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년만에 다시 리뷰를 들었더니 전혀 다른 감동을 받았는데, 간략하게나마 올리겠습니다. 오늘 불초 소생은 리뷰에서 '슈타인'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적어 쪼~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겉으론 '니나'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정작 루이제 린저는 '슈타인'이 나치 패망 후 슈타인이 처해진 상황을 애둘러 변명 또는 항변하려는, 즉 "나치 관계자로 몰린 사람들도 '옥석'을 가려 봐야한다"는 이의신청서로 이 작품을 집필한 듯 보이기에, 즉 작가로서의 집필의도는 딴 데 있었다고 추정되기에, 저는 '슈타인'을 '사실상 주인공'으로 보아야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입니다^^ 또 한편, 이 작품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었을 것으로 추정하거든요.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품에 대해서도 수많은 리뷰들이 넘쳐나지만, 작가 밀란 쿤데라 입장에서 당시 그가 처한 정치적. 사회적 입장을 살펴보는 리뷰는 없더라구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작가가 후대에 체코가 소련 치하에서 벗어난 경우(일제하 우리나라 작가들이 815 해방되자 거의 대부분 친일파 명부에 올라있듯이) 역사적 판단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 자기방어 입장을 피력해 둔 작품'으로, 저는 읽혔습니다 ^^ 그 근거라면,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자 나치 정부에서 일반 공무원들이었을 뿐임에도 나치 협력자로 처벌받는 '현실'을 쿤데라도 보았을 테지요. 심지어 '감시원' 모집 광고를 접하고 '죄수?'감시를 하는 비정규직으로 일당을 받아 생활하던 여성도 나치 협력자라는 혐의를 쓰고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그 여성은 일자 무식임에도 자신이 일자 무식이란 걸 누가 알까봐 자신이 서명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못 해 독박을 쓰고)이란 등등의 뉴스도 접했을 것이고,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는 "학교 교사를 하다 '유리반지'란 작품이 나치에 찍혀 해직되었기에 나치 패망 후 나치 치하에서 겪은 그런저런 이야기를 엮어 '삶의 한가운데'란 작품을 써서 일약 '나치 저항 작가'로 추앙받는 모습을, 쿤데라도 당시 알았을 테지요?^^ 쿤데라도, 소련 치하에서 공산당에 입당해서 무언지는 모르나 활동한 사실은 '팩트'이기에 이른바 소련 패망으로 '민주화'가 된다면, 과거 공산당 입당 이력이든 크던 작든 그 활동 내역 등도 문제 될 소지가 있기에 루이제 린제 비슷한 방어기제를 모색할 필요가 있었고, 그 방법으로 '니체' 식 필법으로 최대한 난해하게 써둘 필요가 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춘원 이광수는 우리도 학창 시절엔 '근대 문학의 선구자'라고 존경하는 분이라 배웠는데 2000년대초부터 불어닥친 친일청산작업 이후 친일작가로 등재되는 등 그동안 교과서에 등재된 거의 모든 작가들, 유명인사들이 친일파로 등재된 거로 봐서도 또 지금도 아니 미래에도 유사한 '적폐청산'은 계속 될 터이니만큼 이런 방어망을 쳐둘 필요성은 당연한 거 아닐까요?^^ 이광수, 최남선 등은 "일제 치하가 최소 300년은 갈 줄 알았다"고 '때이른 광복(일제 패망)'을 애통해 했다더라는 확인하기 어려운 풍설도 있더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참을수 없는 가벼움"은 일제 치하 마냥 소련 치하에서도 밥 먹고 잠자고 ×스하고 등등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일상다반사'를 통칭하는 거라서 원제목에 작가 집필의도가 확연히 명시된 셈이네요^^ 주인공 토마시와 테레사를 '교통사고 사망' 처리한 설정엔, '인생에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나에 대한 평가도 역사에 맡긴다'는 작가의 달관 내지 체념도 엿보이고, 한편으로 루이제 린저가 '삶의 한가운데' 작품 속에 끼워넣은 (니나와 슈타인이 협력하여)'나치의 수배자. 망명객 10여명을 망명시켰고, 나치의 감시를 피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려는 목적으로 나치에 위장 입당했지만 막상 나치 패망 후 '나치 부역자'로 몰린 '슈타인'은 쿤데라 입장에서 소련 치하에서 벗어난 뒤에 쿤데라와 동료들이 처할 미래를 연상시켰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한술 더떠 루이제 린저는 "나치 시대 독일 지식인들의 군상들을 너무 변명하려든다는 듯" 쿤데라는 체코인 특유의 결기도 살짝 드러낸 느낌도 묻어 나거든요^^ '프란츠'가 캄보디아에 가서 00 하는 이야기들은 '세상을 바꾸고자 뭔가 해야 하는, 괴테 식으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설정'한 듯 보이고요, 프란츠의 죽음에선 프라하의 봄 당시 체코 지식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면서, "어차피 종이값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나만 살 게 아니라 '소련치하에서 일상의 삶(참을수없는 가벼움)'을 영위할 수밖에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대다수 지식인들에게도 방어막을 쳐주는 의리?"