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가 함경도에서 개털리고 철수한 이유 [임진왜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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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9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286

  • @봉태규-y3r
    @봉태규-y3r Год назад +298

    선조는 욕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다

    • @LsJung93
      @LsJung93 Год назад

      @@korea_no.1korea485정치병자 등장이오 ㅋㅋ

    • @younghwankim3135
      @younghwankim3135 Год назад +25

      예나 지금이나 내부의 적이 큰 문제군요~ㅋㅋㅋㅋㅋ

    • @캡틴후크-h2v
      @캡틴후크-h2v Год назад +18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장수는 왕이 될 그릇..
      선조는 충신들을 그런이유로 죄다...
      이유는 지가 도망을 가서 이런 충신들과 대면을 한적이 없다는데 있지요
      선조의 옆을 지킨 신하는 호위말고는 지들이 한게 없으니 이를 더 강조했을듯

    • @wbinzester2721
      @wbinzester2721 Год назад +11

      축구협회도 저런 마인드

    • @이이종갑
      @이이종갑 Год назад +2

      절대공감!!

  • @Jinjin535
    @Jinjin535 Год назад +109

    함경도를 수복한 전쟁 영웅이 맞이한 건 결국 헬조선 엔딩...ㅋㅋㅋㅋ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Год назад +24

    본래 습한 일본에서 살다 상대적으로 추운 한반도, 그것도 가장추운 함경도까지 올라왔고 그곳에 정문부까지 있었으니 털리는건 당연지사.

  • @박교황
    @박교황 Год назад +33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을 제대로 살피는 지도자가 없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 @Tebo455
    @Tebo455 Год назад +45

    정문부는 양재역벽서사건으로 많은 선비를 죽게만든 정언각의 손자라서, 과거에 갑과로 급제했음에도, 벼슬길이 순탄하지 않았죠. 그리고 과거급제는 24살입니다.

  • @seungryongshin2794
    @seungryongshin2794 Год назад +171

    단신으로 함경도를 수복한 정문부 장군!! 많이 알려지지 않은것이 안타깝습니다...

    • @Lonewolfdebnf
      @Lonewolfdebnf Год назад

      쓰레기니깐

    • @Suvonai
      @Suvonai 2 месяца назад

      ㅋ 갑자기 안알려졌나요? 정권바뀌면 알려지고.

    • @gaedol
      @gaedol 2 месяца назад

      ​@@김태형-d4x이런 앞뒤 분간못하는 정치병자 때문에 나라가 이꼴이지

  • @matthewkim1855
    @matthewkim1855 Год назад +41

    3:31 ㅋㅋ 반역의땅 함경도 ㅋㅋ
    거기 출신 누구가 위화도 회군도 했었는데

    • @doroshi99
      @doroshi99 5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애초에 이성계의 지지기반이 함경도였는데 말이죠 ㅋㅋ

    • @fhdebosdl1812
      @fhdebosdl1812 3 месяца назад +2

      반골정신이랄까 만주독립군도 대부분 함경도 포수꾼들이였죠

    • @서윗파
      @서윗파 2 месяца назад

      춥고 척박하고 농사짓기도 힘든데다 지형도 산악이라 중앙의 영향력이 적어서 그런거 아닐까요

  • @자라라모발아
    @자라라모발아 Год назад +72

    이거보면 나라에서 차별하는게 진짜 심각한 문제구나;; 극한의 상황에서 반란 일으킬 정도니..

    • @저는기어다닐거에요
      @저는기어다닐거에요 Год назад +13

      세조 대에도 이시애가 주변 여진족과 함경도민들을 포섭해 수만명 규모의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죠

    • @mao4253
      @mao4253 Год назад +13

      그니까 전라도 차별좀 그만좀 해라,.....

    • @봉하파르트노폴레옹
      @봉하파르트노폴레옹 Год назад

      ​@@mao4253그짝은 이미 625때 통수 쳤잖노

    • @mao4253
      @mao4253 Год назад

      @@봉하파르트노폴레옹 글케따지면 경상도는 시발 고구려 통수안쳣냐?

    • @Lonewolfdebnf
      @Lonewolfdebnf Год назад +16

      @@mao4253전라도가 어떤 차별을 당함?

  • @MNMNM1111
    @MNMNM1111 Год назад +20

    개인적 생각:
    -니탕개의 난은 여진족들의 식량 고갈 문제 및 부족들간의 갈등 문제로 일어남 (이상기후로 계속 흉년이었음.)
    -니탕개가 모집한 3만 병력은 전투 병력만이 아니라 가족들을 포함한 부족민 전원이었던 것 같음.
    -초원에서 살기 힘들어지니 아에 함경도 및 한반도쪽으로 내려와서 정착할 목적으로 대규모 이동을 시도했던 것 같음.
    -게르만족들 역시 정착할 곳을 찾기 위해 계속 로마 지역으로 내려왔고, 바이킹들 역시 정착할 곳을 찾기 위해 계속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약탈을 하다가 정착을 한 역사가 있었음.

