지 판자촌 내지 슬럼의 연담지역이었음. 간선도로를 지날 뿐 외부인이 들어갈 일도 없고 딱히 가고 싶지도 않았던 곳들. 대학 와서 처음 공덕오거리 지나다 그 뒤쪽 달동네를 놀라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기억.. 그랬던 마포구 동부가 이제 마용성 등극?의 일등공신 노릇을 하고 있으니, 언뜻 신기하다가도 그게 도시부동산의 이치라는 걸 이런 콘텐츠를 보며 재확인하게 됨
너무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아쉬운 점은 진행하시는 김시덕 박사님의 말씀을 계속 듣고 싶은데 진행자가 많다 보니 박사님 말을 막고 화재를 다른 곳으로 전환시키는 면이 있어요. 일프로TV는 삼프로 3분 중 1분 정도만 진행 하시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해보면서 정프로가 적절한 리액션과 더불어 계속 화재를 진행하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십니다.
08:50사진나올때 영상에서 누군가 주차장 됬다고 했는데 로드뷰로 보니 진짜 피로티주차장으로 빌라가 재건축 되어 있네요. 한20년쯤 건축해 보이던데. 그리고 옛날에 폭우로 저런 축대가 많이 무너졌었어요. 서울에 주택가 들어가면 저런 축대가 흔하게 보였는데 요즘 아파트 재개발로 많이 사라지긴 했네요.
만리동1가 ( 봉래정3정목 - 호라이쵸산쵸메 ) 봉래정 . 봉래산이 . 일본어로 호라이잔 . 봉래는 참 좋은 이름임 ... 중국에서 바다에 신선이 살던 곳이라는 뜻임 . 이런 이름을 단지 . 해방후 . 최만리가 살던 곳이라고 만리동으로 바꿈 . 행정 구역 이라는게 , 구역을 나누는 작업 끝에 완성된 거라면 , 왜 한국인의 조상들은 스스로 하지 못했는가 ? 일본인이 와서 일본이 그 작업을 다 해 놓고 동명을 법제화 시켜 놓은게 현재의 법정동인데 . 그 일본이 해 놓은 유산 을 청산 하지도 못했으면서 . 왜 허구헌날 일본어 잔재 타령이니 뭐니 반일감정을 선동하는가 ?
대일본제국 일제시대 를 보다 보면 한양(서울)은 도시였나가 의심스러울 정도임 현재 마포구 공덕네거리 주변으로 불과 20호 정도의 집 밖에 없었고 북아현동은 그냥 산이었음 마찬가지로 만리동도 산길이 난 옆으로 드문 드문 집들이 있었음 . 이런 한양을 경성이라 이름짓고 . 도시화 작업을 한건 . 그야말로 일본의 공로 임 . 일본이 서울을 근대화 시킨건 물론이거니와 도시화 자체를 이룩해 냈음
13:15 청파동 배문고 뒤 2구역은 작년 이미 신통기획 최종 선정되서 이제 아파트 올라가는데 카페니 재개발이 힘들다는 소리를 하네. 용산 투자자들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걸 모르고 조선시대 얘기나 하니 너무 황당하다. 아직 미정인 지역에 대해서는 예상이 틀릴수는 있는데 이미 재개발확정된 지역을 두고 재개발이 어려울것이다라고 하는건 전문가로서최소한의 준비성. 간단하게 검색만 하면 알수 있는걸 놓치는건 넘 심하지 않나? 정정방송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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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한 도시야사입니다. 몰라서도 못가기도 했고, 서울은 대표 관광지나 한강의 이미지를 가졌는데, 김시덕 박사님 저
'서울 선언' 책을 읽고, 일프로 영상보고, 두려움을 조금 뒤로하고, 골목 골목 찬찬히 다녀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집 가게 일상등이 대단한 역사이자, 의미가 깊게 느껴졌습니다.. 😀⭐
Kuwabara Shisei (구와바라 시세이). 1964년부터 두 번째 작업으로 한국을 취재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며
40여 년간 한국을 수십 차례 드나들면서 10만여 컷의 방대한 작업량을 축적하였다. 그가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사건 전면에서 벗어나지만 현실의 핵심을 찌르는 영상미학과 표현 스타일’을 시종일관 견지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사진의 본질은 ‘기록성’이라는 신념을 평생 구현해 온 ‘보도사진가’로서 예술사진을 지향해 온 한국사진계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겠으며, 1960-1970년대에 집중 촬영된 그의 사진은 한국사진의 공백을 메워 주는 귀중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의 본질은 '기록성' 이라는 부분이 참 마음에 와 닿네요.
