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당사자가 아닌한 이를 알 수가 없는 관계로 역사를 볼때는 계속해서 고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를 변호한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하는 무지랭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소위 이런 방구석 전무가들의 철없는 댓글에 맘 상하지 마시고 계속 좋은 영상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북방에서 이름을 날리던 조선최대의 정예군 이라고 하던 마지막 남은 기병대 8천명을 한번에 잃어 버리고 왜군에게는 타격도 못주고 .. 수도 한양을 위기로 빠뜨려서 백성들이 도망도 못가고 수도없이 왜군들에 잡혀서 나중에 한양탈환 전투시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무능한것이 사실입니다 북방 들판에 서 날씨 좋은날 전투만이 아는것의 전부였는지 모르겠지만 뻔히 비온뒤의 질퍽한 뻘밭 논에서 말타고 싸우면 기병이 기동력을 발휘 할수없다는것은 알았을텐데 ... 조령에서 전투기회를 놓쳤더라도 비가와서 뻘밭이된 탄금대의 논과 진흙탕에서 싸우지 않고 한번더 물러나서 왜군들이 행군중에 기습이나 한강을 건널려고 모여있을 때 속도전으로 기습등 당시의 주변여건을 찾아보면 여러가지 방법들이 많았을텐데 하필이면 가장 망하는 지름길을 택했으니 ... 그러고서도 명장이라니 전술측면에서 가장악수를 두었으니 신립은 무능하기 그지없다고 밖엔 볼수 없습니다 그냥 다같이 죽자는 이것밖엔 싸우는 방법을 몰랐던 장군도 명장이라고...고대의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것은 적군이 아니라 무능한 지휘관 입니다 내가 지휘해도 그것보다는 잘싸웠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거나 적에게 큰타격을 주어 적의 진군을 늦추 던지 피해를 크게 해야지 죽는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기병은 보병10명 몫이상을 합니다 적이 행군할때 기병으로 들이치면 그스피드와 기세를 막기 어렵습니다
조령도 극단적인 결과론 ㅋㅋ 조령 막다가 졌거나 잘싸웠는데 다른 후속 부대들이 우회 해서 한양갔어봨ㅋㅋㅋ 또 그대로 무능하다 욕했겠지 ㅋㅋㅋㅋ 신립 출발 상황: 경상도 압도적 궤멸 소리 들리고 있는데 병력들은 모이지도 않고 왕 그리고 나라 조선이 너밖에 없다고 떠미는중 ㄷ ㄷ 이걸 질걸 몰랐을까 .. 도착했더니 또다른 명장 이일은 대패해서 빨가벗고 도망오고 성은 성답지도 않고… 어휴
다른 것 빼고 탄금대에서 신립이 왜 수성이나 산에서 수비를 안하고 넓은 탄금대에서 싸웠는지 비판하는 사람들 주장에 대해 적어보고 싶다. 신립이라는 당대 최고의 무장이 왜 그런 장소에서 전투를 했을까? 개인적으로 딱 2가지만 알면 된다고 생각한다. 1. 신립은 한양에서 모을 수 있는 전 병력을 모아 내려왔다. 2. 일본은 여러 개의 군단이 나뉘어 한양으로 북상하고 있었다. 신립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수도 한양을 지키는 것이다. 때문에 수성이나 산에서 수비적 행동을 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적은 만 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군단이 여러 개다. 만약 충주 성이나 다른 산에서 수비를 하면 일본군은 몇 개의 군단으로 포위를 하고 나머지는 한양으로 진격하면 끝이다. 아니면 우회를 해버리면 된다. 이럴 경우 군대가 없는 한양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 한다. 이는 신립이 선택 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한양으로 일본군이 간다면 나와서 싸우는 의미가 전혀 없다. 그러니 신립이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일본군과 야전에서 맞 붙어 승리하는 것. 문제는 일본군은 일정 거리를 두고 군단 급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 그러니 장기전으로 가면 답이 없다. 적의 군세는 계속해서 증가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단기전으로 일본군을 무너트려야 했다. 단기전으로 적을 섬멸하려면 가장 좋은 것이 넓은 지형에서 싸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 개인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신립은 선택지가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병사들의 질이 너무 차이가 큼 100년간 평화로운 나라한테 100년간 싸움만한 사람들이 가장 강한놈한테 통일해서 몰려오는데 개전초기에 상대에대한 정보까지 부족한 상황에서 이길수있을리가없슴 이부분이 군사들 사기에 큰영향을 미치고 조령같은데서 싸우다보면 얼마못버티고 너도나도 탈영하기 시작할꺼임 평지에서나 못도망가게 쫒아가서 몇놈죽이고 겁줘서 대오 유지한다치지만 산중에서 너도나도 탈영하면 싸우기도전에 졌을꺼임 그냥 충주를 전장으로 선택한거 자체가 잘못임 신립의 기마병이 함경도나 평양에 있었으면 훨씬잘싸웠을꺼임
임진왜란 전쟁사 중에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변명이 아닌 합리적 추론 그리고 상황을 이해할려는 노력 모두 찬사를 보냅니다~ 역시 임용한 교수님 내공이 다른거 같습니다 일본은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 해서 실패 사례를 연구해서 같은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과거 로마는 카르타고의 전투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한 장수를 다시 기용해서 실수를 줄이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과거나 지금이나 실수한 장수는 목부터 치고 매도하고 정신승리하고 실수와 패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연구와 컨텐츠가 더 쌓이고 더 멋있어 져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 컨텐츠 채널이 되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불같은(?) 장군을 보내고, 본인도 불리한 전투를 벌여서 뛰어들고, 끝나고 마녀사냥까지 당하는 것 보면, 교수님 말씀처럼 이 군대의 목표가 군대 편성을 위해서 시간을 끄는 군대가 아닌 신립이 뭔가 해결해 줬으면 하는 어중간한 마음으로 보낸 군대가 맞는 것 같습니다..
북방에서 이름을 날리던 조선최대의 정예군 이라고 하던 마지막 남은 기병대 8천명을 한번에 잃어 버리고 왜군에게는 타격도 못주고 .. 수도 한양을 위기로 빠뜨려서 백성들이 도망도 못가고 수도없이 왜군들에 잡혀서 나중에 한양탈환 전투시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무능한것이 사실입니다 북방 들판에 서 날씨 좋은날 전투만이 아는것의 전부였는지 모르겠지만 뻔히 비온뒤의 질퍽한 뻘밭 논에서 말타고 싸우면 기병이 기동력을 발휘 할수없다는것은 알았을텐데 ... 조령에서 전투기회를 놓쳤더라도 비가와서 뻘밭이된 탄금대의 논과 진흙탕에서 싸우지 않고 한번더 물러나서 왜군들이 행군중에 기습이나 한강을 건널려고 모여있을 때 속도전으로 기습등 당시의 주변여건을 찾아보면 여러가지 방법들이 많았을텐데 하필이면 가장 망하는 지름길을 택했으니 ... 그러고서도 명장이라니 전술측면에서 가장악수를 두었으니 신립은 무능하기 그지없다고 밖엔 볼수 없습니다 그냥 다같이 죽자는 이것밖엔 싸우는 방법을 몰랐던 장군도 명장이라고...고대의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것은 적군이 아니라 무능한 지휘관 입니다 내가 지휘해도 그것보다는 잘싸웠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거나 적에게 큰타격을 주어 적의 진군을 늦추 던지 피해를 크게 해야지 죽는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기병은 보병10명 몫이상을 합니다 적이 행군할때 기병으로 들이치면 그스피드와 기세를 막기 어렵습니다
임 박사님 존경하고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진군이 그렇게 늦어 질거라고 예상했다면 왜 별동대라도 보내서 매복 해 보지 않았을까요? 분명 매복의 최적의 장소가 있었는데요. 여러모로 옵션 가는 버리고 옵션 나 안에서만 판단한 신립이 아쉽습니다. 결국 나름의 변론 정도 되겠네요.
제 생각에 신립의 전투 목적은 무엇인가?는 왜군의 격멸입니다. 신립의 부대는 당시 왜군의 진격을 막을 유일한 부대니까요. 신립은 현재로 치면 최고사령관인 도순변사로 임명되어 한양의 장정들을 끌고 갔다고 하잖아요. 근데 그러다 이일도 합류하면서 앞에 조선군이 없다는 걸 알았고요. 그렇게 되면 성에서 나온 것도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생각됩니다. 왜군의 포위하려던 기동을 보고(혹은 듣고) 한양으로 간다고 판단해서 나와서 전투를 시도한거죠.
