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 백제와 열도 백제에 대한 해설을 가장 디테일하게 해주시는 분 같네요. 안타깝지만 현 강단 사학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강단 사학 측의 역사적 해석만 받아들이는 분들에게 많은 공격을 당하실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TV 시간과 공간님의 영상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응원할게요.
와 소름돋네요~~ 60평생 눈꼽만큼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예전에 자신이 백제 후손이라고 고백한 내용과 일치하네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미륵사지 왕궁리 고고학적 유물을 토대로 총체적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추정하여 결론을 내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정말 대박입니다~~ 이런 일본이 임진왜란과 대한제국을 침탈합병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
정말 일리있는 해석으로 보입니다.
백제와 열도의 정치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본국 백제와 열도 백제에 대한 해설을 가장 디테일하게 해주시는 분 같네요. 안타깝지만 현 강단 사학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강단 사학 측의 역사적 해석만 받아들이는 분들에게 많은 공격을 당하실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TV 시간과 공간님의 영상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응원할게요.
너무 재밋게 잘 보았습니다.
본국 과 열도로 이어지는 당시 상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계속 강의 잘 보겠습니다.
의자왕의 알려지지 않은면을 알게 되니 더 흥미롭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에 사시나요? 뵙고 더 많은 일본을 배우고 싶군요. 글 준비 중입니다.
지금 얘기는 무령왕 의 일대기 인것 같습니다
의자왕은 큐슈에서 해동증자로 큐슈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무왕과 죠메이천왕은 동일인입니다
코쿄쿠 천왕 은 의자왕의 부인입니다
부여풍은 인질이 아니고 어머니를 도우로 갔습니다
그때 부여풍에 의에 소가씨 아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원래 니혼은 인디언처럼 원주민이 있었음 지금 일본말이 백제말임
황극천황/조명천황은 백제 무왕의 공주이고, 쓰이코 천황의 딸이라고 하셨는데 무왕과 쓰이코 천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와 소름돋네요~~
60평생 눈꼽만큼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예전에 자신이 백제 후손이라고 고백한 내용과 일치하네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미륵사지 왕궁리 고고학적 유물을 토대로
총체적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추정하여 결론을 내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정말 대박입니다~~
이런 일본이 임진왜란과 대한제국을 침탈합병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
조선은 중화계열 즉 중국의 속국인 동국조선입니다.
눈이 확 뜨이네요.
본국 사비백제. 큐슈백제. 혼슈백제....이 셋은 하나였다.
단군의 삼한관경제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었네요.
대륙백제가 본국입니다 일식기록이 중국에 있습ㄴ디ㅏ
@@내가판단하고내가결정
대륙백제가 본국일때
왜는 어디 있었을까요?
여기 정신병동인가요
@@riso2156 비판을 할려면 내용과 논리가 있어야지 왜 비난을 하시나요? 아키히토 일왕이 자신은 백제의 혈통이라고 스스로 밝힌 것은 뭘로 설명할껀데요? 정신병동에 있다가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할까요? 이상한 사람이네, 면상 까고 앞에서는 정상인인 척 하겠지 캬악 퉷
@@패미박멸 근거를 제시해 백제 혈통이 아니라 ㅋㅋ 백제 왕족이랑 모계가 결혼을 한번 한거야
서강대 김영덕 한양대 김용운 이덕일 홍윤기 역사그날 많은 분들의 강의를 보니 다 같은 내용 입니다..우리 역사책을 다시 써야 하는데..아직 식민사학자와 중앙박물관 관련자들이 극우군국사관을 가지고 있으니..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무슨 극우군국사관이냐 좌파식민시관이지
일본 왜왕가는 백제 황족 부여씨였다는 설명 매우 설득력이 있군요. 사실상 백제가 왜국을 세우고 통치하는군요. 열도백제 왜왕이 송서에 오국제군사를 요청한 것도 본국백제와 경쟁하는 양상으로 이해되어지는군요. 미궁에 빠졌던 대백제사가 확 설명되는군요. 🎉
매우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참고할만한 책이 있으면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왕은 위덕왕의 아들이 아님.
방계 부여씨이거나, 전지왕 여영처럼 아예 다른 성씨 출신의 사성받은 부여씨임.
무왕의 즉위는 사실상 왕조의 교체였기 때문에 유교식 시호에서 왕조 시조에게 주어지는 '무'를 시호로 한것임.
