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저의 군생활을 말씀드리는게 실례이지만. 저도 똑같이 당한게 있어서 적어봅니다 저는 16번 군번이였고, 딱 개도기 시절이였던것 같습니다. 제 위 병장 상병 선임들이 꼰대 선임 옛날 군대식 문화로 갈구던 시기였고, 저때가 딱 개도기 시점이였습니다. 근무는 병장들이랑 하고, 가르침은 한기수 차이나는 맞선임 에게 배우라고 하고, 장비 또한 열약하고 , 맞선임 아님 그 맞맞선임에게 빌려야하는 열약한 환경이였습니다. 당연하게 일병이 일을 실수하고, 실수하지않기 위해 배우고 노력하는 자세는 당연한 디폴트 겠지만. 이외 사약과 잡일 등등 당연하게 일병이 해야 했고, 본인들은 근무중에 자거나 딴짓을 하고, 근무중 실수가 일어나면 너 휴가 짜르게 만든다 협박하며 휴가까지 짜르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누가 그러더라구요, 군대는 사회생활이다, 아니요, 끌려간 군대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시키는대로 하고 욕 다먹고 선임이라는 인간들은 근무도 제대로 안하는데 이게 사화생활 ? 본인 스트레스 후임 꼬투리잡아서 갈구는게 사회생활 이라는건 저는 지금 사회생활 하면서 한번도 본적없습니다. 지금도 그냥 미친놈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착한 선임과 훌륭한 선임들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좋은 추억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후 저는 군대고 상하복종이고 뭐고 영창 가면 가고 휴가 짤리면 짤린다는 각오하고 지킬 선 만 지키고 , 이후 하는 행동에 당당하게 맞싸웠고, 중대장이라는 시x새x키 학부 운동학과 놈은 똥통 운동학부 답게 하는 행동은 병사가 아닌 선임들이 갈구는게 당연한 문화처럼 행동했고, 저는 복무 이외 피팝 협박 욕설을 받았다 라는걸 몇번이나 면담 했지만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없고 선임에게 이 사실을 말해서 2차 가해 까지 당했었습니다. 이 당시 정말 자x 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내가 죽는것보다 이 새x들 다 죽이고 죽겠다 생각에 중대장 부터 모든 선임 다 찔렀고, 인맥을 이용해 소원수리함이 아닌 중대장부터 선임까지 물가리 쳤고, 저는 인맥를 통해 타특기로 이동하였습니다. 거기서는 일정의 선만 지키면 선임이고 후임이고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편안하게 전역했습니다. 그 사이에 이전 특기에 있던 선임 병사와 마주친적있는데. 저를 노려보기에 왜요 아저씨 라고 대답했고., 그 새x는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 돌리는거보니 진작에 이렇게 했을걸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군대에서 동기 지인 밖에서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솔직히 연고지 다 다르고 학교 다른데 굳이 사회 나와서 군대 지인으로 두고 싶은 마음 1도 없었고, 지금 민방위 하고 있는 저를 보면 빨리 그렇게 할걸 이라고 후회 하고있습니다. 제가 빽을 만날수 있었던 계기는 교회였습니다. 저는 무교이지만 교회에 장군 장성 영관 급 사모님들이 주말마다 교회에 오신다는걸 들었고, 무교인 저는 매주 주말마다 교회에 갔었고, 사모님들에게 저의 상황과 죽고싶다며 눈물 흘리며 고해를 했었는데. 그게 저의 특기 전대장 사모님이 였고, 이후 잘 풀린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휴대폰 자유화 되어 연락이 쉽고, 부모님께 있었던 일들 말씀드리기 쉽지만 저때만 해도 공중전화 밖에없었습니다. 그것도 선임들 못하게 막았구요. 휴가도 짬팅당해서. 제대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라떼가 더 힘들었다 . 아무런 소용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힘든게 제일 큽니다. 참고로 저는 새로운 특기 받고 대회까지 출전해서 상도 받았고, 군대에서 표창상 까지 받았습니다. 군대에서 제일 힘든건 군복무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해병대 후배님들 감사합니다 해병대. 1기 1950년..1백자선님 1960년 1965년 1970년 월남파병 갔다온 선배님들 2백자 1980년. 선배님들 은 해병대 개고생하고 살았습니다 해병대 1995년 편하게 했네요 그향 조용히 멋진 추억이다 생각학시고 쪽팔리개 살지 맙시다 뉴욕에서 600초..해병대 사랑해요 응원합니다 필승 ~~❤👍✌️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30년전에 군생활은 너무 비인간적이다.. 어떻게 버텼을까 대단하다
그당시 군생활 특히 해병대라면 미쳤겠쥬ㅜㅜ 근데 선임 계급 가져가서 피엑스는 ㅁㅊ짓 같기는 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승!82년1월 군번 입니다....3월달에실무에 배치받아서 갔더니 팀스피리트 82 훈련이 한창 이더군요...그때의 두려움과 낮설음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저는 제가 아플때 고생한다 생각들때 큰 힘듬을 몰랐습니다. 그 사람이 아니고는 그 사람을 알수 없듯이 나 아닌 상대의 아픔이 큰 힘듬임을 알아 버렸을 때 진정 아픔임을 깨쳤습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사랑 입니다.
