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풍습으로 이어나간 나라가 어딘지 예를 하나 들어보세요 후대에 평이 그렇다고 해도 이성계 지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나라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나요 힘 있는 신하들 중에 유목출신은 한명이 고작이고 고려때 신하들이 대부분인데 이성계 독단의 의견만으로 결정이 될 거라 보는건가요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더이상 글 달지 말고 그렇게 참신한 생각 계속 유지하며 사세요
차라리 이성계가 첫째 이방우나 둘째 정종을 처음부터 세자로 세웠으면, 장자계승때문에 이방원은 명분이 없어서 난 일으킬 수도 없음. 명분없는 난은 반역인데... 처음부터 이성계가 세운 조선 자체가 명분이 없는 야욕으로 세워진 나라지만... 이성계파들이 원하는대로 왕 바꿨고, 억지로 왕된 공양왕도 죽음에 벌벌 떨면서 나름 왕조지키려고 개혁도 하고 노력했었고, 조선이란 나라로 바뀔때도 일반백성들은 왜 바뀌는거지 뭥미?수준이였고, 돼지국밥을 성계육이라고 비하했다는 설이 있을정도인데... 이성계는 개성왕씨의 어린 왕족들은 그냥 귀향보내던지 좀 컸을때 사형시켜도 될것을 싸그리 다 죽여버림.
참고로 나는 한류 드라마에서.... 조선은 꽃다운 나라로 그리고... 임금은 백성을 한없이 사랑하는 존재로 묘사하는것에 반대한다. 사농공상의 서열로 공업과 상업을 천시해 백성은 조선왕조 500년간 내내 궁핍했고... 고려때와 비교해 엄청난 숫자의 양민이 노비로 전락했다. 제정신이라면 타임머신이 있더라도 그 시대로 돌아가고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 생각과 똑같은 분은 첨보내요 이게 국사도 바뀌어야 봅니다 뭔 조선시대 세종때 백성들이 행복하고 자시고 평민이하는 거의 헬조선이고 양반이랑 왕족만 풍족하고 행복한 시대라고 하는게 맞는듯 부민고소법 ㅇㅈㄹ 하는데 뭔 세종을 받들고 휴 조선시대 5백년은 걍 지옥인듯 일반백성들은..
왕자의 난을 배우고 나서 울딸이 한말 입장바꿔 나라도 배다른 어린 동생이 아버지 재산 다 가로채면 죽일것같아. 울 남동생이 있는데 그것도 나이차 많이 나는데. 새 엄마도 짜증나는데 그 동생한테......아빠가... 못참지~~~~아니~~~안 참아~~내 동생은 뭐야~~~ 다 죽여버릴거다~~~~~아~~~~~ 짱나~~~~라고 피토하는 울 따님. 전주이씨입니다~~ㅎㅎㅎㅎㅎ 울 할배가 잘못했네~~~~~ 이 멍청한 조상님아~~~~~라고 저는 나중에 일어나는 난으로 철퇴 맞은 김종서할아버지 후손입니다. 죄송합니다 조상님들~~~~~~) 원수의 가문에 시집을 갔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이성계 할아버님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단순히 현부인을 사랑해서 그 설득에 넘어간게 아니라, 전 왕조와 처가나(방번까지도 처거가 전부 고려왕실이나 귀족가문과 연관) 그 기억등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자식이 방석이고 정도전역시 비슷한 이유로 자기가 멘토가 될수있는 과거가 깨끗한(?) 왕자로서 막내를 선택했다는게 정설
첩도 아니고 후처도 아닌 동시에, 첩 취급도 후처 취급도 받을 수 있습니다. 본처가 살아 있을 때 들였고 오랜 시간 공존했으니 후처는 아닌데, 어쨌든 첫째 부인이 먼저 죽었으니 후처화(?) 되었죠. 정식 정략결혼이었으니 첩도 아닌데, 고려법상 본처 외에는 인정을 안 해서, 본처 유지하며 들인 부인이니 고려법상으로는 첩이 맞죠. 후처가 아닌 동시에 후처고 첩이 아닌 동시에 첩인 이 골때리는 상황의 실상은 불법 중혼으로, 당시엔 법적으로 불법이나 대충 눈감아주던 향처와 경처 입니다. 경처는 불법이고, 유교적으로나 법적으로 따지면 첩이 맞긴 맞죠. 그래서 후처라 우겼죠...하지만 당시 후처는 전처가 없어지고 나서 들이는 개념이라 후처로 들어온건 아님요. 여튼 유교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최소한 본처와 본처 아들들 권위가 더 높아야 하는건 맞습니다. 그래서 이방석 세자로 세운건 무리수가 맞죠. 그래서 2차 왕자의 난 때 이씨가문 대부분과 상당수의 신하들이 이방원을 지지하고, 이후 신하 중심의 반란조차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성계가 선덕왕후의 욕심으로 후처 아들에게 세자를 줌으로 이방원이 세자가 적장자가 아니라는 왕자의 난을 일으킬수 있는 명분을 주었음 이방원 친형이 왕위를 받았으면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킬 명분이 없음 이방원은 양녕이 아닌 충녕을 세자로 교체후 세종대왕을 만든 업적으로 까방권획득
이성계의 가장큰 업보는 베갯머리 송사를 다스리지 못한것이다 이미 장성한 첫번째 정실부인의 다섯아들과 첩의 몇몇 아들이 있었음에도 정도전의 말에 이끌려 후실의 막내 아들을 후계로 정해서 그 후실의 아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았다 건국초기의 불안정한 정국을 지킬려면 명분상으로는 장자를 안정을 위해선 가장 공이 큰 아들을 후사로 정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간언을 모두 물리친 댓가인 셈이다
ㄴㄴ 당시에도 처월드에서 받은 게 있었기 때문, 남자라면 많은 여자를 거느린다고 하지만 처가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음. 이바지라는 뜻 찾아보면 처가댁에서 받는 이러저러한 것들인데 지금도 이 말은 쓰고 있음. 이 세상 그 어떤 왕이나 대통령 등등 주몽의 소서노 같은 여성권력가와 맺어져야 뜻을 이룰 수 있음. 그래서 지금도 재벌집은 재벌가하고만 인연맺으려고 함.
