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현대인들이 우울증을 겪는이유가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말이 마음에 와닿네요.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더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건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분명히 과학적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치에 맞지않는 것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신비로운것,영적인것,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믿고싶고 의지하고싶어하는것 같습니다.
저는 극도로 현실주의자라.. 솔직히 교회가서 돈내고 기도하고 절가서 1000배하는 시간과 돈보다 스스로에게 자기계발하고 가족과 시간을보내고 운동하고 공부하는게 진짜 도움이 되는 행동인거같습니다.. 자식이 시험을 잘 보기를 원한다면 기도나 절을 할게 아니라 그 시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학원이나 과외가 필요한지. 아이의 공부습관이나 태도는 잘 갖춰저있는지 알아보는게.맞지... 기도나 절한다고 뭐가 바뀌나 싶다
기독교인 사람은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이네요.. 저는 한때 (아니면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인이지만, 요샌 교회도 못나가고 좀 뒤숭숭하네요. 정말 가끔씩은 신이 정말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어쩌면 내가 잘된게 신이 해결해준게 아니라 내가 잘했거나 아님 내가 단지 운이 좋았거나 그런 생각을요.. 이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신은 무엇인가?"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은 저의 오랜 숙제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여러 책이나 강의를 듣곤 했는데, 결국 지금은 '인간의 영혼'이 곧 '신'이라는 것에 도달했습니다. 동물은 영혼이 없는 육신의 존재, 사람은 육신과 영혼의 혼합 존재, 신은 육신이 없는 영혼의 존재인 것이죠.
우연히 다른 철학 채널중에서 변신론과 관련된 주제를 찾게 되었고, 맥락이 유관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 제가 그 채널에서 밝힌 견해를 그대로 옳겨 보겠습니다. 전혀 관계없는 뜬금포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면 그건 그저 제 능력의 불찰입니다. ----- 제가 보기엔 변신론: 즉 신의 존재와 본성에 관한 논증이 유도하는 질문은, "우리 인간이 기대하는 가치, 정의와 불의, 선과 악등에 실체가 있느냐느 물음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쩜 철학이 다루는 가장 까다로운 질문 실재론 vs 유명론의 논쟁으로 귀결이 된다는 거죠. 이 논쟁을 다룬 여러 철학 문헌을 찾아보았지만, 저에겐 이런 결론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중에 가장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자연의 관점에서 본다면 실재론이 맞습니다. 혹은 실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명론이 맞습니다. 왜냐구요? 현대 과학이 지금까지 증명한 대로 실재의 개념을 보자면, 인간이 기대하는 도덕적 가치들이 세계(자연) 그 자체에는 없다는 것이 합당하니까요. 그렇담 아주 까다로운 새로운 질문이 다시 제기되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자연의 관점에서 볼 수가 있나요?" 자연의 세계에는 인간이 기대하는 도덕과 정의, 선악은 분명히 없어요. 하지만 그런 개념들이 실재적이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자연적 본성 그 자체로 이제 다시 되돌아가서 살아갈 수 있나요? 그런 건 있을 수가 없죠. 결국 인간의 관점에선 유명론이 맞지만, 그 유명론의 옳음은 허구적 실재나 가치가 실존적으로 있다는 믿음을 가정하는 범위 내에서만 옳은 것입니다. 즉 없다고 봐야 하지만,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유발 하라리). 아주 모순적인 결론이지만, 이런 관념이 겸손의 근거를 가능하게 만들고, 윤리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죠. 적어도 이 지구상에 알려진 생명체 중에 허구를 상상하면서,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을 가진 종족은 우리들 인간 밖에 없습니다. 변신론 문제를 최초로 제기했던 에피쿠로스조차, 무신론까지는 주장하지는 않았어요. '신은 존재하되 인간의 생활이나 세계의 운행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 스스로 축복받은 존재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선악과 죄의 문제등을 신의 탓으로 돌리지는 말자', 는 관점을 유지했죠. 현대적으로 보자면 '이신론'에 해당됩니다. 그가 보기에는 신의 존재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러한 믿음과 그것을 통해 도출되는 도덕과 질서들이 우리에게 고통보다는 쾌락을 많이 주기에 유용하다는 겁니다. 즉 올바른 질문은 어떤 믿음들이 우리에게 복과 해악중에서 어떤 것을 더 많이 주느냐를 따지는 거지, 믿음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은 무한소급으로 귀결되고 바람직한 어떤 결론도 제공해주질 않는다는 거죠. 그렇담 무신론자들은 과격하게 전통에 대한 공격에 집착하기 보단, 그 관념들이 우리에게 주는 복을 존중해주고, 유신론자들도 역시 신존재 증명에만 매달리기 보단, 그 믿음이 제시하는 선의 길을 스스로 행하는 것만이 중요하죠.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신론자들보다 더 그릇된 행동을 저지르면서, 그 행위를 신의 뜻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이를테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반면에, 선과 악의 실재를 전혀 믿지 않고 그런 가치가 무의미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타인에게 선행을 배풀수 있을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그래도 가장 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은, 정부나 기업도, 시민단체도 아니고, 적어는 아직까지는 종교인들이죠.