옛날에 서울 시내 쫄래 쫄래 돌아다니면서도 '이 동네는 왜 이렇게 아직도 낡았어?' 이런 생각만 했는데
알고 보는거랑 모르고 보는건 천지차이군요.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국립극장자리가 예전에 군부대였습니다 버스정류장도 부대앞이었어요 세검정에서 원효로지나 염리동가는 버스가 다녔지요 제가 서계동 산꼭대기 왜정때 철도공무원숙소(청파성결교회)축대속을 판 방공호를 부엌으로 축대에하꼬방짓고살았어요 서부역은 화물차차고지ㅋ염천교만리재 다 어릴적놀던곳이네요 잘봤습니다^^
토막굴이라고 하는집이 90 년대까지도 있었죠 도곡동 , 개포동 , 서초동 같은곳에 가면 있었는데요 양재천 다리 아래 존재 했어요 그 당시에는 타팰이 없었죠 그 타팰 부지에 가면 훈련하년 전경들도 있었고 암튼 그쪽에 가면 토막굴 같은게 있었죠 지금도 구룡 마을 가보세요 물론 모양은 다르지만 ... 그리고 개포동 일부 아주 일부지만 ' 이런 주택이 강남이 있다고 ? ' 할만한것들이
남아 있을거에요 물론 토막굴하고는 많이 달라졌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남의 화려한 모습하고는 많이 다르죠 제 기억에 양재천이라는게 어릴때 기억은 지금 처럼 잘 정비된 모습이 아니라
오패수도 나왔던 기억이 있고 가까이 가면 냄새도 나고 아무튼 지금하고는 많이 달랐어요 오래 사신분들은 다 기억할겁니다 대치동 도곡동 개포동을 그 당시에는 부촌이라고 하지도 않았죠 아무튼 서울 여기저기 정말 많이 변했어요
와진짜 넘 잼있어요ㅋㅋㅋㅋ 방금 김시덕박사님 책도 주문하고 왔어요… 삶이 재미없고 우울할때마다 언더스탠딩이랑 김시덕 박사님 영상보면서 삽니다… 정말 재미있단 말밖엔 할말이 없어요ㅋㅋㅋ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해주세요👍👍👍!
박사님은 현대의 김정호선생이시네요. 값진 정보에 감사합니다.
그렇네요~김정호선생님!
이런저런 강의를 봐왔지만 이렇게 강의자 말이 패널에 의해 자주 끊기는 건 첨보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수다스러움도 좋아서 하는 말입니다.
만리 청파 언덕이 예로부터 일본 교도관들이 살던 동네였습니다. 청파 초등학교는 일본시대때부터 사용하던 건물이 있었는데 스팀장치가 있었고, 1년에 한번씩 일본 할머니들이 10명정도 방문하여 이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라고 말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할머니들의 부친이 교도관이었던 것이죠.
아.. 그렇군요.. 만리동 꼭대기에 있는 고등학교 나옴..ㅠ
이게 역사공부지 왕이름 외우고 이런거 보단
맞습니다
현실적인 역사공부 !
왕 이름 외우셨으니까 조선 시대 얘기하면 이해하시는 겁니다
ㄴ난리때마다 국민버리고 임금과 그쩌리들은 도망간 나라 조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에휴 ㅋ 좋아요 80개 휴
15:27~
정말 좋아하는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님이 소개되서 반갑네요^^ 해당 작품명은 입니다. 한일국교협정에 반대하는 서울대 문리대생들과 고려대생들이 종로에서 비 맞으며 침묵 시위하는 모습. 당시 시위대에는 시인 김지하와 이재오 김덕룡 손학규 이명박 등 훗날 정치계 거물로 성장한 인물들이 다수..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애를 가감없이 담아 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잘 봤습니다. 불과 몇 십년 만에 이렇게 발전했으니 대단합니다, 우리 민족.
