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박사님 강의 구 입하려 3프로 들어갔는데 미국에서는 어떻게해야 하는지 몰라서 문의만 남기고 나오다 맛보기 강의라도 들으려 크릭했는데 목소리가 너무 늘어져서 도저히 들을수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맛보기 강의에서 목소리가 너무 늘어지는거 교정해주세요 외국에서도 구입할수있게 페이팔도 가능하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종로에 약국과 씨앗 파는 종묘상점이 있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과거 조선 시대때 태종이 시전행랑을 지으며 만들었던 시장이 남대문에서 종각, 종각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거리에 설치됐는데, 육의전은 주로 포목상 위주로 형성됐고 종각에서 멀어지면서 각종 상품이 팔리는 상점들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아직도 인사동에서는 붓과 종이 등이 팔리고 종로3가는 귀금속... 두산그룹이 태동한 포목점 자리, 약방, 한의원, 씨앗, 농기구... 지금도 거기에 가면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죠.
사실 해방 전에도 한약재가 많이 거래되던 곳이었고, 어린 아이 사환 들여서 잡일 시키고 그랬었죠. 한약방은 전통적으로 약만 파는 곳이라기 보다는 간단한 문진만으로 바로 약을 지어 팔기도 했고,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를 나누는 장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했었죠. 이런 기능은 군청 소재지나 면소재지 정도 급에서는 더 부각되었고요. 어린아이 사환 쓰던 문화는 1970년대까지도 성행했었는데, 제 지인은 그렇게 사환으로 들어갔다가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탈출을 감행, 결국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보면 약방 사환으로 '창수'라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그 제 지인 별명이 그걸 본따서 '창수'입니다.
80년대까지 결혼식 회갑연은 종로 아니면 동대문 쪽에서 많이 했었습니다. 지방 여기저기로 흩어져있는 친인척들이 찾기 쉬워 종로 쪽에서 많이 하였고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은 1년치 약을 종로에서 박스로 구매하셨습니다. 시골 읍내 약국들이 좀 비싼편이였고 광고하는 신제품은 종로에서나 살수있었죠 신문에서 과대 광고하는 약들을 보시고 다음 서울에 올라가면 이 약들을 사야겠다고 메모하시던 할아버지 생각납니다.
서울시 중구 종로구지역애 가면 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있다 화장실 세면대 변기 욕조등을 파는거게들이 조로록 있고 옷감파는 가게들도 쪼로록 있고 옷파는 곳 집 문고리 경첩가게들 모여있고 앵무새 금붕어 어항등 파는 가게 몰려있고 약국몰려있고 종묘가게 몰려있고.. 특별한 이유없다 그냥 공간을 동시에 차지 하지 못하는 관계로 요기조기 따로따로 모이는 거지 여기서 왜 종로5가에는 약국아 몰려있나 약국은 왜ㅠ종로5가인가 하는 물음은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왜 헌책방은 왜 옷가게는 왜 가구들은 ..왜 점집은 그냥 대도시에서는 1 유명한 집 옆에 있으면 기본은 한다라는 장사원칙에 따른 것이지
을지로 입구에 현재 한전 서울본부 (예전에 심계원 자리..후에 감사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70년대 초-?...아니면 60년대 말 인가..어릴때 기억이라 헷갈림-감사원은 삼청동으로 옮김 ) 근처에 불고기집 유명한 곳이 있어서 여러번 간 기억이 있어요. 60년대 중반이었어요. 감사원 직원들 회식장소였지요. 지금은 그 자리에 고층빌딩이 서고 그 집은 없어진지 오래지요. 진고개도 63년엔가 생겼고 소불고기가 유명했지요. 불고기 외식은 아마 60년대 중반이었을겁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서울 살면서 금광을 하셨다는데, 옛날에 집에 남아있는 할아버지 명함을 보니 집은 종로 3가에 있었고, 금광?은 파주에 있었더라구요. (금광은 금 산출량이 적어서 폐광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할아버지는 딱히 금세공사는 아니였는데 왜인지 그쪽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사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구기동에도 재밌는 얘기가 있잖아요. 박정희가 청와대 출입 기자들한테 집을 한 채씩 줬는데 당시에 입구정 현대아파트를 막 짓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자들한테 너희 구기동 단독주택 줄까 아니면 압구정 현대아파트 줄까 했더니 기자들이 전부 다 구기동으로 간다고 해서 구기동에 기자촌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그 기자들이 나중에 땅을 쳤다는 거 아니에요.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갔었어야 했는데 하고.
