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도시국가 이면서 아주 수준 높은 도시를 형성 하고 깨끗하고 청결하게 생활을 했던 것인가 봅니다.다만 난방을 구들이 아닌 숫을 이용한 난로 형식이 다른 나라들 난방 방식과 같으네요.구들 난방은 고려에서 시작 된나봅니다.구들 난방이 정말 휼륭한 난방입니다.취사도 하고 실내도 뜨시고 굴뚝으로 연기가 환경을 청결 하게 해주고... 귀한 방송 감사 드려요.응원합니다.
@@불빛명화 구들난방은 대륙거주시기때의것이고 이후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구들장ㆍ굴뚝ㆍ가마솥ㆍ산이름ㆍᆢ언덕이름ㆍ내이름ㆍ강이름ㆍ지명ᆢ등을 갖다붙이고 위안 삼으며 살았지요ㆍ 그래서ᆢ대륙 구석구석에 한반도 안의 지명이나 비슷한 이름들이 않이 있는겁니다ㆍ수 우리말도 한자를 85%쓰는것은 다 그런 이유때문입니다ㆍ대륙생활할 때부터 한자를 우리식으로 사용하였지요ㆍ 우리조상님들의 삶의 흔적은 대륙땅에 헤아릴수없이 많이 남아있답니다ㆍ고려말 ᆢ조선시대 ᆢ한반도 본격 이주시대ᆢ 고구려ㆍ백제ㆍ신라는 한반도에 없엇ㅆ다( 책이름 ᆢ이책의 저자분은 지금 충청남도에 생존해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
구들장이나 구들이나 같은 말아닌가요? 세계 어느곳을 봐도 구들장을 사용 하는 것은 우리의 조상들 말고는 못봣습니다. 동남아 선진국들 다 그냥 불을 지펴서 굴뚝도 없이.,일본도 그렇고 불을 사용...우리 조상님 들은 불을 취사에 사용 하고 구들장에 난방용 으로 쓰고 오늘날 보면 신발 벗고 실내 들어 가는거 보면 청결 하기도 하고... 신라때는 구들장을 사용 안했나봅니다.
이상하긴 한거임 왕궁이 잇엇다면 터가 남아 잇어야하거든 황룡사지도 터는 남아잇는데 왕궁터가 없어질리는 없다고 경주는 고려로 넘어갈때 항복을 햇기때문에 도시가 초토화된게아니고 유지됏다고 봐야하고 그후로도 경주는 울나라 중요도시로 꾸준히 살아남앗던도시거든 왕궁이 실제잇엇다면 분명히 흔적이 남아잇어야함
@@kjo7181 님이 그렇게애기하는게 치욕임.. 중국 공산당 이전 청나라가 신라의후예가(김씨)만든나라고 중국에 선덕묘. 불상등. 신라마을26개.. 김유신거리도있으며 심지어 당시 일식기록을 조사한결과 신라의 위치가 대륙이라고나옴.. 이래도 992년이나 존재한 나라가 겨우저정도만먹고 사라짐? 2024년도인지금 1100년전으로 돌아가면 신라를 만날수있음.. 992년이 진짜 말도안되는 역사인거임..
@@kjo7181 심지어 서울시 공식자료에 따르면 17세기 중반에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호구수가 4만호(20만명)을넘고 18세기 후반에 가서야 30만명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남쪽에 치우치고 커다란 강이나 평야가 없는 신라 수도에 무려 18만 8936 가구가 살았다는게 말이되는사실일까요?
지극히 맞습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등의 사서로 비정을 해보면 맞지 않죠ㅡㅡ 특히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식(이것은 시간이 어마어마한 수백만년 억년단위 정도 아니고서는 갑자기 바뀔수 없는)기록도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역사 사기꾼등 일제 강점기 일제관변어용학자들과 그 제자들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조작왜곡된 삼국..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우리의 위대한 역사 삼국..
@@김정은-j8f 한반도 경주도 신라이고 옛부터 "강남"이라고 불리운 지역 (오늘날 상하이, 항저우, 쑤저우, 양주, 허페이 일대) 이 곳도 신라죠.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고작 한반도 그것도 경상도에 쳐박혔던 나라였을 것이라고 보면 안되요. 해상왕 장보고를 우리가 해석할 때, 고작 한반도 바다 정도로 동북아 해상 물류 패권을 거머줬다는게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게, 대륙을 통일했다는당나라의 선박이 전라남도 완도에 들려서 통행세를 내고 갑니까? ㅎ 신라의 영역이 대륙의 양자강 유역의 강남과 한반도와 그 사이 바다를 무대로 누볐던 해상제국의 신라가 있었고 그 시절 가장 맹위를 떨쳤던 대선단을 이끈 해상왕 장보고가 있었다고 해석하면 자연스럽지요. 구글지도에서 후백제의 군사 거점이었던 羅州城 (나주성)을 검색해보세요. 양자강 남쪽에 나주성터 라고 나오고 그주변이 바로 후삼국 시대 때 "나주" 라는 지역이었습니다. 거란의 침입을 피해 현종이 배를 타고 나주까지 피난갔던 그 나주입니다. 거란의 왕이 나주가 어디에 있냐고 묻자 하공진이 말하길, 그곳은 거리가 아주 멀다고 하자 거란은 추적을 포기했습니다. 머나먼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려온 기마민족 거란이 과연 경기도 인근에서 전라도 나주가 그렇게도 멀어서 포기했을까요? 아니면 대륙 동부의 드넓은 강남 지역의 나주일까요.
구들은 나무나 푸성귀등을 태워서 연기를 내는 구조라 고조선시대에도 고구려 시대부터 쓰였던겁니다 다만 신라경주는 숯을 사용했기에 구들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도시가 워낙방대하고 무역을통해 재력을키워 부강했기에 숯을사용했던 신라입니다 통일신라시대도 경주를 벗어난 곳에는 구들을 사용했습니다
왕궁 규모의 성이 발견 된다 하더라도 왕궁은 아니고 그 지역의 중심 도성일 뿐일 겁니다. 왜냐면 신라의 수도 경주는 지금의 경주가 아닌 대륙에 있던 경주이니까요. 기록에 있는 경주의 설명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그 규모나 호구 수를 봐서는 지금의 경주시 인구보다 인구수도 더 많았습니다.