  • @남산코끼리-l3e
    @남산코끼리-l3e Год назад +34

    후속편엔 사실상 함경도를 혼자서 탈환한 북관대첩의 영웅 정문부 장군이 모함당해서 고문 당하다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시는 이야기 나오겠군요. 유언으로 내 후손들은 벼슬하지말라고... 얼마나 분통이 터지셨으면 ㅜㅜ 저런 인재의 공을 가로채고 한직에 박아둔 것만 해도 안타까운데 말년까지 고통 속에 살다 죽게했으니... 최초로 승전을 거두고도 억울하게 사형당한 해유령 전투 신각 장군도 그렇고 진짜 조선은 너무너무 개판이였던것 같습니다. 진짜 양란 때 망하고 다시 일어서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 @고공-d5u
      @고공-d5u Год назад

      현실도 마찬가지... 지금껏 유지되는것도 ..웃기고 ..
      북한이 밀고 왔을때도 ..국방장관이놈도 .. 이승만이랑 한강철교 폭파..군단 말아먹은놈..전투도못하고
      굶어죽은 민.관.군.15만명.... . 그숫자가 살아남아 전투했으면 ..휴전 전에 3.8선 돌파는 일도아니였을것이고..
      역사는 왜이리 .. 억울한일이 많이일어나는지 ... .

    • @오늘이1일
      @오늘이1일 Год назад +6

      이정도면 일본한테 잡아 먹힌게 약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 @컹스-j2u
      @컹스-j2u Год назад +7

      명나라 찬스로 망한거 겨우 회복하고도 개혁이나 대비는 커녕 명나라 엉덩이만 쳐다봤으니 한숨만 나옴

    • @잡동지홍
      @잡동지홍 9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컹스-j2u그리고 또 병자호란터졋죠 사실 조선이 정말 희한하면서 대단한건지 정말 기작인지모르겟지민 이러고도 100년이상간게 더기적이엇습니다 다른나라엿읍 나라멸망하고 다시 나라세워저도 이상할게없는데

    • @sgtken1070
      @sgtken1070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왜란 후 의병에 대한 조정의 처사를 보고는 실망하여 호란때는 의병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음

  • @bebepopo0911
    @bebepopo0911 Год назад +15

    결말이 헬조선으로 끝나네요... 씁쓸...

    • @timekim7194
      @timekim7194 2 месяца назад

      헬 일본은 안보이시나. 저당시 일본은 세금이 40% 그리고 자국민 노예 무역까지 하던놈들. 지금도 일본은 신분 국가.

  • @스뎅깡통
    @스뎅깡통 Год назад +7

    얼핏 생각하기로 조선의 세금이 높아서 백성들이 고생하지 않았나 생각하기 쉽지만 이건 유교 사상이 바탕이 되어 조선시대 농민들의 세율은 인근 국가뿐만 아니라 서구 국가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낮은 편이었습니다
    사농공상... 유교의 계급 사회를 이렇게 분류했는데 선비 다음이 바로 농민이었기 때문에 농민은 국가의 근본이었고 따라서 세율을 낮게 해서 우대해주는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구한말 조선에 온 선교사등 서양인들이 조선의 조세 정책을 보고 세율을 더 올리면 국가 재정이 더 튼튼해질 것이고 국가 사업도 더 용이하지 않겠냐는 건의를 할 정도였으니..
    그럼 백성들은 왜 고통을 받았나... 바로 군포와 진상지방세 때문
    이중 군포는 죽은 사람에게까지 징수했다고 해서 백골징포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악독했고 진상은 임금에게 바치는 특산품을 바치는 걸 말하는 건데 이건 세금 아닌 세금으로 지방 백성뿐 아니라 지방관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방세는 또 왜 나오냐...조선 후기 성군 반열에 오르는 영정조 시대가 되면 왕권 강화의 한 방법으로 원래 지방 세수로 정해져있던 세목 일부를 왕실 국고로 전용하기 되는데 문제는 그렇게 했으면 지방세를 감면해줘야하나 지방세율 자체는 그대로 두니 지방관이 세수를 거둘 곳은 줄어들어 백성들을 쥐어짤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조선 후기쯤 되면 이앙법 보급등 농사 기술도 발전이 돼서 양란을 거치며 소실된 토지결수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쌀의 생산량은 늘어나지만 위와 같이 정해진 조세외 뜯어내는 것들이 늘어나 조선 백성들의 삶은 후기로 갈수록 더 궁핍해집니다