세종이 방번과 방석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아들들을 양자로 주었는데 방번의 양자는 5남인 광평대군(뿌리깊은 나무에 나왔던 대군)이며 20대 초반에 죽었으나 외동아들인 영순군이 있었고 이 영순군의 아들들이 자손을 많이 낳아 광평대군파는 이후에도 양자를 한번도 들이지 않고 적자로만 대를이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방석의 양자는 6남인 금성대군인데 그는 단종을 복위시키려다가 친형인 세조에게 죽음을 당했고 후손들도 죽거나 시골로 달아났고 왕족지위를 박탈당해 평민으로 살다가 숙종때 복권되었고 지금도 후손은 남아있습니다.
태조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 그당시 누가봐도 이방원이나 이방과 에게 먼저 세자를 제안했어야하는건데 첩의 꼬득임에 판단실수 거기에 정도전까지 왕의 말의 토 달지않고 뜻에 따라 세자책봉을 한게 큰 오판.. 아무도 이방원의 야망과 어떤 스탈의 행동파인지 몰랐을리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계의 세자책봉은 석연치않음 몬가 우리가 알지못한 결정적인 원인이 있었을듯
저의 생각은 이방원이 미워서 세자를 방석으로 책봉한것이 아닌가 하는 셍각입니다 정몽주와 같은 고려의 충신을 제거하고 자신을 왕의에 올리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것은 사실이지만 이성계가 왕의 자리까지 노렸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방석이가 이방원을 제거 하고 왕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석에게 세자자리르 준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 강씨가 너무 욕심을 낸것도 사실은 방석과 방번을 죽음으로 내몬 이유가 되는것도 같습니다 치명적인 이성계의 실수란 표현이 맞는것 같군요 잘못된 이성계의 선택으로 이방원의 손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은것이 안타까울 뿐이지요
조박 일당이 한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왕자의 난 자체가 이성계의 처자식을 시해한 사건인데 즉 자신의 아비의 계모와 그 아들들을 처형한 사건을 주도한 이거이 부자를 처낸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텐데 아둔하게 강상죄를 묻는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었다. 이성계도 워낙 죄가 많다보니 말년에 못볼 것을 보고 죽었다 조선왕조는 중국의 8왕의 난과 비슷한 역사일뿐 역사적 가치가 없다.
남녀 갈등을 주 이슈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달콤한 몇 마디 말에 ... 남녀 서로 갈들 일으켜 봐야..... 결국 어려운 시기에 그 실익은 화가 되어 돌아 오는 거겠지요....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한 현실 속 경계임을 순리에 맞게 인정 했으면 합니다 ... 자신이 " 불이익 받고 차별 당하고 있다 "라고만 한다면 ...그래서 어느 대상을 일반화 하고 증오 한다면... 결국 사회에 지탄 받는 대상이 되죠
이성계가 어린 아들 죽인거지. 거기에 플러스 정도전. 나라를 건국함에 공을 세운 다 큰 아들 내치고 배 다른 어린 애를 왕으로 세우려 하다니. 문관이었던 이방원이 제 형제들 다 제치고 권력 장악했고, 심지어 이성계 조차 어쩌질 못했다는건 실권이 이방원에게 있었음을 의미함.
첩의 꼬임땜시 아들을 죽인거라 하지만 이성계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봐야 이성계는 이방원을 싫어햇을듯 아들이자 개국공신인 이방원의 역활이 지나치게 커서 이성계가 위압감을 느낀듯 그래서 당연 세자 책봉을 이방원 에게 줘야하지만 그렇게 주면 이성계 가 소외되고 컨트롤 안된다고 생각한듯 그렇다 하더라도 순리에 따랏어야
이성계가 왕이 되기전 신의왕후 강씨는 이미 돌아가신 상태고 왕이 되었을때 신덕왕후 강씨가 본처였으니 신덕왕후 강씨가 조선에 첫번째 왕비이고 방석이 오히려 적자라고 볼 수도 있죠 방번은 공양왕에 조카사위라 고려를 부정하고 세운 조선에서는 세자가 될 수 없었죠 그리고 방원이 세자로 먼저 책봉되었다고 해서 방번 방석이 살 수 있을까요 왕위에 오른 후 가장 먼저 제거해야할 대상이 방번 방석이죠
정쟁의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조선중기 부터 후기까지 걸친 붕당간의 싸움에서도 당파간의 피터지는 싸움이 전개되었죠. 예를들면 내가 소속된 당파가 승리하면 상대편 당파에 소속된 당원을 유배는 기본이고 사사(사약), 하거나 심하면 참형, 능치처참, 부관참시도 행해집니다. 다시말해 정치싸움에서 지게되면 패배한 당파원의 생명은 물론 그들의 가족중 직계.방계를 통틀어 남자는 모조리 죽이고 여자들은 살려서 승리한 당파의 당원들이 여종(노비)으로 삼아서 성노리개로 삼거나 아예 첩으로 삼는등 무서웠죠. 흔히 조선후기 붕당이니, 동인, 서인, 남인, 북인, 소북, 대북, 노론, 소론 들이 벌인 정쟁에서 패배하면 이렇게 끔살을 당하고 가족들도 욕을보았죠. 승자는 승자라는 이유로 패자들의 명예와 업적을 까내리고 부숴버렸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사회에서도 매장시켰고 현실에서도 완벽히 제거했죠. 그리고 패배자들의 처, 처제, 누이, 딸, 손녀 포함 여성분들의 처지는 말안해도 참혹했죠. 조선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전쟁이든 정치의 파워게임이든 패배한 쪽은 남자들이 죄다 죽임당하고 그들의 여자 가족들은 성노리개나, 첩, 여종으로 마치 전리품처럼 나눠가졌죠, 승리한 쪽에서. 이러니 정쟁은=목슴걸고 하는 짓이었던거죠. 지게되면 나뿐아니라 내 일가,친족,처가 까지 모두 욕을당하니 악다구니로 일관할수밖에 없었을테쥬
성계형이 둘째부인의 꼬득임에 책임도 못질일을 벌인것이다. 기라성같은 첫째부인아들들이 몇이나 있는데 성년도 안지난 막내를 세자라니.. 심지어 개국에 공도 없는 어린것을.. 친어미의 욕심이 애들의 명줄을 끊었다.
