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품위 있는 유튜브를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절한 스토리, 그에 걸맞는 영상, 나긋나긋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의 해설. 무엇보다 역사를 가쉽거리로 대하지 않고 그 안에 숨어있는 비의와 진실을 가려내는 진실성 있는 태도.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한 편을 보면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듯한 뿌듯한 느낌이 들어갑니다. 좀더 일찍 접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콘텐츠 부탁합니다. ^^
경순왕 직계손이라 10년전에 종친회에서 여기 연천에 제사를 지낸다고 모인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왜 경순왕릉이 경주가 아니라 연천에 있지 하고 궁금해 했었는데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시 김문수 도지사가 종친회에 1억을 기부했다고 해서 김문수 전 도지사분이 경주김씨 종친회인걸 그때 알았네요
사망한지 800여년이 지나 영조시대 경주김씨 노론이 집권하면서 연천에 경순왕의 비석과 석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시작된거네요. 지금 비석은 1747년 영조시대때 만든 것이고 옛날 비석은 없네요. 이 원본 비석이 있나요? 이게 없다면 거의 가공의 스토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대체 이런 왜곡된 가묘는 누가 만드는건지 모르겠네요...우리나라 삼국시대 묘는 대다수는 중국에 있지 국내에는 왕릉이 없습니다. 지방호족 귀족급 무덤밖에 없습니다. 증거가 나오고 묘비의 주인과 신분명이 명확하게 나오는 무덤만 칭호를 붙여야합니다. 누구누구로 추정된다고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개경에서 연천까지 100리가 넘지요? 40KM이상 인거 같은데요? 그리고 고려시절에 길이 경주로 가는 길이 연천으로해서 갔을까요? 조선시대 발견이 되었다고 하면 500년이 넘었다는 이야기인데 진짜 경순왕의 능은 맞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네요. 이거는 면밀히 검증해 봐야 할것 같은데요?
역사는 그냥 담담하게 역사로서만 이렇게 서술하고 그 가치에 대해서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도록 하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경순왕...... 그의 행동이 잘 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고자 나라를 넘긴것인지... 명확하게 알 도리가 없습니다. 두가지 모두 상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그의 행적에 대해서 이런 판단이라도 가능했던 것은..... 고려가 승자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고려가 아닌 백제가 난국을 타개하여 최종 승자가 되었더라면.... 경순왕은 힘없고 판단능력도 없고 스스로만 살고자 남은 백성을 버린 희대의 못난이 왕으로만 남았을테지요. 이런 종류의 판단은 저 당시에만 머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말의 고종을 비롯한 왕족들의 행동에서도 비슷한 모습들이 보이니까요. 결국 다들 살아남고자 최선의 길을 선택했을 뿐이지요....... 그것에 대해 후대에서 결과론적으로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칭송하기도하고 욕하기도하고.... 고대로부터 경순왕과 같은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그게 오랜세월이 흐른것은 이렇게 담담하건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상이었네요... 좋은 설명 늘 감사합니다.
이 땅의 가묘들을 어찌하면 좋나? 이런거 보면 조선의 기록은 꽤나 악랄해 보이기 까지 함. 강감찬 무덤을 숙종 때 멸문하며 잃어 버렸다는 둥. 근대에 찾았는데 비석을 누가 훔쳐 갔다는 둥 . 조선시대 이전의 무덤들은 하나 같이 카더라에 그 근거가 없음. 그러니 역사학자들은 싹 빠지고 아마츄어들이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며 "그 무덤 맞다니까" 이러고 있음.
포석정의 연회가 아니라 신라를 구원해달라는 구국의 제를 올리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입니다. 그래도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그렇게 함부로 말하시면 안되지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다른 점이 많습니다. 이렇게 자꾸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을 하시면 안되지 않을까요, 역사는 신중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교육이기에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연회를 하다 잡혔다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동일하게 나옵니다. 연회가 아니라 구국의 제를 올리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국의 제를 올리고 있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셨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을 뒤집을만한 근거가 뭐죠?