    • @컹스-j2u
      @컹스-j2u Год назад

      명목상 공식 세율이랑 기타 잡세로 뜯어가는거 다 합치면 거기서 거기니 뭐

  • @mister5776
    @mister5776 Год назад +20

    그래도 그 공을 숨기지는 못하는 듯 이후에도 일을 잘하고 조정에서도 당파싸움의 피해자로 보아서 인조대까지 관직을 잘하고 생전 최종품계가 전주부윤(전주시장)을 맏고 거기다 오위도총부의 2인자인 부총관 자리 까지 나왔으나 건강상으로 마다했지만 결국 관직은 종2품 차관직을 두루 둘렀음 그리고 사후에는 종 1품직인 좌천성에 추존되었음

  • @이신-d4i
    @이신-d4i Год назад +15

    국운을걸고 전쟁을 하는데 저기서 트롤링을 하는 사람이라니....

  • @grandstrategy8987
    @grandstrategy8987 4 месяца назад +2

    나름 역사에 관심이 많던 사람이었는데, 북관대첩은 2천년대 초중반 북관대첩비 반환사건을 계기로 간신히 알게 되었던 기억이 새롭군요. 그때 처음 정문부 장군에 대한 얘기를 읽게 되었죠. 학교에서는 임진왜란의 큰 흐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도 중요한 인물들은 거의 스킵하고 지나갔죠. 학교가 그렇게 수박겉핥기 식으로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교양서적으로 당시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책은 있어야했는데, 당시엔 그런 책 한 권 없었던 것 같네요. 극히 최근이 되어서야 정문부 장군에 대한 교양서적도 몇권 나오기 시작한 듯요[농포 정문부 진사장계, 등등...]
    아무리 이제까지 먹고 살기 힘들어서 경황이 없었다하더라도, 한국이란 나라 너무 한심한 것 같아요. 정문부급 영웅이 중국이나 일본에서 나타났더라면 저들은 신격화시키며 온갖 호들갑은 다떨고 지역축제나 별의별 관광상품은 다 만들어놓았을 겁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똑같이 따라할 필요는 없겠지만, 순국선열들에 대한 대접이 지나칠 정도로 소홀한 것 같아요.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의는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해서 후대에 제대로 기록을 전하는 일이겠죠.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 @dhjeon1163
    @dhjeon1163 Год назад +11

    일본본토에선 6~7할정도를 세금으로 뜯어갔는데 조선에선 점령지 민심관리한다고 5할만 받은건데 여긴 3할정도 세금내던동네라 반란일어날만함 ㅎㅎ

    • @fhdebosdl1812
      @fhdebosdl1812 3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은 더운 기후여서 생산량이 높죠. 일본 시골에 있어봤는데 비도 많고해서 며칠만 지나면 앞마당에 풀이 무성해지는게 대단했음

  • @강병록-s2c
    @강병록-s2c Год назад +12

    가토가 평안도 행을 했다면, 판세가 전혀 달려졌을 것임. 평양쪽의 조선의 저항에 큰 손실을 보겠고, 이어서 의주쪽으로 북상했다면 조선왕조는 판옥선 타고 전라도쪽으로 도망쳤을 것임. 결국 명군은 개입 하는 것 포기하고 압록강에서 방어전을 폈을 것이고 가토는 압록강쪽에 병력을 주로 배치하여 명군의 개입에 대비하겠지. 광해군은 평안도 내륙쪽에 분조를 시작하여 가토에 저항했겠고. 명군의 개입에 대비하여 의주쪽에 병력을 대거 배치하고, 일본군은 의주부터 평양성까지 서해안에 따라 병력을 부산 배치했겠지. 결국 평양 내륙으로 후퇴한 조선 정예군은 평양성에서 죽치고 공성전 하던 고니시군 보다도 가토군을 상대하는게 더 수월하겠지. 묘향산에 거점을 둔 승병 수천명, 토병 이라 불리는 평안도 기병 수천, 그리고 평안도 농민군들 ....가토가 상대하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임. 결국 가토는 명군이 압록강을 건널까 불안했고, 평안도 후방에서 게릴라식 공격을 해대는 승병과 조선군에게 힘들어 져서 조기에 평안도를 철수했을 것임. 결국 그 나비 효과 때문에 황해도의 구로다군도 서울쪽으로 철수할테고 함경도 쪽으로 진격한 고니시군도 깊숙이 안 들어오고 함경남도 어느 정도에 머물다가 기회봐서 서울쪽으로 철수할테지. 그럼 전세는 명군 개입보다도 더 조선군에 유리할테고. 일본군이 경기도 쪽으로 철수한 것을 본 명군은 아예 조선 원정을 철회했을 테고. 전쟁은 일찍 끝났을 것임.