건물중에 보면 한개 층인거처럼 보이는데 알고보면 그 뒤는 없는 그런 상황은 무슨 이유가 있는겁니까? 옥상인데 속은 그대로고 딱 길가쪽 전면부에 벽만 하나 세워서 마치 얼핏보면 한층인거처럼 보이게 하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단순히 시야차단이나 무슨 위험방지인건지 뭔가 다른 특정한 이유가 있나요 한층을 더 만드려다 무슨 규제때문에 짓다 말고 포기한건지 꼭 그런 빌딩이 있지않아요?
서울대 없어졌을 때 대학로 그 동네가 당시에 평당 3,4천원에 불하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 이화 생고기집에서 연극인들 회식 많이 하죠. 그리고 좀 더 올라가서 할매냉면 그 옆집이 정말 오래된 집입니다. 저 동네에 장면 가옥도 있고 고건 전총리도 저 동네 살잖아요. 무엇보다 낙산공원 정상이 정말 아기자기하고요. 낙산 공원 정상까지 마을버스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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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박사님 강의 구 입하려 3프로 들어갔는데 미국에서는 어떻게해야 하는지 몰라서 문의만 남기고 나오다 맛보기 강의라도 들으려 크릭했는데 목소리가 너무 늘어져서 도저히 들을수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맛보기 강의에서 목소리가 너무 늘어지는거 교정해주세요
외국에서도 구입할수있게 페이팔도 가능하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마이크 볼륨이 박사님 볼륨이 너무 크고 mc분 볼륨이 작아서 듣기가 좀 불편합니다!
종로에 약국과 씨앗 파는 종묘상점이 있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과거 조선 시대때 태종이 시전행랑을 지으며 만들었던 시장이 남대문에서 종각, 종각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거리에 설치됐는데, 육의전은 주로 포목상 위주로 형성됐고 종각에서 멀어지면서 각종 상품이 팔리는 상점들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아직도 인사동에서는 붓과 종이 등이 팔리고 종로3가는 귀금속... 두산그룹이 태동한 포목점 자리, 약방, 한의원, 씨앗, 농기구... 지금도 거기에 가면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죠.
맞아요. 조선시대부터 유명한 시장 거리였죠.
실제로 해방후 종로 약국거리가 원래는 한약재가 더 많이 거래되는 거리였죠. 그런데 한의학보다 양의학이 흥하고 서울대 병원 등의 영향으로 약국들이 점점 더 늘어나서 약국 전문 거리가 되었죠. 한약재 거리 역할은 동대문 약령시장 거리가 계승했죠.
얘기나오면 바로바로 보여주시는게 너무너무 좋음
종로5가 보령약국과 본사가 들어서면서 약국거리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약령시장과 씨앗시장은 본래부터 같은 뿌리에서 시작합니다.
저도 이렇게 알고있어용^^
정답.. 종로5가에 제약회사 본사가 많았어요
회사보다 약국이 먼저입니다 보령 약국이 보령제약의 전신입니다 ;;
김시덕 박사님 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야기 보따리 최고입니다...
이야기 보따리 ㅠㅠ 귀여워
사실 해방 전에도 한약재가 많이 거래되던 곳이었고, 어린 아이 사환 들여서 잡일 시키고 그랬었죠. 한약방은 전통적으로 약만 파는 곳이라기 보다는 간단한 문진만으로 바로 약을 지어 팔기도 했고,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를 나누는 장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했었죠. 이런 기능은 군청 소재지나 면소재지 정도 급에서는 더 부각되었고요. 어린아이 사환 쓰던 문화는 1970년대까지도 성행했었는데, 제 지인은 그렇게 사환으로 들어갔다가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탈출을 감행, 결국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보면 약방 사환으로 '창수'라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그 제 지인 별명이 그걸 본따서 '창수'입니다.
