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함께 촬영한 권헌일 목사입니다.^^ 부족한 논의임에도 관심 가져주셔서 초대해주시고 잘 편집해서 올려주신 오신공께 감사드립니다. 촬영하는 시간이 참으로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네요) 1부, 2부로 나뉘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이 부분도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댓글을 보면서 선하신 하나님과 이 세상 사이의 긴장을 가지고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음을 느꼈고요, 여전히 배우고 탐구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 고난에 대한 제 생각은 2부에서 나오게 될 것 같아요. 속 시원한 답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같은 문제를 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저는 신정론 논의가 따로 이뤄지기보다는 다른 질문들과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신은 어떤 존재인가 혹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 그 하나님은 역사적 차원 또는 문화적 차원을 넘어서는가",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과 피조물끼리(?)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실/현상은 어떤 관계인가" 등입니다. 이런 질문들과 함께 신정론을 다룰 때, 결론 자체보다 그 논의 과정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논의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이어지는 2부도 기대하겠습니다^^
@@나다미-w5w 댓글이라는 특성상 제가 간략하게 쓰다보니 오해를 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저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내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 중에 한 사람입니다^^ 서로 간에 이해를 위해 제가 댓글 쓴 맥락을 약간 덧붙여 봅니다. 신정론이라는 것이 종종 하나님에게 세상 모든 악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처럼 전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더욱 폭 넓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나님에게 책임을 묻네 마네 하는 좁은 논점을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좁은 범위로만 신정론을 다루면 무신론자 vs. 유신론자 싸움으로 빠지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ㅎㅎ 그리고 다른 주제들과 통합해서 이야기해야 결국 나는, 우리는 악을 향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악과 나를 정말 무관하다 여길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오해하시게 한 점은 다시 한 번 사과드려요. 하나님을 규정한다거나 하나님에 대해 다 안다거나 그러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평안하시길^^
다양한 글들을 통해 다양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걸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특징 본질에 대해 여전히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고(오히려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이해된다고 단정지을만큼) 끊임없이 고민하며 신학적 질문과 의문점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지식적 이해에 빗대어 바라보았을 때에 한계를 느끼면서도 계속 고민하도록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가장 명확한 해답을 주기도 누군가에게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무언가가 간절한 절박함을 주기도 누군가에게는 믿음을 전제한 신앙이지만 신의 존재에 대한(또는 신이 가진 정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질문을 주기도
신정론에 대해 고민할 때면 제가 가지고 있는 신론에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습니다.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제가 가진 신정론이 여러가지 신정론이 합쳐진 사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네요. 하나님이 전선하시기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모든 미 래 중 단 하나의 승리하는 미래를 보고 그 루트대로 가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전선하시기에 우리가 생각했을 때에 지금의 현실보다 더 선한 세상이 있을까?(기계적이지 않은 인간의 사랑이 존재하는) 라고 했을 때 그 부분은 글쎄, 그건 나의 인지영역 바깥의 문제이고 하나님은 가장 선하신 분이기에 우리는 지금의 세상이, 흘러가는 역사가 하나님 보시기에도 선한 것이라고 믿어야해. 이렇게 생각했었네요. 이런 생각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해결되지 않는 감정의 문제가 남겠네요. 한가지 아쉬운 건 신정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신을 변증할 때에 문제점은 신을 믿어야만 수긍할 수 있는 속성들에 대해서 전제하지 않고도 신이 정의롭다는 걸 변호해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참 어렵네요ㅜ
이 세상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부조리한 현상에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 의식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신정론의 문제들이 결국의 인간의 이성에 의한 답을 추구 하는 것이기에 사람마다 주장이 다를 수 있는 것이고 결국 해답은 완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답을 줄 수 없는 한계점이 분명 존재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만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우리 의지로 설명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 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 할 길이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선하심은 무선택적 무질서적 선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게는 죄에대한 벌도 선이지만 우리가 볼 수 없는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위해 현재 일어나는 악한 일이나 하나님의 침묵 또는 선한 것들이 받는 피해 조차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라는 선하심에 포함된다고 봅니다. 결국에 우리는 매순간 선하고 매순간 악함이 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로 모르게 가리셨다고 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부분이지만 믿는 자들에겐 하나님의 뜻과 그 계획, 목적을 그저 신뢰하는 것이 가장 선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는 길입니다.
인과 관계가 전혀 없는 경우를 전적 은혜라고 합니다. 믿음과 구원은 전적 은혜의 대표적인 개념입니다. 그러나 신학은 이 부분을 잘 다루지 않습니다. 사실상 신비의 영역입니다. 신정론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전적 은혜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철학적 사변 논쟁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알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맨 처음 진리를 알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진리라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까? 맨 처음 진리를 처음 보고, 알고 깨닫게 된 기억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분명한 기억일 것입니다. 그 기억을 함께 나누실 분 있으시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아마도...이제까지 저와 같은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적을 것입니다. 있다고 해도 무시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 현대 교인들 거의 대부분이 자신 스스로 믿기 시직한 것이 소명이고 은혜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맞겠지라는 자기 세뇌를 통해 더 많은 지식을 머릿 속에 채움으로써 자기 믿음을 강화시키려 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해 주었습니까? 1.진리가 도대체 어떤 일을 자신에게 하셨기에 느닷없이 우리가 자유케 되었다는 것인지? 설명하실 분 있으신가요? 2.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실 분? 3.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 등등 간증해 주실 분은 계신가요? 이 모든 답들은 이미 알려진 누구나 다 아는 상식입니다만.. 진리를 아는 자들은 이를 체험했기에 그 답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자와 상식을 배우고 연구하는 자는 아는 지식이 다릅니다
1,진리안에 들어가려면 성경이 믿어져야합니다, 내가 억지로 믿는게 아니라 믿어집니다, 기도해야합니다, 2, 진리 안에 들어가려면 교회안의 모든것 인정하고 하라는대로 순종해야 기회가옵니다, 교회나 주의종하고 겉돌면 기회가오기 어렵습니다, 목사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종으로 따르고 붙어있어야합니다, 3,진리안에 들어가면 평안이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감동이있습니다, 남을 용서하게됩니다, 싸울때도 있지만 풀어집니다, 4,성령세례를 받아야 모든 신앙생활이 .원활하고 쉬워지고 끝까지 마귀를이기고 승리합니다, 일곱번 넘어져도 8번일어나 힘내야합니다, 마리톤과 같습니다, 골인지점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신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김영목-c5d 죄송합니다. 어느 교회를 다니시는지요?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과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십니다. 영이 죽었다.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 교리는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 주장입니다. 한번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의 개념에 대해 찾아 보시길 원합니다. 영이 죽은 상태는 흙의 상태, 마른 뼈의 상태로 영적 시체입니다. 흙과 마른 뼈에 하나님께서 생령( 생기)을 불어넣으시기 쟌에는 영적 시체입니다.( 죽은 자) 시체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이기에 쟌적 무능력 상태입니다. 믿을 수도, 회개할 수도,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도 , 복음을 받아 들일 수도, 예수님을 믿거나 영접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개신교의 제 1 교리인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을 찾아 보시면 다 나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영이 산 자로 될 수 있는가? 입니다. 그 정답은 전적 은혜입니다. 그럏다면 영적 시체가 어떻게 하면 전적 은혜를 얃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과 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 정답을 당연히 알고 있겠지요? 전적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그 은혜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유효한 부르심 즉 내적 소명과 중생의 결과라는 것이 개신교의 핵심 교리인 조직 신학의 구원의 서정입니다. 이는 참된 그리스도인들만이 알 수 있는 신비 체험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모두 잘못됩니다. 믿음, 회개, 신학은 전적 은혜가 첫 단추입니다. 전적 은혜의 내용은 하냐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라고 회자되는 내적 소명과 중생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은혜를 얻은 자들은 그 답 또한 알고 엤기에 많은 이들에게 그 길을 알려주려 합니다만,,, 세상 사람들은 귀와 눈이 멀었답니다. 많은 분들이 신앙과 신학의 첫 단추를 전쟉 은혜가 아닌 자기 결단, 자기 최면, 자기 노력으로 시직합니다. 이것은 철학하는 방법입니다 . 신학과 신앙은 거꾸로 전적 은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마태 복음 5장의 산상 수훈은 천국 백성이 되는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챤국 백성이 되어야 그 주인을 향한 믿음과 회개가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과 회개는 일방관계가 아닌 쌍방적, 인격적 관계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신학적 논쟁을 들어보니 신이, 종교가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면 오히려 더 명료해지네요. 전지전능한 신을 원하지만 현실에서 그 신을 찾을 수 없으니, 그 괴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신정론인데- 그 어느 것도 클리어하지 않은 것을 보니 오히려 종교가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 느껴집니다
전적 타락의 단절 상태에서 갑자기 신앙으로 연결되는 전적 은혜라는 ㅡ신비한 다리 ㅡ에 대한 설명이 없는 올바른 신학 공부는 가능할까요? 가장 먼저 이 연결 다리에 대한 설명이 올바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에 느닷없이 생겨난 전적 은혜라는 다리는 소명과 중생이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지 않은 믿음은 가만히 담 넘어 온 거짓 형제요, 양의 탈을 쓴 이리 같은 사람들의 믿음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이 은혜의 다리를 건너야 은혜로 얻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의 거의 대부분이 이 은혜의 다리를 설명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건너 온 상태에서 부터 가르치고 배우고 있습니다. 담 넘어 온 거짓 형제들은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올바른 신학이 아니라 철학이 되고, 성령을 받는 것이 야니라 더 강한 악령을 얻고, 진리가 아닌 거짓을 가르치는 교회가 되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진리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무엇이냐? 어떻게 진리를 알게 되었느냐? 등등 진리에 대한 질문에는 전혀 대답을 하지 못하는 자칭 믿는자라는 가짜 교인들만 가득합니다. 소명과 중생이라는 은혜의 양의 문을 통해 들어 온 성도들은 어떻게 그 은혜를 받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산상 수훈의 내용과 같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해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죄로만 가득한 용서도 구할 수 없는, ㅡ마음이 청결한 상태의 ㅡ죄로만 가득한 죄인됨의 자각입니다. 물론 소명과 중생을 거친 후에도 죄의 자각은 더욱 깊고 넓게 깨닫게 됩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오직 바른길은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어놓은신 성취를 믿는것이다 실제삶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보이는것을 누가 바라리요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것들의 증거니.. 보이는것들을 믿을것이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신 우리의 실체를 믿을것이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자는 주를 따를수 없다.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에 예수께서 성취하시고 받으시고 우리를 품으신 사실그대로 믿으면 예수께서 이루신대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다 우리의 전인격적인 성숙은 사도 바울이라도 매일같이 죽는다했건만 완성이 있겠나 예수님같이 새로난 자로 주님의 성화를 닮아가는것이지.. 오직 우리의 완전은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그안에 있고 자신의 믿음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는 존재이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1.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는가? 2. 존재 하신다면 그 분이 정말 기독교의 하나님이신가? 를 먼저 알아야 하겠지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 모세의 하나님, 이사야의 하나님,바울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요?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일 뿐. 나와 관계없는 하나님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처럼 제게 짠~~ 하고 나타나셔서 내가 네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뿐입니다. 이전에는 우리는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런데 만의 하나 진실로 하나님께서 짠~ 하고 나타나셔서 내가 네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일이 실제 일어닐 수 있는 길이 있다면 ???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해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마태 복음 5장 산상 수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해 하는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보시면 예수님 말씀처럼 천국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천국이란 ? 무한 광대하신 하나님 그 분 자체입니다. 예수님이 거짓말 하시지 않으셨음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즉, 왜 나는 벌레만도 못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가? 를 찾아 보십시요. 그 도구는 어린 애 같은 양심과 율법입니다.. 이미 모든 사람에게 다 주신 도구들입니다. 이 도구를 내버려 두지 마시고 잘 사용하십시요.. 그러면 짠 하고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너 자신을 알라 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왜 구원이 필요한지도 깨닫는 것입니다. 구원은 필요한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왜 구원이 필요한지 진실로 여러분들의 양심에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선물이란 간절히 필요한 자에게만 유용한 것입니다. 만일 이를 깨닫는다면 우리들의 질문들. 1.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고통의 인생을 주시고, 이도 모자라 지옥까지 예비하셨는가? 마땅히 지옥가야 할 당위성을 깨달을 것입니다. 2. 구원을 요청할 자격도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 뿐입니다.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들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오직...나는 어떤 존재인가? 를 깨닫는 양심에서 시작됩니다 설마?? 제 글은 이미 선진들이 증언했던 누구나 다 아는 내용들입니다. 저도 이를 통해 진리를 얻었고.하나님을 만났고 믿음을 은혜로 얻었습니다.