많은 현대인들이 우울증을 겪는이유가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말이 마음에 와닿네요.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더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건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분명히 과학적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치에 맞지않는 것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신비로운것,영적인것,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믿고싶고 의지하고싶어하는것 같습니다.
덕분에 늘 많이 배워갑니다. 늘 좋은 영상 많이 만들어 주십시오 !
그동안 왜 몰랐는지 안타깝네요
명쾌하고 깔끔한 강의 감사합니다
저는 극도로 현실주의자라.. 솔직히 교회가서 돈내고 기도하고 절가서 1000배하는 시간과 돈보다 스스로에게 자기계발하고 가족과 시간을보내고 운동하고 공부하는게 진짜 도움이 되는 행동인거같습니다.. 자식이 시험을 잘 보기를 원한다면 기도나 절을 할게 아니라 그 시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학원이나 과외가 필요한지. 아이의 공부습관이나 태도는 잘 갖춰저있는지 알아보는게.맞지... 기도나 절한다고 뭐가 바뀌나 싶다
내용이 아주 알차네요. 신학이 종교인에게만 한정되는 영역이 아닌 인류 전체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오랜만에 영상이라 더욱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기독교인 사람은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이네요.. 저는 한때 (아니면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인이지만, 요샌 교회도 못나가고 좀 뒤숭숭하네요. 정말 가끔씩은 신이 정말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어쩌면 내가 잘된게 신이 해결해준게 아니라 내가 잘했거나 아님 내가 단지 운이 좋았거나 그런 생각을요.. 이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좋은 조언을 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회의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썩 같이 믿는 것이 신앙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끈임없이 의심하면서도 놓지 않는 것이 신앙 아닐까요?
찰스 테일러에 관심 갖게 되면서
영상 보게 되었네요
[불안한 현대사회] 참 좋네요
지금으로서는 사회학자 같은 느낌이 더 드네요
현대사회와 현대인을 이해하려는데 도움이 되네요
좀 더 관심 가져보려 합니다
좋은 영상 고맙습니다 !
나 필기까지 하면서 두번 봤어..필기하니까 이해가 쏙쏙되네 💞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늘 재밌게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신은 무엇인가?"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은 저의 오랜 숙제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여러 책이나 강의를 듣곤 했는데, 결국 지금은 '인간의 영혼'이 곧 '신'이라는 것에 도달했습니다. 동물은 영혼이 없는 육신의 존재, 사람은 육신과 영혼의 혼합 존재, 신은 육신이 없는 영혼의 존재인 것이죠.
💚🙏🏻✨
가치가 붕괴되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상관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합리성과 도덕성 간에 균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구독자 1000, 축하합니다.
왜 조회수가 낮은지 이해가 안되네요 곧 떡상 하실겁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댓글 하나로도 보람을 느낍니다 ㅎ
자막이 없어서일까요? 필기하려면 자막이 필요하거든요. 저는 멈춰서 필기하거든요. 찰스테일러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Nozick의 distributive justice에 관한 영상 가능한가요?
이미 있습니다. 자유지상주의 영상을 확인해보세요
우연히 다른 철학 채널중에서 변신론과 관련된 주제를 찾게 되었고, 맥락이 유관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 제가 그 채널에서 밝힌 견해를 그대로 옳겨 보겠습니다. 전혀 관계없는 뜬금포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면 그건 그저 제 능력의 불찰입니다.