맞네요 예전엔 동네 약사님들이 준 의사선생님, 병원 안가도 대충 다 해결했었던 게 기억나요!
80년대까지 결혼식 회갑연은 종로 아니면 동대문 쪽에서 많이 했었습니다.
지방 여기저기로 흩어져있는 친인척들이 찾기 쉬워 종로 쪽에서 많이 하였고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은 1년치 약을 종로에서 박스로 구매하셨습니다.
시골 읍내 약국들이 좀 비싼편이였고 광고하는 신제품은 종로에서나 살수있었죠
신문에서 과대 광고하는 약들을 보시고 다음 서울에 올라가면 이 약들을 사야겠다고 메모하시던 할아버지 생각납니다.
김시덕 박사님 코너 재미있어요.
김박사님이 방대한 사료와 연구로 훌륭하게 우려낸 곰국이라면, 김프로님의 '라떼는'은 다대기같은 매력이 있습니다ㅋㅋ 창경궁썰과 성병은 임성기 ㅋㅋㅋ
중구와 서대문구 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인 제게 서울은 여전히 을지로, 명동, 종로, 광화문입니다. 도시야사 보면서 예전에 돌아다니던 동네 이야기를 들으니 추억이 돋네요. ^^
고맙습니다.
저하고 비슷.. 신문로(새문안길) 에서 출생. 서대문 은평 일산신도시까지 간 케이스..
저도 지금 일산입니다. ㅎㅎㅎ
독립문이오~
지금은 김포
그 시절에 창경원 ( 지금 창경궁 ) 우래옥도 자주 가고 한일관도 자주 갔다고 들었어요 저희 아버지도 어릴때 서울에 처음 와서 한일관에 처음 가보셨다고 하는데요 아마도 일종의 코스가 아니었나 싶어요
종각에 한일관이 있었죠? 아빠와의 추억하면 한일관이 제일먼저 생각나네요
옛 5가는 한약상가 밀집 지역 입니다
그 후 양약국 으로 변하고
한약상가는 제기동으로 모여든 거라고 합니다.
저도 한약상 어르신이 하시는 말씀을 ....
임성기 약국은 현재 창신동 완구거리 입구에있는 독일약국 자리입니다.
혜화동 주민입니다. 주말마다 걷는 곳들을 소개해주시네요.
아파트는 없어도 다른지역에서는 느낄수 없는 종로..
너무 좋아요
이진우 어린이 귀엽네요 ㅋ
서울시 중구 종로구지역애 가면 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있다
화장실 세면대 변기 욕조등을 파는거게들이 조로록 있고
옷감파는 가게들도 쪼로록 있고 옷파는 곳 집 문고리 경첩가게들 모여있고 앵무새 금붕어 어항등 파는 가게 몰려있고 약국몰려있고 종묘가게 몰려있고..
특별한 이유없다 그냥 공간을 동시에 차지 하지 못하는 관계로 요기조기 따로따로 모이는 거지 여기서 왜 종로5가에는 약국아 몰려있나 약국은 왜ㅠ종로5가인가 하는 물음은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왜 헌책방은 왜 옷가게는 왜 가구들은 ..왜 점집은
그냥 대도시에서는 1 유명한 집 옆에 있으면 기본은 한다라는 장사원칙에 따른 것이지
파란 병의 하얀 위장약 암포젤 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게 하시고 상한 갈대도 꺽지 않게 하소서, 종근당
예전 심한 위장병이 있었는데 보통은 약국에서 권한 약을 먹을 시절...
암포젤 엠(군용 납품용이라고 소개)을 먹고 오랜고생이 한병으로 낳은 사람 입니다.