역시 임용한 박사님이십니다. 입체적인 내용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존에 알려진 다큐들보다 더 많은것들을 생각하게 하네요. 이 강의를 보고 어떤 분위기가 느껴졌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조선이 그동안 느꼈던 왜구의 전투력과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전투력의 차이가 매우 컸던것 같습니다. 실전으로 다져진 보병의 무서움이 느껴지네요. 반면 해상전력에 있어 우위를 점해왔던 조선수군과 이순신의 존재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다만 수많은 판옥선을 날려버린 원균과 비교할때 해상전은 육상전보다 지휘관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군요. 신립은 북방에서 활약했는지는 몰라도 논이 많았던 조선의 남방지역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장수도 장수지만 원균을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한것도 그렇고 신립 임명도 그렇고 중앙의 실력도 좋지 않은것 같네요. 도쿄올림픽이 홈버프를 이용해 일본이 메달을 많이 따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나라의 개성을 알수 있는것 같아요. 축구 대표팀도 그렇고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것 같진 않습니다. 구조가 엉성한것이죠. 반면 영웅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 김연아 박태환 등등 이들이 시스템에 의해서 강해진것 같진않은데요. 오히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님은 제도권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녀들을 훈련 시켰죠. 반면 일본의 경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개인의 능력보다는 조직의 우수성을 추구하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면 개개인의 능력은 특출나지 않은것 같아요. 그런데 해상전의 경우 지휘관의 전함 통술능력이 큰 변수로 작용하는만큼,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최고의 영웅으로 떠오른것 같습니다. 결국 모든일들이 일어날만해서 일어났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시청하겠습니다!
지리학적으로 보면 한반도는 산이 많긴하지만 험하지 않고 지질학적으로 오래된 구릉이 많기 때문에 천혜의 요새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죠. 동네 아저씨도 넘어가는 산인데 훈련받은 군인들이 못넘어갈리가 없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중국쪽 병법에 의존하다가 망친게 아닌가 싶음. 한국스타일로 산성에서 항전하다가 게릴라로 나가야 됨.
교수님 영상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신립의 패전은 역시 왜군을 너무 과소평가했기때문에 벌어진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6세기 초 이래로의 해안을 습격하던 왜군과의 싸움이라는 틀에만 갇혀서 임진왜란당시의 왜군이 정규군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한건 아닐까요 그건 당시 초기 침략시기중 조정의 인식에서도 나오는데 그렇기때문에 굳이 조령에서 매복으로 틀어막는 전술까지 써야되나 생각해서 달천에서 기마병으로 승부보자 하다가 생각보다 왜군이 강력하고 수가 많으니까 안되겠다 싶어서 충주성에서 농성하자 했다가 교수님말씀대로 충주성이 농성에 적합하지 않아 보이니까 다시 또 서울쪽으로 후퇴할라 했다가 미리 강너머까지 틀어막은 왜군들에게 포위된게 아닌가 싶네요 생각해보건데 임란전에 전쟁위기설이 있을때 선조가 유능한 군주였다면 최소한 일본의 상황이 어떤지 군전력이 어느정도인지 미리 정탐만 확실히 했어도 임란이 큰 전쟁으로 확대되는걸 막을수 있었다는 생각을 늘합니다
신립은 이미 자신이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한양을 떠났다고 봅니다.. 충주로 떠나기 전, 한양에서부터 군을 꾸리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으니까요.. 더구나 들려오는 소식은 단순한 패전이 아닌 일방적 궤면 뿐이었으니까요.. 사람이 위기에 몰리면,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승부하려는 습성이 있으니, 그런 측면의 선택이었을겁니다... 더구나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가 일본군 전부라고 오해했을 가능성도 크고.. 단지 선봉일 뿐이고, 어마어마한 후발대들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조령을 어쩔 수 없이 지켰을 수도 있엏을 듯 하네요..
조령은 사이재로 문경에서 충주로 가는 지름재 일 뿐이죠. 무슨 300도 아니고 조령이 막히면 계립령이나 화령으로 돌아가면 그 뿐인데 조선지리에 해박한 왜가 뮈 조령 막는다고 오합지졸에게 패하겠습니까. 월드컵에서 축구 선진국에게 패한다고 감독에게 책임 뒤집어 씌우는 꼴이죠
크게 공감합니다. 네덜란드에 5대0으로 졌다고 차범근을 역적으로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애초에 다윗이랑 골리앗 세 명의 싸움이었는데 이름이 알려진 지휘관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 만큼 단세포적인 생각도 없죠. 한국 축구처럼 구조적인 개혁없이 성적 안나오면 감독에게 책임을 묻고 계속 갈아치우는 것과 똑같다고 봅니다. 전 신립대신 이순신 장군에게 막으라고 했어도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다고 봅니다.
@user-gb7kg9hs2c추풍령은 평지길이나 마찬가지라 기습외에 큰 피해없이 지나가면 되고 죽령은 그냥 오솔길이니 왜가 지나갈리 없고 웅치 이치는 습기 많은 장마철과 한여름에 왜가 지형을 모른채 호남으로 준비없이 가다 고전한 전투죠. 탄금대 처럼 봄에 전투했으면 상황이 다를 듯 합니다. 새재를 택한 이유는 대군이 통과할 만한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이였기 때문였죠.
그냥 신립은 대 여진족 특화 라고 봐야될듯. .현대적 표현으로 아스팔트 특화 레이서 선수임. .그런 선수를 사막이나 밀림에서 드라이버 시키면.. 신립은 견문이 좁던지 아니면 확증편증이 심해서인지 그 당시 일본의 수준을 여진족이랑 별 차이없다고 봤을수도 있음. 당시 조선은 일본을 조선보다 작고 인구도 적으며 생산력도 적다고 인식했음. 그리고 대회전 혹은 병력이 다수 참전하는 그것도 지휘체계가 정해진 군대와 싸운 회전 경험이 신립 뿐만 아니라 조선군 모두가 없으니. .솔직히 신립탓을 할게 아님. 누구나 처음이 있는데. 그 처음이 전투경험이 풍부하고 신무기도 갖추고 지휘체계가 최소 1만이상 확보된 대병력이었다는게 이일 신립 등 임란 초반 장수들의 공통된 불운이었음.
늘 박사님 견해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 강의를 고맙게 잘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올리신 신립에 대한 강의를 듣고 당시의 사료를 무시하고 너무 자의적인 해석을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몇가지 이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조령 방어 건은 조령을 점령하는 무조건 이긴다는게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도 식견이 신립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조령을 막음으로써 이기지 못하더라도 왜군의 쾌속진격을 저지하고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는 것이 최소한의 방어 목적이고 물론 이길수 있다면 이겨야겠죠. 그러나 당시 조선군의 꼬라지에 그건 기적이구요. 박사님이 신립을 변호하는 입장에서 조령 포기의 판단 근거로 제시하신 병력통제와 탈영, 보급 문제는 아무리 막장 조선군이라도 조선1대장 신립이 이끄는 주력군인데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건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탈영을 하려면 한양에서 내려오는 중에 다 도망갔을거구요, 보급문제는 어느시대 어떤 군대도 다 기본적으로 개인식량을 갖고 다닙니다. 또하나 기병전을 위해 조령을 포기했다. 이것도 말이 되지 않는것이 잘 아시다시피 신립 부대는 말이 주력군이지 유성룡이 급하게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병력입니다. 말이 기병이지 제대로 훈련된 기병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비관적이라고 봅니다. 아시겠지만 말을 타고다닌다고 기병대가 아닙니다. 보병보다 더 힘들고 엄격한 군기와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정예부대가 기병대죠. 심지어는 말까지도 여러가지 훈련을 받아야하는데 기록상 그런 정예기병은 아닌듯 합니다. 그러니 어차피 평지에서 제대로된 기병전술이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따라서 내 생각엔 말에서 내리면 그냥 보병이 되도 이상하지 않을 병력자원들이니 기병전보다는 그나마 방어가 유리한 조령에서 산악전을 하는 것이 맞는게 아닌가 합니다. 유성룡 정약용 등 신립을 비판한 사람들도 이런 생각이었을 겁니다. 물론 종사관 김여물도 이런 생각에 조령 방어 조언을 했겠죠. 두번째, 신립은 부하를 아끼는 마음과 정보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력이 없는 자입니다. 이 부분은 이순신과 완전히 다른점이고 원균과 비슷합니다. 북방 전선에서도 그런 사건이 있었지만 적전 상황에서 정찰보고한 군관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참하는 것은 이해불가입니다. 미심쩍은 정보라면 다른 정찰병을 보내서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고 일개 병졸도 아닌 군관의 보고를 무시하고 참했다면 다음번 정찰병이 제대로 보고할까요? 나라면 참형이 무서워 탈영했을겁니다. 어떻게 보고하든 참형일테니카요. 민심의 동요를 막기위해서? 바른말한 군관의 목이 민심의 동요를 막아줄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런 생각 자체가 신립의 어리석음을 대변합니다. 세번째, 충주를 전장으로 선택한 것. 조령을 포기했으면 조령보다 방어하기 좋은 곳을 전장을로 선정해야하는데 신립은 막힌 골목인 충주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충주가 당시 큰도시고 인근에서 거점도시기에 그럴수는 있지만 박사님이 올리신 영상 중에 탄금대 전황지도에서 보듯이 충주는 남한강과 달천으로 둘러싸인 호구 지형입니다 동남쪽 산으로 막혀있죠. 그 안으로 들어가면 퇴각하기가 난감한 지형입니다. 사실상 이기지 못하면 살아서 나올수 없는 그자체로 배수진이죠. 