도 쿤데라는 보여주거든요^^ 채만식은, 815 해방후 '일제 치하에서 어쩔수 없었다'는 변명 형식의 소설 작품(제목은 기억 안 납니다만)을 써서 오히려 욕만 실컷 얻어먹었다는데요. 일제 패망 전에 그런 작품을 썼어야는데 시기를 놓친 셈인 거죠^^ 흔히,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도 노벨문학상 받고도 남을 분들이 많지만 번역하면 '그맛'이 안 나서 노벨문학상을 못 받는다는 불평들을 한다는데, 저는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라는 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쿤데라는,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작품 속의 '슈타인'이 나치 패망후 처한 곤경에서 아이디어(집필의도)를 얻어 "(미래 어느 시기에) 소련 해체 후 자신의 공산당 입당 등으로 인해 '슈타인' 마냥(어쩌면 1961년 생중계된 '아이히만 재판'에서 쿤데라는 자신의 미래를 보았을 지도?) '공산당 부역자' 오명을 뒤집어쓸 위험을 피하고자, 니체의 필법을 본따 영원회귀 이론으로 설정을 복잡다단하게 구성하여 추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알레고리기법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방어막용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품을 구상. 집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작품은, '혼란의 한가운데'를 살아낸 서구 지식인들에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는 걸 가르쳐준, 독보적인 작품으로 각인되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은 1961년 전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아이히만은 "자신은 도구일뿐"이라 항변했지만 결국 1962년 사형에 처해졌기에, 이런 상황은 쿤데라가 겪은 1968년 프라하의 봄 때 체코의 지식층에도 '남의 일'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쿤데라의 '참을 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68년 프라하의 봄 뒤에 다행히 태평성대가 오더라도 닥칠 '체코 지식인들의 처지와 우려를 담은 만리장성'이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언니를 초대하고 편지를 읽기 시작한 부분까지 읽으면서 지금 제가 삶에 대해 느끼는 감상과 연결이 잘 되어서 홀리며 읽게 된 책이예요. 배경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싶어서 리뷰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 때 당시 배경과 작가의 삶도 알고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거 같아요. 마지막에 니나의 생각을 나타내는 한 문장이 가장 와 닿습니다. 😊
제목이 왜 삶의 한가운데일까? 니나 신드롬이 왜 일어났을까? 작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했을까?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네요. 니나는 특별한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지는 않는데...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빠르게 적응하고 최대의 에너지를 발휘하면서 살아간다. 니나는 적극적으로 삶에 뛰어들어 자신의 할일을 찾아나서지만, 언니 마르그레트는 한 발 뒤에서 삶을 관조하는 스타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자매. -나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어요. 일단 떠맡은 거니까요. 이제 와서 도망을 친다면 저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으로 생각될 거예요. 니나 넘 멋있는데요 ㅎㅎ -우리의 삶은 예고없이 시작된 것처럼 삶의 순간들도 거의 언제나 예고없이 찾아온다. 우리에게 찾아온 삶의 한 가운데로 걸어들어가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이야기하는 작가!!! 멋져!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삶의 한가운데?로 가라 ㅋㅋ 문학줍줍님. 휴가 잘 다녀오셨나봐요. 좋은 작품 들고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석이 정말 끝내줍니다.