아마 본인이 그렇게 빨리 죽을줄은 전혀예상치 못했겠죠...
베개밑 정사의 말로..
정종 아들로 만들어서 물러주게 만들었으면
왕자의 난이 일어 날 가능성 적어짐
자신의 권력을 과신했죠.
정도전 아니였으면, 그냥 고려의 장수로 끝났을 것
성계형 가스라이팅 당했써 그걸 보고 자란 킹방원께서 여혐을 하게 되었고 외가부터 아들내미 처 가문도 작살냈지
단종의 비였던 정순왕후 송씨도 그렇고 의안대군 이방석의 처 심씨도 그렇고 귀하고 높은 자리에 시집와 일생 영화로울 수 있었는데 한순간에 바닥에 떨어져 괴로운 시절을 오래도 살았네요...안타깝습니다
태종때나 세조때 반정공신들 꼬라지를 보면 유학(성리학)을 익힌 사대부란 인간들이 반정전 동료였던 부인이나 딸등을 나눠 가지는거 보면 이 ㅅㄲ들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주딩이로만 성현이 어쩌고 인간의 도리가 저쩌고 .....
태종 때는 그나마 정상적인 상황 이었다고 봅니다 아양 까지 떨어대서 욕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의리를 지킨 이들이 있었지요
원래 돌려 먹는게 더맛남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게 도리 입니다 아양을 떨어대 욕하기도 하고 의리를 지킨 이들도 있었습니다 돌려 먹는게 더 맛나다고 하는데 양심이 있으면 자제해야 합니다
통치이념은 전지적작가시점에서
내려다 보며 자신을 포장 개입한 거져
뭐 계몽사상 이념같은 것도 마찬가지고요
내로남불이 될 수 밖에 없고
관찰자인듯 하지만 포장된 의지가 잔뜩 들어가서 ㅎㅎㅎ 스스로도 따를 수 없었을 겁니다
정말 세조때 반정공신들 행태에 충격.........어제까지만 해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험치르고 같이 조정일 하던 동료의 아내와 딸들을 그렇게 ㅡㅡ;
이성계가 죽인 거나 다름 없다
어떻게 다 제끼고 후처 아들놈을
세자로 책봉하냐
당시 이방원의 파워를 몰랐다는 건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몰랐다는 거다
고로 이성계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온다
원래 유목민은 막내세습제가 정상적인겁니다
몽골계인 이성계도 당연히 막내세습을 한겁니다
이성계가 그들과 생활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본데
정도전의 국정 플렌과
후처의 종용에 의해
그렇게 됐다는 의견이 정론임
@@hiratemiki6067 그 정론이란건 추후에 정권을 장악한 이방원과 그 후손의 정론일뿐이지
전주와 연관된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다 지어낸거고
이성계는 명확한 몽골계
그런 풍습으로 이어나간 나라가
어딘지 예를 하나 들어보세요
후대에 평이 그렇다고 해도
이성계 지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나라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나요
힘 있는 신하들 중에 유목출신은
한명이 고작이고
고려때 신하들이 대부분인데
이성계 독단의 의견만으로
결정이 될 거라 보는건가요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더이상 글 달지 말고 그렇게
참신한 생각 계속 유지하며
사세요
나도 동감.
왕자의 난은 결국 어리석은 신덕왕후의 욕심이 자신이 낳은 자식과 사위의 죽음을 초래한 것이다. 개국의 공이 전혀없는 막내에게 대권을 물려주는 왕세자로 지명하니 그런일을 초래한것이다.
형제중에서 개국에 공이제일크고 제일 똑똑한 방원이를 처음부터 세자로 삼았다면 왕자의 난도 없었을것을...
태조의 잘못된생각으로 본처자식의 난 이라고 생각하면되겠다
이성계가 실수한거임 개국 공신들을 홀대하고 치마폭에 놀아났으니
0●」
정주영도 잘못 생각한 거지!
@@니선-b5n 개국 후 개국공신 정리는 역사적으로도 많이 이루어졌던 일이고 정도전은 이방원이 그리던 왕권 강화에 제일 방해되는 인물이라 제거됐어야할 인물임.
단지 이성계는 이방원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치밀하고 계산적인 사람인지 몰라 너무 앝봤던것 뿐
차라리 이성계가 첫째 이방우나 둘째 정종을 처음부터 세자로 세웠으면, 장자계승때문에 이방원은 명분이 없어서 난 일으킬 수도 없음. 명분없는 난은 반역인데...
처음부터 이성계가 세운 조선 자체가 명분이 없는 야욕으로 세워진 나라지만... 이성계파들이 원하는대로 왕 바꿨고, 억지로 왕된 공양왕도 죽음에 벌벌 떨면서 나름 왕조지키려고 개혁도 하고 노력했었고, 조선이란 나라로 바뀔때도 일반백성들은 왜 바뀌는거지 뭥미?수준이였고, 돼지국밥을 성계육이라고 비하했다는 설이 있을정도인데... 이성계는 개성왕씨의 어린 왕족들은 그냥 귀향보내던지 좀 컸을때 사형시켜도 될것을 싸그리 다 죽여버림.
