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은 1597년 9월이었고 순천왜교성 전투가 10월~11월달인데 순천왜교성 전투에서 조선수군 병력은 약 16000명 정도였음 대략 1달 사이에 10배가 넘는 병력이 보강되고 판옥선도 대략 80척 정도가 보강됨 1달 사이에 그정도 병력이 한꺼번에 보강되는건 사실상 불가능한데 아마도 칠천량 해전에서 전부 궤멸된게 아니라 전투중에 흩어진 병력들이 명량해전 이후에 다시 합류한걸로 추정됨
선조가 그래도 인간인게 이순신을 다시 좌수사로 임명하고 수군을 이끌게 해줬다는거임 (지원은 안해줬지만). 그나마 자기 잘못을 깨닫고 뒷수습을 어떻게든 했음. 이게 뭐가 잘한거냐라고 하는사람이 있을수 있는데 역사를 보면 끝까지 지가 잘못했다는거 인정하기 싫어서 온갖 말도 안되는 핑계되어서 오히려 신하를 숙청해버린 경우가 다반사임. 원소가 전풍을 숙청하고, 숭정제가 원숭환을 숙청했드시, 공민왕이 수많은 장수들을 숙청했드시, 선조가 이순신을 숙청 안한것만으로도 잘한거라고 생각함.
왜 입장에선 얼마나 이순신 장군이 증오했으면 아산 본가를 쳐겠으며, 선조의 입장에선 그래도 무지한 넘은 아니라, 그걸 못품으니, 직산전투를 대첩이라 명에 아양 떨어겠으며 남의 나라 전투에 와서 그래도 목숨바쳐서 지켜야 하는 남의 전투에서 객관성과 실리라는 입장에서... 그게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는 명군이나 개인 입장에선 이리해도 어차피 알아주지 않은 현실에서 다 포기하고 내 지키고자 하는 또 그냥 다 받아들이는 지천명 나이에서 내 부하도 두려워 떠는 이순신 장군에게는 인생사의 속뇌에서 장군도 사실 인간일진인데, 다 버리고 좀 더 권력이란 것을 가진자가 이를 알아주고 품어주고, 그 죤재를 알아주어야 정상인데 사람의 행동은 그 이유가 있기에 이론적으로 이해를 할순 있지만, 오히려 선조의 가장 현명한 선택은 본인의 뜩똑하다 천자이다 해도 또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머선발로 뛰어나아가 고맙다 해야 인간의 도리이고 더 능력잀는 이에게 내려놓아아 하는 것이 룰이거를 뒤에서 또는 지나서 보면 지당한 것이지만 100에 99의 인간들은 그러하지 않는다. 자기부정를 하는 것은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는다 보기에... 사는 것 별것없어 그게 아릉다운 미덕일지?라도 선조가 모지리인게 그런 리더쉽도 없을뿐더라, 시스템이 그러해도 문제 없게끔 사회구조가 만들어진 이유이다. 왕조의 국가기반은 그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강한 왕권은 일시이고 대부분은 그걸 조정하여 외척 등 신하들에 의해 지배되는 구조이니, 윗대가리에 맞쳐 밑에서 꿍딱꿍딱 돌아가는게 이 한반도의 운명이다. 똑똑한 이나 의로운 이가 없는게 아니라 후에 기록이나 남기며... 나중 위기시 그런 의로운 이라도 있어 잘못되어도 존재자체는 없어지질 않기 바라며... 김구선생 등 일제 넘들 치하에는 안 그러나? 방식과 방법만 다를 뿐.... 100년, 200년 좀 더 지나면 그들을 영웅이라고 칭할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삶의 얼정으로 살아남은 다 버려가며 한반도의 기나긴 역사처럼... 왜 이걸 극복하지 못하는가? 대인배를 인정하고 그들을 인정만하면 반도를 중심으로 만주나 일본열도, 동남아시아 주변 태평양 연안은 다 가질 수 있는 중간지대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유재란 당시 남해안 농성 전략은 명량해전과 무관합니다. 명량해전은 음력 9월 16일이고, 비변사에선 이미 9월 15일에 일본군이 철수한다는 걸 포착했습니다. 