긴 장마와 태풍에 존체강녕하신지요? ^^ 이 작품은 제목이 '에세이' 분위기를 풍기게 네이밍해서 참 신선하네요. 마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어ㆍ 들어볼래?" 하면서, 보고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풀어가는 에세이 형 필체군요. 리뷰를 '니나 자매지간'에 초점을 맞춰 해주셨는데요, 4상 체질이론을 상세히 설명해 주는 듯 해서 놀라울 정도군요. 니나는 '전형적인 소양인'이고 언니는 '태양인'으로 보입니다. 우리 속담에 '소 닭 보듯 한다'는 말이 있는데 소양인과 태양인의 인간관계가 이런 유형에 속합니다. 따라서 친자매지간에 그럴 수 있느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 속에서도 실은 흔한 사례입니다. 나치 이야기를 간단히 리뷰하시긴 하셨지만, 이 작품 속에서 '나치'의 비중을 어찌 보느냐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시대배경이 독일 나찌 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한 정도로만 치면 '연애소설'로만 보여질 수 있겠지만, 나치 시대를 나치 정권에 의해 투옥된 경험(그것도 사형 선고 등 중형 선고 경험)을 가진 작가가 자전적으로 그려낸 소설로 본다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게 되거든요. 먼저, 저는 개인적으로 푸시킨의 '대위의 딸'을 연상시키는 구성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이 소설인 만큼, 상황설정에 나오는 '나치' 이야기를 '배경'으로 보고 니나와 쉬타인의 어긋난 사랑을 주제(연애소설)로 보고 니나의 어릴 때부터의 애정결핍과 쉬타인의 지나친 자존감과 용기 부족한 성격으로 인한 '어긋난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한편, '나치'를 '배경'이 아닌 '전경'으로 삼아 크로즈업시키면, 1930년대부터 1945년 나치 패망 때까지의 독일 시대 상황 속에서 니나의 사회활동과 쉬타인의 나치 가입 목적과 그가 실제 행한 반정부 활동ㆍ나치 하의 반정부인사들을 망명시킨 용감한 행동들을 재평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옥석도 구분하지 않는 '나찌 입당서 제출 기준'으로 친나치로 모는 게 합리적이냐는, '사실상 정견'을 소설 형식으로 발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저는 루이제 린저의 성향으로 보아 후자로 해석하는 입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푸시킨도 오랜 지방 유배와 검열을 겪다 '반성문'과 '각서'까지 쓰고 풀려나 작품을 다시 쓰게된 시기에 쓴 '대위의 딸'은, 또 '반정부 작가'로 찍히면 작품활동은 커녕 목숨도 담보할 수 없는 전제군주시대에 '연애소설'로 위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남자 주인공을 '표트르'로 네이밍한 건, 표트르 대제 시대를 동양의 '요순시대'로 상정한 설정이고, 여주인공을 '마리아'로 네이밍한 건 성모마리아를 연상시키도록, 즉 여권신장이 시대 조류라는 메시지와 함께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각 장점을 살려서 러시아의 개혁을 해나가자는 메시지를 던진 장치로도 보이거든요. 표트르와 마리아가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사는 설정으로 그런 메시지를 더 한층 분명히 한 것이구요~ 특히 군인으로 출세하려던 표트르를 과감히 전역시켜 예카테리나 여제의 축복 아래 고향으로 보내버리는 설정으로써 '군인으로 출세하던 시대의 종말'을 묵시록처럼 드러낸 설정이라 할 것입니다^^ 오랫 동안 작가가 미상으로 전해 왔던 춘향전은, 임진왜란 당시 남원 출신 의병장 조경남 장군으로 몇년전 학계에서 공인되었다고 합니다. 춘향전은, 김덕령 장군 등 의병장들이 선조의 칼날에 역모죄로 줄줄이 주살되는 걸 보면서 "이 나라 콱, 엎어버리고 싶다"는 심정으로 써서 의도적으로 이름을 숨기고 퍼뜨린 사회개혁소설이라고 밝혀졌거든요^^ 춘향전도 '연애소설' 형식을 빌어 씌여있죠. 실제 있었던 사실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도령이 실은 성도령이라고 합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성 씨를 이씨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푸시킨의 심정도 아마 그러했을 겁니다. 대위의 딸은, 4년에 걸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집필에 4년이 걸렸을리는 없고, 지인들이 "발표하면 역모죄로 죽일 것이다~" 등 반대가 많아서 고치고 또 고치고 첨삭하느라 지체되었을 겁니다. 아마도 이런 문제의식은, 루이제 린저의 경우 ' 독일 나치' 평가 즉 친나치 여부 평가에 관한 옥석을 가리지 않았다는 불만이랄까 하는 부분을 이 작품에 투영한 듯 보입니다. 푸시킨의 '대위의 딸'에 대해서도 소련 공산 치하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푸시킨이 전제 군주정 시절에 '애정 소설'로 위장하지 않았더라면 '푸가초프반란'의 실상 일부나마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기에 불가피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하고 있다는군요. 의병장 조경남 장군이 춘향전에다 김덕령 장군을 언급이라도 했더라면 아마 색출해서 3족을 멸하지 않았을까요?^^ 암튼 이 작품은 니나와 쉬타인이란 두 남녀를 대표로 하는, 나치 독일 당대의 평균적 내지 그래도 중류층 소시민들이 다 나치에 충성했던 거 아니냐,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먼저 돌로 쳐라"는 식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라 해석됩니다~
