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교회 일=사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덧 한국교회의 이데올로기 혹은 이분법적인 신앙관에 의심을 해서 결국에는 일상=사역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사역자들의 설교와 신도들 신학생 친구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거의 다 교회 일=사역이라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고 죄라고 여기는 경우, 세상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쉽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영상을 통해 다시 한번 제 주장에 대한 생각이 굳건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보주적인 신앙관때문에 이런 이분법이 더 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 이 영상을 보고 이 주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지만,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폴스티븐스,IVP)', '평신도가 사라진 교회'라는 책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인듯 합니다. 일상과 사역의 분리가 아닌, 삶의 모든 영역에서 통합적이고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에 고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 존스토트 목사님 "온전한 그리스도인"과도 통하는 내용인 것 같아요. 저도 최근에 전인격적으로 통전적으로 신앙을 살아내는 것이 어떤 모습일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결국 일상 = 사역이 되어버리면 그저 "윤리적인 / 선한" 삶을 사는 것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문제에 관심 가지고, 봉사와 기부를 하며, 일상에서 주어진 역할들--친구, 직업인, 가족구성원--을 성실히 수행하고, 윤리적으로 사는 것) 또 한편 초대교인들은 교인들끼리 모이기를 힘쓰고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구제하고 말씀 나누기, 즉 공동체 내부로 향하는 사역에 앞장섰잖아요. 교인들이 어떻게 전도하고 선교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성경에 거의 없는 것 같고, 일상에서도 보고 배울만한 "reference point" 혹은 선례들이 많이 없는 것이 어려움인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 지 목사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시는지 궁금해요. 2) 또 이 것이 잘못 받아들여지면, 이미 우리 사회와 교회에 존재하는 성공주의, 성과주의적 문화와 결합되어 왜곡되버리진 않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교회에서 "사역" 열심히하면 (가시적인 아웃풋이 보이니까)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는 것 처럼,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면 (승진, 재산 증식, 명예 등) 일상의 사역을 열심히 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죠.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할까요? (예를 들어, 일상의 영역에서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드러나도록 사는 것이 되어야할까요?) 3) 사역으로서의 일상을 강조하는 선교적 교회가 지역교회 존재의 근간이라면, 비대해진 현대의 대다수의 교회(존재하기위해 성도들의 물질적, 시간적, 물리적 자원들을 대거 요하는 교회)들은 더 lean해져야하는 것 아닌가요 (e.g. 교직원도 줄이고, 프로그램도 줄이고, 혜택(식사와 관식)들 축소)? 교회 사역에 지쳐서 주말에 쉬지 못하고 피곤한 몸으로 한주를 시작하는 우리가 과연 일상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요?
저도 어떻게 형제사랑을 이룰까?생각하고 기도 했었는데요 제가 일을 열심히 잘 해주는 것도 형제사랑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도만 하고 일을 못 하면 사장님이 저를 싫어하고 미울테고 그런 직원 따라 교회 나가지 않으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이 되는 모습을 보이는게 전도하는 지름길인거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일이든 주를 위해 한다면 정말 일상이 선교고 하나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살다가 독일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살다보니 독일의 기독교적인 문화가 오히려 거울이 되어 한국의 기독교가 오히려 잘 보이더군요. 기독교의 핵심은 변하지 않지만 그 나라의 문화, 사고방식, 시스템에 따라 조금 다르게 표현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독일어로 직업 Beruf 라는 단어는 사실은 “부름 받음” 이라는 뜻입니다 rufen:부르다 ->berufen: 정하다 세우다 소명을 받다 ->Beruf 직업, 직업은 사실 “내가 무슨 일을 한다” 하는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게 아니라 “누군가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직장을 잡을 때도 내가 그 회사를 선택해서 지원을 했지만, 그 회사의 부름이 있어야지만 성립이 됩니다. 그러니 직업 또한 내가 무엇을 한다는 느낌 보다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개념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사역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역또한 우리가 주체적으로 무엇을 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나의 사역이란 어떤 영역이고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개인이 “어떤 부름을 받았는지” 그건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따라 다르겠지요. 또한 나의 재능과 내가 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 삶의 모양에 따라 다른 것이겠지요. 사람을 각자 다르게 지으셨고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니 사명도 다양하겠지요.. 한국인 한정으로 사역이라는 개념을 거대집단적으로 누구나 똑같이 이렇게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유난히 큰 아이디어를 누군가 내고 그것이 유행이 되어 거의 모든 한국인이 그것에 따라가는게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 같습니다. 교회도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어디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직업도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딤전5:17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5:12-13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1-12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모든 성도 가운데서도 가장 가려 뽑아야 합니다." 찰스 스펄전
일하기 싫은자 먹지도 말라 : 살후 3 이거 위에 언급된 구절과 같은 사람이 한 말 이라 . 목사든 사도든 선지자든 그 무엇이든 예외를 두지 아니 하였으니 자신의 생계는 스스로 돌볼지라. 배나 존경할 장로는 바로 그런 자들 이니라. 지 밥벌이도 못하는 주제에 누구한테 훈수를 두자고 나서겠는가. 하나님이 지 처자식 입에 자기입에 풀칠도 못하는 애를 하나님일? 하라 강제 징발 했던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에 나가 스스로 생계 자립 부터 하는 것이 삶과 신앙의 출발 이니라. 누가 너희를 세웠다고 우기더냐. 존경을 받으려거든 자격을 갖추어야 할지라. 사십에 하나 감한 태형을 두번 당하고 로마감옥에 갇혔던 바울이 분명코 최종적으로 일하여 먹고살라 직설했고 자신도 그렇게 살았노라. 그를 인용하고 싶거든 생계 자립 부터 하고 교회곳간에 손을 대는 도둑질 같은건 안하는것이 순서니라. 그리고 나서 장로들 처럼 교회 봉사하라 .