역사는 승자편이지. 태조 이성계의 노망으로 둘째부인 어린자식으로 세자를 내세웠으니 전쟁터에서 태조를 모시고 피흘려 싸웠던 태종 이방원이 순순히 왕위를 물려줬겠냐?
역사는 승자 편 이지만 모두의 편 입니다
이방원은 과거급제한 문신출신이라 전쟁터에 나간적이 없습니다.
이방원은 스승 정몽주를 참살하고 수많은 고비를 넘은 진정한 혁명 공신이라 봐야할 듯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수고했읍니다.
또박또박 좋네요
자신이 멘토로 삼았던 이복형에게 검을 맞아 죽으면서 과연 누구를 먼저 원망했을까요?
참고로 나는 한류 드라마에서....
조선은 꽃다운 나라로 그리고...
임금은 백성을 한없이 사랑하는 존재로 묘사하는것에 반대한다.
사농공상의 서열로 공업과 상업을 천시해 백성은 조선왕조 500년간 내내 궁핍했고...
고려때와 비교해 엄청난 숫자의 양민이 노비로 전락했다.
제정신이라면 타임머신이 있더라도 그 시대로 돌아가고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양반만 편히 사는나라
노비.평민에겐 세금만 죽어라 바치는 지옥.
여성도 아녀자로 전락
제 생각과 똑같은 분은 첨보내요 이게 국사도 바뀌어야 봅니다 뭔 조선시대 세종때 백성들이 행복하고 자시고 평민이하는 거의 헬조선이고 양반이랑 왕족만 풍족하고 행복한 시대라고 하는게 맞는듯 부민고소법 ㅇㅈㄹ 하는데 뭔 세종을 받들고 휴 조선시대 5백년은 걍 지옥인듯 일반백성들은..
세종대왕과 정조대왕같은 올바른 왕도 있었지만 폐단이 좀 크죠.
식민사관에 쩔어요 쩔어.
문제 많았던 고려가 망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아직도 한국인일까?
을사늑약때가 하이라이트였죠. 나라의 도장을 내팽개쳤다고 하니 이때 나라를 포기하고 일본궁 안에서 잘 살았다고 하니 원... 국사학자들은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조선왕조는 이승만대통령이 한번 쫓아냈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 하더만...
생모의 욕심때문에 죽임을 당한것입니다.
아 내용 디테일하고 좋네요. 잘 보고 갑니다
이방원은 꼭 자기가 아니드라도
자기 형들 4명 중에서 세자 자리를 줬으면
역모를 안일으컸죠
새로운 사실!
수다몽님은 이런 장롱 깊숙히 들어있을법한 내용들을 어케 알아내셨는지! 가상합니다!
꾸욱! 꾹
목소리도 션션하구요^^
이성계는 실제로 왕될때 부터 뭐하나 잘한게 없음.. 무장으로는 탑일지라도 나머진 정도전 이방원이 다함..
그러니 정도전이 이사람이면 내가 조종하여 원하눈 나라를 세울 수있겠다 생각하여 고른거겠죠.. 최영 같은 사람은 못건들였갰죠
옜날 이야기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
한사람의 목소리로와 이야기로만 이렇게 꽉채워지는 방송이있을까??
자기전이나 일할때 듣기에 너무좋습니다
고맙습니다
감동입니다. ㅜㅜ 감사합니다.
지금도 효도한 자식 외면하고 다른자식에게 유산몰아주어 유류분청구소송으로 형제들끼리 원수로만드는 부모가 많다는 현실.
그렇네요 능력있는 사람이지만 이성계도 한낱 부모였네요
오래 기다렸어요. 자주 올려주세요^0^/
이성개가 본부인한테서난 아들을 세자삼아야지 어린애들을세자로 삼으니 반정도모할때 이방원등 형들과 연합해서 햇는데 아무도움도안한 어린아들에게 세자를 해준것도 문제야
애비가 문제죠 한심한 이성계
이성계가 북방에서 야인생활을 했어서.. 막내가 상속 받는 게 맞아요. 거기서는..
이상해서 자꾸 읽었네요
이성개가 아니고 이성계 아닌가요?
후처에 놀아난게. 문제였음.
이방원이 조선을 세운 공이 제일 큰데..
어쨌든 대세를 읽지 못하고 판단한 태조의 잘못
이성계가 생각보다 어리석은 인물이네 그 둘째부인도 욕심만 많고 어리석은 인물이네 장성한 형제들이 당연히 가만히 안잇지
이방원도 둘째 엄마한테 찍소리도 못했다
이성계를 왕으로 만든 사람이기에
방원이 도움으로 조선을 만들었는데 첩의 아들이 가로채니 그라지???😊
그냥 전쟁만 할줄 알지 ㅋ
감사합니다 꾸벅
기회가 있으면 사육신을 처형하고 그들의 가솔들을 나눠가진 신숙주와 정인지 등등의 만행도 적나라하게 알려주시기를 바래요.
걔들이 사람입니까? ... 끔찍해서 보고싶지가 않네요...
@@shanestory3879 글쎄요, 상반된 견해가 있습니다.
동문수학한 절친의 가솔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고 그들의 처와 딸들을 탐해서라는 얘기도 있거든요.
가솔들은 모두 노비가 되었습니다.
@@General6699 그러니까요...
@@General6699 말이 가솔들을 보호한다는거지 살인을 밥먹듯이 하던 놈들이 젊은 여자들을 가만히 냅둘리가 없죠
@@aoyama3chome518 내가 알고있는 것은 정인지놈이 성삼문의 처와 딸을 성노리개로 탐했다는 건인데, 직접 보지않았으니 확인은 못했느니라.