80년대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저렇게 열악한 판자촌도 아니고 중산층 가정에 단독주택임에도 잠을 청하면 쥐가 천장에서 다라락 다니고 심지어 다락방에서는 쥐와 같이 잤으니까요.
햄토리🤩
진짜 60년대해봤자 전쟁 끝나고 7년정도 지났으니...저럴수 밖에...와 정말 대단합니다. 베이비 부머님들 정말 열심히 사셨고 고맙습니다! 다들 멋진 노후 보내시길!!.
흑석동 얘기 담에 해야지 라고 말씀하시는 김시덕 박사님의 눈이 반짝반짝
놀랍게도 청계천판자촌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사근동 223번지 가보시면 여전히 무허가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한양학원이 기숙사 부지를 늘리려다 주민 반발로 못 하고 있는데 학교지목 안에 묶여있어서 아직은 여전히 오랫동안 남아있게 될 겁니다.
제가 그 판자촌에서 태어났어요 ㅎ
와우ㅡㅡ
예전에 지금은 폐선된 교외선을 타려면 서울역으로 가면 안되고 서부역에 가야만 탈수 있었습니다
남가좌 모래내도 많은 스토리 있을거 같은데 다뤄주세요 :)
동대문의 창신동처럼 남대문시장에 납품하는 봉제물품을 납품하는 곳이 만리동에 많았습니다
와우~~진짜 우리나라 급발전 했네요....살아있는 역사네요~~^^
그렇습니다. 불과 2000년대 초반에 비해서도 엄청 발전했으니…
서울역 서부방면에 대해 “뭔가 알 수 없다”고 점잖게 표현하셨네요. 실상 중림동에서 시작해서 만리재 공덕 아현 애오개 대흥 신수동 그리고 한강 따라 쭉, 2000년대 초반까지 판자촌 내지 슬럼의 연담지역이었음. 간선도로를 지날 뿐 외부인이 들어갈 일도 없고 딱히 가고 싶지도 않았던 곳들. 대학 와서 처음 공덕오거리 지나다 그 뒤쪽 달동네를 놀라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기억.. 그랬던 마포구 동부가 이제 마용성 등극?의 일등공신 노릇을 하고 있으니, 언뜻 신기하다가도 그게 도시부동산의 이치라는 걸 이런 콘텐츠를 보며 재확인하게 됨
솔직히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 곳곳에 판자촌 많았죠. 불과 80년대에 서울 사진 보다보면 김춘삼이 살았을것 같은 거지촌같은 마을도 보이더군요. 기억을 망각하는게 본성인가 봅니다.
맞아요. 공덕동 판자촌 기억나요.
용산도 산동네애 판자촌 엄청 낫습니다
그일대가 개발된 이후로도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 남아있는게 그 이유..
1980년대를 돌이켜보면 서울에 판자촌 아닌동네가 판자촌인 동네보다 적었습니다.
서부역 일대는 지금도...
밤에 자차로 통과할 때도 살짝 무서울 정도.
낄낄대지 마라. 너희들 아버지 할배들이 그렇게 이나라를 이루었다. 고얀놈들.
구와바라 시세이님 사진 보니 부산 사진작가 최민식선생님이 생각나네요. 아마도 부산편에 나오지 않을까요
말씀하신 식당 고래고기 판다고 써 있긴 한데 오래된 간판이고 진짜 파는진 의문이에요. 주로 근처 봉제공장 판식사 배달하고 수거하세요.
한강의 기적이네..참 빨리 선진국이 되었어
어렸을때 서울역 갔다가 서부역이 있길래 이게 뭔말인가 하고 한참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네요ㅎㅎ 사실상 같은 역인데 개념적으로 헷갈리게 만들어놨어요
염천교쪽으로 돌아가는게 봉제산업이 쇠퇴될만큼 오래 걸리나요?