너 일본어 알지 잘봐라 宋書に記された倭の五王(わのごおう)とは、5世紀に、南朝の東晋や宋に朝貢して「倭国王」と叙授された倭国の五人の王、すなわち讃、珍、済、興、武を指します。「倭の五王」の遣使(世修貢職)の記録が『古事記』、『日本書紀』に見られないことや、ヤマト王権の大王が、「倭の五王」のような讃、珍、済、興、武など一字の中国風の名を名乗ったという記録は存在しないため、「倭の五王」は近畿主体のヤマト王権の大王ではないとする説も江戸時代からありました。「讃」→履中天皇、「珍」→反正天皇、「済」→允恭天皇、「興」→安康天皇、「武」→雄略天皇・・・倭の五王の遣使は413年から477年までに少なくとも9回が確認されますが、このうち421年の倭王讃による遣使は東晋に対してですが、425年から477年までの倭王珍・倭王済・倭王興は、いずれも南宋に対するもので、479年倭王武の遣使は南斉対するものです。五王の朝貢年は中国史書からは明らかですが、記紀には(東晋・南宋・南斉の首都・建康(南京市の古称)への)朝獻記録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このため遣使年に在位していた天皇名を推定することで終わっています。具体的なきめてに欠けているのです。
井上光貞『日本の歴史1 神話から歴史へ』中央公論社〈中公文庫〉、1973年10月。ISBN 4-12-200041-6。
佐伯有清 編『雄略天皇とその時代』吉川弘文館、1988年2月。ISBN 978-4-642-02145-6。
安本美典『倭の五王の謎』廣済堂出版〈廣済堂文庫〉、1992年9月。ISBN 4-331-65153-3。
安本美典『大和朝廷の起源』勉誠出版、2005年7月。ISBN 978-4-585-05324-8。
直木孝次郎『直木孝次郎古代を語る6 古代国家の形成―雄略朝から継体・欽明朝へ』吉川弘文館、2009年3月。ISBN 978-4-642-07887-0。
森公章『倭の五王 5世紀の東アジアと倭王群像』山川出版社〈日本史リブレット 人 002〉、2010年4月。ISBN 978-4-634-54802-2。
上田正昭『私の日本古代史 上 天皇とは何ものか−縄文から倭の五王まで』新潮社〈新潮選書〉、2012年12月。ISBN 978-4-106-03720-7。
河内春人『倭の五王−王位継承と五世紀の東アジア』中央公論社〈中公新書〉、2018年1月。ISBN 978-4-121-02470-1。
瀧音能之『「日本書紀」と「宋書」で読み解く!謎の四世紀と倭の五王』青春出版社〈青春新書INTELLIGENCE〉、2018年8月。これらは今やみな骨董品 です。
私は梁書と三国史記を対比して、王名とその遣使年に一致があることを遂につきとめました。双方の資料に集中して分析してみました。
*[---]の中は日本書紀に出現する表記名。
宋書→梁書=百済の諱と王名=日本書紀の表記名
「賛」→須=(餘・須・第14代・近仇首王):[貴須王]
「珍」→余映=(餘映・第18代腆支王):[直支王]
「済」→餘慶=(餘慶・第21代・蓋鹵王):[加須利君]
「興」→牟都=(餘都・第22代・文周王):[汶洲王]
「武」→牟太=(牟大・第24代・東城王):[末多王] *第二章三部後小論に(「倭の五王の後裔」・稲荷山の鉄剣などに詳述)
・梁書では倭の五王の後の二代まで書かれている。これは何を意味するのだろうか。百済王系譜、その連続性と一致する。このことは倭の五王が百済王であることは如実に語っている。もはや否定できないといえよう。
「隆」→餘隆=(第25代・武寧王・(斯摩)(「嶋君しまぎみ・嶋郎」→億計天皇に比定、その状況、父を殺されたことや、また弟が先に天皇になった経緯が近似している。嶋郎は弘計天皇と同母、母は荑媛(はえひめ・書記、これは倭王武と倭王隆が同母であること。嶋郎が先に生まれていることを示します。)