  • @psh8488
    @psh8488 Год назад +4

    명나라의 창업자 주원장이 그렇게 관리들을 싫어했던 것은 관리들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책을 쓴 오스트리아 헤세 바르텍은 조선의 관료들은 백성들을 수탈하며 살았고 조선이 나라를 빼앗긴 것은 지도자가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 관료를 제대로 뽑지 못하면 나라는 다시 고통스럽게 된다.

  • @ADSO_21
    @ADSO_2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조선이 가난한 것은 세금을 낮게 징수했는데, 해외 무역과 상공업을 억압했으니... 그래서 양반의 미덕이 근검절약
    그래도 평민들 입장에선 사실상 봉건영주들인 일본의 다이묘들의 지배를 받는 거에 비하면 천국이긴 했음

  • @Ch12JS
    @Ch12JS Год назад +2

    2:49 김일성이 ‘함경도 사람들은 간부로 등용하지마라’라고 했다죠😩

  • @Ser-yo1ck
    @Ser-yo1ck Год назад +43

    동장군이 임진왜란에도 있었다니 신기하네요
    나폴레옹과 나치를 물리쳤던 추위가 임진왜란때도 있었다니 처음 알았습니다.

    • @kdchwin
      @kdchwin Год назад +10

      미국이 중국한테 밀려서 철수한 장진호 전투도 함경도에여

    • @남산코끼리-l3e
      @남산코끼리-l3e Год назад +15

      지금 서울도 겨울에 영하 15도까지 내려가죠. 강원도는 영하 25도쯤 내려가죠? 근데 그보다 한참 위인 함경도 심지어 산이면 영하 35~40도까지 내려갈텐데 가토의 병사는 부산보다 훨씬 따뜻한 규슈 중부 히고 지방의 병사라 추위에 매우 약한데다 월동장비 없이 기습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산으로 도망간거니 하루면 바로 동태되서 반송장 될 수 밖에 없죠.

    • @남산코끼리-l3e
      @남산코끼리-l3e Год назад +1

      @@영걸-w2t 홋카이도가 함경도보다 북쪽에 있어서 그래도 좀 나을듯 ㅎㅎ

    • @Lonewolfdebnf
      @Lonewolfdebnf Год назад +1

      @@남산코끼리-l3e함경도에서 가만히 주둔하고 왜 평안도에 가서 고니시를 돕지 않은걸까?

    • @chriskim2958
      @chriskim2958 Год назад +6

      ​@@남산코끼리-l3e이때까지는 훗카이도는 일본의 땅이 아님. 더 훗날임.

  • @개굴개굴-f9l
    @개굴개굴-f9l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너무 선조랑 조선을 억까하는데 치중함
    조정에서 정문부의 공을 인정했으니 20대에 종6품에서 핵심도호부인 정3품 영흥부사로 한방에 파격승진 시켜준거
    지금으로 따지면 5~6급 공무원을 한방에 1급 공무원으로 승진시킨거
    정현룡은 영상중반에도 나와 있었지만 이미 종성부사 종3품에 정문부보다 20살 정도 많은 고위관료였음
    서열, 짬밥, 나이도 있고 북관대첩에서도 공이 있었으니 함경도 병마절도사 시켜준거

  • @daebak1
    @daebak1 Год назад +4

    국경인 죽는씬이 웃기네요😂 집에 불을 질러 튀어 나오는걸 죽였다는게 웃김😂

  • @실버선장-q4r
    @실버선장-q4r Год назад +20

    정문부장군 곁엔 동장군이라는 든든한 아군이 있었군요,

  • @bkjeong4302
    @bkjeong4302 Год назад +4

    임해군 보면 양녕대군은 그나마 상식적이었구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양녕은 적어도 재미로 살인을 벌이지는 않음…)

  • @우라아-w3e
    @우라아-w3e Год назад +23

    능력있는자를 시기 질투하고 끌어내리려는 못된 습성은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의 종특인듯....

  • @junghyeopcha6861
    @junghyeopcha6861 Год назад +35

    임해군이 횡포를 안 부렸다면, 함경도 사람들이 반란을 안 일으켰을 것이다.

    • @lovethe2026
      @lovethe2026 Год назад

      이렇게 보니 역시 조선은 한국 역사중 가장 약하고 진작에 망했어야함

    • @snjnkm1588
      @snjnkm1588 Год назад

      ​@@hu535jack5님은 국경인 같은 것들이 아니니 아무리 핍박받고 멸시당해도 노예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 @andyahn723
      @andyahn723 Год назад

      한글이 힘들다는

    • @mrlee2232
      @mrlee2232 Год назад +1

      횡포룬 안 부리지 않았다면=횡포를 부렸다면

    • @백승엽-x4p
      @백승엽-x4p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래도 달라는 지는건 없었음 해정창전투에서 정예병력이 갈려 나가서 함경도가 점령당하는건 순식간이였음

  • @frankham8038
    @frankham8038 Год назад +4

    유목민 3만 병력이면 정주민족 10만 병력이나 그 이상으로 봐야됩니다. 거의 전원이 기병이거나 평소에는 말타고 있는 하마보병이라는점과 치중대가 따로 필요가 없는 점에서 쪽수에 비해 전투력도 남다르고 전투원 1명에 밥하고 서폿하는 치중대 3명이 붙어야하는 정주민족에 비해 유목민족은 대부분 다 전투원이니까요.