김시덕 박사님 훌륭하십니다.
너무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아쉬운 점은 진행하시는 김시덕 박사님의 말씀을 계속 듣고 싶은데 진행자가 많다 보니 박사님 말을 막고 화재를 다른 곳으로 전환시키는 면이 있어요.
일프로TV는 삼프로 3분 중 1분 정도만 진행 하시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해보면서 정프로가 적절한 리액션과 더불어 계속 화재를 진행하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십니다.
보문동 산동네 공터에 개미굴집 있었어요.. 70년대까지 우리집 뒤에.. 50년전 일인데 기억이 나네요..
20:20 놀람... ㅠㅠ
18:00 대박이넹… 헐 저런거 놔뒀어도 좋았으려나… 교토처럼
김시덕 박사님, 정형돈씨 닮으셨네요
엉뚱하고 창의적인 것도, 또 뭔가 꼿힌것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도요
방위시절 제대 며칠전에 내무실막내가 출근 안 하고 소식끊김. 중대장이랑 배달의 기수에서나 봤던 장면 - 메모지에 주소적은걸 들고 집에 찾아가보니 만리동 꼭대기더군요. 지금도 변하지 않았나보네요.
도시야사 테마투어를 하고 싶어요 ~~~ 감사합니다
윤복희씨가 청계천 빈민으로 살았다고 인터뷰 하던게 기억이 나네요.
도시야사.
응원합니다.
저는50대 후반 서울 토박이 인데 국민학교 시절에 동네는 물론이고 명동거리에서도 깡통 들고 다니는 어린 걸인들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김박사님 영상은 도시에 대한 사료에 가까움
여기살았는데... 마포17 눈오면 못올라가요 눈오면 내발로 가거나 썰매타거니 그냥 집에있기....
고맙습니다.
70년대 이때는 서대문 연희동 남가좌동 은평구 갈현동이 큰집이 많고 고위층 많이 살았어요.
.연신내 천도 흐르고.
만리재 아파트들 이름은 죄다 앞에 공덕무슨아파트 붙엿더라 ! 숙대뒷편 용산구 만리동 정상쪽에 기사당 맛나는대. 효창공원쪽에 기사식당도 많코 ! 명동백화점은 일부고 남대문시장 남품이더 많앗지 ! 만리재 초입 영원무역근처에 부인복회사 자체공장들몇개있던걸가지고 ! 창신동은 동대문 광장시장쪽납품 !
맞어 서울역 서부는 좀 외진느낌이라 ㅋㅋ
08:50사진나올때 영상에서 누군가 주차장 됬다고 했는데 로드뷰로 보니 진짜 피로티주차장으로 빌라가 재건축 되어 있네요. 한20년쯤 건축해 보이던데. 그리고 옛날에 폭우로 저런 축대가 많이 무너졌었어요. 서울에 주택가 들어가면 저런 축대가 흔하게 보였는데 요즘 아파트 재개발로 많이 사라지긴 했네요.
도시야사 김시덕 박사님과 도시여행 !!
김박사 말에는 진심도 있고 재밌내요, 반포중학교 후배라고 하니까 더욱 정감이 가내요
19:18 청계재단 이땡박이 생각나네
저청계천가에서 쥐 구워 먹던 시절이 있었죠
반나절을 들어도 재미 있을겄 같음..
종로학원 삼수공원 이야기에 진짜 뒤집어진 전 종로학원생 ㅋㅋㅋ
걸어다니면서 서울구경해보고싶네요ㅎㅎ
저두 데리구 가세요~ 쫄래 쫄래 잘 따라 다닐께요~ㅋㅋ
이렇게 보니까 썩은 골목도 밀어버려야지 조급하게 안보인다.
진짜 역사..
