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에 교통비, 숙박비 아껴보겠다고 친구들과 전주에서 부산까지 비둘기호 타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일단 전주에서 밤기차 타고 신탄진가서, 신탄지에서 부산가는 열차로 갈아탐(잠은 기차안에서 해결). 아침에 부산에 도착해서 버스타고 서면가고, 해운대가고 하루 놀고 다시 저녁 밤기차 타고 오던길로 다시 되돌감. 그때 1인당 회비를 5천원을 걷었는데, 그 돈으로 왕복교통비와 부대비용이 해결됐으니 89년 당시라 해도 비둘기호 기차비용은 진짜 저렴했습니다. 왔다갔다 기차안에서만 16시간 보냈었지만 진짜 추억에 남는 시절이었습니다. 참 세월은 너무 빠르네요.
30년전에 대학시험보러 동급생들과 이리 원광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둘기호(장항선?)를 탔었는데 맨 뒤칸 난간에 앉아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눈발이 휘날리는 풍경을 감상하던 그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 피웠던 도라지 담배 특유의 풀냄새도 잊을 수 없고 지금 생각하면 그냥 한편의 아름다은 꿈만 같은 멋진 시절이었다. '박하사탕'에서 나오는 거꾸로 가는 열차풍경도 비들기호에서 찍은거로 알고있는데 참... '나 다시 돌아갈래~' 하고 외치기엔...너무 멀리 와버렸네....
대구에는 대구역 바로 뒷편에 "번개시장"이라는게 있는데 그 시장 상인들이 바로 비둘기호를 이용하던, 대구 주변 농촌 사람들이었지. 새벽에 비둘기호를 타고 와서 번개시장에서 장을 열고 물건을 팔고, 해뜰때쯤이면 다 팔고 번개같이 사라졌지. 분명 번개시장이라고 시장이 있는데, 아침 이후에 가면 그곳엔 아무것도 없음. 새벽녁부터 아침까지만 열리고, 물건이 다 팔리면 번개같이 사라진다고 해서 시장 이름이 번개시장. 당시엔, 모든 역에 다 서는 완행열차 비둘기,중소 도시 위주의 거점도시에만 서는 무궁화, 큰 도시 위주로만 정차하는 급행열차인 새마을호가 있었는데... 비둘기호는 시골의 작은 역에도 모두 정차했기에 도착시간이 늦어져서 완행 열차로 운행되었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시골에서 도시로 물건 팔러 나오는 농부들이 애용하던 열차였음. 이게 없어지면서, 시골과 도시를 직접 연결하던 시장의 역할이 사라지고, 그 사이에 "중간상인"이 등장해서 물류와 유통에서 새로운 돈벌이 창출... 서민들에겐 등골이 휘는 상황이 이때 발생.
역마다 멈추는 완행열차....... 그렇게 역마다 멈추는 그런 열차는 이제는 찾지 못하겠지요......... 그런데 그런 완행열차든 급행열차든 반드시 멈추는 역이 춘천역이었는데 거기서 먹는 우동은 진짜............ 잠깐 멈추는 동안 열차 승객들 전원이 내려서 역 플랫폼에 있는 가락우동집에서 우동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울때 그 우동 맛은 진짜....... 지금 역전우동이니 하는 곳이 많지만 그 때 먹은 우동만은 못하다는 생각이.............
1997년인가..비둘기호 사라진다고 해서 억지로 휴가 내서 가방하나 메고 혼자서 꾸역꾸역 비둘기호만 이용해서 동해바다 여행 간 기억이 있네요.하루에 몇시간씩 걷고 비도 많이 맞고..혼자서 간 최초의 여행이었는데 고생한 만큼 추억도 많다는...그 때 못탔으면 더 많이 아쉬울 뻔했네요..^^
초등학교 1학년때 초등학교 3학년인 누나 따라서 외할머니집에 방문했을때 늘~타고 다녔던 비둘기호... (아버지 사망 엄마는 생계현장으로..) 속도도 느려서 운행중일때 창문을 열어볼수 있었던 열차였습니다 ㅋ ㅋ 지금은 속도가 빨라서 어림도 없지요 기종자체가 오래되다보니 기본으로 달려있는 선풍기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때 ... 난 운행중일때 창문을 열고 다녔었습니다 ㅋ ㅋ
저분들이 저렇게 열심히 사셨기에 나라가 발전할수 있었다고 봅니다
존경하고 대단하십니다
그시절 악착같이 열심히 일하며 자식들 뒷바라지 하시던 우리네 어머님들 모습
그러나 그 바로 밑 세대는...인류역사상 최악의 세대인 똥팔육...