안그래도 연천으로 가는도중
경순왕 릉이 왜 여기 있을까 하고 궁금해 왔는데
이제서야 알았네요
아름다운 설명 감사 드립니다
차분하게 정확한 발음으로 설명해 주시니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ㅡ
이렇게 품위 있는 유튜브를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절한 스토리, 그에 걸맞는 영상, 나긋나긋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의 해설. 무엇보다 역사를 가쉽거리로 대하지 않고 그 안에 숨어있는 비의와 진실을 가려내는 진실성 있는 태도.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한 편을 보면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듯한 뿌듯한 느낌이 들어갑니다. 좀더 일찍 접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콘텐츠 부탁합니다. ^^
❤❤❤❤❤
신라시대 그마지막끝을 장식한 경순왕의 일대기 ᆢ. 왕건이 그래도 너그럽게 대해줘서 천수를 누린거죠ᆢ 현실적으로 나라를 바치는게 현명할수도 있었던듯 ᆢ 마의태자는 ᆢ그냥 나라잃은 설움을 몸으로나마 울분을 표했던듯 ᆢ군생활7년중6개월을 근무했던곳 ㆍ25사단. ᆢ비룡부대 연천 고랑포 ᆢ 감회가새롭네요 ᆢ감사꾸벅
왕건은 정치적으로 신라왕족들의 반란을 봉쇄코저 대우해줌ㆍ
개경서 경주는 먼 거리라서 당시 고려는 건국초기라서 지방호족세력을 완전히 장악 못하고 있음ㆍ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목적으로써 명분용ㆍ
❤❤❤❤❤
망국군주 경순왕. 존재자체가 희미했었는데. 희생을 막기위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름 최선의 선택을 했네요. 주피디님 덕분에 유익한 공부가 되었습니다. ^^~ 궂은 날씨에 고생많으셨습니다 😅
늘 기다리게 되는 주 피디님의 역사 컨텐츠와 멋진 내레이션입니다.
비 내리는 날 경순왕릉비의 총탄 자국을 보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피디님의 역사여행은 차분히 설명해주셔서 지난영상도 .다시보게되고 역사 공부도 하게되어 감사합니다.
주피디님 목소리 최고입니다 찬~찬히 설명을 넘~잘하십니다~짱~~
품격있는 고급스러운 해설, 최고의 프로그램 입니다.
주피디님 얼굴좀 보여주세요.
경순왕 묘는
6.25 전쟁을 거치며 다시 잠시 세간의 관심에서 잊혔다가 1970년대 군사분계선을 시찰하던 육군 대위에 의해 다시 발견
재실이나 주변 넒은 공간은
근현대 조성한걸로 알고 있음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
경순왕 직계손이라 10년전에 종친회에서 여기 연천에 제사를 지낸다고 모인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왜 경순왕릉이 경주가 아니라 연천에 있지 하고 궁금해 했었는데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시 김문수 도지사가 종친회에 1억을 기부했다고 해서 김문수 전 도지사분이 경주김씨 종친회인걸 그때 알았네요
대구금복주 사장님도1억기부했어요30년전
@@kimtaenam4086 금복주 지금도 있나요?
역사공부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언제 이곳도 다녀와야 겠네요
엄마가 후손이십니다. 종친회(?)에서 제사나 모임있을때 우편물이 오곤합니다. 엄마덕분에 신라의 건국부터 마의태자까지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팔공산 전투때 전사한 8명의 공신들중 한 분의 후손이고 신숭겸은 증조할머니의 조상이 되십니다.
훌륭한 조상을 두셨으니 부끄럼없는 가치있는 삶을 사실거라 생각합니다
멋지십니다 조상님들께서
이해는잘모르겠지만그래도봅니다😂감사합니다🙏👏👏👏👏👏☂️
그곳은 빈도가 초병(수색중대 산소에서 낮잠도) 때 근무했던 명승지 애 많이 쓰셨어요
주피디님고생많네요--감사합니다
역사의 이면을 역사여행을 통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ㆍ주피디님 열렬히 응원합니다 ㆍ
열심히 구독합니다
자주 올려주세요 공부가 많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주피디님 영상 내용처럼 학교다닐때
잼나게 듣기 좋았으면
주피디님 설명은 최고
강원도 인제에는 신라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 무덤이 있어요. 그곳도 소개해주세요
경순왕릉은 아담하면서 조용합니다
그시절을 상상해보면서 릉주변을 산책해봅니다
정발장군도 나중에 부탁드립니다
❤❤❤❤❤
주피디님 늘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경주김씨 상촌공파입니다 조상이라면 조상이신(?) 경순왕의 생애를 듣게 되어서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백제 의자왕도 당나라에서 천수를 누렸다지요? 한국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합니다.