필승~!!
하~~~ 방구 ㅎㅎㅎ
18년째 방구 안 트고 살고 있는데 ㅋㅋ
진짜 방구 붕붕~ 하면 와...
어릴적 봤든라면국물예 밥 말은 비주얼...
평생을 못먹다가 얼마전 먹어본 라죽맛이 좋았든 경험에 트라우마가 깨졌어요^^
필승! 선배님이셨네요 1997년 해병대 내무반은 구타가 일상이었죠 지금은 중년남성이 되서 군가도 까먹었네요 우리 똥가리들은 잘 사나? 궁금하네요
저도 30년 군생활에 소대는 폭파당했지만...이걸 추억이라 하다군요.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지 방구 트름은 좀 그렇다 사람의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지
오..........그래서 난.
비혼이고. 30년 살았던 어느 동네. 발길도 않는다
저 때는 제주도 청년은 모두 해병대로 입대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모릅니다.
당시는 이유를 묻지 못하는 시절이어서..
97년 군번 보병연대 실무 당번 바닥 바닥킹 물땅 병기 싸이드 싸이드킹 상병여래 알병장 킹선임 누가 만들었는지 지금은 없겠지 엄청 맞음 그놈의 찐빠 ㅋㅋ 지금은 추억
감히 저의 군생활을 말씀드리는게 실례이지만. 저도 똑같이 당한게 있어서 적어봅니다
저는 16번 군번이였고, 딱 개도기 시절이였던것 같습니다. 제 위 병장 상병 선임들이 꼰대 선임 옛날 군대식 문화로 갈구던 시기였고, 저때가 딱 개도기 시점이였습니다.
근무는 병장들이랑 하고, 가르침은 한기수 차이나는 맞선임 에게 배우라고 하고, 장비 또한 열약하고 , 맞선임 아님 그 맞맞선임에게 빌려야하는 열약한 환경이였습니다.
당연하게 일병이 일을 실수하고, 실수하지않기 위해 배우고 노력하는 자세는 당연한 디폴트 겠지만. 이외 사약과 잡일 등등 당연하게 일병이 해야 했고, 본인들은 근무중에 자거나 딴짓을 하고, 근무중 실수가 일어나면 너 휴가 짜르게 만든다 협박하며 휴가까지 짜르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누가 그러더라구요, 군대는 사회생활이다, 아니요, 끌려간 군대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시키는대로 하고 욕 다먹고 선임이라는 인간들은 근무도 제대로 안하는데 이게 사화생활 ? 본인 스트레스 후임 꼬투리잡아서 갈구는게 사회생활 이라는건 저는 지금 사회생활 하면서 한번도 본적없습니다. 지금도 그냥 미친놈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착한 선임과 훌륭한 선임들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좋은 추억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후 저는 군대고 상하복종이고 뭐고 영창 가면 가고 휴가 짤리면 짤린다는 각오하고 지킬 선 만 지키고 , 이후 하는 행동에 당당하게 맞싸웠고, 중대장이라는 시x새x키 학부 운동학과 놈은
똥통 운동학부 답게 하는 행동은 병사가 아닌 선임들이 갈구는게 당연한 문화처럼 행동했고, 저는 복무 이외 피팝 협박 욕설을 받았다 라는걸 몇번이나 면담 했지만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없고 선임에게 이 사실을 말해서 2차 가해 까지 당했었습니다. 이 당시 정말 자x 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내가 죽는것보다 이 새x들 다 죽이고 죽겠다 생각에 중대장 부터 모든 선임 다 찔렀고, 인맥을 이용해 소원수리함이 아닌 중대장부터 선임까지 물가리 쳤고, 저는 인맥를 통해 타특기로 이동하였습니다. 거기서는 일정의 선만 지키면 선임이고 후임이고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편안하게 전역했습니다.