    • @place01
      @place01 Год назад +1

      도대체 유목민족은 보급을 어떻게 했을까요. 수천 수만 군마를 먹일 마초를 그냥 아무 들판에서나 먹일 수는 없거니와 그 양도 무지막지하여 초원이 아닌 곳에서는 그 만한 양의 마초를 구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더구나 갑옷과 병장기를 만드는 데에 자원들 철, 숯, 목재 등 은 다 어디서 구하는 건지... 유목민족이라면 이런 것들을 만들 시설조차 고정된 시설이 아닌 곳에서 무슨 수로 어떻게 제조한다는 건지... 정주민족을 약탈해서 노획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 @frankham8038
      @frankham8038 Год назад +1

      @@place01 저도 모든 유목민족 (특히 반유목인 여진)의 풍습을 다 아는건 아니지만 몽골이나 흉노의 경우 마을 자체가 전쟁터 근처까지 따라간걸로 알고있어요. 거기서 보급해주는거죠.

    • @frankham8038
      @frankham8038 Год назад +1

      @@place01 물론 걔네 기준으로 근처지 정주민족 입장에서 몇백킬로미터 떨어진곳에 있는 이동하는 마을을 공격하기란 쉬운일이 아니죠. 예외적으로 중국 한나라에 곽거병이라는 장군이 흉노 본진까지 격파한적이 있는데 보급대를 버리고 대략 1000km 이상 쫓아갔습니다.

    • @다인-g3m
      @다인-g3m Год назад +1

      아니 유목민족은 무슨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지기라도 한답니까? 치중대가 왜 필요 없습니까? 유목민족도 다 치중대가 필요합니다. 특히 말은 먹는 양이 엄청나기 때문에 유목 민족도 다 치중대 운영했습니다.

    • @frankham8038
      @frankham8038 Год назад +1

      그럼 이렇게 물어보죠. 도시 하나가 통째로 이동하는데 짬차가 왜 필요합니까? 흉노족이나 몽골등에서 운영한 보급대에 관한 언급된 사료 하나라도 있으면 알려주세요. 정주민족의 군편제 개념과 보급의 개념과 아예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 @Yamso25
    @Yamso25 2 месяца назад +1

    13:58 대략 17세기의 지구는 소빙하기라 그래서 평균온도가 지금보다 2~3도가 낮았고 한반도는 위도에 비하면 조온나 추웠고 거기다 왜놈들은 섬나라다보니 겨울이 상대적으론 덜 추웠고 주택양식에도 난방이 발달하지 않은 애들인데 그런 애들이 12월 다되가는 날에 그것도 개춥다는 함경도의 산 중턱에 낑겨갖고 하룻밤 사이에 동태가 되버린겁니다

  • @능지-w8i
    @능지-w8i 3 месяца назад +2

    무능한 아랫사람보다 무서운 건 유능한 적이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무능한 윗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임진왜란 ㅋㅋㅋ...

  • @dsswitch6392
    @dsswitch6392 Год назад +5

    0:28 당시에는 함경도가 남북도로 갈라져있지 않을텐데요??

  • @kilise8849
    @kilise8849 Год назад +11

    정문부 장군이야말로 나라를 구하신 분이네여🧐북관대첩을 행주,진주,한산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4대 대첩에 등재 해야겠습니다🤔

  • @simhong
    @simhong Год назад +1

    5:55 조선에서 호랑이 가토라고 부른 적 없음. 일본에서 '조선에서 호랑이 가토라고 부른 다더라'는 풍문만 돌고 가토 본인도 제 명성에 그걸 이용해 먹음.

  • @북경반점-j9e
    @북경반점-j9e 3 месяца назад +2

    무능하고 부패한 상급자는 적보다 더 무서운 존재죠 조직이 흥할려면 신상필벌을 잘해야 됨

  • @xiean5243
    @xiean5243 Год назад +13

    예나 지금이나 변절자들이 문제네.광복되고 변절자들부터 처단 했어야 했는데...

  • @16b7328
    @16b7328 Год назад +4

    어딜 가던지, 어느 시대던지, 인간 말종은 꼭 있기 마련...