맞습니다. 안휘성 허페이合肥市가 금성일 가능성이 높고. 저장성 닝보가 또다른 수도인 월성이라고 합니다. 기후도 아열대기후로 2모작도 가능합니다. 혹독한 겨울이 있는 한반도와. 겨울이 거의없고. 본래 대륙에서 시작한 나라라면 어디에 수도를 정할까요. 허페이시가 경주보다 11배 크고 지금 인구는 980만명입니다. 2000년된도시가 계속 사람들이 살았다면 그 정도는 되야죠. 인구통계학적으로, 기후학적으로 봐도. 어디에 살겠습니까?
지금의 도농통합 경주시 영역과 거의 맞먹을 지경으로 (그러니까 지금의 읍면영역 변두리까지) 도시 영역이 많~~이 확장된 신라 고도 서라벌.. 현재 미국, 일본 등의 대도시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스프롤 현상이 과거 신라 시대 경주에도 있었군요.. 미국, 일본은 단독주택 위주라 스프롤 현상이 심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나라는 보시는 것처럼 요즘은 아파트, 빌라 등 다세대 위주로 집을 짓기 때문에 그만큼 스프롤 현상이 덜하지요..
애초에 사라진게 아니고 퇴적 작용으로 파묻힌 겁니다. 중국의 고대 중세 왕국들의 흔적도 그렇게 파묻혔다 발굴된 경우도 많구요. 한나라의 장락궁만 해도 파묻혀있었죠. 하다못해 남대문만 해도 50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조성 초기에 비해 몇m나 파묻혀 있던거 생각해보면 ...
지금의 울산의 상당 부분도 경주 왕경이었어요,,암각화가 있는 곳도 60년대까지도 울주군이 아니고 월성군이었습니다,동해 바다에서 경주로 어떻게 들어왔을까요?형산강이 아니고 동해에서 울산 태화강으로 들어와서 경주 시내로 물류가 들어온 것이죠,,경주 양남의 대왕암,주상설리가 있고 7번 국도따라 조금 내려가면 울산에 대왕암이 또 있어요,대왕암에서 감은사까지 얼마 안되지요,과거 왕경은 울산의 상당부분을 포함시켜야하는 것입니다,
경주에서 신라역사공부 40년전 경주신축 박물관 에서 고고학자교수님들 강의를 듣고 신라 992년 역사공부 했는데. 지금의 반월성이 왕궁터였고.안압지가 연회를 배풀든곳 . 김유신 장군집터 우물.첨성대는 27대 선적여왕때. 만들어진것. 56대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넘길때 .안압지에서 항복했다고 배웠는데. 992년 도읍지라 땅만파면 금관 신라유물들이 솓아져나오고 경주 남산의불상들 포석정 왕궁.등등. 한번도 신라 도읍지가 다른곳에 있다고 생각하지않았슴.
@@이재성-k1i 신라왕궁터가 왜 없어? 양자강 주변에 대도시에 해자가 있는 왕궁터가 다 있구만, 구글맵으로도 확인 가능해요. 책보고같은 애들이라 주둥이 털기 전에 삼국사기, 고려사나 좀 읽으시지 그래요? 아주 무례하고 형편없는 인간이 유튜브에서 주접 방정을 떠는 꼴이 우슬프네요. 신라 수도 금성이 전성기 인구가 60~80만명으로 사학자가 그러던데 경상도 경주가 1000년 전에 어떻게 그정도 인구가 살 수 있는 환경인가요? 그럴 의문을 품을 정도 두뇌이면 책보고 같은 부류에게 헛소리 떠든다고 감히 얘기 못하겠지. 그게 당신 수준이니까요. 조선왕조실록 호구조사에 현종10년(1669년) 한양의 인구가 19만4030명이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보다 아주 오래 전에 경상도 구석지에 있는 경주가 인구 80만? 아시아 그 유래가 어디에도 없는 1000년 역사의 나라에? 동북아시아 해상 패권을 제패했다는 나라가? 문무왕 때에는 황제의 연호를 사용했다는 나라가?
나도 약간 의심하는건데 어쩌면 일본은 백제에서 신라로 또 한번 구성원이 바뀐게 아닌가 싶은... 그니깐 일본 연구가 너무 중요함 일본 지식인들이 고민하는 일본의 정체성은 고대한국의 카피캣 수준임 그게 누구껀지 뭔지 모르는게 웃길따름 왜냐면 한국 지식인들이 그게 고대한국의 정체성인지 알아보질 못함ㅋ 일본은 유입문화라 그게 뭔질 모름ㅋ 둘 다 혼란한 상태 그래도 일본은 그것들을 일단 보존 킵해둔 상태이긴 한데 한국은 그러지도 못하였음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본국인지라 미묘하게 남아서 유령처럼 떠도는 것
고대 조상들은 대륙과 한반도를 아울러 함께 통치했다. 대륙에 수도를 삼아 성장한 후 전란의 위기를 지속 겪어 점점 한반도로 이동해 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반도에는 왕조의 후기 통치자 시대에 한반도로 이동하였기에 그들의 무덤 유적만이 남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간혹 그보다 앞선 시대의 묘지가 있다면 제사를 위한 목적으로 선대 조상의 묘를 대륙 본토로부터 이장한 것일 수도 있으려니 잘 살펴 연구하길 바랍니다.
신라는 로마야 신라를 바실라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그리스어로 로마라는 의미 그리고 숯으로 난방을 한 것은 일본 가옥이 그렇지 않음? 신라도 일본이라는 증거도 많더라고. 신라금관의 옥이 딱 일본인들의 옥 형태임. 일본은 현 일본만 일본이 아니고 돌궐과 아랍권을 제외한 문명이 일본이었던 것 같음. 우리는 둘궐로 오스만제국이 우리역사.