올바른 순서. 1.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 은혜인 선물로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믿기도 전에 어떤 선물을 받는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2. 성경은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읽고 깨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기 전에 어떻게 성령의 조명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최초로 성경을읽으려고 할 때 먼저 성령의 조명이 있었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를 받았습니까? 3. 진리를 믿는 자들은 먼저 진리가 어떤 것이고 왜 진리인지를 알아야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맨 처음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어떻게 진리를 아시게 되었습니까?. 이 질문의 제 답은 오직 은혜, 공짜, 거저 받음입니다. 제가 공부하고, 배우고,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전적 은혜입니다. 제 답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믿기 시작했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진리를 알기 시직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저는 이 제 대답이 맞다는 것을 증거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내적 소명과 중생은 평생 단 한번 일어나는 일이고, 이는 100프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며, 이 사역에 의한 인간의 반응이 믿음과 회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초보 지식입니다. 소낙비가 내리니 내 옷이 다 젖었고 추워지기 시직했다. 소낙비는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이 때문에 옷이 젖고 추워지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믿음과 회개입니다. 소명과 중생은 성령님의 신비한 사역입니다. 전적 타락으로 죽었던 영이 다시 살리심을 받는 은혜입니다. 영적 귀가 열려 부르심을 듣고, 영적 눈이 소생되어 천국 즉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남을 최초로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전적 은혜의 첫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알게 되고, 그 말씀과 음성을 듣고 알게 되니 그 분을 향해 자신의 죄와 허물에서 용서를 구하는 잘못 했습니다 라는 고백과 이제는 믿습니다라는 신앙을 당연히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명과 중생의 전적 은혜가 없는 한 , 인간의 믿음과 회개는 다 자신 스스로 만든 거짓일 뿐입니다..
믿음은 앎 다음에 위치합니다. 알지도 못하는데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쓴 기록일 뿐입니다. 나로서는 그런 내용을 알고 멛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찾아 오셔서 스스로를 나타내시며 너는 지금부터 내 백성이다라고 선포하신다면 ?? 직접적인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소명과 중생입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는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장로교 신학의 기초입니다.
이때 찾아오신 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이신지 악령인지 어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진리를 알게 하시고 가르치시기 시작합니다. 진리를 통해 거짓을 분별하게 됩니다. 거짓 영인 악령들은 진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르친다면 자신이 거짓 영인 것이 드러날 뿐입니다. 많은 거짓 선생들을 분별하는 쉬운 방법은 진리를 아는가? 를 보면 됩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크리스챤들은 진리를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최초로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소명과 중생 때입니다. 이를 진리의 하나님께서 찾아오심, 하나님과의 만남, 천국의 임재, 거듭남, 성도로 부르심, 천국 백성 삼으심, 등등의 말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진리를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은 성경에 쓰여 있지만, 성경을 통해 아는 것은 신문을 통해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임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것은 지식을 통해 안다는 것이 아니라 , 인격적인 쌍방의 사귐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도 나를 아시고 나도 햐나님을 실제적이고 인격쟉으로 알아야 합니다 . 이 만남을 하나님을 보아서 , 만나서 안다고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햐냐님을 보고 알고 믿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거젯말 햐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레위기 13장 12 ㅡ13절의 의미입니다. 문둥병이 전신에 가득한 것처럼 죄가 그 마음 속에 가득한 자는 정하다는 의미입니다. 벌레만도 못한 죄인의 괴수임을 깨닫는 자에게 햐냐님은 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해 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 들에게 하나님은 그 마음 중심을 보시고 , 죄인됨을 자각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찾아오셔서 부르시고 스스로를 나타내사 햐냐님을, 즉 천국을 , 보게 하십니다 . 이 때 천국 백성이 되며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하냐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친절하게 이 과정을 안내하고 가르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에 성령님의 신비한 사역이라고 햡니댜. 믿기십니까?? 그러나 사실입니다. 이것이 전적 은혜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실 점은? 천국 백성 되기 전까지 믿음과 회개는 없습니다. 죄의 자각과 회개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회개한다 라는 말은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 은혜를 받은 때부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 되기 전까지는 믿고 싶습니다, 반성합니다라는 표현이 정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니 속이려 들지도 마십시요!! 지금까지 믿으려 했던 노력들을 다 내려 놓으십시요. 믿음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전적 은혜로 얻습니다. 양심으로 깨닫는 죄의 자각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찾아 오셔서 하나님 스스로를 나타내시며 천국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의 것이라. 천국 백성 삼으신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 진실로 그렇게 천국 백성이 됩니다
솔직히 신정론은 답정너가 아닐까 싶다. 선한 신이 존재함을 믿고 싶은데 세상을 보면 납득이 안되니까 어떻게 해서든 신을 믿고싶어서 만들어낸 개념아닐까.. ‘만약 신이 없다면?’을 가정할 수 있다면, 신정론의 문제는 모두 다 해결된다. 세상이 이런건 신이 없기때문 이라는 깔끔한 결론이 나오니까.
조금 자의적인 것 같은 면이 없잖아 있기는 함. 이미 신이라는 존재와 그 특징들 본질들, 속성들을 상정해넣고 설명하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니까 어쨌든 위에 분말처럼 신정론 자체가 무신론자들에게는 논의 필요성이 없는거지 신이 없다고 하는데, 굳이 신정론을 펼칠 이유가 없지 신정론은 유신론자들에게 필요한 논의는 맞는듯 물론 신정론적 논의는 할 수 있지만(ex 악이 존재한다면 신은 없다) 무신론자가 신정론을 논하는 것 자체가 전제부터 잘못된게 아닌가 함. 신정론은 신은 존재하고, 이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존재한다라는 전제하에 펼쳐나가는 것이 의미있는 논의라고 생각함.
당신을 위해서 신정론을 두고 신학자들이 씨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이 없으면 깔끔해 질 문제라고 생각하는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전지전능한 신이, 선한 신이, 고통 받는 인간을 대하는 문제에 대해 다루는 게 신정론입니다.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신의 선함을 믿고 순종하기 때문에 신정론으로 골치가 아플 수는 있어도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은 고난과 고통을 겪더라도 당신이 성서를 읽었을지 모르지만 성서에 나오는 욥과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하지만 명쾌한 대답에 이끌려 신이 없다고 단정짓고 돌아서 버릴 당신이 납득할 답을 찾아,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오늘도, 신학자들이 신정론을 탐구하고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게 신정론을 연구하는 의의입니다. 끝으로 저는 무신론자를 존중합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도 허락하신 당신의 자유의지니까요.
@@이우혁-g4e 음.. 그런건 없다고 가정을 해보니 신정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결국 없다고 가정한게 사실일수도 있다는거죠. 신정론이란것 자체가 선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과 현실사이에서의 괴리감때문에 출발했다보는데, 신이없으면 세싱이 이러한건 모순도 없고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요. 선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세상이 이러하니 세상이 이럼에도불구하고 신이 존재한다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아야 하니까 신정론이 계속되는것이고요. 어쩌면 신정론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MilesBeyondSpiderverse 오해하고 계신듯 한데, 저는 무신론자 까지는 아닙니다. 분명 기독교인이었고 지금도 신을 믿고싶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믿고싶지는 않을뿐입니다. 신정론으로 골치가 아픈데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게 좋은 믿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하죠.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성을 허락하셨는데 맹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믿는다는건 세뇌된 상태와 다를바도 없으니까요. 무조건적인 사랑은 가능할수있다고 보지만 무조건적인 믿음은 위험한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성경 그자체가 믿음의 근거’가 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식으로 따지면 성경이 이슬람의 쿠란보다 진리여야할 객관적인 이유도 없으니까요. 전 신이 존재한다면, 성경을 넘어서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개인차원에서 ’성경이 진짜 하나님의 역사고 진리구나‘ 라고 느껴야할 체험?을 해야한다는거죠. 근데, 세상 모든 종교인들은 그러한 체험을 합니다. 기독교인들만 그런게 아니라, 이슬람은 쿠란을 통해 그런 종교적체험을 하고, 하다못해 한국의 무속신앙인들조차 그러하죠. 심지어 신천지,JMS같은 사이비조차도 신적체험,종교적 체험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믿음이 확고한거고요. 아무튼, 전 맹목적으론 못믿겠습니다. 맹목적으로 믿는게 올바른 믿음이라 생각하지도 않고요. 성도들이 고난과 고통을 겪어도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고따르는건 타종교인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고난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쿠란을 통해 알라를 믿는다거나, 불교경전을 통해 불교를 믿는것도 안될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만이 유일신이고 성경이 그 하나님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믿으니 성경을 믿는것일뿐이지 그 성경을 믿는것만이 옳은것이다라는 증거는 없잖아요. 성경이 묘사하는 하나님은 피조물을위해 피조물인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시는 선한 하나님입니다. 근데 그런 하나님이 성경속에선 너무나 분명하게 살아서 역사하시는듯 한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선 왜 찾아볼수가없을까요? 이 성경과 현실의 괴리감이 신정론이 발생할수밖에 없는 이유아닐까 싶네요. 전 하나님을 믿고싶습니다. 그런 제가 믿음을 점점 잃어간건 신정론에서 다루는것처럼, 신의 존재와 현실의 괴리감에서 오는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전쟁, 기근 이런 거창한것까지 갈필요도 없고, 제 주변 사이비신도들을 보면서 이런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신이 존재하는데 사이비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왜 두고만 보실까? ’매일같이 성경읽고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이 건져주시지않고 사이비에 방치하시는거지?‘ 이 문제에 대해서 납득할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더 큰 믿음을 주시려고, 다른 계획이 있으시겠지, 따위로 합리화해보려 했지만 그건 합리화 그 자체였죠. 당신은 제게 ’명쾌한 대답에 이끌려 신이 없다고 단정짓고 돌아서버릴‘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맞아요. 아직까진 제가 기독교를 버리진 않았습니다만(그러니 이영상도 본것이고요) 만약 신이없음이 명쾌하게 밝혀진다면, 예를들어 우주에 다른 지적생명체가 존재하기만해도 전 기독교는 가짜라는 것이 명쾌하게 밝혀지는거라 보는데,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기독교를 버릴겁니다. 그러나 아직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종교적인 생각을 늘 하고 있고 믿고싶습니다. 그리고 뭔가 오해하고 계신듯한데 전 신정론을 깎아내리고 싶은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응원하고 싶죠. 신정론차원에서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듣고싶으니까요
신학을 인본주의적인 세상의 한 학문의 관점이라면 이 많은 이론들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앙 즉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관점이라면 무의미한 논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낱 피조물인 인간이 과연 하나님을 알아보겠다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할 권한을 허락하셨지만, 인간이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탐구함을 허락하셨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그건 마치 땅위에 사는 개미들이 인간을 이해하려고 분석하고 연구한다고 이해하는 시점이 올 수가 있을까요? 그건 마치 예전에 바벨탑을 쌓아가는 인간들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왜 진리신가? 예수님은 왜 진리신가? 성령님은 왜 진리신가? 성경은 진리를 담고 있음을 어찌 알고 믿을 수 있는가? 이 모든 답은 진리를 앎에서 드러납니다. 진리를 알고 믿는 자들을 크리스챤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진리이신가? 를 정확히 알고 답변해 주실 분 혹시 있으십니까?