우선 감사합니다. 니나신드롬이란 말이 있었군요. 그만큼 주인공 니나의 삶의 모습이 강한 어필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전, 니나보다 슈타인의 니나에 대한 끈질긴 사랑이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헬레나는 슈타인을 짝사랑했고, 슈타인은 니나를 짝사랑한 것이 삼각관계의 형태로 오랜 기간동안 이어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였습니다. 워낙 니나에 집중적인 시선이 있다 보니, 슈타인이 평생동안 러브레터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인 것이 두각이 안된 것 같습니다. 한 남자의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지속가능하다는 것도 감동이었구요. 그 사랑을 끝까지 받아 주지 않는 니나를 통해 여성의 차디찬 냉소적인 모습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을 넘어 투쟁을 한 니나의 산전수전의 삶이 또한 이해가 되구요. 전 이 작품이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바리 부인도 자신의 삶의 권태로움과 무료함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사치를 하는 방법을 취한 것처럼 니나도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찾아 헤메는 모습이 비슷하구요. 여자라고 해서 남자의 소유물처럼 여겼던 전통 사회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한 여자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슈타인이 안스럽기 까지 합니다. 정치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관점도 물론 이해합니다만, 전, 소설의 순수함 즉, 로맨스를 그저 러브스토리로만 해석하는 단순성을 좋아합니다. 사랑은 국경과 이데올로기 어떤 것도 넘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좋은 책 소개 언제나 감사합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이 책의 후속편인 Abenteuer der Tugend (순결의 여정)이 있는데 생에 한 가운데에 마지막에 나온 남자는 마우리우스라는 남자이고, 앨리스라는 부인과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독일에서 니나는 마우리우가 유부남인걸 모른채 서로 사랑을 했고, 사실을 알고 나서는 마우리우스와 앨리스에게 헤어진다고 편지를 남겨 놓은채, 영국으로 떠난거였죠.
학생때 읽었던 책인데 물론 오래되기도 했지만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걸까요ㅜ 멋모르고 읽어서 그런건지... 비도 많이 내리고 휴가라지만 어디 가지도 못하는데 이참에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리뷰를 들어니 조금은 기억이 나는듯도 합니다. 이렇게 책 읽을 기회를 주시네요 잘 듣고 갑니다 감사해요 다음 작품도 기대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다가 만 책 이네요.... 덕분에 다시 오래전 헌책을 빼들고 읽어 봅니다. 1976년판 서울대 장두식 교수님이 번역한 오래된 책입니다. ... 여기 제목은 "생의 한가운데" ... 예전엔 새책만 좋아했었는데,,,, 이렇게 보는 헌책이 오히려 정감이 가는 건 .... ㅋㅋ... 나이를 먹은 탓일까요? ㅎㅎ 감사합니다.
비가 많이 오는데 모두들 비피해 없으시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시면 좋겠어요 :-)
오늘 준비한 작품은 그간 많은 분들이 리뷰 요청하신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ㅎㅎ
다음에 소개해드릴 작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입니다.
무려 2년만에 다시 리뷰를 들었더니 전혀 다른 감동을 받았는데, 간략하게나마 올리겠습니다. 오늘 불초 소생은 리뷰에서 '슈타인'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적어 쪼~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겉으론 '니나'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정작 루이제 린저는 '슈타인'이 나치 패망 후 슈타인이 처해진 상황을 애둘러 변명 또는 항변하려는, 즉 "나치 관계자로 몰린 사람들도 '옥석'을 가려 봐야한다"는 이의신청서로 이 작품을 집필한 듯 보이기에, 즉 작가로서의 집필의도는 딴 데 있었다고 추정되기에, 저는 '슈타인'을 '사실상 주인공'으로 보아야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입니다^^
또 한편, 이 작품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었을 것으로 추정하거든요.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품에 대해서도 수많은 리뷰들이 넘쳐나지만, 작가 밀란 쿤데라 입장에서 당시 그가 처한 정치적. 사회적 입장을 살펴보는 리뷰는 없더라구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작가가 후대에 체코가 소련 치하에서 벗어난 경우(일제하 우리나라 작가들이 815 해방되자 거의 대부분 친일파 명부에 올라있듯이) 역사적 판단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 자기방어 입장을 피력해 둔 작품'으로, 저는 읽혔습니다 ^^
그 근거라면,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자 나치 정부에서 일반 공무원들이었을 뿐임에도 나치 협력자로 처벌받는 '현실'을 쿤데라도 보았을 테지요. 심지어 '감시원' 모집 광고를 접하고 '죄수?'감시를 하는 비정규직으로 일당을 받아 생활하던 여성도 나치 협력자라는 혐의를 쓰고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그 여성은 일자 무식임에도 자신이 일자 무식이란 걸 누가 알까봐 자신이 서명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못 해 독박을 쓰고)이란 등등의 뉴스도 접했을 것이고,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는 "학교 교사를 하다 '유리반지'란 작품이 나치에 찍혀 해직되었기에 나치 패망 후 나치 치하에서 겪은 그런저런 이야기를 엮어 '삶의 한가운데'란 작품을 써서 일약 '나치 저항 작가'로 추앙받는 모습을, 쿤데라도 당시 알았을 테지요?^^