만약 신립이 조정의 지시가 아닌 자의로 충주를 전장으로 선택했다면 군사지도도 보지 않았든지 볼줄 모르든지 어쨌든 군지휘관으로서의 능력 미달인겁니다. 충주에서도 신립은 명확한 방어작전도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충주성을 잃고 북쪽으로 퇴각하려고 탄금대나루에서 도강하려다 강건너에 또다른 왜군부대를 보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강요당한겁니다. 임난 이전 일본의 침공을 걱정하던 유성룡에게 신립이 한 얘기에서 그의 호기로움보다는 오만함이 느껴집니다. 그는 일본군의 전력과 전술과 무기에 무지했고 관심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출병부터 탄금대까지 신립의 모든 말과 행동의 나침반은 거의 그의 오만과 독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군 지휘관의 오만과 독선은 필패의 요소입니다. 그런면에서 신립은 원균의 성정과 비슷하며 다른점이 있다면 그나마 무식하게 용감했다는 겁니다. 신립을 바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의 아이큐가 제로라고 생각해서가 아니고 나라의 명운을 지고 적에 대적할 만큼의 능력과 재질이 안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고 이로 인해 패망의 위기선 조선을 강물에 밀어넣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임난때 조선군 바보 3대장은 신립, 원균, 이일 입니다. 앞으로는 신립과 같은 무능한 장군이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현장에 나서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이런것이 역사에서 후세가 얻어야할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안 믿는 건 안 믿는거지만.. 자기군 척후병을 죽여버리는건 좀 잔인무도하고 근시안적이고 여튼 좀 느므한 듯.. 호쾌한 전투로 자기가 대박 친 것도 그렇고, 자기 부하들을 자주 죽이는 것고 그렇고, 한 번의 패전으로 기냥 한 방에 자결해버리시는 것도 그렇고.. 신중한 것 보다는 이렇게 된거 기냥 배수진 치고 맞부딪혀 보자 라는 식의 성격 급하고 사람 함부로 죽이는 거 보면 길게 생각 안 하시는 성정이었던 것 같고, 그 점이 신립의 전략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저같았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성에 박혀있었을 것 같거든요.. ㅋㅋ
반론~ 교수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학자적 입장으로 신립을 신립이 왜군의 진격속도를 예상치 못했다는거 자체가 척후보고를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죽여버리는데 그걸 본 다른 척후병들은 바보일까요? 아마도 척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을겁니다. 나의 견해는 신립이 조령을 포기하고 강으로 둘러싸인 충주성 부근에 주둔한 자체가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배수진이 되버린것입니다. 영상 앞부분의 지형도와 위성사진에서 보듯이 충주성은 전체적으로 강으로 둘러싸여 퇴로가 없는 지형입니다. 스스로 호구로 들어간거죠. 교과서대로 조령에 진을 쳤으면 최소한 왜군의 진격속도도 늦추고 작전만 잘짜면 격퇴도 가능할수도 있었을겁니다. 그리고 조총 경험이 없는 말과 기병들이 처음 겪었을 당혹감으로 기병돌격도 실패수준을 넘어 학살로 끝났을 겁니다. 신립은 병법과 전술, 부대운용, 지휘능력 등 지휘관으로서의 모든 능력치가 최하급인 졸장일 뿐입니다. 그는 대변해줄 가치도 없는 인물이며 부하 병졸들을 저승으로 끌고간 저승사자이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낭떠러지로 떠밀어넣은 무능한 졸장입니다. 나는 임팔작전의 영웅 무타쿠치 렌야와 동급의 야전지휘관이라고 봅니다.
그건 그쪽 뇌피셜일 뿐이죠. 이랬으면 이랬을 것이다라고 단정짓는 게 역사를 배울 때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입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병력도 부족 했지만 200년 이상 큰 전투가 없었던 조선군과 100년 동안 전국시대를 겪은 왜군의 전투 경험 차이 면에서 이미 신병훈련소에 입대한 병력과 베테랑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신립이 조선군에 유리한 지형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싸움에 불리하면 병력에 우위가 있던 고니시는 신립과 대치를 하고 가토 등은 병력을 우회시켜서 무주공산인 한양으로 진군했을 겁니다. 신립이 거기서 대치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어지고 왕을 지키기 위해 후퇴하는 순간 코니시군의 공격으로 격멸 당했겠죠. 어떻게 대응했던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시점에서 이미 이기긴 힘든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신립이 북방에서 전공이 없던 장수도 아니고 설사 이순신을 보냈데도 그 상황에서 왜군을 이기긴 힘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교수님 말씀은 거의 정상적 결론으로 가는데요, 신립은 매우 무능한 지휘관이라고 판단됩니다. (심지어 저돌형 무사인지조차 알 수 없음) 유성룡의 기록,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쏘는대로 다 맞는답니까?" 이 자체가 불길한 기록이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신립은 적과의 일전을 치르려 한 것이 아니라 한양 쪽으로 후퇴하려다가 포위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싸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친 배수진이 아니라, 적에 밀려서 강을 뒤로하게 된 최악의 경우입니다. 척후를 중요치 않게 생각한 것은 당연하고, 신립은 대규모 적을 상대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북방에서 소규모 여진족과의 전투 경험만 있는 사람이라 오만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류성룡의 기록입니다. 신립은 죄를 지은 장수로서 적과 끝까지 싸운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써 매우 비겁한 행위를 한 거나 다름 없습니다. 자살하는 것은 문관들이나 하는 것이지 무관이 하는 짓이 아닙니다. 신립에 대한 나쁜 평가는 그 아들 신경진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인조 반정공신으로 오만하였고,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항복을 촉구하는 무력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명나라 구원군을 이끌고 온 제독 이여송이 남하하며 조령을 넘다가 '이런 천혜의 요새지를 두고 지킬 줄을 몰랐으니 신 총병도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구나.' 라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신립도 장군이니 기본은 갖추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전쟁의 승패는 언제나 무지해서 놓친 부분에서 갈리는 건 데, 그 당시 신립과 조선군이 가장 무지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조총의 위력이었을 것 같다... 다케다신겐가가 조총을 과소평가하다 당했 듯... 신립도 조총돌파를 위해 수성보다 기병을 선택했다 당한 거 아닐지.....
너무 깔고 가는게 많은느낌 뭐 지금와서 그당시 말의 상태, 훈련상황에 대해 아는사람이 없으니 그당시 판단이 옳았냐 글렀냐에 대한 판달은 지금와서 하기엔 무리가 있다거나 그당시 자연환경이나 처한 상황에 대해 정보가 적다느니 다 맞는말이긴 한데 그런식으로 따지면 그당시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고서야 과거 상황에 대해 100% 단 1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역사를 파악하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다들 주어진 자료를 갖고 이야기 하는거지...
그 주어진 자료로 전문가가 판단하기엔 신립이 멍청한 장군이었기 졌다라고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거죠. 유무죄를 따질 때 증거불충분이라는 겁니다. 패전 책임자를 전투 결과만 가지고 마녀사냥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판단을 내릴 근거가 부족하면 판단 유보를 할 줄 알아야죠. 유신론 무신론 뿐만 아니라 불가지론도 있듯이요.
흠.. 이건 좀 아닌듯요. 조선사료중 신립의 병사가 적고 왜군의 숫자가 10만이라는 뻥튀기 글을 근거하면서 당연히 신립의 판단에 대한 이유를 조정에서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식이고, 신립에 대한 비난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달면서 이건 아닐것이다 혹은 근거가 없다, 음. 신립 변호하는게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 내용은 신립의 판단의 변론을 하는게 사실임. 산악전이 당연히 여러 오솔길이 있고 외길이 아님은 당연하지만, 평지에 가까운곳에서 운용할 수 있는 전술과 산을 넘어가면서 운영할 수 있는 전술의 차이는 극명하지요. 산도 독립적인 산일경우 특별한 잇점이 적고, 산맥사이에 있는 조령같은 고갯길이 방어하기 수월함은 병법을 조금만 알아도 뻔한사실이에요. 오솔길을 못막는다? 산맥사이의 큰 고갯길을 넘어가는것도 대군의 운영이 쉽지 않은데 오솔길 진군? 불가능은 아니지만 미리 산에 좋은위치 잡고 고갯길이든 샛길이든 오솔길이든 막아내는게 훨씬 합리적이죠. 탄금대. 어딜봐서 왜군이 도강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요?? 배수의진이 아니었다구요?? 지도를 봐도 어딜봐도 외산 덜렁있는 평지에서 적을 맞은것은 사실입니다. 오히려 팩트는 우리가 신립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 보편적인 기준을 뛰어넘을 만한 확인된 사료나 논리가 아니라면 마치 사실인양 말씀하신 논제들이야 말로 확인할 수도 없고, 그냥 편들어주고싶은 사람들의 변명일 뿐이라 보여지네요.
본인의 뇌내 망상으로는 선조가 신립을 보낸 이유 중 하나로 적당히 이기거나 비겼으면 좋겠다는 꿍심이 있어 보임. 너무 크게 이겨서 군의 입김이 강해지길 원하지 않은 뉘앙스가 좀 있음. 이건 신립이 사돈지간인 관계와 성격 그동안 쌓아온 입지 등이 미래 세자 책봉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견제했다고 봄. 그래서 적당한 수의 병력과 자원을 맡겨 보냈나 싶음. 그런데 생각보다 왜군은 많고 더 정예화돼 있으니 신립이 가진 권한과 능력으로 못 막았던 게 아닐까 싶음.