충분히 공감되는 훌륭한 영상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과 교회로서의 역할에 다소간 차이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몇가지 더 생각하고 싶은 본질적주제들도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1. 교회가 세계에 특히 미전도민족, 특별한 선교적역할이 필요한 위험지역에 대한 선교역할은 어떻게 감당이 가능할까? 2. 교회역할에 있어서 성경과 올바른 신학지식을 전세대에게 잘 가르쳐야만 하는 교육적 역할이 있는데, 사역자외에 신실한 교사성도들의 헌신과 영향력은 매우 지대하다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중요한 교회의 한 지체로서의 역할공백이 생길 수 있다면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3. 개인의 일상뿐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교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교회의 조직을 통해서만 성취가능한 일들에 대해서 개인의 삶과 교회사역에서 실제 방식으로 적용할 점들은 어떤것들인가? 등입니다.
삼위일체가 무슨 쓸모가 있나 하는 의심이 가끔 있는데 이분법을 극복하는데 쓴다니 신박하네요!!! - 이분법적 관점이 한국 교회만의 특이성인가요? 영육이원론은 오히려 서구 철학사에서 더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해서요 (데카르트) - 개인적으로는 '일상에서 최선으로 성실히 임하는 것이 바로 사역'이라는 표현 보다, '세상과 다른 가치관과 관점으로 일상의 생활에서 세상적이지 않은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의 특이성을 드러내는' 것이 as로서의 사역을 더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고후2:14)
원하는 분야 석사중인데, 교인분께서 ‘세상공부’ 많이 해서 뭐하냐는 표현을 하시더라고요...ㅎㅎ 세상도 하나님이 만드신건데 세상공부는 뭐고 안세상공부는 뭔지ㅎㅎㅎㅎ 교회와 관련되지 않은 모든 일을 세속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태도 정말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자신의 지성을 이용해 열심히 사고하고 연구하길 바라실 텐데, 그런 의미에서 결국 모든 학문은 궁극적으로 신학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부르신 곳에서’ 나는 노래하는 것이고요..ㅎㅎ
전도사님의 팬이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ㅎ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어 이렇게 글 남겨요. 말씀도 좋고 방향성도 너무 좋은데 단어 선택에 있어서 너무 어려운 내용들이 많은것 같아요, 일상에서 쉽게 접할수 없는 언어들로 인해 제 주위에도 추천해 주었지만 (가까운 저의 아내도요 ㅎㅎ)금방 자신들이 무지한 사람인듯 느껴 진다 합니다. 쉽게 말씀드려 이공계도 아! 하고 이해 할수 있는 언어적 유희 즉 서비스가 필요 하지 않을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은 말씀을 좀더 쉽게 이해 하면 더 좋겠다는 사견이였습니다. 행여 기분나쁘시거나 이런 무식한 자들 이라 하셔도 , 고민한번 부탁드려봅니다. 앞으로도 쭈욱 애청하며 응원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피드백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안그래도 제가 워낙 신학 고인물이다보니, 제 언어가 일상과 많이 멀어지지 않았나 싶은 걱정이 들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말해주셔서 저를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 ) 혹시 구체적으로 어떤 단어에서 낯선 느낌을 받으셨는지 좀 더 적어주신다면 제가 개선할 부분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너무 공감이 가는 내용이고 궁금한 내용을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저도 교회 사역에 큰 의미를 두고 20여년 봉사하며 살다가 가족을 조금 등한시 했고 협소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었구나 느꼈습니다.교회를 옮겨 사역을 쉬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안하고 있나.제대로 가는건가 여러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그런데 일상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작은 집안일에도 감사하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학에 대한 학문적인 논리가 넘쳐나지만 과연 과거에 비해 얼마나 주님을 잘 섬기고 있는가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과거 선조들은 이처럼 신학적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도 신앙 생활 잘했는데 요즘은 신학적 논리 속에 숨어 과거의 선조들의 믿음 생활 일부도 쫒아갈 수 없으면서 비판만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종교적 행위만 하는 종교인으로 무능력 무기력한 기독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때때로 이단들이 더 진짜같은 이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진실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확언하건데 하나님을 학문 안에 가두지 말고 진실하게 좀 주님을 믿으면 이분법적인 삶 살 수 없다.