쿤데라도, 소련 치하에서 공산당에 입당해서 무언지는 모르나 활동한 사실은 '팩트'이기에 이른바 소련 패망으로 '민주화'가 된다면, 과거 공산당 입당 이력이든 크던 작든 그 활동 내역 등도 문제 될 소지가 있기에 루이제 린제 비슷한 방어기제를 모색할 필요가 있었고, 그 방법으로 '니체' 식 필법으로 최대한 난해하게 써둘 필요가 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춘원 이광수는 우리도 학창 시절엔 '근대 문학의 선구자'라고 존경하는 분이라 배웠는데 2000년대초부터 불어닥친 친일청산작업 이후 친일작가로 등재되는 등 그동안 교과서에 등재된 거의 모든 작가들, 유명인사들이 친일파로 등재된 거로 봐서도 또 지금도 아니 미래에도 유사한 '적폐청산'은 계속 될 터이니만큼 이런 방어망을 쳐둘 필요성은 당연한 거 아닐까요?^^
이광수, 최남선 등은 "일제 치하가 최소 300년은 갈 줄 알았다"고 '때이른 광복(일제 패망)'을 애통해 했다더라는 확인하기 어려운 풍설도 있더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참을수 없는 가벼움"은 일제 치하 마냥 소련 치하에서도 밥 먹고 잠자고 ×스하고 등등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일상다반사'를 통칭하는 거라서 원제목에 작가 집필의도가 확연히 명시된 셈이네요^^
주인공 토마시와 테레사를 '교통사고 사망' 처리한 설정엔, '인생에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나에 대한 평가도 역사에 맡긴다'는 작가의 달관 내지 체념도 엿보이고, 한편으로 루이제 린저가 '삶의 한가운데' 작품 속에 끼워넣은 (니나와 슈타인이 협력하여)'나치의 수배자. 망명객 10여명을 망명시켰고, 나치의 감시를 피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려는 목적으로 나치에 위장 입당했지만 막상 나치 패망 후 '나치 부역자'로 몰린 '슈타인'은 쿤데라 입장에서 소련 치하에서 벗어난 뒤에 쿤데라와 동료들이 처할 미래를 연상시켰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한술 더떠 루이제 린저는 "나치 시대 독일 지식인들의 군상들을 너무 변명하려든다는 듯" 쿤데라는 체코인 특유의 결기도 살짝 드러낸 느낌도 묻어 나거든요^^
'프란츠'가 캄보디아에 가서 00 하는 이야기들은 '세상을 바꾸고자 뭔가 해야 하는, 괴테 식으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설정'한 듯 보이고요, 프란츠의 죽음에선 프라하의 봄 당시 체코 지식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면서, "어차피 종이값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나만 살 게 아니라 '소련치하에서 일상의 삶(참을수없는 가벼움)'을 영위할 수밖에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대다수 지식인들에게도 방어막을 쳐주는 의리?"도 쿤데라는 보여주거든요^^
채만식은, 815 해방후 '일제 치하에서 어쩔수 없었다'는 변명 형식의 소설 작품(제목은 기억 안 납니다만)을 써서 오히려 욕만 실컷 얻어먹었다는데요. 일제 패망 전에 그런 작품을 썼어야는데 시기를 놓친 셈인 거죠^^ 흔히,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도 노벨문학상 받고도 남을 분들이 많지만 번역하면 '그맛'이 안 나서 노벨문학상을 못 받는다는 불평들을 한다는데, 저는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라는 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쿤데라는,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작품 속의 '슈타인'이 나치 패망후 처한 곤경에서 아이디어(집필의도)를 얻어 "(미래 어느 시기에) 소련 해체 후 자신의 공산당 입당 등으로 인해 '슈타인' 마냥(어쩌면 1961년 생중계된 '아이히만 재판'에서 쿤데라는 자신의 미래를 보았을 지도?) '공산당 부역자' 오명을 뒤집어쓸 위험을 피하고자, 니체의 필법을 본따 영원회귀 이론으로 설정을 복잡다단하게 구성하여 추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알레고리기법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방어막용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품을 구상. 집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작품은, '혼란의 한가운데'를 살아낸 서구 지식인들에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는 걸 가르쳐준, 독보적인 작품으로 각인되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은 1961년 전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아이히만은 "자신은 도구일뿐"이라 항변했지만 결국 1962년 사형에 처해졌기에, 이런 상황은 쿤데라가 겪은 1968년 프라하의 봄 때 체코의 지식층에도 '남의 일'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쿤데라의 '참을 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68년 프라하의 봄 뒤에 다행히 태평성대가 오더라도 닥칠 '체코 지식인들의 처지와 우려를 담은 만리장성'이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니나가 슈타인에게 이별 고한 게 아니에요. 슈타인이 니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서 그것을 두고 언쟁하다가 헤어지게 되는 거예요. 슈타인이 니나와 함께 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고 일기에 고백했는데요,,