그 사이에 이전 특기에 있던 선임 병사와 마주친적있는데. 저를 노려보기에 왜요 아저씨 라고 대답했고., 그 새x는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 돌리는거보니 진작에 이렇게 했을걸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군대에서 동기 지인 밖에서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솔직히 연고지 다 다르고 학교 다른데 굳이 사회 나와서 군대 지인으로 두고 싶은 마음 1도 없었고, 지금 민방위 하고 있는 저를 보면 빨리 그렇게 할걸 이라고 후회 하고있습니다.
제가 빽을 만날수 있었던 계기는 교회였습니다. 저는 무교이지만 교회에 장군 장성 영관 급 사모님들이 주말마다 교회에 오신다는걸 들었고,
무교인 저는 매주 주말마다 교회에 갔었고, 사모님들에게 저의 상황과 죽고싶다며 눈물 흘리며 고해를 했었는데. 그게 저의 특기 전대장 사모님이 였고,
이후 잘 풀린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휴대폰 자유화 되어 연락이 쉽고, 부모님께 있었던 일들 말씀드리기 쉽지만 저때만 해도 공중전화 밖에없었습니다. 그것도 선임들 못하게 막았구요.
휴가도 짬팅당해서. 제대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라떼가 더 힘들었다 . 아무런 소용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힘든게 제일 큽니다.
참고로 저는 새로운 특기 받고 대회까지 출전해서 상도 받았고, 군대에서 표창상 까지 받았습니다.
군대에서 제일 힘든건 군복무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여자지만 이해가 되네요 그러니요 미친 집단인 것을 ㅋㅋ 사회생활이라니요~ 하하~ 사회생활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지만 저런 나쁜 예도 사회생활이 어디 녹록한지아냔 식의 말은 일도 공감이 안 됩니다. 너무 수고많으셨네요
온실속 화초로 자라셨어서 힘드셨나보네요.
님도 주변 사람들도 서로 힘들었겠습니다.
너무 길어
@@user-kq5ws9eg5k 이게 길다면 수능 국어는 어떻게 푸실려고 그러시나요?
@@koranokis
학력고사시대
우린 밑줄좌악하면 그게 시험에 나와서 이렇게 지문이 길이 않았음.
수능은 구경도 못 해봤음
필승 839기 입니다
96군번 그래도 그때가그립다.
신랑이 그러는데 잘때도 빵빵 먹을때 빵빵 티브보면서 빵 밥먹고 나서 물입에넣고 가글 그래서 따로 먹네요 ㅠ
89년6월 621기
한여름에 겨울공기...!그때 난...!😐
우리남편은지금두해병트라우마있어요😂
띄. 어. 쓰. 기.
@@이진영-o6l4n오지랖
85년6월입대
ㅉㅉ 울 일도 많네요 ^^
기수도 좀 나오지
해병대 후배님들 감사합니다
해병대. 1기 1950년..1백자선님
1960년 1965년 1970년
월남파병 갔다온 선배님들 2백자 1980년. 선배님들 은
해병대 개고생하고 살았습니다 해병대 1995년
편하게 했네요 그향 조용히 멋진 추억이다 생각학시고
쪽팔리개 살지 맙시다
뉴욕에서 600초..해병대 사랑해요 응원합니다 필승 ~~❤👍✌️
충성
친구가 연식이 있어보이네요
제가 십년이상 많은데요...^^
방귀 뀌다 지린적 있겠지
1960년대 전방 근무했던 해병대원분 왈..
북쪽에서 떠내려온 여성 시체 시간 경험까지 있을 정도로 스스로 귀신이었다고..
남편이 펑펑하는 방귀쟁이인데 제가 30년넘게 속으로 미워했는데
제가 고혈압
머리
가슴
옆구리 혈액순환 장애로 추운곳
못가고
음식도 많이먹고 싶은데
못먹을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방귀가 얼마나 소중한지 내나이63살 새삼느낍니다
나이들면은 방귀가 소중한줄압니다
건강해서 그래요
뿡뿡 해병 후배인데 선임 한테 필씅 안 때리네 ㅜㅜ
기압이~~
명언..
뒤가 구린 놈은 유명하지 말자.
맞든 뭐든 부대에 피엑스. 있다는것이 부럽네 우리부대엔 피엑스가 없어 철조망 몰래넘어가 옆부대로 물자조달 하다 많이도 전사했지
방귀 ? 이거 문명 충돌여 ~ 더럽다거나 이런류의 말은 좀 그렇지 서로 배려가 있어야 헌다구 허것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