너무나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일상이 곧 예배라면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이 납득되는 것 같아요. 저는 사역으로서의 일상을 주장하는 평신도인데 주변의 크리스천 친구들이 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많이 힘들어합니다. 구원론을 주제로 소통이 힘들어요ㅠ 사실 저 역시 이분법적 구원관을 가진 분들과 대화하기 점점 힘들어져 고민이 됩니다. 이것이 지식의 저주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안녕하세요 업데이트 되는 영상 반기며 늘 잘 보고 있습니다. ^^ 평신도인 저에게 해묵은 질문인데 마침 영상 중 영육이원론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는 부분이 있어서 꺼내어 봅니다. 일상 신학에 대한 이해를 개진하기 위해 영과 육이 통합되어 있다는 인간관에 대한 선이해가 중요하기도 해서요.... 로마서 8장 3~14절을 읽어보면 바울은 육신과 영을 분리해서 율법이 육신으로 연결되고 하나님과의 반목하는 한편 영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연결된다는 전개를 읽을 수 있고 고린도전서 여러 곳에서도 고린도교회의 악덕이 육신과 연결되어 정죄되고 있으며 특히 5장 5절에서는 육신이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한다는 구절이 있어 어쩌면 이원론적 구원관을 지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읽다보면 육신 vs 영이라는 구도를 사도 바울이 워낙 빈번하게 사용해서 어느 시점에는 육체와 마음이라는 실제의 차원을 떠나 은유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한국의 영육이원론적 인간 이해는 그 근거가 이런 말씀들을 단순도식화 했던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닐지... 조선의 사농공상 개념과 특별히 연결시키시는 목사님의 견해가 새로우면서도 성경의 이런 구절과의 관계 속에서 일상신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조용히 기도와 지지를 보내는 성도들을 기억해주시길 바라며 질문 맺습니다 ^^ 감사합니다.
책의 요지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어떤 일상은 조금 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으로, 어떤 일상은 덜 위한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예컨대 전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입니다. 똑같이 입시과목을 가르쳐도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선생님이 저보다 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일상으로서의 사역을 살아낸다면 일상을 그자체로 진실하고 구별되어 살아가면 되는 것인지 일상이 더 높은 수준의 사역이 되도록 바꾸어 가야하는 것인지 하는 고민도 드네요^^
새신자ㆍ라는 말이 있어요ㆍ 교회 입장에서ㆍ나눌수밖에 없었던 성도의 Level 입니다ㆍ그냥 주제 위주가 되면ㆍ마음만 바뻐집니다ㆍ 나누어야 하고ㆍ나눠서ㆍ교육이 필요한거죠ᆢ그래서 집사가 들어야할 내용이있고ㆍ장로가 들어야 할 내용으로 구분하면ㆍ전하고 싶은 내용의 선이 보이실거예요ᆢ 직분이야기가 아닌것은 아시죠?? 나누는 것 ㆍ나누는 Level은ㆍ 그 선은 ᆢ전하고싶은 내용의 깊이로 ᆢ님께서 정하셔야하는거죠ᆢ
듣다보니, Business AS a mission(BAM)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들고, 요즘 핫이슈인 Missional Church라는 단어도 떠오르네요! -> 아 결국 뒷부분에 미션얼처치 이야기가 나왔네요! 그렇다면 질문!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교회가 되어 이웃/직장동료에게 먼저 다가가서 선한 이웃이 되어야하는데,,,, 선한 이웃이 되는 목적이 전도이어서는 안되고, 친구가 되는 것이 전도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맞을까요? 제가 강의를 잘 이해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선한 이웃이 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사역이라고 정의해도 될까요? 그렇다면 전도는 우리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자연스럽게(?) 성령님께서 이끄시고 기회를 만드실 부분으로 열어둔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 횡설수설 죄송😢 느낌적 느낌으로 해석해주세욬ㅋ)
당연히 일상샹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영광이십니다. 사역과 봉사보다 성도가 사회적인간으로서 책임과 성실을 다하는게 참 전도요 참사역입니다. 학생이 공부하는게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뜻이지 학생이 전도다니는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것이지요. 그냥 그 자리에서 열씨미 살아야죠 ㅎ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 입니다. 일부 교단에서 어떠한 물질적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 위하라고 하는데 그건 정말 어불성설. 하나님이 거지입니까? 인간들이 바벨탑쌓는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누가 누구를 위하나요? 주어진 삶 감사하게 행복하게 심령이 가난하게 열씨미 살자구요. 내삶 자체가 전도입니다. 내가 변하는게 전도 입니다. 내가좋다고 남에게 권하는건 폭력입니다. ❤
저는 개척 교회 청년부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선교사를 준비하며 청년부를 섬기고 있고, 목사님 사모님께서 저의 의견도 많이 반영해주고 계십니다. 영상 내용은 완전히 동의 합니다. 다만 사역자의 입장에 있을 때 실제적으로 어떠한 자세를 고수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1대1로 고민 상담을 할 때는 저 또한 상대에게 교회 일만이 사역이 아님을 말해주곤 하지만,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개최하는 입장에서 훈련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참여 독려가 필요한 상황인데 적은 인원 중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에 불참하며 모임 유지 자체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욱이 문제인 것은 각자의 일상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주일예배 이상의 모임 참여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는 인원들이 동시에 일상에서 무너지고 신앙적 갈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사역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제자 훈련 모임 자체를 없애는게 맞을까요? 아니면 참여하기를 더욱 격려하는 것이 맞을까요?
주입된 생각에 갇히지 마세요. "요한복음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지 말고 믿을지어다" 라는 말을 제가 들었다면 저는 손을 넣어보고 확실하게 믿었을 거예요~ 예수님이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다" 라는 말을 하신 것 때문에 현실에서 먼가 찜찜 하지만 하나님 뜻이라면 순종하는 자세로 믿으려 한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딱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목사님들은 성직자 기준으로 신앙 연구를 해왔습니다. 때문에 성도 기준으로 말씀 전하시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나님이 목회자 자신에게 지시하신 영감을 성도에게 적용하려고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성도들도 스스로 성경책을 시간을 정해서 단 몇 절이라도 읽어야해요. 생판 모르는 사람이와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라고 하시면 따르시겠어요? "주님께서 저한테는 그렇게 말씀 안하셨는데요?" 라고 대답하실 정도의 믿음을 가지시길 소원합니다.