경주는 도시국가 이면서 아주 수준 높은 도시를 형성 하고 깨끗하고 청결하게 생활을 했던 것인가 봅니다.다만 난방을 구들이 아닌 숫을 이용한 난로 형식이 다른 나라들 난방 방식과 같으네요.구들 난방은 고려에서 시작 된나봅니다.구들 난방이 정말 휼륭한 난방입니다.취사도 하고 실내도 뜨시고 굴뚝으로 연기가 환경을 청결 하게 해주고... 귀한 방송 감사 드려요.응원합니다.
@@불빛명화 구들난방은 대륙거주시기때의것이고 이후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구들장ㆍ굴뚝ㆍ가마솥ㆍ산이름ㆍᆢ언덕이름ㆍ내이름ㆍ강이름ㆍ지명ᆢ등을 갖다붙이고 위안 삼으며 살았지요ㆍ 그래서ᆢ대륙 구석구석에 한반도 안의 지명이나 비슷한 이름들이 않이 있는겁니다ㆍ수
우리말도 한자를 85%쓰는것은 다 그런 이유때문입니다ㆍ대륙생활할 때부터 한자를 우리식으로 사용하였지요ㆍ 우리조상님들의 삶의 흔적은 대륙땅에 헤아릴수없이 많이 남아있답니다ㆍ고려말 ᆢ조선시대 ᆢ한반도 본격 이주시대ᆢ 고구려ㆍ백제ㆍ신라는 한반도에 없엇ㅆ다( 책이름 ᆢ이책의 저자분은 지금 충청남도에 생존해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
구들장이나 구들이나 같은 말아닌가요?
세계 어느곳을 봐도 구들장을 사용 하는 것은 우리의 조상들 말고는 못봣습니다. 동남아 선진국들 다 그냥 불을 지펴서 굴뚝도 없이.,일본도 그렇고
불을 사용...우리 조상님 들은 불을 취사에 사용 하고 구들장에 난방용 으로 쓰고 오늘날 보면 신발 벗고 실내 들어 가는거 보면 청결 하기도 하고... 신라때는 구들장을 사용 안했나봅니다.
우리 문화유산 심층 취재한 방송들 많이 제작해야함
어릴적 이분 목소리 들으며 잠들었던 기억에 지금도 이어폰 끼고 듣고 잔다
눈썹찐한 아나운서아니냐
귀한. 영상. 감사히. 잘. 시청하고. 감니다. 😂
슈발 나이먹을수록 이런프로가 넘나 재밌다
ㄹㅇ늙어가는듯
젊었을때도 이런프로 재밌었음
슈발 난 국딩때 부터 관심 있었음
난 유딩때부터
노땅 1티어 ..
1. 걸어서 세계속으로..
2. 역사 스페셜
3. 아침 드라마, 주말 드라마
그럼 애들은 뭐보는데..?
뮤뱅 음캠 엠카 엠넷 등등..
도시화도 좋지만 서울, 경주, 부여, 전주 수원화성은 문화재 복원이 필요합니다. 조상들의 훌륭한 역사와 문화를 상상의 범위로만 남기지 말고 많이 복원되었으면 합니다.
이상하긴 한거임 왕궁이 잇엇다면 터가 남아 잇어야하거든 황룡사지도 터는 남아잇는데 왕궁터가 없어질리는 없다고 경주는 고려로 넘어갈때 항복을 햇기때문에 도시가 초토화된게아니고 유지됏다고 봐야하고 그후로도 경주는 울나라 중요도시로 꾸준히 살아남앗던도시거든 왕궁이 실제잇엇다면 분명히 흔적이 남아잇어야함
반월성 터 지하 10미터쯤에 궁궐터를 찾았다그 지금 발굴 작업중인것 같아요.
왕궁 건축물들은 상당히 고급재료로
기와부터 기둥,대들보며 해체해서 갖다 쓰는경우가 많습니다, 기록에도 패망한 백제의 궁궐 기와를 모두 경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신라왕궁도 왕족과 귀족이 송도로
귀속하면서 옮겨갔을거란 추측을 할수있습니다,
신라 왕궁은 대륙에 잇으니 그렇지 경주는 휴양지이고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 2백년 이후 거대했던 평양성과 왕궁터 자체가 사라졌던것을 본다면 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시점에서 신라의 경주왕궁의 흔적을 찾는다는게 쉽지는 않았을겁니다.
대륙 좋아하는 것들은 그냥
중국가서들 살아라!
식상하니까 제발 대륙 대륙 거리지말고!
팔랑귀들도 아니고 상식이라는게
조금만 있어도 판단이 설텐데
무슨 지구평편설 환자들이랑 니들이랑
다를게 전혀 없어보인다!ㅉㅉ
옛것을 잊고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프로그램을 방영했으면 하는 간절합니다..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려야합니다..방송잘봐습니다..
안녕하세요. 너무나 좋은 영상 잘 보고 응원해요. 다음 영상에 만나요 💕💕💕☕️
이수빈😊
궁궐은 복원해서 관광지로 이용하면 좋겠네요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땅의 흔적을 제대로 찾아야 할텐데...왜 중국이 동북공정을 그리도 할려고 하는지...왜 일본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을때 우리의 옛영토를 지들 맘대로 선을 그었는지...이젠 제대로 밝혀야할 때인것 같습니다.
항상 경주갈때마다. 아쉬운. 생각이드는것이. 궁궐을. 작게나마
복원해놓음 좋겠다
경주는 늘 볼 것, 공부할 것이 참 많아요.
영어사전에서 SINO를 찾아보세요. 중국이나 동방을 뜻하는 단어로 나옵니다. 서방세계에 또는 서역에 신라로 지나대륙이 알려진듯합니다
비단,나침반,도자기. …
중국식 발음이 신루오우新罗
시청률이 안나와서 폐지되었겠지만 이런 방송이 그립다.
감사드리며 환절기 건강하시길.............
벽체에는 3*6의 황토벽돌을 사용 함.