그 결과물= 헬조선.
@콩순 🤣🤣🤣
그옛날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이
보이는거 같네요. ㅠ.ㅠ
어머니? 증조 할머니 아닌가?
별거 없어보여도 저런분들의 힘으로 이만큼 성장한 나라인데...이제는 절대 볼수없는 풍경이네 고생들 하셨습니다
말은 똑바로 합시다 무슨 저런 사람들 때문에 경제 성장했냐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덕분에 했지 저런 시장 깡통아지매가 뭔 경제 성장이냐
공감합니다.
우리네 부모님들 고생많으셨네요.
우리 부모님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콩순 아닌데?
@bsc5764 어머니는 세대만 힘들었고 요즘 여자는 안 힘들다는 논리 100년은 됐음ㅋㅋ 아마 수십년후의 남자들도 우리 어머니 세대는 달랐다고 또 그러고 있겠지
진짜 저 할머니분들 너무 존경스럽네요
어찌 저렇게들 사셨는지.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그 시절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 모두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낭만열차는 비둘기호지.... 정말 갬성 쩔었던 낭만 열차.... 그립다..
보면 볼수록 눈물이 나네요.
할머니들의 애환 노고가 있어서 이대한민국이 돌아갑니다 힘드셔도 웃는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자식들 공부 가르치기 위해 고생을 마다 하지 않은 부모님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신분들
왜캐 마음이 어머니 생각이 평생 고생만하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할머니들 보면 시골에서 평생 즐기지도 못하고 일만하신 우리 친할머니 외할머니 생각나서 눈물남. 할아버지들은 그래도 나름 즐기면서 살았는데 할머니들은 놀지도 못하고 일하고 밥하고 ㅜ
저렇게 열심히 살아계신분들 멋지십니다..
80년대 초반 경기도 연천에 살때 타고 다니던 열차네요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순간이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지느니라.
89년에 교통비, 숙박비 아껴보겠다고 친구들과 전주에서 부산까지 비둘기호 타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일단 전주에서 밤기차 타고 신탄진가서, 신탄지에서 부산가는 열차로 갈아탐(잠은 기차안에서 해결). 아침에 부산에 도착해서 버스타고 서면가고, 해운대가고 하루 놀고 다시 저녁 밤기차 타고 오던길로 다시 되돌감. 그때 1인당 회비를 5천원을 걷었는데, 그 돈으로 왕복교통비와 부대비용이 해결됐으니 89년 당시라 해도 비둘기호 기차비용은 진짜 저렴했습니다. 왔다갔다 기차안에서만 16시간 보냈었지만 진짜 추억에 남는 시절이었습니다. 참 세월은 너무 빠르네요.
여전히 피곤하고 힘들었던 우리들의 어머니 이제 할머니가 되셨네
그냥 처음엔 웃으면서 봤다가 적은돈 벌고 좋아하시고 그런모습 보면서 엄마 생각나서 눈물 터짐...
덜컹거리는 열차내에서 대충 식사 때우시고 가족을 위해 어김없이 열차에 몸을 싣던 어머니들의 악착같은 모습에 눈물이 납니다
와 할머니들 진짜 고생하셨네 기차에서 생선 다듬고 기차에서 식사하시고 허리 휘게 일하셔서 자식 손주 주시네 우리 할머니 보고싶다
경제개발5개년개발아니었으면증긱관차만돌댕기고 소달구지만발달했을뜻보수정당으로써눈물이
@@가-h4v 그건 보수가 아니라 군사독재란다 정신차려
@@fuxkin_handle 군사독재시절 경제성장이 제일 빨랐단다..
@@fuxkin_handle 뭘 정신을 차려 너나 정신차려 이념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못 보는 답답한 인간아.
@@frisebichon1519 그야 빠르겠죠 뭔 난리를 떨어도 성장했을 시기니까. 성장 빠르다고 군사정권이 허락되는거였으면 지금도 탱크 몰고 쿠데타 일어나도 괜찮단 소리입니까?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처럼 살고 싶어요!
옛날영상 좋은화질로 깔끔하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30년전에 대학시험보러 동급생들과 이리 원광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둘기호(장항선?)를 탔었는데 맨 뒤칸 난간에 앉아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눈발이 휘날리는 풍경을 감상하던 그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 피웠던 도라지 담배 특유의 풀냄새도 잊을 수 없고 지금 생각하면 그냥 한편의 아름다은 꿈만 같은 멋진 시절이었다. '박하사탕'에서 나오는 거꾸로 가는 열차풍경도 비들기호에서 찍은거로 알고있는데 참... '나 다시 돌아갈래~' 하고 외치기엔...너무 멀리 와버렸네....
