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지위관 설명 추가합니다. 진주대첩때 일본군 사령관은 두명으로 각각 임진왜란 총대장인 "우키타 히데이에", 가라샤의 남편으로 유명한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있었고, 시즈가타케 칠본창중 하나인 "카즈야 타케노리"도 참전했습니다. 타다오키는 실록에서는 "나가오카 타다오키"로 기록되어 있는데 호소카와 성씨를 하사받기 이전이여서 그렇습니다.
1:54 제 짧은 소견으로는 영남권은 왜병의 첫 침략지로서 의병이 눈앞의 왜군에게서 삶의 터전을 다시 수복하기 위해 일어나서 단합이 더 잘되었지 싶네요 ㅎㅎ 전라도나 그외 북부지역은 왜란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후발적으로 기획적되어 일어난 의병으로서 눈앞의 왜병이 없으니 관군과 의병의 다툼이 있었지 않았을지...
사실은 관군 대부분이 털려서 영남은 의병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고 호남 관군은 물론 한양으로 진격하다가 용인 전투에서 패하지만 대부분 병력은 보존 되면서 관군의 규모가 유지된 상태. 결국 이것 때문에 호남 방어가 성공 했지만 아무래도 관군들도 승리 경험도 많고 병력도 다수다 보니 의병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 대립이 있었던 것. 반대로 영남은 초기에 관군들이 다 털려 나가는 바람에 관군 수가 적다보니 의병들과 대립할 힘 자체가 너무 많이 상실했죠. 진주성 같은 대규모 성에 3800명만 봐도 당시 관군들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죠.
당시 조선의 인구는 800먼쯤 되었고.. 충청이남 인구는 한 500만쯤 되었고.. 그중 성인(20-40세) 남자의 숫자는 불과 150만쯤 되었을테고 그마저도 3도에 흩어져 있으니 20만의 정예 왜군 숫자에 비하면 진짜로 적은 숫자에 불과했으니.. 그 인원으로 왜적을 막아낸건 참 대단한 것이외다.. 조상님들 대단함.
일본군 지위관 설명 추가합니다. 진주대첩때 일본군 사령관은 두명으로 각각 임진왜란 총대장인 "우키타 히데이에", 가라샤의 남편으로 유명한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있었고, 시즈가타케 칠본창중 하나인 "카즈야 타케노리"도 참전했습니다. 타다오키는 실록에서는 "나가오카 타다오키"로 기록되어 있는데 호소카와 성씨를 하사받기 이전이여서 그렇습니다.
영상 진짜 입체적이네요 우리가 배운 단편적인 내용과 달리 실책도 많고
전공만 듣다기 응원군 유승인 전멸하게 놔두기 , 초반 진주목사와 함께 도망은 처음 듣네요
저도 김시민 장군이 도망갔을줄은 몰랐습니다 귀를 의심했네요
진주대첩은 우리역사상 최고의 전투중 하나인데, 제대로 대접을 받지못하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네요.
소수의 군.민이 단합하여 다수의 정예군들과 싸워 이긴 세계전사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승전이었는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김시민 목사가 성문을 열지 않은 이유를
상관인 유숭인 우병사가 이를 이해한 것으로 각색해서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비장하게 돌격하고 희생한 것으로 묘사하였죠
역사 기록과는 다르지만 좋은 각색이였다고 생각하는 장면이였습니다
0:04 오 첨보는 브금이네요 원래 브금들도 좋아서 저는 브금듣는 맛에 역조 보는 것도 있는데 이 브금도 나쁘지 않네요 전쟁이나 반란 파트에서 쓰는 것도 좋겠네요 이거
진주대첩 잊을 수 없죠..! ㅎㅎ 잘 보고 갑니다~
1:54 제 짧은 소견으로는 영남권은 왜병의 첫 침략지로서 의병이 눈앞의 왜군에게서 삶의 터전을 다시 수복하기 위해 일어나서 단합이 더 잘되었지 싶네요 ㅎㅎ
전라도나 그외 북부지역은 왜란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후발적으로 기획적되어 일어난 의병으로서 눈앞의 왜병이 없으니 관군과 의병의 다툼이 있었지 않았을지...
사실은 관군 대부분이 털려서 영남은 의병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고 호남 관군은 물론 한양으로 진격하다가 용인 전투에서 패하지만 대부분 병력은 보존 되면서 관군의 규모가 유지된 상태. 결국 이것 때문에 호남 방어가 성공 했지만 아무래도 관군들도 승리 경험도 많고 병력도 다수다 보니 의병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 대립이 있었던 것. 반대로 영남은 초기에 관군들이 다 털려 나가는 바람에 관군 수가 적다보니 의병들과 대립할 힘 자체가 너무 많이 상실했죠. 진주성 같은 대규모 성에 3800명만 봐도 당시 관군들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죠.