경주는 제가53살았는데 아직도 모르는곳이많아요
성골, 진골도 아닌 1두품 평민의 후손은 모르는게 당연하죠
53살이면 아직 어리다
탐구를 해야되지 경주는
우수한 민족이
정착했단 사실은 현 경주지역주민이 아니면 모른다
경주 구정동/신계 일대엔
페르시아 혼혈이 거주한 사실
황룡사만큼은 꼭 복원 되었으면 합니다
저와 같은 염원을 가진분이 계셨네요
규모가 불국사 8배였다는 그 웅장한 황룡사...
@@구본엽-u9g 실데없는데 외화 낭비하지말자
문화재고 나발이고
경주시내 외 전부 공단 조성하는기 낫다
@@japanioi7242국내에서 재료를 못구하나? 외화까지?
저는 경주 김씨 상촌공파계의
후손인 26살의 여성입니다.
가족들과 경주에갈때만큼은
제가 경주 김씨 상촌공파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도시를 둘러보고는
했습니다
자부심을 가지실만 합니다.
뼈대 있는 집안...귀족이요.
안궁금하다
조선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씻어내야 한다.
신라가 개치욕아님...? 남에 힘 빌려서 겨우 먹은게 저정도
@@kjo7181 영산강은 일본 식민지였음... 알고 떠드삼.... 풉
@@kjo7181 님이 그렇게애기하는게 치욕임.. 중국 공산당 이전 청나라가 신라의후예가(김씨)만든나라고 중국에 선덕묘. 불상등. 신라마을26개.. 김유신거리도있으며 심지어 당시 일식기록을 조사한결과 신라의 위치가 대륙이라고나옴.. 이래도 992년이나 존재한 나라가 겨우저정도만먹고 사라짐? 2024년도인지금 1100년전으로 돌아가면 신라를 만날수있음.. 992년이 진짜 말도안되는 역사인거임..
@@kjo7181 심지어 서울시 공식자료에 따르면 17세기 중반에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호구수가 4만호(20만명)을넘고 18세기 후반에 가서야 30만명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남쪽에 치우치고 커다란 강이나 평야가 없는 신라 수도에 무려 18만 8936 가구가 살았다는게 말이되는사실일까요?
천년고도 경주,기원전 57년 부터 935년 멸망까지 박씨왕 10명,석씨왕 8명,김씨왕 38명으로
그 중 3명은 여왕이었으며 모두 56명의 왕이 천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경주에는 신라 왕궁터가 없습니다. 경주시에 궁궐터는 경주에 서라벌 땅에 없습니다.
경주시에 궁궐터는 없습니다. 지방도시 터 뿐입니다. 53개의 우물터는 지방도시 형태입니다.
궁궐터도 진짜 왕능터는 한반도 에는 없습니다. 궁궐 주추돌도 없습니다. 절터는 많았습니다.
지극히 맞습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등의 사서로 비정을 해보면 맞지 않죠ㅡㅡ 특히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식(이것은 시간이 어마어마한 수백만년 억년단위 정도 아니고서는 갑자기 바뀔수 없는)기록도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역사 사기꾼등 일제 강점기 일제관변어용학자들과 그 제자들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조작왜곡된 삼국..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우리의 위대한 역사 삼국..
중국 동대륙에 있습니다. 역사왜곡으로 한반도로 수축 시킨거
ㅋ뭔 개소리야 그럼 왕릉은 왜 여기잇는데
아니 왕릉이랑 신라의 왕의 유품이 쏘다지고...삼국유사에도 위치를 경주로 칭하고 고구려 역사나 백제 역사를 봐도 경주가 신라의 수도가 맞는데 뭔 뻘소리들이냐..
@@김정은-j8f 한반도 경주도 신라이고 옛부터 "강남"이라고 불리운 지역 (오늘날 상하이, 항저우, 쑤저우, 양주, 허페이 일대) 이 곳도 신라죠.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고작 한반도 그것도 경상도에 쳐박혔던 나라였을 것이라고 보면 안되요. 해상왕 장보고를 우리가 해석할 때, 고작 한반도 바다 정도로 동북아 해상 물류 패권을 거머줬다는게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게, 대륙을 통일했다는당나라의 선박이 전라남도 완도에 들려서 통행세를 내고 갑니까? ㅎ 신라의 영역이 대륙의 양자강 유역의 강남과 한반도와 그 사이 바다를 무대로 누볐던 해상제국의 신라가 있었고 그 시절 가장 맹위를 떨쳤던 대선단을 이끈 해상왕 장보고가 있었다고 해석하면 자연스럽지요. 구글지도에서 후백제의 군사 거점이었던 羅州城 (나주성)을 검색해보세요. 양자강 남쪽에 나주성터 라고 나오고 그주변이 바로 후삼국 시대 때 "나주" 라는 지역이었습니다. 거란의 침입을 피해 현종이 배를 타고 나주까지 피난갔던 그 나주입니다. 거란의 왕이 나주가 어디에 있냐고 묻자 하공진이 말하길, 그곳은 거리가 아주 멀다고 하자 거란은 추적을 포기했습니다. 머나먼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려온 기마민족 거란이 과연 경기도 인근에서 전라도 나주가 그렇게도 멀어서 포기했을까요? 아니면 대륙 동부의 드넓은 강남 지역의 나주일까요.
중국남부가 신라의 수도였기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발굴이 안되는것입니다.
중국 남부지역을보면 삼국유사에 나와있는 지명이 그데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흠...
환단고기 같은 것 좀 그만 읽으세요.
@@oi_77i 후백제의 군사 중심지였던 羅州城 (나주성)을 구글지도에 검색해보세요. 중국 강남지역에 나주성터 라고 나옵니다. ^^ 환단고기? ㅋ 읽어는 보셨나? 신라 얘기하는데 뜬금없이 왜 환단고기를 운운하시나 ㅋㅋ
@@oi_77i 아무것도 알아보지않으려는자가 환단고기타령하더라 그거아니라도 이미 우리상고사 모든내용들에 다 밝혀지고있음
@@쭌-e4w아 그러니깐 신라가 중국동쪽이였으면 그 수많은 중국 나라들이랑 국경을 맞대고있었다는건데 ㅋㅋ 그럼왜 전쟁기록이 없냐고 ㅋㅋㅋㅋㅋ ㄱ
구들은 나무나 푸성귀등을 태워서 연기를 내는 구조라 고조선시대에도 고구려 시대부터 쓰였던겁니다 다만 신라경주는 숯을 사용했기에 구들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도시가 워낙방대하고 무역을통해 재력을키워 부강했기에 숯을사용했던 신라입니다
통일신라시대도 경주를 벗어난 곳에는 구들을 사용했습니다
신라사람들은 경상도에만 살았다고 하는데 몽골로 이주를 많이 해서 경주김씨들이 금나라를 세웠습니다.