댓글 달아 주신 분들께 다시 올려서 죄송합니다. 현재 제가 로그인하고 보면 계속 재생오류가 나서 한번 지우고 다시 올려 봣는데 변함이 없네요...다른 영상은 정상적으로 나오는데 제 채널영상만 재생오류가 나고 스트리밍도 연결이 안되고 해서.. 지금 고전 중입니다.
고생많으십니다 ㅠㅠ
새집으로 옮기셧으니 처음에 어수선한거야 당연하겠지요 길게보시고 스트레스 많이 받지않으셧음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당사자가 아닌한 이를 알 수가 없는 관계로 역사를 볼때는 계속해서 고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를 변호한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하는 무지랭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소위 이런 방구석 전무가들의 철없는 댓글에 맘 상하지 마시고 계속 좋은 영상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감입니다.
하,,, 이런 내용을 모르고 신립이 멍청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네요 팩트체크 감사합니다 이게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북방에서 이름을 날리던 조선최대의 정예군 이라고 하던 마지막 남은 기병대 8천명을 한번에 잃어 버리고 왜군에게는 타격도 못주고 .. 수도 한양을 위기로 빠뜨려서
백성들이 도망도 못가고 수도없이 왜군들에 잡혀서 나중에 한양탈환 전투시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무능한것이 사실입니다 북방 들판에
서 날씨 좋은날 전투만이 아는것의 전부였는지 모르겠지만 뻔히 비온뒤의 질퍽한 뻘밭 논에서 말타고 싸우면 기병이 기동력을 발휘 할수없다는것은 알았을텐데 ...
조령에서 전투기회를 놓쳤더라도 비가와서 뻘밭이된 탄금대의 논과 진흙탕에서 싸우지 않고 한번더 물러나서 왜군들이 행군중에 기습이나 한강을 건널려고 모여있을
때 속도전으로 기습등 당시의 주변여건을 찾아보면 여러가지 방법들이 많았을텐데 하필이면 가장 망하는 지름길을 택했으니 ... 그러고서도 명장이라니 전술측면에서
가장악수를 두었으니 신립은 무능하기 그지없다고 밖엔 볼수 없습니다 그냥 다같이 죽자는 이것밖엔 싸우는 방법을 몰랐던 장군도 명장이라고...고대의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것은 적군이 아니라 무능한 지휘관 입니다 내가 지휘해도 그것보다는 잘싸웠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거나 적에게 큰타격을 주어 적의 진군을 늦추
던지 피해를 크게 해야지 죽는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기병은 보병10명 몫이상을 합니다 적이 행군할때 기병으로 들이치면 그스피드와 기세를 막기 어렵습니다
정말 자세한 설명 감사드려요. 그때의 전황이 상상되면서 좀 마음이 많이 아프더군요. 신립 장군의 어쩔수 없는 마음과 그래도 용기내서 싸우던 사람들이. 패배로 기억할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음의 공포에 맞서싸우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이 드네요.
(연배로 후배이신) 신진학자분에게도 기회를 열어주신 측면이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문형준 박사님께서 설명하시며 택리지 등 사료의 근거를 명확히 달아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의 전투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고 길게 해주셔서 더 좋습니다!
하나의 전투가 아닌 나라를 말아먹은 하루입니다
정주행중입니다 너무 재밌어요!
교수님의 말씀대로 진창이 아니라면 평소 전쟁에 대비해 훈련하지 않았다는 거죠
조령도 극단적인 결과론 ㅋㅋ 조령 막다가 졌거나 잘싸웠는데 다른 후속 부대들이 우회 해서 한양갔어봨ㅋㅋㅋ 또 그대로 무능하다 욕했겠지 ㅋㅋㅋㅋ 신립 출발 상황: 경상도 압도적 궤멸 소리 들리고 있는데 병력들은 모이지도 않고 왕 그리고 나라 조선이 너밖에 없다고 떠미는중 ㄷ ㄷ 이걸 질걸 몰랐을까 .. 도착했더니 또다른 명장 이일은 대패해서 빨가벗고 도망오고 성은 성답지도 않고… 어휴
신립 억까에 대한 다른면을 생각해보게 되는 영상이네요. 훌륭하네요.
역시 박사님 강의 묘미(?)가..뭐.. 제가 무식해서 그런거일지 모르나, 세상에서 들은적도 없는 부분에서의 분석과 해석인 것 같아요. 박사님 본인은 수포자고 그렇다지만ㅋㅋ 현명하고 현실적인 인문학적 분석에서 진짜 최고신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개국하신 임용한TV 대박을 기원합니다
다른 것 빼고 탄금대에서 신립이 왜 수성이나 산에서 수비를 안하고 넓은 탄금대에서 싸웠는지 비판하는 사람들 주장에 대해 적어보고 싶다.
신립이라는 당대 최고의 무장이 왜 그런 장소에서 전투를 했을까? 개인적으로 딱 2가지만 알면 된다고 생각한다.
1. 신립은 한양에서 모을 수 있는 전 병력을 모아 내려왔다.
2. 일본은 여러 개의 군단이 나뉘어 한양으로 북상하고 있었다.
신립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수도 한양을 지키는 것이다.
때문에 수성이나 산에서 수비적 행동을 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적은 만 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군단이 여러 개다. 만약 충주 성이나 다른 산에서 수비를 하면 일본군은 몇 개의 군단으로 포위를 하고 나머지는 한양으로 진격하면 끝이다.
아니면 우회를 해버리면 된다. 이럴 경우 군대가 없는 한양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 한다.
이는 신립이 선택 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한양으로 일본군이 간다면 나와서 싸우는 의미가 전혀 없다.
그러니 신립이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일본군과 야전에서 맞 붙어 승리하는 것.
문제는 일본군은 일정 거리를 두고 군단 급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 그러니 장기전으로 가면 답이 없다. 적의 군세는 계속해서 증가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단기전으로 일본군을 무너트려야 했다.
단기전으로 적을 섬멸하려면 가장 좋은 것이 넓은 지형에서 싸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 개인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신립은 선택지가 없었다.
개소리
후금의 사르후 전투가 딱 이거랑 같은듯요.
신립이 북쪽에서 지내다 보니 시간차 섬멸을 노렸을수도 있을듯여
가장 큰 원인은 병사들의 질이 너무 차이가 큼 100년간 평화로운 나라한테 100년간 싸움만한 사람들이 가장 강한놈한테 통일해서 몰려오는데 개전초기에 상대에대한 정보까지 부족한 상황에서 이길수있을리가없슴 이부분이 군사들 사기에 큰영향을 미치고 조령같은데서 싸우다보면 얼마못버티고 너도나도 탈영하기 시작할꺼임 평지에서나 못도망가게 쫒아가서 몇놈죽이고 겁줘서 대오 유지한다치지만 산중에서 너도나도 탈영하면 싸우기도전에 졌을꺼임 그냥 충주를 전장으로 선택한거 자체가 잘못임 신립의 기마병이 함경도나 평양에 있었으면 훨씬잘싸웠을꺼임
임진왜란 전쟁사 중에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변명이 아닌 합리적 추론 그리고 상황을 이해할려는 노력 모두 찬사를 보냅니다~ 역시 임용한 교수님 내공이 다른거 같습니다 일본은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 해서 실패 사례를 연구해서 같은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과거 로마는 카르타고의 전투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한 장수를 다시 기용해서 실수를 줄이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과거나 지금이나 실수한 장수는 목부터 치고 매도하고 정신승리하고 실수와 패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연구와 컨텐츠가 더 쌓이고 더 멋있어 져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 컨텐츠 채널이 되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외국이라고 패장에게 기회를 주고 우리는 아니라는 건 성급한 일반화라고 봅니다. 패전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패했느냐에 따라 패장에 대한 처분이 달라지는 것이지 소수의 사례를 들어 일반화할 순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불같은(?) 장군을 보내고, 본인도 불리한 전투를 벌여서 뛰어들고, 끝나고 마녀사냥까지 당하는 것 보면, 교수님 말씀처럼 이 군대의 목표가 군대 편성을 위해서 시간을 끄는 군대가 아닌 신립이 뭔가 해결해 줬으면 하는 어중간한 마음으로 보낸 군대가 맞는 것 같습니다..
북방에서 이름을 날리던 조선최대의 정예군 이라고 하던 마지막 남은 기병대 8천명을 한번에 잃어 버리고 왜군에게는 타격도 못주고 .. 수도 한양을 위기로 빠뜨려서
백성들이 도망도 못가고 수도없이 왜군들에 잡혀서 나중에 한양탈환 전투시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무능한것이 사실입니다 북방 들판에
서 날씨 좋은날 전투만이 아는것의 전부였는지 모르겠지만 뻔히 비온뒤의 질퍽한 뻘밭 논에서 말타고 싸우면 기병이 기동력을 발휘 할수없다는것은 알았을텐데 ...