왕자의 난을 배우고 나서
울딸이 한말
입장바꿔 나라도 배다른 어린 동생이
아버지 재산 다 가로채면 죽일것같아.
울 남동생이 있는데 그것도 나이차 많이 나는데.
새 엄마도 짜증나는데 그 동생한테......아빠가...
못참지~~~~아니~~~안 참아~~내 동생은 뭐야~~~
다 죽여버릴거다~~~~~아~~~~~ 짱나~~~~라고
피토하는 울 따님.
전주이씨입니다~~ㅎㅎㅎㅎㅎ
울 할배가 잘못했네~~~~~
이 멍청한 조상님아~~~~~라고
저는 나중에 일어나는 난으로
철퇴 맞은 김종서할아버지 후손입니다.
죄송합니다 조상님들~~~~~~)
원수의 가문에 시집을 갔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이성계 할아버님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형 족보다시봐봐
어디서 사오신거 아녀?
@@gd7878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나
알아낼 방법이......ㅎㅎㅎ
@@김수정-l9h3j 아버지,적어도 할아버지가 대종중에 연이 없었다면 사온겁니다
단순히 현부인을 사랑해서 그 설득에 넘어간게 아니라, 전 왕조와 처가나(방번까지도 처거가 전부 고려왕실이나 귀족가문과 연관) 그 기억등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자식이 방석이고 정도전역시 비슷한 이유로 자기가 멘토가 될수있는 과거가 깨끗한(?) 왕자로서 막내를 선택했다는게 정설
거의 사왔다고 봄이 ㅋㅋ.전주이씨는 조선후기 까지도 인원이 얼마 없었음. 워낙 명문이라 김씨박씨처럼 족보사서 가문을 사칭할 엄두를 못냄. 그러다 어느순간 한 두사람이 시작하니 일거에 다 따라함.
이방번의 아내 왕씨는 공양왕의 조카로 고려 왕족인 걸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기록은 없나 보네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
맞아요. 이방번이 세자가 못 된 여러 이유중 하나가 아내 때문이죠. 고려 황실 핏줄이니…
세자빈 심씨가 왕실 여자들이 출가하는
절의 책임자인 주지승이 된걸보면
왕씨도 그절로 출가했을 가능성이 클거같은데요? 승려가 되는거 말곤 선택지 없잖아요
후처의 욕심이 너무 크더니...
이성계는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왕이 되고 난 후에 이성계의 일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트러블의 연속이었다.
왕자의 난. 자식들 문제 아닌가
누구랑 트러블? ㅋㅋ
이방석과 이방번은 세종대왕의 작은 아버지 들인데 네이버에 찾아보면 나와요
당연한거 아니요 태종 아들이니까 방번 방석이 이방원 이복 동생이나
저와중에 사람취급 못받던 첩의 신분ㅠ 타의에 의한 삶들 ㅠ
이미 본처에게서 낳은 장성한 아들들이 6섯명이나 있는데 엄마의 욕심으로 두 아들들을 죽음으로 몰게 만든었네..
6섯명은 어느나라 말?
@@로로로-q7z
ㅋㅋㅋ 나라!
장성한 아들은 5명이지 하나는 어려서 죽었으니까
@@kalanchoepinnata9615 본처는 아니지 경처로 황후가 되고 대접은 받았지만.. 계속 같은말하네 참내
물론후처의꼬드김이통했겠지 그러나이성계는 정도을가야지 본처아들 장남을세자로해야지,,
중요 사건도 아니라서 자료 찾는 수고도 많았을텐데 잘 보고 갑니다.
ㅣㅔ0ㅠ ㅜ. 😮😮 😅 😅 😅 😅 😅😅 😅 😅 😅
궁에 있었던 여인들이 사가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승이 되게 한 것은 중국의 관습에 따른 것으로 비나 빈, 궁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순장에서 개선된 제도였습니다.
왕실 남자들의 사용품으로 취급 되었던 것이 그 당시의 관습이었지요.
3😊😊😊😊😊😅
이성계 둘째 부인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네~~ㅠㅡㅠ
죽음을 초래했네~그노매 권력이 머시라고~ㅉ ㅉ😢
패배자의 본처들은 비구니가 되고 첩들은 승자가 취했다는 이야기네요.
잘들었습니다 ㅎㅎ
이래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장성한 본처의 아들들을 외면하고 첩의 자식을 국번에 앉혔는데 누가 가만있을까요 그 시대 시대상은 있으나 첩은첩
엄연한 후처 자식 이지요 첩이 아닌 어엿한 후처 인데 말입니다
@@쿠도코난-u1y 후처라해도 자식만큼은
본처 자식이 먼저이겠죠
첩도 아니고 후처도 아닌 동시에, 첩 취급도 후처 취급도 받을 수 있습니다. 본처가 살아 있을 때 들였고 오랜 시간 공존했으니 후처는 아닌데, 어쨌든 첫째 부인이 먼저 죽었으니 후처화(?) 되었죠. 정식 정략결혼이었으니 첩도 아닌데, 고려법상 본처 외에는 인정을 안 해서, 본처 유지하며 들인 부인이니 고려법상으로는 첩이 맞죠. 후처가 아닌 동시에 후처고 첩이 아닌 동시에 첩인 이 골때리는 상황의 실상은 불법 중혼으로, 당시엔 법적으로 불법이나 대충 눈감아주던 향처와 경처 입니다. 경처는 불법이고, 유교적으로나 법적으로 따지면 첩이 맞긴 맞죠. 그래서 후처라 우겼죠...하지만 당시 후처는 전처가 없어지고 나서 들이는 개념이라 후처로 들어온건 아님요. 여튼 유교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최소한 본처와 본처 아들들 권위가 더 높아야 하는건 맞습니다. 그래서 이방석 세자로 세운건 무리수가 맞죠. 그래서 2차 왕자의 난 때 이씨가문 대부분과 상당수의 신하들이 이방원을 지지하고, 이후 신하 중심의 반란조차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정도전 욕심도 컷죠
첩이 된 여인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
재수 없으면
관노나 관기가 됨
모든 화근은 계모의 욕심 때문입니다.