지금도 몽골에 가면 신라왕족 무덤들이 수십개씩 발견됬는데 한반도 역사는 수정되어야합니다.
고대 국가 왕궁 근처에는 고분군이 존재 했다. 경주 계림에는 대규모 고분군이 존재함. 그리고 방어를 하려면 자연산성이 존재해야되고 현재 월성지 근처는 별궁으로 봐야하고 진짜는 토함산을 방어 산성으로 보고 거길 기준으로 찾아야 할듯
남산 산성
명활 산성
서형 산성
고허성
관문성
부산성
북형 산성
서라벌 주위
왕궁 규모의 성이 발견 된다 하더라도 왕궁은 아니고 그 지역의 중심 도성일 뿐일 겁니다. 왜냐면 신라의 수도 경주는 지금의 경주가 아닌 대륙에 있던 경주이니까요. 기록에 있는 경주의 설명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그 규모나 호구 수를 봐서는 지금의 경주시 인구보다 인구수도 더 많았습니다.
이정더면 정신병이다
맞습니다. 안휘성 허페이合肥市가 금성일 가능성이 높고. 저장성 닝보가 또다른 수도인 월성이라고 합니다. 기후도 아열대기후로 2모작도 가능합니다. 혹독한 겨울이 있는 한반도와. 겨울이 거의없고. 본래 대륙에서 시작한 나라라면 어디에 수도를 정할까요. 허페이시가 경주보다 11배 크고 지금 인구는 980만명입니다. 2000년된도시가 계속 사람들이 살았다면 그 정도는 되야죠. 인구통계학적으로, 기후학적으로 봐도. 어디에 살겠습니까?
경주는 동경이고 본국은 중국 회대 ~ 양자강 유역이죠.
02:33 혹시나해서 지도 찾아보니, 주차장 들어섰네요 ㅋ
천연냉장고 갯발도 없애서 산업단지 짓고있는데 ㅋㅋ
단타의 민족이라 단기수익이면 다 없애버리는 자유의 나라임 ㅎㅎ
시조왕 탄신일을알고싶어요
7세기에 박혁거세가 창시한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도농통합 경주시 영역과 거의 맞먹을 지경으로 (그러니까 지금의 읍면영역 변두리까지) 도시 영역이 많~~이 확장된 신라 고도 서라벌.. 현재 미국, 일본 등의 대도시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스프롤 현상이 과거 신라 시대 경주에도 있었군요.. 미국, 일본은 단독주택 위주라 스프롤 현상이 심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나라는 보시는 것처럼 요즘은 아파트, 빌라 등 다세대 위주로 집을 짓기 때문에 그만큼 스프롤 현상이 덜하지요..
저도 스프롤 현상이 뭔지 배우고 싶어요.상세 설명 부탁 드려도 될까요?
경주는 계획된 도시로 알고 있는데 그 정도 인구에 스프롤 현상이라니요??
미국과 일본은 스프롤 현상이 완전 반대인데 같은 선상두다니요…아는거 맞아요?
단군~삼한~대륙신라~수도 장안의화제~황성옛터~아랍표현 친나~>신라~황금의나라,물소의 나라 신라.....
왕궁터는 대륙에있는게 정황상이치에맞다.
아니면 불국사나 황룡사를 궁으로 썼나. 백재나신라나 엉뚱한곳에서 자꾸 만들어내려하나.
조선왕조는 500년이지만 신라는 1000년인데 조선왕궁은 5개인데 천년을 지낸 신라의 왕궁은 몇개 일까 일단은 반월성이란 궁궐도 예산이 없어 발굴이 안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지경이다
아... 난 그저 신라 궁궐이 어디있는지 알고싶었을 뿐인데
역사스페셜 한시간짜리를 다 봤네...
젠장 1998년 겨울이면 국민학교 4학년때인데 제길...
중1때였네욜
서신라와 서백제가 중국 대륙에 크게 다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국의 왕궁이 반도에 없는 것이다. 현 중국을 지배했던 한국의 삼국시대의 유적과 유물 등을 다 불태운 것이 문화대혁명이다.
서울이 400년 정도 백제 왕궁터라는데 성곽도 없고 성터도 너무 없음 그리고 특히 왕족 왕릉이 보이지가 않음 아무리 도굴 했다고 해도 분명히 바닥에 돌로 만들었을 건데...
서울은 콘크리트로 덮어버림
@@레오메시-q2r이게 맞짘ㅋ
대규모 해자 성터 성곽 주춧돌은 천여년이 지나도 없어지기 힘듦, 더구나 한반도 남쪽은 도성이라불릴만한 도성급성터 유적조차없다는거
정윤❤❤❤❤❤
애초에 사라진게 아니고 퇴적 작용으로 파묻힌 겁니다.
중국의 고대 중세 왕국들의 흔적도 그렇게 파묻혔다 발굴된 경우도 많구요. 한나라의 장락궁만 해도 파묻혀있었죠.
하다못해 남대문만 해도 50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조성 초기에 비해 몇m나 파묻혀 있던거 생각해보면 ...
무식한 소리...
그러면 중국에 가면 신라왕궁터
남아 있겠네
근데 왜 중국에도 그런 유적이 안나오는건가!
나왔다면 책보고랑 그 밑 팔랑귀들이
조용히 있을리가 없을텐데 말이야!
안그런가!ㅉ
@@이재성-k1i해자가 남아잇는 성터가 많은데요 중국엔
@@쭌-e4w 그게 신라의 성이라는
발굴 결과가 있습니까?