  • @mtb_365
    @mtb_365 Год назад +14

    마편곤으로 왜군 뚝배기 신나게 깨버렸던 마편곤의 달인.
    칼 싸움으로는 상대가 안됨을 간파해서 편곤으로 대응함.

  • @김기백-z9t
    @김기백-z9t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당시 정문부의 나의는 20대 였고 정6품은 지금으로 치면 대위정도 였어요 임진왜란 끝난후 정문부는 도호부사로 임명됐는데 그당시 도호부사는 준장계급이 취급되죠 현실로 따지다면 대위에서 준장으로 승진한거 와 만찬가지에요

  • @LansAki
    @LansAki 3 месяца назад

    그의 공로는 나중에 높이 평가되어, 사후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또 다른 관직인 좌찬성에 추증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또한, **충의공(忠毅公)**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후대에 그를 기리기 위해 충의사라는 사당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정문부 장군은 생전에는 그리 큰 관직을 받지 못했으나,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사후에 추증을 통해 명예로운 관직과 시호를 받았습니다.

  • @mcs4239
    @mcs4239 Год назад

    3:57 강원도 위치가 이상한디?

  • @lhi2745
    @lhi2745 2 месяца назад

    수도가 털린 저와중에 수백 기병을 능수 능란 하게 운용했던 것도 놀랍고 탐관오리 의 마무리 시전도 놀랍네요 ;;;;;

  • @정승헌-h1y
    @정승헌-h1y Год назад +3

    선비란 놈들이 다저래 양심은 악마에게로....쫄장부들!!!

  • @aaa-757
    @aaa-757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잘 싸워봐야....임금이....선조.....한양에서 튈때 따라간 인간들에게 전부 공신 책봉.....반면, 현장에서 피흘리며 개고생 하며 싸운 군사들 처벌....

  • @yoonjay3239
    @yoonjay3239 Год назад +4

    카토가 손실한 9000병력 중 일부는 여진인에게 당한것은 아닌가요? 어느 역사학 중학교 선생님은 수천명이 죽었다고 하던데

    • @fhdebosdl1812
      @fhdebosdl1812 3 месяца назад

      우리 여기 연변까지 쳐들어왔었죠. 연길에서 여진족 여러부락이 합쳐서 매복전 벌렸는데 가토가 대패, 두만강따라 도문까지 갔다가 거기서 두만강건너서 조선경내로 퇴각

  • @최연우-r8y
    @최연우-r8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전쟁중에도 저런짓을하는데
    지금 평화시에는얼마나 악질을할까?

  • @peenja1567
    @peenja1567 22 дня назад

    그리고 윤탁연은 바라던데로 높은 자리에서 과로사로 갔다고하죠.

  • @el100
    @el10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정문부는 공신이 되지 못했고 당파 싸움에 말려 감옥에서 사망했다. 빌어먹을 이씨조선.......

  • @youngman5202
    @youngman520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임진왜란때 왜군의 진로를 보면 한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선조를 쫓는데 누가 공을 세울지를 두고 경쟁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선조를 추격해야할 가등청정군이 황해도에서 함경도로 향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함경도로 진군하러면
    애초에 부산에서 수로를 이용하여 상륙하면 훨씬 편할테니까.
    거리도 멀고 선조가 도망치는 방향도 아니고,
    중요한 지역도 아닌 함경도로 주력군이 분산되어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고니시에게 선봉을 주더라도 그 뒤를 따라 평양으로 진격하는게 군사작전상으로도 옪다.
    하지만 함경도가 서북지역에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서북삼도라고 한다.
    이는 절대로 한반도의 지형이 아니다.

  • @jonghoonkim8688
    @jonghoonkim8688 Год назад +2

    조선왕조 왕 중 선조가 사람을 제일많이 죽인 왕…. 연산군이 사람을 제일 많이 죽인 왕이 아니다.

  • @Herecomesthesun_Skyzero
    @Herecomesthesun_Skyzero Год назад +2

    선조임금은 역사상 이런놈 없을 거에요

  • @kwangilan4636
    @kwangilan4636 Год назад +4

    시샘과 질투! 소인배의 그릇. 이기주의자!

  • @송영찬-c4x
    @송영찬-c4x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역사를 봐도 나라의 흥망은 외침이 아니라 빌미는 되어도 내란.내분이야.. 역적들은 피를 속일수 없다

  • @lsh914
    @lsh914 Год назад +2

    예전이나 지금이나 남잘되는 꼴은 못보는 시기질투하는 간신배들이 너무나 많구나. 이런놈들은 역사가 반드시 심판해야한다

  • @이진욱-r8i
    @이진욱-r8i Год назад +1

    정문부 장군님 감사합니다

  • @역사탈탈
    @역사탈탈 3 месяца назад

    임진왜란 초기의 정면으로 맞붙는 전투에서는 조총을 가진 일본군이 압도적인 반면,
    이순신의 활약으로 인해 보급이 곤란한 이후의 전황에서는 일본군이 폭망하는 전형적인 사례