이제 무궁화호 마져도 추억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옛날 비둘기호 통일호를 추억하시는분들을 나이 먹고 나서 공감하게 되네요
참 열심히들 사셨음 대단하심
7:27 이거보고 울었다..😢
대구에는 대구역 바로 뒷편에 "번개시장"이라는게 있는데
그 시장 상인들이 바로 비둘기호를 이용하던, 대구 주변 농촌 사람들이었지.
새벽에 비둘기호를 타고 와서 번개시장에서 장을 열고 물건을 팔고,
해뜰때쯤이면 다 팔고 번개같이 사라졌지.
분명 번개시장이라고 시장이 있는데, 아침 이후에 가면 그곳엔 아무것도 없음.
새벽녁부터 아침까지만 열리고, 물건이 다 팔리면 번개같이 사라진다고 해서
시장 이름이 번개시장.
당시엔, 모든 역에 다 서는 완행열차 비둘기,중소 도시 위주의 거점도시에만 서는
무궁화, 큰 도시 위주로만 정차하는 급행열차인 새마을호가 있었는데...
비둘기호는 시골의 작은 역에도 모두 정차했기에 도착시간이 늦어져서 완행
열차로 운행되었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시골에서 도시로 물건 팔러 나오는
농부들이 애용하던 열차였음. 이게 없어지면서, 시골과 도시를 직접 연결하던
시장의 역할이 사라지고, 그 사이에 "중간상인"이 등장해서 물류와 유통에서
새로운 돈벌이 창출... 서민들에겐 등골이 휘는 상황이 이때 발생.
80 년대 당시 영천 경산에서 비둘기타고 동대구 대구역에와서 물건팔고했죠
달리는 열차 밖으로 바람 맞으며 즐거웠던 어린시절이 행운이였네, 그립다 비둘기호
저분들 악착같이 살아온 삶이 오늘 저희들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돌아갈수 없는 세월이지만 저시절이 그리워지는건 뭘까요
기차타고 학교간다는시절이 저때였지.
지금은 완행전철이 비둘기호 포지션
중학교때 많이 타던 비둘기호 새마을까지 있던시절이었어도 비둘기 탈때가 제일 즐거웠었네요 여름에 창문열고 바람 맞으며 기적소리 들을때 느낌 이제는 느끼지 못하겠지요
돌아가신우리할머니보고싶다TT손주들사랑에 아낌없이 다주셨던우리할머니..그립습니다..
6.25전후 저런억척스런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거죠
눈물나네
우와 중간에 기차에서 노래하는거 너무 낭만적이에요ㅜㅜ
영상 중간에 나오는 남광주역 정말 추억이네요.
남광주역은 사라졌지만 새벽시장은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지요.
😊
남광주역은 현재 전라도광주의 광주광역시의 광주지하철 광주1호선의 지하철역으로 존재하고있어요
커엽
저도 문산행 비둘기호 탔던생각나네요 92 93년도에^^ 진짜 추억의 열차였는데
그리운 그시절입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이때가 진짜 힘든시절임 90년대생인 나도 존나 편했고 00년디 10년대 다 존나 편한들 알아야돼
젊꼰의 포텐셜이 충만한!
뭔 개소리 ? 젊은이들한테는 가장 좋았던 시절인데 ㅋㅋ
그시절 추억 돋네요. ㅎㅎ ^-^
비록다른직행열차(무궁화호, 새마을호등)들이 있었어도 비둘기호같은 완행열차는 기차를 타면서 낭만을 즐기는것도 정말좋죠^^ 진짜추억돋습니다ㅠㅠ😂😂😂😂😂😂
일본은 관광상품으로 그렇게 합니다..우리나라도 하루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ㅠㅠ 열차는 천천히 가야 제맛입니다 ㅠㅠ
매번 기차표 끊을때 새마을호, 비둘기호, 통일호 이렇게 나왔었는데 아 그때가 그립네여 ㅋㅋ
다시 돌아가고싶네요
에고~ 고생하셨소~
리포터 얼굴이 익어요!
😊
kbs 홍소연 아나운서?
그전에는 어릴적에 외갓집으로 가는 비둘기호라는 철도 타본적은 있었어요.