조령에서 전투기회를 놓쳤더라도 비가와서 뻘밭이된 탄금대의 논과 진흙탕에서 싸우지 않고 한번더 물러나서 왜군들이 행군중에 기습이나 한강을 건널려고 모여있을
때 속도전으로 기습등 당시의 주변여건을 찾아보면 여러가지 방법들이 많았을텐데 하필이면 가장 망하는 지름길을 택했으니 ... 그러고서도 명장이라니 전술측면에서
가장악수를 두었으니 신립은 무능하기 그지없다고 밖엔 볼수 없습니다 그냥 다같이 죽자는 이것밖엔 싸우는 방법을 몰랐던 장군도 명장이라고...고대의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것은 적군이 아니라 무능한 지휘관 입니다 내가 지휘해도 그것보다는 잘싸웠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거나 적에게 큰타격을 주어 적의 진군을 늦추
던지 피해를 크게 해야지 죽는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기병은 보병10명 몫이상을 합니다 적이 행군할때 기병으로 들이치면 그스피드와 기세를 막기 어렵습니다
와 선생님 개인채널도 오픈하셨군요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느끼지만 교수님이 잘하시는건 파편적인 사료들을 종합해서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주시는것같아요
교수님 강의 잘들었습니다.
침략한 왜적과 맞서 싸운 선열들의
희생, 용기, 애국심에 깊은 경의를 드립니다.
다만, 이순신 장군처럼 좀 더 치밀하고
세심하게 준비하고 전략을 세우고
우리가 이길만한 장소와 시간에서
(이순신 장군 처럼) 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진짜 임진왜란 전투 설명하시는데 원탑이신것 같네요 ㄷㄷ 볼때마다 감탄입니다.
항상 가장 편한게.누구누구탓 이라고 몰아가는거죠 ㅉㅉ
그래야 진짜 책임자가 면피하거 좋거든요.
결국 조선의 군대시스템의 문제였던거죠.
그리고 진짜 책임자라는 것도 사실 판가름하기 굉장히 어려워요. 사건의 진상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더군다나 전시에는 더더욱 어렵죠. 목격자도 누가 우회하는 걸보고 도망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거죠.
마구잡이 훈련도안된 오합지졸을
머리수만 채워놓았다고 싸울수있는
군대가 아닙니다.
실록에보면 장부상의 실병력을 소집할수 없어서 한양과 경기인근에서 마구잡이로 채모하여
머리수만 채워서 이일장군과 신립장군이 충주로 급하게 내려보냈다고하니 당연히 질수밖에
없지요.
반면에 왜군은 전국시대를 통해 전투경험이 충분했죠.
만약 조령에서 지키다 패했다면?
천하무적 기병군단을 조령고개에 배치한 어리석은 장수 소리를 들었을지가 너무 궁금합니다.. ㅋ 이유야 어떻든 사실 병력의 열세에서 패한건데... 지나칠 정도로 조롱을 당하고 있는건 분명 맞는것 같아요 ㅋ
맞습니다 이게 정답입니다 신립의 특기는 기병전술인데 그 기병대를 험춘한 산악에다가 배치를 한다? 말 같지도 않는 말이죠
공감. 우리가 너무 역사 교육을 도덕 교육으로 받았죠.
감정에만 호소하고 청중이 도덕의 잣대로 과거인물 까대고 과거정부 까대면서 완장질 하도록 부추기는 감정형 교육을 해오다보니 늘 원망의 대상을 만들어서 까대고 숭배의 대상을 만들어서 찬양해대죠.
신립이 같은 새끼는 장군이라기 보다는 전장의 소모품이 용도로 맞음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너무나 용렬한 장군이기에 부끄러운 수준임 .
@@현산-x8p 역사 다시 배우고 와라
그 어떤 지형에서 진을 쳤더래도 우리는 200년 이상 큰 전쟁 없이 살았고, 반면에 왜군은 100년동안의 전국시대를 통해 장수와 병사들의 전쟁경험이 풍부했다는 게 전투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봅니다.
정말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셔서 항상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임 박사님 존경하고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진군이 그렇게 늦어 질거라고 예상했다면 왜 별동대라도 보내서 매복 해 보지 않았을까요? 분명 매복의 최적의 장소가 있었는데요. 여러모로 옵션 가는 버리고 옵션 나 안에서만 판단한 신립이 아쉽습니다. 결국 나름의 변론 정도 되겠네요.
신립이 직접 인솔하는 병력외에는 급조한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매복을 시키면 다들 도망쳤겠죠.
이순신장군님도 첫싸움에서 병사들이 훈련된 병졸인데도 불구하고 겁먹고 떨었다고 합니다.
전쟁의 경험과 훈련을 갖춘 정예병과 오합지졸의 차이는 정말 큽니다.
시즌제로 장기 연재하시더라도 이렇게 깊게 파주시면 좋겠습니다 ㅜ 고맙습니다 덕분에 한국고대전쟁사랑 한국군사사 조선편도 샀습니다
제 생각에 신립의 전투 목적은 무엇인가?는 왜군의 격멸입니다. 신립의 부대는 당시 왜군의 진격을 막을 유일한 부대니까요. 신립은 현재로 치면 최고사령관인 도순변사로 임명되어 한양의 장정들을 끌고 갔다고 하잖아요. 근데 그러다 이일도 합류하면서 앞에 조선군이 없다는 걸 알았고요. 그렇게 되면 성에서 나온 것도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생각됩니다. 왜군의 포위하려던 기동을 보고(혹은 듣고) 한양으로 간다고 판단해서 나와서 전투를 시도한거죠.
격멸보다는 지연전과 기동방어여야 하지 않을까요. 기동방어할 능력이 안되는 군대는것도 맞지만 고수방어는 불가능한 방어지형과 부족한 시간때문에 안되니까요.
오와 넘모 재미지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현상과 통찰 ..
현대인의 생활에서 많을 것을 배우게 됩니다.
난세에 태어나서 나라를위해 싸우다
전사한 분들의 희생에 숙연해집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없다했는데
우린 역사를 잊은 민족이 됐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잊지않는
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할것입니다
역시 임용한 박사님이십니다. 입체적인 내용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존에 알려진 다큐들보다 더 많은것들을 생각하게 하네요. 이 강의를 보고 어떤 분위기가 느껴졌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조선이 그동안 느꼈던 왜구의 전투력과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전투력의 차이가 매우 컸던것 같습니다. 실전으로 다져진 보병의 무서움이 느껴지네요.
반면 해상전력에 있어 우위를 점해왔던 조선수군과 이순신의 존재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다만 수많은 판옥선을 날려버린 원균과 비교할때 해상전은 육상전보다 지휘관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군요.
신립은 북방에서 활약했는지는 몰라도 논이 많았던 조선의 남방지역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장수도 장수지만 원균을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한것도 그렇고 신립 임명도 그렇고 중앙의 실력도 좋지 않은것 같네요.
도쿄올림픽이 홈버프를 이용해 일본이 메달을 많이 따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나라의 개성을 알수 있는것 같아요. 축구 대표팀도 그렇고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것 같진 않습니다. 구조가 엉성한것이죠. 반면 영웅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 김연아 박태환 등등
이들이 시스템에 의해서 강해진것 같진않은데요. 오히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님은 제도권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녀들을 훈련 시켰죠. 반면 일본의 경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개인의 능력보다는 조직의 우수성을 추구하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면 개개인의 능력은 특출나지 않은것 같아요.
그런데 해상전의 경우 지휘관의 전함 통술능력이 큰 변수로 작용하는만큼,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최고의 영웅으로 떠오른것 같습니다. 결국 모든일들이 일어날만해서 일어났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시청하겠습니다!
그 어떤 지휘관이 갔어도 전쟁 경험이 많은 왜군을 200년 이상 큰 전쟁이 없었던 조선군 입장에선 이기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신립을 파견한 게 조정의 잘못된 결정이라는 건 결과론적인 비난이라 생각합니다.
@@Marksomali 그렇습니다. 일본군 초반의 기세는 육상에서 그 누구도 막기 어려웠을것입니다.
상황이 조령은 포기해야하고 싸울수 밖에 없는 상황임 잘못한건 정찰병 죽인거랑 전투에 문제가 있었나? 정도.
기병=숙련병, 보병=징집병 이라면 지휘관 입장에서 정말 전술짜기가 어렵겠네요
이거 한번 올라왔는데 재편집해서 올리신건가요 왜죠 시간분량이 확준 느낌 ㅠㅠ
매번 많은 강사들이 신립에 대해서 비하하는 얘길 많이 보고 너무 이상했습니다. 그의 북방에서의 커리어와 왕과 관료들의 신망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지리학적으로 보면 한반도는 산이 많긴하지만 험하지 않고 지질학적으로 오래된 구릉이 많기 때문에 천혜의 요새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죠. 동네 아저씨도 넘어가는 산인데 훈련받은 군인들이 못넘어갈리가 없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중국쪽 병법에 의존하다가 망친게 아닌가 싶음. 한국스타일로 산성에서 항전하다가 게릴라로 나가야 됨.
병력이 세 갈래로 한양으로 가는데 산성에서 항전 하면 한갈래 병력이 농성중인 성을 포위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병력이 없는 서울로 가서 왕을 잡으면 전쟁이 끝나버리죠. 수성전을 할 상황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강의 제대로 안들으셨네ㅎㅎ 박사님이 이미 짚어주신 내용이에요
왜군 전사자는 얼마인가요? 기록에 남아 있나요,
조선군 1만6천명 대부분 강물익사 3~4명 생존 왜군한테 수백명 포로 당함 왜군1만8천700명 150명 사상
조선군1만6천 명 왜군1만8700명 전투결과 조선군3 ~4명 생존 사살8천명당함 포로 수백명 왜군150명
탄금대 전투 이전까지 조선의 명장 중에 명장인데......
