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사랑, 나폴레옹의 여인들, 조세핀이 나폴레옹을 사로잡은 매력, 남자에게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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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сен 2024
  • 한때 유럽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죽기전 마지막 순간에 “프랑스, 군대, 선봉, 조세핀”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조세핀은 “보나파르트, 엘바, 로마왕”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폴레옹이 죽음의 순간까지도 머릿속에 떠올렸던 여인 조세핀은 어떤 여인인가?
    나폴레옹은 1769년 프랑스의 코르시카섬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사관학교를 거쳐 1789년 프랑스 혁명기에 혁명에 가담하여 포병장교가 되고 자코뱅당에 가입했다.
    이후 1793년 프랑스 남부의 툴롱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고지대에서 집중포격을 가하여 영국군과 스페인군을 제압했다.
    그리고 혁명정부의 실력자 폴 바라스의 지시에 따라 왕당파의 잔재세력을 진압하여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한 파티장에서 조세핀을 만나게 되었다.
    조세핀은 나폴레옹에 비해 6살이 많은 연상의 여인으로 이미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알렉상드르 자작의 부인으로 이혼한 상태였던 조세핀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하에서 체포되어 사형집행을 하루 앞두고 테르미도르의 반동에 의해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며 살아남게 된다.
    이후 조세핀은 감옥에서 만났던 테레사와 함께 폴 바라스 총재의 정부로 활동하게 된다.
    한편 파티에서 만난 조세핀에게 반한 나폴레옹은 적극적으로 조세핀에게 대시했다.
    그리고 결국 1796년 3월 9일 두 사람은 결혼한다.
    당시 나폴레옹은 마르세유의 부유한 상인의 딸인 데지레 클라리와 약혼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결혼하게 되니 데지레는 큰 충격을 받고 나폴레옹에게 “당신은 내 삶을 파괴했어요”라고 편지를 보낼 정도로 상심하였다.
    한편 이후에 데지레는 나폴레옹의 부하였던 베르나도트와 결혼하여 나중에 스웨덴의 왕비가 된다.
    나폴레옹은 데지레와의 약혼을 깬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녀와 결혼한 베르나도트에게 진급 등에 편의를 주었다.
    그리고 3차례나 그를 총살시킬 기회가 있었으나 관대하게 처리했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한편 나폴레옹은 조세핀과 결혼한 이틀 후 이탈리아 원정에 나서게 된다.
    이탈리아 원정중에 나폴레옹은 “조세핀 나의 아내여 나는 당신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하고 싶소” “나의 생각은 온통 그대뿐이요”라는 등의 애정을 표하는 수많은 편지를 보내며 조세핀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러나 조세핀은 편지를 배달한 장교들과도 애정행각을 벌이는 등 나폴레옹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한편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집트원정을 떠났을 때 조세핀은 경기병인 샤를과 사랑에 빠졌다.
    이후 조세핀의 부정한 연애 행각은 영국까지 알려져 영국의 일간지에까지 실리게 되었다.
    이에 분노한 나폴레옹은 조세핀과 이혼을 하고자 하였으나 눈물을 흘리고 비는 조세핀과 그녀의 자녀들을 보고 용서하였다.
    이후 1799년 쿠테타로 실권을 잡고 프랑스의 1통령에 오른 나폴레옹은 각종 전투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1804년 12월 2일 황제 자리에 올랐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직접 황제관을 썼다.
    조세핀은 황후가 되었는데 매년 100벌 이상의 드레스를 새로 맞추고 드레스에 맞는 모자와 구두 보석 등을 사들이는 등 사치했다.
    한편 조세핀이 10년이 넘는 결혼생활에도 자녀를 낳지 못하자 나폴레옹은 조세핀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나폴레옹의 이혼 요구에 조세핀은 혼절하기도 했으나 결국 “가문의 권익과 프랑스의 후계자를 생산할 능력이 없는 나는 기꺼이 애정과 헌신의 증표를 주려한다”는 말로 이혼에 동의하고 1810년 1월 10일 이혼한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하고 황후라는 칭호와 대우를 그대로 유지하고 50만 프랑의 연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한편 41세인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황제의 딸로서 22살이 어린 19세의 마리 루이즈와 1810년 4월 1일 재혼하였다.
    그리고 1년 후 고대하던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1812년 대륙봉쇄령을 어긴 러시아를 응징하려던 러시아 원정이 실패하고 1814년 프랑스의 파리가 함락되자 나폴레옹은 황제에서 퇴위하고 엘바섬의 영주가 되어 추방되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엘바섬에 추방되고 한달쯤 지나고 조세핀은 폐렴에 걸려 사망하였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의 죽음을 전해 듣고
    “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소. 공감과 사랑 진정한 감정으로 묶인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요”라는 말을 남겼다.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52세로 숨을 거두었다.
    나폴레옹보다 6살이나 많고 자식마저 있었던 조세핀, 상관의 정부였던 조세핀에게 나폴레옹이 그렇게나 애정을 쏟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폴레옹은 “나는 여자와 함께 있으면 수줍어지고 불편하다. 그러나 조세핀은 나에게 자신감을 준 최초의 여자였다”라는 회고를 하였다.
    조세핀은 사치스럽고 남자를 밝히기도 했지만 사교적인 성격으로 선량하고 인정이 많았다는 평가도 있다.
    나폴레옹이 말했던 조세핀이 자신에게 자신감을 준 최초의 여성이라는 말은 나폴레옹이 조세핀을 사랑하게 한 중요한 요인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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