다시 말해 명량해전 결과와 상관 없이 일본군은 한성 공략을 포기하고 물러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영화 김한민 감독의 영화 에서는 오프닝 부분에서 명량해전 때문에 일본군이 일제히 물러난 것으로 당당히 역사 왜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수군은 명량해전 이후 조선수군에 대한 공포가 되살아나 움츠러들긴 커녕 여전히 자신들의 함대가 훨씬 더 많기에 과감히 재차 진입을 시도했고 무혈로 전라우수영 점령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무안, 영광, 진도 등지에서 살육과 약탈을 일삼았고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일본으로 끌고 갔습니다. 강항도 이 무렵에 일본군에게 붙잡혔습니다. 세간의 통념과 달리 일본수군은 명량 해전 이후에 남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 수군이 명량해전 직후 닷새에 걸쳐 고군산군도까지 퇴각하여 남해에서 종적을 감췄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나무위키 명량해전 문서는 버젓이 명량해전의 의의를 남해안 제해권 탈환이라고 써놓고 있습니다. 오히려 명량해전 직후야말로 전라도가 최대로 비참했던 상황입니다. 육지에선 황석산성과 남원성 패배, 바다에서는 조선 수군의 철수로 전라도는 임진년 때와는 달리 완전히 무방비하게 일본군에게 유린당했습니다
400년 전 배설의 최대 성과는 칠천량의 지옥도 속에서 판옥선을 12척이라도 남겼다는 거고, 오늘날 그의 최대 성과는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느니 PTSD 때문이라느니 같은 변명으로 그를 정당화해주는 정체불명의 인간들을 무럭무럭 양산했다는 거쥬.ㅎㅎ 배설의 행적을 조금만 둘러봐도 자기 보신이 최대의 목표였던 인간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는데, 요즘은 동탁도 재평가하는 인간도 있고, 배설도 정당화하는 인간도 있고, 참 좋은 세상이어유.ㅎㅎㅎ 왜? 아예 충혜왕도 재평가해보시지.ㅎㅎ
명량해전하고 일본군 철수는 직접적 관계가 없어요 애당초 히데요시의 지령 자체가 정유재란은 무력시위입니다 전라도를 철저하게 말살하라는 지시를 모두 완료했기 때문에 애당초 북진의지가 없었고 일본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겨울이 다가오니깐 본거지로 철수한 거 뿐입니다. 애당초 점령이 목적이 아니고 분탕질이 목적이었으니깐요
원균의 말아먹기와 선조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승리로 이끌며 결국 조선을 구한 영웅의 모습 그 자체..
대단한거죠
정말 멋진 우리 장군님~~
불멸의이순신보면서 이순신어머니가 배타고 아들보러 가다 돌아가시는장면보면서 진짜 많이울었는데 모든시련을이겨내고 기적같이 나라를구하고 돌아가셨으니 이만한 영웅이따로있을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명량해전
판옥선 1척과 세키부네 133척
이말이 왜이렇게
울컥하네 만드나요
12월에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 한다는데 너무 기대 되면서 눈물날거 같아요 ㅠㅠ
6:34
8:34
본인이 한말을 바로 행동으로 지키는 충무공
실천으로 본보기로 지휘하는 장군님...
전쟁중 선조한테 고문당해서 몸도상해
어머니에 자식까지 죽어서 멘탈도 다나가
왜군장수 원균이 수군말아먹어서 또 멘탈 나가
그래도 멱살잡고 수군 하드캐리 한거 보면
성웅이라는 호칭은 이순신밖에 없네
인정
오죽하면 현대의 인물이 임진왜란 시대로 타임슬립한 op캐일거란 말이 수긍이 갈 정도
거의 신의영역 입니다
전세계를 통틀어 유일하게 해전에서 무패장군입니다
거기다 인성까지 겸비하니 선조가 정적으로 조진겁니다
이억기랑 최호 장군은 무슨 죄야ㅠㅠㅠ
명량해전. 정말 어찌 이겼는지 미스테리한. 이후 고군산도(전라북도 북단)까지 후퇴가 하일라이트.