구독 좋아요 꾹꾹 ~
태조의 잘못된 가정사~~♡
이성계가 선덕왕후의 욕심으로 후처 아들에게 세자를 줌으로 이방원이 세자가 적장자가 아니라는 왕자의 난을 일으킬수 있는 명분을 주었음
이방원 친형이 왕위를 받았으면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킬 명분이 없음
이방원은 양녕이 아닌 충녕을 세자로 교체후 세종대왕을 만든 업적으로 까방권획득
현재 기준으로나 어리지 당시 남자 17살이면 지극히 적당한 혼인 적령기입니다. 세자빈 심씨의 출산 연령이 20살인데 오히려 늦은 나이의 첫출산 아닐까 생각됩니다.
솔직히 이성계 최대 판단미스... 이방과를 세자로 책봉만 했어도 이방원이 대놓고 왕자의 난을 일으키진 않았을거다.
굿
이성계의 가장큰 업보는 베갯머리 송사를 다스리지 못한것이다 이미 장성한 첫번째 정실부인의 다섯아들과 첩의 몇몇 아들이 있었음에도 정도전의 말에 이끌려 후실의 막내 아들을 후계로 정해서 그 후실의 아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았다 건국초기의 불안정한 정국을 지킬려면 명분상으로는 장자를 안정을 위해선 가장 공이 큰 아들을 후사로 정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간언을 모두 물리친 댓가인 셈이다
멍청한거죠
@@통키-b8v글쎄요. 그건 그만큼 정도전에게 힘을 줬다는 것 아닌가요. 장자 승계 이야기 나왔지만
ㄴㄴ 당시에도 처월드에서 받은 게 있었기 때문, 남자라면 많은 여자를 거느린다고 하지만 처가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음. 이바지라는 뜻 찾아보면 처가댁에서 받는 이러저러한 것들인데 지금도 이 말은 쓰고 있음. 이 세상 그 어떤 왕이나 대통령 등등 주몽의 소서노 같은 여성권력가와 맺어져야 뜻을 이룰 수 있음. 그래서 지금도 재벌집은 재벌가하고만 인연맺으려고 함.
광평대군.이방번봉사손의후손으로써.그태당시상황이너무안타까운마음입니다
조선초에는 환관이 아닌 사람도 내시가 될 수 있었기에 내시가 세자빈과 간통을 할 수 있었음.
저 사건 이후로는 환관만 내시가 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던데...
수다몽님, 정피디님이랑 같이 4월 이후에 한번 뵐까요? 커피 살게요!! ㅋㅋㅋㅋㅋㅋ 저 한국가는거 아시죠? ~ 3월22일에 가서 4월27일에 다시 캐나다 와요...
태종의 악행도 모두 용서되는게 아들이 세종대왕이라는것… 세종의 업적은 조선왕들의 모든 실정을 퉁치고도 남는다.
세종이 아니래도 태종은 성군에 포함됩니다.
세종이 방번과 방석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아들들을 양자로 주었는데
방번의 양자는 5남인 광평대군(뿌리깊은 나무에 나왔던 대군)이며 20대 초반에 죽었으나 외동아들인 영순군이 있었고 이 영순군의 아들들이 자손을 많이 낳아 광평대군파는 이후에도 양자를 한번도 들이지 않고 적자로만 대를이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방석의 양자는 6남인 금성대군인데 그는 단종을 복위시키려다가 친형인 세조에게 죽음을 당했고 후손들도 죽거나 시골로 달아났고 왕족지위를 박탈당해 평민으로 살다가 숙종때 복권되었고 지금도 후손은 남아있습니다.
세종도 그때 마음이 복잡했을듯 합니다. 아버지한테 죽임을 당한 배다른 숙부들인데...
방번이랑 방석이 이미 죽었는데 뭘 양자로 줌?
@@권학수-w2n 손이 끊기면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하는 풍습이 있어요
이 픙습은 오늘날 까지도 살아 있습니다 , 향촌에서 유력한 집안은 아들이 없어 대를 잊지 못하면 형제항렬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합니다 한세대 전에만 해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어요
@@권학수-w2n 죽은뒤에 제사 지내줄 양자 따지고 보면 봉사손을 준 것이지요
@@권학수-w2n 무식을 자랑하듯...공부좀 하시오!!..
이성계는 이방원의 철퇴가 무서워 이방번을 내어준것 에라이 천하의 쫄장부 성계야
태조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 그당시 누가봐도 이방원이나 이방과 에게 먼저 세자를 제안했어야하는건데 첩의 꼬득임에 판단실수 거기에 정도전까지 왕의 말의 토 달지않고 뜻에 따라 세자책봉을 한게 큰 오판.. 아무도 이방원의 야망과 어떤 스탈의 행동파인지 몰랐을리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계의 세자책봉은 석연치않음 몬가 우리가 알지못한 결정적인 원인이 있었을듯
전장에서 져본 적이 없는 영웅이라 과신한 게 아닐까 싶어요. 자기가 왕이고 아비니까...
그냥 뭐 첩이 지 아들 죽인거나 마찬가지죠
첩이 아닌 어엿한 후처 인데 말입니다
설마 내가 건국 했고 왕인데 누가 토를 달겠냐 싶었겟죠.