사역은 교회를 위해 맡겨진 일인데, 이걸 사람이 의도하고 계획해서 할 수 있나요? 머리는 그리스도, 교회는 지체라고 말은 하지만 자기가 주도해서 연간계획 세우고 머리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쌔고 널렸습니다. 영에 속한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인지할 수 도 없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해서 하나님을 돕나요? 성경은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도 십사만사천은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고백합니다. 나도 뭔가 하나님을 도와서 사역했다 이게 아니죠? 사람은 하나님을 도울 수 없어요. 오히려 방해만 될뿐이죠. 하나님의 일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누구를 믿게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에요. 마른뼈가 살아나는 이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절대로 도울 수 없습니다. 천사들도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어떻게 구원할까 궁금해하는 그 일을, 사람이 어떻게 돕겠나요?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나는 어떤 사도들 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의를 차린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실제적 고백입니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이 둘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 맺는 존재들만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입니다. 자신은 그저 접붙여진 가지라는 것을요. 또 한가지, 그러면 증인은 노력해서 될 수 있는가? 성령이 임하면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그냥 됩니다. 내 의도나 계획과 상관없이요. 거듭난 자는 삶의 자리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이야기하겠죠. 핍박의 유무와 상관없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으니깐요. 흘러나오는 현상이에요. 전도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는 일입니다. 곧 십자가를 의미하죠. 교회 나오세요 는 홍보이지 전도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 사역을 생각하니까 이런 잘못된 오해가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요. 예수님이 무너뜨리고 3일만에 지으신 성전을,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다시 건물을 지어서 교회라고 만들어놓은 실정이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정말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이 교회를 이끌어가시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완전한 무능을 고백하고 그 앞에 감탄과 경외를 표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은 곧 사탄의 일임을 깨닫게 될 겁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나에게 지혜가 없음을 인정한 사람이고 스스로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소명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사명자로 부르심은 곧 신학교입학과 목사안수로 이어지는 왜곡입니다.신학교는 성경을 좀 더 알고자 누구나 갈수가 있지만 목사안수는 반드시 목사로 소명이 잇어야하는것입니다.신약시대는 누구나 다 복음전도의 사명자입니다.특히 여성사역자들은 함부로 목사안수를 받으면 안됩니다.전도사나 권사의 직분으로 부르심을 받은 분들이 은사가 열리면 대부분 잘못된 예언을 듣고 목사안수를 받습니다.은사와 목사로의 소명은 다른 것입니다.은사자가 곧 목사는 아닌 것입니다.목회를 하다보면 필요한 자에게 하나님이 성령의 은사를 부으셔서 사용하십니다.은사가 나타나지않는 목사들도 많다는것을 참고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권능과 직분이 비례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새로운 일상 신학이 온다" 저자 인터뷰 보기
ruclips.net/video/C-_2o-H8yCQ/видео.html
제가 오랫동안 생각하고갈급해하던 말씀입니다.교회사역,가정사역,직장사역,친구사역 등등 나의삶이 주와동행하는일이라는것을 할머니되면서 더욱 깨닫게됩니다
손자육아동지 또한 사역으로누리면서 큰은혜를깨닫게되네요
할렐루야❤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교회 일=사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덧 한국교회의 이데올로기 혹은 이분법적인 신앙관에 의심을 해서 결국에는 일상=사역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사역자들의 설교와 신도들 신학생 친구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거의 다 교회 일=사역이라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고 죄라고 여기는 경우, 세상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쉽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영상을 통해 다시 한번 제 주장에 대한 생각이 굳건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보주적인 신앙관때문에 이런 이분법이 더 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 이 영상을 보고 이 주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지만,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폴스티븐스,IVP)', '평신도가 사라진 교회'라는 책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인듯 합니다.
일상과 사역의 분리가 아닌, 삶의 모든 영역에서 통합적이고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에 고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도가 참 돋보이네요
참된영성의 시작같아요
교회사역 봉사만 주장하고 기독교를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거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 오래 다니는데 정작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1) 존스토트 목사님 "온전한 그리스도인"과도 통하는 내용인 것 같아요. 저도 최근에 전인격적으로 통전적으로 신앙을 살아내는 것이 어떤 모습일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결국 일상 = 사역이 되어버리면 그저 "윤리적인 / 선한" 삶을 사는 것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문제에 관심 가지고, 봉사와 기부를 하며, 일상에서 주어진 역할들--친구, 직업인, 가족구성원--을 성실히 수행하고, 윤리적으로 사는 것) 또 한편 초대교인들은 교인들끼리 모이기를 힘쓰고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구제하고 말씀 나누기, 즉 공동체 내부로 향하는 사역에 앞장섰잖아요. 교인들이 어떻게 전도하고 선교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성경에 거의 없는 것 같고, 일상에서도 보고 배울만한 "reference point" 혹은 선례들이 많이 없는 것이 어려움인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 지 목사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시는지 궁금해요.