소갈머리 선조는 삼도수군통제사 복직도 불쾌한지 정하는 자리에서 나갔다고 하는데 남은 대신들이 멋대로 복귀시켰음 심지어 계급도 이전보다 낮은채로 복직 시키고
선조 때문에 복직 못했다면 정유재란 때 이미 일제강점기 왔을듯
영화 명량에서 대장선 한 척만 나가서 싸우는게 영화적 과장 인줄 알았는데 진짜였네 무신이 조선에 임하셨어
영화를 그대로 믿으면 안되죠 조총은 정확도가 낮아서 저격도 힘들었고요
명량... 가슴이 웅장해진다...
명량해전은 1597년 9월이었고 순천왜교성 전투가 10월~11월달인데 순천왜교성 전투에서 조선수군 병력은 약 16000명 정도였음 대략 1달 사이에 10배가 넘는 병력이 보강되고 판옥선도 대략 80척 정도가 보강됨 1달 사이에 그정도 병력이 한꺼번에 보강되는건 사실상 불가능한데 아마도 칠천량 해전에서 전부 궤멸된게 아니라 전투중에 흩어진 병력들이 명량해전 이후에 다시 합류한걸로 추정됨
왜교성 전투는 1598년이에요
남해도 소탕작전도 다뤄줄수있어요?
하늘이 내린 장수라고 밖에는설명되지 않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좋아하지않지만, 그래도 왕중왕은 세종대왕이요 장군중의 장군은 이순신장군이니~~~
역사의 아이러니ㅠㅠ
잘보고갑니다
보화도는 지금의 목포 고하도입니다. 완도 고금도(묘당도)로 옮겼던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나요?
이순신 장군을 고문했다는 설은 조선실록에 있나요? 백의종군과 함께 항상 등장하는 키워드라서 궁금합니다.
실제로 이순신제독이 심한 고문을 당했다는 기록은 없음 조사가 끝나고 말을 타고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고문을 심하게 당했으면 말을 탈수가 없음 아마도 말로 되묻다가 한번씩 죽비로 치듯이 한걸로 추측됨
조선실록에는 없습니다. 다만 정탁이 남긴 기록에는 문초 중에 형신 (정강이를 때리는) 을 받았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다만 당시 나이 50세에 형신은 건강에 지장이 있을수는 있습니다.
또 당신입니까... GOAT
이순신 장군이 이균 죽이고 왕이 되셨어야했는데...
ㅇㅈ...
와! 드뎌 선조(라 쓰고 하성군 이균이라 읽는다) 曰 "그냥 공무원 한 명이 사소한 왜적을 무찌른 전투"에 대한 이야기다...!!!
순천 왜성 전투 해주세요
고려 현종과 양규 장군 그리고 강감찬 과 그 때 그 장수들. 보고 싶다. 정말.
선조가 그래도 인간인게 이순신을 다시 좌수사로 임명하고 수군을 이끌게 해줬다는거임 (지원은 안해줬지만).
그나마 자기 잘못을 깨닫고 뒷수습을 어떻게든 했음.
이게 뭐가 잘한거냐라고 하는사람이 있을수 있는데 역사를 보면 끝까지 지가 잘못했다는거 인정하기 싫어서 온갖 말도 안되는 핑계되어서 오히려 신하를 숙청해버린 경우가 다반사임.
원소가 전풍을 숙청하고, 숭정제가 원숭환을 숙청했드시, 공민왕이 수많은 장수들을 숙청했드시, 선조가 이순신을 숙청 안한것만으로도 잘한거라고 생각함.