탄금재 전투에서 허무하게 깨진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요
임박사님의 의견에 전폭으로 동의합니다
후세 사람들은 편안하게 앉아서 결과만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ㅎㅎㅎ
명장보다는 용장 신립은 이순신처럼
지략으로 싸웠다기보다는
본인이 용맹하게 싸운경우
진창이 문제가 아니라면 훈련의 문제 아닐까요?
임진왜란 당시 탄금대전투라 하지만, 사실 달천평야에서 전투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합니다.
교수님 영상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신립의 패전은 역시 왜군을 너무 과소평가했기때문에 벌어진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6세기 초 이래로의 해안을 습격하던 왜군과의 싸움이라는 틀에만 갇혀서 임진왜란당시의 왜군이 정규군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한건 아닐까요 그건 당시 초기 침략시기중 조정의 인식에서도 나오는데 그렇기때문에 굳이 조령에서 매복으로 틀어막는 전술까지 써야되나 생각해서 달천에서 기마병으로 승부보자 하다가 생각보다 왜군이 강력하고 수가 많으니까 안되겠다 싶어서 충주성에서 농성하자 했다가 교수님말씀대로 충주성이 농성에 적합하지 않아 보이니까 다시 또 서울쪽으로 후퇴할라 했다가
미리 강너머까지 틀어막은 왜군들에게 포위된게 아닌가 싶네요
생각해보건데 임란전에 전쟁위기설이 있을때 선조가 유능한 군주였다면 최소한 일본의 상황이 어떤지 군전력이 어느정도인지 미리 정탐만 확실히 했어도
임란이 큰 전쟁으로 확대되는걸 막을수 있었다는 생각을 늘합니다
왜군을 과소평가 한 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이 엄청나게 빨리 함락 되었고 정보도 제한되니 실수를 한 거겠죠
조령 충주성 모두 8000명이 농성할 식량도, 도와줄 주민도 없었고요.
43:00
정말 당시에 목책과 3단 사격이 없었을까요?
목책은 있었고 3단 사격은 현재 나가시노 전투에서 알려진 것처럼 전황을 바꿀만한 위력은 절대 아니었다는 게 역사학계의 입장으로 압니다.
정보 보고를 한 군관을 죽였다는건 신립이 포악한 장수 였다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임,, 포악한 장수가 있는 군대가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음,,
장수가 포악한데 누가 제대로된 정보 보고를 할것인지??
신립은 장수의 자질이 없는것임,,
일반인과 박사의 차이를 느껴요
신립은 이미 자신이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한양을 떠났다고 봅니다.. 충주로 떠나기 전, 한양에서부터 군을 꾸리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으니까요.. 더구나 들려오는 소식은 단순한 패전이 아닌 일방적 궤면 뿐이었으니까요.. 사람이 위기에 몰리면,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승부하려는 습성이 있으니, 그런 측면의 선택이었을겁니다... 더구나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가 일본군 전부라고 오해했을 가능성도 크고.. 단지 선봉일 뿐이고, 어마어마한 후발대들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조령을 어쩔 수 없이 지켰을 수도 있엏을 듯 하네요..
후발대가 있는걸 알았다면 더더욱 조령에 박힐 수가 없죠 수많은 군들이 우회해서 오니..
멀쩡하게 사실을 인식하고도 거꾸로 해석을 하시네요 ㅎㅎ
마지논의 위력..
임용한 박사님 만큼 탄금대 전투를 잘 설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 역사 강사라 꺼드럭 거리는 사람들은 그냥 본인 피셜로 떠들어대기만 하듯.. 그런 자격없는 사람들이 역사를 가르치는게 큰 문제 입니다 ..
특히 감정에 호소하면서 청중의 감정만 자극하는 감정형 강사는 참...
그런 강사에게 배운 사람들은 모든 역사적 사건을 도덕적 감정 대입해서 도덕 문제로 몰고가고 꼰대가 되는거죠.
그런사람 있지요. 영연과 출신 스타강사.
@@peterlee8633 그리고 ㅋㅋㅋ 역사를 역사답게 가르친다는 무쟈게 치우친분 계시죠
@@샹크스-e7t 황모 강사? ㅎㅎ
공감합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대부분의 스타 역사 강사들이 역사를 인문학적인 사고를 하는 역량을 키워주는 매개체로 활용하질 못하죠.
조령은 사이재로 문경에서 충주로 가는 지름재 일 뿐이죠. 무슨 300도 아니고 조령이 막히면 계립령이나 화령으로 돌아가면 그 뿐인데 조선지리에 해박한 왜가 뮈 조령 막는다고 오합지졸에게 패하겠습니까. 월드컵에서 축구 선진국에게 패한다고 감독에게 책임 뒤집어 씌우는 꼴이죠
크게 공감합니다. 네덜란드에 5대0으로 졌다고 차범근을 역적으로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애초에 다윗이랑 골리앗 세 명의 싸움이었는데 이름이 알려진 지휘관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 만큼 단세포적인 생각도 없죠. 한국 축구처럼 구조적인 개혁없이 성적 안나오면 감독에게 책임을 묻고 계속 갈아치우는 것과 똑같다고 봅니다. 전 신립대신 이순신 장군에게 막으라고 했어도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다고 봅니다.
@user-gb7kg9hs2c 웅치 이치는 한여름과 장마철에 치룬 전투이고 왜가 미리 준비해준 진격로도 아니여서 지형파악도 안된 전투였음. 이치전투에서 그냥 진산으로 가면되는데 불리하게 이치를 넘으려 했으니. 추풍령은 그냥 평지나 마찬가지니 왜는 기습에 피해가 있었지면 그냥 넘어가면 되었고 죽령은 선택하면 안되는 곳이라 왜가 피한 고개. 그 고개들 직접 넘어나 보셨는지?
@user-gb7kg9hs2c추풍령은 평지길이나 마찬가지라 기습외에 큰 피해없이 지나가면 되고 죽령은 그냥 오솔길이니 왜가 지나갈리 없고 웅치 이치는 습기 많은 장마철과 한여름에 왜가 지형을 모른채 호남으로 준비없이 가다 고전한 전투죠. 탄금대 처럼 봄에 전투했으면 상황이 다를 듯 합니다. 새재를 택한 이유는 대군이 통과할 만한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이였기 때문였죠.
@user-gb7kg9hs2c 자동차길로만 다녀보셨으니 그 고개들을 모르시는 겁니다. 좀 걸어다녀보세요
위성지도를 보니 충주 대부분이 논입니다.
그냥 신립은 대 여진족 특화 라고 봐야될듯. .현대적 표현으로 아스팔트 특화 레이서 선수임. .그런 선수를 사막이나 밀림에서 드라이버 시키면..
신립은 견문이 좁던지 아니면 확증편증이 심해서인지 그 당시 일본의 수준을 여진족이랑 별 차이없다고 봤을수도 있음. 당시 조선은 일본을 조선보다 작고 인구도 적으며 생산력도 적다고 인식했음.
그리고 대회전 혹은 병력이 다수 참전하는 그것도 지휘체계가 정해진 군대와 싸운 회전 경험이 신립 뿐만 아니라 조선군 모두가 없으니. .솔직히 신립탓을 할게 아님. 누구나 처음이 있는데. 그
처음이 전투경험이 풍부하고 신무기도 갖추고 지휘체계가 최소 1만이상 확보된 대병력이었다는게 이일 신립 등 임란 초반 장수들의 공통된 불운이었음.
척후조차 제대로 활용못하는 수준이니 홈그라운드 이점도 못살리고 궤멸될수밖에
영상 안에서 대도는 설명에 따르면 나기나타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대기병용 병기고 준비했다는 점에서도 일본군의 방비가 제대로 되어있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네요.
전투에서 목숨을 바치신 분들의 현장에서의 행적과 생각을 먹물들이 판단한ㄴ다고? 나라 망하는 전형적인 징조.
임용한은 객관적이다 임용한은 분석적이다 임용한은 논리적이다 임용한은 그 어디에서도 듣지못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준다 임용한은 여태까지 내가 본 최고의 역사학자다
임용한 센세♥
늘 박사님 견해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 강의를 고맙게 잘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올리신 신립에 대한 강의를 듣고 당시의 사료를 무시하고 너무 자의적인 해석을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몇가지 이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조령 방어 건은 조령을 점령하는 무조건 이긴다는게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도 식견이 신립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조령을 막음으로써 이기지 못하더라도 왜군의 쾌속진격을 저지하고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는 것이 최소한의 방어 목적이고 물론 이길수 있다면 이겨야겠죠. 그러나 당시 조선군의 꼬라지에 그건 기적이구요. 박사님이 신립을 변호하는 입장에서 조령 포기의 판단 근거로 제시하신 병력통제와 탈영, 보급 문제는 아무리 막장 조선군이라도 조선1대장 신립이 이끄는 주력군인데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건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탈영을 하려면 한양에서 내려오는 중에 다 도망갔을거구요, 보급문제는 어느시대 어떤 군대도 다 기본적으로 개인식량을 갖고 다닙니다.