ㅇ예전에 에버랜드가 자연농원일때 동대문서버스타고 갔어요
김프로님의 식당얘기는 추억이 방울방울이네여... 진고개 어복쟁반 먹고싶네요
1970년대 미국에서 할아버지,할머니 뵈러 한국 들어와서 가족들과 서울 을지로부근 식당에서 불고기 먹던 기억이 나네요 와...세월이 ㅎㅎ 가족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너무 재밌어요 😍😍😍😍😍
마을 재생이라는게 거기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고작 벽화 그려주고 자화자찬하고 사진찍는 수준이라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화공원 동네는 그렇게 만들게 아니라고 보고, 창신동 재생같은 우수 사례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영양제 구입하러 가는 종로5가 이야기 오늘 재미있게 방송 잘 봤습니다 ^^
종로는 예전에 비하여 가 보시면...유동인구의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노인분이라서 ...급격하게 약국...등산복...늘어가고 있더라고요
을지로 입구에 현재 한전 서울본부
(예전에 심계원 자리..후에 감사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70년대 초-?...아니면 60년대 말 인가..어릴때 기억이라 헷갈림-감사원은 삼청동으로 옮김
)
근처에 불고기집 유명한 곳이 있어서 여러번 간 기억이 있어요.
60년대 중반이었어요.
감사원 직원들 회식장소였지요.
지금은 그 자리에 고층빌딩이 서고 그 집은 없어진지 오래지요.
진고개도 63년엔가 생겼고 소불고기가 유명했지요.
불고기 외식은 아마 60년대 중반이었을겁니다.
김프로님 기억력 진짜 짱
조선 때 육전의 흐름 배치와 맥락을 같이 하며 음양오행의 지기 (종로는 금의 기운) 에
어울리는 맥락으로 자연스레 자리잡힌 것으로 이해하는 것(풍수적)도 이치에 맞다고 봅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서울 살면서 금광을 하셨다는데, 옛날에 집에 남아있는 할아버지 명함을 보니 집은 종로 3가에 있었고, 금광?은 파주에 있었더라구요. (금광은 금 산출량이 적어서 폐광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할아버지는 딱히 금세공사는 아니였는데 왜인지 그쪽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사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중앙시장 모든게다있는 살던곳. 추억이생각나네요
미아리고개에 점집이 많은 이유는 근처에 있었던 활인서하고 관련있습니다. 활인서에 스님들과 무당들을 활인서에 근무하도록 해서 전염병 환자들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사대문 밖에 모여살수 있게 될수밖에 없고요.
낙산아파트 1991년 처음 이자 마지막으로 가봤는데 이화동으로 내려 가는 길이 경사가 엄청났습니다
아 유!
먹고살기 바빠서 전혀몰했던
종로 동대문 우리나라 대기업에
역사 스토리가 꽤나 뀰잼입니다
특히 "동동구리무 "박가분 은단
용각산. 배탈나면 '노루표
구기동에도 재밌는 얘기가 있잖아요. 박정희가 청와대 출입 기자들한테 집을 한 채씩 줬는데 당시에 입구정 현대아파트를 막 짓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자들한테 너희 구기동 단독주택 줄까 아니면 압구정 현대아파트 줄까 했더니 기자들이 전부 다 구기동으로 간다고 해서 구기동에 기자촌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그 기자들이 나중에 땅을 쳤다는 거 아니에요.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갔었어야 했는데 하고.
38:35 진정한 아재들의 향연 ㅋㅋㅋ
보령제약 본사가 그 근처에 있기에 약국 거리가 활성화 된 듯해요
여긴 너무재밌게 진행하는 프로들입니다 엿날이 소록나는
김시덕박사님도 은근 만담꾼이십니다 ㅎㅎ
이 주제엔 진짜 서울사람이 있어야~
동대문터미날은 근교 시골사람들을 편리하게 해 주었죠~
국내기업들 역사도 재미있겠네요
김시덕 박사님 임진왜란 얘기도 따로 듣고 싶네요~~~
김시덕 박사님. 임진왜란 관련 책도 따로 쓰셨더라구요.