  • @jsm9252
    @jsm9252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만약 함경도지역이 대한민국 행정구역이었다면 아마 북관대첩 전승비가 건립되었을 겁니다

  • @naraooli4896
    @naraooli4896 Год назад

    머리에 쏘옥쏘옥 들어오게 잘설명하시네요

  • @boodpooqo24
    @boodpooqo24 2 месяца назад

    가토가 개전후 저 전투 이후까지 잃은 병력수가 9000명(동사자, 전사자, 병사자 합쳐서)인 거지 북관 전투하나만으로 잃었다는 얘기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 @짱마이클
    @짱마이클 2 месяца назад

    선조 인조가 재수없게 전쟁에 아다리되서 그렇지 어느왕인듯 달랐을까..

  • @엘상산시리즈
    @엘상산시리즈 Год назад +2

    조선이 망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윤탁연..

  • @yunhong0
    @yunhong0 Год назад +3

    그니까 전쟁중에도 자기 이익을 최우선하고 정치적 상대를 타도해야 하는 모습과 급하니까 의병을 동원하고 나중에 그들에게 보상할 수 밖에 없는게 오늘날의 시민 단체. 현 싯점에서도 달라진게 없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다.

    • @오늘이1일
      @오늘이1일 Год назад +1

      목숨바쳐 나라지킨 의병하고 세금도둑 시민단체를 동일시합니까? ㅎ~,

  • @rhalstjr67
    @rhalstjr67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함경도 면적이 한반도 전체면적에 약 1/4 크기임 거기다 평균 높이 2500m 산들이 즐비하고 산세가 ㅈㄴ험하기로 악명높음 평야도 함흥평야 말고는 넓은 평야가 없음
    게다가 함경도 내륙지역은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긺
    남한에서 제일 춥다는 철원도 가볍게 씹어먹어 버리는 영하의 날씨가 두달 내내 지속됨
    함경남도 덕성군의 1947년 12월 기온이 영하 62도를 기록한적있음 이는 한국역사상 최저기온이였음

  • @진경지-n7n
    @진경지-n7n Год назад +1

    더 빠치는건 일본으로 패주한 뒤
    정치적 감각으로 줄을 잘서서 망하지 않고 잘 살았다는게 젤 빡이침

  • @선비-x3e
    @선비-x3e Год назад +1

    가토는 고니시 영지 먹고 무병장수하다가 갔는데

  • @place01
    @place01 Год назад

    일본 측에서는 카토 카요마사가 여진족을 혼내줬다, 정벌했다라는 식으로 우리와는 정반대 해석을 함. 우리는 카토가 여진에게 두들겨 맞고 쫓기듯이 돌아왔다고 보지만 일본인들은 그렇게 안 보는 듯

  • @rightbloodyelbow
    @rightbloodyelbow Год назад +1

    당장 자기 동네 홋카이도도 점령 못했는데 제대로 다스릴수가 그건 그렇고 11:20 통수

  • @고구고가
    @고구고가 Год назад +1

    그때나 예전이나 똑같다 윗대가리들은 항상 썩어있고 똥을 치우는건 밑에 능력있는 자들이랑 민심들이네

  • @오브제-d5g
    @오브제-d5g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선조는 임금이 아닌 그냥 개망나니였던거...

  • @doug-zk3ck
    @doug-zk3ck Год назад +2

    대명가도, 정복한다는 것은 당시 왜군의 명분일뿐이었죠.

  • @karu4020
    @karu4020 3 месяца назад

    저런 내용이 기록되어있단건 조정에서 나중에 다시조사했단건가...?

  • @EmbraceMadnezZ
    @EmbraceMadnezZ Год назад +2

    시기와 질투에 눈이 먼 인간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극혐이네.

  • @redzonecar
    @redzonecar Год назад

    흠...윤탁연이라는 간신 기억하겠습니다.

  • @jangwonlee9062
    @jangwonlee9062 Год назад +2

    얼마나 못살게 굴었으면 팔아넘기냐

  • @joshualeeindia
    @joshualeeindia Год назад

    국사책 개정해라 !!! 정문부편... 울나라 국사책 누가 만드는거야 ~ 훌륭하십니다 !!!