또하나 기병전을 위해 조령을 포기했다. 이것도 말이 되지 않는것이 잘 아시다시피 신립 부대는 말이 주력군이지 유성룡이 급하게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병력입니다. 말이 기병이지 제대로 훈련된 기병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비관적이라고 봅니다. 아시겠지만 말을 타고다닌다고 기병대가 아닙니다. 보병보다 더 힘들고 엄격한 군기와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정예부대가 기병대죠. 심지어는 말까지도 여러가지 훈련을 받아야하는데 기록상 그런 정예기병은 아닌듯 합니다. 그러니 어차피 평지에서 제대로된 기병전술이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따라서 내 생각엔 말에서 내리면 그냥 보병이 되도 이상하지 않을 병력자원들이니 기병전보다는 그나마 방어가 유리한 조령에서 산악전을 하는 것이 맞는게 아닌가 합니다. 유성룡 정약용 등 신립을 비판한 사람들도 이런 생각이었을 겁니다.
물론 종사관 김여물도 이런 생각에 조령 방어 조언을 했겠죠.
두번째, 신립은 부하를 아끼는 마음과 정보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력이 없는 자입니다. 이 부분은 이순신과 완전히 다른점이고 원균과 비슷합니다. 북방 전선에서도 그런 사건이 있었지만 적전 상황에서 정찰보고한 군관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참하는 것은 이해불가입니다. 미심쩍은 정보라면 다른 정찰병을 보내서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고 일개 병졸도 아닌 군관의 보고를 무시하고 참했다면 다음번 정찰병이 제대로 보고할까요? 나라면 참형이 무서워 탈영했을겁니다. 어떻게 보고하든 참형일테니카요. 민심의 동요를 막기위해서? 바른말한 군관의 목이 민심의 동요를 막아줄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런 생각 자체가 신립의 어리석음을 대변합니다.
세번째, 충주를 전장으로 선택한 것. 조령을 포기했으면 조령보다 방어하기 좋은 곳을 전장을로 선정해야하는데 신립은 막힌 골목인 충주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충주가 당시 큰도시고 인근에서 거점도시기에 그럴수는 있지만 박사님이 올리신 영상 중에 탄금대 전황지도에서 보듯이 충주는 남한강과 달천으로 둘러싸인 호구 지형입니다 동남쪽 산으로 막혀있죠. 그 안으로 들어가면 퇴각하기가 난감한 지형입니다. 사실상 이기지 못하면 살아서 나올수 없는 그자체로 배수진이죠. 만약 신립이 조정의 지시가 아닌 자의로 충주를 전장으로 선택했다면 군사지도도 보지 않았든지 볼줄 모르든지 어쨌든 군지휘관으로서의 능력 미달인겁니다.
충주에서도 신립은 명확한 방어작전도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충주성을 잃고 북쪽으로 퇴각하려고 탄금대나루에서 도강하려다 강건너에 또다른 왜군부대를 보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강요당한겁니다.
임난 이전 일본의 침공을 걱정하던 유성룡에게 신립이 한 얘기에서 그의 호기로움보다는 오만함이 느껴집니다.
그는 일본군의 전력과 전술과 무기에 무지했고 관심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출병부터 탄금대까지 신립의 모든 말과 행동의 나침반은 거의 그의 오만과 독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군 지휘관의 오만과 독선은 필패의 요소입니다. 그런면에서 신립은 원균의 성정과 비슷하며 다른점이 있다면 그나마 무식하게 용감했다는 겁니다. 신립을 바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의 아이큐가 제로라고 생각해서가 아니고 나라의 명운을 지고 적에 대적할 만큼의 능력과 재질이 안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고 이로 인해 패망의 위기선 조선을 강물에 밀어넣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임난때 조선군 바보 3대장은 신립, 원균, 이일 입니다.
앞으로는 신립과 같은 무능한 장군이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현장에 나서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이런것이 역사에서 후세가 얻어야할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식의 해석이라면 마속이 왜 산으로 올라갔는지 .. 나름 이유나 상황이 있을듯
좀더 일찍 하셨어야
왜 한반도지도입니다
대륙조선사밴드로
한반도가아닌데
안 믿는 건 안 믿는거지만.. 자기군 척후병을 죽여버리는건 좀 잔인무도하고 근시안적이고 여튼 좀 느므한 듯..
호쾌한 전투로 자기가 대박 친 것도 그렇고, 자기 부하들을 자주 죽이는 것고 그렇고, 한 번의 패전으로 기냥 한 방에 자결해버리시는 것도 그렇고.. 신중한 것 보다는 이렇게 된거 기냥 배수진 치고 맞부딪혀 보자 라는 식의 성격 급하고 사람 함부로 죽이는 거 보면 길게 생각 안 하시는 성정이었던 것 같고, 그 점이 신립의 전략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저같았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성에 박혀있었을 것 같거든요.. ㅋㅋ
이순신 장군도 자기 부하 병사들 엄청 죽였는데 이순신 장군도 그렇게 치면 급한 사람임?
@@sungsparkguitar이순신장군이 죄없는 자기부하들을 많이 죽였다는 증거 가져와
영상편집 알바라도 채용하셔서 영상을 좀 더 예쁘게 만드는건 어떤가요? 그래픽도 좀 있고 하면 보기도 편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볼거 같아요
교수님 충주성이 방호력 약하다 말은 아닌거 아닌가요.
충주성은 세계최강 기병 몽골군과 싸워 이긴 충주성인데
조선의 후방기지 쪽 성은 사실 관리가 안된 곳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충주성이죠.. 말이 성이지 성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못하는 상황이였습니다.
과거 햇볕정책과 지금 북한 핵을 보는 상태가 확정편향이죠. 한국이 사라질 수도 있는 시체의 산을 쌓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ㅄ같은 문제도 그렇고.
오합지졸 데리고 조령을 결사적으로 막았어야 아쉽네요
임용한 문형준 탄금대 전말
왜군의 움직임~~
척후의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고를 허위라고 참형을 내리는건 참....
정말 최악인거같아요.
하다못해 정 믿기지 않았다면 추가로 척후를 보내서 파악을 하던가 했어야지..
신립 덕분에 일본군이 조령을 단시간 편하게 넘음ㆍ김여물 장군이 조령서 싸워서 지연 작전 펴면 일본군은 하늘재 넘어 뫼악동 지릎재 넘어 개고생 해야 충주에 겨우 오는데다 일본군이 험준한 단월등을 너~무 싶게 넘었습니다
박사님 영상을 보면볼수록 조선의 문제점이 보이네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는것이라 오류가 있겠지만, 정말 조선이라는 국가는 기록이나 체계가 빈약한 국가같습니다
미국처럼 평야도 아니고 유럽처럼 구릉도 아니고 결국 자국영토서 굳이 불리한 지형에서 안일하게 대처했네요.
그냥 조선인들도 그렇고 지금의 대한민국인들도 그렇고
그냥 신립이 XX이라서 진거라고 생각하고싶어하는 느낌이 강함 여기 댓글만 봐도 뭐;;
발음이 너무 안좋아서 집중이ㅡ안됨
반론~ 교수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학자적 입장으로 신립을
신립이 왜군의 진격속도를 예상치 못했다는거 자체가 척후보고를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죽여버리는데 그걸 본 다른 척후병들은 바보일까요? 아마도 척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을겁니다. 나의 견해는 신립이 조령을 포기하고 강으로 둘러싸인 충주성 부근에 주둔한 자체가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배수진이 되버린것입니다. 영상 앞부분의 지형도와 위성사진에서 보듯이 충주성은 전체적으로 강으로 둘러싸여 퇴로가 없는 지형입니다. 스스로 호구로 들어간거죠. 교과서대로 조령에 진을 쳤으면 최소한 왜군의 진격속도도 늦추고 작전만 잘짜면 격퇴도 가능할수도 있었을겁니다. 그리고 조총 경험이 없는 말과 기병들이 처음 겪었을 당혹감으로 기병돌격도 실패수준을 넘어 학살로 끝났을 겁니다. 신립은 병법과 전술, 부대운용, 지휘능력 등 지휘관으로서의 모든 능력치가 최하급인 졸장일 뿐입니다. 그는 대변해줄 가치도 없는 인물이며 부하 병졸들을 저승으로 끌고간 저승사자이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낭떠러지로 떠밀어넣은 무능한 졸장입니다. 나는 임팔작전의 영웅 무타쿠치 렌야와 동급의 야전지휘관이라고 봅니다.