@@김영목-c5d 죄송합니다. 하나님이 절대자이신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조물주나 천지 신명이나 부처님이나 알라 신도 절대자라고 하지 않나요? 진리는 왜 하나님이신지? 그 정답을 알게 되면 누가 그것을 모르냐? 는 답이 돌이올 뿐이지만, 그 답을 아는 사람들은 똑같은 대답을 한답니다. 글로 그 정답을 써 놓은 사람 중 한명은 토마스 아퀴나스 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성경 기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왜 진리이신지를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정답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인데, 정작 그 정답을 대답하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듭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매우 적답니다.
(2) 4 성경이 믿음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디모데후서3:17)입니다. 그러나 디모데가 이 서신을 적을 때 디모데후서는 성경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모든 신약성경”이 성경이 아니었고, 모든 구약이 성경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오경이 이스라엘인이 인정하는 “모든” 성경이었습니다. 심지어 디모데는 자기가 적고 있는 글이 나중에라도 성경이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5 성경과 현실의 괴리감이 신정론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성경 속에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지만, 현대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우츠비츠 수용소와 세월호 안에서 죽어갈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기독교인의 답은 “옆에서 울고 계셨습니다”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기독교인의 감기를 낫게 하거나 전교인수련회 때 비가 안 오게 하는, 발가락의 때보다 못한 기도는 신이 나서 잘도 들어주시죠. 예, 이게 기독교의 하나님입니다. 6 유산으로 죽은 아이, 이순신 장군, 아메리카 인디언은 구원을 받았는가?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못 받았습니다. 예수를 안 믿었으니까요? 그들이 안 믿었느냐, 혹은 못 믿었느냐? 못 믿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죄가 아닙니다. 전도 받아 교회에 처음 나가면 이렇게 가르칩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 그래서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면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당신이 믿게 된 것은 당신의 힘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이 믿게 허락하셨기 때문이다”라고요.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만이 구해주실 수 있고, 전능한 하나님이 될 수 있으며, 그래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구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을 수 없죠. 만일 인간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고 가르치면 불교를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를 안 믿고 죽었다면, 그는 구원을 받았는가? 기독교에 의하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그럼 그가 안 믿은 것은 그가 안 믿으려고 해서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이 믿게 해주지 않아서인가요? 기독교에 의하면 후자이죠. 왜냐하면 모든 것, 특히 구원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가 안 믿은 것은 안 믿은 것이 아니라 못 믿는 것이고,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잘못이죠. 그런데 기독교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허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옥에 보냅니다.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을요. 그것도 하나님이 자기가 영광을 더 받으려고요.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악한 분이 됩니다. 저는 기독교의 교리가 정말로 옳다면, 윤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윤회를 인정하지 않죠. 왜냐하면 자기들은 단 한 번의 인생에서 구원받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윤회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아이나 IS대원 집에서 태어나서 예수를 들을 수도 없고 믿으면 바로 죽을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억울합니다. 우리처럼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에서 태어나 이번 생에 믿을 수 있어서 구원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진짜로 기독교의 하나님이 있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윤회를 통해 무수한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공평한 하나님, 사람의 하나님이죠. 그래도 내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건 내 책임이지 하나님 책임이 아닙니다. 그땐 저더러 지옥에 가라고 하시면 저는 기꺼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가겠지만, 기독교의 교리처럼 자기들에게만 유리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겐 불리한 교리를 가지고 지옥에 가라고 하시면 저는 데모를 하겠습니다. 사실 기독교의 교리에 의해 하나님은 아메리카 인디언을 하나님 마음대로 구해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교리에 갇힌, 하나님은 무능한 분이 됩니다. 이걸 성경에서는 참람하다고 하는데, 기독교인은 참람한 짓을 하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3) 7 왜 예수님은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라고 했을까? 세상 끝은 그 본문에서 땅끝(오늘날의 스페인)으로 나오는데, 땅끝이란 무엇인가요? 땅끝이든 세상 끝이든 이미 땅끝까지, 아니, 벌써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심판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무려 2천 년 동안이나 기다렸지만, 곧 온다고 했던 예수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사기를 친 것인가요? 성경에서 땅이란 우리 마음을 말합니다. 아담에게 땅을 갈라고 명하신 것이나, 땅에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땅은 우리 마음이죠. 8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 모두가 구원받을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담이 단 한 번 불순종한 것을 가지고 그후 태어나는 모든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하나님과, 예수를 보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죽게 했지만 모두 구해주지 않고 기회를 준 하나님은 다른 분인가요? 아담은 인간의 대표인데, 그가 단 한 번 불순종한 것은 그를 포함해서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된 반면에, 무려 신이라고 하는 예수가, 모든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단번에 죽었지만 그 즉시 모든 인류의 모든 죄가 사해지지 않고 단지 구원받을 기회만 주어지고, 그중 극히 일부만 구해지는가요? 무슨 하나님의 죽음이 인간의 단 한 번의 불순종보다 못한 것인가요? 이것 또한 하나님을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참람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면서 완전한 신이라고 하는데,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 완전한 신으로서 단 한 번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죽었을 수도 있지 않나요? 즉, 괴로운 척 연기를 했을 수도 있지요. 창세전부터, 혹은 아담이 죄를 지은 즉시 하나님은 예수와 의논하셨다고 하는데, 자신이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기로 알고 죽은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인가요?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게 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하는데, 자기가 곧 살릴 것을 알고 죽였는데, 그게 무슨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인가요? 요즘 이스라엘과 하마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가족이 비통해하는 것은 자식이 포탄과 총에 의해 갈갈이 찢겨 공포와 고통 속에 죽었고, 그들을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 고통이 예수의 죽음보다 훨씬 작은가요? 제가 보기엔 훨씬 더 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삼일 후면 다시 살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기 우편에 앉혀서 영원히 통치할 것이라면서요? 그런 죽음과 보상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하나님의 사랑 운운인가요? 인간의 질고에 비하면 그냥 쇼 아닌가요? 9 무신론자로 평생을 살다가 죽기 전에 회심하는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마저도 구원하십니다. 그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언약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공인 후에도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를 영접한다고 해서 구원받았음. 아멘, 할렐루야. 기독교의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으면 내가 어떻게 살든 하나님이 구원해주실 것이고, 선택하지 않았으면 내가 아무리 지금 주여, 주여, 하더라도 구원받지 못함.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강도는 예수를 인정했는데, 그건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해주기로 창세 전부터 작정하셨기 때문임. 어디 감히 인간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가?
유투브에 존 파이퍼 목사의 거듭남에 대한 설교도 있습니다만, 그 내용이 전혀 옳지 않습니다. 소명과 중생 , 또는 유효한 부르심에 관해 올바른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왜 전부 앞 뒤 맞지 않는 엉터리 설교들만 가득할까요? 그만큼 유효한 부르심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고,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저 내가 믿으면 된다 내가 믿는 것 자체가 은혜다. 믿다 보면 믿어진다등등. 하나님께서 믿음을 은혜로 주신디고 하니 믿음 그 자체를 은혜로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은 들음 ( 봄) 에서 납니다. 들음( 봄) 이라는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를 통해 얻는 것이 인간의 믿음입니다.. 최초의 들음과 봄은 소명과 중생입니다. 이로써 평생 잊혀질 수 없는 믿음을 단번에 얻게 됩니다. 최초의 들음과 봄 이전에는 믿음이 없다는 것이 개신교입니다. 만일 있다면 그것은 은혜로 얻은 믿음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만든 거짓된 자가 믿음입니다. 자가 믿음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은혜로 얻은 믿음만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행하시는 믿음입니다. 자유 의지의 자가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구원 얻는 믿음은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 개혁의 가장 중요한 근본적 이유 증 하나입니다.
한참전에 에피쿠로스가 이미 했던 질문인데 한 마디로 정리 가능합니다. “선과 악을 왜 당신 기준으로 설정합니까?” 하나님만이 선하시다. 이 고백이 없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이 내버려두신 사람입니다. 창조주의 주권을 자기가 가져갔으니까요. 그게 선악과 사건이고 죄의 본질이죠. 신정론을 쭉 듣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나름 머리를 써놨지만 자기가 선악을 재판하는 자들은 그들이 설정한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하나님이 능력없는 자가 되버리는 참담한 결과를 도출해버리네요.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말하였다.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요한복음 9:39-41 RNKSV 영상에서 소개한 내용이 맞다면, 참으로 신정론자들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부터 맺어야 되겠네요.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을 겁니다. 지금 엄청나게 헤매고 있는 게 그 증거구요.