2) 또 이 것이 잘못 받아들여지면, 이미 우리 사회와 교회에 존재하는 성공주의, 성과주의적 문화와 결합되어 왜곡되버리진 않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교회에서 "사역" 열심히하면 (가시적인 아웃풋이 보이니까)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는 것 처럼,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면 (승진, 재산 증식, 명예 등) 일상의 사역을 열심히 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죠.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할까요? (예를 들어, 일상의 영역에서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드러나도록 사는 것이 되어야할까요?)
3) 사역으로서의 일상을 강조하는 선교적 교회가 지역교회 존재의 근간이라면, 비대해진 현대의 대다수의 교회(존재하기위해 성도들의 물질적, 시간적, 물리적 자원들을 대거 요하는 교회)들은 더 lean해져야하는 것 아닌가요 (e.g. 교직원도 줄이고, 프로그램도 줄이고, 혜택(식사와 관식)들 축소)? 교회 사역에 지쳐서 주말에 쉬지 못하고 피곤한 몸으로 한주를 시작하는 우리가 과연 일상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요?
특히 2번에 대한 딜레마가 있어서 넘 좋은 지적인것 같아요. 박영선 목사님 설교도 비슷한 맥락이라 넘 와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었거든요. 지목사님께거 꼭 답을 해주셨음 좋겠어요!
역시 오신공... 오랜만에 메인으로 뵈니까 좋네요! ‘새롭게 잘 하려는 것’을 위해 ‘원래 잘 하던 거’ 도로 꺼내와줘서 고마워요!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원래 잘하던 거" 종종 준비해보겠습니다!ㅎ
저도 어떻게 형제사랑을 이룰까?생각하고 기도 했었는데요 제가 일을 열심히 잘 해주는 것도 형제사랑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도만 하고 일을 못 하면 사장님이 저를 싫어하고 미울테고 그런 직원 따라 교회 나가지 않으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이 되는 모습을 보이는게 전도하는 지름길인거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일이든 주를 위해 한다면 정말 일상이 선교고 하나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미리 읽어보고 인터뷰 볼게요:-) 벌써 기대됩니다!
나의 일상이 사역이라고 생각하면 왠지 일상이 더 즐겁고 의미있게 느껴질 거 같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공감하는 바 많습니다 책 소개 감사합니다~
공감가는 영상입니다!!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살다가 독일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살다보니 독일의 기독교적인 문화가 오히려 거울이 되어 한국의 기독교가 오히려 잘 보이더군요. 기독교의 핵심은 변하지 않지만 그 나라의 문화, 사고방식, 시스템에 따라 조금 다르게 표현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독일어로 직업 Beruf 라는 단어는 사실은 “부름 받음” 이라는 뜻입니다 rufen:부르다 ->berufen: 정하다 세우다 소명을 받다 ->Beruf 직업,
직업은 사실 “내가 무슨 일을 한다” 하는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게 아니라 “누군가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직장을 잡을 때도 내가 그 회사를 선택해서 지원을 했지만, 그 회사의 부름이 있어야지만 성립이 됩니다. 그러니 직업 또한 내가 무엇을 한다는 느낌 보다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개념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사역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역또한 우리가 주체적으로 무엇을 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나의 사역이란 어떤 영역이고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개인이 “어떤 부름을 받았는지” 그건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따라 다르겠지요. 또한 나의 재능과 내가 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 삶의 모양에 따라 다른 것이겠지요. 사람을 각자 다르게 지으셨고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니 사명도 다양하겠지요..
한국인 한정으로 사역이라는 개념을 거대집단적으로 누구나 똑같이 이렇게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유난히 큰 아이디어를 누군가 내고 그것이 유행이 되어 거의 모든 한국인이 그것에 따라가는게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 같습니다.
교회도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어디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직업도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 받고 있습니다 평강이 이방에 가득하시길 샬롬
Missio dei~!!!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딤전5:17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5:12-13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1-12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모든 성도 가운데서도 가장 가려 뽑아야 합니다." 찰스 스펄전
일하기 싫은자 먹지도 말라 : 살후 3
이거 위에 언급된 구절과 같은 사람이 한 말 이라 .
목사든 사도든 선지자든 그 무엇이든 예외를 두지 아니 하였으니 자신의 생계는 스스로 돌볼지라.
배나 존경할 장로는 바로 그런 자들 이니라.
지 밥벌이도 못하는 주제에 누구한테 훈수를 두자고 나서겠는가.
하나님이 지 처자식 입에 자기입에 풀칠도 못하는 애를
하나님일? 하라 강제 징발 했던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에 나가 스스로 생계 자립 부터 하는 것이 삶과 신앙의 출발 이니라.
누가 너희를 세웠다고 우기더냐.
존경을 받으려거든 자격을 갖추어야 할지라.
사십에 하나 감한 태형을 두번 당하고 로마감옥에 갇혔던 바울이
분명코 최종적으로 일하여 먹고살라 직설했고 자신도 그렇게 살았노라.
그를 인용하고 싶거든 생계 자립 부터 하고 교회곳간에 손을 대는 도둑질 같은건 안하는것이 순서니라.
그리고 나서 장로들 처럼 교회 봉사하라 .
충분히 공감되는 훌륭한 영상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과 교회로서의 역할에 다소간 차이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몇가지 더 생각하고 싶은 본질적주제들도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1. 교회가 세계에 특히 미전도민족, 특별한 선교적역할이 필요한 위험지역에 대한 선교역할은 어떻게 감당이 가능할까?