宋書に記された倭の五王(わのごおう)とは、5世紀に、南朝の東晋や宋に朝貢して「倭国王」と叙授された倭国の五人の王、すなわち讃、珍、済、興、武を指します。「倭の五王」の遣使(世修貢職)の記録が『古事記』、『日本書紀』に見られないことや、ヤマト王権の大王が、「倭の五王」のような讃、珍、済、興、武など一字の中国風の名を名乗ったという記録は存在しないため、「倭の五王」は近畿主体のヤマト王権の大王ではないとする説も江戸時代からありました。「讃」→履中天皇、「珍」→反正天皇、「済」→允恭天皇、「興」→安康天皇、「武」→雄略天皇・・・倭の五王の遣使は413年から477年までに少なくとも9回が確認されますが、このうち421年の倭王讃による遣使は東晋に対してですが、425年から477年までの倭王珍・倭王済・倭王興は、いずれも南宋に対するもので、479年倭王武の遣使は南斉対するものです。五王の朝貢年は中国史書からは明らかですが、記紀には(東晋・南宋・南斉の首都・建康(南京市の古称)への)朝獻記録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このため遣使年に在位していた天皇名を推定することで終わっています。具体的なきめてに欠けているのです。
井上光貞『日本の歴史1 神話から歴史へ』中央公論社〈中公文庫〉、1973年10月。ISBN 4-12-200041-6。
佐伯有清 編『雄略天皇とその時代』吉川弘文館、1988年2月。ISBN 978-4-642-02145-6。
安本美典『倭の五王の謎』廣済堂出版〈廣済堂文庫〉、1992年9月。ISBN 4-331-65153-3。
安本美典『大和朝廷の起源』勉誠出版、2005年7月。ISBN 978-4-585-05324-8。
直木孝次郎『直木孝次郎古代を語る6 古代国家の形成―雄略朝から継体・欽明朝へ』吉川弘文館、2009年3月。ISBN 978-4-642-07887-0。
森公章『倭の五王 5世紀の東アジアと倭王群像』山川出版社〈日本史リブレット 人 002〉、2010年4月。ISBN 978-4-634-54802-2。
上田正昭『私の日本古代史 上 天皇とは何ものか−縄文から倭の五王まで』新潮社〈新潮選書〉、2012年12月。ISBN 978-4-106-03720-7。
河内春人『倭の五王−王位継承と五世紀の東アジア』中央公論社〈中公新書〉、2018年1月。ISBN 978-4-121-02470-1。
瀧音能之『「日本書紀」と「宋書」で読み解く!謎の四世紀と倭の五王』青春出版社〈青春新書INTELLIGENCE〉、2018年8月。これらは今やみな骨董品 です。
私は梁書と三国史記を対比して、王名とその遣使年に一致があることを遂につきとめました。双方の資料に集中して分析してみました。
*[---]の中は日本書紀に出現する表記名。
宋書→梁書=百済の諱と王名=日本書紀の表記名
「賛」→須=(餘・須・第14代・近仇首王):[貴須王]
「珍」→余映=(餘映・第18代腆支王):[直支王]
「済」→餘慶=(餘慶・第21代・蓋鹵王):[加須利君]
「興」→牟都=(餘都・第22代・文周王):[汶洲王]
「武」→牟太=(牟大・第24代・東城王):[末多王] *第二章三部後小論に(「倭の五王の後裔」・稲荷山の鉄剣などに詳述)
・梁書では倭の五王の後の二代まで書かれている。これは何を意味するのだろうか。百済王系譜、その連続性と一致する。このことは倭の五王が百済王であることは如実に語っている。もはや否定できないといえよう。
「隆」→餘隆=(第25代・武寧王・(斯摩)(「嶋君しまぎみ・嶋郎」→億計天皇に比定、その状況、父を殺されたことや、また弟が先に天皇になった経緯が近似している。嶋郎は弘計天皇と同母、母は荑媛(はえひめ・書記、これは倭王武と倭王隆が同母であること。嶋郎が先に生まれていることを示します。)
宋書に記された倭の五王(わのごおう)とは、5世紀に、南朝の東晋や宋に朝貢して「倭国王」と叙授された倭国の五人の王、すなわち讃、珍、済、興、武を指します。「倭の五王」の遣使(世修貢職)の記録が『古事記』、『日本書紀』に見られないことや、ヤマト王権の大王が、「倭の五王」のような讃、珍、済、興、武など一字の中国風の名を名乗ったという記録は存在しないため、「倭の五王」は近畿主体のヤマト王権の大王ではないとする説も江戸時代からありました。「讃」→履中天皇、「珍」→反正天皇、「済」→允恭天皇、「興」→安康天皇、「武」→雄略天皇・・・倭の五王の遣使は413年から477年までに少なくとも9回が確認されますが、このうち421年の倭王讃による遣使は東晋に対してですが、425年から477年までの倭王珍・倭王済・倭王興は、いずれも南宋に対するもので、479年倭王武の遣使は南斉対するものです。五王の朝貢年は中国史書からは明らかですが、記紀には(東晋・南宋・南斉の首都・建康(南京市の古称)への)朝獻記録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このため遣使年に在位していた天皇名を推定することで終わっています。具体的なきめてに欠けているのです。