비둘기는 기억이 희미하고 통일호는 기억납니다. 새마을호 보낸다고 2~30분씩 기다리던 기억... ㅎ
비둘기호 몇번 못타봤지만 정감이 가고 낭만이 넘치는 열차였지.. 통일호는 조금 타봤었는데 ㅎㅎㅎ
시간여행하는 느낌 지금 무궁화호 대량감차 되는거 보면
참 그 옛날 어머님들은 악착같았다고 해야되나 존경합니다
한 남자로써 한 여자로서
멋진 옷,얼굴에 분칠도 못하시고
고생하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당신만큼은 아니겠지요 ....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옛날엔 몸만 힘들었지 지금은 정신적인 문제랑도 싸워야 한다 예전에는 열심히 사는 세상이였지만 지금은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전쟁통임 자살율 1위 국가
추억에영상감사여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방학 때 단체로 비둘기호 타고 놀러갔던 추억이 있네요. 문 막 열리거나 말거나 달리던 기억이 있네요ㅎㅎ
역마다 멈추는 완행열차.......
그렇게 역마다 멈추는 그런 열차는 이제는 찾지 못하겠지요.........
그런데
그런 완행열차든 급행열차든
반드시 멈추는 역이
춘천역이었는데
거기서 먹는 우동은 진짜............
잠깐 멈추는 동안
열차 승객들 전원이 내려서
역 플랫폼에 있는 가락우동집에서
우동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울때
그 우동 맛은 진짜.......
지금 역전우동이니 하는 곳이 많지만
그 때 먹은 우동만은 못하다는 생각이.............
우리할머니 보고싶다. 할머니 보고싶어요.
다시 태어나셔서 지금은 꿈을 꿀 수도 있는 세대가 되셨을 지도 모릅니다.
저때는 싼 열차타고 가면서도 낭만이란 게 있었는데 요즘은 그냥 죽지못해 사는 분위기같음
음악을 살려야 합니다. 음악이 죽어서 그래요
@@울산갈매기-v3u 요즘은 죄다 트롯 아님 아이돌이니 예전감성이 자리잡을 틈이 없어요
지나고 나니 낭만이지 저렇게 한번 살아보셈.
저때 저분들이 우리들같은 심정이었을걸? 과거라서 미화된거지 ㅋㅋ
저때는 한국사람들이 감정도 풍부하고 그랬는데 점점 소심해지니…
1997년인가..비둘기호 사라진다고 해서 억지로 휴가 내서 가방하나 메고 혼자서 꾸역꾸역 비둘기호만 이용해서 동해바다 여행 간 기억이 있네요.하루에 몇시간씩 걷고 비도 많이 맞고..혼자서 간 최초의 여행이었는데 고생한 만큼 추억도 많다는...그 때 못탔으면 더 많이 아쉬울 뻔했네요..^^
오…대단하십니다 인생선배님
참 그립네여
이런 추억의 영상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1993년에 비둘기호 타고 서울서 광주까지 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는 대학생이라 그냥 무조건 질렀는데 지금은 ㅠㅠ
저 때 중년, 노년층 분들이시면 한창 일제랑 6.25로 고생하시던 분들 세대죠.
동영상 한 컷에 그 시대 애환이 묻어나서 씁쓸합니다.
87인가 88인가 부산진역에서 청량리역까지 12시간//시리게 그리운 아련한 추억들..
1:44 저옛날 기차에서 전자기타를...
대돤쓰...존경쓰...
서울ㅡ문산 경의선비둘기호 ㅎ
6:07 듣는 나도 킹받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곽재구시인의 "사평역에서"의 모티브가 되었던 남광주역도 보이네요.
지금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있습디다.
남광주역이 아닌 학구역 아닌가요.
학생시절 장항선 비둘기호 타고
고향집을 가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진짜 기차타는 맛이나는 기차는 비둘기호임 여기다가 홍익회가 객차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나직히 읊조리는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소리 이조합이면 완벽 조합 ㅋ
옛날엔 진짜 열차에서 못하는게 없었는데 요즘은 열차에서 할수있는게 없다,,,
비둘기호 다시 운행했으면 좋겠다..비둘기호, 통일호가 진짜 기차고 기차를 타는 맛이 뭔가를 보여주지..일본은 완행열차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서 운행한다던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한다..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 아 그립니다 우동은5분정차때 먹는게 최고지
자동차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비둘기호 손님많았네요
옛 추억이 새록 새록!!
영상 잘 보고 갑니다
6:10 와 다라이에 막 담아 기차태운 오징어 선도가 거의 횟감 수준이네요
카라이
할머니들 보니 눈물 쏟아지네ㅠ
와 진짜 다들 빠이팅 넘치신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보고싶다
87년도 제주도사진촬영갔다가 돈이 없어서 배타고 목포와서 비둘기호타고 서울까지 14시간인가 왔던 기억이... 지금 같으면 죽어도 못할텐데 ... 그때가 그립네...