중국에서 당연히 발굴을 했을거고
아무런 얘기가 없는 걸 보면 그냥 중국
어느 시대의 성으로 결론이 나서 그런거
아니겠어요?
책보고 같은 애들 요즘 유튜브수입정지
당한 상태로 아는데 그 이유나 아시는지!
여름엔 마당에서 음식해야하니까 간이 부억이 있어야지 아궁이에 불때면 더워서잘수가없지.
등소평이가 50년대,60년대 문화혁명당시 다 박살냈음.
햇을것이다 정화한답은업네용
울산 앞바다를 준설해보면 고대무역의 물품을 벌견할수 있을 듯. 마찬가지로 벽란도도 마찬가지.
울산 앞바다 통로 이제 문떼뿌고 공장 들어섯다
학성고원앞에서 처용암 앞까지
경주시내 시민들이 사는 곳도 다 파보면 엄청난 유물이 나올 듯 그게 불가능하니까
신라는 1,000년을 갔다. 그 사이에 때로는 강성했고 때로는 약하기도 했을거고 수도도 한 곳만 생각하면 안된다. 무려 1.000년의 역사이다
사라진 가야의 역사도 500년 이었다. 지금 남북한도 100넨사이 무슨일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황.품에서 외부 세트장으로 쓴 사비궁이 백제(신라)궁 아닌가요?
벽난로를 초기에는 사용 함,
14:03 178,936호 × 호당 약 6명 = 100만명이 살았던 도시를 현대에도 30만명 정도밖에 안사는 경주에다 집어 넣는다?? 100만이 살았다면 유물량도 비례해야 하는데. 조선조에서야 지명이 정해진 한반도 안에서만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사람아 현재 경주면적이 서울두배가 넘어ㅋ 경주에 남아도는게 땅인데
지금의 울산의 상당 부분도 경주 왕경이었어요,,암각화가 있는 곳도 60년대까지도 울주군이 아니고 월성군이었습니다,동해 바다에서 경주로 어떻게 들어왔을까요?형산강이 아니고 동해에서 울산 태화강으로 들어와서 경주 시내로 물류가 들어온 것이죠,,경주 양남의 대왕암,주상설리가 있고 7번 국도따라 조금 내려가면 울산에 대왕암이 또 있어요,대왕암에서 감은사까지 얼마 안되지요,과거 왕경은 울산의 상당부분을 포함시켜야하는 것입니다,
왕능.왕손능.왕비능~이런쪽으로 계산해봐도 현재의 경주는 아닙니다. 수천개가 있어야됩니다.
@@lsoyu4286 그능이 무조건 존재해야한다는것도 논리적인지않음 그역사간에 파묘 사묘등이 수없이 있었을수도 있는거임 왜나면 신라왕조가 한성씨로 이어진게 아니라 한성씨가 정권잡았을때 그전 왕릉을 다 없앨수도 있고 아무도 모름
@@김옵션공자1 역사적으로 볼때 왕릉을 파해치는일은 거의 없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신하.백성들이 가만있지않음. 침략당해서 훼손은 이해가 되겠지만요.
부도지보면 다나옵니다 참고하세요
응원합니다
누구랑싸움? 뭘응원함?
의문점 ! 천년이나 지속된 신라의 왕궁이 하나도 흔적조차 없어 찾지못 한다는 것이 이해 불가입니다 그리고 왕이 54명이나 되었어도 릉을 하나도 못 찾았고 또 궁궐을 하나만 가지고 천 년을 이어왔을까요? 조선만 해도 궁궐이 몇 개나 되잖아요?
뭔소리야 릉이 얼마나 많은데 릉 자가 들어가면 왕 무덤인데 시내쪽만 관광지라 많이 알고 촌 구석 구석에도 왕릉이 있는데
타임머신이 있다면
진짜 한번 싹 돌아보고 오고싶다
신라의 왕궁은...경북 경주시 월성동.....(?!)
아뭍튼 왕이란 임금이던 무었이든 기업집단이 라고 보면 됨. 왕은 하나 인데 그 나머지는 수많은 입이 입을 버리고 있음.
11년전 꺼임 지금 PD중... 이런....
신라본토가 한반도가 아니고 중국 장강 우측에 월성 있습니다..
정말 이예요
정말 심장이 띄네요
중국에 신라의 월성이 있었다니
정말 금씨 김씨 집성촌이 있다니
이대단한 말씀 고맙습니다
반월성도 있죠. 상해 동남쪽 끝에 신라산도 있고요.
@@남곤-i2d 그에 반해 제가 경주서 컸는데 경주에 왕궁터가 없습니다..
경주에서 신라역사공부 40년전 경주신축 박물관 에서 고고학자교수님들 강의를 듣고 신라 992년 역사공부 했는데. 지금의 반월성이 왕궁터였고.안압지가 연회를 배풀든곳 . 김유신 장군집터 우물.첨성대는 27대 선적여왕때. 만들어진것. 56대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넘길때 .안압지에서 항복했다고 배웠는데.
992년 도읍지라 땅만파면 금관 신라유물들이 솓아져나오고 경주 남산의불상들 포석정 왕궁.등등. 한번도 신라 도읍지가 다른곳에 있다고 생각하지않았슴.
알고리즘 진짜 신기하네 경주 여행을 앞두고 관련된 영상들이 줄줄이 뜨네 연관성 있게 경주 신라 왕궁은 다음 주 떠날 예정인데 오늘 최신으로 뜨네
좋은뜻으로든 나쁜뜻으로든 감시당하고 있다는 뜻이죠.
누구한테 감시를 당해? 이왕이면 이쁜여자한테 감시 당하고 싶다 특히 목욕할대@@우리-j5t
니가 유튜브에 경주를 쳐 검색했겠지
신라가 6개의 섬으로 되었다는 아랍의 기록은 분명 산동반도가 신라의 영토였음을 말해주눈군요
그건 바다건너서 아랍인들이왔으니 섬으로 착각한겨
@@김띤띤바다를 건너는 배 만드는 기술은 신라 백제 밖에 없었는데?