井上光貞『日本の歴史1 神話から歴史へ』中央公論社〈中公文庫〉、1973年10月。ISBN 4-12-200041-6。
佐伯有清 編『雄略天皇とその時代』吉川弘文館、1988年2月。ISBN 978-4-642-02145-6。
安本美典『倭の五王の謎』廣済堂出版〈廣済堂文庫〉、1992年9月。ISBN 4-331-65153-3。
安本美典『大和朝廷の起源』勉誠出版、2005年7月。ISBN 978-4-585-05324-8。
直木孝次郎『直木孝次郎古代を語る6 古代国家の形成―雄略朝から継体・欽明朝へ』吉川弘文館、2009年3月。ISBN 978-4-642-07887-0。
森公章『倭の五王 5世紀の東アジアと倭王群像』山川出版社〈日本史リブレット 人 002〉、2010年4月。ISBN 978-4-634-54802-2。
上田正昭『私の日本古代史 上 天皇とは何ものか−縄文から倭の五王まで』新潮社〈新潮選書〉、2012年12月。ISBN 978-4-106-03720-7。
河内春人『倭の五王−王位継承と五世紀の東アジア』中央公論社〈中公新書〉、2018年1月。ISBN 978-4-121-02470-1。
瀧音能之『「日本書紀」と「宋書」で読み解く!謎の四世紀と倭の五王』青春出版社〈青春新書INTELLIGENCE〉、2018年8月。これらは今やみな骨董品 です。
私は梁書と三国史記を対比して、王名とその遣使年に一致があることを遂につきとめました。双方の資料に集中して分析してみました。
*[---]の中は日本書紀に出現する表記名。
宋書→梁書=百済の諱と王名=日本書紀の表記名
「賛」→須=(餘・須・第14代・近仇首王):[貴須王]
「珍」→余映=(餘映・第18代腆支王):[直支王]
「済」→餘慶=(餘慶・第21代・蓋鹵王):[加須利君]
「興」→牟都=(餘都・第22代・文周王):[汶洲王]
「武」→牟太=(牟大・第24代・東城王):[末多王] *第二章三部後小論に(「倭の五王の後裔」・稲荷山の鉄剣などに詳述)
・梁書では倭の五王の後の二代まで書かれている。これは何を意味するのだろうか。百済王系譜、その連続性と一致する。このことは倭の五王が百済王であることは如実に語っている。もはや否定できないといえよう。
「隆」→餘隆=(第25代・武寧王・(斯摩)(「嶋君しまぎみ・嶋郎」→億計天皇に比定、その状況、父を殺されたことや、また弟が先に天皇になった経緯が近似している。嶋郎は弘計天皇と同母、母は荑媛(はえひめ・書記、これは倭王武と倭王隆が同母であること。嶋郎が先に生まれていることを示します。)
宋書に記された倭の五王(わのごおう)とは、5世紀に、南朝の東晋や宋に朝貢して「倭国王」と叙授された倭国の五人の王、すなわち讃、珍、済、興、武を指します。「倭の五王」の遣使(世修貢職)の記録が『古事記』、『日本書紀』に見られないことや、ヤマト王権の大王が、「倭の五王」のような讃、珍、済、興、武など一字の中国風の名を名乗ったという記録は存在しないため、「倭の五王」は近畿主体のヤマト王権の大王ではないとする説も江戸時代からありました。「讃」→履中天皇、「珍」→反正天皇、「済」→允恭天皇、「興」→安康天皇、「武」→雄略天皇・・・倭の五王の遣使は413年から477年までに少なくとも9回が確認されますが、このうち421年の倭王讃による遣使は東晋に対してですが、425年から477年までの倭王珍・倭王済・倭王興は、いずれも南宋に対するもので、479年倭王武の遣使は南斉対するものです。五王の朝貢年は中国史書からは明らかですが、記紀には(東晋・南宋・南斉の首都・建康(南京市の古称)への)朝獻記録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このため遣使年に在位していた天皇名を推定することで終わっています。
유사인류 니혼진아 잘봐라 왜왕이 백제왕이래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바부! ㅋㅋ
재미있어요. 영화로 만들어야해쇼^^
내용이 너무 흥미롭습니다 ~ 하지만 주장하시는 것에 대하여 사료가 있으면 보여주시면 더욱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자료를 참고 하셨나요? 고사기 또는 속일본기 인가요?