삶의 한가운데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라. 참 멋진 작가의 목소리입니다. 저도 첫 문장이 참 탁월하다고 생각했어요^^
슈타인 박사의 외바라기 사랑이 참 맘이 아프던 작품인데..오늘도 넘 깔끔하게 요약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늘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짧은 시간에 삶의 한가운데를 쓴 "루이제 린저" 소개, 소설 줄거리, 감상평을 잘 요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라는 이름으로 이 작품을 만났었는데, 줄거리만 보는것보다 문장의 '결'과 '맛'이 있었던 작품이라 정말 좋아했던 작품인데 이렇게 다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롭네요^^
줄거리보다는 문장에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소설이죠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
언니를 초대하고 편지를 읽기 시작한 부분까지 읽으면서 지금 제가 삶에 대해 느끼는 감상과 연결이 잘 되어서 홀리며 읽게 된 책이예요. 배경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싶어서 리뷰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 때 당시 배경과 작가의 삶도 알고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거 같아요. 마지막에 니나의 생각을 나타내는 한 문장이 가장 와 닿습니다. 😊
너무 훌륭한 작품이죠. 여운이 길게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목이 왜 삶의 한가운데일까? 니나 신드롬이 왜 일어났을까? 작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했을까?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네요.
니나는 특별한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지는 않는데...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빠르게 적응하고 최대의 에너지를 발휘하면서 살아간다.
니나는 적극적으로 삶에 뛰어들어 자신의 할일을 찾아나서지만, 언니 마르그레트는 한 발 뒤에서 삶을 관조하는 스타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자매.
-나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어요. 일단 떠맡은 거니까요. 이제 와서 도망을 친다면 저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으로 생각될 거예요.
니나 넘 멋있는데요 ㅎㅎ
-우리의 삶은 예고없이 시작된 것처럼 삶의 순간들도 거의 언제나 예고없이 찾아온다.
우리에게 찾아온 삶의 한 가운데로 걸어들어가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이야기하는 작가!!! 멋져!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삶의 한가운데?로 가라 ㅋㅋ
문학줍줍님. 휴가 잘 다녀오셨나봐요. 좋은 작품 들고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석이 정말 끝내줍니다.
네 ㅎㅎ 휴가 다녀왔습니다. 저도 좋은 작품 소개해드릴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
저도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저도요 ㅎㅎ
잘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고등학교 시절 독일어 선생님으로부터 추천 받았던 작품입니다..두번정도 읽었는데..줍줍님의 해설이 다시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좋은 작품평 감사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독어선생님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추천하셨었는데요 ㅎㅎ 독일어 작품들은 대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삶의 의미를 묻는것은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란 말이 ...각자 생각의 방식이 다르네요.
의미를 모르면 삶은 추락으로 치닫고 절벽아래로 떨어지는 경험을 겪을수있어요. 의미를 찾는 과정이 없으면 삶의 방조죄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백은님 :-)
너무 유익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긴 장마와 태풍에 존체강녕하신지요? ^^
이 작품은 제목이 '에세이' 분위기를 풍기게 네이밍해서 참 신선하네요. 마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어ㆍ 들어볼래?" 하면서, 보고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풀어가는 에세이 형 필체군요.
리뷰를 '니나 자매지간'에 초점을 맞춰 해주셨는데요, 4상 체질이론을 상세히 설명해 주는 듯 해서 놀라울 정도군요. 니나는 '전형적인 소양인'이고 언니는 '태양인'으로 보입니다. 우리 속담에 '소 닭 보듯 한다'는 말이 있는데 소양인과 태양인의 인간관계가 이런 유형에 속합니다. 따라서 친자매지간에 그럴 수 있느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 속에서도 실은 흔한 사례입니다.
나치 이야기를 간단히 리뷰하시긴 하셨지만, 이 작품 속에서 '나치'의 비중을 어찌 보느냐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시대배경이 독일 나찌 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한 정도로만 치면 '연애소설'로만 보여질 수 있겠지만, 나치 시대를 나치 정권에 의해 투옥된 경험(그것도 사형 선고 등 중형 선고 경험)을 가진 작가가 자전적으로 그려낸 소설로 본다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게 되거든요.