님이 주장하는 것이 첫번째로 말한 '완벽한 계획 신정론'인 것 같네요. 판단이 아니라... 생각을 하고 질문도 하고 그렇게 공부하면서 믿음을 가져야지요. 기독교의 '믿음'은 선물이면서도 마음으로 부터 얻어지는 것이기에... 님의 확고한 믿음 좋음은 본받을만하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맹목적인 신앙이야말로 이단, 사이비로 빠지기 쉽고, 또 대충 듣고 대충 넘겨짚는 신앙은 언제든 가볍게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예배 잘드리고 성가대 찬양잘한다고 성도가 성도답던가요? 그렇지 않은 것을 교회안에서 많이 보게 되잖아요. 바울이 말한 스스로 믿음을 점검하기 위해서라도 성도는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이 진정 믿어지는지 까지도 점검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논의는 중요해 보입니다. 8가지 중 한가지만해도 관력책이 수백권일텐데... 범위가 너무도 광범위 하기 때문에 다 설명할 수 없어 목사님이 간단히 정리해서 아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일방적인 설교만 듣는 것보다 이런 채널을 통해 신학생들이 공부한다는 신정론을 저같은 평신도들도 함께 들어볼수 있어서 저는 유익하고 좋으네요.
@@이봉섭-u5c 예. 요즘은 여러 설교나 강해 서적 영상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신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기준에 맞춰서 선악을 판단하다보니 ‘하나님이 선하다면 그럴 수 없지’ 또는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그럴 수 없지’ 같이 어거지로 끼워 맞춰버리니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하나님은 구약에서는 왜 이방민족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셨는가? 아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그럴 수 없지 무슨 이유가 있을거야. 그때는 그러셨지만 신약에는 신실하신 것이다. 이런식으로 흘러버리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하나님만이 선하시다 라는 고백, 선악의 주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린 사람은, 남녀노유 가축까지 다 진멸을 명령하신 하나님을 볼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여호사밧과 그 백성이 아람 3연합군이 쳐들어와서 절망에 빠졌죠. 그건 세상의 눈으로는 잘못된 일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는데 오히려 다 죽게 생겼으니까요. 그때의 그들이 했던 고백을 아시겠죠. 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사실 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이론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나 싶네요.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들에겐 필요없죠. 들을 귀를 하나님이 안주셨으니까요. 또한 믿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이 목적이라면, 성령님의 역할을 사람이 도와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되버리구요. 영에 속한 일에 완전 무지한 사람에게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알려주시는 분이시죠.
@@Whatisthis1217 신학을 신성한 학문으로만 여기시는 것은 아니시죠? 신앙과 지식은 좀 떼어놓고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식은 신앙을 돕는 수단으로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지 지식자체가 당연히 신앙이 될 순 없죠... 성령의 도우심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지 지식을 쌓게 하는 것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공부'라고 말했던 것이고요. 공부도 안했는데...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고 성령님이 없던 지식을 턱하니 넣어주시는 분은 아니잖아요. 님의 말의 요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관점이 다른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이해, 다른 해석들을 배척만 한다면, 기독교를 믿는 믿음에 관하여 관념적으로만 설명한다면, 그저 잡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단 사이비 피해자들을 돕는 사역을 하기 위해 그들의 교리를 공부하기도 하잖아요. 그렇다고 그것이 믿어지고 그들의 종교를 믿는 신앙을 갖게 된다고 볼수 없죠. 관련 지식과 정보를 통해 말로 표현이 어려운 관념적인 믿음과 신앙을 설명하는 일은 복음전도에도 도움이 되고 목회자들은 그것을 '설교'에도 활용하지요. 지금 님께서 설명하시려 한것도 공부해 쌓은 지식이 언어로서 표현하신 한 결과물이 된 것처럼요. 역사와 전통적인 학문의 관점, 막연한 관념적인 것을 지식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직신학의 관점에서 저 목사님은 어떤 특정 신정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이런 신정론이 있다고 대표적인 것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특정 신정론에 함몰되어 있기만 한다면 그거야말로 신정론자이겠지만요... 그냥 '무조건 믿어' 보다는... 세상이 하는 수많은 질문들에 아님 역으로 그들에게 질문하면서 그들 또한 인간의 본질과 세상의 이치를 깊게 생각해보고 찾아가게 하는 과정중에 하나님을 알게하는... 그런 노력또한 사랑이라 생각하고 친절하고 지혜롭게 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성령님이 턱하니 지식을 넣어줄 리가 없다?? 만일 있다면 신비주의자일까요?? 진리를 얻은 자들은 그렇게 얻얐다고들 합니다. 누구도 자랑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거저, 공짜로, 전적 은혜로 얻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성령님의 신비한 사역에서 시작됩니다. 전적 타락 상태에서 얻는 유효한 부르심ㅡ소명과 중생 ㅡ 이 대표적인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믿음도 없었는데 얻게 되는 구원의 은혜는 어찌 설명할까요?
@@김동국-n9g 바울은 '전파하는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라고(롬10:14) 했습니다. 고대사회는 대부분 문맹자들이었을테니 전하는 자라도 있어야겠지요... 요한도 들었고 보았던 예수님을 증언한다고 하였습니다.(요일1:3)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성경에서 증언하는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성경이 단순히 예수님 키가 몇이고 몸무게가 몇이고 이런 지식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우리에게 전하시려던 말씀이 있었고 그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어진 복음을 믿으라고 한것입니다. 그것을 단지 지식으로만 아는 것을 넘어 깨달아지고 행동하게 하고 믿음을 갖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고요. 성경이 말하지 않는 다른 예수를 전한다면 이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전하는 자도 듣는자도 분별하여야 합니다. 물론 신비한 일들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탄도 바리새인들도 모두 예수님께 표적을 보이라며 시험하였죠. 그러면 믿겠다는 식으로...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비한 기적을 보이시건 안 보이시건 하나님이 만드신 꽃과 나무들 온세계 모든 피조물들도 신비하고 우리의 육신도 신비 그자체입니다. 그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과 피조물들을 통해 일하시기에도 충분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들이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이 가진 오감, 육감 동일하게 느끼시며 분노도 하시고 슬퍼도 하시고 기뻐하시기도 하셨죠. 그리고 그 육신이 다시 부활하셨고 만약 예수님을 다시 만난다면 그 두손에 못박힌 자국과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 저는 믿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니까요. 가장 신비롭고 놀라운 기적이 있다면 서로 죽이면서 전쟁을 일삼고 탐욕과 죄악속에서도 지켜진 성경(복음)이고 또 교회는 무너져도 도망을 가거나 숨어서라도 믿는 믿음의 성도들이 아닐지요...
가설이 많다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이유가 아니라는 것.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은 천지를 완벽하게 창조하셨고, 창조를 완성한 후 안식하심. 이런 하나님이 이 세상에 관여하거나 기도를 들어주거나 인간의 선택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면, 그 창조는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고 하나님은 안식은커녕 맨날 인간에게 불려 다니는 AS기사인 꼴. 얼마나 이 세상을 불량품으로 만들었으면 맨날 AS하느라 정신이 없을꼬? 하나님 자신 혹은 인간에게 무언가 사정이나 뜻(예를 들어 영혼의 완성)이 있어서 악이 존재 혹은 허용했다면, 그 하나님은 심심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있음. 기독교인은 물론 비기독교인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이 우주를 이렇게 "쓸데없이(달랑 지구에만 인간을 만들었으니)" 광활하게 만들고 인간 수준의 생명체를 만들지 않아서 온통 무기물 혹은 무생물 뿐이라면 하나님도 얼마나 심심했을까? 인간도 나 혼자 이 넓은 지구에서 생물체라곤 단 하나도 없으면 심심해서 자살했을 것. 시간을 초월하든 인간적인 개념에서 영원히 존재하든, 그런 하나님이라면 좀이 쑤셔서 가만히 있지 못할 것. 그러니 하나님의 놀잇감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음. 사탄이 불순종해서 벌 주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할 필요가 없음. 왜냐하면 인간은 도구에 불과하니까. 하나님이 사탄을 이기기 위해 인간이 이런 극심한 악과 고통에 빠져도 가만히 있으니까. 사탄이 불순종하고 반역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심히 모독하는 말임. 인간의 영혼을 높은 단계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그런 단계로 만들지 않았는가? 최후의 심판 날에 구원해주기 위해서라면, 그래서 그 후로는 더 이상의 악이 없어진다면,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런 인간,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았는가? 왜 인간이 이 생고생을 하게 만들었는가? 혹시 가학증 환자?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영광과 찬양을 받기 위해서라고 기독교에서는 말함. 영광 그 자체인 분이 뭐가 부족해서 영광을 더 받으려고? 그리고 차고 넘치는 그 영광을 왜 더 받으려고 인간을 이 고통 속에 두는가? 정말 욕심도 많으시지.... 혹시 열등감이라도 있으신가? 영광을 누구로부터 받으려고? 이 우주에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인가? 사탄? 인간? 천사? 그래, 천사가 있었지.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천사에게 받으면 되는데? 자기가 만든 천사에게 찬양과 영광을 받는 것으로는 부족하신가? 이것부터 에러네... 아무튼 답이 없는 질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답을 구하려고 책까지 낸 점은 가상하지만, 결론은 인간은 신을 절대로 알 수 없으니, 괜한 노력이라는 것. 그냥 집토끼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스라이팅하고 세뇌하는 것. 인간은 신을 털끝 만큼도 알 수 없고, 설사 기독교의 하나님이 있다고 해도 이 세상에 관여 안 하심. 안식하고 계심. 안식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자꾸 깨우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나 안식하시길 바랍니다. 그게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든 이유니까...