@@user-rq8rh3si3m해군기지 떡하니 있는 고구려 수군은 뭐임?ㅋ 그거 이어 받은 발해 수군이 당나라 등주 공격한거고.
@@user-rq8rh3si3m 그럼 고대 그리스는 헤엄쳐서 건너다녔냐?ㅋㅋㅋ
@@user-rq8rh3si3m니도 지도팔이 대륙삼국설놈 신봉자냐?? ㅋㄱㄱㅋㅋㅋ
1000년도 훨씬 이전에 지금의 경주 자리에서 90만 가까운 인구가 살았다고 생각하나요?
지금 경주 인구에 3배가 넘는 인구인데 말이 안되죠.
기록에 나오는 경주는 지금의 경주가 아니라 대륙에 있었습니다.
지금 경주면적이 서울 2배에 가까운건 생각안해보시나 그당시 신라 면적이랑 거의비슷하다고 보는데요??? 읍면지역도 포함됨 특히 여근곡쪽은 지금 신경주역에서 20분거리임.....
지금은 포항쪽에 편입된 일부 지역도 그당시 전부 경주땅이었음 일본놈들이 일제강점기때 경주를 의도적으로 축소시켜서 그렇지 지금보다도 훨씬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음
경주가 대륙에 있었다? 그럼 신라가 중국의 역사에 포함된다는겨? 우리역사가 아니고?
넉빠진 환빠들 때문에 강단사학자들에게 무시 받는겨~
경주지역을 잘 모르면 니새끼가턴 개소리고 나온다
경주 입실 경주 내남 경주 건천 경주 안강 붙었덕 넓은 지역에
17만호가 살았다 가정하면 50만에서 80만명 거주
6개섬 이유는 영토가 크기에 그때는 배가 지금 비행기 역할이다 ^^
맞네 배타고 강물따라 와서는 그게 섬인 줄 아는거지
그래서 고려를 섬나라로 인식함
왜? 고려가 대륙 물줄기 타고 가는 곳이니깐
거친 파도가 있는 바다 넘어서 가는 배는 당시에 고려만 만들 수 있었음
바닷배 타고 가다 뒤지는 경우의 수가 더 높았고
남한에서 왕궁터 모습을 갖춘 곳은 익산의 왕궁리터가 아닐까? 남아있는 유적은 미륵사탑과 오층석탑이지만 대지의 넓이는 왕궁터 규모이며 근처에 큰 사찰 미륵사가 있고 무왕(서동)의 릉과 왕비(선화공주?)릉도 있다.
식수인원 85만명으로 잡힘. 기업공단임
사천성의 경주와 경주를 관계를 비교하면서 연구를 해야하지 않을까,
반도의 한쪽에서 셰계를 호령할수는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실패하고 경주를 건설하지는. 않았는지?
중국대륙에 있어 책보고 님
신라왕궁은 6500평의 규모 였음.
김현😊😊😊😊😊
@@정연호-f3h 일본 열도의 나라현에 있읍나다, 욜쇄가 그려진 무덤있는 곳이 이 과거의 왕궁이네요.
그럼 누가 좋을까요?
당신께서 하고 싶습니까?
주로 송씨가 주축이 되어 생산지휘,
아랍 지도에 신라는 여러개로 나온다.
고로. 경주는 동경일 가능성이 많음
실장님😊😊😊😊😊
그 아랍지도도 종류여러가지 그중하나만 6개섬임 나머지 지도들은??? ㅋㅋㄱㄱ
궁궐은 대륙에 있었으니 경주엔 궁궐터가 없는게 아닐까요………?!
그러면 대륙에는 신라궁궐터가 있겠네요
근데 그걸 발굴했다는 얘기는 전무하지 않나요?
책보고같은 애들 헛소리로 사람들 후릴
시간있으면 그시간에 중국에 가서
신라왕궁터나 찾아보는게 빠르지 않겠어요?ㅎㅎ
아프면 약쳐드세요 헛소리 삑삑 하지마시고
@@이재성-k1i 신라왕궁터가 왜 없어? 양자강 주변에 대도시에 해자가 있는 왕궁터가 다 있구만, 구글맵으로도 확인 가능해요. 책보고같은 애들이라 주둥이 털기 전에 삼국사기, 고려사나 좀 읽으시지 그래요? 아주 무례하고 형편없는 인간이 유튜브에서 주접 방정을 떠는 꼴이 우슬프네요. 신라 수도 금성이 전성기 인구가 60~80만명으로 사학자가 그러던데 경상도 경주가 1000년 전에 어떻게 그정도 인구가 살 수 있는 환경인가요? 그럴 의문을 품을 정도 두뇌이면 책보고 같은 부류에게 헛소리 떠든다고 감히 얘기 못하겠지. 그게 당신 수준이니까요. 조선왕조실록 호구조사에 현종10년(1669년) 한양의 인구가 19만4030명이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보다 아주 오래 전에 경상도 구석지에 있는 경주가 인구 80만? 아시아 그 유래가 어디에도 없는 1000년 역사의 나라에? 동북아시아 해상 패권을 제패했다는 나라가? 문무왕 때에는 황제의 연호를 사용했다는 나라가?
월성 파도 별유물 안나왔는데 궁궐이라고 하지
집에 온돌도 없고 아궁이도 없다구요?
방안에 숫을 태워서 난방을 했다구요?
완전 일본이랑 비슷하네요......
나도 약간 의심하는건데 어쩌면 일본은 백제에서 신라로 또 한번 구성원이 바뀐게 아닌가 싶은...
그니깐 일본 연구가 너무 중요함 일본 지식인들이 고민하는 일본의 정체성은 고대한국의 카피캣 수준임 그게 누구껀지 뭔지 모르는게 웃길따름 왜냐면 한국 지식인들이 그게 고대한국의 정체성인지 알아보질 못함ㅋ 일본은 유입문화라 그게 뭔질 모름ㅋ 둘 다 혼란한 상태 그래도 일본은 그것들을 일단 보존 킵해둔 상태이긴 한데 한국은 그러지도 못하였음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본국인지라 미묘하게 남아서 유령처럼 떠도는 것
신라의 본진이 요동에 있었으니 경상도 경주에는 왕궁이 없었던거지.