먼저, 저는 개인적으로 푸시킨의 '대위의 딸'을 연상시키는 구성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이 소설인 만큼, 상황설정에 나오는 '나치' 이야기를 '배경'으로 보고 니나와 쉬타인의 어긋난 사랑을 주제(연애소설)로 보고 니나의 어릴 때부터의 애정결핍과 쉬타인의 지나친 자존감과 용기 부족한 성격으로 인한 '어긋난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한편, '나치'를 '배경'이 아닌 '전경'으로 삼아 크로즈업시키면, 1930년대부터 1945년 나치 패망 때까지의 독일 시대 상황 속에서 니나의 사회활동과 쉬타인의 나치 가입 목적과 그가 실제 행한 반정부 활동ㆍ나치 하의 반정부인사들을 망명시킨 용감한 행동들을 재평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옥석도 구분하지 않는 '나찌 입당서 제출 기준'으로 친나치로 모는 게 합리적이냐는, '사실상 정견'을 소설 형식으로 발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저는 루이제 린저의 성향으로 보아 후자로 해석하는 입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푸시킨도 오랜 지방 유배와 검열을 겪다 '반성문'과 '각서'까지 쓰고 풀려나 작품을 다시 쓰게된 시기에 쓴 '대위의 딸'은, 또 '반정부 작가'로 찍히면 작품활동은 커녕 목숨도 담보할 수 없는 전제군주시대에 '연애소설'로 위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남자 주인공을 '표트르'로 네이밍한 건, 표트르 대제 시대를 동양의 '요순시대'로 상정한 설정이고, 여주인공을 '마리아'로 네이밍한 건 성모마리아를 연상시키도록, 즉 여권신장이 시대 조류라는 메시지와 함께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각 장점을 살려서 러시아의 개혁을 해나가자는 메시지를 던진 장치로도 보이거든요. 표트르와 마리아가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사는 설정으로 그런 메시지를 더 한층 분명히 한 것이구요~
특히 군인으로 출세하려던 표트르를 과감히 전역시켜 예카테리나 여제의 축복 아래 고향으로 보내버리는 설정으로써 '군인으로 출세하던 시대의 종말'을 묵시록처럼 드러낸 설정이라 할 것입니다^^
오랫 동안 작가가 미상으로 전해 왔던 춘향전은, 임진왜란 당시 남원 출신 의병장 조경남 장군으로 몇년전 학계에서 공인되었다고 합니다. 춘향전은, 김덕령 장군 등 의병장들이 선조의 칼날에 역모죄로 줄줄이 주살되는 걸 보면서 "이 나라 콱, 엎어버리고 싶다"는 심정으로 써서 의도적으로 이름을 숨기고 퍼뜨린 사회개혁소설이라고 밝혀졌거든요^^
춘향전도 '연애소설' 형식을 빌어 씌여있죠. 실제 있었던 사실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도령이 실은 성도령이라고 합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성 씨를 이씨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푸시킨의 심정도 아마 그러했을 겁니다. 대위의 딸은, 4년에 걸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집필에 4년이 걸렸을리는 없고, 지인들이 "발표하면 역모죄로 죽일 것이다~" 등 반대가 많아서 고치고 또 고치고 첨삭하느라 지체되었을 겁니다.
아마도 이런 문제의식은, 루이제 린저의 경우 ' 독일 나치' 평가 즉 친나치 여부 평가에 관한 옥석을 가리지 않았다는 불만이랄까 하는 부분을 이 작품에 투영한 듯 보입니다.