본인의 연구결과인지 다른 분들의 연구를 서술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강단 사학자들은 꿈도 못꾸는 얘기군요. 오히려 일본에서도 비슷한 학설과 저서가 있더군요. 심지어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신라의 태종무열왕도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이 되었다는 주장과 저술도 있습니다.
말이되는 소리를 하세요
@@riso2156 사람이라서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캬악 퉷
@@패미박멸 수준이 침만 뱉고 돌아다니는 동네 양아치네
동아시아지도를 뒤집어서 거꾸로 보면 대륙백제가 썰이 아닌 사실임을 알수 있습니다. 북에서 남을 바라보면 진실이 보입니다.
역사 에 인정받 거나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나가노오에황자=의자왕의 아들 부여용
풍 아닌가요?
서명천황은 의자왕이 아니라 무왕임.
이름(서동 서명) 사망시기 행적 일치.
의자왕 계모 사택적덕녀가 제명천황.
이복동생 교기가 천지천황임.
무왕은 유략천황이다 우기지마라
유사인류 ㅉ발이야 왜 자꾸 헛소리야? ㅋㅋㅋ
근거가 있나요
있긴 개뿔요
말도 안통하는 왕이 어뜨께 통치를 하겠써요
일본서기의 서명은 무왕의 행적과 일치하는점이 많던데요?
이 영상의 주장에 따르면 백제의 후손은 일본이란 말인데 한국 사람이 백제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해야 할 이유가 뭔가?
자랑?이 아니고 바른역사를 배우는게 진리입니다 왜곡되 역사를 배우면 안되지요
그리고 일본은 백제의 후손이 아니라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인들의 후손입니다
누가 좌랑스러워함? 조선인에게 역사는 국뽕 수단?
@@Ross6437-k2w 헛소리
@@유사인류조센진 정신. ㅂㅈ 출동이요 ㅋㅋㅋ
사료를 좀 보여주세요, 남아 있다는
대단한 내용이고 놀라운 강의입니다.
정말 우리들에게 국사를 가르친 교사들은 뭐냐?
거짓말로 밥 먹고 사나?
뭔가 이상한 퍼즐이 맞추어지네..선화 공주는..신라 공주가 아니야.. 일본에 가서 지내던시절을 신라에서..사실 명확하게 신라라고 한적도없긴하지..일본이였구나..ㅋ
개처량한 세상.. 피 맺히는 음악..ㄹ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당신
벡제의자왕은 당나라에 끌려가서 거기서 사망합니다. 의자왕이 서명천황아닙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무왕이 서명천황이라고 하는것이 타당합니다. 부여교기왕자(중대형황자)가 천지천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료남아있나요?
느그 집 개사료?
이런인간 때문에 우리나라 사학계가 개판되어가는 것임 어느정도 근거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해야지 ‘아마도~했을 것이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인마냥 썰을 풀어나가는 것은 한 개인의 바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정말 무식한거임
宋書に記された倭の五王(わのごおう)とは、5世紀に、南朝の東晋や宋に朝貢して「倭国王」と叙授された倭国の五人の王、すなわち讃、珍、済、興、武を指します。「倭の五王」の遣使(世修貢職)の記録が『古事記』、『日本書紀』に見られないことや、ヤマト王権の大王が、「倭の五王」のような讃、珍、済、興、武など一字の中国風の名を名乗ったという記録は存在しないため、「倭の五王」は近畿主体のヤマト王権の大王ではないとする説も江戸時代からありました。「讃」→履中天皇、「珍」→反正天皇、「済」→允恭天皇、「興」→安康天皇、「武」→雄略天皇・・・倭の五王の遣使は413年から477年までに少なくとも9回が確認されますが、このうち421年の倭王讃による遣使は東晋に対してですが、425年から477年までの倭王珍・倭王済・倭王興は、いずれも南宋に対するもので、479年倭王武の遣使は南斉対するものです。五王の朝貢年は中国史書からは明らかですが、記紀には(東晋・南宋・南斉の首都・建康(南京市の古称)への)朝獻記録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このため遣使年に在位していた天皇名を推定することで終わっています。具体的なきめてに欠けているのです。