신라 첫 도읍지가 지금의 경주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역사공부도 역사에 관심을 끊어야 한다.. 석굴암은 경주에 있지만 금성에는 없고 석굴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토함산은 화산이 발생했던 산인데 지금 토함산이 그러하더냐?.. 가짜
박사님인줄😂
중국 안휘성에 해자 있는 왕궁 있던데 거기 안에 기원전부터 있는 우물있는데 좀 상징적인 작은 우물 그게 나정같음 중국인이 우물의 상징성을 아나? 모르잖아ㅋ
경주는 국민의 짐당 텃밭으로 손색이 없다
한반도에는 없지요
병이다 병..
신라의 왕궁은 중국에 있지요!
12:34 1917년에 일제가 경주를 수탈하려고 지적도를 만들었구만ㅉㅉ
지적도같은거 그 외엔 아무쓸짝에도 없는데
산업 혁명 이전에는 지구전체 인구가 3만, (소돔 고모라), 6만, 9만(명나라 정화) 이었던적이 있음,
뭔거짓말을
양자강 이남 안후이성에 있소
고대 조상들은 대륙과 한반도를 아울러 함께 통치했다. 대륙에 수도를 삼아 성장한 후 전란의 위기를 지속 겪어 점점 한반도로 이동해 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반도에는 왕조의 후기 통치자 시대에 한반도로 이동하였기에 그들의 무덤 유적만이 남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간혹 그보다 앞선 시대의 묘지가 있다면 제사를 위한 목적으로 선대 조상의 묘를 대륙 본토로부터 이장한 것일 수도 있으려니 잘 살펴 연구하길 바랍니다.
신라문화는완전환민주주의임니다전쟁을하지안아요
경주는 동신라의 수도이고 본신라는 중국 양자강 남쪽이다
😔
안휘성 합비시合肥市가 동신라 수도 금성이고. 저장성 닝보시가 월성月成입니다 면적도 경주보다 10배 지금인구는 980만이니. 1천여년 역사를 보면 그 정도 인구가 정상이죠. 김씨집성촌이 집중적으로 있어요.
현재 경주는 토일신라시대 전에는 고구려땅였다, 신라는 고려말 우왕때 홍건적의난을 피해 유물유적을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왜 그런 자료는 안보고 소설을 쓰며 왜곡을 일 삼으며 주변국의 역사왜곡에 도움을 주려는가?
뭔 개소리
연못이 1500평 ㄷㄷㄷ
경주는 대륙에 있었다. 대한민국의 경주는 신라의 왕궁이 아니다.
대륙신라 그만해요 이제
대륙 어디? 그니까.어디?
ㅇㅈ
이런말이 나오는 이유가 ,, 남한쪽은 도성급이라 할만한 대형해자 성곽을찼을수가없음 , 그런 도성급의 큰성은 천여년이 지나도 없어지기가 힘든데, 더구나 중국은 각 지역마다 도성이라 불리울만한 대형성터들이 남아잇으니 원, ,
친일매국노 만큼이나 해악이 국수주의자들.
신라의 궁궐은 산둥지방에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헛소리 하시네 신라멸망후 신라귀족들이 만주로 넘어가서 금나라 와 청나라를 세웠잖아요
@@가을풍경-g2q 여기저기 다니면서 헛소리한적 없는데요 ㅋㅋ
유튜브의 폐단 생각은 자유
@@CyprusKorean 생각은 자유...
몽골침략기때 다 박살나고 초토화된거임
상식적으로 내가 지내는곳과 가까운곳에다가 무덤을 만들진 않을거 같은데. 경주는 무덤지와 관련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현재로 발전한건 아닐까요
왕이 살던 곳에서 얼마 멀지 않는 곳에서 왕릉이 있는데요
상식적으로 무덤은 다 자기살던곳 근처다 ㅉㅉ
신라는 로마야
신라를 바실라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그리스어로 로마라는 의미
그리고 숯으로 난방을 한 것은 일본 가옥이 그렇지 않음?
신라도 일본이라는 증거도 많더라고. 신라금관의 옥이 딱 일본인들의 옥 형태임. 일본은 현 일본만 일본이 아니고 돌궐과 아랍권을 제외한 문명이 일본이었던 것 같음. 우리는 둘궐로 오스만제국이 우리역사.
서역인 (페르샤 아랍상인들)이 묘사한 여러 섬나라는 신라가 아니라 일본이지.
청나라 만주원류고 박혁거세의 성지 계림은 만주 길림이다
온돌난방은 고구려 백제고 신라는 흉노의 후예답게 풍로같은 난로로 난방했네.
신라는 ㅡ중국에서 와서
나라를 세운나라ㅡ그래서
중국처럼ㅡ바둑판처럼 경주도시가 만들어졌다❤
족보도 없는 백제보단;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할수 있었던힘은 검소함과 바른사고를 가진사람이 많았다는것이다. 그것은 인성교육이다.
신라는 크게 서신라 동신라가 있습니다. 서신라(서라벌)는 중국 양자장남쪽 호북성 호남성 광저우(광주) 대만근처땅까지 크게 서신라였다고 봅니다
유트브 책보고를 보면 자세하게 다 나옵니다
그 지도팔이??? ㅋㅋㅋㅋㄱㅋ 유적유물 설명못하는?? ㅋㅋㅋ
중국 본토에, 신라금성이 유적지로 남아 있고, 월성도 있다, 고구려 영락궁도 남아있다~
그 당시에 1 호에 5명?
적어도 7~9명은 되었을것 같구먼
경주는 통일신라후기에만 조금 남아 있습니다. 고려가 건립하면서 한반도로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고려도 대륙에서 건국했습니다. 한반도는 동신라 유적이 조금 남아 있드랬죠...
헬조선때문에 한반도로 우리 영토가 좁혀졌을뿐
매금충 환장할 에피소드 로구만 ㅉㅉㅉ
니얼굴
@@user-uwan-user매금이 부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