많이 기다렸습니다^^
연탄, 가스의 저렴한 보급 이후에 불고기 같은 불을 쓰는 음식이 널리 퍼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벽화거리 이야기를 들으면, 그 지역에 관광을 위해 가는 이들에게 동남아식로 도네이션피를 받아 관리하는 비용을 충당하고 남은 이익은 마을사람에게 분배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매주 기다립니다
삼프로님의 이야기가 재미있네요.~^ 딱 내가 크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기업사 기대됩니다~
ㅋㅋㅋ회비로나가는거니까! ㅎㅎ열씸히 쌀아오신 부모님세대가 떠오르네 .... 곗날 회식, 자식들 얻어먹이기 ....... 인정스런옛날
이화동 떡집동네는 일제시대 적산가옥이에요......나의 어린시절동네....그쪽 동숭동에 두산그룹 박씨도 아직 살고있어요.난 어릴때친구인데 그집에 놀러가면 KFC연필줬는데 ...아마도 70년대부터 켄터키치킨과 연결했던듯
국도극장집도 그동네..전국회의원 고 김윤덕의원집도 이화동.보령제약집도 큰한옥이었는데...원남동쪽 그집에도 놀러갔었는데
도야마는 아직도 외판원들이 다니면서 약상자에 약을 채워주고 .상담도 하고 합니다~~~~~~~~~~~~김박사 다른 프로를 봐도 참 정확 하십니다.
드디어 종로!
정프로도 옛날사람 ㅎㅎㅎ
병원 옆에 약국이 생긴건 의약분업이 된 2000년대 이후 입니다
기와집 인데 장 작 땐기억 이나고
어 머니가 숯을 매점 매석 한 기억이난다
설 대생
하숙 한 걸 로 인다
문간방 에 시골서 올라온 다섯 식 구가 한 방 에 살 앟던것같다
아재들 조곤 조곤 수다 떠는 재미가 ㅎ😆🫶
아버지가 재래시장입구에서 약국하셨는데, 엽집이 종묘상이었음. 시장 근처라는 것으로 접근하시는게 맞지 않을까요
이런 내용들을 전부 동네마다 도시마다 인물마다 기업마다 시대마다 가이드북으로 발간해서 베포하면 정말 대박이겠네요.
관광할때 그 내용을 주지하며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요.
김프로님은 재료만 던져지면 술술 다 말씀하셔~
재미있네요
김프로님은 저보다 별로 나이가 많지 않으신데... 말씀하시는 걸로는 6.25 직후 세대 같으십니다.^^
건물중에 보면 한개 층인거처럼 보이는데 알고보면 그 뒤는 없는 그런 상황은 무슨 이유가 있는겁니까?
옥상인데 속은 그대로고 딱 길가쪽 전면부에 벽만 하나 세워서 마치 얼핏보면 한층인거처럼 보이게 하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단순히 시야차단이나 무슨 위험방지인건지 뭔가 다른 특정한 이유가 있나요
한층을 더 만드려다 무슨 규제때문에 짓다 말고 포기한건지 꼭 그런 빌딩이 있지않아요?
커보이려고? 옥상난간 담벼락 만드는 김에..
층수규제때문에 옥상에 시설물은 하지 못하고 담벼락만 만든게 아닌지요?
저도 궁금하긴 하더라구요.
지금 지방엔
병원과약국 농자재가게가
함께 공존하죠
장날 비온날
시골 농부님들이
아픈몸도 치료하고
농자재사고
미용실들려 파마도 하고
돌아가죠
농부가 하루 일을 쉬니
집나선 차에
병원치료
농자재 시장보고
미용실 들러
하루에 일을 모두 보고
돌아가죠
보령제약 명예회장님이 그 동네 역사는 더 잘 아실거 같아요.ㅎ
요새 시골에 가도 상권 중심 제일 좋은 자리에 종묘상이랑 약국이 있습니다. 농어촌에 제일 필요한 공급이라서 좋은 자리를 차지할수 밖에 없습니다.