왕이 자신의 에러를 인정한 자체부터가 대단한거죠 보통은 억지 부리는데
이순신이 노량에서 안죽었으면 진짜 10000퍼센트 전쟁끝나고 숙청했을인간인데... 의병장들 죽인거만 봐도...
말 하나하나에서 무식하고 천박한 속성이 느껴지네. 역사적으로 대부분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대로 숙청했다고, 숭정제가 얼마나 많은 장군들을 저런 이유로 숙청했는지 알고나 있는지 @@한국-c2u
왜 입장에선 얼마나 이순신 장군이 증오했으면 아산 본가를 쳐겠으며,
선조의 입장에선 그래도 무지한 넘은 아니라, 그걸 못품으니, 직산전투를 대첩이라 명에 아양 떨어겠으며
남의 나라 전투에 와서 그래도 목숨바쳐서 지켜야 하는 남의 전투에서 객관성과 실리라는 입장에서... 그게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는 명군이나 개인 입장에선
이리해도 어차피 알아주지 않은 현실에서 다 포기하고 내 지키고자 하는 또 그냥 다 받아들이는 지천명 나이에서 내 부하도 두려워 떠는 이순신 장군에게는 인생사의 속뇌에서
장군도 사실 인간일진인데,
다 버리고 좀 더 권력이란 것을 가진자가 이를 알아주고 품어주고, 그 죤재를 알아주어야 정상인데
사람의 행동은 그 이유가 있기에 이론적으로 이해를 할순 있지만, 오히려 선조의 가장 현명한 선택은 본인의 뜩똑하다 천자이다 해도 또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머선발로 뛰어나아가 고맙다 해야 인간의 도리이고 더 능력잀는 이에게 내려놓아아 하는 것이 룰이거를
뒤에서 또는 지나서 보면 지당한 것이지만 100에 99의 인간들은 그러하지 않는다. 자기부정를 하는 것은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는다 보기에... 사는 것 별것없어 그게 아릉다운 미덕일지?라도
선조가 모지리인게 그런 리더쉽도 없을뿐더라, 시스템이 그러해도 문제 없게끔 사회구조가 만들어진 이유이다. 왕조의 국가기반은 그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강한 왕권은 일시이고 대부분은 그걸 조정하여 외척 등 신하들에 의해 지배되는 구조이니, 윗대가리에 맞쳐 밑에서 꿍딱꿍딱 돌아가는게 이 한반도의 운명이다. 똑똑한 이나 의로운 이가 없는게 아니라 후에 기록이나 남기며... 나중 위기시 그런 의로운 이라도 있어 잘못되어도 존재자체는 없어지질 않기 바라며...
김구선생 등 일제 넘들 치하에는 안 그러나? 방식과 방법만 다를 뿐.... 100년, 200년 좀 더 지나면 그들을 영웅이라고 칭할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삶의 얼정으로 살아남은 다 버려가며 한반도의 기나긴 역사처럼...