2. 교회역할에 있어서 성경과 올바른 신학지식을 전세대에게 잘 가르쳐야만 하는 교육적 역할이 있는데, 사역자외에 신실한 교사성도들의 헌신과 영향력은 매우 지대하다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중요한 교회의 한 지체로서의 역할공백이 생길 수 있다면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3. 개인의 일상뿐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교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교회의 조직을 통해서만 성취가능한 일들에 대해서 개인의 삶과 교회사역에서 실제 방식으로 적용할 점들은 어떤것들인가?
등입니다.
한국교단들의 거의가 근본주의 신학을 해왔기에 사고의 유연성이 없다.
흑백적 사고여서 회색을 싫어했지..
성서해석도 마찬가지...창의성이라고는
헌금 많이 걷는법 빼고는 없는것같다.
칼뱅의 '천직' 개념이 '일상에서의 사역' 개념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목회자분들이 설교나 모임에서 강조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뭔가 하는 것 같고 교회 밖에서는 길을 헤메고 있는 모습들이 현실이니까요~~
삼위일체가 무슨 쓸모가 있나 하는 의심이 가끔 있는데 이분법을 극복하는데 쓴다니 신박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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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 관점이 한국 교회만의 특이성인가요? 영육이원론은 오히려 서구 철학사에서 더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해서요 (데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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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일상에서 최선으로 성실히 임하는 것이 바로 사역'이라는 표현 보다,
'세상과 다른 가치관과 관점으로 일상의 생활에서 세상적이지 않은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의 특이성을 드러내는' 것이 as로서의 사역을 더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고후2:14)
원하는 분야 석사중인데, 교인분께서 ‘세상공부’ 많이 해서 뭐하냐는 표현을 하시더라고요...ㅎㅎ 세상도 하나님이 만드신건데 세상공부는 뭐고 안세상공부는 뭔지ㅎㅎㅎㅎ 교회와 관련되지 않은 모든 일을 세속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태도 정말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자신의 지성을 이용해 열심히 사고하고 연구하길 바라실 텐데, 그런 의미에서 결국 모든 학문은 궁극적으로 신학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부르신 곳에서’ 나는 노래하는 것이고요..ㅎㅎ
+ 바뀐 방식 좋아요!! 인터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도사님의 팬이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ㅎ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어 이렇게 글 남겨요. 말씀도 좋고 방향성도 너무 좋은데 단어 선택에 있어서 너무 어려운 내용들이 많은것 같아요, 일상에서 쉽게 접할수 없는 언어들로 인해 제 주위에도 추천해 주었지만 (가까운 저의 아내도요 ㅎㅎ)금방 자신들이 무지한 사람인듯 느껴 진다 합니다.
쉽게 말씀드려 이공계도 아! 하고 이해 할수 있는 언어적 유희 즉 서비스가 필요 하지 않을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은 말씀을 좀더 쉽게 이해 하면 더 좋겠다는 사견이였습니다. 행여 기분나쁘시거나 이런 무식한 자들 이라 하셔도 , 고민한번 부탁드려봅니다. 앞으로도 쭈욱 애청하며 응원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피드백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안그래도 제가 워낙 신학 고인물이다보니, 제 언어가 일상과 많이 멀어지지 않았나 싶은 걱정이 들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말해주셔서 저를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 )
혹시 구체적으로 어떤 단어에서 낯선 느낌을 받으셨는지 좀 더 적어주신다면 제가 개선할 부분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너무 공감이 가는 내용이고 궁금한 내용을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저도 교회 사역에 큰 의미를 두고 20여년 봉사하며 살다가 가족을 조금 등한시 했고 협소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었구나 느꼈습니다.교회를 옮겨 사역을 쉬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안하고 있나.제대로 가는건가 여러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그런데 일상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작은 집안일에도 감사하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학에 대한 학문적인 논리가 넘쳐나지만 과연 과거에 비해 얼마나 주님을 잘 섬기고 있는가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과거 선조들은 이처럼 신학적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도 신앙 생활 잘했는데 요즘은 신학적 논리 속에 숨어 과거의 선조들의 믿음 생활 일부도 쫒아갈 수 없으면서 비판만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종교적 행위만 하는 종교인으로 무능력 무기력한 기독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때때로 이단들이 더 진짜같은 이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진실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확언하건데 하나님을 학문 안에 가두지 말고 진실하게 좀 주님을 믿으면 이분법적인 삶 살 수 없다.
너무나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일상이 곧 예배라면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이 납득되는 것 같아요.
저는 사역으로서의 일상을 주장하는 평신도인데 주변의 크리스천 친구들이 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많이 힘들어합니다. 구원론을 주제로 소통이 힘들어요ㅠ
사실 저 역시 이분법적 구원관을 가진 분들과 대화하기 점점 힘들어져 고민이 됩니다. 이것이 지식의 저주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안녕하세요 업데이트 되는 영상 반기며 늘 잘 보고 있습니다. ^^
평신도인 저에게 해묵은 질문인데 마침 영상 중 영육이원론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는 부분이 있어서 꺼내어 봅니다.
일상 신학에 대한 이해를 개진하기 위해
영과 육이 통합되어 있다는 인간관에 대한 선이해가 중요하기도 해서요....