  • @울프팩
    @울프팩 Год назад +9

    우리나라 왕조중 제일 창피한 왕조

  • @펄서버홍보
    @펄서버홍보 Год назад +3

    그 싫던 여진족이 고마워지네 ㅋㅋㅋ

  • @규문김
    @규문김 Год назад +1

    무능하고 부패한 것이 지금과 같구나 전공을 왜곡하여 빼앗고 전공을 세운자를 역적으로 몰아 역적을 발견 했다고 하고 역모를 방지 했다 하고 공 이 있다 하니 공천에 눈 멀은 탐관오리들이네 허 허

  • @워너블-s8f
    @워너블-s8f 3 месяца назад

    부하의 공을 내것으로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부럽다 ~

  • @rihaedge1219
    @rihaedge1219 Год назад +2

    선조의 큰 업적 도망

  • @후라이-e9r
    @후라이-e9r Год назад +5

    한복위에 일본식 관모라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 @place01
      @place01 Год назад

      ㅋㅋㅋㅋ ㄹㅇ 보면서 눈 의심

  • @부드러운카리스마-x8b
    @부드러운카리스마-x8b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종무 남이 이순신 김덕령 곽재우 정문부...조선이란 나라는 전공을 세워선 안되는 나라

  • @diablo34739
    @diablo34739 3 месяца назад

    손살같이가 아니라 쏜살같이입니다

  • @NoName-vm8zq
    @NoName-vm8zq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일본의 겨울은 거의 봄이더구만 ㅋㅋ 따뜻한 겨울만 맛 봤으니 함경도의 동장군에 개같이 멸망 ㅋㅋ*

  • @yoojin2250
    @yoojin2250 Год назад

    함경도는 이 글만 봐도 반란의 지역이군요.

  • @byeonggeun.c7061
    @byeonggeun.c7061 Год назад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 세세한건 어디서 알 수 있나요..?

    • @박차노-j8y
      @박차노-j8y Год назад

      알 수 없어요.
      625때 전투도 알 수 없는데요..
      임진왜란을 정말 알고 싶다면 일본인이 쓴 일본 역사를 참조하세요..
      한국도 그거 보고 아는 거임...

    • @미제드론
      @미제드론 Год назад

      채널 아케치 유튜브 한번 찾아보세요 어그로 국뽕이나 일뽕과는 차원이 다른 아주 괜찮은 분입니다.

  • @user-fvx16ejwotb54
    @user-fvx16ejwotb54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사스가 역시 큰 뜻을 펼치려면 미국 같은 국가로 가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구낰ㅋㅋ

  • @jinshiksung
    @jinshiksung 2 месяца назад

    통신사 보냈쟎아 통신사 내통한거야 둘이 딴얘기 하쟎아 길만 맊았음 다니는되 불편함이 없었던듯

  • @Yong-EEEE
    @Yong-EEEE Год назад

    헬조선식 결말이네요. 😊

  • @hwangnt
    @hwangnt Год назад +1

    조선군은 전투시작하자마자 도망치기 바빴다고 한다...

  • @왕상제하늘님
    @왕상제하늘님 Год назад

    재밌네

  • @혼자왔어
    @혼자왔어 Год назад +1

    가토는 너무 호전적이라 ... ㅎ

  • @가인고하벽초
    @가인고하벽초 Год назад

    보급선이 너무 길어져서 그럼.
    조선이 이렇게 빨리 털릴 줄을 몰랐던거지.
    현지 식량조달을 해야하는데 나라가 가난해서 약탈할 것도 없고.
    본국에서 가져오려니까 보급선이 길고.

    • @place01
      @place01 Год назад

      애초에 목표가 조선이 아니라 명나라 들어가려 했던 애들이라 조선이 빨리 털린 건 그들에겐 뜻밖에 호재고 '오히려 좋아'인 상황임

    • @백승엽-x4p
      @백승엽-x4p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심지어 이순신이 재해권을 장악해버려서 수송도 못하는상황이였음

  • @reconnaissance12xx
    @reconnaissance12xx 2 месяца назад

    가토 본국 가서 줄잘서는 바람에 고니시 영지 다 먹고 잘 살다 갔을걸?

  • @sangjinkim567
    @sangjinkim567 Год наза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키운 8명의 맹장중의 한명!

  • @kim93511
    @kim93511 3 месяца назад

    조선 땅에서 의병 어쩌구저쩌구하면서 깝치면... 결국에는 지가 당한다.
    나라야 죽든말든 내 목숨 챙기는 게 최고다

  • @conut933
    @conut933 Год назад

    가토는 이일을 기억할것입니다

  • @sleephelp-r1j
    @sleephelp-r1j Год назад +1

    토사구팽의 민족인가 ㅋㅋㅋㅋㅋ

  • @factchecker81
    @factchecker81 Год назад +2

    정문부 장군을 알게되어 매우 뜻 깊네요.

  • @다윤이의행복한세상
    @다윤이의행복한세상 Год назад

    근데 우리나라는 병력이 정말 적네요. 저렇게 병력이 적은 이유가 있나요?? 기병 중심이라서 그런 가요?

  • @asdfasdfsdf1084
    @asdfasdfsdf1084 Год назад +1

    갓문부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