井上光貞『日本の歴史1 神話から歴史へ』中央公論社〈中公文庫〉、1973年10月。ISBN 4-12-200041-6。
佐伯有清 編『雄略天皇とその時代』吉川弘文館、1988年2月。ISBN 978-4-642-02145-6。
安本美典『倭の五王の謎』廣済堂出版〈廣済堂文庫〉、1992年9月。ISBN 4-331-65153-3。
安本美典『大和朝廷の起源』勉誠出版、2005年7月。ISBN 978-4-585-05324-8。
直木孝次郎『直木孝次郎古代を語る6 古代国家の形成―雄略朝から継体・欽明朝へ』吉川弘文館、2009年3月。ISBN 978-4-642-07887-0。
森公章『倭の五王 5世紀の東アジアと倭王群像』山川出版社〈日本史リブレット 人 002〉、2010年4月。ISBN 978-4-634-54802-2。
上田正昭『私の日本古代史 上 天皇とは何ものか−縄文から倭の五王まで』新潮社〈新潮選書〉、2012年12月。ISBN 978-4-106-03720-7。
河内春人『倭の五王−王位継承と五世紀の東アジア』中央公論社〈中公新書〉、2018年1月。ISBN 978-4-121-02470-1。
瀧音能之『「日本書紀」と「宋書」で読み解く!謎の四世紀と倭の五王』青春出版社〈青春新書INTELLIGENCE〉、2018年8月。これらは今やみな骨董品 です。
私は梁書と三国史記を対比して、王名とその遣使年に一致があることを遂につきとめました。双方の資料に集中して分析してみました。
*[---]の中は日本書紀に出現する表記名。
宋書→梁書=百済の諱と王名=日本書紀の表記名
「賛」→須=(餘・須・第14代・近仇首王):[貴須王]
「珍」→余映=(餘映・第18代腆支王):[直支王]
「済」→餘慶=(餘慶・第21代・蓋鹵王):[加須利君]
「興」→牟都=(餘都・第22代・文周王):[汶洲王]
「武」→牟太=(牟大・第24代・東城王):[末多王] *第二章三部後小論に(「倭の五王の後裔」・稲荷山の鉄剣などに詳述)
・梁書では倭の五王の後の二代まで書かれている。これは何を意味するのだろうか。百済王系譜、その連続性と一致する。このことは倭の五王が百済王であることは如実に語っている。もはや否定できないといえよう。
「隆」→餘隆=(第25代・武寧王・(斯摩)(「嶋君しまぎみ・嶋郎」→億計天皇に比定、その状況、父を殺されたことや、また弟が先に天皇になった経緯が近似している。嶋郎は弘計天皇と同母、母は荑媛(はえひめ・書記、これは倭王武と倭王隆が同母であること。嶋郎が先に生まれていることを示します。)
왜의5왕 찬ㆍ진ㆍ제ㆍ흥ㆍ무는 백제왕 근구수왕 전지왕 개로왕 문주왕 동성왕
@@Ross6437-k2w 그 5왕이 한반도 출신이란 증거 좀
백촌강 전투때 왜국에서 배400척과 군사 27,000명이 백제를 돕기 위해 지원군으로 파견됐다 그때 선봉에 선 사람이 의자왕의 아들 풍장이었다 왜? 고민해봐라
@@riso2156 무지한거냐? 한반도 출신이라는 증거? 역시 ㅋㅋㅋ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무슨 본국백제 열도 백제냐 좀 이 딴 소리좀 하지마라 판타지 소설쓰냐 부끄럽다 부끄러워
ㅋㅋ 아키히토 천왕도 정신병동 있다가 나왔겠네? 화교 알바라도 되시나, 캬악 퉷
말이되는 말인데요. 대륙백제 열도백제가 있고 열도백제가 지금의 일본입니다.
자신의 무지를 탓해야지 왜 횟소리라고 꽥꽥거리는지
헛소리 하지마요
@露積成海 머가
? 머야이 찌끄레기는
이게 헛소리라고? 대깨문 어서오고
@@sneekeebeats 니얘비냐 대깨문은 안궁금하다
@露積成海 저도 김씨한테 한소리라 오해는 말아주셔요 ㄷㄷ
@露積成海 머라는거야 사치코 룐아
규슈백제 라는 명명의 근거를 제시해라 헛소리라는 소리 듣기싫으면
화교 알바인가, 한 영상에 여러 댓글질했네, 캬악 퉷
@@패미박멸 역사를 상상으로 해석하냐
큐슈는 백제도 있었고 가야도 있었다 이즈모는 신라가 있던곳이고
@@riso2156상상이 아니라 당신의 부족한 지식을 의심하라
느그 통일신라라는 명명의 근거는?