저의 생각은 이방원이 미워서 세자를 방석으로 책봉한것이 아닌가 하는 셍각입니다 정몽주와 같은 고려의 충신을 제거하고 자신을 왕의에 올리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것은 사실이지만 이성계가 왕의 자리까지 노렸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방석이가 이방원을 제거 하고 왕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석에게 세자자리르 준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 강씨가 너무 욕심을 낸것도 사실은 방석과 방번을 죽음으로 내몬 이유가 되는것도 같습니다 치명적인 이성계의 실수란 표현이 맞는것 같군요 잘못된 이성계의 선택으로 이방원의 손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은것이 안타까울 뿐이지요
모든게 순리를 어기고 욕심을 부린 강비 때문~ 최대 공신 이방원을 세자로 추대했다면 불행한 역사는 없었다
신덕왕비로서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무조건
세자 책봉 밖에 방법이 뭐가
있었겠어요.
승자인 남자들의 본처들은 생각지도 못한 어여쁜 첩 시앗을 보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집안에 여난이 생기진 않았을까요?
난 태조와 왕후강씨의 자업자득이라본다 지욕심으로 자식 다죽인강씨 베겟송사라지만 멍청한태조 둘윽합작
모든게 욕심이지요.
엄마가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식들을 다 죽인거지요!!! 이방원 형제들은 혁명의 공신들인데 이성계도 잘못된 판단으로 결국은 화를 불렀고.
고려왕족을 멸살시키려고 배태워 바다 한복판에서 잠수시켜 버리고 씨를 말린 태조죄 그업보를 입은거여
잠수 ㅡ 수장.... 고려 왕씨 일족
입쁜 다암이쒸이~ 사랑해요~~~
정도전이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양반 귀족정을 하려한 건데.. 당시 시대상으로 너무 일렀다고 본다..
지금은 이해찬이 문재인을 허수아비로 세숴놓고 상왕노릇을 잘도 하는데~~
@@grieflee2587 뭔개소리!
태조이성계의 잘못된 생각으로 본처자식들을 저버리고 후처아들 2명그것도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함으로써 세자도 죽이게하고 세자형님과 세자의제매도 죽고 공주는 절로 들어가 여승이 되었죠?
이성계가 후궁의 놀아남에 따라 왕자의난이 되엉죠!
이성계의 잘못된판단으로 결국 왕자의난이 일어났죠
이성계의 잘못이었죠?
이방원도 이해는 갑니다만ㆍㆍ
조박 일당이 한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왕자의 난 자체가 이성계의 처자식을 시해한 사건인데
즉 자신의 아비의 계모와 그 아들들을 처형한 사건을 주도한 이거이 부자를 처낸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텐데 아둔하게 강상죄를 묻는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었다. 이성계도 워낙
죄가 많다보니 말년에 못볼 것을 보고 죽었다 조선왕조는 중국의 8왕의 난과 비슷한 역사일뿐 역사적 가치가 없다.
남녀 갈등을 주 이슈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달콤한 몇 마디 말에 ... 남녀 서로 갈들 일으켜 봐야.....
결국 어려운 시기에 그 실익은 화가 되어 돌아 오는 거겠지요....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한 현실 속 경계임을 순리에 맞게 인정 했으면 합니다 ...
자신이 " 불이익 받고 차별 당하고 있다 "라고만 한다면 ...그래서 어느 대상을 일반화 하고 증오 한다면... 결국 사회에 지탄 받는 대상이 되죠
인생은 한치앞도 알수없다
찌질이 임금중에 한명
태조이성계!!!
아무리 여자가 좋아도글치
서슬퍼런 본처의 자식들을
그것도 개국공신 인대..
어리디어린 자식을
세자로올려놓고
그건 말이 안되는 처사라고봅니다
이 피의난을 만든 장본인은
다름아닌 이성계자신이니
뭐 할말이 있겠습니까..ㅉ
이성계와 정도전 쿠데타를 누가 긍정적으로 만들었을까?
태조의 대실수가 조선의 역사를 시작부터 꼬이게 만든것 찬탈과 반정의 문을 왕실에서
열어버렸으니
이성계가 어린 아들 죽인거지. 거기에 플러스 정도전. 나라를 건국함에 공을 세운 다 큰 아들 내치고 배 다른 어린 애를 왕으로 세우려 하다니. 문관이었던 이방원이 제 형제들 다 제치고 권력 장악했고, 심지어 이성계 조차 어쩌질 못했다는건 실권이 이방원에게 있었음을 의미함.
지도층이 계집질을 일삼으니 어찌 나라가 제대로 되겠나... 국력을 길러 영토확장에 힘쓰지 계집질에 날이 새고지니 꼬올 조오타!
고려왕족 왕씨들을 도륙냈던 이성계의 업보.
저일로 이거이 이저 부자도 서인으로 강등되고 귀향하지 않나요?
첩의 꼬임땜시 아들을 죽인거라 하지만
이성계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봐야
이성계는 이방원을 싫어햇을듯
아들이자 개국공신인 이방원의 역활이 지나치게 커서
이성계가 위압감을 느낀듯
그래서 당연 세자 책봉을 이방원 에게 줘야하지만
그렇게 주면 이성계 가 소외되고 컨트롤 안된다고 생각한듯 그렇다 하더라도 순리에 따랏어야
첩이 아닌 엄연한 후처 였다고 봅니다
남편과 아들에 비해 세자빈 심씨가 생각보다 오래 살앗네요
이성계가 왕이 되기전 신의왕후 강씨는 이미 돌아가신 상태고 왕이 되었을때 신덕왕후 강씨가 본처였으니 신덕왕후 강씨가 조선에 첫번째 왕비이고 방석이 오히려 적자라고 볼 수도 있죠
방번은 공양왕에 조카사위라 고려를 부정하고 세운 조선에서는 세자가 될 수 없었죠
그리고 방원이 세자로 먼저 책봉되었다고 해서 방번 방석이 살 수 있을까요
왕위에 오른 후 가장 먼저 제거해야할 대상이 방번 방석이죠
이방석으로 나온 배우요. 좀 이국적이게 생기지 않았나요?