왜 이걸 극복하지 못하는가? 대인배를 인정하고 그들을 인정만하면 반도를 중심으로 만주나 일본열도, 동남아시아 주변 태평양 연안은 다 가질 수 있는 중간지대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유재란 당시 남해안 농성 전략은 명량해전과 무관합니다. 명량해전은 음력 9월 16일이고, 비변사에선 이미 9월 15일에 일본군이 철수한다는 걸 포착했습니다. 다시 말해 명량해전 결과와 상관 없이 일본군은 한성 공략을 포기하고 물러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영화 김한민 감독의 영화 에서는 오프닝 부분에서 명량해전 때문에 일본군이 일제히 물러난 것으로 당당히 역사 왜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수군은 명량해전 이후 조선수군에 대한 공포가 되살아나 움츠러들긴 커녕 여전히 자신들의 함대가 훨씬 더 많기에 과감히 재차 진입을 시도했고 무혈로 전라우수영 점령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무안, 영광, 진도 등지에서 살육과 약탈을 일삼았고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일본으로 끌고 갔습니다. 강항도 이 무렵에 일본군에게 붙잡혔습니다. 세간의 통념과 달리 일본수군은 명량 해전 이후에 남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 수군이 명량해전 직후 닷새에 걸쳐 고군산군도까지 퇴각하여 남해에서 종적을 감췄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나무위키 명량해전 문서는 버젓이 명량해전의 의의를 남해안 제해권 탈환이라고 써놓고 있습니다. 오히려 명량해전 직후야말로 전라도가 최대로 비참했던 상황입니다. 육지에선 황석산성과 남원성 패배, 바다에서는 조선 수군의 철수로 전라도는 임진년 때와는 달리 완전히 무방비하게 일본군에게 유린당했습니다
역시 레전드!!! 리!! 쑨!!!씬!!!
진짜 이순신은 영웅이다........ 선조 생각하면 일본에 투항해도 욕먹을 분이 아니다 진짜............................... 나였으면 투항했을거같음....
다음은 용의 승천...노량인건가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먹는데 ㅋㅋㅋ 이게 현실이라니!!
울산성전투 궁금해요..
히데요시라는 앞의 적은 죽었지만, 뒤에 있는 선조라는 적은 살아있다
400년 전 배설의 최대 성과는 칠천량의 지옥도 속에서 판옥선을 12척이라도 남겼다는 거고, 오늘날 그의 최대 성과는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느니 PTSD 때문이라느니 같은 변명으로 그를 정당화해주는 정체불명의 인간들을 무럭무럭 양산했다는 거쥬.ㅎㅎ 배설의 행적을 조금만 둘러봐도 자기 보신이 최대의 목표였던 인간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는데, 요즘은 동탁도 재평가하는 인간도 있고, 배설도 정당화하는 인간도 있고, 참 좋은 세상이어유.ㅎㅎㅎ 왜? 아예 충혜왕도 재평가해보시지.ㅎㅎ
ㅇㅇ 고려의 역적. 기황후도 드라마 타이틀로 자리 차지한 적도 있는데.
(하지원 님 좋아하지만)
ㅡ 옛날이지만...
얼마 안 있으면,
"고종 옆의 최후의 애국자 이완용"
이따위 멍소리의 드라마가 나올 수도 있음 ㅋㅋㅋ
@@옼케발불꽃심장 이완용
원균을 대놓고 구국의 영웅이라고 하는 미친놈들도 있는 마당에......
이순신과 쌍벽을 이루는
왜군 최고의 맹장!
하지메 사토루의 목숨을 건 분투로 절멸시킨 조선 수군을 부활 시킨 이순신 장군님 ㅠ
정유재란때 전라도는 처절하게 유린당했고, 일본수군은 전북 부안까지 북상하여 약탈을 저질렀습니다.
명량해전하고 일본군 철수는 직접적 관계가 없어요 애당초 히데요시의 지령 자체가 정유재란은 무력시위입니다 전라도를 철저하게 말살하라는 지시를 모두 완료했기 때문에 애당초 북진의지가 없었고 일본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겨울이 다가오니깐 본거지로 철수한 거 뿐입니다. 애당초 점령이 목적이 아니고 분탕질이 목적이었으니깐요
도체찰사(총사령관) 이원익선생이 계셨기에 198VS 2 의 싸움에서 살아남아 수군을 제건할수있었고 명량해전에 승리할수있었죠..
너무 좋은 콘텐츠를 늘 공짜로 보아 미안합니다.
좋빠가보다 선조가나은거같다
또 너야? 지나가는 곳 마다 정치댓글로 창내고 다니는 무지성 갈라치기 정치충???
반포34평 48억 만들어준 문재앙이 최고지ㅋㅋㅋㅋ
원균 보다는 그래도 배설이 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