임진왜란 3대대첩중에 하나인 진주대첩.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얼마나 열이 받았으면 진주성내 모든 사람들을 죽이라 지시했음
심지어 자기 조카도 죽였죠 ㄷㄷ
@@메이저리그팬도요토미 히데쓰구요?
@@CLijo602 네 맞습니다
@@메이저리그팬 ? 조카까지 죽여? ㅋㅋㅋㅋㅋㅋ 미친놈일세
비격진천뢰는 정말 크레모아 같은 화력이 있었던 듯 싶네요. 황진장군 이야기나 제말장군 이야기도 좀 부탁드려봅니다
이때부터 포방부 전설 시작인가요. ㅎㅎ
진주성 내성은 잘 보존되어 있고 지금은 외성이었던 곳을 부지를 사서 공원 조성하고 있습니다.원래는 엄청 컷다고 하네요😊
진주대첩도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네요
가슴 뭉클해질듯 합니다
드라마로는 이미 나왔습니다. 에서 1차 진주성 전투가 재현됩니다.
임진왜란때는 일본은 끊임없는 100년간 전쟁이 끝나고 통일되어 전투력이 세계적으로도 강했을 시점이었고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막은게 신기하죠
당시 조선의 인구는 800먼쯤 되었고.. 충청이남 인구는 한 500만쯤 되었고.. 그중 성인(20-40세) 남자의 숫자는 불과 150만쯤 되었을테고 그마저도 3도에 흩어져 있으니 20만의 정예 왜군 숫자에 비하면 진짜로 적은 숫자에 불과했으니.. 그 인원으로 왜적을 막아낸건 참 대단한 것이외다.. 조상님들 대단함.
명나라도움도있지😊
@@winrina-qu2ip수 시간 155
5
원래 조선군이 수성방어전에 강함 ㅎ
뭔 조선시대때 20~40이 150만 밖에 안됨?어린애랑 노인이350만명임?
1:59 이렇게 능력있는 김성일이 왜 전쟁이 없다는 큰실수를 했을까??
그도 전쟁에 대해 눈치챘다고 했지만, 당시 김성일이 속한 당이 전쟁반대파였음
진주성 1차 전투 승리 주역 승산마을 허국주 의병장군 업적 입니다
일본내에선 해전보다는 육전이 더 유명했죠 김시민 장군은 나중에 가부키로도 만들어지는데 나루토에 나오는 지라이야가 김시민 장군의 아들로 가부키가 나오죠
최고입니다
진주대첩이 진짜 역대급이었던것
충무공 김시민 존경합니다
권응수 장군님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김시민의 직책인 목사를 (모쿠사)라고 부르며 그를 두려워 한다던데....ㅋㅋ
진주가 아니라 나주목사입니다. 다른분이었던걸로 기억...
모쿠소
잼나요
박진이 명나라 병졸에게 맞아서 죽었다는것이 너무 가슴 아프군여
8:38이건 이해가 안감.
적도 아닌데.왜 그랬을까??
지휘체계야 잘수습하면되지..ㅉ
이건진짜 개트롤가틈
유숭인울 내보내것은 김시민의 대실책.
병력만 받고 지휘권 넘기면 되는것을
융통성이 없네
@@hamiltonruise4503분명 아군을 쉽게 잃어버리게 만든건 아쉬운 선택이긴 하지만 그때당시 분위기상 어쩔수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결론적으론 막아냈으니 옳은 선택이었겠죠
전 고향이 진주입니다..
진주혈전은 1차에선 겨우 이겼으나 2차에선 도요토미가 빡쳐서 성내 모든 생명체 소멸 특명을 내렸고 사람 개 고양이 모두 전사
김성일 초유사가 이곳저곳다니면서 망가진 체계 다 고치는 느낌이네요
거적대기에 삼지창들고 지휘관은 산타클로스 복장 입고 전쟁하는 썸네일 쥑이네
2차도 막았어야했는데 안타깝습니다
돌이켜 볼. 때. 일방적 승리와. 진주성 2차. 싸움 을 다시 펑가하길. 사지인. 줄 알면서. 죽음속으로 ㅂ뛰어든 조선의 장수 병사가 많았음을. 패배하었으나. 적에게 더. 큰. 병럭손실을 초래함은. 사실상. 멈청난. 호국충정이었는 데
오
10배이상이 되어야하는데 9배밖에 안되서 졌다는 ㅋㅋ
유숭인 부대 넘 불쌍...같이 농성 했음 훨 전력이 강했을텐데
니가 화포의 본때를 보여줘라 권율
우리나라 전투민족 맞다 그 능력자 들이 나라 구했더니 토사구팽한 조선정치가 잘못했지
1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