경주에 매장되면 구신라계의 동요가 걱정되어 막았다는 설도 있는데 사실인가요?
그 또한 일리있어 보이는군요.
왕릉이 도성에서 100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건... 명분일 따름이고 말이지요.
망국왕의 가슴 아픈 사연 잘봤습니다! 죽어서도 경주에 가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이 그저 안타깝네요! 비오는 날씨에 수고 많이 하셨네요!!!
공산 전투하니 생각나는건데 저희 시조님이신 춘천에 신숭겸 장군님 묘소 소개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춘천에 박사마을도 있다고 합니다.ㅎ
저 오늘 아침에 임진강 오두산통일전망대 갔다왔어요
공부 잘하고 갑니다
사망한지 800여년이 지나 영조시대 경주김씨 노론이 집권하면서 연천에 경순왕의 비석과 석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시작된거네요. 지금 비석은 1747년 영조시대때 만든 것이고 옛날 비석은 없네요. 이 원본 비석이 있나요? 이게 없다면 거의 가공의 스토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실물 없으면 없던거냐? 너의 5 대 할아버지 무덤 있냐? 없으면 네 5 대 할아버진 없어. 넌 사생아야. ㅎㅎㅎ
@@경찬안-i4c천재십니다
@@경찬안-i4c ㅉㅉ,왜 그리고 사니??
@@younghuh3642 너도 가공의 5 대 할비냐?
@@경찬안-i4c증거물이나 흔적이 있어야겠지요
주 피디님ㆍ안녕 하셔요 ?
👍👍👍👍👍
저의 직계조상님 이신 경순왕 김 부 할아버님께서 누워계신 묘입니다 또한 마의태자 김 일 할아버님께서도 저의 직계 조상님이십니다
나는 경순왕 세째아들 후손입니다경주김씨학주공파
고려가 경순왕을 신라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고려 신하로 인정한 거네요. 개경에서 100리를 못 벗어나게 했군요.
당시 신라가 고려와 전투를 한다는 건 불필요한 희생이죠
신라의 망국 군주 경순왕
망국 군주 였으나 본인은 부족함
없는 생활 속 천수 를 누리는 역사 의 모순...
영상 감사하고 공부 많이 했습니다
공감합니다 ~
경순왕과 낙랑공주의 딸 헌숙왕후가 경종의 왕후가 되지만 불임이라 손이 끊어지네요. 천추태후의 동생 헌정왕후 황보씨가 현종의 모친이니 신라계에 편입이 됩니다. 현종의 장인 김은부, 왕비족 인주 이씨도 신라계 호족입니다.
기울어가는 망국에 군주랍시고 후백제와도 사이가 안좋은데 고려에 대항해서 본인 포함 백성들까지 도륙 당하는게 정상은 아니죠
망국의 마지막 군주이고, 스스로 나라를 넘겼지만, 후세에서의 평가가 나쁘지 않은 몇 안 되는 왕. 여긴 그래도 관리가 되나보군요. 고려 마지막왕 공양왕릉 영상 보니 거긴 잡초가 무성하던데...
대체 이런 왜곡된 가묘는 누가 만드는건지 모르겠네요...우리나라 삼국시대 묘는 대다수는 중국에 있지 국내에는 왕릉이 없습니다. 지방호족 귀족급 무덤밖에 없습니다. 증거가 나오고 묘비의 주인과 신분명이 명확하게 나오는 무덤만 칭호를 붙여야합니다. 누구누구로 추정된다고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일본사관에 잡혀 왜곡이 글구 시학자들이 연줄로 연결됐는지 연구를 안하는것 아닌지..
개경에서 연천까지 100리가 넘지요? 40KM이상 인거 같은데요? 그리고 고려시절에 길이 경주로 가는 길이 연천으로해서 갔을까요? 조선시대 발견이 되었다고 하면 500년이 넘었다는 이야기인데 진짜 경순왕의 능은 맞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네요. 이거는 면밀히 검증해 봐야 할것 같은데요?
영조 때 라면 거의 700여년 후인데 나도 과연 저 무덤 이 경순왕 의 무덤 이 맞나 생각 되더군요. 특히 고려 실록 을 세종 이 다 없에서 고려사 를 잘 알지 못하는데?? 영조조 때 갑자기 발견 되었다는건 좀 어패가 있지요.