로마서 8장 3~14절을 읽어보면 바울은 육신과 영을 분리해서 율법이 육신으로 연결되고 하나님과의 반목하는 한편
영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연결된다는 전개를 읽을 수 있고
고린도전서 여러 곳에서도 고린도교회의 악덕이 육신과 연결되어 정죄되고 있으며
특히 5장 5절에서는 육신이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한다는 구절이 있어 어쩌면 이원론적 구원관을 지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읽다보면 육신 vs 영이라는 구도를 사도 바울이 워낙 빈번하게 사용해서
어느 시점에는 육체와 마음이라는 실제의 차원을 떠나
은유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한국의 영육이원론적 인간 이해는
그 근거가 이런 말씀들을 단순도식화 했던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닐지...
조선의 사농공상 개념과 특별히 연결시키시는 목사님의 견해가 새로우면서도
성경의 이런 구절과의 관계 속에서 일상신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조용히 기도와 지지를 보내는 성도들을 기억해주시길 바라며
질문 맺습니다 ^^ 감사합니다.
네.
모두가 사역을 하면
소는 누가 키웁니까...
모두가 사역을 하면 십일조 재원은 어디서 나오고 이웃을 돕는 돈은 어디서 나오나요.
사역자는 전령일 뿐 진짜 이웃 사랑은 사회인들이 해야되죠.
현재의 교회처럼 조직화가 해체되지 않는다면 과연 새롭개 바뀔까요?
책의 요지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어떤 일상은 조금 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으로, 어떤 일상은 덜 위한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예컨대 전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입니다. 똑같이 입시과목을 가르쳐도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선생님이 저보다 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일상으로서의 사역을 살아낸다면 일상을 그자체로 진실하고 구별되어 살아가면 되는 것인지 일상이 더 높은 수준의 사역이 되도록 바꾸어 가야하는 것인지 하는 고민도 드네요^^
새신자ㆍ라는 말이 있어요ㆍ
교회 입장에서ㆍ나눌수밖에 없었던 성도의 Level 입니다ㆍ그냥 주제 위주가 되면ㆍ마음만 바뻐집니다ㆍ
나누어야 하고ㆍ나눠서ㆍ교육이 필요한거죠ᆢ그래서 집사가 들어야할 내용이있고ㆍ장로가 들어야 할 내용으로 구분하면ㆍ전하고 싶은 내용의 선이 보이실거예요ᆢ
직분이야기가 아닌것은 아시죠??
나누는 것 ㆍ나누는 Level은ㆍ
그 선은 ᆢ전하고싶은 내용의 깊이로 ᆢ님께서 정하셔야하는거죠ᆢ
멋진 컨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영혼육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이 역할들이 있어서 성경말씀에도 구별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전인적으로 봐야 한다라고 애매하게 설명하시는거 보다 좀더 명확하게 설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듣다보니, Business AS a mission(BAM)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들고, 요즘 핫이슈인 Missional Church라는 단어도 떠오르네요!
-> 아 결국 뒷부분에 미션얼처치 이야기가 나왔네요!
그렇다면 질문!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교회가 되어 이웃/직장동료에게 먼저 다가가서 선한 이웃이 되어야하는데,,,, 선한 이웃이 되는 목적이 전도이어서는 안되고, 친구가 되는 것이 전도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맞을까요? 제가 강의를 잘 이해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선한 이웃이 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사역이라고 정의해도 될까요? 그렇다면 전도는 우리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자연스럽게(?) 성령님께서 이끄시고 기회를 만드실 부분으로 열어둔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 횡설수설 죄송😢 느낌적 느낌으로 해석해주세욬ㅋ)
오히려 Everyday Life as Mission의 연장선이 BAM 아닐까요? ㅎㅎ
안녕하세요~영상잘보았습니다~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서요~직장생활이나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교회사역과 겹치는 상황들이 생기는데요 그럴때 머리속에 드는 생각의 구조가 교회사역vs직장생활(or개인적인일들)의 선택이 하나님vs세상의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해요~상황마다다를수 있고 나의 일상이 또는 회사일이 어떤 죄가운데 있는거라면 오히려 선택이 쉬울거 같은데 그런부분이 아니라면 선택이 어렵네요ㅠ.. 말씀하신데로 일상의 모든것들도 중요한데 교회사역과 부딪힐때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지혜롭게 해결할수 있을까요?
당연히 일상샹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영광이십니다. 사역과 봉사보다 성도가 사회적인간으로서 책임과 성실을 다하는게 참 전도요 참사역입니다. 학생이 공부하는게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뜻이지 학생이 전도다니는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것이지요. 그냥 그 자리에서 열씨미 살아야죠 ㅎ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 입니다. 일부 교단에서 어떠한 물질적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 위하라고 하는데 그건 정말 어불성설. 하나님이 거지입니까? 인간들이 바벨탑쌓는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누가 누구를 위하나요? 주어진 삶 감사하게 행복하게 심령이 가난하게 열씨미 살자구요. 내삶 자체가 전도입니다. 내가 변하는게 전도 입니다. 내가좋다고 남에게 권하는건 폭력입니다. ❤
@@wnghkswhch1671 답변너무감사드려요~해주신답변 잘생각해볼게요~!!