*신학교에 가지 않아도 현대신학을 배울 수 있는 방법
ruclips.net/channel/UCOSJRrtx0Gq5Y_SGRRz-3jAjoin
신학대학 가지마세요
오히려
성경과는 더 이상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어요
다 가짜입니다
다 이단입니다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다 썩었습니다
영상 함께 촬영한 권헌일 목사입니다.^^ 부족한 논의임에도 관심 가져주셔서 초대해주시고 잘 편집해서 올려주신 오신공께 감사드립니다. 촬영하는 시간이 참으로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네요) 1부, 2부로 나뉘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이 부분도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댓글을 보면서 선하신 하나님과 이 세상 사이의 긴장을 가지고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음을 느꼈고요, 여전히 배우고 탐구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 고난에 대한 제 생각은 2부에서 나오게 될 것 같아요. 속 시원한 답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같은 문제를 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논문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신정론 논의가 따로 이뤄지기보다는 다른 질문들과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신은 어떤 존재인가 혹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 그 하나님은 역사적 차원 또는 문화적 차원을 넘어서는가",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과 피조물끼리(?)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실/현상은 어떤 관계인가" 등입니다. 이런 질문들과 함께 신정론을 다룰 때, 결론 자체보다 그 논의 과정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논의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이어지는 2부도 기대하겠습니다^^
@@나다미-w5w 댓글이라는 특성상 제가 간략하게 쓰다보니 오해를 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저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내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 중에 한 사람입니다^^ 서로 간에 이해를 위해 제가 댓글 쓴 맥락을 약간 덧붙여 봅니다. 신정론이라는 것이 종종 하나님에게 세상 모든 악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처럼 전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더욱 폭 넓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나님에게 책임을 묻네 마네 하는 좁은 논점을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좁은 범위로만 신정론을 다루면 무신론자 vs. 유신론자 싸움으로 빠지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ㅎㅎ 그리고 다른 주제들과 통합해서 이야기해야 결국 나는, 우리는 악을 향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악과 나를 정말 무관하다 여길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오해하시게 한 점은 다시 한 번 사과드려요. 하나님을 규정한다거나 하나님에 대해 다 안다거나 그러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평안하시길^^
다양한 글들을 통해 다양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걸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특징 본질에 대해 여전히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고(오히려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이해된다고 단정지을만큼) 끊임없이 고민하며 신학적 질문과 의문점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지식적 이해에 빗대어 바라보았을 때에 한계를 느끼면서도 계속 고민하도록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가장 명확한 해답을 주기도
누군가에게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무언가가
간절한 절박함을 주기도
누군가에게는 믿음을 전제한 신앙이지만 신의 존재에 대한(또는 신이 가진 정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질문을 주기도
신정론에 대해 고민할 때면 제가 가지고 있는 신론에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습니다.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제가 가진 신정론이 여러가지 신정론이 합쳐진 사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네요. 하나님이 전선하시기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모든 미 래 중 단 하나의 승리하는 미래를 보고 그 루트대로 가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전선하시기에 우리가 생각했을 때에 지금의 현실보다 더 선한 세상이 있을까?(기계적이지 않은 인간의 사랑이 존재하는) 라고 했을 때 그 부분은 글쎄, 그건 나의 인지영역 바깥의 문제이고 하나님은 가장 선하신 분이기에 우리는 지금의 세상이, 흘러가는 역사가 하나님 보시기에도 선한 것이라고 믿어야해. 이렇게 생각했었네요. 이런 생각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해결되지 않는 감정의 문제가 남겠네요. 한가지 아쉬운 건 신정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신을 변증할 때에 문제점은 신을 믿어야만 수긍할 수 있는 속성들에 대해서 전제하지 않고도 신이 정의롭다는 걸 변호해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참 어렵네요ㅜ
알것 같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는것 같다가도 알것같은 ,,,,,,,여러번 시청해볼게요~
올리기 전부터 댓글이 예상됐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이런 주제를 영상을 올린 것이
정말 대단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섭리와 자유의지사이에서
세랭게티 초원의 자연섭리는 어떤가요
새상이 아닌 세상.
선악은 음양이며 지구의 자전으로 낮과 밤이 존재하듯 선과 악은 존재하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악인을 감옥에 넣어도 악은 다시 자라 어둠을 만들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즉 악이 없으면 선도 존재할 수 없고 음양으로 돌아가는 자연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되게 동양학적인 관점이네요 그건.
신은 믿는게 아닙니다.
존재하는거죠. 믿는다는건 믿어줄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겁니다.
신이 믿어줄 대상이 필요하겠습니까 ? 신은 그냥 자연스럽게 존재하는겁니다. 종교와 신을 구별하지 못하니 생기는 오류입니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부조리한 현상에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 의식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신정론의 문제들이 결국의 인간의 이성에 의한 답을 추구 하는 것이기에 사람마다 주장이 다를 수 있는 것이고 결국 해답은 완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답을 줄 수 없는 한계점이 분명 존재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만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우리 의지로 설명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 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 할 길이 없는 것 같아요
난 설명할수있는데
@@까매요-n2s ㅎㅎ 그냥 웃지요
@@세상만사-m3c ㅎㅎ 나도 웃지요
@@세상만사-m3c 매우상식적인 한가지의 원리로 여러가지 의문에 동시에 해답이되고
교리를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설명 가능한데 ^^
@@까매요-n2s한번더 웃지요 ㅎㅎ 대단한 신학자 납시요
*권헌일 목사님 인터뷰 2부 보기
ruclips.net/video/6MOjqm7Sz_k/видео.html
하나님의 선하심은 무선택적 무질서적 선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게는 죄에대한 벌도 선이지만 우리가 볼 수 없는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위해 현재 일어나는 악한 일이나 하나님의 침묵 또는 선한 것들이 받는 피해 조차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라는 선하심에 포함된다고 봅니다. 결국에 우리는 매순간 선하고 매순간 악함이 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로 모르게 가리셨다고 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부분이지만 믿는 자들에겐 하나님의 뜻과 그 계획, 목적을 그저 신뢰하는 것이 가장 선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는 길입니다.
서두에서 "신정론으로는 고난의 문제에 답할 수 없"기 때문에 로완 윌리엄스의 비극적 상상력에 관해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하셨는데요. 2부는 그럼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요? 비극적 상상력~~~ 넘 궁금합니다!!
고난~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만고의 진리 같아요
~~;
인과 관계가 전혀 없는 경우를 전적 은혜라고 합니다.
믿음과 구원은 전적 은혜의 대표적인 개념입니다.
그러나 신학은 이 부분을 잘 다루지 않습니다.
사실상 신비의 영역입니다.
신정론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전적 은혜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철학적 사변 논쟁 밖에 되지 않습니다
너무 슬프다. 이런 논의들이..그동안 뭘 믿었던 걸까? 분명한 건 확실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거?
내가 보기에 좋다고 좋은게 아니고, 내가보기에 나쁘다고 나쁜게 아니에요.인간과 하나님의 생각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거리보다 크죠. 우리와 개미와의 차이와는 비교할수없을만큼 큽니다. 신의생각은 인간이 이해할수없죠.그냥 믿어드리는겁니다
진리를 알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맨 처음 진리를 알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진리라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까?
맨 처음 진리를 처음 보고, 알고 깨닫게 된 기억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분명한 기억일 것입니다.
그 기억을 함께 나누실 분 있으시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독도 미량으로 사용시 병을 고칠수있는 약으로 사용되죠
아마도...이제까지 저와 같은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적을 것입니다.
있다고 해도 무시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
현대 교인들 거의 대부분이 자신 스스로 믿기 시직한 것이 소명이고 은혜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맞겠지라는 자기 세뇌를 통해 더 많은 지식을 머릿 속에 채움으로써 자기 믿음을 강화시키려 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해 주었습니까?
1.진리가 도대체 어떤 일을 자신에게 하셨기에 느닷없이 우리가 자유케 되었다는 것인지? 설명하실 분 있으신가요?
2.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실 분?
3.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
등등 간증해 주실 분은 계신가요?
이 모든 답들은 이미 알려진 누구나 다 아는 상식입니다만..
진리를 아는 자들은 이를 체험했기에 그 답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자와 상식을 배우고 연구하는 자는 아는 지식이 다릅니다
1,진리안에 들어가려면 성경이 믿어져야합니다, 내가 억지로 믿는게 아니라 믿어집니다, 기도해야합니다,
2, 진리 안에 들어가려면 교회안의 모든것 인정하고 하라는대로 순종해야 기회가옵니다, 교회나 주의종하고 겉돌면 기회가오기 어렵습니다, 목사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종으로 따르고 붙어있어야합니다,
3,진리안에 들어가면 평안이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감동이있습니다,
남을 용서하게됩니다, 싸울때도 있지만 풀어집니다,
4,성령세례를 받아야 모든 신앙생활이 .원활하고 쉬워지고 끝까지 마귀를이기고 승리합니다,
일곱번 넘어져도 8번일어나 힘내야합니다, 마리톤과 같습니다, 골인지점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신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김영목-c5d
죄송합니다. 어느 교회를 다니시는지요?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과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십니다.
영이 죽었다.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 교리는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 주장입니다.
한번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의 개념에 대해 찾아 보시길 원합니다.
영이 죽은 상태는 흙의 상태, 마른 뼈의 상태로 영적 시체입니다.
흙과 마른 뼈에 하나님께서 생령( 생기)을 불어넣으시기 쟌에는 영적 시체입니다.( 죽은 자)
시체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이기에 쟌적 무능력 상태입니다.
믿을 수도, 회개할 수도,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도 ,
복음을 받아 들일 수도, 예수님을 믿거나 영접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개신교의 제 1 교리인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을 찾아 보시면 다 나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영이 산 자로 될 수 있는가? 입니다.
그 정답은 전적 은혜입니다.
그럏다면 영적 시체가 어떻게 하면 전적 은혜를
얃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과 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 정답을 당연히 알고 있겠지요?
전적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그 은혜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유효한 부르심 즉 내적 소명과 중생의 결과라는 것이 개신교의 핵심 교리인 조직 신학의 구원의 서정입니다.
이는 참된 그리스도인들만이 알 수 있는 신비 체험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모두 잘못됩니다.
믿음, 회개, 신학은 전적 은혜가 첫 단추입니다.
전적 은혜의 내용은 하냐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라고 회자되는 내적 소명과 중생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은혜를 얻은 자들은 그 답 또한 알고 엤기에
많은 이들에게 그 길을 알려주려 합니다만,,,
세상 사람들은 귀와 눈이 멀었답니다.
많은 분들이 신앙과 신학의 첫 단추를 전쟉 은혜가 아닌 자기 결단, 자기 최면, 자기 노력으로 시직합니다.
이것은 철학하는 방법입니다 .
신학과 신앙은 거꾸로 전적 은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마태 복음 5장의 산상 수훈은 천국 백성이 되는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챤국 백성이 되어야 그 주인을 향한 믿음과 회개가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과 회개는 일방관계가 아닌 쌍방적, 인격적 관계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신학적 논쟁을 들어보니 신이, 종교가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면 오히려 더 명료해지네요. 전지전능한 신을 원하지만 현실에서 그 신을 찾을 수 없으니, 그 괴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신정론인데- 그 어느 것도 클리어하지 않은 것을 보니 오히려 종교가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 느껴집니다
정답.
@@crescendo_999오답 ㅋ
전적 타락의 단절 상태에서 갑자기 신앙으로 연결되는 전적 은혜라는 ㅡ신비한 다리 ㅡ에 대한 설명이 없는 올바른 신학 공부는 가능할까요?
가장 먼저 이 연결 다리에 대한 설명이 올바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에 느닷없이 생겨난 전적 은혜라는 다리는 소명과 중생이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지 않은 믿음은 가만히 담 넘어 온 거짓 형제요, 양의 탈을 쓴 이리 같은 사람들의 믿음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이 은혜의 다리를 건너야
은혜로 얻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의 거의 대부분이 이 은혜의 다리를 설명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건너 온 상태에서 부터 가르치고 배우고 있습니다.
담 넘어 온 거짓 형제들은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올바른 신학이 아니라 철학이 되고, 성령을 받는 것이 야니라 더 강한 악령을 얻고, 진리가 아닌 거짓을 가르치는 교회가 되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진리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무엇이냐? 어떻게 진리를 알게 되었느냐?
등등 진리에 대한 질문에는 전혀 대답을 하지 못하는 자칭 믿는자라는 가짜 교인들만 가득합니다.
소명과 중생이라는 은혜의 양의 문을 통해 들어 온 성도들은 어떻게 그 은혜를 받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산상 수훈의 내용과 같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해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죄로만 가득한 용서도 구할 수 없는, ㅡ마음이 청결한 상태의 ㅡ죄로만 가득한 죄인됨의 자각입니다.