역사는 그냥 담담하게 역사로서만 이렇게 서술하고 그 가치에 대해서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도록 하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경순왕...... 그의 행동이 잘 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고자 나라를 넘긴것인지... 명확하게 알 도리가 없습니다.
두가지 모두 상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그의 행적에 대해서 이런 판단이라도 가능했던 것은..... 고려가 승자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고려가 아닌 백제가 난국을 타개하여 최종 승자가 되었더라면.... 경순왕은 힘없고 판단능력도 없고 스스로만 살고자 남은 백성을 버린 희대의 못난이 왕으로만 남았을테지요.
이런 종류의 판단은 저 당시에만 머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말의 고종을 비롯한 왕족들의 행동에서도 비슷한 모습들이 보이니까요.
결국 다들 살아남고자 최선의 길을 선택했을 뿐이지요....... 그것에 대해 후대에서 결과론적으로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칭송하기도하고 욕하기도하고....
고대로부터 경순왕과 같은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그게 오랜세월이 흐른것은 이렇게 담담하건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상이었네요...
좋은 설명 늘 감사합니다.
연천 경순왕비
경기 연천의 경순왕 묘는 가짜묘 아닌가요?
제가 알기로 중국에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책보고님 영상좀 보셔서 잘아시는군요 역사가 많이 왜곡됫죠 일제시대때
동감입니다
천년이 넘도록 놔둔게 신기하다 ㅎㅎ
저도마의태자의후손입니다😊😊
아닌데, 고려는 대륙에 있었는데,
강화도 도 산동반도에 있다는데.
대륙 신라, 대륙 백제 인데.
패군
외세를 이용해서 통일하고 지 죽을 때 되니까 신라를 바치고
비겁하다.
한반도에는 신라의 유적지가 없습니다ᆢ
거짓말하지 마세요 ᆢ
상시 전쟁시대에 국방을 튼튼히 못하면 망하는거 알았을텐데 .. 연회라니 ?
몸매 별루인 쭈피딩 ❤1❤❤❤❤❤❤
이 땅의 가묘들을 어찌하면 좋나? 이런거 보면 조선의 기록은 꽤나 악랄해 보이기 까지 함. 강감찬 무덤을 숙종 때 멸문하며 잃어 버렸다는 둥. 근대에 찾았는데 비석을 누가 훔쳐 갔다는 둥 .
조선시대 이전의 무덤들은 하나 같이 카더라에 그 근거가 없음. 그러니 역사학자들은 싹 빠지고 아마츄어들이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며 "그 무덤 맞다니까" 이러고 있음.
포석정의 연회가 아니라 신라를 구원해달라는 구국의 제를 올리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입니다. 그래도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그렇게 함부로 말하시면 안되지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다른 점이 많습니다. 이렇게 자꾸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을 하시면 안되지 않을까요, 역사는 신중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교육이기에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연회를 하다 잡혔다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동일하게 나옵니다. 연회가 아니라 구국의 제를 올리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국의 제를 올리고 있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셨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을 뒤집을만한 근거가 뭐죠?
그러게요 구국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역사서 어디에도 없는걸로 아는데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어디에 있나요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몫이지요. 승자의 입장에서 패자의 기록을 잘 마무리 해줄 이유가 있을까요,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라고 곧이 믿으면 안되지 않을까요
마의태자는 웃기느 놈
마의태자는 요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마의태자라고 쓰진 않았지만 자신들의 기원이 고려라고 써있다 요사에 나온다
몇칠전에.경순왕릉갔다왔는데.관리인이.이상이.참좋던데
왕은 무슨왕 망한나라의왕은 없다
팔공산이 중국에도 있어 ~ 경순왕 무덤 증명은 된거냐 ?
개성이 개경이라 하는거지 ?
근데 평양이 서쪽이야 ? 서경천도 해서 평양으로 가자며 ~
상나면 김부리.마이태조 전설이있는곳.김부가마의태자인줄알았드니그아비 경순왕이었네.에라 고종같은자여당신은 왕이아니라 일개필부보다못한자로다.
어쩌라고
망국의 임금은 무조건 필부보다 못한건가요 경순왕 견훤 공양왕 고종...
나라의 흥망성쇠는 수십 수백년동안 서서히 이루어지죠 이것 또한 신이 아닌 이상 거스릴 수 없는것이고 후손들은 그것들을 교훈삼아 온고이지신 해야는데 그 또한 어렵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