곧 없어지는 서울 중구 방산동 미군기지도좀 다뤄주세요…. 을지로랑 연계해서리…
사람얼굴말고 사진이나 그림을 더많이 보여줘야죠.너무 수다스럽네
ㅎㅅㄹ ㅎㅎㅎ
이름이라도 청계래 ㅎㅎ
서울역 지화화한다고 신문에났던데요
연세 드신 서울사람들이 기억하는 서울을 더 많이 수집해 주셨으면 합니다~
가운데 안경쓰신 분은 이 주제에 쫌 부족한(?) 분이신 듯~ ㅎㅎㅎㅎㅎㅇ·ㅎ
젊으시고 대전출신이니 두분보다모르죠
조금전에 나왓던곳 마장동 임다
😂정말 대단합니다. 대한민국~
종북 좌파들 이런 사진 보면 무슨 생각?
이승만의 한미동맹 ,박정희 새마을 운동 ,경제개발.산림녹화.
기업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 👏👏👏
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전쟁을 겪고 이승만독재에 저런 상태이니 목사라면 신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을듯
그래서 항일한 백범을 제거하고 이승만은 정치 포커스로
반일을 택해 비난을 피하려고 했던듯
싱크가 많이 안맞네요
저는책보다는도시야사로.
만리동1가 ( 봉래정3정목 - 호라이쵸산쵸메 ) 봉래정 . 봉래산이 . 일본어로 호라이잔 . 봉래는 참 좋은 이름임 ... 중국에서 바다에 신선이 살던 곳이라는 뜻임 . 이런 이름을 단지 . 해방후 . 최만리가 살던 곳이라고 만리동으로 바꿈 . 행정 구역 이라는게 , 구역을 나누는 작업 끝에 완성된 거라면 , 왜 한국인의 조상들은 스스로 하지 못했는가 ? 일본인이 와서 일본이 그 작업을 다 해 놓고 동명을 법제화 시켜 놓은게 현재의 법정동인데 . 그 일본이 해 놓은 유산 을 청산 하지도 못했으면서 . 왜 허구헌날 일본어 잔재 타령이니 뭐니 반일감정을 선동하는가 ?
서울이 크긴 커ㅋㅋㅋㅋ 1000만 명이 꾸역꾸역 들어가 있으니. 용적률만 풀면 1000만 명 더 들어갈 거 같긴한데
대일본제국 일제시대 를 보다 보면 한양(서울)은 도시였나가 의심스러울 정도임 현재 마포구 공덕네거리 주변으로 불과 20호 정도의 집 밖에 없었고 북아현동은 그냥 산이었음 마찬가지로 만리동도 산길이 난 옆으로 드문 드문 집들이 있었음 . 이런 한양을 경성이라 이름짓고 . 도시화 작업을 한건 . 그야말로 일본의 공로 임 . 일본이 서울을 근대화 시킨건 물론이거니와 도시화 자체를 이룩해 냈음
설명이 좀 ..
이걸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위대하신건지~~~ 그립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님!!!
13:15 청파동 배문고 뒤 2구역은 작년 이미 신통기획 최종 선정되서 이제 아파트 올라가는데 카페니 재개발이 힘들다는 소리를 하네. 용산 투자자들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걸 모르고 조선시대 얘기나 하니 너무 황당하다. 아직 미정인 지역에 대해서는 예상이 틀릴수는 있는데 이미 재개발확정된 지역을 두고 재개발이 어려울것이다라고 하는건 전문가로서최소한의 준비성. 간단하게 검색만 하면 알수 있는걸 놓치는건 넘 심하지 않나? 정정방송 없나.
응 빌라 천국 사업성 제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년뒤 아파트일지 그대로일지 내기할래??? ㅋㅋㅋㅋ
@@Gomdong 그래 10억빵 하자
이 거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님께 감사한 마음 생기네요 ㅜㅜ
은폐는 일본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폐 왜곡은 우리나라가 가장 심할 것입니다
일본에비해요? 우린우리거 왜곡이지만 일본이 식민지에 한행동과 비교하다니 ᆢ
60년대 고래고기 통조림도 있었다우..
고래고기..
무척 맛있어요.
인간 고기가 가장 맛있는건지도 모르겠다우..ㅋ
교수님은 책으로 아는거고..난 직접 본 사람이고..ㅋ
본 사람을 무시하지말고,..피상적인 것이란걸 항시 명심해야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