물론 소명과 중생을 거친 후에도 죄의 자각은 더욱 깊고 넓게
깨닫게 됩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오직 바른길은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어놓은신 성취를 믿는것이다
실제삶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보이는것을 누가 바라리요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것들의 증거니..
보이는것들을 믿을것이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신 우리의 실체를 믿을것이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자는 주를 따를수 없다.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에 예수께서 성취하시고 받으시고 우리를 품으신 사실그대로 믿으면 예수께서 이루신대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다
우리의 전인격적인 성숙은 사도 바울이라도 매일같이 죽는다했건만 완성이 있겠나
예수님같이 새로난 자로 주님의 성화를 닮아가는것이지..
오직 우리의 완전은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그안에 있고 자신의 믿음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는 존재이다
홀리컴뱃 나오셨던 아델포스님(김요환 목사님)께서 '변증이 신학이다'라는 책 출간하셨던데 그 분 모셔와서 이야기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을 믿으려면?
1.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는가?
2. 존재 하신다면 그 분이 정말 기독교의 하나님이신가? 를 먼저 알아야 하겠지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
모세의 하나님, 이사야의 하나님,바울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요?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일 뿐.
나와 관계없는 하나님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처럼 제게 짠~~ 하고 나타나셔서 내가 네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뿐입니다.
이전에는 우리는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런데 만의 하나 진실로 하나님께서 짠~ 하고 나타나셔서 내가 네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일이 실제 일어닐 수 있는 길이 있다면 ???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해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마태 복음 5장 산상 수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해 하는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보시면 예수님 말씀처럼 천국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천국이란 ? 무한 광대하신 하나님 그 분 자체입니다.
예수님이 거짓말 하시지 않으셨음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즉, 왜 나는 벌레만도 못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가? 를 찾아 보십시요.
그 도구는 어린 애 같은 양심과 율법입니다..
이미 모든 사람에게 다 주신 도구들입니다.
이 도구를 내버려 두지 마시고 잘 사용하십시요..
그러면 짠 하고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너 자신을 알라 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왜 구원이 필요한지도 깨닫는 것입니다.
구원은 필요한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왜 구원이 필요한지 진실로 여러분들의 양심에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선물이란 간절히 필요한 자에게만 유용한 것입니다.
만일 이를 깨닫는다면
우리들의 질문들.
1.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고통의 인생을 주시고, 이도 모자라 지옥까지 예비하셨는가?
마땅히 지옥가야 할 당위성을 깨달을 것입니다.
2. 구원을 요청할 자격도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 뿐입니다.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들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오직...나는 어떤 존재인가? 를 깨닫는 양심에서 시작됩니다
설마?? 제 글은 이미 선진들이 증언했던 누구나 다 아는 내용들입니다.
저도 이를 통해 진리를 얻었고.하나님을 만났고 믿음을 은혜로 얻었습니다.
올바른 순서.
1.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 은혜인 선물로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믿기도 전에 어떤 선물을 받는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2. 성경은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읽고 깨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기 전에 어떻게 성령의 조명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최초로 성경을읽으려고 할 때 먼저 성령의 조명이 있었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를 받았습니까?
3. 진리를 믿는 자들은 먼저 진리가 어떤 것이고 왜 진리인지를 알아야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맨 처음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어떻게 진리를 아시게 되었습니까?.
이 질문의 제 답은 오직 은혜, 공짜, 거저 받음입니다.
제가 공부하고, 배우고,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전적 은혜입니다.
제 답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믿기 시작했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진리를 알기 시직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저는 이 제 대답이 맞다는 것을 증거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내적 소명과 중생은 평생 단 한번 일어나는 일이고, 이는 100프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며, 이 사역에 의한 인간의 반응이 믿음과 회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초보 지식입니다.
소낙비가 내리니 내 옷이 다 젖었고 추워지기 시직했다.
소낙비는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이 때문에 옷이 젖고 추워지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믿음과 회개입니다.
소명과 중생은 성령님의 신비한 사역입니다.
전적 타락으로 죽었던 영이 다시 살리심을 받는 은혜입니다.
영적 귀가 열려 부르심을 듣고, 영적 눈이 소생되어 천국 즉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남을 최초로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전적 은혜의 첫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알게 되고, 그 말씀과 음성을 듣고 알게 되니
그 분을 향해 자신의 죄와 허물에서 용서를 구하는 잘못 했습니다 라는 고백과 이제는 믿습니다라는 신앙을 당연히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명과 중생의 전적 은혜가 없는 한 , 인간의 믿음과 회개는 다 자신 스스로 만든 거짓일 뿐입니다..
믿음은 앎 다음에 위치합니다.
알지도 못하는데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쓴 기록일 뿐입니다.
나로서는 그런 내용을 알고 멛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찾아 오셔서 스스로를 나타내시며
너는 지금부터 내 백성이다라고 선포하신다면 ??
직접적인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소명과 중생입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는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장로교 신학의 기초입니다.
이때 찾아오신 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이신지 악령인지 어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진리를 알게 하시고 가르치시기 시작합니다.
진리를 통해 거짓을 분별하게 됩니다.
거짓 영인 악령들은 진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르친다면 자신이 거짓 영인 것이 드러날 뿐입니다.
많은 거짓 선생들을 분별하는 쉬운 방법은 진리를 아는가? 를 보면 됩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크리스챤들은 진리를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최초로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소명과 중생 때입니다.
이를 진리의 하나님께서 찾아오심, 하나님과의 만남, 천국의 임재, 거듭남, 성도로 부르심, 천국 백성 삼으심, 등등의 말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진리를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은 성경에 쓰여 있지만, 성경을 통해 아는 것은 신문을 통해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임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것은 지식을 통해 안다는 것이 아니라 , 인격적인
쌍방의 사귐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도 나를 아시고 나도 햐나님을 실제적이고 인격쟉으로 알아야 합니다 .
이 만남을 하나님을 보아서 , 만나서 안다고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햐냐님을 보고 알고 믿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거젯말 햐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레위기 13장 12 ㅡ13절의 의미입니다.
문둥병이 전신에 가득한 것처럼 죄가 그 마음 속에 가득한 자는
정하다는 의미입니다.
벌레만도 못한 죄인의 괴수임을 깨닫는 자에게 햐냐님은 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해 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 들에게 하나님은 그 마음 중심을 보시고 , 죄인됨을 자각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찾아오셔서 부르시고 스스로를 나타내사 햐냐님을, 즉 천국을 , 보게 하십니다 .
이 때 천국 백성이 되며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하냐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친절하게 이 과정을 안내하고 가르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에 성령님의 신비한 사역이라고 햡니댜.
믿기십니까??
그러나 사실입니다.
이것이 전적 은혜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실 점은?
천국 백성 되기 전까지
믿음과 회개는 없습니다.
죄의 자각과 회개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회개한다 라는 말은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 은혜를 받은 때부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 되기 전까지는 믿고 싶습니다, 반성합니다라는 표현이 정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니 속이려 들지도 마십시요!!
지금까지 믿으려 했던 노력들을 다 내려 놓으십시요.
믿음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전적 은혜로 얻습니다.
양심으로 깨닫는 죄의 자각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찾아 오셔서 하나님 스스로를 나타내시며 천국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의 것이라.
천국 백성 삼으신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
진실로 그렇게 천국 백성이 됩니다
솔직히 신정론은 답정너가 아닐까 싶다. 선한 신이 존재함을 믿고 싶은데 세상을 보면 납득이 안되니까 어떻게 해서든 신을 믿고싶어서 만들어낸 개념아닐까.. ‘만약 신이 없다면?’을 가정할 수 있다면, 신정론의 문제는 모두 다 해결된다. 세상이 이런건 신이 없기때문 이라는 깔끔한 결론이 나오니까.
신정론을 논하는데 그런 소리는 좀 의미가 없는가 아닐까? 어떤 논의를 하려고 하는데 그런건 없다 라고 보는건 좀 논외지
조금 자의적인 것 같은 면이 없잖아 있기는 함. 이미 신이라는 존재와 그 특징들 본질들, 속성들을 상정해넣고 설명하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니까
어쨌든 위에 분말처럼 신정론 자체가 무신론자들에게는 논의 필요성이 없는거지 신이 없다고 하는데, 굳이 신정론을 펼칠 이유가 없지 신정론은 유신론자들에게 필요한 논의는 맞는듯
물론 신정론적 논의는 할 수 있지만(ex 악이 존재한다면 신은 없다) 무신론자가 신정론을 논하는 것 자체가 전제부터 잘못된게 아닌가 함.
신정론은 신은 존재하고, 이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존재한다라는 전제하에 펼쳐나가는 것이 의미있는 논의라고 생각함.
당신을 위해서 신정론을 두고 신학자들이 씨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이 없으면 깔끔해 질 문제라고 생각하는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전지전능한 신이, 선한 신이, 고통 받는 인간을 대하는 문제에 대해 다루는 게 신정론입니다.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신의 선함을 믿고 순종하기 때문에 신정론으로 골치가 아플 수는 있어도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은 고난과 고통을 겪더라도 당신이 성서를 읽었을지 모르지만 성서에 나오는 욥과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하지만 명쾌한 대답에 이끌려 신이 없다고 단정짓고 돌아서 버릴 당신이 납득할 답을 찾아,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오늘도, 신학자들이 신정론을 탐구하고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게 신정론을 연구하는 의의입니다.
끝으로 저는 무신론자를 존중합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도 허락하신 당신의 자유의지니까요.
@@이우혁-g4e 음.. 그런건 없다고 가정을 해보니 신정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결국 없다고 가정한게 사실일수도 있다는거죠. 신정론이란것 자체가 선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과 현실사이에서의 괴리감때문에 출발했다보는데, 신이없으면 세싱이 이러한건 모순도 없고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요. 선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세상이 이러하니 세상이 이럼에도불구하고 신이 존재한다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아야 하니까 신정론이 계속되는것이고요. 어쩌면 신정론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MilesBeyondSpiderverse 오해하고 계신듯 한데, 저는 무신론자 까지는 아닙니다. 분명 기독교인이었고 지금도 신을 믿고싶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믿고싶지는 않을뿐입니다. 신정론으로 골치가 아픈데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게 좋은 믿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하죠.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성을 허락하셨는데 맹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믿는다는건 세뇌된 상태와 다를바도 없으니까요. 무조건적인 사랑은 가능할수있다고 보지만 무조건적인 믿음은 위험한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성경 그자체가 믿음의 근거’가 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식으로 따지면 성경이 이슬람의 쿠란보다 진리여야할 객관적인 이유도 없으니까요.