5살때 엄빠따라서 비둘기호 많이 탔는데ㅋㅋ..
의자돌려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마주보면서 가는게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던시절 ㅋㅋ
위에 몇대의 선풍기 팽글팽글 돌아가고 네모반듯한 녹색시트의자에 앉아서 진미구이오징어 뜯어먹으면서 탔던 기억이있네
진짜 옛날에 의자 돌려서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가면서 기차 안에서 얘기도 나누고 막 엄청 재밌게 갔었는데..
매일같이 이고 지고 시장 다니셨던 우리 할머니 생각나네. 좀만 더 사셨으면 편하고 좋은 세상 살아보셨을텐데...
서로 먹을 것을 나눠주고, 서로 그림 그려주고, 짐을 옮겨주는 등의 행동은 낭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임승차나 강매 같은 범죄를 낭만이라고 표현하면 안된다.
국민학교 다닌게 80년후반이었음. 아마 90년초까지 비둘기호가 있었는데 성당에서 남광주역 출발 목포 도착 비둘기호타고 유달산 놀러갔었음. 정말 느렸는데 재밌고 기억에 남음.
비둘기 98년에 없어졌습니다 영상에 나오듯
할머니한테 더 잘할걸...
어머니한테 더 잘해야겠습니다
티내는게 참 쉬운게 아니더라구요
80년대..... 의정부에서 동구천까지 비둘기호를 타고 고등학교를 통학했지요. 항상 다음 역에서 타던 여학생을 기다리던 설렘임......
왜 눈물이 나는지..
세상 살기 편해지고 깨끗하고 풍요로워
불과 얼마전 우리의 일상을 잊지않고 겸손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안타보셨죠?? 그럼 말을하지마세요!!!! 제 20년 추억이 담겨있는 애증의 열차랍니다
87년생인데 ㅎㅎ 중2? 중3때 친구들이랑 해운대 간다고 마지막으로 타봤지요 여름에 그때이후 없어진걸로 아는데
비둘기호 92년도 국2 일때 아빠와 대전역서 타면 위로 가다가 분기되어 돌아서 호남선을 타고 다시 내려가서 가수원역에 내렸던 기억이.. 뒤가 뻥 뚫려있어 기차길을 보고 가면 참 재미 있었는데ㅎ
비둘기호 타고 강촌으로 엠티가던 날 생각나네요.
행복 했던 시절! 희망이 있어....ㅎㅎ
밤11시쯤인가 정동진 가는 무궁화호 만이라도 다시 운행 하믄 안되겄오...청량리에서 기차타고 밤새 달려 새벽녁에 정동진 내려서 일출보고 하던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네요.
KTX이음이 동해역까지 연장되어서 단축된거기 때문에요...
저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네요.
초등학교 1학년때 초등학교 3학년인 누나 따라서 외할머니집에 방문했을때 늘~타고 다녔던 비둘기호... (아버지 사망 엄마는 생계현장으로..)
속도도 느려서 운행중일때 창문을 열어볼수 있었던 열차였습니다 ㅋ ㅋ
지금은 속도가 빨라서 어림도 없지요
기종자체가 오래되다보니 기본으로 달려있는
선풍기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때 ...
난 운행중일때 창문을 열고 다녔었습니다 ㅋ ㅋ
30년전 스물살때 주말 진주 시골집(완사역)과 마산 자취방을 오갈때 마다 이용했는데
이동시간은 두시간 정도로 많이 걸렸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서 이용했던....추억의 비둘기호...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네요..
저랑 같은 열차 타신 듯 ㅋㅋ 당시 경전선이 단선에다가 하도 구불구불해서 시골역에서 마주오던 차랑 교행한다고 이십분씩 서 있고 했지요
저때 노인분들은 6.25경험자분들이시니 정말 리스팩합니다
그리고 저 때는 하루벌어 하루먹던 다 힘든세대인데 얼굴은 밝네 지금은 사람들 얼굴이 어두움
비둘기호다ㅏㅏㅏㅏㅏㅏ
울컥!
이런거 더 만들어 주세요
93년 7살때 작은아버지 손 잡고 수인선 비둘기호랑 그 해 명절에 할머니랑 부모님 손 잡고 부산 부전역에서 해운대 송정역까지 비둘기호 타봤네. 어린나이에 기차 자체가 얼마나 신기했던지...
비둘기호 어릴때 딱 한번 탔던 기억 있는데 그게 좀 선명하게 남아있네. 지린내가 심해서 ㅋㅋ
딱봐도 강한 자만 살아 남을듯..
1호선 확장판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