서울대 없어졌을 때 대학로 그 동네가 당시에 평당 3,4천원에 불하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 이화 생고기집에서 연극인들 회식 많이 하죠. 그리고 좀 더 올라가서 할매냉면 그 옆집이 정말 오래된 집입니다. 저 동네에 장면 가옥도 있고 고건 전총리도 저 동네 살잖아요. 무엇보다 낙산공원 정상이 정말 아기자기하고요. 낙산 공원 정상까지 마을버스가 있어요.
낙산가든
낙삭가든은 몇년전에 없어졌고
낙산공원은 예전에 동숭시민아파드였었죠~
그리움
조선의 명의들이 일하던 내의원이 창덕궁 내에 있었으니까, 약령시장이 창덕궁 내의원에 한약재를 공급하기 위해 생기지 않았을까 가설을 제기해봅니다.
ㅋ
암포젤엠
익숙한 약
암포젤 M을 알고 있는 나도 옛날사람.
@@Kkk77785ㅎㅎ
내레 연건동 살았는데 의대 뒷담
육십년도 사 일구 를 무섭게 본 기억 초등 ㅎᆢㄱ 교 가기전
소방 차에 올 라타고 막 질 주 하던 광경
파란 병에 하얀 위장약, 암포젤~엠 !
50년대에는 종로거리에 뱀탕집이 제일 많앗음 ㅎ
28:44 거리의 천사들은 '노숙자'를 대상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재활을 돕는 개신교 단체에요~
노루모는 일양약품
대전엔 유림약국이 있지요
은평구 답사 투어도 부탁 드립니다~
서부의 대학들은 선교사 학교
동부의 대학들은 국내 기반학교
그래서 교류가 덜한게 아닐까요?
너무 재밌습니다~~
종로는 우리나라 도매의 중심이라
도매로 돈 벌어서 기업으로 성장한 경우가
엄청 많지
4등,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
창경윈 앞으로 전 차가 을지로 사가 카지 다녔지~~
왜 정프로님 포방터시장 가보시면 안됩니까? ㅎㅎ 부천 던지고 홍은동 갭투 임장 갔다가 돈가스 줄 서셨을수도
😮
👍
아닙니다. 한일관이 먼저입니다. 한일관이 그 당시 브렌치가 많았어요. 서울시내에,.
내가 30대때까지만해도... 지금도 많이남아있지만 친구집가보면 옛날 일본식집.. 복도있고.. 그런 오래된집에 사진친구 더러있었슴 동인천쪽.. 그리고 중요한거 빠지셨네 ... 일요일은 쉰덴다~~~
개꿀잼 컨텐트~~
40:13
선글라스는 컨셉인가요?
안녕하세요 일프로tv입니다. 말씀하신 진행자는 심한 안구건조증으로 스튜디오의 강한 조명을 견디기 힘든 상황입니다. 때문에 부득이 선글라스를 착용하게 됐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다 피곤하다
앞으로도 계속 물어볼꺼 아니냐고?!!
2등!
일 주일에 한번 불고기 먹으 면 부자 였지
조선 건국 부터 따지면. 5대 되지 않았나
썬글라스 분 그래도 큰 일하신 분인데 이름가지고 비웃고 비꼬고ㅋㅋ
1등
김박사님이 왕족은 5대가 지나면 왕족이 아니다고 설명해주시니, 이서진이 독립운동가와 28촌인데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사기치며 방송하는게 생각나내요.
참고로 법적으로 6촌 이상은 친척이 아닙니다.
참석자중 곤색옷에 팔짱끼고 머리짧고 안경쓴 사람 반말투로 지껄이는데 건방진 말투쓰지 말아요,,,
참 할 일없다.....
꼰대냐?
여기는 공중파가 아니고 개인방송이다. 꼬우면 니가 꺼지면 됨. 이미 두사람 친해서 말하는건데
종로는 우리나라 도매의 중심이라
도매로 돈 벌어서 기업으로 성장한 경우가
엄청 많지
4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