전 신이 존재한다면, 성경을 넘어서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개인차원에서 ’성경이 진짜 하나님의 역사고 진리구나‘ 라고 느껴야할 체험?을 해야한다는거죠. 근데, 세상 모든 종교인들은 그러한 체험을 합니다. 기독교인들만 그런게 아니라, 이슬람은 쿠란을 통해 그런 종교적체험을 하고, 하다못해 한국의 무속신앙인들조차 그러하죠. 심지어 신천지,JMS같은 사이비조차도 신적체험,종교적 체험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믿음이 확고한거고요. 아무튼, 전 맹목적으론 못믿겠습니다. 맹목적으로 믿는게 올바른 믿음이라 생각하지도 않고요. 성도들이 고난과 고통을 겪어도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고따르는건 타종교인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고난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쿠란을 통해 알라를 믿는다거나, 불교경전을 통해 불교를 믿는것도 안될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만이 유일신이고 성경이 그 하나님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믿으니 성경을 믿는것일뿐이지 그 성경을 믿는것만이 옳은것이다라는 증거는 없잖아요.
성경이 묘사하는 하나님은 피조물을위해 피조물인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시는 선한 하나님입니다. 근데 그런 하나님이 성경속에선 너무나 분명하게 살아서 역사하시는듯 한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선 왜 찾아볼수가없을까요? 이 성경과 현실의 괴리감이 신정론이 발생할수밖에 없는 이유아닐까 싶네요.
전 하나님을 믿고싶습니다. 그런 제가 믿음을 점점 잃어간건 신정론에서 다루는것처럼, 신의 존재와 현실의 괴리감에서 오는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전쟁, 기근 이런 거창한것까지 갈필요도 없고, 제 주변 사이비신도들을 보면서 이런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신이 존재하는데 사이비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왜 두고만 보실까? ’매일같이 성경읽고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이 건져주시지않고 사이비에 방치하시는거지?‘ 이 문제에 대해서 납득할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더 큰 믿음을 주시려고, 다른 계획이 있으시겠지, 따위로 합리화해보려 했지만 그건 합리화 그 자체였죠.
당신은 제게 ’명쾌한 대답에 이끌려 신이 없다고 단정짓고 돌아서버릴‘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맞아요. 아직까진 제가 기독교를 버리진 않았습니다만(그러니 이영상도 본것이고요) 만약 신이없음이 명쾌하게 밝혀진다면, 예를들어 우주에 다른 지적생명체가 존재하기만해도 전 기독교는 가짜라는 것이 명쾌하게 밝혀지는거라 보는데,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기독교를 버릴겁니다. 그러나 아직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종교적인 생각을 늘 하고 있고 믿고싶습니다. 그리고 뭔가 오해하고 계신듯한데 전 신정론을 깎아내리고 싶은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응원하고 싶죠. 신정론차원에서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듣고싶으니까요
신학을 인본주의적인 세상의 한 학문의 관점이라면 이 많은 이론들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앙 즉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관점이라면 무의미한 논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낱 피조물인 인간이 과연 하나님을 알아보겠다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할 권한을 허락하셨지만, 인간이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탐구함을 허락하셨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그건 마치 땅위에 사는 개미들이 인간을 이해하려고 분석하고 연구한다고 이해하는 시점이 올 수가 있을까요? 그건 마치 예전에 바벨탑을 쌓아가는 인간들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왜 진리신가?
예수님은 왜 진리신가?
성령님은 왜 진리신가?
성경은 진리를 담고 있음을 어찌 알고 믿을 수 있는가?
이 모든 답은 진리를 앎에서 드러납니다.
진리를 알고 믿는 자들을 크리스챤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진리이신가? 를 정확히 알고 답변해 주실 분 혹시 있으십니까?
절대자
@@김영목-c5d 죄송합니다.
하나님이 절대자이신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조물주나 천지 신명이나 부처님이나 알라 신도 절대자라고 하지 않나요?
진리는 왜 하나님이신지?
그 정답을 알게 되면 누가 그것을 모르냐? 는 답이 돌이올 뿐이지만, 그 답을 아는 사람들은 똑같은 대답을 한답니다.
글로 그 정답을 써 놓은 사람 중 한명은 토마스 아퀴나스 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성경 기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왜 진리이신지를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정답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인데, 정작 그 정답을 대답하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듭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매우 적답니다.
@@김영목-c5d
정답을 알려 드리면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진리이시고,
예수님은 진리이신지?
정답은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지만, 이 정답은 아는 사람듦 즉 참된 그리스도인들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오직 구원입니다 그방법이 [마3장11절]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4절] 의 그 여자를 알면돼죠 로마
창기 큰 음녀 그녀의 교리를 단 한가지라도 지키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 입니다
(2)
4 성경이 믿음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디모데후서3:17)입니다. 그러나 디모데가 이 서신을 적을 때 디모데후서는 성경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모든 신약성경”이 성경이 아니었고, 모든 구약이 성경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오경이 이스라엘인이 인정하는 “모든” 성경이었습니다. 심지어 디모데는 자기가 적고 있는 글이 나중에라도 성경이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5 성경과 현실의 괴리감이 신정론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성경 속에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지만, 현대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우츠비츠 수용소와 세월호 안에서 죽어갈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기독교인의 답은 “옆에서 울고 계셨습니다”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기독교인의 감기를 낫게 하거나 전교인수련회 때 비가 안 오게 하는, 발가락의 때보다 못한 기도는 신이 나서 잘도 들어주시죠. 예, 이게 기독교의 하나님입니다.
6 유산으로 죽은 아이, 이순신 장군, 아메리카 인디언은 구원을 받았는가?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못 받았습니다. 예수를 안 믿었으니까요? 그들이 안 믿었느냐, 혹은 못 믿었느냐? 못 믿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죄가 아닙니다.
전도 받아 교회에 처음 나가면 이렇게 가르칩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 그래서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면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당신이 믿게 된 것은 당신의 힘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이 믿게 허락하셨기 때문이다”라고요.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만이 구해주실 수 있고, 전능한 하나님이 될 수 있으며, 그래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구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을 수 없죠.
만일 인간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고 가르치면 불교를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를 안 믿고 죽었다면, 그는 구원을 받았는가? 기독교에 의하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그럼 그가 안 믿은 것은 그가 안 믿으려고 해서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이 믿게 해주지 않아서인가요? 기독교에 의하면 후자이죠. 왜냐하면 모든 것, 특히 구원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가 안 믿은 것은 안 믿은 것이 아니라 못 믿는 것이고,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잘못이죠.
그런데 기독교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허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옥에 보냅니다.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을요. 그것도 하나님이 자기가 영광을 더 받으려고요.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악한 분이 됩니다.
저는 기독교의 교리가 정말로 옳다면, 윤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윤회를 인정하지 않죠. 왜냐하면 자기들은 단 한 번의 인생에서 구원받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윤회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아이나 IS대원 집에서 태어나서 예수를 들을 수도 없고 믿으면 바로 죽을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억울합니다. 우리처럼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에서 태어나 이번 생에 믿을 수 있어서 구원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진짜로 기독교의 하나님이 있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윤회를 통해 무수한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공평한 하나님, 사람의 하나님이죠. 그래도 내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건 내 책임이지 하나님 책임이 아닙니다. 그땐 저더러 지옥에 가라고 하시면 저는 기꺼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가겠지만, 기독교의 교리처럼 자기들에게만 유리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겐 불리한 교리를 가지고 지옥에 가라고 하시면 저는 데모를 하겠습니다.
사실 기독교의 교리에 의해 하나님은 아메리카 인디언을 하나님 마음대로 구해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교리에 갇힌, 하나님은 무능한 분이 됩니다. 이걸 성경에서는 참람하다고 하는데, 기독교인은 참람한 짓을 하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3)
7 왜 예수님은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라고 했을까?
세상 끝은 그 본문에서 땅끝(오늘날의 스페인)으로 나오는데, 땅끝이란 무엇인가요? 땅끝이든 세상 끝이든 이미 땅끝까지, 아니, 벌써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심판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무려 2천 년 동안이나 기다렸지만, 곧 온다고 했던 예수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사기를 친 것인가요?
성경에서 땅이란 우리 마음을 말합니다. 아담에게 땅을 갈라고 명하신 것이나, 땅에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땅은 우리 마음이죠.
8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 모두가 구원받을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담이 단 한 번 불순종한 것을 가지고 그후 태어나는 모든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하나님과, 예수를 보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죽게 했지만 모두 구해주지 않고 기회를 준 하나님은 다른 분인가요?
아담은 인간의 대표인데, 그가 단 한 번 불순종한 것은 그를 포함해서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된 반면에, 무려 신이라고 하는 예수가, 모든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단번에 죽었지만 그 즉시 모든 인류의 모든 죄가 사해지지 않고 단지 구원받을 기회만 주어지고, 그중 극히 일부만 구해지는가요? 무슨 하나님의 죽음이 인간의 단 한 번의 불순종보다 못한 것인가요? 이것 또한 하나님을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참람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면서 완전한 신이라고 하는데,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 완전한 신으로서 단 한 번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죽었을 수도 있지 않나요? 즉, 괴로운 척 연기를 했을 수도 있지요.
창세전부터, 혹은 아담이 죄를 지은 즉시 하나님은 예수와 의논하셨다고 하는데, 자신이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기로 알고 죽은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인가요?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게 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하는데, 자기가 곧 살릴 것을 알고 죽였는데, 그게 무슨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인가요?
요즘 이스라엘과 하마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가족이 비통해하는 것은 자식이 포탄과 총에 의해 갈갈이 찢겨 공포와 고통 속에 죽었고, 그들을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 고통이 예수의 죽음보다 훨씬 작은가요? 제가 보기엔 훨씬 더 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삼일 후면 다시 살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기 우편에 앉혀서 영원히 통치할 것이라면서요? 그런 죽음과 보상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하나님의 사랑 운운인가요? 인간의 질고에 비하면 그냥 쇼 아닌가요?
9 무신론자로 평생을 살다가 죽기 전에 회심하는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마저도 구원하십니다. 그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언약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공인 후에도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를 영접한다고 해서 구원받았음. 아멘, 할렐루야.
기독교의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으면 내가 어떻게 살든 하나님이 구원해주실 것이고, 선택하지 않았으면 내가 아무리 지금 주여, 주여, 하더라도 구원받지 못함.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강도는 예수를 인정했는데, 그건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해주기로 창세 전부터 작정하셨기 때문임. 어디 감히 인간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가?
물리의 불확정성의 원리 같습니다.
설명 불가능 😂😂
유투브에 존 파이퍼 목사의 거듭남에 대한 설교도 있습니다만, 그 내용이 전혀 옳지 않습니다.
소명과 중생 , 또는 유효한 부르심에 관해 올바른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왜 전부 앞 뒤 맞지 않는 엉터리 설교들만 가득할까요?
그만큼 유효한 부르심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고,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저 내가 믿으면 된다
내가 믿는 것 자체가 은혜다.
믿다 보면 믿어진다등등.
하나님께서 믿음을 은혜로 주신디고 하니 믿음 그 자체를 은혜로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은 들음 ( 봄) 에서 납니다.
들음( 봄) 이라는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를 통해 얻는 것이 인간의 믿음입니다..