그건 그쪽 뇌피셜일 뿐이죠. 이랬으면 이랬을 것이다라고 단정짓는 게 역사를 배울 때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입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병력도 부족 했지만 200년 이상 큰 전투가 없었던 조선군과 100년 동안 전국시대를 겪은 왜군의 전투 경험 차이 면에서 이미 신병훈련소에 입대한 병력과 베테랑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신립이 조선군에 유리한 지형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싸움에 불리하면 병력에 우위가 있던 고니시는 신립과 대치를 하고 가토 등은 병력을 우회시켜서 무주공산인 한양으로 진군했을 겁니다. 신립이 거기서 대치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어지고 왕을 지키기 위해 후퇴하는 순간 코니시군의 공격으로 격멸 당했겠죠. 어떻게 대응했던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시점에서 이미 이기긴 힘든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신립이 북방에서 전공이 없던 장수도 아니고 설사 이순신을 보냈데도 그 상황에서 왜군을 이기긴 힘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Marksomali 그건 그쪽 뇌피셜일 뿐이죠. 이랬으면 이랬을 것이다라고 단정짓는게 역사를 배울때 가장 경계해야할 태도입니다.~ 님은 뇌피셜 단정지어도 되고 나는 안되나? 임박사는 뇌피셜 가설 세워도 되고 나는 안되나? 재밌는 양반이네~~ 연구대상일세^^
교수님 말씀은 거의 정상적 결론으로 가는데요, 신립은 매우 무능한 지휘관이라고 판단됩니다. (심지어 저돌형 무사인지조차 알 수 없음) 유성룡의 기록,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쏘는대로 다 맞는답니까?" 이 자체가 불길한 기록이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신립은 적과의 일전을 치르려 한 것이 아니라 한양 쪽으로 후퇴하려다가 포위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싸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친 배수진이 아니라, 적에 밀려서 강을 뒤로하게 된 최악의 경우입니다. 척후를 중요치 않게 생각한 것은 당연하고, 신립은 대규모 적을 상대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북방에서 소규모 여진족과의 전투 경험만 있는 사람이라 오만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류성룡의 기록입니다. 신립은 죄를 지은 장수로서 적과 끝까지 싸운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써 매우 비겁한 행위를 한 거나 다름 없습니다. 자살하는 것은 문관들이나 하는 것이지 무관이 하는 짓이 아닙니다. 신립에 대한 나쁜 평가는 그 아들 신경진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인조 반정공신으로 오만하였고,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항복을 촉구하는 무력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명나라 구원군을 이끌고 온 제독 이여송이 남하하며 조령을 넘다가 '이런 천혜의 요새지를 두고 지킬 줄을 몰랐으니 신 총병도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구나.' 라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병사 수가 열배가 넘고 다른 부대들은 구경하면서 지나갔는데 헛소리 하지마라
신립도 장군이니 기본은 갖추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전쟁의 승패는 언제나 무지해서 놓친 부분에서 갈리는 건 데, 그 당시 신립과 조선군이 가장 무지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조총의 위력이었을 것 같다... 다케다신겐가가 조총을 과소평가하다 당했 듯... 신립도 조총돌파를 위해 수성보다 기병을 선택했다 당한 거 아닐지.....
타게다 기마대가 조총의 위력을 얕보고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군의 3단 사격에 대패했다는 건 잘못 알려진 역사지식입니다. 3단 사격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300년은 더 지나 라이플이 나오는 남북전쟁 정도는 되어야 전쟁의 양상이 그렇게 바뀝니다.
조선의 기록은 믿을게 못됩니다
일본측 기록을 연구해서 방송해주세요
영상 처음에 나오는 사람은 중국인인가요 조선족인가요?
신립은 쫄로선 댓빠미지만 ㅈㄱㆍㅇㄴㅇ됸ㅊㅌㅈㅅㄴㅅㅂㄴㅂㄱㅎㄷ
신립은그냥돌격대장이나하지
궁기병을 믿었던것인데..
하필 진창을 선택해서
기동성을 전혀 살리지못함
결론 신립은 졸장임 ㅇㅇ
물론 탄금대전투는 패배한 전투지만 제대로 싸울수 없는 오합지졸군대를 가지고 일본군 군대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하죠. 그래서 정비하는데 많은시간이 걸렸다 합니다ㅋ
뭔 헛소리 고니시군 한양으로 쾌속진군했는데
@@jydasdfg3688 충주에서 주춤했고 평양에서 정비하느라 더이상 진군못함 ㅋㅋ책좀 읽으셈
@@한세종-d3d 평양서 뭉그적거린 건 선조가 빤스런해서 왕이 튀는 거 난생 처음 당해본데다 이로인해 애초 작전계획도 전면적으로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걸로 아는데요~
피해를 주긴 개풀 ㅉㅉ
@@한세종-d3d왕 ㅂㅅ같이 도망가는건 처음보느라 당황한걸로 피해를 준거라는 ㅂㅅ ㅋㅋㅋㅋ
머저리 신립 김여물장군 말만 들었으면 역사의 비극은 없었을것인데 여진족 니탕계 와 전쟁 승리로 자만이 극에 달해 무지한 장수로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너무 깔고 가는게 많은느낌
뭐 지금와서 그당시 말의 상태, 훈련상황에 대해 아는사람이 없으니
그당시 판단이 옳았냐 글렀냐에 대한 판달은 지금와서 하기엔 무리가 있다거나
그당시 자연환경이나 처한 상황에 대해 정보가 적다느니
다 맞는말이긴 한데
그런식으로 따지면
그당시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고서야
과거 상황에 대해 100% 단 1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역사를 파악하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다들 주어진 자료를 갖고 이야기 하는거지...
그 주어진 자료로 전문가가 판단하기엔 신립이 멍청한 장군이었기 졌다라고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거죠. 유무죄를 따질 때 증거불충분이라는 겁니다. 패전 책임자를 전투 결과만 가지고 마녀사냥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판단을 내릴 근거가 부족하면 판단 유보를 할 줄 알아야죠. 유신론 무신론 뿐만 아니라 불가지론도 있듯이요.
32:35 늪지 배치 추정할때 늪지가 부분적으로 배치되었다 가정하더라도 ,왜구가 신립 기병 주력인 것 파악하고 늪지를 가림막으로 이용할 건 고려사항에도 안 넣네 ㅠㅠ 뭔가 항상 2% 부족해 ㅋㅋ
결과론적으로 대참패 인데 자꾸 신립에 대해 비난보단 변론한다는 느낌이네요 비판받아 마땅하니 적당히 하셔야 할듯 합니다
어설프게 한신따라하다 ㅈ된경우지머
걍 엄청 무능한거 같은데 국가의 운명이 걸린 일전인데 모든 가정이 다 신립한테 유리하게 해석 해도 결론은 그냥 대충 대충 했다는 말 밖에 안됨 죄다 핑계 거리
당시 신립이 대려간 기병이 양반층을 주축으로한 현대로따지면 그냥 민방위수준이 온걸로 알고있습니다
자신이 북방에서 이끌던 정예기병을 대려온것도아니었구여
또한 설령대려왔다하더라도 평지를 달리면서 능숙한기동을했던 기병대가 익숙하지못한 늪지에서
재대로 기동전을 펼칠수있을지도 의문이긴합니다
오합지졸 대 베테랑의 싸움이었죠. ㅎㅎ
1등
초반 나오시는 교수님은 설명하시는게 힘겹게 들리네요 말씀하시는게 부자연스러워 듣기 힘듭니다
흠.. 이건 좀 아닌듯요. 조선사료중 신립의 병사가 적고 왜군의 숫자가 10만이라는 뻥튀기 글을 근거하면서 당연히 신립의 판단에 대한 이유를 조정에서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식이고, 신립에 대한 비난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달면서 이건 아닐것이다 혹은 근거가 없다, 음. 신립 변호하는게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 내용은 신립의 판단의 변론을 하는게 사실임.
산악전이 당연히 여러 오솔길이 있고 외길이 아님은 당연하지만, 평지에 가까운곳에서 운용할 수 있는 전술과 산을 넘어가면서 운영할 수 있는 전술의 차이는 극명하지요. 산도 독립적인 산일경우 특별한 잇점이 적고, 산맥사이에 있는 조령같은 고갯길이 방어하기 수월함은 병법을 조금만 알아도 뻔한사실이에요. 오솔길을 못막는다? 산맥사이의 큰 고갯길을 넘어가는것도 대군의 운영이 쉽지 않은데 오솔길 진군? 불가능은 아니지만 미리 산에 좋은위치 잡고 고갯길이든 샛길이든 오솔길이든 막아내는게 훨씬 합리적이죠.
탄금대. 어딜봐서 왜군이 도강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요?? 배수의진이 아니었다구요?? 지도를 봐도 어딜봐도 외산 덜렁있는 평지에서 적을 맞은것은 사실입니다.
오히려 팩트는 우리가 신립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 보편적인 기준을 뛰어넘을 만한 확인된 사료나 논리가 아니라면 마치 사실인양 말씀하신 논제들이야 말로 확인할 수도 없고, 그냥 편들어주고싶은 사람들의 변명일 뿐이라 보여지네요.
본인의 뇌내 망상으로는 선조가 신립을 보낸 이유 중 하나로 적당히 이기거나 비겼으면 좋겠다는 꿍심이 있어 보임. 너무 크게 이겨서 군의 입김이 강해지길 원하지 않은 뉘앙스가 좀 있음.
이건 신립이 사돈지간인 관계와 성격 그동안 쌓아온 입지 등이 미래 세자 책봉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견제했다고 봄. 그래서 적당한 수의 병력과 자원을 맡겨 보냈나 싶음.
그런데 생각보다 왜군은 많고 더 정예화돼 있으니 신립이 가진 권한과 능력으로 못 막았던 게 아닐까 싶음.
그때 선조에겐 군사령관을 견제할 여유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습니다. 너무 음모론적인 접근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