왜 죽어야만 하고 왜 죽여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말로 모르는 것이 아니지요 고향집 누님이랑 닮았네요
다 전생의 업이죠!
이런 일이 벌어진것도 이성계가 순리를 따지지 않은 탓
그래도 동료인데 , 자기와 뜻이 다르다는 이유로 역적으로 몰아서 잔인하게 죽이고, 그 처자식들은 노비로 만들어서 물건처럼 나눠갖던 자칭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한민족의 수치며 부끄러움이다 .
왕자의 난... 이 아니고 왕자들 다 죽인 날이다...위화도회군도 위화도반란이다..
씨를말리지않으면 후환이 되니까~~
오늘날의 역사를 보면 알수있다.
적폐가 영웅이되는 아이러니~~~
적벽대전 영화에서 조조가 소교를 노리고있는..그런거군요.
모든책임은
태조에게 있었다
본처자식들을버린 이성계의업보다
생각이 부족했던
이성계때문에 비극을부른것이다
순리를 거슬리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첩한테 빠져서 ..
첩이 아닌 엄연한 후처 였다고 봅니다
@@쿠도코난-u1y 본부인이 엄연히 살아있을때인데 첩이지 후처는 조강지처가 죽고 없울때 얻은 여자를 후처라하지 ..
아니죠 정식으로 결혼을 올렸으니 어엿한 후처 입니다
@@쿠도코난-u1y 첩은 첩이지 결혼식을 했든 안했든 ..팩트는 조강지처가 살아있을때 취한 여자는 어떠한 미사여구를 갔다 붙여도 첩일뿐이지..
태종이라는 이방원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과 너무나 닮았다...아버지를 무력화시키고 형제들을 죽이는...
정쟁의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조선중기 부터 후기까지 걸친 붕당간의 싸움에서도 당파간의 피터지는 싸움이 전개되었죠.
예를들면 내가 소속된 당파가 승리하면 상대편 당파에 소속된 당원을 유배는 기본이고 사사(사약), 하거나 심하면 참형, 능치처참, 부관참시도 행해집니다.
다시말해 정치싸움에서 지게되면 패배한 당파원의 생명은 물론 그들의 가족중 직계.방계를 통틀어 남자는 모조리 죽이고 여자들은 살려서 승리한 당파의 당원들이 여종(노비)으로 삼아서 성노리개로 삼거나
아예 첩으로 삼는등 무서웠죠. 흔히 조선후기 붕당이니, 동인, 서인, 남인, 북인, 소북, 대북, 노론, 소론 들이 벌인 정쟁에서 패배하면 이렇게 끔살을 당하고 가족들도 욕을보았죠.
승자는 승자라는 이유로 패자들의 명예와 업적을 까내리고 부숴버렸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사회에서도 매장시켰고 현실에서도 완벽히 제거했죠.
그리고 패배자들의 처, 처제, 누이, 딸, 손녀 포함 여성분들의 처지는 말안해도 참혹했죠.
조선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전쟁이든 정치의 파워게임이든 패배한 쪽은 남자들이 죄다 죽임당하고 그들의 여자 가족들은 성노리개나, 첩, 여종으로 마치 전리품처럼 나눠가졌죠, 승리한 쪽에서.
이러니 정쟁은=목슴걸고 하는 짓이었던거죠.
지게되면 나뿐아니라 내 일가,친족,처가 까지 모두 욕을당하니 악다구니로 일관할수밖에 없었을테쥬
결국 지들이 지은 죄가 있으니 적폐청산한다니까 ㅂㄷㅂㄷ 하는거였네.
이방원이 난놈이여.
정도전을 어쨌거나 이겼으니까~
자기 아들에게 왕좌를 넘기려는 과한 욕심으로 자기 아이들을 죽이는 꼴을 만들었다. 누구든지 과욕이 지나치면 화를 당한다.
이성계일가의 대환장개막장국가전복활극은 갓 세종대왕님의 등판으로 퉁처짐과 동시에 육룡이나르샤로 승격됨.
첫아들이 승계 하면 아무일도 없었을
터인데 아버지 이성계를 당신은 고려에
역적이다 하고 숨어버렸으니 ㆍㆍㆍ
신떡 성개 도전이가 血을
부른 세자책뽕 .
1:19 태종(x) 태조 이성계
싸움에는 남사 여후 라는 말이 맞네요 남자가 먼저 죽고 여자는 후에 죽는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인 듯 그러고 보면 인간은 다 똑같은 욕망과 욕심으로 산다는 증거이다 종교는 한낯 자신을 위한 것이 시작이며 희생은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는
조선은 세종이후 그냥 없어져야했다. 한글창제 말고는 한게없다. 고종이랑 순조 모습은 진짜 ..안습..어린 나이에 조선왕들의 짧은 팔다리 사팔띠기 얼큰에 충격적이었다
태종 이방원 할아버지 의붓동생을 왜 죽이셨나요 나이가 자식들 또래잔아요 그런데 어린나이에 첩은 왠첩 어이가 없네 중년나이도아닌데 예나 지금이나 조상들한테 배웠나 요즘남자중에 돈있는 능력으로 본처도 있는데 손주 딸뻘하고 놀아나는 꼴이라니 참한심세상
구독하여 열심히 잘 듣고 있긴 하는데 가끔 스토리 하고 걸맞지 않는 미국 사람들 영상을 슬쩍슬쩍 보여줄 때는 좀 짜증이 나네요 😓
ㄴㄴ 내용이 충격적인게 많아서 순화시키느라 그러함. 아시아인이 나오면 역사라 해도 조금 빡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