-----
제가 보기엔 변신론: 즉 신의 존재와 본성에 관한 논증이 유도하는 질문은, "우리 인간이 기대하는 가치, 정의와 불의, 선과 악등에 실체가 있느냐느 물음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쩜 철학이 다루는 가장 까다로운 질문 실재론 vs 유명론의 논쟁으로 귀결이 된다는 거죠. 이 논쟁을 다룬 여러 철학 문헌을 찾아보았지만, 저에겐 이런 결론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중에 가장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자연의 관점에서 본다면 실재론이 맞습니다. 혹은 실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명론이 맞습니다. 왜냐구요? 현대 과학이 지금까지 증명한 대로 실재의 개념을 보자면, 인간이 기대하는 도덕적 가치들이 세계(자연) 그 자체에는 없다는 것이 합당하니까요. 그렇담 아주 까다로운 새로운 질문이 다시 제기되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자연의 관점에서 볼 수가 있나요?" 자연의 세계에는 인간이 기대하는 도덕과 정의, 선악은 분명히 없어요. 하지만 그런 개념들이 실재적이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자연적 본성 그 자체로 이제 다시 되돌아가서 살아갈 수 있나요? 그런 건 있을 수가 없죠. 결국 인간의 관점에선 유명론이 맞지만, 그 유명론의 옳음은 허구적 실재나 가치가 실존적으로 있다는 믿음을 가정하는 범위 내에서만 옳은 것입니다. 즉 없다고 봐야 하지만,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유발 하라리). 아주 모순적인 결론이지만, 이런 관념이 겸손의 근거를 가능하게 만들고, 윤리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죠. 적어도 이 지구상에 알려진 생명체 중에 허구를 상상하면서,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을 가진 종족은 우리들 인간 밖에 없습니다.
변신론 문제를 최초로 제기했던 에피쿠로스조차, 무신론까지는 주장하지는 않았어요. '신은 존재하되 인간의 생활이나 세계의 운행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 스스로 축복받은 존재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선악과 죄의 문제등을 신의 탓으로 돌리지는 말자', 는 관점을 유지했죠. 현대적으로 보자면 '이신론'에 해당됩니다. 그가 보기에는 신의 존재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러한 믿음과 그것을 통해 도출되는 도덕과 질서들이 우리에게 고통보다는 쾌락을 많이 주기에 유용하다는 겁니다. 즉 올바른 질문은 어떤 믿음들이 우리에게 복과 해악중에서 어떤 것을 더 많이 주느냐를 따지는 거지, 믿음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은 무한소급으로 귀결되고 바람직한 어떤 결론도 제공해주질 않는다는 거죠.
그렇담 무신론자들은 과격하게 전통에 대한 공격에 집착하기 보단, 그 관념들이 우리에게 주는 복을 존중해주고, 유신론자들도 역시 신존재 증명에만 매달리기 보단, 그 믿음이 제시하는 선의 길을 스스로 행하는 것만이 중요하죠.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신론자들보다 더 그릇된 행동을 저지르면서, 그 행위를 신의 뜻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이를테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반면에, 선과 악의 실재를 전혀 믿지 않고 그런 가치가 무의미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타인에게 선행을 배풀수 있을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그래도 가장 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은, 정부나 기업도, 시민단체도 아니고, 적어는 아직까지는 종교인들이죠.
5분 뚝딱철학 을 모티브로 만든 채널인가여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맞습니다
형..
3분이라메...
니체가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들었는데...뒤에 오는말들은 신을 죽인 인간에대해 비꼬는말?처럼 생각하게 되네요 저는
니체는 무신론자 맞아요. 신이 없어지면 변하게될 사회가 두려웠던거지
ㅋㅋㅋ 신을팔아 호의호식 하는자를 누가믿냐
상식적으로 신을 믿고 기도해서 그것도 헌금까지 해서 남는게 뭐냐
ㅋㅋㅋ 돌보고 기도하고 나무보고 기도하고 달보고 기도하고 ㅋㅋ 뭔짓거리냐
차라리 기도할시간에 바라는것에 대한 노력을 해라 ㅎ
별 의미 없는 조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