최초의 들음과 봄은 소명과 중생입니다.
이로써 평생 잊혀질 수 없는 믿음을 단번에 얻게 됩니다.
최초의 들음과 봄 이전에는 믿음이 없다는 것이 개신교입니다.
만일 있다면 그것은 은혜로 얻은 믿음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만든 거짓된 자가 믿음입니다.
자가 믿음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은혜로 얻은 믿음만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행하시는 믿음입니다.
자유 의지의 자가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구원 얻는 믿음은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 개혁의 가장 중요한 근본적 이유 증 하나입니다.
한참전에 에피쿠로스가 이미 했던 질문인데 한 마디로 정리 가능합니다. “선과 악을 왜 당신 기준으로 설정합니까?”
하나님만이 선하시다. 이 고백이 없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이 내버려두신 사람입니다. 창조주의 주권을 자기가 가져갔으니까요. 그게 선악과 사건이고 죄의 본질이죠.
신정론을 쭉 듣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나름 머리를 써놨지만 자기가 선악을 재판하는 자들은 그들이 설정한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하나님이 능력없는 자가 되버리는 참담한 결과를 도출해버리네요.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말하였다.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요한복음 9:39-41 RNKSV
영상에서 소개한 내용이 맞다면, 참으로 신정론자들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부터 맺어야 되겠네요.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을 겁니다. 지금 엄청나게 헤매고 있는 게 그 증거구요.
님이 주장하는 것이 첫번째로 말한 '완벽한 계획 신정론'인 것 같네요. 판단이 아니라... 생각을 하고 질문도 하고 그렇게 공부하면서 믿음을 가져야지요. 기독교의 '믿음'은 선물이면서도 마음으로 부터 얻어지는 것이기에... 님의 확고한 믿음 좋음은 본받을만하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맹목적인 신앙이야말로 이단, 사이비로 빠지기 쉽고, 또 대충 듣고 대충 넘겨짚는 신앙은 언제든 가볍게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예배 잘드리고 성가대 찬양잘한다고 성도가 성도답던가요? 그렇지 않은 것을 교회안에서 많이 보게 되잖아요.
바울이 말한 스스로 믿음을 점검하기 위해서라도 성도는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이 진정 믿어지는지 까지도 점검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논의는 중요해 보입니다. 8가지 중 한가지만해도 관력책이 수백권일텐데... 범위가 너무도 광범위 하기 때문에 다 설명할 수 없어 목사님이 간단히 정리해서 아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일방적인 설교만 듣는 것보다 이런 채널을 통해 신학생들이 공부한다는 신정론을 저같은 평신도들도 함께 들어볼수 있어서 저는 유익하고 좋으네요.
@@이봉섭-u5c 예. 요즘은 여러 설교나 강해 서적 영상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신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기준에 맞춰서 선악을 판단하다보니 ‘하나님이 선하다면 그럴 수 없지’ 또는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그럴 수 없지’ 같이 어거지로 끼워 맞춰버리니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하나님은 구약에서는 왜 이방민족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셨는가? 아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그럴 수 없지 무슨 이유가 있을거야. 그때는 그러셨지만 신약에는 신실하신 것이다. 이런식으로 흘러버리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하나님만이 선하시다 라는 고백, 선악의 주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린 사람은, 남녀노유 가축까지 다 진멸을 명령하신 하나님을 볼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여호사밧과 그 백성이 아람 3연합군이 쳐들어와서 절망에 빠졌죠. 그건 세상의 눈으로는 잘못된 일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는데 오히려 다 죽게 생겼으니까요. 그때의 그들이 했던 고백을 아시겠죠. 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사실 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이론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나 싶네요.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들에겐 필요없죠. 들을 귀를 하나님이 안주셨으니까요. 또한 믿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이 목적이라면, 성령님의 역할을 사람이 도와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되버리구요. 영에 속한 일에 완전 무지한 사람에게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알려주시는 분이시죠.
@@Whatisthis1217 신학을 신성한 학문으로만 여기시는 것은 아니시죠?
신앙과 지식은 좀 떼어놓고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식은 신앙을 돕는 수단으로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지 지식자체가 당연히 신앙이 될 순 없죠... 성령의 도우심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지 지식을 쌓게 하는 것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공부'라고 말했던 것이고요. 공부도 안했는데...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고 성령님이 없던 지식을 턱하니 넣어주시는 분은 아니잖아요. 님의 말의 요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관점이 다른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이해, 다른 해석들을 배척만 한다면, 기독교를 믿는 믿음에 관하여 관념적으로만 설명한다면, 그저 잡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단 사이비 피해자들을 돕는 사역을 하기 위해 그들의 교리를 공부하기도 하잖아요. 그렇다고 그것이 믿어지고 그들의 종교를 믿는 신앙을 갖게 된다고 볼수 없죠. 관련 지식과 정보를 통해 말로 표현이 어려운 관념적인 믿음과 신앙을 설명하는 일은 복음전도에도 도움이 되고 목회자들은 그것을 '설교'에도 활용하지요. 지금 님께서 설명하시려 한것도 공부해 쌓은 지식이 언어로서 표현하신 한 결과물이 된 것처럼요.
역사와 전통적인 학문의 관점, 막연한 관념적인 것을 지식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직신학의 관점에서 저 목사님은 어떤 특정 신정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이런 신정론이 있다고 대표적인 것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특정 신정론에 함몰되어 있기만 한다면 그거야말로 신정론자이겠지만요...
그냥 '무조건 믿어' 보다는... 세상이 하는 수많은 질문들에 아님 역으로 그들에게 질문하면서 그들 또한 인간의 본질과 세상의 이치를 깊게 생각해보고 찾아가게 하는 과정중에 하나님을 알게하는... 그런 노력또한 사랑이라 생각하고 친절하고 지혜롭게 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성령님이 턱하니 지식을 넣어줄 리가 없다??
만일 있다면 신비주의자일까요??
진리를 얻은 자들은 그렇게 얻얐다고들 합니다.
누구도 자랑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거저, 공짜로, 전적 은혜로 얻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성령님의 신비한 사역에서 시작됩니다.
전적 타락 상태에서 얻는 유효한 부르심ㅡ소명과 중생 ㅡ 이 대표적인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믿음도 없었는데 얻게 되는 구원의 은혜는 어찌 설명할까요?
@@김동국-n9g 바울은 '전파하는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라고(롬10:14) 했습니다. 고대사회는 대부분 문맹자들이었을테니 전하는 자라도 있어야겠지요... 요한도 들었고 보았던 예수님을 증언한다고 하였습니다.(요일1:3)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성경에서 증언하는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성경이 단순히 예수님 키가 몇이고 몸무게가 몇이고 이런 지식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우리에게 전하시려던 말씀이 있었고 그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어진 복음을 믿으라고 한것입니다. 그것을 단지 지식으로만 아는 것을 넘어 깨달아지고 행동하게 하고 믿음을 갖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고요. 성경이 말하지 않는 다른 예수를 전한다면 이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전하는 자도 듣는자도 분별하여야 합니다.
물론 신비한 일들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탄도 바리새인들도 모두 예수님께 표적을 보이라며 시험하였죠. 그러면 믿겠다는 식으로...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비한 기적을 보이시건 안 보이시건 하나님이 만드신 꽃과 나무들 온세계 모든 피조물들도 신비하고 우리의 육신도 신비 그자체입니다. 그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과 피조물들을 통해 일하시기에도 충분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들이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이 가진 오감, 육감 동일하게 느끼시며 분노도 하시고 슬퍼도 하시고 기뻐하시기도 하셨죠. 그리고 그 육신이 다시 부활하셨고 만약 예수님을 다시 만난다면 그 두손에 못박힌 자국과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 저는 믿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니까요.
가장 신비롭고 놀라운 기적이 있다면 서로 죽이면서 전쟁을 일삼고 탐욕과 죄악속에서도 지켜진 성경(복음)이고 또 교회는 무너져도 도망을 가거나 숨어서라도 믿는 믿음의 성도들이 아닐지요...
가설이 많다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이유가 아니라는 것.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은 천지를 완벽하게 창조하셨고,
창조를 완성한 후 안식하심.
이런 하나님이 이 세상에 관여하거나 기도를 들어주거나 인간의 선택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면,
그 창조는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고
하나님은 안식은커녕 맨날 인간에게 불려 다니는 AS기사인 꼴.
얼마나 이 세상을 불량품으로 만들었으면 맨날 AS하느라 정신이 없을꼬?
하나님 자신 혹은 인간에게 무언가 사정이나 뜻(예를 들어 영혼의 완성)이 있어서 악이 존재 혹은 허용했다면,
그 하나님은 심심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있음.
기독교인은 물론 비기독교인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이 우주를 이렇게 "쓸데없이(달랑 지구에만 인간을 만들었으니)" 광활하게 만들고
인간 수준의 생명체를 만들지 않아서 온통 무기물 혹은 무생물 뿐이라면 하나님도 얼마나 심심했을까?
인간도 나 혼자 이 넓은 지구에서 생물체라곤 단 하나도 없으면 심심해서 자살했을 것.
시간을 초월하든 인간적인 개념에서 영원히 존재하든,
그런 하나님이라면 좀이 쑤셔서 가만히 있지 못할 것.
그러니 하나님의 놀잇감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음.
사탄이 불순종해서 벌 주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할 필요가 없음.
왜냐하면 인간은 도구에 불과하니까.
하나님이 사탄을 이기기 위해 인간이 이런 극심한 악과 고통에 빠져도 가만히 있으니까.
사탄이 불순종하고 반역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심히 모독하는 말임.
인간의 영혼을 높은 단계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그런 단계로 만들지 않았는가?
최후의 심판 날에 구원해주기 위해서라면,
그래서 그 후로는 더 이상의 악이 없어진다면,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런 인간,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았는가?
왜 인간이 이 생고생을 하게 만들었는가?
혹시 가학증 환자?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영광과 찬양을 받기 위해서라고 기독교에서는 말함.
영광 그 자체인 분이 뭐가 부족해서 영광을 더 받으려고?
그리고 차고 넘치는 그 영광을 왜 더 받으려고 인간을 이 고통 속에 두는가?
정말 욕심도 많으시지....
혹시 열등감이라도 있으신가?
영광을 누구로부터 받으려고?
이 우주에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인가?
사탄? 인간? 천사?
그래, 천사가 있었지.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천사에게 받으면 되는데?
자기가 만든 천사에게 찬양과 영광을 받는 것으로는 부족하신가?
이것부터 에러네...
아무튼 답이 없는 질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답을 구하려고 책까지 낸 점은 가상하지만,
결론은 인간은 신을 절대로 알 수 없으니, 괜한 노력이라는 것.
그냥 집토끼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스라이팅하고 세뇌하는 것.
인간은 신을 털끝 만큼도 알 수 없고,
설사 기독교의 하나님이 있다고 해도 이 세상에 관여 안 하심.
안식하고 계심.
안식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자꾸 깨우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나 안식하시길 바랍니다.
그게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든 이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