푸시킨의 '대위의 딸'에 대해서도 소련 공산 치하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푸시킨이 전제 군주정 시절에 '애정 소설'로 위장하지 않았더라면 '푸가초프반란'의 실상 일부나마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기에 불가피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하고 있다는군요. 의병장 조경남 장군이 춘향전에다 김덕령 장군을 언급이라도 했더라면 아마 색출해서 3족을 멸하지 않았을까요?^^
암튼 이 작품은 니나와 쉬타인이란 두 남녀를 대표로 하는, 나치 독일 당대의 평균적 내지 그래도 중류층 소시민들이 다 나치에 충성했던 거 아니냐,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먼저 돌로 쳐라"는 식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라 해석됩니다~
강대봉님, 댓글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읽었습니다. '대위의딸'에 대해서 깊이 있는 견해를 들은 듯한 느낌입니다. 많은 도움되었습니다 :-)
@@pick_literature 과찬이십니다^^
우선 감사합니다. 니나신드롬이란 말이 있었군요. 그만큼 주인공 니나의 삶의 모습이 강한 어필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전, 니나보다 슈타인의 니나에 대한 끈질긴 사랑이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헬레나는 슈타인을 짝사랑했고, 슈타인은 니나를 짝사랑한 것이 삼각관계의 형태로 오랜 기간동안 이어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였습니다. 워낙 니나에 집중적인 시선이 있다 보니, 슈타인이 평생동안 러브레터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인 것이 두각이 안된 것 같습니다. 한 남자의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지속가능하다는 것도 감동이었구요. 그 사랑을 끝까지 받아 주지 않는 니나를 통해 여성의 차디찬 냉소적인 모습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을 넘어 투쟁을 한 니나의 산전수전의 삶이 또한 이해가 되구요. 전 이 작품이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바리 부인도 자신의 삶의 권태로움과 무료함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사치를 하는 방법을 취한 것처럼 니나도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찾아 헤메는 모습이 비슷하구요. 여자라고 해서 남자의 소유물처럼 여겼던 전통 사회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한 여자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슈타인이 안스럽기 까지 합니다. 정치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관점도 물론 이해합니다만, 전, 소설의 순수함 즉, 로맨스를 그저 러브스토리로만 해석하는 단순성을 좋아합니다. 사랑은 국경과 이데올로기 어떤 것도 넘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좋은 책 소개 언제나 감사합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이 책의 후속편인 Abenteuer der Tugend (순결의 여정)이 있는데 생에 한 가운데에 마지막에 나온 남자는 마우리우스라는 남자이고, 앨리스라는 부인과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독일에서 니나는 마우리우가 유부남인걸 모른채 서로 사랑을 했고, 사실을 알고 나서는 마우리우스와 앨리스에게 헤어진다고 편지를 남겨 놓은채, 영국으로 떠난거였죠.
감사합니다😄
와~ 드디어 답답함의 결말을 여기서 찾았네요.
제가 지금 뭘 읽은건가 혼란스러웠던 ㅎㅎ
(슈타인이 죽은거 아닌가? 누가 달려왔지? 영혼인가? 뭐지?)
감사합니다~~^^
학생때 읽었던 책인데 물론 오래되기도 했지만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걸까요ㅜ
멋모르고 읽어서 그런건지...
비도 많이 내리고 휴가라지만 어디 가지도 못하는데 이참에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리뷰를 들어니 조금은 기억이 나는듯도 합니다.
이렇게 책 읽을 기회를 주시네요
잘 듣고 갑니다 감사해요
다음 작품도 기대합니다^^
비오는 휴가, 게다가 코로나 상황 ㅠㅠ 책읽기 너무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저만 쟐 안읽히나 했더니 그랫군요 줍줍님 덕분에 다시 집중해서 읽기를 도전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다가 만 책 이네요.... 덕분에 다시 오래전 헌책을 빼들고 읽어 봅니다. 1976년판 서울대 장두식 교수님이 번역한 오래된 책입니다. ... 여기 제목은 "생의 한가운데" ... 예전엔 새책만 좋아했었는데,,,, 이렇게 보는 헌책이 오히려 정감이 가는 건 .... ㅋㅋ... 나이를 먹은 탓일까요? ㅎㅎ 감사합니다.
76년판 책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다니 대단하시네요 ㅎㅎ
매우 좋은 내용이네요, 마이크 음성도 훌륭하네요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예전부터 구독해왔는데요. 혹시 한국 고전에 대해서는 다룰 생각이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한국고전도 보고싶어요!
한국 고전도 생각해보겠습니다 :-)
이거 제가 몇년 전에 해달라고 ㅋㅋ 말했던 책인데 지금이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그땐 10대였는데 지금은 병역을..
좀 더 빨리 해드리지 못했네요 ㅎㅎ 군생활 건강하게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
책 마지막에 그 남자는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모리스요~
@@hannahi9193모리스가 누군가요?
@@dahyunkim1792 린저의 책
덕성의 모험
보시면 나와요~
저도 궁금해서 이 영상까지 왔네요.. 아시는 분 알려주세요
슈타인의 성격이 너무 소극적이라서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 자체로 진실일테니 있는그대로 볼수밖에없겠죠
니나는 어디서든 적극적이고 좀 쓸모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하고 어딘가에 메이는 평범한 삶은 딱 질색하는 스타일인듯
독일사람인가요?
네 독일 작가입니다.
덕분에 오늘 세계명작을 여러권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은 생각하는 데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니나의 인생관은 사는 데로 생각한다라고 느껴져서 조금 거부감이 드네요...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각자의 인생관이 다르니까요 :-)
감상평도 줄거리 정리도 참 좋은데 말씀 속도만 조금 더 천천히 해주시면 정말 좋을것 같아요 ... 논문 발표하시는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