저는 개척 교회 청년부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선교사를 준비하며 청년부를 섬기고 있고, 목사님 사모님께서 저의 의견도 많이 반영해주고 계십니다. 영상 내용은 완전히 동의 합니다. 다만 사역자의 입장에 있을 때 실제적으로 어떠한 자세를 고수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1대1로 고민 상담을 할 때는 저 또한 상대에게 교회 일만이 사역이 아님을 말해주곤 하지만,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개최하는 입장에서 훈련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참여 독려가 필요한 상황인데 적은 인원 중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에 불참하며 모임 유지 자체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욱이 문제인 것은 각자의 일상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주일예배 이상의 모임 참여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는 인원들이 동시에 일상에서 무너지고 신앙적 갈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사역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제자 훈련 모임 자체를 없애는게 맞을까요? 아니면 참여하기를 더욱 격려하는 것이 맞을까요?
신앙생활을 교회에 묶인채로 출발을 하고 수십년을 다녀도 그채로 묶여있으니 그러지요.
개인 영성은 바닥이고
뭔가 불안해하고 교회에 묶여있질 않으면 그걸 갈급으로 오인하고 .
스스로 자립을 못하고 교회가 되려 그걸 방해합니다
죄가 커요 .
지금에 교회와는 머어언 얘기내요
주입된 생각에 갇히지 마세요. "요한복음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지 말고 믿을지어다" 라는 말을 제가 들었다면 저는 손을 넣어보고 확실하게 믿었을 거예요~ 예수님이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다" 라는 말을 하신 것 때문에 현실에서 먼가 찜찜 하지만 하나님 뜻이라면 순종하는 자세로 믿으려 한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딱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목사님들은 성직자 기준으로 신앙 연구를 해왔습니다. 때문에 성도 기준으로 말씀 전하시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나님이 목회자 자신에게 지시하신 영감을 성도에게 적용하려고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성도들도 스스로 성경책을 시간을 정해서 단 몇 절이라도 읽어야해요. 생판 모르는 사람이와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라고 하시면 따르시겠어요? "주님께서 저한테는 그렇게 말씀 안하셨는데요?" 라고 대답하실 정도의 믿음을 가지시길 소원합니다.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분법 신앙이라는게 한국교회에 뿌리를 내렸다는건 개인적이 경험에 근거한 통계인가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한다가 교회의 일과 동의어로 사용되어진다 라는 것도 어디어디에서 그렇게 쓰고 있나요?
성경말씀 외엔 가급적 하지 말아야합니다.
사역은 교회를 위해 맡겨진 일인데, 이걸 사람이 의도하고 계획해서 할 수 있나요? 머리는 그리스도, 교회는 지체라고 말은 하지만 자기가 주도해서 연간계획 세우고 머리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쌔고 널렸습니다. 영에 속한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인지할 수 도 없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해서 하나님을 돕나요?
성경은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도 십사만사천은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고백합니다. 나도 뭔가 하나님을 도와서 사역했다 이게 아니죠? 사람은 하나님을 도울 수 없어요. 오히려 방해만 될뿐이죠. 하나님의 일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누구를 믿게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에요. 마른뼈가 살아나는 이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절대로 도울 수 없습니다. 천사들도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어떻게 구원할까 궁금해하는 그 일을, 사람이 어떻게 돕겠나요?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나는 어떤 사도들 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의를 차린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실제적 고백입니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이 둘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 맺는 존재들만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입니다. 자신은 그저 접붙여진 가지라는 것을요.
또 한가지, 그러면 증인은 노력해서 될 수 있는가? 성령이 임하면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그냥 됩니다. 내 의도나 계획과 상관없이요. 거듭난 자는 삶의 자리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이야기하겠죠. 핍박의 유무와 상관없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으니깐요. 흘러나오는 현상이에요. 전도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는 일입니다. 곧 십자가를 의미하죠. 교회 나오세요 는 홍보이지 전도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 사역을 생각하니까 이런 잘못된 오해가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요. 예수님이 무너뜨리고 3일만에 지으신 성전을,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다시 건물을 지어서 교회라고 만들어놓은 실정이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정말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이 교회를 이끌어가시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완전한 무능을 고백하고 그 앞에 감탄과 경외를 표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은 곧 사탄의 일임을 깨닫게 될 겁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나에게 지혜가 없음을 인정한 사람이고 스스로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대가 말한 바울처럼 스스로 일하여 먹고살라.
분명코 말했노라
소명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사명자로 부르심은 곧 신학교입학과 목사안수로 이어지는 왜곡입니다.신학교는 성경을 좀 더 알고자 누구나 갈수가 있지만 목사안수는 반드시 목사로 소명이 잇어야하는것입니다.신약시대는 누구나 다 복음전도의 사명자입니다.특히 여성사역자들은 함부로 목사안수를 받으면 안됩니다.전도사나 권사의 직분으로 부르심을 받은 분들이 은사가 열리면 대부분 잘못된 예언을 듣고 목사안수를 받습니다.은사와 목사로의 소명은 다른 것입니다.은사자가 곧 목사는 아닌 것입니다.목회를 하다보면 필요한 자에게 하나님이 성령의 은사를 부으셔서 사용하십니다.은사가 나타나지않는 목사들도 많다는것을 참고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권능과 직분이 비례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일하여 먹고살라.
목사도 예외 없느니라.
바울보다 더 큰 소명 있다해도 마찬가지
경쟁지상주의 사회에서 직장에 안다녀 본 사람이 저런 이상한 소리를 하게된다.
너무 공감이 안되는 영상이네요..ㅡㅡ 작금의 시대에는 오히려 어느정도는 이분법적으로 나누는게 필요할 듯 싶습니다. 사회가 어떤 곳인지 경험하지 못한 어설픈 지식으로 성도들에게 탈선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됩니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